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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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1 김연수재독.

위로의 시차.


赤い鳥 - 白い墓

https://m.youtube.com/watch?v=YxCb7PldUxQ


  전에 읽은 김연수 소설집을 다시 읽었다벌써싶기도 하고 까마득히멀기도  시간이었다

책은 거기 그대로인데 (사실 알라딘 중고서점에 화풀이하듯 팔았다나빠서가 아니라 좋은 것이라도 냉큼 내던지고 싶은 마음일 때라그래서 이번에는 전자책을 빌려 읽었다그래서 더더욱  마음의 온도차가 선명한 읽기였다기억하기로 5  재독한 책은   권이다장강명의 ‘그믐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그리고 올해는 현우진의 뉴런 1, 2 다시  예정입니다ㅋㅋㅋ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처럼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우울절망슬픔그런  있다는  안다그런 위로가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정작 힘겨운 순간에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때가 나같은 못난 이들에게는 특히 많지만없어도   아닌 것을 이제 안다 시간을  지나온 후에그때 거기에 내가 괜찮아지길 바라는 마음이그래서 건네는 수많은 말과 글과 눈빛과 손길이 있었다는  너무 늦게라도 떠올릴  있다그러면 당장은 그때만큼 힘들지 않은 시간이지만언제라도 다시  슬픔이 닥쳐도  흘려보낼  있을 거라고 평온한 마음을 먹을  있다


최악의 결말이 아니라평범한 나중을 떠올려 볼래 노래 들어볼래 그림은 어때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잃는 슬픔이 너무 커서 말문이 막히던 때에 나는  사람들을 시절과 기분을 잊지 말자고 이야기를 지었어그런 말들을  알아들으면서도  튕겨내고 골을 내던 내가 이번에는 인터넷에 도시 이름도 적어보고유튜브에서 찾은 노래를 띄워놓고 마저 읽고수많은 마크 로스코의   어떤 것일까 궁금해 하기도 했다


소설은   전에도지금도 여전히 좋았고그걸 다시 읽는 나만 조금은 달라져 있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있을까?” 희진의 물음처럼 던져  말은(사실은 설의법ㅋㅋㅋ강조의 효과우주까지는 몰라도  우주에 사는 기억하는 너는 달라져 있을 거야하고  깨알같이  주섬주섬 챙겨주고 있었다


그래서 내년에도 고집스럽게  거라고 골부리던 거울  나는   동안 그렇게 많이 울지 않고된장과 현미 홉을 챙겨 먹지는 않지만 아침마다 산에 나가 5킬로 남짓을 걷고여서일고여덟 시간  랜덤하게 그날 공부를 채우는 나를 얼마가 됐든 책망하지 않고그냥 이랬던 나를 나중에 기억하라고 매일 시간을 끼적여 놓고그때는 상상하지 못하던 평범한 오늘을 산다




+밑줄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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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있는데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없다는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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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그런데 살아보니까 그건 놀라운 말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한 말이더라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우리는 죽지 않고 결혼해 지금 이렇게 맥주를 마시고 있잖아줄리아는 그냥  사실을 말한 거야다만 이십  빨리 말했을 시차가 평범한 말을 신의 말처럼 들리게  거야소설에 미래를 기억하라고  엄마는  죽었을까그게 궁금했는데이제는   같아엄마도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상상할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이토록 평범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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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의미가 없어 무자비할 수밖에 없는 자연에 맞서기 위해 상징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그게 바로 정현이 평생 몰두해온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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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의 말을 듣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그때는 그저 은정이 이야기를 재밌게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이제는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무슨 뜻인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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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어맞아 팅팅 부은 얼굴이 미워서 내가 ‘이딴  하지 말고하던 대로 글이나 열심히 라고 말했어요그랬더니 ‘글쓴다고 인생이 가만히 놔둘  같니?’라면서 흘겨보더라구요그래서 내가 ‘그래도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것보다는 낫잖아해도  되는   뻔한 일을  하고 있어?’라고 했더니 이렇게 대답했어요. ‘버티고 버티다가넘어지긴  마찬가지야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그다음이 있어너도 KO 당해  바닥에 누워 있어보면알게  거야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세상이 뒤로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세상에  혼자만 있는  같은 기분이 들지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나한테로.’ 무슨 바람이냐고 물었더니 ‘세컨드 윈드라고 하더라구요. (<난주의 바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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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역시 기만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그들도 저의 수많은 모습 중에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것들만 모아 저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으니까요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척척 맞겠지만바로 그런 이유로 그것은 기만입니다실제의  삶은 앞뒤가 척척 맞아떨어지지 않거든요제가 선택한 제가 그럴싸한 이야기였듯이 선생님이 분석한  역시 또다른 그럴싸한 이야기겠지요〈사건의 결말〉 제작진이 편집한  역시 하나의 이야기이고요그러나 아시겠지만저는  어떤 이야기도 아니에요저는 혼돈  자체입니다카오스  자체예요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진주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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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죽음이란 더이상 신간을 읽지 못한다는 뜻이었다그녀가 더이상 읽지 못할 책들이 거기 켜켜이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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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그녀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스스로의 인생 앞에서 우리 모두는 그처럼 진지한 표정이리라그걸 두고 괜찮아진다느니 있으면 나아진다느니 같은 말을 하는  아무 소용이 없다어떤 말로도 우리는 위로받을  없다그게 이십대 초반에 그가 가진 견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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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시작된 것은  직후월드컵과 대통령선거의 열기로 서울이 달아오르던 2002 여름이었지만둘의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됐다그러니 정미가  세상에 없다고 해도 아직 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고말할  있지 않겠는가.(<바얀자그에서 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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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준이 이제는 굳게 믿고 있는 것처럼우리의 얼굴은 유동한다흐르는 물처럼 시간에 따라 조금씩 과거의 얼굴에서 미래의 얼굴로 바뀌어간다그렇게 우리의 얼굴이 바뀔  있다는 사실 덕분에 거기 희망이 생겨나는 것이라고그는 생각한다그게 예술이 하는 일이라고도배우는 표정으로  시간적 간극을 압축해 조명 아래에서 드러내 보인다현재의 얼굴에 과거를 미래를 모두 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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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미국으로 떠나던 아버지는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그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누구나 최선을 다한다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피할  없는 책임이 인생에는 있는 법이다.(<엄마 없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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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밤의 빛이 희진의 눈앞에서 출렁거렸다그렇다면 그건 아마도 언젠가 우리가 함께 나란히 서서 바라본 빛일지도 모르겠다마크 로스코의 빛이라면 말이다 머릿속으로는 곧장 하얗게  벚꽃잎들과 한없이 어두운 갈색의 사각형들이 떠올랐다


일본 DIC가와무라기념미술관 ‘로스코의 ’ 시그램 벽화이미지 출처:https://m.blog.naver.com/miraebookjoa/220387043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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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사람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나를 기억한 사람에 대해서 말이야그렇다면  기억은 나에게 인생에내가 사는  세상에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있을까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있을까? (<다만  사람을 기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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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사전에는 ‘몸과 마음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라고 나와 있었다그러니까 이제는 무엇도 이룰 것이 없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다하지 않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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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여름의 해변라일레이에서 지훈은 리나를 이해하지 못했다그럼에도 그녀를 안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없었다영원한 여름에서 나누는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마음이 없어도 둘은 밤이나 낮이나 사랑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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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찾아갔을 지훈은 리나가 현관의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가이윽고 다시 잠겼다돌아오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하지만 지훈은 이제 리나가 비밀번호를 바꾸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하게 됐다그렇다면 문이 열린다 해도 비밀번호가 진짜 비밀번호가  수는 없었다.


  옛날이야기모두 옛날이야기……


  꽃이 지는  꽃철이 지났기 때문이다그리고 사랑이 끝나는 이제  사람  누구도 용기를 내지 않기 때문에.(<사랑의 단상 2014> )

잃어버린 옛 사랑을 못 잊고 그리워하고 왜 잊지 못하고 찌질하게 구질구질하게 구니, 하는 사람에게 사랑이 어떻게 쉽게 없던 일이 되냐고 한 대 쥐어박는 느낌은 알겠는데, 이 소설의 저 부분, 문이 열린다 해도 그 비밀번호가 진짜 비밀번호가 될 수는 없었다.는 문장을 위해 마련된 저 장면은 아주 나쁘게 여겨졌다. 내가 사는 집에, 이제는 사랑이 아닌 사이에, 아니 뭐 그 누구라도 갑자기 도어락 열고 비밀번호 누르고 심지어 번호 맞아서 스르륵 열리고 다시 잠겼다, 로 그냥 한 번 열어만 보고 뒤돌아 갔으니 난 완전 나쁜 놈은 아님… 사랑이 깊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눙치기에는 이거 시점 바꾸면 진짜 범죄 호러물 아닌가 싶었다. 애틋한 마음 가지려다가도 독자에게 초를 치는 장면이었다. 허락된 공간 외에는 비밀번호 알고 있다고 막 열어보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누군가는 생존에 위협을 느낍니다… 라고 굳이 적어줘야 되는 거냐… 대부분이 좋은 소설집이었지만 저 부분은 큰 흠이었다, 티라고 부르기엔 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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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경이로워라고 말하는 것과 ‘세상은 품에 안을  경이로워라고 말하는  다르다세상은 품에 안을  경이롭다는 말은 경이로움이 내게 달린 문제라는 뜻이다그러니까 세상을 안을  있느냐없느냐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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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빛으로 가득   몸들보다 나은 곳이 있을까?”라고 썼다 경이로운 문장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 나는  알게 됐다직전의 시구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삶이라는 힘든 노동은/어두운 시간들로 가득하지 않아?”(작가의  메리 올리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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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2-21 09: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재독한 책 하나 더 있음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cott 2023-02-21 18:48   좋아요 1 | URL
이토록 평범하지 않은 리뷰 연수옹 여전히 열반인님의 최애 작가 중 👆

반유행열반인 2023-02-21 19:59   좋아요 2 | URL
아이참 언제나 제게 너그러우신 scott님 평범한 리뷰도 막 추켜올려주시고 ㅋㅋㅋ저 김연수 작가 찐팬 중에 작가님 여행 경로나 레지던스 따라 가족 휴가지 제주 일본 이렇게 잡는 분들 계시다는 소리 친구에게 듣고 …아 리뷰 선 넘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 했어요ㅋㅋㅋ 좋은 소설인 거 알고도 내버려 둬 위로하지 마 빼애액! 해놓고 내내 마음에 걸렸는지 결국 다시 공손하게 한 번 더 읽고 리뷰 한 번 더 쓰고 맙니다… 진짜 팬들에 비하면 저는 최애로 꼽기도 죄송한 수준이죠 산문집까지 겨우 네 권 읽고(공손…) 그저 존경하는 잘쓰시는 작가님 (굽신굽신)

Yeagene 2023-02-22 14: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연수 작가,작품은 궁금한데 이상하게 안읽게 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2-22 21:18   좋아요 2 | URL
장편인 일곱해의마지막이랑 이 소설집이랑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재미있게 봤어요 ㅎㅎㅎ명성 자자한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그냥 그랬구요 ㅎㅎㅎ
 

  이웃의 정갈한 책상과 단아한 독서대를 보다가, 나는 예쁜 건 없고 그냥 독서대 많다고 뭔가 자랑 아닌 자랑하다가, 나는 이제 부자로구나, 생각했다. 독서대 두 자리 수 보유자 독서대 부자. 공부가 하기 싫었나 갑자기 인증샷을 찍겠다고 근처에 널부러진 독서대들을 주섬주섬 모았다. 가족들 쓰는 중인 독서대 서너 개는 동원하지 않고도 9?10개가 모였으니… 알라딘 최다 독서대 보유자 타이틀을 탈환하실 이웃or 양보다는 품질, 기능, 디자인 등 다른 분야의 빼어남이나 미감으로 승부하실 이웃께서는 댁내 애장품을 널리 공유해주소서. ㅎㅎㅎ 저는 양으로 갑니다…

 사진의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소개 올립니다. 
1. 승강기 독서대
 재질: 합성목
 특이사항: 보유 독서대 중 최고가(그러나 초기 펀딩 참여로 알라딘 현재 판매가보다 9500원 싸게 사서 흡족)이자 하루 대부분을 이 앞에서 보냅니다. 승강기처럼 오르내리는 기능 보유로 서서도 책을 볼 수도 있다!지만 지금은 가장 낮은 단계로 두고 씁니다. 문제풀이랑 강의수강에는 그게 편해요ㅎㅎㅎ
 책도 읽고 태블릿도 쓰고 했는데 수험 생활 메이트가 될 줄은…구매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2. 알라딘 굿즈 패브릭 독서대 원투쓰리포 이하 생략
 재질:(아마도) 종이판대기에 패브릭 커버
 특이사항: 여태 받은 알라딘굿즈 중 가장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다섯 개(아마 더 될수도…)나 받아버렸어… 일단 무게가 매우 가볍고, 접으면 얇아져서 가방에 쇽 들어갑니다. 펼쳐 세우면 세모난 공간이 독서대 아래 생겨서 그 아래 물건이나 핸드폰 넣어 두기도 좋습니다. 제 것은 스터디 카페 갈 때 두 개씩 챙겨가고, 큰꼬맹이 학습용, 작은꼬맹이 그림책용, 곁의 사람 만화 감상용(?)으로 온 가족에게 배부하였습니다. 

3. 패브릭 독서대들 아래 독서대형 탁자
 재질:합성목에 금속 다리
 특이사항: 독서대라 우기기엔 무리일 수도…있지만 침대에서 커피 놓고 책 받쳐놓고 게으름 피울 수 있는(그러나 전 안 해봄 침대 없음) 독서대형 좌식 테이블입니다. 지금만큼 독서대 챙기기 전엔 애용했는데 지금은 아이들 책이나 장난감 놓고 놀거나 간식 먹거나 손님 오시면 사과 놓는 상으로 전락했습니다…(두 개 보유)

4. 원목 독서대
 재질: 원목
 특이사항: 원목을 좋아해서 동생이 쓰던 이케아 원목식탁 물려 받아 식탁으로 쓰다가 지금은 책상으로 쓰고 있습니다. 예전 학교의 친절한 기술 선생님께서 손수 만들어 주셨는데, 디자인은 올드하지만 라운딩 처리며 마감 꼼꼼히 해주셔서 직장 옮길 때도 가져가서 유용하게 썼습니다. 이것 말고도 나무 재질은 임용고사 준비할 때 쓰던 엠디에프 독서대랑 원목독서대를 아직 가지고 있는데 지금은 어머니께서 사용중이십니다. ㅎㅎㅎ

5. 금속 독서대(!)
 재질: 스틸에 페인트칠
 특이사항: 이것도 알라딘 굿즈로 받은 건데 디자인은 좋지만 초반에 페인트가 묻어났고!!! 무겁고 각도 조절이 안 되어 지금은 사진 액자 받침으로 사용중입니다. 금속으로 독서대 만드는 거 아니다… 책 안 읽어본 사람이 디자인한 듯… 독서대 욕심을 부리면 이렇게 실패템도 나옵니다. 

6. 호랑이(?) 독서대
 재질: 플라스틱
 특이사항: 독서대 욕심을 부리면 이렇게 실패템도 나옵니다2222 예스24에서 오랜만에 주문하면서 적립금도 꽤나 많이 지불하고 선택한 사은품이었는데…이것들이 똥을 줬습니다. 잘 세워지지도 않고 책 지탱도 못하고 이런 건 독서대라고 부르면 안 될 텐데…그러고나서 몇 주 후에 디자인 예쁜 합성목 독서대 멀쩡한 것을 증정하는 걸 보고 더 열받아서 툭 치면 부서질 것 같은데… 그래도 작은 꼬맹이는 독서대다, 하고 접었다 폈다 가끔 책도 꽂아두면서 너그럽게 독서대로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7. 둘리 독서대
 재질: 합성목
 특이사항: 승강기 독서대(인강 수강 및 문제풀이용 태블릿 거치대)옆에서 거드는(교재 받침대…) 독서대로 애용 중입니다. 승강기 독서대와 같은 제조사에서 만든 알라딘 굿즈로, 이것도 승강기 독서대 오기 전에는 최애템으로 애용했습니다. 아…쓰다 보니 이거랑 비슷하게 다단 각도 조절되는 셜록 독서대도 있는데… 잊고 있던 독서대들 자꾸만 기억 속에 등장해서 당황스럽습니다… 책 몇 권인지 모르듯이 독서대도 몇 개인지 모르는 걸로… 정말 열 개 넘나 자신 없었는데 독서대 테이블 빼고도 두 자리 수 보유인 건 맞는 걸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마냥 아홉 개의 독서대로 남은 자네…가 되지 않으려 했는데 이미 아홉 개는 지났고 이지경인 걸 깨닫는 데 조금 늦은 것 같습니다. 책 그만 사기 다짐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지구환경을 생각해 저는 독서대를 늘리지 않기로 다짐합니다…지구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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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 2023-02-18 1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홉 개의 독서대 그 이상을 소유한 분으로 널리 기억될 열반님….

반유행열반인 2023-02-18 19:45   좋아요 2 | URL
알라딘에 있잖아 그 사람…
누구?
거 왜 독서대 아홉 개랬나
아, 그 사람, 아홉 개 넘지…
이런 풍경 말씀이신가요? 뭔가 몰랐을 장면을 상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끼님ㅎㅎㅎㅎ

건수하 2023-02-18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대 구경 왔습니다. 사진이…. 저만 안 보이는 건가요? @@!

반유행열반인 2023-02-18 19:53   좋아요 2 | URL
제가 북플을 안 깔아서 IOS에선 pc버전으로 밑줄긋기 이미지 첨부만 되더라구요. 그런데 그게 북플에서는 안 보이고 웹페이지에서만 보이는가 봅니다 ㅠㅠ다른 블로그에 올려서 링크 형태로 다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ㅠㅠ

반유행열반인 2023-02-18 20:0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수하님 덕분에 이미지 올리기에 성공(?)했습니다…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2-18 20:53   좋아요 1 | URL
앗 그랬군요 ^^ 저는 글에는 사진 얘기를 하셨는데 안 보여서 ㅎㅎㅎ 다른 글에 있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저는 글을 주로 서재를 통해서 (pc로) 쓰는지라 iOS에서 그런 불편함이 있는 줄 몰랐네요 ^^
고생하셨습니다!

유수 2023-02-19 0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새로 독서대를 하나 사야해서요. 개인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ㅎㅎㅎㅎ n개 독서대로 남아주신 덕분에 말예요. 정독하다가 기억 비집고 나오는 독서대들에 당황하시는 모습에 웃었습니다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2-19 12:43   좋아요 2 | URL
구매한 건 거의 없고 오래 전 사은품들 위주라 정보가 많이 부족하지요 ㅎㅎㅎ 그러면서 유수님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 독서대 궁금해 하며 또 알라딘 독서대 상품정보들 훑어보며 그간 또 신제품이 많이 나왔구나…더 안 산다며 왜 이단 와이드 높이조절 피너츠 독서대 보고 있어…했습니다 ㅋㅋㅋ

은오 2023-02-19 14: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 갖고다니기 좋은 가벼운 독서대가 많네요. 알라딘 굿즈도 꽤 있고요! ㅋㅋㅋ저는 알라딘에서 책 말고는 책갈피 커피 정도만 산 것 같습니다. 굿즈는 보지도 않고 그냥 넘기고 마일리지는 다 적립금으로 변환 대신 딴데서 돈씀....

반유행열반인 2023-02-19 17:38   좋아요 2 | URL
휴대용 독서대는 정말 소중합니다…독서대 보다는 주로 태블릿 거치대일 때가 더 많지만요 ㅎㅎㅎ 굿즈 사은품 욕심내던 때도 다 한 때고(오천원도 안 되는 적립금으로 합성목 독서대 줄 때가 괜찮았죠 지금은 다 비싸게 팔고 나부랭이(?)들만 줘서 저도 중고책만 사요 ㅋㅋㅋ) 이제는 그간 모은 굿즈들 더 활용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ㅋㅋㅋ

새파랑 2023-02-19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번 꽂히면 일단 다 모으시는 열반인님~! 전 독서대는 잘 안쓰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손목이 좀 안좋습니다 ㅋ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랑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보이네요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2-19 17:40   좋아요 2 | URL
두꺼운 소설책 오래 보시느라 손목이!! 저는 독서대 없이는 모가지랑 어깨가 힘들고 두통까지 오더라구요. 세월이란… 깨알같이 잘 찾아내신ㅋㅋㅋ 사진에 잡힌 책상 근방 책 중 단 한 권도 읽은 게 없다는 게 함정입니다 ㅎㅎㅎ위시리스트들로 둘러싸여 살아요.

파이버 2023-02-22 0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페브릭 독서대 저도 좋아합니다. 가볍고 들고다니기 좋더라구요. 독서대는 휴대폰이나 태블릿 걸쳐놓고 영상보기도 좋은 것 같아요. 독서대 쓰다가 안쓰면 목이랑 어깨가 아파서 꼭 필수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2-22 08:22   좋아요 2 | URL
정말요 우리에겐 필수품!인데 스카에 청소년들 고개 쭈그리고 책이든 태블릿이든 보는 거 보면 어 너희는 목 안 아프니…신기하더라고요ㅋㅋㅋ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패브릭 독서대 하나는 책고정 클립 다 날아가서 아예 제거하고 쓰는데 뒤에 자석 내구도 불평이신 분들도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잘 쓰고 있긴 한데 또 남한테 돈주고 사라고 권하기엔 (저는 책 사면서 적립금으로 싸게 받아서 ㅋㅋㅋ) 망설여져요 ㅋㅋ
 
[eBook] 왜 얼굴에 혹할까
최훈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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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7 최훈.

 스스로 얼굴에 혹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책 제목에는 혹해서 읽어 보았다. 한때는 심리학 도서들이 인기를 끌었던 것 같은데 뭔가 유행 따라 뇌과학한테 많이 밀린 기분이다. 전공이랑 관련 있어서 사회심리학 스터디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리고 교육심리학은 정말 흥미가 없었다…) 이제는 심리학책도 막 엄청 재미있지 않다. 사람의 마음을 알기를 포기한 건 아닐텐데, 어렵고도 어려운 그 마음 심리학에서는 답을 못찾겠다, 그냥 어디에서도 못찾겠다, 싶은가 보다.

 아이와 떡볶이를 해 먹다 며칠 전 역시 떡볶이 먹으면서 같이 먹은 음식이 무엇인가…둘다 한참 기억해내지 못하다 아이가 계란!! 계란후라이가 맞다고 했는데도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간단한 걸 둘다 기억 못했을리 없다고 한참 부인하다 결국에는 하나하나 되살린 기억이 맞아 들어가 계란이 맞는 걸로..결론을 내렸었다. 사실 그날도 어묵도 안 넣고 허전하니 계란을 같이 부쳐줘? 하다가 말았었는데 계란 하나 귀찮다고 안 부쳐준게 마음에 걸렸는지 나의 억압기제(?)는 며칠 전에 계란을 같이 준 바 없다고 ㅋㅋㅋㅋ기억해내는 걸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후보 음식으로 내가 거론한 것이 에그타르트? ㅋㅋㅋㅋ 사람의 마음이란.

 사람의 얼굴을 크게 신경 안 쓴다면서도 사실 나는 남의 얼굴을 살피며 자꾸만 성격을 읽으려 든다. 그런 추측들이 맞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만든 선입관이 또 쉬이 바뀌지 않고 나는 계속 확증편향적 사고만 하고 말지… 그렇다고 남들이 호감 가지고 잘생겼다고 하는 얼굴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대체 왜 잘생겼다는 거야…하면서 얼굴값 한다…하고 반감을 가질 때가 많지…

 그렇게 얼굴 관심 없다면서도 결국 관심이 있는지 이 책을 펼쳤는데 역시나 크게 흥미로운 얘기는 없었다. 심리학 일반에서 언급되는 이런 저런 들어본 효과들이랑 관련 분야 실험 연구 등등을 얼굴이라는 주제로 묶은 건 애쓴 부분 같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었고 얻은 것도 별로 없었다… 왜 자꾸 없대… 읽긴 읽었는데 할말이 없나 보다… 점점 바보가 되어 가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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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2-17 2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심리학 -> 뇌과학 거쳤고 지금은 사회학이 제일 재밌더라고요 ㅋㅋㅋ 이제 사람의 문제를 개인 심리의 층위에서 파악하는 것보다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알아보는게 더 유익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둘 다 필요하겠지만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2-17 23:29   좋아요 1 | URL
은오님 배우신 분!!! ㅋㅋㅋ저의 독서는 십대 후반 이십대까지 사회학과 그 친구들 위주로 시작했지만…이제는 소설과 만화로 수렴하고 있네요. ㅎㅎㅎ
 
도박 중독자의 가족
이하진 지음 / 열린책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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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5 이하진.

예전에 다음에 ‘카산드라’ 연재하던 작가님 만화를 재미있게 봤다. 연재가 드문드문 이어지다 중단된 이후 잊고 있었는데, 내가 잊고 있는 동안 완결도 되고 책도 나오고 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작가님의 첫 책은 ‘도박 중독자의 가족’, 웹툰 연재분을 모은 이 책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가정 불화가 이어지는 이야기를 보면 마음이 어둡다. 엘리자베스 워첼이 안나 카레니나의 첫머리를 비틀어 오히려 불행한 가정이야말로 다들 고만고만 비슷비슷하다고 했는데 나는 그말에 공감했다. 사실 도박에 빠진 시동생을, 그리고 그 시동생을 두둔하느라 다른 자식들까지 망하게 만든 시어머니를 가족이라 칭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었다. 그러니까 민법 상에도 친족, 인척하니까… 혈연이나 혼인으로 인한 관계가 경제적 피해는 물론이고 심리적, 정신적으로 질환까지 오게 만드는 서사는 슬프고 괴로웠다. 정신질환은 전염병이다. 내가 공부하는 수능 생명과학에서는 비감염성 질환, 이러고 땡 탈락, 하겠지만 과학적 의미로는 감염되는 게 아니라 하겠지만 심리적, 정신적 고충은 주변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옮아간다. 중독자의 가족은 공동의존, 우울증, 온갖 것이 올 수 있다. 원가정 혈연 지키려다가 새로 이룬 가정이 파탄나기도 한다.

담담하게 겪은 일들 복기하듯 그린 형태라, 그리고 정작 그리고 싶은 만화도 못 그리며 고통 받는 중에 혹은 그 이후에 짬짬이 그렸을 것이라 이전에 보던 연재 만화에 비하면 구성도 연출도 그림도 엉성한 느낌이 있다. 책 구성도 웹툰을 책으로 낼 때 재편집해서 책답게 하는 과정을 대부분 거치는데 거의 컷 그대로 옮겨져서 내용에 비해 쪽수도 어마어마하다. 거의 오백쪽… 그런데 금방 읽음… 남의 괴로운 가정 서사 앞에서도 구성 타령 하는 나새끼 개새끼지만 그래도 작가의 역량 크게 발휘하면 어떤 퀄리티 나오는지 알고 있는 터라 책 완성도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주변의 중독 때문에 고통 받은 경험보다는 내 스스로가 중독적 성향 때문에 내 인생도 곁의 사람들 인생도 조질까 걱정하며 단도리 하고 살아온 터라 그냥 무서운 디스토피아 이야기 하나 더 봤다 싶다… 같이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고 자기 삶 건사하기 위해 투쟁하는 주인공이 짠하기도 하고 굳건해서 닮고 싶기도 했다. 다만 자기 이름이나 그간 커리어도 다 묻히고 이야기 안에서는 내내 누군가의 부인, 엄마, 며느리, 형수, 자녀, (그나마 적극적인 지위가 내담자! 정신과 진료 받는 환자!) 이렇게 위치 지어지는 묘사 뿐이어서 그게 또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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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3-02-15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두운 내용이군요..이런 책은 읽기가 참 힘들어요 ㅠㅠㅠ

반유행열반인 2023-02-15 23:13   좋아요 2 | URL
혈연이나 배우자나 배우자의 가족이 만드는 지옥에 관한 서사는 진짜 끝도 없네요. 어딘가는 오손도손 잘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만…그건 이야기거리가 안 되겠지요ㅎㅎㅎ
 
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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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1 박상영.

요즘 애들-김남준
보름 이후의 사랑-고찬호
우리가 되는 순간-유한영과 황은채
믿음에 대하여-임철우

네 소설을 묶은 연작소설집. 작품 시작하는 각각마다 제목과 이름이 써 있다. 소설의 주인물 이름을 저렇게 해놓으니 꼭 여러 소설가 작품 묶은 것처럼 착각이 들어서 웃겼다. 심지어 임철우는 진짜 소설가 이름이잖아…

이전에 읽은 김금희 소설이 연작이었고, 이 소설에도 방송국, 잡지사,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나와서 처음 읽을 땐 둘이 겹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는 십 대까지만 해도 내가 앞으로 굉장히 창의적인 일을 하고 살 줄만 알았다. 지망도 언론학부, 광고홍보학과, 신문방송학과 같은 곳이었다. 수시로 1차 붙고 안 간 0대는 언론학부, 정시로 붙은 0대도 신문방송학과가 있는 사회과학계열이었지. 그렇지만 대학 간판만 보고 서열 제일 높다는 사범대에 갔고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중에 언론이나 광고에 대해 질색하게 된 걸 생각하면, 그리고 그 분야들이 얼마나 다른 사람과 협업이 중요한지, 수많은 사람들과 상대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그리로 안 빠지길 다행이지 싶다.
사실 나는 언제 어디를 갔더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새로운 길을 궁리했을 것이다. 스무살 이후 거처를 옮긴 게 최소 열한 번인 걸 돌아보면. 나는 머무를 줄 모르는 사람이다. 뿌리가 없이 흘러내린다. 거기에다 나는 믿음이 없다. 어느 것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런 부분에서 이 소설집의 임철우랑 가장 비슷했다.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사람. 임철우는 사진을 찍는 커리어로 잘 나가다가가 연인의 죽음과 그에 관한 거짓을 알게 되고는 일을 집어치우고, 이태원에서 이자카야를 하다가 코로나 때문에 폭망하고, 다시 사진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래도 한 번은 그만뒀잖아? 나는 아주 긴 그만두기를 하는 중이다. 그 수단이 수능이 될 줄은 몰랐네...

김남준과 황은채가 인턴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 보면서 많이 슬펐다. 내가 신규이던 시절에는 실컷 부려먹더라도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같이 힘들게 일하던 어른들이 있어서 그나마 견딜만 했던 것 같다. 직장이 힘들어진 데에는 그렇게 새로 온 사람들 적응을 돕고 처음 일하는 젊은이들 많이 가르쳐줘야 할 어른들이 사라지고, 자꾸만 자리를 비우고, 자기 일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오히려 자기가 할 일을 물정 모르는 새 사람에게 떠넘기고, 잘 알면서도 물어오는 것들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회피하고, 그러면서 잘 못한다고 혼내고 호통치고, 그런 일들이 자꾸만 반복되어서 였다. 내가 그걸 겪는 일도, 그런 일을 겪는 어린 사람들을 보는 일도 고통이었다. 아직 내 위치에서 누굴 돕거나 가르칠 짬도 안 되고, 내가 자라서 저런 거지 같은 어른이 되지 않을 자신도 점점 없어지고, 결국 환멸만이 남았다. 가까운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하는 공부가 망해도 돌아갈 곳이 남았으니 최악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밤마다 제발 돌아가지 않게 해주세요, 내 삶을 바꾸게 해주세요, 하고 비는 걸요. 이제는 무엇이 되고 싶다, 무엇을 이루고 싶다, 보다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가 가장 큰 원동력이다. 이러다 정말 돌아가게 되면 진짜 큰일 났다ㅋㅋㅋ 내 미래의 가능형에 관해 너무 비관을 하고 욕을 많이 해놨어ㅋㅋㅋㅋㅋ

예전 어른들이 육이오 때 말야- 아이엠에프 때 말야- 하듯 코로나 유행 시기를 회자하고, 이 병을 겪지 않은 아이들이 뭐래 딱딱- 하는 그런 날이 오면, 그래서 우리가 지나온 시간이 가물가물해지면 나는 이 소설을 다시 펼칠 것이다. 몇십명이 걸리면 엄청난 공포이고 혐오이고 배척의 대상이 되던 병이 몇만 몇십만이 되면 그냥 다 그런 것, 원래 그런 것, 그랬던 날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 중 열에 여덟이 게이가 된다면 아마 둘 남은 이성애자들을 핍박하겠지.(열에 하나 했다가 고쳤다. 하나 남으면 이성애 어렵겠다 ㅋㅋㅋㅋㅋ) 시대가 어느 시절인데 아직도 유성생식을 하고 새끼를 까질러서 지구를 파먹는데 일조하냐. 셋 넷이 되려고 하는 저들은 야만이다. 대상만 바꾸었지 사람들은 끝없이 선을 긋고 부려먹고 욕하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빗물에 첨벙첨벙 빠져가며 걷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끝없이 이어지고 모이고 자리 잡고 쓸려 나가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지탱하는 세상. 믿음이 없는 내가 거기 얹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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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2-12 0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성애자 깨알 챙겨주셨네욬ㅋㅋㅋ 마지막 문장 너무 좋다. 어쩐지 믿음이 느껴져서, 라고 하면 오독이거나 억지일까요? ㅎㅎ 긴 그만두기를 응원할게요.

반유행열반인 2023-02-12 09:20   좋아요 3 | URL
다정한 응원 감사합니다 유수님 ㅎㅎㅎ자꾸 없다 하다보니 사실 믿고 싶다, 믿음을 갖고 싶다, 를 다르게 말하고 있구나 싶기도 했어요. ㅎㅎㅎ나는 차가 없어…나는 여자친구가 없어…이런 거랑 비슷한…ㅋㅋㅋㅋㅋㅋ

Yeagene 2023-02-13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하긴 한데 이전의 박상영 작가 작품 분위기랑 다르다고 해서 망설이는 중입니다.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두긴 했네요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2-13 19:01   좋아요 1 | URL
소재 탓인지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랑 김금희 크리스마스 타일 살짝 비벼놓은 느낌+퀴어 첨가+적 느낌입니다 ㅎㅎㅎ 젊은 노동자들 이야기랑 세대론이랑 지금 시대 모습 반영하려고 애쓴 느낌이어서 나쁘지 않았어요.

물감 2023-02-14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머무를 줄 모르는 사람이다. 뿌리가 없이 흘러내린다. 거기에다 나는 믿음이 없다. 어느 것도 확신하지 못한다.]
이 말에 눈물이 핑 도네요. 제 얘기 같아서요.
글 잘 읽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2-14 16:22   좋아요 1 | URL
물감님 울지 마세요 ㅠㅠ 흘러내리는 확신 없는 사람들이 복수형이어도 세상 잘 돌아가는 거 보면 조금 더 그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