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렐리의 만돌린 - 할인행사
존 매든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Nicolas Cage)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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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울렁거렸다. 광활한 대지는 삼켰던 것들을 모조리 토해내고 있었다. 겨우 전쟁이 지나간 곳에 평화가 찾아오기 무섭게 다시 이 땅을 흔들어댔다. 마치 신의 목소리라도 들은냥 그렇게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그와 그녀가 만나기로 한 땅은 폐허로 남았다. 남아있던 여자는 뒤돌아섰다. 다시 일어서서 제 집을 지어야 했다. 그리움, 후회, 애틋함, 아쉬움 같은 감정은 멋모를 때의 것으로 치부하고 잊으려 했다, 아니 묻으려 했다. 묻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날, 뒤돌아서니 그가 돌아왔다. 그가, 생사조차 알 수 없던 그가 돌아왔다. 코렐리는 거짓말처럼 펠라기아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와 그녀는 전쟁도 지나가고 지진도 지나간 이 섬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고 끝맺으면 좋겠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다. 

대체 섬은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울까. 온종일 생각했다. 독일 연합군이 된 이탈리아군은 변방의 섬에서 적군의 명목 대신 보호국으로서 그리스를 지켜주길 원하지만 전쟁의 상황이란 녹록치 않은 현실 뿐이다. 처음에 펠라기아에게는 만데라스라는 정혼자가 있었다. 전쟁이 나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그가 없는 섬에서 다친 사람들을 돌보며 100통도 넘는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을 받지 못한다. 사랑은 힘이 없고 현실은 힘이 세다. 만데라스가 없는 동안 만난 이탈리아 대위 코렐리는 전쟁통에 만돌린을 연주하거나 해변에서 병사들과 함께 여자를 끼고 즐긴다. 펠라기아의 눈에는 비정상적 상황 천지다. 전쟁의 상황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서로에게 총과 칼을 겨누어야 할까. 코렐리는 옳았다. 펠라기아의 눈에 무모하게만 보이던 코렐리가 점점 남자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 둘은 처음으로 서로의 몸을 껴안던 날 더없는 행복을 느낀다.  

전쟁이 잦아들고 승리의 소식을 안고서 펠라기아의 정혼자 만데라스가 돌아온다. 그녀가 보낸 편지를 한껏 안고 돌아와 그녀의 추궁에, 난 읽고 쓰는 법을 배우지 않았어, 라고 대답하는 그는 처음에는 펠라기아가 다시 돌아올 줄로 믿지만 나중에는 코렐리를 살리고 둘의 사랑을 이뤄주는데에 큰 공헌을 한다. 읽고 쓰는 법 대신 멋진 남자의 뒷모습으로 펠라기아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만데라스는 섬의 모닥불과 함께 연주되던 만돌린의 음악보다 훨씬 시리고 멋졌다. 모두를 취하게 한 연주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랑.

살기 위해 섬을 떠났지만 오랫동안 서로의 가슴에 남아있던 코렐리와 펠라기아의 사랑은 그가 보낸 만돌린의 음반 속 곡들처럼 아름답고 아련하게 울려퍼졌다. 전쟁 중의 사랑. 극한의 사랑 이야기는 이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애틋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훈훈함은 코렐리가 연주하는 만돌린의 은은한 선율에서 찾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섬은 다시 섬이고, 그곳에서 다시 그들이 살아갈 것이다. 폐허를 딪고 일어선 희망처럼, 다시 찾아온 사랑처럼, 죽지 않고 살아남은 축복처럼 그렇게. 모든 것에 이유가 있듯, 그들이 살아남은 데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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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7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7 1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1-11-27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줄거리와 느낌이 아주 절묘하게 섞인 멋진 리뷰입니다 ㅠㅠㅠ
저는 언제쯤 이런 리뷰를 써볼수가 있을까요... 부럽습니다 ㅋㅋㅋ

아이리시스 2011-11-28 00:56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이 열 살 더 먹으면 이것보다 100만배 훌륭한 리뷰를 쓸 수 있을 거예요. 게다가 이 리뷰는 칭찬받을 만한 리뷰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 소이진님은 역시 귀염둥이!@.@ 근데 사진.. 소이진님 아닌거죠? 저는 첨에 저게 우타노 쇼고인 줄 알았다는..( '') 미안..ㅜㅜ

노이에자이트 2011-11-2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합니다.이 영화에서 독일군이 이탈리아군을 학살하는 장면은 어떻게 나옵니까?

아이리시스 2011-11-28 01:00   좋아요 0 | URL
네, 반갑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 부분이 하이라이트라고 저는 생각을.. 좀 뜬금없이 놀라서요. 이전에 전쟁이 끝났다는 여러 명분으로 무기들을 압수합니다. 코렐리 대위가 반발하는데도요. 윗선에서 타협이 끝나고 모두 무기를 빼앗긴 상태에서 공지사항이 있다는 이유로 한데 모읍니다. 그리고는 다 넋빼놓고 있을 때에 곳곳에 숨어있던 독일군이 갈긴 총에 모두 즉사해요. 다행히 다른 병사와 함께 엎어져있던 코렐리만 살아남아서 여기 나오는 만데라스가 숨쉬며 살아남은 그를 발견하고는 펠라기에에게 데려다줍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1-28 22:15   좋아요 0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전쟁 말기에 독일군에 맞싸운 이탈리아 저항운동을 부각시키는 편이라 독일의 잔학성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리시스 2011-11-29 14: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탈리아 영화도 아닌데 독일을 잔학하게 그렸구나..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것만 보면 노이에자이트님은 이 영화의 핵심을 완전 훅 찌르신 거.. (이 영화가 좀 뻔하긴 해도)

노이에자이트 2011-11-29 15:55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2차대전 때 독일군의 침략을 직접 받은 나라가 아니라서 독일에 대해 관대한 것 같아요.직접 독일군의 점령을 받았거나 교전했던 나라들은 아직도 독일에 대한 원한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요즘 그리스에서 독일을 나치라고 욕하는 정서가 다시 터져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거에요.

아이리시스 2011-11-29 19:31   좋아요 0 | URL
요즘 그리스에서 그러고 있군요. 저는 그래서 이모저모 독일이 싫어가지고 여행루트에서 빼는 실수를 저질렀었어요. 프랑크푸르트에 내렸지만 그냥 통과만.. 하이델부르크에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아직도 독일에 대한 인상은 호기심이나 궁금증보다는 이상하게 벽,답답.. 이런 것들만 생각이 나요. 그게 가해자의 국가라는 인식이 제게도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괴테가 있는데..( '')

노이에자이트 2011-11-30 16:10   좋아요 0 | URL
독일의 자연은 아름답습니다.남부의 알프스 지대는 호수도 이쁘고요...프랑크푸르트 가까이 슈바르츠발트가 있죠? 산림녹화의 상징으로 유명하더군요.

아이리시스 2011-11-30 21:26   좋아요 0 | URL
슈바르츠발트는 산맥이네요. 도시인 줄 알았다는.. 말만 들어도 예쁘네요. 한국작가들이 소설쓸 때 독일배경으로 쓴 것들이 몇몇(그래도 꽤) 있는데 다른 곳이 아니라 독일인 것도 모두 이유가 있을 듯 해요. 공지영의 <별들의 들판>은 독일 배경으로 한 연작소설이었고, 김영하의 <여행자>에도 하이델베르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실려있고, 아까는 신경숙 신작 <모르는 여인들> 읽는데 또 독일이 나왔어요. 프랑크푸르트가 나와서.. 아.. 이게 노이에자이트님과 인연인가.. 뭐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1-12-01 16:10   좋아요 0 | URL
슈바르츠발트는 검은 숲이란 뜻의 독일어입니다.드넓은 삼림지대지요.그다지 높지 않은 산악지대에 펼쳐져 있습니다.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많이 간다고 하네요.

지난 달 KBS '영상앨범 산'에서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 알프스를 보여주는데 호수와 산이 조화를 이루어 멋있더라고요.

배수아 씨도 독일 배경의 소설이 있을 거에요.좀 나이든 분으로 강유일 씨 소설이 있고요...공지영 씨는 수도원 순례라는 책이 있던데 아무래도 독일에 수도원이 많다 보니 독일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1-12-01 17:14   좋아요 0 | URL
검은숲. 우와, 어디든 한국사람 없는 곳 없다는ㅋㅋㅋ 영상앨범 산은 우리나라만 다루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이것저것 힌트 주시니 많은 도움이 됩니다.^^ 독일에 수도원이 많은 줄은 몰랐네요. 수도하는 나라가 예전에는 왜.. 그랬는지..( '') 반성인가요?
 
피고인 - [할인행사]
조나단 캐플란 감독, 조디 포스터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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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집단강간씬을 포스터는 무려 스물 일곱살에 찍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도 하고 있기 힘든 포즈로, 가장 예쁜 나이에, 가장 눈부신 나이에 입은 상처는 본인이 상대에게 어떠한 상처를 얼만큼 줬는지도 모르는 인간들에게 징역형을 내린다 해서 회복될 일이 아니었다. 몸에 생긴 상처가 아물 때에도 희미한 흉터를 남긴다. 하물며 마음에 찍힌 낙인 같은 상처는 그녀를 황폐하게 만들 것이다. 올바른 사랑과 믿음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세심히 돌봐야 한다. 나는 여자다. 누구보다 그녀를 알 수 있고 이해해야 하는 여자.

그녀의 검사로 배정된 캐서린조차 처음에는 사라가 입은 피해를 마주보지 않는다. 그녀는 애인과 동거중인데다 종종 마약과 술에 쩔어있고, 야한 옷차림으로 다니며 사내들을 유혹한다는 이유였다. 사라가 입은 강간은 명백했으나 그녀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캐서린조차 믿어의심치 않는다. 증거는 없고, 피해는 입증할 수 없어 답답하던 즈음, 포기하고 무너지는 사라를 찾아간 캐서린은 다시 한 번 사라를 돕기로 한다. 그녀를 강간한 이들과 형량협상을 끝마친 뒤지만, 집단강간인만큼 강간을 부추기고 방조한 이들의 죄를 밝히면 다시 한 번 강간범들의 형량 또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당한 상처도 아픈데 소금 뿌리는 것마냥 증언대에 서서 자신의 피해를 고스란히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애달프다. 이것 또한 분노다.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 아직도 남자로 인해 여자가 피해입을 수 있는 분야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여성차별이라든지, 강간이라든지, 폭행이라든지. 남자들은 모른다. 본인들을 세상에 낳아준 것도 여자라는 걸.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의 표제작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집안에서 힘이 가장 센 오빠가 아빠 위에 존재하지만 엄마 밑에 존재하므로 집안 서열은 그렇게 잡힌다. 이건 거의 본능적이다. 본디 여자는 남자에게 힘으로 밀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련의 피해들. 남자와 여자가 존재하는 한 인류가 멸종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여성 피해 사건들. 그 반대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사라는 오랜 시간 술집의 온갖 남자가 박수치며 부추기고 희롱하며 지켜보는 데에서 술집 안 게임대 위에 강제로 눕혀진 채 손과 발이 결박된 채로 강간을 당했다. 울부짖으며 소리쳤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녀를 도와주는 이 없다. 그녀의 피해 사실을 신고한 학생 또한 경악해하면서도 정작 말릴 엄두를 내지는 못한다. 술집에서 서빙하던 사라의 친구도 구석에서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폭행 장면을 보고는 도망치듯 떠나버린다. 남자들의 집단광기는 무서웠다. 그들에게 강간은 성욕을 채우려는 욕심이기보다 여자를 정복하려는 게임이었다. 서로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무기를 아무렇게나 꺼내보이며 자랑하는 저질스런 게임이었다.   

사라의 분노 앞에 당당할 자 없다. 나라면, 그 자리에서 당당히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있었을까. 그럴 거라는 확신도 그 반대의 확신도 없다. 나도 두려웠을 것이다. 나도 사라만큼 짧은 스커트를 입고 술에 취한 채로 남자들 앞에서 가슴과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여자라면, 어쩌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강간을 당해도 마땅하다는 뜻은 아니다. 포스터는 신들린 것처럼 연기했다. 특히 캐서린이 강간범들과 형량협상을 해주고 돌아왔을 때, 그녀를 향해 내뱉는 사라의 분노와 실망, 깨진 신뢰를 표현할 때 탁월했다. 포스터는 고작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그녀가 부러워질 만큼 뛰어난 연기였다.

<피고인>은 1988년에 만들어졌고 여성에 대한 집단강간의 법정영화로 분류되지만 충격적인 강간씬을 빼고나면 포스터의 연기를 감상하는 게 다다. 일직선으로 가는 스토리에다 지극히 뻔한 법정영화라 임팩트가 부족하다. 짧고 임팩트 있게 쓰자면, 여자는 언제나 자신의 삶을 강하고 풍부하고 보호받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그건 권리이자 의무이고,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건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자신의 소중함 때문이어야 한다. 단 한 번, 사라의 삶이 부서진 건 맞지만 다시 얼마든지 빛날 수 있는 이유다. 그녀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서 싸우려는 용기를 냈고, 맞서 싸워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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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1-1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엔 이 영화가 무척 충격적이었는데, 요샌 뉴스가 더 충격적이예요.
모든 피해자들은 어떤 삶을 견디고 있을까요...생각만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1-11-11 14:17   좋아요 0 | URL
네, 이런 걸 재미로 봐넘기다니, 저는 [로앤오더-성범죄전담반] 즐겨보는데 모든 성범죄를 종류별로 보여주는 데에는 탁월한 드라마예요. 심지어 거기 여형사는 설정 자체가 엄마가 강간을 당해 거기서 생겨난 아이로 나와요. 어른이 되고 그런 강간범들을 잡아들이는 일을 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끊임없이 트라우마에 시달리죠. 그런데 저는 처음에 신세계를 만난 것처럼 csi보다 더더더 재밌게 봤어요. 성범죄에 굉장히 무거운 형량을 내리는 미국이 합리적으로 보이고, 왜 저런 짓을 하는 가해자들이 자꾸 생겨날까 싶기도 하구요. 맞다, 현맘님. 할 말은 서재로 가서.^^

2011-11-11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1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1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2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1-11-11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허... 마지막 사진만 봐도 영화의 전체 줄거리가 상상이 가는군요... 전에 이런 비슷한 영화를 본 적 있는데, 이 영화는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아이리시스 2011-11-12 01:01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태어나기도 전 영화니 볼 필요 없다는ㅋㅋㅋ(무슨 논리인지..) 그리고 미성년자 관람불가잖아요. 보지 마요, 알았죠? 선생님.ㅋㅋㅋ 빼빼로 받았어요, 아님 먹었어요? 어른 되면 그런 거 무관심해져서..

이진 2011-11-13 23:02   좋아요 0 | URL
ㅋㅋㅋ 빼빼로 아는 동생한테 받아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먹고나자 마자 빼빼로 벌레라는 충격적 기사를 읽었죠.. 웩 ㅠㅠㅠㅠㅠ

아이리시스 2011-11-13 23:21   좋아요 0 | URL
빼빼로 그래도 먹고 싶어요. 저도 그 기사를 보긴 했는데, 하하. 물티슈도 더럽다던데, 우린 우리 몸을 얼마나 죽여가며 살아가는 걸까요.ㅜㅜ

2011-11-12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2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1-11-12 17:08   좋아요 0 | URL
레이첼 와이즈도 매우 좋아하죠. 예~ 정말 좋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배우가 별로 없어요..--;;
레이첼 와이즈, 케이트 윈슬릿, 케이트 베킨세일, 나탈리 포트만..정도에요~ 얘네들 아주아주 애정하죠^^ 특히 레이첼과 케이트 윈슬릿은 조디의 대체자입니다.ㅎㅎ 조디의 부재중 발견한 여인네들..ㅋㅋ

아이리시스 2011-11-13 00:31   좋아요 0 | URL
완전 많은데.. 다섯이잖아욧!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그 진부한 줄리아 로버츠 빼고나면 캐서린 제타 존스, 페넬로페 크루즈 좋아하고 줄리 델피도 좋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의 영화를 모조리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ㅜㅜ 뭐 이런.. 논리가 있는지.. 그럼 왜 좋은 건지, 푸하하하.

페크pek0501 2011-11-13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가슴 아파서 이런 영화 못 봐요. 슬픔을 가진 분노를 느끼면서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ㅋ 그래서 도가니도 못 보겠더라고요. 마음이 약한 편.

세상엔 슬픈 일들이, 부당한 일들이 왜 이리 많이 일어나는지...

아이리시스 2011-11-13 23:15   좋아요 0 | URL
이왕이면 나쁜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다 믿고서 맘 편히 사는 게 중요하겠지만요. 그래서 내 일이 아니다 싶어 타인의 슬픔과 아픔에 귀를 닫아서도 곤란할 것 같아요. 제가 아프고 다치고 무섭고 그런 영화로서의 현실을 종종 즐겨보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는 영화는 극적인 재미가 가장 중요한 거지만요. 현실적 생활상은 드라마로, 비현실적 상황에 대한 대리만족은 영화로 채우는 것 같아요. 책은 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을 엮는 과도기적 다리같은 거랄까요..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함부로 비난을 퍼부을 수가 없죠. 한 가지가 맘에 안 든다고 이런 거 안썼으면, 안만들었으면 그런 건 책임감 없는 발언이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렇다면 별 한 개짜리 책이나 영화를 골라읽은 본인의 안목도 문제인 거고..^^ 아.. 근데 누가봐도 대충 내는 책이나 영화는 누가봐도 알 수 있으니 그런 걸 말하는 건 아닙니다. 이게 오해의 소지가 많네요.ㅋㅋㅋ

페크pek0501 2011-11-14 12:52   좋아요 0 | URL
피고인 같은 영화 많이 만들어져야 해요. 아이리시스님처럼 열심히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글로 쓰는 작업을 하는 사람도 꼭 필요하고요. 이번 도가니 영화처럼 사회 이슈가 되어야 법 개선 등의 해결책도 나오는 것이니까 우리 모두 남의 불행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해요.

다만 저는 불편한 걸 잘 못 참아서 못 본다는 뜻이었어요.(오해 없으시길...) 티브이에서 아프리카 빈민국의 아이들이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리고 병들어 있는 모습도 보다가 채널을 돌리게 돼요.
그 대신 저, '유니세프'에 매달 얼마씩 내고 있어요. 자동이체해 놔서. (이거 자랑질인가요, ㅋ)
남의 비극을 못 본다는 게 세상에 대한 무관심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기 위해 자랑질했으니 이해 바람.

참고로, 웃긴 얘기 하나. 7광구 라는 영화 봤을 때 주인공이 괴물에게 다칠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그 스트레스로 영화관을 나올 때 두통을 느꼈어요. 이제 그런 영화 다신 안 볼 거예요. ㅋㅋ

좋은 하루 되세요.

아이리시스 2011-11-14 14:36   좋아요 0 | URL
오해 안했습니다, 저. 그럴 리가 있나요. 저도 그런 거 있어요. 저는 대부분 비현실로 봐넘기는 것 같지만(험한 일을 별로 안당해봐서겠지요) 감정이입하는 게 몇 개 있어요. 동물학대,아동학대,노인학대. 쓸어서 쓰레기장에 던져야 한다고 생각을;; 힘은 약한 상대에게 과시하라고 있는 게 아니죠. '유니세프' 말만 하지 실천은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가끔, 아주 간혹, 보내요. 그저께 사랑의 리퀘스트에 쓰레기마을 나왔는데, 아버지가 이주노동자로 일하러 갔다가 그 나라 실업자들에 의해 화형당한 사건. 딸이 아빠 무덤에 꽃과 나무를 심고 매일 물을 주더라고요. 저는 뭐 보면서 잘 안우는데 갑자기 눈물이...ㅜㅜ

주말 잘 보내셨어요, 페크님?

양철나무꾼 2011-11-14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장르소설은 즐겨보는데, 이런 류의 영화는 못 봐요.
그러고 보면 제가 글자를 시각화 만드는 상상력이 영 부족한가 본데...차라리 다행이다 싶어요.
정말 우연히 이런 류의 영화나 드라마 보게 되면 식은 땀 주르르, 눈물 줄줄...몇 날 몇 일을 일이 손에 안 잡혀서 말이죠~ㅠ.ㅠ

아이리시스 2011-11-14 14:4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저는 많은 분들 불편하게 하는 거군요. 안봐도 아는 현실을 굳이 들춰내서 리뷰랑 페이퍼 쓰고 막ㅋㅋㅋ 세상을 많이 알수록 무서운 것이 많아지고, 무서운 것이 많아질수록 이런 영화나 책 보기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요. 저는 책보면 더 무서운데, 완전 반대. 그럼 저는 상상력은 뛰어난데 이미 시각화된 건 그러려니 하는 거네요. 어제는 어느 영화 첫장면에서 차가 일부러 사람을 한 번 치니까 날아가면서 다리가 너덜너덜..ㅜㅜ 아.. 나 이런 거 왜본 거야..( '')
 
미드나잇 인 파리 - Midnight in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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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파리가 존재하는데 세상의 어디든 딴 데 살겠다는 건 늘 내겐 이상한 것이었다. 파블로와 마티스와의 저녁식사. 파블로는 위대한 미술가였지만 마티스는 위대한 화가였다. 파리는 여름이다. 자기 연인을 마주하고 앉는 건 어떠했던가. '막심'에서 그 최고 시간대에 방금 만난 미국 작가와 사랑에 빠졌다. 이름은 '질 펜더'. 말로 듣던 순간의 마법이 내게 벌어졌다. 피카소와 헤밍웨이 둘 다 날 사랑함을 안다. 하지만 뭐든, 설명이 안 된다. 설명이 안 되는 이유로 마음으로는 '질'에게 끌린다. 아마 그가 순수하고 격식없기 때문에. 슬픈 인생이 늘 그렇듯 그는 '이네즈'란 여자와 결혼할 예정이다. 난 꿈을 꾸었다. 그가 와서 내게 작은 선물로 귀걸이를 주고 같이 자는 꿈을. (아드리아나의 책)

 
   

 

  

파리로 여행 온 소설가 지망생 '질 펜더' 그러니까 '길'은 여느 때처럼 파리의 길을 걷다 한 노점상에서 아드리아나의 책을 발견한다. 프랑스어를 해석하기 위해 며칠 전 만났던 뮤지엄 큐레이터를 찾아가고, 그녀는 친절하게 벤치에 앉아 그에게 책을 읽어준다. 파블로와 헤밍웨이 둘 모두에게 깊은 사랑을 받던, 최고 예술가들의 뮤즈였던 그녀가 사실은 그를 사랑하고 있었음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그 사실을 '길'이 알게 된 순간이기도 하고.   

이네즈와의 결혼을 앞두고 그녀의 부모님과 함께 파리로 여행 온 그에게 파리는 가이드를 앞세워 손을 마주 잡고 나들이 다녀야 할 곳이 아니다. 이네즈의 친구 커플을 만나 넷이 베르사유나 미술관에 갔을 때도 길은 폴의 그림해석에 반기를 들고, 이네즈가 가고 싶다는 장소, 파티, 약속 모두를 거절하려 열심이다. 마지못해 따라 나설 때도 있지만 그에게 메뉴얼식 틀에 박힌 파리관광은 별 매력이 없다. 와인시음으로 잔뜩 취한 걸음을 하고 이네즈가 가자는 댄스파티를 거절한 후 혼자 걷던 길은 어느 거리에서 자정을 맞이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 그만의 파리가 시작된 것.

   
 

"두 세계에 있는 거요. 별 이상한 거 없소." (달리) 

 
   

장난감처럼 생긴 자동차 한 대가 '길'의 앞에 멈춘다. 그더러 얼른 올라타라고 부축이는 일련의 사람들. 여러 사람의 환대에 무슨 영문인 지도 모른 채 올라탄 그가 도착한 곳은 장 콕토가 주최한 파티. 먼저 말을 걸어온 사람은 젤다. 그녀는 스콧 (피츠제럴드)가 미친듯이 끌려들어가고 있는 중의 매력적인 여자다. 자유롭고 거침없고 아름답다. 스콧을 통해 헤밍웨이를 만나고, '향수 가게에서 일하는 남자(옛 것과 추억의 물건이 있는 곳)'에 관한 자신의 소설을 이야기하며 평가를 부탁한다. 헤밍웨이는 단박에 거절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그게 나쁘면 나쁜 글이 싫으니까, 그게 좋으면 질투가 나 더 싫소. 딴 작가의 의견은 필요없는 거요. 작가들은 경쟁을 하오." (헤밍웨이) 

 
   

좋은 주제가 아니라고 자책하듯 늘어놓는 길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형편없는 주제는 없소. 스토리가 진실하고, 산문체가 깔끔하고 솔직하고, 억압받으며 용기와 품위를 단언하면."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마침내 거트루드 스타인을 소개할테니 그녀에게 읽혀보라며 데려간다. 그곳에서 그녀와 한 초상화를 놓고 언쟁하던 파블로와 파블로가 그린 초상화의 모델이자 애인이자 아름다운 여인인 아드리아나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코코샤넬의 패션을 배우고, 짙은 검은 눈의 홀린듯한 유태계 이탈리아 화가에게 이끌려 파리에 왔다고 했다. 여기 머문 시간을 아름다운 6개월이라고도 했다.  

  

'그들의 파티장'으로 시간여행을 한 다음날 길은 이네즈를 데리고 거기에 가기로 마음 먹는다. 같은 거리에 나가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자동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네즈는 투덜대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참 사랑스럽고 지혜롭다. 길과 이네즈는 많이 다르지만 바로 그 다름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예쁜 커플이다. 길의 제안에 이네즈가, 이네즈의 제안에 길이 자꾸 태클 건 이야기만 했기 때문에 행여 하는 노파심에 털어놓는다. 이네즈가 돌아간 직후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퍼지고 그때 어김없이 자동차가 나타난다. 길은 자정에만 나타나는 자동차, 자신의 환상적 여행이 자정의 시간열차를 타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는 매일밤 바로 그 거리에 나가서 자정을 기다린다. 어김없이 자동차가 오면 거기에 올라타서 자기 소설을 평가해주는 거트루드 스타인을 만난다. 달리와 엘리엇, 헤밍웨이와 파블로, 운명의 뮤즈 아드리아나를 만난다.  

이네즈 친구 커플, 이네즈 부모님과 미술관, 식당, 파티에 가지만 길의 온 신경은 다른 시간에 가 있다. 환상처럼 펼쳐지던 마법 같은 순간의 시간여행이 현실성을 획득한 것은 이 세계의 길이 파리의 노점상에서 아드리아나의 책을 발견한 순간이다. 늘 가족모임과 이네즈의 계획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이상하게 여기고 미행을 붙이는 장인, 아드리아나의 마음을 확인하자마자 이네즈에게 선물했던 보석을 훔쳐 그녀에게로 가려는 길, 들통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보석을 제자리에 넣고, 아드리아나를 위한 보석을 새로 산다. 가장 황홀한 순간, 이 영화는 파리를 통해 사랑을 말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말한다. 지금 누구를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은 어떤 책을 쓰고 있나요? 언제가 가장 행복할까요?

   
 

"우린 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우주 속 우리 자리에 질문해요. 예술가의 임무는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존재의 공허함에 대한 해독제를 찾는 거예요." (거트루드 스타인) 

 
   

 

마침내 다시 아드리아나를 만난 길은 그녀와 함께 또다른 시간여행을 떠난다. 이번에는 마차를 타고. 다시 도착한 '막심'에서 아드리아나와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얘기했던 '아름다운 시대'를 만난다. 1871-1914년의 서유럽 평화번영시기. 길과 아드리아나는 '아름다운 시대'에서 로트렉, 고갱, 드가를 만나고 고갱은 이렇게 말한다.   

   
  "이 세대는 텅비고 상상력이 없어요. 살았다면 차라리 르네상스 시대가 낫죠." (고갱)   
   

 

하지만 아드리아나는 이 '아름다운 시대'가 '황금 시대'라고 믿어버린다. 급기야 본인의 현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도. 자신이 온 1920년대를 '현재'라서 지루하다는 아드리아나와, 그녀가 '황금 시대'라 믿는 지금보다 르네상스 시대가 더 낫다는 '아름다운 시대' 예술가들. 마침내 길은 깨닫는다.   

   
  "그게 작가들의 문제죠. 당신들은 말이 그득해요. 하지만 난 감정에 충실해요. 그래서 난 파리에 남아 살래요. 가장 아름다운 때에." (아드리아나)   
   

아드리아나와 길의 논쟁이 바로 소설과 글을 쓰는 내내 길이 직면해왔던, 맞닥뜨렸던 실존과 환상의 문제였다. 길은 비로소 아드리아나와 자기가 다르다는 것, 자기가 원해온 것,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알아차린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과거 또는 미래를 향한 갈망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내가 정말 가치있는 걸 쓰고 싶다면 내 환상은 없애야죠. 내가 과거에 행복했겠다는 건, 그건 환상인거죠. (길)  

 
   

 

길과 아드리아나는 작별한다. 각자 자신들이 살고 싶은 시대에 살 자유가 있기 때문에. 현재로 돌아간 길은 이네사에게 파리에 계속 머물겠다 선언하고 이네사와 파국을 맞는다. 파리의 자정에 강변을 새로운 느낌으로 걷던 그는 콜 포터의 앨범을 팔던 가브리엘과 만난다. 그리고 파리의 빗속을 가볍게 걷는다. 영화는 끝나지만 두 사람의 뒷모습과 파리의 역사는 새로 시작될 것 같다.  

파리의 빗속은 눈부시게 예쁘고, 파리에 울리는 자정의 종소리는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누군가와 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거리의 걸음마다 빛이 분출하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한 것이 파리였는지, 예술가들이었는지, 소설인지, 그림인지, 현재인지 모를만큼 모든 것이 이 세계에 녹아있다. 파리가 더 예쁜 게 낮인지 밤인지 나 역시 모른다. 오래 전 아저씨는 파리가 짧은 시간 여행하기에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오랜 시간을 살기에는 그다지 감동을 느낄 수 없는 도시라고 했었다. 프랑스에는 워낙 예쁜 도시가 많아서 휴가철이면 정작 파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서울보다 훨씬 작고 좁은 도시라는 것도 안다.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해서 오늘날에도 수많은 예술가들의 낙원이라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파리는 그냥 파리다. 홀린 듯한 이 기분은 뭘까. 여전히 남아있는 여운을 어떻게 떨칠까.  

나는 그냥 당신과 파리를 걷고 싶을 뿐이었다. 사소한 것들이 가끔 큰 틀에서 어긋난다던 길의 이네사와의 관계 고백은 나와 당신에게도 해당되는 말. 파리는 슬픈 눈으로, 아름다운 불빛으로, 따스한 웃음소리로, 축축한 공중전화박스로, 쌀쌀하고 어두운 벤치와 수없이 많은 와인상점으로 기억될 뿐이다. 여전히 그립고 낯선 곳.  

 

처음에는 예술가들을 따라 가보고 싶었다. 소설가와 예술가 그리고 음악. 하지만 금새 마음이 변했다. 예술가보다, 파리보다, 나와 현재가 더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이 곳이 파리는 아니지만, 1920년대도 아니고, 1890년대(아름다운 시대)도 아니고, 르네상스 시대도 아니지만, 바로 이 곳, 여기가 나의 황금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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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02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까지... 지금 과제 때문에 바빠서 죽을 지경이지만, 주말에는 꼭 이 영화 볼 거에요!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데, 이번에는 파리가 땡기네요.
[빨간 머리 앤]을 읽으며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꼭 오래오래 살아야지, 생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
영화 보고 나서 우리 더 이야기 나눠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1-11-03 13:39   좋아요 0 | URL
얼른 과제를 끝마쳐야 해요. 맘껏 즐기려면. 저는 [빨강 머리 앤] 만큼 [들장미 소녀 캔디]도 좋아요. 프린스 에드워드 섬은 캐나다죠? 제 친구 중에도 캐나다를 흠모하는 애 하나 있는데.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다녀와서 다시 캐나다에 가자고 노래하던.. 그러나 지금은 취업해서 잘 지내고 있어요. 목표를 현실로 만드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미드나잇 인 파리] 주말에 보는 거예요?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던데, 그래도 파리와 시간여행은 여전히 낭만적이에요. 수다쟁이님이 막 좋아할 지는 확신이 없지만, 저는 [러브 송 포 바비 롱] 구해가지고 그거 볼거예요. 수다쟁이님이 얘기한 [레이디호크]는 자막이 계속 없어.( '')

마녀고양이 2011-11-03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파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완전 꿈 같은 이야기, 아무래도 나 이젠 바닥인가봐요,
너무너무너무 암울해요-, 호홋.

2011-11-03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1-03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 가고 싶다아.......ㅠ.ㅠ
바쁠 때 그래요. 그냥 여기서 다 스톱!하고 그냥 훌쩍 떠났음 좋겠어요.
파리는 왠지 항상 축축한 느낌이예요. 왜 그렇죠? ㅎㅎ
정작 그 곳은 매연도 심하고 거리도 더러워서 상상외로 낭만적이지 않은데
두고두고 생각나고 가고 싶은 곳이 되어 버렸어요...

아이리시스 2011-11-03 22:55   좋아요 0 | URL
그죠? 가고싶죠? 저도요...........ㅠㅠ
하지만 저는 로마를 좋아해요. 두 군데 중에 골라라 하면 저는 로마로 갑니다. 파리는 예쁘고 낭만적이지만 다른 세상 같지는 않은데 로마는 다른 세상, 다른 시대, 다른 도시에 온 것 같아서요. 자꾸 유물,유적이 나와서 처치곤란이라 지하철 공사를 안하는 로마. 사실은 이탈리아를 좋아하는 거지만요. 원래는 더 심오하고 주관적인 이유가 있지만 그건 비밀로 할게요.ㅋㅋㅋ

저는 어느 순간 파리 하면 현맘님이 딱 생각날 것 같아요. 너무 어울려요. 왤까, 히히히히히히.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1-03 23:52   좋아요 0 | URL
심오하고 주관적인 이유...비밀로 하다니. 궁금해서 죽을지도 몰라요..ㅋㅋ
파리하면 왜 제가 떠올라요? 거참...더러워서 어울려요? (샤워는 아직도 고민중..ㅋㅋㅋ)

아이리시스 2011-11-04 00:09   좋아요 0 | URL
열거하면 너무 많아서 구차해보일까봐 그냥 심오하고 주관적인 이유로 통일한 건데 두 가지만 알려드리면, 하하하. 저는 고대 그리스, 중세 로마에 대한 환상과 피렌체 예술가들에 대한 환상과 지적 갈망이 큰데, 그리스는 되도안한 국민투표로 주가폭락을 다시 몰고 오고 있으므로 패스. 너무 염치 없어요. 산토리니로 신혼여행 가고 싶은 소망 바꾸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 아하하. 미드에 [The O.C]라고 있는데 그걸 좋아해서요. 해변도 좋고 타락도 좋고 거기서는 뭘 해도 다 좋겠더라고요.ㅋㅋㅋ

또 하나는 [로마의 휴일]과 젤라또 때문인데, 아..... 전혀 심오하지 않다, 수습 불가능.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씻어요. 더러워서 닮았다는 건 아니에요. 더러운 걸로 치자면 제가 가본 유럽 중에는 피렌체가 으뜸. 아 거긴 진짜 청소해주고 싶었어요.( '')

그나저나 오늘 알라딘 너무 많이 들어왔어요. 화장품, 포스트잇, 교재, 책 그런 것들 보다가 갑자기 초콜릿이랑 레깅스 스타킹, 라면 그런 걸로 옮겨가는 중. 정작 돈은 한정되어서 주문도 못했어요. 푸하하.

아이리시스 2011-11-04 00:23   좋아요 0 | URL
아참, 현맘님. 요즘 뉴스 보니까 미국도 이란에게 전쟁 걸려고 제동중인 것 같던데. 바로 [세계는 왜 싸우는가]에 나오는 시리아와 레바논의 헤즈볼라의 보복이 두려워 망설이고 있다 뭐 그런 내용. 전쟁은 안했으면 좋겠어요. 이란이 위험한 나라(석유와 핵 보유국)가 된 게 그들의 욕심 때문인지 미국,영국,중국 등의 서방 선진국 때문인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오바마는 부시와 다른 외교를 할 줄 알았는데 밖에서 보는 제 눈에는 그저 미국 대통령일 뿐이에요. 한 나라를 이끈다는 게 도덕,의지,열정만 가지고는 안되는 일. 뭐 남의 나라 걱정할 여유없고..................... 이 긴 댓글의 이유는 캘리포니아도 안되겠다............. 뭐 이런 생각이 뒤늦게 들어서입니다.ㅋㅋㅋ 라오스 어때요, 라오스. 몽골도 좋고. 저는 푸켓,보라카이,발리,하와이,팔라우 이런 데는 식상할 것 같아서 오래 전부터 혼자 정해놨어요. 푸하하하. 진짜 웃기죠? 웃기면 됐죠, 뭐.ㅋㅋㅋ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1-04 20:50   좋아요 0 | URL
우리 여기서도 수다를 했군요..ㅎㅎㅎ
오바마건, 부시건...미국에서 대통령이란 결국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할 수 밖에 없는 자리겠죠.
미국이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건 진짜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예요.

아이리시스 2011-11-04 23:47   좋아요 0 | URL
수다, 저만 한거죠.ㅋㅋㅋ 신혼여행의 로망이 곧이어 미국과 오바마에 대한 까임으로.. 저는 비판이란 걸 할 수 있을만큼 미국 잘 모르는데요. 미국 미안..( '') 그래도 보내준다면 당장 가겠어요. 현맘님은 타국에서 살기 힘들다 하시지만. 저는 가보고 결정하겠습니다, 푸하하.

동생이 갑자기 전화해서 밥 해놓으라고, 갑자기 쳐들어와서 밥 달라고 해서. 간만에 계란말이를 만드는데 이게 진짜 힘든 요리예요. 저는 식당도 못할 듯.ㅋㅋㅋ 마음이 텅빈 것 같아 쉴틈 없이 먹고 있는데 몸무게가 심히...............

yamoo 2011-11-04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이거, 파리시를 보기 위해서도 한번쯤은 봐주어야할 영화 같아욤. 배우들이 갠적 취향과 좀 멀어서 고민이 되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이리시스 2011-11-04 01:45   좋아요 0 | URL
야무님, 저 아직 안 자고 있어요.( '') 제가 야무님 서재가 익숙해가지고 인사도 없이 덜컥 댓글을 썼다고 다음날 생각했어요. 한 번은 남겼겠지 싶기도 했는데 아니어서 살짝 민망했어요^^;

배우하니까 얘긴데 저 남자 5세+훈이랑 닮았어요. 여자는 윤미래를 닮아서 계속 둘이 안고 있는 상상을ㅋㅋㅋ 몰입이 안되더라고요. 사진에서도 티나지 않아요? 진짜 똑같아요, 제 눈에는.

파리 시는 초반이 다고, 계속 시간여행을 하는데, 제가 페이퍼에 온갖 줄거리를 다 까발렸기 때문에.. 보실 분들에겐 죄송해요. 푸하하. 야무님 취향의 배우들은 어떤 분입니까?

페크pek0501 2011-11-04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정말 가치있는 걸 쓰고 싶다면 내 환상은 없애야죠." - 그런데 모든 건 환상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에요. 원하는 직업조차도 그 직업에 대한 환상이 없다면 직업에 대한 꿈도 없을 듯해요. 사랑이라는 것도 환상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

도대체 님은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길래, 이렇게 열정적으로 글을 쓰시는지?... 여기서 그 열정을 얻어 갑니다. 저도 오늘 글을 써야겠어요. 날씨도 흐린데... ㅋㅋ

아이리시스 2011-11-04 17:05   좋아요 0 | URL
페크님이 원래 저 예뻐하시기 때문에 엄마 마음으로 봐주셔서 그래요. 별로 멋진 글도 아니고 쓸 때 막 쓰고 돌아서서 내심 후회하고 그런 스타일.

직업도 그래요. 저는 제 환상을 완벽하게 채울 수 있다고 믿어지는 일을 골랐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아닐 거란 걸 언제나 알고 있어요. 글도, 사랑도, 직업도 모두 어느 정도의 환상을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 맞는 말 같아요. 저마다 어느 정도의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도요. 이게 열정인지는 모르지만 페크님께 드릴게요. 행복과 함께.

여긴 날씨 좋아요, 아직까지는.^^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섬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환하게 웃는 흑백사진 속 배경, 거기에 섬이 있었다. 비록 모니터상이었지만 매료되는 건 순간이었다. 섬은 이 세상이면서 동시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비로운 공간. 그때부터 여자는 아무도 모르게 마음 속에 섬을 간직했다. 어디에 존재하는 줄도 모르면서. 섬이 왜 좋은지, 섬에 가두고 싶은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제 안에서 서서히 무너지던 것들이 어떤 감정인지도 모르면서. 그에게 도착을 전할 때, 당연한 그의 자연스런 인사에 상처받던 날처럼 하염없이 서러워졌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었다. 여자는 말했다. 아저씨는 나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원래 행복한 사람 같아요. 내가 해줄 게 별로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행복해요.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을 듣는 대신 여자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메신저를 끄고나서 섬을 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다. 그러니까 섬은, 하물며 '섬'일까. 여자는 종종 생각한다. 여기도 저기도 아닌, 어느 낯선 곳, 섬은 그 이상이하도 아니란 것을.  

뒤에서 남자가 갑자기 안았을 때 여자는 놀라지 않았다. 베르사유에 다녀온 날이었다. 갑자기 내린 비에 하루종일 젖었다 말랐다 했던 것 같다. 이후 여자는 그를 생각하면 섬이 떠올랐다. 섬 같은 사람. 화이트 초콜릿처럼 달콤한 목소리를 가진 남자. 첫인상. 그후로도 오랫동안 여자는 남자와의 첫만남 따위를 회상하지는 않았다. 회상될만큼의 이야기가 없었다. 멈춰진 시간, 정지된 화면, 희미한 이미지. 말이 통하지 않는 파리의 작은 지하철역. 드물게 해가 쨍쨍하던 겨울날 오전 아니 오후. 그보다 더 낡은 공중전화. 몇 개의 나라를 거치느라 늘어날 대로 늘어난 짐이 든 노랑 캐리어. 베네치아에서 산 가면. 로마의 과일, 음료, 호두. 기다리던 시간. 설렜던 감정. 퐁네프 다리. 콩코르드 광장,,

아저씨, 나 비행기 놓쳤어요. 여자는 당황한 목소리로 낮에 떠나온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자와 여자는 정확히 열 한살 차이였다. 열한살. 남자가 스무살 때 여자는 아홉 살이었고, 여자가 스물 아홉이면 남자는 마흔이 될 터였다. 그래도 띠동갑은 아니네. 이름모를 네덜란드산 맥주를 마시던 남자가 희미한 미소로 말했다. 하루종일 파리시내를 헤매느라 샤를 드 골 공항에서 길을 잃었던 여자에게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구원이었다. 늦었는데 돌아올 수 있겠어? 어서 와서 자. 밥은 먹었어? 비행기는 연착되고 있었지만 보딩자체가 늦었던 승객을 배려해주지는 않았다. 같은 처지의 일본여자가 말을 걸었다. 어디로 갈 거야? 나는 돌아갈 곳이 있어. 여자는 말한다. 늦은밤, 남자는 라면을 끓였고, 탁자 위에 맥주를 한가득 꺼내놓았다. 대체 비행기를 왜 놓친 거야? 어디 갔었던 거야? 나도 모르겠어요. 지도가.. 지도가.. 여자는 울지는 않았다.  

남자의 목을 잡고 매달린 건 여자였다. 왜 울어. 남자가 말했다. 잘 있어요, 아저씨. 우리 부산 아가씨, 울지말고 뚝. 언제 서울에 올 거예요? 데려다줄게. 남자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올 때보다 가방이 더 무거워졌어. 한국에 도착하면 전화해. 였다.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전화. 놓고 돌아와야 옳았을 미련. 다시 섬. 그때 여자는 혼자 섬에 갔다. 시차와 국제전화, 쓸쓸함, 그런 것들을 버리려고 간 것은 아니었다. 기다려요? 남자는 아니, 하고 대답했다. 나직하고 쓸쓸한 목소리란 걸 여자는 알아챌 수 있었다. 언니는 왜 떠났어요? 춤을 추고 싶어했어. 연극배우였거든. 애기도 있잖아요. 한국에서 부모님이 키우고 있어. 아, 네.. 

기다려요?  

아니.   

그의 진심을 이제와 내가 알 수는 없다. 그건 그때의 욕망이고 열정이었을 뿐. 여전히, 과거형.

가장 못한 것이 오직 다르다는 이유로 널리 쓰일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것도 없고 가장 못한 것도 없다. 이때에 좋은 것이 있고 저때에 좋은 것이 있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것이란 없음을 나도 잘 알지만 이 세상에 일단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이 세상 속에 일단 얼굴을 내밀기로 작정만 하면, 우리는 더할 수 없을 만큼 기묘한 악마의 유혹을 받게 된다. 목숨이 붙어 있는데 왜 안 살아? 왜 제일 좋은 걸 안 골라? 하고 귀에다 속살거리는 악마 말이다. 이렇게 되면 곧 뜀박질을 하고 여행을 떠나고.. 그러나 <이제 막> 욕망이 만족되려고 하는 순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 (p.32) 

저 투명한 하늘의 기억. 내가 그를 기억하는 것만큼 그가 나를 기억해주리란 보장이 없어 슬펐다. 지금은 아니지만.

말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버리게 된다. 문득 공(空)의 자리에 충만이 들어앉는다. 내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다만 저 절묘한 순간들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굳게 마음 먹은 것은 저 투명한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p.33) 

 나는 그냥 나.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모습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p.43)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게 사랑은 아니었을 거란 걸 나도, 당신도, 그때도, 지금도, 잘 알고 있듯.

사실 언제나 똑같은 내용이긴 하지요. 그렇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려고 할 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 이외에 다른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마음속에서 모든 순간들과 모든 존재들을 하나로 합쳐주는 것입니다. (p.64)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공기를 그저 공유하고 있었을 뿐이지요.

그는 우리들에게 지극히 드물게 작용되는 범우주적인 사랑의 법칙에 복종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존재를 사로잡아 그의 겉모습을 다듬고 형상을 굳혀놓았던 그 법칙 말이다. 전에 그는 태양이 뜨겁고 밤이 싸늘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이 세상 어디에서나 화해한다. 모든 것에서 그는 영접받고 축복받을 것이다. 저를 맞아들이는 장소의 형태와 결합하여 차츰차츰 그 형태와 분간할 수 없도록 하나가 되어버릴 것이다. 완강한 저항이 철저한 복종으로 변했다가 어떤 새로운 생존 속에서 다시 반항으로 소생할 것이니 이 소용돌이와 평화의 교차가 우주적인 삶을 구성한다. (pp.72-73)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의 양면을 모두 보고싶어하는 것이 인간.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p.90) 

 추억은 추억. 추억은 힘이 없어요. 추억은 한 순간의 강렬한 희열일 뿐이죠.

가장 달콤한 쾌락과 가장 생생한 기쁨을 맛보았던 시기라고 해서 가장 추억에 남거나 가장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 짧은 황홀과 정열의 순간들은 그것이 아무리 강렬한 것이라 할지라도-아니 바로 그 강렬함 때문에-인생 행로의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찍힌 점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순간들은 너무나 드물고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것이어서 어떤 상태를 이루지 못한다. 내 마음속에 그리움을 자아내는 행복은 덧없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항구적인 어떤 상태이다. 그 상태는 그 자체로서는 강렬한 것이 전혀 없지만 시간이 갈수록 매력이 점점 더 커져서 마침내는 그 속에서 극도의 희열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그런 상태인 것이다. (p.101)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사랑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괴로워해서 무엇하겠는가? 잔혹하게 그리워하면 무엇하겠는가?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결국 절대로 끝이 없을 터이고 나는 끝내 나의 둘시네를 찾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말했듯이 이 짤막한 공간 속에 긴 희망을 가두어두자. (pp.175-176)

하지만, 여전히 여행을 할 겁니다. 추억이 밥먹여주지는 않으니까. 추억을 가둘 수는 없고, 추억 속에서 열망을 훔칠 수는 없으니까.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나에게는 섬이 될 것 같다. 몇 번의 악수, 몇 번의 포옹, 몇 번의 키스, 몇 번의 눈물, 몇 번의 그리움. 그런 것들이 모조리 몇 번의 '착각'일 뿐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여전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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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1-10-16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
궁금하게 만드는 리뷰에요.
아이리시스님 잘 지내셨죠?

아이리시스 2011-10-16 01:49   좋아요 0 | URL
꿈섬님, 저는 잘 지냈어요.
여전히 바쁘시고, 여전히 열심이셔서,
아까 가서 페이퍼도 보고 댓글도 남기고 왔어요.^^

2011-10-16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6 0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6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6 0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1-10-16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험 공부할 때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요즘 시험공부할 때 머리 식힐 겸 편안한 내용의 에세이집을
읽으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에세이의 내용이 너무 좋아서 공부가 뒷전으로 밀릴까봐 걱정이네요 ^^;;

아이리시스 2011-10-17 17:58   좋아요 0 | URL
시험공부할 때 읽을만큼 편안한 내용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만 시루스님에게는 괜찮을지도 모르겠어요. 몇 번이고 곱씹어 읽어야 할 에세이인 것 같아요. 공부 뒷전으로 밀리면 안되죠! 안돼안돼~~

알로하 2011-10-17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아름다운 책이죠. 한번씩 답답할 때 꺼내서 아무데나 펼쳐본답니다. 제가 좋아하는 부분은 아무도 모르는 곳의 기차역에 내리는 상상을 하는 부분이예요.

아이리시스 2011-10-17 18: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무도 모르는 곳의 기차역에 내리는 상상은 보통때도 많이 하는데! 생각만으로도 좋아요. 요즘은 간이역이 정말로 많이 없어져서(거의 없어져서) 낭만이 사라졌지만, 서울-부산을 한 시간 반만에 잇는다는데, 좋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이 나란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가 봐요. 너무 빠르고 정확한 것들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고, 저와 알로하님은 여전히 아날로그적 낭만을 그리워하니까요. 요즘 더 심해진 것 같아요.ㅜㅜ

2011-10-17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10-17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어짜피 혼자만의 섬으로 태어났는데,
굳히 섬까지 찾아갈 필요 있겠어요? 우리의 할 일은, 비슷한 동료 섬에 배타고 왔다갔다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아이리시스님 글이 왜 점점 몽환적으로 느껴지지요,,
치열한 내 삶과 엄청 대비되는 이 페이퍼. ^^

아이리시스 2011-10-18 00:12   좋아요 0 | URL
마고님 요즘 엄청 바빠요?ㅜㅜ 저는 마음이 바쁜데,,-_-^ 그럭저럭 살아갈만한 세상이거든요. 푸하하. 동료 섬에 배타고 왔다갔다 이거 좋다,,, 그런데 섬에 가끔씩 가야 해요. 아무도 없으면 실제로 엄청 무서울테지만,, 섬에 가서 버려야 한다니까!

추억은 몽땅 몽환적인 거예요. 추억은 오로지 꿈속으로 밀어넣고 지금을 살아야 해요. 그게 가끔 슬퍼요. 밤에 배고프면 어떻게 해야 해요?ㅠㅠ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p.532) 


아프간 태생이지만 전쟁즈음 아프간을 떠나 캘리포니아에서 의사로 살아가던 작가가 영어로 쓴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출간 당시 중동,아랍문화권에 무지했던 우리에게 핵폭탄급 서사를 들려주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전쟁. 정서는 달라도 우리도 아는 혼란이다. 옆나라 식민지도 되어봤고, 같은 민족에게 총칼을 겨누어도 봤으며, 여전히 지구 유일 분단국가에 산다. 중동의 슬픔, 중동 여자의 삶과는 이데올로기 자체가 다르지만 우리도 알 만큼은 안다. 전쟁의 서러움과 더러움을 굳이 학습하지 않아도 생생할 만큼 우린 전쟁과 가깝다. 그리고 여기, 전쟁중인 나라를 남자로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여자로 살아가는 일도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두 편의 작품이 있다.

소설의 중심에 목표없이 명분만 있는 '전쟁'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데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전쟁 때문에 황폐하게 메말라가는 두 여자의 삶을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수작이지만 반쪽짜리 해피엔딩으로 도저히 희망을 바라볼 수 없을만큼 암울하다. 마리암과 라일라. 누가 그들에게 살인이라는 죄를 물을 것인가. 바로 얼마 전, 전쟁 후 뒤틀린 여자의 삶을 주제로 하는 또 한 편의 작품을 보았다. 영화 <그을린 사랑>과는 '같으면서도 다른' 먹먹함에 전율이 일어난다. 아픔과 절망은 호락하지 않았다. 우린 괜찮은 나라에 살고 있구나. 오랜만의 상대평가.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을린 사랑>이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아프간 내전이 배경이다. 그리고 원래 나는 <그을린 사랑>이 아니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 관한 페이퍼를 쓰려고 했다. 말이 내전이지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선진국들의 중동 식민정책이나 마찬가지라는 건 오늘날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 중동의 공산주의가 북한의 그것과는 다름이 명백한데도 오랜시간 지구촌은 중동을 악의 세력 즉 거대한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굳건하게 이미지화했다. 교묘히 기획된 서양의 식민정책 아래, 나약한 중동은 언제나 서양세력에 맞서 싸우는 권력(이슬람 추종자)과 서양에 세력을 기탁하는 권력(기독교 추종자)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이마저 종교다툼 정도로 인식시켜온 것이 사실이다.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  

 

 

 

 

 

 

 

 


현재까지도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전쟁(이슬람교와 기독교의 대립)은 사실상 서양이 중동국가를 잠식하는 과정일 뿐이다. 근 60년 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대립은 물론이고, 레바논, 파키스탄, 아프간, 시리아, 이란, 이라크 등 많은 중동국가에서 일어나는 전투와 학살이 사실상 같은 맥락에서 처치되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은 일찌감치 이스라엘의 손을 들면서 상상불가능한 엄청난 힘을 보태주었다. 그 와중에 한국처럼 외교적으로 단단하지 못한 나라는 늘 이리저리 휘둘려 왔다. 미국의 명분은 유태인에게 새 보금자리를 찾아준 것이지만, 사실상 멀쩡히 자기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의 민족성과 국가성을 완전히 몰살하고 가자지구로 몰아내다시피 한 행위라서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 해도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 논란이 빈번한 9.11테러, 오사마 빈 라덴 사살, 탈레반 척결, 수많은 중동국가의 공산주의화 정책, 끊이지 않는 내란과 전쟁, 혁명, 이로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수의 국제난민들. 뫼비우스의 띠처럼 지구촌으로 퍼진 중동분쟁은 단지 중동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지구촌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학살이다. 더 자세히는 서방국가가 중동국가에 행하는, 종교전쟁의 탈을 쓴 학살.   

 

그렇다면 이슬람은 중동세력, 기독교는 서양 즉 미국세력을 의미하는 다툼으로 봐야 할 것이다. 내전이라 이름 붙여도 사실상 내전이 아닌 셈. 새 식민지를 건설하는 거대한 물밑작전이자 중동을 삼키겠다는 선진국의 야욕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이란, 이라크처럼 석유보유국에는 그나마 관심을 보여도, 이미 망가진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 인도주의를 발휘하는 국가들이 전 세계 어느 하나 없는 걸 봐도 중동을 잠식한 전쟁은 이미 심각한 사태를 넘어섰다. 실제로도 레바논에는 자원이 거의 없는 걸로 알려졌고,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스라엘을 세우면 그만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슬람권의 반발이 심해져 이슬람에 이슬람이 더해지고, 기독에 기독이 더해져 각자의 세력만 커지고 있다. 이슬람 젊은층은 전 세계 각지로 퍼져 유럽계 이슬람은 날이 갈수록 늘고 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이 이슬람화 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전쟁은 이미 한 국가와 국가의 싸움이 아니라 대륙과 대륙의 싸움이자 지구촌의 세력다툼이다. 석유. 이 모든 상황은 석유를 대체하는 획기적 자원이 지구촌 각국에서 쏟아져 나오기만 한다면 과연 종식될 것인가.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속에는 우리의 조선시대를 능가하는 여성탄압이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중동국이 그렇듯,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든데, 불합리와 부조리가 대부분이라(물론 문화자체를 두고 타인의 눈으로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런 행동 또한 지양해야 하지만) 지금 현재도 국제기구와 NGO 등의 부단한 인식노력이 있는 걸로 안다. 여성에 대한 차별, 교육, 할례 등등. 오빠가 간통하면 집안 여동생이 죽어야 하는 그런 비정상적 법들.(법도 아니지 관습)  

   
  "저는 선생님을 존경하지만 아이가 어리석은 생각을 하도록 하시면 안 돼요. 정말로 저 아이를 아끼신다면, 어미와 함께 집에 있는 게 팔자라는 걸 깨닫게 하셔야 해요. 바깥에는 저 아이를 위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배척당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요. 선생님, 저는 알아요. 안다고요." (p.31)   
   

딸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하는데 엄마가 하는 말이다.  

 

나나는 하라미(사생아)로 마리암을 낳았다. 잘릴은 마리암을 예뻐하여 시간날 때마다 선물을 찾아와 놀아주고 안아주지만, 그는 결국 다른 처자식들이 있는 남자다. 나나는 철저히 숨겨진 여자로 살면서, 그의 사랑은커녕 딸의 탄생 또한 영광스럽지 못하게 하는 삶을 살아간다. 오로지 딸 마리암만이 나나에게는 인생이고, 세상이고, 위로이자 안락이다. 하지만 마리암은 공부를 하고 싶고 아버지에게로 가고 싶다. 마침내 그녀가 아버지에게 가기 위해 엄마를 버렸을 때, 엄마는 스스로의 삶을 버림으로서 마리암에게 복수한다. 딸을 볼모로 자신의 처지를 이겨내야 했던 나나의 삶이 서글프지만, 딸의 미래를 위해 투쟁하는 엄마가 아니라 딸의 미래를 주저앉히는 엄마였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마리암은 결국 잘릴의 집으로 가지만 아버지의 원래 가족들 때문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서른살이나 많은 남자 라시드에게 던져지는 마리암의 인생은 예나 지금이나 호락하지 않다. 그녀는 고작 열다섯 살이었다.  

 

많은 상반된 가치가 충돌하고, 공산정권과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한 또다른 유해 정권이 내전을 벌이는 통에 죄 없는 민간인들이 다치고 죽고 희생되는 상황이지만, 그래서 이 곳에는 의식이 깨어있는 현대적인 남성과 여전히 구시대적인 라시드 같은 남성이 존재했다. 마리암의 비극은 라시드가 구시대적인 남자라는 데에 있었다. 한켠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여자들의 나체가 실린 잡지를 넣어두면서 한켠으로는 여자는 남자의 소유일 뿐이며, 아내의 얼굴은 남편만 볼 수 있고, 밖에 나갈 때에는 아무도 못 보게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남편과 함께라야 한다는 이슬람 율법을 옳다고 생각하는 남자. 그가 라시드였다. 라시드는 원래 무뚝뚝한 남자였지만, 그가 아들이라 굳게 믿었던 아이가 유산되고나자, 확 달라진다. 폭력적이고 제멋대로에 전형적인 이슬람 문화를 숭배하는 남자로. 남자가 최고, 여자는 남자의 '것'에 불과하다 믿는 바로 그 태도를 본격적으로 나타내게 된다.

같은 동네에는 라시드와는 다르게 자유와 평등을 고수하는 부부가 산다. 아들 둘을 전쟁통에 내보냈다 잃어버리고 딸 라일라만 남았다. 엄마는 아들들의 죽음에 충격받은 나머지, 무기력하게 정권이 바뀌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살아간다. 아버지는 라일라의 배움과 사랑, 딸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적극 지지해준다. 라일라는 얼굴도 모르는 오빠들을 잃었지만 친구이자 사랑하는 타리크와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낸다. 전쟁이 이 모든 것들을 밀어내기 전까지는 라일라와 마리암은 전혀 다른 곳에 사는 여자들처럼 상반된 배경의 삶을 살아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다른 점은 라일라는 진정한 사랑을 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법을 아는 것, 그리고 꿈꾸는 것. 두 여자의 차이였다. 그건 여자의 인생에서 퍽 중요하고, 어쩌면 그녀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일지 몰랐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내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갖는 것. 라일라에게는 주어졌지만 마리암에게는 세상 떠나는 날까지 주어지지 못했던 일.   

 

   
  살인이나 약탈과 같은 추한 것들의 와중에서, 나무 밑에 앉아 타리크와 입을 맞추는 것은 무해한 일이었다. 사소한 일이었다.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방종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입을 맞추게 내버려뒀다. 그리고 그가 몸을 떼자, 이번에는 자신이 몸을 기울여 그에게 입을 맞췄다. 심장이 뛰고, 목이 떨리고, 얼굴이 얼얼하고, 뱃속 깊은 곳에 불이 난 것 같았다. (p.239)   
   

어렵지 않게 타리크와의 첫 사랑을 나눈 그녀가 가두고 싶어했던 시간은 이후로 오랫동안 가두어지지 못했다. 이내 심각한 내전이 일어났고, 그들이 있는 동네에서 벗어나야 했다. 먼저 타리크의 가족이 떠났고, 그녀의 가족이 떠나려 했을 때, 로켓탄 폭격이 바로 라일라의 집에 떨어져 그녀는 부모를 잃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야 겨우 제몸을 추스르려 했던 공허한 눈의 엄마도, 자신이 하는 일마다 응원과 사랑을 보내주었던 다정한 아빠도. 그녀를 구한 건 하필 마리암의 남편 라시드였다. 라일라가 라시드의 두 번째 아내가 된 건 뱃속의 아이를 지켜야 했던 엄마로서의 비장함이었다. 그즈음 한 사내로부터 타리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들의 인생은 라시드에게로 귀결되어 있었다. 누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일라는 예쁜 딸 아지자를 낳았고, 그녀로 인해 처음에는 데면데면했던 두 여자 사이에 우정 비스무리한 것이 삭트기 시작했다. 여자로서 여자를 이해하는 삶. 동지적 삶. 같은 시대,국면,내전을 이겨내는 삶. 같은 남자의 아내로 사는 삶. 같은 것이었다. 마리암은 여자로서의 인생과 자신으로서의 인생을 모두 내려놓는 삶을 사는 중이었다. 라일라는 그런 마리암이 두려웠다. 훗날 제 인생도 그렇게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두 여자는 위험한 탈출을 시도한다. 잡혀온다. 라시드는 돌처럼 딱딱한 공산주의 수장보다 더 무섭고 잔인하게 그녀들을 가두고 때렸다. 탈출실패. 그녀들은 받아들인다. 라시드가 가게를 잃고 돈줄이 끊겨서 밥을 못 먹게 되어 아지자를 고아원에 보냈을 때, 운명적이게도 타리크를 만난다. 그녀는 다시 꿈을 꾼다. 여자로서의 마지막 꿈. 라시드의 아들을 사랑하지만 아지자에게 아빠를 찾아주고자 한다. 그리고 다시 탈출시도. 마리암이 라시드의 등에 삽을 꽂아넣을 때까지 마리암과 라일라는 위태하다. 마침내, 자유로워진다.   

 

   
 

"이 지식과 이 기도가 내가 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이야. 그것은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재산이야." (p.402) 

 
   

전쟁은 계속되고, 남편을 죽인 두 아내의 최후는 뻔하다. 마리암은 급히 라일라와 아이들을 타리크와 같이 떠나도록 한다. 모든 죄는 자신에게 있음을 상기시키며, 마지막까지 라일라의 행복을 빌어준다. 라일라는 행복했을까. 물론 새 가정을 꾸려 안전한 곳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간혹, 혹은 자주, 그녀의 발목을 잡는 어두운 삶의 그림자.  

 

   
 

하지만 라일라에게는 타리크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불안감은 이겨나갈 만한 가치가 있다. 그들이 사랑을 할 때, 라일라는 안정감을 느낀다. 그들이 같이 사는 삶이 일시적인 축복이고 곧 그것이 다시 산산이 부서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누그러진다.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p.522) 

 
   

그녀는 타리크를 설득해 전쟁과 내전이 막바지로 치닫는 아프간으로 돌아가려 한다. 다른 곳에서 몸이 '안전'할 수는 있겠지만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어서이다. 그녀는 아프간이 고향이다. 폭탄이 떨어지고, 로켓탄이 온 마을을 초토화시켜도, 여기가 고향이다. 마음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곳이다. 마리암의 희생은 라일라의 깊숙한 곳에서 아픈 용기로 승화된다. 라일라를 결국 제 고향으로 오고 말게 한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소설이 끝난 후 그에 주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이다. 라든가.  

그들은 카불로 돌아온다. 라일라는 마리암의 고향집을 찾아가 꽃한 송이 놓고 그녀의 영원한 행복을 빈다. 그녀의 희생으로 그녀가 살아있다.  

 

   
  그들이 카불에 처음 왔을 때, 라일라는 탈레반이 마리암을 어디에 묻었는지 몰라 괴로워했다. 그녀는 마리암의 무덤에 찾아가 머물다가 한두 송이의 꽃을 놓고 왔으면 싶었다. 그러나 라일라는 이제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안다. 마리암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녀는 이곳에 있다. 그들이 새로 칠한 벽, 그들이 심은 나무, 아이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담요, 그들의 베개와 책과 연필 속에 그녀가 있다. 그녀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 있다. 그녀는 아지자가 암송한 시편, 아지자가 서쪽을 향하여 절하면서 중얼거리는 기도 속에 있다. 하지만 마리암은 대부분, 라일라의 마음속에 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천 개의 태양의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있다. (p.562)   
   

아픔이 대대로 이어지지 않기를 빈다. 잘마이는 결국 타리크에게 익숙해지겠지만, 그가 커서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또다시 비슷한 비극들이 일어나 그들이 절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개인의 잘못은 아니다. 누군가의 피와 눈물로 얻은 아름다운 희망을 밟고 살아가는 일. 개인의 선택은 아니다. 바꿀 수 없는, 바뀌지 않을 듯한 수많은 불합리한 체제 속에서 제도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온 건 결국 투쟁과 희망이었다. 마리암은 갔지만 라일라는 살아갈 것이다. 이 땅에서, 죽을 때까지. 아이들을 키우고, 사랑을 나누면서. 사랑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사랑이 희생하게 하고, 사랑이 살아가게 한다. 사랑이 찬란한 태양이다. 사랑이 천 개가 될 때 찬란한 태양이 되어 소중한 것들을 지켜낼 것이다.  

여전히 전쟁중인 중동, 아프간 외 수많은 국가들. 무엇을 위한 투쟁이며, 또 전쟁인가. 그들이 자문해야 할 문제, 우리에게도 질문할 가치가 있다. 무엇을 얻기 위해 누구를 죽이는가. 결국 모두 행복해지는 길인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폐허의 잿더미, 그 속에 아직도 우리가 있다. 누군가의 희망을 절망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티끌처럼 작은 나조차도 반성될 만큼 소설이 처량하고도 아름답다. 선진국들이 품은 탐욕이 계속되는 한, 전쟁도 계속되겠지. 이슬람 문화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여성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될 날은 언제일지. 지구촌만이라도 다같이 행복해지면 안되나. 곧 화성에서 외계인이 제 땅 내놓으라며 쳐들어올지도 모르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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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3 2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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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4 0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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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4 00: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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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4 0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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