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


아주 오랜만에 총각이란 단어를 들었다. 흰머리가 늘어나고, 흰수염이 늘어난 후로는 한번도 듣지 못했던 말이다. 아마 그 할머니께서 눈이 안 좋아 내 얼굴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하신 말씀이겠지. 근데 총각이라 부르기 전에는 내 긴 머리칼을 보고 "여자여? 남자여?" 라고 말씀하셨다. 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머리가 길면 여성이라는 편견을 갖고 산다. 특히 어린이들과 어르신들이 더 그런 듯하다. 매장에 배송 물품을 가지러 가서, 여러 개의 상자를 겹쳐 올려놓고 스쿼트 자세로 짐을 번쩍 들어올렸는데,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신 어르신이 하신 말씀이었다. 짐을 들고 일어나서 차에 물건을 실으러 가면서 내가 답했다. "여자면 어떻고 남자면 어때요? 짐 옮기는 일은 남녀 모두 잘 할 수있는 일인데요." 할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나서 "총각이 힘이 좋구만." 이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께 아이가 대학생이예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갈 길이 급해서 그저 매장 담당자님께 인사를 드리고 차에 올랐다. 오늘부터 담당하는 매장 하나가 바뀌었다. 내가 맡은 세 개의 매장은 가장 배송이 적은 곳 두 곳과 배송물량이 보통인 매장 한 곳이었는데, 가장 적은 한 곳이 다른 사람에게 가고, 대신 배송물량이 좀 많은 매장 하나가 나에게 배정되었다. 만약 세 매장이 모두 배송 건이 많은 날이 겹치면 정말 정신없이 바쁜 날이 될지도 몰랐다. 다행히 매장을 바꾼 첫 날이었던 오늘은 모든 매장에서 배송 건 자체가 적었다. 


운전


96년 1월에 운전면허를 땄었다. 실기 시험을 칠 때 S 코스 후진으로 나오다가 아무래도 선을 밟은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차를 멈췄다. 어쩔줄을 몰라 가만히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밟기 전이었고, 다른 코스에 있던 응시자가 선을 밟아서 탈락 안내가 나왔는데, 나는 내가 밟았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결국 나는 시간 초과로 떨어졌다. 그 다음 시험에서 합격했다. 한번 떨어져보고 나니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면허는 땄지만, 대학 시절에는 차를 운전할 일이 거의 없었다. 큰 슈퍼마켓에서 일을 할 때는 새벽에 열리는 농산물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가기도 했고, 아주 가끔 배송을 다니기도 했지만, 그 일을 계속 했던 것은 아니었으니. 제법 오랫동안 운전을 안 하고 살다가 다시 운전을 본격적을 한 것이 결혼하고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였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부천에 살고 있었고, 우리 부부는 모두 서울로 출근을 했다. 아이는 장모님께 맡기는 날이 많았다. 장모님께서 봐주시기 어려운 날엔 아내가 사무실에 데리고 나갔고, 그것도 어려운 날엔 내가 데리고 출근하기도 했다. 기저귀와 분유병과 분유통 등이 든 큰 가방을 차에 싣고, 아기를 데리고 장모님 댁에 들러 아기를 맡기고 출근했다. 퇴근할 때는 장모님 댁에서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를 데리고 운전을 했기 때문에 조심조심 천천히 다녔다. 원래는 그리 느긋하게 운전을 하는 편은 아닌데,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 다른 사람을 태우고 운전을 할 상황이면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조심히 운전을 하는 편이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운전을 해온 습관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배송 일을 맡아 하면서 초반에 그렇게 좀 느긋하게 운전했더니, 도저히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마칠 수가 없었다. 어쩌다 배송 건수가 많은 날에 앞의 매장에서 조금 오래 걸렸더니, 뒤쪽 매장들에서 계속 전화가 왔다. 왜 안 오시냐고? 그날 깨달았다. 적어도 혼자 배송하는 때만이라도 부드럽게 운전하는 습관을 버려야하겠구나. 마침 그때쯤 배송 일을 오래 해온 선배 한 사람이 매장들을 함께 돌아주며 본인이 어떻게 하는지, 어떤 길로 다니는지 등을 알려주셨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고 예전에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셨던 어르신들 댁으로 농활을 함께 가면서 번갈아가며 운전을 했던 기억도 있어서, 이 분이 평소 운전을 좀 거칠게 하는 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분이 운전대를 잡고 다니는 동안, 내가 매장들을 돌고 배송을 다녔던 시간들보다 확실히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 이후로 나도 평소 운전 습관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이 더 걸리는 것들을 없애나가고 있다. 그리고 확실히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대신 예전에는 앞 차가 조금 천천히 다니더라도, 가끔 초보 운전이라고 써붙인 상태로 좀 어이없는 행태를 보여도 그냥 느긋하게 기다려줄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럴 수가 없다. 지금은 도로 위의 1분 1초가 아까워 나도 모르게 조바심을 내곤 한다. 확실히 도로 위에서 운전으로 먹고 사는 일은 쉽지 않다.


기다리던 책이 왔건만, 잠시 펼쳐본 후로 다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제 4월이 되었으니, 조금은 시간 여유가 생기겠지. 이젠 시간이 많지는 않더라도 짧게 짧게라도 책 읽은 여유가 생기겠지. 얼른 이 글을 마치고 다음 일정으로 이동해야 한다. 


노트북을 켜자마자 잠깐 페이스북에 들어갔는데, 트럼프가 죽었다는 기사가 있더라. 순간 놀랐으나, 곧 오늘이 만우절이구나 깨달았다. 이젠 정확히 몇 년 전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언젠가 만우절에 돌연사 했던 지인이 생각났다. 아, 안된다. 오늘은 슬픈 감정에 빠져들 여유가 없는 날. 오늘 일정 다 마치고 나중에 밤에 그 지인을 떠올리던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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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스트레스


3월의 마지막 주 주말이 되어서야 드디어 총회 시즌이 끝났다. 지난 주는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지치고 힘든 한 주였다.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마지막 총회를 앞두고 뭔가 아쉽고, 뭔가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현실적인 한계들에 계속 부딪혔다. 결국 한계를 인정하고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머리로 그걸 인정하기까지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함께 총회를 준비했던 동지이자 친구는 며칠째 두통을 호소했다. 다행히 나는 살면서 두통을 심하게 느낀 기억이 없지만, 예전에 애들 엄마가 편두통으로 엄청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았기에, 이 두통이란 증상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경우에는 스트레스가 두 가지 통증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극심한 피로감이다. 평일에 밤 늦게까지 혹은 새벽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고, 가끔은 아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몸이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나이 탓도 있을 것이고, 스트레스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또 최근에 피로를 이유로 운동을 안 하고 있어서 그게 원인일 수도 있을텐데, 지난 주에 정말 며칠동안 피로감이 너무 컸다. 평일에 좀 무리를 하더라도 주말에 잠을 몰아서 자면서 피곤을 풀어야 하는데, 계속 주말에도 일정이 생겨서 푹 쉬지 못한 것도 원인일 것이다.


자주 들여다보지는 않지만, 가끔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의 쪽글들을 읽기 위해 페이스북을 뒤진다. 그러다 어느 지인이 올린 '불광천 벚꽃 마라톤' 소식을 보았다. 이번이 세번째 대회인데, 그는 첫회부터 올해까지 세 번 모두 참여했었다고 적었다. 나는 작년 이맘때 두 번째 대회에 참여했었다. 대회장에서 이 글을 올린 그와도 마주쳤었다. 그때 나는 혁신파크 매각 반대 몸자보를 메고 달릴 예정이었고, 그도 이 몸자보를 함께 메고 달리겠다고 해서 몸자보를 전달하고 돌려받기 위해 만났었다. 작년 대회 때는 정말 최악의 몸 상태로 참여했었다. 전날 중요한 일정이 있었고, 새벽까지 몇몇 사람들과 토론이 이어져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달리기에 참여했었다. 그럼에도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었다. 달리기 중에 김미경 구청장과 황영조 씨가 여러 명의 경호원들에게 둘러 쌓여 걷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 앞에서 몸자보가 보이도록 항의 액션을 하다가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하기도 했었다. 결국 원하는 만큼의 항의 액션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괜히 오버하다가 쫓겨나기 보다는 완주해서 결승선에 모인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혁신파크 매각 반대"를 외치는 것이 낫다고 결론을 내리고 구청장 일행을 제치고 떠났다. 그리고 생각했던대로 결승선에서 아주 큰 소리로 세 번 외쳤다. 당시 결승선에서 마이크를 잡고 마지막 힘을 짜내는 참가자들을 독려하던 사회자는 내가 외치는 소리에 조금 당황에서 처음엔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내가 세 번을 외치고 나서야 비아냥 대는 말투로 "네, 잘 알겠어요." 라고 말했었다. 암튼 올해 대회는 전혀 소식을 접하지 못했었다. 보통은 작년 참가자들에게 문자로 올해 대회 소식을 알리는데, 다른 대회들은 대부분 그러던데, 이 대회는 접수 소식 자체를 모르고 지나쳤다.


그러고보니 올해는 아직 대회 신청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정보를 찾는 것조차 안 했었다. 작년에는 따뜻한 봄에 대회를 뛰어보고 싶어서 겨울에 자주 달리기 대회 정보를 찾아다녔었다. 그때는 개인 기록 갱신에 좀 몰두해 있었다. 그리고 작년 봄 양천마라톤에서 개인 기록을 세웠었다. 생각해보니 작년 늦가을부터 달리기에 대한 내 열정이 조금 식어버린 것도 같다. 그 전까지는 26년에는 하프 마라톤 대회에 나가보는 것을 목표로 생각하고 있었고, 가끔 20킬로미터 정도 거리를 달리기도 했었는데, 늦가을부터는 짧은 거리만 가끔 달릴 뿐, 10킬로 정도의 마음만 먹으면 그냥 달릴 수있는 거리조차 시도를 안 하고 있었다. 갑자기 기억났는데, 그때 즈음에 어느 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었고, 대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참가비 입금 요청을 놓쳐버려서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었다. 뒤늦게 참가비 입금 마감일이 지난 후에야 그 연락이 왔었다는 것을 보고 주최 측에 연락해봤는데, 이미 시간이 지나버려서 방법이 없다고 답이 돌아왔었다. 그래, 이거 때문에 내 마음에서 달리기가 잠시 멀어졌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4월이니 다시 달리기를 시작해야겠다. 대회 소식도 좀 알아봐야지.


노화를 막을 방법은 없다. 스트레스를 막을 방법도 없다. 점점 늙어가는 몸으로, 점점 스트레스에 취약한 몸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운동을 하는 방법 밖에 없다. 달리기도 다시 시작하고, 운동도 다시 해야지. 매일 피곤하다는 핑계는 이제 그만 둬야지.


전쟁


분단된 나라에 살면서, 오래 전에 군대에 다녀온 사람으로서 내가 지금 이렇게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거의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지금 이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전쟁과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구 전체를 두고 본다면 아마 인류 역사상 전쟁이 아예 없었던 시기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작은 국지전이나 내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역들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으로 생각하면 내가 지금 이 시기에 이 나라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다행이라 여길 수있을 것이다. 다만 군인으로 복무했던 기간은 아쉽다. 2년 2개월이라는 기간이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 전체로 보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일 수 있는데, 내 인생의 일부를 사람을 죽이기 위한 병기로서 살았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이었고, 스스로 인격을 가진 인간이 아닌 그냥 하나의 물건으로 나 자신을 규정하고 살았던 시간이었다. 


최근 전쟁 때문에 종량제 봉투가 품절 상태라는 이야기가 많이 돌고 있다. 실제로 동네 편의점에 출입문에 붙은 안내문을 읽기도 했었고, 어제 총회를 준비하면서 누군가에게 종량제 봉투 하나를 사오라는 부탁을 드렸었는데, 그가 근처 가게 세 곳을 돌아봤지만, 모두 물량이 없다고 했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보고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북한의 핵 도발과 분단 현실에서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모르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미국에서는 뭔가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마트를 털어서 생필품을 사재기 한다고, 그 중에서도 특히 화장지를 사재기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었었다. 중동의 전쟁으로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그로 인해 한국에서 종량제 봉투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이를 사재기 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 참 재미있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 지금 내 삶의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먼 나라의 전쟁 이야기에 마음을 쓰기가 어려운 현실이지만, 뉴스를 볼 때마다 계속 마음에 걸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죄 없는 생명이, 너무나도 소중한 생명이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구나. 결국 욕심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인간들은 아무런 불편 없이 잘만 살아가는데, 힘 없는 약자들만 아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정치와 에너지


지방선거 때문에 분주한 사람들의 소식이 간간히 들린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지역정당은 우리나라 선거법과 정당법 상 아직 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창당하자마자 헌법 소원을 냈었는데, 헌법재판관 9명 중 과반 이상인 5명이 위헌 의견을 냈으나, 정족수인 6명 미만이라 결국 기각 판정을 받았었다. 현실적으로 법외 정당이 선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단 세 개 밖에 없는 지역정당 중 거의 유일하게 활동을 이어가던 우리 당도 이젠 현실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느낌이다. 뭔가 아이디어는 있지만, 실행할 수 있는 여력이 별로 없다.


작년 4월 스페인 대정전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보고서가 드디어 나왔다는 소식을 읽었다. 그간 대부분이 재생에너지를 원인으로 지적해왔는데, 공식 보고서에서는 단순하게 하나의 에너지원인 재생에너지가 원인이 아니라고 밝히며, 여러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언급했다. 복합적인 원인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전력망 자체가 변화하는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벌어진 일이고, 결론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전력망이 문제였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소식을 인용해 전하는 우리나라 전문가는 우리나라도 같은 문제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전력망 자체도 분산형으로 유연화되어야 하는데, 전력망은 여전히 낡고 변하지 않는데, 에너지원만 변하는 현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2011년에 블랙아웃을 겪고 정부와 에너지 전문가들이 한 일은 아주 단순히 석탄화력발전소를 늘리는 일이었다. 정말 미친 듯이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었고, 그래서 세계적으로 비난도 많이 받았다. 왜 발전량을 늘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수요 관리와 망의 유연화 자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니, 모두가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바른 길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정책은 돈 많고 힘 있는 자들이 결정하는 법. 결국은 업자들과 거기에 붙어서 기생하는 전문가 라는 인간들의 배를 불리는 방식으로 흘러온 것이다. 


윤석열이라는 멍청한 인간이 물러나고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여전히 에너지 정책은 문제 투성이다. 아니, 핵발전소를 다시 늘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핵은 결코 친환경 에너지원도 아니고 안전한 에너지도 아니며 경제성 있는 에너지도 아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를 떠들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장관도 구청장과 국회의원 시절에는 저런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떠들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장관이 되더니 멍청해진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왜 정부가 핵을 다시 외치기 시작하는가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에너지 정책을 결정해온 핵 카르텔이 여전히 너무나도 견고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었던 시절에 본인의 공약을 뒤집으면서 신고리 5,6호기를 계속 짓겠다고 밝히면서, 앞으로 긴 시간 인구에 회자될 코메디를 펼쳤다. 탈핵은 선언했지만, 핵발전소는 계속 짓겠다는 공언이었다. 이게 사람들이 웃으라고 일부러 한 말이 아니라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결정한 에너지 정책이었다는 것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문재인도 그렇고 이재명도 결국은 핵 카르텔에 굴복한 것이다. 그리고 굴복한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히 표 때문이다. 보수 정당인 민주당이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은 본인들의 정체성에 딱 맞는 너무 당연한 행태이고, 저쪽 빨간당 지지세력에게서 조금이라도 표를 빼앗아 오기 위해 핵 카르텔과 손을 맞잡은 것이리라. 아니 굴복한 것이리라. 그래서 전혀 검증되지 않은 SMR 같은 것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떠들어 댄다. 그렇게 좋은 거라면 여의도 국회 앞에 SMR 단지를 만들어라. SMR 이 소형이라고 마치 유연화 자원인 것처럼, 마치 경제성이 좋은 것처럼 거짓 정보를 흘리고 있는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경제성이 좋으려면 대량 생산을 해야 한다. 그리고 대량생산 하려면 한 두개만 건설해서 될 것이 아니고 단지 형태로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지어야 한다. 이래놓고 유연화 자원이라고? 아니 그리고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이건 핵연료를 사용해야 하는 핵발전소다. 3월 11일에 후쿠시마 핵사고 15주년을 맞았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사고 현장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모르는 척 하겠다는 건가? SMR 을 단지 형태로 운영하면 결국 고리(신고리 포함), 월성(신월성 포함), 울진(공식명칭은 한울, 신한울), 영광(공식명칭은 한빛)과 같이 대단지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기존 핵발전소와 SMR 은 과연 뭐가 다를까? 차라리 기존 핵발전소는 나름 건설과 운영방식이 검증된 것이라고 본다면,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것을 떠들어 대는 모습은 참 어이없다. 결국 국민들을 바보로 생각한다고 여길 수밖에. 


지난 주 목요일이 마감이었던 발제문을 총회를 핑계로 미뤄두었다가 이젠 더 미룰 수 없어서 사무실에 앉아 있다. 그런데 정작 발제문은 쓰지 않고 정보만 찾아보다가 이 글을 쓴다. 얼른 발제문을 쓰고 집에 가서 쉬어야 내일 또 일을 할 수 있을텐데. 딴 짓 그만하고 이제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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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30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전쟁이 끝난 후 세계 질서가 어떤 식으로 재편될지 궁금하네요. 똥멍청이 하나로 미국 패권주의는 서서히 막을 내릴 것 같고, 다음 패권주자들이 어떤 식으로 발빠른 움직임을 보일지.... 인간속의 전쟁 유전자가 다시 발동이 걸린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2026-03-31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은 여러모로 조심해야 하는 날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21세기에, 2026년에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다니. 참 우습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신을 믿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일진이 사납다는 미신을 믿어? 오늘 유난히 운이 좋지 않다는 미신을 믿어? 이 21세기에?

오늘따라 유난히 늦게 일어났다. 평소라면 집 근처 분식집에서 김밥이나 라면을 먹고 출근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냥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하는 건 굳이 밥을 안 먹어도 상관이 없지만, 나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해야하는 입장이라 출근 전에 밥을 안 먹으면 나중에 너무 힘들어서 꼭 출근 전에 뭐라도 먹어야지 생각했었다. 출근하는 길에 편의점에서 김밥 하나를 샀다. 그리고 출근해서 차 키를 받아들고 차에 탔다.

내가 가야할 곳은 매장 세 곳이다. 세 매장에서 각각 몇 건의 배송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느 날은 두 건이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예닐곱 건이 있기도 한다. 평균적으로는 매장마다 서너건 수준이다. 사무실에서 출발해 세 곳의 매장을 단순히 돌기만 해도 1시간 반은 훨씬 넘는다. 각 매장마다 배송건이 적어도 두세 건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이고 일을 하고 있다.

첫번째 매장으로 이동하는 길은 대개 차량이 많아서 막힌다. 거기서 김밥을 먹었다. 평소였다면, 굳이 도로 위에서, 차 안에서 밥을 먹고 싶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어차피 하루 하루 살아가는 입장에서 뭐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다.

첫번째 매장 바로 앞에서 주차를 하는데 갑자기 시야 바깥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다행히 나는 후진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사고가 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놀랐던 나는 차에서 내려 상황을 살피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시야 밖에서 갑자기 끼어들듯이 나타난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고 떠나갔다. 오늘 좀 조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 순간에 처음 했다. 어쨌거나 사고가 나면 무조건 내 손해라는 생각으로 운전을 하고 있다. 두번째 매장에 들렀다가 배송을 간 곳은 아는 사람 집이었다. 친하다고 말하기는 애매하겠지만, 긴 시간 활동가의 삶을 살아오면서 어느 특정 시점에는 친했던, 그리고 여전히 중장기적 관점에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 활동가였다.

이 대목에서 한 편으로 위화감이 생기기도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잘 알고 지냈던, 꼭 친했던 것은 아니지만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던 몇몇 활동가들이 아파트로 이주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로제라는 가수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불러 유명해진 아파트 라는 노래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대한민국이 아파트 공화국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내가 가진 위화감은 두 가지 측면이다. 일단 하나는 대다수의 활동가들이 생계 유지조차 어려워 헐떡이는 시대에 같은 활동가라고 생각했던 누군가는 넓고 좋은 아파트에 사는구나 하는 부분이다. 나도 솔직히 그런 생각에서 충격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한편으로 지금 시기가 더욱 나 같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시기라는 생각에 더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더 어찌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까 일을 마치고 잠시 마주쳤던 한 선배는 그 자신과 나처럼 열심히 활동하고 살았음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고 다같이 고민해보자는 말을 했다. 글쎄, 이게 고민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내가 아무리 열심히 활동했더라도, 지금 시점에서 가치를 찾지 못한다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리라.

아, 오늘 하마터면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을 칠 뻔하고(물론 실제로는 좀 더 여유가 있었고, 그도 별 불만없이 돌아갔지만),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이야기, 그리고 잠시 주차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 등을 쓰려고 했는데, 다 의미없을 것 같다. 매일 매일 열심히 돈을 벌어야 이 생활도 유지가 될테니. 다른 활동가에 대한 배신감은 사실 의미없는 얘기일 것이다. 그는 그 나름대로의 삶이 있을테니.

고속철도 폭탄 설치 영화 두 편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썼다. 한 편은 일본 영화 [신칸센 대폭파]이고 다른 한 편은 대만 영화 [96분]이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 두 영화를 봤던 것은 작년 연말이었던 것 같다. 올해 2월쯤 이 둘을 엮어서 글을 써야지 생각이 들어서 각각 영화를 다시 봤다. 그런데 하필 그때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글을 못 쓰고 지나쳐버렸다. 다시 시간이 많이 지나서 어제 밤에 글을 쓰기 시작해 새벽에 완성했다. 평소 내 글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조금 아쉽지만, 더 제대로 손 댈 시간이 없을 거라고 본다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이 글을 읽고 싶은 분을 위한 브런치 글 링크
https://brunch.co.kr/@cb83c338001e498/8


하루 하루 반복되는 일상, 뭐 하나 좋은 소식 따위 없는 지루한 일상,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살아도 다 거기서 거기인 삷을 살 뿐인 가련한 인간에게 바친다. 그냥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든 인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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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어제 하루종일 정부에서 발송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우리말로 한 번, 영문으로 한 번. 여러차례 왔는데 계속 같은 내용이었다. 낮에 일을 하느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광화문에 가지 마라는 내용 같았다. 저녁에 총회에 참여하고 있을 때에도 같은 내용의 문자가 왔다. 누군지 잘 알지 못하는 한 무리의 연예인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몇 명인지도 전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들이 세상의 전부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은 없지만, 나도 젊은 시절에는 좋아하는 가수들이 있었으니까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들 때문에 온 나라가 이렇게 난리통이 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아, 옛날에 뉴키즈온더블럭이 우리나라 왔을 때에도 난리라 났었다고 했던가? 압사 사고로 한 명이 숨지고 약 7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래 이태원 참사 같은 사고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제발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광화문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역할

2월과 3월에는 시민단체와 협동조합 총회 시즌이라 엄청 바쁘다는 얘길 계속 썼는데, 어제는 내가 회원으로 적을 두고 있는 시민단체 한 곳과 감사를 맡고 있는 협동조합 한 곳의 총회가 겹쳤다. 시민단체에는 미안하지만, 감사로서 협동조합 총회에 빠질 수가 없었다.

여기 조합에서는 거의 매번 서기를 맡아 의사록을 작성해왔다. 어제가 제8회 총회였는데, 아마 내가 서기를 맡은 것이 6번? 7번 정도 될 것이다. 서기라는 역할을 맡아 총회 의사록을 작성하는 일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 맡는 것 자체는 괜찮지만, 매번 미리 부탁하지 않고 너무 당연하게 내가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기분이 나빴다. 최근 몇 년간 계속 그랬었다. 어제는 일부러 노트북을 안 갖고 갔었다. 또 서기를 맡아달라고 하면 노트북이 없어서 못 한다고 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일찍 도착해서 잠시 쉬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내가 먼저 물어보고 말았다. 오늘 서기는 누가 해요? 총회를 총괄하는 이사이자 친한 선배는 너무 당연한 표정과 말투로 니가 해야지. 라고 말했다. 나 노트북 없는데. 라고 했더니 그럼 노트북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갖다달라고 하라고 말했다. 어차피 지금 시간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서기를 맡길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내가 노트북을 가져오는 것이 낫다 싶었다. 그 선배의 차를 빌려서 노트북을 가지러 다녀왔다.

감사는 총회에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고 직접 그 보고서를 낭독한다. 나는 총회 시작 전부터 의사록을 작성하느라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었는데, 감사 보고 순서가 되어 기록을 멈추고 감사보고서를 읽어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집에서 감사보고서가 있는 쪽수를 찾으면서 감사도 맡고, 서기도 맡아서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네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저에게 한 가지 역할만 맡겨주세요. 서기는 다른 사람이 맡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총회가 진행되는 내내 다른 사람들의 발언을 듣고 정돈된 말투로 고쳐서 기록하는 일은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다. 총회가 끝나고 다른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뒷풀이 음식을 먹거나 할 수 있지만 서기는 나중에 정리하려고 미뤄둔 내용을 마저 기록해야 하고, 놓친 내용이 없는지, 오탈자는 없는지, 내용에 오류는 없는지 여러차례 점검해야 한다. 총회가 끝나고도 꽤 긴 시간 내가 혼자 의사록을 마무리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한쪽에서 먼저 뒤풀이를 시작해 먹고 마시고 놀고 있었다. 엎드려 절을 받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미리 부탁하지도 않고 너무 당연하게 일을 맡기는 태도와 남들 다 놀 때에도 혼자 일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누구도 수고해줘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를 하지 않는 것은 기분이 나빴다. 정말 내년에는 절대 서기를 맡지 말아야지.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준비하는 총회에서도 너무 당연하게 오랫동안 한 사람에게 서기를 맡기고 있었다. 물론 나는 미리 부탁하면서 매번 맡겨서 미안하다고 여러 차례 사과를 하고 당일 뭔가 불편한 점은 없는시 신경써서 챙겨주고, 총회 끝나고 내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그가 혼자 의사록을 마무리 할 때 고생시켜 미안하고, 수고 많았다고 말하곤 한다. 사실 내가 서기를 주로 맡아온 협동조합은 총회 의안이 상대적으로 그리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챙겨야하는 조합은 총회 안건이 아주 어렵고 복잡하다. 매번 서기를 맡아주는 그 친구가 아니면 그 내용을 즉각 기록하기가 쉽지 않다. 그 사람 외에는 정말 대체할 사람이 없어서 매번 미안한 마음에도 그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어제 일을 겪으며 역지사지 라는 말을 다시 절실하게 깨달았다. 나부터 그 친구에게 훨씬 더 고마움을 표현하고 가능하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을지, 정 안되면 내가 서기를 맡더라도 한 번은 서기를 맡지 않고 맘 편히 총회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총회 시즌도 마무리되어 간다. 다음주 토요일에 임원을 맡고 있는 총회 하나를 더 마치면 드디어 지겨운 총회 시즌이 끝난다. 어제 뒤풀이에서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여러 시민단체와 협동조합에 나처럼 겹쳐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우스개 소리로 법이나 조례로 몇 개 이상 역할을 못 맡게 만들어야 한다고. 나는 속으로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도 좀 퇴근이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암튼 이제 일주일 남았다. 조금만 더 고생하자. 토요일이지만 또 회의하러 가야한다. 내일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잠만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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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21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계속 문자를 받고 있어요.BTS 세계투어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무료 콘서트를 한다고 하니 많은 아미들이 좋아한다고 합니다.특히나 BTS가 가지 않은 중국의 경우 중국의 이미들이 광화문 콘서트를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한국으로 날아오고 있다고 하네요.
그러다보니 광화문 일대의 숙박시설과 식당가들은 오랜만에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하네요.BTS의 광화문 콘서트가 일대 직장인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자영업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인것 같습니다.

감은빛 2026-03-29 18:20   좋아요 0 | URL
BTS 공연 후폭풍이라고 말할 수있을 정도로 말이 많더라구요.
특히 광장을 연애엔터테인먼트 사기업에게 명분없이 빌려준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공연 자체도 기대 이하라는 의견도 많더라구요.
일단 이 공연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라고 보고,
그 피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잉크냄새 2026-03-21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기라는 일이 일은 일대로 하고 티는 나지 않는 일인 것 같아요. 예전 중국생활 초기 총경리 아침 회의 서기를 맡았는데 토씨 하나 틀리는 걸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 총경리 때문에 아침 회의가 지옥같았던 일이 떠오르네요. 다음부터 돌아가며 하세요. 그래야 서기라는 일의 험난함을 알겁니다.

감은빛 2026-03-29 18:23   좋아요 1 | URL
잉크냄새님도 서기라는 일을 맡아 힘든 시기가 있었군요.
그렇죠. 말씀처럼 이 일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데,
전혀 티가 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선의로 한 일이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버려서 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음부터는 맡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으니 이제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겠지요.
 

시간을 인식하고 인지하는 능력

요즘 한자를 공부하면서 새삼 우리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가 깨닫는다. 어느 외국어가 어렵지 않겠냐만, 우리 말은 특히 더 어렵다고 본다. 한자를 배우며 그간 한자어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한자로 만들어진 단어였구나 생각하며, 우리말을 반백년 배운 사람도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구나 했다.

예전부터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에 대해 이 서재에 몇 번 글을 썼었다. 인지심리학 책에서 읽었던 것으로 우리 인간의 뇌는 비슷한 경험들을 묶어서 한 덩어리로 만들어 저장하기 때문에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고, 큰 변화가 없는 사람은 그 일상 전체를 통으로 엮어서 인식하고 기억한다고. 그래서 뭐라도 조그마한 차이점이 있어야 그 날을 다르게 인식하고 따로 기억하고, 매번 거의 똑같은 날이 반복된다면 그 날들은 나중에 떠올리고 싶어도 기억하지 못 한다고 했다. 물론 완전히 같은 날은 있을 수 없겠지만, 거의 차이가 없는 날은 제법 있을 것 같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씻고,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서 같은 버스를 타고, 비슷한 시간에 일터에 출근한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한 업무를 하고, 매일 같지는 않겠지만, 몇가지 음식들 중 반복 선택해 점심을 먹는다. 오후도 역시 비슷한 영역의 업무를 하고 야근을 하던 퇴근을 하던 그렇게 하루가 간다면, 그 하루들의 연속되는 일상은 별개의 하루 하루로 인식하고 저장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리고 인간은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일과 겪어본 일이 많아서 점점 더 개별적으로 따로 인식하고 기억하는 날들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거라고.

이쯤에서 잠시 인식(認識)과 인지(認知)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나는 앞서서 계속 인식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느낌상 인지보다는 인식이 맞는 것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인지를 그대로 넣어도 뉘앙스는 좀 다르지만, 틀린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 다른 단어이고, 고유의 뜻이 있을텐데 사전만 찾아보아서는 잘 모르겠다. 이 둘을 좀 더 엄격하게 구분해 쓰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암튼 내 기준으로 시간이 참 빨리 간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 30대 중후반이었다. 그때 이미 시민단체 실무자로서는 해볼 수있는 어지간한 업무를 두루 익혔고, 많은 경험을 쌓았었다. 더불어 출판사에서도 영업관리와 마케팅 기획 그리고 편집까지 여러 일들을 익혔었다. 더이상 새로운 경험이 없이 알고 있는 일들, 해봤던 일들만 경험하게 되면서 시간에 대한 내 인식과 기억이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업무 외에도 개인적인 삶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젊은 시절엔 전국단위 사업에 대응하면서 외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했지만, 30대 중반부터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주로 만나는 사람들의 폭이 좁아지고 매번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이혼 후의 내 삶은 그 이전에 비해 아주 단순해졌다. 아니 개인적인 삶. 즉, 사적 영역을 대폭 축소하고 공적 영역 확 늘려서 그냥 혼자 보내는 시간을 줄였다.

암튼 큰 변화 없이 10년 정도를 비슷한 흐름으로 살아와서 시간이 물 흐르듯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 새로운 일을 하면서 다시 하루 하루가 길어진 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새로운 자극을 받아야 뇌가 시간을 정상적으로 인식하는구나 싶다.

물론 당연히 이 일도 계속 반복하다보면 익숙해질 것이고, 그러면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되겠지. 어떻게든 일상에서 자주 변화를 주고, 그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여 뇌가 그냥 다른 일상들과 엮어 뭉뜨그려 버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겠다. 점점 늙어가는 처지에 그 노화가 더 빨리 다가오는 것처럼 느끼고, 시간이 이렇게 휙 지나가는구나 느끼는 일이 너무 싫고 슬프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2월과 3월은 마치 퇴근이 없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다. 딱 다음주까지만 참으면 된다. 내일 중요한 총회가 하나 있고, 담주 토요일에 더 중요한 총회가 있다. 그러면 내가 올해 신경쓰고 챙겨야 할 총회들이 모두 끝난다. 4월이 되면 조금은 여유가 생길까? 아니다. 벌써부터 모든 주말에 일정이 생겼고, 평일 저녁에도 회의 등 일정들이 생기고 있다.

좀 일찍 퇴근해서 집에서 쉬어보기도 하고 그래야 내 뇌가 아, 이날은 좀 특별한 날이구나 하고 인식해 기억할텐데, 매번 저녁마다 일정이 생겨 무언가 집중해 일하다보면 또 같은 일상이구나 생각할 것이다. 계속 끊임없이 생각해야겠다. 변화를 주자. 의미를 두자. 내 소중한 일상이 흩어져버리지 않고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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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20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무리하시면 번 아웃이 옵니다.감은빛님 바쁘신것은 알겠는데 그래도 건강을 챙기시면서 일 하시길 바래요.

감은빛 2026-03-21 11:11   좋아요 0 | URL
벌써 여러차례 번아웃이 왔었지요. 작년에 진짜 좀 심각하게 무력감에 빠져서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시간을 보낸 적도 있어요.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이 참 쉽지 않네요.

카스피님, 고맙습니다!

잉크냄새 2026-03-20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경험을 한데 묶어 덩어리로 기억하고 덩어리의 패턴이 생길수록 개별적이고 특별한 경험이 적어지니 삶이 기억되지 못하고 더 빨리 흐르는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는 의견에 공감하게 되네요. 여행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네요.

감은빛 2026-03-21 11:16   좋아요 0 | URL
여행이 필요한 것도 맞고, 일상을 마치 여행처럼 살아가는 기술? 능력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렸을 때는 세계 여러 나라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사진과 영상으로 충분히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아름다운 공간에 가 있어도, 내가 그 풍경을 즐길 마음이 아니면 다 소용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늘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잉크냄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