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그럽 스트리트 - 생계형 작가들의 배고픈 거리
조지 기싱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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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독자가 소신발언 좀 하겠다. 나는 내 자식이 전업작가가 되겠다면 재능과 상관없이 필사적으로 뜯어말릴 것이다. 어렵지 않은 직업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하루키 급의 재능이 아니고서야 전업작가는 결사 반대다. 헌데 시대 불문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선배들을 보고도 포기 못한 작가 지망생들이 넘치는 걸 보면 작가란 직업은 참 매력적이긴 한가보다. 그런 이들이 있어 가뭄에 콩 나듯 걸작들이 탄생했다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가. 아무튼 글쟁이들의 초라한 이상과 부당한 현실 사이에 흐르는 이념 대립을 잘 조명한 작품을 읽었다. 조지 오웰이 꽤나 존경했었다던 작가라는데, 읽어보니 과연 알 것도 같다.


여러 인물의 관계가 얽히고설켜서 요약이 쉽지는 않다. 일단 문필가인 두 남자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주인공 재스퍼는 비평, 사설 등 돈 되는 글만을 쓰는 야심가 청년이다. 글을 기고할 수 있다면 어디든 찾아갔고, 문필업 종사자라면 누구든 관계 맺고 보는 기회주의자였다. 반면에 무명 소설가인 에드윈은 재능도 없는 데다 개복치급 유리멘탈 소유자였다. 또한 책을 쓰면서도 안 팔릴 거라며 매번 자기 비난에 빠지는 패배주의자였다. 이렇게 성격 다른 두 사람은 온갖 문인이 득실거리는 런던 바닥에서 어떻게든 글빨로 생계를 해결해야만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재스퍼는 요리조리 짱구를 굴려가며 일어서려는 반면, 에드윈은 집필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감 저하로 점점 가라앉는다.


이제는 작가들의 고충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그러니 뻔한 말들은 하지 않겠다. 이 책에 나오는 문필업자들은 글과 문학을 철저히 상품화하고 있다. 시장에서 팔리느냐 마느냐로 글의 가치를 매기는 출판계의 현실이, 모두를 싸구려 글만 양산해내는 생계형 작가로 바꿔놓았다. 가치야 어찌 됐든 팔리면 그만인 재스퍼와, 문인으로써 최소한의 자존심을 고수하는 에드윈의 가치관은 확연히 다르다. 웃기게도 에드윈이 재스퍼처럼 푼돈에 영혼을 팔지 않은 것은 그의 유리멘탈 덕분이었다. 나름 멋은 있었다만 반복되는 회피와 책임전가는 정말 보기 추했다. 오히려 대놓고 속물이었던 재스퍼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은, 욕을 왕창 먹더라도 언제나 가족부터 챙기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게 맞지.


분량의 절반은 두 남자를 따르는 여자들의 내용이다. 재스퍼의 생활력에 자극받은 에드윈의 아내는 남편을 향해 응원과 내조를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복치 멘탈남은 저를 이해 못 해준다며 갈수록 삐딱대고 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주제에 뭔 이해 타령만 해대는 남편의 이기심과, 사회적 지위나 체면을 포기 못하는 아내의 욕망이 화려하게 콜라보를 이룬다. 그러다 결국 별거하고 뒤늦게서야 각자의 잘못을 탓해보지만 이미 늦어버렸다는 흔한 결말. 재스퍼라고 다를 건 없었다. 그의 허세와 패기에 반해버린 메리언은 부친의 반대를 밀어내고 그와 결혼하려 한다. 허나 그녀의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줄곧 매달렸던 재스퍼는 결혼을 꺼려한다. 결혼해서 지금보다 더 가난해진다면 출세는 영영 불가했기 때문에. 이처럼 가난한 누군가에게는 사랑 또한 생계수단이자 상품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해는 되는데 그래도 킹받네. 에잇, 퉤.


에밀 졸라처럼 조지 기싱 또한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빈민층의 삶 속에서 날것의 바이브를 뽑아낸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이 둘의 글은 매우 닮아있다. 사실 보정이 안된 자연주의 문학에 세련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실고증을 하려거나 무언가를 풍자하려면 자연주의만 한 것도 없다는 사실. 무엇보다 이런 문학에서 다루는 인간군상이야말로 놓쳐선 안될 관전 포인트란 말씀. 아무리 재수 없고 야비하고 앞뒤가 꽉 막힌 인물이라도, 그렇게 행동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고 나면, 현실의 끔찍한 빌런들이 어째서 저 모양 저 꼴로 사는지 작게나마 이해가 된다. 여튼 다 좋았는데 읽다 보면 괜히 나까지 떨게 하는 춥고 가난한 작품이다. 겨울보다는 봄가을에 읽기를 권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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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2-07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물감님이
작가로 데뷔 하시겠다고 하시면
뜯어 말라지 않겠습니다 ㅎㅎㅎ

기싱 작품 엔딩이 싸늘하죠 ^^

물감 2022-12-07 23:07   좋아요 1 | URL
기싱의 다른 작품들도 그런가요?
그렇담 더욱더 겨울은 피해야겠어요 ㅋㅋ

한때 쓰다 관둔 소설이 어딘가 있을텐데...
에휴, 제가 돈 많이 벌면 취미로 작가해볼게요 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12-07 2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쓰는 거 좋아요. 그러나 전업작가라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대천재가 아니고선 매우 어렵다는 것이 아직은 구체화하지 않은 저의 견해입니다. 그나저나 글쓰는 남자를 따르는 여자들이 있다는 건 놀랍네요ㅋㅋㅋ

물감 2022-12-08 00:11   좋아요 0 | URL
저도 참 지독한 팩폭러지만, 남들이 제가 쓴 책에 쓴소리하는건 못견딜거 같아요ㅋㅋㅋ와나 진짜 내로남불이구만...다음 생을 노려보도록 하죠! 1800년대 런던은 문인이 좀 있어보이던 직업인 거 같더라고요ㅋㅋ

공쟝쟝 2022-12-08 00:14   좋아요 1 | URL
아무튼 물감님도 문학을 읽으며 현실의 인간을 탐구하는 독서가군요. 신기하네. f들의 독서법… 분석해봐야지 ㅋㅋㅋ

잠자냥 2022-12-08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많이 아프셨나봐요! 프로필 이미지가 갑자기 그동안이랑 너무 달라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누군가해서 그 물감님인가 해서 굳이 들어와봤습니닼ㅋㅋㅋㅋ)

공쟝쟝 2022-12-08 10:20   좋아요 1 | URL
어제까지 도깨비였는데 아침에 개구리로 변신…

물감 2022-12-08 11:1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그게 그렇게 해석이 되나요....
그냥 좀 정신차리기로 했습니다....

독서괭 2022-12-08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구리가 되신 물감님 ㅎㅎ 리뷰는 여전히 재미있네요! 방금 다른분의 <마틴 에덴> 리뷰를 읽고 왔는데 안 팔리는 작가 이야기.. 겹치는 부분이 있는 듯 합니다.

물감 2022-12-08 12:37   좋아요 1 | URL
닉네임을 독서개구리로 바꿀까봐요ㅋㅋㅋ 이런 류의 작품들은 뻔한 전개 때문에, 메인보다는 서브테마를 더 주목하게 되더라고요~ 재미는 있었습니다ㅋㅋ

다락방 2022-12-08 15:15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그 다른분 입니다!! ㅋㅋㅋㅋㅋ

물감 2022-12-08 15:35   좋아요 1 | URL
그분 등장... ㅋㅋㅋ

다락방 2022-12-08 15: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조지 기싱 이 책은 아니어도 저도 한 권 가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조지 기싱이 졸라 만큼 재미있나요, 개구리왕자 님?? 아 어쩐지 개구리왕자라고 부르고 싶다...

물감 2022-12-08 15:35   좋아요 1 | URL
이 책만 보면 졸라보다는 약간 순한 맛이에요. 그래서인지 진짜 쭉쭉 잘 읽혀요.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졌습니다. 괜찮은 작가네요 ㅋㅋㅋ

프사 바꾸면서 이웃들의 이런 반응을 예상 했습니다만,,,
역시 어질어질 하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12-08 16:00   좋아요 2 | URL
도깨비로 돌아와요 ㅋㅋㅋㅋㅋㅋ 이 개구리는 골드문트님 이미지 같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남이 필요하다!!!

물감 2022-12-08 16:13   좋아요 0 | URL
음... 저기... 쟝쟝님 우리 그.. 곧 볼거자나요...
괜히 잘못된 상상을 심어주면 안되겠더라고....ㅋㅋㅋ

공쟝쟝 2022-12-08 16:51   좋아요 1 | URL
당연히 도깨비일거라고 상상했는데 내 상상에 찬물 끼얹지 마라 ㅋㅋㅋㅋ

2022-12-09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2-12-09 13:59   좋아요 0 | URL
앍 다락방님! 아부지 생신이 더 중요하죠! 그럼 물감님 저도 죄송합니다! 다시 도깨비로 돌아오세욧!!!

2022-12-10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05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12-08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지 기싱도 자연주의 작가군요 ㅋ 에밀 졸라 작품은 읽으면 재미는 있는데, 많이 읽어서 그런지 이제는 막 땡기지는 않더라구요. 이번에 알려주신 요 작가의 작품을 읽고 다른 느낌의 자연주의를 느껴봐야 겠습니다~~!

물감 2022-12-08 17:13   좋아요 1 | URL
아 맞다, 새파랑 님도 에밀 졸라 좋아하셨죠. 그럼 기싱 작품도 맛있게 드실듯 합니다 ㅋㅋㅋ 그리고 졸라보다는 기싱 작품이 덜 쎄서 막 질리진 않을 거에요. 도전해보세요 ^^

2022-12-09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09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0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2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09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0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2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22-12-14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지 기싱의 작품이군요!
저는 책만 소장했지 아직 읽은 적이 없습니다만...리뷰를 읽으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기다렸다 봄에 읽을게요~~ㅎㅎ

물감 2022-12-14 11:27   좋아요 0 | URL
이런 류의 작품을 읽어보셨다면 딱히 차별성은 못느끼실 거에요.
그치만 그 나름 재미는 있었어요. 마치 나홀로집에 영화를 매번 볼때마다 재미있게 느껴지는 그정도의 느낌?? ㅎㅎㅎ 봄에 리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그레이스 2022-12-14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책으로 꽉 차 있는 장바구니를 떠올리면서, 이 책도? 합니다. ㅋㅋ

물감 2022-12-14 11:38   좋아요 1 | URL
처음 만나는 작가라면 충분히 봐줄만하다....는 식으로 담아두세요 ㅋㅋㅋㅋ
이 책이 기싱의 대표작이라고 하니, 한 권정도는... 흠흠 ㅋㅋㅋㅋ
 
나의 사촌 레이첼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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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었나. 모 헬스 유튜버가 코로나 스트레스를 먹방으로 풀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몸이 비대해졌다. 그는 헬스장 대표라는 신분도 내려놓고 유혹에 보란 듯이 빠져들었다. 평생 쌓아온 습관과 자기관리가 단 며칠 만에 무너진 것이다. 나중에 다시 몸짱으로 복귀하긴 했지만 이거는 프로 정신 덕분인 거고, 보통은 한번 무너지면 영영 못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 뭐가 되었든 간에 늦바람이란 참 무섭다. 이게 뭐라고 평생 절제하며 살았나 싶어지지.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별거 없거든. 딱히 일상에 지장도 없는 거 같고. 그러다 이 반복되는 자기합리화의 문제점을 인지할 때쯤엔 이미 회생 불가 상태라 더욱 절망하게 된다. 이런 건 본인도 그렇겠지만 보는 이들이 더 속상하다. 자 그럼,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이 어떻게 틀려먹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을 소개해본다.


숙부에게 거두어진 고아 필립은 그를 따라 모태솔로로 자라난다. 숙부는 요양하러 간 이탈리아에서 레이첼을 만나 운명 같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종종 보내오던 숙부의 근황 편지가 뜸해지더니, 나중에는 레이첼이 심상치 않다는 내용을 보내온다. 그리고 얼마 뒤 숙부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다. 유전병 때문이라지만 필립은 숙부의 재산을 노린 레이첼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 찼다. 여기까지는 클래식하고 좋았는데 이다음부터가 대략 뻔한 전개로 흘러간다.


숙부가 죽고 가문의 주인 나리가 된 필립. 그는 자신을 찾아온 레이첼에게 반하여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는 호구가 된다. 숙부를 따라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해온 필립에게 그녀는, 어머니의 따스함과 여성의 매력까지 갖춘 여신 그 자체였다. 집안의 돈을 이탈리아로 보내는 걸 알고도 돈이 모자랄까 싶어 더 퍼다 주는 필립의 본격적인 호구 짓이 시작된다. 심지어 대부의 만류와 충고에도 내가 알아서 한다며 같잖은 집주인 행세를 한다. 이 풋내기의 관심사는 오직 레이첼의 환심을 사는 일이었고, 할 줄 아는 건 가문의 돈을 바쳐가면서 곧 떠나려는 레이첼을 붙잡아두는 정도였다. 사랑에 눈멀어 똥멍청이가 된 수많은 남자 가운데 필립의 찌질함은 명백히 한도 초과였다. 고딕소설의 위엄을 깎아내리는 필립이 문제인가, 말년에 이런 캐릭터나 만들고 있는 작가의 신세 탓인가. 아무튼 여러분, 콩깍지가 이렇게나 위험합니다.


분량은 다 끝나가는데 아직도 호구 짓거리 하는 필립 때문에 내가 다 초조해지고 머리에 쥐가 난다. 마침내 25살이 되어 법적 후견인인 대부에게서 해방되자, 당장 은행 금고로 달려가 가문의 보석을 죄다 꺼내 레이첼에게 떠먹여주는 주인공. 게다가 가문의 전 재산을 레이첼의 명의로 넘겨주는 스윗함까지. 자기를 어리게만 보는 그녀에게 상남자로 보일라고 별짓을 다하는데, 매력 어필은커녕 흑역사만 늘어가는게 아주 그냥 꿀잼이라 혼자 구경하기 아깝더라. 여튼 필사적으로 재혼을 거부하는 레이첼과, 그것이 숙부와의 사별 때문이라고 믿는 필립은 지독한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대체 이 똑같은 패턴을 몇 번이나 우려먹는 건지 아주 그냥 지겨워서 혼났다. 다른 독자들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는데 또 나만 그랬는갑다.


그에게 실망하고도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는 똥멍청이 필립. 마침내 그도 레이첼의 이중성을 느끼고서 대 혼란에 빠진다. 법률상 그의 재산을 온전히 차지하려면 그녀는 재혼을 해선 안되었다. 또한 상속자 문제를 매듭지으려면 상속자인 필립이 존재해서도 안되었다. 이런 이유들로 레이첼은 천천히 필립을 매장해왔고, 어리석은 필립은 스스로 가스라이팅을 당해온 거였다. 다단계에 빠진 사람이 앞뒤 분간을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듯. 여하튼 정신 차린 필립이 알 수없는 행동을 보여주는데, 여기에도 수많은 독자들이 엄지척에 휘파람을 불러댔지만 나님은 그저 그랬다고 한다. 이런 결말이나 보여주려고 쌔빠지게 빌드업을 하셨단 말인가. 에잉. 그렇지만 대프니 듀 모리에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란 건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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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1-28 1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이 <레베카>보다 좋았거든요. 처음엔 왜 굳이 화자를 젊은 남성으로 설정한걸까 의아했지만 마지막에 완전히 압도적이었어요. 자기가 사랑한다고 간이며 쓸개 다 빼주는 놈이었지만, 그런데 그 사랑은 대체 무엇인가요? 아니다 싶으니 마녀로 몰아버리는 마녀사냥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책속에서 레이첼의 입장이 나오지 않잖아요. 레이첼은 그저 본인이 말한 바로 그대로의 사람일 수도 있는데, 그여자를 세상 성녀로 보다가 마녀로 곤두박질치게 하는건, 레이첼이 아니라 필립이었죠. 레이첼의 본질이 드러난 게 아니라 레이첼을 보는 필립의 시선이 바뀌었죠. 저는 바로 그 지점이 이 소설의 대단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 작품에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물감 2022-11-28 17:02   좋아요 0 | URL
으으 감질맛나서 빨리 <레베카>도 읽어봐야겠어요 ㅋㅋㅋ 열심히 필립을 디스했듯이 그의 일방적인 사랑은 풋내기의 미성숙함 자체라, 크게 눈여겨보질 않았어요. 그래서 저도 레이첼의 관점을 주목하게 되더라고요. 과연 레이첼이 겉과 속이 다른 것인가, 아니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레이첼을 그렇게 몰아가는건가. 왔다리 갔다리 긴가민가 갈팡질망 하게 만드는 게 이 작품의 액기스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결말은 중요치 않으니 깔끔한 마무리를 짓지 않은거 같았어요. 확실한 건 출간 당시로만 보면 엄청난 센세이션이 일지 싶습니다요 ㅋㅋ

다락방 2022-11-28 16:59   좋아요 1 | URL
빨리 레베카 읽어봐요. 그리고 레베카인지 레이첼인지 알려줘요. 얼른요!! ㅎㅎㅎㅎㅎ

물감 2022-11-28 17:03   좋아요 1 | URL
후... 지금 읽는 거 끝나면 레베카 들어갑니다...
두분의 반응들이 저를 들었다놨다 하시네요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11-28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작품보다는 <레베카> ㅎㅎㅎㅎ

다락방 2022-11-28 16:55   좋아요 1 | URL
레베카 보다 레이첼이었던 분은 단발머리 님이셨던가요? 이 알라딘 땅에서 저랑 단발머리 님 딱 두분이엇던가요?

외로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11-28 16:58   좋아요 1 | URL
네 단발머리 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ㅎ

물감 2022-11-28 17:01   좋아요 1 | URL
아 읽어야 할 게 밀렸는데 이거 뭐 어쩔수 없이 레베카 읽어야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2-11-28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발머리님이 이 책 좋다고 해서 사다 두기만 했어요.
물감님 여전히 별 셋!!!!
역시 짠내가...ㅋㅋㅋ
일단 저도 읽어봐야 그 느낌을 알 수 있을터인데...부러 리뷰를 대충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 리뷰 꼼꼼하게 읽어 볼게요^^

물감 2022-11-28 17:34   좋아요 1 | URL
단순한 플롯이라 금방 읽으실거에요. 얼른 읽고 버스에 탑승하세요ㅋㅋ나무님은 재밌다고 하실듯😀

책읽는나무 2022-11-28 17:50   좋아요 1 | URL
<다락방의 미친 여자들>이랑 관련 고전 소설들 다 읽고 나면 읽어보겠습니다.
정말 다른 책들 읽을 시간이 없네요ㅜㅜ
내년에나 읽겠어요ㅋㅋ
레베카도 같이 읽어야 하는군요?^^

물감 2022-11-28 19:30   좋아요 1 | URL
사실 유명하기론 레베카니까요! 모리에 작품은 그냥 다 읽어야죠ㅋㅋ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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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기자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어르신들을 만나며 기록한 인터뷰 모음집이다. 특별한 점은 남성이 아닌 여성들의 이야기만을 다루었다는 것. 남성들의 전쟁 일화는 충분히 차고 넘칠 만큼 존재하지만, 여성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수면 아래에 있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남녀노소 다 겪는 전쟁이 어째서 남자들의 전유물이란 말인가. 하여 저자는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박혀있던 감정과 설움을 끄집어내어 만천하에 공표하였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인터뷰에 응해준 수많은 이들의 울분을 받아주어야 했고, 어떤 이들에게는 괜한 짓 한다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저자 스스로도 이 일이 옳은 행동인지를 의심하였으나, 인터뷰를 할수록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내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이 기자의 사명이자 본분이 아니던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2022년 초에 일어난 러시아-우크라 전쟁이 지금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길든 짧든 그 폐해는 말도 못할 것인데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할 거 없이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숨죽여 목숨을 부지중일 테고, 전쟁이 끝나고 살아남았대도 앞날을 생각하면 그저 막막함뿐이다. 말 그대로 누구에게나 참혹한 전쟁이지만, 이번에는 책의 기획대로 여성들의 입장을 주목해보았다.


집안에 모든 남자들은 전쟁터로 나갔고, 희생자와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결국 여자들도 전선으로 나아간다. 어떤 이는 강제적으로,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체격과 나이, 경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일단 불려가서 간호사든 조종사든 저격수든 보직을 주는대로 부여받고 속성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마음의 준비도 안된 채 총질을 해야 하고, 사지가 잘린 아군을 돌봐야 하며, 옆자리 동료가 한순간에 목숨을 잃는 광경을 날마다 목격해야 했던 소녀 병사들. 장총보다도 키가 작은 어린이부터 결혼을 앞둔 신부까지, 전쟁은 수많은 청춘과 꿈들을 앗아가버렸다. 총성이 울리자 그녀들의 찬란했던 우주는 그만 호흡을 멈추었다.


이 책을 기획하며 저자는 수많은 방문과 인터뷰를 하고 방대한 양의 편지와 전화를 받았다. 그 사연들을 다 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책 중반쯤에 그런 말이 나온다. 남자들은 전쟁의 지식을 기억하지만, 여자들은 전쟁의 감정을 기억한다고. 단순히 성별 차이가 아니라 여성성을 강제로 박탈해버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화들이 그것과 연결되어있다. 남성 치수의 군복과 속옷과 군화를 지급받았고, 2차 성징이 찾아와도 신경 쓸 틈이 없었으며, 생명을 낳는 게 아닌 생명을 멸하는 신분이 돼버렸다. 가장 기억나는 일화는 참전 서류를 없애버린 분이었는데, 그게 있으면 아무도 자신과 결혼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결혼은커녕 집도 없이 살다가 병에 걸렸는데, 그 서류가 없어서 어떤 혜택도 못 받는다고 했다. 아아, 정말 눈물이 다 난다. 이 많은 울분을 저자는 어떻게 감당해냈을까.


가만 생각해보면 인생 자체가 곧 전쟁이다. 우리네 인생은 별다른 훈련도 못 받고 전쟁터에 투입된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총알과 포탄, 밟는 곳마다 펑펑 터지는 지뢰, 깜빡이도 없이 껴드는 탱크와 전투기. 싸워야만 살아남는 현실이 전시상황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길어지는 코시국과 러시아-우크라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다. 하여 전 인류가 전쟁을 간접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근데 미안하지만 국가적 문제보다도 당장 내 생계부터 해결하는 게 급선무란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난 피곤에 절은 채로 귀가해 몸져눕는다. 근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이 정도면 나는 배부른 삶이구나 싶다. 다들 이렇게 정신승리라도 하면서 삽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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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11-17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은 전쟁이군요? 밖은 지옥이야!!!!! 근데 난 전쟁보다 지옥 체질임 ㅋㅋㅋㅋ 지옥은 혼자 견디면 되지롱~ -자영업자 씀-

물감 2022-11-17 09:30   좋아요 1 | URL
오오 쟝쟝님은 정신승리를 마스터 하셨군요? 저도 분발하렵니다 ㅋㅋㅋ
근데 지옥이냐 전쟁이냐의 선택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아닌가요 ㅋㅋㅋ

공쟝쟝 2022-11-17 09:31   좋아요 1 | URL
치킨을 좋아하냐 계란을 좋아하냐의 문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살아남읍시다💪💪

물감 2022-11-17 11:29   좋아요 0 | URL
오오케이. 쟝쟝님이랑 다락방님과 치킨 먹방을 하는 그날까지 나는 무너질 수 없다!

다락방 2022-11-17 11:32   좋아요 1 | URL
갑자기 분위기 치킨 먹방 ㅋㅋㅋ 저는 다리, 물감 님은 가슴인데 쟝님은 뭐 좋아해요? 가슴이에요, 다리예요? 아니 물감님, 공쟝쟝 님이 뭘 좋아하든 누군가에겐 불리하다. 다리 좋아하면 나에게 불리하고 가슴 좋아하면 물감 님에게 불리하다. 그러니까 물감님과 저 둘이 만나서 쇼부칩시다. 콜?

물감 2022-11-17 11:52   좋아요 0 | URL
예전에 쟝쟝님도 가슴살 좋아한대서 자기랑 겹친다고 했었죠 ㅋㅋㅋ 전 가리는 부위 없어서 얼마든지 합석 가능합니다. 셋이 만난다면 제가 허벅지살 먹죠 뭐! 다락방님과의 1대1 먹방도 좋아요ㅋㅋㅋ 근데 치킨 한마리에 5만원 할때쯤에나 만날려나...??

공쟝쟝 2022-11-17 11:59   좋아요 0 | URL
전 퍽퍽살 파지만 사실 다 잘먹습니닭!! 모두 모여 닭방찍는 그 날까지 저는 소설을 읽겠습니다!!! 대화에 끼고 싶을 거 같아요 ㅋㅋㅋ (그러나 ㅋㅋㅋ 올해는 처참한 실적 ㅋㅋㅋㅋ 면목 없다…)

다락방 2022-11-17 12:06   좋아요 2 | URL
그러면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번 볼까요? 닭먹기 위해 만나자. ㅋㅋㅋㅋㅋ

물감 2022-11-17 13:21   좋아요 0 | URL
좋아좋아요~ 그럼 엣지있게 12월 25일 어떠신지요 ㅋㅋㅋ
어쩐 일로 12월 토욜은 모두 매진 돼버렸습니다.......!!
와 이렇게 두분의 실물을 영접하는 건가요?? 설렌다 야호

다락방 2022-11-17 13:37   좋아요 1 | URL
뭐야, 물감님 완전 인기인이었어요? 사람 안만나면서 사는 거 아녔어요? ㅋㅋ 일단 12/25 저는 오케이!

공쟝쟝 2022-11-17 13:42   좋아요 0 | URL
역시 F들은 신속하고 자연스러운 만남의 추진자들 이네요?! 저도 당연히 약속 없어요 ㅋㅋㅋㅋ (조금 분하다) 만찬을 즐겨요! 제가 읽고 갈 것은?? ㅋㅋㅋㅋ

다락방 2022-11-17 13:56   좋아요 0 | URL
쟝님이 읽고 올 것은 내 마음?

공쟝쟝 2022-11-17 14:16   좋아요 0 | URL
네메시스로 정했습니다! ㅋㅋ

물감 2022-11-17 14:37   좋아요 1 | URL
약속 잘 안잡지만 그래도 연말이자나요 ㅋㅋㅋ
이럴 때나 사람들 좀 만나고 그러는 거죠 머 ~~

네메시스 좋아요!
코시국과 제법 어울리는 책임다 ㅋㅋ
근데 못읽어도 그냥 오세요 ㅋㅋㅋㅋ뭣이 중헌디

레삭매냐 2022-11-17 1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러시아에서는 병력 부족
으로 강제 징병해서 충분히
훈련도 안된 병사들을 총알받
이로 전선에 내몬다고 하네요.

81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요.
무시무시한 소비에트 러시아
의 인명경시는 말이죠.

그나마 그 시절에는 외부 침략
자에 대항하는 애국전쟁이라는
프로파간다를 사용했지만 지금
은 자신들이 침략자니...

물감 2022-11-17 18:34   좋아요 1 | URL
정말 미친 짓이다 싶다가도 오죽했으면 어린 친구들까지 동원하나 싶어져요.
그리고 과연 한국이라고 해서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고.

러시아 뉴스를 볼 때마다 이 어마무시한 국가에서 어떻게 도끼옹 같은 대문호들이 생겨났는지 늘 의문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침략자가 된 마당에, 러시아에서 메시야가 나온다한들 어느 누가 반겨줄까요. 참 마음이 복잡합니다. 에혀.

책읽는나무 2022-11-17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물감님이 읽으시고 쓰신 리뷰는 좀 감동입니다.
전 이 책 진짜 힘겹게 읽었던 지난 여름이 떠오릅니다. 그 감동과 슬픔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 하네요.
가을이기도 하구요???ㅜㅜ

물감 2022-11-17 18:34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다른 분들이 남긴 평에 비하면 아주 빈약한 글이던데요...(쭈글)
역시 책읽는나무 님은 타인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능력자! ㅎㅎㅎ
많이 무겁고 힘겨운 작품이지만, 그래도 읽기를 잘했단 생각이 들었네요.
부디 계절 타지 마시기를...^^
 
인간 실격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2
다자이 오사무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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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때면 우울한 노래를 듣게 되듯이, 책도 꼭 그런 것만 읽게 된다. 아플 때가 가장 서럽다는 자취생들의 심정이 내내 지속되는 기분이랄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없으니 이렇게라도 현실을 도피하여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거겠지. 하여 상태가 멀쩡할 땐 손이 안 가던 <인간 실격>을 드디어 읽게 됐다. 확실히 침울할 때 읽어주니까 감정이입이 잘 돼서 볼만했다. 이렇게 저자의 삶과 심연을 대변하는 작품은 참 양날의 검과 같다. 저자에게 푹 빠지거나 혹은 완전히 손절하거나. 일단 나는 후자다. 필독 도서고 뭐고 간에 나는 진짜 일본 문학이랑은 안 맞는 거 같아. 같이 실린 <사양>은 진짜 영 아니어서 <인간 실격>만 리뷰하겠다.


부끄러운 생애를 살았노라고 자백하는 주인공 요조. 타고난 익살꾼으로써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살았지만 정작 그의 심장은 뛰는 법을 몰랐다. 애정을 갈구할 줄만 알았지, 누구와도 진심을 나눠본 적이 없는 그였다. 스스로도 남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통제와 방치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제 가면을 들키고도 솔직해지지 못하는 모습은, 제 존재를 부정하기 바빴던 요조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동양 버전의 <데미안>이라고 봐도 될 듯.


험한 세상을 위태로이 살아가는 요조가 꼭 지금의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겉보기엔 남들과도 잘 지내고 결혼도 하고 적절히 유흥도 즐기며 사는 평범남이지만, 공허함으로 가득 찬 그 가슴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그를 공허하게 만드느냐. 딱히 이유랄 건 없다. 그냥 그렇게 설계되었을 뿐, 갖가지 이유와 환경 탓을 해본들 찐따의 DNA가 어디 가질 않으니까. 이 같은 유형에게는 일반적인 이해방식으로 접근해선 안된다. 이상주의자에게 부와 명예와 쾌락 따위는 잠시 있다 사라지는 급여 통장의 잔액 같은 개념일 뿐이니까. 


요조는 겉과 속이 확연히 다른 자신을 환멸 하면서도 방치해두었다. 같잖은 강약 약강의 태도를 보였지만 옳고 그름의 분별력은 있는지라 그렇게 두 사이에 끼어서 방황하며 살아간다. 자신보다 훨씬 매운맛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넘쳐나는데도 스스로의 이질감을 용납하지 못하는 그를 통해 저자의 생애도 들여다본다. 눈앞의 현실이 자신과 맞지 않음에도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나름의 타협과 굴종을 택했을 저자를 절대 손가락질하고 싶지 않다. 세상과 직접 맞닥뜨릴 자신은 없을지언정 이렇게 글과 문학으로 저항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나. 내 스타일의 글은 아니었지만 그의 정신만큼은 높이 사준다. 


장자가 말하길, 인생은 잘 놀다 가는 것이라 했다. 스스로를 찾지 못해 얼마간 방황할 수는 있어도 끝내 본인만의 진리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 곧 삶에 대한 답이라 하겠다. 방송에 나와 심리상담을 받는 연예인들을 보라. 내 안에서 평화를 얻지 못하면 어떤 인정을 받아본들 공허할 뿐이다. 그 지독한 고독과 공허함에서 나오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요조와 오사무를 보며 또 한 번 인생을 배운다. 건강히 살다 가는 비결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가까이하는 거다. 뭔 당연한 소리를 그럴싸하게 말하냐 싶겠지만 그래도 잘 생각해보라. 요조는 그림 그리기를 놓지 않았고, 오사무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기쁠 때는 더없는 친구가 되어주고, 힘들 때는 유일한 출구가 되어준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지만 그래도 남보다 자신을 더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쓰고 보니 리뷰라기보단 인생 고찰 비슷한 게 돼버렸는데 뭐 어떠랴. 늘 그렇듯 읽었다는 데에 의의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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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11-15 14: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양> 까는 리뷰도 궁금합니다.....ㅋㅋㅋㅋ

물감 2022-11-15 15:09   좋아요 3 | URL
하... <사양>은 말이죠, 아무리 독서 공백이 있었다지만 내가 이렇게나 집중력을 잃었나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ㅋㅋㅋ 서재공간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 <인간 실격>만 썼답니다... 그래도 이만하면 까는 글은 아니지 않나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11-15 15:47   좋아요 3 | URL
네, 이건 물감 님 평소 리뷰에 비하면 아주 순한맛이네요.ㅎ
전 <인간실격> 예전엔 그렇게 좋던 것이 다 늙어서 읽으니까 오그라들더라고요. ㅋㅋㅋㅋ

물감 2022-11-15 16:05   좋아요 2 | URL
음, 무슨 말씀인지 공감이 가요.
다 커서 독서를 시작한 제게는, 칭찬일색의 작품들이 이해가 안될 때가 너무 많더라는... ㅋㅋㅋ 독자들이 당시 분위기에 취한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요. 역시 인생은 길게 살고 봐야한다는 결론입니다!

새파랑 2022-11-15 1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백기 후 첫 읽으신 책이 별로셨군요 ㅜㅜ

저는 <사양> 좋아합니다 ~!! 얼마전에도 갑자기 ‘아 <사양> 읽고 싶다‘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ㅎㅎ 이유를 설명할수는 없지만 ^^

물감 2022-11-15 20:24   좋아요 2 | URL
제가 질색하는 작품을 다 좋아하시는 새파랑님의 취향을 존중합니다ㅋㅋㅋ늘 느끼는건데 그릇이 참 넓으십니다🙂

공쟝쟝 2022-11-15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문학 안맞는 1인이 내적웃음 짓고 갑니다. 오랜만예여! 물감님!!!!! 되게 반갑네!!

물감 2022-11-15 20:50   좋아요 0 | URL
으아닛 광활한 우주대스타 쟝님, 완전 오랜만이욥! 텐션은 여전하시군요ㅎㅎ이제 자주 봐요😀

공쟝쟝 2022-11-15 21:01   좋아요 1 | URL
전 올해 소설왕 망했어요! 내년에 다시 도전!!!! 이상주의자의 가슴에는 불씨가 🔥🔥🔥있어야죠! 물론 현실은 똥과 텅장이지만 ㅋㅋㅋㅋㅋ 공허는 밀쳐두고 책이나 읽고 세상에 스트레스 푸는 악평이나 씁시다 ㅋㅋㅋ

물감 2022-11-15 22:30   좋아요 1 | URL
그건 쟝님의 관심사가 소설이 아니므로... 내년에도 무리라고 봅니다(진지). 그렇지만 불씨는 계속 타오르라!!! 악평도 오케이!!!ㅋㅋㅋ

coolcat329 2022-11-16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도 읽어야 하는데... 물감님 리뷰가 과연 나는 어느 쪽일지 기대하게 만들어요. 이 책은 젊을 때 읽어야 좋은가보네요. 😅

물감 2022-11-16 14:04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 엄청 기대했던 책이었는데, 막상 벗겨보니 뭐 없더라고요.
근데 좋다는 독자도 엄청 많아서 정말 모르겠어요. 어떤 가수는 주인공의 이름 따라 요조라고 예명을 썼더만요 ㅋㅋㅋ 나름 필독 도서니까 기대없이 읽어보셔요 ^^

서니데이 2022-12-08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물감 2022-12-08 18:3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12월 파이팅하세요ㅎㅎ
 
불편한 편의점 2 불편한 편의점 2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8월
평점 :
품절


천 번쯤 흔들리면 어른이 된다던데, 하루에도 수천 번 흔들리는 난 대체 언제쯤 어른이 될까. 멘탈이 나간 후로 매일매일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만 같다.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마지못해 살아가는 요즘, 김호연 작가의 반가운 신간이 들려왔다. 너무나 큰 위로를 받았던 <불편한 편의점>의 후속작인데, 1편의 분량이 짜다고 투덜댄 나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것이었으면 좋겠다. 작년에도 그랬는데 올해도 내가 다 쓰러져갈 때 나타나 일으켜준 고마운 작품이다. 덕분에 자기 연민에 빠져 땅만 보다가 고갤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이 모든 고비가 어서 지나가길 기도하면서.


질병과 전쟁 중에도 K-문화는 전 세계로 뻗어나간다. 한국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만 가는데 정작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바닥을 치고 있다. 나아지지 않는 병리 현상들은 서로를 너와 나로 분리시켜 놓았고, 현실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전부 다 온라인 세상으로 도피해버렸다. 그렇게 나는 홀로 남겨졌다. 이해는 되는데 서운함은 어쩔 수가 없다. 이제 사람들은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제자리로 오지 않고 제 갈 길을 찾아가리라. 돌아오기엔 흘러간 시간이 너무도 길다. 비록 그렇다 해도, 또 그런 시대라 해도 나는 눈앞에 있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과 웃고 떠들며 호흡하고 싶다. 나는 모두가 외로움을 잊은 게 아니라 애써 외면하는 거라고 믿고 싶다. 어쩌면 김호연 작가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뉴페이스 편돌이, 황근배가 등장했다. 과묵했던 1편의 독고와는 정반대로, 똥꼬발랄한 해피바이러스 보균자였다. 독고처럼 나이도 많고 일머리도 없었지만 특유의 넉살로 금방 적응하고 자리를 잡는다. 그의 투머치한 친화력 속에서 요즘엔 잘 없는 인간미를 느낀 손님들은 하나둘씩 속내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얕잡아보는 이들에게 웃으며 할 말 다 하는 이 편돌이는 그야말로 멘탈의 신이었다. 허나 근배씨 또한 말 못 할 사연들로 가득했는데 그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1편이 상처받아 고립된 자들의 이야기였다면, 2편은 상처받지 않으려 고립을 택한 자들의 이야기라 하겠다. 돌다리가 무너진 사람들은 연속되는 실패와 불안으로 방황이 멈추질 않는다. 그래서 자신들의 불행을 감추기 위해, 남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나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한 행동들이 오히려 더 큰 손실을 가져오고 말았다. 그런데도 세상과 타협치 않고 나만의 길을 가겠다? 세상을 왕따시키면 어디 콩고물이라도 떨어지던가. 그런 건 하등 도움 되지도 않을 옹고집에 불과하다. 성벽을 혼자 쌓는 건 대단한 게 아니라 미련한 거거든. 모름지기 사람은 자기 객관화를 할 줄 알아야 한다.


1편의 독고도, 2편의 황근배도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으면서 편의점을 그만둔다. 그럼에도 이들과의 헤어짐이 슬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더 큰 희망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에겐 그저 잠잠히 응원해주면 되는 거다. 두 편돌이가 그랬던 것처럼. 반대로 아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때가 바로 작가가 말하는 ‘궤도 수정‘을 해야 할 타이밍이다. 제자리걸음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의 오랜 고집을 버려야 한다. 내가 곧 정답이라는 생각과 판단을 뜯어고쳐야 된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은, 앞서 말한 자기 객관화를 하는 습관부터 기르자. 자고로 훈수는 제 삼자들이 더 잘 두는 거 아시죠?


또 한번 인류를 향한 작가의 응원과 격려로 탈탈 털렸던 영혼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내가 보아온 김호연 작가의 글에는 조막만 한 인류애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잠재력이라 확신했었다. 그리고 등장한 <불편한 편의점>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출간 후 지금까지도 전 국민의 슬픔을 담당하고 있다. 이분만큼 삶의 애환을 어루만져 주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분은 언젠가 크게 성공할거라 믿었는데, 역시나 내 눈은 정확했어. 이제는 팬들이 꽤 많아진 듯한데, 그래도 1호 팬은 접니다요. 그럼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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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8-31 0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종이책을 읽는 물감님은
으른😎이쉼^^

물감 2022-08-31 00:38   좋아요 2 | URL
오랜만이에요 스캇님. 잘 지내시죠? 🙂

구단씨 2022-08-31 00: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 2편 읽고 있어요. ^^

제가 사는 이곳 시에서 올해의 책으로 <불편한 편의점>이 선정되었는데요.
올해에는 다른 시에서도 <불편한 편의점>이 많이 선정되었더라고요. 반가운 소식입니다. ^^
재밌고 훈훈한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공감할 수밖에 없나 봐요...

물감 2022-08-31 11:24   좋아요 1 | URL
작가님 팬으로써 반가운 뉴스로군요 ^^
안 읽어본 독자가 없었으면 좋겠네요 ㅎㅎ

mini74 2022-08-31 06: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예약이 가득 찬 그 책이군요. 물감님께 큰 위로가 됐다니 궁금해집니다. 1호팬님 *^^*

물감 2022-08-31 11:26   좋아요 1 | URL
1편도, 2편도 작가님이 직접 보내주셨어요 ㅎㅎ
그래서 저는 대여가 그렇게 빡센줄 몰랐네요 ^^;

책읽는나무 2022-08-31 09: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
역시 가슴 따뜻한 물감님♡

물감 2022-08-31 11:27   좋아요 2 | URL
책읽는나무님 오랜만이에요 ㅎㅎ
댓글에서 느껴지는 텐션은 여전하십니다^^

coolcat329 2022-08-31 0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오랜만이에요! 2편 읽으셨군요. 불편한 편의점의 성공으로 이와 비슷한 표지들이 많이 나오더라구요. ㅎ

물감님 멘탈 다시 잘 추스리시고 짧아서 더욱 아름다운 가을 🍂 누리시길요~~

물감 2022-08-31 11:30   좋아요 2 | URL
쿨캣님 잘 지내시죠? ^^
한동안은 독서도 글쓰기도 내려놓으려 했는데, 작가님이 책을 보내주셔서... ㅎㅎ
<불편한 편의점> 이후로 비슷한 제목의 작품이 대거 나오더라고요.
백화점, 잡화점, 상점, 도서관 등등... 저는 하나도 안읽었어요 ^^;;

2022년의 리뷰는 이게 마지막이 되겠네요.
건강하시고 언젠가 다시 뵙기를ㅎㅎ

coolcat329 2022-08-31 21:03   좋아요 1 | URL
물감님 너무 오래 떠나진 마시길요~ 건강하시구요!

2022-08-31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31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