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대구경북의 사회학 - 대구경북 사람들의 마음의 습속 탐구
최종희 지음 / 오월의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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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0 최종희.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앞머리에 롤이 달린 것도 모른 채 바삐 헌법재판소에 출석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탄핵 심판 파면 선고를 내리는 순간, 수많은 사람이 환희에 가까운 탄성을 내뱉었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갔던 사람은 어떤 성취감마저 느꼈을 것이다. 뭔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시작, 그런 역사적 순간을 지켜보는 감격.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같은 시간 소중히 여기던 가치들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선고를 내리는 순간 찌릿한 아픔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어렸을 적 고향 풍경이 떠오르고 박정희-박근혜에게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던 부모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이 선고가 옳은가, 그른가 하는 인지적 차원보다 가족주의 서사의 연대 언어, 기억 언어, 무조건주의 언어가 작동하면서 문화적, 정서적 요인이 먼저 나를 파고들었다. 급기야 나는 삶의 한 곳에 간직한 향수가 와해되는 것 같은 허탈감이 몰려왔다.’ (이 책 에필로그 중)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에서 보았다. 박정희 육영수의 영정을 모시고 매일 아침 제사를 올리는 노인.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부부. 그냥 길가다 흔하게 보는 아줌마 아저씨, 혹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 친구 엄마 아빠 같은 어른들이다. 그런데도 정치적 공론장에서 그들과 맞부닥치면 서로를 괴물 취급하며 어쩜 저런 쓰레기들을 지지할 수 있지, 사고방식이 글러먹었어, 하고 물어뜯기 바쁘다.

대구경북 출신인 사회학자가 50-60대의 여성 남성 각 5명씩을 심층 면접하여 그들의 가치관을 분석한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부터 굉장히 흥미로웠다. 특정 지역민을 대상으로 지역색의 근원을 밝히려는 시도 자체가 참신해 보였다. 물론 질적 연구 특성상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경향성이나 법칙 같은 건 기대할 수 없겠지만. 궁금했다. 이번에 도서관에 들어와서 냉큼 빌렸다.
연구자는 마음의 습속이라는 이론적 틀과 언어 분석을 통해 대구경북사람들 사이에 공통으로 흐르는 관습, 언어, 규범, 가치관을 유추해내고 그것이 가족, 정치, 종교 등에 미친 영향까지 확인한다. 일단 연구참여자들의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발화를 그대로 가져오니까 재미있었다. 열 명의 연구참여자의 생애사와 한과 거기에 어우러진 한국 현대사의 격랑까지. 물론 여러 요인을 분석하느라 발화와 사건이 반복되는 경향은 있지만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와 삶에 대한 태도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자세히 답하는 걸 들을 기회를 갖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국가주의, 집단주의, 갈등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 순종적인 태도, 현상 유지를 추구,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동시에 희생되는 여성들, 진보에 대한 불신 같은, 대부분 다른 지역 사람들이 (심지어 그 지역 출신 자녀들조차)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지역 특성의 밑바탕에 어떤 성장 배경과 공동체적 합의가 있는지 사회학의 관점을 반영하니 새로웠다.
본인이 속해있는 익숙한 것들을 다르게 보고 이해와 설명을 시도하는 연구자의 노고와 지역에 대한 애정과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주변의 부조리에 대해 단정하고 욕하는 건 열심히 해왔지만 쟤들 왜 저럴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진짜 왜 저러는지 밝히려는 노력을 얼마나 해봤나 돌아보니 살짝 부끄럽기도 하다. (그걸 할 생각을 했으면 논문을 수십편을 썼겠다. 사실 내가 쓰는 소설 대부분이 쟤들 왜 저럴까에 대한 상상이긴 하지만...)
다양한 관점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얼굴을 마주하게 해주는 연구물이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호남광주의 사회학, 서울깍쟁이는 왜?, 너희가 제주사람을 아느냐, 뭐 이런 책들. 물론 특정 지역에 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위험은 항상 경계해야 한다. 나름의 설득력 있는 분석틀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한다면 (거기에 너무 미화하지도 작정하고 까지도 않는 적당한 애정까지 있다면) 나와 다른 사람들을 너무 미워하거나 적대시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밑줄 긋기
-“대구말 쓰지 마이소. 그리고 박근혜 불쌍하다고 카면 여 사람들 싫어합니데이.”

-(저자가 가치, 규범, 목표 차원의 코드 구성을 위해 던진 질문 세 가지)
1)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2) 좋은 삶을 안내하는 규범은 무엇인가?
3)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일상의 삶에서 무엇을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은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것이다. 맏딸(혹은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문화적 힘이 또 다른 꿈을 꾸지 못하게 억제한다. 제도는 공유된 규범이며 공동의 합의가 될 수 있는 수단이기에 행위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구조화한다. 암묵적인 습속은 가족 부양에 힘을 싣는데 이바지해야 한다고 명령한다. 그다음 절차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문화구조가 작동하고 있었다.

-질적 연구는 삶에서 행위자들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사회질서를 만들어나가는지에 대해 우선적으로 탐구한다. 삶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해석하고 분석하며 의미를 파악하려고 한다. 상식, 습속, 관습처럼 자신의 문화 집단에서 배태된 공적 상징체계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일상의 삶에서 상식, 습속, 관습처럼 제도화 되어있는 공적 상징체계를 자연적으로 주어진 듯 당연하게 받아들여 공동 질서를 만들어간다. 반면에 문제 상황에 처하면 고도로 일반화된 상징체계에 준거해 행위의 의미를 구성하기 시작한다. 일반화된 상징체계는 특정 세팅을 초월해 존재하며 삶의 목적을 더 근원적이고 실존적인 의미로 만들어준다. 이런 점에서 행위자들의 삶의 의미는 배태된 습속에서부터 도구적인 합리적 행위까지, 더 나아가 실제적인 차원에서부터 궁극적이고 실존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대구경북의 배경표상에는 전근대적인 문화구조가 내면화되어 있다. 아무런 보상 없이 근대화에 희생된 지나간 것들에 대한 향수가 하나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자본주의적 근대화는 전통적 생활형식은 파괴했지만 일상의 삶에서 더 높은 수준으로 보전되고 변혁되지 못했다. 오늘날 정치, 종교, 경제 등 “각각의 제도들은 내적인 자기 법칙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면서 상대적인 자율성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대구경북 사람들은 여전히 습관화된 행위, 즉 인습에 따라 움직이고 관습적 동의에 의해 이해 행위를 조정한다. 분명한 의식과 합리적인 정당성을 내세우는 사고는 집단의 가치를 위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뒤르케임주의 문화사회학은 상징과 의례를 통해 집단의 공통된 행위를 유도한다. 대구경북의 집합의식 속에는 기억의 얼굴이 존재한다. 바로 박정희다. 이 인물은 대구경북의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유년의 삶을 지배한 박정희에 대한 기억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마을운동이 급물살을 타던 시대에 초록 모자를 쓴 사람들은 마을정화사업에 소맷자락을 걷어붙였다. 새마을지도자, 마을 동장, 부녀회장이라는 감투를 쓴 이들이 농촌 사람들을 계몽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박정희 시대근대화의 논리는 국가주의와 집단주의다. 가정의례준칙, 혼분식장려, 근검절약 등의 정신 개조는 국가가 개인의 사고방식과 일상의 생활습관까지 지배하며 국가의 명령에 잘 따르는 순종적 인간형을 창출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연구 참여자들의 서사는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았다. 서사의 주인공이 나인 듯, 그들인 듯 지그재그로 교차하며 사회학을 공부하기 이전의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나는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를 겪으면서 정서적 요인이 크게 작동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선고를 내리는 순간 찌릿한 아픔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어렸을 적 고향 풍경이 떠오르고 박정희-박근혜에게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던 부모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이 선고가 옳은가, 그른가 하는 인지적 차원보다 가족주의 서사의 연대 언어, 기억 언어, 무조건주의 언어가 작동하면서 문화적, 정서적 요인이 먼저 나를 파고들었다. 급기야 나는 삶의 한 곳에 간직한 향수가 와해되는 것 같은 허탈감이 몰려왔다. 박정희 토템이 내 마음의 습속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마음이란 결국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고, 사회의 것이며 공유하는 매체다. 또한 문화적으로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삶의 마탕 위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마음의 문제는 줄곧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온 환경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사회의 문화적 차원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마음의 습속은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행위를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것은 짧은 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대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는 지배적 가치관으로서 사회화 과정에서 내면화되는 사고 양식이며, 한 가인이 이 세상에 오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해왔다. (로버트 벨라 등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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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12-30 22: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작고 좁은데 사투리도 제각각 생활모습도 제각각인 것 같아요. 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편견과 고정관념은 경계해야겠지만 이런 연구는 흥미롭네요! :-)

반유행열반인 2020-12-30 22:31   좋아요 3 | URL
네 저 할매의 탄생이라는 경상도 마을 할머니들 생애구술사도 샀는데 (사놓고 와 사투리 어렵다 하고 보다 말았는데 ㅋㅋㅋ) 직접 마주하기 어렵고 마주해도 속까놓고 말 못 나누는 다른 지역 다른 세대 타자들이랑 만나는 책이 많아야 할 거 같아요.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이렇게 지역 추상 명사로 퉁 치면 괜히 오해도 많은데 아예 그 지역 출신이 직접 설명해주면 조금 나을 것 같기도 하고요ㅋㅋㅋ

하나 2020-12-30 2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워하지만 말고 이해해보려고 - 기획의도가 좋은 거 같아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거 같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열반인님 2020 독서목록에서 재밌다는 코멘트 보고도 궁금했는데요. 상징과 의례, 마음의 습속으로 분석한 것도 궁금하고요!

반유행열반인 2020-12-31 06:25   좋아요 2 | URL
그렇다고 사 볼 만큼 수작은 아니에요...그냥 대화체 바른 논문이야 ㅋㅋㅋ 빌려봐요 서울시민이니까 서울전자도서관 하시면 진짜 시집 철학책 사회과학서 많더라고요

초딩 2020-12-31 2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반유행열반인님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아 이제 곧 2020년이 가려고해요. 붙잡고 싶기도하고 어서 보내고 싶기도하고요 ^^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12-31 23:44   좋아요 1 | URL
초딩님 올한해도 읽고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으시고 내내 건강하시길 빕니다. 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12-31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1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다그리기 2021-01-01 1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의 소중한 책친구 열반인님!
새해엔 항상 건강하시고 더 많이 행복하시고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힘들고 지난한 2020년이었지만 좋은 책을 통해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해주신 열반인님같은 좋은 책친구를 얻게 된 감사한 해이기도 했네요.
소심한 제게 먼저 말 걸어주시고 좋은 책들 많이 만나게 해주셔서(멋진 노래도요^^) 감사했습니다.
알라딘에서 책을 구매 할때마다 ‘반유행열반인님께 thanks to‘라는 문장을 보면서 열반인님께 소개 받은 책이 정말 많구나 깨닫게 돼요.
친구가 되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려요~

반유행열반인 2021-01-01 11:19   좋아요 2 | URL
책친구라는 말 정말 멋지네요. 멋진 이름으로 불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바다그리기님ㅎㅎ 저도 바다그리기님 덕에 읽거나 갖추거나 관심 갖게 된 책이 많았어요ㅎㅎ 누가 이렇게 땡투를 많이 해주시나 했더니 용돈까지 챙겨주셨던 거였군요 ㅋㅋㅋ 저야 말로 친구가 되어 영광이고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페크pek0501 2021-01-01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디오북을 선호합니다. 이북도 좋겠네요.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님이 뜻하는 대로 일이 술술 풀리는 행복한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 ★ ★

반유행열반인 2021-01-01 17:3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페크님도 항상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Book] 목신의 오후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9
스테판 말라르메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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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0 스테판 말라르메.

어제 한 해 마무리 독서목록 다 정리했는데 오늘 두 권을 더 읽어 버렸다(…) 읽던 책들이 생각보다 얼마 남지 않았던 거야… 머쓱하며 독후감 올림 ㅋㅋㅋ 162권과 함께 했습니다!(이러고 다음 독후감에 숫자 또 올라감 ㅋㅋㅋ아니 심지어 몇 권 빼 먹은 걸 뒤늦게 알아서 이제는 읽은 책 숫자조차 정확하지 않다…)


서재의 달인 이런 거 처음 되어 보는데 귀여운 스누피 다이어리와 달력이 세트로 도착했다. 부지런히 찾아오셔서 좋아요 꾹꾹 눌러주시고 좋은 말씀 건네주신 이웃님들 덕분에 알라딘에게 연말 선물 받았네요. 감사합니다. 히히.


위스망스의 ‘거꾸로’에서 말라르메를 하도 칭송해서 그의 시집을 읽어보자 싶었다. 도서관에도 없길래 이북 두 권 중에 고민하다 민음사에서 나온 ‘목신의 오후’를 샀다. 그러고나서 도서관 신간에 사지 않았던 ‘시집’이 들어와서 음, 잘 골랐군, 했다.

1800년대 후반에 화요회라는 모임에 온갖 작가, 화가 다 모여 친하게 지내고 서로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준다. 위스망스가 말라르메 짱, 해주니까 말라르메도 ’거꾸로’의 등장인물 데제생트를 위한 시를 쓴다.(이 시집에 실려있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고등학교 때 음악감상 시간에 (감상 시험 치러야 해서) 열심히 들었었는데 그 노래가 말라르메의 시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되었다.
한 곡 듣고 가시죠.
드뷔시-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https://youtu.be/s8fR-jtMw2I


시집 안에 프랑스어 원문이 모두 실려 있지만 프랑스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에게는 무용했다. 그래서 그런가 서정적인 언어들이 확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뒤에 실린 산문 시 세 편 ‘미래의 현상’ ‘유추의 악마’ ‘파이프’는 제목부터 딱 내 취향이었다. 위스망스가 짱짱 하는 것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세기말의 음습한 느낌.

이 시집이랑 도서관의 ‘시집’을 한 번씩 더 읽어봐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밑줄 긋기
-슬픈 병원에 지쳐서,
텅 빈 벽에 싫증 난 큰 십자가를 향해
커튼에서 진부한 백색으로 피어오르는
역겨운 향냄새에 지쳐서,
빈사의 환자는 슬그머니 늙은 등을 다시 일으켜,

몸을 이끌어 다가가
수척한 얼굴의 흰 털과 뼈를,
곱고 맑은 광선이 쨍쨍 내리쪼이는 창에 댄다.
썩은 몸을 덥히려는 것이 아니라
돌 위에 내리는 햇빛을 보려 함이다.
(‘창’ 중)

-몰락하여 종말을 고하는 세계 위에, 창백한 하늘이 아마도 구름 떼와 함께 떠나려는 모양이다: 햇살과 물에 잠긴 지평선 근처의 잠자는 강 속에서 석양의 낡은 자줏빛 누더기들이 빛을 잃는다. 나무들은 권태로워 하고, (길의 먼지보다는 시간의 먼지에 덮여) 허옇게 변한 잎사귀들 아래로 ‘과거의 사물들을 보여 주는 자’의 천막집들이 솟아오른다: 숱한 가등(街燈)이 황혼을 기다리면서, 영원히 죽지 않는 병과 수세기의 죄악에 정복당한 불행한 군중, 이 땅과 함께 멸망할 가련한 과일들을 뱃속에 잉태한 허약한 공모자들 옆 인간들의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절규 같은 절망감과 함께 물속으로 빠져드는 저기 태양에게 애원하고 있는 모든 눈들의 불길한 침묵 속에서 들어 보라, 이 단순한 감언이설을: “그 어떤 간판도 내면적인 광경으로 그대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지 못한다. 이제는 그 내면적 광경의 슬픈 그림자를 그려 줄 능력이 있는 화가가 없으니 말이다. 내 여기 지나간 시대의 한 여자를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 (지고한 과학에 의하여 오랜 세월 동안 고스란히 보존한 상태로) 데려왔다. 무슨 광기랄까, 원초적이고 천진한 광증이랄까. 황금빛 황홀이랄까! 무엇이랄까! 그녀의 머리털이 이름 붙인 그 무엇이 그녀의 핏빛으로 벌거벗은 입술로 밝혀진 얼굴 주위로 옷감인 양 우아하게 펼쳐진다. 무용한 의상 대신 이 여자에게는 몸이 있다. 두 눈은 귀한 보석 같지만 그녀의 행복한 살에서 솟아나는 이 시선만은 못하다: 마치 영원한 젖이 가득 찬 듯 젖꼭지를 하늘로 쳐들고 있는 두 개의 유방에서부터 최초의 바다의 소금을 머금은 듯한 반드러운 두 다리까지.” 대머리에다가 침울하고 끔찍한 것으로 가득 찬 그들의 가난한 아내들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남편들은 걸음을 재촉한다: 아내들 역시 우울한 기분으로 호기심에서 구경을 하고 싶어 한다.

이미 저주받은 어느 시대의 유물인 이 고상한 피조물 여인을 모두들 다 구경하고 나면, 몇몇은 이해할 힘이 없어서 무관심하지만 다른 몇몇은 애석한 마음 금치 못하며 단념한 눈물로 눈꺼풀이 축축해져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이 시대의 시인들은 꺼져 버린 그들 두 눈에 새로 불이 켜지는 것만 같아, 한순간 분간키 어려운 영광에 머리가 취하여 그들의 램프 불빛을 향하여 나아갈 것이다. 리듬에 사로잡힌 채, 미(美)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도 잊고.
(‘미래의 현상’ 전문)

-처음 한 모금을 빨아들이자마자, 감탄을 금치 못한 채 감동하여 내가 써야 할 대작의 책들은 까맣게 잊고, 이제 되돌아오는 지난 겨울을 깊이 들이마셨다.
(‘파이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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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2-30 21: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열반인님 내년에 핑쿠핑쿠하라고 핑크 다이어리 주셨나보다! 그 사이에 두 권을 더 읽으시다니... *_* 저도 오늘 말라르메 시집 들춰보고 있었는데 찌찌뽕입니다!!! ㅋㅋㅋㅋ 저는 시인은 아니지만, ‘파이프‘ 넘 공감되네요. 오늘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 샷추가한 거 빨대로 한 모금 딱 빨았는데.... 아... 감탄이 절로 나오던! 말라르메는 그런 각성의 기분을 저렇게 쓰는구나. ˝지난 겨울을 깊이 들이마셨다.˝

반유행열반인 2020-12-30 22:16   좋아요 2 | URL
으아니 찌찌뽕! 하나님은 워낙 시집 폭넓게 깊게 보시니까 ㅋㅋㅋ꼬꼬마는 그저 눈으로 봤을 뿐 소화를 못했다고 한다...저는 저거 보고 프루스트 새끼 말라르메 형 따라했네 따라했어 그랬어요...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넘겨짚음 ㅋㅋㅋ

하나 2020-12-30 22:44   좋아요 2 | URL
저는 시가 늘 어려워요 ㅋㅋㅋ 저자도 내가 다 이해하길 바라고 저렇게 쓴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고 맘 편히 읽는 편입니다 ㅋㅋㅋㅋ 말라르메가 짱, 이니까 따라하고 싶었나부다... 연말이지만, 어렵지만, 그래도 읽고 쓰시는 열반인님 짱,

미미 2020-12-30 22: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이어리가 다른분들과 다르네요 제가 살뻔 했던 거예요~!역시 넘넘부럽습니당(ㅋㅇㅋ) 앞으로도 계속 함께해요^^*

반유행열반인 2020-12-30 22:17   좋아요 2 | URL
내년에는 미미님에게도 알라딘아 예쁜 다이어리로다가! 함께 해요-^^

비연 2020-12-30 23: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다같은 다이어리가 아니었다니!

반유행열반인 2020-12-31 06:23   좋아요 1 | URL
노랑 초록 핑크까지 세 종 확인했네요 현재까지 ㅋㅋㅋ

scott 2020-12-31 1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한테는 핑크 스누피네요.
2021년 새해 복주머니 놓고 갑니다.

해피뉴이어 !

\-----/
/~~~~~\ 2021년
| 福마뉘ㅣ
\______/

반유행열반인 2020-12-31 12:31   좋아요 2 | URL
분홍 멍멍이 예쁜데 아기가 벌써 조금 찢었어요 ㅋㅋㅋ그래서 큰 아이 줬어요ㅋㅋㅋㅋscott님도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원래 책을 그렇게 많이 읽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작은 꼬맹이 낳고 키우며 휴직하는 이 년 동안 연간 백 권 보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복직 후에는 많이 못 읽을 줄 알았는데 반전, 161권 읽었다. 코로롱 덕에 집에 처박혀 있어서 그런지 으른 된 이후 역대 최대 기록이다. 아마 올 한해 읽은 책이 대학 4년 동안 읽은 것보다 많을 듯 ㅋㅋㅋ 이십 대에 책 많이 안 읽은 게 제일 아쉽다. 그때는 대항해시대를 더 많이 했다.
기분이 가라앉고 피곤한 날이라 한 해 읽은 책 목록이나 정리해 보기로 했다. 매년 말에 읽은 책 목록을 주욱 나열해 본다. 이 길에 발 디딘 이상 읽기 말고 별다른 취미에 재미 붙이지 못할 것 같다. 올해는 딱 300권 샀다는데 그중에는 어린이책도 있고 스티커북도 많지만 내 책도 많았다. 그런데 정작 읽은 책 대부분은 전자도서관에서 빌려봤다ㅋㅋㅋ 전자책은 뒤에 숫자 붙이면서 따로 세어봐야겠다.

1월
1.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위근우) 1
2.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황선우) 2
3. 베개를 베다(윤성희) 3
4. 사서(옌롄커) 4
5. 우리가 매일 끌어안고 사는 강박(김현철) 5
6. LGBT+첫걸음(애슐리 마델) 6
7.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7
8.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벨 훅스) 8
9. 미친 사랑의 서(섀넌 매케나 슈미트) 9
10. 넛셸(이언 매큐언) 10
11. 거짓말 읽는 법(베티나 슈탕네트) 드디어 종이책...이거도 도서관에서 빌린 거지만….알라딘이 내 리뷰를 처음(이자 마지막...은 아니고ㅋㅋㅋ) 뽑아주셨다
12.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조문영) 11
13.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문보영) 12
14. 덧니가 보고 싶어(정세랑) 13
15. 벌새(김보라) 14
16.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15 리뷰대회 적립금과 책갈피 상품.
17. 유머니즘(김찬호) 와 이거도 빌린 종이책…
18. 채공녀 강주룡(박서련) 16
19. 시 읽는 법(김이경) 17
1월 19권. 미쳤네...내가 올초부터 이랬구나…복직 전 마지막 발악인 듯…

2월
20. 메이드 인 강남(주원규) 18
21. 우울할 땐 뇌과학(앨릭스 코브) 19
22. 커피 연구소(숀 스테이먼) 20
23. 사기병(윤지회) 21 편히 쉬세요 흑흑흑…
24.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에스터 페렐) 22
25.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페터 한트케) 23
26. 대멸종 연대기(피터 브래넌) 24
27. 공부책(조지 스웨인) 25
28.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김정선) 26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 걸 알려준 책.
29. 바이러스 쇼크(최강석) 27
30.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김금희) 이것도 빌린 종이책…30권 중에 세 권이면 1할 타율…
2월 11권. 연초부터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3월
31.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구정우) 28
32.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에드 용) 29
33. 안녕 주정뱅이(권여선) 도서관이 너무 오래 닫아서 빌린 책을 몇 달을 묵혔다 봤다.
34. 고맙습니다(올리버 색스) 올해 처음 본 내돈 주고 산 책ㅋㅋ그런데 엄청 얇음…
35. 한눈에 꿰뚫는 세계지도 상식도감(롬 인터내셔널) 30
36. 붕대감기(윤이형) 윤이형 내놔 엉엉…
37. 출퇴근 한뼘지식시리즈 과학동아-마약, 프로포폴(이윤성 외) 30 전자책의 단점은 쓰잘데기 없는 걸 막 빌려보게 된다...돈 아끼고 시간 버림…
38. 35년 3권(박시백) 31 이거 만화책이라 넣을까 말까 고민함...같은 시리즈 다른 권은 결국 포기 ㅋㅋㅋ
39. 지복의 성자(아룬다티 로이) 32 리뷰 대회의 추억…
40. 컬러의 말(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33
41. 나는 4시간만 일한다(팀 페리스) 34 저거 주4시간임…
42.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로셀라 포스토리노) 35
43. 도파민형 인간(대니얼 리버먼, 마이클 롱) 오랜만에 돈주고 산 종이책 신간. 사서 묵히고 보니 그사이 전자도서관에 여러 권 올라와서 빡쳤지만 책은 좋았다.
44. 노숙인 인권 학교(그자비에 에마뉘엘리 외) 35
45. 프로작 네이션(엘리자베스 워첼) 역시 편히 쉬세요 흑흑…
46. 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 36
47. 여자와 소인배가 논어를 읽는다고(서한겸) 37
48. 나는 초민감자입니다(주디스 올로프) 38
3월 18권. 진짜 미쳤네…3월에 복직했는데 지금 봐도 이해 되지 않는다…

4월
49.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은 버리기로 했다(양지아링) 39
50. 다가오는 말들(은유) 40
51. 야밤의 공대생 만화(맹기완) 41
52. 딩씨 마을의 꿈(옌롄커) 42
53. 질의응답(니나 브로크만 외) 43
54. 기생충 스토리북(봉준호) 44
55. 영 제로(김사과) 45
56. 인간의 흑역사(톰 필립스) 46
57. 사랑 밖의 모든 말들(김금희) 김금희는 종이책이지 엣헴엣헴
58. 엄마의 20년(오소희) 47
59. 사주로 못 풀어낼 인생고민은 없다(김희숙) 48
4월 11권. 이때부터 문화센터에 소설 배우러 다녔다. 과제하느라 조금 덜 읽기 시작한 듯.

5월
60.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이기호) 49
61. 왜 다른 사람과의 섹스를 꿈꾸는가(에스더 페렐) 50 선정적인 제목과 달리 왜? 하면서 원래 있던 관계를 더 잘 가꾸기 위한 조언을 하는 책이었다. 사람들이 이 제목으로 기대하는 내용은 저자의 다음 책인 24.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에서 다룬다. 그러니까 저는 다 봤구요...좋은 책들입니다.
62. 손길이 닿는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마르틴 그룬발트) 51 재미가 매우 없으니 제목에 제발 낚이지 맙시다.
63. 예술하는 습관(메이슨 커리) 52
64. 페스트(알베르 카뮈) 53 코로나 한가운데에서 눈병 오지게 온 채로 읽던 책…
65. 시절과 기분(김봉곤) 흑흑...봉곤아 잘 지내니 밥은 잘 먹고 다니니 괜찮니
66.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54
67.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김숨) 55
5월 8권. 아픈 달이라 그런가 일이랑 과제가 점점 바빠져 그런가 많이 읽지 못했다.

6월
68. 맨해튼의 반딧불이(손보미)
69. 사랑을 위한 되풀이(황인찬) 56 올해 첫 시집!
70. 맨 얼라이브(토마스 페이지 맥비)
71. 자아 연출의 사회학(어빙 고프먼)
72. 식물학자의 식탁(스쥔) 57
73.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김보통) 58
74. 심신단련(이슬아) 59
75.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엘리에저 스턴버그) 60
76.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정지민) 61
77. 남자의 뇌(루안 브리젠딘) 62
78. 이별의 푸가(김진영) 63
79. 여자의 뇌(루안 브리젠딘) 64
6월 12권. 종이책도 제법 읽고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7월
80. 안 느끼한 산문집(강이슬) 65
81. 은밀한 몸(옐 아들러) 66
82. 목소리를 드릴게요(정세랑) 67
83. 이별의 왈츠(밀란 쿤데라)
84.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구병모) 68
85.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송찬호)
86.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백수린) 69
87. 관능수업(리디 살베르) 70
88. 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 71
89. 2019 이상문학상 작품집 윤이형 내놔 엉엉…
90.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홍승은) 72
91.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홍승은)
92. 나는 페미니스트인가(나혜석)
93. 여름의 빌라(백수린)
94. 마음의 오류들(에릭 캔델)
7월 15권. 더우면 슬프면 진짜 미친 듯이 읽는 듯…종이책 7권이라니 이례적인 달이네...

8월
95. 시누이(싱고)
96. 내 인생은 열린 책(루시아 벌린)
97.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줄리언 반스) 73
98. 물성의 원리(최낙언) 74
99. 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마이클 라이언)
100. 책갈피의 기분(김먼지) 75 올해 100권은 넘게 읽자, 했는데 벌써 8월에 100권 찍어 버림…
101.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압둘라) 물론 만화책 시집 포함이라 가능한 거죠…
102.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장강명)
103. 이야기의 탄생(윌 스토) 76
104. 영이 02(김사과) 77 서울시도서관 회원증을 만들고...즐겨찾는 전자도서관이 네 종류가 되어버렸다...뷰어는 개꾸진데 책 구색은 정말 훌륭한 서울시...서울시의 은유다운 전자도서관…
105. 아무튼, 술(김혼비) 78
106. 페미니즘을 퀴어링!(미미 마리누치) 79 이 책 읽고 리뷰 썼다 까인 게 아직도 아리다..사랑했지만..페미니즘 읽어도 쓰레기는 쓰레기인거죠...뉘에뉘에…
107. 열 문장 쓰는 법(김정선) 80
108.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임솔아) 81
109. 소립자(미셸 우엘벡) 82
110. 이코(정용준) 83
8월 16권. 휴가는 2주였는데 책은 왜 이리 많이 봤어…

9월
111. 세월(아니 에르노) 84
112. 사랑 중독(수잔 피보디)
113.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이슬아) 85
114. 페미니즘:교차하는 관점들(로즈마리 퍼트넘 통 외) 86
115. 복자에게(김금희)
116. 누가봐도 연애소설(이기호)
117.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옌롄커) 87 진짜 이런 미친 소설만 누가 좀 목록 뽑아줬으면…
118. 체실 비치에서(이언 매큐언) 88
119.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박상영) 89
120. 오래 준비해 온 대답(김영하) 90
121. 나의 할머니에게(윤성희 외) 91
122.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마르그리트 뒤라스)
123. 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최유리) 92
9월 13권. 음. 나도 내가 대체 무슨 시간이 나서 책을 읽는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10월
124. 북항(안도현)
125. 인생학교 섹스(알랭 드 보통) 93
126. 밤에 우리 영혼은(켄트 하루프) 94
127. 단순한 열정(아니 에르노)
128. 연애의 기억(줄리언 반스) 95
129. 더 해빙(이서윤 홍주연) 96
130.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131. 연년세세(황정은) 올해 최고의 소설이었습니당
132. 상관없는 거 아닌가?(장기하)
133.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창현 유희) 올해 가장 많이 웃겨준 책이었습니당
134. 쓸 만한 인간(박정민) 97
135. 달걀과 닭(클라리시 리스펙토르) 98
136.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2020 99
137. 책 좀 빌려줄래?(그랜트 스나이더) 100
10월 14권.

11월
138. 말하기를 말하기(김하나) 101
139. 인포그래픽, 데이비드 보위(리즈 플래벌) 102
140.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103
141. 책, 이게 뭐라고(장강명) 104
142. 일곱 해의 마지막(김연수) 105
143. 소녀들을 위한 내 몸 안내서(소냐 르네 테일러)
144. 일단은, 성교육을 합니다(인티 차베즈 페레즈) 106
145.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주란)
146. 빨간 코트를 입은 남자(줄리언 반스) 107
147. G.H.에 따른 수난(클라리시 리스펙토르) 108
11월 10권. 공모전 준비한 거 치고 많이 읽었는데 그러니까 떨어지지…

12월
148. 아직 멀었다는 말(권여선)
149. 위로해 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날까(티파니 와트 스미스) 109
150. 거꾸로(조리스 카를 위스망스) 110
151. 전락(필립 로스)
152. 백석 시집 사슴(백석) 111
153. 작렬지(옌롄커) 112
154. 책 한 번 써 봅시다(장강명)
155. 사람, 장소, 환대(김현경) 113
156.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강준만)
157. 윤리적 잡년(재닛 하디 외)
158. 리틀 드러머 걸(존 르 카레) 114
159. 화이트 호스(강화길) 115
160. 소설보다 겨울 2020
161. 당신은 첫눈입니까(이규리)
12월 14권. 올해는 이틀 쯤 남았고 주중이라 새로 더 보는 책이 생길지는 아직 모르겠다.

도어, 노멀피플, 대구경북의 사회학(존잼임)을 전자책으로 빌려 읽고 있다.
말라르메의 시집 목신의 오후, 지킬박사와 하이드, 에덴의 동산 전자책을 사서 읽다가 말았는데 언제 다 볼지 모르겠다.
이슬아 수필집, 싱글맨, 밀실에서나 하는 철학(그래 그 사드) 종이책을 읽는 중인데 올해 안에는 다 못 볼 것 같다.

올해 책 300권 샀다는데 전자책 빌려본 게 100권임 ㅋㅋㅋㅋ200권은 집구석 여기저기 폐지처럼 쑤셔박혀 있거나 아이패드 데이터 공간만 차지하는 중 ㅋㅋㅋ
전자도서관 읽고 싶은 책 목록 적은 거랑 집에 사놓고 안 본 책만 봐도 아마 평생 다 못 볼 것 같다…그래도 상관없지 뭐.

읽는 동안 덜 외롭고 덜 아팠다. 많이 읽어도 더 나은 사람은 되지 못한 것 같다. 그냥 스스로를 견딜만한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 것 같다. 그게 어디야.

겨우 책 제목만 적는데도 한 시간 반 걸림...코 자야지...오늘은 책 딱 한 쪽 읽다 말았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내년에도 즐겁게 독서를 합시다. 본투리드. 알라딘 슬로건 꽤 맘에 든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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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9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30 0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나 2020-12-29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코멘트마다 왤케 재밌어여ㅋㅋㅋㅋㅋ 나 이거 프린트하고 싶다... 윤이형 내놔 222 미친 소설 목록... 222 8월부터는 계속 지켜봐와서 저도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근데 진짜 무슨 시간이 나서.... 🙊 역시 시간이 나서 읽는 게 아녀~ 견디려고 읽는 거지.. 덕분에 저도 견디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내년에도 즐겁게 독서를 합시다! 잘자영~

반유행열반인 2020-12-30 06:13   좋아요 1 | URL
하나님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읽고 견디는 일도 조금 더 힘 났을 거 같은데 아닌가 그때는 완성도 조금 떨어져서 못 꼬셨을랑가ㅋㅋㅋ 저야 말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즐겁게! 굿모닝!

하나 2020-12-30 11:40   좋아요 1 | URL
책구경하다가 열반인님이 예전에 쓰신 리뷰 보면 막 반가워서 뒤늦은 좋아요 누르는데요! 뭐가 떨어져! 💥 ㅋㅋㅋ 아, 지나고 보니까 모든 일들이 기적 같네요. 뭐에 홀리듯이 여기 돌아온 일도, 열반인님 만난 것도 ^^ 새해에는 더 좋은 일 많으실 거라는 걸 기억해주시고요! 열정 가득 목록에서 기 받아 갑니당~ 🔥

반유행열반인 2020-12-30 13:12   좋아요 1 | URL
뭐가 떨어졌어요?! 스파크? ㅋㅋㅋ 돌아와주셔서 감사해요. 드릴 게 없는데 저도 모르게 기를 드렸다니 신나요. 하나님도 더 좋은 일 더 더 더 한가득!!!

막시무스 2020-12-29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기도 많이 읽으시고, 리뷰도 재미나고 깔끔허니 잘 쓰시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내년에도 좋은 리뷰와 책 추천 많이 부탁드립니다!ㅎ 따뜻한 하루되시구요!

반유행열반인 2020-12-30 06:15   좋아요 0 | URL
추천할 생각은 감히 못하고 읽은 거 남기는 수준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막시무스님 지갑을 요래 턴 적이 있었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읽고 남길게요. 날이 춥다는데 무사무탈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Yeagene 2020-12-29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 읽은 책 한번 꼽아봤거든요...독서량이 정말 넘사벽이세요ㅎㅎ독서목록만 쭉 훓어보는데도 한참 걸리네요...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12-30 06:17   좋아요 1 | URL
Yeagene님의 다양한 재주와 할 일 많으신 거 생각하면 저는 그냥 다 책으로 퉁치는 거라서요ㅋㅋ진짜 많이 읽는 분들은 저처럼 저렇게 횡으로 펼치지 않을 거 같네요 ㅋㅋㅋ조금 부끄럽다 ㅋㅋㅋ

파이버 2020-12-29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끝나지 않는 책목록… 읽는 일도 정리하시는 일도 잘하시는게 부럽습니다 오른쪽 뒤에 붙이신 숫자가 전자책이신거면 정말 많이 읽으셨네요!‘0‘
연년세세 결국 저도 샀는데 코멘트를 읽으니 더 빨리 읽고싶어집니다~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12-30 06:20   좋아요 1 | URL
정리보다 그저 다 읽고 주절주절 하고 싶어서 읽는 것도 같아요ㅋ 전자책 시작하면서 확실히 읽는 양이 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책 사 싸 모으는 건 안 줄고ㅋㅋ연년세세 즐거운 독서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친구 중엔 그저 그랬다 하는 이도 있어서 좋았어파를 늘리고 싶어요ㅋㅋ

페넬로페 2020-12-30 0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도 많이, 글도 많이~~
정말 대단하세요^^
근데 23번의 코멘트!
혹시?
방금 검색해보니 영면하셨네요~~
마음이 먹먹해요 ㅠㅠ

반유행열반인 2020-12-30 06:22   좋아요 1 | URL
알라딘에서 많은 편은 아니지만 저 사는 동안은 점점 늘어서 덜 무료한 것 같아요. 인스타에서 투병 소식 듣다 잠자듯이 떠나셨다 소식 듣고 마음이 많이 안 좋았어요.

라로 2020-12-30 11:26   좋아요 2 | URL
제 댓글은 페넬로페 님 따라서, 또는 이어서,,, 책도 많이, 글도 많이, 그리고 여전히 친구들(알라딘) 친구들도 많이 챙겨주고,,, 반열님 덕분에 알라딘에서 글쓰기는 게 덜 외로웠던 2020년이었어요. 감사해요. 그리고 2021년은 멋진 반열님과 더 가까와질래요. 😅😅😅

반유행열반인 2020-12-30 17:12   좋아요 0 | URL
라로님 오래오래 계셨는데 뉴비인 제가 늦게 알아뵙고 늦게라도 알게 되서 반갑고 좋았어요. 새해에는 더 가깝게 지내요!!!! ㅋㅋㅋ

syo 2020-12-30 0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0년이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군요.
이런 일 저런 일 고생 많으신 와중에 읽고 쓰고 응모도 하고 대단하셨어요.
2021년은 더 알찬 한해가 되실 겁니다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12-30 06:25   좋아요 0 | URL
고생보다 지나고 보니 좋은 일이 더 많았습니다. 응모는 망했지만 소소하게 할 일이 있으니 그것도 좋았던 거 같네요. 다음 해도 알차게 보냅시다.

신햇님 2020-12-30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재밌게 읽으신게 많아서 저도 더 읽어보고싶어지네요. 리뷰 재밌게 봤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용

반유행열반인 2020-12-30 10:00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새해 책 많이 받으세요!! ㅎㅎ

Travis 2020-12-30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년에두 즐거운 독서생활! 항상 좋은 책 많이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12-30 10: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트래비스 님도 즐거운 독서 계속 하시는 새해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link123q34 2020-12-30 1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뭔가.. 따뜻하고 포근포근한 댓글 쓰고 싶은데.. 잘 안되서.. 일단 저도 제문장이 얼마나 이상한지를 보관함에 넣어두고.. 내년에도 신나게 재미지게 읽어나가요 미친소설 목록도 별점한개짜리책 목록도 기대기대♡

반유행열반인 2020-12-30 13:14   좋아요 3 | URL
뭔가..따뜻하고 포근포근한 기운이 느껴지는 거 보니 잘 안 된 게 아니네요 ㅋㅋㅋ제문장은 조금 빻은 구석도 있는데 효용이 더 커서 괜찮았구요 맞아요 내년에도 신나게 재미지게 함께 읽어 나갑시다! 미친소설 목록 제가 엄선해야 하는 거였나요? ㅋㅋㅋ힘을 보태주세요!!!

공쟝쟝 2020-12-30 2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에 가는 길에 손이 매우 시리지만 댓글을 답니다. 당신 너무 어마어마 하잖아!! 내년엔 좀만 읽구 많이써요-!! 으헤헤! 고생 많았어요, 새해복 많이받아요☺️☺️☺️☺️

반유행열반인 2020-12-30 22:20   좋아요 1 | URL
아이쿠 호호(더럽지만 따뜻한 입김) 주머니에 손 꾺 넣고 가세요. 쟝쟝님 전성기 비하면 저 꼬꼬마 아니에요? 좀만 읽구 많이 쓰라니 좋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복 다 쟝쟝 거!!!!!!!

han22598 2020-12-31 07: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꼭 그다지 목표는 아니지만, 저는 아직 일년의 100권이라는 허들을 넘지 못하고 있는데..반님은 거뜬히 넘긴 분량이네요. 대단하시네요~ 분량도 분량이지만, 일년동안 차곡차곡 읽은 책들의 리스트를 보니 먼가 스토리 텔링을 들은 느낌이에요. 직접읽은신 반님은 저 책들과 함께한 일년치 스토리가 있으실 것 같아요~ 2021년에도 많은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반유행열반인 2020-12-31 07:51   좋아요 2 | URL
어쩌다 보니 저의 연말 주마등(?)은 책 목록이 되었어요. 아 그때 그걸 읽었다 하면 어떻게 지내던 때인지 다시 리뷰되구요. 제목만 봐도 스토리텔링을 느끼시다니 뭔가 내공이 느껴지네요! 한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알차게 읽고 쓰시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러브북스 2021-01-03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자책 시간버리고 돈아낌 아 욱겨요~ㅋ 음 저도 크레마들이면서 많이 읽기는하는데 뭔가 🤔 이상타했더니 그거였어요. 전자책나와서 빡침 ㅋㅋㅋ 리뷰맛집 댓글맛집 코멘트맛집이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01-03 09:33   좋아요 0 | URL
뭔가 이상타 ㅋㅋㅋ그거였구나...맛집까지는 아니고 어쩌다보니 이러고 있습니다 ㅋㅋㅋ 종종 들러주세요.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시인선 151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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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7 이규리.

여름에는 봄이 가득한 시집을 울면서 읽었다. 지난 봄이 슬퍼서 읽고 울었다. 겨울에는 겨울에 태어난 덕에 겨울 시집을 받아 읽었다.
어느 계절도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가장 온화하다는 봄에도 가을에도 혹독한 순간은 있었다. 겨울에 시작된 사람인 나는 우리는 어찌어찌 네 계절을 버티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첫눈은 못 되어도 계속 내리는 눈발로 닿고 싶다. 이 땅을 뜨지 않는 한 매해 만나는 겨울이 되고 싶다. 춥지만 차갑지 않게. 언 손은 감싸 쥘 이유가 있으니까.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로. 지구가 너무 뜨거워지면 안 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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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고 흰 것이 잔뜩 나오는 시집에서 가장 어둡고 검은 시를 골랐다. 음울이라 읽고 베껴 적었다.

-그늘만 찾는 풀들이 있다 뜻한 바 있어 택한 낙향처럼 그늘은 버려진 시간이 아니다 그 자리 온 작고 여린 생들, 착 깔린 이끼와 자잘한 괭이밥, 여기까지 온 마음을 다 안다 할 수 없어도

내 어둠을 살라 당신을 옥죄었던 그늘도 생각하면 어두운 날들의 축제였다

그늘이라지만 그늘은 둘레를 따로 두지 않고 제자리라 삼지도 않는다 험로를 어떻게 왔을까 싶지만 동류끼리는 셈이 있는 법이니

누구 간섭하지 않으면 좋으리라 가만히 두면 되리라 그 고요 안에도 다툼이 있는데 그건 그들만의 생기라 했다 최소의 의지라 했다

왜 그걸 비켜가라 했을까

햇빛도 제 안의 실의를 감추느라 그늘을 둔 것인데 쓰윽 베이던 차디찬 음해는 습한 세계는

누구나 제 폐허가 막막해서 푸아푸아 울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울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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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2-27 17: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의 글까지 전부가 “울음” 전문이 되었네요. 그래도 “언 손은 감싸 쥘 이유가 있으니까.”

반유행열반인 2020-12-27 17:58   좋아요 2 | URL
헤헤 하나님이 좋게 봐주시면 늘 좋지만 알라딘에 이규리님 팬 많아서 저 때리러 와요 ㅋㅋ 원래 남들 다 읽을 때 안 읽고 숨죽이다 뒷북으로 읽는데 올해 가기 전에 읽은 권수 늘리려고 시 한 권 더 봤네요 ㅎㅎㅎ

하나 2020-12-27 18:01   좋아요 2 | URL
덕분에 저는 이 시집 한번 더 펼쳐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흰 것만 본 것 같아서.. 서정도 되는 우리 열반인님 남은 연휴의 겨울밤 평안히 보내세여!

반유행열반인 2020-12-27 18:03   좋아요 2 | URL
하나님도 안온 평화 모두 안고 휴일 잘 지내세요ㅎㅎㅎ 사실 저한테는 조금 어려운 시집이었어요 ㅋㅋㅋㅋ(그래도 시류 편승해서 별 다섯개 줌 ㅋㅋㅋ)
 
소설 보다 : 겨울 2020 소설 보다
이미상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20201227 이미상, 임현, 전하영.

소설보다는 처음 사 봤다. 중단편소설 세 편과 작가와의 인터뷰 실은 책이 3500원, 새 소설과 작가들 만날 기회로 괜찮은 기획 같다.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이미상 작가의 ‘하긴’을 인상 깊게 읽었다. 다음 작품이 궁금한 작가였는데 올 겨울의 소설로 선정되었다고 해서 이 책을 펴게 되었다. 임현 작가도 나름 꾸준히?읽고 있으니까. 역시 젊은작가상으로 알게 되고 소설집을 사 보았는데 제법 인상 깊었다. 그때는 최신 한국소설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었다. 처음 쓴 습작을 읽은 친구가 내 글이 되게 올드하다고 했다. 당연하지. 나의 한국소설 독서는 현대문학사를 따라 1920, 30, 40, 50년대... 전후 문학을 거쳐 김승옥 쯤에 멈춰 있었다. 그래서 최신 트렌드는 하나도 모르고 그나마 김애란 정유정 같은 작가 신작이 나오면 챙겨보는 정도였다. 새로 나오는 한국소설들 보기 시작한지 겨우 3년 밖에 안 되었다. 처음에는 뭔가 유행이나 시류 같은 게 있다고 착각했다. 지나고보니 그런 거 없고, 작가들은 그때 자기가 가장 쓰고 싶은 것, 그중에 자기가 쓸 수 있는 것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상, 여자가 지하철 할 때
몇 쪽 넘기고서 역시 이 언니,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고 혼자 기뻐했다. ‘하긴’의 운동권 후일담은 진짜 뭔 미래 예언서처럼 되어 버렸어… 여전히 거리에서 일인 시위니 집회니 하면서 돌아다니는 586 운동가를 알고 있다. 처음에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보니 그 사람이 옳았다. 독재자를 타도한 사람들은 거리에 남든가 다 죽었어야지, 빈 권좌에 올라서는 안 되었다. 잡소리가 기네.
지하철 안에서 분열된 얼굴들과 함께 위험도를 재어 가며 생존을 위해 눈알을 굴리고 분투하는 경험. 마지막에 아기 상어 노래 속 물고기들 처럼 살았다 뚜루뚜루- 하면서 해맑게 지상으로 올라오는 죽도록 피곤한 수진의 얼굴이 너무도 익숙해서 암울했다. 환대와 안전, 평등. 당연하게 마주할, 과오를 빚갚음하는 죽음과 그저 두려움에 떨다 당하는 개죽음. 일상과 구조 속의 계층화. 얼핏 보면 미친 소설인데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아놔서 마냥 신기하고 우러르게 되었다. 이런 거 쓰려면 최소 4년은 쓰고 고치고 해야 하는 거였군요…작가의 다른, 다음 작품들도 자꾸 궁금해졌다.

-임현,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
소설도 소설인데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윤리와 논리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이 더 마음에 남았다. 자기 소설 잘 안 읽는다고 안타까워 하는 모습도...친구가 작가와 같은 문학촌에 한동안 있었는데, 본인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데 술먹은 다음 날 아침 마주친 작가님이 너 어제 어디서 술 마시고 들어오다 나랑 만나서 더 마셨잖아, 했다고. 그게 진짜 있던 일인지 놀리느라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좋아하던 소설가랑 술 마시고 밥 먹는다고 스스로를 성덕(성공한 덕후)으로 칭하던 자네도 소설가잖아...성덕 하지 말고 성골 되어라 너도…
가르치는 위치에 서는 일은 영 싫다. 누군가의 삶에 의도를 통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믿지 않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서. 그건 너무 막중한 일이다.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에게 해야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는 삶. 그와중에 내가 하는 어떤 말들이 나도 모르게 누군가들을 다치게 하고 그에 대한 책임과 미움을 다 지고 가야 하고...비난 받고 벌 받는 누군가를 보며 저게 나였을지도 몰라, 하고 고민하는 삶은 지옥에 가깝다.

-전하영,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책에서 처음 만나고 새로 발견한 소설가이다. 제법 긴 중편 소설이었는데, 서른 일곱을 닷새 쯤 남긴 시점에서 서른 일곱과 스물 하나의 사랑?유혹?에 대해 이야기하니 저절로 발목이 잡혔다. 나는 스물 한 살에 시작한 사랑을 서른 일곱인 아직까지 하고 있고, 서른 일곱의 사랑이 언제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모르겠다. 책 속 서른 일곱의 화자는 같은 나이의 친구 연수와 스물 한 살에 서른 일곱의 남자를 사랑했고, 그 남자와 같은 나이가 된 지금에 와서는 그런 남자들을 경멸할 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그래. 그때 겪지 않았으면 지금 같은 나도 없었을 걸. 나 역시 한 번도 주인공이 된 적이 없다고, 순종적이고 친절한 친구 옆에 꼬여드는 고학번이니 복학생이니 하는 징그러운 오빠들을 쫓아내는 목격자이고 향단이고 보호자라고 스스로를 생각해 본 적이 있거든. 그런데 말린다고 그게 되는 게 아니더라. 오히려 그 친구는 내가 말리던 선택을 하고 나를 피하게 되지. 그리고 마냥 목격자일 것 같던 나도 목격자를 필요로 하는 위치에 순식간에 놓이기도 한다. 그런데 또 지나고 보면 사실 남들의 인정도 부정도 손가락질도 아무런 의미가 없고, 인정하든 부인하든 그건 나의 몫이었다. 그러니까 굳이 남을 구하겠다고 애쓸 필요 없고 나 하나만 잘 구해도 다행이 아닐까 싶다. 뭔 소리 하는 거야 나...하여튼 이 작가도 소설집이 나오면 관심 있게 볼 것이다.

+밑줄 긋기

-나는 아무 힘이 없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 사람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라고 말했어. 그런 상태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제일 고귀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사람은 말이지, 불가능한 걸 꿈꾸는 대신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 돼. 근데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야. 가끔씩 나는 뭔가 다른 게 되고 싶거든. 뭔가 내가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중, 139)

-네가 모르는 게 뭔지 알아? 원하는 게 있으면 노력해야 돼. 사랑받으려면 정말 죽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중, 159)

-연인의 탄생에는 항상 목격자가 있는 법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야기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목격자 역을 맡은 여자에 대해 생각했다. 삭제된 분량의 삶. 나는 지난 삶의 대부분을 목격자로 살아왔으므로 남은 여자의 삶에 대해 항상 궁금해해왔다. 남자의 세계로 여자친구를 떠나보낸, 남은 사람의 시간, 여자 주인공의 특별함을 돋보이게끔 하기 위해 평범함의 기준처럼 제시되는 삶.(‘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중, 162)

-가끔은 무언가 이야기 같은 것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속도로 내 인생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중,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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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2-27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살래요! 전하영 소설 부분에서 무릎을 치면서 광광 웃었다ㅋㅋㅋㅋㅋㅋㅋ(그래도 울었다 아님)

반유행열반인 2020-12-27 14:33   좋아요 1 | URL
광광 웃을 정도면 우리 되게 건강해진 거 아닐까요? 자꾸 본의 아니게 하나님 주머니 막 턴다 ㅋㅋㅋ나 다 읽은 거 주고 싶네요 ㅋㅋㅋ가져가세요!!!

하나 2020-12-27 14:3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열반인님 알라딘 엠디 특채 가야된다... 책 진짜 잘 파셔... (걍 나도 비밀이야 안하고 깠다) 서른일곱 살 되니까 왤케 화가 나냐... 걍 광광 웃으면서 소설이나 읽어야지~~

반유행열반인 2020-12-27 14:41   좋아요 1 | URL
이제 깐 화 앞으로 십 년은 갈 건데...큰일이네요 ㅋㅋㅋ저는 십 년 쯤 화내고 나니 이제 좀 여유로워지는 중...(죄송합니다 먼저 갑니다...) 알라딘 엠디 언니들 나 싫어하지 않을까요 비속어 사용 책과 관계 없는 내용 판매를 저해하는 행위 등등...ㅋㅋㅋㅋㅋㅋㅋ무엇보다도 아 저런 애랑 같은 사무실 있기 싫다 ㅋㅋㅋㅋ하실 듯

하나 2020-12-27 14:44   좋아요 1 | URL
아.. 먼저 가서 길을 만들어죠요 ㅋㅋㅋㅋㅋ 알라딘 엠디 언니들 열반인님 좋아하실 듯... 알라딘 마을 매력악동쯤? 전 열반인님이랑 같은 사무실 있음 회사다닐래여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2-27 14:47   좋아요 2 | URL
음 일단 화를 더 내고 욕을 더 해야 합니다.... 뒤에서도 앞에서도 ㅋㅋㅋㅋㅋ뭘 가르치는 것인가 가르치기 싫다매...안 좋아할 거에요 리뷰 안 뽑아주는 거 봐!!! ㅋㅋㅋㅋㅋㅋㅋ그냥 내 돈 주고 사야지...저 같이 살던 언니랑 사이 왕창 나빠지고 멀어진 경험이 있어서 안전거리 두기로 해요 그냥 ㅋㅋㅋㅋㅋ가끔 만나면 좋은 친구입니다 ㅋㅋㅋㅋ

하나 2020-12-27 14:55   좋아요 2 | URL
(가끔) 만나면 좋은 친구 🎶도 어렵다.. 저도 꼭 그렇게 될게요! 일단 앞에서도 뒤에서도 화를 내서 심신을 가다듬고... 그리고 알라딘 진짜 우리 누나 서운하게 하지 마로라... 좋으면 좋다고 표현을 해라...

막시무스 2020-12-27 15: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반님의 영업으로 구매해본 1인으로서 MD특채 강력하게 청원합니다!ㅎ

반유행열반인 2020-12-27 15:45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성원에 힘입어 알라딘 강제 이직하는 건가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