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위권 수학머리 만들기 - 카이스트 출신 수학컨설턴트가 알려주는 수학공부법
이윤원 지음 / 반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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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4 이윤원.

온갖 책을 찾아 읽고, 그런 내가 올 한해 가장 골몰한 일이 수학 실력을 높이는 것이었으면서도, 수학공부에 관한 책 한 권 찾아볼 생각 안 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전자도서관의 신간 목록을 헤매다 이 책을 보고 한 번 보자, 했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수학 잘 한다, 잘 가르친다 자부하는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시험을 보기 전까지는 많이 울었는데 정작 시험날 이후로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다가 또 조금 울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부족한 것이라지만 그야말로 노베이스로 시작한 공부를 일 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우수한 성적까지 끌어올리기란 무리였다. 그러니까 지나온 시간은 고2 올라와서 이제 처음 수능 볼 과목 한 번 배운 정도…는 되겠다. 고2 마치기 전에 수능 보라고 하면 누구나 나처럼 될 거야… 그렇게 위안 삼아보려고 해도 흐헝헝 아무리 그래도 왜 그렇게 못해…하고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다.
수학 성적은 겨우 절반을 맞출 정도 밖에 갖추지 못하고 시험장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냥 떨지 말고 어려운 건 미련 갖지 말고 쉬운 거나 풀고 나오자 했다. 시험 직전까지 미니 모의고사 하나 풀고도 세상 끝날 것처럼 울고불고 그렇게 혼자서 매일매일 진짜 수능 망한 것처럼 수십번을 하고 너덜너덜해진 채로 시험을 맞이했다. 그래서 그런가 오히려 당일날에는 다 못 풀 걸 알고도 덤덤하게 풀리면 풀고 안 되면 넘기고 마킹 대충 미리 해놓고 들여다보지도 못한 것도 적당히 포기하고 찍을 거 찍고-거의 열 문제를 못 풀고도 그냥 편안했다. 어차피 평소대로 한 건데 내 실력이 아직 여기까진데 뭐, 하고.

책을 보며 지난 시험 공부가 힘들었던 이유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나는 최초의 수학 공부를 교과서로 시작했다. 교과서는 강사들도 나름 중요시하는 교재이긴 하지만, 그래서 보면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됐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개념이 담겨 있고 증명과정까지 상술된 좋은 책이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기초고 기본이고, 그걸로 개념 공부가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예 수능 기본서들은 교과개념/수능개념 이렇게 따로 나누고 ‘수능개념’이라는, 교과서에서는 다루지 않는, 그런데도 입시판에 있다면 누구나 이건 기본이지 하고 별도로 익혀야 하는 개념, 풀이법, 이해 방식이 있었다. 그걸 알면 일일이 증명하듯이 혹은 오래오래 에둘러 계산으로 풀 필요 없이 아주 쉬운 문제들은 순식간에 풀려버렸다. 쉬운 문제는 그렇게 몇초컷을 하고 그렇게 아낀 시간을 고난이도 문제에 쏟아부어야 했다. 그런데도 바보처럼 그걸 모르고 교과서를 푼 뒤에 바로 이비에스 수능특강 지난 해 문제와 강의를 꾸역꾸역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또 이름이 오르내리는 한권으로 완성하는 수학, 이라는 개념 독학서를 들고 뭐가 쉬운 거고 어려운 건지도 구분하지 못한 채 꾸역꾸역… 그러다가 또 규토 라이트라는, 개념학습과 기출공부 사이 포지션이라는 두툼한 문제집을 사서 또 꾸역꾸역…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고 대부분의 문제를 풀 수 없었다. 하루에 여섯 시간씩 수학만 붙잡고 있는데도 나아간 페이지는 몇 쪽 채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해 보겠다고 6월까지 거의 반 년을 혼자 하다가… 뒤늦게 인터넷 강의라는 걸 들었고, 당장 시험을 보긴 해야겠으니 가장 기초 커리큘럼부터 들을 수는 없고, 중간에 다소 어렵다는 만만하지 않다는 강의부터 또 시간에 쫓겨 하루에 다 소화하지 못할 많은 양을 막 진도부터 나가고, 그렇게 세 달 가량 보내다가 모의고사 대비한답시고 가장 최근의 모의고사 해설 강의 해주는 강사의 강의를 보고 이게 필요하지 싶어서 기출문제 강의를 시험 두 달 앞두고 시작해서 ㅋㅋ수능 전까지 그거만 하다 갔다.

그러니까 일단 1. 기본 개념/교과서 개념은 물론이고 수능시험을 위해 알아야 할 응용개념까지 튼튼히 다지고 이걸 어떻게 문제풀이와 연결짓는지 잘 파악했어야 했다.
2. 이게 된 다음에 그렇게 혼자서 끙끙대며 문제풀이 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나는 모든 공부를 정확히 반대 순서로 제일 어려운 것부터 점점 초반에 했어야 했던 것으로 나아갔고 ㅋㅋㅋㅋ 결국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고 막판에 문제풀이 연습 열심히 해야할 때까지도 기출풀이와 기본개념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헤매다가 엉엉 울다가 시험을 보러 갔던 것이다…

일년 농사 망한 이유는 알겠는데 그렇다고 앞으로 어떻게 공부할지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 책은 절대 답지 보지 말 것, 끝까지 얼마가 걸리든 오래오래 혼자 풀려고 시도해볼 것, 그게 상위권의 공부방법이라고 했는데, 그건 내가 초반에 그렇게 하다가 시간을 다 써 버리고 결국 할 것 다 못 하고 가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 미련한 공부법을 본 주위 이과 출신 사람들은 그렇게 마냥 붙잡고 있는게 아니고, 문제 보고, 조금 고민하다 안 되면 바로 답을 보고, 답을 꼼꼼하게 보고 따라가라고 했다. 강사가 푸는 풀이도 주의깊게 보고, 그걸 체득하고 암기하고 따라가도록 연습하고 노력해야 느는 거라고… 그래서 그런 조언대로 해보려고 애쓴 결과는 성적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오히려 초반에는 일단 기를 쓰고 뭐라도 시도해보고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공부를 할수록 나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고 답지나 강사가 풀어주는 것과 전혀 동떨어진 헛짓거리나 할 것 같고 그래서 점점 더 시작조차 못하고 생각은 돌아가지도 않고 그런 공황상태로 빠져들었다… 뭐 그런 상태…완전 자신감을 잃었네…

그래서 이번에는 일단은 애들이 소위 풀커리 탄다는대로 기초개념강의부터 강사가 짜놓은 커리큘럼을 따라가보는 게 목표이긴 하다. 그런 와중에 이책에서 문제풀이 강의를 본다고 실력 느는 거 아니라고…답지 보지말라고…아 저도 한때 그런 신념을 갖고 있었는데 ㅋㅋㅋ 답지를 봐도 안 봐도 안 되는 건 마찬가지인데 어쩌라구요….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수학 잘하는 분들 존경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삐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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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2-11-24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도 보시고 공부방법 꾸준히 찾아보고 계시니까 금방 좋아지실 거에요♡

반유행열반인 2022-11-24 21:24   좋아요 1 | URL
그만 찾아봐야겠어요 ㅋㅋㅋㅋㅋ 늘 감사합니다 예진님

라로 2022-11-25 0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학이 어렵군요!! ㅠㅠ 갑자기 이 글을 읽으니까 맨날 너드라고 속으로 놀렸던 사위가 좀 괜찮아 보여요. ㅎㅎㅎㅎ 암튼 저는 무식한 라테라 그런가 그냥 무작정해파입니다. 아무생각도 하지 않고. 이러니 늘 실수투성이죠. ㅠㅠ

반유행열반인 2022-11-25 12:53   좋아요 0 | URL
때로는 우직하게 그냥 해, 하고 아무 생각 없는게 좋은 것 같아요. 뭐 한입 먹으면 행복해지고 저지르고 그냥 하고…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뇌가 알아서 자동 실행하고 있는 겁니다 ㅋㅋㅋ 실수는 주변에 보완해줄 사람들이 있는 만큼 자아가 알아서 제한하니 괜찮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2-11-25 0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수학의 정석으로 안하나보군요? ㅋ 전 고딩때 정석 풀었던 기억만 남니다 😅 수학 넘 어렵다는 ㅋ


답지를 봐도 안봐도 마찬가지라는 말은 어려운 소설은 다 읽고 나서 해설봐도 잘 모르는것과 비슷한 느낌 같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11-25 12:54   좋아요 1 | URL
저는 어려서도 정석을 안 했더니 뭔가 주춧돌 같은 게 부족하네요 ㅋㅋㅋ(개념원리파…그런데 개념도 못 갖춘 ㅋㅋㅋ) 저는 답지 보는 것도 싫어하지만 소설 뒤 해설 읽는 건 더 싫어해서 잘 안 봐요 ㅋㅋㅋㅋ그러니 오독 오해 오개념이 넘치는 거겠죠…
 
찾지 말아주세요 -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흑역사 청산 만화
나카가와 마나부 지음, 김현화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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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3 나카가와 마나부.

부제-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흑역사 청산 만화.
흑역사. 그게 청산이 되긴 하는 걸까.
알라딘 당신의 기록 올해치를 보고 놀랐다. 수험서 등등은 통계에 제외한다는데 왜 구매 권수는 111권으로 되어 있는지… 작년에는 왜 320권인 건지 이거 보고 더 깜짝 놀람ㅋㅋㅋ… 주로 아이들 책이랑 스티커북을 샀을 것이다. 내 책도 사긴 했을 텐데 시험 전까지 11달 내내 읽은 건 8권, 시험 끝나고 이제 일주일 되어 가는데 벌써 6권. 역대 최저 독서 암흑기가 되겠다…내년에는 이거보다는 더 읽을지도…

올해 산 책 중에는 이런 만화책도 있었지. 아이에게 먼저 읽으라고 주었던 만화책을 찾아보았다.
찾지 말아 주세요.
2월에 짐 싸가지고 교무실을 나올 때 약간 이런 마음이었는데. 나는 1년 안에 탈출 루트가 마련될 줄 알았는데 안일했다… 독서대 하나 없으면 어깨랑 목이 아파서 옴짝달싹 못하는 노쇠함이여… 책 속 마나부의 어깨에 어두운 음영 표시로 두 개의 팔이 덜렁 얹혀 있는데 그 기분 왜 알 것 같은지…
중학교 수학교사였던 마나부는 어느 날 찾지 말아 주세요,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잠적한다. 우리에게는 잠수탄다는 말이 있구나… 십오 년 후 얹힌 듯 가슴에 남아 있던 부끄러움? 미안함? 그런 걸 직면으로 해결하고 싶었는지 마나부는 다시 그 탈출 루트를 되짚으며 억누르고 잊고 있던 당시의 상황과 그때 그 일을 목격했던 사람들의 입장을 듣고자 한다.
의외로 사람들은 남의 일에 별로 큰 관심 두지 않고 큰 영향을 받지도 않고 그저 덤덤했다. 마나부의 엄마는 제일 힘든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저 살아돌아와서 고마워- 하며 마냥 오냐오냐해줘서 마나부는 그게 더 죄스럽고…아빠는 이미 돌아가셨다.

나는 스스로 포기를 모르는 꾸준함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이 만화를 보면서 내가 생각보다 금세 포기하고 다른 새로운 것들을 찾아 나섰다는 걸 떠올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합창부가 하기 싫어져서 그날로 아침 연습에 가지 않았다.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고 맘대로 빠져버리니 화가 난 지도 선생님은 나를 불러다 앉혀 놓고 악독한 것,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혼냈었다. 그뿐인가 고등학교 때는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스쿨 밴드 오디션에 통과해서 보컬이 되었지만, 아이들과 잘 지내지 못하고 연습을 안 하고 자꾸만 객원 보컬을 데려오는 연주자들에게 실망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밴드를 때려치우고 나와 그 아이들 공연하는 수학여행 저녁에 화장실에 혼자 숨어 한참 엉엉 울던 기억도 있다. 좋아하는 아이가 나를 안 받아주면 또 엉엉 울다 곧 다른 아이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임용을 보고는 아 망했네 나 이 시험 죽어도 못 붙음 하고는 사립학교 원서 30 몇 군데 쓰고 학교 취직 안 되면 일반 기업 취업이라도 시도하자, 하고 토익책 사서 토익 시험 준비를 했었다.(그러다가 1차 붙는 바람에 큰일 났다…하고 열흘 동안 2차 벼락치기 하기도…) 기타를 배우겠다고 학원에 등록했다 건초염이 생기고 연습이 지루해지자 몇 달 못 되어 관둬버리고, 보컬 레슨을 받겠다고 또 학원에 갔다가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니 그것도 얼마 안 되어 관둬버렸다. 나름 다른 형태의 삶을 꿈꾸며 들어간 대학원에서도 전공 학문에 도무지 흥미를 갖지도 적응하지도 못하고는 논자시까지 봐놓고는 논문을 쓰지 않기로 했다.
쓰고 보니 나의 도피의 역사는 끝이 없구나…원가정에서는 가출도 많이 했었지 참…

아마 이번 도피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밥벌이로 되돌아갈 수도 있겠다. 나는 생각보다 포기가 빠르니까… 마나부는 선생을 관두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 전전하다가 만화가가 되어 이 책을 냈다. ㅋㅋㅋㅋ 이 책 말고도 만화가 하겠다고 도쿄 와서는 친구 못 사귀어서 절절매는 이야기 ‘나는 아직 친구가 없어요’도 같이 사놨더라…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서사 궁금하고 공감하고 찾아보는 나도 흑역사에 절절매는 마나부도 안쓰럽다. 그래도 나만 그런 거 아니란 거 알려줘서 고마워 마나부 ㅋㅋㅋㅋㅋ친구 잘 사귀나 못 사귀나 다른 책도 보러 갈게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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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23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딩 5학년 생 한테 악독한 것이라뇨!

기타 들고 열반인님
홍대에서 데뷔를 하셨어야 ㅎㅎㅎ

요즘 최고의 인기 직업은 예능인
유툽에 얼굴 손 빠꼼 내미는 유투버들 !^^

약사 친구 가게 문 닫으면 조명등 키고 유툽 촬영하고 살아여 ㅎㅎㅎ

열반인님 북플에선 사라지지 말귀~@@@@@

반유행열반인 2022-11-24 08:12   좋아요 1 | URL
화장도 엄청 세게 하고 무섭게 가르치던 선생님이셨는데 센 말이라 여태 기억에 남네요. 저 홍대 클럽 잠깐 돌다 멤버들 하나둘 떠나가고 밴드 역시 임신출산과 함께 금세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ㅋㅋㅋㅋ유튜브 이런거 하는 거 보면 대단한 거 같구 이제 관종병(?)은 치유가 된 건지 최대한 숨어 살고 싶습니다…
 
[eBook] 숨은 말 찾기
홍승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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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3 홍승은.

내키지 않을 때 말하지 않아도 되는 한 해를 보냈다. 그건 축복이다. 가장 친밀한 사람들하고만 말을 나누고 그럴 시간마저도 문제집을 붙들고 있느라 쪼그라들었다.
먹고살기 위한 말하기와 그밖의 말하기는 사뭇 다르다. 평소 말하기대로 하면 정말 큰일 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어린이들에게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최대한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아졌고, 나를 내보이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아마 내 말들은 재미 없어졌을 것이다. 존댓말을 하거나 나이에 상관없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주고받으면 대체로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생겼다. 그러다가도 방심하면 왜 애고 어른이고 선을 넘는 성희롱의 언어를 던지는지. 이제는 어른이 그러면 그 자리에서 불쾌감을 표시하고 그 말은 잘못됐으니 사과하시오, 하고 사과를 받아내는데 이상하게도 어린아이들이 나쁜 말을 하면 그런 말은 안 돼, 그 이상 대응하지 못한다. 혼을 내거나 벌을 주거나 벌점을 매기거나 하지도 못한다. 나도 나쁜 말을 많이 하니까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대화 상대방이 사람 때문에 힘든 순간을 토로하면 나는 상대방보다 더 오버를 하면서 원인으로 지목되는 사람을 욕하곤 한다. 그게 부모든 배우자든 연인이든 공통으로 모시는 상사든 상관없다.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을 나이 불문하고 그 새끼 글러처먹었네, 미친 새끼네, 하고 온 힘을 다해 비난한다. 그게 위로가 될 거라 믿었다. 그러면 먼저 이야기를 꺼냈던 사람은 약간은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너 왜 우리 00를 그렇게 말하니…하지는 않고 그냥 어정쩡한 미소를 지으며 흥분한 내 목소리를 듣고 있다… 돌아보면 나는 매번 왜 그리 주제넘었나 싶다. 곡비처럼 대신 통곡하는 대신, 대신 욕해드립니다…하고 있었구나…

그러면서도 늘 집에 돌아오면 내 말과 행동을 곱씹고 너무 말이 많았던 것, 상대의 말 중간에 끊고 들어간 것, 과도하게 센 비유를 쓰거나 비속어를 남발한 것을 자주 후회했다. 코로나19를 거쳐오며 이제는 만남도 모임도 대부분 끊겨버리고 그래서 말로 죄짓는 걸 덜하게 돼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주호민의 만화 ‘신과 함께’의 지옥에서 염라대왕이 말로 죄지은 이들의 혀에 밭을 갈고 한라봉 아니지 염라봉을 키워 수확하는 걸 보며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저기다, 내가 죽어서 가게 될 곳.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가 너무 좋아서 밑줄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쳤던 기억이 난다.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에서 작가의 삶을 보고 그 문장들이 진짜 삶에서 짜내어진 거구나 이건 진짜였어…하고 존경심마저 느꼈다. 그래서 홍승은 작가가 쓴 말에 관한 에세이를 보고는 주저 없이 펼쳤다. 전에 읽은 두 책만큼 마음에 와닿지 않은 건 말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도 도망치는 나와 달리 작가는 강연 노동자, 집필 노동자로 살면서 끝없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고 나아지는 자신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또다시 존경합니다…했다. 나는 결국 포기하고 피하고 숨는 길을 찾고 있는데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소리 내지 않는 삶을 꿈꾸는데요… 이 무기력의 근원은 뭘까요…
기를 죽이고 윽박지르는 세상을 향해 계속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용기를 내는 작가와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을 곱씹어 보면…연대와 경청의 유무였다. 끝없이 세상과 이어지고 다른 이의 고통을 듣고 고개가 아프도록 끄덕여주는 사람은 그만큼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세상에는 정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다양하게 살고 있다는 걸 살아갈수록 새삼 느끼는데, 그럴수록 더욱더 뻗어나가기 보다 움츠러드는 난 비겁하지만… 일단은 방구석에서 숨어서 응원할게요… 숨을수록 말도 꼬이고 손가락도 꼬부라지는 것 같고 문장도 의미를 잃어가고 점점 후져지는 것 같지만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날이 다시 오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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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11-23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는 저도 반열샘 덕분에 읽으면서 엄청 줄을 많이 그었던 책,,, 그 저자가 책을 냈군요. 가만보면 반열샘 늘 의리있고 일관성 있어요!! 그래서 좋아해요,, 저는 내가 누구 욕할 때 나보다 더 욕 세게 많이 해주는 사람 좋아해요,, 그런데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어요,,, 앞으로 그런 욕하고 싶은 일이나 사람이 생기면 반열샘에게 하고 싶은데 앞으로는 안 그러실 거라는 거죠??^^;;;

반유행열반인 2022-11-23 17:47   좋아요 0 | URL
저 그렇게 좋아하다가 뭔가 이제 이별할 시간이다 싶으면 가차없어요 ㅋㅋㅋㅋ장강명 전작하다가 올해 가진 책 대부분 팔아버리고 신작도 안 샀어요 ㅋㅋㅋ최고의 안티는 최고의 팬에서 나오는 구나 싶습니다…(척지고 살지 맙시다….)
라로님 말씀 듣고는 다시 올라가서 읽어보니까 이젠 안 그럴게요…소리는 없네요… 반성만 하고 안 그런다 소리는 왜 없니 나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욕할 사람 욕할 일 없이 가능한한 평온한 하루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만약 생기면 그때 알려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

Yeagene 2022-11-23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단은 방구석에서 숨어서 응원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11-23 18:44   좋아요 1 | URL
바깥 세상은 위험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20221121 줄리아 로스먼.

엄마가 어디선가 주워온 자연해부도감이 있는데 아직 보지 않았다. 이 책을 빌리고 보니 같은 저자였다. 생선 반찬은 안 좋아하는데 어류도감 이런 데는 관심이 많아서 이 책도 빌려서 다른 책 보는 간간이 보니까 순식간에 다 봤다. 어류는 물론 바다에 사는 수많은 생물체들, 산호, 해마, 펭귄, 물새, 그리고 빙하나 해류 같은 지구과학 공부할 때 나오는 해양 환경, 마지막에는 해양 환경을 위한 행동 촉구까지 두루두루 담고 있는 책이라 어린이들이 보기에도 좋을 것 같다.
조개구잇집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조개 종류가 이렇게나 많구나…다 먹을 수 있는 거냐… 하고 온갖 조개가 등장하는 페이지를 유심히 살펴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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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2-11-21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귀엽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11-22 07:32   좋아요 0 | URL
이 책에 물범 물개류랑 북극곰이 제일 귀엽고 안쓰러운데 (얼음 없어서 빼빼마른 북극곰도 그러둠) 귀여운 거 쏙 빼고 뭔 껍데기 사진만 가져왔네요. ㅋㅋㅋㅋ

새파랑 2022-11-22 0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 선택과목으로 생물하셨나요? ㅋ

반유행열반인 2022-11-22 18:07   좋아요 1 | URL
생명과학이랑 지구과학 했는데 이 책은 지구과학에 더 가까워요 ㅎㅎㅎ생명과학은 뭔가 생물이랑 별로 상관없는 거 배우는 기분이었어요…
 
[eBook] 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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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1 김영하.

낮에는 신사동의 극장에 다녀왔다. 넉 달 전 같은 영화를 본 이후 처음인 극장 나들이였다. 탕웨이는 다시 봐도 예쁘다. 예쁘게 늙는 건 부러운 일이다. 처음 헤어질 결심을 볼 때는 이것은 아이폰을 위한 영화인가…싶었다. 오늘 같이 영화를 본 엄마도 휴대전화를 매개로 전개되는 부분은 많이 지루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휴대전화의 등장은 많은 서사 창작자들에게는 난점이지 싶었다. 뭔가 서로 단절되고 그래서 오해도 쌓이고 갈등도 심화되고 해야 하는데,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너무도 서로와 쉽게 연결되는 시대를 산다. 반대로 배터리가 나가거나 전화기를 두고 오거나 고장이 나거나 화면이 깨지거나 하여간에 인연을 엇갈리게 하는 방식이 너무 뻔하고 빈곤한 상상력을 드러내는 비루한 이야기가 될까 걱정하면서도 또 그게 그나마 개연성 있는 전개일 때도 많겠다. 박찬욱이 그런 점을 나름 고민하다가 아예 대놓고 휴대전화로 메시지도 하고 녹음도 하고 스마트워치도 동원하고 폰도 폰1, 2, 3 대포폰 바꿔치기 한 폰 새로 산 폰 등등…갈 데까지 해보자 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일찌감치 아이폰만 이용해 영화를 찍는 시도도 했었으니 뭐…

그렇지만 지는 해와 밀려드는 조수와 파도와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찍으려면 바다에 가야만 한다. 폰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폰으로 바다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사랑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을 수는 있겠네… 넌 그걸로 충분하니?

집에 오니 문제집을 팔아 생긴 적립금으로 주문한 김금희 신작 소설책이 와 있었다. 아니 내년에도 공부하신다면서…왠지 안 푼 문제집 중 꼴 보기 싫은 것들을 내놓았더니 금세 주문이 밀려들어 수능 전 사흘 내내 매일 택배를 부치러 편의점에 다녀왔다. 5만 원 좀 안 되는 돈이 생겼다. ㅋㅋㅋ(정가는 막 권당 3만 원인 문제집을 세 권에 3만 원도 안 되게 팔았다지…)
문득 알라딘 매장 가서 김애란 산문집 팔아 김금희 소설을 사들고 오던 날이 생각났다. 그것이 나와 금희 언니의 시작이었다… 너무 한낮의 연애… 최강희가 양희로 나오는 티비문학관 드라마도 봤지… 거기는 서울역 고가도로에 만든 도보 공원이 나오지… 그때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돼지처럼 막 종이책 두 권 전자책 세 권 그리고 또 대기타는 종이책들 옆에 하나씩 꽂는 게 늘어나고 문득 이런 날들 생각보다 길지 않겠다…마냥 책만 보라면 보겠는데 다음 달이 되면 다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프고 조급해졌다. 어느 것을 볼까요, 하다가 빌린 김영하 소설을 마저 읽기로 했다.

김영하가 최애 작가는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가 낸 소설은 빛의 제국, 에세이는 보다 시리즈 두 권 빼고는 다 봤더라… 관성처럼 올해 신작 나온 게 있길래 또 보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로봇, 이런 게 또다시 등장해서 그간 보았던 비슷한 소재들을 떠올려 보았다. 윤이형의 대니, 레스터 델 레이의 헬렌 올로이, 카렐 차페크의 로봇, 구병모의 한 스푼의 시간,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 소설이 아니라도 블레이드 러너, 프로메테우스, 에이리언 커버넌트, 채피, 휴머노이드가 등장하는 서사는 차고 넘쳤다. 그래서 전혀 정보 없이 펼친 소설에서 인공 지능 운운하니까 저절로 또야…하고 말았다. 화자나 그 주변 인물들이 초반에 어린 나이로 설정되어 그런가 캐릭터가 많이 약하고 특색 없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게 의도한 건지 그냥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 후반부는 채피 같기도 하고 왠지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생각났다. 제목을 쓰고 보니 이 영화도 다시 보고 싶다. 전 부인이랑 애들한테는 참 개새끼인데 영화로 보는 빵발이는 참 좋아했다…일단 파이트클럽 먼저…세븐은 참자…곱고 예쁜 거만 보기로…(파이트클럽이 곱냐…)

선택 과목으로 지구과학을 고르자 지구의 과거와 우주를 동시에 배우게 되었다. 이 우주에 우리가 없던 시간은 참 까마득하게 길었고, 우리가 없어진 이후로도 그럴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별에서 왔어.(아니야 금희언니가 페퍼로니에서 왔대) 하고 예쁘게 생각하려 해도, 그냥 우리는 먼지야 먼지, 잠시 뭉쳐 있다 다시 흩어질 거야, 하면 허무하기도 한데. 소설 속 선이는 이름처럼 불교 느낌 나는 우주철학을 설파하며 이상은 언니처럼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하고 있었다. 선이 철이 민이 달마 김영하가 이번에는 이름 참 구수하게 지었다. 오히려 고양이 이름이 막 칸트 데카르트 갈릴레오 그랬다. 이름 불릴 수 있는 존재로 잠시나마 살아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까.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 온통 나를 죽이려는 우주 안에서 버티고 살아 있는 나한테, 버티도록 돕는 주변 이들에게 감사해야겠다.

같이 늙어가는 소설가들에 대해 생각했다. 다들 필립로스처럼 노년에 더 뜨겁고 치열하게 펑 터지는 걸 쓰기는 쉽지 않겠지만… 너무 젊을 때 빤짝이고 날카롭던 소설가들이 약간은 뭉툭하고 잔잔해지고 어느 정도는 착한 글을 쓰는 걸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드디어 안식을 얻으셨군요, 싶기도 하고, 살만하냐, 하고 삐딱해지기도 하고.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던 가수는 미처 더 나이 먹지 못하고 그 물음에 대해 먼저 살고 답해주지도 않고 일찍 죽어버려서 슬프기도 하다. 저도 안식을 얻을 때까지 살아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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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2-11-21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구과학 선택하셨군요...전 지구과학이랑 물리가 너무 싫어서 생물1,2화학1,2 선택했었어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2-11-22 07:31   좋아요 0 | URL
전 생명과학1(이제 생물을 이렇게 부른대요 언어영역 이러면 옛날 사람 취급 받음 국어영역이라고 ㅋㅋㅋ)지구과학1 했는데 생명과학은 뭔가 생명과 관계 없는 퍼즐 게임 같이 나오고 지구과학이 그나마 지리랑 비슷해서 공부할 만하더라구요. 화학은 잠깐 하다 바로 접고 나중에 하자 이러고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