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년 11월 23일 뉴햄프셔주 힐즈버러에서 태어나서 대통령까지 올랐다. 그는 보든 대학을 졸업후, 23세에 젊은나이로1827년 변호사가 되었으며, 28세때 민주당에 입당해서 1834년 30세의 젊은 나이에 상원의원이 되어서 38세 (1842년)까지 4선에 걸쳐서 상원의원으로 일했다. 1842년 은퇴했으나, 1846년 미국-멕시코 전쟁이 일어나자, 군에 들어가서 사병에서 준장까지 진급됐다. 그후 1850년에 다시 상원의원으로 복귀해서 1852년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흑인 노예에 대한 북부와 남부의 싸움을 말리지 못했고, 그후 제선을 포기하고 돌아와서 1869년 10월 8일 죽었다 

  • "I find that a great part of the information I have was acquired by looking up something and finding something else on the way."
  • "To err is human; to forgive, infrequent."
  • "Elections are won by men and women chiefly because most people vote against somebody rather than for some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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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체오페르 2010-06-03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은 이력이지만 대단한 인물이네요.

    조선인 2010-06-04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의 말을 곧잘 인용하면서도 어떤 사람인지 이번에 처음 찾아봤네요. ^^

    벤치성밥죄송 2011-11-1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봤습니다~
     



    오세훈 당선자와 한명숙 후보의 표차이는 딸랑 2만5천표.
    만약 진보신당이 범야권 단일후보에 동참했다면 선거결과는 뒤집어질 수도 있었다.
    부디 진보신당이 노회찬씨가 얻은 14만표의 가치를 만들어가길 바란다.
    서울, 경기의 패배는 예상했지만, 그래도 2위 한명숙과 3위 노회찬이라는 결과는 아픈 대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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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오기 2010-06-03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상정이 사퇴했어도 유시민은 역부족이었어요.
    노회찬마저 사퇴했다면 진보신당은 설 땅이 없잖아요. 노회찬의 3.3% 득표는 나쁘지 않아요. 아쉽지만 한명숙 후보가 부족한 부분은 채워야 겠지요.

    날을 꼬박 새우고 출근했다면 점심시간에라도 눈 좀 붙이셔야 할 듯.^^
    나는 이제부터 잠시 눈을 붙였다 출근하면 되는데...

    무해한모리군 2010-06-03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당을 다 합쳐도 한나라당을 간신히 이길 정도라는 것만 확인한 셈이네요 =.=

    Mephistopheles 2010-06-03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선거는...왠만한 TV 예능프로보다 재미있더군요....
    (이건 뭐 야생 버라이어티도 아니고 ㅋㅋ)

    조선인 2010-06-03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전 딱히 지지하는 당은 없지만, 이번 선거에서 민노당이 치른 희생은 의미 있다고 봅니다.
    고고씽휘모리님, 이번 선거는 어쨌든 국민의 승리입니다. 반북대립정책, 4대강사업, MB절망교육, 세종시, 떡검에 대한 총체적 심판이었다고 생각해요.
    메피스토님, 얼마나 재밌었으면 제가 꼴딱 밤을 새웠겠습니까.

    무스탕 2010-06-03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랑은 티비를 보고 전 인터넷으로 보면서 이야~ 재미이따!!! 를 외쳤다니까요 ^^

    Joule 2010-06-0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은 번호와 살 때문에 졌어요. 살 좀 찌고 2번 받았으면 어땠을까, 이러고 있다는.

    조선인 2010-06-03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스탕님, ㅋㅋ 우리집과 비슷한 풍경.
    쥴님, 유시민은, 한명숙은, 그들의 가능성을 검증받은 거죠. 두 분 다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같아 마음이 놓여요.

    같은하늘 2010-06-03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새벽 2시에 한명숙 후보가 앞서가는 모습을 보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뒤집혔더군요.ㅜㅜ 강남3구가 팍팍 밀어줬다니 씁쓸합니다.

    조선인 2010-06-04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하늘님, 워낙 표차가 적어서 아슬아슬하다 하면서 보다가 새벽 4시쯤인가 판세가 바뀌기 시작하면서 결국 꼴딱 새버렸어요. ㅠ.ㅠ

    펭귄 2010-06-07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이번 선거를 보면서, 우리나라는 너무나 대도시 위주구나라는걸 새삼 느꼈어요. (현재) 나랑은 상관없는 서울, 경기도, 심지어 다른 도지사들까지 누가 됐는지 tv를 보고 알았는데 막상 내가 사는 시의 시장은 아파트 단지 앞에 붙은 플랭카드를 보고 알았다눈.. @.@

    그리고 전체적으론 언니와 같은 생각이어요.

    조선인 2010-06-07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거방송이 도지사랑 교육감 위주로 진행되는 건 또 어떻고. 비례대표는 몇 번까지 당선됐는지도 모른다 @.@
     

    제주도에 커피나무 심는 여자
    [박진창아가 만난 사람] 커피농사꾼 노진이의 모험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진창아
     

     



    ▲  제주에서 커피나무를 심은 노진이씨
    1980년대 초입, 중학생이던 나는 시험을 앞두고 바짝 긴장했다.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신기한 물질에 대한 정보를 들은바 있어, 기어이 어른들이 마시는 일제 커피의 쓰디쓴 커피 맛을 알게 되었으니. 시험결과는 기억이 안 나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부터 나는 커피의 충실한 노예가 되었다는 것이다.
     
    커피를 마셔서 피부가 까무잡잡하다는 놀림을 받더라도 포기할 수 없었던 그 맛은, 황금비율 커피믹스가 나온 이후로도 하루 7~8잔은 기본으로 이어졌다. 그 달달한 맛이 헝클어지고 부서지고 건조하던 시절에 위로가 되어주고 나름 창조적 활동에 기여한바 크니, 몸에 해로운 것이 정신에 이로운 이놈의 독한 '중독'이라니.
     
    게다가 요즘은 핸드드립 커피 맛을 알게 되어 핸드밀과 드립주전자를 이고 다니는 달팽이족이 되었다. 나의 커피중독은 어쩌면 한국 사람의 커피소비 바로미터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로스팅 전문가에서 커피농사꾼이 되다
     
    제주도에서 커피나무를 키우는 그녀, 노진이(42)님을 만났다.
     



    ▲ 제주에서 커피나무를 키우는 노진이(42)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위 25도의 커피벨트 지역을 벗어난 곳에서 커피나무를 키우는 무대뽀 여자! 어떻게 커피나무를 심을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안경너머로 흘러나오는 눈웃음에 버무려진 짧은 대답이 돌아온다. “신선한 커피를 볶으면 어떤 맛일까 궁금했거든요.”
     
    커피 로스팅(커피를 마실 수 있는 상태로 굽는 것) 전문가인 그녀의 호기심 가득한 모험은 북위 33도에 위치한 제주도에서 3년 전에 시작되었다.
     
    2008년 미국 종묘사를 통해 해발 1000m 이상에서만 자라는 아라비카종 씨앗을 들여왔는데, 파종이 잘 안되어 실패하기를 여러 차례! 커피를 아는 전문가는 검정 고무신을 신은 커피농사꾼이 되어야만 했다.
     
    말 그대로 ‘처녀 농군’. 난(蘭)전문가인 노명철님(노진이 커피공동체의 든든한 일꾼이기도 한)의 도움으로, 커피나무의 생장점을 따고 절개하여 배지에 생장점을 심고, 무균 병에 넣어 6개월을 기다리는 배양과정과 6만 번이 넘는 화분갈이를 통해 2만주의 커피나무를 키워낸 것이다.
     
    지금은 파종한 것까지 포함해서 2만5천주의 커피나무가 제주 땅에서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왜 제주도였을까?
     
    나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본 순간
     
    ‘화산토, 적당한 해양풍, 15~25도 사이의 기온’이 커피나무를 키우기에 딱 들어맞았다는 제주 땅은 바로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워낙 병약하세요. 심부전증이라는 지병이 있어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지요. 집에 환자가 있다는 거는 (누군가에게는) 아주 고통스러운 것 같아요.”
     



    ▲ 커피 로스팅 전문가 노진이씨
    오랫동안 신어서 많이 낡은 버선코를 덧대고 기워낸 듯한 생활의 피로감과 부지런함이 느껴진다. “어머니가 환자인 탓에 직장생활은 엄두를 낼 수가 없었어요. 대학생 때부터 과외를 하며 용돈을 벌고, 어쩌다 돈이 필요하면 신문배달, 촬영보조, 화실에서 그림 배우며 일을 하기도 하고... 늘 뭔가 배우는 게 재밌었어요.”
     
    수학교육과를 졸업하여 수학 과외만 10여년을 한 그녀에게 세상은 어쩌면 영어처럼 어려운 곳이었다. “직장생활을 안 해봐서인지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고 어려웠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사소한 일에도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되새김질 하듯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그냥 너무 어려웠던 거다.
     
    질 좋은 커피가 만들어지기 위해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듯이 한 사람이 온전한 자신을 찾는 길 역시 때가 있나보다.
     
    “어느 날부턴가 남의 집에 신발 벗고 들어가는 것이 이상한 거예요. 알바비를 깎거나, 제때에 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 우리 아이는 이러니까 저러니까하는 요구 사항들이 많아지고… 과외에 환멸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스스로에게 1년의 파업기간을 주고 생전 처음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짧은 기간의 여행이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에 한껏 매력을 느껴 일본어 공부까지 하는 열정까지. 문득 말괄량이 삐삐가 떠오른다. 호기심 많고, 모험가인데다 하고픈 것은 해야만 하는 기질이 쏙 빼닮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대단히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어요. 그때 엄마가 의식도 없고, 돌아가신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먹먹해지는 거예요. 그동안의 내 삶을 돌아보는데 해놓은 것도 없고, 결혼은 생각도 안 해봤고, 뭘 하고 살아야할지도 모르겠고… 내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본 순간이었죠.”
     
    떡잎을 드러낸 ‘노진이 커피공동체’
     



    ▲ 제주시 삼양동에 위치한 '노진이 커피공동체' 농장    © 박진창아
    어머니 병수발을 하며 전문적으로 커피를 배우기 위해 아카데미를 다니며 바리스타와 로스팅(커피콩 볶기) 전문가과정을 밟았다. 까다로운 눈썰미와 입맛으로 취미를 직업으로 바꾸며 카페컨설턴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커피마니아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는 이레하우스, 신비의 사랑, 쇼코아르, 슬로우가든 등의 공간들이 그녀의 꼼꼼한 카페 컨설팅을 거쳐 탄생하였다.
     
    커피나무가 2~3년이 지나서야 빨간 체리를 맺듯이 그녀도 그렇게 자신의 열매를 알차게 키워낸 것이었다.
     
    “커피 열매는 산지에서는 1년에 두 번 수확한다는데 열매가 맺히고 6개월 뒤에 커피체리를 수확할 예정이에요. 올해 10월~11월중에는 직접 수확한 커피 체리를 로스팅한 제주도산 커피를 맛볼 수도 있죠.” 땀 냄새나는 커피농사꾼의 얼굴이 커피나무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제주도 제주시 삼양동에 위치한 그녀의 1700여평 커피농장에는 커피가 좋아 함께하는 ‘노진이 커피공동체’의 멤버인 노명철, 선우경애님이 있다. 그들은 무대뽀인 그녀를 두고 대놓고 이렇게 말한다.
     
    “계산이 없는 사람 같아요.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고 덤벼드는데 뭔가 된단 말이죠.” 수학 과외만 10여년을 했다는데 계산이 없다니…
     
    커피가 워낙 노동집약형 농산물인데다 처음 시도하는 거라 어찌될지도 모르고 빚도 많고, 커피가 나도 잘 안 팔리면 어쩌나 걱정인데다, 인건비며 기름 값이며 여러모로 걱정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어쩌겠는가! 뒤로 물러설 수 없을 때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뿐이니.
     
    제주도에는 ‘노진이’라는 멋진 이름을 내건 행복한 커피공동체가 튼실한 떡잎을 드러내고 있다.
     




    기사입력: 2010/05/24 [19:13]  최종편집: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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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ika 2010-05-27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에 살면서도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생각보다 가까운 삼양에 농장이 있었군요. 제주에는 커피나무가 자랄 수 없다는 얘기를 아직도 많은 어른들이 하시더라구요. 근데 지금 누군가 몇년째 재배를 시도하고, 성공단계라고 들었는데 이 분 얘기였었나봐요. 아는 사람있으면 찾아 가 보고 싶어집니다.. ;;;;

    L.SHIN 2010-05-2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그렇지만, 열정과 신념이 있는 사람은 멋집니다.
    반드시 성공하길 바래요. 그러나 개인적 만족을 넘어서 더 큰 무언가를 이루기를 -

    같은하늘 2010-05-3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분이시네요. 전 커피를 안 마시지만 꼭 성공하셔서 대박나시면 좋겠어요.^^

    조선인 2010-06-01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제주올레 가게 되면 우리 여기서 데이트해요, 네?
    L.Shin님, 제주 커피, 이름만 들어도 설레요.
    같은하늘님, 제가 화산지형에서 나는 커피를 좋아하거든요. 아주 기대하고 있습니다.
     

    1991년 봄, 새내기인 나에게 대학은 아직 낯설었다.
    난 OT때 이미 선배들에게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꼴통으로 찍혔고,
    개학하자 과동아리중 '사회과학학회'에 들어갔는데, 선배들은 괴롭겠다며 뒤로 혀를 찼다 했다.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나 '역사란 무엇인가'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1권의 신탁 반탁 논쟁에서 그야말로 제대로 충돌했다.
    책도, 선배들도 못 믿겠다고 선언한 나는 그 후 학회에 나가는 대신
    도서관에 살며, 각종 관련 도서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 때의 난 좀 외롭고, 약간 두렵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때 딱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지 못했던 난,
    성년의 초입에서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게 그저 어색하고 버거웠다. 
    그리고 그 무렵 본 영화가 '젊은 날의 초상'이었다. 

     

     

     

     

     

     

     

    이문열의 소설을 읽은 뒤라 줄거리야 빤했지만, 책보다도 영화가 더 깊게 다가왔다.
    눈밭을 헤매는 정보석의 절망에 난 마냥 몰입했고,
    정보석을 따라다니며 어색한 연애수작과 밑바닥의 인간애를 보여줬던 배종옥에게 열광했다.

    내가 이 영화를 통해 배종옥을 좋아하게 된 건 진짜 굉장한 사건이다.
    난 지금도 연기 못 하는 배우 못지 않게 목소리 나쁜 배우를 싫어하고,
    배종옥의 목소리는 지금도 내가 정말 싫어하는 목소리다.
    게다가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난 배종옥이 못 생기기까지 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배우 배종옥이 좋아졌다는 건 그녀가 정말 특별한 여배우라는 거고,
    그만큼 '젊은 날의 초상'이 내 아픈 곳을 두드려준 영화라는 거다. 

    그렇게 곽지균 감독의 청춘영화와 함께 나의 스물을 시작했건만,
    그의 후속영화는 단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이제서야 그게 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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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 2010-05-2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바람 2010-05-26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도 저 영화 극장에서 보며 울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했었어요. 참 안타깝네여

    노이에자이트 2010-05-26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본 영화였습니다.이젠 40대가 된 정보석,배종옥의 20대 시절 영화...배종옥 목소리가 좋다고 한 남자들도 있었죠.

    비연 2010-05-26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2010-05-26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10-05-27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어라? 님이 저랑 동갑?
    노이에자이트님, 제가 목소리에 좀 과민합니다.
    비연님, 네, 정말 안타까운 세상입니다.
    속닥님, 아, 솔직히 저도 말리고 봅니다. -.-;;

    2010-05-27 0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10-05-27 08:24   좋아요 0 | URL
    속닥님, 고마워요. 전 아래로 알았어요. 와우.

    같은하늘 2010-05-27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자살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예요.ㅜㅜ

    조선인 2010-07-01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하늘님... 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기호 2  
  • 정당명 민주당 
  • 생년월일 1960/07/25 (49세)
  • 주소 경기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
  • 직업 환경기술사
  • 학력 서울대학교 농화학과 졸업
  • 경력 (전)노무현대통령 비서관(현)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
  • 재산신고액(천원) 533,381 (수원시 권선구 입북동 토지,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 풍림아파트-배우자소유, 2007년식 아반떼-배우자소유, 예금
  • 병역신고(본인) 군복무를 하지아니한 사람 (근시우, 부동시-양쪽 시력 현격차이), 아들(현역예정)
  • 납부액(천원) 31,341
  • 체납액(천원) 0
  • 현체납액(천원) 0
  • 전과유무(건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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