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는 1392년 7월 17일 개경의 수창궁에서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그러나 태조가 즉위한 개경은 5백년 동안 고려의 도읍으로, 구 세력의 근거지였기 때문에 새로운 왕조에 걸맞는 도읍을 정하고 국정운영의 기틀을 다지는 일은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마침내 태조 이성계는 1394년 8월 도평의사사로 하여금 한양천도를 공식적으로 요청하게 한 뒤, 한양을 새로운 도읍으로 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같은 해 9월 1일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설치하고 종묘와 사직, 그리고 궁궐터를 정하고, 10월 25일 한양 천도를 단행하게 된다.

이처럼 새로운 왕조의 개국과 더불어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주요한 국가적 시설물인 종묘와 사직, 궁궐을 짓게 된 것은 당시의 시대적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또한 역성혁명으로 인해 흩어진 민심을 추스르기 위한 복합적인 정치적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한편 한양은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손색이 없는 정치, 경제, 교통, 국방 등의 요충지로서 중요한 여건을 고루 갖추고 있기도 했다.

입지조건상 한양 땅은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근간으로 한북정맥의 줄기인 북한산과 한남정맥의 줄기인 관악산이 한강을 중심으로 마주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곧 백두대간의 중심에 해당하며, 지리상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구체적으로 한양의 지형적인 입지는 북한산에서 뻗어 내린 백악산을 주산으로 동쪽 타락산, 서쪽 인왕산, 남쪽 목멱산(남산)이 내사산을 이룬 분지로 형성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약 18 ㎞의 한양도성을 중심으로 내수인 청계천이 흐르고 있다. 이는 다시 외수인 한강과 합수되어 서해로 흘러가는, 교통과 경제의 수계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한양을 조선왕조의 도읍으로 정하게 된 것은 정치적인 필요성과 도읍으로써 요구되는 지리적 입지조건 등 각 분야에 걸쳐 충분히 고려된 선택의 결과였다.

그런 가운데 조선왕조의 으뜸궁궐인 경복궁의 창건은 새롭게 개국한 조선왕조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국가적 사업의 출발점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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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11-12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이 멋진 백일 축전을 띄우셨네요. 조선인님, 해람이 백일 축하해요~~. (오늘 백일 치르시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쁘실 듯...^^)
 

 

  명성왕후가 살해된 방(왼쪽)과 왕후의 시신을 불에 태운 곳(오른쪽).

  건청궁은 고종왕비 명성왕후가 일본인의 손에 의해 무참히 시해된 을미사변(乙未事變)의 현장이다.

1894년에 고종은 창덕궁에서 돌아와 건청궁에 거주했는데, 1895년 일본인들은 명성왕후를 제거할 이른바 "여우사냥"이란 작전을 세웠다.1895년 8월 20일 일본공사 미우라가 이끄는 일본군, 일본낭인 등은 건청궁까지 난입하여 부속건물인 곤령합(坤寧閤)에서 명성왕후를 끌어내어 칼로 찔러 시해하고, 시신을  그 옆 녹산으로 끌고가 석유를 끼얹어 태우고는 그 뼈를 그 앞 연못에     던져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명성왕후는 1897년(광무 1)에 명성황후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처음 청량리 홍릉에 장사하였다가 1919년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경기도 금곡의 홍릉으로 이장하였다. 이 비는 1954년 6월 30일 건립한 것으로, '명성황후조난지지(明成皇后遭難之地)'란 글씨는 이승만 당시대통령의 친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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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과학자
조슬린 파슈 그림, 앙드리엔 수테르-페로 글, 윤소영 옮김 / 보림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누른부리검은티티라니 우리 나라에선 보기 드문 희귀새라지만
이 새가 나오는 책이나 노래가 무척 많은걸 보면 유럽에선 무척 흔한 새인가 보다.
하여간 이 새의 한살이를 통해 동물 일반의 정자와 난자, 짝짓기, 수정의 과정이 상세히 짚어졌다.
아쉬운 점은 아무리 주제가 '알'이라지만 텃새가 아닌 철새라는 이 새의 특성도 다루어졌다면 더 좋았겠다.

책의 난이도는 5살 딸아이에게도 쉬운 편인데,
이는 얼마전 동생을 맞이하느라 임신, 출산에 관한 책을 많이 읽은 덕분인지도 모른다.

* 노란부리검은지빠귀로 번역되어 있는데, 대륙검은지빠귀, 일명 누른부리검은티티가 맞는게 아닐까 싶다.
http://www.animalpicturesarchive.com/view.php?tid=3&did=10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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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갈나무 꼬마과학자
엘리노르 슈미드 그림, 앙드리엔 수테르-페로 글, 윤소영 옮김, / 보림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세상을 바꾼 두더지>를 보면 우연히 땅에 떨어진 도토리가 아름드리 떡갈나무로 자라난다.
이 책에선 반대로 떡갈나무의 열매가 도토리임을 알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 엮어보기 좋다.
하지만 떡갈나무 이야기만 나온다고 생각하면 오산.
활엽수 일반의 한살이는 물론 증산작용, 광합성, 나이테의 원리까지
어른 손바닥만한 판형이지만 빼곡한 정보가 담겨 있다.

꼬마 과학자 시리즈의 경우 책에 따라 약간씩 난이도의 차이가 있는 듯,
5살 딸아이가 보기엔 약간 어려운 편이다.
하지만 떡갈나무와 어우러져 사는 곤충들과 동물들이 아름답고 세세하게 그려져 있어
시리즈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게다가 시리즈 전반적으로 자연 보호를 강조하는 점도 무척 마음에 든다.

<이하 아영엄마님이 가르쳐주신 사실>

도토리 : 떡갈나무의 열매. 16세기에 발간된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는 도토리를 '도 밤'이 라고 적고 있다. 이것을 돝+애+밤' 으로 분철을 해보면 그 의미가 명확히 드러난다. '돝'은 돼지라는 뜻으로 만든 말이 사실을 알 수 있다. '도태밤'이 도토리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두시언해(杜詩諺解)]다 여기서는 도토리를 '도토밤'과 '도톨왐'이라는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처음의 의미, 즉 돼지가 먹는 밤이라는 어원(語原)이 흐릿해지면서 도토리의 깍지가 도톨도톨하다는 의미와 연결시켜서 어형(語形)을 변화시킨 것임을 나타낸다. 그러다가 '도톨왐'이 '도톨암'으로 변하고 이윽고 끝음이 떨어져서 '도톨이'로 불리워 지다가 지금의 '도토리'로 된 것이다.

한편 도토리와 비슷하게 생긴 '상수리'는 본디 참나무 열매를 뜻하는 한자어 상실(橡實)에서 온 말로 '상(償)'은 도토리를 뜻한다. 즉, 상실이→상시리→상수리 로 변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13세기에 발간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을 보면 '상실(橡實)'의 우리말 이름을 '돝의밤(猪矣栗)'로 적어 놓고 있다. 이런 기록을 볼 때 상수리와 도토리는 그 어원상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임을 알 수 있으며, 원래 산에서 사는 멧돼지가 식용으로 즐겨먹는 나무 열매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떡갈이란 잎이 두껍기 때문에 생긴 이름. - 떡을 살만큼 잎이 넓다고 하여 떡갈나무란 이름을 붙임
옛날 길을 가다 짚신이 닳아 구멍이 나면 신갈나무 잎사귀를 따서 짚신 바닥에 깔았다고 한다. 신갈나무라는 이름은 그래서 붙여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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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2 0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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