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아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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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뒤루아는 다행히도 여자가 아니다. 모파상은 <목걸이>, <여자의 일생> 등으로 유명한데, 대부분이 그렇듯 학창시절 읽는 세계문학전집으로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즈음 읽은 것들은 줄거리나 교훈 보다는 배경과 이미지로 기억 속 깊은 곳에 남아 있다. 모파상의 것은 포우와 같이 그다지 좋아하는 작품 스타일이 아니었다. 여러번 말했듯, 나는 소재나 주제보다 문체에 더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벨아미>를 읽게 된 건 단연코 내세울 만한 이유가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은 접어두고 나는 이 작품이 매우 맘에 든다. 다만, 뒤루아가 여자였다면 만인의 여자들이 재수없어할 부류였다는 것만은 명확히 알겠다. 나는 이런 여자들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매우 싫다. 대신 나라면 엮여서 감수하는 쪽보다는 다가가지 않고 무시하는 편을 택하겠다. 그래왔고 또 그럴 것이다. 가진 걸 휘두르지 못해 안달하는 이들, 겉으로는 명쾌한 척 하지만 뒤에서 온갖 수작 부리는 이들, 알고보면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가능한 많은 일들 앞에서 자기논리는 명료하고 남의 것은 그 반대라는 식으로 일갈하는 이들. 무엇보다도 내 욕망, 이라는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주는 피해를 정당화하려는 이들. 말하지 않는다 해서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아닌 것처럼.

 

처음에 벨아미-이는 나중에 뒤루아가 얻게 되는 별명이다-는 평소 너무나도 경멸하고 싶은 부류라서 읽으면서 또는 읽고나서 그에게 동화되고 이해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여전히 욕망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원한다는 것과 원하는 것을 가지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적어도 그 반대인 것보다는.

 

벨아미는 전직 하사관이었지만 지금은 그저그런 철도회사에서 박봉으로 일하는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남자다. 군대에서 알았던 신문기자 친구 포레스티에를 만나면서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가 욕망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실행하기까지는 짧은 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옮긴이는 내가 놓친 부분을 얘기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뒤루아에게는 단 3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19세기 중후반 파리의 상류 사회는 퇴폐와 자유, 향락, 불륜 혹은 이 모든 것들이 넘실대는 막 걷힌 장이었다 해도 과언 아니다. 다 같이 미쳐있으면 오히려 제 정신인 보통 사람이 이상해보이는 것처럼 경계를 넘어있는 시대였다. 몰라도 아는 척만 하면 되고, '욕망'이 그 어떤 도덕적 가치와 의미보다 상위에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들은 종종 서로를 속였고, 자신도 속였다.

 

"누구나 그 이상을 알진 못하지. 궁지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스무 명가량의 멍청이들은 예외지만 말일세. 강한 사람으로 보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무식하다는 꼬리를 잡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네. 교묘하게 처신해서 어려움에서 빠져나오고 장애물은 피해서 돌아가고 그 나머지 모르는 것들은 사전을 이용해서 남의 눈을 속이는 거지. 인간이란 거위처럼 어리석고 잉어처럼 무식한 법이네." (p.18)

 

무대는 활짝 열려 있었고 아무도 그것을 닫을 마음이라곤 없었다. 벨아미는 친구로부터 신문사 영입제의를 받고-정확히는 기사를 써보겠냐는 제의-그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하면서 국회의원이자 신문사 사장 왈테르 가족을 만나 그 자리에서 알제리 정책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면서 처음으로 모두의 시선을 끌게 된다. 특히 포레스티에의 아내 마들렌이 소개한 먼 친척 마렐 부인이 이 날부터 자기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고부터는 자신의 외모와 말투와 대화방식이 상대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한 마디로 자신이 먹힌다는 사실을 안 것-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빳빳하게 온 사교장을 누빈다. 남자가 여자에게 혹은 여자가 남자에게 반하는 데는 때로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번드르르한 외모와 상냥하고 친절한 말투, 자기에게 호감이 있다는 듯 살짝 다가가면서도 튕기는 태도. 무엇보다 빨리 이것들을 깨달은 벨아미였다. 그의 깨달음이 머지않아 모든 이의 희극과 비극을 양성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벨아미를 응원할 것인지, 만류할 것인지. 전자를 선택하는 편이 훨씬 더 편하다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이지만. 끌리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나중에 씁쓸한 그의 성공에 박수치며 이건 아니야, 라고 외쳐도 그때는 이미 늦다.

 

 

여기서 이 노래를 떠올렸다. 나는, 뜬금없게도. 몇 번이나 좋아한다고 말했고, 몇 번이나 페이퍼에 등장시키고, 얼마 전에는 무려 현빈이 부르는 것도 올렸던, 바로 그 노래. 에릭 클랩튼의 "원더풀 투나잇". 이 곡을 떠올리면 아무 것 없어도 밤은 언제나 완벽해진다.

 

 

접힌 부분 펼치기 ▼

It's late in the evening
: 늦은 저녁입니다

She's wondering what clothes to wear
: 그녀는 무슨 옷을 입을까 망설입니다.

She puts on her make-up and brushed her long blonde hair
: 화장을 하고 긴 금발머리를 빗어 내립니다

And then she asks me "Do I look all right?"
: 그리고 내게 묻지요 "나 괜찮아 보여요?"

And I say "Yes, you look Wonderful tonight."
: 나는 대답합니다. "그래요 오늘 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워요"

We go to a party and everyone turns to see
: 우리는 파티에 나갑니다 모두들 고개를 돌리고

This beautiful lady who's walking around with me
: 나와 함께 춤추는 이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지요

And then she asks me "Do you feel all right?"
: 그녀는 나에게 묻습니다 "기분 좋아요?"

And I say "Yes, I feel Wonderful tonight."
: 나는 대답하지요 "그래요 오늘 밤 난 정말 황홀해요"

I feel wonderful because I see the love light In your eyes
: 나는 정말 황홀하다오 그대 눈 속에서 사랑의 빛을 바라볼 수 있기에

And the wonder of it all is that you just don't realize How much I love you
: 그 무엇보다 경이로운 것은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대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It's time to go home now
: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

And I've got an aching head so I give her the car keys
: 나는 머리가 아파서 그녀에게 차 열쇠를 건네 줍니다

She helps me to bed and then I tell her as I turn out the light
: 그녀는 나를 침대 위에 누이고 나는 불을 끄면서 그녀에게 말합니다.

I say "My darling, You are wonderful tonight"
: 내 사랑 오늘 밤 당신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Oh my darling, you are wonderful tonight.
: 오 나의 사랑, 오늘 밤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워요  

펼친 부분 접기 ▲

 

 

 

이 노래를 처음 듣고 가사를 찾아봤을 땐, 이 감미로운 가사가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스토리를 알려줘서, 확장시켜 소설을 지어냈다. 그리고 이 부분이 가장 좋다. 파티에 가려고 제일 예쁜 드레스를 꺼내 입은 여자가 자기를 기다리고 서 있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부분. "나 괜찮아 보여요?"

 

하나 더 있다.

 

파티에서 실컷 즐기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술 탓인지 살짝 어지럼증을 느끼는 남자가 여자에게 차 열쇠를 건네주고, 집에 도착해서 남자를 부축해 침대에 부드럽게 눕혀주는 여자. 남자가 침대 옆에 놓인 스탠드불을 끄고 여자도 그 곁에 눕는 부분.

 

사실, "내 사랑, 오늘 밤 당신은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라는 부분에서는 그다지 설레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그리고 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미국에 가고 싶었다. 사치와 화려함이 뒤죽박죽된 파티에 초대받고 싶었다. 허영으로 똘똘 뭉친 <가십걸>의 주인공들처럼이라도 상관 없었다. 거기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사랑하는 상대를 가지고픈 욕망, 에만 끌린다. 처음에는 꿈도 얘기했지만 점점 사랑하는 대상과 경제력을 얻을 기회만 호시탐탐 넘본다. 때때로 자조하며 짐승도 한낱 지조는 지키는데, 하면서도 계속 본다. 재밌으니까. <파리의 연인>처럼 파리에서의 파티도 좋을 것 같고, 무도회도 좋을 것 같고, <오만과 편견>의 영국풍 사교계도 상관 없었다. 나는 그저 파티면 되었다. 실제 나는 파티의 분주함이나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기웃거리는 것 등을 즐기지는 않는데도. 하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과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지는 않는다. 술집 보다 광장을 좀 더 좋아하는 게 흠이라면 흠.

 

 

 

어쨌든, 이 남자 좀 재수없는데 한편으로는 멋지다. 자기가 얼만큼 유혹할 수 있는지, 자기가 무얼 할 수 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남자라.. 역시 나는 다시 생각해도 그 반대로 서툴게 다가오는 남자가 훨씬 낫지만 벨아미를 미워할 수가 없다. 재수없어할 수는 있지만 미워지지는 않는다. 남녀 관계에 있어 계산적일 수 있음은 여러가지 의미로 볼 때 서로 다른 장단점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 정도는 밀당이 필요하고, 밀당이 관계를 오래 지속시킬 수도 있다는 것은 맞다고 보지만 자기의 가치와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는 것은 언제나 옳지 않다고 느낀다. 벨아미는 그렇게 한다. 그리고 자기가 나쁘다는 의식조차 없다. 잘못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없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는 벨아미의 입을 빌어서는 절대 선과 악, 옳고 그름, 가능과 불가능 같은 것들이 말해지지 않는다. 그 지점이 바로 문학으로서의 예술로 기능하고, 나는 이게 굉장히 마음에 든다. 모파상이 그려낸 벨아미가 좋아진 이유다. 그럼 이제부터는 모파상이 한 짓들을 낱낱히 고하고 분석해볼까, 라고 하기에 뭐 있을까. 사교계에서 자기 장점이 어필됨을 알았으니 점차 자기를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 날개를 찾아 동분서주하겠지. 뻔한 거 아닌가.

 

<벨아미>는 두 가지만 이해하면 된다. 선악의 경계를 흔들며 사교계에서 귀부인들의 마음을 훔치며 고급 정보를 얻으면서 언론사의 고지위까지 한 계단 한 계단 밟아가는 욕망의 화신인 남자의 모습과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프랑스가 가장 타락한 시기의 언론계를 상세히 묘사함으로서 프랑스 언론역사의 발전과정을 되짚어보는 것. 모파상의 사실적 문학은 동시대 다른 작가들처럼 문체에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 에밀 졸라를 잇는 프랑스 19세기 작가이자, 스승 플로베르를 통해 콩쿠르 형제, 알퐁스 도데, 투르게네프 등과 교류했던 모파상은 이들보다 더 사실적 묘사를 통해 철저히 묘사로만 파리의 상류사회와 사교계의 귀족부인들을 그려낸다. 서정성 있는 문체를 썼던 알퐁스 도데나 투르게네프와는 짐짓 다른 모습이다.

 

그러자 지껄이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랐다. 자기에게 모든 주의를 끌고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대단치 않은 말 하나하나까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음미하면서 듣도록 하는 저 말재주가 탁월한 남자들처럼 칭찬을 받고 싶었다. (p.42)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본능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인정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누구나 두 가지의 경계를 지키기 위해 아슬아슬 넘나드는 불편한 선이 분명 있을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비난 당하는 일은 면하기 위해 욕망과 인정 사이에서 간신히 균형 맞추며 살아간다. 이제 벨아미처럼 모든 것이 용서되는 시대도, 무시되는 시대도 아니다. 오늘의 선이 내일의 악이 될 여지도 얼마든지 있다. 돌이켜보면 온라인 세상에서 나는 얼마나 타인에게 이끌려가기 쉬운가, 나는 얼마나 쉽게 타인을 이해한다 하거나 판단하는가. 이왕이면 끌려가는 것 보다는 서로를 통해 하나로 모아지는 관계가 좋다. 하지만 나를 강조함으로서 타인을 간과하는 무심한 사람인 적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누군가에게 내 무관심을 사과하고, 더 많이 애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나를 반성하고, 앞으로의 나를 부탁하는 날이다. 내가 벨아미인 것도 당신이 벨아미인 것도 싫으니, 부디 서로 맞춰가자고 제안하는 날이다. 나는 판단이 필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이해와 위로 그리고 나를 인정하는 내가 되고 싶을 뿐이다. 어쩌면 벨아미도 그랬던 게 아닐까. 반대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상처받아 여자와 권모술수를 이용해서라도 왕의 자리에 한 번쯤 서서 호령하고 싶었을 뿐이지 않을까.

 

다 갖기 위해선 다 걸 수밖에 없는, 가진 것 없는 한 남자의 상류층 편입기. 모파상은 벨아미를 통해 당시 파리의 속은 텅 비었음에도 겉만 꾸며대는 상류사회의 구멍을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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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3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4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1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겉치레는 공허해요. 한껏 가슴을 부풀리고 머리를 꼿꼿이 들고 있어도
무너져 있는 내면을 발견하게 되는건 시간 문제...살면서, 나이 들어가면서 내 모습이 그럴 때가 많아
좀 우울하기도 하죠....

누군가가가 사람들로 꽉찬 엘리베이터에 제가 타는 걸 보고 농담으로 '젊은 사람이 걸어가지~'하는데
울컥했잖아요..ㅋㅋㅋㅋ 저도 이제 4학년이거든요! 저도 무릎이 좀 시리거든요!
이렇게 말하고 또 우울했어요.ㅎㅎ

파리가 또 그리워 파리 관련된 책을 장바구니에 넣고 고민하고 있는 중이예요. 오늘 날씨는 정말 파리스럽네요~

아이리시스 2012-03-14 12:25   좋아요 0 | URL
이제 4학년ㅋㅋㅋ 다른 사람들이 현맘님만큼만 내면에 대해 고민하고 또 발견하고 한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할 거예요. 정말로요^^ 사실은 이것저것 엄마로서, 일적으로도 욕심 많고 따뜻한 분이면서 항상 현맘님 모습에 대해 고민하시잖아요!! 부럽게..^^

한번씩 그런 날이 있죠! 저는 학교다닐 때 봄만 되면 떠나야한다는 생각에 거의 미쳐가지고;; 날씨 좋으면 진짜 미칠 것 같지 않아요? ^___________^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14 16:50   좋아요 0 | URL
ㅋㅋㅋ 여기 오늘 비와요!!!!
파리스러운 날씨는 흐리고 우중충한 날씬데...제가 파리 갔을 때 그랬거든요. 세번 다..어쩜.
그래서 제 기억 속 파리는 그래요.
예전엔 봄만 되면 좀 짜증도 나고 햇살 쨍쨍한거 싫고 그랬는데 나이 들었나봐요. 이젠 봄바람과 봄햇살이 좋은걸 보니까요. 심지어 꽃 피는걸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아이리시스 2012-03-15 20:33   좋아요 0 | URL
저도 겨울에 가서 파리는 늘 비내린 샹젤리제, 베르사유 이런 것들만 기억이 나는데 현맘님도 예전에 그랬다는 걸 들었;; 는데도 제가 기억력이 그지라서;; 혼자 헛소리를ㅋㅋㅋ

맞아요, 봄 좀 그래요. 괜히 바람도 들고 바람드는 만큼 뭘 할 수가 없고 뭘 해야할지를 모르니까 늘 신경도 좀 곤두서 있고 짜증도 났어요. 그때 어느 교수님은 미칠 만큼 몰두할 수 있는 걸 찾아서 밤 꼴딱 새면서 해보거나, 여행을 떠나라고 하셨어요!! 그때 땅끝마을까지 혼자 여행하고 싶었는데 그걸 할 용기가 안나더라고요. 그게 안되면 책이라도 미칠 만큼 읽으라고 했어요!! 여기서 미친다는 건 '과유불급'도 되는 거지요. 히히. 꽃. 좋죠! 꽃!

cyrus 2012-03-1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내용이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랑 비슷할거 같아요. 배경도 비슷하고 두 소설 다 사회 진출에 대한
욕망을 가진 두 젊은이가 나온 것도 같고요. 펭귄에서 나온 것도 있는데 집에 민음사 전집이 많아서 이걸로
먼저 읽어봐야겠어요. 나중에 이 책 구입할 때 이 글, 땡스투해야겠어요 ^^

아이리시스 2012-03-15 20:40   좋아요 0 | URL
모파상이랑 발자크를 함께 읽는 중이었는데 <벨아미> 읽고나니 힘이 떨어져서 <고리오 영감>은 초반에 막 넘기다 하숙집 사는 인물들 이름을 다 놓쳐버려서 던져버렸어요. 다시 찬찬히 읽어야 정리될 듯 해요. 오오, 이건 223번이라 시루스님 전집에 없는 거군요. 저는 얼마 전에 펭귄이 더 최근 번역본인데도 더 저렴하길래 이걸 샀어요! 사실 번역은 잘 모르니까요. 괜찮아야 할텐데 하며 사는 거죠ㅋㅋㅋ
 
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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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내게 어려웠다. <농담>을 잘 안 읽히면 농담으로 치부하고서라도 끝까지 읽어내겠다, 하는 오기로 시작하기 전에 나는 다른 두 작품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내가 만든 기회였다. 하나는 읽다 말았다를 반복했고 하나는 책장에 그저 꽂히기만 했다. 나는 체코에 무궁한 호기심이 있었다. 이 나라는 유럽에 있지만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전도연과 김주혁의 <프라하의 연인>을 나만 그 전작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데 그건 파리는 낭만적이고 아름답지만 프라하는 절망스럽고 슬퍼서다.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풍경에 나는 늘 울고 싶었다. 그런 우울이 뚝뚝 떨어지는 도시에서 난 작가라면, 나도 모르는 내가 원하는 것이 들어있지 않을까 해서 끊임없이 쿤데라 옆을 서성였는지도 모른다.

 

나름 각오를 다지고 있었는데 생각과 달리 잡는 순간부터 너무 잘 읽혀서 놀라웠다. 여자들은 군대 얘기를 싫어한다지만 내가 겪지 못할 일이라 그것도 너무 재밌다. 물론 수감생활도, 탄광생활도 루드빅에게는 비극이지만 내게는 활력. 그런데 이렇게 리뷰를 써도 될까. 이 놀랍고 경이롭기만한 위대한 농담을 나는 반의 반이나마 이해하긴 한 걸까. 쿤데라의 국가가 낯설고 이질적인 만큼 작품 속 인물과 배경도 마찬가지로 다가온다. 이름 달린 몇 명의 인물들로부터 각각 반추되는 루드빅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삶의 다양성에 얽힌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설명하게 한다. 그 와중에 쿤데라의 목소리가 종종 흘러나온다. 잘 읽히면서도 어렵다. 스탈린주의나 트로츠키주의 같은 용어에 얽힌 지식들을 나는 단편적으로 혹은 이데올로기적으로만 알고 있다. 처음에는 불안하게 시작했다. 지금은 그것들을 모르더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굵게 관통하는 이 작품의 줄기는 결국 한 인간의 정체성, 존재의 농담일텐데 그것을 체코의 공산화 시기의 혁명 이후로 배경을 맞추어 전개해나간다. 이데올로기, 사랑, 정체성, 이것들이 한 선으로 연결된다. 남자의 대학시절은 공산주의 운동으로 점철된 지식터에서 스탈린을 비판한 트로츠키 옹호자를 처치하려는 시대였다. 당시 체코는 막 공산주의화 되려 하고 있었다. 주인공 루드빅의 험난한 여정을 따라 이 소설은 진행된다. 한 사람의 우스갯 장난이 궁극적으로 이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지게 하는지.

 

학창시절, 모임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루드빅이 여자친구와의 장난스런 편지에 쓴 트로츠키 만세! 라는 글 하나 때문에 강제로 입대하게 된다. 그로인해 그가 꿈꿨던 모든 것과 가지고 있었던 생각, 사상, 친구, 지식들까지 모두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당해 부대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모든 것이 착오로 인한 것이며, 진실을 말하기만 하면 받아들여질 것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혹독하다. 한때의 잘못을 쉽사리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으며, 바꿀 힘 같은 건 애초 자기에게 없었다는 것을 차차 알아간다. 그는 무언가를 희망했던 이들이 그것을 포기하거나 버려가는 과정의 3단계를 차례로 밟는다. 오랜시간 공을 들여 아주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나는 그 생각을 하기 싫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싫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나는 오늘날 자신들이 신봉하던 시대의 움직임에 의해 나처럼 거부당하고 떠밀려나간 사람들이 자기 운명을 떠벌이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 추방된 자라는 내 운명을 나 역시 영웅화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된 자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내가 검정 표지 속에 보내지게 된 것이, 내가 용감했기 때문도 아니고, 투쟁을 했기 때문도 아니며, 내 생각과 다른 생각들에 대항하여 싸웠기 때문도 아니라는 것을 냉정하게 상기해야만 했다. 그렇다, 나의 전락에는 그 어떤 진짜 드라마도 선행하지 않았고, 나는 내 이야기의 주체라기보다는 차라리 대상에 가까웠으며, 그러므로 (괴로움, 깊은 슬픔, 실패 등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 내 이야기를 가지고 무언가 대단한 척 내세울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p.173)

 

그는 오해로 얼룩진 자신의 신념을 끊임없이 위협받는 동안 운명처럼 만났던 루치에와의 만남이 환상보다 한없이 처져버리자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이제 그에게는 원래의 것도, 돌아갈 곳도, 밝혀내야 할 것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는 옷을 입고 여자는 홀딱 벗은 채로 한 방에 있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의 섹스에 대한 환상은 올곧고 순결하여 새침하기까지 한 루치에의 옷을 단 한 번도 벗기지 못함으로서, 그녀에게 화를 내고 외면하고 윽박지르게 되면서 그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망과 싸우던 틈을 타, 루치에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림으로서 끝난다. 사랑하는 남녀에게 있어, 섹스의 농담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너무 솔직하면 떠나버리고, 너무 가리면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화를 유발하게 된다.

 

내가 딱 하나 경이롭다고 생각했던 <농담>의 구절은 이것이다. 쿤데라가 루드빅의 입을 빌려, 민속 예술의 전통이 이어질 수 있는 배경과 이데올로기에 대해 열변했던 부분. 이 단락이 대단하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체제라는 것을 이토록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대단해서다.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서.

 

예전의 농촌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 마을의 한 해 행사는 이런저런 의식들로 이어졌다. 민속 예술은 이러한 의식 속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에 사람들은 들판의 농가 여인에게 영감이 찾아오면 그 입술에서 곧 샘물처럼 노래가 샘솟아 나온다고 상상했다. 그러나 민속 노래는 지적인 시와는 다르게 생겨난다. 시인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자기에게만 있는 유일한 어떤 것을 말하기 위하여 시를 쓴다. 그러나 민속 노래를 통해서 사람들은 남과 구별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섞이려고 한다. 그것은 종유석처럼 형성된다. 새로운 모티프, 새로운 변형들이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져 덮이면서 민속 노래가 형성되는 것이다. 노래하는 사람마다 새로 어떤 요소를 덧붙이는 가운데 그 노래는 대대로 전해 내려간다. 그러니까 이런 노래들을 지은 사람은 여러 명인데, 그들은 모두 자기가 한 공헌 뒤로 겸허하게 사라져버렸다. 그 어떤 민속 노래도 혼자서 존재하지는 못했다. 제각기 자기 기능이 있었다. (중략)

 

자본주의는 이러한 집단 생활을 파괴했다. 민속 예술은 그래서 자신의 기반, 존재 이유,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사람이 타인과 멀리 떨어져서 혼자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는 그것을 부활시키려 해보아야 아무 소용 없다. 그런데 사회주의는 사람들을 이런 고립된 삶의 올가미로부터 해방시켜 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집단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동일한 공동의 이익으로 연대하여. 그들의 사적인 삶은 공적인 삶과 일체를 이룰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의식들로 하여 서로 결합될 것이다. (중략)

 

어느 곳에서든 민중의 예술은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이제 이해하겠는가? (pp.202-203)

 

하지만 한 마디 농담으로 동무들에게 내쳐진 그는 자기를 사실상 망가뜨린 친구에게 복수심을 품고 그의 아내 헬레나에게 접근한다. 단지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를 점령한다면 친구에게 복수할 수 있다고만 생각해서다. 그에게 여자의 본질은 이런 것.

 

사실상 내가 한 여자에게서 좋아하는 것은 그녀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방식, <나에게> 그녀가 의미하는 그 무엇이다. 나는 한 여자를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의 등장 인물로서 사랑한다. 햄릿에게 엘시노어 성, 오필리아, 구체적 상황들의 전개, 자기 역할의 <텍스트>가 없다면 그는 대체 무엇이겠는가?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허하고 환상 같은 본질 외에 그에게 무엇이 더 남아 있겠는가? (p.232)

 

처음에 바란 것은 그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과 이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는 것뿐이었지만, 그것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서 복수를 실행에 옮기며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자기 행동을 타당화하려는 것에 불과한.

 

올곧고 투명하다. 그런데 그게 어떤 거죠? 있는 그대로 살고, 자기가 원하는 것, 욕망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러면 다 아닌가요. 사람들은 규범의 노예들이에요. 누가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말해 주면 그렇게 하려고 애쓸 뿐, 그것이 뭔지 자신들이 무엇인지 절대 알게 되지 못하죠. 대번에 그들은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과감히 자기 자신이고자 해야 해요. 헬레나, 결혼을 하셨다고 해도 저는 처음부터 당신이 마음에 들었고 당신을 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어떻게 다르게 할 수도 없고,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어요. (p.259)

 

돌고돌아 그는 인간이란 '욕망'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닿은 것이다. 농담으로 내뱉은 말을 책임지기 위해 원하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오며, 아무리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제자리에 닿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그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찾기 시작한다. 이대로라면 쿤데라의 말대로 옳은 것과 나쁜 것,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차이가 있기나 한 건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은 '본질'에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조차도. 하지만 그 이데올로기 또한 가장 억압받고 왜곡되고 엇나가기만 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 아니던가. 그가 그 한 마디에 이끌려 이 먼 곳까지 떠밀려 온 것처럼. 지금 헬레나를 통해 실현하려는 바로 그 복수처럼.

 

겉으로 사랑 이야기, 더 들어가 꼬여버린 인생에 대한 반추 같은 거지만 체코가 낯선 나라다보니, 배경과 체제 이해가 자동적으로 되지는 않는다. 간신히 이해해보지만 온전하지는 않을 테니까 지금의 체코 공화국이 되기까지의 과정 이해와 역사적 지식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다. 그것 없이도 <농담>은 충분히 유머와 풍자와 조롱 조의 소설로 읽히지만, 알면 더 많이 보일 것이다. 소설은 타인의 자료조사와 지식창출에 기댄 기본적으로는 아무리 사실적이라도 '픽션'이다. 그래서 소설은 이해를 도와주지만 소설적 이해는 결코 실제와 같지 않다. 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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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社會主義 共和國, :Československá socialistická republika)은 체코슬로바키아1960년부터 벨벳 혁명 직후인 1990년초까지의 공식 국가 명칭이다.

 

1943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망명 정치가 에드바르트 베네시 (Edvard Beneš)는 소련의 외교 정책에 무조건 따르라는 스탈린의 요구에 응하여, 베네시 선언에 따라 백만여 명이 넘는 주데텐의 독일인을 "부자"로 치부하여 추방하고, 헝가리인들도 쫓아냈다. 베네시는 스탈린과 군사ㆍ경제 분야에서 "긴밀한 전후 협조"를 약속하여,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를 향한 인민의 길"에 따라 대지주의 재산, 공장, 광산, 제강소, 은행을 몰수하여 국유화하였다. 베네시는 러시아의 하수인은 아니었으며, 그의 계획에서는 다른 동구권 국가의 몇몇 내정 개혁과 다른 점이 있었으나, 스탈린은 베네시가 재산 몰수를 실시했고, 여타 소비에트 블록 나라보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자 세력이 강하다는 점에도 만족하여 그를 반대하지 않았다.

 

1945년 3월 베네시는 모스크바를 방문하였다. 소련 내무인민위원회의 질문 목록에 답변한 뒤 베네시는 주데텐에 사는 이백 만 여명의 독일인과 400,000명에서 600,000명 사이의 헝가리인을 국외로 퇴거시키고, 붉은 군대와 긴밀히 공조하는 강력한 군대를 육성한다는 계획으로 소련 정부를 기쁘게 하였다. 1945년 4월 세 개의 사회주의 정당이 지배하는 거국 연정인 제3공화국이 창설되었다. 공산당의 힘이 강했고(이들은 300석 가운데 114석을 점하였다) 베네시가 소련에 충성하였기 때문에 다른 동구권 국가와 달리 소련 정부는 체코슬로바키아에 블록 정치를 강제하거나 "믿을 만한" 간부를 최고위직에 앉히도록 요구하지 않았으며, 행정부과 입법부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예전대로 하던 구조를 계속 유지하였다. 그러나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1946년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고도 자신의 입지를 펼치지 않는데 처음으로 실망하였다. 이들은 지방 정부를 공산당이 장악한 새로이 구성된 위원회로 대체하여 기존의 행정 실권을 빼앗았으나, 군대내에 "부르주아"의 영향을 제거하거나 실업가와 대지주와 재산을 몰수하지는 못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어느 정도 독립적인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어 처음부터 소비에트 블록의 전형적인 정치ㆍ사회ㆍ경제 체제를 갖추지 못했으므로 소련 당국은 이를 문제시하게 되었다. "애국 전선" 바깥의 세력들은 정부에서 배제되었으나, 이들은 아직 건재하였다. 붉은 군대가 점령한 나라들과 달리, 체코슬로바키아에는 공산당이 이미 주도적인 역할을 주장할 수 있어서 소련의 군정 당국이 없었다.

 

소련 당국은 다가오는 1948년 선거에서 공산주의자가 승리하리란 기대를 잃어갔다. 1947년 5월에 크렘린의 어느 보고서에서는 서방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반동적 요소"가 강해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마셜 계획의 자금을 얻을 것을 잠시 고려하고, 그리하여 1947년 9월 시클라르스카 포렝바에서 코민포름이 여러 공산당을 비난하면서, 루돌프 슬란스키 (Rudolf Slánský) 는 국가 안보국(StB)이 당내 정적을 제거하고 반대자를 숙청하여 권력을 잡을 계획으로 프라하에 돌아왔다. 1948년 2월 초에 공산주의자인 내무 장관 바츨라프 노세크 (Václav Nosek) 는 국가 경찰대에 남은 비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려 하는 월권 행위를 하였다. 소련의 발레리안 조린 (Valerian Zorin) 대사는 쿠데타를 준비하기 위하여 프라하에 도착하였으며, 비공산주의자가 장관직에 오르고 군대가 병영에서 출금 조치되자 정변을 일으켰다. 붉은 군대에 복무하는 조린 (Zorin) 과 함께 공산주의자 "행동 위원회"와 노동조합 민병대가 이내 조직되어 무장하고, 반공주의자를 숙청할 준비를 갖추었다. 베네시는 내전이 일어나고 소련이 간섭할 것을 두려워하여 1948년 2월 25일에 항복하고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이 장악한 정부를 인명하였으며, 그 지도자는 스탈린주의자인 클레멘트 고트발트 (Klement Gottwald) 로, 이틀 뒤에 총리직 취임에 선서하여 독재를 이끌었다. 유일하게 고위직에 있던 비공산주의자인 얀 마사리크 (Jan Masaryk) 는 2주 뒤에 시체로 발견되었다. 소련이 지원한 쿠데타는 대놓고 잔인하게 행동하자 서방 국가들은 이전의 어떤 사건보다도 충격을 받았으며, 일시적으로 전쟁 자세를 취하여, 미국 의회내에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마셜 계획에 반대하던 소수의 사람들조차 찬성으로 돌아섰다.

 

1948년 2월 쿠데타가 일어나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자들이 집권하자 체코슬로바키아는 새 헌법이 발효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Československá republika)이라는 인민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그 후 공산주의 체제의 안정을 위해 1960년 신헌법을 채택, 시행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사회주의의 최종적 승리"의 상징과 마찬가지로 1960년 7월 11일에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국호로 바꾸었으며 1990년 벨벳 혁명 때까지 유지되었다.

 

1969년 각각 동등한 지위를 갖는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두 구성공화국이으로 이루어진 연방제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이행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을 휩쓴 개혁, 개방 물결 속에 1989년 벨벳 혁명으로 다당제가 도입되고 공산정권이 붕괴되었고 1990년 4월 1일 공식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으로 변경하여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명칭은 사라졌다.

 

한편, 이후의 체코 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은 1992년, 각각 체코슬로바키아로 분리할 것을 결의하여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는 완전히 소멸하고 두 독립국인 체코 공화국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나누어졌다.

 

[출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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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공부.. 하지 말 걸 그랬어..( '') 하루에 한 문단씩 읽어야겠어..( '')

 

루드빅은 자신을 이렇게 불운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파벨 제마넥의 아내 헬레나를 굴복시켜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그녀를 정복했을 때 비로소 깨닫는다. 헬레나와 제마넥의 오래된 관계, 과거에 묶인 사이일 뿐 현재의 둘 사이는 애틋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음을. 한때 증오하는 그 남자의 모든 것인 여자였지만 이제 그에게 있어 아무 것도 아닌 존재. 그 여자를 정복함으로서 그에게 복수하려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과 이제는 그가 아니라 자신이야말로 바로 그 실수로 썼던 엽서 속 편지, '트로츠키 만세'라는 농담에 길들여져버렸음을. 그는 돌이킬 수 있을 것인가. 언젠가 자신의 욕망 앞에 끝내 꼬리 내리지 못한 채 흐느끼다 소리없이 안개처럼 떠나버렸던 루치에를 다시 만나게 된 지금이 바로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할 계기인가.

 

그가 헬레나를, 여자를 다루는 방식은 남녀의 차이를 관통하는 사유인 동시에, 쿤데라의 의식 속 여자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여자의 생각을 다루는 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나름의 규칙이 있는 법이다. 이성으로 여자를 설득하려 하거나, 아주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여자의 의견을 반박한다거나 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여자가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이미지(원칙이나 이상, 신념 같은 것)을 파악하고, 우리가 바라는 그녀의 행동과 그 이미지가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궤변을 동원하여)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이다. (p.259)

 

그는 친구 코스트카를 기다리며 루치에의 소식을 애타게 갈망한다. 코스트카에게 듣게 된 루치에의 비밀과 자기를 떠난 이후의 그녀의 삶에 대해 듣고는 한 사람이 가졌던 세월과 시간, 비밀에 대해 떠올리며 이제 그녀가 완전히 저를 떠났다는 것을 느낀다. 제마넥에게 복수하려 헬레나에게 접근했던 이유, 그 시작이 되려 굴욕적으로 자신을 사로잡는 걸 느끼며 루드빅은 괴로워한다.

 

내가 복수하고자 했던 나의 과거, 그러나 여기서 마주쳤는데도 마치 나를 알지도 못한다는 듯이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가 버린 나의 과거, 그 과거 전체가 나에게 보여준 것과 동일한 그런 차가운 무관심.

 

나는 굴욕과 수치로 숨이 막혀왔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은 마음, 혼자 있고 싶은 마음, 헬레나와 제마넥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그제와 어제와 오늘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을 다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 마지막 흔적까지 모두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었다. (p.385)

 

그는 겨우 과거를, 이제 나에게 밖에는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못하는 과거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헬레나에게도 자신의 모든 꼼수와 계획적 언행을 털어놓는다. 승리의 문턱에서,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이전부터 루드빅은 과거를 원망하고, 과거를 향해 복수하려는 이 모든 계획들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쭉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 멈추지 않은 채 질주함으로서 마지막에서 맞닥뜨린 건 결국 패배와 좌절 그리고 자기 바닥을 확인하는 일 뿐이었다. 그는 절망한다. 세상에 나서 제 바닥을 스스로 자초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보다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까.

 

마지막 챕터에서는 지금까지 있었던 15년 사이의 기나긴 일들보다 더 폭풍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루드빅은 야로슬라브의 연주 악단에 참여하여 여지껏 겪었던 일, 저질렀던 잘못, 존재와 영혼의 상관관계, 처음에는 고쳐볼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나중에는 잊기로 한 부질없는 것들을 하나하나 상기시키고 또 잊어간다. 역사 속에서 혹은 개인의 일생 안에서 생성되는 존재의 모든 말과 행동에서 어떤 인간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던져준 채로. 다른 말로는 책임.

 

나는 비로소 루드빅 아니면 코스트카의 입으로만 과거, 현재를 드러내는 신비의 여인 루치에가 궁금했다. 존재의 가벼움, 영혼의 무거움, 현실의 영면화 등 쿤데라가 늘 드러내왔던 작품세계가 여기 <농담>을 지나치지 못한다. 여전히 이해불가에 어렵고 난해하고 나 자신이 별 것 또는 별 것 아니게 느껴지게 하는 이 모든 힘. 이미 있어왔던 것과 새로 생겨날 것에 대한 조화의 힘. 존재와 영혼이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 루드빅의 아니, 쿤데라의 모든 농담이 존재한다. 쿤데라는 읽고나서도 여전히 어렵다. 빛을 비추는 곳마다 어둡다. 기교가 아닌데 기교처럼 느껴지는 문체가 암담하면서도 아름답다. 삶의 지혜를 찾고싶다. 오래된 것을 무시하지 않고 새 것을 받아들일 용기를 갖고 싶다. 함부로 농담을 건네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당신에게 건넬 새로운 농담을 찾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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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3-0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밀란 쿤데라 <불멸> 읽고 참 좋아서, 아는 사람들한테 선물할 때 늘 이 책을 고르고는 했었는데, 막상 그의 대표작이라는 <농담>은 읽어본 적이 없네요. 아..이 이야기가 이렇게 욕망이 가득한 이야기던가요. 내용으로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이 연상되네요..

아이리시스 2012-03-10 00:16   좋아요 0 | URL
제가 책장에 꽂아만 둔 게 <불멸> 이거든요. 이건 걱정을 전혀 안한 게, 괜찮다는 분을 많이 봐서(얼마전에 샤이닝님도, 오늘 맥거핀님도) 시간만 내면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두께는 이것보다 많이 두껍던데요. 당분간은 쿤데라랑 멀리할 듯.

오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들 좀 검색해봤는데 시작을 <지하로부터의 수기>로 하면 어떨까 했었는데 완전 신기하네요. 맥거핀님이 언급하시는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3-1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 농담이네요. 근데 항상 느끼는거지만, 말은 정말 잘 골라서, 가려서 해야 해요.

요새 도서관에 펭귄클래식 시리즈가 아주 꽉 들어찼는데 손에 안 들어와요.
이 민음사 시리즈가 왠지 오래된 친구처럼 정겨워서 그런지 새로 나오는 고전들이 판형도 종이질도 느낌도 좋은데
왠지 이 시리즈만큼 친근해지지 않네요. 뭐 그렇다고 제가 민음사 시리즈를 사들이는 만큼 읽어대는 것도 아니예요.ㅋ


아이리시스 2012-03-14 12:29   좋아요 0 | URL
저는 구소련,독일 사정들 잘 몰라가지고;; 최대한 찾아보고 아는 척 하며 쓴 거예요!!
사상으로 사람을 구속하고 잡아가둔다는 게 시대착오적인 구석이 많은데, 예전에 우리 때도 그랬잖아요. 사상범들 잡혀오면 말로만이라도 전향해도 살려준다는 거, 그거 생각났어요^^

펭귄클래식이 누워서 들고 보기는 좋아요. 한때는 가벼운 책에 목말랐는데 전집 중엔 맘에 드는 게 없어요. 민음사랑 펭귄클래식도 크기는 다 어정쩡해서;; 그래도 민음사가 여전히 제일 친근해요!! 아직 못 읽은 게 많은데 자꾸 사들이고 있어요. 히히히.
 
사랑의 사막 펭귄클래식 124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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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모리아크(1885-1970)는 프랑스 보르도(거대 포도농장이 있어 와인 원산지로 유명한 곳) 출신으로 195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여 그의 작품들은 '레지스탕스 문학'으로도 분류된다. 법정 체험을 그린 <테레즈 데케루>(1927)가 대표작이지만 읽기는 연대가 더 빠른 <사랑의 사막>(1925)으로 시작했다. 짧은 분량으로 어렵지 않게 읽히지만 "그의 소설에 드러난 깊은 정신적 통찰, 그리고 인간 삶의 드라마를 관통하는 예술적 강렬함"을 이유로 노벨상을 수여한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평가에 걸맞는 압축된 작품세계를 느낄 수 있다. 

 

모리아크는 보르도 지방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모친의 영향으로 인간의 타락과 죄악, 인간 본연의 내적 갈등과 고통, 신의 은총 등을 통찰하는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스토리 보다는 심리묘사에 중점을 두고, 자유와 갈망의 수단으로 '사랑'과 '소통'을 택하여 자기 존재를 새롭게 증명하기 위해 안달하는 주인공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사랑의 사막>은 정확히는 자기 존재를 증명함으로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구를 두 남자가 같은 여인을 바라보며 얻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랑'으로 환원시킨다. 단조로운 이야기 속 빛나는 통찰과 돋보이는 문체. 두 남자는 어떤 파국을 맞게 될 것인가. 혹은 누가 행운아가 될 것인가.

 

종종 레몽은 회상 속에서, 그해 여름의 무더위와 자신을 휩쓸었던 내면의 뜨거운 불을 혼동했다. (p.35)

 

이야기는 어른이 된 레몽이 어느 술집에서 복수를 위해 기다리고 기다린 마리아와 우연히 마주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째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곧이어 시대를 20년 전 그가 열일곱의 소년이었던 시절로 되돌린다.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의사 아버지와 수다스럽고 경박한 어머니, 결혼한 누나와 매형, 예쁜 조카들과 함께 사는 레몽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지루하고 의미 없는 삶의 단면으로 느낀다. 학교에서 집, 집에서 학교로 이리저리 불려 다니지만 학교는 돌벽으로 둘러싸인 창살 없는 감옥처럼, 선생님을 비롯한 친구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지루한 존재들로 다가올 뿐이다. 집에는 남편과 자식들 닦달하는 게 유일한 낙인(본인은 애정인 줄 앎) 어머니와 제 가족 살 길과 행복 외 어떤 것에도 관심 없는 누나 부부, 그저 우호적이기만 하면 부모 역할 다인 줄로 아는 아버지 때문에 피곤함을 느낀다. 안팎 어느 곳에서도 인정 받지 못하는 레몽은 하물며 또래의 관심사인 '여자'나 '과시'에도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방황한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는 일정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늘 사랑을 위한 빈자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다. (p.40)

 

레몽의 어머니는 남편이 무뚝뚝하고 무관심하며 늘 한 걸음 뒤에 있는 듯한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을 그의 직업적 특성으로 이해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남편 쿠레주 박사와 아들 레몽이 자신이 제일 비난하는 이웃집 마리아에게 빠져있을 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 어쨌든 아버지와 아들, 두 남자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각각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마리아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에게 사랑과 남자는 이러했을 뿐이지만.

 

"저를 타락시킨 것은 가난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나쁜 무엇이에요. 근사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싶은, 혹은 다시 결혼해서 확실한 자리를 잡고 싶은 욕구 같은 것.. 현재 저를 라루셀 곁에 붙잡아 두는 것은, 치러야 할 전투 앞에서 도망치는 비겁함, 박한 월급으로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은 허영이에요." (p.73)

 

그녀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려 매일 묘지로 가는 여섯시 전차를 타면서 열일곱의 레몽을 본다. 처음에는 침묵 속에 서로의 암묵적 존재를 인정하던 사이에서 점차 각자의 환상을 키워가다 비로소 한 인격체로서 서로를 대하면서 아찔한 혼란을 느낀다. 치료 명목하 집에 오던 쿠레주 박사가 관심을 표해온다는 것을 알고도 철저히 무관심으로 응한 그녀다. 칭송받는 인격에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지만 마리아에게 그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남자일 뿐이다.

 

마리아는 더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즈음 레몽을 만나면서 자기 안에 다시 사랑의 불씨가 타오름을 느낀다. 그것은 강렬하고 강력하다. 들킬까 겁이 난 그녀는 처음으로 찾아와 함께 방안에 있게 된 그를 "혼자 있고 싶어요"란 말로 내치면서 훗날 그를 거칠고 정복에 열올리는 자존심 강한 남자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사실은 흔들리는 자신을 견디기 위해서였을 뿐이지만 레몽에게 그것은 평생에 걸쳐 극복해야 할 남성으로서 거절당한 트라우마로 남는다.

 

당신은 한 여자의 가혹하고 혼란스러운 인생 속에 유일한 기쁨이었어요. 이번 겨울 매일 집으로 돌아가는 전차 안에서, 저는 당신으로 인해 휴식할 수 있었지요. 당신은 몰랐겠지만.. 그렇지만 당신이 보여준 그 영롱한 얼굴은, 내가 소유하길 갈망하는 영혼의 그림자에 불과해요. 당신에 대해서 모든 걸 다 알고, 당신의 모든 불안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 우리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함께 헤쳐가는 것, 당신에게 친구, 어머니 그 이상의 존재가 되는 것.. 나는 그런 것을 꿈꿔 왔어요.. 그러나 마음대로 나 말고 다른 존재가 될 수는 없답니다. 당신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로 인해 타락한 공기를 마시게 될까 봐 겁이 나요.. (pp.139-140)

 

쿠레주 박사와 그의 아들 레몽, 마리아. 세 사람은 상대를 사랑함으로서 상대는 물론 자신에게 가장 상처 입힌다. 때로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이 사랑인지 자기애인지 혼동된다. 쿠레주 박사는 자신의 본질적 비극을 넘어서야 한다는 걸 알고 체념함으로서 사랑 앞에 절망하고, 레몽은 드디어 닿을 뻔 했던 그녀에게 내쳐짐으로서 상처 입는다. 마리아는 그녀대로 금지된 사랑과 현실의 안락함 혹은 주위 시선을 저울질하다 레몽을 거절함으로서 현실에 안주한다. 셋의 사랑은 자기 것이 아닌 곳에 다다르기 위해 안간힘 쓰다 갈구하던 것을 갖지 못하고 다시 제 세상에 처박히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닮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불륜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러브스토리를 빙자한 인간 본연의 자기탐구에 가닿는다. 인간은 고립되었고, 결국 고립된 자기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타인과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발버둥 친다. 상상 속에서 사랑하는 것이 더 행복하고 현실에 죄가 되지 않는다며 포기해버린 쿠레주 박사나 그녀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라는 것을 알고 20년이 지난 후까지 그녀의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레몽, 여전히 원래 남편을 벗어나지 못한 채 안주하고 있는 마리아. 그들이 원한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랑이 고립된 자신을 꺼내줄 수 있을까. 그들은 그렇게 믿었을까.

 

내가 꿈꾼 건 어떤 침묵이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침묵. 욕망이 태어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 안에 있는 욕망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통하는 침묵. 쓰다듬고 애무하는 모든 행위는 두 존재 사이의 간격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만약 두 존재가 너무나 가까워져, 둘 사이의 경계선이 흐려지고 혼동된다면.. 그때는 결합이, 수치심을 동반하는 이 포옹이 필요 없어지지 않을까?.. (p.169)

 

모든 욕망이 전율했다. 욕망과 쓰다듬고 애무하는 모든 행위, 포옹이란 이름은 존재하는 두 존재 사이의 간격을 전제로 한다는 말에서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나는 껴안아야 했다. 사랑은 바로 이 순간의 감정과 흐느낌과 욕망 뿐이니까.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사랑의 무의미, 몰가치, 허무를 가장 잘 알고있는 여자가 아니었을까. 내 존재가 사라지면 타인을 원하는 마음도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보다 먼저 알고 있었던 똑똑하고 지혜로운 여자. 그런 여자가 먹고 사는 고단함에 지쳐 꺾인 날개로 사랑, 그러니까 욕망하지 않는 남자의 부유함 뒤에 숨어 수치심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각자의 섬일까.

나를 몰라서 나를 알기 위해 자꾸만 너를 괴롭히는 게 아닐까.

내게 있어, 널 괴롭히거나 네게 괴롭힘 당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쯤했을 때, 난 더이상 그들의 결말이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이 소설은 그저그런 단순한 러브 스토리나 불륜의 소재로 빚은 의미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 주인공의 결말이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다들 불꽃처럼 정열적이고 반짝거리는 삶을 꿈꾸지만 애초부터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도.

 

사랑과 존재와 삶은 허구도 아니고 허무도 아니지만 그것들에게 다가가는 감정과 욕망은 허구이자 허무일 뿐이었다. 이전 사랑에 속으면서도 또 시작하는. 끝에 데여봤으면서도 또 끝낼 수밖에 없는. 당신이 아니라 나를 알기 위해 자꾸만 다가가는. 불꽃 같고 굴레 같고 지옥 같지만 때때로 황홀한 삶 그리고 사랑. 그리고 나의 삶. 존재함으로서 완벽해지는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욕망은 타오를 때라야 아름다운 것이다. 나를 알기 위한 여정이 당신에게로 닿는 일 전부라면 아무리 잔혹하고 비극적이더라도 걸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 나를 향해 오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모든 것은 세월이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슬프게도. 좀 더 오랜시간 또렷한 존재로 각인되고자 하는 방법이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거나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감으로서 박제되는 일 뿐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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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3-0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이 먼저 이 소설을 읽으셨군요. 저도 이번에 나온 모리아크 소설 읽어보려고 했거든요. ^^


아이리시스 2012-03-02 14:09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모리아크 좋았어요. <테레즈 데케루>도 보고 싶어요. 짧은 분량인데 다 담겨있더라고요. <좁은문>의 느낌이 나서 좋았어요. 어렵지 않게 읽히는 것도 좋아요.^^

2012-03-01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2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2-03-02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번 리뷰는 특히나 평론가의 리뷰같아서 좋네요 ^____^
표지의 그림이 꽤나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내용 자체는 괜찮아 보여요.
펭귄 클래식은 믿고 있으니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고 싶군요 ^_^
지금은... 8만원이 날라갈 위기에 처해있기에... 후후

아이리시스 2012-03-02 14:17   좋아요 0 | URL
소이진님 안녕. 평론가의 리뷰.. 과한 칭찬 기분 좋아요 ^_____^
그보다 끝까지 관심 가지고 읽어주시는 게 더 좋아요.
내용 괜찮아요. 좋았어요. 셜록 홈즈 샀어요? 8만원은 또 뭐예요?
저도 왜 확 지르고 나니까 꼭 읽고싶은 책들이 막 생길까요..
이제 적립금 없는데.. 난 책 살 돈이 없어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오늘은 보험금 독촉 받았어요. 좀 늦었다고 보험 실효됐어요. 방금 살리고 오는 길ㅜㅜㅜㅜㅜㅜㅜ
세상 너무 냉정해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이진 2012-03-02 21:32   좋아요 0 | URL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보험금 독촉이라니 눈물이 앞을 가려요 ㅠㅠㅠ
저도 적립금 0원이어요....... 마일리지만 5천원정도 딱 현금으로 바꿀정도 있어요...
그거가지고는 만화책 나오는거 두권도 못사요.
세상은 너무 냉정하고 할건 많은데 냉정한 세상은 받아주지도 않고.
셜록홈즈는 샀는데... 대체 일주일 전에 샀는데 피아노 연주곡집 하나가 준비가 늦게 되어서 아마 빠르면 내일 올 거 같아요. 두근두근두근두근. 8만원은 해외 사진집인데 한권에 5만원!!! 흑....

아이리시스 2012-03-03 14:38   좋아요 0 | URL
해외 사진집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피아노 연주곡집도 사고? 이야 ^_____^
멋져요!!! 꺄울 >.<

신지 2012-03-02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소설에 드러난 깊은 정신적 통찰, 그리고 인간 삶의 드라마를 관통하는 예술적 강렬함"이라는 말이 잘 와닿는 리뷰였어요. 특히 이번엔 더, 인용하신 문장 뿐만 아니라 리뷰 자체에도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가득하군요 리뷰만 읽어본 상태지만 이 작가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과 작가의 관심에 흥미가 느껴집니다 많이 공감할 것만 같은 느낌... 무의미, 허무, 수치심,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안주하는,

다만 노벨상 수상 작가가 썼다니.............
전 영화로 나왔으면 좋겠네요( ")

아이리시스 2012-03-02 14:22   좋아요 0 | URL
안녕, 신지님. 오오, 그러니까 제가 잘 썼다는 말이죠? 잘 다가가게? 히히(자화자찬) ^_____^
이 작가의 작품들은 주로 펭귄 클래식 시리즈로 나오던데 작가 평판이나 노벨상 수상작가인데도 관심이 좀 덜한 것 같더라고요. 문장은 좀 쉬운 편이구요. 작품세계는 제가 쓰고 싶은 것과도 닿아있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공감할 것만 같은 느낌.. 저도 많이 느껴요.

글쎄, 영화로 나오면 보르도를 맘껏 감상할 수 있을테니 풍경은 멋지겠구요. 내용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알로하 2012-03-09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구절을 정말 공감합니다. 그래서 불멸의 사랑이야기는 해피엔딩보단 새드엔딩이 많은거 같아요. 서로 씻을수 없는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한 고통스러운 사랑이 더 기억에 남게 되고... 잘 쓴 사랑이야기는 여러 개인간의 관계로 시작해서 한 개인의 내면에서 끝나게 되는 듯. 모든 사랑 이야기가 성장담 같기도 하고요. '너'와 '나'의 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좁힐 수가 없으니... 아 허무하네요!

아이리시스 2012-03-10 00:04   좋아요 0 | URL
알로하님 오랜만이에요. 어디 갔다 이제 온 거예요!!!

드라마 <난폭한 로맨스>에서도 도우미 아줌마가 이런 말을 했었구요. <사랑의 사막>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오더라고요. "가장 오래 기억되는 방법은 잊혀지는 것이다"

슬프고 허무해요! 진행형 삶은 변해갈 여지가 많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해피엔딩으로 상상하기 쉽고, 이미 끝난 삶은 마무리 됐기 때문에 불멸로 남아서 새드로 기억되기 때문이라고 하면 완전 맞는 말이잖아요.

자주 와요, 알로하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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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넓은 지면이 주어져도 못 쓰는 건 못 쓰는 것이다. 책이 아무리 재밌어도 못 쓰는 건 못 쓰는 것이다. 아무도 쉽게 손대지 못하는 어려운 책을 읽었다는 티를 엄청 내고 싶어도 못 쓰는 건 못 쓰는 것이다. 읽는 일과 쓰는 일은 명확하게도 따로 존재해서 나는 잘 읽는 사람이 반드시 잘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관없는 일이다. 송강호가 영화를 잘 안 본다고 말하는 거나 원작이 있는 작품에 캐스팅 된 배우에게 감독이 일부러 원작을 보지 말라고 주문하는 경우와도 같다. 읽는 일과 쓰는 일은 너무나 또렷하게 별개라 나는 종종 당황스럽다. 읽어내는 일과 별개로 쓰고 싶은 걸 쓰지 못할 때 자신에게 답답해진다. 글을 쓰고 싶잖아. 사실 글을 쓰고 싶어 담고 또 담아놓는 거잖아.

 

 

구혜선이 첫 소설을 냈을 때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써왔고 그걸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 놓고 종종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보기에도 앙증맞고 귀여운데 소위 전문 작가에게 좀 어설퍼 보여도 배우,감독,소설을 다 만들어내는 그녀는 놀랍다.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세상에, 어설프게 해놓고 어설픈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잘한다 하면 진짜 잘하는 줄로 아는 멍청한 사람보다는 하나하나 도전하는 게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른다. 욕심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열 살, 열 다섯 살, 스무살, 스물 셋에 쓴 일기 속 내가 전부 다르다고.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고. 그래서 그때의 일기를 뒤적이면 지금은 떠올릴 수 없는 그 나이 또래의 캐릭터가 나오고, 그렇게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몰랐던 것도 아닌데 새삼 세월과 시간을 간직한다는 것은 추억을 저장하는 것 외의 역할이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이미 내 오래된 일기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수도 없었다. 아쉬워하기도 전에 잃어버린 어린시절의 증명들을 다시 찾아내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서로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얼 하면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일까? (p.148)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이야기하면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산산이 부서져내린 '9.11 테러'를 빼놓을 수 없다. 아홉 살 소년 오스카는 바로 그 역사적 사고로 아빠를 잃는다. 기약 없이 떠나버린 사람으로 남은 사람을 괴롭히는 영원한 화두는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것과 잃어버린 사람의 마지막을 두 눈으로 봐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무엇으로도 누를 수 없는 북받치는 공허감일 것이다. 심지어 아홉 살 꼬마 오스카에게도 슬픔은 온전하다. 오스카는 매일 아빠가 보고싶고 그립다. 다정하고 따뜻했던 아빠의 빈자리는 세상 전부일 만큼 커서 아무리 시니컬하게 세상을 바라보려 해도 슬픔이 옷자락을 놔주지 않는다. 몇 번이나 집에 전화를 걸어왔는데 수화기를 들지 못한 사실이 자꾸만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린다. 이걸 알면 엄마와 할머니가 더 슬퍼할텐데 어떡하지. 결국 오스카는 엄마와 할머니에게 숨긴 채 혼자만 아빠의 마지막 목소리를 간직하기로 한 채 옷장 안에 꽁꽁 숨긴다. 그리고 비로소 아빠의 '마지막'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이 소설은 아빠의 아빠(할아버지)가 겪은 오래된 사랑 이야기와 전쟁의 상흔 그리고 오스카의 아빠 찾기가 똑같은 농도로 혹은 어느 것이 다른 어느 것보다 더 뜨겁고 뭉클하게 진행된다. 잘 버무려진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처럼 황홀하기까지 해서 읽기를 멈출 수 없을만큼.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내 마음도 그녀를 따라갔어, 하지만 나는 내 껍질과 함께 남겨졌어, 그녀를 다시 만나야 했어, 왜 그래야만 하는지 나 자신에게도 설명할 수가 없었지, 그래서 그 욕망이 아름다웠던 거야,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잘못이 있을 수는 없는 거란다. (p.160)

 

 

지드의 <좁은 문>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구절은 아무도 가지 못하는 자신만의 길 혹은 누구도 이르지 못한 어렵고 중요한 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었다. 헤세의 <데미안>에서 '알을 깨고 나오라'는 말은 한낱 작은 알갱이 같은 존재에서 좀 더 커지기 위해 혹은 존재의 가벼움을 인식하고 더 넓은 세상을 꿈꾸라는 말이기도 했다. 나 또한 아프락사스(abraxas)가 여기 아닌 어느 곳에 있을 거라 믿으며 그곳에 도달하려 안달했다. 성경을 비트는 헤세의 카인과 아벨에 대한 해석은 기발했다. 그즈음 내 안에 늘 두 사람이 존재했다. 우리는 그 누구도 금지된 것과 허락된 것을 제대로 분간하지는 못했다. 내 안에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존재하는 한 내게는 영원한 행복도 영원한 불행도 없다는 것을 어릴 때 그 책을 읽으며 절감했다.

 

 

아버지는 세계를 구하고 싶어 하셨어. 아버지는 그런 분이었어. 하지만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생각도 없으셨어. 그것도 아버지다운 일이었어. 아버지는 내 생명을, 당신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를 한 생명과 저울질해 보았던 게 틀림없어. 혹은 열 사람의 생명. 어쩌면 백 사람의 생명. 아버지는 내 생명이 백 사람의 생명보다 더 무겁다고 판단하셨던 거야. (p.253)

 

 

오스카는 어땠을까. 오스카를 따라가다보면 작고 여린 오스카가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이 죽은 아빠에게 보내는 목소리와 아버지가 죽은 아들에게(실제로는 태어나지 않은 아들 혹은 어딘가 살아있는 아들) 보내는 편지가 같은 온도로 들끓는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방해한 드레스덴 폭격이나 오스카의 행복을 방해한 9.11 테러는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끝나지 않은 불협화음을 상징하고, 이는 할아버지와 오스카가 어쩌면 영원히 무거운 돌을 안고 살아야 함을 뜻한다. 시대의 불행 속에서 개인의 아픔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의미 없는 싸움이 비로소 끝나면 그들이 영원히 잃어버린 시간 속 모순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군인? 국가? 아니면 전쟁? 묻는다 치자.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아무도 이 문장을 가리키지는 않았지, 당신을 사랑해요.

 

그 주위에는 길이 없었어. 우리는 그것을 기어올라 넘을 수도 없었고, 끝이 나올 때까지 걸어갈 수도 없었어. (p.255)

 

 

할아버지는 폭격에서 겨우 살아남아 할머니와 결혼했지만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떠나버린다. 그는 많은 사람이 곁을 떠나버린 이 세상에 혼자만 살아남은 슬픔이 너무나 커서 어느 곳에도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한다. 살아있되, 죽어버린 삶. 아내와 아들 뿐만 아니라 말도 잃었지만 끊임없이 시간을 글로 남긴다. 일기를 쓰고 아들에게 보내지도 못하는 편지를 쓴다. 그는 쓰면서 시간 안에 숨죽인다. 모든 시절이 글로 변한 노트가 폭삭 물에 젖어 회색빛이 되면 할아버지의 그 시간들도 온전히 사라질 것인가. 그러지 못한다.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스카는 네 개의 메시지 다음에 다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피해버림으로서 소년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비명과 솟구침, 울부짖음이 들려오는 아빠의 메시지를 외면한 순간 이 모든 것은 시작되었을 지도 모른다. 제때 해야 했던 말과 제때 들어야 했던 말을 제자리에서 밀어냈기 때문에 말들이 공기 중을 오랜 시간 떠돌다 결국 제자리를 찾아 오고야 만다.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고, 피하기 보다는 자기만의 쿠션 한 줌 깔고 씩씩하게 부딪치는 것만이 떠난 사람이나 남겨진 사람에게 결국 더 나은 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아니, 내가 말한다.

 

 

요즘 <해를 품은 달>에서는 운명을 이기려는 인간의 오만이 극에 달한다. 달이 해를 품겠다는데 달이 해를 품지 못하게 하려는 사람이 세상을 주무른다. 왕위의 왕이 제 뜻대로 하는 일이 없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달과 해는 서로 만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달이 해를 품겠다는데, 행여 달이 해를 품다 소멸한다해도 그게 운명이라면 막아서는 안 되는 일 아닐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야 하는 말을 꼭 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아예 갖지 못했던 것보다는 잃어버리는 편이 낫죠. (p.433)

 

 

누군가의 위에 누군가를 완전하게 올려놓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인디언은 친구를 '나의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 했는데 하물며 가족이란! 피를 나눠가지고 서로의 몸에서 서로의 몸을 탄생시킨 하물며 가족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는 가족을 말하는 데에 이 소설은 한 치의 모자람도 없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존재인지 묻지 않아도 가족은 모두가 모두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존재들. 태어나기 전과 죽은 후의 세상이 같다면 가족은 어떤 이름으로든 보이지 않는 실로 꽁꽁 묶여 있을 것이다. 가족은 이름만으로도 너무 벅차고 무겁고 때로 헐겁다. 나는 그들로서만 증명된다. 그래서 알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얹혀 가는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너에게 얹혀볼까.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골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전체를 알지 못해 늘 애태웠다. 스스로의 확신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나는 그래야 움직였다. 고집스럽게 세상이 흘렀다. 시간이 흘렀고 나는 조금씩 컸다. 오스카가 아빠의 마지막 목소리를 외면했던 것을 후회하고 아쉬워하다 나중에 아빠가 남긴 열쇠의 주인을 찾기로 하면서 아빠 곁에 가까이 가듯, 보이지 않는 실이 이제부터의 나를 어디로 인도할지 알 수 없다. 내 뿌리와 잎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슬픔이 태어나겠지. 언젠가 증발하는 날도 오겠지. 언젠가 눈물과 비로 뿌려진 이 세상에 아빠를 데려다주겠지. 아홉 살 오스카는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사랑을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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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15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너무 괜찮나고들 해서, 저도 구매는 했는데 아직 못 읽었어요.
아이리님의 따스하면서 관조적 리뷰 좋은데요. 처절하지는 않지만, 묘하게 상냥하지 않은(?) 말투..
그래서 매번 말하지만, 아이리님의 댓글과 상이한 이 분위기에, 아이리님의 실제가 궁금하다니까요. ^^

사랑...... 아, 사랑.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이리시스 2012-02-15 20:49   좋아요 0 | URL
영화로 만들면 사실 책보다 좋을 것 같지 않아요. 묘하게 상냥하지 않다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떤 건지 알겠어요. 그런 뜻이구나.. 그런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원래 좀 될 대로 되라, 뭐 이런 식이예요. 기본적으로는 정과 눈물을 질질 흘리고. 그래서 그럴 거예요. 이게 맞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책 찾아다니는데 마고님 리뷰랑 페이퍼 많이 봤어요. 책 취향 비슷하지 않다고 했는데 이제야 좀 비슷해지는 거거나 제 관심사가 마고님 관심사에 드디어 들어갔거나 아니면 제가 팔방미인이든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느 나무의 일기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리뷰에 나는 없다. 대신 나무가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 그녀일 수도 있지 않냐고? 아니다. 이 나무는 남자가 맞다. 여자나무는 따로 있다. 계속 읽다보면 나온다. 그녀의 이름은 '이졸데'다. 그는 당연히 '트리스탕'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다. 오, 차라리 애증이라면 모를까. 트리스탕, 그러니까 나(나무)는 이졸데를 사랑하지 않았다. 내게 쏟아져야 마땅한 스포트라이트와 내가 받아야 할 눈부신 태양의 햇살을 가린 몹쓸 그녀였을 뿐이다. 나는 이졸데에 대해 말할 생각이 거의 없다. 그녀 보다는 '란 박사'가 내게 더 소중하다. 그리고 나로 인해, 나를 향해 비춰질 모든 이야기들이 중요하다. 일단 내 소개부터 하자.

 

내 이름은 트리스탕, 삼백 살이 조금 못 되었으며, 란 박사가 키우는 배나무 두 그루 중 하나다. (p.8)

 

이 나무가 배나무라는 게 이 소설에 영향을 미칠 지는 모르지만 이 나무가 남자라는 것은 대단히 영향을 미친다. 어느 날 강한 돌풍을 맞고는 트리스탕이 쓰러진다. 혼자만 희생되었다.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지만 중요한 것들은 아니다. 트리스탕이 쓰러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쓰러진 트리스탕이 자신의 일기를 쓴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가 들어야 할 모든 것, 우리의 모든 것, 나무의 모든 것이 트리스탕의 독백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단지 나무, 오로지 나무, 그것보다 훨씬 더 깊고 크고 놀랍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나무는 누군가 자신에게 토로하는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은 갖지 않는다. 자신이 지각하는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태풍이 불고, 화제가 일어나고, 가뭄이 닥치고, 나무꾼이 나타나리라는 예감 외에 다른 불안은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동물들도 느낄 수 있는 이 같은 불안감은 인간들이 느끼는 불안과는 다른 데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우리 자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아니다. 조화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pp.13-14)

 

나(나무)는 그렇다. 인간들은 제 눈(기준과 잣대)으로 나를 봐서는 안된다. 내 불안을 재단하려 해서도 안된다.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내가 하려는 얘기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만도 한데, 그래도 모르겠다면 귀찮지만 계속 이야기해보자.

 

나는 죽어가고 있다. 쓰러진 건 처음이지만 이미 뿌리가 하나 밖에 남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내 주인 조르주 란 씨가 돌아오자마자 장작이 될 것이다. 나는 루이 15세 치하에 태어났다. 1727년생. 나는 당신들이 모르는 300년 가까이의 역사를 살았으며 그중 몇몇은 실제로 겪기도 했고, 당신들이 아는 나 외에도 나만이 가진 '인간화 된' 추억들이 있다. 아, 물론 내가 죽는다는 것이 내게 무척 슬플 거라고 슬프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자유지만, 그건 내 뜻이 아니다. [죽음=슬픔]의 등식은 인간들의 의식일 뿐 내게는 아니니까.

 

마을에서 나는 평판이 나빴다. 마을사람들의 집단적 기억은 나를 이 외진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연루시키더니, 결국은 그 책임자로 만들고 말았다. 나는 한 마녀를 불태워 죽였고, 신부들을 목매달았으며, 한 시인을 자살로 몰아갔고, 한 영국인을 불구자로 만들었으며, 아이 하나를 총살시켰다... 게다가 가지 치는 일꾼이 머리를 땅으로 향한 채 곤두박질치게 했다. (pp.21-22)

 

내 몸에는 '자크'의 두개골을 박살 낸 총알이 박혀있다. 프랑스에서 제일 작았던 레지스탕스 '자크'는 내 주인 조르주 란 씨의 아들이다. 그는 총알의 추억으로 나를 사랑한다. 조르주 란의 도움을 받아 나(트리스탕)에 대한 책을 쓰려던 야니스, 내 이름을 붙여주었던 조르주 란의 오페라 가수 아내 자클린, 옆 집에 살며 나의 일부로 새로운 나(나무의 꿈)를 만들어준 꼬마 마농. 많은 식구들이 있지만 일단 여기까지. 다음 얘기는 열세 살 마농을 훌쩍 키워 아리따운 숙녀로 만들어준다. 15년 후.

 

갑작스런 차사고로 부모를 잃은 마농은 조르주 란 부부에게 입양되어 자랐지만 양부모의 죽음 이후 그들의 자식과 손자들에 의해 쫓겨난다. 하지만 나(나무의 꿈)만은 항상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녀의 조각실력과 사랑하는 남자 야니스를 찾아주었으니 대체 내가 행운의 나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둘은 만나 불꽃같은 사랑을 나눈다. 게다가 그보다 더 중요한 일마저도 해치우기로 한다.

 

그들의 추억과 꿈이 담긴 나(트리스탕)의 역사와 세월과 이야기가 담긴 영화와 책을 만들기로. 제작의 기회는 마농(이제 트리스탄)의 능력으로 붙잡고, 야니스는 글(시나리오와 책)을 쓰기로 한다. 아참, 트리스탄은 트리스탕의 여성단어로 마농의 자작 닉네임이기도 하다. 사랑스런 나의 트리스탄.

 

그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해요. 게다가 등장인물도 다들 쟁쟁하잖아요. 루이 15세, 발자크, 나폴레옹 2세, 드레퓌스 대위, 파블로 피카소... (p.113)

 

사실은 이와는 많이 다르고 훨씬 사소한 주인공들이 등장해야 하지만 알다시피 영화와 책은 허구일 수록, 저 너머 세상을 다룰 수록 더더욱 부풀어 가는 성질의 것이라서.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그들의 아이가 생긴 것이다. 야니스는 바라지 않고 마농(트리스탄)은 죽도록 원하는 바로 그 아기. 그녀는 몰래 낳으러 가고 그는 오로지 나(트리스탕)에 대해서만 골몰한다. 그리고 이야기들이 별처럼 쏟아진다. 내가 가진 이야기들은 아는 것부터 모르는 것까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흘러넘친다.

 

그들이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거두지 않아서 기쁘다. 물론 그것들이 거의 사라져버려 헛간 구석이나 집안 난로의 장작으로만 멀뚱히 지내야 한 적도 꽤 오래 있었지만 슬프지 않다. 나는 그들에게 추억을 되찾아주는 소중한 기억이자, 과거 300년 역사를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존재다. 기죽을 필요 없어. 기죽지 마.

 

들어봐, 이제부터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지는지. 사실 나는 내 이야기가 마음에 들거든. 때때로 야니스가 꾸며낸 이야기마저도. 그 시작은 클래런스 해트클리프 경이 조르주 란(그러니까 내 주인)의 지붕 위에 불시착하게 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게 나의 모든 것에 대해 가르쳐준 사람.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사람. 그는 레지스탕스(제2차 대전 때 독일점령하에 놓인 국가들의 지역에서 일어난 저항운동)를 피해 -사실은 영국으로 밀려드는 레지스탕스들을 피해 망령한 것- 공군을 꼬드셔 기어이 낙하산으로 날다가 떨어진 잉글리쉬(영국인)였다. 내가 나의 기능과 인간의 정신에 대해 탐구할 수 있게 해준 것도 그였다. 그는 기발하고 무모하고 열정적이면서도 무질서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쟁의 종식을 내 주인의 초가집 지붕 아래에서 지켜보았다. 당연히 나도 그를 지켜볼 수 있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트리스탄, 야니스, 그들의 아들 토에, 나를 훔쳐 달아났던 샤픽 그리고 트리스탄이 죽은 후 야니스에게 생긴 애인 오드리, 토에를 키워낸 아마존 부족, 환경과 나무를 파괴하려는 이들과 싸우는 과정,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없던 야니스와 토에가 한 경매장에서 기적적으로 서로를 알아보는 모습 등 아주 크고 긴 이야기다. 트리스탄이 자신을 떠나 죽어버린 후 삶의 끈을 놓으려 했던 야니스의 부활기이기도 하며, 야니스가 나(트리스탕)에 대해 쓰기 위해 내 과거, 현재, 미래를 탐험하는 동안 나 또한 동시에 나의 모든 것과 이들의 모든 것,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오래 전부터 내게만 들리는 두 아이의 목소리, 드레퓌스 사건, 히틀러의 출생, 비시 정부 등의 오브제를 좇아 낚으러 간다. 탄생과 소멸까지 내 위대한 비밀들이 드디어 풀리는 순간은 직접 경험해봐야만 그 끝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망각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진 인간의 학살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지구는 스스로를 제어하고, 땅은 피를 마시고, 나무들은 그대로 머무른다. 종교라는 말이 지성이라는 말과 같은 유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말고 누가 기억하겠는가? 관계를 만들어내고, 다양한 삶의 형태들이 상호작용을 하도록 강조하는 것... (p.199)

 

아, 나는 인간의 비루함, 낭비, 실수, 오욕을 너무나 많이 또 정확히 보고 있다. 인간들은 자신들 뿐 아니라 우리도, 모든 자연(환경 혹은 생태계) 또한 조정하고 진화하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들은 늘 불평할 뿐이다.

 

21세기 말 인간 전문가들이 예언하는 기후온난화와 핵겨울 대신 이루어질 인간 재고 정리는 최후의 심판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많은 수의 인간들이 갑작스레 자살 충동을 일으키는 우울증에 저항하는 유전자를 발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생명 형태가 지상에 존재하는 목적이 공감을 통한 인식의 확대이고, 이 같은 기능은 증오와 무분별한 이기주의와 절망 속에서는 완수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p.239)

 

시간이 흐르고 야니스는 어느새 백발이 되었다. 더이상 사랑을 나누지 못하게 된 그가 몰두하는 것은 과거다. 그가 나이를 먹고 더욱 더 현재나 미래에서 등 돌릴 수록 과거에 집착하게 되었고, 나는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루이 15세 통치 하, 생메다르 묘지의 얀센파 광신자 사건과 왕의 두 아이에 대한 은밀한 살인. 그 아이들의 손에 들려있던 "루이 14세가 좋아해서 매일 아침 먹었고, 모든 귀족에게 하사했던 품종인 빌구테 배"(p.250). 배의 씨까지 남김 없이 먹다 경련을 일으켜 숨을 거두어 매장된 아이들. 쌍둥이의 위 속에서 싹을 틔워 자라난 배나무 두 그루가 바로 나(트리스탕)과 이졸데였다. 이후 내게 생긴 모든 비극적 사건들과 내 아래에서 죽어간 사람들, 내가 흡수한 피들은 모두 쌍둥이의 저주 때문이었나.

 

하지만 나는 달라지고 있다. 상시 전시 박물관에 안착된 유일한 나(나무의 꿈)는 이미 사람들에게서 잊혀진지 오래다. 설상가상 야니스가 죽어버린 이후로 나에 대한 책, 그러니까 내 자서전은 그다지 인기도서가 되지 못했다. 이제 나는 없다. 나는 폐기되는 걸까. 이토록 오랜시간 동안 내가 뿌리고 흩어놓은 기억들을 따라 이리저리 시간여행과 공간여행을 했던 나는 나에 대해 생애 처음으로 가장 많이 알게 된 지금, 이 세상을 떠나야 할까.

 

아니었다. 나는 70년 전 어린 마농이 뱉어놓은 한 알의 씨로 다시 부활하고 있었다. 느껴졌다. 나는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껏 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었고, 가고 싶은 모든 곳들에 갈 수 있었고, 다른 모든 이들의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휴면 중이지만 곧 깨어날 것이다.

 

나는 그 씨앗에서 내 존재의 향기가 풍기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한 것을 알고 놀랐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깐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할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새로운 성장에 나 자신을 맡겼다. 내 기억은 멈췄다. 그리고 다시 삶의 침묵이 시작되었다. (p.256)

 

나는 부활했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전생을 잊게 될까 기억하게 될까. 기억해도 좋겠고 잊어도 좋겠지. 하지만 더이상 인간의 의식과 정서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싶다. 나는 나무니까 그들과는 다르니까. 나는 내가 느끼는 대로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는,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 살고 많은 것을 기억하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 즉, 역사를 담고 있는 나무니까. 나는 다시 태어나도 나무로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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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2-04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이님께서 작성하신 리뷰들은 댓글을 달기가 너무 힘들어요.
리뷰가 너무 좋기도 하지만 또 그에 따라 어렵기도 한걸요.
그래서 사람들이 아, 대단하구나,하고 추천만 콕 박고는 감히 댓글 달 엄두도 못내고 뒤로 버튼을 누르시는 것 같아요 ㅎㅎ 저야 이 책의 표지의 귀엽지만 장엄한 모습에 반해 댓글을 남기지 않을수가 없지만요.

아이리시스 2012-02-05 02:26   좋아요 0 | URL
이 책은 드물게 꼭 보고 싶은 책을 서평도서로 받게 됐는데 어떻게 나무를 1인칭으로 이렇게 좋은 소설을 지어낼 수 있는지 감탄했어요. 작가도 [언노운]의 작가였어요. 나무가 이토록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낀다면 새삼 인간이 모든 것을 파괴할 권리가 없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막상 읽어보면 리뷰도 어렵지 않게 썼어요. 길어서 어려울 것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만약에 읽은 책 중에 소이진님께 추천해준다면 [어느 나무의 일기]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뻔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고 착하고 맑고 상상력 풍부한 소설이거든요.

페크pek0501 2012-02-04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렇게 긴 글이라니... 제 글은 여백이 많아 사실 그렇게 긴 글은 아니거든요.
님의 글은 글자수가 많아요. 그래서 알찬, 꽉찬 리뷰의 이미지를 풍겨요.
나도 추천만 누르고 사라질래요. ㅋㅋ

아이리시스 2012-02-05 02:29   좋아요 0 | URL
거기다 인용까지 하면 대박 길죠. 좀 간결하면서 모든 것을 담아내는 분위기여야 하는데ㅋㅋㅋ 아.. 이런 말은..( '') 추천 고맙습니다, 페크님. 새삼 부끄럽네요, 으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