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 The Encounter Unforgettable  2002.02.07    
 

The Encounter Unforgettable

밀회 Brief Encounter

감독: 데이비드 린
주연: 셀리아 존슨, 트레버 하워드

1946, Cineguild
83분, B/W


"...하지만 그 어떤 분석과 비평도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애정과 숭배를 대신할 수는 없다."

- 앤디 매드허스트, '그 특별한 흥분 That Special Thril'



트 영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라면 다분히 피와 살이 튀겨 나가는 엽기적인 장면이나 혹은 그 정도 수위를 만족켜주는 기이한 장면들이다. 그러나 앞 뒤 안 가리고 사랑해 마지 않을 수 없는 영화, 그래서 광적인 집착을 하게 되는 영화로서 컬트 영화를 언급한다면, 사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컬트 영화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는 바로 클래식이다. 아마도 <카사블랑카>같은 고전이 컬트 영화의 고전으로 숭상되는 것 역시 이런 의미에서 가능한 일이다. 걸작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 매력에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는 영화.

이비드 린의 46년작 <밀회 Brief Encounter> 는 이런 점에서 완벽한 컬트 텍스트다. 이 영화에 대해 약간의 정보를 가진 분들이라면, 약간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밀회>에 대한 컬트적 숭배는 <블레이드 러너>나 데이빗 린치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영화의 대사를 모두 녹취한 사이트는 기본이고, 아예 영화의 배경이 되는 밀포드 기차 환승역 승강장의 역사를 사진 자료와 설계 도면까지 이용하여 제공하거나 영화 속의 모든 공간에 갈 수 있는 여행 경로까지 상세하게 알려주는 엽기적인 팬 사이트에 이르면 이 영화에 대한 숭배는 거의 종교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이 '밀회주의 Brief Encounterism’의 압권은, 이 영화의 영국인 팬들이 모여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밀포드 기차역의 휴게실을 복원하기 위한 이른바 ‘밀포드 휴게소 재건 위원회’까지 만들어 졌다는 BBC의 단신이다. 이 뉴스에 따르면, 위원회장을 주축으로 모인 회원들은 영화 속의 장면 그대로 휴게소를 그대로 복원하여 관광지로 개발할 예정이라고.

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영화의 줄거리 정도 되는 사전 정보를 가진 분들이라면, 이 영화에 대한 이런 광적인 애착이 잘 납득되지 않을 수 있다. <밀회>는 간단히 말해 중산층의 유부남, 유부녀 커플이 잠깐의 우연한 만남으로 사랑에 빠졌다가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지극히 진부한 이야기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인 로라(셀리아 존슨)는 목요일마다 시내에서 쇼핑과 영화 감상을 즐기는 평범한 주부다. 집으로 가는 기차를 갈아 타기 위해 밀포드 환승역에 도착한 그녀는 갑자기 눈에 들어간 석탄 먼지로 고생을 하고, 우연히 휴게실에 있던 중년의 의사 알렉(트레버 하워드)이 그녀를 도와주게 된다. 그 후 우연한 조우로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지만, 두 사람 모두 그 끝이 어디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작가이자 작사가인 노엘 카워드의 모노드라마인 ‘오늘 저넉 8시 30분’의 부분인 ‘스틸 라이프 Still Life’를 카워드 본인이 각색한 <밀회>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로라의 플래쉬 백과 일인칭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콰이 강의 다리>나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은 데이비드 린의 걸작을 떠올려 본다면, 그가 이 간질간질한 로맨스를 어떻게 그려냈는지 상상하기가 짐짓 어렵다. 그러나 <밀회>는 그가 위의 영화들에서 보여주던 완벽함에 섬세함이라는 덕목이 더해진 초기 데이비드 린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특히 로라의 독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치밀한 심리적 묘사는 이후 묘한 성적 긴장감을 드러내던 <인도로 가는 길> 같은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이다. 거기에 흑백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궁극의 우아함은 영화 전체를 마치 그림 엽서를 보듯 매혹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는데, 특히 밀포드 승강장을 포착하는 린의 카메라는 뤼미에르 형제의 ‘역에 도착하는 기차’가 준 충격에 버금갈 만한 매혹을 선사해 준다. 한편 로라 역의 셀리아 존슨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는데, 커다란 눈에 당시의 기준으로 미인이라고 할 수 없는 그녀는 환하게 웃을 때 보이는 천진난만함과 무표정할 때의 불안감이 묘하게 교차하는 독특한 이미지와 극적인 고조를 이끌어 내는 보이스 톤으로 영화 전체의 긴장감을 강하게 이끌어 내는 명연기를 보여준다. 이와는 반대로 알렉 역의 트레버 하워드는 거부하지 못할 사랑에 빠진 중년 남성의 부드러움과 신사적임으로 일관하면서, 다소 날카로운 듯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로맨스 영화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러나 <밀회>의 진짜 주인은 바로 노엘 카워드다. 그는 극작가로 그리고 작사가(최근 펫 샵 보이즈나 엘튼 존 등이 그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컴필레이션이 CD와 DVD로 국내에 출시되기도 했다)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성적 정체성으로 인해 우울한 노년을 보낸 인물로도 악명이 높다. 사실 완벽한 이성애 로맨스 영화인 <밀회>에서 카워드의 동성애적 감성을 찾기란 늘 분홍색 벨벳 가운을 입고 집필했다는 일화 등을 제외하고는 표면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스크린’ 誌의 필진인 앤디 매드허스트가 상당히 스마트하게 밝히고 있듯, <밀회>는 카워드의 동성애적 감수성이 깊게 배어있는 텍스트다. ‘그 특별한 흥분 That Special Thril’이라는 글에서 매드허스트는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밀회>라는 텍스트에서 카워드가 지워지게 된 과정을 살핀다. 사실 <밀회>는 50년대 초만 해도 카워드의 원작을 각색한 영화로는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았으며, 영국 저널인 ‘사이트 앤 사운드’는 베스트 10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50년대 영국의 ‘성난 운동 angry movement’가 가진 동성애공포증 적 성격과 결부된 당대의 상황은 카워드의 <밀회>를 데이비드 린과 셀리아 존슨의 <밀회>로 재포장하기 시작했다. (<밀회>의 오프닝 타이틀은 ‘데이비드 린의 밀회’가 아닌 ‘노엘 카워드의 밀회 Noel Coward’s Brief Encounter’라고 되어 있다) 그와 동시에, 카워드라는 ‘게이 작가’가 표면에 떠오르면서 <밀회>는 부르주아 중년의 치기 어린 연애 놀음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말하자면, 완벽한 이성애 로맨스의 걸작에 게이인 카워드의 작가성이 침투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 셈이다.

러나 매드허스트는 카워드의 자기성이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밀회>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를 명석하게 밝혀낸다. 그에 의하면, <밀회>가 가진 폭탄 멜로의 동인이란 바로 달콤쌉싸름함 bittersweetness 이다. 즉, 욕망하기의 달콤함과 그 욕망의 이루어질 수 없음이 가져오는 비애가 바로 <밀회>의 정서적 동인이라는 말인데, 매드허스트는 이를 남성 동성애자들이 가지는 특별한 정서적 양태와 닿아있음을 제기한다. 어찌 보면 이러한 견해는 다분히 근원주의적 발상으로 보이지만,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유부남 유부녀의 정서를 마치 바늘로 후비듯 정확하게 폭로하는 카워드의 대사는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동성애적 감수성을 근원으로 하고 있다는 설명은 상당히 설득력있게 들린다.

옥 같은 대사 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밀회>는 사실 그렇게 잘 알려진 고전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를 바탕으로 한 다른 로맨스 영화들, 예컨대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드니로의 <폴링 인 러브>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이 더 유명하다. 하지만 <밀회>가 이들 영화에 미친 영향은 단지 불륜의 사랑이라는 플롯이나 기차역 같은 세팅 정도가 아니다. <밀회>는 이제는 아침 드라마 수준으로 전락한 소재의 근원과 같은 영화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진부한 소재를 가장 세련되게 그려낸 영화다. 고전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세련된 대사, 그리고 상실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절묘한 설정, 그리고 시작만 해도 눈물이 주르르 흐를 것 같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처럼, 이후의 어떤 로맨스 영화도 따라오지 못하는 그만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는 컬트 중의 컬트 고전이다. <밀회>는 이후 소피아 로렌과 리차드 버튼 주연, 앨런 브리지스 감독의 TV 용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는데, 구질스럽게 첨가된 설정에 카워드의 오리지널 대사를 삽입하면서 원작보다 못하기는커녕 아예 원작을 훼손해버렸다는 악평을 듣기도 했다. 이 리메이크 판에 대한 신랄한 혹평 하나는 원작에 대한 광적인 숭배를 그대로 드러낸다. "나는 <밀회>를 보고 왜 사람들이 이 영화에 그다지도 열광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본 것이 오리지널이 아닌 리메이크임을 알고 원작을 다시 보았다. 물론! 원작을 최고의 걸작이었고, 나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리메이크 역시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소피아 로렌은 중년의 의사 리차드 버튼과 사랑에 빠진다. 과연 소피아 로렌은 가정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젠장! (원작을 이렇게 말아먹었는데 소피아 로렌이 바람을 피우건) 누가 신경이나 쓴대?”
출처 : http://www.joycine.com/service/article/classic/classic.asp?id=2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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瑚璉 2006-03-05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ef encounter는 저도 매우 좋아한답니다.

조선인 2006-03-05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못 봤어요. 지금 어떻게든 봐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중입니다.
 

영국 출신의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또 소설가이자 감독, 제작자이자 배우며 작곡가.

<토린호의 운명>, 1942
연출 : 노엘 카워드, 데이비드 린
출연 : 노엘 카워드, 존 밀스
각본 : 노엘 카워드
음악 : 노엘 카워드
제작 : 노엘 카워드
해설 : 공동연출이긴 하지만, 데이비드 린 감독에겐 첫 감독 데뷔작에 해당된다. 2차 세계 대전 중 만든 영화로 영국 해군의 용기와 희생을 아주 잘 묘사했다. 이 영화는 토린이라는 구축함이 배경으로 이 구축함에 탄 군인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이 영화에서 각본과 음악, 제작까지 맡은 노엘 카워드가 직접 전함의 사령관을 연기했고 전쟁 영화의 영웅으로 자주 출연했던 존 밀즈가 주연을 맡았다. 애국주의에 대한 영화지만 노엘 카워드답게 보는 이들의 감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데이비드 린 감독 뿐만 아니라, 존슨, 아텐버러, 다니엘 매세이, 줄리엣 밀즈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밀회>, 1946
연출 : 데이비드 린
출연 : 실리아 존슨, 트레버 하워드
각본 : 노엘 카워드
음악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제작 : 노엘 카워드
해설 : 노엘 카워드 원작의 연극 <정물>을 영화화

노엘 카워드 노래집 (블루스-카바레송, 뮤지컬 넘버)
이안 보스트리지/제프리 테이트
레  이 블    : EMI
장      수    : 1장
녹음방식    : DDD
상품번호    : 4767842 (수입반)
가      격    : \16,700원 (최대 1.5% 적립)

20세기 블루스 (Twentieth Century Blues) - The Songs Of Noel Coward


고객평가평균 : 평가되지않음 
장    르 : 팝DVD
등    급 : 전체 관람가
감    독 : .
제 작 사 : SRE 코퍼레이션
제작년도: 2001/08
포 함 수 : 1
총상영시간 : 60분
추천등급 :

브릿 팝 최고의 스타’로 칭송받는 동시에 '근대 영국 팝 음악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저명한 작곡자이자 연주자 Noel Coward의 히트곡을 팻 숍 보이스의 Neil Tennant의 주도 아래 새롭게 해석한 음반 의 live 콘서트를 담은 앨범. 펫 샵 보이스, 엘튼 존, 폴 맥카트니, 스팅, 브라이언 페리, 블러의 데이먼 알반, 스웨이드, 로비 윌리암스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영국 최정상의 아티스트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만든 바로 그 앨범으로 노엘 카워드에게 바치는 트리뷰트 앨범이다. 50년전, 60년전, 75년전, Noel Coward는 - 이 앨범에서 증명되듯이 – 20세기 말에 들어도 세련되게 느껴지는 고급스러운 음악을 작곡했다. 20세기는 그가 가장 유명하고 재능있는 아티스트로서 영국을 지배하던 시기이다. (그는 작곡가로서 만이 아니라 극작가로도 이름을 떨쳤다) 다른 어떤 인물보다도 Noel Coward는 한 시대(20세기)의 영국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앨범을 통해 그의 재능을, 그를 향한 후배 뮤지션들의 애정과 존경심을 확인할 수 있다.

 

참 멋진 말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더니, 이건 멋진 정도가 아니잖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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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6-03-0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ㅡ

조선인 2006-03-05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님? 무슨 뜻이에요?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날
존 버닝햄 엮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품절


아! 나이가 든다는 것! 친구도 잃어버리고 과거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가고. 하나둘씩 떨어져 나간다. 여기서 하나, 저기서 하나. 마음으로든 머리로든 이런 사태를 미리 대비해야만 한다. 마지막까지는 얼마나 남은 걸까 궁금해진다. ... 사후의 삶을 믿는 사람,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천상의 어디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행복한 사람들을.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최후를 직시하며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이다. 삶이 지속되는 동안. 외롭든 외롭지 않든 상관없이. - 영극 극작가 노엘 카워드, <노엘 카워드의 일기>(1982)-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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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3-0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약간 비슷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조선인 2006-03-05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기막히게 멋진 말을 하는 사람이죠? 게다가 일기에?
 
사이시옷 -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손문상.오영진.유승하.이애림.장차현실.정훈이.최규석.홍윤표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에 비해 딴짓을 많이 해대 제대로된 직장생활의 경력은 짧은 편이다.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월급'을 받는 취업을 한 셈인데, 운 좋게도 정규직으로 첫발을 디뎠다.
남들이 보면 근무량에 비해 박봉의 전망없는 일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로선 사회인으로서 경제생활을 한다는 것에 만감이 교차했고, 나름 뿌듯했다.

하지만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수많은 빗금이 나와 내 주변의 여자를 갈라놓기 시작했다.
나이 스물부터 회사를 다녀 경력 10년이 넘던 모부서 '왕언니'는
알량한 경력 3년으로 내 뒤에 직함이 꼬리붙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왕언니'일 뿐이었고,
아마도 지금도 '왕언니'일 따름이다.

그보다 더 어이없는 현실을 목격한 건 청소 아주머니들이었다.
0.75평의 독방에 갇혀 사는 것은 양심수만이 아니다.
건물마다 차이가 있는데, 운이 좋으면 탕비실을 방마냥 꾸며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보통은 한 평도 안 되는 탕비실의 한쪽 구석에 의자 하나 놓을 수 있으면 다행이고,
그나마도 민원이 들어오면 내쫓겨 화장실 좌변기에 앉아 한숨 돌리는 게 고작이다.

처음엔 내가 다니는 회사가 있는 건물만 구식이다 보니 청소 아주머니가 화장실에 계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신축건물조차 예외없이 화장실이나 탕비실이 이용되는 걸 알고 나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입주자를 고려한 환경설계니, 생태설계니, 어고노믹스 디자인이니 화려한 미사여구는 늘어만 가는데,
어찌하여 인텔리전트 빌딩에서도 청소 아주머니의 공간은 여전히 화장실이어야 하는가.

건물에 구내식당이 있어도 점심시간의 혼잡을 이유로
청소 아주머니나 수위 아저씨는 1시 이후에나 이용할 수 있고,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서라기 보다 새벽 출근(보통 6시 출근, 늦어도 7시 출근)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아주머니들은 화장실이나 탕비실 한켠에서 이른 도시락을 드시곤 했다.

그리하여 내겐 공상이 생겼는데, 로또에라도 당첨되면 커다란 빌딩을 짓고 싶다.
1층에는 입주자를 위한 탁아시설과 수유나 유축이 가능한 여직원 휴게실이 있고,
층마다 청소 아주머니가 있을 방도 만들고, 흡연을 위한 옥상공원도 만든다면 좋겠지.
언젠가 내 딸이 직장을 다니게 될 쯤에는 손문상씨의 보금자리를 보고,
이게 대체 뭘 그린 만화인지 이해할 수 없다면 더더욱 좋을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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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6-03-04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안타깝네요. 조선인님이 돈 많이 벌어서 그분들 좀 편히 쉴 공간을 얼른 만들어 주세요.

반딧불,, 2006-03-1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 얼렁 많이 버세요. 흐흑..
 

님이 보내주신 미니달력을 책상 위에 두고 아침 저녁으로 보다 보니 더 궁금해졌어요.
춘분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검색을 통해 어떤 명절인지 짐작이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질문 하나.
왜 3월 달력에 '올해도 내 옆은 너뿐인가' 라는 한탄이 쓰여 있을까요?
복장으로 봐서는 제사를 지내는 거 같은데, 혹시 이게 춘분 행사나 의미와 관련이 있나요?

질문 또 하나.
춘분에 대해 검색해 보니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중에 <춘분이 지날 때까지>라는 게 있더군요.
이건 겨울이 지날 때까지 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되는 건가요?
책을 보면 궁금증이 풀릴텐데, 우리나라에는 출판이 안 되어 있는 듯.

부탁해요, 친페이님.
맨날 신세만 져서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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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Pei 2006-03-05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답은 오늘 밤(혹 내일?). 지금부터 서커스 보러 가요!! ^ㅇ^

조선인 2006-03-05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페이님, 고맙습니다. 그런데 서커스라니, 좋으시겠어요. *^^*

ChinPei 2006-03-05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이 지날 때까지 라는 의미"...아닌 것 같애요. 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조사 중. 잠시 기다리세요.

ChinPei 2006-03-05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달력, 제사를 하는 복장이라면 분명 "춘분"일 것인데 그 외에 관해선 저도 좀.....???.....
3월 = 춘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춘분 행사가 큰 "지위"를 차지하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3월 3일 ひな祭り : 히나 마쓰리를 더 중요시 하는 집도 많을 거에요.

夏目漱石의 "춘분이 지날 때까지"(원제:彼岸過迄 피안이 지날 때까지」의 소설 제목에 관해선 이 소설의 첫머리에서 夏目漱石 자신이 "고백"하고 있었어요. 아래.

「彼岸過迄《ひがんすぎまで》」というのは元日から始めて、彼岸過まで書く予定だからにそう名づけたまでに過ぎない実は空しい標題である。かねてから自分は個々の短篇を重ねた末に、その個々の短篇が相合して一長篇を構成するように仕組んだら、新聞小説として存外面白く読まれはしないだろうかという意見を持していた。が、ついそれを試みる機会もなくて今日まで過ぎたのであるから、もし自分の手際が許すならばこの「彼岸過迄」をかねての思わく通りに作り上げたいと考えている。けれども小は建築家の図面と違って、いくら下手でも活動と発展を含まない訳に行かないので、たとい自分が作るとは云いながら、自分の計通りに進行しかねる場合がよく起って来るのは、普通の実世間において吾々の企てが意外の障害を受けて予期のごとくにまらないのと一般である。したがってこれはずっと書進んで見ないとちょっと分らない全く未来に属する問題かも知れない。けれどもよし旨く行かなくっても、離れるともつくとも片のつかない短篇が続くだけの事だろうとは予想できる。自分はそれでも差支えなかろうと思っている。

 

彼岸過迄 피안이 지날 때까지」라는 것은 설날부터 시작해서, 피안이 지날 때까지 쓸 예정이니까 단지 그렇게 명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 실은 허무한 표제이다.  평소부터 나는 하나하나의 단편을 되풀이 한 끝에, 그 하나하나의 단편이 다 합쳐져서 한 장편을 구성하도록 짜면, 신문소설로서 의외로 재미있게 읽혀지지는 않을까라는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그것을 시도할 기회도 없어서 오늘날까지 지났던 것이기 때문에, 만약 나의 솜씨가 허락한다면 이 「彼岸過迄 피안이 지날 때까지」를 예전부터의 의도대로 만들어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은 건축가의 도면과는 달리, 아무리 서툴러도 활동과 발전을 포함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자신이 만든다고 말해 놓으면서도, 자신 계획에 따라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잘 생기는 것은, 보통 실사회에 있어서 우리의 의도가 의외의 장해를 받아 예상한 모습에 달하지 않는 것은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것은 쭉 써 나가 보지 않으면 예상하지 못하는 완전히 미래에 속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혹시 잘 되지 않애도, 멀어지는지 붙는지 분간 못하는 단편이 계속 되리라고는 예상할 수 있다.  나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ChinPei 2006-03-05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되었을까?

조선인 2006-03-06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친페이님, 이렇게나 상세한 자료조사까지. 정말 고맙습니다. 아유, 남자분만 아니면 와락 부비부비 해드릴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