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청국장



조각조각 나누어진 파티션 아래

갈래갈래 찢겨진 마음 다잡아 봐도

마디마디 새어나오는 타자소리에 섞여

툭툭 어둠에 깔려오는 바람소리 창문을 치고

후두둑후두둑 굵은 빗줄기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각기각기 모두가 제 갈길 찾아 걸어가고

추적추적 이 내 걸음도 모두를 따라 결국

걸어가야 하겠지요. 당신께로...


어머니! 당신께선 청국장을 또 끓여 놓으셨군요.

시궁창 냄새나는 이 세상 억척같이 살아낸

그 끔찍함으로 허옇게 파르르 떨리는

비 맞은 아들내미 허한 속 어떻게든 데워보시려고

또 끓여 놓으신 건가요?

그러나 어머니! 이 시궁창 냄새나는 청국장도

시뻘겋게 찢어지는 피 같은 김치도

한 알 한 알 꿈틀거리는 좀 벌레 같은 밥알들도

모두모두 지긋지긋해요. 아니, 모두모두 역겨워요.

그런데 이 지겹고 역겨운 것들을 한데모아

어떻게 묵히고, 삭혀서, 고아 내셨기에

이렇게 오롯하게 달콤할 수 있는 건가요?

한 숟갈 한 숟갈 뜰 때 마다 울컥거리는 마음 때문에

자꾸 빗줄기보다 굵은 눈물이 떨어지려고 해요.

한 숟갈 한 숟갈 뜰 때 마다 울렁이는 마음 때문에

자꾸 구역질보다 찐한 설움이 넘어오려고 해요.


어머니! 청국장이 너무 짠하게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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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시편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오면

당신의 이름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도통 새하얀 빛투성이어서

내 보이는 건 야위고 주린

당신 먹어치우지 못하면

늑탈처럼 말라비틀어지는 

내 몸뚱이 뿐,

형광등처럼 너무 밝고

초롱불처럼 쉬 꺼져버리는

허기 뿐,

당신 모양 같은 거짓 뿐,

내 모양 같은 나일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내려오지 않으면

온통 나밖에 보이질 않아

당신 생각 할 수 없어

저는 아직

당신의 이름 부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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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煙



그러니까 스무 살, 아마 그때쯤이었을 거야.

무수히 박힌 사람들 가운데 카인의 표식을 드리운 네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어.

섬뜩한 충동으로 도리질하며, 가슴 깊은 곳에 숨겨진 내 폐부를 노려보고 있었어.

번쩍번쩍 빛나는 생선비늘처럼 파닥거리기보다는

검게 그을려 질펀하고 끈적끈적하게 버텨내는 것이 생이라고 소곤거리며

너는 독한 입맞춤을 하였고

더욱 깊게, 깊게 내려앉아 모든 신경을 마비시키고 정신을 갉아먹으며

미쳐지지 않는 관능 속으로 나를 옥죄어 들어왔어.


결.코.벗.어.날.수.없.었.어.


그런데 어느 날 이런 내게도 그녀가 생겼어.

너는 여전히 무심했지만

그녀는 나를 지독히도 사랑하였고,

또 내게 드리운 지독한 너의 향기를 싫어하였어.

아니, 너의 모든 것을 끔찍해했어.

그녀는 내게 선택을 강요하였어.


'나야? 아니면 그야?'

'오랜 친구와 의절할 순 없어.'


그녀의 떠나가는 등 뒤에서

나는 너와 오래도록 휘감겨 깊은 키스를 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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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그리움

 

 

현대라는 혼자라는 공장에서 뿜어대는 짙은 연기에

짙게 그을려 말라비틀어진 여인네들의 퇴폐적인 관능과

아직 가보지 못한 수평선의 파도치는 그리움 사이에서

숨어버린 어린 뮤즈들의 허기진 노랫소리를 들을 적이면

새벽녘 단단한 아스팔트길을 걸으며

곳곳에 버려진 생선 내장들과

바닥에 납작하게 깔린 비둘기 시체들을 밟고서

하수구에서 올라온 익숙한 시궁창 냄새를 맡을 적이면

거리를 숭숭 지나쳐 가는 모든 헤드라이트 불빛들이

어릴 적 들판에서 보았던 도깨비불빛처럼 되살아나

외롭게 취해 필름이 끊겨버린 이 새벽도 그리워

전깃줄 위에서 사라져간 참새들처럼 반드시 그리워

달리는 자동차 바퀴 뒤로 멀어져 가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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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마리아



한 소녀가 속으로 울며

언덕을 걸어가고 있었다.

지나치는 행인의 걸음에도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서있는 몸짓들에도

아련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가야할 길 하나

생각지 아니하고

높은 언덕길을 외로이

걷고만 있었다.

그 아래로 거리에 차들이

불야성의 나방처럼

수없이 지나쳐가고

소녀는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었지만

걸음을 멈출 순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부서지는

눈물을 견디며

한 걸음 한 걸음

바람에 흔들리는 잔풀처럼

움터 오르고

한 걸음 한 걸음 꽃잎처럼

만져지고 짓이겨지고

뜯기고 물러져

벌레들이 소녀의 몸 위로

기어 다니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낙엽처럼

썩어지고 문드러져

사라져간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길가에 밟혀진 꽃잎 하나가

무엇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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