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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체 학살
페트르 니콜라에브 감독, 카렐 로든 외 출연 / 무비아트 / 2020년 5월
평점 :
영화의 완성도는 높지 않다. 후시녹음의 어색한 불일치, 뚝뚝 끊기는 장면 전환, 불친절한 서사.
특히 첫 부분에 뜬금없는 섹스신이 지나치게 길게 삽입되어 있어 서울도서관 디지털자료실에서 보는데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리디체 학살 사건에 대해 좀 더 자료를 찾기 위해 선택한 영화인데, 1시간은 독일 점령 치하에서도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 에피소드가 소소하게 펼쳐지는 듯 했다. 심지어 아들이 좋아하던 여자와 불륜을 저질렀고, 시비 끝에 실수로 아들을 죽여 감옥에 갇힌 아버지가 중심으로 전개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제각각 따로 놀고 있던 이야기는 후반부 30분에 몰아친다. '프라하의 학살자' '금발의 야수' '사형집행인' 등의 악명을 떨치던 하이드리히가 1941년 체코의 2대 총독으로 부임했었는데, 1942년 5월 27일 체코의 레지스탕스에 의해 암살되었다. 히틀러는 보복을 위해 1만 3천 여 명의 체코인을 체포했고, 수많은 사람이 수용소에 끌려가 처형되었다. 문제는 리디체 마을에서 발견된 1통의 편지. 레지스탕스인 척하며 여자를 유혹하다가 유부남인 게 들통 날까봐 그럴싸한 작별 편지를 썼던 건데, 이게 검열에 걸린 것이다. 실제 마을 청년 중 한 명이 영국에 망명중인 레지스탕스였고, 그가 실제로 하이드리히 암살에 관여했는지는 영화에서 자세히 다뤄지지 않아 확실치 않다. 거듭 이름이 강조되는 걸 보면 "새벽의 7인" 중 한 명이 아닌가 싶긴 하다. 어쨌든 그 청년의 동료인 척 행세한 편지는 리디체 말살로 이어진다.
1942년 6월 10일 마을의 남성 172명이 한꺼번에 총살되었고, 여성들은 모두 라벤스브뤄크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신체 검사를 통해 흰 피부, 금발, 푸른 눈을 가진 어린이들은 선별되어 독일 전역에 분산시켜 개명 후 독일인으로 양육되었고, 나머지 어린애들은 차량형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했다. 보복전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마을을 불 지르고 모든 구조물을 폭파했으며, 그걸로도 모자라 롤러로 땅을 다진 후 흙으로 덮어서 마을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마키아벨리의 폭력의 효율적 사용법에 대해, 일단 그 폭력의 적용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다음부터는 폭력의 사용 가능성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리디체 학살 이후 체코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나치 핵심을 대상으로 한 암살은 종적을 감춘다. 히틀러에 대한 암살 시도만 몇 차례 시도되었다가 실패되었을 뿐.
과실치사로 감옥에 갇혀 있던 아버지 1명만이 리디체 마을의 유일한 남성 생존자였던 것을 뒤늦게 깨달으며 영화의 엔딩을 보는데 마지막 자막이 참 슬프다. 리디체를 재건하고, 그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리디체로 개명하고, 자식의 이름을 리디체로 지었다니 숨이 콱 막혀왔다. 노근리 학살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이름을 노근으로 짓는 게 가능할까. 이 땅에는 그렇다면 너무 슬픈 이름이 많아지는 게 아닐까.
영화에는 사진을 그대로 재현한 장면이 많다
윗부분은 학살 사건 전 리디체 마을, 아래는 학살 후 사라진 마을. 특히 출소 후 돌아와 사라진 마을 위에 눈 덮힌 땅을 파헤치는 아버지 모습이 재현된다.
일부러 작게 올린다. 모조리 총살된 리디체 마을의 남자들도 클로즈업된다.
선별되었던 아이들... 이들 중 얼마나 어머니를 되찾았을까. 사진속 아이중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웃는 애들도 있는데, 영화속 애들은 모두 울고 있었다. 전후 첫번째 리디체 시장 역시 자신의 세 아이를 모두 못 찾았다고 한다.
리디체 참사 추모회 겸 마을 재건 집회. 영화 속 아버지는 예전의 마을을 그대로 재건하길 원했으나,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새로운 계획도시 재건을 원했다.
실제로 재건된 마을 모습. 영화에는 안 나온다.
마지막으로 재건 집회에서 쫓겨난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