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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산북스 서평단으로 1권만 받았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한꺼번에 2권을 보내는 건 출판사에게 부담이었을 거야 라고 생각했다. 1권을 읽고 보니 상술이었던 거다. 도서관에서 2권은 늘 대출중이었기에 얼른 2권을 사는 것만이 답이었던 거다. 그만큼 한 번 손에 들면 내처 끝까지 읽으야 하는 매력이 넘치는 책이다. 인물 하나 하나의 대사는 찰졌고, 각 인물의 성격은 그의 어휘나 말투에 생생히 배어 있다. 소설이 아니라 드라마가 먼저였던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각자의 개성있는 대사를 보자면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드라마 판권이 팔렸는지 수긍이 간다. 게다가 그 묘미를 살린 번역이라니 심연희 님에게도 감사할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1권보다 2권이 더 재밌었다. 1권은 엘리자베스 조트의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다면, 2권은 그녀 주변의 여성들 이야기를 포함한다. 화학은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때 엘리자베스가 연구한 화학진화는 생명의 탄생의 비밀을 밝히는 것에 기여한 것 뿐 아니라 이 사회의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 진화하는 것에도 기여한 것이다. 그녀의 딸, 그녀의 이웃, 그녀의 동료, 그녀의 방청객, 그녀의 인척 등 엘리자베스의 영향력은 동심원처럼 주변에 퍼져나갔고, 아마도 기꺼이 그녀의 자매가 된 여성들은 또 다른 동심원이 됐을 거라 믿는다.
일면 로맨스 소설 같기도 하고 일면 판타지 소설 같기도 한 면면은 이 책의 흠이 아니다. 이 책이 획득한 대중적 인기는 요리 프로그램을 화학 수업으로 만들어 영향력을 행사한 조트의 궤적과 일치한다. 미국 페이퍼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옷의 여인과 칼라풀한 색상 배치 역시 흠이 아니다. 일견 흔한 겉표지를 벗겨보면 아름다운 원소기호의 알맹이가 나오는 것이 세상이 엘리자베스에게 씌운 굴레와 그 속에 있는 조트의 실체를 대비시키는 것 같아 오히려 재미있다. 사실 원자번호 49번 In 역시 의미심장한데, 인듐은 녹는 점이 낮은 부드러운 금속으로 쉽게 변화가 가능하며, 특히 TV 모니터에 사용되는 금속이라는 게, 이중 삼중의 함의를 가진 거 같아 흥미롭다. 하여 이 책의 디자인을 담당했을 이은혜님과 표지 디자니어에게도 깊이 감사 드린다.
무엇보다 이 흥미로운 책을 써주신 보니 가머스님에게 감사 드리는데, 은퇴 이후 쓴 최초의 소설이 최후의 소설이 되지 않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난 드라마 역시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바라는데, 시즌2, 시즌3를 거듭하면서 조트 외 수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분명한 서사를 가지고 그려지길 바라며, 조트가 연구자로 성정하여 어쩌면 노벨화학상도 타는 이야기를 보고 싶고, 그녀의 딸이 가계도를 완성해나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리뷰를 쓰며 감사를 거듭하는 건 내가 내 앞을 걸었던 여자 선배들을 감사하는 마음가 맞닿아 있다. 비록 이 소설은 실화를 다룬 게 아니지만, 난 실제로 수많은 엘리자베스 조트가 있었던 걸 알고 있다. 뉴턴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것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시대를 앞서간 여성들의 어깨에 올라서 조금 더 수월하게 우리 인생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제는 우리가 딸들의 세상이 더욱 평등하기를, 더욱 평화롭기를, 더욱 공존과 상생이 가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함이다. 카피라이터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흔치 않은 여성 조정선수로 살았던 작가였기에, 본인이 살아온 시대에 도움을 주었던 자신의 선배 이야기를 쓴 거라 생각해 본다. 나는 내 딸에게 어떤 이야기를 더 들려줄 수 있을지 곰곰히 더 짚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