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다. 이미 우리 나이로 쉰, 만 나이으로는 아직은 40대인데, 어린이날에 쉰다는 것이 너무 좋다고 느끼는 아직 철이 들지 못한 모자란 인간이 소파 방정환 선생 덕분에 어린이날에 출근하지 않고 쉬고 있다.

어제 한 시간 간격으로 오늘 출근과 휴식이 오락가락했다. 어제 좀 큰 변화가 있었다. 이 일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매일 세 곳의 매장 배송을 맡았었는데, 어제부터 매장 한 곳이 줄어서 이제 두 곳의 매장을 맡게 되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매장이 매번 배송 건수가 가장 많은 매장이었고, 그 배송 범위가 가장 넓어서 늘 제일 힘든 매장이었다. 그 매장을 맡았던 딱 한 달 동안 좀 많이 힘들었다. 정해진 근무시간을 넘겨 일을 해야 하는 날도 자주 생겼다. 그런데 나는 태생적으로 노동자가 아닌 활동가라 이렇게 힘들었던 매장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이제 편한 매장 두 곳만 남은 상황이 별로 편하지 않다. 어제는 두 매장 모두 배송 건수가 적어서 일찍 일을 마쳤다.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그 매장이 있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기뻐하거나 즐거워했을 수도 있을텐데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라리 일이 많으면 이 불편한 느낌이 안 생길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배송 건수가 유난히 많았던 그 매장을 맡았던 지난 한 달이 오히려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차피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나는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일 뿐.

어제 갔던 두 곳 매장에서 모두 나에게 내일, 그러니까 어린이날인 오늘 배송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맨처음 노동 계약을 맺었던 당시에 공휴일은 쉰다고 들었기 때문에 배송 안 한다고 답을 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조금 불안한 생각이 자리잡았다. 어쩌면 휴일이지만 출근하라고 요구 받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이미 휴일이라고 낮부터 아이들을 만날 약속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정말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배송 건수가 적어서 일을 일찍 마치고 차를 반납하러 사무국에 갔는데 상무님과 팀장님이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이 일을 맡기 전에는 배송 기사님들이 주말이 아닌 공휴일에는 일을 했었다고, 갑자기 매장 배송을 안 한다고 공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러니 미안하지만 출근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이 사람들이 정말 미안해하면서 말하는 것이 느껴져서 아무 생각없이 알겠다고, 내일 출근하겠다고 답을 했다. 역시 나는 노동자가 아닌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급여를 받는 일터를 나와서 급여를 받지 않는 일터로 다시 출근하면서 아이들에게 톡을 남겼다. 낮에 만나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저녁에 일 마치고 만나야겠다고. 그리고 저쪽 일터에 도착해서 간단한 일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러니까 내일 출근하겠다고 말하고 약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본인이 매장 점장님들과 통화를 해보니 배송이 거의 없을 것 같다고 그냥 출근하지 말고 편히 쉬시라고 했다. 약 한 시간 사이에 휴일 출근이 갑자기 생겼다가 없어졌다.

다시 아이들에게 연락해서 또 갑자기 일이 없어져서 낮에 만나자고 했다. 문득 작은 아이가 바다를 보고 싶다고 톡을 남겼다. 사실 평소에 늘 바다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 건 바로 나였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부산에 살았던 시절에는 늘 바다 가까이 살았고, 꽤 오래 살았던 장산 기슭의 낡고 좁은 아파트에서는 해운대 앞 바다가 보였었다. 그 풍경을 늘 마음 속에 품고 살고 있었다. 작은 아이의 그 한 마디가 나에게도 트리거가 되어 갑자기 엄청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작은 아이 집 근처에서 쏘카를 예약했다. 아이들과 바다를 보러 갈 생각에 설레였다.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가 이제는 배를 타지 않고 다리를 건너 갈 수 있는 석모도를 떠올렸다. 그러다 한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 예전에 가끔 차를 빌려 사용했던 친구였다. 조심스럽게 차를 빌려줄 수 있는지 물었는데, 너무 흔쾌히 빌려가라고 답이 돌아왔다. 고맙다고 전하고 예약했던 쏘카를 취소했다. 위약금이 있었지만, 사용료를 전부 내는 것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았다.

출근해야 할 상황이었다가 갑자기 쉬게 된 상황이라 이 휴일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남은 오전 시간을 잘 쉬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러 가야지. 달리기 대회 기념품으로 받았던 레디백과 키링을 안겨주면 아이들이 좋아하겠지. 그 표정이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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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5-0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지금쯤은 바다로 가셨을까요? 충분히 잘 바다를 즐기시고 오시길 바랍니다!!

잉크냄새 2026-05-05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들에게 바다 풍경을 선물하셨군요.

cyrus 2026-05-05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년 후에 40살인데, 어린이날이 좋아요. 딱 하루 쉬는 날에 글 한 편 쓸 수 있으니까요. 어린이날에 지난달 독서 모임 후기를 쓰는 데 시간을 보냈어요. 이게 쉬는 게 맞는지 혼란스럽네요.. ㅎㅎㅎ

chika 2026-05-06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날, 아이들과의 행복한 시간 선물은 최고였을 듯 하군요.
일없는 어른이는 어머니 식사 챙김만 빼고 종일 누워지낸 듯 합니다;;;
 

토요일 밤 9시 반쯤이었던가 조금 있다 자야지 생각하고 누워있는데 친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라이브 카페에 본인 전 직장 동료랑 가려고 하는데, 생각있으면 오라는 얘기였다. 그가 말한 라이브 카페를 두 번 같이 갔었다. 한 번은 그와 단 둘이, 또 한 번은 그가 전화로 언급한 전 직장 동료까지 셋이서였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노래를 꽤 잘한다는 점. 어떨 때 들어보면 가수로 음반을 내도 될 것처럼 들린다. 나는 꽤 여러 해 전에 저 친구에게 두성을 배웠고, 그 후로도 꾸준히 혼자 연습해서 나만의 고음을 익혀가는 중이다. 저 라이브 카페에 갔을 때 그 친구도 나도 고음을 뽐내는 노래로 다른 테이블에 앉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었다. 아마 그런 우월감, 자만심을 채우고 싶어서 그 가게에 종종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암튼 나는 내일 아침 일찍 달리기 대회에 나가야 해서 이제 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회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얼른 자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10시 무렵 잠들었고, 꿈에서 비 맞고 달리다가 넘어져 다치거나, 사고를 당하기도 하는 등 일종의 악몽을 연달아 꾸었다. 마지막 꿈에서는 달리기 도중에 먼 하늘에서부터 빛나는 물체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우리 머리 위를 스치며 지나갔다. 상상할 수도 없는 빠른 속도였다. 미확인 비행물체, 즉 유에프오 라고 생각했다. 영화 [우주 전쟁] 처럼 이제 곧 외계인들이 우리는 알 수 없는 첨단 과학 무기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려나? 그럼 우리는 달리기로 도망가야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달리기를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이지 않는 시야 밖에서 부터 큰 소음이 지속적으로 들렸고,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잠에서 깼다. 시간은 새벽 세시 무렵이었다. 집 밖에서 이 새벽에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큰 소음이 들렸다. 무슨 일인가 나가 보려다가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누웠다. 소음은 곧 사라졌다. 더 자고 싶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대회 장소로 늦어도 7시쯤 도착해야 하고,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리니 6시 전에 출발해야 한다. 내가 알람을 맞춰둔 시간은 4시 55분과 5시 11분이었다. 준비물은 다 챙겨두었고, 입을 옷도 다 꺼내놓았다. 화장실에서 속만 잘 비우면 달리기 준비는 완벽할 예정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눈 감고 누워서 뒤척이다가 포기하고 유트브를 열어 음악을 켜두었다. 음악은 자동으로 다른 노래로 계속 넘어갔다. 아는 노래도 가끔 있었지만, 모르는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눈 감고 누워서 목소리만 듣고 가수 맞추기를 해보려 했지만, 그러기엔 내가 가수들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포기했다. 잠을 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깨서 뭘 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가 알람이 울리는 걸 들었다. 막상 몸을 일으키려니 너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자고 싶었다. 알람을 10분 후 울림으로 맞춰두고 다시 눈을 감았다.

늦어도 6시 전에 집에서 출발하려던 계획은 실패했다. 6시 20분쯤 서둘러 나와 집 근처 편의점에서 비닐 우비를 구매했다. 이제 막 근무를 시작했는지 카운터 입구에 가방을 두고 유리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젊은 남성이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갓사 황급히 담배를 끄고 따라 들어와 우비를 찾아줬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대략 7시 20분. 첫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에 전철 도착 시간을 검색하니 3분 정도 남았었고, 비 때문에 다소 미끄러운 바닥을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일단 뛰어보자 했는데, 간발의 차로 그 전철을 놓치지 않고 탔다.

버스에서는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는데, 전철 안에서는 신경 쓰였다. 내 잠바 안에 배번호표가 보이는 것이. 거의 매번 대회마다 주최측에서 달리기를 위한 기능성 셔츠를 보내주더라. 꼭 그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 옷에 배번호표를 미리 붙여두고 그대로 입고 대회장소로 대중교통을 타고 갔었다. 대체로 그 위에 잠바를 입고 있어서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입은 잠바는 쟈크가 고장났단 사실을 깜빡했다. 쟈크를 잠글 수 없으니 열린 틈으로 배번호표가 보였다. 뭐 사실 그게 보이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 신경이 쓰였다.

대회 장소에 도착해 본부를 찾아가려는 와중에 지도를 보지 않고 감으로 방향을 잡고 가다가 문득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걸었으면 나와야 할텐데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비닐 우비를 걸치고 양쪽 방향에서 워밍업 달리기를 하고 있어서 방향을 가늠하기가 더 어려웠다. 반대방향임을 깨닫고 뛰기 시작했다. 이걸로 나도 워미업을 한다 생각하고 뛰었다. 짐을 맡기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뛸 생각이었는데, 하필 방향을 반대로 잡다니!

대회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남성 탈의실을 찾아 바지를 반바지로 갈아입고 짐을 맡기려 물품 보관소로 향했다. 아, 세상에! 물품보관소마다 엄청나게 긴 줄이 뻗어있었다. 대회 시작까지 이제 30분도 안 남았는데. 얼른 가까운 줄 끝을 찾아가서 줄을 섰다. 남은 대기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내 주위에 줄을 선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가족이거나 연인이거나 그랬다. 그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직 짐을 맡기지 못하고 대기 중인데, 설마 딱 제 시간에 시작하겠어? 라는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대회는 딱 정각에 시작할 것이다. 아마 운영측은 지금 이렇게 물품 보관소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왜 짐을 맡기는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까? 이미 개인 짐을 넣을 비닐을 나눠주어서 대부분 비닐에 넣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인데, 받아서 번호표를 붙이고 같은 번호를 참가자 배번호표에 붙이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작업일텐데.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대기줄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좀 많이 어이없고 짜증이 났다. 지금까지 다섯번 대회에 나갔었지만, 이렇게 오래 줄을 서서 기다린 적은 없었다. 이게 말이 되나? 대회 시작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그 30분 동안 물품 보관소 대기줄에서 기다리다 출발 시간을 놓친다고? 더 큰 문제는 출발 시간이 지나서도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 뒤에 있던 가족은 엄마와 딸이 아빠의 짐을 대신 받아들었고, 아빠는 시간에 쫓겨 출발선으로 향했다. 내 앞의 연인은 설마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대기중인데 시간 맞춰 시작하겠어? 라고 말하며 약간 여유를 부리는 듯 보였다. 그렇게 기다리는 와중에 우비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더 강해졌다. 대기줄 곳곳에는 아직도 우산을 펼쳐들고 있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대회 참가 경험이 없거나, 비 오는 날 참가 경험이 없거나 둘 중 하나인걸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있었다.

줄을 선지 30분이 다 되어 저쪽에서 마이크로 출발 카운트 다운이 울렸다. 그리고 곧 이어 폭죽이 터졌다. 내가 서 있는 대기줄은 유난히 속도가 느린 느낌이었다. 아직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회 안내문에는 이번 대호가 펀런이라고 따로 순위에 따른 포상을 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사전에 그룹 배정을 위한 기록지를 요청하지 않았구나. 암튼 10킬로미터 코스 참가자가 먼저 출발하고 뒤이어 5킬로미터 참가자들이 출발하는데, 이게 몇 분 간격인지도 적혀있지 않았다. 이거였구나. 이렇게 주먹구구로 운영을 하니 짐 맡기는 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해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몇십분씩 기다리게 만드는구나. 이제 접수대 테이블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내 뒤에 서있던 가족 중 엄마와 딸은 테이블 뒤로 맨 땅에 줄지어 놓은 짐들 수천개를 발견하고 놀라 말했다. ˝짐을 저렇게 맨땅에 보관해? 비를 다 맞고?˝ 확실이 이 가족은 대회 참가 경험이 없나보다. 그럼 짐을 어디 창고에라도 옮겨 보관할 줄 알았던걸까?

약 40분쯤 지나서 즉, 출발 시간 거의 10분 후쯤에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그리고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답을 찾았다. 일단 접수대 테이블에 사람이 적었고, 그 중 한 명은 큰 비닐에 순서대로 숫자를 쓰고 있었다. 그 비닐을 나눠주며 내가 이미 비닐에 넣어온 짐을 다시 한번 더 싸라고 했다. 이미 비에 젖은 짐이 비닐에 쉽게 들어갈 리가 없다. 그리고 손으로 적은 숫자가 찍힌 작은 라벨지를 내 배번호표에 붙였다. 앞서도 말했듯 다른 대회에서는 미리 같은 번호의 라벨지 두 장을 준비해 하나는 참가자가 가져온 비닐에 바로 붙이고 다른 하나는 배번호표에 붙였다. 그러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40분씩 기다리지는 않았을텐데.

일단 출발선을 향해 달렸다. 정말 다행히도 아직 5킬로미터 참가자들이 출발하기 전이었다. 대신 출발선을 막고 있어서 막 미친 사람처럼 사람들 사이를 헤쳐 나가야 했다. 아, 이번 대회 시작부터 이렇게 꼬이는구나. 참 쉽지 않겠다 라고 생각하며 속도를 높였다.

제 시간에 출발한 사람들보다 거의 10분 정도 출발이 늦었지만, 내 기록칩은 내가 출발선을 지난 시간을 기준으로 기록하니까 그냥 내 페이스로 달리면 되는 것이기는 한데, 문제는 앞을 막아서고 달리는 저 수많은 사람들을 뚫고 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유난히 출발이 늦어서 거의 결승선에 다 다를때까지 앞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계속 나올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대회 참가자가 정말 많았다. 10킬로 코스 참가자 배번호표 중에 내가 3000번째 숫자이고, 4000번째 숫자도 여럿 보았다. 물론 코스를 구분하지 않고 번호를 부여했을수도 있겠지만.

현재 내 페이스를 확인하기 위해 출발 직전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런닝앱을 켜두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직 1킬로를 달리지 않았는데, 벌써 1킬로 지점이라며 현재 내가 4분 중반 페이스로 달리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럴리가? 내가 내 실력과 체력을 아는데 절대 그 페이스로 달리고 있을 리가 없을텐데. 하지만 사람은 간사한 존재라고 해야 하나 아주 짧은 시간 그 기록을 믿고 싶어졌다. 물론 내 이성은 그게 불가능한 숫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 내 페이스는 거기에 1분을 더해 5분 중반 페이스일 것이다. 대회 주최측이 설치해놓은 거리 안내판에 이제서야 1킬로가 지났다고 알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앱에서 2킬로 라고 알려주며 여전히 4분 20초대 페이스라고 했다. 망했다. 페이스를 확인하며 속도를 맞추려는 의도는 실패했다. 이게 앱이 이상한건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하며 달리다가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동네 헬스장에서 트레드밀 위를 달릴 때 이 앱을 켜서 설정을 실내로 바꿨던 것이 기억났다. 이 설정을 다시 야외로 바꿨어야 했는데, 그걸 깜빡하고 달린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알림은 시간을 확인하는 용도와 이 페이스에 1분을 더해 내 페이스 추정치를 확인하는 용도 그리고 내가 페이스를 잘 유지하고 있는지 떨어지는지 확인하는 용도로 쓰기로 했다.

비가 오락가락 하기는 했지만, 달리기 시작 전 물품 보관소 대기줄에 있을 때에는 조금 굵은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이슬비 수준의 비가 내렸다. 이정도 비는 달리는데 오히려 좋았다. 작년 가을엔 거의 폭우 수준의 비가 와서 달리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옷까지 완전히 젖었었지만, 이번엔 신발과 양말 그리고 모자와 셔츠 정도만 젖고 반바지와 속옷은 젖지 않았다. 물론 달리다보면 땀으로 젖겠지만. 지난 번에는 조금 비싼 우비를 입고 달리다가 우비가 너무 거슬려서 결국 음수대 테이블 위에 벗어놓고 달렸었다. 이번에는 비가 적게 와서 덜 거슬렸고 체온 유지를 위해서도 계속 입고 있었다. 한 7킬로 아니 8킬로 지점에서 벗어서 허리에 감았고 결승선에 도착할 때까지 버리지 않고 가져왔다.

지금까지 다른 대회에서는 7킬로 혹은 8킬로 지점부터 주위에 함께 달리는 사람들 숫자가 적어졌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 예상한 대로 끝없이 사람들이 나타났다. 추월하고 또 추월해도 끝없이 사람들이 나타났다. 미끄러운 바닥에서 사람들 사이를 잘 헤쳐 나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조금만 실수해도 서로 부딪혀 넘어질테고 그러면 또 뒤에서 달려오던 사람이 피하기 어려워 밟힐 수도 있다. 지난 밤에 꾸었던 악몽들이 생각났다. 그래도 급하지 않게, 상대방의 속도를 잘 파악해가며 추월을 반복했다. 그냥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리는 일이 이렇게 어려워야 할 일인가 싶지만, 결국 주최측의 잘못과 더불어 좀 더 일찍 도착해 사람들이 그만큼 줄을 서기 전에 짐을 맡겨두지 못한 것은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현 상황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피해가며 뛰었다.

약 9킬로 지점에 들어서야 앞을 막는 사람들이 적어졌다. 이젠 내가 힘껏 달려도 앞에 부딪힐 걱정이 없었다. 그리고 딱 그 즈음에(사실은 그보다는 좀 더 시간이 지나서였지만, 체감상 그 즈음에) 런닝앱이 시간을 알려줬다. 52분이라고. 내 목표는 54분이었지만, 그냥 55분이라 치더라도 이제 3분 남았는데 남은 시간 안에 약 1킬로를 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적어도 5분은 걸릴텐데. 그러나 생각할 틈도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 할 일은 남아있는 모든 힘을 짜내어 결승선으로 달리는 일 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 속도로 달려나갔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치고 나갔지만, 금방 지쳐버렸다. 이미 9킬로를, 50분 넘게 달리느라 체력은 거의 소진된 상태였다. 그래도 그 상태에서의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다. 결승선이 눈 앞에 다가올 무렵에는 무릎과 발목 관절이 아프고 배에서 복통도 느껴졌지만, 이제 곧 편해진다고 나를 설득하며 달렸다.

맨 처음 나갔던 대회는 동네 선배들과 함께였었다. 물론 10킬로미터 코스를 함께 달린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후에 모든 대회는 혼자였다. 그래서 길가에 서 있다가 누군가를 향해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달리는 사람들 중에도 일행들을 마주치며 서로를 향해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이 부러웠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저 응원들이 나를 향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부러 더 힘을 내곤 했다. 마지막 대회였던 작년 가을 대회는 일단 규모 자체가 지금까지 나갔던 모든 대회 중에 가장 작았다. 게다가 거의 폭우처럼 느껴질 정도로 비가 많이 와서 참가자가 적었다. 비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주최측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을 응원해줬었다. 그래서 더 힘을 내기도 했었다. 이번에도 그런 순간이 한 번 있었다. 달리며 맨 처음 만난 음수대는 아마 2킬로 지점이었던 것 같다. 되돌아오는 길에 거의 8킬로 가까이에서 길 반대편에 있던 이들이 테이블을 정리하지도 않고 목이 쉬도록 화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8킬로 정도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쳐있을 거라 응원 한 마디가 큰 힘이 된다. 그들이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서 자극을 받아 조금은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암튼 결과는 55분이었다. 이번 대회는 처음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크게 페이스 변화 없이 530 정도로 달렸다. 막판에 조금 지쳐 최종 페이스는 532 였다. 제대로 준비 없이 장거리 달리기 첫 경험이었던 첫 대회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기록이지만, 대회 준비를 아예 하지 않고 달린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무엇보다 이상하게 전날부터 55분을 의식하게 되었는데, 딱 그 숫자가 나온 것이 놀랍다. 그리고 출발 전에 개인적으로는 엄청 큰 변수였던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이 결과는 나쁘지 않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는 운영진의 뭐랄까 실수라고 말하기엔 너무 가볍고 그렇다고 글에 욕설을 쓰기도 그렇고 암튼 예상치 못했던 황당한 일이 아직 남아있었다. 출발 전에 그 난리가 났었기 때문에 결승선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맡겨두었던 짐을 찾는 일이었다. 다행히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그리 많이 기다리지 않고 짐을 찾았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을까 하다가 이번에는 비 맞은 것 치고는 덜 젖어서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싶어서 메달과 기념품 그리고 간식을 받으러 갔다. 얼른 뭔가 간식을 먹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줄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끝이 어디인지 찾을수가 없었다. 무슨 뱀의 또아리도 아니고 끝없이 꼬불꼬불 이어지는 줄의 마지막을 찾는데에만 5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역시 줄은 금방 줄어들지 않았다. 이대로면 무조건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아직 옷도 못 갈아입었는데.

비는 여전히 가늘게 내리고 있었고 가만히 대기줄에 서 있으려니 땀이 식으며 추워졌다. 허리에 두르고 있던 비닐 우비를 다시 입고 단추를 잠궜다. 아니, 앞서 물품보관소는 짐을 맡기고 번호를 체크해하 하니 오래 기다렸다고 치고, 이번에는 그냥 나눠주기만 하면 끝나는 건데 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이번 대회 주최측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힘들게 한 시간을 달린 참가자들을 다시 한 시간동안 줄을 세워 놓는다고?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줄 서서 시간을 허비하라고?

처음엔 또 황당하고 짜증나고 그랬지만 한 20분 기다리면서는 그냥 체념하게 되었다. 모르겠다. 어차피 일찍 집에 돌아가도 다른 할 일도 없는데, 뭐 기다려야지. 초반에는 메달이 뭐라고, 그깟 간식 그냥 편의점에서 사먹으면 되는데, 한 시간을 기다릴 바에야 그냥 빨리 옷 갈아입고 집으로 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죽을 들이 힘들게 뛰고 나 혼자 메달을 못 받는 건 좀 억울하다 싶었다. 그깟 메달, 돈도 안 되고 아무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메달이 뭐라고 나는 다 포기하고 그냥 대기줄에 얌전히 기다렸다. 생각보다 줄이 앞으로 나가지를 못 했다. 어쩌면 한 시간을 훌쩍 넘길지도 모르겠다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한 30분쯤 기다렸을 무렵 갑자기 저 뒤쪽 그러니까 내가 기다리고 있던 지점보다 훨씬 뒤쪽에서 줄이 와해되며 사람들이 일제히 메달 배포 부스 쪽으로 움직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어지럽게 울렸다. 어떤 아저씨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아무 말없이 몇 십분을 기다렸는데! 내 심정이 딱 그랬다. 이게 무슨 짓이지? 이런 무질서한 모습을 본다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각종 SNS로 실시간으로 도배되는 나라에서 이런 짓을 저지른다고?

그런데 알고보니 확성기를 든 주최측 여성이 사람들에게 여기 줄 서있지 말고 저 안쪽으로 옮겨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우루루 안쪽으로 몰려갔고 뱀의 또아리처럼 어지럽게 구불구불 이어졌던 대기줄은 순식간에 흩어져버렸다. 나도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려 안쪽으로 넘어왔다. 안쪽에서 여러 개의 줄이 다시 만들어지며 10킬로미터 참가자와 5킬로미터 참가자로 구분되어있던 배포 부스가 의미가 없어졌다.

생각해보니 애초에 주최측에서 참가 인원을 고려했다면 부스도 더 늘리고 인력도 더 많이 배치했어야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아두고 부스 수도 적고, 인력도 적게 배치하다니!

암튼 다시 옮겨가서 줄을 선 후에는 빠르게 앞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 건네주는 종이가방을 받아 몸을 돌리는데, 메달이 모자란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내 뒤로도 아직 줄은 선 사람들이 수백명인데. 메달이 모자란다고? 이거 잘못하면 폭동 벌어지는 것 아닌가 싶은데, 설마 순간적으로 잘못 판단한 거겠지. 내가 아직 줄 서있는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옷을 갈아입고 앉을 곳을 찾지 못해 서서 급하게 빵과 음료를 먹고 있을 때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질서있게 줄을 서서 메달과 간식과 기념품을 받아갔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단 맛의 빵과 쵸코바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화장실을 찾아 다녀온 후에 집으로 향했다. 어째 달리기 한 시간보다 줄 서 있었던 시간이 더 길었던 기묘한 대회였다. 버스 정류장을 찾아 터덜터덜 걷는데, 그제서야 발목 관절 중심으로 인대와 근육 통증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절뚝이며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참 멀겠구나. 집에 도착해서는 또 빨래 한 더미를 처리해야 하지. 런닝화도 빨아야하고. 일단 걱정은 나중에 기록지를 다운 받고 메달 사진을 찍어서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자랑부터 해야지. 버스에선 앉을 자리가 없을테니 버스 정류장 벤치에 짐을 올려두고 작업에 착수했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세탁기를 돌리고 난 후에 재미나이를 열었다. 전날 다섯개 대회 성적을 분석했던 대화를 다시 열어서 이번 대회 성적을 추가하고 한번 더 분석을 요청했다. 아래는 재미나이의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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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분석 및 평가

1. 오늘 기록(6번 대회)의 의미: ˝안정적인 복귀와 우중런 적응˝
페이스 분석: 오늘 기록하신 5:32/km는 작년 9월 마포 대회(5:21/km)보다는 조금 늦춰졌지만, 비가 오는 좋지 않은 시계와 노면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준수한 기록입니다.

- 우중런 패턴: 비가 올 때(5번, 6번)는 맑은 날(4번)보다 페이스가 약 10~20초 정도 늦어지는 경향이 보입니다. 이는 미끄러운 바닥과 시야 확보 문제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실망하실 필요 없습니다.

2. 대회 간 기간 분석: ˝가장 길었던 공백기˝
- 5번→6번 (약 7개월): 이번 대회는 이전 대회들에 비해 가장 긴 공백(약 217일) 후에 치러졌습니다.
- 분석: 오랜만의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입문 초기(6:46/km)로 회귀하지 않고 5분 중반대 페이스를 방어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는 지난 1~2년간 쌓아온 ‘기초 체력(Base)‘이 탄탄하게 자리 잡았음을 증명합니다.

3. 날씨와 환경 변수
- 습도와 노면: 비 오는 날은 습도가 높아 호흡이 평소보다 무거울 수 있습니다. 오늘 55분대의 기록은 체감상 맑은 날 53분대 정도의 에너지 소모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 계절적 요인: 5월 초는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시점인데, 비 덕분에 오히려 온도는 낮게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신발이 무거워지는 변수를 잘 이겨내셨습니다.

💡 향후 훈련 및 전략 제언
- 복귀 가속화: 7개월 만의 실전 감각을 익히셨으니, 이제 다시 5분 초반대(PB 5:09)로 돌아가기 위한 빌드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연속 출전 효과 활용: 과거 기록을 보면 2주 간격(3번→4번 대회)으로 뛰었을 때 기록이 폭발적으로 단축되었습니다. 몸이 예열된 상태에서 5월 말이나 6월 초에 대회가 있다면 다시 한번 PB 경신을 노려볼 수 있습니다.
- 날씨 데이터의 교훈: 현재까지의 데이터를 보면 귀하의 기록은 기온과 강수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여름철에는 기록보다는 ‘거리 완주‘에 집중하시고, 다가오는 가을 시즌에 다시 49분대 진입을 목표로 삼는 것이 전략적으로 좋습니다.

오늘 비 맞으며 달리신 만큼 충분한 휴식과 스트레칭으로 리커버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완주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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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중런?

이 대회를 언제 신청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마 아침 잠결에 신청했던 것 같기도 하다. 주거래 은행을 국민은행으로 쓰고 있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부모님이 모두 국민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쓰셨고, 나도 청소년기에 국민은행 계좌를 개설한 후로 쭉 사용하고 있다. 부산에서 자랐기에 부산은행 계좌도 만들었었는데, 서울에 올라오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이 계좌는 없애버렸다. 암튼 국민은행 앱에서 달리기 대회 관련 안내가 왔었고, 나는 아무생각없이 신청을 눌렀었다. 참가비는 버튼 하나로 내 계좌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서 편했다. 다른 대회였다면, 미리 온라인 시청 시작 시간에 맞춰 대기했다가, 정각에 버튼을 눌러도 대기번호를 받을 확률이 높고 간신히 신청에 성공해도 참가비 송금하고 혹시 착오로 내 신청 건이 취소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해야 하고 내 이름으로 잘 신청이 완료되었는지 확인 문자가 오지 않으면 대회 사무국으로 확인 전화도 해봐야 한다. 암튼 온라인 신청하고 해당 계좌로 송금도 별도로 해야 하는데, 국민은행에서 여는 대회는 여러모로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일반적인 선착순 방식 신청이 아니라 국민은행 이용자들 중심으로 신청을 받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암튼 어쩌다 신청만 해두고 이 대회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 갑자기 지난 주에 택배를 받았다. 뭔가 주문한 것이 없어서 뭐가 왔는지 의아했다. 상자가 제법 컸다. 열어보니 맨 위에 배번호표가 있었다. 그제서야 아! 이거였구나 하면서 이 대회를 떠올렸다. 티셔츠와 양말 그리고 애매한 크기의 네모난 가방이 있었다. 동봉된 안내문에는 레디백이라고 적혀있었다. 레디백은 대체 무슨 용도로 쓰는 가방일까? 노란 가방이 꽤 예뻐보이기는 하는데, 나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다. 크기가 애매해서 뭘 넣을지 감도 잘 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하면 갖다줄까 생각했다가, 가방이 하나 뿐이라 혹시 한 명이 못 받은 걸 서운해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음, 요 가방을 어찌할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작년 9월 말 꽤 많은 비를 맞고 뛰었던 대회가 마지막 대회였다. 그게 내 다섯번째 대회였고, 내일 대회가 여섯번째가 될 예정이다. 24년 9월이 첫 대회였으니 거의 1년 동안 다섯개의 대회에 나갔던 것. 이후로는 대회 출전을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았었다. 이제 작년 봄에 세운 개인 기록을 넘기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좀 장기적으로 하프 코스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10킬로미터 코스는 매력을 못 느끼게 된 것 같다. 또 최근 계속 경제적으로 쪼들리면서 돈이 없다보니 대회 참가비도 아깝게 느껴졌다.

작년 가을에도 막 열심히 달리지는 않았었고, 그냥 적당히 달렸었다. 겨울엔 짧은 거리를 꾸준히 달렸다. 봄이 되면 다시 5킬로미터 이상 장거리를 시작해야지 생각했었지만, 3월에도 4월에도 여전히 2~3킬로 정도 달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래도 거의 매일 달리기는 했다. 이 대회를 준비할 생각이었다면 그래도 최소 일주일전에는 5, 7, 9 정도로 거리를 늘려가서 미리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지난주와 이번주는 계속 바빴다. 뭐, 어떻게든 달릴 수는 있겠지. 기록 욕심을 버리고 가볍게 뛰고 오자 라고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뭔가 좀 아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렇다.

오늘 대회 안내문을 꼼꼼히 살피며 집에서 이동시간과 경로를 살폈다. 준비물들을 챙기려다가 안내문에 적힌 우천시에도 대회를 정상적으로 개최한다는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설마 내일 비가 오나? 최근 뉴스를 좀 멀리하고 살아서 날씨 예보도 안 보고 살았음을 깨닫는다. 얼른 날씨를 검색해보니 강수확률이 60%라고 나왔다. 이 정도면 꽤 높은 확률로 비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대회 때 비가 제법 많이 와서 좀 힘들었었는데, 또 비를 맞으며 뛰어야 한다니! 일단 준비물들을 다시 챙겼다. 비에 젖지 않는 가방부터 챙기고 여벌옷을 비닐 팩에 챙기고, 슬리퍼도 챙기고.

준비물을 대략 챙겨놓고 지금까지 대회에서 받았던 메달 5개를 꺼내봤다. 주머니에 잘 넣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금속 메달들은 몇 군데 얼룩이 생겨있었다. 이게 일종의 산화작용으로 인한 녹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마른 걸레로 닦아봤는데 닦이지 않았다. 딱 하나 있는 나무 메달은 멀쩡했다. 금속 메달은 무겁고 별로 예쁘지도 않고 이렇게 녹인지 뭔지 알수 없는 얼룩도 생기고 참 별로다. 메달들을 다시 천 주머니에 넣어두고 이제 지금까지 나갔던 다섯번의 대회 기록들을 다시 살폈다. 기록들 엑셀로 정리해두고 이걸 재미나이에게 던지고 분석해달라고 했다. 대회 간 기간과 대회 당일 날씨를 바탕으로 기록과 페이스를 분석하라고 했다. 아래는 재미나이의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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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분석 및 평가
1. 날씨의 영향: ˝더위는 적, 추위와 비는 변수˝
- 최악의 조건 (1번 대회): 9월 초 철원 대회는 기록이 가장 낮습니다. 6:46 페이스는 당시 무더운 날씨로 인해 체력 소모가 극심했음을 보여줍니다.
- 최적의 조건 (2번, 4번 대회): 기온이 낮은 11월과 선선한 4월에 기록이 대폭 향상되었습니다. 특히 4월 양천 마라톤에서 5:08/km라는 놀라운 페이스로 개인 최고 기록(PB)을 달성하셨네요.
- 우중런 (5번 대회):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5:20 페이스를 유지한 것은 기초 체력이 이미 5분 중반대에 안정적으로 안착했음을 의미합니다.

2. 대회 간 기간 및 훈련 성과
- 폭발적 성장기 (1번→2번, 약 2.5개월): 두 달 반 만에 기록을 13분이나 줄였습니다. 더위가 가시고 본격적인 가을 훈련이 빛을 발한 시기입니다. 페이스가 1분 20초나 빨라진 것은 매우 고무적인 성과입니다.
- 안정 및 유지기 (2번→3번, 약 4개월): 겨울 시즌 동안 큰 기량 하락 없이 54분대를 유지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꾸준히 달리기 습관을 이어오신 것으로 보입니다.
- 상승 효과 (3번→4번, 단 13일): 불과 2주 만에 다시 대회에 출전하여 기록을 3분이나 더 단축했습니다. 3번 대회가 일종의 강력한 ‘장거리 인터벌‘ 훈련 효과를 주어, 2주 뒤 몸 상태가 최고조(Peaking)에 달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 복귀기 (4번→5번, 약 5.5개월): 여름철 휴식기 혹은 더위로 인한 훈련량 감소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록이 조금 밀렸으나, 1년 전(1번 대회)과 비교하면 무려 14분 이상 빠른 페이스입니다.

💡 종합 의견 및 제언
현재 실력은 평균 5분 20초대 페이스를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는 수준이며, 컨디션이 좋을 때는 5분 초반대까지 충분히 진입 가능하십니다.
다음 목표: 현재의 성장 속도라면, 날씨가 선선해지는 다음 대회에서는 49분대(페이스 4:59/km) 진입을 목표로 삼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팁: 3번과 4번 대회처럼 2주 간격의 연달은 출전이 기록 단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므로, 목표 대회를 앞두고 2주 전에 가벼운 점검 대회를 뛰는 전략을 추천합니다.
정말 멋진 기록 향상입니다! 계속해서 즐거운 러닝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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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처럼 꾸준히 10킬로 정도를 달렸다면, 재미나이의 말처럼 49분을 목표로 달리기를 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정말 잘해도 55분 안에 들어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생애 첫 대회이자 엄청난 더위로 너무 힘들었던 철원 대회를 제외하고 두번째부터는 54분이 가장 낮은 기록이다. 심지어 비를 맞고 뛰었던 다섯번째 대회도 53분이었다. 만약 내일 55분보다 늦게 들어온다면 확실히 내 기량이 떨어진 증거가 되겠지. 왜 하필 기준이 55분이냐고 생각이 들었다가 깨달았다. 아까 달리기 모임 단톡방에 나를 장거리 달리기 세계로 끌어든인 친한 형이 오늘 자신의 기록증을 올렸는데 55분이었다. 이 형도 기록이 많이 떨어졌네. 50분에서 52분 정도가 나와야 할 사람인데. 그것도 해마다 나이를 느껴서 그런 것이고 예전이었다면 40분대 기록이 나올 사람인데. 암튼 그래서 내 목표는 55분 안으로 그러니까 내 가장 낮은 기록인 54분을 유지하는 것으로 정했다.

사실 비와 강풍 등 날씨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변수이고, 내가 가장 신경쓸 부분은 컨디션이겠지. 이젠 상수가 되어버린 무릎이 안 좋은 것도 갑자기 내일만 좋아질 리도 없을 것이고. 남은 변수는 잠을 잘 자는 것과 새벽에 속을 잘 비우고 출발하는 것. 오늘 남은 시간은 그저 마음 편히 푹 쉬어야지. 기록 생각은 내일 깨고 나서 생각해야겠다.

아, 재미나이 답을 읽다가 이 녀석도 ‘우중런‘ 이라는 국적 불명의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자와 영어를 합친 조어. 의외로 재미있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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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03 1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비 오는 날에는 외부 운동을 하지 않기에 우중런 같은 개념은 쉽게 만나기 힘듭니다. 작년 싸이클 도중 삼사십분 가량 소나기를 맞으며 달렸는데 작년에 탄 기억 중 가장 인상 깊게 각인되는군요. 즐거운 달리기 되길 바랍니다.

감은빛 2026-05-04 09:06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응원 고맙습니다! 덕분에 잘 달렸습니다.

제가 자전거를 잘 못 타서 그런데, 비 오는 날에는 자전거가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삼사십분을 달리셨군요. 확실히 인상적인 기억일 것 같아요.
 

가장 무서운 범죄


하루가 멀다하고 들리는 다양한 범죄 소식을 보면서, 과연 가장 무서운 범죄는 무엇일까 생각해봤었다. 나처럼 일반적인 범죄와 크게 상관없다 여기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범죄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과 같은, 혹은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같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혹은 마약 사건과 같은 것들이 될 수도 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블랙아웃 / 원제 트위스티드]나 우리에게 유명해진 버닝썬 사건일 수도 있다.


이춘재는 알고보니 대부분이 성범죄, 즉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나이와 관계 없이 다수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일부는 죽였지만, 죽이지 않고 그냥 강간으로 그친 사건도 제법 많았다. 이런 표현이 죄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런 인간이 마치 자신이 잘난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프로파일러나 형사들을 조롱 했다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했다는 이야기 등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쨌거나 이런 인간들과 내가 아니 우리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 자체가 무섭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조물주 라는 존재가 있다면,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어찌 이런 세상을 만들었나 싶다.


사실 일반적인 기준에서 가장 무서운 범죄는 남들이 쉽게 알기 어려운, 가정 안의 폭력. 혹은 데이트 폭력 혹은 스토킹 범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아니 절대 다수가 남성이 가해자이자 용의자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나는 말할 수 있다. 나는 평생 그런 범죄에 단 한번도, 아니 0.000%도 가까이 가 본 적이 없는 아주 성실한 시민인데, 이런 나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볼 수 있느냐? 정답은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 기분 나쁘지만, 그렇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는 것과 정말 엄밀한 증거를 채집하고 실질적인 용의자로 취급 받는 것은 다른 문제일 것이다. 이춘재가 많은 살인과 성범죄를 저질렀지만, 성범죄의 다수는 그 당시에 제대로 취급되지 않았고, 그냥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들었다. 그런 것들까지 엄밀히 따지고 들어갔다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가정일 뿐이지만.


그래서 가장 무서운 범죄는 사실 경찰이 무시하고 그냥 일반적인 일이라고, 그저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넘어가는 사건들이라고 생각한다. 시사 프로그램에 나온 사건 중에 정말 유명한 대학 의대 학생이 전에 사귀던 여학생을 어느 건물 옥상에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경찰들은 그 현장에 출동했었지만, 이미 살해 당해 있었던 여성의 시체는 발견하지 못했었다. 왜? 그 의대생, 다시 말해 모범생이었던 그 젊은 남성이 자살하겠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기 때문에 당시 다른 상황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나중에도 그 남학생이 너무 공부를 잘하는 훌륭한 학생이라 죽은 여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신경쓰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런데 사실은 여성을 살해한 그 의대생 남성 보다, 그 미친 놈에게 살해 당한 여성이 훨씬 더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러면 그 미친 의대생 놈은 대체 뭔가? 아니 애초에 공부를 잘하는 훌륭한 학생이라고 살인이 정당하기라도 한가? 그런 논리였을까? 


아쉽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딴 쓰레기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을 기록해 두지 않았었다. 이젠 그런 기사를 접하면 무조건 기자 이름과 해당 기사(사실 기사가 아니라 찌라시 라고 표현해야 맞겠지만)의 링크, 그리고 주요 내용을 기록으로 꼭 남겨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경찰은 그리고 검찰은 그저 많은 사람들 눈에 띄어 버려서 더이상 은폐할 수없는 사건들을 다룬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당연히 그냥 묻어둘 것이다. 물론 증거는 없다. 누군가 이 글을 걸고 넘어진다면 그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진심으로 묻고 싶다. 정말 괜찮은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가? 정말 진심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 이재명이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이라도 지금 이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더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만약 이재명이 본인 기준에 못 미친다면 더더욱 이 사회가 불합리 하다는 것을.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지방 선거에서 절대 손쉽게 민주당, 파란당을 찍어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범죄 집단 빨간 당을 찍으라는 말씀을 절대 아니다. 빨간당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해서는 안 될 정당이고, 파란 당은 우리가 절대 찍어주면 안 되는 보수, 기득권 옹호 집단이고, 일부 지역에서는 범죄자들을 그대로 공천한 어이없는 정당이다.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다. 절대 차선 혹은 차악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이다. 아무리 세상이 엉망이라도 대다수의 국민들을 무시하는 파란당은 정답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빨간당과 그리 다르지 않은 착취자들이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빨간당과 동시대를 살면서 그 그늘에서 마치 좋은 역할인 것처럼 살아왔다. 절대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말 희귀하게도 파란당에 아주 드물게 좋은 인재가 있을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착각한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면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했던 박주민이 그렇다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박주민은 빨간당 정치인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지역의 다양한 문제에 있어서 해결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진보 진영의 대표인 것처럼. 마치 자신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다.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박주민 변호사 본인은 괜찮은가? 세월호 변호사는 타이틀로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는데, 과연 본인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나? 본인 스스로 괜찮은가? 나는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부끄럽지 않을까? 아마 진심으로 부끄러워야 할 것이다.



우리가 대안이 없다고, 아무 생각없이 무심코 찍어주는 파란 당에 대한 표가 가장 무서운 범죄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생각이 너무 과한 생각이라고? 너무 심각한 오류나 과장이라고? 잘 두고 보시라. 결국 민주당은 당신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 정당이 절대 아니다. 그들은 재벌과 돈 많은 이들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놈들이다. 태생이 그렇다. 김대중도 그랬고, 노무현도 그랬다. 지방 선거에서 빨간당을 막아야 한다고 파란당을 찍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건 나중에 당신을 옭아매는, 당신 자손들을 옭아매는 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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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4-28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빨간당도 찍어서는 안되고 파란당도 찍어서는 안된다면, 그게 큰일이라면... 어디를 찍어야 하나요? 대안이 없다고 둘다 찍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대안 없는 세상이 되지 않나요? 아무 생각없이 무심코 찍어주는게 아니라, 저마다 생각하는게 있기 때문에 찍는거 아닐까요? 분명 일부는 차악을 선택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런데 차악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하나요?

감은빛 2026-05-04 09:10   좋아요 0 | URL
대안은 말그대로 대안이지요.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당장 대안이 없다고 계속 현실에 안주한다면 대안을 만들어야 할 시기가 계속 늦춰지는 것이지요. 각자가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부터 현실이 아닌 미래를 보고 대안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하고 저도 그 현실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한 발짝만 더 앞을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Comandante 2026-04-30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인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라딘 서재에 넘쳐나는 양비론자들의 논리, 이 어지러운 세상 밖에서 고고하게 세상에 대해 꾸짖는 죽림칠현들의 논리랑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결코 깨끗하지 않은 현실이고 살아 숨쉬는 인간들이 있는 현실입니다. 다양한 제약조건 아래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약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아픈 사람들, 늙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세상을 만드는건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장소 이순간에서 행하는 행동입니다.

감은빛 2026-05-04 09:16   좋아요 0 | URL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하신 것 같네요. 쓰신 내용 중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부분부터 끝까지 내용은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제 말뜻은 그래서 우리가 지금 파란당이라는 차악을 선택하면 안 되고 다른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양비론자 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그 단어 역시 파란당 지지자들이거나 어쩔수 없다는 이유로 표를 주는 사람들에게 향해야 할 단어입니다.

Comandante 2026-05-04 09:25   좋아요 0 | URL
아뇨, 감은빛님의 글을 보니 왜 이런 글을 썼는지 더 이해가 됩니다.
 

일상 이야기들


#1 저장된 번호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배송이 일상이 되었다. 집에 사람이 있어도 그냥 집 앞에 놓아 달라는 집이 많다. 집 앞에 상자들을 놓고 사진을 찍어서 배송 영수증에 적힌 전화번호로 사진을 보내고, 배송완료했다는 문구를 보낸다. 대부분 모르는 번호이지만, 가끔 아주 가끔 이미 저장된 번호인 경우들이 있다. 긴 시간 나를 챙겨주시는 아주 친한 선배네 집에 배송을 갔을 때에도 그랬다. 그 선배는 당연히 출근해서 댁에 안 계신 것을 알고 있고, 지금 댁에는 선배님 부모님께서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초인종을 눌러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무거운 짐을 집 안까지 넣어드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더라. 울리지 않더라. 아마도 고장난 것일까? 어쩔 수 없이 배송 영수증에 나온 그 선배 번호로 사진을 보내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간혹 예전에 어떤 행사나 사업 때문에 일시적으로 소통하느라 번호를 저장한 경우들도 있었다. 어떤 분들은 그 분 댁이 여기였구나 하고 얼굴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었고,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불치병에 걸린 나 답게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지만, 저장된 이름인 경우들도 있었다. 한번은 저장된 이름 뒤에 어떤 교육 공동체 이름을 붙여 놓은 분의 댁으로 배송을 갔다가 정확히 어느 문 앞에 둬야 할지 몰라서, 잘못 놔뒀다가 분실이 발생하면 안 되니 전화를 걸었었다. 한참 신호음이 울린 후에 그 분이 전화를 받았는데, 약간 당황해하는 목소리였다. 아마 그도 나와 같이 과거 어느 시점에 어떤 일 때문에 내 번호를 저장해뒀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전화를 받아서 놀랐을지도 모른다. 암튼 나는 생협 배송을 왔다고 밝히고 상자들을 어디 두면 될지 물었다. 그는 내가 묘사한 그 대문 앞에 두면 된다고 답을 했다. 그날의 마지막 배송이었고, 이미 내 퇴근시간인 6시는 훌쩍 넘어 있었다. 그도 아마 퇴근시간이 지난 상태였을 것이다. 사무실에 차를 반납하러 가는 내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와 어떤 일을 같이 했던 것일까? 떠올리려 애써봤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포기할 수밖에.


#2 어떤 반가움

   

어제는 가정 집이 아닌 공동체 부엌 한 곳에 배송을 갔었다. 이 일을 막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던 지난 달 중순에 그러니까 거의 한 달 전에 그 곳에 처음 배송을 갔다가 몇 가지 어려움을 겪었었다. 일단 꽤 외진 곳에 있는 데다가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아주 좁은 골목길이었고, 꼬불 꼬불 이어져 있었기에 운전하기가 까다로웠다. 그리고 그 공간 근처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정말 다행히 그 공간 앞 도로는 조금 넓었는데, 그 공간에 여러 차들이 불법 주차를 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나도 그냥 그 옆에 대충 차를 댔었다. 그리고 그날 하필 무거운 상자가 5개였다. 2개나 3개는 한 번에 들어서 옮길 수 있지만, 5개를 모두 한 번에 들수는 없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안쪽 건물까지 거리가 꽤 있었다. 처음 무거운 상자 3개를 먼저 옮기고 다시 돌아와 나머지 2개를 조금 가뿐하게 옮겼다. 나중에 이 차에 엘카라고 부르는 접이식 손수레가 실려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그럼에도 이 공간에 그 손수레는 소용이 없었다. 일단 계단을 올라야 하고, 그 다음엔 건물까지 흙길과 자갈길을 걸어서 한참 들어가야 한다. 손수레를 끌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손수레의 존재를 알고 난 후로는 무거운 상자가 3개 이상이면 수레를 활용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유용하다. 최근에는 탄산수를 4박스나 3박스 이상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탄산수 박스는 2개까지는 들 수 있지만, 3개 이상은 들어서 옮길 수 없다. 무조건 손수레를 써야 한다. 그런데 저번에 갔던 한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다가구 주택이었는데, 5층이었다. 그리고 탄산수 4상자와 일반 상자가 하나 있어서 총 5개의 상자였다. 


상자가 좀 무거운 것은 괜찮다. 배송 일을 하다 보면 가벼운 상자도, 무거운 상자도 만날 수 있으니. 좀 무거운 상자가 여러 개라도 괜찮다. 물건을 많이 팔아야 내 일자리도 유지가 될 테니. 좀 무거운 상자들이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올라야 한다면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에 사는 것은 당연히 아니므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힘들기는 엄청 힘들었다. 하필 그날 무릎 상태가 좀 안 좋아서 계단을 오르기가 너무 힘들었다. 총 세차례 5층을 오르내리며 그 고객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하필 그날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내 무릎은 계속 원망했다.


암튼 앞서 말했던 공동체 부엌으로 상자를 들고 걸어 들어가고 있는데, 입구에 서 계신 한 분이 나를 멀리서부터 쳐다보고 계셨다. 당연히 멀리서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고, 그저 주문한 물품들이 오니까 받으려고 쳐다보고 계신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조금 가까워지면서 어렴풋이 표정이 보일무렵 누군지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으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의 표정이 확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저런 표정은 아는 사람이 아니면 나오기 어렵다. 그 분이 먼저 나에게 물었다. "상무님, 지금 뭐하세요?" 약간은 따지는 듯한 말투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리고 나를 '상무'라는 직함으로 부르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 분이 누구인지 생각났다. 그 분은 지금 내가 배송일을 맡고 있는 이 생협에 오래 계셨던 지금은 그만둔 상무님이셨다. 그 분이 이 생협의 상무이사 일을 맡고 계셨을 당시에 나는 우리 조합에서 상임이사를 맡고 있었다. 본인이 상무이사라서 그런지, 아니면 상임이사라는 직함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그 분은 나를 늘 상무님이라고 불렀다. 암튼 제법 오랜만에 뵙는 상황이라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는데, 그 다음 순간 그가 "지금 뭐하세요?" 물은 말투가 약간 따지는 듯한 느낌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손에 든 상자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인사를 드린 후에 "저 배송일을 하고 있어요." 라고 말씀드렸다. 그는 "아니 왜 상무님이 배송을 하세요?" 라고 다시 물으셨다. 나는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라고 하고 약간 억지로 웃었는데, 그는 바쁜데 나를 맞이하느라 기다렸다는 느낌으로 "다음에 뵐게요." 라고 했다. 나도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 나왔다. 


차를 몰고 다음 배송지로 향하면서 그 분의 묘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혹시 이런 거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생협 임직원들과 친하다는 것은 그 분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지금 배송을 맡아 움직이는 것을 내가 원해서, 돈이 필요해서 직업으로 맡은 것이 아니라, 급하게 임시로 당장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떠맡은 것으로 오해를 하신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주 오래전에 내가 그렇게 생협 배송 일을 잠시 했었다. 그때는 정말 급하게 임시로 당장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며칠만 했었던 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고정 수입이 없어 곤란한 상황에서 생협에서 마음을 써줘서 나를 고용해준 것인데. 내가 고마워해야 할 상황인데. 나중에 오해를 풀 기회가 또 오겠지. 아마도.


#3 차를 막아 놓고 전화도 안 받고


배송은 정말 시간 싸움이다. 1분 1초가 급하고 아깝다. 하지만 나는 한 달이 지났는데도 배송기사로서의 태도는 아직 몸으로 익히지 못했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으로 올라갔을 때, 다른 기사님들은 엘리베이터를 어떻게든 내려가지 않도록 뭔가 조치를 취하고(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물건을 문 앞에 옮겨 놓고 다시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데, 내 경우에는 문 앞에 상자를 내려놓고, 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는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내려가 버리고 만다. 간혹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로 근처에 현관문이 있다면 얼른 문이 닫히기 전에 사진을 찍고 타기도 하는데, 요즘 아파트들은 구조가 복잡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어디에 집이 있는지도 알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더라. 


아파트 단지에서 엘리베이터를 하루에도 수십번 타면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엘리베이터 문에 붙어 있는 스티커들을 잘 살펴보면 배송, 배달 기사님들이 메모를 해놓은 것들을 찾을 수 있다. 대체로 몇 호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적어 놓았고, 해당 동이 몇 동인지를 적어 놓았다. 그리고 주로 다니는 지하 주차장이 몇 층인지도 적어 놓았다. 이것들은 모두 나도 늘 헷갈렸던 것들이어서 먼저 이렇게 메모를 적어 놓은 선배 기사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도 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헷갈리고, 혹시 여기가 몇 동이었더라 헷갈리고, 상자를 내려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다시 탄 후에 내가 차를 지하 주차장 몇 층에 세워뒀더라 헷갈리곤 했었다. 가끔 아주 가끔 새 엘리베이터를 만나면 아무런 메모도 없는 경우가 있더라. 언젠가 어느 기사님께서 여기에도 메모를 하시겠지. 그리고 가끔 이해 못할 메모들도 있었다. 이해를 못하니 그게 뭔지 글로 설명하지도 못 하겠다.


암튼 그렇게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야 먹고 살 수 있는 일이라, 가끔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차들을 만나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어제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차를 아파트 입구에 최대한 가까운 주차 공간에 넣어두고 무거운 상자를 들고 고층으로 배송을 갔다가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큰 SUV 한 대가 내 차를 막고 주차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빈 주차 공간이 분명히 있었는데, 이렇게 차를 대놓았다고? 혹시 아직 사람이 있나 싶어 운전석을 보았는데 없었다. 급한 마음에 바로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귀에 대고 혹시 어떻게든 빠져나갈 공간이 있을까 살피는데, 없었다. 운전자가 바로 나타나지 않으면 여기서 한참 시간을 허비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처럼 그 차주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이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차를 막아 놓고 전화를 안 받는다고! 이런 미친! 화가 났지만 전화를 다시 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젠 신호음이 한 두번 가자마자 전화가 바로 끊어져 버리는 것이다. 신호음이 계속 가는 것이 아니라 신호음이 바로 끊기는 것은 그 인간이 전화를 거절했다는 뜻이리라. 여기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나버렸다. 계속 전화를 걸었다. 결국 열 번 이상 전화를 걸었을 때, 목소리가 굵은 남성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받았다. 나는 먼저 한 숨을 내쉬고, 차를 빼달라고 말하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차를 막고 주차를 해놓고 전화를 안 받으면 어떻게 하냐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그는 그제서야 아, 다른 전화인줄 알았다고 말하며 금방 내려가겠다고 말하고 끊어버렸다. 만약 나였다면 죄송하다는 말부터 먼저 했을텐데, 그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차에 앉아 시동을 걸어 놓고 기다리면서 나타난 인간이 이번에도 미안하다는 시늉조차 하지 않으면 멱살이라도 잡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덩치가 큰 아마도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차에 올랐다. 


그 정도 제스쳐로는 화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머리는 남아 있는 배송 건수들을 먼저 떠올렸다. 여기서 허비한 시간을 만회하려면 얼른 출발해야지. 화를 계속 내는 것은 내 기분만 더 상할 뿐이고, 나만 손해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감정은 좀처럼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결국 급한 배송들을 다 마친 후에 다음 매장으로 가는 중에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 놓고 담배를 한 대 피운 후에야 비로소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4 스트레스와 담배


담배를 처음 피운 것은 고3때였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후에 혼자 작은 자취방에 살았던 시절에 나는 이미 헤비 스모커가 되어 있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그 골방에 혼자 쳐박혀 살았던 시절에 얼마나 많은 담배를 피웠는지 알 수 없었다. 담배를 처음 끊었던 것은 애들 엄마가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아마 3년 정도 끊었던 것 같은데,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담배를 피웠고, 나중에 애들 엄마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다시 담배를 끊었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고 1년 정도 지나 또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그 후로는 예전처럼 담배를 많이 피우지는 않게 되었다. 며칠 동안 안 피우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일주일에 한 두세 개비 정도의 담배를 피우는 정도로 라이트 스모커가 되었다. 그리고 아마 3년쯤 전에 달리기에 푹 빠졌던 시절에 폐활량에 대한 고민 때문에 또 담배를 끊었었다. 그러다 다시 담배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역시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그래도 담배를 사서 피우지는 않았다. 어쩌다 가끔 담배를 피우는 지인에게 얻어 피웠었다. 한 달에 두세번 정도. 그러다 다시 담배를 산 것이 지난 주였다. 배송 일을 시작한지 4주차가 되었을 때였다.


도로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 가끔 배송 건수가 적은 날엔 일찍 일을 마치기도 했지만, 가끔 배송 건이 아주 많은 날에는 정해진 시간보다 한 시간 반 이상 늦게 일을 마치기도 했다. 그런 날에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결국 담배를 샀던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 자주 피우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날 마지막 배송을 마치고 차를 사무실에 반납하기 전에 한 개비 피우는 것이 다였다. 어쩌면 조금 더 이 일에 익숙해지다보면 담배를 피우는 빈도도 더 줄어들 수 있겠지.


#5 운전하면서 먹는 식사


벌써 15년 정도 전이었다. 당시 출판사 영업자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차를 얻어 타고 몇 군데 서점들을 함께 돌았었다. 각자 차를 몰고 가면 그만큼 기름 값도 더 들고, 각자가 다 운전하느라 더 피곤하겠지만, 같은 곳들을 돌아야 하는 여러 영업자들이 한 차를 같이 타고 다니면 그만큼 서로 이득이었고, 그렇게 다니며 정보 교환도 많이 했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이자 동료 영업자 한 명은 여러 지역의 행사장을 돌며 책을 파는 가판을 많이 다녔다. 그는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날엔 식당에 가서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도로에서 운전하는 중에 김밥을 먹으며 다녔다. 그렇게 끼니를 때우며 운전하는 일이 익숙하다고 했었다.


요즘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엔 점심을 안 먹는 편이다. 오후에 배송 일을 하면서 점심을 아예 안 먹으면 무거운 짐을 옮길 때 허기가 져서 힘을 쓰지 못하겠더라. 그렇다고 어디 식당에서 밥을 챙겨 먹을 여유도 없었다. 출근하면서 사무실 근처 편의점에서 김밥을 하나 사고, 가방에 넣어두었다가 첫번째 매장 배송 건을 다 마치고 두번째 매장으로 옮겨갈 무렵에 운전 중에 김밥을 꺼내 씹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운전하면서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다 씹고 나면 또 다음 하나를 입에 넣는 방식으로 밥을 먹었다. 김밥만 먹으면 질려서 어떤 날엔 빵, 어떤 날엔 샌드위치를 먹기도 했다.


저번에 유난히 배송 건이 많아서 퇴근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마지막 매장에 도착했는데, 그날따라 그 매장의 배송 건도 많았다. 해당 매장 점장님께서는 본인이 미안해 할 일이 아닌데도 미안해 하시며 빵 하나와 음료 하나를 챙겨주셨다. 퇴근 시간보다 한 시간이 더 지났을 때에도 아직 배송이 두 건이 더 남아 있었다. 게다가 장거리였다. 그제서야 점장님께서 주신 음료와 빵을 꺼내 먹으며 운전을 했다. 이제 배송 한 건이 남았을 때, 사무국 팀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아직도 안 끝났느냐고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나는 이제 마지막 하나 남았다고. 괜찮다고 걱정 마시라고 하고 남은 빵을 마저 먹었다. 


뭐 누군가는 이런 모습에 마음을 쓸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괜찮다. 일이니까. 맡은 일을 하는 거니까.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늦을 수도 있는 것이고, 배가 고프면 운전하면서 김밥도 먹을 수 있는 것이고, 빵도 먹을 수 있는 것이지. 그냥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 뿐이다. 다만 더 신경이 쓰이고 힘든 것은 돈을 버는 이 일 외에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다른 여러 종류의 노동들이 여전히 내게 계속 맡겨진다는 현실이다. 낮에 운전을 하고 저녁에 퇴근을 하면 다시 사무실로 출근을 해서 다른 일들도 더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일들은 돈으로 보상 받지 못하는 일들이다. 이것도 뭐 괜찮다. 평생 그렇게 살아온 것을. 활동가의 삶이라는 것이 뭐 그런 것이지. 어쩌겠는가. 


지금 이렇게 새벽까지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 몸이 좀 힘들어도 꾸준히 글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인 것을. 이것도 괜찮다.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계속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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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4-23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끊었지만 저도 한때는 지독히 담배를 좋아했던 애연가로서 ˝담배가 몸에만 좋다면!!!˝ 이라는 상상을 가끔 합니다.
담배맛을 아니까요.ㅎㅎ

감은빛 2026-05-04 09:19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담배를 끊으셨군요. 저도 평소에는 안 피우기 때문에 끊은 것이나 다름 없지만, 확실한 차이는 가끔 또 스트레스를 핑계로 피운다는 점이지요.

달리기에 집중할 때에는 폐활량 때문에 안 피웠는데, 다시 달리기에 집중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