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7 박상륭.

-경- 칠조 열반, 칠조어론 완독 -축-

칠조는 산 채로 해골 같은 석굴 아래 묻혔다. 감옥 문은 열려 있었고,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었지만 촛불중은 어쩌면 스스로 땅 속에 담겼다. 누가 묶어둔 것도 아닌데, 이 여름 여기 붙박힌 나는 이런 나여서 촛불중의 그 시간과 사변을 제법 몰입해서 따라갔던 것 같다.

십 년 전에 그날 처음 본 사람들 몇을 엮어 울산 여행을 했을 때, 시내에 처용관광 이름 단 관광버스가 자주 지나다녔다. 삼국유사 읽다가 만난 처용 이야기는 제법 내 마음을 울리는 데가 있었는데, 울산에 처용암이 있어 거기서 여행사 상호를 따온 모양이었다. 달밤에 신나게 놀고 집에 왔더니 내 방에 다리가 네 개야… 이거 뭐야 몰라 무서워 하고 그냥 기어 나온 처용한테 침입자인 두 다리 주인 객귀새끼가 어이쿠 너그러움 니는 처를 용서해서 처용이가 처죽일 나놈을 용서해서 처용이가, 앞으로 니 얼굴 붙은 데는 안 들어가, 그 귀신놈이 역신이었다고, 사실 처용처는 바람 피운 거 아니고 역병 들어 앓던 거라고 금가루 뿌리는 해석도 있긴 하지만, 하여간에 옛날 사람 눈에 보자마자 둘다 처죽이지 않고 내버려둔 처용이 난 놈이었나 보다.
아니 그런데...오래 지나 생각해보면 정말 처용이 그냥 별 상관 안 했을 수도 있지 않나… 질투란 감정은 본능이 아니라고, 학습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아니 또 그리고, 처용처 이야기는 아무도 안 들어 봐… 그냥 이놈저놈 토스하는 공 취급이네… 역신 새끼가 강제로 처들어온 거면 처용처 불쌍하지 않나… 역신 새끼가 처용인 척 혹은 불 끄고 살짝 들어왔는데 처용이랑 체온이랑 실루엣이 엄청 닮았을 수도...이건 확률이 낮지만 그럴 수도 있지 않니… 몰루겄다.

칠조어론에는 수많은 동화와 민담이 변주되어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고갱이를 이루는 서사는 바로 이 처용 이야기이다. 촛불중이 아직 중 되기 전에, 자기 처가 있는 신방에 (그냥 자기 처라고 하다가 나중에 신혼 첫날이라고 밝혀짐...개미친) 자기 친구놈을 자기 대신 들여 보냈다. 촛불중은 절시(관음증) 취미가 있었는데, 막상 그래 놓고는 빡이 쳤는지 도끼로 친구 골을 따 죽여버리고 (원래는 처까지 죽였나 했는데 역시 나중에 보니 부인은 그냥 청상생과부 만들었다고…) 그 길로 집을 나와 떠돈다. 자기가 ‘처용’하지 못한 게 내내 걸렸는지 막 자기 설법 펼칠 때도 처용과 역신, 처용처 이렇게 셋을 두고 수사학 썰 푸는 적도 많고, 뭐만 하면 처용 처용 한다. 육조랑 구조(장로손녀딸)랑 칠조의 삼각구도도 비스무레하다. 아 셋은 복잡혀… 사람 사는 건 몸도 마음도 왜 이리 복잡한지...

돌방에 갇혀 밥이랑 물대주는 화장장지기에 의지해 목숨 부지하던 촛불중은, 화장장지기가 소주 먹고 돌아버려서 소금이랑 모래랑 소주랑 물 섞어 바치자 벼락 같이 분노한다. 그러다가 완전 돌아버린 화장장지기가 밥 대신 똥이랑 오줌 넣어주니 그걸 먹고 또 연명한다. 또 그러다가 정신줄 잡은 화장장지기가 쌀죽 쒀서 공손히 바치니까 극락을 맛본다. 삶의 구차함, 삶에의 집념, 이런 거를 이렇게 써 놓으니까 진짜 눈물이 앞을 가려가지고…

칠조는 이미 묻혔고 곧 죽을 걸 아는데도, 아직은 안 죽어서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궁리도 하고 유체이탈도 한다. 사실 이미 죽었다고 체념하기에는, 세상 산 것들 모두 언젠가는 죽을 건데도 이렇게 열심히 살지 않냐…
촛불증은 죽음을 앞두니 자기가 못되게 굴었던 사람들도 떠올린다. 내가 그렇게나 코빼기도 안 쳐다본다고 화냈던 죽음의 한 연구에서 죽었던 수도부 보살스님도 꼴랑 한 쪽이지만 자기 때문에 죽었지...하고 조금 미안해 한다. 그걸로 땡이라 유감… 그러다가 자기가 굳이 자기 신방에 밀어 넣고 죽여버린 친구한테 갑자기 미안해져서 어딘가로 유체이탈을 하더니, 죽었는데 죽지도 못하고 갑자기 누군가의 혼이 죽음을 탈취해 버려서 객귀가 되어 버린 예전의 친구에게로 흘러간다. 그리고는 그 친구가 벌레에 담겨 죽도록 도와준다. 문득 박상륭 선생이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에 나가 텔레비전 쏼라쏼라 못 알아 먹는 중에 (캐나다 티비에도 놔왔을란가 모르지만) 그나마 더블유더블유에프의 레슬링을 즐겨 봤을 것 같다는 망상을 했다. 왜냐하면 죽음의 한 연구 대미로 가는 길에도 큰형장나으리와 눈 먼 육조스님의 한판 승부 격투기가 벌어지는데, 여기서도 객귀의 죽음을 탈취한 혼백 개구리와 객귀 까마귀의 결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냥 뭔가 갑자기 무협지마냥 패고 맞고 하는 거 보면서 웃겼다… 환호하는 신선, 요정, 귀신 등등의 관중들과 날리는 복숭아꽃… 개그 잘 치심…

어제는 우체국에 갔다가 갑자기 비가 뚝뚝 내리는데 집으로 발걸음을 안 돌리고 가던 그대로 걸어 3킬로 정도 거리에 있는 공원에를 갔다. 그냥 갑자기 연꽃이 보고 싶었다. 그 공원에 연못이 있지, 하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가다가 아이스 룽고 한 잔 사가지고 빨대 쭉쭉 빨면서 공원에 갔더니, 이 더위에도, 비도 오락가락 하는데도 사람들은 스케이트 보드도 휙, 나르고 배드민턴 테니스도 열심히 치고, 산책도 조깅도 하고, 풋살도 치고, 바닥에 앉아 명상도 하고, 다들 부지런히들 살고 있었다. 연못 근처에 가니 찔레꽃마냥 찌지한 쪼그만 장미꽃들이 심겨 있었다. 장미향이 좋아서 일단 연꽃 못 보더래도 이걸로 위안 삼기로 했다.
연못에는, 3년 전에 왔을 때는 꽃은 없어도 연잎이 무성했는데, 이제는 그 연잎도 다 죽어버리고 부들이랑 조릿대랑 풀떼기만 무성하고 연잎은 겨우 가물에 콩나듯 일부만 남아 있었다. 연꽃은커녕, 장기 두는 할아버지들만 정자에 한 트럭이었다. 그래도 연못 한 바퀴 빙 돌아 더위 구경을 하고, 좀 많이 걸어서 무거워진 발로 저벅저벅, 촛불중 마냥 고-해-고-해-해-고-애고애고 하면서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7킬로쯤 걷고 만걸음 쫌 넘게 걸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 앞날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쓸데없는 고민만 많고,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자책을 하면 친구는 그런 말도 입버릇이 된다고 그러지 말라고 (전화기 속에서) 혼을 냈다.

좀 못되먹은 무리가 장악했던 유리읍사도 판관 겸직 읍장과 그의 남자 애인의 급살맞음으로 정리가 되고, 장로손녀딸이 구조 겸 새 읍장으로 칠조의 장례를 정중히 치르고, 나도 긴 이 여름 함께 했던 촛불중과 작별 인사를 했다. 머리에 신발짝 얹고 죽은 거 조금 귀여운데 뭐 세상 바다 그렇게 떠받치고 죽는 건 큰 스승들이나 할 일이고, 나는 최대한 늦게, 덜 아프게 죽을 방법이나 궁리하면서 살아야지…

수능 끝나면 칠조어론 봐야지, 했는데 올해는 몸도 아프고 그래서 예상보다 조기 수능 종료(응 안 봄) 되었다. 그래서 다시, 칠조어론 다 보면 수학 다시 한댔는데 성질 급한 나새끼는 이미 산수 쪼끔씩 진작에 풀기 시작해서 뭐… 일신 달라질 건 없고… ‘륭’책 욜책 안녕… 이제는 ‘박’책이랑 ‘상’책이 기다린다. 이미 ‘죽음의 한 연구’를 봐버린 ‘상’책이 유리하기 때문에 다음 박상륭 독서는 ‘상’으로 간다… 나아아아아중에… 그냥 박상륭 안 보고 수학도 안 풀면 안 되니… 그러기엔 심심한 인생… 심심해서 그냥 볼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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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3-08-17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안끝나셨군요ㅎㅎ 열반인님 화이팅!!♡

반유행열반인 2023-08-17 21:32   좋아요 1 | URL
예진님도 무엇이든 화이팅 입니다!!!!
 
[eBook] [고화질] 일하는 세포 BLACK 1 일하는 세포 BLACK 1
하라다 시게미츠 지음, 하츠요시야 잇세이 그림 / 학산문화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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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버린 킬러세포가 모근 세포 공격중…공포…


20230817 하츠요시야 잇세이.

 아직 일하는 세포 원작도 다 안 보고선 스핀오프인 일하는 세포 black 전자책 전 권을 질러버렸다…(사는 거 힘드니?)

 적당히 아프고 적당히 멀쩡한 몸이 원작 배경이었다면 블랙의 몸은 과로와 음주 흡연에 발기부전과 성병(으으), 원형탈모까지 고뇌로운 몸뚱아리…산소 운반하는 적혈구와 백혈구는 개고생 중…목차 보니 다음 권들 중 폐혈전 에피소드 좀 기대중…ㅋㅋㅋ왜… 전 건강해지는 중입니다… OTT에 애니메이션도 다 올라와서 궁금한데 만화책 다 보면 애니는 안 봐도 될 것 같기도… 힘내라 세포들 일해라 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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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3-08-17 2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세포의인화 만화군요 ㅎㅎ 넘나 신기합니다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8-17 21:33   좋아요 1 | URL
원래는 일하는 세포 라는 원작 만화가 있는데 스핀오프가 끝도 없더라구요 ㅋㅋ일하는 세포 레이디, 베이비, 기타 등등...개중에 제일 볼만하고 애니메이션도 나온 공인인증(?) 번외작이라 보고 있어요 ㅎㅎㅎ
 

적립금 받으면 신이 나지만...그거만 쓰지는 않지... 왠지 적립금을 받을 것 같은 기분으로(?) 미리 지른 책과 받고 나서 지른 책 등등.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가 필딩을 읽었다고 하는데, 무슨 소설일까 궁금했는데 ‘톰 존스’에 관해 ‘커튼’에서 열심히 칭송해 놨다. ‘돈키호테’도 같이 자주 언급하는데 그건 이미 있을 걸 전자책도 종이책도...
‘특성 없는 남자’는 올해 새 번역판이 나왔다고 해서 이벤트 적립금 받을 때마다 한 권씩 샀다. 언제 읽을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전쟁 같은 맛’은 밀란 쿤데라랑 상관 없는데 그냥 두껍길래 같이 찍어 줌... 이 중에서는 이걸 제일 먼저 볼 것 같습니다...
8월 들어 쎈 수학1 푼다고 독서가 조금 느려졌지만 애써 보겠습니다... 비 피해 없이 모두들 평안하게 독서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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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8-11 16: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특성없는도 대책이 없지만 톰존스도 만만치 않으실 터인데, 이거 은근히 고소합니다 그려. ㅋㅋㅋㅋ
톰존스는 어려워서가 아니라,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 작에다가 길기는 또 얼마나 긴지, 아이고....

반유행열반인 2023-08-11 17:15   좋아요 2 | URL
골드문트님은 새빠지게 다 읽으신 거잖아요. 저는 아직 안 읽었으니 안 읽고 팔아 버려도 그만입니다. 아이고 은근히 고소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중에 은퇴하고 심심하면 도서관 갔다 소주 한 병 사가지고 와서 집에서 소일 거리로 보죠 뭐 ㅋㅋㅋㅋㅋ 진짜 두껍긴 하네요. 두거워서 찍어 보고 싶었습니다...나 책벼개 많다 이러구...

우끼 2023-08-11 17: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쿤데라 옹을 이렇게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도끼옹이 읽은거 도장깨기 하려다가 실패한 1인

반유행열반인 2023-08-11 17:17   좋아요 1 | URL
저는 도스토예프스키 (와 이름 적는데 낯설음 오타 날 거 같음) 지하 생활자? 대책 없는 히키고모리 하나 보고 본 게 없어요 ㅎㅎ 쿤데라 옹도 좋은데 소개 시켜주는 책들 은근 궁금하더라구요. 경건한 마음으로다 일단 모아는 놨어요 ㅋㅋㅋ율리시스 잃시찾 몽유병자들 온갖 수면제 다 모아놨는데 잠이 잘 와서 안 처먹고도 그냥저냥 사네요 ㅋㅋㅋ

우끼 2023-08-11 17:20   좋아요 1 | URL
아니 율리시스… ㅋㅋㅋㅋㅋㅋㅋ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는 없으시네요

반유행열반인 2023-08-11 17:20   좋아요 1 | URL
넴 그건 지금 처음 듣는 듯? 아닌가 익독중에 나왔나... 없는 게 더 많겠죠 ㅋㅋㅋㅋ

우끼 2023-08-11 18:10   좋아요 1 | URL
제가 도끼옹 팬이어서 ㅋㅋㅋㅋ 근데 팬인데 도끼옹작품 도장깨기도 다 안함 ㄴㅋㅋㅋㅋㅋㅋ 핀천의 책은 초기작이 너무 너무 너무 힘들었어서 말해봤어요 출판사에서 받았는데 리뷰를 아무리 쥐어짜도 못쓰겠더라구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훌륭한 수면제일것같아서
그나저나 수면제없이 잘자는 거 부럽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8-11 17:32   좋아요 1 | URL
젊은 날에는 바닥에 흩어진 졸피뎀 도토리처럼 주우며 횡재했다! 그런 꿈 꾸고 살던 시절도 있는데 삼십 후반 지나서부터 수면 문제는 적당히 해결이 되었습니다... 정말 못 자던 인간인데 아침 되면 눈 떠지는 거도 신기하고 자야지 하고 누우면 그냥저냥 자는 거도 신기하고... 밤 여덟시만 되면 일단 집안 불을 다 노란 거로 바꾸고 디밍 전구로 한 시간 마다 조도 낮추면서 책 보다가 정해진 시간 되면 졸리진 않는데 눕습니다. 그럼 또 잡니다. ㅋㅋㅋㅋ 대신 낮잠은 거의 안 자요. 낮엔 드러눕거나 책상에 엎드리지도 않음.

2023-08-11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3-08-11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분들 페이퍼에서 특성없는남자 인증샷 보는데 왜 제 배가 다 부른가요 (두꺼운책성애자)ㅋㅋㅋㅋ 위쪽 색감도 이쁘게뽑혔다...🥹

은오 2023-08-12 00:03   좋아요 2 | URL
그리고 문동 세계문학전집 넘 좋지않나요?! 표지 깔끔, 종이질 좋음, 행간 적당함
민음: 종이 금방 변색됨
열린: 표지정신사나움, 행간 너무좁음
을유: 세계문학전집중에 디자인은 최곤데 주석 뒤에있어서 주석읽기 불편함 미주좀버려줬으면..
문동은 딱히 단점이 없는듯

새파랑 2023-08-12 10:00   좋아요 3 | URL
저도 세계문학전집은 문동이 괘안터라구요. 민음사는 판형도 두가지이고 표지의 내구성이 좀 약하더라구요 ㅋ

반유행열반인 2023-08-12 17:54   좋아요 2 | URL
아 ㅋㅋㅋ저는 겉표지를 생각보다 신경 안 쓰는 사람이었네요 ㅋㅋㅋ문학동네가 새까망이 바탕이라 좀 고급스러운 느낌은 있는데 이거저거 사놓은 건 있는데 또 생각보다 본 게 없습니다 ㅋㅋㅋ한국소설도 문동에서 나온 책이 폭망일 확률은 적습니다만 확률입니다.... ㅋㅋㅋ

새파랑 2023-08-12 09: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특성없는 남자 완전 탐나게 생겼네요 ㅋ 사도 안읽을거같지만 일단 사야겠습니다~!!

은오 2023-08-12 10:24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 완전 탐나게 생겼네요 ㅋ 안읽을거같지만 일단 사야겠습니다~!!의 흐름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새파랑님도 진짜 은근 웃김....

반유행열반인 2023-08-12 17:55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 잃시찾도 읽으셨으니 이 정도 분량은 각 잡고 몇 주 주말 안에 호다닥 아니실지요 ㅋㅋ
 
[eBook] 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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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0 크리스티앙 보뱅.


사실 난 보뱅이 누군지도 몰랐다. 내가 읽을 책은 내가 고른다. 이 책 좋아! 하고 말할 때도 사실 걱정된다. 내가 좋다는 말을 듣고 누가 그 책을 안 봤으면 좋겠다. 보고 나서 에이 안 좋잖아, 하면 미안할 것 같다.

몇 학번? 하고 반말하며 자기가 동문 선배임을 각인시키려던 교감 선생님은 나중에 공석이 된 업무를 떠맡기려고 나를 불러다가 으름장을 놓았다. 네가 어리잖아. 네가 해야지. 나는 거기다 대고 저 우울증이에요, 약 먹고 있어요, 하고 줄줄 울었다.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성대결절까지 와서 병가를 내겠다고 하니 얼른 쓰라고 했다. 우울증 진단서도 낼까요? 하니까 그건 뭣하러 내냐면서 손사래쳤다. 능력있는 사람이었는지 교감 온지 일 년 만에 다른 학교 교장으로 가버렸다. 무사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그 사이 갑자기 죽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그렇게 삼년차에 삼개월 가량의 휴가를 낸 시절은 성인이 된 이후 가장 자유로웠다. 여기저기 공연을 보러 다녔다. 사람들을 만났다. 무서운 영화를 잔뜩 보았다. 휴가 막바지에 예정 없이 애를 갖는 바람에 지금 이렇게 애엄마가 됐지만… 그것이 나의 스물 일곱. 음반 발매. 신촌에서의 마지막 공연. 아무도 모르는 젊은이의 은퇴.

이름이 너무 많아서 다 읽고도 진짜 이름을 모르겠는, 레베카라고 하겠다. 앞뒤 안 가리고 마음대로 어디든 떠나버리는 레베카랑 나는 맞지 않았다. 나는 어디로든 자리를 비우려면 이유를 대야하고, 내 빈자리를 채울 이들에게 맡길 것들이 있다. 열아홉 스물 언저리에 가출을 많이 하긴 했지만, 폭력으로부터 도피에 가까웠고, 그냥 웃음이 많고 좀 미친 엄마나 과묵하고 완벽주의인 아버지 정도가 아니었으니. 그래도 나는 걱정과 불안 없이 떠나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자유를 참 좋아하면서도 저렇게 아무런 매인 것 없이 남들은 불안하거나 말거나 걱정하거나 말거나 훌쩍 떠나 다른 이름이 되는 레베카에게 호감을 느끼거나 공감하거나 하지 못했다. 그냥 짜증나… 이건 부러운 것일 수도 있겠다.

제목처럼 가볍고 산뜻하게, 마음 가는대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주인공과 문장이 제법 일치하는 소설이었다. 새삼 나는...역시 셀프 고문으로 글읽기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엔간한 고생하지 않는 주인공에게는 곁을 주지 않는 것일까… 읽는 마음은 가벼운 주인공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냥 좀 사강 같으면서 로맹가리 같기도 한데 그만큼 호의를 가지고 읽지는 못해… 둘다 가질 수 없다면 두 놈다 버리겠다! 이게 뭐야… 배우도 하고 작가도 하고 네가 좋은 거 다해라…

교훈은, 얇다고 해도 숙제처럼 읽지 말자. 나한테 전혀 모르는 책 누가 읽어 달라 그러면 반사, 하자. 세상 사랑하는 사람이 그러더라도 아 됐고, 책 말고 사랑만 내놔 하자. 내 책은 내가 고른다. 보뱅 안녕. 난 준비가 안 됐어. 클린앤클리어 광고만 봐도 난 그 소녀 감성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어. 지금도 그래… 내 안식처는 다크앤더티어야...

+밑줄 긋기
-나는 행렬에 앞장섰고, 개양비귀꽃들로 가장 붉게 물든 땅을 골랐다.
(인상 깊어서가 아니고, 내가 본 전자책은 개양귀비가 개양비귀로 오타가 나 있었다. 아이고 웃겨, 하고 옮기고 보니 뒤에는 또 멀쩡히 양귀비였다. 양귀비 먹고 취했나.)

-신성함은 연약하다.

-그래도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아서 기쁘다. 나는 그게 좋아. 아주 좋은 신호야. 우리가 너를 잘 키웠고, 오로지 자기 마음에만 귀 기울이는 법을 가르쳤다는 얘기니까.

-사랑을 할 때는 서둘러 했는데, 그 사랑에서는 훔친 과일 맛이 났다.

-지혜는 흔히 말하는 것과 달리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며, 마음은 시간 안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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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8-11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이 책에 대헤 고민중이예요.
한 번 더 읽어야겠어요.
사강보다는 훨씬 무겁게 여겨졌어요.
‘가벼움‘이란 단어를 더 생각해봐야겠더라고요^^

반유행열반인 2023-08-11 09:30   좋아요 1 | URL
저는 이번에 새삼 제 미감이랑 정서가 남들하고 구조가 다르다는 걸 재확인하고 가요...다들 아름답다, 감동이다 할 때 혼자만 못 느끼고 소외감 ㅋㅋㅋㅋ그래서 알아서 요령껏 피해 읽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실패하고 말았네요... 맑고 밝은 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탱되는 부분도 있는 세상 같습니다 ㅋㅋㅋ

2023-08-11 0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1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1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1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1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1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3-08-11 0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방금 애들 가르치는 유열님 잘어울린다고 하고 왔는데.. 아니 취소.. 아니 그니까 잘어울리긴하는데 유열님 교사생활 힘드셨군요..😢
저도 가벼운 마음 읽으면서 부러웠어요!!!!!!ㅠㅠ 그래서 대리만족이 돼서 좋았고 ㅋㅋㅋ 저는 실제로도 그런 유형들 부러워하거든요. 천성이 걱정 없고 될대로 돼라 식이고 가볍게 사는 사람들 ㅋㅋㅋ 사실 삶 자체가 무거운건데 그런 삶을 가벼운 마음으로 사는게 오히려 어려운 일이 아닌가.. 이건 타고남의 경지다... 하면서 ㅋㅋㅋ 근데 뤼시가 딱 그랬고 거기다가 보뱅의 문장들이 제 취향이라 더 좋았어요 ㅎㅎ
근데 패배의신호 루실을 보면서 저는 가벼운마음 뤼시가 떠올랐거든요? 유열님은 루실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8-11 09:36   좋아요 2 | URL
루실이도 제멋대로긴 한데 마지막에 결국 타협하고 끌려가서 배드엔딩이잖아요? 스위스 가서 중절도 해야 했고 화려한 생활 버리고 버스 몇 시간 기다리고 출판사 가서 노동하고... 그 정도 몸 고생 맘 고생 하면 좀 봐주는 게 있는데 가벼운 마음의 빛돌이는 일단 자기가 내내 애고 자기는 애한테 발목을 안 잡혀서 내내 애일수 있지 싶어서...게다가 작가도 전혀 모르다가 아 사강처럼 젊은 여자 때 글이야? 할머니가 쓴 글이야? 하다가 돌아가신 시인 할배가 오십대 아저씨 때 썼다는 거 알고 이새끼가 판타지가 판타지 했네 하고 좀 화났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안해요 은오님 내가 읽을 책은 내가 고른다 이제 읽어주세요 하지 마요 나 생각보다 곱고 예쁜 거 보면 그거 붙들고 읽는게 더 힘들더라구요...병든 사람임... 풀 먹는 호랭이임.... 개미 먹는 사슴임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8-11 09:37   좋아요 1 | URL
저는 같은 아저씨가 쓴 거래도 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이런 데서 좀 더 미감을 느끼더라구요 ㅋㅋㅋ 부부가 각자 바람피고 가정 깨지고 개막장 드라마인데 그런거 잔잔하게 써 놓은 그런거가 더 좋음 ㅋㅋㅋ

은오 2023-08-11 10:01   좋아요 1 | URL
가벼운 나날 안그래도 보관함에 있는데 조만간 읽어볼게요! ㅋㅋㅋ 유열님 취향 알아가는중

반유행열반인 2023-08-11 10:10   좋아요 1 | URL
은오님처럼 말랑말랑한 두뇌 무엇이든 호기심 가지고 봐야지! 하는 그 말랑말랑함 부럽습니다... 난 굳었어... 하필이면 지저분하게 썩으면서 굳었어... 틀렸으니 먼저 가...

hnine 2023-08-11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뱅의 책이 반유행열반인 님 이 글 만큼 재미있을까요? **

반유행열반인 2023-08-11 09:51   좋아요 1 | URL
투덜투덜 투우덜 이런 글인데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에이치나인님 ㅎㅎㅎ 가만보니까 보뱅님이 글을 이쁘게는 써놨던데 농담이 없더라구요. 말장난 같은 것도 잘 안 함. 저는 초콜릿도 다크 90퍼센트 이런 거를 먹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Yeagene 2023-08-11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뱅은 저한테 어떨까 궁금해집니다.일단 열반인님에게는 별로였군요 ㅎㅎ 참고하겠습니다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8-11 14:29   좋아요 1 | URL
다들 좋다는데 나만 안 좋아서 느끼는 외로움...저는 왜 이 모양일까요 ㅋㅋㅋㅋ시인 겸 에세이스트라고 하는데 그래서 문장은 간결하고 예쁜데 저한테는 뭔가 발작버튼 같은 게 눌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취향이란ㅋㅋㅋㅋㅋㅋ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2 - 제 꿈 꾸세요
김멜라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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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8 김멜라, 김지연, 백수린, 위수정, 이주혜, 정한아, 이서수.

이 책을 읽게 된 경위는 이렇다.
한국소설 어떤 걸 읽을지 고민하는 이웃에게 수상작품집 같은 걸 읽고 취향에 맞는 작가를 찾아보세요, 조언하고는 뭐여 정작 나는 너무 오래 새 작가들을 안 찾아 나섰다 고였다 싶었다.
문득 작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읽은 친구가 이서수 소설을 보니 내 소설 생각이 났다 어쩌구 그래서 그땐 잊고 있었는데 그게 이서수가 맞았나? 친구에게 다시 물으니 몰라, 기억 안 나, 다 까먹었어, 친구는 이제 공부하느라 책을 하나도 읽지 않는 놀라운 삶을 산다.
2021 수상집을 보려다가 대상 작품을 포함한 이서수의 새 소설집을 전자책으로 미리 질러버렸다. 그러고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한 번도 안 읽은 작가 휙 질러버리고 읽는 내내 후회하는 거 아닐까. 정작 소개해놓고 잊어버린 친구새끼를 욕하는 건 아닐까.

다른 친구에게 켄트 하루프의 소설 설명을 했더니, 몇 줄 듣기만 해도 뭔 소설 말하는지 알겠네, 해서 내가 설명을 잘해서 그래, 했다. 정말 그 소설이 맞나 걱정되서 구글에 켄트 하루프를 쳤더니, ‘밤에 우리 영혼은’이 이서수의 인생책으로 소개된 페이지가 보였다. 이서수의 인생책이래, 했더니 이 친구는 이서수를 안 읽었다고 해서 더 불안해졌다. 나는 위대한 한 걸음을 외로이 내딛어야 하는가…

전자도서관을 뒤지다가 2022수상집을 찾았는데, 여기 이서수가 작년 대상 수상자 지위로 자선작 내놓은 것도 있고, 수상작가들 보니 모르는 작가 아는 작가 골고루여서 한 번 보기로 했다.

결론은, 나는 읽지 않고도 내 마음에 들 가능성이 높은 작가를 찾았고 ㅋㅋㅋ 수상작품집 읽으면서 제일 마음에 든 건 올해 수상작이 아니라 마지막에 실린 작년 수상작가의 소설이었다. 밑줄을 얼마나 벅벅 쳐놨는지. 소설집 재밌겠다!!! 아이 신난다!!!! 그런데 나보다 만배는 잘 쓰는데 너는 왜 내 생각을 했니? 그리고 잊어버렸다고???이새끼가…

-김멜라, ‘제 꿈 꾸세요’
21년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읽고 더는 최신 신예작가들 작품을 안 찾아 읽었었다. 거기서 김멜라의 소설은 아마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을 다뤘던 것 같다. 기억 잘 안 나… 여성과 여성의 사랑,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고독사를 다뤘다. 첨예한 지금의 문제들 잘 가져다가 쓰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사람 얄밉다…. 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죽은 뒤에 내 시체가 썩기 전에 나를 찾아줄 사람 꿈에 나타나려고 길잡이 따라 죽은 이가 나서는 동화 같은 이야기인데, 그런 내린 눈처럼 보송보송한 이야기도 뭐 필요는 하겠지. 나는 필요 없어!!!!!!! ㅋㅋㅋㅋㅋㅋ
김멜라의 자선작으로 실린 ’메께라 께라‘는 더 동화였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엄마가 동생 낳는 사이 제주도에 있는 할아버지 사는 오름에서 노인들하고 신나게 놀다 집에 돌아가는 이야기였다. 뭔 지브리 애니메이션이었다. 소설이랑 작가랑 동일시하는 거 제일 바보짓인거 알면서도 작가 이름도 특이하니 뭐 재일한국인 작가라도 되는가? 아님 제주 출신? 하고 프로필 검색했다가 에에이 서울출생 본명은 김은영이래...하고 그냥 일본 좋아하나 보다 작가들은 일본 여행 하는 소설을 참 많이들 쓴다 나는 오키나와 밖에 안 가봤다구…

-김지연 ‘포기’
김지연 소설도 젊작에서 보고 그땐 너무 별로네...했는데 돈 떼먹고 도망간 전남친 때문에 힘든 사촌형제 지켜보고 양꼬치 먹는 이야기는 그럭저럭 읽을 만 했다. 조금 더 읽어 볼만 할란가…

-백수린 ‘아주 환한 날들’
백수린 소설가는 할머니 나오는 소설에 재미들었냐...싶게 이번 소설에는 애들 맡는 것도 아니고 애들이 거부한 앵무새 맡는 할머니가 나왔다. 그래도 비교적 젊은 작가들 중에선 제일 할머니 소설 잘 씀…. ㅋㅋㅋㅋㅋ진짜 할머니 되면 완전 할머니 소설 장인되겠음…

-위수정 ‘아무도’
아 이건...내가 뭘 읽은 거지… 다른 남자 좋다고 별거 하고 나와서 정작 좋아하는 남자는 쌩까고 혼자 살게 된 여자는 자기 아빠랑 밥먹고 달리기 하고 혼자, 별거 중인 남자랑 아이스크림 먹는다. 우린 별로 맞지 않겠군요.

이주혜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
팬데믹 시대에 관해 소설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박상영 소설까지는 그럭저럭 읽었는데, 이 소설 속 갈등과 다친 마음, 그러니까 우리 끼리 아자아자 하던 언니들이 코로나 옮기면서 틀어지는 이야기는 비장한 이야기인데도 나는 자꾸 희극적으로 읽혔다. 미안해… 각자가 겪은 팬데믹은 너무 다르고, 계층화 되어 있고, 감염시기에 따라 너무너무 다르다. 나는 진짜 늦게 걸려가지고, 게다가 직장 안 나가던 시절이라 격리 시설도 나라에서 막 전화로 체크하는 것도 전혀 부재인 때를 보내고 집에서 그냥 타이레놀 먹고 처박혀 있었어서… 그래서 팬데믹에 대해 쓰는 게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겠다 싶었다. 그리고 이주혜 작가님 단편소설은...우린 정말 맞지 않아 유감입니다…

정한아 ‘지난밤 내 꿈에’
한센인의 후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갑자기 떨어진 월 오백만원의 무노동 소득.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많이 흥미로웠고 외할머니와 엄마와 딸의 관계를 미묘하게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나오는 같은 이름의 두 아이 이름이 내가 딸에게 지어준 이름이라 히히, 역시 많이들 픽하는 이름이로군, 홍상수보다 내가 먼저였어...하고 괜히 흐뭇했음...

이서수 ‘연희동의 밤’
3년 전에 연희 문학 창작촌에 들어가 있던 친구가 김초엽도 있다길래 몰래 딱밤이나 때려주고 도망치라고 했었다. 그 친구는 이번 여름에도 같은 곳에 들어가 망한 사랑에 대해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돈이 없어 먼 곳의 사람을 만날 비행기값이 없어 헤어지는 마음이 어떤 일인지 짐작도 못할 일인데 그 소설이 완성되면 읽고 짐작해 봐야겠다. 그리고 가장 해피엔딩은 그 소설이 어디 창작기금이든 문학상이든 타가지고 상금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다시 외국으로 날아갈 수 있게 되는 일이 아닐지…
친구가 연희동 있던 시절에 나는 신촌의 문화센터에 소설 강좌를 수강한다고 다녀서-강사인 소설가 선생님은 친구가 대학 다닐 때 배웠던 선생님인데 잘 가르치신다고 해서 굳이 찾아갔던 거였다. - 하여간에 저녁 늦은 강의 전까지 비는 시간에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고 신촌 인근을 돌아다녔었다. 그러니까 나는 연희동에 지내는 친구를 만나긴 했지만 연희동은 못 가봤다. 이서수가 소설로 끌고 다녀서 대신 다녀봤다. 신촌이랑 별 다를 거 없네… 그렇지만 이 친구는 정작 이서수를 안 읽었대고 나는 이제 읽었고 또 읽을 것이다. 결국 걱정은 괜한 것이었고 이 수상집 안 읽고 바로 단편집 읽어도 됐겠다 ㅋㅋㅋㅋ건진게 많이 없다 ㅋㅋㅋ여러분 이서수 같이 읽읍시다ㅋㅋㅋㅋ


+밑줄 긋기
-내가 꿈을 포기한 날, 이 세상이 어떤 풍경이었는지 남겨두려고.
나는 코웃음을 쳤다. 언니가 썼던 각본에도 저 따위 대사가 많았다. 그러니 한 번도 공모전에 당선된 적이 없지. 언니의 각본이 드라마로 만들어졌더라면 비웃음을 사는 것으로도 모자라 짤방 이미지로 숱하게 소비되었을 것이다. 나는 언니의 감성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언니를 보며 인간의 오만 가지 감정을 단 두 가지로 정리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사랑하고 싶은 마음.

-선생님은 왜 하필 술집에서 글을 쓰세요? 안 시끄러우세요?
난 시끄러워야 글이 더 잘 써져.
저는 그런 사람 미워요.
뜬금없는 말에 은단 씨와 나의 눈이 동시에 커다래졌다. 시끄러운 곳에서 글을 잘 쓰는 것이 왜 미움받을 일이지.

-언니가 으깨어 놓은 두부가 우리의 으깨어진 꿈 같았다. 언니의 으깨어진 사랑 같았다. 언니의 으깨어진 각본 같았다. 어떻게 그렇게 재미없는 각본을 쓸 수가 있지. 나는 지금도 그게 가장 큰 의문이지만, 언니에게 그런 말을 하진 않았다. 나는 언니를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했으니까.

-노래가 끝나자 언니가 말했다.
이 노래를 들으니까 내가 시대의 등불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언니의 말에 웃지 않았다. 시대의 등불이라니……. 나는 언니를 마주 보며 천천히 말했다. 이제 그 등불은 꺼졌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야.
……알았어. 나도 족쇄를 찰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에서 20세기의 전쟁이 반복되고 있는 동안, 우리는 21세기에 져서 꿈을 버린다. 둘 중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일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믿기 힘든 두 가지 일이 우리의 발밑을 위태롭게 흔들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나는 내가 바라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모두 잊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한 가지만 떠올랐다. 나는 나를 착취해서 부자가 될 것이다.
(이서수, ‘연희동의 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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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9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9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9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9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3-08-11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서는 김멜라 작품만 읽어봤네요.젊작상에도 수록되어 있었거든요.저는 귀여운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열반인님은 역시 별로셨군요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8-11 14:32   좋아요 1 | URL
예전에는 어린아이 화자인 소설들도 곧잘 읽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꺼리게 되는 화자나 호칭이 있습니다. 너는- 하는 제가 너인칭이라고 하는 소설이랑, 동물 의인화한 화자, 다 늙은 작가가 어린이 화자 흉내내는데 그게 정교하지 못할 때 (정교해도 뭔가 어느 순간 빈정 상할 때 ㅋㅋㅋ), 남자 작가가 여자 주인공 초점화자로 진행할 때,(반대로 내가 그렇게 쓴 거도 누가 보면 이상하다 할건데 ㅋㅋㅋ) 점점 까다로워 지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