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은아이님과 따우님의 글을 읽고서 끄적끄적 (참, 일찍도 쓴다. 허허허)
기억을 더듬어보면 여성학 수업의 첫 강의가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였다.
선생님께서는 '여권운동론' '여성해방론' '여성운동론' 등 페미니즘을 어떻게 '번역'해왔는가의 역사와 페미니즘의 '정의'를 함께 설명하셨다. 즉 남성과 똑같은 시민권적 평등을 주장하며 여권운동을 전개했던 자유주의적 흐름, 성해방과 레즈비언운동을 포함하는 급진주의적 여성해방운동, 가족/법제도/성/노동 등 구체적 영역과제를 설정한 여성운동의 성숙 등.
그리고 맨 마지막에 설명한 것이 바로 '여성주의'이다. '여성주의'는 페미니즘을 그대로 해석한 것일 수도 있고, 최근의 페미니즘 경향을 설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성의 경험을 통해 세계가 재해석되어져야 하며, 더 나아가 여성적 가치관에 의해 전지구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 특히 여성주의로 표현되어진다. 하기에 당시 선생님은 페미니즘을 하나의 단어로 '번역'하기 보다 다양한 운동과 입장을 포괄하는 단어로 '정의'하시길 희망하였다.
당시 나는 선생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지금은 페미니즘이라는 표현보다 여성주의라는 표현을 더 선호한다. 이는 나의 입장이 '여성주의'에 더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번역'과 '개념의 조작적 정의'가 보다 적극적이어야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 때문이다.
서구의 이론이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너무 쉽게 번역을 포기하곤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도 그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로선 새로운 이론이나 개념을 어떻게 번역 혹은 정의할 것인가 사전에 합의되는게 힘든 탓이라고 변명되어지는 게 좀 아쉽다.
국내에 다양한 연구집단이 활성화되지 못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유학파들이 우대받고, 이들이 서구의 이론과 개념을 끌어쓰기에 지나치게 급급한 학계풍토가 더 문제인 것은 아닐까? 누가 더 빨리 서구의 이론을 소개하느냐가 학문적 성취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하기에 내가 왜 페미니즘을 여성주의로 '번역'하는지, 그 '정의'에 적극 매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