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주신 책, "풀과 벌레를 즐겨 그린 화가 신사임당" 잘 받았습니다.
마로가 좀 더 크면 사주려고 생각했던 책인데, 수암님이 선수를 치셨네요.
늘 손녀처럼 대해주시는 정을 마로가 기억하도록 책 안에 큼지막하게 써뒀어요.
"수암 할아버지의 마로 4돌 선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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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6-02-08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책 미리 사 주는게 전 좋더라고요. 그 책들을 읽고 볼 때쯤이면 녀석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에. (진석이도 오래 전에 사 둔 책이랍니다.)

미설 2006-02-0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 네돌이 되었군요! 마로야. 축하한다. 그리고 조선인님 키우시느라 욕보셨어요^^

조선인 2006-02-0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앞으로 저도 어린이 미술관 시리즈는 모으려구요. 참 좋데요.
미설님, 헤헤 고맙습니다.
 
곤충 감식관 파브르 1 - 사냥벌의 유혹
키타하라 마사키 지음, 아키야마 히데키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사체에 붙은 벌레로부터 살해시간이나 현장을 추리하는 법의곤충학의 스페셜리스트가 주인공이란다.
누구나 대번 CSI의 길 그리썸과 같은 활약을 기대한다.
하지만 막상 들춰보니...

실제 법의곤충학자로서의 활약은 구더기의 성장상태로 사체가 숲에 옮겨온 시간을 맞추는 사건 하나뿐.
나머지는 죄다
'사냥벌처럼 약물을 써서' 여성만을 노리는 연속살인범 사냥벌,
살해된 여동생과의 어릴 적 추억에 얽힌 '쇠똥구리',
'개미처럼' 감식관에게 추적을 당하는 폭력단원,
소꿉친구와의 '장수풍뎅이 체험'이 폭로하는 유부녀살인범,
'심신 상실을 가장한 사마귀 같은' 잔인한 강간살인범,
딸을 생각하는 아빠의 '거위벌레 같은 무조건적 사랑',
'유지매미처럼 7년만에' 탈옥한 남자의 마지막 결의,
즉 범죄자의 특징을 설명할 때 곤충을 비유하는 것이 전부다.
이 점에서 조금 실망.

하지만 곤충 그림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고, 곤충의 살이 해설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어,
CSI가 아니라 파브르 곤충기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훨씬 재미나게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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薯童謠(서동요) - 백제 무왕

善化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卯乙抱遣去如
善化公主니믄
그즈기 얼어두고
맛둥바 
바  몰 안고가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사귀어(통정하여) 두고
맛둥[薯童]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신라 진평왕 때 백제 무왕(武王)이 지은 4구체 형식의 향가. 향찰(鄕札)로 표기된 민요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노래는 <삼국유사> 무왕조에 수록되어 있는 서동설화(薯童說話)에 끼어 전한다. 이 설화에 의 하면 이 노래는 백제 무왕이 소년 시절에 서동으로서 신라 서울에 들어가 선화공주를 얻으려고 지어 부르게 되었다 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서동설화를 여러 모로 분석, 검토한 결과 그 설화의 역사적 주인공은 무왕이 아니라 백제 동성왕(東城王)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왜냐 하면 어느 기록에도 신라 진평왕에게 셋째 딸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신라 왕족의 딸과 결혼한 사실이 있는 유일한 왕이 동성왕이다.

또한 신라의 원효(元曉)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서동설화를 익산미륵사연기전설(益山彌勒寺緣起傳說)로 취급하면서 그 역사적 주인공은 백제 무령왕이 지만 그 설화상의 민담적 주인공은 서동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사실 이 설화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애정담을 핵심으 로 하는 민담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므로 그 허구적 주인공 서동이 백제 동성왕.무령왕이나 신라 원효 등이 지닌 소 년 시절의 모습.이름일 수는 없다. 따라서 이들 역사적 인물 중의 어느 누구도 이 노래의 작가가 될 수는 없을 것이 다. '서동'은 서여(薯 , 마)를 비롯한 산약, 산나물을 캐어 생활을 이어가던 소년의 무리를 지칭하던 보통명사로서 초동(樵童).목동(牧童) 등과 동류의 집합 명칭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 <서동요>는 서동들에 얽힌 이야기, 그 속에 들어 있는 하나의 노래로 전승된 것이라 하겠다. 즉 <서동요>는 구체적인 작자를 찾지 못하고 서동들의 노 래로서 공동으로 제작.전승된 민요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노래는 서동설화의 내용을 절묘하게 집약하였으며, 산문전승의 존재와 전개를 좌우하는 '사랑의 주사'로서 문학 성과 주술성을 잘 조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 노래는 그것 자체만을 분리시켜 별도로 고찰하기보다는 그 산문전승 의 문맥 위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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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6-02-0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요즘 제가 빠져서 보는 드라마가 서동요예요... 이런 깊은 뜻이^^

조선인 2006-02-08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은 마로랑 옆지기가 팬이에요. 아주 웃겨요. ㅋㅋㅋ
 

무왕(? - 641년, 재위 600년 - 641년)은 백제의 제30대 왕이다.

삼국 사기에 따르면 백제 법왕의 아들이다. 위덕왕이 죽을 무렵 그의 장자 아좌태자는 일본 쇼토쿠[聖德] 태자의 스승으로 있었다. (아좌태자가 그려 준 일본 쇼토쿠 태자의 초상화는 1300년 이상 일본의 국보로 특별관리되어 오다가 1949년 호류사의 화재로 불타고 말았다) 그런데 즉위를 위해 귀국하는 아좌태자를 사촌동생 부여선이 죽이고서는 자기 아버지이자 위덕왕의 동생을 왕으로 추대하였는데 왕위에 올라 만 1년만에 죽었고(혜왕), 그 혜왕의 아들 부여선이 왕위에 올랐으나 또 1년만에 죽고(법왕), 그 뒤에 무왕이 즉위했는데, 그 재위 기간이 무려 41년이었다.

무왕이 정권을 잡던 시기는 신라와 백제가 서로 대립하고 있었으며, 중국에서는 통일제국 수가 반란군에 의해 멸망당하고, 이연이 세운 당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때 무왕은 당나라와 친선관계를 강조하였으며,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어 신라의 팽창정책을 막으려고 하였다. 또한 불교를 믿어 현재 익산 자리에 미륵사를 건설하고 별궁을 짓는 등 백제의 국력과 왕권강화를 위해 크게 노력했다. 백제 역사상 무왕만큼 신라를 집요하게 공격한 왕은 없었다. 무왕은 무려 12번이나 신라를 침공했는데, 익산은 가장 적합한 공격의 전초 기지였다. 이 전초기지 익산에 무왕은 백제의 국력을 결집시켜 미륵사를 창건했다. 또한 무왕은 자신의 고향인 지금의 익산으로 천도하려고 왕궁을 건립하였으나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다시 사비성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서기 660년에 결국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며 678년의 백제왕국은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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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대하드라마 '서동요'(극본 김영현ㆍ연출 이병훈)의 시청률이 오를수록 더욱 커져 가는 궁금증이 있다. 비록 드라마이긴 하지만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하는 만큼,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얼마나 고증을 거친 내용인지 시청자들이 의문을 가지는 것.

특히 많은 시청자들이 극중 서동(30대 무왕)이 위덕왕(27대)의 아들로서 부여선(29대 법왕)과 대립하는 것으로 설정된 것에 대해, "역사서에는 무왕이 법왕의 아들로 되어있다. 드라마가 잘못됐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또한 서동을 비롯한 백제 태학사의 업적으로 묘사되는 여러 발명, 발견에 대해서도 과연 '얼마나 고증을 거쳤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시청자들의 궁금증에 대해 '서동요'의 연출자인 이병훈 PD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 극중 서동이 위덕왕의 아들로 설정된 이유는?

▶ 당시 기록이 명확히 남아있지 않지만, 무왕이 위덕왕의 아들이라는 설과 법왕의 아들이라는 설로 갈린다. 중국의 위지 동이전(魏志 東夷傳)에는 위덕왕의 아들로 기록돼있고, 삼국사기에는 법왕의 아들로 되어있다. 난 향가 '서동요'가 등장하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더 신뢰했고, 삼국사기는 다분히 신라 위주로 기록된 것이어서 백제에 대한 기록을 100% 그대로 믿기 어려웠다.

위지 동이전을 비롯해 중국의 여러 기록들을 보면 위덕왕의 아들이라는 설이 더 신뢰성이 높다. 국내 학계에서도 위덕왕의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드라마의 극적 요소를 위해서도 위덕왕의 아들로 설정되는 것이 더 좋았다.

- 논농사, 온돌, 종이 등 드라마에 등장하는 발명품들이 태학사의 업적이 맞는가?

▶ 되도록 역사적 사실에 맞는 소재들을 찾았다. 대부분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발명품들이므로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논농사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상용화되었으니 서동이 등장한 비슷한 시기에 도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사신도를 보면 백제의 사신은 크고 화려하게, 신라와 왜의 사신은 작고 초라하게 그려져 있다. 당시 국력을 나타내는 것인데, 백제의 문물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뛰어난 백제의 과학기술을 쉽게 드라마를 통해 전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욕심이고 자만이었나 보다. 많이 어려웠던 것 같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더 쉽게 과학을 다뤄보고 싶다.

- 부여계보다 부여선의 재위기간이 더 짧은데, 시점이 맞지 않는 것 같다.

▶ 드라마에 출연하는 기간으로 보면 부여계의 재위기간이 더 긴 것처럼 됐다. 부여계가 예상보다 빨리 죽게 된 것은 '늑대' 등 경쟁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극 전개를 빠르게 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가수 비가 주연한 '이 죽일 놈의 사랑'이 등장했을 때는 '서동요'에는 대규모 전쟁신이 나왔다.

- 주인공들을 비롯한 등장 인물들과 그 관계는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인가?

▶ 당시 기록이 많지 않다. 서동과 선화공주, 왕의 재위기간 등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묘사했다. 사택기루는 드라마를 위해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이고, 그 외의 중신들은 당시 관등제와 실제 역사서에서 찾아낸 이름을 조합해 설정했다. 흑치평, 아택걸취 등 실제 백제에서 사용됐던 이름이다.

그 외의 진행 과정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드라마인 만큼 극적 재미를 위해 재구성한 측면이 있다. 사택기루와 우영공주로 인한 갈등 관계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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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07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돌이는 마치 환타지를 보는 듯 하다고 합니다. 사실이 어떤 건지 도대체 알수가 없다나요...

sayonara 2006-02-07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게도 따지고 보면 최근의 사극들이 대부분 그렇죠. -_-;
동북아의 글래디에이터인 '해신'도 그렇고... 허준도 실제로는 사는 곳 근처에 고위관리가 지나가기만 하면 보약을 지어다 바치는 사람이었다고 하더군요. -_-;;

2006-02-08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 2006-02-0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다른 것도 다 판타지로 보입니다^^

조선인 2006-02-08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어쨌든 서동요 덕분에 무왕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어요. 그거로 만족.
사요나라님, 그래도 우리나라의 허풍은 얌전한 편 아닌가요? 히히
속삭이신 분, 님의 서재에 글 남겼어요.
반딧불님, 판타지라서 우리 딸이 그렇게 좋아하나봐요. 이제 수목에는 11시가 되야 잡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