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식물상담소 - 식물들이 당신에게 건네는 이야기
신혜우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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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쪽. 접힌 채로면 또 어떤가. 접힌 모양으로 다른 걸 만든다면 더 멋진 무엇이 될 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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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 - 이탈리아 복원사의 매혹적인 회화 수업
이다(윤성희)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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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틴토레토의 그림을 좋아했다는 게 기억났다. 언젠가는 내 눈으로 직접 이 그림을 보러 가리라 결심했던 사춘기 시절이 분명 내게 있었다. 그러니 베네치아는 무조건 가야 한다. 듀칼레 궁전에 가서 그의 한없이 어둠에 가까운 '천국'을 봐야 한다. 이왕 듀칼레 궁전에 가는 거니 만테냐의 ' 부부의 방'도 봐야 한다. 그 토실토실한 천사 궁둥이를 올려다 봐야 한다.

산 로코 회당에 도배된 틴토레토는 필수 코스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안 봐도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은 봐야 하니 성 조르조 마조레 성당도 가야 한다. 조각가 중 자코메티를 가장 좋아하는 나로선 그가 틴토레토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도 했다.


다음으로 갈 도시는 밀라노다. 패션이나 명품과는 담 쌓은 나이니 브레라 미술관만 들리면 된다. 핵심은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이다. 유독 이 삽화는 2번이나 책에 실린 것으로 봐서 작가는 이 그림을 제일 좋아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브레라 미술관에서 봐야 할 두번째를 꼽는다면 '브레라 제단화'이다. 절대 미학의 원근법이 주는 입체감을 나도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두 도시를 보고도 시간과 돈이 허락된다면 피렌체가 세번째 코스다. 브랑카치 예베당에 가서 마사초의 세례받는 젊은이를 봐야 하고, 산마르코 수도원에 가서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도 봐야 한다. 산 미니아토 성당에 가서 세례 요한의 게자리를 보고 싶은 생각도 있긴 한데 6월 24일에 맞춰가면 이미 한여름일까 아니면 북부니 괜찮을까 벌써부터 걱정해 본다.


이렇게 이탈리아의 북동과 북서에서 중북부로 이동을 한 다음에도 여유가 된다면 비첸차에 들러 올림피아 극장에 가보고 싶다. 다만 이렇게 되면 동선이 꼬인다. 사실 비행기 노선을 생각하면 밀라노로 입국한 뒤 비첸차에 들렀다가 베니스로 갔다가 피렌체에서 출국하는 게 맞다. 아니면 그 역순이거나. 어떤 식으로 동선을 짜더라도 그 여행의 준비물 중 하나는 이 책일 것이다.


읽는 내내 여행 계획을 병행하느라 마음은 한없이 즐거웠고, 풍부한 삽화 덕분에 눈은 더욱 즐거웠다. 다만 르네상스의 아름다움으로 추앙받았던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일화는 뒷맛이 아렸다. 남의 집 유부녀의 사후에 지 맘대로 홀딱 벗겨 상상화를 그려댔던 화가들의 파렴치함이 성범죄와 무엇이 다르리오. 신이 아닌 인간에 시선을 돌리고 이성과 과학을 찬양했던 화가들에게 성모 마리아를 제외한 여성은 여전히 눈요기감이었던 걸까 아쉬웠다. 틴토레토의 딸 마리에타 로부스티가 끝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숨겨진 화가로 살아야 했던 시대적 한계가 느껴지는 일화였다.


그나저나 이탈리아 여행은 아직 요원한 꿈이니 당장은 이건희 전시회 4차에 재도전할 일이다. 운이 좋으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건희가 무슨 위인이라도 되는 것 마냥 치켜세워지는 것은 마땅치 않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교과서에서 보던 명화들을 한 자리에 모아 볼 수 있는 것에 조금은 감사해도 되지 않을까.


= 다산북스 서평단으로 읽게 된 책이지만, 이렇게 기꺼운 마음으로 리뷰를 쓸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출판사에도 감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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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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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어머니 기일이었다. 내려가는 기차여행의 동반자가 된 이 책은 정말 술술 읽혀내리는 필력이 있어 2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에도 완독이 가능했다.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작중 아버지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그러나 내가 궁금한 건 둘째 딸의 속마음이었다. 수강생에게 지나치게 세심하고 곰살맞았던 플라멩코 강사는 아니나 다를까, 둘째 딸의 연인이었다. 아버지의 건강과 패션을 챙겼던 건 실상 강사가 아니라 그를 경유한 둘째 딸이었을 거라는 꽤 강력한 심증을 가지게 된다. 어머니나 자신에게 참으로 무뚝뚝하고 무관심하며, 사랑을 물질적 여유로만 표현할 줄 알아 일에만 열중했던 아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딸은 아버지를 퍽이나 사랑하는 듯했다. 외동딸인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둘째딸이라는 건 안 순간의 배신감은 과연 치유될 수 있을까. 끝내 큰 딸을 데리고 여행 가는 아버지에게 둘째딸은 한 푼이라도 여행경비를 대주고 싶었을까. 아버지가 기념품을 사오면 기꺼이 받았을까. 하필 어머니를 보러 가는 길이었기에 나의 상상력은 한없이 둘째 딸에게 투영될 따름이었다.

작가에게 살짝 원망하는 마음도 생겼다. 우리나라에 몇 없는 여성작가의 이름을 단 문학상 수상자인데 어찌 딸이 아니라 아버지의 시선에서 써내려갔단 말인가. 마구마구 투덜대다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게 이 작가의 진짜 영리함이구나 작은 깨달음이 왔다. 만약 둘째 딸 또는 첫째 딸의 관점에서 소설을 썼다면 이 나라에서 참 흔하디 흔한 소재, 뻔한 신파극 혹은 눈물 짜내는 드라마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접근했기에 무거워지지 않고, 살짝 코믹이 감미된 가족주의 소설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게다. 아마도 심사위원들도 그 영리함에 상을 내주기로 결정했지 않았을까.

어쨌든.

청년일지라는 이름은 아니지만 나름 버킷리스트를 이미 써봤던 나로선... 청결하고 근사한 노인 되기... 이 하나는 공감해주기로 한다.


※ 다산북스 서평단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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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이란 무엇인가
신정근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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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 선생의 '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좀 더 상세한 해설서를 기대하고 골랐는데, 아뿔사, 중용 연구에 대한 연구서이다. 전문적인 학술서라 범인은 감히 글을 읽을 엄두를 못 내고 글자만 읽었다. 그래도 몇 가지 건진 것은 있다.


- 중용에서 문득 문득 예송논쟁을 떠올린 건 중용이 예기의 일부였음에 기인했음을 알았다.


- 중용의 저자가 자희라는 건 가설이다.


- '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a를 하지만 b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이 책에서도 나온다. 중용이 'a도 b도 한다'나 'a도 b도 안 한다'의 선택지가 아니라 'a를 하지만 b를 하지 않는다'는 적극적 行을 포함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임을 겨우 알았다.


- 중용에서 나오는 귀신이 문자 그대로 귀신일 수도 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귀신을 지나치게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건 오히려 과한 확대해석이지 않을까 의구심도 들었다.


- 정약용은 정말 어디서든 불쑥 튀어나온다. 이 책에서도 캉유웨이 대신 정약용을 중심으로 다뤘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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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 기울지도 치우치지도 않는 인생을 만나다 내 인생의 사서四書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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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용을 다시 읽어야겠다 작심한 건 절대 이 책 때문이 아니다. 잃어버린 지평선을 다시 읽고 이 구절이 중용에서 나왔구나 뒤늦게 깨달은 부분이 있어 다시 읽어야겠다 결심한 것이다. 대학 시절 읽은 책은 너무 낡고 한자가 많아 골치가 아팠고, 이현주 목사의 대학중용 읽기는 다시 읽어도 좋았으나 내게 너무 먼 하나님 말씀들이 간혹 치우친 해석을 의심케 했다. 이 기회에 새로운 중용 책을 하나 장만하자 싶어 검색하다가 책 제목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난 이 책을 제목 때문에 고른 것이 아니다.


이현주 목사의 책을 내려놓자마자 이어 읽다 보니 비교해서 보게 된다. 다만 중용의 장대로 책을 쓴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주제를 뽑아 이리 저리 발췌하니 결국은 두 권 다 펼쳐놓고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며 읽어야 했다. 이현주 목사도 완역이 중심이 아니라 애 먹었는데 신 선생은 한 술 더 뜨시는구나 절로 한숨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용 독파가 목표가 아니라면 수이 읽히는 건 단연 이 책이라 추천하고 싶다. 특히 이현주 목사의 중용에서 TPO로 해석될 수 있었던 부분이 이 책에서는 보편성과 특수성에 따른 行이라 해석된 부분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執其兩端의 해석에 있어서도 한쪽을 0이고 다른 한쪽을 1이라 했을 때 중용은 0.5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0<x<1 사이를 오가는 자유로운 관점의 이동이라 풀이하니 절로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것이다. 이현주 목사가 不偏不倚를 강조했다면 신 선생은 열린 사고를 강조한다 하겠다.

博學篤行에 대한 해석도 그 연장선상인데, 널리 배우는 것은 이것저것 두루 배운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배우는 것에 대한 외연의 확장과 연계라 하겠다.


이현주 목사와 강조점이 다른 대목으로는 庸도 들 수 있다. 이현주 목사는 주희의 해석대로 平常也만을 짚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신 선생은 이정의 해석을 끌어들여 '치우치지 않는 것은 中이요, 바뀌지 않는 것이 庸이라는 걸 거듭 짚어주는 느낌이 있다. '자기주도적인 군자는 조화를 이루어 어디로 휩쓸리지도 않으니 굳세구나 꿋꿋함이여, 가운데 서서 기울이지 않으니 굳세구나 꿋꿋함이여, 나라에 원칙이 통할 때 가난한 날의 뜻을 버리지 않으니 굳세구나 꿋꿋함이여 나라에 원칙이 통하지 않을 때 죽게 되더라도 지조를 바꾸지 않으니 굳세구나 꿋꿋함이여' 감탄사를 가득 담은 해석이 때를 기다리는 대목을 더 꼽은 이 목사와 확실히 다르다. 死以不厭을 죽음을 불사하는 勇으로 손 꼽으니 그 기세가 참 거침없다. 이 목사가 때를 기다리는 군자는 부끄럽지 않다는 대목에 치중한다면, 신 선생은 행운을 도모하는 소인을 강조하니, 소인에 가까운 나로서는 신 선생의 해석에 마냥 쏠린다. 知恥近勇도 덧붙이니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용기에 가깝다는 말이 청량제와 같다.


군자의 도를 서민에게 증거하는 것에 이현주 목사는 제왕학의 관점에서 검증 방도의 하나로 해석한다면, 신 선생은 군주의 관점에서 도를 세우기 보다 그 영향을 받을 주위 사람들의 관점을 더 강조하는 거 같다. 이는 易地思之일 수도 있고, 생산자가 소비자의 관점을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나에 빗대면 사용자의 관점과 경험에서 UI를 기획해야 한다는 의미로서 UX의 중요성이기도 하겠다.


중용에서 가장 어려운 誠의 대목에서는 이 목사가 안과 밖으로의 誠을 거듭 강조한다면, 신 선생은 內省不疚라 하여 안으로의 성찰을 좀 더 강조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신 선생이 밖으로의 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남에 있어서는 言顧行 行顧言과 愼獨을 잊지 않고 챙기시니 중용의 겉과 속을 다 이해하도록 어루만져 주신다.


사람을 성인, 대현, 하등으로 나눈 이 목사의 해석에 대해 신 선생은 왈가왈부한 적 없지만, 내 멋대로 이 목사가 틀리고 신 선생이 옳다고 필기한 대목에 밑줄을 쫙쫙 긋기도 했다. 生知, 學知, 因知를 깨달음의 깊이로, 安行, 利行, 勉强行으로 실천의 높이로 삼으니 타고나지 못한 어린 중생조차 문득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나를 위로해주는 글귀도 있었다. 이현주 목사도 공자의 입을 빌어 중용을 이루기 어렵다 말하긴 했지만, 白刃可蹈를 콕 짚어주며 중용을 지키는 것보다 서슬 푸른 칼날을 밟는 것이 더 쉽다 편들어주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다만 딱 하나 이 해석이 뭔가 갸우뚱한 대목이 있었는데 曲能有誠을 부분에 간절하면 진실해진다는 말이 썩 와닿지 않는다. 이 목사는 이 대목을 곡진하면 능히 誠하게 된다고 해석했는데, 부분보다 매사로 해석하는 게 더 맞지 않나 싶다. 


내가 아예 이해를 못한 대목은 淡而不厭인데 중용의 미학에 대한 찬양이라기 보다 a를 하지만 b를 하지 않는다는 행동 양식으로 해석하는데 그 뜻이 사뭇 연결되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德幼如毛 또한 여전히 모르겠다. 덕은 새털처럼 가볍다니 그 무게가 가볍다는 뜻이 아니라 놓치기 쉽다는 어려움으로만 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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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1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22-04-11 16:5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