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가 밥 달라고 보채서 간신히 눈을 뜬다. 헉, 벌써 8시다. 옆지기를 흔들어 깨워보지만 요지부동.
일단 아침부터 해야겠다. 어제 장 본 게 있으니 찌게라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봐야겠다 맘먹지만
마로 성화에 틈틈히 책 읽어주고 그림도 그려주고 블록도 꺼내주고.
간신히 상 차릴 때쯤이면 이 녀석 응가한댄다. 애 씻겨 내보내면 그제서야 옆지기가 뭉기적 상 앞에 앉고.
시계를 보니 벌써 9시. 마로랑 같이 밥 먹으라고 소리친 뒤 화장실 들어온 김에 나도 좀 씻고.
이제부턴 가방이다. 간식이랑 마로 여벌 옷이랑 모자랑 썬크림이랑 물티슈 등등을 가방에 싸고 있노라면
옆지기가 샤워하러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놀면서 먹느라 마로 밥은 아직 1/3이나 남았다.
마로 먹이며 나도 한 술 입에 밀어넣고, 먹이는 사이 사이 애 옷 입히고 머리 묶어주고 나도 옷 갈아입고.
꼭꼭 씹어먹으라 시키면서도 먹는 속도는 더디면서 양은 많은 딸이 답답하다.
밥상 치우며 시계를 보면 벌써 10시. 옆지기는 그새 옷 다 갈아입고 짐 싣는다고 들고 나간다.
설겆이는 포기하자 맘먹고 가스랑 전기불이랑 창문 단속하고 빼먹은 거 없나 둘러보고 집을 나서면...
아뿔사 내 열쇠는 옆지기가 들고 간 가방안에 있다.
부리나케 쫒아내려가 열쇠 받아들고 애를 차 안에 밀어넣은 뒤 문 잠그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이번엔 핸드폰이나 우산을 빼먹고 안 챙긴 게 비로소 생각난다.
도로 올라가 마저 챙기고 내려오면 엄마 없어졌다고 빽빽거리는 딸을 달래느라 옆지기 신경이 곤두섰다.
옆지기는 기어이 나에게 한 마디를 던져... 결국 일요대전을 발발시킨다.
"사람이 왜 갈수록 머리가 나빠져? 꼭 하나씩 빼먹고 다녀요." 혹은...
"오늘 절대 지각하면 안 되는 거 알잖아? 왜 이리 굼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