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내일의 연인들
정영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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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5 정영수.

나는 장성규를 싫어하는데, 식구의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가 주말에 텔레비전으로 유튜브를 켜고 워크맨 채널을 보는 일이다. 그 옆에 앉아 책을 읽다가 장성규가 욕설을 내뱉을 때마다 쟤 싫어, 하고 눈살을 찌푸리고는 억지로 책에 집중하려다가…어느새 화면에 눈길을 빼앗기곤 한다. 그걸 반복하다 보니 꿈에서 장성규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놀랍게도 꿈 속의 나는 장성규와 썸을 타고 있었다. 다정다감하게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밀당하듯 막말을 주고받다가 토라지고, 그러다 또다시 그리워했다. 잠을 깨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장성규를 덜 미워하게 되었냐 하면, 여전히 워크맨을 틀면 눈살을 찌푸리고, 싫다, 소리는 마음 속으로만 한다. 자꾸 싫다 하면 그것도 미운 정이 드나 싶어서…

아, 장성규 얘기 왜 했냐면, 예전에 장성규가 문학동네에서 일하는 에피소드를 보았다. 거기에 김영수라는 편집자가 나왔다. 뭐야, 저 이상한 머리스타일이랑 수염은 소설가 정영수인데. 검색해보니 편집인일 때는 김영수이고 소설가일 때는 정영수라고 한다. 와 그럴듯한 체인지업이야. 인생을 두 개로 살고 있잖아. 문득 정영수랑 같은 문학팀에 있었다는 김봉곤이 그리워졌지만 김봉곤은 안 나왔다. 대신 이원하 시인이 나와서 귀여운 척해서 (그때는 아직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는 안 봤던 때였다. 결국 이 방송을 계기로 시집을 읽게 되지…) 왜 귀여운 척이야 했다. 갑자기 박상영 소설가랑 영상통화해서 원고 독촉하고, 박상영은 막 택시에서 마감하고 있다고 해서 괜히 반가웠다.(나는 반가운데 반가운 상대는 내 존재도 모름…)

정영수의 소설은 2018, 2019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단편 하나씩을 접했다. 그때 끄적인 감상을 찾아보니 기억한대로 별로야, 오그라들어, 잘 쓰지도 않네, 였다.
이번에 나온 소설집을 별 기대 없이 펼쳤는데 조금 놀랐다. 두 번째 읽는 ‘우리들’이 너무 좋아서 밑줄을 왕창 쳐놓았다. 이렇게 잘 썼었나? 내가 그간 정영수를 읽을 공력이 안 되었던 건가? 그동안 과소평가해서 미안해 영수님, 했다.
그러다가 ‘내일의 연인들’을 읽는 순간 아아...내가 알던 영수네, 했다.ㅋㅋㅋ 소설이란 쓰는 게 아니란다. 몇 년을 두고 고치는 일이란다. 새삼 깨달았다. ‘더 인간적인 말’을 읽고는 그런 깨달음이 거의 확신에 가까워졌다. 이 소설 처음 읽는 거 같은데 화자의 배우자 이름이 큰애 이름이랑 같아서 전에 읽었던 소설인 걸 눈치챘다. 역시나 처음 읽은 때보다 훨씬 좋았다.
정말 다시 고쳐 써서 나아진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수상작품집을 다시 찾아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그 정도로 부지런하진 못했다.
같은 소설을 다시 읽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어떤 소설은 한 번 읽어서는 좋아하기 어려운 건지도 모르겠다. 좋기 위해 그 사이에 뭘 먼저 잔뜩 읽어야 하는 글이 있을 수도 있겠다.
첫 감상과 두 번째 감상이 다른 이유를 나는 여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어떤 글을 후지다고 할 때 조금 더 고민하고 후지다고 해야 할까? 아마 하던 대로 할 것 같긴 해…(모진 새끼야...언젠가 너도 당해봐라)


-우리들
두 번째 읽기는 소설 첫머리에서 언급되는 정은과 현수에 관해 이미 알고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소설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처음 읽을 때와 내가 선 자리도 달라져 버렸다. 분명 아는 장면이고 관계의 흐름과 두 연인의 병치 같은 큰 줄거리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 사이 아니에르노도 읽고 하여간에 같은 소설인데 읽는 사람이 달라져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랬구나, 독자가 달라졌구만.

- 내일의 연인들
남현동은 내가 사는 관악구의 어느 부분인데, 나는 오랜동안 신림동 봉천동 구석을 빙빙 돌았지만 남현동에는 못 가 봤다. 그런데도 그 비탈과 비탈 위의 빌라와 지원과 화자가 머문 공간이 내가 가본 어딘가 인 것 마냥 느껴졌다. 너희는 어쩜 우리의 유령일 수도 있겠다.

- 더 인간적인 말
비슷한 이야기가 ‘도어’에서도 한 에피소드로 등장하는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 앞에서 남을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냥 기다리는 일 말고는 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건 모든 죽음 앞에서 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더 괴로워하거나 유난 떨 필요도 없는 건가? 싶었다. 그만큼 고상하게 선택하는 것조차 누구에게나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사하고 안녕한 현대에서의 삶
화자처럼 나도 엉뚱한 불행과 사고에 대해 상상한다. 그 상상의 결과물인지 끔찍한 사건이 현실에 설정되어 있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다가도 결국 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데, 몇 개의 인상 깊은 결말을 보여준 소설을 제외하면 마무리가 김이 빠지는 소설이 이 책의 대부분이다. 나 또한 끝맺음이 늘 어렵다.

-기적의 시대
친구의 친구, 동호회에서 만난 친구, 이루기는 커녕 펼쳐 놓지도 못한 사랑, 혼자 좋아하면서 괜히 누군가의 집 앞을 기다리는 마음, 제목은 딱히 왜 저런지 모르겠지만 뭔가 소년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나는 저래 본 적도 없는데 괜히 저랬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굴 좋아하는 마음, 감정 같은 걸 되돌아보는 걸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흔하긴 한데 그냥저냥 괜찮았다.

- 서로의 나라에서
싸이월드 시절부터 남 염탐하는 게 취미였던 나는 슬쩍 찔렸다. 여기에 나같은 놈이 나오는 걸 보니 나만 이상한 놈 아니네...하고 또 슬쩍 자기위안도...어쩌다 알게 되고 온라인으로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다 또 멀어지고 하는 관계가 내 세대에는 많았다. 그런 사람과 재회한 공간이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더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도 아니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의 불가능? 인연의 유한성? 그런 걸 생각하게 만들긴 했는데, 암튼 괜히 소설보다가 구글창에 아주 오래전 스친 사람들의 아이디 같은 걸 슬며시 적어보았다…

-길을 잘 찾는 서울 사람들
답답한 차 안의 짧은 소설. 사분 거리가 사십분 되면 빡치긴 하겠다. 점점 더 얘 나랑 성격 비슷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두 사람의 세계
모르긴 몰라도 나도 언젠가는 내 모부의 이야기를 픽션인 양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이미 여러번 변주해서 쓰긴 했지… 화자가 두 연인의 자녀라는 건 처음부터 너무 명확한데도 너스레 떠니까 조금 아쉽긴 했다. 결말도 마음에 안 들었다. 엄마 네가 결코 떠나지 못할 사람일 걸 알아 하고 두드려패는 아빠로부터 놓아주지 않는 결말은 상상력이 부족하지 않니. 소설에서라도 좀 도망가게 해주면 안 되냐. 나쁜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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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2-05 22: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꿈이 저번에도 디테일 하셨는데ㅋㅋㅋㅋ 저는 비호감이었던 사람도 제 꿈에 나오면 갑자기 막 좋아지더라구요~♡ㅋㅋ 아 ‘우리들‘넘 궁금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2-05 23:11   좋아요 2 | URL
여러 버전 중에서도 이번 소설집에 있는 걸 읽으셔요 ㅋㅋㅋ(이러다 알고 보니 다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소설이면 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2-05 22: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꿈에서 섬타셨다니 부럽습니다.(그게 누구든!ㅋㅋㅋㅋ)
소설 한 편을 쓰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 거 같아요!! 단편집 중 한 편만이라도 건진다면 잘쓴 거 아닌가 싶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02-05 23:12   좋아요 3 | URL
아녜요 장성규 같은 깝치고 무례한 (컨셉일지라도) 남자는 진짜 제 취향이 아니네요 ㅠㅠ ㅋㅋㅋㅋ 저는 책으로 묶을 경지라면 그래도 반 타작은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작가에게는 엄격하게 나에게는 관대하게ㅋㅋ)

붕붕툐툐 2021-02-05 23:17   좋아요 4 | URL
오~ 반열님이 엄격하게 추천하면 믿고 따를 수 있겠군요!!
이건 흡사 제가 먹는 거의 모든게 맛있어서, 맛집 추천이 어려운 것과 비슷한 이치일 듯합니다!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2-05 23:19   좋아요 2 | URL
저는 뭘 추천할 경지도 아니고 제 취향 생각보다 이상해서 남들 좋다는 건 막 까고 제가 좋다는 건 남들이 으으 우우 (두리안이랑 고수 같은 걸 좋아합니다..) 하니 믿고 따르시면 곤란하실 수도 있어요 ㅋㅋㅋ(이새낀 뭘 이런 게 좋대...하고 원망하시면 달게 받겠습니다 ㅋㅋㅋ)

하나 2021-02-05 23: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 조금 더 고민하고 후지다고 해야 할까?
2. 그랬구나, 독자가 달라졌구만.

정영수 소설이 열반인님의 지나간 시간을 비추는 계기가 됐으니까 궁금해서 저도 다음 책으로 선정합니다. 🥳

서로의 나라에서는 제목이 벌써 좋네요. 라떼는 싸이월드 세대라 그런가... 😎

반유행열반인 2021-02-05 23:26   좋아요 2 | URL
서로의 나라 근데 그냥 그랬는데 ㅋㅋㅋㅋ 좋았던 건 그 친구가 화자를 ㅑ 로 저장해놓고 ㅑ에 대해 sns에 끄적인 걸 화자가 보는 부분 정도 ㅋㅋㅋ나도 누가 ㅗ 이렇게 저장해 놓고 욕하는 거 아닌지...욕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다...(관종의 끝)

하나 2021-02-05 23:3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욕이라도 먹는 게 좋구나... 역시 멋져... 저 아주 옛날 관종 시절에 진지하게 개그맨 진로로 추천 받은 적 있는데 나는 정형돈과야 (냉정) 하루 나대면 삼일 쉬어야 돼, 판단하고 소시민으로 살아가기루 함... 겁이 많은데 까불지 좀 마 나야... ㅋㅋㅋㅋㅋㅋㅋ 우리 근데 옛날 싸이 시절엔 나라도 하나씩 있고 좋았네여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2-06 04:06   좋아요 3 | URL
아 저 예전에 그나마 개그맨 중에 정형돈 박명수 좋아했는데. 하나님이 정형돈이면 난 박명수과야 ㅋㅋㅋ정형돈이 웃기고 나서 쉽게 번아웃 하는 거도 다 느껴져서 ㅋㅋㅋ우리끼리만 웃자 남 웃기려 들지 말고 우리나라나 잘 지키자 ㅋㅋㅋ

페넬로페 2021-02-05 23: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꿈에 나타나도 전 장성규는 사양입니다^^물론 그도 절 사양하겠지만요**
정영수라는 작가 찜해 놓을께요~~

반유행열반인 2021-02-06 03:59   좋아요 3 | URL
저랑 비슷한 취향(?)이시군요 ㅋㅋㅋ마지막 문장 잠결에 읽으니 좀 무섭다...아귀찜 명태찜 정영수찜...(죄송합니다...)

페넬로페 2021-02-06 11:26   좋아요 3 | URL
아하! 그러네요 ㅎㅎ

라로 2021-02-06 00: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성규가 누군지 모르는 일인;;;; 정영수 작가도 듣보잡 (이런 말도 최근에 알게 됨), 암튼 반열님 페이퍼 읽을 때마다 제가 크는 게 느껴져;;;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무래도 나 간첩;;;; (이것도 넘 옛날 조크죠???ㅎㅎㅎㅎㅎㅎㅎㅎ)

syo 2021-02-06 00:07   좋아요 3 | URL
라로님, 이런 상황에서는 ‘듭보잡‘에서, ‘잡‘은 빼고 ‘듣보‘까지만 쓰는 거예요.
ㅋㅋㅋㅋㅋㅋ 나도 새말 잘 모르는 아저씨면서 막 가르치고 있어 🤣

반유행열반인 2021-02-06 04:00   좋아요 2 | URL
이미 그렇게나 크신 라로님이 꼬꼬마네 페이퍼에서 크신다니 전 방사능일까요 ㅋㅋㅋ여기에서는 잡이 들어간 게 더 센스 있는게, 장성규가 job에 대한 채널을 하고 자기 구독자들한테 잡것들이라고 하거든요...라로님이 더 젊은 감각이야.... ㅋㅋㅋㅋㅋ아저씨 안녕하세요.

syo 2021-02-06 04:06   좋아요 3 | URL
아니? 그랬어요? ㅋㅋㅋㅋㅋㅋ 그건 몰랐네? ㅋㅋㅋ 반님의 말씀이 저한테는 그야말로 듣보잡소리네요!!
이럼 나도 이제 좀 더 젊은이?! 😀

반유행열반인 2021-02-06 04:08   좋아요 2 | URL
아저씨 지수 50 상승하였습니다.

라로 2021-02-08 16:21   좋아요 1 | URL
아! 이거 뭡니까? 토비님?? 응??? 듣보까지 쓰라면서 자기는 왜 듣보잡!! ‘소리‘가 뒤에 붙으면 ‘잡‘을 써야 하는 거야요??? 규칙이 있는 거야요?? 여전히 헤매는 아짐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왜 나를 더 헷갈리게 하는 거임???ㅋㅋㅋㅋ)

반열님! 나 어쩌다 잘한 거에요? 그럼????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2-08 17:21   좋아요 0 | URL
어쩌다 잘 하신 게 아니고 라로님은 원래 뭐하더라도 잘하는 원더우먼이시죠 ㅎㅎㅎ

라로 2021-02-09 10:39   좋아요 1 | URL
국어를 못한 거 여기서 뽀록 다 났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하루 지나서 이해하는;;;;

syo 2021-02-06 0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다 읽기 전인데, <서로의 나라에서>라는 제목이 익숙해서 찾아보니까 제가 예전에 박서련과 우다영을 발견하고 좋아했던 동명의 앤솔로지 소설집의 표제작이네요. 그때 제가 그걸 읽고 정영수를 뭐라고 평해놨는고 하니,

˝정영수가 이 책의 다른 작가들과는 사이즈가 다른, 이미 평단에서도 위명을 떨치고 있는 위치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보면, 정영수의 <서로의 나라에서>는 좀 힘 빠지는 데가 있다. <밤의 징조와 연인들>에 뒤이어 배치되어서 더 그래 보이는지도.˝

라고 해놨네요 ㅋㅋㅋㅋㅋㅋㅋ 과연 <우리들>에 대한 저와 반님의 평가가 엎어졌듯이, 저 평가 또한 엎어질 것인가!

반유행열반인 2021-02-06 04:04   좋아요 2 | URL
대충 이거저거 묶인 소설집 같긴 한데 갑자기 앤솔로지가 뭐지 궁금해졌어요. 앤 솔로지? 아니 길버트랑 속닥속닥...안녕하세요 아재2입니다ㅋㅋㅋ
저 소설도 그때 버전보다 열심히 고친 것일 수도 있겠네요. 이번 소설집 읽은 느낌은 작가는 완성되어 튀어나오는 게 아니구나 독자랑 같이 자라기도 하나 봐 ㅋㅋㅋ였어요.

막시무스 2021-02-06 10: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단편들의 감정을 대변할까요?ㅎ 장면은 하나인데 다양한 감정이 느껴지네요! 즐건 주말되십시요!

반유행열반인 2021-02-06 10:34   좋아요 1 | URL
표지 좋아하시는 분 많더라구요 좋은 주말 보내시길!!

Yeagene 2021-02-06 18: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영수가 편집자로 일하는지는 열반인님 덕분에 처음 알았네요ㅎㅎ
주말 잘 보내고 계세요? 어제 제대로 잘 못 읽은 것 같아서 다시 읽어보려고 들렀답니다 ㅎㅎ 편안한 밤 되세요!:)

반유행열반인 2021-02-06 18:57   좋아요 2 | URL
네 그 분 속한 팀이 한국문학 쪽에서 열일하고 있더라구요 ㅎㅎㅎ예진님도 주말 푹 쉬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늘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공쟝쟝 2021-02-07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반님 한국 소설가들이랑 친하게 지내시는(?)!!! 독후감 읽을 때 참 좋다 .. 전 아직까진 상영찡만 내적으로 친근해요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2-07 09:39   좋아요 0 | URL
아 근데 조금 이따가 안 친한 독후감 올릴 건데? ㅋㅋㅋㅋㅋ 맘속으로만 친한 척해야지...글로 친한 척 하면 우연하게라도 작가들이 보고 얘 뭐야 왜 친한 척 해 하고 욕할 거 같다 ㅋㅋㅋㅋ

공쟝쟝 2021-02-07 09:41   좋아요 1 | URL
작가님덜 욕하지마요 ㅋㅋㅋㅋ 저희 이상한 사람들 맞아요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2-07 09:4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상한 독자1입니다.

공쟝쟝 2021-02-07 09:43   좋아요 1 | URL
그리고 저두 장성규 별로예요. 싫진 않은데 뭐랄까, 적당히 올려쳐진 무 사색 한남의 전형을 보는 것 같은데 ㅋㅋㅋ 너무 일반적인 유형이라ㅋㅋㅋㅋㅋ 맞아 한국 남자 다 저러지... 그래 저정도였지, 하는 딱 마지노선. 거기서 더 저질이면 싫어짐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2-07 09:49   좋아요 0 | URL
나는 유튜브 영상에서 자꾸 저런 무대뽀(?) 태도를 보이고 욕설도 필터링 안 하고 그걸 웃기다고 보고 그걸 뭐라고 하면 웃자는데 죽자 한다고 할 걸 생각하면 점점 더 별로가 된다 ㅋㅋㅋ 매번 일할 때 보면 뒤질래요 고객님? 이런 느낌임 장성규 ㅋㅋㅋ

공쟝쟝 2021-02-07 10:18   좋아요 1 | URL
유튭는 안봣구 ㅠㅠㅠㅠ 방구석 1열 에서만 보는데도 안조신해서 불편햇던 1인 ㅋㅋㅋ

유부만두 2021-02-07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성규 너무 싫어서 욕하는 사람 여기 있어요. 그런데 그런 유툽 하는 건 몰랐네요 (다행인건가요).
말씀하신 출판사 편 찾아봤는데 재미있네요! 저 김영수 작가 실물 본 적 있어요. 약간 예수님 닮으심요. 제가 가진 첫 인상 보단 더 말씀 잘하셔서 놀랐고요. <내일의 연인들> 읽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꿈에 장성규.... 흠....

반유행열반인 2021-02-07 11:49   좋아요 0 | URL
호불호 갈려도 좋아하는 사람 많으니 티비도 나오고 유튭도 나오고 하겠죠 ㅎㅎ다만 막가파 캐릭터로 사랑받는 만큼 선타기 잘못 하면 훅갈수도 있다는 우려도 ㅋㅋㅋ내가 왜 걱정해주나 ㅋㅋㅋ장성규 아주 오래전 jtbc 개국 쯤 미각스캔들이란 프로 진행하던 꼬꼬마때부터 봤거든요 이렇게 클 줄은 몰랐지 ㅋㅋㅋㅋ 저는 내일의 연인들 읽고는 편견이 심했네 내가...하며 좋았는데 유부만두님의 독서는 또 어떨지 궁금하네요. 예수님 영수님 이름도 비슷한데 외모마저...
 
동의 : 너와 나 사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나를 지키는 괜찮은 생각 1
레이첼 브라이언 지음, 노지양 옮김 / 아울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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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3 레이첼 브라이언.

부모 중에 자녀와 자신을 제대로 분리하지 못해 서로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루지 못한 꿈의 대리만족을 기대하고, 정작 자녀의 욕구와 바람은 무시한 채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강요한다. 한 친구도 아빠 때문에 그런 순간을 너무 자주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평소보다 낮게 나온 수능 점수 때문에 재수를 하고 싶었는데 절대 안 된다고 지금 점수로 가능한 대학에 가라고 하고, 교대 편입하고 싶다니까 그냥 사범대 남아서 임용보라고 하고(결국 졸업 후 5년 만에 힘들게 붙긴 했지만...), 친구의 동생이 외고 가고 싶다니까 아는 택시기사가 그 학교 별로라더라 그냥 동네에 가까운데 다녀라, 최근에는 동생이 아파트 사고 싶다 하니까 그거 살 돈으로 아빠 가진 삼사십년 된 이층 구형 상가 건물 위로 증축해서 너네 가족 들어와서 같이 살자 해서 동생이 빡쳤다는 이야기까지 전했다. 듣는 나도 빡쳐서 남의 아빠 욕을 했다(주특기). 자신이 선택한 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래도 감당할 만 할 텐데, 단 한 번도 지지와 인정을 보탠 적 없이 무조건 아무 것도 못 하게 하는 가족 앞에서 무너진 꿈과 희망은 시간이 지나도 마냥 아픈 일처럼 보였다.
연인이나 배우자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같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지금 무얼하는지 누굴 만나는지 수시로 묻고, 옷차림과 꾸밈새를 타박하고, 책 읽는 모습이 꼴보기 싫으니 같이 텔레비전이나 보자며 상대의 일상과 온 시간을 지배하려 드는 사람이 있다. (우리 아빠가 엄마한테 그랬어...)

나와 함께 하는 누군가가 내 바람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기쁠 수 있겠지만 늘 그럴 수는 없다. 나와 상대방은 다른 사람이다. 분리된 존재이다. 그걸 인식하고 상대가 내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너무 실망하지 않는 일은 각오와 연습이 필요하다. 반대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되묻고, 상대를 실망시키거나 미움 받고 싶지 않아서, 호감을 얻고 싶어서, 거절하는 상황 자체가 더 불편해서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거절하는 연습 또한 많이 많이 해야 한다. 우리도 할 수 이써!

귀여운 그림과 만화로 이루어진 작은 이 책은 동의와 거절의 방법, 동의와 거절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쉽고 간결하게 알려준다. 아이에게 주기 전에 먼저 순식간에 읽었다. 아이에게도, 다 큰 어른에게도 성별 나이 지위 불문하고 누구나 읽어보면 좋을 책이었다. 다른 사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나 자신을 지키면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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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2-03 2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이 너무 귀엽게 동의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네요~
분리된 존재라는 의식 늘 장착하기!!
다시 한 번 새기고 갑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2-04 06:50   좋아요 1 | URL
귀엽고 좋은 책이 참 많아요 ㅎㅎㅎ늘 공동체의식 같은 거만 엄청 강조하는 거 배우고 자랐는데 이젠 개인의 자유랑 결정권 같은 것도 같이 알려주면 좋겠어요 ㅋㅋㅋ

2021-02-04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4 0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4 0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나 2021-02-04 03: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나 자신을 지키면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지금이라도, 언제라도 배워야 할 것들을 공부하시는 열반인님 덕분에 저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어 좋아요. 우리도 할 수 이써!! <- 오늘도 귀여운 열반인님 😆

반유행열반인 2021-02-04 06:53   좋아요 2 | URL
안 귀여운 열반이를 귀여워해주는 하나님 ㅋㅋㅋㅋ 이제 알게된 것들이라 저도 많이 배워야겠어요. 이 책은 스스로도 남의 동의에 제대로 귀기울여 왔는지 강요한 적 없는지 물으며 돌아보게 하는데 나나 잘하자ㅠㅠ 싶기도 했어요 ㅋㅋㅋㅋㅋㅋ

2021-02-04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4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1-02-04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절하는 연습 또한 많이 많이 해야 한다.˝
맞아요..이거 정말 중요한 건데 거절하는 게 참 어려워요.가끔은 거절하지 못해서 이 일을 하는걸까 싶은 때도 있어요ㅠㅠㅠ

반유행열반인 2021-02-04 19:48   좋아요 1 | URL
작년에 직장 옮기면서 그지같은 자리 맡았는데 그덕에 일년 간 욕만 하고 ㅋㅋㅋ이 자리 없애는 거 목표로 하다 실패하고 아무도 그 자리 지원 안 해서 다른 새로 온 사람이 같은 업무 맡게 되는 거 보면서 아 그냥 작년에 무슨 일 있어도 거절할 걸...싶더라구요 ㅠㅠ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2-04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도 할 수 있써!!!!!

반유행열반인 2021-02-05 07:13   좋아요 1 | URL
해야만 해 거절-할 거야!!(장기하 노래 bgm)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발상에서 좋은 문장까지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20210201 이승우.

사실 이승우가 못마땅해졌다. 많은 후배작가들이 수상 거부와 기고 거부를 하고, 심지어 윤이형이 절필 선언까지 하게 만든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면서 한 해 중단된 문학상의 명맥을 이었다. 올해 수상 작가 대부분은 나이 지긋한 중견 작가들이고 젊은 작가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 대한 코멘트 없이 손님 맞는 사무원에 수상을 비유한 것도 멋대가리 없었다. 뭐, 소설가 입장에서는 수록 지면이 사라지고 문학상이 없어지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그거 막겠다는 사명감 같은 걸로 수상 수락을 할 수도 있겠지만, 후배들이 불공정한 관행 없애 보겠다고 그렇게 목소리 내고 난리였는데 개선이라 해야되나 어쨌거나 출판사가 시정안을 내놓은 뒤에 곶감만 쏙 꺼내 먹는 걸로 밖에 안 보였다.

그래도 뭐 사 놓은 책이니 뭐라고 하나 읽어 보았다. 뻔하다면 뻔한 소리고, 가장 기본이라면 기본인 이야기 담긴 짧은 책이다. 이전에 박상우의 ‘소설가’라는 책을 먼저 보았는데 그 책이나 이 책이나 작법서는 아니고,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 대상으로 이런 마음 가짐으로 해야지, 하는 훈수 정도였다.

이 책에서 비슷하지만 다른 말로 반복되는 이야기가 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고 소설을 쓰기 때문에, 쓰는 동안 소설가로 불리는 것이다. 소설가이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고 소설을 쓰기 때문에 소설가인 것이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쓰는 사람이 소설가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2006년에 나온 초판1쇄를 중고로 샀는데 마지막에 완전 반대의 말이 나온다. 아무리 봐도 이건 실수 같이 느껴졌다.
‘소설을 쓰기 때문에 소설가인 것이 아니고, 소설가이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것이다.’
실수가 아니라 소설가의 정신을 강조해서 일부러 다시 이런 말을 한 건가? 나름 역설적인 효과를 노린 건가? 그렇게 받아들이기에는 좀 후졌고 실패한 표현 아닐까 싶다. 왜 한 책에서 딴소리해! 하고 반발심만 생겼다.

읽는 동안에 그간 너무 쉬었으니, 다시 좀 써봐야하지 않겠니...하는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으니 나름의 효과는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크게 효용이 있는 독서는 못 되었다. 말로 이렇게 저렇게 써라 이렇게 저렇게 쓰지 마라 하는 소리 백 번 읽으면 뭐해. 한 줄이라도 쓰고 또 지우고 하는 게 낫다. 아...소설가의 귓속말도 샀는데...읽기 싫어졌어...이승우 소설도 읽을 마음 사라졌어...역효과다 ㅋㅋㅋ
역시 소설가에게는 귓속말 보다 소설 한 편 더 읽는 게 낫지 싶다. 친구랑 제임스 설터 소설이랑 산문집 이야기하다가도 그 소리 했다. 산문집은 안 사도 돼...난 팔았어...뭐 이런 거...그런데도 이상하게 소설 좋아하면서도 소설 진짜 안 읽는 나새끼야...지난 달에 열일곱 권 읽었는데 그 중 일곱 권만 소설이야...이번 달에는 소설을 좀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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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2-01 23:0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사면서 열반님과 같은 생각으로 자기검열 했습니다!ㅠ 그 결과 이승우작가님이라 타협했지만 속으로 음모론 여러편 썼네요!
아직 읽지 못했지만 다른 작가들을위해서 라도 이번 작품집이 좋았으면 합니다!ㅎ

반유행열반인 2021-02-02 06:58   좋아요 1 | URL
읽고 고견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ㅎㅎ 소설들이야...좋겠지요 잘 썼으니 상을 줬을 것이고 그러길 바라고요. 속으로 쓰신 음모론 여러 편도 궁금하네요 ㅋㅋㅋ

미미 2021-02-01 23: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이런 쓴소리 올려주실 때 좀 많이 멋져요!!

반유행열반인 2021-02-02 06:59   좋아요 1 | URL
아...방구석 장비 여포라 글로만 이러고 실제로는 쭈글이일 걸요 ㅋㅋㅋ그래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Yeagene 2021-02-01 23: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정말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세요...올해 이승우가 이상 문학상 대상 받았다고 해서 윙?했어요...아니 후배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단물만 빼먹는 것 같잖아요..;;; 진짜 황당...;;;

반유행열반인 2021-02-02 07:00   좋아요 2 | URL
제가 극단적인 표현을 썼습니다만 잘 썼으니 대상이겠지...그러나 아직은 저 수상작들을 읽을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 싶네요 ㅋㅋㅋ그냥 그런 후배들의 노력 치사하는 말 한 마디라도 보탰으면 덜 꼴보기 싫었을 거 같아요.

scott 2021-02-02 00: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승우 작가가 올해 갑자기 배로 늘어난 상금 오천만원 받고 한수상소감에서[소설로 소설가가 자기가 한일로 상을 받는 것은 규칙과 반복이 지배하는 사무원의 사무실로 갑자기 낯선 손님들이 찾아 오는것과 같은 사건으로 손님들에게 그이유를 따져 묻는 대신 다시 사무원처럼 내일을 하려고 한다.]ㅋㅋ후배들한테 전혀 미안함 부끄러움 없음요 ㅋㅋㅋ열반인님 지적 쵝오!

반유행열반인 2021-02-02 07:01   좋아요 2 | URL
소감 원문 인용해주셨군요 ㅋㅋㅋ상금은 심지어 늘었구나 거부할 수 없는 돈의 유혹도 있었겠네요....

바람돌이 2021-02-02 00: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승우 작가가 이런 말을 했군요. 아 이건 정말 한국 문학계를 대표할만한 사람으로서 할만한 말은 아니지 싶은데 차라리 침묵하시지.... 뛰어난 문학적 능력이 작가에 대한 존경심으로 이어지지 않는 장면을 또 목격하게 되어 씁쓸하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02-02 07:03   좋아요 2 | URL
저게 그냥 나는 이래서 받았다- 로만 들려도 괜찮겠는데 소설가가 사무원처럼 손님 맞이 해야지 그걸 거부하고 그걸로 쓰네 마네 난리니 하는 듯한 (후배들이 좀 지나쳤네) 느낌까지 받는 건 제가 망상이 심한 거겠죠...

붕붕툐툐 2021-02-02 02:5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호오~ 적절한 비판에 끄덕끄덕.. 반열님의 글쓰기에 제가 다 기대가 되는군요~ 소설 별루라면서 소설만 읽어재끼는 나새끼도 있어요..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2-02 07:04   좋아요 1 | URL
읽다보면 언젠가는 붕붕툐툐님께 딱 맞는 소설에 빠져드시지 않을까요 ㅎㅎㅎ제가 적절하게 지적하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기사문 보고 아 정말 심하네 하고 공감하며 옮겨온 수준이라 ㅋ

하나 2021-02-02 03: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상문학상은 좀 씁쓸.. 저는 최근 소설은 괜찮게 읽었는데, 싫으셨던 문장 이승우 작법 특징인 거 같아요. 첫 문장에 했던 말 마지막에 뒤집기~ 주로 에세이에서 습관처럼 쓰시는 듯.. 저도 소설가의 귓속말 이후에 모르는 사람 손이 안 가서 소설 먼저 읽을 걸! 했었어여 ㅋㅋㅋ 산문집은 안 사도 돼... 하면서 또 사는 나새끼222 (이 시간에 댓글달면 혼날텐데...)

반유행열반인 2021-02-02 07:06   좋아요 2 | URL
지금은 쿨쿨 주무시겠군요ㅎㅎ(혼은 안 내기로 한다 내가 뭐라고 ㅋㅋㅋ) 저는 모르는 사람만 읽었는데 나쁘지는 않았는데 딱 맞는 작가는 아닌 거 같아요. 기독교적 사건에 대한 비유 같은 걸 산문집에서도 잘 하시는 거 같은데 그게 저랑 안 맞는 건지. 본의 아니게 이승우 성토장이 되어서 이승우 팬들이 몰려와서 때릴 게 또 걱정이 되고 말았다....

han22598 2021-02-02 06: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능력과 인성(?)은 아주 별개는 아니지만 상관관계는 거의 없다고 보여져요. 이승우 작가 책 한권밖에 안 읽어서 덜 억울하네요 ㅋ

반유행열반인 2021-02-02 07:08   좋아요 2 | URL
능력과 인성의 상관관계 예술에 국한해서는 뭔가 음의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ㅋㅋㅋ 저도 겨우 두 권째인데 이걸로 쉽사리 읽기 포기하시지는 않는 걸로 ㅋㅋㅋ소설가는 소설로 평가받는 게 맞긴 한 거 같아요. 그치만 저런 태도는 중견 작가 소설가들의 선배 소설가 지망생 가르치는 입장에서 좋은 본보기는 아니지 않나 싶은 마음에 불평이 길었네요 ㅋㅋㅋ

잠자냥 2021-02-02 09: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승우에 대한 평 공감합니다. 수상 소감 정말 뻔뻔하기가... 휴......
게다가 지적하신 것처럼 이번 이상문학상에 실린 작품 대부분이 젊은 작가들을 배제했다고 하더라고요. 의도적 배제겠지요. 그런 상 받으면서 그런 수상 소감이라니..

반유행열반인 2021-02-02 10:05   좋아요 1 | URL
그냥 안 보고 굳이 수록작가 보고 싶으면 각자 단행본 내면 보는 걸로 소심하게 작년 수상 거부 작가들을 지지하려고 합니다... 윤이형 내놔 엉엉

syo 2021-02-05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똥이네..... 💩
문장으로 뭉개려 시도했군요 ㅋㅋㅋ 수상 소감 겁나 멋있었어도 용서해줄 가능성이 희박한데 뭐야 저게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2-05 16:03   좋아요 0 | URL
뭐야 저게 진짜 ㅋㅋㅋㅋ
 
[eBook] 성적 동의 - 지금 강조해야 할 것
밀레나 포포바 지음, 함현주 옮김 / 마티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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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9 밀레나 포포바.

살면서 동의라는 말을 어디서 가장 많이 접할까. 나는 상거래나 사이트 이용, 복지 지원 같은 공적 상황에서 ‘개인 정보 수집 및 이용에 동의하십니까’ 하는 물음에 동의함, 을 체크하지 않으면 해당 서비스 이용이 어렵거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서 주로 마주쳤다. 어차피 동의함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데 왜 묻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법률적 문제 상황을 면피하기 위한 동의 말고, 이 책은 개인 간 성적 교류 또는 관계 맺음을 위해 행위 이전에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정에 관해 파고든다. 다양한 성폭력 사건이 폭로되고 드러나는 상황에서 법에서 지정한 ‘강간’이나 ‘강제 추행’, ‘성희롱’ 등의 문제를 개별적으로 살피는 것이 아니라, 성적 동의 여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나름의 의의가 있다. 우선 여성이 마주하는 성적 침해 상황은 단순히 강제 성기 삽입으로 국한할 수 없는 다양한 경우가 있고 이를 모두 다룰 여지가 생긴다. 원치 않는 신체접촉은 신체 부위만큼이나 다양하고, 성적 수치심과 위협을 느끼게 만드는 표현 또한 너무나 창의적이다. 너무나 참신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은 재미있어 하고 웃어 넘기고 마는데 막상 그 말과 행동의 대상이 되어 당하는 사람은 멘탈이 박살이 나고 그런 장면이 알려졌다는 사실, 다시 겪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 만으로도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또한 어디까지를 성이라고 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다시 고려하게 된다. 법에서의 강간은 지극히 이성애자, 삽입 섹스 중심의 성애를 종착지로 보는데, 동성이 저지르는, 성기가 개입되지 않는, 성적 목적 또는 경제적 목적으로 저지르는 성적 침해의 경계가 생각보다 넓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추행, 모욕, 성희롱, 상해, 폭행 등으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다른 형법이 있지 않냐 물을 수 있지만 그런 과정 자체가 소수자와 이성애 지배적 관념의 위계를 만든다. (피해 정도에 상관 없이 형량도 약하고 사후 조치도 달라진다.)

성적 동의와 관계된 상황을 형법적(범죄 상황), 법률적(민사적 손해 여부와 배상)인 부분에 국한할 수 없다는 의견과 성과 관계된 담론이 문화적으로 구성되고 권력의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그래서 여기에서도 푸코가 나오죠…)에는 수긍이 갔다. 대중문화가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끼치고 그래서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대안을 모색할 때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도 일부 그럴 수도 있겠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소설과 영화, 팬픽문화, 섹스 칼럼이 동의 문화에 줄 수 있는 영향력에 관심을 할애한다. 정교하지는 않지만 생각할 만한 부분이긴 했다.
그렇지만 사법절차의 2차 가해나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무력감 때문에 이러한 문제에서 법 이외의 해결책을 더 나은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약간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미투운동이 그나마 소기의 효과나마 얻었던 것은 폭로와 함께 이슈가 되고, 가해자의 잘못을 비난하고 피해자를 지지하는 여론이 형성되어 얻은 부분도 있지만, 뒤늦게나마 가해자가 수사절차를 거치고 법정 앞에 서고 그 결과 일부라도 나쁜놈들이 처벌을 받고, 그래서 자신들이 그런 짓을 했을 때 잃게 될 것들을 직시하게 되고 (그래서 정치 생명 끝났다 생각하고 삶을 버리든가) 그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변형적 정의는 처벌이나 응보적 목적보다는 교육과 교화를 중시하는 청소년 (또래)법정 같은 데서는 많이 강조되고 있고, 성인이 저지른 성적 침해에 대해 회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완적으로 사용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법적인 조치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강제력이 없는 조치에 누군가에게 위력과 폭력으로 대응하던 사람이 응할지 조차 의문이 든다. 처벌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대안적 조치를 피해자가 수락하도록 종용될 가능성도 우려가 되었다. 다만 사법 절차 중 유죄나 무죄 여부에 관계 없이 피해 회복과 교육의 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은 고려해볼 만 해 보였다.

책을 읽으면서 지나온 삶에서 겪은 일에 대한 인식도 약간 바뀌었다. 친밀함을 느낀 이들에게 성적인 제안을 했다가 까인 일이 과거에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는가, 하면서 자존감이 하락하고 실패한 연애에 대한 자괴감만 늘었다. 내게 노 라고 말한 친구들은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친구로 잘 지냈고 다시 나를 만나거나 연락하는데 스스럼 없이 지냈다. 그러니까 어쩌면 친구로는 좋지만 더 나아가는 건 아니에요, 라고 정확히 답해준 그 사람들에게 고마워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동의 여부를 묻고, 노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재차 묻고, 다시 노라고 하는 그 과정이 성별이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반복된 제안은 상대에게는(내가 여자이고 위력을 쓸만한 신체능력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상황 자체가 어느 정도 폭력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심히 반성하게 되었다.
반대로 나에게 성적인 침해는 그런 물음이나 혹은 거절할 여지 없이 일어났다. 잘 알지도 못하고 호감을 느끼지 않는 상대, 그런 사람들이 자신이 순간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의 신체 접촉을 시도했고, 성적인 말을 던졌고, 그들 중 아무도 사과하거나 처벌받거나 그로 인해 뭔가를 잃지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조금 덤덤해지고 울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되었지만, 십년 이십년 가까이 지났어도 되돌아보는 나의 가슴은 서늘해진다.

책을 보던 도중 우연히 상품평 페이지에서 별점 테러해 놓은 걸 보고 조금 놀랐다. 내용을 보면 분명 책은 읽지도 않았고, 책이 다루는 주제나 개념도 모르면서, 뜬금 없이 상상이니, 사생활 침해니, 피해망상이니, 판타지니 하는 말을 끄적여 놓았는지. 이 책이야 말로 뭐가 잘못인지 하면 안 되는 짓인지도 모르고 성범죄 저질러서 철컹철컹 하는 일 없이 건전하고 원만한 사회 생활하라고 친절히 가르쳐주는 건데 좀 읽어보지 않겠습니까. 아니 이미 철컹철컹 한 뒤라 억울하고 속상해서 그러는 거면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더 읽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더 나은 삶을 위한 권유일 뿐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재작년에 읽은 ‘섹스하는 삶’이라는 책에서 허락해라, 거기에다 거절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읽고 좋았다. 노, 라고 말하는 상대에게 자기 자신을 보호해줘서 고마워, 라고 말하는 법을 책은 알려주었다. 우선 묻고, 거기에 거절당하는 것이 치욕이나 자존감 하락의 지점이 아니라 오히려 고마운 일이라고 가르치는 부분이 이 책과 연결할 만한 부분으로 읽혔다. 어린이 책 중에 ‘동의:너와 나 사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레이첼 브라이언)이 나온 것을 마침 알게 되어 나도 읽어보고 꼬맹이한테도 권할 예정이다. 어려서부터 예의를 갖추며 거절하는 법, 그런 거절을 상처 받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 그래서 남에게 어떤 강요나 강압을 저지르지 않는 삶의 태도를 여자 남자 모두에게 가르치는 일이 정말 필요한 것 같다.


+밑줄 긋기
-강간 문화는 가해자가 성폭력을 저지르기는 쉽고,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고 그에 맞는 지원을 받는 것은 어렵게 만드는 사고방식과 관습, 사회 구조의 총체다. 여기에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정관념이 포함된다(성적으로 남성은 적극적이고 여성은 소극적이라고 여기며, 이에 어긋나는 여성은 ‘음탕하다’라고 낙인찍는 사회 분위기 등). 또 강간으로 판단되는 상황과 ‘진짜’ 강간 피해자라면 응당 어떤 행동을 보이리라고 단정 짓는 것도 강간 문화의 일면이다(육체적 폭력이 수반된 경우에만 ‘진짜’ 강간이라는 인식, ‘진짜’ 피해자라면 사건을 즉시 신고할 것이고 정신적 외상이 심하겠으나 지나치게 히스테리를 부리지는 않으리라는 인식). 강간범은 어두운 골목에서 튀어나온 괴물이며, 남자친구나 아버지, 대학생이나 정치인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 또한 강간 문화의 일부다.

-페미니즘 사상 내에서도 동의의 개념, 정의, 어원에 대한 여러 견해가 경쟁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이론과 개념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성폭력과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찾아 이해하는 것이다.

-신체적 자율권이란 내가 하는 행동, 내 몸에 일어날 일, 내 몸과 접촉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접촉을 어떤 식으로 허락할지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외부의 압력이나 강제, 어떠한 권력 행사도 없어야 한다.

-성 비평 접근법은 문화와 지배적 사고가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형성하고 신체적 자율권을 제한하는 요인이라고 본다. 그리고 성관계에 대해 자유롭게 ‘싫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묻고 탐색한다. 자유롭게 ‘싫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에서야 비로소 ‘좋다’라는 말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강간 신화는 성폭력의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묻고 피해자를 비난하도록 몰아가며, 개개인이 성폭력과 피해 당사자를 대하는 태도(친구가 성폭력을 당했다고 털어놨을 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또는 보일 것인가])와 사법 제도가 취하는 관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성적 동의는 나와 상대방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마땅히 보여야 하는 신중함과 배려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내가 그런 것처럼 성관계를 맺을 의사가 상대방에게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법률 계약은 성적 동의와 아무 관련이 없다. 동의는 소통과 배려, 인간적 존중이 있어야 가능하고 이런 것들은 법으로 규제되지 않는다.

-동의에 관한 한 우리가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물어보기다.

-‘조건부’ 동의란 “좋아, 나도 너와 섹스하고 싶어. 하지만 이런저런 조건이 갖춰졌을 때만 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행위를 하는 동안 언제든 무슨 이유로든 마음을 바꾸거나 동의를 철회할 수 있고, 자신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행위를 중단하고 싶다면 “그만하고 싶어”라고 말하자.

-섹스를 자기 욕구 만족을 위해 타인의 몸을 이용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면서 서로 행복한 성적 경험을 공유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나뿐 아니라 상대방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해진다. 즉, 상대가 만족하는지, 내 행동을 상대가 좋아하는지, 여전히 동의하는지 거듭 확인해야 한다.

-언제든지, 어떤 이유로든지 싫다는 의사를 표현할 수 있으며, 꼭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싫다고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신체 자율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곧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 것이자 애매하거나 정중한 표현 또한 명확한 거절이라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직 섹스만이 관계의 목표인 양 자신과 타인을 압박할 필요는 전혀 없다.

-경계는 내가 괜찮은 것과 괜찮지 않은 것 사이에 놓인 선이다. 성적 상황뿐 아니라 여타 사회적인 상황, 타인과의 일상적 관계와도 관련이 있다.

-성적 상황에서라면 특정 정도의 접촉과 행동은 괜찮지만 그 이상은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 지금 당장은 성관계를 원하지 않는다거나 어떤 사람과는 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 내가 정한 경계이다.
내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은 무척 까다롭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알고 선을 정하는 일은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이지만, 자신의 경계에 대해 타인과 이야기해야만 개인의 자율권 행사와 사회적 규약 존중 사이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다.

-동의 협상은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난해한 일이지만 법이나 계약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신체적 자율권 존중을 근간으로 삼고 성관계를 단일한 형태로 규정하는 성 각본을 흔들고 해체하는 것이다. 성기 삽입뿐 아니라 모든 성적 행동에 동의를 구해야 하며, 어떤 대답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상대방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동의가 유효한지 확인하는 것,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오래된 관계에서는 원치 않는 성관계를 ‘관계 유지’라는 말로 포장한다. 꼭 원하는 건 아니지만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거나 현재의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상대방도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해준다는 이유로 성관계를 하는 것이다. 한편, 가벼운 만남에서 원치 않는 성관계를 경험한 여성들은 사회에서 말하는 ‘성적으로 진보한 여성’이라는 관점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원치 않는 성관계에 대한 남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자는 성관계에 적극적이어야 하고 항상 성관계를 원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에 압박을 받는다고 말한다. 성적 지향과 관계의 유형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여성과 만나는 여성들은 그들 사이에서 성관계의 빈도나 횟수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려고 의식적으로 애쓴다. 그 관계에서 로맨틱하고 섹슈얼한 성격이 사라지면 자신들의 관계가 우정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권력이 개인의 의도적 행위와 자율성을 어떤 식으로 제한하는지를 보여준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권력이 담론을 통해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세계관을 형성하고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주체, 신체, 실천을 구성하고 생산한다. 또한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사방으로 작용한다. 국가가 행사하는 힘만이 권력이 아니다. 권력은 경쟁적이고 모순적인 방식으로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행사되는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관리할 모든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신자유주의다. 여기엔 우리에게는 더 나은 삶을 위한 행동을 결정할 능력이 있다는 가정이 숨어 있는데, 이는 여전히 문제를 겪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결정을 한 우리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는 소리다. 당연히 개인의 통제력을 넘어서는 구조적 요소들은 간과된다. 하지만 임금이나 인사고과 때문에 일하는 시간을 줄이지 못할 수 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여러 개 하느라 운동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또 시간이나 돈의 제약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는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함으로써 구조적 착취와 억압을 은폐한다.

-하지만 반대로 소수자에게 응원을 건네는 포르노가 있을 수 있다. 각자의 성 정체성과 경험을 돌아보고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해보는 마중물의 역할을 포르노가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가능성들이 개인이 성적 자기 결정권과 신체 자율권을 행사하고, 더 나아가 성과 관련한 사회 체계에 도전하는 데 일조할지도 모를 일이다.

-2018년 5월 16일 자 『틴 보그』에는 애널 섹스에 관한 글이 게재되었다. 성 소수자 권리와 성적 동의가 핵심 주제였음에도 도입부에는 애널 섹스라는 주제가 불편한 독자는 다른 이슈나 건강에 관한 글로 언제든 건너뛰어도 좋다고 안내한다. 이 글은 사전에 동의 협상이 있어야 하며 동의는 언제든 철회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남녀 성기 결합만이 유일한 성관계 방식이라는 인식을 깨뜨리는 시도를 계속한다. 그리고 애널 섹스가 일탈적이고 일종의 성적 학대에 해당한다거나 ‘포르노에서나 하는’ 행위라고 일축하지 않고, 많은 이가 즐기는 섹스의 형태임을 인정한다. 또한 항문에 삽입되는 것을 페니스로 단정하지 않고 성 중립적 언어를 사용한다. 어쩌면 ‘포르노’에서 접했을 성행위 이미지를 일상 속으로, 그리고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환경으로 가져오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행위로 변환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다.

-법 제도 자체가 성폭력 사건을 공정하게 다루는 데 도움이 안 되는 데다 피해자 대부분이 법 영역에서 2차 피해를 입는다. 관련 법조문은 섹슈얼리티와 행위자의 의사, 신체적 자율권을 개의치 않는 듯하다. 그래서 법적 개선을 추구하기보다 법에 얽매이지 않고 성폭력 문제를 다루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변형적 정의는 가해자 처벌보다 범죄가 야기한 모든 피해를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또한 사건과 관련 있는 모든 당사자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고 대화와 이해를 촉진하는 자발적 과정으로 실천된다. 재발 방지를 넘어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찾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접근들은 대체로 이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당사자 모두 발언할 기회를 가지며, 가해자가 자신이 한 잘못을 이해하고 스스로 변할 수 있게 돕는 수단을 고민한다. 가해자의 인정과 사과, 가해 사실 공개, 재발 방지 교육 프로그램 참석 등이 이 과정 끝에 나오는 결과물이다.

-버크는 미투가 ‘공감을 통해 얻는 힘’이라고 말한다. 성폭력 생존자들이 이 말을 주고받는 것은 ‘당신의 말을 믿습니다. 당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압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성폭력 피해자의 말을 불신하는 문화에서 ‘나도’라는 한마디는 엄청난 힘을 갖는다.

-미투 운동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피해를 입고도 비난받았던 성폭력 생존자들이 공개적으로 증언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피해자를 향한 원색적인 조롱은 계속됐고 그들의 폭로와 증언을 믿지 않거나 다시금 침묵하도록 종용하는 일도 사라지지 않았다. 변화의 조짐이 약하게 보이고 있지만, 아직은 피해자의 말을 묵살하기가 조금(단지 조금) 어려워진 정도이다. 처벌받는 가해자는 일부(아주 일부)일 뿐이고, 법과 법조인들이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방식도 딱 그만큼만 변했다. 하지만 성적 동의는 이제 뜨거운 화두가 되었다(긍정적인 방향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이제 우리는 누군가에게 포옹을 제안하는 적절하고 일반적인 방식을 고민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거절의 표현을 더 잘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거절 의사가 직접적이든 알아채기 힘들든 상관없이.
두 번째는 강간 문화를 굳건히 지탱하는 담론을 통한 권력 작용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다. 우리는 강박적 성애 개념이 소외 집단에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더 잘 이해해야 한다. 또한 전통적인 성 역할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지배적 담론을 끊임없이 추궁하고, ‘정상적’이고 ‘인정되는’ 성관계와 그것의 ‘정해진 방식’을 깨야 한다.

-교육에서 신체적 자율권을 원칙으로 삼는다는 것은, 아이에게 꼭 해야 하는 일의 이유를 시간을 들여 신중히 설명한다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아이가 싫어하는 일의 이유를 이해하는 데 시간을 들이고 갈등이 생기면 참신한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이다.

-가령 여학생이 남학생의 행동 교정 및 진정에 영향을 주리라 기대하면서 여자‒남자를 짝지어 앉히는 것 같은 교육 관행은 어쩌면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과 억지로 가까이 지내게 강요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는 남성의 행동을 여성이 책임지게 하는 성차별적 문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꼴이다. 교복과 복장 규정은 아이들의 자율권을 박탈하며 자기 표현 능력을 제한하다.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항하여 개선을 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동의 문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 지나칠 수 없는 과제이다.

-강간 문화는 가부장제, 자본주의, 인종차별, 장애인 차별, 시스젠더‒이성애 중심주의, 강박적 성애, 그리고 이 시스템의 수혜자들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권력과 억압 시스템의 일부다. 사적 경계를 침해하고도 그 사실을 무마하고 묵살하는 태도와 섹슈얼리티를 우월 집단과 열등 집단을 나누는 잣대로 삼고 성폭력을 ‘합법화’하며 피해자를 탓하고 2차 피해를 스스럼없이 입히는 사회 환경도 마찬가지다. 이 시스템은 변화를 막고 그에 저항해 살아남았다.
역사적으로 강간 문화는 피해자에 대한 침묵 강요, 남성 성욕 담론이나 강박적 성애 개념처럼 지배적 관념에 의해 재생산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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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1-29 2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자녀들이 부러워지네요. 근데 진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공부가 필요한 일인 거 같아요. 전에 비슷한 주제의 책 리뷰(재작년에 읽은 ‘섹스하는 삶’이라는 책에서 허락해라, 거기에다 거절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읽고 좋았다.˝ )에서 말씀하신 것과도 이어지는 거 같은데,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씩씩하게 ˝경계˝를 확립하면서 살 수 있었을 거 같은데. ^^

반유행열반인 2021-01-29 22:35   좋아요 2 | URL
미리 아니라 지금 알아도 괜찮아요ㅎㅎ아쉽지만 그때 그래서 지금 더 씩씩할 수 이써!!! ㅋㅋㅋ와이라고 애들 보는 만화 시리즈에 성교육 있길래 중고로 사다 놓고 먼저 보니 이거 좀 아니다 싶은 게 많이 있더라구요? 그래도 만화니까 입문 허들 낮으니 일단 보라 그러고 보충설명 하고 다른 독서 권하면 되지, 맘 먹고 내밀었더니 필요없어! 이러고 거부하고 도망감 ㅋㅋㅋ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나 싶어 기다리기로 ㅋㅋㅋ엄마만 괜히 각오 충만 앞서 나갔다 ㅋㅋㅋ

하나 2021-01-29 22:4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 열반인님네 넘 귀여워 엄마만 괜히 각오 충만 앞서 나갔다 ㅋㅋㅋㅋ 저는 큰 어린이님에게 자극 받아서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어른 버전으로 읽었어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1-29 22:45   좋아요 2 | URL
어려서 그냥 무슨 괴기담이나 에스에프로 알았는데 커서 보니까 잘 썼더라구요...배경묘사고 인물묘사고 심리묘사고 다 훌륭해 ㅋㅋㅋ형식도 막 이야기 전하고 편지남기고 괜히 후대까지 읽히는 거 아니다...인간 내면 보편성에다 형식적 실험도 겸해야 남는 거다...(또 또 엄마가 너무 앞서 나간다 ㅋㅋㅋㅋ)

하나 2021-01-29 22:49   좋아요 2 | URL
와 근데 열반인님이랑 아이랑 진짜 좋은 친구될 거 같아여 독서모임 벌써 하고 있어 ㅋㅋㅋㅋ 저도 생각보다 형식에 신경 많이 썼구나 생각했어요 편지가 있어야 할 곳에 있으니 또 좋더구만요(엄마 친구도 같이 앞서 나간다 ㅋㅋㅋ)

공쟝쟝 2021-01-30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녕^^ 푸코^^ 반가워^^ 요즘 통 못읽었네.. 애정은 식지 않았어.. 우리..다...다음달에 만나...^^

반유행열반인 2021-01-30 17:13   좋아요 1 | URL
슬쩍 나왔다 가더라규요 대머리 넌 안 끼는데가 없냐 눈치 없이...

2021-01-31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1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1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1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1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1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31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1-01-31 17: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중요한 문제들을 얘기하는 것 같네요..그런데 이런 책 읽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벌점테러하는 인간들이 있더라구요.정말 왜 그러는지...-_-;;;

반유행열반인 2021-01-31 17:22   좋아요 3 | URL
피해를 줄이고 없애고 침해된 권리 회복하자는 거에 억울해 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궁금하긴 해요. 왜 그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하도록 사고구조가 짜여지는 지도...사실 저도 불과 얼마전만 해도 여혐적 사고를 완전 탈피했던 건 아니라 자라온 분위기나 누군가 감내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문화 같은 게 생각보다 영향이 큰 것도 같구요.

붕붕툐툐 2021-02-01 14: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필요한 일인거 같아요. 사실 성적인 부분 말고도 정말 많은 부분에서 진짜 동의가 가능한 사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말씀하신 정보동의 같은 것도 말이죠. 일단 상대의 경계를 존중하는 자세를 저부터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금 다짐하고 갑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2-01 17:53   좋아요 1 | URL
네 저도 남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고 허락을 구하고 조심히 살피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기울이려고 합니다. 반성할 일이 넘쳐.... ㅋㅋㅋㅋㅋ

2021-02-01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1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1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커피견문록 (보급판 문고본) - 에디오피아에서 브라질까지 어느 커피광이 5대륙을 누비며 쓴 커피의 문화사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이창신 옮김 / 이마고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20210129 스튜어트 리 앨런.

원제 The Devil’s Cup.

알라딘에서 첫 원두를 구매한 때가 겨우 일 년 전이다. 그 이후 생긴 일: 알라딘 원두 14종을 사 먹었다(…) 드리퍼를 갖췄다. 드립 주전자도 갖췄다. 캡슐 머신도 갖췄다. 캡슐도 200개 넘게 샀다. 그만 갖춰 제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원두를 내려마실 때마다 검색을 해서 몰랐던 곳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어디 커피 산지에 관한 책이 없나...찾아보니 있었다.

우리 부모 세대는 과립 형태의 인스턴트 커피에 설탕과 프림을 섞어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 커피를 다방에서 시켜 먹는 아빠 옆에 앉아 있으면 다방 언니가 빨대 꽂은 야쿠르트 하나 가져다 주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맥심이가 한 봉지 안에 그 세 개를 황금비율로 섞어서 툭 까 넣고 뜨거운 물만 부어 휘휘 저어 마시면 되는 진짜 인스턴트를 만들어 해외로 수출하는 경지에까지 갔다. 이건 (사무실이나 작업장의) 노예야 일해라 포션 쯤으로 여전히 롱런하고 있다.
다음 세대는 커피나 프림 넣지 않고 원두만 물로 추출해 먹는 아메리카노를 카페에서 사 먹기 시작했다. 쓴 거 싫어하는 사람들은 우유에 에스프레소 타고 카라멜이나 바닐라시럽 같은 달달한 걸 탄 라떼류를 먹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쓰고 시커먼 커피는 이름도 여러가지던데 차이가 뭐야…1도 모르겠다... 했던 때도 있었다.

-에스프레소: 기계로 원두에 열과 압력을 가해 진한 커피 원액 추출한다. 그대로도 마시고, 커피 음료 만드는 기본 원액이 되기도 한다.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에다 물이나 얼음 타서 마신다.
-라떼: 우유에다가 에스프레소 타고 거기에 무슨 시럽이나 맛내는 재료 넣어서 신제품(?)만든다. 돌체라떼(연유), 흑당라떼(흑설탕이나 원당 시럽) 같은 거…
-드립 커피: 기계 말고 커피 내리는 깔때기에 여과지 얹고 간 원두 붓고 그 위로 물 부어 여과시켜서 방울방울 떨궈 내려 먹는다. (초딩 때 실험관찰 시간에 혼합물 거르기 거름종이 실험하는 거랑 비슷함)
-콜드 브루(더치): 원두에 차가운 물 부어 오랫동안 내리는 특수 기구 같은 게 있는데, 그렇게 내린 원액을 에스프레소 원액처럼 여기저기 넣어 아메리카노나 라떼 해 먹는다.
이런 걸 구분하고 마신 게 얼마 안 되었다. 지금은 저 모든 종류를 돌려가며 마시지...

커피 종류와 이름만 들으면 커피 마시는 문화의 시작이 아메리카나 유럽일 것 같지만, 커피 열매는 더운 열대기후 고산지대나 아열대기후에서 잘 자라고 냉온대기후 지역에서는 온실을 동원하지 않는 이상 재배가 어렵다. 그러니까 커피의 시작은 더운 나라들이고, 오늘날 대부분 저개발국에 속한 지역이 일찍부터 커피를 마셨고, 지금도 그곳에서 커피를 재배해 전 세계로 수출한다.

커피는 커피라는 이름 이전에 부나, 카와, 알모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잊힌 이름들이었다. 다양한 이름 만큼이나 커피 만드는 방법도 동네별로 다양했다. 막판에 원두에 계란 알맹이랑 껍질이랑 이거저거 다 때려넣고 향이야 날아가거나 말거나 달달 달여 먹는 충격적인 방식이 나오는데, 이게 예전 미국 커피 레시피였다. (심지어 백악관 요리 레시피 책에도 실림…) 오히려 스타벅스야 말로 미국식 커피 제조법 버리고 이탈리아식 커피 만드는 방식 고집해서 인기 끈 케이스라고…(그런데 원두맛은 왜 그렇게 쓰고 탄 맛이죠…)

이 책은 다양한 커피 산지와, 유럽과 미국 이전에 커피 문화가 번성했던 아프리카, 서아시아, 남부아시아를 주 무대로 한 여행기였다. 캘리포니아 출신 자유로운 방랑자인 저자는 케냐, 에티오피아, 지부티, 예멘, 터키, 인도, 오스트리아, 프랑스, 브라질, 미국의 온갖 도시를 거치며 커피가 퍼져나간 경로를 추적한다.
초반부터 저자의 똘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1988년 케냐에 있던 스튜어트는 에티오피아 커피가 끝내준다는 말에 총든 국경수비대한테 사정해서 국경 넘어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돌아온다. 다음 날 한 번 더 마시러 가…(두 번째는 통과 안 시켜줘서 못 먹고 돌아옴...) 에티오피아의 하레르에 시인 랭보가 커피 장사 하러 갔다가 망하고 돌아온 건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거기에 랭보 저택이 있고 현지인들이 람보, 람보, 하고 부르는 것도 몰랐다. 사실 랭보도 잘 모르지만…
스튜어트가 탄 아프리카 동부에서 예멘 건너가는 허름한 배 안에는 소말리아 난민 아이들이 있었다. 아예 나라라는 게 무너진 곳에서 국민들이 카트나 씹고 앉은 역시나 망한 나라로 떠나는 난민들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둘다 외교부 지정 여행금지 국가다…)
오스만제국이 빈 쳐들어갔다가 전쟁 망하고 도망가면서 두고 간 원두가 유럽 카페 개업의 밑천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커피가 아프리카와 이슬람의 서아시아에서는 도입 초기에 종교 의식에 쓰였고, 약으로 여긴 곳도 많고, 환각제 취급 받으며 이슬람이나 기독교나 종교적 이유로 탄압을 시도한 시기가 있다는 것도(심지어 현대 미국에서도 약물로 취급해 규제를 시도함) 재미있는 지점이었다. 확실히 커피를 마시면 읽고 쓰고 일할 때 도핑되는 느낌은 있다. 너무 마셔서 밤에 못 자고 상념에 젖는 날은 괴롭지… 커피가 종교와 자주 연관되다보니 저자는 여행 도중 커피를 사용하는 (또는 지금은 커피가 빠졌지만 나머지 의례는 남아 있는) 여러 종교 의식을 참관한다. 커피를 추적하는 도중 브라질리아의 외계인 믿는 신흥종교 교단에 끌려 갔다가 시껍하고 도망쳐 나오기도 한다.
프랑스 갔을 때는 루이14세랑 사드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둘다 변비탈출하고 싶어서 커피를 애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 대부분이 서프라이즈나 믿거나 말거나 같지만, 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쪽 자료는 직접 현지 답사하고 주민에게 탐문하고 현지 도서관 자료 찾아 적어 놓은 거니 그 이상 사실 여부 확인할 길이 없고, 그렇게라도 알려준 노고를 칭찬해야겠다.
인도에서 양기(이름부터 느낌 이상한...)에게 사기 당해 프랑스 시골구석까지 가는 에피소드도 길게 이어지는데 덕분에 라자스탄 자이푸르라는 지역을 구글링으로 찾아보았다. 핑크시티라고, 도시에 온통 분홍분홍하고 화려한 궁전 유적이 많이 남아있었다. 아이참 18세기면 무술제국 말미냐? 영국놈들 쳐들어오는데 황제 새끼들은 인민 착취해서 저런 사치나 하고 있었구나 하고 괜히 욕나왔다. ㅋㅋㅋ

1999년에 나온 책이고 남자 저자라 그런가 가끔 농담이라고 던지는 여성 비하적이고 성적인 빻은 소리들이 거슬리긴 했지만, 아주 가끔이고 수위도 약한 편이라 넘길 만한 수준이었다. 이제 막 인터넷이 보급되고 토론방, 이메일 같은 게 유행하던 시기라 그 초기의 모습을 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순수 카페인 들고가다 코카인으로 오해 받고 경찰한테 혼나고 다 쏟아버린 경험을 토론방에 올리니까 다른 유저들이 저자 편들어주고 같이 경찰 욕해주는 게 웃겼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되게 비슷해서 ㅋㅋㅋㅋ
로부스터 품종의 최대 산지이자 소비지인 동남아시아-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등, 최근에는 중국 운남성도 차 대신 커피 산지로 바뀌고 있는데 조금 오래된 책이라 그런지 이쪽 문화권은 네덜란드가 식민지 플랜테이션 농장 만든 것 살짝 언급만 하고 여행지로 선택하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뭐 그 쪽 커피 맛 없긴 해…)
책의 마무리는 미국의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저자와 여행 동반자인 매그가 맛탱이 간 상태로 차를 멈춰서는 장면에서 끝이 난다. 미국이 약물과 커피에 취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우리는 영화나 뉴스에서 제일 잘나가는 미국의 최첨단 도시들의 화려함만 보지만, 사람 사는 곳 똑같고 미국 남부나 소도시들은 다 암울하다. 화이트 트래시라고 자국민을 조소하면서 획일화되고 특색없는 커피맛과 희망 없는 꼬라지를 결말로 한 게 뭔가 저자놈 생각보다 회의적이구나 싶었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하고 묻는다면 여기에요 여기, 한국, 코로나 때문에 카페 문닫으니까 집집마다 커피머신까지 갖추고 종류별로 열심히들 마시고 있답니다...하고 싶었다.

예사롭게 마시는 커피에 얽힌 노예무역, 식민지배, 종교탄압 등 다양한 역사를 풀어 놓으니 재미있게 읽혔다. 커피농장의 현재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다면 그것 또한 재미있을 것 같은데 저자만큼 용감하게 전 세계를 떠도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인도, 이슬람, 전부 여성들에게는 악명 높은 여행 금지 내지 적색경보 국가잖아...뒤지기 싫으면 그냥 책이랑 원두랑 구글링으로 만족해야겠다. 그래서 오늘의 아침 커피는 이탈리아 어쩌구 하는 캡슐 내린 에스프레소, 스콘이랑 먹었다. 낮에 콜롬비아 드립 커피 한 잔 먹든가 귀찮으면 믹스커피(모두가 외면한 홍삼라떼...이거 만든 남양이랑 이거 산 나새끼랑 다 죽어라….)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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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1-29 1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홈삼 아니 홍삼라떼 라는 게 있었군요!! 반유행열반인님은 드셔보았음이 틀림없음으로 추정됩니다! 비추천으로 이해했어요^^

반유행열반인 2021-01-29 12:44   좋아요 3 | URL
먹으면 은은하니 넘어가긴 하는데 내가 커피를 먹는 거 같진 않고ㅋㅋㅋ 선심쓰며 내밀어도 모두가 거부하는 아이템이라 비추합니다 ㅋㅋㅋ

syo 2021-01-29 15: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홍삼라떼! 삼이한테 처먹이고 싶은 이름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1-29 16:48   좋아요 2 | URL
삼이님이 어 이거 달달하니 맛있는데...몸에도 좋은 기분이고...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갖다 바칠까...)

Yeagene 2021-01-29 15: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진지하게 읽어나가다가 마지막 홍삼라떼에서 뿜었어요!ㅋㅋㅋ
이런 제품도 있었나요..ㅋㅋㅋ
열반인님 왜 사셨어요..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1-29 16:49   좋아요 3 | URL
그러게요 왜 샀대 나새끼야 ㅋㅋㅋㅋ흑당라떼랑 1 1하길래 배리에이션!하고 자매품 고른 것이 패착이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그냥 드립 먹었어요 오늘은 ㅋㅋㅋ

하나 2021-01-29 22: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이 쏘아올린 열반인님의 커피 견문록이네요~ 우리 열반인님 먹는 걸로 모험하는 타입이구나... ㅋㅋㅋㅋㅋㅋㅋ 저 홍삼라떼 이상하게 끌리는데 사실 옛날에 인삼껌 좋아했어요... ㅋㅋㅋㅋㅋ 잘 안 팔아서 사람들이 그거 발견하면 너 생각나서 사왔다 이러고 막 던져줌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1-29 22:36   좋아요 2 | URL
아 그럼 아마도 홍삼라떼와 사랑에 빠지실지도....진짜 향이 옛날 그 인삼껌임... ㅋㅋㅋ옛날에 나 초딩때 은단껌 두리안껌 별 게 다 있었는데 ㅋㅋㅋ

얄라알라 2021-01-29 22: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코로나 시대 위축되는 마음을 열반인님 서재 댓글 읽으며 빵빵 터뜨려 키웁니다 ㅋㅋㅋ˝먹는 걸로 모험하는 타입˝에 ˝인삼껌˝까지, 넘 유쾌합니다. 두리안 껌이라니, 이건 금시초문이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01-30 09:10   좋아요 1 | URL
저도 믿기지 않지만 두리안이 뭔지도 모를 시절 두리안껌을 씹어봐서 그런가 십수년 후 진짜 두리안을 마주했을 때 거리낌 없이 먹어지더라구요ㅋㅋㅋ그치만 홍삼라떼는...😔

공쟝쟝 2021-01-30 15: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알라딘 원두 14종 ㅋㅋㅋㅋ 저는 왜 알라딘 원두는 좀 싱겁게 느껴지죠? 아 최근에 먹은 건 맛있었는 데(기억이 ..) 핸드드립으로 찐하게 내려진거 마시고 싶을 때는 역시 스타벅스 원두입니다!! 한번 사서 갈아드셔보세요, 아니면 갈린 걸 사서 내려드셔보세요... ㅋㅋ

공쟝쟝 2021-01-30 15:57   좋아요 2 | URL
기억났어 (검색함) 이번에 나온 콜롬비아 아스무까에스 톨리마 훌륭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1-30 17:12   좋아요 2 | URL
쟝쟝님은 으른의 맛(스모키한) 거 좋아하시는 듯해요 스타벅스 캡슐 먹어봤는데 저는 으른의 맛 윽 하는 ㅋㅋㅋ알라딘이 좀 슬쩍 뽂아서 맛이 약하게 느껴지긴 해요 이번 콜롬비아도 비교적 세게 볶은 맛 같아요 카누맛 무난함ㅋㅋㅋ다시 세 보니 13종이네...한 종류 뻥튀기했네...

공쟝쟝 2021-01-31 00:36   좋아요 2 | URL
옴멈머 맞나바 저 스모키한거 좋아하나봐여 왜냐면 제가 스모커거덩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1-31 07:39   좋아요 2 | URL
스모크핫커피리필 달이 뜨지 않고 니가 뜨는 밤- 이러는 노래 생각나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