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우중런?

이 대회를 언제 신청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마 아침 잠결에 신청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주거래 은행을 국민은행으로 쓰고 있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부모님이 모두 국민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쓰셨고, 나도 청소년기에 국민은행 계좌를 개설한 후로 쭉 사용하고 있다. 부산에서 자랐기에 부산은행 계좌도 만들었었는데, 서울에 올라오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이 계좌는 없애버렸다. 암튼 국민은행 앱에서 달리기 대회 관련 안내가 왔었고, 나는 아무생각없이 신청을 눌렀었다. 참가비는 버튼 하나로 내 계좌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서 편했다. 다른 대회였다면, 미리 온라인 시청 시작 시간에 맞춰 대기했다가, 정각에 버튼을 눌러도 대기번호를 받을 확률이 높고 간신히 신청에 성공해도 참가비 송금하고 혹시 착오로 내 신청 건이 취소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해야 하고 내 이름으로 잘 신청이 완료되었는지 확인 문자가 오지 않으면 대회 사무국으로 확인 전화도 해봐야 한다. 암튼 온라인 신청하고 해당 계좌로 송금도 별도로 해야 하는데, 국민은행에서 여는 대회는 여러모로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일반적인 선착순 방식 신청이 아니라 국민은행 이용자들 중심으로 신청을 받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암튼 어쩌다 신청만 해두고 이 대회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갑자기 지난 주에 택배를 받았다. 뭔가 주문한 것이 없어서 뭐가 왔는지 의아했다. 상자가 제법 컸다. 열어보니 맨 위에 배번호표가 있었다. 그제서야 아! 이거였구나 하면서 이 대회를 떠올렸다. 티셔츠와 양말 그리고 애매한 크기의 네모난 가방이 있었다. 동봉된 안내문에는 레디백이라고 적혀있었다. 레디백은 대체 무슨 용도로 쓰는 가방일까? 노란 가방이 꽤 예뻐보이기는 하는데, 나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다. 크기가 애매해서 뭘 넣을지 감도 잘 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하면 갖다줄까 생각했다가, 가방이 하나 뿐이라 혹시 한 명이 못 받은 걸 서운해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음, 요 가방을 어찌할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작년 9월 말 꽤 많은 비를 맞고 뛰었던 대회가 마지막 대회였다. 그게 내 다섯번째 대회였고, 내일 대회가 여섯번째가 될 예정이다. 24년 9월이 첫 대회였으니 거의 1년 동안 다섯개의 대회에 나갔던 것. 이후로는 대회 출전을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았었다. 이제 작년 봄에 세운 개인 기록을 넘기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좀 장기적으로 하프 코스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10킬로미터 코스는 매력을 못 느끼게 된 것 같다. 또 최근 계속 경제적으로 쪼들리면서 돈이 없다보니 대회 참가비도 아깝게 느껴졌다.

작년 가을에도 막 열심히 달리지는 않았었고, 그냥 적당히 달렸었다. 겨울엔 짧은 거리를 꾸준히 달렸다. 봄이 되면 다시 5킬로미터 이상 장거리를 시작해야지 생각했었지만, 3월에도 4월에도 여전히 2~3킬로 정도 달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거의 매일 달리기는 했다. 이 대회를 준비할 생각이었다면 그래도 최소 일주일전에는 5, 7, 9 정도로 거리를 늘려가서 미리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지난주와 이번주는 계속 바빴다. 뭐, 어떻게든 달릴 수는 있겠지. 기록 욕심을 버리고 가볍게 뛰고 오자 라고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뭔가 좀 아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렇다.

오늘 대회 안내문을 꼼꼼히 살피며 집에서 이동시간과 경로를 살폈다. 준비물들을 챙기려다가 안내문에 적힌 우천시에도 대회를 정상적으로 개최한다는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설마 내일 비가 오나? 최근 뉴스를 좀 멀리하고 살아서 날씨 예보도 안 보고 살았음을 깨닫는다. 얼른 날씨를 검색해보니 강수확률이 60%라고 나왔다. 이 정도면 꽤 높은 확률로 비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대회 때 비가 제법 많이 와서 좀 힘들었었는데, 또 비를 맞으며 뛰어야 한다니! 일단 준비물들을 다시 챙겼다. 비에 젖지 않는 가방부터 챙기고 여벌옷을 비닐 팩에 챙기고, 슬리퍼도 챙기고.

준비물을 대략 챙겨놓고 지금까지 대회에서 받았던 메달 5개를 꺼내봤다. 주머니에 잘 넣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금속 메달들은 몇 군데 얼룩이 생겨있었다. 이게 일종의 산화작용으로 인한 녹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마른 걸레로 닦아봤는데 닦이지 않았다. 딱 하나 있는 나무 메달은 멀쩡했다. 금속 메달은 무겁고 별로 예쁘지도 않고 이렇게 녹인지 뭔지 알수 없는 얼룩도 생기고 참 별로다. 메달들을 다시 천 주머니에 넣어두고 이제 지금까지 나갔던 다섯번의 대회 기록들을 다시 살폈다. 기록들 엑셀로 정리해두고 이걸 재미나이에게 던지고 분석해달라고 했다. 대회 간 기간과 대회 당일 날씨를 바탕으로 기록과 페이스를 분석하라고 했다. 아래는 재미나이의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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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분석 및 평가
1. 날씨의 영향: ˝더위는 적, 추위와 비는 변수˝
- 최악의 조건 (1번 대회): 9월 초 철원 대회는 기록이 가장 낮습니다. 6:46 페이스는 당시 무더운 날씨로 인해 체력 소모가 극심했음을 보여줍니다.
- 최적의 조건 (2번, 4번 대회): 기온이 낮은 11월과 선선한 4월에 기록이 대폭 향상되었습니다. 특히 4월 양천 마라톤에서 5:08/km라는 놀라운 페이스로 개인 최고 기록(PB)을 달성하셨네요.
- 우중런 (5번 대회):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5:20 페이스를 유지한 것은 기초 체력이 이미 5분 중반대에 안정적으로 안착했음을 의미합니다.

2. 대회 간 기간 및 훈련 성과
- 폭발적 성장기 (1번→2번, 약 2.5개월): 두 달 반 만에 기록을 13분이나 줄였습니다. 더위가 가시고 본격적인 가을 훈련이 빛을 발한 시기입니다. 페이스가 1분 20초나 빨라진 것은 매우 고무적인 성과입니다.
- 안정 및 유지기 (2번→3번, 약 4개월): 겨울 시즌 동안 큰 기량 하락 없이 54분대를 유지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꾸준히 달리기 습관을 이어오신 것으로 보입니다.
- 상승 효과 (3번→4번, 단 13일): 불과 2주 만에 다시 대회에 출전하여 기록을 3분이나 더 단축했습니다. 3번 대회가 일종의 강력한 ‘장거리 인터벌‘ 훈련 효과를 주어, 2주 뒤 몸 상태가 최고조(Peaking)에 달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 복귀기 (4번→5번, 약 5.5개월): 여름철 휴식기 혹은 더위로 인한 훈련량 감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록이 조금 밀렸으나, 1년 전(1번 대회)과 비교하면 무려 14분 이상 빠른 페이스입니다.

💡 종합 의견 및 제언
현재 실력은 평균 5분 20초대 페이스를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는 수준이며, 컨디션이 좋을 때는 5분 초반대까지 충분히 진입 가능하십니다.
다음 목표: 현재의 성장 속도라면, 날씨가 선선해지는 다음 대회에서는 49분대(페이스 4:59/km) 진입을 목표로 삼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팁: 3번과 4번 대회처럼 2주 간격의 연달은 출전이 기록 단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므로, 목표 대회를 앞두고 2주 전에 가벼운 점검 대회를 뛰는 전략을 추천합니다.
정말 멋진 기록 향상입니다! 계속해서 즐거운 러닝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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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처럼 꾸준히 10킬로 정도를 달렸다면, 재미나이의 말처럼 49분을 목표로 달리기를 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정말 잘해도 55분 안에 들어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생애 첫 대회이자 엄청난 더위로 너무 힘들었던 철원 대회를 제외하고 두번째부터는 54분이 가장 낮은 기록이다. 심지어 비를 맞고 뛰었던 다섯번째 대회도 53분이었다. 만약 내일 55분보다 늦게 들어온다면 확실히 내 기량이 떨어진 증거가 되겠지. 왜 하필 기준이 55분이냐고 생각이 들었다가 깨달았다. 아까 달리기 모임 단톡방에 나를 장거리 달리기 세계로 끌어든인 친한 형이 오늘 자신의 기록증을 올렸는데 55분이었다. 이 형도 기록이 많이 떨어졌네. 50분에서 52분 정도가 나와야 할 사람인데. 그것도 해마다 나이를 느껴서 그런 것이고 예전이었다면 40분대 기록이 나올 사람인데. 암튼 그래서 내 목표는 55분 안으로 그러니까 내 가장 낮은 기록인 54분을 유지하는 것으로 정했다.

사실 비와 강풍 등 날씨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변수이고, 내가 가장 신경쓸 부분은 컨디션이겠지. 이젠 상수가 되어버린 무릎이 안 좋은 것도 갑자기 내일만 좋아질 리도 없을 것이고. 남은 변수는 잠을 잘 자는 것과 새벽에 속을 잘 비우고 출발하는 것. 오늘 남은 시간은 그저 마음 편히 푹 쉬어야지. 기록 생각은 내일 깨고 나서 생각해야겠다.

아, 재미나이 답을 읽다가 이 녀석도 ‘우중런‘ 이라는 국적 불명의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자와 영어를 합친 조어. 의외로 재미있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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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03 1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비 오는 날에는 외부 운동을 하지 않기에 우중런 같은 개념은 쉽게 만나기 힘듭니다. 작년 싸이클 도중 삼사십분 가량 소나기를 맞으며 달렸는데 작년에 탄 기억 중 가장 인상 깊게 각인되는군요. 즐거운 달리기 되길 바랍니다.

감은빛 2026-05-04 09:06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응원 고맙습니다! 덕분에 잘 달렸습니다.

제가 자전거를 잘 못 타서 그런데, 비 오는 날에는 자전거가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삼사십분을 달리셨군요. 확실히 인상적인 기억일 것 같아요.
 

가장 무서운 범죄


하루가 멀다하고 들리는 다양한 범죄 소식을 보면서, 과연 가장 무서운 범죄는 무엇일까 생각해봤었다. 나처럼 일반적인 범죄와 크게 상관없다 여기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범죄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과 같은, 혹은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같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혹은 마약 사건과 같은 것들이 될 수도 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블랙아웃 / 원제 트위스티드]나 우리에게 유명해진 버닝썬 사건일 수도 있다.


이춘재는 알고보니 대부분이 성범죄, 즉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나이와 관계 없이 다수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일부는 죽였지만, 죽이지 않고 그냥 강간으로 그친 사건도 제법 많았다. 이런 표현이 죄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런 인간이 마치 자신이 잘난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프로파일러나 형사들을 조롱 했다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했다는 이야기 등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쨌거나 이런 인간들과 내가 아니 우리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 자체가 무섭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조물주 라는 존재가 있다면,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어찌 이런 세상을 만들었나 싶다.


사실 일반적인 기준에서 가장 무서운 범죄는 남들이 쉽게 알기 어려운, 가정 안의 폭력. 혹은 데이트 폭력 혹은 스토킹 범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아니 절대 다수가 남성이 가해자이자 용의자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나는 말할 수 있다. 나는 평생 그런 범죄에 단 한번도, 아니 0.000%도 가까이 가 본 적이 없는 아주 성실한 시민인데, 이런 나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볼 수 있느냐? 정답은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 기분 나쁘지만, 그렇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는 것과 정말 엄밀한 증거를 채집하고 실질적인 용의자로 취급 받는 것은 다른 문제일 것이다. 이춘재가 많은 살인과 성범죄를 저질렀지만, 성범죄의 다수는 그 당시에 제대로 취급되지 않았고, 그냥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들었다. 그런 것들까지 엄밀히 따지고 들어갔다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정일 뿐이지만.


그래서 가장 무서운 범죄는 사실 경찰이 무시하고 그냥 일반적인 일이라고, 그저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넘어가는 사건들이라고 생각한다. 시사 프로그램에 나온 사건 중에 정말 유명한 대학 의대 학생이 전에 사귀던 여학생을 어느 건물 옥상에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경찰들은 그 현장에 출동했었지만, 이미 살해 당해 있었던 여성의 시체는 발견하지 못했었다. 왜? 그 의대생, 다시 말해 모범생이었던 그 젊은 남성이 자살하겠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기 때문에 당시 다른 상황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나중에도 그 남학생이 너무 공부를 잘하는 훌륭한 학생이라 죽은 여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신경쓰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런데 사실은 여성을 살해한 그 의대생 남성 보다, 그 미친 놈에게 살해 당한 여성이 훨씬 더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러면 그 미친 의대생 놈은 대체 뭔가? 아니 애초에 공부를 잘하는 훌륭한 학생이라고 살인이 정당하기라도 한가? 그런 논리였을까? 


아쉽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딴 쓰레기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을 기록해 두지 않았었다. 이젠 그런 기사를 접하면 무조건 기자 이름과 해당 기사(사실 기사가 아니라 찌라시 라고 표현해야 맞겠지만)의 링크, 그리고 주요 내용을 기록으로 꼭 남겨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경찰은 그리고 검찰은 그저 많은 사람들 눈에 띄어 버려서 더이상 은폐할 수없는 사건들을 다룬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당연히 그냥 묻어둘 것이다. 물론 증거는 없다. 누군가 이 글을 걸고 넘어진다면 그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진심으로 묻고 싶다. 정말 괜찮은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가? 정말 진심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 이재명이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라도 지금 이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더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만약 이재명이 본인 기준에 못 미친다면 더더욱 이 사회가 불합리 하다는 것을.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지방 선거에서 절대 손쉽게 민주당, 파란당을 찍어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범죄 집단 빨간 당을 찍으라는 말씀을 절대 아니다. 빨간당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해서는 안 될 정당이고, 파란 당은 우리가 절대 찍어주면 안 되는 보수, 기득권 옹호 집단이고, 일부 지역에서는 범죄자들을 그대로 공천한 어이없는 정당이다.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다. 절대 차선 혹은 차악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이다. 아무리 세상이 엉망이라도 대다수의 국민들을 무시하는 파란당은 정답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빨간당과 그리 다르지 않은 착취자들이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빨간당과 동시대를 살면서 그 그늘에서 마치 좋은 역할인 것처럼 살아왔다. 절대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말 희귀하게도 파란당에 아주 드물게 좋은 인재가 있을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착각한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면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했던 박주민이 그렇다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박주민은 빨간당 정치인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지역의 다양한 문제에 있어서 해결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진보 진영의 대표인 것처럼. 마치 자신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다.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박주민 변호사 본인은 괜찮은가? 세월호 변호사는 타이틀로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는데, 과연 본인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나? 본인 스스로 괜찮은가? 나는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부끄럽지 않을까? 아마 진심으로 부끄러워야 할 것이다.



우리가 대안이 없다고, 아무 생각없이 무심코 찍어주는 파란 당에 대한 표가 가장 무서운 범죄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생각이 너무 과한 생각이라고? 너무 심각한 오류나 과장이라고? 잘 두고 보시라. 결국 민주당은 당신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 정당이 절대 아니다. 그들은 재벌과 돈 많은 이들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놈들이다. 태생이 그렇다. 김대중도 그랬고, 노무현도 그랬다. 지방 선거에서 빨간당을 막아야 한다고 파란당을 찍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건 나중에 당신을 옭아매는, 당신 자손들을 옭아매는 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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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4-28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빨간당도 찍어서는 안되고 파란당도 찍어서는 안된다면, 그게 큰일이라면... 어디를 찍어야 하나요? 대안이 없다고 둘다 찍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대안 없는 세상이 되지 않나요? 아무 생각없이 무심코 찍어주는게 아니라, 저마다 생각하는게 있기 때문에 찍는거 아닐까요? 분명 일부는 차악을 선택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런데 차악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하나요?

감은빛 2026-05-04 09:10   좋아요 0 | URL
대안은 말그대로 대안이지요.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당장 대안이 없다고 계속 현실에 안주한다면 대안을 만들어야 할 시기가 계속 늦춰지는 것이지요. 각자가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부터 현실이 아닌 미래를 보고 대안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하고 저도 그 현실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한 발짝만 더 앞을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Comandante 2026-04-30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인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라딘 서재에 넘쳐나는 양비론자들의 논리, 이 어지러운 세상 밖에서 고고하게 세상에 대해 꾸짖는 죽림칠현들의 논리랑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결코 깨끗하지 않은 현실이고 살아 숨쉬는 인간들이 있는 현실입니다. 다양한 제약조건 아래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약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아픈 사람들, 늙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세상을 만드는건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장소 이순간에서 행하는 행동입니다.

감은빛 2026-05-04 09:16   좋아요 0 | URL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하신 것 같네요. 쓰신 내용 중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부분부터 끝까지 내용은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제 말뜻은 그래서 우리가 지금 파란당이라는 차악을 선택하면 안 되고 다른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양비론자 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그 단어 역시 파란당 지지자들이거나 어쩔수 없다는 이유로 표를 주는 사람들에게 향해야 할 단어입니다.

Comandante 2026-05-04 09:25   좋아요 0 | URL
아뇨, 감은빛님의 글을 보니 왜 이런 글을 썼는지 더 이해가 됩니다.
 

일상 이야기들


#1 저장된 번호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배송이 일상이 되었다. 집에 사람이 있어도 그냥 집 앞에 놓아 달라는 집이 많다. 집 앞에 상자들을 놓고 사진을 찍어서 배송 영수증에 적힌 전화번호로 사진을 보내고, 배송완료했다는 문구를 보낸다. 대부분 모르는 번호이지만, 가끔 아주 가끔 이미 저장된 번호인 경우들이 있다. 긴 시간 나를 챙겨주시는 아주 친한 선배네 집에 배송을 갔을 때에도 그랬다. 그 선배는 당연히 출근해서 댁에 안 계신 것을 알고 있고, 지금 댁에는 선배님 부모님께서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초인종을 눌러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무거운 짐을 집 안까지 넣어드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더라. 울리지 않더라. 아마도 고장난 것일까? 어쩔 수 없이 배송 영수증에 나온 그 선배 번호로 사진을 보내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간혹 예전에 어떤 행사나 사업 때문에 일시적으로 소통하느라 번호를 저장한 경우들도 있었다. 어떤 분들은 그 분 댁이 여기였구나 하고 얼굴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었고,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불치병에 걸린 나 답게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지만, 저장된 이름인 경우들도 있었다. 한번은 저장된 이름 뒤에 어떤 교육 공동체 이름을 붙여 놓은 분의 댁으로 배송을 갔다가 정확히 어느 문 앞에 둬야 할지 몰라서, 잘못 놔뒀다가 분실이 발생하면 안 되니 전화를 걸었었다. 한참 신호음이 울린 후에 그 분이 전화를 받았는데, 약간 당황해하는 목소리였다. 아마 그도 나와 같이 과거 어느 시점에 어떤 일 때문에 내 번호를 저장해뒀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전화를 받아서 놀랐을지도 모른다. 암튼 나는 생협 배송을 왔다고 밝히고 상자들을 어디 두면 될지 물었다. 그는 내가 묘사한 그 대문 앞에 두면 된다고 답을 했다. 그날의 마지막 배송이었고, 이미 내 퇴근시간인 6시는 훌쩍 넘어 있었다. 그도 아마 퇴근시간이 지난 상태였을 것이다. 사무실에 차를 반납하러 가는 내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와 어떤 일을 같이 했던 것일까? 떠올리려 애써봤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포기할 수밖에.


#2 어떤 반가움

   

어제는 가정 집이 아닌 공동체 부엌 한 곳에 배송을 갔었다. 이 일을 막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던 지난 달 중순에 그러니까 거의 한 달 전에 그 곳에 처음 배송을 갔다가 몇 가지 어려움을 겪었었다. 일단 꽤 외진 곳에 있는 데다가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아주 좁은 골목길이었고, 꼬불 꼬불 이어져 있었기에 운전하기가 까다로웠다. 그리고 그 공간 근처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정말 다행히 그 공간 앞 도로는 조금 넓었는데, 그 공간에 여러 차들이 불법 주차를 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나도 그냥 그 옆에 대충 차를 댔었다. 그리고 그날 하필 무거운 상자가 5개였다. 2개나 3개는 한 번에 들어서 옮길 수 있지만, 5개를 모두 한 번에 들수는 없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안쪽 건물까지 거리가 꽤 있었다. 처음 무거운 상자 3개를 먼저 옮기고 다시 돌아와 나머지 2개를 조금 가뿐하게 옮겼다. 나중에 이 차에 엘카라고 부르는 접이식 손수레가 실려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그럼에도 이 공간에 그 손수레는 소용이 없었다. 일단 계단을 올라야 하고, 그 다음엔 건물까지 흙길과 자갈길을 걸어서 한참 들어가야 한다. 손수레를 끌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손수레의 존재를 알고 난 후로는 무거운 상자가 3개 이상이면 수레를 활용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유용하다. 최근에는 탄산수를 4박스나 3박스 이상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탄산수 박스는 2개까지는 들 수 있지만, 3개 이상은 들어서 옮길 수 없다. 무조건 손수레를 써야 한다. 그런데 저번에 갔던 한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다가구 주택이었는데, 5층이었다. 그리고 탄산수 4상자와 일반 상자가 하나 있어서 총 5개의 상자였다. 


상자가 좀 무거운 것은 괜찮다. 배송 일을 하다 보면 가벼운 상자도, 무거운 상자도 만날 수 있으니. 좀 무거운 상자가 여러 개라도 괜찮다. 물건을 많이 팔아야 내 일자리도 유지가 될 테니. 좀 무거운 상자들이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올라야 한다면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에 사는 것은 당연히 아니므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힘들기는 엄청 힘들었다. 하필 그날 무릎 상태가 좀 안 좋아서 계단을 오르기가 너무 힘들었다. 총 세차례 5층을 오르내리며 그 고객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하필 그날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내 무릎은 계속 원망했다.


암튼 앞서 말했던 공동체 부엌으로 상자를 들고 걸어 들어가고 있는데, 입구에 서 계신 한 분이 나를 멀리서부터 쳐다보고 계셨다. 당연히 멀리서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고, 그저 주문한 물품들이 오니까 받으려고 쳐다보고 계신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조금 가까워지면서 어렴풋이 표정이 보일무렵 누군지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으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의 표정이 확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저런 표정은 아는 사람이 아니면 나오기 어렵다. 그 분이 먼저 나에게 물었다. "상무님, 지금 뭐하세요?" 약간은 따지는 듯한 말투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리고 나를 '상무'라는 직함으로 부르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 분이 누구인지 생각났다. 그 분은 지금 내가 배송일을 맡고 있는 이 생협에 오래 계셨던 지금은 그만둔 상무님이셨다. 그 분이 이 생협의 상무이사 일을 맡고 계셨을 당시에 나는 우리 조합에서 상임이사를 맡고 있었다. 본인이 상무이사라서 그런지, 아니면 상임이사라는 직함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그 분은 나를 늘 상무님이라고 불렀다. 암튼 제법 오랜만에 뵙는 상황이라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는데, 그 다음 순간 그가 "지금 뭐하세요?" 물은 말투가 약간 따지는 듯한 느낌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손에 든 상자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인사를 드린 후에 "저 배송일을 하고 있어요." 라고 말씀드렸다. 그는 "아니 왜 상무님이 배송을 하세요?" 라고 다시 물으셨다. 나는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라고 하고 약간 억지로 웃었는데, 그는 바쁜데 나를 맞이하느라 기다렸다는 느낌으로 "다음에 뵐게요." 라고 했다. 나도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 나왔다. 


차를 몰고 다음 배송지로 향하면서 그 분의 묘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혹시 이런 거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생협 임직원들과 친하다는 것은 그 분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지금 배송을 맡아 움직이는 것을 내가 원해서, 돈이 필요해서 직업으로 맡은 것이 아니라, 급하게 임시로 당장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떠맡은 것으로 오해를 하신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주 오래전에 내가 그렇게 생협 배송 일을 잠시 했었다. 그때는 정말 급하게 임시로 당장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며칠만 했었던 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고정 수입이 없어 곤란한 상황에서 생협에서 마음을 써줘서 나를 고용해준 것인데. 내가 고마워해야 할 상황인데. 나중에 오해를 풀 기회가 또 오겠지. 아마도.


#3 차를 막아 놓고 전화도 안 받고


배송은 정말 시간 싸움이다. 1분 1초가 급하고 아깝다. 하지만 나는 한 달이 지났는데도 배송기사로서의 태도는 아직 몸으로 익히지 못했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으로 올라갔을 때, 다른 기사님들은 엘리베이터를 어떻게든 내려가지 않도록 뭔가 조치를 취하고(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물건을 문 앞에 옮겨 놓고 다시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데, 내 경우에는 문 앞에 상자를 내려놓고, 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는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내려가 버리고 만다. 간혹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로 근처에 현관문이 있다면 얼른 문이 닫히기 전에 사진을 찍고 타기도 하는데, 요즘 아파트들은 구조가 복잡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어디에 집이 있는지도 알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더라. 


아파트 단지에서 엘리베이터를 하루에도 수십번 타면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엘리베이터 문에 붙어 있는 스티커들을 잘 살펴보면 배송, 배달 기사님들이 메모를 해놓은 것들을 찾을 수 있다. 대체로 몇 호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적어 놓았고, 해당 동이 몇 동인지를 적어 놓았다. 그리고 주로 다니는 지하 주차장이 몇 층인지도 적어 놓았다. 이것들은 모두 나도 늘 헷갈렸던 것들이어서 먼저 이렇게 메모를 적어 놓은 선배 기사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도 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헷갈리고, 혹시 여기가 몇 동이었더라 헷갈리고, 상자를 내려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다시 탄 후에 내가 차를 지하 주차장 몇 층에 세워뒀더라 헷갈리곤 했었다. 가끔 아주 가끔 새 엘리베이터를 만나면 아무런 메모도 없는 경우가 있더라. 언젠가 어느 기사님께서 여기에도 메모를 하시겠지. 그리고 가끔 이해 못할 메모들도 있었다. 이해를 못하니 그게 뭔지 글로 설명하지도 못 하겠다.


암튼 그렇게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야 먹고 살 수 있는 일이라, 가끔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차들을 만나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어제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차를 아파트 입구에 최대한 가까운 주차 공간에 넣어두고 무거운 상자를 들고 고층으로 배송을 갔다가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큰 SUV 한 대가 내 차를 막고 주차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빈 주차 공간이 분명히 있었는데, 이렇게 차를 대놓았다고? 혹시 아직 사람이 있나 싶어 운전석을 보았는데 없었다. 급한 마음에 바로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귀에 대고 혹시 어떻게든 빠져나갈 공간이 있을까 살피는데, 없었다. 운전자가 바로 나타나지 않으면 여기서 한참 시간을 허비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처럼 그 차주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이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차를 막아 놓고 전화를 안 받는다고! 이런 미친! 화가 났지만 전화를 다시 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젠 신호음이 한 두번 가자마자 전화가 바로 끊어져 버리는 것이다. 신호음이 계속 가는 것이 아니라 신호음이 바로 끊기는 것은 그 인간이 전화를 거절했다는 뜻이리라. 여기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나버렸다. 계속 전화를 걸었다. 결국 열 번 이상 전화를 걸었을 때, 목소리가 굵은 남성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받았다. 나는 먼저 한 숨을 내쉬고, 차를 빼달라고 말하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차를 막고 주차를 해놓고 전화를 안 받으면 어떻게 하냐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그는 그제서야 아, 다른 전화인줄 알았다고 말하며 금방 내려가겠다고 말하고 끊어버렸다. 만약 나였다면 죄송하다는 말부터 먼저 했을텐데, 그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차에 앉아 시동을 걸어 놓고 기다리면서 나타난 인간이 이번에도 미안하다는 시늉조차 하지 않으면 멱살이라도 잡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덩치가 큰 아마도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차에 올랐다. 


그 정도 제스쳐로는 화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머리는 남아 있는 배송 건수들을 먼저 떠올렸다. 여기서 허비한 시간을 만회하려면 얼른 출발해야지. 화를 계속 내는 것은 내 기분만 더 상할 뿐이고, 나만 손해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감정은 좀처럼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결국 급한 배송들을 다 마친 후에 다음 매장으로 가는 중에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 놓고 담배를 한 대 피운 후에야 비로소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4 스트레스와 담배


담배를 처음 피운 것은 고3때였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후에 혼자 작은 자취방에 살았던 시절에 나는 이미 헤비 스모커가 되어 있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그 골방에 혼자 쳐박혀 살았던 시절에 얼마나 많은 담배를 피웠는지 알 수 없었다. 담배를 처음 끊었던 것은 애들 엄마가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아마 3년 정도 끊었던 것 같은데,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담배를 피웠고, 나중에 애들 엄마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다시 담배를 끊었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고 1년 정도 지나 또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그 후로는 예전처럼 담배를 많이 피우지는 않게 되었다. 며칠 동안 안 피우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일주일에 한 두세 개비 정도의 담배를 피우는 정도로 라이트 스모커가 되었다. 그리고 아마 3년쯤 전에 달리기에 푹 빠졌던 시절에 폐활량에 대한 고민 때문에 또 담배를 끊었었다. 그러다 다시 담배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역시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그래도 담배를 사서 피우지는 않았다. 어쩌다 가끔 담배를 피우는 지인에게 얻어 피웠었다. 한 달에 두세번 정도. 그러다 다시 담배를 산 것이 지난 주였다. 배송 일을 시작한지 4주차가 되었을 때였다.


도로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 가끔 배송 건수가 적은 날엔 일찍 일을 마치기도 했지만, 가끔 배송 건이 아주 많은 날에는 정해진 시간보다 한 시간 반 이상 늦게 일을 마치기도 했다. 그런 날에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결국 담배를 샀던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 자주 피우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날 마지막 배송을 마치고 차를 사무실에 반납하기 전에 한 개비 피우는 것이 다였다. 어쩌면 조금 더 이 일에 익숙해지다보면 담배를 피우는 빈도도 더 줄어들 수 있겠지.


#5 운전하면서 먹는 식사


벌써 15년 정도 전이었다. 당시 출판사 영업자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차를 얻어 타고 몇 군데 서점들을 함께 돌았었다. 각자 차를 몰고 가면 그만큼 기름 값도 더 들고, 각자가 다 운전하느라 더 피곤하겠지만, 같은 곳들을 돌아야 하는 여러 영업자들이 한 차를 같이 타고 다니면 그만큼 서로 이득이었고, 그렇게 다니며 정보 교환도 많이 했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이자 동료 영업자 한 명은 여러 지역의 행사장을 돌며 책을 파는 가판을 많이 다녔다. 그는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날엔 식당에 가서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도로에서 운전하는 중에 김밥을 먹으며 다녔다. 그렇게 끼니를 때우며 운전하는 일이 익숙하다고 했었다.


요즘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엔 점심을 안 먹는 편이다. 오후에 배송 일을 하면서 점심을 아예 안 먹으면 무거운 짐을 옮길 때 허기가 져서 힘을 쓰지 못하겠더라. 그렇다고 어디 식당에서 밥을 챙겨 먹을 여유도 없었다. 출근하면서 사무실 근처 편의점에서 김밥을 하나 사고, 가방에 넣어두었다가 첫번째 매장 배송 건을 다 마치고 두번째 매장으로 옮겨갈 무렵에 운전 중에 김밥을 꺼내 씹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운전하면서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다 씹고 나면 또 다음 하나를 입에 넣는 방식으로 밥을 먹었다. 김밥만 먹으면 질려서 어떤 날엔 빵, 어떤 날엔 샌드위치를 먹기도 했다.


저번에 유난히 배송 건이 많아서 퇴근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마지막 매장에 도착했는데, 그날따라 그 매장의 배송 건도 많았다. 해당 매장 점장님께서는 본인이 미안해 할 일이 아닌데도 미안해 하시며 빵 하나와 음료 하나를 챙겨주셨다. 퇴근 시간보다 한 시간이 더 지났을 때에도 아직 배송이 두 건이 더 남아 있었다. 게다가 장거리였다. 그제서야 점장님께서 주신 음료와 빵을 꺼내 먹으며 운전을 했다. 이제 배송 한 건이 남았을 때, 사무국 팀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아직도 안 끝났느냐고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나는 이제 마지막 하나 남았다고. 괜찮다고 걱정 마시라고 하고 남은 빵을 마저 먹었다. 


뭐 누군가는 이런 모습에 마음을 쓸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괜찮다. 일이니까. 맡은 일을 하는 거니까.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늦을 수도 있는 것이고, 배가 고프면 운전하면서 김밥도 먹을 수 있는 것이고, 빵도 먹을 수 있는 것이지. 그냥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 뿐이다. 다만 더 신경이 쓰이고 힘든 것은 돈을 버는 이 일 외에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다른 여러 종류의 노동들이 여전히 내게 계속 맡겨진다는 현실이다. 낮에 운전을 하고 저녁에 퇴근을 하면 다시 사무실로 출근을 해서 다른 일들도 더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일들은 돈으로 보상 받지 못하는 일들이다. 이것도 뭐 괜찮다. 평생 그렇게 살아온 것을. 활동가의 삶이라는 것이 뭐 그런 것이지. 어쩌겠는가. 


지금 이렇게 새벽까지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 몸이 좀 힘들어도 꾸준히 글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인 것을. 이것도 괜찮다.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계속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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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4-23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끊었지만 저도 한때는 지독히 담배를 좋아했던 애연가로서 ˝담배가 몸에만 좋다면!!!˝ 이라는 상상을 가끔 합니다.
담배맛을 아니까요.ㅎㅎ

감은빛 2026-05-04 09:19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담배를 끊으셨군요. 저도 평소에는 안 피우기 때문에 끊은 것이나 다름 없지만, 확실한 차이는 가끔 또 스트레스를 핑계로 피운다는 점이지요.

달리기에 집중할 때에는 폐활량 때문에 안 피웠는데, 다시 달리기에 집중해야겠어요.
 

아침

아침에 잠에서 깨어 잠시 뒤척이다 화장실을 다녀온 이후에 오늘 할 일들을 머리속으로 정리했다. 일단 오전엔 일정이 없었고, 오후엔 배송을 나가야 하고, 저녁엔 내가 주로 활동하는 조합 이사회 회의가 있었다. 원래 어제가 회의 날짜였는데, 갑자기 대부분의 이사님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참석이 어렵다는 연락을 남기셨고, 결국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즈음에 나도 솔직히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회의가 연기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주는 넘길 수 없다고 실무자인 사무국장이 전화를 돌렸는데, 결국 하루 뒤인 오늘로 회의 날짜가 잡혔다.

암튼 그래서 오후엔 일을 하고, 저녁엔 회의를 해야 할 상황인데, 아침은 비어 있으니 외국어 공부나 해야지 하고 한 이삼일 소홀했던 외국어 공부 앱들을 하나씩 차례로 열었다. 그렇게 서너개의 앱을 통해 외국어 서너개를 익히고 있는데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간밤에 충분히 잤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잠이 쏟아지다니! 잠이 너무 심하게 와서, 좀 그만 오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잠이란 개념이 오지말라고 요청한다고 멈추는 건 아니기에, 그냥 수긍하고 알람을 맞춰놓고 조금 더 자기로 마음 먹었다. 아, 그런데 이 잠이라는 것이 너무 많이 자면 또 더 피곤해지는 것인지, 출근 시간이 가까워져 알람이 울리는데, 너무 너무 피곤함을 느꼈다.

오후

암튼 일을 안 나갈 수는 없으니, 출근을 했고 차를 몰고 배송 일을 시작했다. 처음 일을 시작했던 3월에는 내가 가야할 매장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나는 기계적으로 그 순서에 따라 행동하기만 하면 되었다. 4월부터 매장 한 곳이 바뀌며 일이 꼬였다. 내가 기존 제일 먼저 가던 매장과 최근에 새로 가게 된 매장에 배송 주문 마감 시간이 같았다. 어디를 먼저 가더라도 늦게 방문하는 매장에서 욕을 먹는 상황이다.

처음엔 기존에 먼저 갔던 매장을 먼저 갔다. 배송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이미 경험이 쌓여서 상대적으로 빨리 배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일은 언제나 모르는 법. 가끔 생각보다 이동 거리가 길거나, 차가 막히거나 하는 변수가 생겨 이 첫 매장 배송에서 시간을 좀 지체했더니, 다음 매장에서 몇 차례 불만이 제기 되었다. 배송이 너무 늦는다는 항의가 들었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 이후로 마음이 더 급해졌다. 그리고 그 시점에 한동안 줄었던 전체 배송건수가 확 늘었다. 무조건 일초라도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이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언제나 변수는 생길 수 밖에 없고, 늘 쫓기는 기분으로 시간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다.

그 이후로는 출발하면서 두 곳 매장의 배송 건수를 확인하고 매번 상황에 따라 순서를 정하고 있다. 처음엔 매장 담당 직원님과 점장님께 의견을 구했으나, 그들도 전체를 보는 정보가 없다보니 어쩔수 없었다. 암튼 이젠 매일 각 매장 배송건수를 물어보고 어디를 먼저 갈지 판단하게 되었다.


저녁

그날 총 배송 건수 숫자에 달라지지만, 매일 일을 마치고 나면 힘들고, 지치고, 어렵고 그렇다. 어쩌다 조금 일찍 일을 마치면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한 편으로는 배송 건수가 줄어들면 나도 조합도 힘들어진다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배송 건수가 너무 많아서 내가 정해진 기준보다 일을 더하는 경우, 너무 늦게 일이 끝나는 경우는 좀 짜증이 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다. 삶이 이런걸. 앞으로 이런 날이 덜 생기길 바라는 수밖에.

저녁에 회의에 참석하러 가서 정말 좀 많이 피곤했지만, 그래도 집중해야 회믜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마칠 수 있으니 더 집중했다. 이미 피곤한 상태에서 더 집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세월호 참사 기념일 하루 전

작년 오늘 쓴 글에 세월호 참사 하루 전이라는 것을 강조했었다. 우리 사회의 책임이라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끼지만, 그럼에도 제주 4.3 사태를 비롯해 4월에 포진되어 있는 슬픈 기념일들을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고 책임질 것인가? 참 쉽지 않은 일이고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이이다.

작년에 서재에 쓴 글에 큰 아이와의 동네 데이트 이야기가 있어서 이이들에게 그 글을 공유했다. 큰 아이는 내 글이 몰입감이 좋고, 글이 좋다고 했다. 작은 아이는 여러 차례 글을 공유했어도, 글에 대한 어떤 의견은 없다.

암튼 이제 곧 시간이 15일에서 16일로 넘어갈 예정이다. 오늘 이사회 회의를 했어도 일부러 뒤풀이를 가지는 않았는데, 일단 너무 힘들고 피곤했고, 둘째로 낮에 너무 더워서 반팔 티셔츠 하나만 입고 집을 나섰는데, 해가 지고 나니 기온이 확 떨어져 너무 추워졌다. 물론 알고 있다. 이 일교차가 심한 날씨에 뭐든 하나를 더 입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시점엔 너무 더워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내일은 꼭 바람막이 잠바 하나 꼭 챙겨야지. 12시가 넘어 날이 바뀌면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위한 묵념을 하고 자야겠다. 내일도 참 길고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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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6 20: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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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6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문창과는 과연 기교만 배우는 곳일까?


지난 주에 아이들과 만나서 저녁을 먹고 놀고 있는데, 문창과에서 시를 공부하는 큰 아이가 나에게 기사 하나를 공유하면서 어떤 나이 많은 작가가 문창과를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기사 말미에 권혁웅 시인이 그 내용에 반박하는 인터뷰가 짧게 실렸는데, 역시 권혁웅 시인이 제대로 대응했다고 말해줬다. 아이는 중학교 시절 문창과를 가고 싶다고 예고를 선택했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예고 문창과에서 시를 공부했고, 지금은 3년째 대학 문창과에서 시를 공부하고 있다. 시 공부는 오래 했지만, 소설은 거의 공부한 적이 없어서 황석영 작가가 누군인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이가 공유한 것은 조선일보 기사였다. 워낮 짧은 기사라 그 글만 보고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었다. 황석영 작가는 아마 무슨 강연에서 문창과 출신 소설가들을 비판했거나, 문창과에서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비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역시 조선일보 답게 앞뒤 내용은 다 잘라먹고 그저 비판했다는 것만 툭 던져놓았다. 이런 류의 비판은 그 맥락이 가장 중요할텐데, 어떤 맥락에서 정확히 어떤 지점을 비판했는지를 알아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지만, 조선일보 기자는 조선이라는 쓰레기 언론에서 일하는 기자 답게 그런 기사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


암튼 아이는 그저 비판했다는 내용만 보고 화가 난 것 같았고,권혁웅 시인이 자신들, 그러니까 문창과 재학생들 편을 들어줬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좀 더 나눌 수 있었자면 좋았겠지만, 집에 갈 시간이 가까운 시점에 아이가 이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일단은 아이의 감정에 장단을 맞춰주면서, 자세한 내용은 알아보고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다.


검색해보니 조선일보 기사와 달리 연합뉴스 기사에는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황석영 작가가 말한 핵심은 이런 거라고 볼 수 있다. 문창과에서 공부하고 등단하는 소설가들을 보면 서사와 철학이 빠진 느낌이란 얘기였다. 문창과에서 글쓰기 기술은 잘 배웠는데, 경험이 부족해서 내용이 대부분 비슷하다는 얘기였다. 이런 정도의 비판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기도 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내용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정말 실제로 그런가? 문창과에서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단지 글쓰기 기술만 가르치고, 다른 것들은 가르치지 않는가? 젊은 혹은 최근 등단한 소설가들이 정말 글쓰기 기술만 좋고, 서사와 철학이 부족한가? 


황석영 작가 본인의 발언을 보면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한 작가가 워낙 많아 문학상 본선에 올라오는 작품이 모두 무난하고, 문장과 구성이 좋지만 작품들이 다 똑같다"면서 "이 때문에 신춘문예 심사를 하지 않은 지 1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고 기사에 나와 있다. 그가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본인은 10년 넘게 심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그냥 "다 똑같다" 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문창과 그러니까 문예창작과를 다녀보고 싶었었는데, 우리 학교에는 문창과가 없어서 국문과를 복수전공으로 공부했었다. 확실히 국문과 공부로는 소설 쓰기 공부를 할 수 없었다.한창 소설 습작을 하던 무렵에는 다른 학교 문창과 학생들과 교류를 제법 했었다. 그들의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라 느끼며, 나도 문창과를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 교류했던 문창과 재학생 한 사람 글을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암튼 황석영 작가의 강연 전체를 다 듣지 않은 입장에서 그냥 "비판했다."는 사실만 갖고 더 떠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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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6-04-14 0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석영 씨는 만나보기를 할 적에 문창과 이야기를 꽤 했습니다.
이 가운데 2007년치 한겨레 만나보기에서는 제법 찬찬히
‘왜 한국 문예창작과가 오히려 글쓰기를 망가뜨릴 수 있는가‘ 하고
풀어낸 대목이 있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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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씨 말씀)
“나이 든 사람의 노파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대개의 경우 작가가 되려고 하는데 글을 어떻게 쓰는지, 실질적으로 배우고 싶다 해서 문예창작과를 많이 갑니다. 문창과가 이렇게 많은 나라는 달리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문창과를 증오하는 건 아니지만, 참 좋지는 않은 게 어느정도 비슷하고 무난하게 구성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그런 훈련을 시키는 것 같아요. 이건 마치 미술대학에서 석고 데생을 많이 시켜서 비슷한 경향의 화가들을 양산하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렇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만의 표현으로 그리는 게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문학에서도 독특하게 자기 냄새가 나는 글이 필요합니다. 남과 달리 쓸 때 작가의 개성과 힘이 나타나는 거죠. 그렇게 본다면 저는 창작의 기본 같은 건 한 두세 달 정도 자습하면 되지 않나 싶어요. 지금 창작론이니 하는 기법을 다룬 책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그런 걸 한두 번 보면 됩니다. 왜냐하면 교육이란 건 결코 예술가에게 좋지 않거든요. 광범위한 독서와 체험이 젊은 작가들에게 중요한데 그 둘이 다 빠져 있지 않나 하는 염려가 드는 거죠. 그래서 젊은 작가들한테는 문학 이외의 다른 책들을 많이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또, 한창 젊을 때인데, 더구나 소설 쓰는 사람은 다양한 체험을 할 기회가 많다고 봅니다. 정치 하는 사람들도 심기일전 할 땐 현장에 가서 일하지 않습니까. 작가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는 거죠.

또 하나,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황석영이라든가 아무개라든가, 그동안 대중독자와 접촉했던 브랜드 있는 작가들 몇을 빼고 다른 작가들이 충분히 재능을 인정받고 살아남을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재능 있고 가능성 있는 작가들이 출판시장에서 기껏 5천부나 1만부 팔리다가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지면 일반 독자들은 그들을 다 놓쳐버린단 말이죠. 이걸 누가 제대로 소개하고 갈무리하고 정리해주고 할 것인가. 문학전문기자나 평론가들, 또는 문예지 편집진들 이런 사람들일 텐데, 이런 사람들 책임이 크다는 거죠. 가능성 있는 재능들을 발견해내고 독자에게 안내하려는 노력이 앞으로 더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0211513?sid=103

Comandante 2026-04-14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 나아질 수 있는 재능을 기성상품화 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황석영의 말에 공감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