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다정한 유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1002 강화길.

완독한 책이 없으면 독후감을 못 쓴다. 독전감이나 독중감은 뭔가 설레발 같아서. 악성 독후가미스트의 고충. 다정한 이웃님이 일주일 넘게 글이 없다고 안부를 물어주셔서 아, 내가 많이 안 읽고 있구나, 했다. 그런데 또 세어보니 9월에 11권이면 적은 게 아니잖아…ㅋㅋㅋ 그렇다고 한 주 동안 안 읽은 건 아니고 소설 ‘카산드라’도 읽다 말고, ‘향의 언어’라는 분자 구조식 가득한 책을 뭔말인지 모르겠는데 재미있어, 왠지 꼭 봐야 할 거 같아, 그리고 화학 공부도 해야 할 것 같아…하면서 보다가 도서관에 강제 반납 당해서 흑흑 울면서 다시 예약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왠지 사야겠다 하고…
그동안 책읽기 대신 한 일은 수학문제 풀기이다. 9월 보름께 시작해서 보름 만에 고1에 배우는 수학 교과서 한 권을 다 풀었다!!! 세상이 변해서 pdf파일에 짭플펜슬로 슥슥 풀고 캡쳐 찰칵찰칵해서 오답노트랑 공식노트도 허접하지만 만들어서 클라우드 노트에 저장! 신이 나서 고2에 배우는 수1도 슉 들어가서 나흘 만에 교과서 절반쯤 풀었다. 삼각함수는 나 고딩때는 고1 공통수학에서 배웠는데 수1로 갔구나…그런데 왜 어렵지…하면서도 20년 전 배웠던 부분까지는 그럭저럭 할만했다. 문제는 새로 배울 이과 수학 부분, 수2와 기하와 미적분이다!! 아무래도 고전할 것 같은데 나에게는 과외로 닳고 닳은 공대출신 조력자가 있기 때문에 든든하게 믿고(?) 일단은 문과 수학부터 연휴 내로 다 조져 놓기로 한다.

그런 상황이면 수학 공부도 재미있지만 소설 읽기는 오랜만에 꿀잼일 수 밖에 없었다. ㅋㅋㅋㅋ아침에 짧은 소설 한 권이라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이 독후가미스트의 도리..하면서 강화길을 빌렸다. 오, 이 책에는 대불호텔의 유령도 있고, 가원도 있고, 괜찮은 사람도 있고, 하여간에 다 있었다. 느슨하게 연결된다고 작가는 말하는데 그말처럼 각각의 소설로도 읽히고, 한 권이 하나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했다. 그리고 이 한 권이 한 권이 아니고 강화길이 여태 썼던, 그리고 앞으로 쓸 소설들의 모판, 안내도, 조감도, 창작노트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일단은 고교 수학으로 도망쳤습니다만 종종 소설의 세계도 들르겠습니다 이 재미있는 걸…하면서 재미있게 아침 나절 후다닥 잘 봤다.

그리하여 저는 다시 삼각함수의 세계로…코사인법칙으로 돌아갑니다…휘리릭

+사진은 고2 수학 푸는 예비 고1(?)의 오답노트 겸 공부기록장… 문제 삐꾸 같이 푼 거 보소 ㅉㅉㅉ


+밑줄 긋기
-
고택, 유령, 혼잣말하는 여자들,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여자들. 김지우는 자기 복제라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언제나 이런 이야기를 썼다.

-
사람들은 김지우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읽기보다는, 작품을 통해 그녀의 인성과 사고, 삶을 파악하려 들었다. 그녀는 마조히스트였고, 사디스트였고, 집착이 강한 인간이었고, 거짓말쟁이였고, 나약한 여자였고, 사연 있는 사람이었고, 폭력적인 인간이었고······.

-
민영은 그냥 자신이 혼자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진영이 모두와 잘 지내고 호감을 사는 사람이라면, 민영은 반대의 사람인 것이다.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균형이다. 대신 민영에게는 꿈이 있었다. 이 마을을 떠나, 자신이 선택한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곳에 애정을 품고 아쉬워하기 시작하는 순간 마음이 약해질 것이고, 겁을 먹을 것이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느슨하게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 이렇게 생각하겠지.
“그래, 이 마을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민영은 전혀 그런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다. 진영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녀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정말로 괜찮았다.

-
당시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고, 순진하게도, 사귀는 사이라면 상대를 해하거나 상처주는 말은 결코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다.

-
유족의 동의를 얻어 올해 출판될 예정인 그녀의 일기에는 자신의 사생활과 작품을 연결 지어 말하는 지긋지긋한 인간들을 향한 비판이 가득하다고 한다. 그녀는 언젠가 그들을 위한 소설을 쓰겠다는 다짐을 일기에 여러 번 썼다. 그 소설이 「빈집의 목소리」다.

-
“이렇게 계속 배우면 저도 할머니처럼 될 수 있겠죠? 어서 빨리 그렇게 되고 싶어요.”
옹주는 대답하려 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그렇게 될 거라고. 그런데 불쑥 그 말이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겨우 그 정도로는 소용없다.”

-
하지만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누가 뭘 썼는지 확신할 수 없었어. 동시에 왜 좋은지도 설명할 수가 없었어. 나쁜 점도 포함해서 말이야. 그냥 내 능력 부족이겠지. 이런 감상문을 써본 적이 없기도 했고.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 가서 이런저런 책들을 찾아보았어. 비평에 관한 글을 말이야. 하지만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 그리고 앞으로 내 삶은 그런 글을 읽고 쓰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리라는 예감이 들었어.

-
비슷한 이유로 서로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는 이미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일은 가능하면 겪지 않는 편이 좋았다. 우리는 시련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 말은 미신과 다를 바 없었다. 아무리 없애려 애써도 매번 다시 나타나는 거미를 내몰 방법이 없으니, 그냥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며 함께 사는 것. 지네를 영험한 동물이라고 믿고 사는 바로 그런 것처럼.

-
이제는 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직조한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새 내면에 쌓여 있던 이야기가 그저 폭발하듯 풀려나왔던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내가 뭔가를 이해했고, 받아들이려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복수를 다짐하는 마음. 나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원하는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고 싶은 마음.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10-02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9월 11권 수학 문제풀이 열반인님 10월인 고 2 수학 으로 점프 !^^

반유행열반인 2021-10-02 14:41   좋아요 2 | URL
점프는 못하고 슬금슬금 기어서 어떻게든 가 보겠사옵니다 ㅎㅎㅎ

Yeagene 2021-10-02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화이팅!!!♡

반유행열반인 2021-10-02 14:41   좋아요 0 | URL
화이팅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1-10-02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보는 수학 공식이네요. 저런 공부 하지 않고 좋아하는 책만 골라 볼 수 있는 지금이 좋습니다.
학창 시절엔 수학을 좋아한 적도 있었는데 이젠 겁이 나네요. 두뇌 쓰기 싫은가 봅니다.ㅋㅋ
강화길의 호수-다른 사람, 을 읽었어요. 소설 잘 쓰는 작가들은 여전히 위대해 보입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1-10-02 16:22   좋아요 2 | URL
뭔가 치매 예방되는 느낌과 현실 도피하는 감각, 거기에다 안 쓰던 뇌 굴리는 느낌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요 ㅎㅎㅎ

얄라알라 2021-10-02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흐아! 두뇌 회로 고속도로이신듯, 저 함수 옆에 찍 그어놓은 것이 무슨 줄이더냐...저는 자괴감에 ㅋㅋㅋ화이팅 합니다

11권이면 평균 4인가족 1년 읽는 책 다 합한 권수 아니던가요?^^

반유행열반인 2021-10-02 20:23   좋아요 1 | URL
올해도 백 권은 일단 넘겼는데 이백 권 찍는 일은 어렵지 싶어요 ㅋㅋ 고속도로 아니고 국도여요 ㅋㅋㅋ아닌가 지방도로인가 노면도 고르지 않네요…

새파랑 2021-10-02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완독하고 이해해야 리뷰를 쓰는 스타일이어서 글 쓰는게 쉽지 않네요. 안그래도 글도 잘 못쓰는데 😅 열반인님 곧 수학천재 되실듯~!!

반유행열반인 2021-10-02 20:23   좋아요 1 | URL
천재는 되는 게 아니라 나는 게 아니던가요 저는 그냥 모범생 정도 하려고요 우등생은 바라기도 어렵고… ㅋㅋㅋ

얄라알라 2021-10-08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싸인코사인에 푸욱 빠지신 우리 열반인님^^ 응원하러 왔다 갑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10-08 16:20   좋아요 0 | URL
이제 수2들어가니 너무 어려워요 ㅠㅠ ㅋㅋㅋㅋ다정한 응원 감사합니다 얄님!!

blanca 2021-10-28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중등 수학도 못 푸는 저로서는 정말 놀랍고 경이로워요. 교재는 뭘로 하시나요? 저 같은 사람이야말로 수학 공부를 해얄 것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1-10-28 19:12   좋아요 0 | URL
저는 교과서 풀고 있어요 ㅎㅎebs수능페이지 가시면 수능특강 교재 같은 거도 전부 무료 pdf로 구하실 수 있어요.
 
카트린 M의 성생활
카트린 밀레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210923 카트린 밀레.

1년 전 9월에 아니 에르노의 ‘세월’을 읽고 재미없다, 했다. 그가 훗날 2001년을 회고하면 9월 11일보다 캐서린 M의 성생활 출간을 먼저 떠올리는 것에 깜짝 놀랄 것이라고 하는 장면에서 이 책을 건졌다. 오, 번역도 되어 있어. 그러나 절판. 그러나 알라딘 중고샵에서 무려 34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즉시 모셔올 수 있었습니다. ㅋㅋㅋ지금도 이 광활한 우주점에서 아주 쉽게 구하실 수 있습니다… 중고로 싸게 나왔다는 것은 그 책이 가치 없다는 의미 보다는 당시에 엄청나게 팔렸고 그래서 매물로 나온 것도 많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잊혀진 보물이라는 신호일 때가 많다…

책에 다룬 날것의 솔직함이 파격이어서 선정성 쪽으로 유명해진 책 같지만, 그것만으로 후려치기에는 카트린의 섬세하고 치밀한 기억력, 묘사, 표현이 뛰어났다. 지난 성애에 관해 이토록 덤덤하고 다른 사람 이야기하듯 그런데도 그때 그 장면과 기분과 뒤늦게 알게 된 것들을 집요하게 써나간 점이 놀라웠다. 책을 낸 때가 50대 무렵인데 처음 성생활을 시작하던 십대 후반의 장면들을 저만큼 기억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가 말하는 것처럼 거듭해서 자신의 경험을 남들에게 말하고, 또 말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미 이런 글쓰기의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나 싶었다. 미술 잡지에 비평을 기고하고 미술 관련 전문 서적을 발간하는 등 계속해서 예술 작품에 관한 글을 쓰고 그러기 위해 끝없이 외부 세계와 그걸 지켜보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 사람이라서 내공이 쌓인 덕에 이만큼 세세하게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열린 성애 관계, 파르투즈, 야외와 공공장소,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니 궁금하면 직접 책에서 확인을… 문득 이런 삶이 쓰인 게 드물 뿐 사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적지 않은 삶이 이런 형태였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뒤늦게 사회 제도와 금기와 규제가 생겨나 칸막이를 세우고 그 안에서만 살아가는 게 맞다고 열심히 가르친 덕에 감춰야 하는 것이 되었을 뿐.

하여간에 무덤덤한 듯 생생하게 지난 이야기를 눈앞에 그려내는 글재주, 부럽다. 그게 글일 뿐 아니라 정말로 상처 받지 않고, 아프지 않고, 내가 읽은 대로 자유롭고 편안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삶으로 주욱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에 카트린 밀레를 검색해 나온 사진을 보면 최근까지도 그렇게 큰 무리 없이 사는 것처럼 보여서, 글에서 느낀 차분함만큼 사진 속 눈빛도 그래 보여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 책의 역자는 작년에 읽은 소립자를 번역한 작가였는데, 감창소리, 뜸베질 같은 고급진(?)언어를 구사하며 성애 장면을 잘 묘사했다. 소립자 이전에는 이 책이 있었구나…많은 수련?단련?숙련?하여간에 감탄하며 검색해보니 열린책들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도 거진다 이 분이 번역하셨다. 그렇다면,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읽었던, 최초의 제법 야한 외국소설!! 타나토노트도 이 번역가셨다…어쩐지 고향에 온 듯 익숙하고 편안한 문장… 처음 뵌지 벌써 25년이 흘렀군요… 몰라 뵈서 죄송합니다… 문장에서 느껴지는 살결과 숨결과 냄새와 온도…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사둔 건 여럿인데 저 책 빌려본 것 말고는 안 봤다… 번역 솜씨 봐서라도 더 읽어야 겠는데…

+밑줄 긋기
-도덕적인 원칙을 충실하게 지키는 사람들은 어쩌면 자유분방하게 사는 사람들보다 질투의 표출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가 더 잘 되어 있을 것이다. 자유 분방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철학 때문에 치정의 폭발과 마주치면 도무지 어찌해야 할 지를 모른다. 너그러움과 편협함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몸에서 얻는 쾌락을 남과 공유함에 있어 지극히 관대한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커 보이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처럼 보이던 그 너그러움이 느닷없이 편협함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그 편협함의 정도는 그가 보여 주던 너그러움과 정확하게 비례한다. 그 질투심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찰랑대고 있던 샘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서 튀어 오른 물방울들이 리비도의 영역을 은밀하게 규칙적으로 적셔 주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나의 강물을 이루어 그의 의식을 송두리째 삼켜 버리는 것이리라. 숱한 문학 작품과 실화에서 묘사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관찰뿐만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도 그것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어딘가에 있으면 이내 다른 곳에 있고 싶어했고, 벽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가고 싶어했다.
산책이나 드라이브를 나갔다가 돌아올 때, 나는 갔던 길을 되짚어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지도를 꼼꼼하게 연구해서 새로운 길을 찾아낸다. 내가 아직 보지 않은 풍경이나 건물이나 명소로 나를 이끌어 줄 새로운 길 말이다. 이 지상에서 내가 갈 수 있는 곳 가운데 나의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은 호주이다. 나는 거기에 갔을 때, 여정에 대한 나의 태도가 성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마음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아이를 낳고 기뻐하는 것 역시 같은 계통의 감정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에릭의 행동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는 우리의 저녁 모임이 늘 새롭게 진행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말마따나, <여행 알선업자>가 새로운 코스를 제공하려고 애쓰는 것과 비슷했다. 중요한 것은 <공간을 넓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eagene 2021-09-23 2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잉?타나토노트가 야했나요?저 너무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ㅎㅎ

scott 2021-09-23 23:03   좋아요 3 | URL
이책 번역가 이세욱님이 타나타노트 번역을 하셨습니다 타나타노트는 전여 야하지 않은 15세 이상용 ^ㅎ^

반유행열반인 2021-09-23 23:16   좋아요 3 | URL
초딩이 보기엔 충분히 야했어요…아직도 카펫 위에서 뭔가(?)를 했던 장면이 어렴풋이… 15세 이상이니 만11세에겐 과했습니다
ㅋㅋㅋ

오거서 2021-09-23 23: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중고서점에서 값을 매기는 기준이 연도와 상태라서 싸게 나왔다는 것은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이지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죠. 잊혀진 보물의 신호는 감별사가 아니면 포착하지 못하죠. 진정한 감별사이신 듯. ^^

반유행열반인 2021-09-23 23:17   좋아요 2 | URL
그렇게 집은 폐지수집창고가 되어갑니다 ….ㅋㅋㅋㅋ

얄라알라 2021-09-23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너무도 자연스럽게 저에게 홍보를 하시는^^ ˝지금은 잊혀진 보물˝ 요렇게 말씀해주시니, 3000원대할 때 광활한 우주 들려야해? 하는 마음이 ^^

반유행열반인 2021-09-23 23:18   좋아요 2 | URL
그러나 호불호 취향이 많이 갈리는 솔직함이니 감안하시고 마음을 많이 열고 보시거나 싸더라도 외면하시는 편이 정신 건강 및 저를 안 미워하시는데 도움이 됩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1-09-23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ㅋ 다시 맘잡고 읽어야 하나요😅

반유행열반인 2021-09-24 07:07   좋아요 1 | URL
오히려 마음 내려놓고 읽으시면 의외로 잘 썼네 할 거예요 ㅋㅋ
 
[eBook] 코ㆍ외투ㆍ광인일기ㆍ감찰관 펭귄클래식 64
니콜라이 고골 지음, 이기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12월
평점 :
판매중지


-20210922 니콜라이 고골.

작년 6월 소설쓰기 강좌를 수강할 때 과제가 나왔다. ‘처음 본 사람들 코 물어뜯은 50대 건설사 대표 붙잡혀’ 표제를 단 기사를 보고 사건이 벌어진 상황을 상상해서 짧은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그 주는 내 합평 차례가 아니었는데, 같은 조에 과제를 맡은 수강생들이 마감이 되도록 아무도 소설을 올리지 않아서 심심했던 내가 이틀만에 후다닥 한 편 써서 올렸다. (전문은 저 아래에) 과제 제출 전 먼저 읽어본 한 친구가 니콜라이 고골의 ‘코’를 읽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 나는 고골을 읽은 적이 없는데 읽기도 전에 독후감, 아니 독전감을 쓴 기분이었다. 단편 하나만 딱 읽고 한 해 묵히다가 외투부터 광인일기, 희곡 감찰관까지 읽었다. 내 소설에도 광인 같은 게 나오긴 하지…루쉰의 광인일기도 잠시 생각났다. 엄마가 루쉰을 읽고 있길래 아큐의 광인일기말고 고골도 광인일기 있어, 했더니 아큐 아니고 루쉰, 해서 창피해서 웃었다.

고골은 관료제의 부당함과 권력자의 못난 점을 잘 알았던 모양이다. 그 자신도 하급 관리 출신이었다고 연보에 써 있었는데 소설만 읽어도 알 것 같았다. 카프카도 그랬지. 그러고보면 관료제는 저절로 소설을 쓰고 싶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요즘 나는 가시적 성과가 없는 소설 쓰기 대신 수학 문제 풀기로 회피 스킬을 쓰고 있다. 소설은 답도 없고 사랑받거나 잊혀지거나 이지만, 수학 문제는 즉각적으로 너 맞았어, 틀렸어, 피드백도 주고 완결이 짧은 시간 안에 난다. 답이 정해진 너. 편하다. 다만 내가 답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릴 뿐.
연휴에 방정식과 부등식을 마치고! 이제 도형의 방정식에 들어간다. 고1 수학 교과서 절반 푸는데 일주일이면 되는 구나…이미 했던 거니 그렇겠지… 잘하면 10월 중에 고2로 진급! 수학1을 풀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머리와 문제 푸는 머리는 다른 부분을 쓰는 기분이 들어서 번갈아 하면 좋다. 1년도 넘는 시간 만에 엉터리라도 끄적인 습작을 읽으니 내가 이런 걸 언제 썼던가…지금은 왜 못 쓰는가… 감회가 색다르다.



과제로 나온 기사 전문 ㅋㅋㅋ아저씨 진짜 왜 깨무신 거죠…

처음 본 사람들 코 물어뜯은 50대 건설사 대표 붙잡혀
함상환. 2020. 04. 20. 18:39
[인천=뉴시스] 함상환 기자 = 인천 연수경찰서는 20일 술을 마시고 입으로 지인이 소개한 사람들을 물어 상해를 입힌 인천 지역의 한 건설사 대표 A(54)씨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4일 오후 11시께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의 한 술집에서 지인 소개로 처음 본 B씨 등 4명의 코와 볼을 입으로 물어 뜯어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데려온 B씨 등과 술을 마시던 중 이 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A씨가 당시 와인병으로 위협했고 건장한 남성 2명을 불러 옆에 두고 자신들을 폭행하며 도망가면 죽여 버리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또 B씨는 ˝경찰이 조사 받는 과정에서도 특수상해가 아닌 일반 상해으로 조사 받을 것을 권유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조사를 받은 뒤 귀했다가 경찰서를 다시 찾아 특수상해을 왜 일반 상해으로 처리하냐고 항의하자 경찰이 다시 그럼 특수상해으로 하자고 말했다˝며 ˝경찰 조사에 불만을 드러냈다.
경찰은 당시 술집에 있던 직원 등을 불러 정확한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기사 출처: https://news.v.daum.net/v/20200420183934530







이유가 궁금해서 제가 한 번 써 보았습니다…
——-
코의 침공

코코에게 아는 체 한 것을 후회했다. 어디서 이런 괴물들을 데려온 거야?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코코를 노려보았다. 코코는 잠시 당황한 얼굴을 하다 입가에 늘 걸고 다니는 간사한 웃음을 얼른 짓고는 말했다.
왜 우거지상으로 자작을 하고 계셔요? 기분 좋게 마셔야지. 합석하세요 형님. 인사드려, 이쪽은 비강건설사 대표 A형님. 얘들은 제 친한 동생들입니다.
형 말이 맞았다. 4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놈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얼굴에서 코의 면적이 4퍼센트 비율 쯤 된다면, 녀석은 B의 얼굴 한가운데에서 10퍼센트 이상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크기만 압도적인 게 아니었다. 매끈하고 번들거리는 이마나 볼과는 다르게, 돌하르방의 다공성 현무암이 생각나는 모공이 숭숭난 칙칙한 회색 살가죽이 코를 감쌌다. 해식동굴처럼 뻥 뚫린 콧구멍을 양쪽에서 감싼 두툼한 두 개의 콧방울, 그 위에 대칭으로 솟은 커다란 점 두 개는 주변 피부와 같은 색인데다 크기도 워낙 커서 점이라기보다 혹에 가까웠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싶지만, 코 끄트머리에 달린 작은 빨간 점이 녀석의 생명력을 일깨워주었다. 마치 작은 귀와 주둥이가 달린 쥐대가리처럼 보였다. 소름이 끼쳐 시선을 돌리다가 어느새 홀린 듯 녀석을 다시 바라보았다. 저 놈이 대장이구나! B에게 김박사라 불리운 마른 남자는 하얀 좁쌀 여드름이 빼곡한 코를 달고 있었다. 대장에 비하면 작은 편이지만 역시 다른 사람보다는 도드라지게 커다랗고 울퉁불퉁한 놈이었다. 언제라도 독이 든 고름을 쏘아댈 것 같았다. 김박사 옆에 앉은 김사장이란 늙은이 또한 전체적으로 붉은 빛깔의 두툼한 콧등 왼쪽에 앵두 만한 검은 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고 기우뚱한 것이, 당장이라도 점 달린 무거운 쪽으로 붉은 코가 쓰러질 것만 같았다.
B는 내가 마시는 쪽을 유심히 보더니 웨이터를 불러 같은 와인을 주문했다. 세 놈 다 짠 것처럼 김가 성을 쓰고, 남들 하는 꼴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따라하는 폼이 어려서 들은 이야기 속 도깨비 같았다. 정신차려, 도깨비가 아니야. 외계인이다.

살던 마을에서 산 하나 넘으면 자연농원이었다. 놀이공원의 평지는 울타리로 막혀 있지만 산 밑은 산 자체를 울타리 삼았다. 달리 할 일이 없는 오후마다 형과 함께 산을 넘어 자연농원에 갔다. 따로 표를 사야 탈 수 있는 놀이기구는 그림의 떡이었다. 더운 여름에는 분수 주변에서 물을 튀기며 놀았고, 가을에는 숲에서 몰래 밤을 주웠다. 계절 가리지 않고 자주 간 곳은 동물원이었다. 동물원은 우리가 드나드는 자리와 정반대에 있어 놀이공원을 가로질러 한참 걸어야 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온갖 특이한 생김새를 자랑하는 이국의 동물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저절로 갔다. 내가 가장 좋아한 동물은 원숭이동산의 침팬지였다. 선량하고 지혜로운 노인 같은 얼굴을 한 침팬지들은 나무탑을 오르내리고, 좋은 자리나 간식으로 나온 고구마나 이성을 차지하려고 싸웠다. 그들의 생활 자체가 드라마고 시트콤이었다.
형은 울타리 주변 나뭇가지나 작은 돌을 주워 침팬지를 향해 던졌다. 너무 멀어서 닿지 않았지만 똑똑한 침팬지들은 이를 드러내고 큰소리로 짖으며 화를 냈다. 던지지 말라고 말리자 형은 날 더러 침팬지 새끼라고 했다. 내가 왜 침팬지 새끼야, 항의하는 나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형이 말했다.
우리랑 쟤들 조상이 똑같대. 유전자도 되게 비슷하대.
유전자라는 말을 잘 몰랐지만 또 침팬지 소리를 들을까 봐 가만히 있었다. 반응이 없자 형이 다시 말했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해?
쟤들 코는 납작해. 코가 왜 필요하냐? 숨 쉬고 냄새 맡으라고 있는 거지? 그럼 쟤들처럼 구멍만 뚫려 있음 되지 굳이 앞으로 튀어나올 필요가 없잖아. 주먹이 날아오면 제일 먼저 얻어 맞고, 부러지고, 괜히 코딱지만 잔뜩 끼고.
코가 높으면 비와도 빗물 안 들어가고 찬 바람도 덜 들 거 같은데. 중간에 먼지 같은 거도 걸러주고.
괜히 아는 체 하지 말고, 고인류 화석에 보면 코 부분만 뼈 없이 뻥 뚫려 있잖아. 거기가 빠져나간 자리야.
뭐가 빠져나갔는데?
외계인이야.
뭐?
되묻는 소리가 너무 컸는지 가만히 앉아 있던 침팬지 두 마리가 차례로 나무탑 위로 도망쳤다. 형이 실실 웃어서 이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거짓말쟁이 새끼. 철쭉 암술을 빨면 꿀이 나온다고 하질 않나, 냉장고에 있는 계란을 안고 자면 다음 날 병아리가 나온다고 하질 않나. 내가 아무리 어려도 외계인 타령은 심하다 싶었다.
형의 말에 따르면 인류는 생물체를 하나씩 지니고 있다. 수백만 년 전 코들이 하늘에서 유성우처럼 지구상에 떨어졌고, 우리를 숙주로 택했다. 코들은 외부 공기를 폐에 들이기 적당한 온도로 만들어주고, 오염물을 걸러내어 주는 대신 우리의 혈액을 통해 영양분과 산소를 나누어 받으며 우리 몸과 공생하고 있다. 새로 태어나는 아기도 코를 달고 나오지 않느냐며 코의 외부 유입설을 반박하자 형은 코의 증식 원리도 설명했다. 여성이 임신할 때 황체호르몬을 감지한 코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코를 복제해 혈액으로 흘려보낸다. 작은 코는 혈관을 열심히 헤엄쳐 자궁 속 배아가 태아가 되기 직전 작은 얼굴 한가운데에 정착하고 아기와 함께 성장 속도를 맞춘다. 이 엄청난 비밀의 출처는 형이 보는 월간 과학잡지의 애독자 코너 옆 펜팔란에서 알게 된 우주, 미확인비행물체, 외계인 애호가 누나의 연구 결과라고 했다. 수없이 오간 편지를 통해 펜팔 누나는 자신이 섭렵한 수많은 과학 서적과 논문을 통해 깨닫게 된 진실을 형에게 전수해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형이 그 미친 누나와 단교하길 빌었다.
여기 온 목적이 뭐요?
내 물음에 B는 난처한 표정을 미소로 얼버무렸다. 코코가 나섰다.
형님 오늘 많이 까칠하시다. 우리 가게 양복 맞추러 오면서 알게 된 동생인데, 글쎄 외가 쪽 친척이더라구요. 김해 김씨 56세손 후손이에요 이 친구들 전부.
코코 양복점에는 옷 맞추러 오는 손님은 없고 포커판을 벌이러 오는 한량들이 늘 그득했다. 나 또한 포커를 치러 드나들며 저 인간과 친분을 쌓긴 했지만, 양복점 주인 외에는 특별히 얽힌 인연이 없었다. 각자 소갯말에 따르면 김사장은 골재 도매업자, 김박사는 풍수지리대학원 수료자(논문은 쓰는 중이란다), 그리고 B는 인력사무소 대표였다.
허, 이미 거래 트고 지내는 사장들이 보면 곤란한 광경이네.
A사장님도 저희 알고 지내시면 나쁠 거 없습니다.
자리를 뜰 궁리를 하며 던진 말에 B가 굵직하게 울리는 음성으로 응답했다. 그가 말할 때마다 웅장한 코 또한 떨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말하고 있는게 코인지 B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김사장, 저 사람이 바다모래 채취 재개에 큰 힘 쓴 사람입니다. 골재값 똥값 됐다고들 하는데 저 친구 거치면 똥보다 싸게 자재 들이실 수 있습니다.
B의 말에 김사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와인잔을 들이켰다. 독물 같은 건 쏘지 않았다. 김박사는 눈썹을 움찔거리며 기대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언급되길 바라는 눈치였다. B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장 코 또한 콧구멍을 열심히 벌름거렸다.
저희 회사는 주로 외국인 건설인력들 데려다 쓰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 내국인들보다 힘도 좋고 최저임금만 딱 맞춰주면 불평도 안 해요. 후발 주자라 불리한 점이 있습니다만 곧 이 동네 저희가 다 먹을 겁니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와인병을 들어보이는 B를 보고도 잔을 내밀지 않았다. 더는 취해서는 안 됐다.

빈틈을 보이지 마. 때가 되면 놈들이 움직일 거야. 그래서 조용히 살던 코들을 다 활성화시켜서 자기들 편으로 만들고 조정하려고 들겠지.
코가 뭘할 수 있어. 기껏해야 콧물이나 튀기고 숨이나 쉬겠지.
바보야 왜 코가 노출되는 걸 무릅쓰고 얼굴 한복판에 있는데?
왜 그런데?
뇌랑 엄청 가깝잖아. 코의 간부급들이 나타나면 스위치를 켠다. 그러면 꼼짝 없이 그놈들 노예가 되서 뇌를 조종하는 거지. 놈들 유리한대로.
간부들은 어떻게 생겼는데?

그 모습 그대로 눈 앞에 있다. 그것도 세 개체나. 내게 달콤한 말들을 흘리며 접근하고 있다. 좋은 말로 꼬드기며 형님형님 하는 놈들치고 믿을 만한 구석이 없다. 양복점 건달들이 코코 새끼와 짜고 치는 포커판을 벌인 것, 호구가 나였던 것을 알았을 때 도박에서 손을 뗐다. 물론 적잖은 회삿돈을 꼴아박은 뒤였다. 이번에는 겨우 돈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저놈들은 내 코를, 나를 노리고 있다. 내가 점령당하면 내 가족, 내 회사, 더 나아가 이 동네까지...절대로 당할 수 없다. 형이 알려준 효과적인 대응 수단을 떠올려 보았다.
1순위: 화염방사기. 확실히 조질 수 있으나 몸 전체가 타 버리는 단점.
2순위: 염산, 황산 등 강산 계열. 역시 살상효과는 확실하나 코 부분만 선택적으로 녹이기 어려움.
3순위: 칼, 끌, 낫 등 적당히 날선 도구로 솜씨좋게 도려낼 것. 코로부터 개체를 해방시킬 수 있음.
이 자리에서 어떤 것도 구할 길이 없었다. 거의 비어버린 와인병을 들어올리며 깨버릴까 망설이는 찰나에 B가 손바닥을 펴올리며 다가왔다.
A사장님, 목덜미에 모기가...
가까이 오지 마 더러운 외계인! 당할 것 같으냐. 놈의 숨구멍에 이빨 자국을 박아 넣었다.

지구대 의자에 앉아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오늘 내가 지구를 구했어.
지금 몇 시인데 전화질이냐. 술 처먹었으면 잠이나 자라.
내가 무기가 없어가지고...그래도 타격은 충분히 준 것 같아. 당분간 그놈들 잠잠할 거야.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외계인말야! 형이 옛날에 말했잖아. 그새끼들 본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니까.
외계인은 무슨, 인류는 고립된 존재야. 외계인 있어도 너무 멀어서 오다가 다 죽어. 그리고 한 번 더 술처먹고 밤중에 연락하면 의절한다 그랬지. 앞으로 형이라 부르지 마 침팬지 새끼야. 니 형 아니다 이제.
통화종료음이 들렸다. 형이 아니라니. 한 발 늦은 것 같다. 놈들이 이미 형의 스위치를 켠 모양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9-22 15: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은 수학 재능과 소설 재능이 있으신듯 합니다 ^^ 벌써 고 2라니 ㄷㄷ

이런 사건이 있었는지 처음 알았네요 ㅎㅎ 이 작품을 출판하셨다면 별명이 한국의 고골(반유행고골인?) 이였을듯 😁

반유행열반인 2021-09-22 16:34   좋아요 4 | URL
안녕하세요 고골인입미다 ㅋㅋㅋ 부족한 쓰기라 그냥 이웃님들 보고 실소하시라고 창고대방출(?) 하였습니다 ㅋㅋㅋ소설도 수학도 아직 고1이여요… ㅋㅋㅋㅋ

Yeagene 2021-09-22 18: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사건 봤는데 열반인님은 상상력을 동원해 소설을 쓰셨군요.역시 아무나 소설 쓰는 게 아니라니까요 ㅎㅎ 수학 화이팅!!♡

반유행열반인 2021-09-22 18:50   좋아요 4 | URL
이과생의 화이팅 받아 열심히 하겠습니다❤️‍🔥

scott 2021-09-22 19: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지 찜!!
👆
[통화종료음이 들렸다. 형이 아니라니. 한 발 늦은 것 같다. 놈들이 이미 형의 스위치를 켠 모양이다.]

열반인님 이 문장에 마침표 찍지 마세여 ㅎㅎ
담편 , 담편 올려 주셔야 합니다

열반인님의 작품은 고골의 외투가 아닌 ‘코‘!👃

반유행열반인 2021-09-22 19:31   좋아요 3 | URL
ㅎㅎㅎ과제가 늘 엽편 분량인데 제가 분량 자주 넘쳐서 혼나곤 했어요… 그래서 늘 아무데서나 마침표 찍는게 치명적인 장점입니다 ㅋㅋㅋ열린 결말 ㅋㅋㅋ

mini74 2021-09-22 22: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진짜 글 써보세요 열반인님. 창의적이고멋진 작가님이 될 듯. 아니 벌써 제 맘엔 작가님 ㅎㅎㅎ 저 이 글 읽으면서 계속 코 만지고 있음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9-22 22:27   좋아요 3 | URL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ㅎ 천천히 가끔가끔 써 보겠습니다 ㅎㅎㅎ(일단은 수학 문제를...)
 
풀이 눕는다 - 김사과 장편소설
김사과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210919 김사과.

김사과의 소설을 네 권째 읽었다. 더 나쁜 쪽으로, 0영제로영, 영이02, 그리고 풀이 눕는다 순이었다. 읽을 때마다 나한테는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이번 소설은 조금 더 초기작인데 읽는 내내 너무너무 오글오글 했다. 그러니까 쌍팔년도 홍콩영화 보는 느낌이었다. 아비정전이나 해피투게더 같은 거. 이렇게 말하면 홍콩영화 팬들에게 실례지만 1990년대 영화 같은 느낌을 2009년에 쓴 소설에 푹 절여 놓은 걸 2021년에 읽는 건…뭐긴 뭐야 내가 늙었다는 뜻이지.

소설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소설가인 화자 내가 그림을 그리는 풀이란 남자를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그 사랑에는 현재만 있고, 내일은 없고, 자기 파괴적이면서 상호 파괴적이기까지 한 광기 뿐이다. 사실 사랑은 유일한 숨쉴 구멍 같은 것이고, 화자에게는 이미 뭘 잘해보고 싶은 의지도 잘 살고 싶은 마음도 하나도 없다.
김사과 소설은 일관되게 반자본주의적인데, 자본주의에 적응, 아니 그 안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꿈꿀 미래 자체가 없는 걸 나와 풀의 기행과 좌절로 보여주었다. 그저 글을 쓰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둘은 돈에 쪼들리고,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돈을 벌지 않으면 사람 구실 못한다는 취급을 받고, 그저 술이나 마시고 담배나 피우며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수 밖에 없다.

그런 좌절과 무기력감 잘 알 것 같은데 이제는 너무나도 체제순응형 인간이 되어 아파트 실거래가 조회를 취미삼고 주식 차트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서사조차 읽기가 괴로워졌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짤리고 원룸에서 구질구질하게 참치캔 밑바닥에 남은 기름 찌꺼기에 밥 비벼 먹으려다가 캔을 놓쳐서 발걸레에 떨어뜨려서 맨밥을 먹어야 하나보다 하고 눈물 짓던 스물한 살 때로 돌아갈 거냐고 물어보면 절대 안 가! 그때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꼬신다고 과외비 탈탈 털어서 초밥도 사 주고 배스킨라빈스도 사 주고 파스타도 사 주고 그랬는데 막상 사귀게 되니까 돈이 하나도 없어서 으악 돈이 없으면 연애도 못하는 것인가 하고 좌절하던 기억이 난다. 사랑도 돈이 없으면 못해. 연애에도 섹스에도 동거에도 돈이 들어. 으악으악. 이제 석기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금수저 물고 어마무시한 유산을 물려받지 않은 이상 사랑을 붙들고 있으려면 내내 노동력을 팔아 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면 사랑할 시간이 일에 녹아 사라지지. 어쩌라고!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9-20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20 0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21-09-20 0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김사과에 빠졌어요 ㅎㅎㅎ 애기syo(24/25)의 중2감성에 너무 부합하는..... 🤦

syo 2021-09-20 05:47   좋아요 2 | URL
아참, 즐겁고 단란하고 행복하고 안온하면서 사랑이 넘치는 세상 최고의 한가위 보내세요, 막 이런 표정으로 보내세요 🥰🥰🥰

반유행열반인 2021-09-20 07:06   좋아요 1 | URL
와 나 이 책 읽다가 syo님 생각했는데(왜?!) 책을 너무 많이 읽은 주인공이 나와서인가ㅎㅎ 내장산 맑스축제 생각나서인가ㅎㅎㅎㅎ syo님도 추석 연휴 편안하고 즐겁게 잘 지내셔요.

Yeagene 2021-09-20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봤을 때는 김수영을 생각했지만 내용을 보니 딱히 연관은 없나봐요...;;;; 열반인님 행복한 추석연휴 되세요!♡

반유행열반인 2021-09-20 16:53   좋아요 1 | URL
제목만 따오고 그냥 화자가 자기 애인한테 마음대로 풀이라고 불러요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9-21 07:13   좋아요 0 | URL
연휴 인사를 빼먹었네요 예진님 남은 이틀 건강히 푹 쉬시고 좋은 시간 보내셔요!!!!!
 
아저씨 도감
나카무라 루미 지음, 이지수 옮김 / 윌북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20210919 나카무라 루미.

아저씨 혐오를 멈춰주세요, 농담처럼 댓글 남기는 이를 볼 만큼, 미움 받고 또 미움 받을 짓 하는 아저씨가 많다. 소년이다가 청년이 되었던 알던 남자애들도 이제는 다 아저씨가 되었겠지. 아가씨처럼 허리까지 머리를 기르고 누나들과 같은 화장품 쓰고 분홍옷을 즐겨입던 곁의 사람도 세월에는 장사 없어서 (아니면 내가 데릴라마냥 머리카락을 자르고 주저앉혀 그런가) 그냥 평범한 아저씨가 되었다.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제목에 한 번 웃고 호기심을 못 참고 구입했다. 몇 장 읽자니 이걸 왜 보고 있나 싶어서 반절쯤 보고 쉬다가 연휴 둘째날 마저 다 봤다.

아무도 예뻐하지 않는 아저씨지만, 오래도록 관심을 가지고 꾸준하고 끈질기게 관찰하고, 탐구하고, 분류하고, 그림으로 남기려는 노력을 거듭해 이 책을 만든 작가가 새삼 대단해보였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관찰해 크로키로 남긴 그림 위주라 아저씨 패션 도감이 더 어울리는 구성이긴 했지만, 저자 나름대로 아저씨의 내면까지 포착하고 이해해보려고 했는지 무섭고 징그러운 사람도 있지만 꿋꿋하게 인터뷰하고, 아저씨떼 우루루 몰린 술자리나 골목에도 취재를 다니고, 노숙자를 위한 밥차 봉사도 참여하면서 모은 이야기들과 장면을 풀어 놓았다.
자세히 봐야 예쁘다. 너는 빼고.
ㅋㅋㅋㅋㅋㅋ 아줌마 도감이 나오면 왠지 슬플 것 같다. 아저씨 도감만큼도 인기가 없을 것 같아서…

일본 아저씨들은 한국 아저씨들보다 모자를 많이 쓰는지 모자만 따로 모은 페이지도 상당했다. 하와이안 셔츠 입은 사람도 생각보다 많고… 한국은 거의 갈색 아니면 베이지색 아니면 희고 검은 아저씨 같은데… 아니 그러고보니 일본에도 흰색 옷 아저씨는 페이지 모을 만큼 많은데 한국만큼 검은 옷 아저씨는 많지 않나 보다. 하여간에 모두모두 착한 아저씨가 되길 빕니다. 개저씨 소리 안 듣고 착한 할아버지로 늙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버 2021-09-19 11: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표지 아저씨들 어디선가 많이 본 익숙한 모습이네요ㅎㅎ 재밌는데 귀엽진 않아요ㅜㅜ
몇해전 영화관 옆자리에서 너무 좋은 향기(무화과 느낌?)가 나서 옆을 봤는데 아저씨여서 놀랐던 적이 있어요 나름 제 안에 아저씨에 대한 편견이 있나봐요ㅎㅎ 책에서 정말 관찰대상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신기하고 재밌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09-19 11:22   좋아요 3 | URL
거의 배경이나 지형지물 같은 모습이죠 ㅎㅎ관찰력은 정말 인정하는 수준입니다. 그만큼 애정(?)도 있어야 가능한 거 같아요. 밉다 밉다 하는 것도 밉지 않은 눈으로 오래 들여다보는 게 진짜 대단한 일 같아요 ㅎㅎㅎ

미미 2021-09-19 12: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어뜩해ㅋㅋㅋㅋㅋㅋ👍👍제목 장인 열반인님! 삼손을 낚은 데릴라셨군요. 기발한 소재네요ㅋ

반유행열반인 2021-09-19 12:37   좋아요 3 | URL
유디트마냥 목까지 자르진 않아서 다행이랄까요 ㅎㅎㅎ

scott 2021-09-19 12: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세계적인 패숀 디자이너들이 한국의 아죠씨 패션에서 신세계를 ㅎㅎ 등산복 차림도 추가! 합니다 ^ㅅ^

반유행열반인 2021-09-19 12:38   좋아요 5 | URL
일본책엔 바지 정도만 등산복이고 우리나라처럼 전문 아웃도어에 등산화까지 갖춘 산악인 복장은 없더라고요 ㅎㅎ

얄라알라 2021-09-19 14:01   좋아요 3 | URL
아. 기억납니다. 기사에 뜬 적 있었죠? 황학동 할아버님들 패션과 탑클래스 디자이너 작품과의 유사점^^

Yeagene 2021-09-19 12: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이런 책도 있군요!너무 신기해요!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9-19 12:38   좋아요 4 | URL
슬그머니 아줌마 도감 검색해봤는데 없어서 약간 실망...서운...(왜!!!)

2021-09-19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19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1-09-19 14: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책도 있군요. 왠지 저는 이책을 읽으면 안될거 같아요 ㅎㅎ
저렇게 입고 행동하면 아저씨라는 거죠? 😅

반유행열반인 2021-09-19 15:27   좋아요 2 | URL
보고 저렇게 되는 걸 피하면 되지 않을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