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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인생학교 섹스 -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 ㅣ 인생학교 1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미나 옮김 / 쌤앤파커스 / 2018년 1월
평점 :
-20201002 알랭 드 보통.
처음부터 정치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제 정치 말고 도서 비평 유튜브를 한대. 정말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이야.
엄마는 내가 아홉 권이나 읽은 그 작가님을 아직 좋아한다 생각하며 말을 꺼냈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 작가님 책을 보지 않을 거야. 정말 잘 쓰고 좋은 말하는 책이 많았지만, 자기가 쓴 것과 그렇게나 일치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일 줄은 몰랐어. 실망해서 손절했어.
엄마는 내 말에 깜짝 놀랐고, 그건 옳지 않다고 했고, 급기야는 너 요즘 하는 걸 보면 진짜 보수야, 하고는 자기 입에서 끔찍한 욕이라도 나온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부엌으로 가 버렸다. 나는 벙쪄서 아무 말 않고 한참을 있었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냥 어이가 없었다. 삽십 대의 나는 환갑 넘은 어머니로부터 진짜 보수 타이틀을 획득했다!!!
엄마가 댁에 가시고 나서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며 내가 진짜 보수야? 물으니 웃으며 답했다.
보수들 앞에 가 봐, 뭐 이런 빨갱이가, 할 걸.
상반되는 극과 극의 평가에 나의 자아가 분열을 겪고 있다…
명절에 정치 이야기가 (화목함을 유지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주제라면, 가족끼리 모여 앉아 나누기 쉽지 않은 또다른 주제로 섹스가 있다. 그래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 이 책을 폈다…이래저래 쭈글쭈글...
알랭 드 보통은 이름만 실컷 듣고 그의 글을 읽는 건 처음이다. ’인생 학교’라는 기획 시리즈라 그런가, 학교는 왜 이렇게 가르침의 방식이 꼰대 같을까. 내용은 별로 안 꼰대같은데 읽기에는 그렇게 느껴졌다. 많이 읽고 공부하고 오래 산 사람들이 아는 것도 많고 자기만의 생각도 확고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확신에 찬 언어로 당위를 설파하고, 이것이 옳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확신, 신념, 이런 걸 가질 수 있고 표현할 수 있고 자신이 가진 그런 믿음을 다른 누군가에게도 갖도록 만들려는 시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운 적도 잠시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자기가 이게 옳다, 이렇게 살아라, 이런 건 바꿔라, 하던 인간들이 자기가 말한 것들을 지키지 못하고 심지어 자주 어기면서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합리화, 변명하는 걸 보며 와 좆같다 진짜, 하면서 정내미가 떨어져버렸다.
섹스에 관해 생각해보자, 하는 책 이야기 하다 왜 이런 소리를...생각할 거리를 주는 건 좋다. 그런데 책의 어조, 논조는 질문을 던져주고 스스로 답하게 하는 열린 결말이 아니라 정답이 정해진 듯 결론을 내리는 부분이 많았다. 의도는 몰라도 읽는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인생에 답은 없고 학교에서 우리에게 원하는 답은 있지만 그거 대로 사는 게 최선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고 덮는다. 크게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다. 욕망에 매여 찔찔대는 불쌍한 인간인 걸 스스로 인정하고, 그래도 참을 땐 참아야지! 뭐 이런 말로 요약...청소년용인가… 내가 오독한 걸 수도 있다. 그래도 이전에 읽은 ‘관능수업’에 비하면 비교적 사회 통념에 맞는 가르침이긴 했다.
+밑줄 긋기
-첫 키스는 곧 ‘외로움의 극복’을 상징하는 일대 사건인만큼 짜릿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 짜릿한 쾌감은 순전히 신경말단의 자극과 생물학적 충동의 충족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짧은 찰나일지라도, 차가운 익명의 세상에서 우리를 둘러싸던 고독으로부터 벗어난 기쁨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스탕달)
이 정의는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런 수식어를 붙여주는 것은, 단순히 건강함의 차원을 넘어서서, 얼굴을 통해 그 사람과 성공적인 관계를 맺는데 유익할 만한 내면적 특징을 직관적으로 탐지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 사람의 용모에서 결단력, 지성, 신뢰성, 겸손함, 다소 독설적인 유머감각 같은 덕목을 눈치 챌 수 있을지 모른다.
-보링거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누구나 성장하면서 내면의 무언가가 결여되기 마련이다. 부모님이나 성장환경이 늘 완벽할 수는 없으므로, 거기에서 저마다 나름의 좌절을 경험하고, 어느 부분이 취약하거나 불안정한 상태로 성격이 형성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런 약점과 결함이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갖는 호감과 반감의 취향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우리는 내면의 결함을 보상해주고 건강한 상태를 되찾도록 도와줄만한 속성이 담긴 작품을 갈망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미술 작품에서 보고싶어 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결여되어 있는 특정한 속성이다. 그래서 어떤 작품이 결핍된 가치를 채워줄 때 우리는 그 작품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한다. 반면 위협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나 고압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작품을 대할 때는 ‘보기 싫다’는 반감이나 거부감을 갖는다.
-알다시피, 사정 없이 쏟아지는 폭우는 우리 탓이 아니다. 해양 상공이나 산악지대 너머의 대기 상태가 임의적으로 상호작용을 해서 일어나는 결과일 뿐이다. 그 혹은 그녀에게 거절당한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 자신이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변덕스러운 불운 때문에 연애의 들판에 홍수가 나고, 불어난 흙탕물에 사랑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성냥개비처럼 휩쓸려 가버린 것이다. 폭우를 ‘개인적인 문제’로 받아들여 봐야 불운에 망상증까지 더해지는 결과 밖에는 안 된다.
-프로이트는 환자들에게서 너무 자주 목격한 가슴 아픈 딜레마를 이렇게 요약했다.
‘그들은 사랑하면 욕망이 없어졌고, 욕망을 느끼면 사랑할 수 없었다.’
-반면 부르주아의 새로운 철학은 결혼에 대해 단 한 가지 이유만을 정당화시켰다. 바로 ‘깊은 사랑’이다. 그리고 이렇게 깊은 사랑에 이르기 위해선 모호하지만 토테미즘적인 여러 감각들과 감정들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여겼다. 가령 연인들끼리 서로 떨어지기 싫어 애태우는 애절함, 서로의 마음이 꼭 들어맞는다는 확신, 달빛 아래에서 시를 읊어주고 싶은 마음, 서로 하나의 영혼이 되고 싶은 열망 등등. 다시 말해, 결혼이 하나의 ‘제도’에서 ‘감정의 신성화’경지로 승격한 것이다. 또한 외부적으로 인정받는 통과의례에서 내부적인 동기에 의거한 감응으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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