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미니츠 SE (2disc)
크리스 크라우스 감독, 모니카 블리브트리우 외 출연 / 대경DVD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자고 있을 때 엄마는 홈쇼핑에서 검은콩과 땅콩&호두 맛의 대용량(크다는 뜻 아니고 많다는 뜻) 두유를 구입했다. 주문했으니 택배 아저씨를 외면하지 말고 잘 받으놓으라는 지침이 있었는데 다행히 내가 아니라 엄마가 두유를 맞이했다. 무거운 박스를 경비실에서 낑낑대며 들고올 뻔 했으니 이런 구세주여. 스물 네 개들이 네 박스. 자그마치 아흔 여섯 개. 내가 허리띠 졸라매야 되니까 당분간 홈쇼핑에서 뭘 좀 사지 말라고 바로 어제 얘기했는데, 푸하하, 엄마 또 질렀어ㅋㅋㅋ 이왕 산 거 맛있겠네, 식전에 하나 받아들고 낼름 빨대 꽂아 몇 모금, 그리고나서 김치볶음밥을 먹었는데 그만 배탈이 나는 바람에 먹다 남은 두유는 식탁에 놓고 화장실 다녀온 다음 혹은 한끼 식사 더한 후 또 한 모금, 다시 배가 살살 아파질 것 같은 기우에 또 식탁 위. 이게 바로 하나를 세 개처럼 먹는 방법이다. 96개를 언제 다 먹을 거며, 이걸 다 먹기까지 얼마나 많은 탈이 날지 무서워졌다. 그리고 <포 미니츠>를 봤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보려고 고른 영화지만 크리스마스즈음부터 연말까지 북적북적 부웅 하고 뜬 마음은 도무지 가라앉질 않았다. 정작 크리스마스는커녕 연말에도 단 한 편의 영화조차 보지 못했다.

 

두유와 <포 미니츠>는 어쩐지 잘 어울려서 하루쯤 밥 안 먹고 커피 안 마시고도 거뜬할 것 같다. 행복하다. 전기매트의 온도를 한껏 올려 엉덩이가 뜨거울 만큼 따뜻한 곳에 앉아있자니 안락함에 벅차오른다. 노트북 옆에는 읽어볼까 하면서 방금 책장에서 뽑아온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제발 날 좀 읽어주세요, 소리친다. 못 읽어줄 것 같은데, 새삼 너무 두꺼워보여. 

 

처음에는 4분이라는 제목을 가진 촌스러운 영화에 대해 써볼 생각일랑 없었다. 제목이 이게 뭐야. 영어로 바꾼다고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어젯밤 잠들기 직전 적막함을 못 이겨 틀어둔 영화가 30분쯤 혼자 재생되고 있는 걸 몇 번 건성으로 눈길 주었던 영화다. 껌뻑이는 눈으로 보다가 반쯤 눈을 감기도 하고 졸고 그러다 푹 빠져버렸다. 일어나서 맨 정신으로 봐야겠다 하면서 다시 일어나 끄고 잤다. 영화는 무의식과 무지로도, 혼돈과 적막 속에서도 봐지는 거란 걸 깨닫고는 경이로웠다. 피아노 연주(연습)가 나오기 전이었는데도(지리한 스토리였는데도) 홀랑 빠져버린 것을 두고 그 흔한 "감동"이라고도 못하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음악영화가 좋았다. 평범한 사람의 천재성을 아름다운 하모니와 연주의 혼합으로 그릴 때 감동은 뻔할 만큼 닳아있는 것들인데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꽤 오래 배웠다는 것과 학창시절 예고나 음대를 진지하게 생각했었다는 사실만으로 피아노는 특별했다. 클래식을 들을라치면 꼭 피아노로 연주된 곡만을 원했다. 씨디도 그렇게 골랐다. 그런데도 내 인생이 아니 내가 피아노를 피해버린 건, 피아노를 전공하면 정말 하고 싶은 작곡도 배울 기회가 생길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도 나는 종종 피아노를 지겨워했고, 악보 없이 즉흥연주 할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천재들은 다 그렇게 하던데, 난 악보 없이는 아무런 건반도 누를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당연히 나는 음악천재가 아니었다. 악상이 절로 생각나고 마음 가는대로 변조하여 연주하는 황홀스런 연출은 진정 천재적 피아니스트에게만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orz

 

예고와 수능 예체능반과 예술대 음대 같은 것들의 특수성을 스폰지보다 가볍게 버린 나는 딱히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그 길이 내 길이 될 수도 있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지만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나 두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를 보면서 피아노를 친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종종 떠올려보는 것 외에 내 인생은 피아노와 어떠한 관련도 없다. 엄마가 거실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오래된 피아노를 자꾸 버리자고 하는 것과 싸우는 일 말고는.

 

나와는 반대로 <포 미니츠>의 제니는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도 다른 길로 가기 위해 악착같이 애쓰는 아이다. 피아노를 쳤었고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지만 아빠가 원하는 것만을 칠 수 없었던 그녀는 피아노를 버렸다.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재소자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온 크뤼거는 어느 날 행동과 말투가 거칠고 난폭해서 교도관조차 혀를 내두르는 냉소적인 제니를 만나고는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본다. 온갖 어려움을 뚫고 거부하는 그녀에게 억지로 피아노를 가르치려 한다. 둘이 처음 만난 날 여느 때처럼 분노와 발작에 휩싸여 담당 교도관을 때려눕히고 감금되는 제니가 안쓰럽고도 아쉬운 크뤼거는 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도소장에게 제니의 피아노 콘테스트 참가 허락을 받아낸다. 이제 매일 제니와의 피아노 연습을 진행해야 하는 크뤼거는 피아노 뿐 아니라 아직 작고 여린 여자아이의 투정과 상처, 외로움과 침잠하는 자아까지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한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좋아지는 관계에도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제니는 시기하는 재소자들로부터 위협을 받기도 하고 교도관은 연습 중에도 수갑을 풀어주지 않는다. 거대한 벽 앞에 닫혀가는 서로의 마음들. 

 

제니가 교도소에 온 이유, 크뤼거가 오랫동안 매일 재소자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온 이유가 설명되는 것과는 별개로 이 영화는 황홀하고 아름답다. 나이를 뛰어넘은 두 여자의 우정, 서서히 열려가는 마음과 싹트는 믿음, 서로의 비밀공유, 예술혼으로 결합되는 잔잔하면서도 안고 싶어지는 거대한 피아노 선율까지 감동의 준비와 발사를 온몸으로 갖춘 완전한 영화다. 눈치 챘겠지만 영화는 내내 제니의 첫 연주 "4분"을 향해 달려간다. 그녀가 제 안의 슬픔, 분노, 오열, 자아, 고독을 온전히 꺼내놓을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크뤼거가 되어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며 가슴 졸인다. 때로는 제니가 되어 연주를 하기도 하고 작은 가슴 안에 흐르는 예술의 혼을 쥐어보려 애쓰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4분"은 더없이 황홀했다고 많은 리뷰가 쓰고 있었다. 새삼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연주였다고 쓰지는 않으려 한다. 그저 연주, 누구보다 멋졌지만 누구와도 달랐던 미숙하기만 했던 말썽부리는 발작쟁이 제니의 연주만을 가슴 깊숙이 기억할 것이다.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는 않지만 어느 곳에서나 온다. 가슴 안의 감정들을 폭발시킬 수 있을 때에, 어떤 것을 제 진심을 다해 온 마음으로 잡으려 할 때에, 같지 않지만 이해하고 아끼는 마음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니가 무엇을 하든 내가 지켜보고 웃어줄 것이라는 마음이 집결할 때에 비로소 기적은 일어나고 감동은 탄생하며 한 편의 영화는 사소하기 그지없을 지라도 내게 최고가 된다는 것을, 아직 모자란 나지만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2012년은 겨우 일곱 번 째 날을 지나고 있을 뿐이니까. 앞으로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계획은 사소하고 큰사람이 되기를 바란 적 없지만 감동있는 해가 되기를, 감동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꿈이 하늘에 닿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게 감동이었음을 뒤늦게나마 전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 2012-01-07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유가 무려 아흔 여섯개나 있다는 말씀이신가 말입니다!
ㅡ크으, 또 제가 두유 킬러인데 부럽습니다... 요즘에 그러고보니
집에 두유를 사놓질 않네요. 생각난김에 말해야겠어요.

포미니츠 은근히 멋진 이름인걸요 제게는 ㅋㅋ
게다가 음악영화라는 말입니까... 하아, 또 한 번 구해봐야겟군요 ㅠㅠ

아이리시스 2012-01-09 14:57   좋아요 0 | URL
며칠 지나버려서 두유는 많이 사라졌어요, 소이진님ㅋㅋㅋ
이게 독일영화라 지루한 것까지 견디며 보라고는 못하겠어요.
어릴 때는 그런 게 좀 싫지 않아요?
재밌는 걸로 봐요, <어거스트 러쉬>나 <비투스>가 더 나을 것 같아요^^

월요일 잘 보내요~^-^

프레이야 2012-01-07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도 꿈이 하늘에 닿길 바래요. 풍선처럼 두둥실 기분좋게 높이요~~
이 영화 가슴 아프더군요.
그 아이의 상처를 어떻게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요.
어른의 몫이 참 단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 천재소녀의 광적인 4분 연주가 무척이나 강렬했던 기억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1-09 15:00   좋아요 0 | URL
히히, 감사합니다, 프레이야님.
제 올해 결심은요, 일단 봐야지 하는 책은 망설이지 말고 다 사는 거예요.(기준이 까다로움)
저는 읽는 것보다 사서 모아두는 게 더 귀찮아서(집에서 안 읽은 책이 차이면 정말 싫어요-_-;;)
책이 있을 곳은 도서관이나 출판사나 서점 이라고 생각하는데요ㅋㅋㅋ

천재소녀의 4분은 굉장했어요. 건반을 누르지 않고도, 몸으로도 하는 연주라..
역시 천재는 다른 거였어요, 프레이야님ㅜㅜ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0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홈쇼핑은 아니었지만, 그 두유를 맛 종류별로 6박스나 사서 쟁여놓고 먹고 있는 1인..ㅋㅋㅋ
아침에 나갈 때 하나씩, 어디 갈때 하나씩 들고 나가고, 밤에 뭔가 먹을 거 없나 두리번 거리다가 하나씩들...
그래도 아직 2박스가 남았는데 그래도 본전 뽑았다 싶어요.

피아노 전공을 생각하셨다니...그런데 안하시길 잘 했어요..ㅋㅋㅋ
난 잘 모르지만, 전공하는건 많은 희생을 부르는 것 같아요. 특히 음악은.
그냥 취미가 좋지 않을까..ㅎㅎㅎ

아이리시스 2012-01-09 15:12   좋아요 0 | URL
아는 언니가 있어요. 언니는 정말로 예중,예고,음대 나와서 유학을 생각하던 찰나,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세상에, 사람의 인생은 정말 한 순간에도 바뀔 수 있는 거더라고요. 재능도 함부로 과시할 게 못되고, 잘하는데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언니는 재능도 있는데다 공부도 정말 잘했어요. 임용고시 준비하고 있어요. 음대만 다녔는데 교직이수가 힘들어져서 교육 대학원으로 갔어요. 순식간에 다른 진로를 택해야 했던 언니도 얼마나 엄청난 스트레스였을까요. 전에 갔었던 결혼식장은 그 언니의 오빠 결혼식이었어요. 제가 여러 사람 낚았던;;

두유는 자꾸 손이 가고 걱정도 한 트럭이고 그래요. 우유가 체질에 안 맞아요. 음식 탈이 많이 나요, 저는. 고기도 1주일에 1회 이상이면 어김없이요. 현맘님, 근데 두유는 살이 안찌나요? 이렇게 달콤한데?ㅋㅋㅋ

Shining 2012-01-10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건 모두 문재인씨 때문이에요(흑).
요즘 자는 시간도 부족해서 알라딘도 못 들어오고 참고 있었는데ㅠ
하지만 어차피 날아간 잠, 글도 쓰고 아이리시스님 서재도 들어오고 좋네요^^(하지만 눈은 벌겋다는거;)

이 영화 오랜만에 보네요, 저는 몇 년 전에 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봤어요. 관객들 몰입도가
굉장히 좋았던 것이 지금도 기억나요.

감동과 꿈도 빌어주시고, 어휴. 새해에는 좋은 일만 생기려나봐요(후훗). 마지막 문장, 그대로
아이리시스님에게 돌려드릴게요. 이런 글 써줘서 정말 고마워요:-)

아이리시스 2012-01-10 18:08   좋아요 0 | URL
엉뚱한 뉴스 보느라 앞부분 잠시 놓쳤는데 참 좋았죠 오랜만에 호호호. 따뜻하고 정겨웠어요. 정말 힐링되는 느낌. 저는 다른 천재들은 별로 안부럽고 남의 얘기네 이러고 마는데 피아노는 아쉬운가 봐요. 그래서 피아노 연주도 좋아하고 영화도 좋아하고 그래요. 좋아하는 것이 많이 안다는 것과는 달라요;;

근데 샤이닝님, 뭐하신다고 잠이 모자라신 거예요- 그 와중에 방문 받은 행복한 서재의 주인입니다, 저는 행복해요, 와우~@.@ 히히히히. 샤이닝님께도 항상 좋은 일만 있으시기를 진심 바라고 있습니다. 매일매일요.^^
 
래빗 홀 - Rabbit Hole
영화
평점 :
현재상영


 

 

 

몇 년 사이에 조카가 넷이나 생.겼.다. 그 전까지는 하나도 없었다. 사촌들이 다 고만고만한 또래에다가 결혼도 최근 몇 년 사이에 했고, 하나씩 해치우기 시작하는, 이제 우리 집안은 시작이었다. 그런데 결혼이 진행되기 시작하자, 조카가 생기기까지는 금방이었다. 결혼식과 조카까지는 정말로 얼마 걸리지 않아 내심 놀랍기까지 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또는 짐스러워하는,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생긴 것이다. 사촌 조카들을 살면서 몇 번이나 보게 될지, 걔네들에게 이모나 고모라는 호칭으로 몇 번이나 불리게 될지 모른다. 아이들이 귀엽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지만 교과서로만 배웠다. 아무리 귀여워봐야 내 아이는 아.니.다. 내가 낳지 않았다. 그건 아마 내 동생이 결혼하여 친조카가 태어나 나를 고모라고 불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낳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결혼해야 철이 들거나 인간이 된다는 말은 거기에서 나왔을 것 같다. 아기 보면 귀엽고 예쁜 거 나도 알지만 내가 만들고 내 안에서 나온 아이와는 다를 것 같다. 누구보다 이해와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가 낳지 않은 아이다. 그 아이가 다친다 해서 내 생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지는 않을 것이고, 그 아이가 없어진대도 차라리 내가 죽어버렸으면 싶지는 않을 것이다. 짐작컨대, 내 아이가 생긴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아이가 없으니까 모르는 것이다. 니콜 키드먼의 기분 같은 것. 같은 슬픔을 겪은 니콜 키드먼의 남편 기분 같은 것. 그러니까 베카와 하위가 아들을 잃은 기분 같은 것, 예를 들어, 슬픔, 절망감, 자괴감, 죄책감 같은 걸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다. 안다고 말할 수는 있으나 내 슬픔은 아니라는 것. 그것은 간혹 꽤 답답한 기분이 된다. 난 종종 엄마,아빠의 죽음으로 그 문제를 치환해보기도 하지만, 역시, 아직은 알 수가 없다. 내가 낳지 않.았.다. 이런 나는 결혼해 입양을 생각해본 적도 있다. 이런 나니까, 거리두기를 잘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건방질 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장담할 수가 없는 걸 보면.

 

언젠가 알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알 수 없는 것. 모르는 마음이 얼마나 알고 싶은 마음이 되는지, 이건 공부도 아니고 책으로도 배울 수 없어서 어쩌면 모르고 살 수도 있는 것. 그래서 나는 모성애나 부성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스토리에 심히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는 면이 없지 않다. 나도 여자고, 가정적인 사람인데, 아예 모르지는 않겠지만 시어머니께 아이 맡겨놓고 바깥 일 하면서 아이가 조금 넘어지거나 데었다고 팔짝팔짝 뛰거나 동동 거리면서 시어머니에게로 모든 탓을 돌려버리는 아이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자기가 키우든가. 그래서 말인데, 엄마는 자기 아이가 소중한 만큼 타인에게도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자기 아이가 그토록 소중한데 어째서 다른 아이에게는 친절하지 못하는가. 먹이사슬의 관계에서 가장 공감해야 할 사람들이 그렇지 못할 때 나는 분노를 넘어 짜증스럽다가 어쩔 때는 슬픔을 느꼈다. 다른 아이에게 처할 수 있는 일이면, 자기 아이도 처할 수 있다. 내 아이에게 생길 수 있는 일이면 다른 아이에게도 생길 수 있고, 자기 아이를 용서할 수 있으면 다른 아이도 용서할 수 있다. 안될 일이란 게 세상에 없다. 여기까지는 사족. 나는 요즘 영화가 아니라 영화 보는 나에게 몰입하느라 한껏 들떠있다. 영화가 궁금하면 리뷰가 아니라 영화를 보시라. 리뷰에는 영화 이상의 내가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쓴다.

 

니콜 키드먼의 히스테릭한 연기에 물이 올랐다. 아름다운 그녀는 최근 몇 년간 정말로 아름답게 나이 먹어가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파란 눈의 여자가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좋아하는 헐리우드 배우 니콜 키드먼과 나오미 왓츠에 의해 느껴가는 나날, 베카로 분한 그녀가 남편과 함께 아이 잃은 부부들의 슬픔을 나누고 공감하며 치유하는 모임에 나갔을 때 느끼는 다 부질 없다는 감정도, 남편 하위가 그곳에서 어떻게든 부부 사이를 회복하고, 아들 잃은 심정을 다스려 아내와 잘 살아보려는 행동도 모두 이해가 되었다. 슬픔을 다스리는 방식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둘이 함께 낳아 사랑을 주며 키웠어도, 아빠와 엄마의 애정의 깊이가 다르다. 이상한 일이지만 애정이 달라서가 아니라, 내면을 다스리는 슬픔과 치유의 작동 매커니즘이 달라서 생기는 일인 것 같다. 아들과 함께했던 비디오 영상을 보며 밤마다 눈물짓는 남편과 동생이 낳은 아이에게라도 아들의 옷을 입혀 아들을 느끼고 싶은 아내. 자신에게로 향하는 모든 애정과 소통의 끈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세상으로 숨어버리는 아내와 그런 아내를 세상 속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애쓰는 남편이 있다. 비교적 일상 속에서 이들은 행복한 듯 보인다. 그래, 슬픔이 어떤 사람 안에 온전히 농도 100%로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도 어쩌면 착각. 차례로 찾아오는 낮과 밤을 차례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오면, 그땐 절망의 나락으로 치닺는다. 슬픔이 바닥을 칠 때까지 자신을 내버려둘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을 꺼내주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몫. 물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두 부부가 위안을 찾은 방법은 아쉽게도 바깥을 통해서였다. 슬픔을 다스리는 방법이 달랐던 두 사람이 비슷한 사람을 만남으로서 치유가 시작된 것이다. 자신들과 같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 그룹에서도 꼼짝 않던 이들을 움직이게 한 건 하느님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사람이었다. 실수를 되새기고, 남아있는 원인을 원망해보고, 행복을 밀어내고, 안락함을 추방해도, 궁지에서 인간은 동아줄을 붙잡아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뎌야 하기에. 일상 와중에 문득문득 찾아드는 아들의 흔적을 간직해야 옳을지, 그 반대일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누군가의 슬픔은 이해나 공감과는 별개로, 오롯이 내 것일 수가 없는 것이 진리다. 집을 팔고, 옷을 버리는 일처럼, 간직하거나 내버리는 것은 슬픔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울음의 강도로 슬픔을 판단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베카는 자기 엄마의 같은 슬픔에도 깊이 공감하지 못한다. 어느 순간이든 자기 상처가 제일 크다고 재단해버린다. 그 틈에 눌린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안에 한 발자국도 들어갈 수 없겠지. 언젠가 구멍이 생길 때까지. 누군가를 잃은 자리를 또다른 것이 대신한다는 말을 나는 믿을 수 없다. 내 슬픔이 당신 것이라는 것도.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것들 중 오로지, 오롯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면 그것이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의 나락에 있을 때에는 누군가가 내 슬픔에 공감한다 해도 가식으로만 보인 적이 많았다. 공감이 진심인 줄 알면서도 슬픔은 반으로 줄어들지 않았다.

 

용서와 화해, 소통과 공감을 말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보편적으로는 위로와 치유의 힘을 강조하지만 단 한 번도, 스스로의 치유보다 타인의 배려가 나았던 적이 없었다. 결국 길어올리는 슬픔의 주어는 나였다. 내 몫이었다. 바깥을 돌아보았다. 세상이 내 편일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다 주고 싶은 적도 하나도 갖기 싫은 적도 있었다. 베카와 하위를 이해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슬픔을 이해한다기보다, 그들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해한다. 하느님이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듯, 냉소와 무관심으로 자위하면서 잊혀져가기를 기다린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아들과 관련된 흔적들, 집과 개, 옷을 버리려는 아내와 아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두고 그리워하며 일상을 찾기를 원하는 남편. 천사가 된 아들은 어느 것을 더 좋아할까. 감히 부모의 불행과 몰락을 바라겠는가. 정답은 하나지만, 때로 그 정답을 찾아가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일들. 그래서 신은 몰두와 열정과 망각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잊기 쉬운 가장 좋은 방법은 몰두와 망각 뿐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곁을 떠나고 바꾸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자위한다. 가정이 깨어지는 것을 아이는 더군다나 바라지 않을 것이므로. 부모들은 그것을 안다. 같은 그룹에 있던 개리로 인해 깨어지는 가정을 보고만 하위는 다시 베카에게로 돌아와 그녀를 감싸안으려 한다.

 

실제로 위태위태한 가정이 아들의 죽음으로 결합되는 것도 봤고, 이혼만 보류했지 10년째 따로 살며 딸을 결혼시키는 것도 봤다. 그때마다 의아했던 건 의외로 단단해 보이는 가정도 들여다보면 흠이 있기 마련이고, 작은 흠만으로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베카의 아픔을 겪었던 베카의 어머니가 말한다. 절대로 괜.찮.아.지.지.않.는.다.고. 하지만 괜찮다고. 주머니 속에 무거운 돌멩이 하나를 넣고 걸어가는 것 같은 인생이지만 그것이 없어진 아들 대신이라고 생각하면 그마저 소중하다고. 아파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충고였다. 깨지거나 합쳐지거나, 둘 중 하나를 할 수밖에 없는 부부 사이. 영원히 하나란 없는 가깝고도 먼 친구. 동반자.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어떻게 지리한 시간들을 견뎌나갈지는 아직도 미지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은 명백하다. 용서하고 내려놓을 것인가, 미워하며 지고 갈 것인가. 평행이론이 이런 식으로 씌여 위안을 줄지는 몰랐지만, 그래, 내가 하필 조금 슬픈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하면, 조금 위안이 되려나. 그리워하는 것보다 있을 때 지켜주는 것이 영원히 더 나은 일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돌멩이, 그런 돌멩이라면 어떻게든 견딜 수밖에. 아들이 부모의 몰락을 바랄 일은 절대로 없을테니까. 부모의 행복, 그것이 자식의 행복이니까. 언제, 어느 순간이든 그것만 기억한다면 아이 잃은 부모가 불행해질 일은 없지 않을까. 시간을 들여 보고싶은 영화는 아니었는데, 누구나 돌멩이 하나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잡았다 놓았다 한다는 것을 알고나니 세상이 조금만 슬퍼졌다. 구성도,연출도,스토리도 지극히 평범 또 보통인데, 마지막 장면, 손 꼭 잡은 부부가 왜 이렇게 부럽기만 한지. 스포일러가 되지만 어쩔 수가 없겠다. 그들이 서로에게 돌아가서 정말 기뻤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 2011-12-27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아이리시스님 요즘 폭풍 리뷰, 페이퍼 날려주시는걸요!
나도 지금 영화 리뷰 쓸거 3편 있는데 아이리시스님의 미친듯한 필력에 제가 고개를 못 들겠습니다 ㅠㅠ

아이리시스 2011-12-28 17:15   좋아요 0 | URL
3편이나 있어요? 버럭!!!!!!!! 써주면 잘 읽을게요. 그렇다고 강요하는 건 아니고ㅋㅋㅋ 저보고 미친듯한 필력이라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적게 쓰는 게 질을 높이는 방법입니다.(응?)

저는 지금 다음 페이퍼를 준비중. 근데 이건 좀 오래 걸리겠어요! 보름 정도ㅋㅋㅋ

맥거핀 2011-12-28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특이해요. 래빗 홀. 토끼구멍.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래요? 아이리시스 님의 리뷰를 보니 아무래도 영화 내내 힘들다가 마지막 순간에 아주 조금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영화일 듯 싶네요. 그나저나 이렇게 짧은 간격으로 좋고 알찬 리뷰를 쭉쭉 뽑아내면 어떡합니까. 일주일에 한 편 쓸까말까한 사람도 있는데..동종업계(?)에 있는 처지에 이러지 맙시다.^^;

아이리시스 2011-12-28 17:09   좋아요 0 | URL
토끼구멍에 진정한 스포일러가 있는데 이 영화는 정말로 착한 영화라서 숨을 안 쉬어도 별로 힘들지가 않아요. 히스테리 부리는 걸로 보여요. 아이를 잃은 슬픔보다는 아이를 잃은 부부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더 중점을 뒀으니까요. 일주일에 한 편 쓸까말까한 맥거핀님 리뷰는 엄청 길고 알차고, 저는 그렇지 않잖아요. 동종업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1-12-29 0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9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12-2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돌멩이 때문에 슬프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돌멩이 때문에 함께 있는거 아닐까 싶어요.
마음 속 돌멩이 하나 없다면, 무엇하러 타인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붓겠어요?
알라딘 서재에서 만난다는 것도 그런게 아닐까 싶어요.

자기 자식에 대해서 말한다면, 더욱 걱정도 되지만 지나치게 걱정도 되더라구요. 그런거죠,
이성을 제대로 챙기지 못 하고 내 아이가 당하면 더욱 승질나고 남의 아이보다 내 아이가 잘나면 좋겠고
나의 아이를 통해서 내가 못 다 이룬 어떤 것을 성취하는 것을 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삼촌이나 이모나 고모가 더욱 현명해질 때도 많은거 같아요. ^^

아이리시스 2011-12-29 14:56   좋아요 0 | URL
돌멩이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것 같고요. 한때는 돌멩이가 제게만 있는거라 생각한 적도 많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돌멩이가 슬픔일 수도 있지만 분노나 아픔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무언가에서 점점 벗어났어요.

이 영화는 [퍼펙트 센스]보다 그렇게 다가오는 영화가 아니었어요. 부부의 심리를 그리는데 부부가 되어본 적도 아이도 없는 제가 이해할 수가 없죠. 제가 저 상황이라면, 이라는 가정 자체가 불가능했달까. 어줍잖게 안다고 했었던 것들을 이제는 모르게 됐어요. 하지만 아이가 없어지는 영화 같은 걸 아이가 생겼을 때도 보고 싶을까요. 이런 주제로 미스터리,스릴러,드라마 영화나 책 너무 많아요. 올해 읽은 것만 해도 벌써ㅠㅠ

2011-12-29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31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31 0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1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1-0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멩이라는 표현이 좋네요. ㅋㅋ

자식 잃은 슬픔을 생각하니, 이렇게 큰 일을 당하지 않고 사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이고 축복이라는 생각 들어요.

나이 한 살씩 먹어가면서 이젠 큰 행복을 달라는 기도 대신 큰 슬픔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게 욕심이 작아지는 것이겠죠.^^

생각 깊은 글 쓰신 아이리시스님에게 좋은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퍼펙트 센스 - Perfect Sens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그날 새벽부터 일어나 집을 나선 동네 기운은 상쾌하고도 청명했다. 게스트 하우스 앞에 플라타너스(였으면 좋겠지만)로 느껴지는 나무들이 줄지어 새파랗긴 했으나 한겨울이었다. 호수가 있었고, 벤치가 있었다. 어렵게 눈을 비비며 나왔는데 여권을 놓고 온 친구가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올 때까지 새벽 공기를 맡으며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중앙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는데, 지도가 필수였다. 그곳은 암스테르담, 우리는 네덜란드어를 몰랐다. 네덜란드어란 게 존재하는 지에도 별반 관심이 없었을테니, 어떤 언어였대도 몰랐을 것이다. 역이름이 큼지막하게 씌어 있어도 한눈에 박혀 들어오지 않아, 아무도 없는 텅 빈 기차 안에서도 숨을 죽였다. 뿌연 창밖으로 암스테르담의 마트와 운하와 자전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글자가 아니라.

 

틀린그림찾기 능력은 탁월했다. 친구와 반대 방향으로 앉아 고독을 씹으며 혹은 깔깔 거리며 목적지 역을 눈에 심고 한눈을 팔지 않았다. 코스를 세었던가. 온 감각을 세워 긴장했더니 어렵지 않게 목적지에 내릴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 탔던 기차의 최종역이 어디인지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서울을 떠난 기차의 끝이 빤하듯, 암스테르담 지리에 훤한 누군가에 의해 금새 찾을 수 있는 정답이지만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찾아봐야 내겐 낯선 곳, 낯선 세상, 알 수 없는 영역일 뿐일테니, 다 부질없는 일일 터였다. 그곳을 기억하게 하는 건 진하디 진한, 한국에서는 맡아보지 못한 코코아 향이었다. 초코향일 수도, 코코아향일 수도, 둘 모두일 수도 있다. 달콤함이 진하면 써지는 거라고 그때 생각했었다. 이정표도 표지판도 우리의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을 만큼 관광객들이 왕왕 찾아오는 유명지여서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려 걷는 길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소소한 들풀들과 까르르 웃으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인근 학교 학생들, 마침 개폐중인 다리, 동화 같은 풍경, 돌아가는 풍차를 볼 수 있었다. 상상의 나래로 우리는 들어가는 중이었다. 잔세스칸스. 그곳은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풍차마을이었다.

 

풍차마을하면 어린 시절 본 [플란다스의 개] 밖에 떠올릴 수가 없었다. 치즈도 우유도 풍차마을 하면 자동으로 연상되는 네덜란드 풍경에 들어있긴 했지만 풍차마을이 꽤 여러 개 있음에도, 잔세스칸스였던 이유는 하필이면 그곳이 여행책자 안에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었다. [플란다스의 개] 속 파트라슈와 할아버지 그리고 네로가 살던 풍차마을은 벨기에라는 걸. 그래도 많은 여행객들이 이 만화를 떠올리며 잔세스칸스에 온다는 것을 나는 알고도 있었다. 벨기에의 플란다스 지방에 있는 풍차마을이라 플란다스의 개라는 제목을 가진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차마을 잔세스칸스는 반 고흐 뮤지엄 때문에 암스테르담에 기어코 들러야 한다고 우겼던 나의 또다른 소망이었다. 친구는 두말않고 따라나서 주었고.

 

잔세스칸스의 코코아향. 잔세스칸스로 가는 길의 코코아향이 당시의 풍경과 함께 먼저 떠오르면, 그때 이곳저곳에 눈길을 멈추며 길을 걷던 나와 친구를 잊을 수 없다.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어떻게 헤매었는지, 무슨 꿈을 이야기했는지까지 생생하고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 후각이란 기억을 동반하는 것, 이라고 이 영화가 얘기하기 전에도 나는 알 것 같았다. 후각을 잃으면 추억과 기억을 모두 잃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후각을 잃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두려웠다, 마구 돌이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이클과 수잔도 피해자지만 영화 속에서 그들의 존재는 극히 미미하다.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들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대표자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 마이클은 레스토랑의 생선요리 전문 쉐프, 수잔은 전염병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레스토랑 맞은 편에 수잔이 살고 그들은 자주 부딪치며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처음에는 후각, 다음에는 미각, 다음에는 청각, 다음에는 시각. 인간의 감각이 오감이라면 단 하나 빼고는 모두 잃은 셈. 원인 모를 감각 상실 앞에 인류는 속수무책, 발을 동동 구를 뿐이다. 잠복기는 점점 짧아지고 사람들은 감각 하나를 잃을 때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적응하려 애쓴다. 결과는 있지만 원인이 없기에 슬픔조차 사치일 지도 모른다. 이유가 없어 되돌려놓지 못한다. 적응할 만 하면 다음 감각을 잃는다. 짐승의 생살을 뜯고, 간장을 마시고, 남은 음식들은 모두 뒹군다. 거리는 고함과 혼란으로 마비되었다. 아직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이들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고, 어김없이 그들도 전염된다. 모든 거리, 모든 나라, 모든 세상, 모든 인류가 냄새를 못 맡고, 음식 맛을 알지 못하고, 소리를 못 듣고, 앞을 볼 수가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비극은 사랑하는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서로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없는 것. 여자가 남자를 불러도 남자는 듣지 못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한다 말해도 여자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없고, 따라서 모든 냄새를 잃어가는 동안 추억도 잊혀진다. 다른 감각. 후각, 미각, 청각, 시각을 잃은 이들에게 마지막 남은 하나의 감각으로, 혹은 네 감각이 사라진 자리를 메우는 또 다른 감각으로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고 느끼고 사랑한다.

 

마침내 그가 그녀의 곁으로 가고, 그녀가 그를 미친 듯이 찾아 헤맨다. 서로를 알 수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내가 없는 세상에는 당신도 없고, 당신이 없는 세상에는 내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같이 있기 때문이다. 잃으면 채울 수 있고, 채우다 보면 잃어버리기도 한다. 완벽하고 완전한 것이란 세상에 없는 것처럼 살자. 질긴 삶,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말할 수 없는 것이 훨씬 많은 게 생의 신비로움일 것 같다. 그가 그녀에게 니가 가진 건 눈과 입과 가슴과 성기 밖에, 니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티비 보는 것과 섹스 밖에 없지 않냐고, 저기 가서 업드려 다리를 벌리거나 꺼져버리라고 소리 지를 때, 세상의 침묵과 어둠을 보았다. 고독이 아름다운 것, 이라고 누가 말했었나. 고독은 아름답지 않다. 정적. 그것은 끔찍하고 지독하다. 가버려, 사랑해, 그것은 온전히 동일한 마음이었다, 적어도 영혼이 빠져나간 그에게는. 어쨌거나 나는, 온전하게 당신을 느낄 수 있다. 다행인 건 그것 뿐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1-12-27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해요. 사람마다 문체가 다르다는 것이.
아이님의 문체는 다른 사람의 글과 섞여 놓아도 이젠 알 것 같아요. 제가 그 문체에 적응이 된 듯...해요.ㅋㅋ
"후각이란 기억을 동반하는 것," - 전 왜 이 문장에 끌렸을까요?

아이리시스 2011-12-27 20:11   좋아요 0 | URL
문체 바꾸기가 엄청 어려운 거더라고요. 책 읽을 때마다 문체가 변해요. 제대로 적립하려면 필사를 해야 해요. 저는 오정희. 문체라기엔 거창하지만 마음에 드는 걸 막 따라하게 돼요. 드라마 대사 따라하듯이요.ㅋㅋㅋ 후각을 잃으면 추억을 다 잃는 거라고 영화가 얘기했어요. 엄마 냄새, 사랑하는 사람의 체취, 어린시절 뛰어놀던 들판, 이런 것들이 지워진다고.

요즘 비문이 엄청 많죠? 이렇게 쓰면 안되는 걸 아는데, 말을 하다가 다른 말이 생각나면 어우러지게 고치지 않고 뒤에다 갖다 붙여요ㅋㅋㅋ 예를 들어, 첫문단 맨 마지막 문장이요.ㅋㅋㅋ

페크님, 저는 이제 하루에 한 번만 알라딘 들어오려구요! 이걸 줄여야 다른 걸 하더라고요. 그래도 서재이웃분들 새 글은 꼬박꼬박 보러올거예요! 그러니 새 글 많이 부탁드려요.^-^

맛난 저녁 드세요~^^

맥거핀 2011-12-2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각을 잃으면 인간이 인간일까, 인간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는 걸까 궁금해지기는 합니다. 나라는 존재 속에 감각이라는 것이 과연 몇 퍼센트나 채우고 있을까, 그게 빠져 나가면 그 빈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조금 다른 얘기지만, 어떤 책에서 보니까, 인간의 감각에 대한 기억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남아있는 것이 후각이라고 하더라구요. 늙더라도 최후까지 기억하는 어린 시절 맡았던 장례식장의 향내음이나 어머니가 끓여주셨던 된장찌개의 냄새 같은 것. 그래서 후각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고 영화가 말했나 봅니다. (그래서 예전 여친의 향수냄새를 아직도 기억..응?)

아이리시스 2011-12-28 17:08   좋아요 0 | URL
그게 맞아요. 어머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 냄새로 기억하는 시간, 장례식장 향내로 기억되는 날, 그걸 이 영화가 후각을 잃으면 추억을 잃고, 추억을 잃으면 다 잃는다고 한 것. 예전 여친의 향수냄새로 그녀를 기억하는 것도 빙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둘은 알아봅니다. 후각,미각,청각,시각을 잃었음에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어요. 헐리우드스럽지 않고, 독일영화니까요! 그런데 헐리우드 배우로 영어를 쓰면서 만든. 저는 이런 영화 좋아요!^^

마녀고양이 2011-12-2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각, 미각, 청각... 오감각의 이야기에서,
라면을 떠올리는 나는? 역시 술 먹은 다음날의................ 에휴휴.

그런데 아이리시스님의 페이퍼는 참 신기해요. 역시 댓글이랑 다르단 말이야.
얼굴을 봐야 알건데, 역시 신비로와... ㅋㅋ. 호기심 엄청 자극하는 나의 아이리시스님~

아이리시스 2011-12-29 15:00   좋아요 0 | URL
풀어가는 방식이 특이한 영화고, 저는 좋았어요. 오감이 예민한 편은 아니고 저는 비위가 약한 편인데 오감이 사라진 세상은 차라리 죽어버려도 좋을 만큼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마고님.

라면 드셨어요? 해장국을 드셔야 하는 거 아닌가??? 페이퍼랑 댓글이랑 다르다는 게, 댓글은 수다스럽다는 거죠, 페이퍼는 아닌데! 그게 아닌가ㅋㅋㅋ 전에도 그런 얘기를 Y님께 들었는데 그게 마고님이랑 같은 의미일까요?(갸우뚱) 히히히히히히히.

신비댓글 다 달고 저는 갑니다. 호호호.
 
내가 사는 피부 - The skin I live in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알모도바르 감독의 열렬한 팬이고, 그로 인해 알지 못하는 스페인에 대해 우호적이며, 그를 알기에 이 영화는 지나치게 실험적일 거란 우려를 떨칠 수 없었다. 영화 [페이스 오프]를 오래 전에 학습했다면 예상 가능한 일이 벌어질 것. 감독의 역량에 비추어 볼 때 충격적 혹은 자극적 장면이 있을 수 있지만 시도 자체가 신선한 반면, 스토리는 빈약할 가능성이 있을 것. 내가 다른 건 몰라도 텍스트 파악 능력 하나는 지나치게 뛰어나다. 시리즈는 첫 회, 영화는 초반 10분, 어쩔땐 포스트와 시놉만으로도 핵심을 꿰뚫을 수 있다. 타인에게 적용 불가능하지만 내게는 안성맞춤인 분별력이다. 그때그때 갈증에 화답하는 무언가를 취사선택하는 데에 스스로도 놀랄 만큼 대견한 능력을 지닌 나는 솔직히 큰 기대가 없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 겉모습의 변화가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는가. 당연히, 없다. 영화 [비밀애]에서는 윤진서가 쌍둥이란 걸 몰랐던, 사랑한 남자와 그 남자의 형(동생)을 동일시 하여 두 남자 모두를 파국으로 몰고가던데, 행여 착각할까봐 말하는데, 밝히자면 이 영화는 본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한 남자의 복수와 집착에 관한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한 남자의 복수와 집착이 불러온 비극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눈치 빠른 관객에게는 너무 뻔하다. 시종일관 긴장되지만, 스토리텔링도 가능한 내게는 일찌감치 결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고등학교 때 사진부는 학예제 기간에 그 해 휴일마다 각자 또는 모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오래된 필카로 조리개와 피사체 조절을 해가며 찍은 각자의 사진을 걸었다. 새까만 천으로 교실 전체를 도배하고 단체 액자에 통과된 사진들을 넣고 보기좋게 배열해 걸어놓는다. 밤 늦게까지 꾸미고 또 달아서 블링블링하게 보이도록 애를 썼다. 감시 다니는 선생님들이 껄껄 웃으며, 공부를 그토록 골몰히 했으면 서울대 갔겠다, 하실 때까지. 그러나 우리의 꿈은 서울대가 아니었다. 파노라마. 사진필름과 폴라로이드 즉석사진이 사진부 기념선물이었는데, 그런 파노라마 말이다. 한 장씩 뜯어내도 이어붙이면 그건 분명 우리 필름이었다. 기억에 잊히지 않는, 우리만의 것. 일상에 주렁주렁 매달린 추억. 내 사진에는 무궁화꽃도 있었고, 시골집 마당에 말려놓은 대추를 그러모으는 외할아버지가 있었다. 학예제가 끝나면 뒤풀이를 갖고 집으로 돌아가서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학교에 오면 모든 것들이 조용히 제자리를 찾는다. 특별함 뒤의 일상은 그 전의 것과 성질이나 질량이 조금은 다르다. 그것들이 그 시절을 견디게 했었다. 착각이었나. 정성들여 붙였던 천을 모두 뜯어내면 이전의 숨통 막히는 교실이 돌아오는 것이다. 다시 입시전쟁. 잠시 딴 길로 샜었다.

 

[내가 사는 피부]가 다루는 소재가 아무리 신선하다 해도 내게 이 텍스트는 충분히 예상가능하고, 너무도 뻔하게 막을 내려버린다. 반전은 경악할 만큼 짜릿하지 않았고, 전율은 제작자의 의도만큼만 일어났다. 아쉬운 영화다. 우라질, 눈치 빠른 관객, 나. 하지만, 당신도 눈치 빠를 필요는 없다. 그는 자동차 화재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아내는 거울 보기도 힘들만큼의 화상을 입었고 어느 날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 딸은 다른 이유로 엄마와 같은 방법으로 아빠의 곁을 떠났다. 아내와 딸을 한꺼번에 잃은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예의 아내와 딸. 그의 사투가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 시작되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그가 아내와 딸을 비로소 찾았다는 것. 그러나 방법이 잘못 되었다는 것. 인간은 종종 어떤 일을 하기 위해 방법과 절차의 기로에 선다. 그의 선택은 비교적 간단했는데, 그것이 엄청난 비극적 결말을 불러온다. 돌이켜보면 비극은 이미 예고된 일인데 관객은 놀랍게도 그 순간, 윤리선택을 강요당한다. 너라면, 당신이라면, 그러지 않았을까. 관객은 대답이 없다. "선택의 문제이지 이치의 문제, 나아가 윤리의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라고 말하는 나는 감히 질문의 화살을 당신에게 돌린다. 영리하다. 감독이 영리하니 덩달아 나도.

 

비극인 줄 알면서 계속 걷는 길이 있다. 세상의 모든 드라마는 그렇게 탄생한다. 나라면 가지 않을 길, 그들은 기어이 간다. 부딪치고 깨지고 울고 아파하면서, 오해의 지난한 시간을 견딘 후, 끝내 희극이 되기도 하더라. 하지만 비극으로 시작된 길은 어렵다. 그저께 TV에서 [동행]이라는 현장르포를 보면서 가난은 되물림 되지만, 가난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를테니, 같은 가난이라도(같은 어려움이라도) 걷는 방향은 각자 다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TV 속 엄마는 알콜 의존증 보다 약간 나은 상태였다. 스무살 아들부터 공부하고 싶어하는 딸, 지체 장애로 시설에 있는 아들, 열 살의 귀여운 딸까지 네 자매를 감당해야 할, 남편을 보낸 엄마였는데, 엄마가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니 대학은 엄두도 못 내고 공장에 취직해 밤낮없이 일하는 큰 아들은 물론, 한창 어리광 부리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야 할 막내 딸에게도 엄청난 짐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큰 딸은 매일 밤 술을 찾는 엄마를 보며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 지었다. 나로서는 엄마가 없어야 아이들의 짐이 덜어질 것 같았다. [내가 사는 피부]를 보며 떠올린 건 하나의 잣대로 무언가를 재단하는 것은 나쁘다는 것과 과학윤리는 실효성을 넘어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이 생명윤리를 짓밟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쉽게 정답을 강요할 수 없는 것이 현실적 과제다. 영화 [네버 렛 미 고]는 둘의 가치충돌을 근본적으로 묻는 영화지만 멜로로 풀어내면서 충격을 완화시킨다.

 

섹스는 아내, 권위와 주도권은 딸에게 통한다. 지독히 불편하지만 그것을 한 사람에게 투영하면 끝은 비극이다. 남자는 모든 것을 창조하고 싶어했기에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었다. 분노의 끝이 자멸이라면 분노를 멈추는 것이 낫다. 단순한 과정의 진리를 몰라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로 파멸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지나치게 극화된 분노는 타당성과 인내심을 잃는다. 내 안에서 [내가 사는 피부]가 좇는 지점이 뻔하게 느껴졌던 것도 많은 이야기들이 분노와 복수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부재하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는 실재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자체가 비교적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아직은. 그래서 충격적이지만 슬프다. 아내와 딸을 잃고 절망하는 그의 모습에 나를 동일시할 수가 없었다. 그것 뿐이다. 그게 이해됐다면 이 영화를 다 이해했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있어서는 안될 일. 그래서 내가 하는 말. 제발 부탁인데, 내가 아닌 것들은 부디, 내 안에 살지 말아요, 제발. 나는 정말로 일주일만 지나면 한 살 더 먹는다. 내가 아닌 것들은 나가, 얼른 나가버려. 난 내 편만 가지런히 모아 줄세워서 같이 다음 세월로 건너가게. 일주일 시간준다, 얼른 나가버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거핀 2011-12-25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리뷰는 이렇게. 이 영화 개봉했군요. 윗분도 포스터이야기를 하셨는데, 왜 저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번역 제목도 영 마음에 안들구요.(중의적으로 해석되니까. 하긴 저래서 망하면 다 배급사 탓. 감독탓은 아님.ㅎㅎ)

아이리시스 2011-12-25 13:54   좋아요 0 | URL
영어제목이 이라면 지나치게 솔직한 번역이네요, 촌스러-_-;; 제목만으로 감이 확 오는 건 좋은데, 소재도 확실히 신선하고 놀라운데, 그래도 알모도바르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별로라는 뜻이에요. 아님 제가 컸나 봐요. 자극이 충격적이지가 않았어요. 오래 전에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은 항상 놀랍거나 가슴이 뛰거나 했었는데요. 스페인어의 우울함 마저도. 개봉관도 몇 개 없을 듯한데, 저 알모도바르를 극장에서 본 적이 오래 전이라 그런 건 그렇다쳐도, 아, 설렌 맘으로 극장에 가질 못해서 별로였을까요? 만약 맥거핀님에게 이 영화 되게 좋으면, (그건 다 맥거핀님 탓. 제 탓은 아님.ㅎㅎ)

아, 멜로에 가깝다고 하신 [드라이브]를 구하려고 노력해야겠어요, 불끈!
맥거핀님에겐 특별한 크리스마스인가요?^^

Shining 2011-12-25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 영화 개봉했어요?+_+ 근데 예상보다 별로애요?ㅠ 저도 알모도바르 광팬이라(반가워요!) 이 영화도 꼭
보고 싶었는데ㅠ 심지어 이 영화 때문에 원작이라는 <독거미>도 읽으려고 하거든요. 뭔가 아쉽네요ㅠ
그나저나 질투는 와도 된다니, 너무 귀여운 것 아닙니까^^

어제 새벽에는 눈이 잔뜩 내렸지만 이제는 더 이상 오지 않아요. 저도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별일없이 보냈습니다.
오늘은 일어나서 영화 한 편 보고 이제는 케빈과 함께 하려고요-_-*

아이리시스 2011-12-25 14:04   좋아요 0 | URL
예.상.보.다. 별로 맞는데, 제가 이상한가 해서 관련기사들 보니 "감독의 실패"라는 의견도 있네요. <독거미>도 저 예전에 관심 있었어요. 그런데 책이 더 나을 수도, 저는 책을 읽으면 영화를 보지 않아요. 영화를 보면 책을 읽지 않고. 같은 텍스트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참, 저 온 사이트를 뒤져 [윈터스 본]을 찾아냈어요, 샤이닝님 영화결산 보고나서요. DVD 가격이 너무 바람직하지가 않아서요. 영화 DVD는 영화를 한 번씩 본 담에 좋은 걸 사요. 그나저나 새삼 느낀 건데, 수도권 문화인들이 전용관 없다고 투덜대도 상영관이 하나씩 있는 게 어디예요ㅠ 이 영화 제 생각에 부산에서 개봉도 안할 것 같은데 서울에는 개봉일 이전인데 벌써 하더라고요. 역시 여긴 문화의 불모지. 내년에는 수도권에 살거예요, 불끈!(마음대로 될까요?)

Shining 2011-12-26 00:21   좋아요 0 | URL
하하^^ 맞아요, 아직(?) 좀 비싸요. 비밀이지만, 저도 소장까지는 좀 망설여져요. 저도 진짜진짜 좋아하는 것, 언제든지 생각나면 꺼내볼 수 있는 것만 DVD 소장하는 편이라, 아직은요. <아이엠러브>는 사고 싶지만_-*

아, 서울 가서 보셨구나. 그래도 부산은 좀 낫지 않아요? 저는 더 작은 도시에 사는데ㅠ 부산도 보기 힘들다니 위안반(ㅋㅋ)씁쓸함반이네요. 수도권에 살고 싶으신 이유가 영화때문이에요?(웃음) 아이리시스님이 원하신다면야 뭐든 안 되겠습니까^^

아이리시스 2011-12-26 01:09   좋아요 0 | URL
아, 샤이닝님 서울 아니었어요? 그렇구나.. 그럴리가요. 영화 때문이라면 저는 영화감독이 되었게요? 히히히. 준비중인 시험이, 합격하면 국제공항으로 발령날 확률이 제일 커서.. 그것 말고는 제가 정치욕도 없고 성공욕도 별로라서, 천성이 딱 예술가 체질이라서 바쁘고 복잡한 서울이 두려워요. 큰 물에서 놀아야 큰 사람이 된다는 건 알지만, 이제 별로 큰사람 되고 싶지 않네요, 스무살 땐 그랬는데. 그러니까 내년에 수도권은 그냥 꿈입니다요!! 저는 부산이, 부모님 옆이, 여기 친구들이 다 있는 걸요. 이제와서 터전을 옮기는 일이 힘들 것 같긴 해요. 그리고 저는 가능하다면 전원주택 살고 싶은 사람.

근데 진짜 케빈과 함께 하시다니ㅋㅋㅋ 샤이닝님 짱! 전 그거 안본지는 오래 됐어요. 기억도 안 나네.. 하하하.

Shining 2011-12-26 01:23   좋아요 0 | URL
엇, 지금 접속중이신가요?+_+ 어쩐지 신기하네요. 네, 저는 비교적 소도시에 삽니다(웃음). 저도 그래요. 예전에는 뭔가 큰물에서 놀고 싶고, 모던하고 시크하게(뭔 말인지ㅋ)도시인으로 살고 싶었는데. 지금은 만사 다 귀찮고, 큰 사람이 되고 싶지도 큰 사람이 될 것 같지도 않아요(하하). 하지만 아이리시스님 꿈이시라면 기대해보는게 인지상정 아니겠어요?ㅋ

말도 안 되는 영화 보느니 이것저것 정리하면서 왔다 갔다 봤는데 나름 괜찮아요(쿡쿡).

Mephistopheles 2011-12-25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꽤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찬찬히 찾아보면 스페인 영화 재미도 있고 잘 만드는 것 같아요.(절대 하몽하몽이라는 영화를 감동(?)깊게 봐서 말하는 건 아니라는..)

아이리시스 2011-12-25 22:45   좋아요 0 | URL
저는 스페인 영화 좋아해요. 생각나는 건 별로 없지만 할리우드보다는 유럽 스타일, 이라고 훗날 생각했어요. [하몽하몽] 저도 본 것 같아요. 근데 기억이 전혀 안난다는.. 메피님도 영화 많이 보시는군요. 서재에 왜 처음 가봤지?(갑자기 반말..) 잊고 있던 영화가 메피님 땜에 생각났어요!

좋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눈치없게도, 별점 깎아내린 여자인 거죠, 저. 거기에다 저를 믿는 윗분들에게 실망감을 확..( ") 알모도바르의 "욕망"에 관한 영화들이 워낙 좋았었어요. 메피님도 보시고 쓰시면 구경가겠습니다~^^
 
희랍어 시간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늘 보이지 않게 흔들렸다. 시간을 죽이는 일이 어렵다는 걸 모르지 않았고 새처럼 날기 위해 그보다 몇 배 갈고 닦으며 움츠려야 한다는 사실이 낯설지 않았다. 모든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희랍어 시간]에 일어난 두 남녀의 부딪침, 상처와 트라우마, 그리고 사랑. 이런 것들에 이르기까지의 지난한 자기탐색. 시간 속에 뭉뚱그려 새롭게 피워내는 티끌만한 무엇.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래도록 소설의 틈바구니에서 길을 잃었다. 언젠가 말간 손으로 바흐와 슈베르트를 연주하던 나와 콩쿨에 나갔을 때 객석 대신 옥상에서 한 송이 꽃을 들고 기다려주던 오빠. 가장 예쁘지 않았지만 가장 예쁜 줄 알았던 아홉 살에 세상에서 제일 잘 보이고 싶었던 이는 그 뿐이었음을, 그가 아직 남자이기 이전에.

 

언제 헤어졌었지. 잠시 살던 다세대 주택에서 잘 지어진 새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이사온 후 오빠를 만났던가, 그렇지 않았던가. 동네 아이들 모두 모아놓고 생일파티를 할 때면 생일선물로 문구세트를 사주던,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은 채 잘보이려 애썼던 사람. 그러니까 내가 열한 살, 그가 열두 살 즈음 본 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소식은 간혹 들었어도, 대면할 일은 없어서 내가 그런 것처럼, 그도 간혹 나를 생각하는지, 정확히 말하면 내 아홉 살 즈음과 피아노 콩쿨 후의 장미꽃 한 송이를 내밀던 작은 손의 저를 기억하는지 묻고 싶었다. 아마 시간 속에 흩어진 추억 속에서 내가 붙잡고 싶은 건 시간일까.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와 그녀의 희랍어 시간처럼, 그와 그녀의 버티듯 흘러내려간 삶처럼, 그와 그녀의 하룻밤처럼, 그와 그녀가 서로를 향해 한걸음 내딪던 순간처럼.

 

나는 아직 행간 사이에 묻어나던 그 또는 그녀의 사연을 되새기고 있다. 사랑이란 것은,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맞다면, 어쩌면 내 모든 것을 까뒤집어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과거의 경험, 아픔, 시간, 실수, 기쁨, 슬픔, 어려움, 오만, 편견, 시기, 질투를 포함한, 포개지는 모든 것들을 공유하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남자에게 과거의 남자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명언 아닌 명언은 인간의 나태함을 부분적으로 잘 알고 공감한 사람들의 입에서 공통된 언어로 나온 말이다. 서글픔 만큼 울림도 큰 소리. 과거에 어떤 사랑을 얼만큼 했든, 미래에 만나는 남자는 내 모든 과거를 끌어안아 추억으로 공유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품었다. 나는 나일 뿐, 누군가의 나였다고 해서 그게 내가 아닌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도 그를 그렇게 보듬을 것이고,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것이므로.

 

사랑의 시간. 사랑을 시간이라고 정의내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희랍어 시간] 속 남녀의 희랍어 시간을 사랑으로 뭉개버릴 수가 없어서, 사랑은 단지 시간이 아니라 앞뒤 문맥, 상황, 추억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여자는 말을 하지 않고 남자는 지독히도 시력이 나쁘다. 둘이 영영, 어쩌면 아무 것으로도 서로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세속적으로는. 침묵과 빛이 만나는 이야기라고 작가는 썼다.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는 두 존재가 영공 속에서 부딪치는 이야기로 나는 읽는다. 나를 털어놓고 너를 듣는다는 것은, 너를 털어놓고 나를 듣는 것만큼 중요한 얘기. 남자와 여자의 개인적인 것이 만나는 지점보다, 혼자만 자신의 것을 터지기 직전까지 안고 가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 미칠 듯 만져졌다. 잡히지 않는 것에 안달내지 않는 그들의 많은 것이 편안했다.

 

팔랑거리며 당신에게 다가가지 않더라도, 사랑해달라고 매달리지 않더라도, 존재가 존재를 알아본다면 그것은 기척이 아니라 기적이 아니겠는가. 꽃씨처럼 훌훌 날아가 앉고 싶은 곳에 살포시 내려앉아 뿌리내리면 그것이 탄생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끝없이 추락하는 [희랍어 시간]의 남자와 여자를 구해준 것은 불행히도 내가 아니다. 지독히 침잠하는, 어둠 속으로 떠밀리는, 당신의 이유가 무엇이냐고 끝내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행간과 행간, 문장과 문장 사이로 비집고 밀려들어오는 추억 때문이다. 내 추억. 궁극적으로는 내 기억. 모든 기억을 추억이라 부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복해지기도, 아쉬워지기도, 아련해지기도 하는 삶.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날이 오면 나도 그때에 소리 없이, 빛 없이, 언어 없이, 몸짓도 없이, 사랑을. 허락없이 사랑을 가르쳐도 괜찮겠습니까. 내 마음대로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때는 시간을 드릴게요. 나의 모든 시간을 내어 드릴게요. 우리, 온전한 만남을 기약할 수도 있을 거예요. 아직은 미안합니다. 나는 나입니다. 여전히 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 속에 당신이 있을 거예요. 내가 온전히 당신이 될 수는 없지만, 사랑의 시간은 내가 당신이 되는 것이나 당신이 내가 되는 것에 놓이지는 않을 거예요. 나는 언제나 당신 속에, 당신은 언제나 내 속에, 우린 그렇게 어느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서로에게 얽혀있을 테니까요.

 

두려웠어요.

두렵지 않았어요.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어요.

울음을 터뜨리고 싶지 않았어요.

 

내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나가기 전에,

당신은 나에게 천천히 입맞추었지요.

 

이마에.

눈썹에.

두 눈꺼풀에.

 

마치 시간이 나에게 입맞추는 것 같았어요.

입술과 입술이 만날 때마다 막막한 어둠이 고였어요.

영원히 흔적을 지우는 눈처럼 정적이 쌓였어요.

무릎까지, 허리까지, 얼굴까지 묵묵히 차올랐어요. (pp.189-190)

 

 

다시 기다려 달라고 한다. 언어로 심장을 느끼게 할 수가 없어서. 당신은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희랍어를 가르치고 배우듯, 각자 살아가던 그들이 희랍어 시간에 하나로 만나듯, 우리 또한 어느 순간은 하나가 될 거라고 안주하고 있었다. 마모된 감정은 남자의 두 세계로 쪼개어져버린 정체의 자아와 미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아든 여자의 자아와 만나 더 너덜너덜해졌지만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올랐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 '이해'라는 하나만으로도 빛날 정도로 반짝이는 삶.

 

 

 

또르르 흐르는 눈물 방울 하나를 억지로 나뭇잎 위에 올려놓는다. 똑, 하고 소리나며 떨어질 때까지. 적어도 물방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마르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것이다. 내 것들이 또는 내가 당신에게 그러하듯이. 당신도 나에게 그러길 바라지만, 어렵다면 반드시 나를 거쳐가라고, 당신의 아픔도. 왜 배우는지 모르는 희랍어를 붙잡고 씨름하던 여자와 어째서 가르치는지 알지 못하던 남자의 앞으로의 만남이 자꾸만 나를 덮치는 듯 해서 얼른 책을 치워버렸다. 어렵다, 닿는 것. 어쩌면 한 번도 그러질 못했을 거란 생각 때문에 고통스럽다. 언어로는 아무 것도 전달하지 못한다던 말은 맞았다. 아, 그렇다면 지금 내가 당신에게 전달하려는 뭉클한 이것을 당신은 알고 있겠지. 어떤 면에서 당신은 나보다 훨씬 많이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므로.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hining 2011-12-08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은 언제부터 이렇게 글을 잘 썼어요? 어떻게 두 번 써도 이렇게 잘 써요-_-?
저도 이 책 읽어야겠어요. 하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비교되니까 리뷰는 안 쓸거에요(큭큭).

아이리시스 2011-12-09 15:05   좋아요 0 | URL
샤이닝님은 언제부터 이렇게 예뻤어요? 그리고, 퍼왔지 두 번 쓴 거는 아닌걸요. 큭큭.
리뷰써요. 근데 별로 할 말이 없어지는 책이긴 해요. 언어 대신 이미지로 다가오니까.
알았죠? 리뷰 꼭 써주세요ㅋㅋㅋ

저 요즘에 <나도, 꽃!>에 미쳐있어가지고 사실 여러 드라마에 미쳐있지만요. 그저께, 더군다나 지난주, 지지난주에 읽은 책의 감동은 이미 잊었어요. 히히히. 화이팅!

프레이야 2011-12-08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 너무 사랑스러운 리뷰에요.^^

아이리시스 2011-12-09 15:07   좋아요 0 | URL
고마운 프레이야님. 사랑스럽..사랑스럽..다니, 엄청 감동이에요.ㅠ.ㅠ

맥거핀 2011-12-09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돌아오면서 스마트폰으로 리뷰를 읽었었는데, 댓글은 이제서야 다네요. 참 리뷰가 좋네요. 뭐라고 그래야하나. 문장이 물흐르듯 읽힌다고 할까요. 다음 문장 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할 그 문장이 있는 느낌이랄까. 좀 다른 얘긴데, 관계를 만드는 것은 `희랍어`같이 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희랍어`나 `산스크리트어`나 아님 뭐..`광역학`같은;; (`희랍어시간`이 아니라, `일본어시간`이면 왠지 없어보이기도(?)하고..)

아이리시스 2011-12-09 15:13   좋아요 0 | URL
이야, 읽고 쓰기를 나누어하는 분이셨습니까, 맥거핀님은. 언제나 고마워요. 어째서 희랍어인지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을 맥거핀님이 정리해주신 것 같아요.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어야 하는 것. "일본어 시간"은 확실히 없어보이기는 하네요, 큭큭. 베트남어 시간이어봐요.ㅠㅠ 확실히 희랍어나 산스크리트어가 주는 아련한 느낌을 의도한 소설이긴 해요. 이 소설은 아련하게 다가갔다 터치도 못하고 되돌아오는 느낌이에요. 원래 고대,중세에 좀 관심이 많고, 그 웅장하고 거대하고 아련한 느낌을 좋아하는데 솔직히 얘기해서 감히 희랍어를 배우겠다 이런 결심은 못할 것 같고(그거 배워서 어디쓰게요ㅠㅠ, 필요한 것도 못하고 하기 싫은데ㅠㅠ) 플라톤은 좀 읽어야겠다 결심했어요. 그럼 저를 내년에는 여기에서 볼 수 없을 거예요, 하하.

맥거핀 2011-12-10 00:56   좋아요 0 | URL
뭐 읽고 쓰기를 나눈다기 보다는 요즘에 주로 퇴근할 때 스마트폰으로 알라딘 글들을 읽어요. 그런데 뭔가 댓글을 남기고 싶을 때도 있는데, 제가 워낙 폰으로 글을 쓰는 것을 싫어해서요. (터치 자판은 인류 최악의 발명품!)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댓글은 집에 와서 컴퓨터로 남기고 있어요. 뭐 그렇다는 얘깁니다.
아..그리고 그럼 플라톤은 읽지 마셔요.^^

아이리시스 2011-12-11 02:25   좋아요 0 | URL
엄청 힘들더라고요, 터치로 글쓰기. 저는 문자도 잘 안한다니까요. ㅠㅠ 뭐, 맥거핀님의 두 번 방문에 감사하다는 얘깁니다. 플라톤은 어쩌겠어요, 맥거핀님이 원하신다면^^

좋은 주말 되세요, 여기서 인사드려 죄송해요.^-^

마녀고양이 2011-12-09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어쩜 좋을까..

아이리시스 2011-12-09 15:15   좋아요 0 | URL
아휴, 왜 어쩜 좋을까..(하아..)

2011-12-09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9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9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9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1-12-09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로는 아무 것도 전달하지 못한다던 말은 맞았다." - 그래서 누군가와 같은 느낌을 갖는다는 게 어려울 때가 많아요.

아이리시스 2011-12-09 16:04   좋아요 0 | URL
누군가와 같은 느낌.. 맞아요, 사랑조차도 농도와 색깔로 보면 부모-자식, 연인 간, 형제자매간, 모두 같지가 않잖아요. 참 신기해요.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 이를테면 마음, 같은 건 언어로 전달되지 않아요. 전달했다고, 전달하고 있는 거라 믿을 뿐이라고 저는 꽤 예전부터 종종 생각해요. 사랑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지금 내 감정이 막 달아오른 게 아닌데도 사랑한다고 말해줘야 하는 관계가 연인이기도 하고요. 아마 그런 식이라면 <희랍어 시간>의 두 남녀는 절대로 서로를 서로에게 이해시킬 수 없을 거예요. 엇나가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고, 말을 하지 않으니까요.ㅠㅠ

2011-12-10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1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