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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은 - 걸그룹 소녀들에게 하이힐 대신 운동화를 준 매니저의 이야기
이학준 지음 / 아우름(Aurum) / 2014년 12월
평점 :
-20180814 이학준
대한민국에서 걸그룹으로 산다는 것은 (걸그룹 소녀들에게 하이힐 대신 운동화를 준 매니저의 이야기)
최근 독서 키워드는 아이돌. 그 두 번째 책.
기자 출신 이학준 감독이 1년 여 동안 스타제국 소속 연습생이자 데뷔를 앞둔 나인뮤지스의 매니저를 겸하며 밀착 취재해서 다큐 영화를 찍었다. 다큐영화제에 초청 받았지만 수상은 못 했고, 이후 그 촬영 과정을 이 책으로 정리해 냈다.
저자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분위기나 감정을 그리는데 섬세함이 있었다. 시간이 가는 것을 연습실 주변의 자연 풍광을 묘사하며 계절감 있게 표현했다. 다큐 감독이라고 뭔가 르포나 추적60분이나 피디 수첩처럼 그린 게 아니라 문학적 감수성을 절절히 녹여 미적감각까지 비추려 애쓴게 독특했다. 더구나 중년 아저씨인데. ㅋㅋㅋ
회사와 매니저들은 어떻게든 투자금액을 뽑아내고 스타를 만들어 대박을 터뜨리는데 골몰하고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인간적으로 소외당하고 소모되는 상황으로 몰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달래고 자신들의 체력의 한계까지 달리면서 아이들을 지원하고 머슴 취급 당하거나 뜨자마자 소속사를 옮기는 배신으로 상처받기도 한다. 아이들은 건강을 해치는 다이어트와 연습 강행군, 대중으로부터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소비되고, 지방 행사와 군부대위문공연으로 교통사고 위험과 불가능해 보이는 스케쥴로 지치면서도 꿈을 이루려는 마음으로 견뎌낸다. 그런데 그보다 더 최악은 뜨지 못하고 비판만 받다 잊혀지는 것이다.
걸그룹을 잘 모르기 때문에 책을 읽는 중에 이미지 검색을 통해 멤버들의 생김새를 찾아보았다. 기아에 가까운 마른 팔다리, 그와 대조적인 큰 가슴과 골반, 사람들은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한 몸에 담긴 연예인들을 보며 열광한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화려한 헤어와 의상에는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과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갔을까.
아홉 명이라는 숫자는 애초에 너무 많은 관계와 이해관계와 경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초기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는 아홉이 온전히 활동한 기간은 짧았고 이합집산 멤버교체를 거듭하여 교체 탈퇴 멤버가 이미 아홉을 넘었다. 2018년 여름 데뷔 8주년 기념 행사를 했는지 팬들의 응원 메시지가 포털 페이지에 남아 있었다. 현재 멤버는 단 네 명, 책에 등장하는 초기 멤버는 혜미 딱 한명 남고 모두 각자의 길을 갔다. 사람은 유한하고 그룹은 영원하다는 책의 챕터명처럼 정말 그렇게 되었다.
나인뮤지스라는게 정말 실재하는 것일까. 존재하지 않는 추상의 것을 상상해 내고 그것이 있다고 믿는 능력은 인간의 독특한 점이다. 사람들은 이미지와 브랜드이름 또는 팀네임을 소비하고, 스타에 빠지기보다 스타에 빠져 있는 자신에게 빠져 행복감을 느끼고 현실의 시름을 잊는다. 아이돌에 빠져 본 적이 없는 나는 아이돌이나 연예인에 빠져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한심해 보였지만 어느 순간에는 부럽기 까지 했다. 무아의 지경에서 행복할 수 있는, 거의 종교에 가까운 사랑을 나는 그들처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음도 아름다움도 유효기간이 있고, 화려함 뒤에 소모되고 병드는 사람이 있고, 겉모습과 속마음은 너무 다를 것이고, 그래서 애처로워 보이는 그들에게 마음을 줄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가장 쓸데 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 ㅋㅋ이런 생각도 한다.
한참을 그들 곁에서 지켜본 저자도 자신의 딸이 이런 생활한다면 몽둥이 들고 말린다 할만큼 고되고 가혹한 직업임을 강조한다. 평범한 삶을 살 것을 거푸 다짐한다. 또한 아이돌의 삶을 보며 자신의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아내, 딸을 떠올리고 과거의 모습도 되돌아 본다.
마지막 헤어질 때 하이힐이라는 속박에서 내려와 쉬라는 뜻으로 운동화를 선물하며 감성 터지는 장면을 기대한 듯하다. 하이힐을 성적 매력을 쥐어짜기 위한 고문도구라고 표현한 것은 미를 가장한 억압에 대해 나름 통찰있어 보였다.(뭐 남의 표현을 빌린 것일지라도 그런 인식을 할 수 있고 공감하는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에 대한 애정이 뿜뿜하는 듯) 이 장면이 이 책의 부제이고 내부 관찰자 시점의 작가의 시선, 관점과 가장 일치하는 것 같긴하다. 휴머니즘. 대놓고 시스템을 깔 자신은 없지만 미사여구로 돌려까는 소심함에서 최대한 자기 목소리를 낸 곳인 듯.
옥의 티라면 가끔 자신의 모습 떠올리는 부분이 중복된다. 기자가 되고도 적성이 맞지 않아 선배 기자에게 하소연하며 코피 흘리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거의 토씨하나 안 틀리고 그렇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다들 문학적 감수성이 터지게 되는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어려서 단명할까 봐 치마입고 다닌 남자아이(감독 자신) 이야기는 김영하의 소설 어디에도있고어디에도없는 을 떠올리게 했다.
시간이 나면 다큐영화 나인뮤지스-그녀들의 서바이벌 도 보고 싶다. 이 책이 영화와 같이 망하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에필로그가 있었지만 뭐 안타깝게도 책 역시 뜨진 못 한 것 같다. 책 맨 뒤에 영화 시디가 부록으로 포함되어 있고 전자책도 나와 있다. 나와 다른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 싶다면, 화려한 스타에 대한 동경과 환상이 있(고 그것을 좀 깨 보고 싶)다면 한 번쯤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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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을 내서 부록 다큐 영화도 봤다. 다들 예쁘고 늘씬하고 그런데 노래 잘 하는 건 아홉 중 많아야 한둘? 화장기 없어도 일반인보다는 조금 더 예쁜. 잘 하려고 애쓰고 모두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고. 마지막에 다들 스타제국을 떠나거나 남은 이야기를 자막처리하고 세라의 노래가 깔리는데 뭔가 쓸쓸했다.
영화는 아이돌의 땀과 눈물을 담기 위해 분투한 흔적은 보이고 그럭저럭 담긴 했는데 딱 거기까지고. 사람들은 그런 슬픈 뒷 이야기까지는 듣고 싶지 않아 한다는게 이런 영화나 책이 못 뜨는 현실ㅋ다들 뿅 하고 스타가 되길 바라고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는 항상 웃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일반인과는 뭔가 다르면서도 또 친숙하길 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