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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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명저의 기준이 뭘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십중팔구가 박수 치는 작품도 누군가에겐 느낌이 안 올 수가 있는 건데, 작품 볼 줄 모른다며 한심하게 보거나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들이 꼭 있다. 반대로 작품의 어디가 어떻게 좋은 지도 모르면서 그 십중팔구 쪽에 끼고 보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오랫동안 독서와 글쓰기를 하면서 느낀 건데, 한국인은 진짜 좀 이상한 민족이다. 이번에 국내외에서 굉장한 파급력을 자랑했다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게 됐다. 헝가리 문학도 처음인데다 슬라보예 지젝이 언급한 책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다. 그럭저럭 잘 읽었는데 이상하게도 남는 게 별로 없어서 민망했다. 평소에 내가 극도의 중립 상태라서 별 감흥이 없었나 보다.


세 개의 중편을 하나로 엮은 책이다. 인물과 배경이 시간의 순서대로 이어지긴 하나, 저자가 연작을 생각하지 않고 썼다니까 참고하시길. 1부 내용은 어린 쌍둥이 형제의 성장과정이다. 엄마가 전선을 떠나면서 할머니한테 애들을 맡겼고, 쌍둥이는 산골 집에서 자연인의 생존법을 배워나간다. 감정이 결여된 쌍둥이는 잔인한 말과 이해 못 할 행동들을 서슴없이 행하였다. 먼 훗날 글쟁이가 된 쌍둥이는, 연필을 쥘 때부터 해석의 여지가 없는 글만 써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들처럼 저자 또한 모든 문장에서 감정을 제하여 눈앞의 보이는 날것만을 서술하였다. 1부만 보면 크리스토프가 자연주의구나 할 텐데, 3부까지 읽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2부는 한 명이 국경을 넘어가 홀로 남겨진 루카스의 내용이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형인 클라우스는 타국으로 가고 루카스는 할머니 집에 남기로 한다. 분신이 사라진 뒤에야 이웃들과 교류하며 평범한 일상을 갖게 된 소년. 또다시 공습경보가 터지고, 마침 쌍둥이를 데리러 온 엄마가 포탄에 맞아 눈앞에서 죽는다. 다들 도망치기 바쁜데 루카스와 할머니는 절대 집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성인이 된 그는 여자도 만나보고 인맥도 만들면서 어떻게든 살아본다. 어릴 때와 달리 지금은 최소한의 욕구랄 게 있었지만 뭘 하든 영혼이 없었다. 그가 형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걸 알고 모두들 이해해 주었다. 오직 사실만을 기록하자던 어릴 때의 원칙을 삶 전체에 적용한 루카스에게는 의미를 부여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돈을 태워버리기도 하고, 친한 이의 죽음에도 태평했고, 형에게 썼던 글들에서 많은 부분을 지워버리기도 했다. 마치 삶이란, 생명을 유지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태도이다. 안 그래도 힘든 삶을 괜히 더 복잡하게 만드는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가.


사실주의 작품이면 그냥 보고 느끼는 대로 이해하고 감정 지을 텐데, 이 작품은 어느샌가 해석의 여지를 주는 이야기로 바뀌어서 혼란스럽다. 문장들은 여전히 날것이지만 갈수록 구조가 묘하게 틀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2부 후반부에 등장한 클라우스의 신분을 증명할 수 없는 세 가지 개인정보가 거짓말이라며 강제로 바꾸는 장면이 나온다. 국경을 넘어간 클라우스의 안전을 위한 장치였지만, 지금까지의 존재를 부정하게 된 꼴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3부는 50년 뒤에 클라우스가 루카스를 찾아오는 내용이다. 한참 전에 떠난 루카스를 대신해 지역민들이 클라우스를 맞아준다. 결국 이런 엔딩인가 싶었는데, 클라우스의 과거가 뒤죽박죽 나오기 시작한다. 그 회상들은 우리가 1부, 2부에서 보았던 장면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고, 이전까지의 내용과 클라우스의 기억 중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게 돼버린다. 이어서 흐름은 루카스/클라우스가 쌍둥이가 아니라 처음부터 한 사람이었다는 명제로 넘어간다. 몇몇 주변인들도 헤어졌던 형제의 이름을 언급하고는 있는데, 그 형제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는 거다. 회상에서도 등장하는 쌍둥이의 기억들이, 제 존재를 지키려고 만들어낸 허구였던가.


만약 허구의 인물 쪽이 정답이라면, 인생 자체가 거짓으로 되고 만다. 허상을 쫓아온 삶. 그것이 딱하고 안타깝기만 할까. 오히려 루카스/클라우스는 그렇게라도 살아서 됐다고 본다. 어떠한 의욕도 소망도 없는 아이가 그래도 살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형제가 있어준 덕분이니. 비록 가상으로 일궈낸 믿음이었다 해도, 반쪽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동안 남들을 돕고 말동무가 돼주는 등 충분히 존재를 증명했으니까. 마지막 장면들이 진짜 세긴 한데 이 작품이 존재에 대한 이모저모를 논하려고 쓴 건 아닐 테다. 애초에 한 권짜리 책도 아니었고 지금의 제목도 없었으니까. 어쨌거나 전쟁 관련 이야기답게 삶의 모순은 실컷 구경했다. 슬라보예 지젝은 둘이자 하나인 쌍둥이처럼 살아야 함을 강조했는데 첨엔 이게 뭔 소린가 싶었다가, 내 안의 나를 분리시키는 연습과, 떨어져 나간 나를 다시 합치려는 노력을 말한 걸로 이해했다. 어라, 이렇게 쓰고 보니 명저가 맞긴 하네. 근데 내가 좋다고 해서 누구나 좋은 책은 아니므로, 앞으로는 절대 책 추천 따위 하지 않을 생각이다. 각자 끌리는 거 읽으시되, 투명하고 솔직하게 독서합시다. 스스로를 그만 좀 속이자고요. 증말 파이팅 코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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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7-07 21: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입시교육이 솔직하지 못한 독서인을 만드는데 크게 한 몫 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사람이고 때때로 반성하지만 쉽지가 않네요.
김누리 교수가 ‘자기 생각 한 줄 없이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물감님 같은 독자들이 있어 또 한 번 되돌아보게 됩니다.ㅎㅎ

물감 2023-07-07 21:5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교육법 탓도 있고요, 남들 눈치보느라 그렇다고도 생각해요. 요즘 한국인들은 감정표현에 완전 과감한데 왜 독서는 그렇게 남 눈치를 볼까 궁금해요.
의견 들려주신 미미 님께 감사드립니다ㅋㅋㅋㅋ

새파랑 2023-07-08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너무 좋았어서 이번에 나온 개정판도 샀는데 ㅋ 그런데 왠지 저도 십중팔구 쪽에 끼어 보려고 한 듯한 기분도 듭니다 ㅡㅡ

전 철학은 잘 모르지만 이책에서 그리는 낯설고 선명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1,2부는 정말 좋았던거 같은데 3부에서는 약간 갸우뚱 했던 기억이 나네요 ㅋ

물감 2023-07-09 13:4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제 기준에 새파랑 님은 십중팔구 쪽이 분명하나, 독서와 글쓰기가 성실하셔서 참 애매합니다. 양보다 질이라고 늘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꾸준히 읽는 게 어디냐 싶어서요! 새파랑 님은 제게 연구대상 뭐 비슷한 분... ㅋㅋㅋㅋ

저도 철학 몰라요. 그냥 읽다보면 이런저런 촉이 오고, 그걸 붙잡아 쭉쭉 사고가 뻗어나가는 트레이닝을 하는 거ㅋㅋㅋ 저 역시 1~2부가 너무 좋았는데 3부는 뭔가 뜬구름 잡는 기분이었어요. 갑자기 집중력에 문제가 생겼는 줄 알고 몇 번이나 앞으로 돌아가서 읽고 그랬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3-07-10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읽어야 하는데.
책장에서 합본이 아닌 세 권이 나란히....

물감 2023-07-10 12:23   좋아요 0 | URL
늘 궁금했던 책이었는데 읽어보니 꽤 만족스럽습니다. 분권으로 구매하셨었군요! 가독성 좋아 금방 읽으실 거에요 ㅎㅎ
 
퍼핏 쇼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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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여름은 저주의 계절이었다. 원체 더위에 약한 데다가 피부까지 하얘서 허물도 자주 벗겨지곤 했다. 그래서 내 평생 여름에는 좋은 추억이 별로 없다. 그렇게나 싫었던 여름이 갑작스레 좋아져 버렸다. 덥고 습한 건 여전히 싫지만, 이 계절만의 감성과 에너지가 이유 없이 사랑스러워졌다. 그러자 문득 내가 또 나이를 먹었구나 싶어졌다. 나이가 든다는 건 신체적인 변화보다도 본인의 애티튜드, 즉 사고방식의 변화에서 더욱 실감하게 된다. 그동안 외면해왔던 것에 너그러워지는, 이런 게 바로 어른이 돼가는 징조가 아닐런가. 밤 산책을 하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날도 덥고 하니 당분간은 장르소설이나 잔뜩 읽을 계획이다. 이번에 읽은 <퍼핏 쇼>는 영국에서 건너온 신규 시리즈물인데, 요새 독자들 사이에서 제법 핫하길래 설마 했는데 역시나 그냥 그랬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삘이 오질 않는 달까. 영국보다는 미국 쪽이 내 취향인 탓도 있지만, 그 이전에 지적사항이 많은 작품이었다.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불명예 사건으로 정직 처분된 경찰이 다시 복귀한다. 환상열석(스톤헨지의 일종)에서 사람을 태워 죽이는 연쇄살인범이, 한 시신의 몸에 주인공 이름을 칼로 새긴 것이다. 피해자들의 정보를 추적한 워싱턴 포는, 이 사건이 과거 보육원 어린이 밀매 사건과 연관됨을 발견한다. 그 사건의 관계자 중 하나가 자수하는데, 경찰서에 잡혀있던 그 또한 같은 방식으로 살인돼버린다.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다니는 이 귀신 같은 놈을 대체 무슨 수로 잡으란 말이더냐.


칭찬 글은 수두룩하니까 비평만 하겠다.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이것저것 준비를 많이 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팩트가 약했던 이유를 몇 가지 적자면, 첫 번째로 주인공 시점만 있는 스트레이트한 플롯 때문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범인의 서사 없이 일방통행의 수사가 되면, 악당들과 싸워 이기는 게 전부인 후레쉬맨 내용과 다를 게 없어진다. 이 작품은 대단한 활약을 펼치는 범인의 등장 한 번이 없었고, 또 워낙 철두철미하여 수사가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한다. 여기서 범인과의 소통 부족이 두 번째 문제가 된다. 일반 연쇄살인범들이 단서를 남겨 수사 측과 게임을 하는 반면, <퍼핏 쇼>의 방화범은 정보랄 게 없어서 그냥 미치광이 살인자로만 보여진다. 물론 그쪽이 더 현실성 있지만 소설에서는 빈약한 설정이라 재미가 반 토막 나버리지. 범인의 플레이를 구경 못하니 독자는 주인공들이 인지하는 사태의 심각성 쪽에서만 스릴감을 느낄 수 있다. 근데 여기서 세 번째, 앞서 말한 수사의 방향을 잡지 못해 되는대로 추리해 보는데, 단서를 따라갈수록 연관된 사건이 등장하고 또 다른 게 등장하고 또 뭔가가 나오고... 대체 몇 겹의 과거를 접목시키는 겁니까. 난 이렇게 복잡한 구성도 잘다루지롱~ 하는 작가의 자랑으로밖에 안 보인다. 이거 살짝 신경 거슬리는데 2편을 읽게 되면 답이 나오겠지.


독자와의 호흡을 차단하는 일방통행, 이게 바로 후레쉬맨 플롯의 단점이다. 결국 범인이 밝혀지지만 놀라울 것도 없었다. 범인의 등장 후에도 분량이 꽤 많이 남는데, 대부분이 앞에서 나왔으면 했던 범인의 성장 배경과 범행 동기였고, 수사의 방향을 어떤 식으로 움직였는지에 관한 설명이었다. 그 조종한 수법들도 영 억지스러웠고, 맨땅에 헤딩하다 번뜩이는 통찰력으로 실마리를 푼다는 주인공의 패턴 또한 개연성이 떨어졌다. 분명 쎄빠지게 고생하고 있는데도 너무 날로 먹는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 거다. 그리고 후반부에 주인공의 불명예 사건과, 그의 가정사와, 경찰 측 배후 세력 등 큼직한 문제들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앞으로의 기획을 언급한 건 좋은데 꼭 이렇게 몰아치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네. 내가 이 작품에 칭찬해 줄 만한 건 딱 하나, 인물 설정이다. 보통 액션 소설의 시리즈물은 주인공에게 질병이나 신체적 결함 같은 핸디캡을 주곤 한다. 그런데 워싱턴 포는 비교적 멀쩡하게 만든 반면 파트너에게 핸디캡을 부여한, 이례적인 케이스라 제법 신선해서 좋았다. 비록 기대에 못 미쳤지만 모든 1편들이 부실공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뭐. 이 작품을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난 이만 여름을 만끽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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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05 0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나보고 인싸라더니 물감님이 겁나 인싸같은데요? ㅋㅋㅋ 허물 벗겨질 정도로 돌아다니시는 거 아니에요? 😆 전 집에서만 여름을 만끽합니다 ㅋㅋㅋㅋ

물감 2023-07-05 10:10   좋아요 2 | URL
아닌뎅 저 명백한 집돌이에 아싸인데요ㅋㅋㅋ 제 서재에 댓글 쓰시는 이웃도 한 다섯 분 계시나 그래요ㅋㅋ 근데 요즘 이상하게 약속이 많네요. 오늘도 나가봐야 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3-07-05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도서관에서 읽다가 영 필~이 안와서 그냥 덮어버렸었네요.
올 여름은 장르소설 쭉 읽으실 계획이라니 저도 한 권 골라볼랍니당.
저는 반대로 겨울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저도 나이 들면서 겨울에 대한 느낌이 바뀌더라구요.
겨울의 그 수렴하는 기운이 저를 좀 더 돌아보게 한달까요?
하지만 나이드니 그 좋아하던 여름이 힘드네요. ㅠ
물감님 건강한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당!

물감 2023-07-05 23:18   좋아요 1 | URL
독서 집중 안되는 여름에는 스릴러소설이 제격이네요. 시간 잘 가고 좋습니다ㅎㅎ
쿨캣 님은 이제 겨울이 좋고 여름이 싫어지셨군요. 살면서 이것저것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그게 또 묘미입니다. 쿨캣 님도 여름 잘 보내세요^^!
 
대니얼 헤이스 두 번 죽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34
마커스 세이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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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양재진, 양재웅이 말하길, 인간은 모호한 정보 즉 정보의 부재를 견디지 못한단다. 자아의 강도가 낮을수록 판단하고 결정짓는 게 빠르다는 것이다. 이 같은 특징은 극단적인 성향을 지닌 일명 ‘빠‘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다. 정치관여, 종교활동, 사회운동, 철학논쟁, 심지어 MBTI 과몰입자까지도 일컫는다. 확증편향에 빠진 찬양론자들은 여론에 휩쓸리기 쉽고, 설령 확실한 정보와 근거가 있다 해도 이미 프레임에 갇혔기 때문에 온전한 분별력을 지녔다고 보긴 어렵다. 그건 마치 갓 태어난 새끼 사슴을 잡아먹는 어미 사자를 비난함과 같다. 사냥에 실패하면 새끼 사자들이 굶는다는 생각을 못 하기 때문에. 정답이 없는 문제를 정의하는 게 ‘앎‘이라고 착각해선 안된다. 이처럼 프레임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을 소개하겠다. 이름하야, 대니얼 헤이스 두 번 죽다!


해변에서 깨어난 한 남자.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 전혀 기억나질 않는다. 근처에 있던 BMW를 끌고 아무 숙박지나 들어갔는데 경찰이 와서 체포하려는 게 아닌가. 영문도 모른 채 도주하던 그는, 자신이 아내를 살해한 용의자로 지명되었음을 알게 된다. 살인은커녕 집과 아내에 대한 기억조차 없었지만 사태를 알기 위해 몸이 기억하는 대로 집을 찾아가 본다. 유명 배우였던 아내는 누군가에게 쫓기듯 운전하다 벼랑 너머로 추락한 것으로 돼있었다. 억울하지만 기억을 잃어버린 지금, 혹시 몰라 당분간 몸을 숨기고 보자는 대니얼. 한편 두 명의 괴인이 그를 노리고 추격해온다. 대체 그는 어떤 사건에 휘말렸었고, 무얼 하다 기억을 잃어버린 것일까.


오래간만에 보는 클래식한 스릴러였다. 근래 출간된 스릴러들은 소재며 수사며 여러모로 너무 세련되어져서 좀 질리는 맛이 있다. 반면 옛 작품들은 교과서대로 쓰여서 뻔하긴 하지만 그만큼 실패가 낮고 호불호도 잘 없다. 현대 감각에 피로도가 쌓일수록 사람들은 옛 것을 그리워한다. 이제 와 레트로 패션이 유행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따라서 요즘 읽을 책이 없다거나 슬럼프가 온 독서가들은 나처럼 옛 작품들을 둘러보는 걸 권한다. 다시 책 얘기로 돌아오면, 먼저 기억상실이 매우 진부한 설정이란 걸 작가가 모를 리 없다. 그렇기에 주인공을 국민의 적으로 간주하여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가 쫓겨 다니게 된 이유를 감추어 독자가 군말 없이 따라오게 하는 등 외부 설정에 많은 힘을 쏟았다. 이런 데서 작가의 영리함이 잘 드러난다. 보통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가면 의문이 풀리거나 실마리가 제공되어야 하는데, 이 작품은 나중의 나중까지도 의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끝까지 의심하게 만들라는 스릴러소설의 규칙을 철저히 지킨 프로페셔널한 작가다. ‘제2의 데니스 루헤인‘으로 불리던데, 내 눈에는 세이키가 루헤인보다 훨씬 더 나아보인다.


자, 그럼 앞서 말한 프레임에 대해 얘기해 보자. 이제 막 깨어난 대니얼은 범죄자 취급에 억울해하면서도 스스로를 범죄자라 가정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기억을 잃었다한들 떳떳하게 수사에 협조하고 사태를 바로잡으면 될 터인데, 뭐가 자꾸 켕기는 건지 도망만 다녀서 경찰의 의심에 확신만 심어주었다. 진실의 여부와 상관없이 범죄자처럼 행동하다 보니 사고 회로 또한 이상해져버린 것이다. 도움 청할 데도 없으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지낼 건가 보는 내내 답답했지만, 대니얼은 희미하게 찾아드는 기억의 파편에 운명을 걸고자 했다. 하여 자기 집을 도둑처럼 드나들어 노트북을 훔치고 그간의 정보를 파악한다. 여기서 자신의 담당 변호사를 알게 돼 찾아가지만, 한발 먼저 변호사를 다녀간 괴인의 소식을 듣게 된다. 아내가 죽고, 자신이 해변에 버려져 기억을 잃고, 경찰의 사냥감이 된 이 모든 배경에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렇다 해도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길이 없는데 이제 뭘 어쩌나 싶을 때쯤에 등장하는 두 번째 괴인. 심장 떨어지게도 그의 죽은 아내였다.


본의 아니게 스포 해서 미안하지만 리뷰를 위해 어쩔 수 없다. 근데 읽어보시면 아내가 살아있다는 게 다 티가 난다. 아무튼 두 번째 프레임은 아내의 사망 소식이다. 아내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경찰은 국민과 대니얼에게 사망했다는 거짓 프레임을 씌웠다. 그 후 종적을 감춘 대니얼이 자연스레 범인이 되게끔 마녀사냥을 하였다. 그리하여 대니얼은 여태껏 죽은 줄로 알았던 아내가 나타난 것도 놀랐지만, 이 모든 연극을 꾸민 게 아내였다는 사실에 더 놀란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그녀를 탓하기도 전에 앞뒤 사정을 듣게 된 주인공. 과거 연예계에 막 들어온 그녀는 누군가에게 약점을 잡혔었고, 그는 지금도 아내에게 거액을 요구하는 중이었다. 약점이고 뭐고 당당히 경찰에 신고해서 누명을 벗고 싶은 대니얼과, 뭣 때문인지 한사코 반대하는 그의 아내. 괴인이 보통 무서운 게 아니긴 했지만, 아내의 태도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어쩜 이렇게 단타를 연속으로 날려대는지, 세이키도 참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내놓은 작품마다 영화 판권이 팔렸다고 하니 말 다 했다.


대니얼이 기억을 잃게 된 경위와, 괴인과의 심리전과, 커질 대로 커져버린 판국의 결말은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뒷심이 살짝 부족했으나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리뷰하지 않은 후반부에도 아내에 대한, 또 자신에 대한 프레임이 연거푸 나온다. 기억상실의 소재를 통해 작가는, 각자의 생각과 판단에 얼마나 많은 허점이 있는지를 지적한다. 사람은 저만의 프레임에 갇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정답이라 믿어버린다. 그렇게 긴 시간 함께했던 진실에 흠집이라도 생긴다면 목숨마저 내버리기도 한다. 자살하고자 마음먹었던 이 책의 주인공처럼. 작가는 지금까지의 선택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다소 뻔한 얘기를 해준다. 그러니 잘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말이겠지만,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선택하는 극단적인 성향은 되지 말자고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MBTI 과몰입도 이제 그만해야겠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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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6-30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저 질문하러왔어요!! 단편은 왜 안좋아하세요?! 물감님은 취향 주관 확실한 사람같아서 자꾸 이것저것 궁금하고 여쭤보고 싶어짐 ㅋㅋㅋㅋㅋ

물감 2023-06-30 21:38   좋아요 1 | URL
제가 주관이 진짜 뚜렷한 편이긴 해요ㅋㅋㅋ 단편이 싫은 건 별거 없어요. 잘 읽고 있는데 갑자기 끊기는 게 싫고, 그걸 리뷰쓰기도 애매하고요. 한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은데 단편집은 이야기가 계속 교체되잖아요? 유튜브 쇼츠처럼요. 뭔가 여운이 금방 휘발되는 것 같아서 좀 그래요ㅋㅋㅋㅋ궁금한 거 생기면 다 물어보셔요😎

은오 2023-06-30 22:50   좋아요 1 | URL
? 물감님 마지막 문장 후회하실텐데요? ㅋㅋㅋㅋㅋㅋㅋ무르기없기ㅋㅋㅋ 알겠습미당!!! 😆

다락방 2023-06-30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도 찜해갑니다.

물감 2023-06-30 21:53   좋아요 0 | URL
보니까 품절이네요. 중고책 찾아보세요!
 
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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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을 읽었다. 사실 말이 3부작이지, 이어지는 내용도 아니라서 다 챙겨 본들 대단한 재미는 기대하기 어렵겠다. 공쿠르 상을 받은 <오르부아르>는 확실히 좋았다. 명확한 스토리라인과 탄탄한 전개와 입체적인 캐릭터 등등. 그런데 차기작인 <화재의 색>은 분위기가 확 어두워진 데다 이렇다 할 스토리도 없어서 굉장히 당황했었다.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우리 슬픔의 거울>도 영 실망스러웠는데, 서사는 많으나 알맹이는 부실하고, 간간이 있는 블랙 유머가 되려 흐름에 방해만 되는 꼴이었다. 3부작이라길래 <오르부아르>의 진지한 듯 병맛스러운 코드로 쭉 밀고 나갈 줄 알았더니, 이거야 원 저자의 명성을 느낄래야 느낄 수가 없네 그래.


크게 세 명의 시점이 교차하는데 요약하려니 짜증 나서 그냥 생략하련다. 궁금한 분들은 다른 리뷰도 많으니까 그거 읽으시길. 각각의 이야기가 전혀 매력도 없고, 연관성도 없이 따로 놀고, 뭔가를 시사하려는 게 보이긴 하는데 계속 간만 보는 기분이라,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나 되뇌면서 꾸역꾸역 읽었다. 그래도 한때 좋아했던 작가로서 의리로 버텼지만 르메트르도 이제 떠나보낼 때가 된 듯하다. 보아하니 옛날 같은 스릴러소설은 손을 떼셨고 이런 작품들만 쓰실 듯한데 글쎄요, 갈수록 약빨이 떨어지는 게 느껴진단 말입죠. 아직 프랑스서는 먹어주는지 몰라도 코리아 갬성과는 점점 멀어지고만 있습죠. 내 혹시 몰라서 별점 높은 리뷰들을 싹 훑어봤걸랑? 어쩜 신뢰 가는 글이 단 하나도 없더라고. 별점의 정당성을 위해 억지로 늘어놓은 칭찬들, 싫다 증말. 날도 더운데 이런 영양가 없는 글에 에너지 쏟을 이유도 없지만, 적어도 르메트르에게 인사 정도는 해야겠기에. au rev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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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6-28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번째 문단의 글에서 빵 터짐. 하하~~
<스토너>를 읽으셨나요? 엄청 멋진 소설입니다. 이번에 읽고 반해 버렸어요. 물감 님께 추천합니다.
스토너의 리뷰를 쓰신다면 쓸 게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감 2023-06-28 16:25   좋아요 0 | URL
스토너는 명작이죠! 이달의 리뷰 당선도 되었답니다 ^^
갑자기 왜 그 책을 언급하셨는진 모르겠네요ㅎㅎ 혹시 몰라 링크 남깁니다.
https://blog.aladin.co.kr/loveoctave/13150048

페크pek0501 2023-06-28 16:37   좋아요 1 | URL
까르르~~ 물감 님의 리뷰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어쩐지 아까 댓글을 쓰면서 물감 님이 읽으신 것 같단 생각이 살짝 스쳤어요. 예감 적중!ㅋㅋ
스토너, 얘기를 꺼낸 건 제가 어제까지 읽어 완독한 책이라서요. 재독하고 싶을 만큼
멋진 소설이었어요. 마지막에 슬프기까지 하더군요. 스토너의 아내는 끝까지 악당이라 놀랐어요. 연민도 없는 것 같아요. 겉으로만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욱 스토너가 안 됐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참을성이 많은 사람은 처음 봅니다.
리뷰들을 보면 평범한 사람의 펑범한 인생이라는 글이 많았던 것 같은데 저는 다르게 봅니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인생, 으로 읽혔어요. 글감 님의 리뷰를 다시 보러 갑니다. 주소 남겨 줘서 고맙습니다...슝~~^^

2023-06-28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28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23-06-30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가 도서관에 신청해놓고 안 읽고 있는 책인데 ... 아 별로군요. ㅠ
저도 병맛스럽지만 서스펜스와 유머가 살아있는 <오르부아르>는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두 번째 <화재의 색>은 좀 실망했거든요.
아쉽네요.😪

물감 2023-06-30 17:38   좋아요 0 | URL
원래 기획한 대로 쓴건지 스타일이 변한건지 통 모르겠어요 ㅋㅋㅋㅋ
글맛도 없고 재미도 없고 메시지도 뭐 딱히...
이거 말고 다른 3부작이 또 나올건가봐요. 전혀 기대가 안됩니다 ^^
어차피 읽을 건 많으니까요 하하핳
 
완벽한 삶을 훔친 여자 스토리콜렉터 75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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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더워지니까 시원한 스릴러 한 권 때려줘야지. 오랜만에 로보텀 행님의 책을 집어 든다. <조 올로클린 시리즈>로 국내에 이름 좀 날리신 양반인데, 줄곧 폭발적인 재미를 보여주더니 어느샌가 시들시들해져 이빨 빠진 맹수가 돼버린 분이다. 현재까지 나온 시리즈 8편까지는 다 읽었고 실망감에 그만 하차했는데, 그놈의 정이 뭔지 스탠드얼론은 별개니까 의리로 읽어주자 싶어졌다. 근데 사실 <라이프 오어 데스>도 실망스럽긴 했다. 하여간 시리즈물 쓰는 작가들은 대체로 스탠드얼론을 못 쓴다는 팩트가 있는데, 어쩐 일로 이번에는 그 선입견이 빗나갔더랬다. 어쩌면 감각이 녹슬었다는 피드백을 반영했는지도 모르겠고.


출산일이 비슷한 두 임산부가 있다. 출신, 교육, 가정 등 모든 게 완벽한 A를 동경하고 숭배했던 B. 언제나 멀리 숨어서 A의 행동거지와 취향을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하면서 그녀의 삶을 카피하고 싶어 한다. 마트에서 일하던 B는 장을 보러 온 A에게 접근하여 친분을 쌓고, A의 출산 관련 정보를 듣는다. 그리고 A가 출산하던 날, 해당 병원에 간호사로 위장하여 신생아를 빼낸 B는 태연하게 집으로 돌아온다. 품에 안긴 아기를 내 새끼라고 부르면서.


건축가 유현준이 그런 말을 하더라. 자기는 성서에 나온 스토리를 가지고 재해석한 작품을 매우 좋아한다고. 듣고 보니 나도 좀 그런 편이다. 성서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은 대개 선악의 대비를 모호하게 다루곤 한다. 그러면 꼭 딜레마가 생기는데, 거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어떤 고찰과 저자가 던지는 화두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인간의 본성과 윤리를 뒤집어놓고 보는, 일종의 밸런스 게임 같은 발상의 전환을 나는 좋아하는 것 같다. 저자만이 알겠지만 <완벽한 삶을 훔친 여자>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두 어머니와 솔로몬의 재판‘을 재구성한 느낌인데, 각색을 잘했는지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본 적 없는 신선함을 보여주었다. 가독성도 좋고 전개도 빠르긴 한데 명백히 분량 초과였다. 스킵 해도 될 장면이 많은 데다 일일이 설명하고 의미 부여하느라 숨이 턱턱 막혔다. 이건 로보텀의 직업병이자 고질병이다. 주로 정신/심리학을 다뤘다 보니 자연스레 투 머치 토커가 돼버린 것. 이 양반 혹시 책값 비싸게 받아먹을라고 이러는 건가?!


B의 과거는 역시나 한 복잡했다. 이부형제인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은 후로 B는 가족 취급을 받지 못했다. 이후 중학생이 된 B는 교회 신부와의 성관계로 임신하게 된다. 낳은 아이는 어딘가로 보내졌고, 교회에서 파문당한 B는 집에서도 버린 자식이 되었다. 세상에서 떨어져 나와 외톨이가 된 B는 그때부터 아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갓난아기를 훔쳐다 엄마 노릇을 해보지만 훔쳐 온 아기들은 전부 죽었다. 하여 결혼 후 직접 아기를 낳고 싶었으나 겨우 생긴 아기는 유산되고 만다. B는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고, 그렇게 남편과 이혼하여 혼자 지내왔던 것이다. 주도면밀하게 범죄를 저질렀다지만 한참 전부터 정신도 육체도 고장 나있던 그녀. 모두가 B의 흉악함을 논할 때, 심리학자 사이러스만이 그녀도 피해자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솔로몬께서 등장한 후로는 <조 올로클린 시리즈>의 패턴과 비슷한 수사라 딱히 볼 거리는 없었다. 그나마 사이러스가 후반부에 나와줘서 다행이었지, 일찍 등장했으면 금방 김빠졌을 것 같다. 아니, 솔직히 스탠드얼론에서까지 심리학자를 갖다 써야겠어? 징허다 징해.



B가 그렇게나 침 흘렸던 A의 가정도 그리 정상은 아니었다. 남편은 여기저기 끼 부리고 다녔고, A는 남편의 절친과 불장난에 놀아났다. 그리하여 남편 절친의 애를 가져버린 A. 본인의 잘못은 숨기면서 남편의 바람만 물고 늘어지는 뻔뻔함이란. 그 와중에 남편을 용서하고 가정을 수호하는 고결한 엄마의 행색을 갖추려고 기를 쓴다. 물론 남편과 자식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찐이지만, 또 남편의 외도는 절대 봐줄 이유가 없지만, 그녀도 찔리는 게 있었기에 계속해서 합리화하기 바쁜 꼴이다. 아기 납치 사건이 전국에 알려진 지금, 애 아빠가 다른 남자라는 게 드러난다면 B를 향한 비난들이 곧 자신에게로 쏟아지겠지. 이런 멘붕에 빠져있던 그녀라서, 아기를 찾으려는 목적이 본인에 대한 평판 때문으로 변해버렸다. 상대적으로 B보다 A의 사정이 딱해 보이기 쉬운데, 결코 너그럽게 봐줄 문제가 아니다. B의 범죄가 자꾸 들통나려 했듯이 A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어째서 비밀을 감추기에만 급급할까. 정말로 무덤까지 가져갈 수 있다고 보는 걸까. 이건 아니다 싶지만 얽혀있는 게 너무 많아 달리 뾰족한 수도 없어 보인다. 내가 다 괴롭다.


작중에 등장한 사이러스로 또 하나의 시리즈가 나올 거란다. 뭔 놈의 심리학자 시리즈를 두 개나 만들지? 신선도가 확 떨어지는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싶지만 이미 나왔더라고. 자 이제 로보텀하고는 진짜 안녕이다. 재미난 작품은 계속 나올 테지만 매번 같은 수사 패턴에 또 실망하고 싶지가 않아요. Long Good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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