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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류충렬 그림 / 삼인 / 2006년 4월
평점 :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짓누르는 고민, 대체 난 지금까지 어디 살았던 거지? 내게는 고향이 없는 것 뿐 아니라 '집'도 없었던 걸까? 도시의 아파트 숲에서 자라난 나로선 그리운 추억 속에 잠겨 조곤조곤 어릴 적 집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지누의 목소리가 마냥 뻐기는 듯 들렸다.
나는 하늘을 향해 열리는 문은커녕 지게도, 바라지도 누려본 기억이 없고, 희미한 기억 속의 대문은 오래와 같이 정겹게 열린 문이 아니었다. 우리집 뒷간에서 최상등품 분뇨는 안 나왔겠지만, 하다못해 중등품 분뇨라도 생산하여 땅으로 돌려줬을 거 같지도 않다. 다섯살 먹은 나의 딸은 '마당'이라는 개념조차 이해 못 하니 그보다는 복에 겨운 거라 위안해야 할까.
이지누씨를 부러워해야만 하는 처지다 보니 읽는 내내 흠잡기를, 사진작가라면서 어째 '집' 사진을 찍지 않고 삽화로 채웠는가 투덜댔다. 이지누씨는 나의 질시에 대한 답을 한참 뒤에야 털어놨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머릿속에 또 하나의 상상의 창을 만들어야" 하고, "그 시간만큼은 창 밖의 정경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에 젖어들던 때와 다르지 않게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만약 사진이 실렸다면 이지누 개인의 집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여백 많은 그림이 채웠기에 '집' 없는 이도 허구의 기억이나마 떠올릴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집'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을.
* 부엌에 대한 글의 일부를 동의할 수 없어 별 하나를 깎았다. 어머님이 양옥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밥상을 들고 오르락 내리락 '스트레칭'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허리가 아파진 것이 아니라, 한옥 집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락 내리락 오랜 세월 관절에 무리를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