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39-45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성경에는 수많은 기적이 나옵니다. 이 기적을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신앙으로 들어서느냐 마느냐가 결정됩니다. 이 기적을 믿는 사람들은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불신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성경은 기적의 책이기 때문에 기적을 빼버리면 성경이 아니고 기적을 믿지 않으면 신앙인 될 수 없습니다. 기적에 대한 적당한 타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곧 기적이고 이 기적은 곧 성경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믿으려면 머리로 이해하지 말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적을 머리로 이해하려면 인간의 과학적인 사고방식과 충돌하기에 불신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영역이라고 마음으로 믿으면 어느새 머리로도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그 기적중의 하나입니다. 이 기적의 배후에는 성령님이 계셨습니다.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를 연합시키신다.
성령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북부인 갈릴리 지방 나사렛 마을에 살고 있는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셨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처녀였습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계획을 전했습니다.(눅1:30-34)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게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지극히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천사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 지으라고 일렀습니다. 그 아이는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이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지고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을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천사는 마리아가 낳을 아이가 메시야라고 전했습니다. 마리아는 놀랐습니다. 아이를 가지려면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해야 하는데 마리아는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설명했습니다.(눅1:35-37)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이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천사는 마리아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임신하였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성령님은 임신하지 못하는 엘리사벳도 임신하게 하셨으니 처녀인 마리아도 임신하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남녀 간의 성관계를 통해 임신한다고 알고 있지만 하나님은 성관계 없이도 임신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남녀 간의 성관계를 통해 임신하였다면 아담이 지은 원죄가 고스란히 전이되어 인간의 죄를 사하실 수 없지만 예수님은 원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속죄의 피를 흘려 인간의 죄를 사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이사야서 7장 14절에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약 칠백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 처녀는 마리아였고 그 아이는 예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성령님의 능력으로 마리아를 임신하게 만드셨습니다.

성령님은 성자와 우리를 연합시키신다.
마리아는 친족인 엘리사벳이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의 남부인 유대 지방 산골 마을을 방문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은 임신하지 못하였는데 가브리엘이 남편인 사가랴 제사장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계획을 전했습니다.(눅1:13-17)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천사는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으면 그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으라고 일렀습니다. 그 아이는 주 앞에서 큰 자가 되고 술을 마시지 않고 모태로부터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천사는 엘리사벳이 낳을 아이가 메시야의 전령이라고 전했습니다. 사가랴는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지만 막상 아들을 주신다고 응답하시자 자신도 아내도 늙어서 불가능하다고 반응했습니다. 천사는 사가랴가 믿지 않자 이 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벙어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가 갈릴리 지방에서 유대 지방까지 약 100킬로미터를 약 삼일 동안 걸어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였습니다. 마리아가 방문하자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는 아이가 뛰놀았습니다. 아이는 모태에 있을 태부터 성령님으로 충만해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이가 메시야라고 알아봤습니다.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던 아이는 나중에 세례자 요한이 되어 회개하라고 설교했고 회개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마리아의 태중에 있던 아이는 나중에 예수님이 되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왔습니다. 요한이 말렸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요한은 예수님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 수 없다고 거절했지만 예수님은 세례를 받아야 인간과 같아진다고 재촉했습니다. 결국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3-17)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예수님으로 오셨습니다. 성령님은 요한에게 예수님을 알려주었듯이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구세주라고 알려주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도 알려주십니다. 요한은 성령님이 충만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듯이 우리도 성령님이 충만하다면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우리를 연합시키신다.  
엘리사벳은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어 마리아와 태중에 있는 아이를 축복하였습니다.(눅1:42-45)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뛰놀았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도 복이 있고 태중에 있는 아이도 복이 있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지금 마리아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을 하였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라면 부정한 여인이라고 돌을 던져 죽이려 할 테지만 엘리사벳은 성령님이 충만하여 그 아이가 메시야라는 것을 알아보고 산모와 태아를 축복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은 그 아이를 ‘주’라고 일컬었습니다. 그 아이는 단순한 아이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였고 마리아는 주의 어머니였습니다. 엘리사벳은 남편인 사가랴는 아이를 주신다는 말씀을 믿지 않아 벙어리가 됐지만 마리아는 아이를 가지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칭송했습니다. 성령님은 기적의 근원이십니다. 마리아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임신하였고, 요한은 성령님이 충만하여 태중의 아이를 메시야로 환대했고. 엘리사벳은 성령님이 충만하여 태중의 아이는 메시야이고 마리아는 주의 어머니라고 고백했습니다. 바람은 인간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를 보며 존재를 인식하듯이 성령님은 인간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통해서 증명됩니다. 기독교의 기적은 세상 사람들처럼 눈속임이 아니라 성령님을 통해 나타나는 신비입니다. 성령님의 존재를 믿어야 기적을 믿을 수 있고, 성령님의 능력을 인정해야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기적이 일어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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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0일(금) 오전 10시 30분에 연일 충정교회에서 매일성경 묵상모임을 시작하다. 충정교회에서 2번 모이고 그의 나라교회와 대신제일교회와 창대교회에서 1번씩 모이다. 4번째 모임부터 목요일에 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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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3:7-17 그분이 오시나니

저는 세례자 요한을 좋아합니다.
성경에는 2,930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저는 그 중에서 세례자 요한을 가장 좋아합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했듯이 저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20년 만에 등장한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자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렸습니다. 우리도 몇 주간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갈급해 집니다. 유대 백성들은 죄를 지적해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줄 선지자를 고대하였습니다. 그때 요한이 등장했습니다. 요한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엘리야 선지자를 연상시켰습니다.(왕하1:8) 낙타털로 짠 거친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옷이 내려가지 않도록 가죽 띠를 띠었습니다. 산적처럼 보였습니다./ 메뚜기를 구워 먹고 석청(들꿀)을 따서 먹었습니다. 거지처럼 먹었습니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요 삼아 길에서 잠잤습니다. 노숙자처럼 생활하였습니다./ 요한의 행색은 초라했으나 눈은 사막의 태양처럼 이글거렸고 입에서는 폭포수와 같은 말씀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요한은 회개를 설교하였다.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고 설교하였습니다. 요한의 설교는 잔잔한 물가에 떨어진 바위가 물을 뒤집어 놓듯이, 말씀에 굶주려 있던 유대 백성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요한이 설교한 ‘회개’는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입니다. 요한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설교하다니요? 유대 백성들은 입으로 하나님을 불렀지 행동으로는 떠나 살았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언행심사’란 화살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는 과녁에 쏘았을 때 빗나가기 일쑤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오늘날의 교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행동으로는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교인처럼 신실하게 행동하지만 세상에서는 이방인처럼 악착같이 살아갑니다. 교인이 더 지독하다고 하더라고요. 요한은 유대 백성들에게 오실 메시야를 맞이하기 위해 회개하라고 촉구했듯이, 우리에게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고 설교하였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유대 백성들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요한은 회개한 백성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려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듯이, 요한은 오실 메시야를 맞이하기 위해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설교했습니다. 회개는 죄를 고백했다는 내적인 정결이라면 세례는 죄를 씻었다는 외적인 표시였습니다. 요한은 회개한 사람들은 세례를 받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일까요? 무리들이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묻자 요한은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고 대답했습니다.(눅3:10-11) 유대 백성들은 옷을 한 벌 밖에 갖지 못했고, 오늘 먹을 양식도 부족했습니다. 요한은 남는 것을 움켜쥐지 말고 나눠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세리들이 묻자 요한은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대답했습니다.(눅3:13) 세리들은 로마제국에서 부과한 세금보다 과중하게 거둬들여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세리들을 매국노요 흡혈귀라고 멀리했습니다. 요한은 세리에게 사표를 내라가 아니라 정직하게 세금을 거두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군인들이 묻자 요한은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대답했습니다.(눅3:14) 여기서 군인들은 로마 군인이 아니라 치안을 담당하던 유대 군인을 가리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경찰입니다. 군인들은 권력을 악용해 백성들을 착취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은 비록 부족하더라도 지금 받는 급료에 만족하라고 일렀습니다. 12월 9일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이재오)가 ‘UN 세계 반부패의 날’을 맞아 지난 10월17일부터 11월18일까지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실시한 ‘부패인식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부패인식도가 높은 행정 분야는 건축/건설/주택/토지 분야가 1위였고, 세무 분야가 2위였고, 경찰 분야가 3위였습니다.(경제투데이 2009년 12월 8일) 국민과 자주 접촉하는 부서가 부패인식도가 높았습니다. 요한은 유대 백성들과 자주 접촉하는 세리들과 군인들에게 권력을 악용해 탐욕을 채우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결국 요한은 회개했으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다시 말해 신앙을 가졌으면 바르게 살라고 설교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과 생활을 별개로 여깁니다. 며칠 전(12월 8일) KBS 9시 뉴스를 보니 파주 신도시 건설사 입찰 과정에서 환경관리공단 김모 팀장이 뇌물을 받고 그중에서 수백만 원을 헌금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분이 헌금했다고 신앙이 좋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신앙이 좋다면 뇌물을 받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요한은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통해 바른 신앙은 바른 생활로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고 설교한 까닭은 무엇인가?
요한이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고 설교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분(예수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자신과 그분을 비교했습니다. 요한과 그분과는 능력이 다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겁니다. 요한은 그분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전령이고 그분이 주인공입니다./ 요한과 그분과는 신분이 다릅니다. 요한은 그분은 존귀한 주인이고 자신은 천한 종도 되지 못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천한 종은 주인의 신발을 들고 다니지만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겸손해 했습니다. 요한보다 능력이 많고 신분이 높으신 그분이 오시면 무엇을 하실까요? 심판을 하십니다. 요한은 심판을 ‘나무뿌리에 놓여있는 도끼’와 ‘손에 들고 있는 키’에 비유하였습니다. 농부가 도끼를 들고 과수원에 갑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는 그대로 두고,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는 찍어서 불에 던져버립니다.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를 땅만 버리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키를 들고 타작마당으로 갑니다. 키는 알곡을 골라내는 갈퀴입니다. 키질을 하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워버립니다. 쭉정이는 불쏘시개로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곳간은 천국을 상징하고, 불은 지옥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농부가 도끼로 좋은 열매 맺는 나무와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를 나누듯이, 농부의 아내가 키로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듯이 의인과 악인을 가리십니다. 심판을 하십니다.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라면 거름을 주시겠지만 나쁜 열매를 맺는다면 찍어서 불어 던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잘 익은 알곡이라면 곳간이 들이시겠지만 바람에 날리는 쭉정이라면 불에 던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유대 백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요한은 목이 터져라 예수님이 오신다고 외쳤지만 대다수의 유대 백성들은 외면했습니다. 오늘날도 강단에서 목이 터져라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외치지만 우리는 재림 불감증에 걸렸는지도 모릅니다. 안전 불감증에 걸리면 사고가 발생하듯이 재림 불감증에 걸리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철저하게 회개할 뿐만 아니라 그분이 오실 때까지 회개에 합당한 생활을 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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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1:25-36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서론
저는 교회력으로 설교를 합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통해 완성되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재현하도록 만든 교회 달력입니다. 교회력은 ‘주일’을 중심으로 1주일씩 반복되는 52주간의 주간주기와, ‘부활절’을 중심으로 1년씩 반복되는 3년간의 연간주기로 이루어집니다. 연간주기는 대강절부터 시작됩니다. 오늘은 대강절 첫 주일이니까 세상 달력으로는 11월의 마지막 주이지만 교회력으로는 신년 첫 주일인 셈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새해 첫날을 중요시하듯이 우리에게 대강절 첫 주일은 중요한 주일입니다.

본론
1.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신다.
오늘은 3년간의 연간주기 중에서 교회력 C 년도의 첫 주일인데, 예수님은 28절과 31절과 36절을 통해 ‘이런 일’ 또는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다시 말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고 우주적인 대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려면 징조가 있는데, 하늘에서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보이지 않고 별들은 떨어지고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립니다(마24:29). 땅에서는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해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괴로워합니다. 지금 하늘에서는 특별한 징조가 없지만 바다에서는 지진해일이 일어나 서남아시아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만약 하늘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난다면 바다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날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처럼 자연계에 재앙이 닥치면 혼란스러워하고 무서워하고 기절까지 합니다.(눅21:26) 그러나 하나님은 교인들에게 머리를 들고 기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눅21:28) 세상 사람들은 기절하지만 우리에게는 기대하라는데, 무엇을 기대하라는 말씀일까요? 여러분 축구 경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페널티킥을 실축한 선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이지만 역전 결승골을 넣은 선수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하게 웃으며 골 세레머니를 펼치잖아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면 세상 사람들은 페널티킥을 실축한 선수처럼 의기소침해져서 고개를 숙이지만 우리는 역전 결승골을 넣은 선수처럼 기쁨에 겨워 고개를 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우리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걱정거리가 있어 절망에 빠져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 예수님은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이스라엘에 흔한 무화과나무를 예로 드셨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유월절이 있는 4월부터 초막절이 있는 10월까지 모두 다섯 번 열매를 맺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건기동안 열매를 맺는데 처음에는 잎도 작고 열매도 작고 당도도 적다가 차차로 잎도 커지고 열매도 커지고 당도도 높아집니다. 그러다 우기가 되면 가지가 앙상해집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아나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알았듯이, 우리에게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고 우주적인 대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싹이 나면 여름이 오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온다고 말씀하셨는데, 천지는 없어지더라도 다시 말해 하늘과 땅은 닳아서 없어지더라도,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다시 말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닳아 없어져도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데 하늘과 땅이 닳아 없어지지 않으니 예수님의 말씀은 얼마나 정확하게 실현되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우리에게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요? 요즘 전 세계적으로 신종 플루가 창궐해 위생에 각별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감염될 수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는데 우리가 조심하지 않고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지면 짐승들이 갑작스럽게 덫에 걸리듯이 우리도 갑작스럽게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하게 된다고 경고하십니다. 유진 피터슨은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파티와 음주와 쇼핑 때문에 다시 말해 만날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러 다니고 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해져 있고 쇼핑을 하느라 시간을 빼앗기다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경각심이 무뎌진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은 짐승이 덫에 걸리듯이 하나님의 나라를 갑작스럽게 만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면서 맞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3.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며 맞이하려면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3절을 통해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임신한 여자가 반드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하듯이 반드시 재림하신다고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절을 통해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알기 때문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둑이 갑자가 들어오듯이 갑자기 재림하신다고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가 갑자기 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그리고 갑자기 임하기 때문에 임신한 여자는 언제 아이를 낳을지 모르기 때문에 베넷 저고리를 비롯해 미리 출산 준비를 해놓고, 집주인은 언제 도둑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꺼진 불도 다시 보듯이 언제나 집단속을 해야 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그리고 갑자기 임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려면 적어도 한 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 출국수속을 밟듯이,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항상 기도하면서 깨어있어야 합니다. 
  

결론
대강절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시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를 기다렸듯이,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버트 웨버)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영적으로 맹인이라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했듯이, 우리도 세상일에 정신을 팔고 산다면 재림 의식이 무뎌져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메시야를 영접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나라를 빼앗긴 이스라엘 사람들이 조국이 부른다면 언제든지 달려가기 위해 보석상을 하지 않고 청과상을 했듯이, 우리는 예수님이 오신다면 언제든지 맞이하기 위해 세상일에 집착하지 말고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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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28:7 야웨 전쟁 2

성경에는 여러 가지의 중요한 주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전쟁(warfare)’입니다. 구약 창세기 3장부터 신약 요한계시록 20장까지 폭력과 투쟁과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 2장과 요한계시록 21, 22장만이 평화 모드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전쟁이 많은 이유는 사람만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전쟁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적 전사(Divine Warrior)가 되시어 인간 적들과도 그리고 영적인 적들과도 전쟁을 치르셨습니다. 저는 IVP 성경신학사전을 참고하여 전쟁신학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하나님이 전쟁의 중심에 서서 싸우시는 야웨 전쟁의 5 단계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의 적들과 싸우심
하나님은 백성들이 율법에 순종할 때는 자기 백성들을 대신해 인간 적들과 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애굽을 탈출할 때 자기 백성들은 홍해를 무사히 건너게 하시고 뒤쫓아 오는 애굽의 군사들은 물에 빠뜨려 죽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공격할 때 철옹성 같던 여리고 성을 손쉽게 점령하게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회개할 때 사사들을 세우셔서 이방 민족들을 물리 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28장 7절을 통해 백성들이 율법에 순종할 때는 자기 백성들을 대신해 적들과 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순종하면 백성들을 대신해 인간 적들과 싸우셨습니다. 우리가 순종한다면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싸우심
하나님은 백성들이 율법에 불순종할 때는 자기 백성들과 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모두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는데(수6:17-18) 아간이 온전히 바치지 않고 일부를 빼돌리자 아이 성 전투에서 패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 언약궤를 메고 전쟁터에 나갔지만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무시하였고(삼상2:12-17), 행실이 불량하였고(삼상2:22-25), 언약궤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아니라 승리를 가져다주는 부적으로 생각하자 블레셋과의 전쟁에도 패하게 하시고, 언약궤도 빼앗기게 하시고,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게 만드셨습니다.(삼상4:1-11) 하나님은 다윗과 왕국의 언약을 맺으셨지만 후손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자 주전 587(6)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남 유다를 멸망당하게 하셨습니다. 천해의 요새인 예루살렘은 허무하게 함락되었고, 아름다운 성전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존귀한 백성들은 밧줄에 묶여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애가 2장 4-5절을 통해 자기 백성들이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다윗의 왕국을 멸망시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수같이 그의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그의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드는 아름다운 모든 사람을 죽이셨음 이여, 딸 시온의 장막에 그의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주께서 원수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 이여, 그 모든 궁궐들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사, 딸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불순종하면 자기 백성들과 싸우셨습니다. 우리가 불순종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미래의 전사
하나님은 불순종하면 심판도 하시지만 나중에는 자기 백성들을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통해 ‘인자 같은 이’가 하나님의 병거인 구름을 타고 나타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단7장)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해 미래에 ‘야웨의 날(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슥14장) 하나님은 야웨의 날에 적들은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은 구원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스가랴서 4장 3절을 통해 자기 백성들을 공격한 이방 나라들을 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 나라들을 치시되 이왕의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하나님은 백성들이 순종하면 대신 싸워 주시고, 불순종하면 자기 백성들을 심판하시지만 나중에는 백성들을 공격한 적들은 물리치시고 자기 백성들은 회복시켜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적 전사
하나님은 세례자 요한을 전령으로 보내 백성들을 회복시킬 메시야 다시 말해 신적 전사가 곧 오신다고 선포했습니다.(마3:11-12)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요한은 메시야가 손에 도끼를 들고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 불에 던지고, 키를 들고 키질을 하여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운다고 다시 말해 심판한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마4:23,9:35) 예수님이 메시야처럼 행동하지 않으시자 요한은 제자들을 보내 예수님이 메시야인지 아닌지를 물었습니다.(마11: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요한은 메시야 다시 말해 신적 전사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적군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예수님은 요한의 기대와는 다르게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6:21-21,17:22-23,20:17-19) 예수님은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을 대신해 십자가에서 자기를 죽이시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과 물리적인 전쟁을 치르신 것이 아니라 사탄과 영적인 전쟁을 치르신 겁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이 체포되실 때 베드로가 칼을 들고 저항했지만 선선히 붙잡혀 가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마26:50-56) 그러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이 세상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시켰고 십자가에서 그들을 이겼다고 감탄했습니다.(골2:15) 예수님의 승천은 전쟁 포로들을 끌고 가는 행렬로 묘사했습니다.(엡4:7-8) 그렇기 때문에 교인들은 칼과 창과 방패 같은 물리적인 무기가 아니라, 믿음과 의와 하나님의 말씀 같은 영적인 무기로 싸운다고 말씀합니다.(엡6;10-18)

예수 그리스도는 미래의 전사
이렇게 영적인 전쟁을 하지만 요한계시록에는 야웨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신적 전사인 예수님은 백마를 타고 하늘 군대를 이끌고 오셔서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십니다.(계19:11) 인간이든 사탄이든 악한 자들은 최후의 심판을 받아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고(계20:10) 둘째 사망에 처해집니다.(계20:14) 하나님이 창세기 3장을 통해 뱀에게 내린 저주가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최후의 심판을 통해 실현됩니다. 최후의 심판은 야웨 전쟁의 절정이자 결말입니다.

결론   저는 여러분과 두 주간에 걸쳐 전쟁신학을 다뤘습니다. 야웨 전쟁은 하나님이 악을 제거하고 죄를 심판하시는 도구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전쟁을 좋아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평화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기를 바라십니다.(미4:3) 오늘날 어떤 지도자는 독재자를 타도하고 국민에게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고 주장하지만 하나님이 사탄을 심판하시는 야웨 전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들은 힘으로 평화를 쟁취하려고 전쟁을 벌였지만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라고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네 번째 단계인 신적 전사 예수 그리스도와 다섯 번째 단계인 미래의 전사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고 돌아가시면서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단지 승리한 전쟁을 계속할 따름입니다. 이 전쟁은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는 날(계1:7)에 끝날 겁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우리의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악한 자들이 한 길로 공격하러 왔다가도 일곱 길로 도망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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