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달걀과 닭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소설집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20년 4월
평점 :
-20201025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접해 본 브라질 문학은 어려서 읽은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가 유일했다. 전자도서관에서 이 책 표지를 보며 궁금했는데 이웃님이 먼저 읽어보고 좋다 하셔서 도전해 보았다.
책 마지막에 옮긴이 배수아 소설가 남긴 후기가 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삶과 브라질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상 같은 걸 간단히 소개한다. 나는 이웃님이 소개해준 몇 가지 일화 말고는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읽었는데, 작가에 관해 미리 아는 것이 이 소설집을 접하는 데 도움이 될지 아닐지 잘 모르겠다.
배수아는 브라질 여행 중 처음 알게된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소설 ‘G.H.에 따른 수난’을 만나고 읽었던 과정을 간단히 소개한다.
‘얼마나 기이한 제목인가.’
“이건 정말 이상한 책이야. 정말 이상한 언어야. 처음 들어보는 작가야. 아니, 아무런 내용도 줄거리도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어쩌면 마지막까지도 아무런 내용도 줄거리도 시작되지 않은 채로 끝나버릴 것만 같으므로, 이 책에 관해서 아무런 설명도 해줄 수 없어. 어쩌면 도중에 읽기를 그만두게 될지도 몰라.”
아...이건 제가 처음이자 유일하게 읽은 배수아님의 ‘뱀과 물’을 접했을 때 느낀 감정과 매우 비슷하군요… ‘모종의 큐비즘을 연상시키는 듯한 언어와 문장’ 이라는 것도… 본인 소설 말씀하시는 거 아닌가요…ㅋ
‘G.H.에 따른 수난’은 아직 도전하지 않았지만 이 단편집 또한 만만치 않게 어려웠다. 배수아 소설가는 소설집과 동명인 단편 ‘달걀과 닭’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세계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작품으로 칭한다. 그리고 이 소설집의 맨 처음에 배치해 놓았다. 첫 작품부터 허들이 높다. 으악 이게 뭐야 무서워 뭔말이야...하고 내려 놓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 것이다...나만 그런가…
그래도 참고 읽으면 중간중간 서사가 파악 가능한 작품들도 있긴 했다. 갑자기 지축이 흔들리는 세계,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의 인식이나 감각이 어떤 계기로 전도되면서 완전 다른 삶을 살 것이라 예상되는 순간 같은 걸 무시무시하게 잘 그려 놓았다. 그런 쪽으로는 ‘사랑’, ‘장미를 본받아’같은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에는 달걀과, 병아리와, 닭이 모두 나온다. 달걀은 특히 자주 나온다. ‘달걀과 닭’은 첫 번째는 어찌어찌 읽었는데 두 번째 시도할 때는 결국 다 읽지 못했다. 비슷하게 읽기 힘들었던 글이 마지막에 실린 ‘브라질리아’였다. 소설인가? 되물을 만큼 그동안 익숙했던 쓰기나 읽기와는 달랐다. 진짜 나는 브라질에 관해 하나도 모르는구나. 브라질산 커피만 열심히 퍼먹었구나. 포르투갈어가 이렇게 생겼구나. 작품마다 원제가 병기되어 있는 점은 좋았다. 다른 번역 소설도 이랬으면 좋겠다.
힘겹게 읽었고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도 맞는데 다시 읽을 엄두는 안 난다. 이쯤되면 ‘G.H.에 따른 수난’은 또 얼마나 어마어마할지 호기심이 생겨 시도해 볼 것 같기는 한데 조금 쉬었다가, 나아아아아아아중에 읽어볼 생각이다.
+밑줄 긋기
-사랑은, 좀 더 많은 관련이 허락되는 일이다.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나머지 모든 것에 대한 거대한 환멸이기 때문이다. 환상의 상실을 견뎌낼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에 사랑이 삶을 풍요롭게 해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자발적으로 사랑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이다. 사랑은 궁극의 가난이다. 사랑은 갖지 못함이다. 게다가 사랑은, 사랑이라고 여겨오던 것에 대한 환멸이다. 사랑은 상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은 자만하게 만들지 않는다. 사랑은 상이 아니다. 사랑은, 그것이 없다면 개인적 고통으로 달걀을 상하게 만들어버릴 자들에게만 허용되는 하나의 조건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영예로운 예외는 아니다. 사랑은 바로 형편없는 첩보원들에게, 모호한 예감이 허용되지 않으면 모든 걸 엉망으로 휘저어버릴 자들에게만 보장된다. (‘달걀과 닭’ 중)
-원래 아나는 사물의 단단한 뿌리를 느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당황스럽게도 가정이 그녀에게 준 감정이다. 구불구불한 길 위에서 그녀는 여자의 운명으로 떨어졌고, 마치 스스로 만든 운명인 듯 자신에게 잘 맞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녀가 결혼한 남자는 진짜 남자였고, 그녀가 낳은 아이들은 진짜 아이들이었다. 지나간 그녀의 어린 시절은 이제 마치 생사를 가르는 질병처럼 낯설어졌다. 점차 그녀는 어린 시절에서 빠져나와 외부로 모습을 드러냈고, 사람은 큰 행복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복의 철폐와 동시에 그녀는,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던 무수한 사람들, 일하듯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내심, 변함없는 지속성, 그리고 기쁨을 가진 자들. 가정을 갖기 이전에 아나에게 생긴 일들은, 이제 그녀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영역으로 물러났다. 그것은 견딜 수 없는 행복이라고 자주 혼동했던 어지러운 도취 상태였다. 그 대신 아나는 최소한 납득할 만한 일을 창조해냈다. 어른의 삶 말이다. 그것을 원했고, 그것을 선택했다.
그녀가 신경을 쓰는 것은 단 한 가지, 위험한 오후의 시간, 집이 텅 비고 그 무엇도 그녀를 요구하지 않는 시간, 태양이 높이 떠오르고 가족 모두가 저마다 각자의 생활로 바쁜 시간을 조심하는 일이다. 가구에 쌓인 먼지를 보면, 그녀의 심장은 놀라서 살짝 오그라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에는 스스로의 놀라움을 상냥하게 돌볼 만한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살림을 통해 익힌 능숙한 솜씨로 그것을 억눌렀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 장을 보러 가거나 뭔가를 수선하러 갔으며, 가사를 돌보았고, 가족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족들을 돌보았다. 그녀가 돌아올 즈음이면 오후는 지나갔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그녀가 필요했다. 그러다 보면 곧, 평화로운 진동과 함께 저녁이 왔다. 아침이면 그녀는 고요한 의무의 후광에 둘러싸여 잠에서 깨어났다. 가구들은 후회 속에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또다시 먼지가 쌓였고 지저분했다. 그녀 자신, 그녀는 어둡고 으슥하게, 이 세상의 검고 유연한 뿌리의 일부를 이루었다. 그녀는 이름도 없이 삶을 먹였다. 그것을 원했고 그것을 선택했다. (‘사랑’ 중)
-그녀는 삶을 능숙하게 달래왔고, 삶이 폭발하지 않도록 잘 다독여왔다. 만사를 밝게 받아들였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각자 떨어뜨려놓았으며, 옷이란 분명 입기 위한 사물이고, 다가올 저녁 시간을 위한 영화도 신문에서 한 편 골라놓을 수 있었다. -—하루가 지나면 다음 날이 오도록, 만사는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런데 껌을 씹고 있던 눈먼 남자가 이 모두를 망가뜨려버렸다. 스스로의 연민을 통해서 아나는, 달콤한 역겨움이 입까지 가득 차오르는 삶을 보았다.(‘사랑’중)
-나무에 매달린 열매는 검고, 꿀처럼 달콤했다. 땅바닥에는 바싹 마른 씨앗이, 부패한 작은 뇌처럼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 모습으로 떨어져 있었다. 벤치는 붉은 과즙으로 온통 얼룩졌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정한 물의 소곤거림이 들려왔다. 반짝이는 거미의 다리가 나무줄기에 달라붙어 있었다. 세계의 잔인함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살인은 깊었다.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이 아니었다.
그 상상의 순간은, 깊이 빠져들어간 또 하나의 세계, 풍성하게 흐드러진 달리아와 튤립의 세계였다. 나무줄기는 잎이 무성한 기생식물에 뒤덮였고, 그들의 포옹은 유연하고도 끈적거렸다. 굴복에 앞서 찾아오는 혐오감처럼—-매혹적이었고, 여자는 구역질을 느꼈다. 매혹적이었다.
나무들은 짐을 지고 있으며, 세계는 너무도 부유한 나머지 썩어갔다. 굶주리는 아이와 어른들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아나의 목구멍에 실제로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마치 임신하고 버려진 여자처럼. (‘사랑’ 중)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눈먼 남자에 대한 연민은 너무도 격렬하여 마치 죽음의 고통 같았으나, 세계는 그녀에게 속한 듯했다. 더럽고 허망한, 그녀의 세계. 그녀는 아파트의 문을 열었다. 거실은 넓고 사각형이며, 문 손잡이는 깨끗하게 닦여 맨들맨들했고, 유리창은 광채가 났으며, 램프의 불빛은 환하게 빛났다. —-이곳은 또 어떤 새로운 땅인가? 지금껏 그녀가 누리던 건강한 생활이, 일순간 윤리적으로 미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서 달려오는 아이는 그녀를 닮은 얼굴과 긴 다리를 가진 생물인데, 펄쩍 뛰어오르며 그녀를 안았다. 그녀도 아이를 힘껏 껴안았다. 깜짝 놀란 채로. 그녀는 몸을 떨면서 스스로를 보호했다. 왜냐하면 삶은 위험하므로. 그녀는 세계를 사랑했고, 창조된 것들을 사랑했다. —-그것들을 역겨움으로 사랑했다. 생굴에 매혹당하는 것과 흡사한, 바로 그런 역겨움, 진실의 언저리에 접근할 때마다 그녀 안에서 솟구치는 희미한 경고의 역겨움. 그녀는 아들을 포옹하면서, 으스러뜨리기 바로 직전까지 힘껏 껴안았다. 마치 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처럼—-눈먼 남자 때문인지, 아니면 보타닉 가든 때문인지?—-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욱 사랑하는 아들의 몸에 힘껏 매달렸다. 그녀에게 믿음의 악령이 씌었다. 삶은 끔찍하단다, 그녀는 작은 소리로, 허기에 시달리며 아들에게 속삭였다. 눈먼 남자의 부름을 따른다면 어떻게 될까? 그녀는 홀로 떠나갈 것이다…...그녀의 존재가 필요한 가난한 장소, 부유한 장소들이 있다. 그녀도 그런 장소들이 필요했다…...나는 두려워, 하고 그녀가 말했다. 팔에 안긴 아이의 가냘픈 갈비뼈가 느껴졌고, 깜짝 놀란 아이의 흐느낌이 들렸다. 엄마, 하고 아이가 불렀다. 그녀는 아이를 밀쳐내고 얼굴을 보았다. 심장이 움츠러들었다. 엄마가 널 잊게 하지 마. 그녀는 아이에게 말했다. 그녀의 포옹이 느슨해지는 걸 느끼자마자 아이는 몸을 빼내고 침실문으로 달려가더니, 더욱 안전한 장소인 그곳에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최악의 눈빛이었다. 피가 그녀의 얼굴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얼굴이 타는 듯 뜨거워졌다.
그녀는 의자에 쓰러지듯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도 손가락은 장바구니를 움켜쥔 채였다. 도대체 무엇이 부끄러운가?
달아날 곳은 없었다. 그녀가 빚어놓은 날들의 껍데기에 금이 갔고, 물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생굴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시선을 돌릴 방법이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부끄러운가? 이제는 더 이상 연민도 없으며, 또 그것은 단지 연민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가슴은 살고자 하는 최악의 욕망으로 터질 것 같았다.
자신이 눈먼 남자의 편에 있는지, 아니면 빽빽이 우거진 식물들의 편에 있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 남자는 점차 배경으로 스며들어갔고, 고통 속에서 그녀는 남자의 눈을 상하게 한 사람들의 편으로 넘어가는 것 같았다. 고요하고 키 큰 보타닉 가든이, 이 사실을 알렸다. 그녀는 자신이 세계의 더 강한 편에 속해 있음을, 충격으로 깨달았다. (‘사랑’중)
-이 세상에 오직 홀로,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숨 가쁘게, 한마디 말도 없이, 온 정신을 집중하여, 암탉은 달렸다. 때때로, 숨을 헐떡이며 달아나는 중간에, 남자가 지붕을 넘어오다가 비틀거리는 바람에 힘들게 균형을 잡는 사이, 건녀편 지붕의 끄트머리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암탉은 잠시나마 숨을 고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 암탉은 자유로워 보였다.
어리석고, 수줍고, 그리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도주하는 수탉처럼 의기양양한 기색은 없었다. 암탉의 내장 안에 그 무엇이 있길래, 암탉을 하나의 존재로 만드는 것일까? 암탉은 존재다. 사람들이 암탉을 별로 중시하지 않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암탉 스스로도, 벼슬을 이고 으스대는 수탉과 같은 자부심은 없었다. 암탉이 가진 유일한 장점은, 충분히 많은 수의 암탉이 있기 때문에 하나가 죽는 즉시 그와 완전히 흡사하여 구별할 수 없는 다른 하나가 나타나 빈자리를 채워준다는 것이다. (‘닭’ 중)
-...시신으로 인형놀이를 했다. 목욕을 시키고, 음식을 먹이고, 오직 다시 데려와 입맞추고 쓰다듬으며 위로하기 위해, 벌로 구석에 세워두는 것이다. 이것이 어머니가 그 순간 욕실에서 떠올린 기억이었다. 어머니는 머리핀을 가득 쥔 손을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사랑의 잔인한 필연성을 생각하면서. 행복하려는 우리들 욕망의 사악함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놀고 싶어하는 그 흉폭함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자주 우리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죽임을 행했을까. 그리고 어머니는, 마치 위험한 이방인을 바라보듯, 자신의 머리 좋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삶과 행복의 능력을 갖춘 저 존재를 낳은 자신의 육신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이 소름 끼쳤다. 그녀는 불편한 뿌듯함을 느끼며, 주의 깊게, 이미 앞니가 두 개나 빠진 소년을 바라보았다. 진화, 작동하는 진화, 더 잘 씹을 수 있는 다른 이빨을 위하여 스스로 자리를 내어주는 이빨. “새 셔츠를 사줘야겠어.”그녀는 아들을 보면서 마음속 깊이 결심했다. 그녀는 앞니가 빠진 아들을 항상 말끔하게 챙겨 입히려고 집요한 열성을 부렸을 뿐 아니라, 마치 청결이 안정감의 표피를 더욱 강화한다는 듯이, 언제나 아들을 집요할 정도로 청결하게 유지시키고 싶어했다. 그런 식으로 그녀는, 아름다움의 예의범절을 집요하게 완성시켰다. 집요하게 그녀 자신과 아들을, 검은 사물로부터 떼어놓았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여자’중)
-‘사랑’이란 말에는 오랜 오해가 있다. 많은 아이들이 이 오해의 산물로 세상에 태어나는 반면, 또 다른 수많은 아이들은 오직 한 가지, 내 돈이 아닌 나를, 나만을 사랑하라는 예민한 요구 때문에 태어날 유일한 순간을 놓쳐버린다. 그러나 숨 막히는 밀림의 습기 속에는 그런 잔인한 세련됨이 없고, 사랑은 잡아먹히지 않는 것, 사랑은 장화를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 사랑은 그 남자의 검지 않은 특이한 피부색을 좋아하는 것, 사랑은 반짝이는 반지에 대한 사랑으로 웃는 것이었다. 작은 꽃은 사랑으로 눈을 깜빡였고, 부드럽고, 작고, 임신한, 작은 웃음을 웃었다.
탐험가는 그녀에게 웃음으로 화답하려 했다. 정확히 어떤 심연을 향해서 화답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리고 그는 당황에 빠졌다. 위대한 남자만이 빠질 수 있는 그런 당황스러움이었다. 그는 탐험가용 모자를 깊이 눌러쓰는 척하며 불안을 감추려 했지만,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그의 얼굴은 아름답게도 초록빛이 어린 핑크색으로 변했다. 아침의 붉은 햇살을 받은 레몬처럼. 맛이 시큼할 것이 분명한 레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여자’중)
-그녀는 여전히 침대에 있었다. 즉흥적으로, 평화롭게. 그녀는 사랑했다…...언젠가 사랑하게 될 남자를 미리 사랑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양쪽 모두에게 아무런 죄책감이나 피해를 끼치는 법 없이. 침대에 누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황당한 소문을 들은 것처럼, 웃음이 터지려는 얼굴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무엇을? 그게 뭔지 그녀가 어떻게 아는가? 이것이 그녀의 방식인 것을.(‘어느 젊은 여인의 몽상과 취기’ 중)
-병아리가 겁먹지 않도록 달래줄 말은 없었다. 태어난 것이 곧 두려움인 존재를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세상에 익숙해질 거라고, 우리가 어떻게 약속해줄 수 있겠는가? 부모인 우리는 병아리의 삶이 얼마나 순식간일지 잘 알고 있었다. 병아리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다름 아닌 바로 섬뜩한 공포를 통해서. 그사이, 병아리는 은총으로 충만한, 찰나의 노란 사물이 되었다. 나는 우리들이 그렇게 요구당하는 것처럼, 병아리도 자기 생명의 은총을 느끼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병아리는 자신의 기쁨이 아니라 타인의 기쁨을 위해 태어난 생명이므로. 병아리는 느껴야 했다. 병아리는 불필요하며, 조금도 필연적이지 않다는 것을—-한 마리 병아리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임이 분명했다—-그리고, 오직 신의 영광을 위해서 태어났고, 따라서 인간의 즐거움이 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우리는 병아리가 행복하기를 소망했으니, 그 이유는 단지, 병아리가 우리의 사랑을 사랑하는 것을 사랑했으므로. 오직 어머니만이 생명을 결정할 수 있고, 나도 그것을 알았다. 우리의 생명은 사랑함으로써 기뻐한 자들의 사랑이었다. 나는 허락받은 사랑의 은총에 몸을 맡겼고 숭배를 바칠 줄 알았으므로, 종소리,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병아리는 몸을 떨었다. 공포의 전율이지, 아름다움의 전율은 아니었다. (‘외인부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