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24-34 그의 나라와 의를

브랜드컨설팅 전문업체인 브랜드 38 연구소가 올해 5월 20일부터 30일까지 2000여명의 연구소 패널을 대상으로 광고 모델이 광고에 미치는 영향력(호감, 신뢰, 구매욕구) 등을 분석한 결과 빅뱅(5명의 멤버로 구성된 국내가수)의 배스킨라빈스 31 광고가 스타의 광고 효과를 입증하는 SMBI(Star Marketing Brand Index) 지수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조선일보 2008년 6월 23일) 그렇다면 지금까지 SMBI 지수가 가장 높았던 광고는 무엇일까요? 2001년 12월 29일부터 2002년 1월 2일까지 5일 동안 방영된 김정은의 BC카드 광고라고 합니다. 탤런트 김정은이 빨간 산타클로스 차림으로 나와 귀엽고 간절하게 “여러분~ 여러분~모두 부자되세요~!! 꼭이요 당신의 경제를 생각하는 BC카드입니다. BC카드 여러분 부자되세요~”([출처] BC카드 김정은- 2002|작성자 김철희) 이 광고의 영향으로 새해의 덕담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에서 “부자되세요”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죽는 줄도 모르고 아침 일찍부터 출근해 저녁 늦게까지 일합니다. 정당하게 벌기도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부정하게 벌려고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자 병에 중독됐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살던 당시 사람들은 어땠을까요? 그 당시는 너무나 가난하여 오늘 먹을 양식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6:11) 라고 가르칠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내일까지 쌓아놓고 먹을 양식은 고사하고 오늘 당장 허기를 채울 양식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이 살던 당시 사람들은 사막에서 살다보니 실컷 마실 물도 없었습니다. 물배라고 채운다면 행복했습니다./ 예수님이 살던 당시 사람들은 입을 옷도 없었습니다. 옷이라고는 달랑 속옷과 겉옷 한 벌뿐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제비를 뽑아 옷을 나눠가졌을까요.(마27:35)

예수님이 살던 당시 사람들은 오늘 먹을 양식과 오늘 마실 물과 오늘 입을 두벌 옷이 없었지만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목표를 먹고 마시고 입는 것-현세적인 만족에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병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6절)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은 새는 봄에 씨를 뿌리지도 않고, 여름에 땀을 흘려서 가꾸지도 않고, 가을에 추수하여 창고에 쌓아놓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먹여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새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었다는 기사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새가 농부들이 뿌려놓은 농약을 먹고 죽거나, 사냥꾼들이 쏜 총에 맞아 죽기는 하지만 굶어죽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한갓 새조차도 하나님께서 먹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우리를 먹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병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들에 피어있는 한 송이 백합화를 살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8-29절)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들의 백합화는 예쁘게 차려 입으려고 꾸미지도 않고, 옷을 만들어 입으려고 길쌈도 하지 않지만 온갖 명을 차려 입은 솔로몬 왕보다 아름답게 입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인공미가 아니라 자연미가 아닙니까? 예수님은 한낱 들풀도 아름답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를 입히시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부자 병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와 같은 현세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오늘 먹을 양식이 풍족합니다. 라면을 먹느냐 피자를 먹느냐가 다르지 내일까지 먹을 양식이 냉장고에 가득 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오늘 마실 물이 넉넉히 있습니다. 냉수를 마시느냐 델몬트 주스를 마시느냐가 다르지 내일까지 마실 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오늘 입을 옷이 쌓여 있습니다. 시장표를 입느냐 명품을 입느냐가 다르지 사시사철 입을 옷이 옷장에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현세적인 성공에 집착하느라 40대와 50대의 여성대비 남성사망률이 세계 1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현세적인 성공에 집착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32절)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의 목표를 무엇에 두어야 할까요? 현세적인 것보다 한 차원 높은 하나님의 영광에 두어야 합니다.(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처럼 인생의 목표를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현세적인 문제에 두지 말고, 우리 인생의 목표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하나님의 영광에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현세적인 문제)을 해결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현세적인 문제에 집착하면 어느 정도 만족을 이룰 수 있지만 하나님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하나님의 영광에 두면 하나님을 얻을 수 있게 되고 하나님께서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현세적인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어떤 호화 유람선이 암초에 걸려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선원들은 승객들을 구조선에 태웠습니다. 어떤 사람이 보석을 가지러 선실로 갔습니다. 이 사람은 물건을 찾아 나오다가 혹시나 싶어 다른 선실도 들어가 봤습니다. 미처 챙겨가지 못한 보석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모든 선실을 돌며 값비싼 물건을 한 자루나 챙겨서 갑판위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구조선은 이미 떠났고 배는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보석과 함께 차가운 바다로 가라앉았습니다. 이 사람은 눈앞의 보석을 찾느라 아까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승객들은 보석을 버리고 귀중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사람처럼 보석을 찾으려고 생명을 잃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승객들처럼 보석보다 생명을 구하겠습니까?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에 집착하면 하나님을 잃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현명한 판단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돼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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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6:21-28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일제 강점기에 우리 감리교회 목사님 중에 정춘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정 목사님은 원산에서 목회하셨는데 서울에 계신 다른 목사님들의 권유로 독립선언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정 목사님은 1919년 3월 1일에 서울에 도착해 보니 독립시위는 이미 끝났고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사람들은 체포된 뒤였습니다. 정 목사님은 상황을 살피다 3월 7일에 종로경찰서에 자수하였고 재판을 받고 1년 6개월간 징역형을 살았습니다. 정 목사님은 석방되고 나서 개성과 서울 등지에서 담임목회를 하였고 신간회 간사와 감리교 총리원 이사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정 목사님은 1938년 5월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9월 관계자들과 ‘전향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나 부일협력 활동을 하였습니다. 정 목사님은 1939년 9윌 일제의 비호를 받아 조선 감리교 제4대 감독으로 선출되면서부터 친일행각을 본격화하였습니다. 정 목사님은 1942년 2월 "황군위문 및 철물 헌납 건"이라는 공문을 보내 철문, 철책은 물론 "교회종도 헌납하야 성전(聖戰) 완수에 협력"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정 목사님은 이밖에도 온갖 친일행각을 자행하다 1949년 국회의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60일간 구속되기도 하였습니다. 정 목사님은 세상과 교회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게 되자 더 이상 감리교회에 머물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1949년 10월 서울 명동성당 노기남 주교를 찾아가 천주교로 '개종'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1949년 11월 22일자 경향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정 목사님은 한국전쟁이 일어나 피난길에 올라 1951년 10월 27일 충북 청원군에서 79 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정 목사님은 3.1운동 당시에는 민족대표였다가 일제의 회유로 황국신민화의 앞잡이가 되었습니다. 정 목사님은 감리교회 감독이었다가 천주교의 평신도가 되었습니다. 정 목사님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1980년 8월 15일 충북 청주시는 우암산 중턱에 있는 3.1공원에 민족대표 33인 중 충북 출신 5명의 동상을 세웠는데 1996년 2월 8일 일부 시민단체가 정 목사님의 친일행각을 문제 삼아 동상을 끌어내려 지금은 청주 종합운동장 창고에 방치돼 있고 좌대만 남아 있습니다. 

정춘수 목사님처럼 180도로 바뀐 사람이 성경에도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은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13절) “사람들이 인자(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대답하였습니다.(14절) “더러는 세례(자)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15절)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16절)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이 칭찬하셨습니다.(17-19절)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교회를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칭찬하실 때는 정춘수 목사님이 민족대표로 활동할 때처럼 신앙의 황금기였습니다. 신앙의 황금기 때에는 예수님과 생사를 함께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얼굴은 해처럼 밝게 빛나고 입에서는 찬양이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그 결심이 오래 가지 않는 게 인간인가 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시고 자신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0-21절)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하였습니다.(22절)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로마제국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수제자인 베드로는 국무총리가 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돌아가시면 베드로는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고난을 반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23절)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지 않으면 구원 사업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책망하실 때는 정춘수 목사님이 황국신민화의 앞잡이였을 때처럼 신앙의 암흑기였습니다. 신앙의 암흑기 때에는 예수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행동합니다. 얼굴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가슴은 답답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황금기로 올라갔다 암흑기로 떨어졌다 반복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신앙의 암흑기에 빠지게 됩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반대했기 때문에 사탄이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정춘수 목사님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반했기 때문에 친일파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신앙의 황금기에 들어서게 될까요? 예수님이 알려주셨습니다.(24절)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은 신앙의 황금기에 들어서려면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합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자기 욕심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기 생각에 매여 있고 얼마나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합니까? 예수님은 세상적인 욕망을 포기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제국은 죄수에게 십자가의 가로기둥을 지워 사형장까지 끌고 갔습니다. 십자가는 사형도구였습니다. 베드로는 나중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고통과 고난에 참여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고난은 회피하고 영광은 누리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고난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예수님은 천사들과 함께 다시 오실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하였으면 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상에 대해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12절을 통해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예수님은 우리가 박해를 받으면서도 신앙을 지키면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상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6장 4절을 통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은 우리가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구제하면 하나님께서 보시고 상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장 41절을 통해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예수님은 목사님과 교인들을 대접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6장 27절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가 얼마나 충성했느냐에 따라 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상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생각 다시 말해 자기 생각과 자기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 다시 말해 고통에도 참여하고 고난에도 참여하여 사람들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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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6:13-20 주는 그리스도시요

1491년 로마교황청은 새로 지어진 수도원에 예수님과 12제자들이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나누는 장면을 그려달라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요청하였습니다. 그림을 그리려면 모델이 필요하잖아요? 다빈치는 모델을 찾아다녔습니다. 1492년 다빈치는 시골교회에서 찬양을 부르고 있던 청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인자하면서 온유하였습니다. 다빈치는 그 청년을 모델로 삼아 예수님을 그렸습니다. 그 청년의 나이는 19세였고 이름은 ‘피에트로 반디네리’였습니다. 다빈치는 6년 동안 예수님과 11 제자들을 모두 그렸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아직 그리지 못했습니다. 모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 시장은 지하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던 죄수들 중에서 모델을 찾아보라고 제안하였습니다. 다빈치는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처럼 사악하고 흉악한 죄수를 발견하였습니다. 다빈치는 그 죄수를 모델로 삼아 가룟 유다를 그렸습니다. 다빈치는 그림을 그리고 나서 그 죄수에게 감옥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통보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죄수는 자신을 모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다빈치는 모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죄수는 자신이 6년 전 예수님의 모델이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의 모델과 가룟 유다의 모델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피에트로 반디네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피에트로 반디네리는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는 시골교회에서 찬양대원으로 사역하다가 로마에 가서 음악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타락하자 그의 얼굴도 변했습니다. 천사처럼 온유한 얼굴이 악마처럼 사악해졌습니다. 그는 큰 죄를 짓고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다빈치는 한 사람이 이렇게 180도로 달라졌다는 데 충격을 받고 그 후로는 예수님에 관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피에트로 반디네리같이 180도로 바뀐 사람이 성경에도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은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13절) “사람들이 인자(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생각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14절) “더러는 세례(자)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15절)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16절)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이 칭찬하셨습니다.(17-19절)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님이 베드로를 칭찬하실 때는 피에트로 반디네리가 시골교회에서 찬양대원으로 사역할 때처럼 신앙의 황금기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교회를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의 황금기 때에는 예수님과 생사를 함께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얼굴은 해처럼 밝게 빛나고 입에서는 찬양이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그 결심이 오래 가지 않는 게 인간인가 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시고 자신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0-21절)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하였습니다.(22절)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로마제국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베드로는 국무총리가 될 게 확실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죽으신다고 하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고난을 강력하게 반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23절)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책망하실 때는 피에트로 반디네리가 지하 감옥에 갇혀있을 때처럼 신앙의 암흑기였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호통 치셨습니다. 신앙의 암흑기 때에는 예수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행동합니다. 얼굴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가슴은 답답합니다. 피에트로 반디네리는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공하고 싶어서 로마로 갔고 사람들을 만났고 술자리를 자주 가졌습니다. 그가 술을 마실수록 사람들과는 가까워졌으나 하나님과는 멀어졌습니다. 그러다 그만 큰 죄를 저지르고 한줄기 빛도 들지 않는 깜깜한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신앙의 황금기로 올라갔다 암흑기로 떨어졌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신앙의 암흑기에 빠지게 됩니다. 어떤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실업자였습니다. 이 청년은 새벽마다 가게(점포)를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가게는 그 지역에서 가장 몫이 좋은 가게였습니다. 목사님도 청년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언제부턴가 그 가게에 손님의 발길이 끊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파리만 날리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가게를 헐값에 내놨습니다. 청년은 가게를 인수하였고 장사가 잘 됐습니다. 결혼도 하였고 아내가 임신을 하였습니다. 청년은 장사가 잘 될수록 교회를 멀리하였습니다. 새벽기도를 빠지다 속회예배도 빠지다 수요일저녁예배도 빠지다 주일저녁예배도 빠지다 급기야 주일낮 예배까지도 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청년의 아내는 임신한 몸을 이끌고 하루 종일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그러다 전자파 때문인지 과로 때문인지 유산하고 말았습니다. 그 청년이 어떻게 된지는 모릅니다. 여기까지만 들었습니다. 청년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면 행복하게 되었을 겁니다.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고마움을 잊고 하나님을 멀리했다면 불행하게 되었을 겁니다. 피에트로 반디네리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면 신앙의 황금기에 들어서게 됩니다. 예수님은 신앙의 황금기에 들어서려면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합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자기 욕심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출세하고자 했을 때 책망 받았습니다. 피에트로 반디네리가 세상적으로 성공하고자 했을 때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합니다. 고통에 참여하고 고난에 참여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나중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생각으로 신앙생활하면 자기 생각과 자기 욕심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면 실패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으로 신앙생활하면 고통에도 참여하고 고난에도 참여하면 성공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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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5:21-28 네 소원대로 되리라.

부모는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합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죠. 토종 우렁이는 새끼를 유별나게 사랑한다고 합니다. 토종 우렁이 어미는 몸속에다 알을 낳습니다. 외래종 왕 우렁이는 몸 밖에다 알을 낳죠. 새끼들은 어미의 살을 파먹으며 성장합니다. 새끼들이 살을 한 점도 남김없이 파먹으면 어미는 빈 껍질이 되어 흐르는 물 위로 둥둥 떠다닙니다. 새끼들은 물 위를 떠다니는 어미를 보며 ‘우리 엄마 시집간다.’고 놀려댄다고 합니다./ 옴두꺼비는 알을 품게 되면 평소에는 피해 다니던 독사에게 일부러 찾아가 싸움을 한다고 합니다. 옴두꺼비 어미는 죽을힘을 다해 독사와 싸웁니다. 어미두꺼비는 치열한 싸움 끝에 독사에게 잡아먹히고 맙니다. 어미두꺼비는 죽어가면서 독사의 뱃속에서 독을 뿜어냅니다. 어미두꺼비는 독사에게 잡아 먹혀서 죽고 독사는 어미두꺼비가 뿜은 독에 의해 죽게 됩니다. 어미두꺼비는 죽으면서 독사의 뱃속에다 알을 낳습니다. 새끼들은 죽은 독사의 살을 뜯어먹으려 튼튼하게 자랍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라는 ‘두꺼비집’ 노래는 옴두꺼비의 이야기로부터 유래했다고 합니다. 헌집은 자신의 몸을 희생한 어미두꺼비를 뜻하는 말이고, 새집은 새롭게 태어난 새끼들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토종 우렁이와 옴두꺼비는 모성애가 강한 생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토종 우렁이와 옴두꺼비처럼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모든 어머니가 그렇죠. 어머니는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두로와 시돈 지방에 살았습니다. 두로와 시돈 지방은 항구도시로 해상무역이 발달하여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어머니는 경제적으로는 넉넉했으나 가정적으로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고치기 위해서 모든 수고를 다했습니다. 어머니는 귀신을 쫓아낸다는 신령한 무당들을 찾아갔으나 어떤 무당도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몸이 약한가 싶어서 온갖 보약을 달여 먹였으나 어떤 보약도 몸을 회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딸은 상태가 악화되어 눈이 허옇게 뒤집히면서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어머니는 곱디고운 딸이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때마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어머니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딸을 고치고 싶었습니다. 딸을 고쳐주는 사람에게는 재산의 절반이라도 나눠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딸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낙심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오셨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도 고치도 죽은 자도 살렸습니다. 어머니는 당연히 예수님에게 찾아갔습니다. 어머니가 딸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찾아갔듯이 우리도 자녀들의 장래를 위하여 예수님에게 찾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모습을 보고 소리쳤습니다.(22절)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어머니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메시야라고 불렀습니다. 어머니는 이방인이지만 유대교로 개종한 모양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걸어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짜증을 냈습니다.(23절 하반 절)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제자들은 어머니를 돌려보내라고 요청했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이었고 어머니는 이방인인지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유대인이 경멸하는 가나안 여자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24절)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예수님은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애가 탔습니다. 딸은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데 제자들은 돌아가라고 짜증을 내고 예수님은 외면하시니 말입니다. 어머니는 예수님에게 절을 하며 간청했습니다.(25절) “주여, 저를 도우소서.” 어머니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찾아간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당장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심사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는 게 좋은지 거절하는 게 좋은지, 지금 들어주는 게 좋은지 나중에 들어주는 게 좋은지 판단하십니다. 저울로 물건을 달아보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달아보십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의 믿음을 테스트하셨습니다.(26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자녀들이 먹는 떡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자녀들은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떡을 먹이는 것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을 가리킵니다. 개들은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을 개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개’라는 단어는 썩은 고기를 먹는 지저분한 개가 아니라 집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애완동물을 가리킵니다. 공동번역에는 강아지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바쁘니 이방인을 도울 수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하셨습니다. 만약 어머니가 성미가 급하다면 팔을 걷어 부치고 예수님께 대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존심이 세다면 싫으면 관두라고 돌아섰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성질을 죽이고 자존심을 꺾었습니다. 어머니는 지혜롭게 대답했습니다.(27절)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어머니는 자녀들이 떡을 먹다가 부스러기를 개들에게 던져준다고 언급했습니다. 어머니는 부모가 자녀에게 떡을 주듯이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쳐야 하지만 자녀들이 남은 부스러기를 개들에게 던져주듯이 남은 시간에 딸을 고쳐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어머니를 칭찬하셨습니다.(28절)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예수님은 마가복음 7장 29절을 통해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라고 치유선언을 하셨습니다. 딸은 예수님이 병이 나았다는 말씀과 동시에 깨끗이 나았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돌아가 보니 악마의 얼굴처럼 어둡던 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환해졌습니다. 귀신들린 딸은 어머니의 믿음으로 치유되었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위한 기도제목이 있으면 예수님께 찾아가고 찾아갔으면 응답해 주실 때까지 간청해야 합니다. 악한 재판관도 뇌물을 주지 않는 가난한 과부의 간청을 귀찮아서라도 들어주는데 하물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시겠습니까?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독일의 유명한 가톨릭 신학자인 한스 큉 교수는 기독교 역사를 보면 일곱 명의 위대한 사상가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사람은 사도 바울이고 두 번째 사람은 오리겐이고 세 번째 사람은 어거스틴입니다. 세계사에는 아우구스티누스라고 나옵니다. 두뇌가 명석한 어거스틴은 로마에 가서 공부하길 바랐으나 어머니는 아들이 방탕한 도시에서 타락할까봐 만류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를 속이고 로마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천한 여인과 사귀더니 17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눈물로 이불을 적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머니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어거스틴은 33세에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어거스틴은 그 다음해 4월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세례를 받은 해 11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사상가가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이단에 의해 흔들렸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가 없었다면 기독교는 흔들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있었기 때문에 아니 모니카가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온전히 보전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는 자녀를 살립니다. 자녀가 살아나면 세상도 살아납니다. 우리 기도를 통하여 자녀들의 육체와 영혼을 살리는 어머니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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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1일(금) 조원자 성도가 상담하다.

8월 6일(수) 조원자 성도가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다.

8월 8일(금) 조원자 성도가 금요기도회에 참석하다.

8월 13일(수) 조원자 성도가 수요일 저녁예배에 참석하다.

8월 17일(주일) 조원자 성도와 김소영 학생이 주일낮예배에 참석하다.

8월 24일(주일) 조원자 성도와 김소영 학생이 등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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