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드무비님의 400원 소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는 참 인복이 있다 생각한다. (주의:내가 인덕이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자랑할만한 것이 평생 스승으로 그리워하는 선생님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정희 선생님, 6학년 때 남성학 선생님, 중학교 3학년 때 신석철 선생님, 고등학교 3학년 때 000 선생님.
그런데 딱 한 해! 고2! 기억하기도 싫은 민씨! 국민윤리 선생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어찌나 밝히는지 우리 어머니는 민씨 전화를 받으면 이모라고 둘러대며 황급히 전화를 끊곤 했다. 더욱이 민씨는 성희롱을 일삼았다. 면담을 할 때면 격려해준답시고 손을 만지작거리고 등을 쓰다듬고 허벅지를 토닥이고. 야자를 하노라면 어깨를 주물러준다며 등뒤에 바싹 붙어 목과 앞가슴 어림까지 슬쩍 슬쩍 스치던 손가락...
아직 성희롱이라는 개념이 이 땅에 없었던 때인지라 우리들은 삼삼오오 민씨를 흉보는 것에 그쳤으나, 워낙 목소리가 큰 나는 악담의 주범으로 지목되버렸다. 결국 어느 가을날 야자시간 교실에 남아 민씨의 꾸중을 듣게 되었지만 난 고개를 외로 꼬고 비아냥거렸고,폭발한 민씨가 멱살을 잡는 순간 그만 내 주먹이 먼저 민씨 가슴을 꽤 정통으로 때리고 말았다.
덕분에 민씨에게 죽도록 맞게 될 찰나, 순찰을 돌던 노선생님이 남선생과 여학생의 "사건"이라 착각하여 나를 귀가조치시키는 바람에 더 이상 별일이야 없었지만 - 잠깐 부연설명을 달자면 우리 학교는 도서관에서만 야자를 하기 때문에, 텅 빈 교사 불꺼진 교실에서 남선생과 여학생 단둘이 있는 건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 그 사건을 계기로 나와 민씨는 서로를 철저히 부정했다.
나는 졸업할 때까지 국민윤리 시간이면 옆교실 수업을 듣거나 대놓고 땡땡이를 쳤고, 민씨는 아예 내 출석을 확인하지 않았다. 고3이 된 1990년의 봄날 역시 마찬가지. 그날 난 4교시 국민윤리를 빼먹고 학생식당에서 혼자 책을 보다가 교감선생님께 걸리고 말았다.
좀 친하게 지낸 선생님인지라 민씨가 싫어 수업을 빠졌다고 이실직고했고, 선생님은 무슨 생각인지 순두부찌게를 사주고 그냥 가버리셨다. 웃기게도 그건 내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순두부찌게였고, 지금껏 더 맛있는 순두부찌게를 먹어본 적이 없다. 졸업후 순두부찌게를 먹으러 일부러 모교에 간 적도 있지만, 그 맛은 이미 거기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