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클리너 - 특수 현장을 청소하는 트라우마 생존자의 이야기
세라 크래스너스타인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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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7 세라 크래스너스타인.

늦은 아침, 아직 첫 끼도 제대로 안 먹은 가족들과 어지러진 거실을 치웠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한 주 전쯤 포켓몬 유나이트라는, 닌텐도 스위치 버전 롤이라는 게임을 하다 아쉽게 진데다 마침 그날 허락된 스크린타임이 종료되는 알람을 들은 딸은 순간 빡침을 못 이기고 텔레비전 화면을 쳤고, 액정은 깨진 유리 모양으로 터지고, 주변으로 가로세로 좌표 또는 모기장 모양의 검은 줄? 망?이 생겼다. 나는 드디어 사춘기 자녀의 부모가 되었다!!!

한 가을쯤까지 내버려 뒀다가 새 텔레비전을 사든가 하자, 그게 내 의견이었지만 텔레비전 회사 노동자인 곁의 사람 의견으로는 저 텔레비전을 사던 비용으로는 그것보다 더 낮은 급의 같은 크기 제품 밖에 살 수 없다고, 물가가 올랐다고 했다. 수리비 45만원 견적을 받고는 화요일에 출장 수리 신청을 했다고도 했다. 다친 마누라 병원은 6주가 다 되도록 안 데려가면서 텔레비전 수리는 순식간에 결정하는 게 조금 빡쳤다. 나는 발목염좌 부종이 더 악화되고 그거 뺀다고 책상 앉을 때 거상한다고, 걸을 때 발목에 부하 안 준다고, 나도 모르게 과신전, 무릎을 원래 꺾이는 방향과 반대로 지나치게 펴다가 무릎 후방 인대도 매우 안 좋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건 무릎통증과 좌골신경통을 얻고 나서 야, 난 발목 다쳤는데 왜 다리 전체가 작살 났어? 하고 고민하다 뒤늦게 원인을 찾아내고 조심하게 되었다… 내일 혼자라도 드디어 반경 500미터 근방에 있는 마취통증의학과에 가기로 결심했다. 최악의 통증과 함께 어린이날을 보낸 저녁에 곁의 사람이 함께 가준다고 해서 다음날인 토요일에 곧바로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비가 많이 내렸다. 빗길엔 이 산비탈 안 미끄러지고 못 걸음…우산들고 부축해줘도 아마 못 걸음… 하여간에 갈 거야 내일 병원 갈 거야…

거실은, 만들기의 세계에 심취해버린 여섯 살 짜리의 아뜰리에가 된 지 오래였다. 온갖 크기의 종이들, 휴지심, 다쓴 플라스틱 용기, 뚜껑, 약껍질, 구슬, 과자상자, 블록 조각, 빨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쓴 물건이다 싶으면 작은 아이는 이제는 묻지도 않고 자기 작업 재료로 사용한다. 가위 두 개가 부서질 정도로 가위질을 해대고 나에게 이런 저런 구멍을 뚫어달라고 부탁하고 테이프와 풀과 포스트잇을 동원해 평균 길이 오십센티미터가 넘는 기괴한 현대미술품을 과장하면 수십개 거실 바닥에 늘어 놓고 사이사이 젠가 나무도막과 레고 조형물을 쌓아 자기만의 전시회를 몇 달 째 진행중이었다… 진짜 다른 식구들은 발디딜 틈이 없지만 조금만 자기가 구성한 게 무너져도 난리를 쳐서 체념했다. 유일하게 여섯살을 이길 수 있는 어미는 아픈 다리 질질 끌고 너무 심해질 때마다 보관해줄게 안전하게! 하고 거짓말치며 커다란 마트제 종이봉투에 작품 몇 개씩을 걷어다가 쑤셔박기를 반복해도 작품은 무한증식했다… 그걸 오늘 다 치웠다. 구실은 아빠가 사준 경찰차 짭레고를 하려면 블럭이 네 작품이랑 다 섞이면 곤란하기 때문에, 그리고 마침 텔레비전 수리도 해야하기 때문에, 이제는 치울 시간이야,

각자 종류별로 장난감을 분류하고 도구들을 정리하고 작품들을 차곡차곡 접어서 정리하는 척 버릴 것으로 분류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놀이매트에 눌러붙은 풀자국을 매직블록으로 문질러 닦았다. 텔레비전 파괴자도 열심히 제 몫을 하길래, 내가 말을 걸었다. 요즘 보는 책에 이런 비슷한 청소 장면이 많이 나와. 버리지 못한 쓰레기와 물건들에 둘러 싸여 엉망이 된 사람들이 청소하러 온 사람들에게 이건 안 되요! 건드리지 마세요! 부수면 안 돼! 그래. 쟤처럼 말야. 나는 아이의 창의성을 존중해 온 것인지 저장강박증을 키운 것인지 헷갈렸다. 여섯 살 짜리는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비명을 지르다 어느새 체념하고 청소하는 다른 가족들과 뒤집어진 매트 사이를 돌아다니며 뭐가 신날 일인지 헤헤 거리고 있었다. 청소가 다 끝나가니 이제 다 치웠으니 당장 티비수리공을 부르라고 조르기도 했다.

내가 읽는 책 속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지도, 스스로 청소를 해내지도 못했다. 몸과 마음의 병을 앓거나, 사건 사고로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집은 쓰레기, 곰팡이, 체액, 구토물, 과량의 피, 썩은 시신에서 나온 오염물, 권총 자살로 튄 온갖 유기물들과 그걸 먹고 증식한 또다른 유기체들로 오염되어 있었다. 그곳을 청소하는 업체를 샌드라 팽거스트가 이끌었다.
샌드라를 우연히 알게 된 세라가 샌드라의 작업 장소들을 따라다니고, 샌드라의 인생역정을 따라가며 듣고 찾아낸 이야기들로 만든 책이었다. 462쪽짜리인데, 책을 펼치고 아…이런 이야기인 줄 생각도 못했어…하고 글썽이다가 충격받다가 며칠 안 되서 다 읽어버렸다. 발이 아픈 연휴 동안 공부를 거의 놓아버렸는데, 책 뒤표지에 ‘당신의 고통을 존중합니다’ 빨간 글씨가 그냥 책이나 읽어…그럼 네가 겪는 건 그냥 아무 것도 아닐 거야…자꾸 꼬셨는데 꼬신 그대로였다.

미국도 그렇고, 한국이 싫어서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오스트레일리아도 그랬다. 나라 밖 다른 이들이 살기 꿈꾸는 잘 사는 나라, 자원 많고 인구 대비 영토 넓고 일자리 많아 백인들 틈에 일하러 몰려온 다민족다종족다인종 국가 이루고 그럭저럭 사는 나라 같지만, 번화하지 않은 시골 마을의 암담함, 나아지기 힘든 구질구질함은 어디나 똑같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드라마와 광고에나 존재하는 것.

맨 뒤 책날개의 중년?노년? 여성의 이야기를 맨 앞 책날개 여성 작가가 쓴 것인가 보네, 그 정도만 알고 읽었는데 초반부터 어, 했다. 나도 한 때는 피터라는 이름을 쓰고 싶었어. 알라딘 프로필 사진도 로메인 브룩스가 그린 피터야. 갑자기 피터가 등장해서 반갑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피터는 아이를 유산한, 그래서 더는 아이를 못 가질까 걱정하던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또 또 태어났다. 피터의 아빠는 엄마를 때렸고, 그걸 말리는 피터도 때렸다. 엄마는 자기를 걱정해주는 데도 피터에게 냉담했다. 결국 피터는 집밖 마당의 엉성한 공간으로 홀로 쫓겨나 잘 먹지도 못하고 유기와 폭력을 겪다가 십대 후반에 완전히 쫓겨났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장면을 목격하는 건 언제나 슬프다. 글일 뿐인데도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가가 젖는다. 부모에게 거부당하는 장면은 더욱 고통이다. 폭력에 무력해져 아이를 거부하는 엄마, 우울한 엄마. 자기 삶은 물론 아이의 삶도 그늘지게 하는 부모들…

피터의 남다름을 부모는 알았던 것 같고 그 이유로 아이를 괴물 취급 했던 것 같다. 그래도 평범하게 살아보겠다고, 피터는 이런저런 일자리를 거쳐 식품 회사와 타이어 회사에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고, 린다를 만나 부모의 냉소를 견뎌가며 혼인을 하고 아들 둘을 얻는다. 그렇지만 피터는 새로 이룬 가정 안에서 자리 잡지 못했다. 이곳이 자기 자리가 아니라는 기분을 떨치지 못하고, 밤마다 어느 호텔 등 게이들이 모이는 클럽을 드나들며 남자들을 만난다. 화장과 치장을 하고 여성호르몬을 처방받아 복용한다. 그러다가 모두 내버려두고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린다에게 거짓말하고 자동차를 몰고 집을 나와 버린다.

풍자라는 유튜버가 트렌스젠더 바에서 일하면서 마주친 진상손님들 썰을 풀어준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피터, 지금의 샌드라도 여러가지 여성 이름을 바꿔가며 화려하게 치장하고 쇼를 하는 풍자가 일하던 곳과 비스무레해 보이는 클럽에서 일을 한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외모를 여성스럽게 하는 수술을 하고, 성 확정 수술을 해서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자신을 만든다. 이후의 삶은 순탄치 않다.
성 확정 수술 직전 마리아와 사랑에 빠져 함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임신에 성공하지만, 임신 3개월이던 마리아는 클럽에 샌드라의 공연을 보러 왔다가 클럽문지기와 시비가 붙어 맞아 죽는다.

1980년대 초에 트렌스젠더에게 허락된 사회 생활이나 직업 생활은 많지 않았다. 샌드라는 돈을 모으려고 성매매 업소들을 전전했고, 거구의 남성에게 동료와 함께 끔찍한 성폭력을 당한다. 샌드라가 겪은 일들, 샌드라가 치우는 집의 사람들이 겪은 많은 부분이 괴롭고 끔찍했지만 특히 이 사건이 읽기 괴로웠다. 그때 상황과 고통이 생생하게 전해지도록 상술되어 그런 것 같다. 샌드라는 범죄 피해자임에도 신고를 했을 때 오히려 트랜스여성이 겪을 수많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처벌을 위해 반복해서 증언하고 증거를 제시해서 한참 부족한 형량이나마 나쁜놈이 감옥에서 보낼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 인생에 관해 전하는 많은 부분이 확언하지 않고 추정이나 짐작으로 마무리되곤 하는데, 작가의 말에 따르면 샌드라는 자기 인생에서 거쳐온 너무 많은 것을 잊어버렸고 이야기 해주는 것들도 파편적이었다. 그래서 취재와 자료 조사를 통해 드문드문 빠진 것들을 채워 넣어 세라 나름대로 이야기들을 이어가고 거기에 대해 논평도 해 놓았다.
세라 또한 어린 시절 엄마가 떠난 것으로 인한 상처가 있고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심한 우울에 빠져 아무것도 못한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샌드라를 대부분 강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그려놓았지만, 나중에 재회하게 된 샌드라의 아들들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샌드라의 말에 세라는 크게 분노하기도 한다. 버리고 떠난 사람이 끝내 제대로 돌아오지 않고 남은 사람을 자기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 감정이입을 했던 것 같다. 나도 가끔가끔 그랬다. 더 나아지기 위해 분투하는 샌드라를 볼 때, 평온한 가정 생활 속에서도 방황할 때, 어린시절의 결핍으로 고통스러워 할 때, 사람들과 온전히 관계 맺지 못하고 어느 순간 아프기 전에 끊어내면서 떠나 버릴 때, 다리 뼈가 부러지고 발가락이 잘라지는 부상을 당할 때 그랬다. 다만 샌드라는 수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남들을 단정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고 공감하고 또 계속해서 소통하면서 남들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단순 이타심 때문 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기 사업을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폐가 다 망가져서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도 예쁘게 차려 입고 더러운 현장을 휘젓고 다녔다. 아픈 집주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공감해주고,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드는 오염들을 함께 없애 나가자고 설득하고 있었다.

배설물이 넘쳐 벽 전체가 곰팡이로 썩어버린 집, 40년치 쓰레기가 가득 찬 집, 홀로 죽은 자가 흘린 피가 바닥에 밴 집, 대부분의 집들이 비슷하게도 버리지 못한 뭔가와 거기에서 증식하는 온갖 벌레, 쥐, 곰팡이, 냄새, 그리고 우울과 질병, 고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새삼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집에 깔끔한 인테리어를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말 극소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로까지 확장하면 그야말로 동굴벽화 그리고 살던 시절 같던 주거환경, 혹은 그보다 못하게 오히려 자꾸만 집으로 밀려드는 자본주의의 쓰레기들에 빠져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벽지에 물이 줄줄 흐르고 검은 곰팡이 포자가 자꾸 퐁퐁 날려서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얼굴에 진물을 질질 흘리는 아기를 옆방에 옮겨 두고 민소매티에 고무장갑끼고 곰팡이 세제 락스세제를 안방 벽지에 뿌려가며 긁어내던, 스물여덟 초보엄마였던 나를 생각한다. 내가 살던 집 대부분은 그랬다. 곰팡이 파티… 지금은 그동안 살던 곳 중 가장 큰 집에 살게 되었지만 여기도 곰팡이가 팡팡 핀다. 그나마 방은 아니고 베란다인게 다행 ㅋㅋㅋ식구들이 겨울마다 결로랑 얼음이랑 뒤섞인 곰팡이 긁어내다 이사 전에 새로 바른 수성페인트 다 벗겨짐… 단열재 제대로 안 쓰는 건설사들 다 죽어버려라…

특수 현장이나 남들이 기피하는 청소 현장만 돌며 해결하는 샌드라의 사업, 직업이 흥미로웠다. 이 일을 하기 까지 샌드라가 얻고 잃었던 직업도, 만났다 헤어진 연인과 배우자들도 많고 많았다. 삶은 지금 이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끝없이 바뀌고 움직이고 달라진다. 원서는 2017년에 나왔는데, 번역판인 이 책은 2022년에 한국에서 나와서, 마지막에 주석으로 2021년에 샌드라가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줘서 마음이 쾅 내려앉았다. 책 가장 뒤에 샌드라와 샌드라의 가족과 연인들 사진이 실려 있어서 한 번 더 쾅쾅 했다. 글로만 읽다가 이 이야기의 실존인물들은 이런 모습입니다 하고 보여주니까 그냥 그게 그거대로 괜히 충격이었다. 소설이나 영화가 아무리 끔찍해도 나는 그저 덤덤히 읽고 볼 수 있는데, 현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감내해내는 삶의 무게는 그거보다 더 엄청난 게 많다는 걸 짐작도 하고 이렇게 직접 확인도 하기 때문이다.

그니까 내 삶도 그렇게 큰일은 아니다. 가끔 풀어 놓아야겠다. 그렇게 조그맣게라도 이어질 수 있다면. 그리고 당장의 몸의 고통도 별일은 아니다. 샌드라가 숨도 잘 못 쉬면서 뛰어다니면서 치우고 다닌 일들을 생각하면 그렇더라… 그래도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살자… 혼자 고독사 하게 안 두는 곁의 사람들에게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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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7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8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05-08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리뷰 좋네요 ^^ 역시 텔레비젼은 가장 중요한 가전제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ㅋ 열반인님 몸도 안좋으신데 정리하시느라 힘드셨겠습니다 ㅜㅜ
소설 속 이야기를 통해 현실에 만족하는것도 좋은거 같아요 ^^

반유행열반인 2023-05-08 16:44   좋아요 1 | URL
소설로 현실 만족 하실 수 있다면 대단한 경지이십니다. 저는 늘 읽을 때마다 인간은 원래 이런 종이야…이러고 자기혐오랑 인류혐오만 늘지요 ㅋㅋㅋㅋ 텔레비전은 저한테는 크게 상관 없는 물건인데 아이들은 모바일 기계 안 들려주다보니 저게 교육기관이고 놀이터이고 탁아소이고…ㅋㅋ 저한테 필요 없다고 안 고쳐주면 많이 미움 받겠더라구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라도 다 읽고 독후감 한 편 쓸 기회를 얻으면 그게 저한테는 치료입니다 ㅎㅎㅎ

2023-06-08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08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루시의 발자국 - 소설가와 고생물학자의 유쾌하고 지적인 인간 진화 탐구 여행
후안 호세 미야스.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지음, 남진희 옮김, 김준홍 감수 / 틈새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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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3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걷는 일의 어려움을 생각해 본지 오래 되었다스물 두살 무렵 발과 다리에 아토피성 피부염이 아주 심했던 적은 있었다밤새 긁어 피가 나다 못해 진물이 흐르는 열린 상처가  달을 갔고 바지든 치마든 걷는 다리에 휘감겨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휴학을  상황이  되어서 고통을 참으며 기다시피 산꼭대기의 강의실에 오갔다동전 모양 습진이 잔뜩 박힌 다리 부위를 종아리 아래로  자르고 싶었다

그러면 고통이 없을  알지   몸이  나아진 학기에 약과 건강이라는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유령통증환상통에 관해 배웠다분명 절단해서 사라진 부위인데도 없는 곳이 아프다고 했다으악나는 찢어진 피부가 아픈데다 너무 가려웠으니까 가려운데 긁을 부위마저 없다는  이거야말로  채로 지옥이겠다.

이런저런 병치레를 겪고 나서 알게   죽을 정도가 아닌 병들은 시간이 (아주 오래일수도 있지만 어쨌거나지나고 나면 나아진다는 사실이다완치가  되더라도 아프지만 불편하지만 그냥저냥 체념하다가 다행히도 대부분의 아픔은 가셨다.



 달이라는 기간은 사달이  발목이 완전히 회복되기에는 조금 부족한 시간이지만나머지 부위들-무릎 관절이 굳거나 골반과 허리 - 비틀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균형이 틀어진   어딘가가 눌려서 허리부터 발끝까지 타고 가는 신경통증인  모르고 아이참  발목   낫지 했다자세를 교정하고발목 문제가 아닌  같으니 이런저런 스트레칭과 재활운동도 따라하고그런데도 갑자기 신경이 눌려 종아리가 칼로 저미는  같은 통증이 생긴 날에는 왠일인지 집에 신경통약이 있어… 오래 전에 편두통 심해서 신경과에서 받아놓은 가바펜틴을 수유중이라  먹고 그냥 처박아 두었는데 그날 밤의 구원이 되었다다리  아픈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약 하나가 알려주었다약중독자들이  약에 빠지는지도   같았다자다 깼는데 전에는 아파서 깼는데  먹은 날은  통증이 전혀 없어흐뭇이러고 다시 잠들고 깨기를 반복하다  기운이 사라지는  느끼며 깨는 순간 기분이 가라앉았다아직  나았네

약은   없고 나는 중독자가 되면  되기 때문에 하룻밤 의지한 뒤로는 애껴두기로 했다진통제 개발한 과학자들 진짜 인류의 불행 절반을 덜었다… 발목이 아파도  참고 다른 부위 굳지 않게 스트레칭도 하고 실내 자전거도 십분 정도  보았다



아기가 걸음마 시작  때는 자세도 엉거주춤하니 저게  저리 어려울까 했는데 이제 내가 걸음마를 다시 배워야한다… 감각 사라지고 근육 빠진 발바닥과 발목과 무릎에 힘을 싣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와중에 ‘루시의 발자국이라는 책을 발견하고는 관심이 갔다예전에 ‘인간의 흑역사라는 책에서 오래전 조상 뻘인 에티오피아의 루시 화석을 보면 다리가 부러진 흔적이 있다고 했다나무에서 떨어졌든가 헛디뎠든가 하여간에 그걸 인류 최초의 실수흑역사처럼 표현하고 있었다  말고 다른 책에서는 루시의 부상이나 사인을 별로 언급하는   봤다

다리가 부러져 더는 움직일  없는 루시가 도우러  사람도 너무 멀어서 누운 채로 깜깜한 밤을 맞이하는 모습을 상상했다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입이 마르고 배가 고프고 다리도 너무 아픈 루시는 이제 나는 죽는 걸까 죽으면 저기 빛나는 곳으로   있을까 그런 미래나 사후에 대한 생각을 초기 인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가는 길에 엎어져  일어나고 죽은 할머니도 생각했다할아버지에게 맞아 부러진 갈비뼈의 통증이 아주 오래 지속된 뒤였다죄많은 주정뱅이 원숭이띠 영감탱이는 90살이 넘었는데 여태 죽지도 않아영감탱이 본 지도 16년은 됐나보다.



잡소리가 길다루시 이야기는 이족보행으로 얻고 잃은 것을 이야기하면서 고생물학자가 소설가에게 아이들이 해변 걸을  발자국을  보라고 했던 데서 나온  같다원제는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에게 들려준 - 되는데소설가에 따르면 고생물학자 아르수아가가 사피엔스고 소설가 미야스가 네안데르탈인이다이과돌이가 문돌이에게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도 맞다배경이 스페인이고 그래서 스페인식 농담인가 빈정거림인가 이것도  새로웠다 아저씨가 들판시장동굴식당장난감가게성인용품가게약국 등등 온갖 곳을 돌며 인간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서술자는 소설가인데 소설가는 나도  이상한 놈이지만  고생물학자 놈은  이상해그치만 우리는 칭긔칭긔 하면서 잘도 돌아다니고 이것저것 잘도 먹는다문과돌이가  언어에 천착해 아무말잔치하면 이과돌이가  그거 아니야하고 문과돌이는 뉘에이러고 쭈그러드는 패턴이 티키타카 계속 이어졌다그게  많이 웃겼다소설가라서 배경 묘사나 계절을 환기하는 표현이 감각적인데 자꾸만 춥다 그래서 너네 지중해성 기후  정도 겨울 가지고 고생물학자 너님은 겨울이 질병 어쩌고너네 겨울이 감기면 우리 겨울은 폐렴이야… 러시아 겨울은 사망 내지 혼수상태



인류나 고생물에 관한 이런저런 책을 전에도 보긴 했는데 이번 형식은 참신했다문과돌이가 열심히 허덕이며 받아적고 따라가려고 애쓰는   감정이입되기도 했고 ㅋㅋㅋ스페인의 동굴벽화나 산악 풍경 너무 몰라서 검색해보는 재미도 있었다대화 형식인데 둘의 대화를 가능하면  놓치고 살려서 그대로 전해주려고 작가가 애쓴 것도 느껴졌다그래서 인간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냐면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내가 책에서 말하는 반대쟁이인  알겠다ㅋㅋㅋㅋ 사회성과 도시성이 고도로 완성된 시절에   좋게도 이런 저런 관계망들을 얽어 놓은 상태에서 다친 덕에 나는  달을 집밖을  나가고도 생존은 물론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 벌어 오는 사람도 있고 애들 돌봐주고 집안일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택배 실어다 주는 사람도 있고 인터넷도 있고… 이러니까 왠지 내가 진짜 쓰잘데기 없이 살아만 있는 기분인데… 얼른 나아서 무럭무럭 자라서 은혜갚은 까마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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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위협적으로 겁박해 오던 불길한 기운을 잠시나마 저지할  있었다 순간 차원이 변하는 것을 오롯이 느낄  있었고 역시  일부분이다시 말해 삶의 변위의  부분이 되었다모든 생각이 금작화처럼 짧지만 노란시간 속에아스포델처럼 하얀 시간 속에라벤다처럼 붉은 시간 속에풀잎처럼 또는 풍경에 일침을 놓는 가시처럼 녹색 시간 속에 머물렀다각각의 색은 무궁무진한 차이를 만들어냈다금작화를 덮은 구름의 그림자가 느리게흘러가고 있을  생각에도 조금씩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활짝  금작화.     달쯤 있으면아마 그보다는조금  빠르게태양이 조여 오기 시작할 즈음  노란색도 작은 생명의 아름다운 죽음과 함께 사그라들 것이다.



-“발은 아치 뒤쪽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발뒤꿈치부터 땅에서 떨어집니다몸무게는 발의 바깥쪽 가장자리에 잠시얹혔다가 결국 발의 아치 앞쪽으로 옮겨 가지요이어서 발가락들이 구부러지면서 발이  위에 얹히게 됩니다엄지발가락이 마지막으로 땅을 밀면 다리는 시계추처럼 앞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350   이족 보행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발자국들은 해변 모래 위에 찍혀 있는 우리 아이들의 발자국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우리 모두 무의식 상태에서 생체 역학적으로 움직입니다.”



- 발의 아치 모양을 의식하며 발의 뒷부리와 앞부리를 움직여 보았다먼저 발뒤꿈치 부분으로 땅을 밟은 다음이때 받은 충격에서 비롯된 에너지가 발등을 통해 앞부리로 전달되고이어서  힘은 발가락특히 다리를 앞으로미는 스프링 역할을 하는 엄지발가락까지 전달되는 것을 확인할  있었다나에게는  발로  자세 자체가 문법적인 기적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쪽에서 앞쪽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움직임을문장을 구句로 나누어 살펴볼  있듯이 분석할  있을  같았다주어동사직접 목적어나는 다시는 제멋대로 걷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했다.



-“농업은 누가 발명했을까요?”    여성이에요.19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남성은 들소매머드를 쫓아 온종일 돌아다녔거든요남성은 들소를 잡아 귀가하고 싶었어요바로 이것이 지위와 권력을 상징했거든요선사 시대 그림은 사냥을 나간 남성들을 기다리는 아이들노인여성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하지만 보통은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돌아왔을 겁니다오히려 여성들이   지중식물이나 바다에서 잡은 갑각류와 같은 소소한것들을 가지고 기다렸을 거예요.”    예측이 가능하고일관성이 있으니까요.”    바로 여기에서  손에  자원을관리한다는 개념이 생깁니다 때문에 농업이라는 진일보한 단계로 나아가게 되죠자원 관리는 아주 중요한 인식 수준을 담고 있어요예를 들어계절을 알아야 해요봄에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가을에는 어디에 있어야 할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이를 이용하려면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흐름을 쫓아갈  있어야 해요 힘을 다해 보살필 종과 외면해야  종을 구분할  알아야 합니다어떤 종이 생산에  유리한지어떤 종을 경작할지  기억해야 하지요어떤 식물이 싹이 트고 성장할  있도록 돕는다면아직 완전히 농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아니지만 농업에 거의 다가갔다고   있지요



-선생님이나 저는 네발짐승들과 비교했을  허리 아래쪽이 다르고그리고 지상에 사는 대부분의 포유류와 비교했을  허리 위쪽이 다른 구조로 되어 있어요허리 위쪽을 보면 우리는 거의 침팬지에 가깝지요허리 아래쪽은인간만의 특징이 있어요생각해 보면  희한한 조합입니다.”    켄타우로스처럼요?”    우리는 키메라예요.”    고생물학자는 가끔 이처럼 충격적인 출구를 제시하곤 했다.



-“우리는 무게 중심이 벨트 버클 높이에 있다고 했었지요메커니즘 관점에서 보면걸을  무게 중심이  움직일수록 몸의 효율성이 훨씬 높아져요 걸음 걸어 보면서 버클의 움직임을 관찰해 보세요.”    나는 걸으면서 움직임을  느껴 봤다버클이 지면과 평행이 되는거의 일직선에 가까운 선을 그린다는 것을   있었다나의 무게중심은 위아래로 움직이지 않았고양옆으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놀랍지 않나요?” 아르수아가는 의기양양한표정을 지었다. “인간의 이동은 생체 공학이 만든 기적이에요덕분에 우리는 이동하는  미량의 에너지만 사용해도되는 겁니다우리는  거리를 이동할  있게 만들어진 종족이에요우리는 보행을 기초로  종족이니까요.”    덕분에 이렇게 멀리까지   있었던 건가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선생님도 한번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걷는다는 것은 계속 앞으로 넘어지는 것이라고도   있어요.”    정말멋진 설명이네요!” 나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걷는다는 것은 계속 앞으로 넘어지는 것이라니…. 산다는 것은결국 끊임없이 죽어가는 것이라는 말과 똑같네요.”    그렇지만  제어된 방식으로 넘어지는 겁니다.” 고생물학자는 내가 수사적으로 한마디한 것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말만 이어 나갔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의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거예요앞으로 넘어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요.”    죽어가는  역시 눈치채지 못하지요.” 나도 계속 말을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누군가에겐 우리가 무서운 존재로 보일 것만 같았다정신병원에서 도망쳐 나온 듯한 어른 둘이 1월의 어느 수요일에 얼어붙을 것만 같은 차가운 날씨 속에서 시소를 타며 흔들대고 있었다오르내리는 중에 고생물학자는 우리중  사람이 앞뒤로 자리를 이동하면 힘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것을 물릴 정도로 실컷 보여 주었다이어서 시소를아래로 눌렀다가 위로 띄우길 반복하면서 대퇴골에 대해 엄청난 찬사를 했지만필기도   없었고 녹음도  수없어서 아르수아가의 말은 빗줄기에 눈물이 사라지듯 사라져 버렸다대퇴골은 동시에 너무 많은 것을 제어하고있었다그는  뼈가 진화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이야기했다.    건축학 차원에서 봤을 진정한 의미의완벽  자체라고   있지요세계 최고의 건축가도 우리가 걸을  우리 몸무게 전체를 지지해 주는 대퇴골의목부위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테니까요.”



-아고라는 자연에 등을 돌린 장소입니다철저하게 도시적이면서 공적인 장소이지요생각소통정치시장경제등  모든 것이 아고라에서 시작됩니다아고라는 자연을 부정합니다들판이 아닌 장소예요선생님이 문화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면 제일 먼저 공적인 장소가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공적인 장소가 있다면그것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문명을 이야기하는 겁니다반대라면 단순한 집단일 뿐이고요.



-“사회의 복잡성은 선함을 보장하지도정의를 보장하지도 않아요이제 선생님의 관심을  만한 역사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볼게요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에는   명의 메티콘 신도 없었어요  명도요이유가무엇일까요신이 출현하는 단계인 사회 복잡성 지수 6.1 충족시킨 사회가   곳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더정확하게 말하자면복잡한 사회가   곳이 있었어요잉카였습니다그런데 잉카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스페인 사람들이 잉카에 도착했을 때는앞에서 이야기한 시차로 인해서 아직 친사회적인 신이 출현하지 못했어요조금 시간이 부족했던 겁니다. 100 정도요신의 출현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는데 말이죠메티콘 신이 존재할 만한 조건다시 말해 사제 계급까지 있었어요친사회적인 신은  개인이 각자의 신앙이 있을 때는 출현할  없어요자로  듯한 규범이 있고뿌리를  내린그리고 보편적이면서도  조직된 집단적 성격의믿음이 있어야 하죠 모든 조건이 갖춰져야 신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알게 되겠죠다윈은 이런 식으로 맬서스를 읽으며 ‘무의식적인 선택이라는 해결책을 찾았어요자기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쟁 말이에요자연에선 모든 것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사실 자연 선택 때문에거의 모든 것이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시계 제작자가 없다는 주장을 했군요.”    대신 경쟁과 선택이 있고이로 인해 살아남는 비율이 정말 얼마 되지 않아요 이론은 모든 종에 유효해요인간에게도요선생님과 부인 사이에 열여섯 명의 아이들이 있다면 자연 환경에선 겨우  명만 살아남을  있어요.”    충격적이네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초래할까  걱정되네요.”    다른 사람의 불편 따위는 잊어버리세요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며 평생을 보내게  테니까요.” 아르수아가는 나를 꾸짖었다



-진화는 내적인 논리가 있어서 모든 가능성을 수용하진 않죠육식성 토끼는 존재할  없어요토끼-고양이도 가능하지 않고요 달린 육식 동물도 불가능해요어느  고생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 앞에 악마가 나타나 ‘나는 악마인데 너를 잡아먹겠다.’라고 이야기했대요그러자 퀴비에는 악마를 위아래로 바라보면서 ‘너는 뿔도 있고 발굽이 있어서 절대 육식 동물이   없다.’라고 하고선 그냥 침대에 돌아누웠대요자던 중이었거든요.



-뇌가 작아지는 것과 길들이는 것은 각각 어떤 결과를 낳나요?”    예민한 감각을 잃게 되지요늑대는 수캐들보다  냄새도  맡고 청각도 발달했죠늑대와 같은 야생종을 길들이면 특이한 성격이 나타나기 시작해요다양한변종이 만들어지지요귀가 처지고얼룩점이 생겨요반대로 가축화되었던 동물이 야성을 되찾으면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갑니다야생화된 개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면늑대 상태로 되돌아가지요가장 공격적인 성향이 있는 새끼를 고르는 것이 바로 선택이거든요이런 조건에선 가장 강한 놈만 살아남아요그러므로 우리도 만약 야생으로돌아간다면….”    다시 네안데르탈인으로 돌아가겠네요.” 그가 마무리 짓지 못한 말을 대신했다.



-“파코 이바녜스Paco Ibáñez 노래했던 호세 아구스틴 고이티솔로José Agustín Goytisolo  기억하세요? ‘혼자인 남자그리고 여자이런 식으로  사람씩 따로 간다면먼지와 같죠아무것도 아닌 겁니다아무것도.’”    정확한 표현이에요그렇게 써도 돼요.”



-“그럼  젊은이들이 아이를 가질  없죠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직업주거비 때문이 아닌가요?”    나는 그렇게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같아요.”    물론 이건  생각이니까요.”    스웨덴의 경우엔 그런 문제가 없는데도아이를  낳아요.”    보편적으로 자본주의는 아이를 낳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죠.”    그것보다는  복잡한 문제라고 봐요.” 



-“길들이기는 계획된  아니에요일종의 회로예요생물학에서는 모든 것이 피드백이라는 순환 회로에 기초해작동해요진화는 화살처럼 앞으로만 날아가지 않고바퀴처럼 돌고 돈다고 생각해야 해요바퀴는 도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요우리는 점점  유순해지는 것이죠점점 순해질수록우리는  유순하고  고분고분한 사람을선택해 번식할 겁니다그리고  순하고 고분고분한 사람을 번식할  있게 선택할수록 유순하고 고분고분해지는것이죠이런 과정이 끝도 없이 계속되는 거고요.”



-우리의 경우엔 공동체가 나서서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을 감옥에 가두거나 사형을 시켜 번식을 막았어요죽은 자는 번식할  없으니까요우리는 친사회적인 성격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수천  전부터 사형해 왔어요내가 예전에 선생님에게 이야기했던 영장류 동물학자인 랭엄에 따르면인간이란 종족 전체가 스스로 길들이기를 실행했던 거예요 이야기는 이제 끝이에요.



-“그렇지만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언제나 똑같은 자리에 머무르게  거예요.”    맞아요하지만 황당하죠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은 대가를 치르니까요갈릴레오도 대가를 치렀어요반대 의견에는 대가가 있어요인간의 군집 본능은 굉장히 강해요우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그것을  확인할  있어요아이들은 아직은 문화보단생물에  가깝거든요모두 똑같은 상표의 운동화를 신고 싶어 해요집단에서 따돌림 당하는 것을 어른들보다 더두려워해요…“



- 아시겠지만파충류의 설계도에서 선생님과 같은 포유류가 나왔어요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만들었죠비유한다면형이나 누나가 버린  옷으로 우리를 만든 셈이에요예를 들어태반은 알에 기초해서 만들어졌어요태반은  자체로 훌륭하지만처음부터 설계해서 만든 것과 똑같은 정도의 완벽함을 기대할 수는 없죠.



-“이들은 종일 움직였을 테고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보다  다양한 식단과   머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똑똑하진 않았을 텐데우리와 비슷하긴 했을 거예요그리고 최고라고   있는 점은 이거예요사근사근했다는 거죠절대로 건방을 떨지 않았어요그림을 그리고꾸미고치장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어요펜던트나 팔찌를 만들고손톱도 다듬고목걸이도 하고문신도 하고깃털 장식도 하고…. 제가 보기에  모든 것은 정신 상태를 반영해요우울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거든요러시아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상아 구슬이 달린 옷을 입은 해골이 발견되었어요옷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구슬은 남아 있었죠그런 장식을 만드는   시간이나 걸렸는지 선생님은 상상도   거예요아니   년이 걸렸는지도 모르죠치장하는  많은 시간을 썼어요잘생겼다고 생각했고잘생겼다고 느꼈을 거예요 자기들이 잘생겼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테고요그림을 그리기시작했을  어떤 행동을 했을지 주목해 보세요.”    한참  나는 침대에서 눈을 감은  깊은 명상에 잠겼다나는라 코바시에야 동굴에 내려가 다시 그림을 감상했다아직도 끝나지 않은 환상에 빠져 있었다동굴은 이미  마음 깊은 곳에 들어와 있었다.    그날  눈이 내렸다.



-교육적인 시각에서 보면아이들을 어른인  교육하는 것은 애벌레를 나비인  교육하는 것과 똑같은 잘못이죠애벌레는 나비의 축소판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존재예요아이들도 작은 인간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존재예요정말 멋진 판단을 내렸던 오르테가는 아이들에게 돈키호테를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에 반대했어요이것은 어른을 위한 책이거든요사춘기의 자녀가 누에고치처럼 행동한다고 불평하는 엄마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부인걱정하지 마세요 고치에서 아름다운 나비가 나올 겁니다.’라고요



-“배고픔을 몰랐던 종도 있을까요?”    없어요북반구에서 살았던 모든 생명체의 절반은 질병과도 같은 겨울 때문에 죽었어요생명은 어떻게 봄까지 살아남을  있느냐에 달려 있었어요대가가 무엇이든 말이에요아주 소수만정말 소수만 살아남았어요봄은 비교적 너그럽고가을은 정말 풍성한 과일을 안겨 주지요만일 8월이 정해진 날짜 이상으로 계속되면 여름도 길어져요그러나 가을은 언제나  자리를 떠나지 않아요결실의 계절이지요모든 것이 하늘에서 떨어져요예를 들어카스티야에선 모든 사람이 아무 걱정 없이 도토리를 먹을  있어요돈키호테에서도 그런 모습을   있잖아요달착지근한데다가 돼지한테  수도 있고요.”



-얼룩말은  소화관이 필요해요얼룩말이 먹은 것들은 별로 열량이 없거든요양은 많은데 열량은 적은 것과 양은 적은데 열량은 높은  중에서 골라야 해요삶이 그렇죠.”    우리가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아닌가요?”    그렇죠우리가 하는 것도 이런 거예요원래 초식이었던 식사를 양질의 식사로 바꾸면 결국은 소화관도 여기에 맞춰야 하죠.”    그럼 여기에서 절약한 것이 뇌의 성장으로 이어졌나요?”    맞아요덕분에 사회생활을 증가시켰고이는 다시 정치의 출현을 낳았어요.



-“카할은 80대에  세상El mundo visto a los ochenta años》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어요정말 보석 같은책이죠 책을 통해 노년에는 어떻게 느낄까 이야기했어요노년과 죽음은 과학의 가장 중요한  가지 주제예요우리는  늙는가그리고 우리는  죽는가  가지요.”

-Naranjo de Bulnes 아르수아가와 미야스가 방문한 동굴벽화 인근의 산맥. 궁금해서 나도 찾아봤다. 들소벽화는 못 찾고 프랑스 동굴벽화만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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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04 12:1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아직 회복중이시군요 ㅜㅜ 현재 열반인님 상황과 맞는 책을 읽으신거 같아요~! 빨리 회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5-04 19:25   좋아요 3 | URL
네 어쩌다 고르고 보니 걷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걷기 시작한 인류도 초기에는 서투르고 막 발 다치고 그랬겠지요?ㅎㅎㅎ 회복을 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ㅎㅎ

우끼 2023-05-04 12: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 감사해요 저도 한번 읽어보고 싶어요…! 정말 흥미로운 책이에요. 열반님 글 항상 기다리는 1인 드림 - 열반님의 평안한 회복을 기원하며..

반유행열반인 2023-05-04 19:26   좋아요 5 | URL
기다려주시고 평안과 회복 기원까지 감사합니다 ㅎㅎ 초반엔 얘들 뭐라는 거여 했는데 익숙햐지고 나니까 책 막판에는 이인조(?)랑 헤어지기 싫고 재밌더라구요 ㅎㅎㅎ

Yeagene 2023-05-04 13: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의 열반인님과 어울리는(?) 책을 읽으신 것 같아요 ㅎㅎ 책이 재밌어 보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5-04 19:26   좋아요 3 | URL
네 후반부에는 귀여움과 길들임과 개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와요. 개 이야기들으면 요즘은 곰탱이가 먼저 생각납니다 ㅎㅎ곰탱이 건강하게 잘 지내길 ㅎㅎㅎ

2023-05-05 0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5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8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8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5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6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백 살이 되면 Dear 그림책
황인찬 지음, 서수연 그림 / 사계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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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1 황인찬 시, 서수연 그림.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절룩거리네. 


 오른발모가지가  성하니까 왼발이랑 오른손이 고생하다가 오른손목도 시큰한게 심상치 않다맨날 펜을 쥐고 독서대에 손목을 대고 문제를 푸니까  큰일이다손목보호대가 오늘 도착했다ㅋㅋㅋ점점 사이보그가 되어가는 절룩거리다 보니 몽실이를 비롯한 작품  온갖  절뚝이 친구들이 등장하는데오늘의 브금은 식탁에서 딸기 먹다 말고 갑자기 절룩거리네가 되어 취객마냥 목놓아 부르기 시작했다


 내 발모가지 잘라내고 월드컵코리아  손모가지 잘라내고 박찬호 20


 노래하는 엄마를 어이없이 바라보는 어린이들에게 니들 박찬호 모르지이랬다

 친구의 소개로 2004 달빛요정 홈페이지에 가서 시디를 주문하고 계좌이체를 했더니사인과 번호가 매겨진 시디가 도착했다내건 00707이었다


 동아리에서 공연  절룩거리네를 카피하기로 해서 요정 홈페이지에 허락을 구하는 글을 남겼다달빛요정님이 허락이라는  필요하겠냐면서 허락해주셨다공연   노래는 동아리 술자리의 애창곡이 되었다


 혼자 살던 달빛요정 이진원은 2010년에 뇌출혈로 음악요정에서 진짜 요정이 되었다이제  그때 요정보다 나이 들고 무력한 사람이 되었다네절룩거리네하나도  힘들어 그저 가슴 아플 뿐인 ㅋㅋㅋㅋㅋㅋ

계속 살다보면 이제  신해철보다 나이가 많아노무현대통령보다필립로스보다그런데 밀란쿤데라 만큼은 자신 없다아니  할배 살아 계시죠ㅋㅋㅋ


 황인찬의 시랑 초록으로 물들인 수채화 그림이  아름다웠지만나는 안다  동안 쉬기만 하지는 못할 거야자고 일어나면 여전히 한낮이 아니라 저물녘 어쩌면 한밤중일지도 몰라나를 둘러싸고  쉬었냐고 물어줬으면 좋을 가족들은 이미   곳에서 먼저 쉬고 있을  알아.

아직  백년도  되었는데  오른팔과 오른발목은 벌써 사이보그야 ㅋㅋㅋ지나면 낫긴 하겠지만시간 가면서 다른  팔다리도 눈도 귀도 내장도 뇌도 하나씩 낡고 고장이 나겠지

 그래서 내가 그린 그림책은 새까말  같다나는  살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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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4-27 0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아무쪼록 쾌유하셔서
문제푸시는 손목도 가뿐가뿐, 문제도 술술 풀리기를!
건강하시어요

반유행열반인 2023-05-03 18:57   좋아요 0 | URL
얄님 정말 감사합니다 ㅎㅎㅎ얼른 가뿐가뿐 술술 했으면 좋겠어요. 얄님도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Yeagene 2023-04-27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아픈 곳은 낫지 않고 다른 곳도 점점 안좋아지시네요ㅠㅠ
빨리 나으시길 바라요♡

반유행열반인 2023-05-03 18:58   좋아요 1 | URL
예진님 늘 감사합니다 ㅎㅎㅎ♡♡♡
 

 쟁인다. 아마도 토요일에 도착한 우주점 책들을 가족들 나가는 길에 들여놓고 나서 이제서야 꺼내 보았다. 

 변태 시인의 시집(왜 상품 페이지의 표지랑 다르지?그런데 내가 받은 게 낫다 상품 소개 표지 왕변태 같음…), 사놓고 안 읽은 소설가의 또다른 소설책, 유명 소설가의 반려자인 건 이번에 처음 안 에세이스트의 에세이, 특수 현장 청소업자와 트라우마, 뭔지도 모르고 일단 궁금해서, 그리고 시 한 편이 책 한 권 된 책. 가까운데 꽂고도 언제 읽을지 알 수 없는 책들. 

 아 저 중에 신간 그림책 한 권은 금요일에 커피랑 오자마자 봤다ㅋㅋㅋ 자기 전에 둘째 아이에게 읽어주니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좋아했다. 백 살이라니까 욕심은 많아가지고 천 살에는? 했다. 

























사은품으로 이런 예쁜 왕엽서? 인쇄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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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4-24 15: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가 어떤 소설가의 반려자인가 찾아보았습니다. 열반인님 덕분에 알게 되었네요 ^^

반유행열반인 2023-04-24 18:38   좋아요 1 | URL
저도 몰랐는데 이 책 사면서 친구에게 나 에세이 샀는데 너 읽은 책인 듯?했더니 폴 오스터 이야기 해줘서 알았어요. 정작 집에 있는 폴오스터 책은 한 권도 안 봤네요 ㅋㅋㅋㅋ

Yeagene 2023-04-25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열반인님은 책을 쟁이시는군요ㅎㅎ 엽서 예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4-25 13:25   좋아요 1 | URL
수채화장인 예진님이 예쁘다면 진짜 예쁜 거죠!!! 그만 쟁이고 읽어야 하는데 말이쥬…
 
드립백 콜롬비아 엑셀소 디카페인 - 12g, 1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10월
평점 :
품절


브로콜리너마저-마침표


 마침표 찍어 놓고 다시 뒤돌아보는 미련 많은 나란 새끼. 뒤돌아 서서 대개 도망가는 애들 머리채 쥐고 잡아오기 전문가… 그런데 이번에는 마침표 두 개 쾅쾅. 세 개 쾅쾅쾅 하면 말줄임표…

 

 아침에 일어나니 왜죠? 기분이 좋았다. 금세 이유를 알았다. 헛탕 치고 돌아오는 병원 길 500미터, 왕복 1킬로미터, 고작 그거 걸었다고, 3주 만의 산책에 내 뇌는 세로토닌 도파민 뿜뿜하며 말했다. 운동을 하세요. 운동을 하면 우울증이 개선되고 심폐지구력과 근력이 향상되며 체중이 감소할 수도 있고 하여간에 좋습니다. 알아요. 알게 되었고 저도 그러고 싶은데 다리가 다 나으면 실내자전거도 막 하루 한 시간 타고 날 좋을 땐 이제 다리 안 다치게 딱따구리 보러 뒷산 돌아댕길 거예요… 아직은 못 합니다… 칩거가 끝나고 나면 바깥은 여름이겠구나.


 도파민 중독자는 손쉬운 보상회로 회전을 위해 쇼핑을 합니다. 마트에서 할인하는 수입산 쏘고기도 사고, 3월에만 당선작 시켜주고 4월은 짤없네…섭섭…책 안 산다…하고 버티다가 장바구니를 좀 비우기로 했다. 우주점에서 기욤 아폴리네르 시집이랑 시리 허스트베트랑 또 뭐 이런 저런거 담고, 갑자기 꽂혀서 스켑틱 모아둔 특집호랑 호르몬 관련 과학책 개인 판매자한테 사야지, 그러다가 왠지 쿠폰이랑 적립금이 아까워…하면서 알라딘에 황인찬 그림책 신작이랑 책만 사면 쿠폰이 안 된대 하고 드립백 디카페인을 주섬주섬 담는 나란 새끼…안 산다며…

 만원 한도 내에서 알라딘 15퍼센트 할인해주는 깡패 카드를 가지고 있어서 6만 얼마 근접하게 사면 할인율을 딱 맞출 수 있어서 맞춰서 주문했다. 그런데 개인 판매자가 책 없다고 품절취소해 버렸다… 문제는 거기에 이만원 어치 책을 시켰는데 알라딘이가 카드 취소 만오천원 해주고 나머지 오천원을 적립금으로 돌려줘버렸다…이거 오늘 소멸인데… 뭔가 진상고객은 되지 말자 하는 마음과 아니 그래도 억울해요 우주점이랑 직배송은 이미 출발했는데 거기서 적립금 써도 될 건데 왜?왜? 이러면서 고객센터 전화하고 문의글 남기니 다행히도 바로 적립금 도로 빼고 카드 취소로 바꿔주었다… 그런 과정에서 어제 축적한 호르몬 저축분은 소멸… ㅋㅋㅋ다시 평범한 앵그리 반으로 돌아왔습니다…


 열두시쯤 시켰는데 커피랑 그림책은 벌써 내 곁에 있다. 저녁 먹고 디카페인 내렸다. 그런데 와 진짜 드립백 물 너무 안 빠진다…내리다가 커피 다 식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가…내 드립주전자 물줄기가 너무 약한가… 나는 성질이 너무 급해서 이전에도 드립백 물 안 내린다고 성질내고 안 사! 해놓고 또 할인쿠폰 쓰겠다고 드립백 5개들이를 주문해 버린 걸 후회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맛이 별로 없었다… 산미 안 나신다는 분들 이 커피는 식으면 산미가 세집니다. 

 나는 맨날 핸드드립 먹으면서도 제대로 된 드리퍼가 없다. 도자기 플라스틱 이런 거 없고 미세촘촘그물망사로 된 스텐에 티타늄 도금 했다는 금속 드리퍼가 있다. 이것의 장점은 여과지 쓰레기를 안 버려도 된다. 적은 양의 원두로도 엄청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커피 전문가들은 야 잡맛 다 녹아나오고 에비지지 버려 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풍미 가득한 이 편이 좋다. 미분이 좀 섞이긴 하지만 그래서 온갖 향이랑 미세 콩가루(?)까지 알뜰하게 마실 수 있음…가끔 깔끔하게 마시고 싶으면 맥널티에서 나온 일회용 드립백에 원두 넉넉히 넣어 내리는데, 종이 냄새도 없고 필터 나쁘진 않은데 커피오일 미분 다 걸러내면 좀 심심하다. 하여간에 그 드립백도 이만큼 걸리진 않는다고… 맛 차이도 잘 모르겠다고… 너무 오래 걸려서 아이스커피 된다고…

커피 내리다가 잠들어 버릴 것 같아…너무 오래 걸림…좀 심함…


 커피 내리면서 너무 오래 걸려서 커피 또 뭐 있나 구경하다보니 콜드브루 두 종만 남고 다 사라졌다. 문득 신나서 나랑 관계도 없는 외주업체 홍보하다가 알라딘이 야 왜 너 첩자 보내서 손님 빼가냐 밑장 빼기냐 하고 외주 생산자 아웃, 한 거 아닌가 뭔가 양쪽으로 진상짓을 해 버렸나 (야 너가 뭐라고 그냥 자본주의 기업가 어른들의 사정일 것을) 근거 없는 괜한 상상을 하다가… 역시 이번에는 돌아가지 않아…서점은 책이지… 게다가 이달에 연두커피 에티오피아 게이샤랑 유기농 콜롬비아를 7천원대에 판다고… 동네 방네 소문내고 나도 두 개씩 사 버릴 거야… 거기 디카페인 콜드브루도 개맛있어…또다시 진상짓을 하고 만다. 뭔 헤어진 연인 흉보고 다니는 것 같은 나란 새끼…네 저 그런 짓 잘해요…죄송합니다… 저 미워하는 마음도 저랑 안 친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해요. 저도 저랑 별로 안 친하거든요…


 패키지의 귀여움은 알라딘이 이겼다. 커피 포장지가 항상 예쁘다. 연두커피는 진짜 패키징 보면 내가 디자인 다시 해주고 싶다…너무 구려 보임…세상 맛있는 커피를 막 못생긴 라벨 붙은 페트병에… 원두는 다 똑같은 갈색 포장지에 스티커만 다르게… 예쁘고 비싼데 좀 덜 떨어지는 애랑 세상 똘똘하고 재주 많은데 옷 거지 같이 입고 다니고 남들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하는 애 중에 어떤 애랑 친구 하고 싶냐 하면… 둘다 좋은데 걔들은 나랑 놀고 싶대요? ㅋㅋㅋㅋ 응 둘다 꺼지래… 아 네… 마시고 보니 여태 흥분하는 게 디카페인 맞죠? 오늘밤 꿀잠 오케이? 하여간에 특허 받은 필터…난 별로 난 반대…그치만 이미 배신한 나 따위 잊고 아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잘 살고 행복하렴… 난 내일 과테말라랑 말라위 돌아가며 마실 것이다… 디카페인은 디카페인인 건 좋은데 진짜 맛이랑 속도가 곤란하네…다 내리길 기다리다 보니 잘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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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3-04-22 09: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앵그리 반!!!ㅎㅎㅎㅎㅎㅎㅎㅎ 넘 귀여워요!!! 알라딘 커피 받은 거 가방에 집어 넣은 다음에 어느 쇼핑센터에 가서 제가 산 거 계산 하려고 가방을 열었는데 직원이 알라딘 핑크핑크한 커피 박스 보고서 제가 뭐 훔친 줄 알고 가방 조사,, 아 놔~~~.ㅎㅎㅎ 사과는 받았지만 기분 더럽고요,,, 하지만 요즘 제 기분이 넘 좋잖아요,, 다 막 용서 되고 말이죠.. 암튼 저는 반열샘 처음부터 좋아했어요,, 친하다고 혼자 철썩같이 믿는 일인;;; 근데 마침표에 대한 오프닝 글 넘나 좋잖아요!!! 역시 반열샘은 글을 써야 하는 것 같은데 말이죠.. 내가 뭘 안다고,, ^^;;

반유행열반인 2023-04-22 09:44   좋아요 1 | URL
아니 패키징 쇼핑 진열품처럼 보이게 한 알라딘 잘못일까요 착오한 직원 분 잘못일까요 라로님 잘못은 없습니다 ㅎㅎㅎ 저 라로님이랑 친하죠 ㅎㅎㅎ 한다면 한다, 하시고 실제로 입학도 또 뚫어내셨으니 늘 귀감이 되십니다. 좋은 기분 오래오래 간직하세요 ㅎㅎㅎ좋은 기운 저한테까지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