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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는 띠지의 문구도 나를 끌어당겼지만, 무엇보다 문학동네 카페에 올라온 '매끈하지 않아요. 절묘하다는 느낌도 없어요. 그런데 가슴이 저릿저릿합니다'라는 이 책에 관한 찬사를 보고 마음이 움직여 읽기 시작했다. 붐비는 지하철 출퇴근 시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어디선가 바닷내음과 사람내음이 느껴져 어쩐지 일상이 아스라하게만 느껴졌다.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제목이 갸웃할 정도로 이 책 속에서 올리브 키터리지는 주변인으로 등장한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선생님, 누군가의 이웃으로 등장하는 그녀는 어쩐지 세상와는 떨어져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라 선뜻 가깝게 다가가기엔 어렵게만 느껴진다. 거구에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고, 사회성도 별로 없어 흔히 만나는 사랑스러운 주인공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자살을 경험했다고 담담히 털어놓는 모습이나 거식증으로 고통받는 소녀에게 자신도 굶주렸다고 말하는 모습, 아들과의 관계가 틀어지자 마음 아파 하고 갑자기 쓰러진 남편 헨리를 매일 요양원으로 찾아가는 모습 등 그녀의 다양한 모습을 엿보며 어쩌면 올리브 키터리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평생 눈물 한 번 안 흘려봤을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할 뿐인 외로운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문화도 환경도 다르지만 어쩐지 오랫동안 살아온 우리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웃과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않고 무뚝뚝하게 살아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폐품을 주우러 다니는 할머니들을 하찮게 보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반찬값을 벌겠다고 자기도 폐품을 주우러 다니는 아줌마도, 자기 자식이 어디서 맞고 집에 돌아오면 당장 상대를 찾아가 욕설을 퍼붓는 아줌마도, 여름이면 늘 옥상에 올라와 파리나 잡으며 소일거리를 하는 할아버지도, 음치 주제에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고딩도, 사흘이 멀다 하고 지지고 볶고 싸우는 가족도, 공통점이라고는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 뿐인 사람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 한때는 왜 이웃의 삶에 시시콜콜 참견을 하는 건지 어쩐지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개인화되어가는 도시에서 어쨌거나 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복일 수도 있겠구나, 나는 이웃을,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아는 척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그리고 바닷가 근처의 작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군가 때문에 가슴에 상처 하나를 안고 살아가지만, 단지 어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상처를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애써 감추며 살아가는 사람들. 결국 누군가를 통해 그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가는 모습. 그런 모습이 <올리브 키터리지>에는 담겨 있었다. 젊은 사람도 등장하긴 하지만, 중년 혹은 노년의 인물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단상도, 큰 기쁨과 작은 기쁨으로 삶을 생기를 불어넣어 지탱해가는 모습도, 그리고 단조로운(달리 말하면 평화로운) 일상을 흔드는 사건도,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수많은 순간이 그저 찰나가 아니라 선물임을 아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그것은 결코 벗어나고 싶은 무엇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따뜻한 기운임을, 내가 그런 일상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음을 이 책은 느끼게 해줬다.
지나치게 캐릭터에 빠지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따뜻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고 있자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졌다. 책을 덮고 나니 어쩐지 겨울 바다에 서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이 느껴졌지만,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살을 엘 듯한 찬 바람이 아닌 약간은 짭짜름하지만 따스한 바람이었다. 이 바람에 한동안 몸을 맡기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