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운전


주말에 제천으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운전이었다. 빌린 차를 운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차라면 엑셀과 브레이크의 감이 익숙할 것이고, 핸들링과 차의 크기에 대한 감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을 거라서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겠지만, 낯선 차는 그 모든 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새벽에 잠깐 잠들었다가 금방 깨버린 후로 잠을 못 자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혹시나 졸리면 내 차에 탄 일행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어서 미리 에너지 음료를 챙겨 먹고 차량을 받으러 갔다. 요즘 차들은 정말 새로운 기능들이 많았다. 그만큼 편하게 운전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또 뭔가 많은 기능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다행히 함께 가는 일행들이 성격도 좋고 친절하신 분들이라 마음이 편해졌다. 조수석에 타신 남성 가끔 마주친 분으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익숙한 분이라 그리고 남성이라 마음이 편했다. 옆자리에서 에어컨 조작과 음악 선곡 등 여러 일들을 도맡아 잘 해주셨다. 뒷자리 여성 한 분은 그날 처음 뵙는 분이었는데, 아주 조용하신 분이셨다. 평생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다만 맨 마지막에 합류한 다른 여성 한 분은 종종 만났던 사람인데, 좀 부담스러운 사람이어서 미리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괜한 걱정은 아니었다. 그 사람 입장에서도 친한 사람(평소 그 사람 기준이 나를 친하다고 여기는 듯한 느낌은 자주 받았었음)은 나 밖에 없어서 그렇겠지만, 운전하는 나에게 자꾸 말을 걸거나 뭔가 요구하곤 했다. 다행히 나머지 두 분이 적절하게 말을 받아주고, 요구한 것들을 챙겨주셨다.


꽤 오랜 시간 차가 없었으니 평소에 운전할 일이 거의 없고 아주 가끔 차를 빌려서 운전을 해도 장거리 운전을 하는 일은 드물다. 혼자 운전을 하면 살짝 거칠게 운전하는 편이지만, 다른 사람을 태우면 차분하게 안정적으로 운전하려고 노력한다. 이번처럼 낯선 사람들을 모셔가야 하는 경우엔 더더욱 그래야겠지. 그 분들께 미리 오랜만에 하는 운전이고, 다른 사람의 차라서 익숙하지 않음을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수도권을 벗어나는 길은 그래도 아는 길이라 크게 어려움이 없었는데, 제천에 도착해 아침을 먹고 나서 다시 움직이는 길들은 낯선 길이기도 하고, 도로 사정이 열악했고, 그리고 최악인 것은 정말 꼬부랑 꼬부랑 돌고 돌고 도는 길이 이어졌다.


내가 운전한 차에 낯선 분들이 주로 타셨다면, 다른 차량에는 나와 친한 지인들이 탔다. 그 차를 운전하는 친구는 나와 가장 많이 또 자주 여행을 다닌 사람으로 그 친구가 어떤 스타일로 운전하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그 녀석은 다소 거칠게 운전하는 편이고 무엇보다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인 사람이다. 그 녀석이라면 꼬부랑 꼬부랑 끝없이 이어지는 그 길을 빠르게 갈텐데 라고 생각이 들었다. 안전이 가장 우선이긴 하지만, 그 차에 비해 우리 차가 너무 늦으면 그건 또 민폐라는 생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조바심이 났다. 몇 군데 이동하면서 늘 우리 차가 먼저 출발했음에도 도착해보면 그 녀석이 먼저 와 있었다. 다만 운이 좋다고 느꼈던 것은 늘 그 녀석은 주차할 자리가 마땅히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다면, 나는 손쉽게 주차할 자리를 찾았다는 것. 그 녀석이 도착한 이후 그 몇 분 사이에 바로 앞에 주차할 자리가 생기는 일이 연속으로 계속 일어났다. 


주말 이틀동안 제천과 충주에서 꼬부랑 꼬부랑 길들을 워낙 많이 왔다갔다 하면서 운전 실력이 확 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함께 탄 일행들을 고려해 최대한 편안하게 안정적으로 코너링을 하면서도, 함께 이동하는 다른 차량에 비해 너무 뒤처지지 않도록 속력도 신경써야 하는 매우 어려운 미션이었다.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면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일이다. 다른 일행이 없었다면 나도 그 녀석처럼 속력을 중시해 급가속과 급감속을 계속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코너링을 할 수 있다. 내가 혼자 탔다면 말이다. 아니면 그냥 천천히 느긋하게 간다고 생각하면 끝없이 나타나는 회전 구간들마다 속력을 충분히 줄여 안정적으로 운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탄 일행들이 불안해하거나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갈 수 있도록.


제일 힘든 일은 일요일 오후 늦게 서울로 돌아오는 길 운전이었다. 나는 눈이 많이 나쁜 편이고 안경을 낀 교정 시력도 그렇게 좋지 않다. 일상 생활엔 지장이 없고, 낮 운전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야간 운전과 악천후 운전 등의 상황에는 조금 어려움을 느낀다. 오후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금방 해가 저물어 버렸고, 어두워지자 급격하게 눈에 피로감이 들었다. 게다가 마지막 일정이 너무 체력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몸의 피로감도 너무 컸다. 내가 너무 지친 상태라 운전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나 외에는 운전할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든 서울까지 돌아와야 하는데, 정말 힘들었다. 다행히 전날 함께 갔던 일행 중 일부가 일요일 오전에 먼저 떠났기 때문에 우리 차에 여유가 있었고, 일행 중 나와 가장 친한 친구 한 명을 저쪽 차에서 우리 차로 데려와서 조수석에 앉도록 했다. 그 친구가 옆에서 계속 나를 신경 써주고 도와주어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많이 하고, 꾸준히 해야 잘 할 수 있는 법. 운전은 좋아하지만, 많이 하거나 꾸준히 할 상황은 아니라 할 때마다 매번 뭔가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직전, 그러니까 2019년에 오키나와에서 운전할 때에도 일본의 도로와 차량 운전석이 우리와 반대라는,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낯선 환경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그때는 9인승 차량을 운전해야 해서 평소 승용차만 몰아봤던 나로서는 큰 도전이었다. 물론 여러 실수들이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무사히 일행들을 모시고 다니긴 했다.


다리와 달리기


이번 워크숍 장소는 작년 봄에 한번 갔던 곳이었다. 근처에 청평호 유람선 승강장과 케이블카와 모노레일 승강장이 있다. 이참에 청평호를 따라 달려보면 좋을 것 같아서 지도를 살펴봤다. 아쉽게도 달리기에 적합하면서도 호수가를 따라 갈 수 있는 적절한 길은 없었다. 다만 작년 기억을 보면 그 마을이 조용한 편이어서 마을 길을 따라 뛰다가 공설운동장으로 표시되어 있는 공터를 지나 청풍대교 방향으로 뛰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았다. 청풍대교를 건너갔다가 돌아오면 대략 5~6 킬로미터 정도 될 것 같은데, 중간에 그 공설운동장으로 표기된 공터를 좀 돌면 7킬로를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컨디션이 좋아서 더 달리고 싶다면 대교를 건넜다가 바로 돌아오지 않고 한참을 더 가서 10킬로미터 정도까지 뛰어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당일 달리면서 판단하기로 했다.


워크숍 일정을 소화하면서 계속 언제 달리러 가는 것이 제일 좋을까 고민했다. 워크숍은 아마 저녁 늦은 시간까지 할 것이고, 끝나면 뒤풀이를 바로 이어서 하겠지. 그럼 또 새벽 늦게까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것이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달리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럼 오후 늦게 혹은 저녁 시간에 달리고 와야 하는데, 적절한 타이밍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이었다. 계획은 언제나 변경되기 마련이다. 주최측의 계획과 시간이 안 맞아서 일행들과 이후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1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4시쯤이었다. 1시간이면 1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곧바로 달릴 준비를 하고 나섰다. 다른 일행들은 케이블카를 타거나 커피숍을 찾아 간다고 했다.


미리 지도를 보고 생각했던 경로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 골목길들을 먼저 요리조리 달리다가 운동장으로 향했다. 운동장은 잡초들이 무성한 상태였다. 아스팔트를 뛰는 것보다는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아서 좋았지만, 바닥이 고르지 않아서 조금 부담이 되기도 했다. 운동장을 두 바퀴 돌고 청풍대교를 향해 오르막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오르막도 페이스를 유지하며 올랐는데, 뒤로 갈수고 각도가 높아졌고, 오르막이 끝나지 않는 느낌이었다. 결국 뒤쪽은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오르막 뒤엔 내리막이 기다리는 법. 내리막 길을 달리기엔 또 무릎이 문제였다. 처음에 속도를 줄여 천천히 뛰어보다가 다시 걸었다. 언덕에 대비한 훈련은 나중에 따로 해야 할 것 같다. 오르막은 힘들어서 못 뛰고, 내리막은 무릎 걱정에 못 뛰고 하다보니 계속 걷게 되는 것이 아닌가! 두 세번의 언덕을 오르내리고 마침내 청풍대교를 만났다. 아까 차로 건너왔었는데, 이번엔 뛰어서 건너니 보이는 풍경이 완전히 달랐다. 차로 지날 때엔 아무리 멋진 풍경이라도 세워서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것, 더구나 나는 운전을 하고 있었으니 경치를 즐기기 보다는 운전에 집중해야 했다. 이번에는 뛰다가 언제든 멈춰서 사진도 찍고 풍경을 즐기다 다시 뛰면 된다.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면서 속도를 올렸다. 전력질주에 가깝게 달리니 맞바람이 엄청나게 저항했다. 그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강한 바람에 맞서 다리를 건너는 일, 눈을 돌리면 호수와 산과 나무와 하늘이 만들어 낸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곳을 달리는 일, 통행로를 건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로지 나 혼자 이 다리를 건너는 일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러자 올해 이렇게 큰 다리를 건넜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처음은 고흥이었다. 6월 초에 고흥에 갔을때 묵었던 숙소가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를 잇는 나로2대교 바로 근처였다. 밤에 한창 놀다가 먹거리가 부족해졌다. 나는 산책도 할 겸 가장 가까운 편의점을 찾아서 사오겠다고 했다. 마침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기도 했다. 내나로도에서 편의점을 찾아가는 것 보다는 외나로도로 다리를 건너가는 것이 훨씬 더 가까운 것으로 나왔다. 물론 지도앱에서 알려주는 그 위치에 실제로 편의점이 있을지, 그 편의점이 한밤에도 영업을 하는지는 가보기 전에 알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간다고 하니 이미 잠든 사람을 제외하고 다들 따라 나섰다. 일행들과 함께 대교에 딱 들어서는 순간 달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먼저 뛰어서 건너편에 가 있을게 말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와! 기분이 너무 좋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밤바다 그리고 그 다리 위를 달리는 나. 대교라고 하기엔 다리 길이가 짧아서 아쉬웠다. 그래서 건너편을 찍고 다시 뛰어서 돌아왔다. 그때까지 일행들은 채 1/3도 건너오지 않았다. 중간 조금 건너까지 뛰었다가 일행을 만나 함께 걸었다. 일행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편의점까지 뛰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가서 편의점이 위치한 마을까지 도로는 좀 위험했다. 인도가 없었다. 차도도 갓길이 제대로 없어서 밤에 쌩쌩 빠르게 달리는 차들이 행인을 못 보고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우리는 맨 뒷 사람이 휴대폰 손전등을 키고 걸었다. 처음 가장 가까운 위치로 추정한 곳에는 편의점이 없었으나 거기서 다시 조금 더 가서 두번째 편의점은 그 자리에 있었고 영업 중이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몇 가지 음식을 사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올 때에도 나는 다리를 또 뒤어서 건넜다.


두번째는 지난 글에 썼던 월드컵대교였다. 9월 30일 밤에 달리기를 시작해서 다리를 건너갔다가 돌아왔을 때쯤에 자정을 넘겨 10월 1일이 되어 있었다. 지난 글에 자세히 썼지만, 원래 가려던 것이 아니라, 길을 잘못 들어서 우연히 가다 보니 한강을 건너가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사실 길을 잘못 들었다면 당황하거나 짜증이 났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한밤 중에 아무도 없는(물론 차들은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지만) 다리를 건너는 일이 정말 좋았다. 한강을 건너는 거리는 생각보다 길어서 속도를 높여 거의 전력질주에 가깝게 뛰면서 그렇게 긴 거리를 뛴 것도 처음이었다. 한강 한가운데를 지나며 볼 수 있는 야경을 즐기며, 내 몸을 떠밀어 낼 것처럼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이렇게 뛰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 실수로 잘못 들어간 이 길을 다음에도 야간 달리기를 하면 종종 즐기게 될 것 같다.


이번에 건넌 청풍대교까지 다리의 길이로 치면 월드컵대교가 가장 길고, 그 다음이 청풍대교, 마지막이 나로2대교가 되겠다. 앞으로 다리를 찾아 다니며 다리 길이를 찾아보고 기록해두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다른 한강 다리도 도전해보고, 어딘가 다른 지역을 방문하면 그 동네의 다리를 찾아봐도 재미있겠다.


암튼 청풍대교를 건너와서 언덕 몇 군데를 다시 지났다. 아까 올 때 길었던 오르막이 이번에는 긴 내리막이 되었다. 페이스가 신경쓰여서 조금 뛰다가 꾸준히 달리기를 하려면 관절을 아껴야지 생각이 들어서 다시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운동장을 한 바퀴 더 돌고 동네 골목들을 돌았는데, 6킬로미터를 지나서는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어떻게든 7킬로를 찍고 싶었으나 마을 가운데에 있는 화장실을 보자마자 갑자기 강한 요의를 느껴 달리기를 중단했다. 약 6.7킬로. 화장실을 안 만났으면 7을 찍었을텐데, 아쉬웠지만 뭐 청풍대교를 다녀왔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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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4-10-15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눈이 잘 안보이면 운전하기 힘든데 특히 밤운전은 더더욱 힘들지요.저역시도 눈이 안좋아 운전은 엄두도 못내는데 항상 눈건강에 유념하세요.
그리고 달리기 운동을 하시나 본데 트랙이나 아스팔트가 아닌 얕은 산이나 언덕들을 다니실래면 일반 런닝화보단 트레일러화가 더 접지역이 있어서 부상을 방지하실 수 있을실 겁니다^^

감은빛 2024-10-21 22:3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카스피님. 예전에 서재에 눈이 안 좋아졌다는 글 쓰신 것 읽었습니다.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다시 좋아지셔야 할텐데요. 네, 글에 쓴 것처럼 언젠가부터 낮에는 괜찮은데, 밤이 되면 운전이 쉽지 않더라구요. 트레일 러닝을 위한 신발이 따로 있군요.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잉크냄새 2024-10-15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운전을 돌아가면서 하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운전을 좋아하는 편이라 젊은 시절에는 하루 종일도 운전하곤 했는데, 이제는 엉덩이 쑤시고 허리 아프고 집중력도 떨어져 오래 하는 것이 쉽지는 않더군요. 중국 근무 이후 장거리 운전을 거의 하지 않았더니 이제는 꽤나 부담되더군요.

감은빛 2024-10-21 22:36   좋아요 0 | URL
일행들 중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어요. 저는 처음부터 운전을 해달라고 요청을 받고 참여한 경우였습니다. 저도 운전하는 건 좋아해서 흔쾌히 하겠다고 했었지요. 돌아오는 날 예정에 없던 등산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무릎이 아파서 좀 많이 고생했고, 그래서 너무 힘든 상황에 다시 운전을 하려니 그게 좀 부담스러웠어요. 게다가 저도 잉크냄새님처럼 한동안 운전을 안 하다보니 장거리는 익숙치 않기도 했구요.

희선 2024-10-16 0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달리기 아주 좋아하시는군요 남는 시간이 있으면 쉬는 게 좋을 듯한데, 운전하셨으니... 쉬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려서 다리도 달리셨군요 바람뿐 아니라 그곳 풍경을 보면서 달려서 기분 좋으셨겠습니다


희선

감은빛 2024-10-21 22:39   좋아요 1 | URL
희선님. 고맙습니다!
요즘 새삼 깨닫고 있는데, 달리기가 참 좋은 운동이더라구요.
예전에는 장거리 달리기를 하지 않고, 단거리 중심으로만 해서 몰랐는데,
장거리를 하다 보니 여러모로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요.
점점 더 달리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blanca 2024-10-16 0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라식 수술을 하고 밤운전을 접었어요. 헤드라이터 불빛이 너무 번지니 차간 거리가 감이 잘 안오더라고요. 운전도 젊을 때와 달리 가끔 하니 날로 퇴행하는 느낌이이에요. 게다가 초행길에 낯선 분들도 태우셨으니 얼마나 부담이 크셨을지...

감은빛 2024-10-21 22:41   좋아요 1 | URL
아, 라식수술을 하면 불빛이 번지는군요. 정말 위험할 것 같네요.
그렇죠. 아무리 네비가 길을 잘 알려줘도 낯선 길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죠.
또 친한 사람들은 모두 다른 차를 타고,
제가 운전하는 차에는 친분이 적은 분과 처음보는 분을 태웠으니.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블랑카님.
 


배우는 즐거움

지난 주에는 일부러 한강 공원까지 가서 자전거를 익혔다. 두 번이나. 자전거를 겨우 탈 수는 있지만, 아직 제대로 탈 수는 없어서 넓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만 자전거를 간신히 탈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간 것이다. 작년 10월 초에 겨우 타는 법만 깨닫고 몇 번 더 잠깐씩만 연습했다가 그냥 1년을 보내버렸다. 그때 좀 더 열심히 연습했다면 지금쯤은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조금 후회가 되지만, 아마 자전거에 익숙해질만큼 노력을 기울일 필요를 못 느꼈을 것 같다. 지금까지 평생 자전거 안 타고도 잘 살아왔는데, 이제와서 이 나이에 굳이 자전거를 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측면이 있었다. 그것은 겨우 양쪽 패달에 발을 올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정도로는 자전거를 타고 다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직 나는 자전거 타는 법을 제대로 다 못 배웠고, 이게 생각보다 더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주에 1년 가량 신경도 안 썼던 자전거를 다시 익히기로 마음 먹은 것은 주위 사람들의 끈질긴 권유와 그래도 자전거 정도는 배워두는 것이 안 배우는 것 보다는 낫겠지 하고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예 안 배웠으면 몰라도, 그래도 양발 올리고 앞으로 갈 수 있고, 조금 어색하지만 방향도 바꾸고 해봤는데 이만큼 익힌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무쇠소녀단 방송에서 본 유이라는 연예인의 자전거 익히는 과정을 보면서 자극을 받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거의 1년만에 다시 따릉이를 타려니 일단 왼발을 올리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잘 되지 않았다. 넓은 곳에서는 그래도 겁내지 않고 탔는데, 조금만 길이 좁아지거나, 다른 사람들과 자전거들이 다가오면 긴장해서 곧 균형을 잃곤 했다. 그래도 자꾸 타야 익숙해질 것 같아서 열심히 탔다. 그렇게 첫째 날은 다시 퇴보한 감각을 되찾는 정도로 만족했다. 그리고 둘째날은 확실히 달라진 것을 느꼈다. 일단 자전거를 타본 날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타보니 그때의 그 감각들이 금방 살아났다. 두번째 날은 작년 첫 자전거 시도 당시 내 스승이었던 친구 두 사람이 모두 함께였다. 그중 한 명은 누구보다 내 자전거 배움을 응원하는 사람이다. 늘 내게 자전거를 이미 잘 탈 수 있는데, 조금의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해주는 사람. 그날 그 친구가 내 지금 수준에 맞는 몇가지 조언과 함께 몇 가지 기술과 요령들을 알려줬다.

바로 며칠 전의 연습때까지만 해도, 아니 당일 연습을 시작해 조금 익숙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자전거는 무섭고 두렵고 힘든 것이지만 억지로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 약 1시간 가량 자전거를 타다보니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는 것이 재미있고, 즐겁다고 느끼게 되었다. 내 스승이 제일 신경써서 바로잡아 준 것이 주로 땅을 보는 내 자세였다. 고개를 들어 멀리 보고 달리라는 조언에 익숙해지려 노력해보니 비로소 주위 풍경과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달리는 중에 기어를 바꿀 수 있게 되었고, 한 손을 잠시 놓고 땀을 닦을 수 있게 되었다. 기어를 높여 속도를 좀 더 낼 수 있게 되니, 속도감을 느끼며 비로소 자전거가 재미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좁은 길은 두려웠다. 그렇게 신나게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거기가 사람이 거의 없는 넓은 공원이었으니 가능했다. 마주오는 사람들이나 자전거가 보이면 멀리서부터 어떻게든 피할 방법부터 고민했다. 아, 그리고 속도를 줄이고 안전하게 착지하는 법도 익혔다. 더 익숙해져야 하겠지만, 이젠 돌발상황이 생겨도 어지간하면 넘어지지 않고 내려설 수 있을 것 같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두려움이 많이 줄어들었다.

확실한 성과를 올린 그날의 연습을 마치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내 스승이 말했다. ˝형은 참 인복이 좋은 것 같아. 이렇게 훌륭한 스승을 다 만나고 말야.˝ 나는 평소에도 늘 내가 인복이 많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편이라 크게 강조하며 인정했다. 그날 나의 이 훌륭한 스승께서는 내가 자전거를 타는 영상을 잘 찍어서 남겨주었고, 그날 연습을 통해 내가 익힌 것들을 조목조목 정리해서 글로 남겨주었다. 그리고 다음 연습을 통해 익혀야 할 과제들도 글로 남겼다. 이 스승의 성의를 봐서라도 하루 빨리 자전거를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밤의 한강 다리 질주

지난 주에는 한강 다리를 건너 달리기를 하기도 했다. 나는 4년 전에 단거리 달리기를 하면서 나이키 앱을 깔았었다. 달리기를 꽤 하다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고, 거의 1년 가량 운동을 못 하고 쉬었다. 달리기를 안 한 기간은 아마 1년 반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달리기를 하다가 말다가를 반복했다. 작년에 어쩌다 달리기 모임을 이끌게 되면서 다시 열심히 달리기를 시작했고 이때까지도 아직 단거리 중심이었다. 그리고 올해 초에 몇 가지 불편함 때문에 나이키 앱을 지우고 런데이 앱을 깔았다. 그리고 장거리 훈련을 시작했다. 9월 초 처음으로 10킬로미터 대회에 참여한 직후까지 런데이로 달렸다.

런데이와 나이키는 둘 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나이키를 더 오래 쓴 입장에서 나이키에 더 많이 익숙했다. 그래서 다시 런데이를 지우고 나이키를 깔았다. 그런데 지난 몇 달간 내가 열심히 달렸던 기록들이 나이키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특히 그 더웠던 한 여름에 7, 8, 9킬로로 점점 거리를 늘려가며 매일 달렸던 기록이 사라진 것이 너무 아깝다고 느껴졌다. 첫 10킬로를 뛰었던 대회의 기록도 사라졌다. 그래서 나이키 앱에서의 내 기록은 아직 5킬로 미만을 달렸던 것 뿐이었다.

그래서 컨디션이 좀 괜찮은 날에 15킬로미터를 도전하면서 나이키 앱에서 내 기록들을 싹 갈아버리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 시작은 천천히 630정도 페이스로 갔다. 한 2킬로 달려서 몸이 좀 풀렸을 때 속력을 올려 530 페이스를 유지했다. 5킬로 정도 갔을 때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화장실을 찾기 위해 지도를 검색하고 어쩌고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그리고 화장실을 찾아갔다고 다시 산책로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이때 페이스가 많이 떨어졌다. 10킬로미터 600페이스를 딱 찍어서 1시간 안쪽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이 화장실 때문에 실패했다. 암튼 다시 잘 달리다가 최근에 들었던 한강 공원에서 평화의 공원으로 넘어가는 길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마 이 근처라고 했던 것 같은데, 화장실을 지나 고가도로로 올라가는 통로가 나온다고 했는데. 찾았다. 저기구나. 계단과 경사로를 지그재그로 오르니 강변북로를 따라 달리게 되어있었다. 음, 평화의 공원으로 넘어가는 길은 아니네. 일단 이 길따라 가다보면 나오려나 하고 좁은 인도를 달렸다. 아주 작은 횡단보도에서 버튼을 눌러 건너고 나니 저 멀리까지 길이 이어져있었다. 확실히 평화의 공원으로 가는 길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왕 올라왔으니 한번 가보자 하고 달렸다. 달리다보니 방향이 좀 이상했다. 어! 이거 지금 뭐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지도 앱을 열어보니 나는 한강 위에 있었다. 월드컵대교를 건너, 한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10년도 더 전에 출판사에 다닐 때, 우리 출판사는 서강대교 북단 광흥창역 근처에 있었다. 그리고 온라인 서점 그래24는 서강대고 남단 국회 근처에 있었다. 버스로 한 정거장 가서 내려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버스가 배차 간격이 좀 길었던가 암튼 아주 가끔 버스를 코 앞에서 놓친 날 뛰어서 서강대교를 건너가곤 했다. 좀 시간 여유가 있는 날엔 걸어서 서강대교를 건너오기도 했었다. 암튼 이렇게 한강을 뛰어서 건넜던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언젠가는 한강을 위주로 달리기를 하면 잠수교도 건너갔다고 올 생각이었지만, 이날 한강을 건너갔다가 올 생각은 아니었다. 순전히 길을 잘못 든 우연 덕분에 한강을 건너 달렸다. 기분은 꽤 좋았다. 한밤에 아무도 없는(물론 옆으로는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지만, 인도에는 혼자였으므로) 한강 다리를 건너보는 것 꽤 매력적인 일이었다.

이때가 거의 8킬로 정도 달렸을 때였다. 나는 아까 한참 시간을 까먹긴 했지만, 그래도 10킬로 기록을 포기하지는 않았고, 딱 1시간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 하더라도 지난 대회의 기록은 깨고 싶어서 거의 최고 속력에 가깝게 피치를 올렸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다. 다리를 건너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아까 지그재그로 올랐던 경사로를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으로 달렸다. 한참 지나서 10킬로를 넘겼는데 기록은 1시간 2분이었다. 중간에 화장실 때문에 시간낭비를 안 했다면 충분히 1시간 안에 왔을텐데, 조금 아쉬웠지만 기록 달성은 다음으로 조금 미뤄두자고 마음 먹었다.

처음엔 15킬로를 목표로 했는데, 11을 지나서부터 급격하게 지쳐갔다. 12에 가까웠을 즈음에는 걷고 있었다. 호흡과 체력을 좀 회복하고 다시 뛰어아지 했는데, 한번 걸으니 쉽게 다시 뛰어지지 않았다. 제법 오래 걷고 나서야 다시 뛰었는데, 이젠 자세가 다 무너졌음을 느꼈다. 억지로 13을 지나 14를 찍고 멈췄다. 자세가 무너져서 무릎과 발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직 15는 무리구나. 조금 더 연습해서 좀더 컨디션이 괜찮을 때 다시 도전해야겠다.

그리고 나머지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땀이 식으면서 급격하게 추워졌다.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고 걷는 속도를 높였다. 밤이 늦어지니 이제 이 산책로를 걷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달리는 사람들이 아주 가끔 지나갔고, 자전거나 전동킥보드 등이 자전거 도로로 조금 더 자주 지나갔다. 이 순간 내가 자전거를 조금만 더 일찍 배웠으면 따릉이를 빌려 지나갈 수 있었을텐데 라고 생각하긴 했다. 아마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다시 자전거를 익혀야지 생각한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폰으로 두드리고 있는 곳은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농성장이다. 나는 어제 밤 11시부터 오늘 아침 7시까지 야간 지킴이를 맡아 혼자 길바닥에 세워놓은 작은 천막 안, 침낭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글을 다 쓰면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볼 생각이다. 이렇게 날씨가 추운데도 내 주위로 모기가 날아다닌다. 침낭과 옷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곳은 얼굴과 손 밖에 없는데, 아까부터 자꾸 얼굴이 가렵다. 어쩌면 모기에게 물렸는지도 모르겠다. 얼른 이 밤이 지나 아침이 오기를. 다음 지킴이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라며, 눈을 감아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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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10-08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고 요즘 밤에는 바람이 꽤 차던데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되도록 따듯하게 하시고요. 달리기도 자전거도 화이팅입니다.

감은빛 2024-10-15 06:40   좋아요 0 | URL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땀이 나서 따뜻하게 입을 수는 없더라구요.
달릴 때에는 최대한 가볍게 입고,
달리기를 마치고 겉옷을 걸치는 방식으로 하고 있어요.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바람돌이님의 응원 생각하며 조금 더 힘내서 달릴게요.

희선 2024-10-08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전거는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잘 타실 듯하네요 자전거는 한번 타게 되면 잊어버리지 않는 거기도 해요 한참 안 타다 타도 잘 타요 수영도 그렇다고 한 듯하네요 달리기도 잘 하시는군요 저는 걷기만... 다음엔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리시기 바랍니다 조금씩 올려가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달리기는 하다 보면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네요 감은빛 님 즐겁게 하시기 바랍니다


희선

감은빛 2024-10-15 06:43   좋아요 0 | URL
희선님, 응원 고맙습니다!
자전거는 아직 좀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어제도 일정들 사이 비는 시간에 잠깐 탔는데,
여전히 균형 잡기가 너무 힘드네요.

달리기는 이제 그냥 꾸준히 달리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자신감은 생겼고, 꾸준히 달리고 또 달리면
점점 더 잘 달리게 되리라 생각해요.
다행히 달리기를 좋아하니 꾸준히 달릴 수 있어요.

잉크냄새 2024-10-09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이의 경쟁자이군요.

감은빛 2024-10-15 06:37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그 분과 저를 비교하시면 아니 됩니다. ㅎㅎ
무쇠소녀단 방송 보니 그 분은 이미 자전거 잘 타시더라구요.
저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래도 한번 배우겠다고 생각한 이상 꾸준히 배워나갈 거예요.
고맙습니다!
 


골목과 아기

골목을 걷고 있는데, 앞에 아기와 아기의 엄마가 나타났다. 아기는 이제 막 걸음마를 익히는 중이었다. 엄마가 몇 발짝 앞에서 아기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고, 아기는 한두발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나에게 눈길을 잠시 보냈는데, 아기가 엄마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기가 그렇게 활짝 웃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아기는 왜 나를 보고 그렇게 활짝 웃었을까? 내가 아기에게 거의 다가갔을 때, 아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기는 내게 가까이 오기 위해 한두발 걸었다. 너무 예뻐서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아기 엄마가 싫어할까봐 참았다.

그 아기 덕분에 여러 장면들이 떠올랐다. 일단 우리 애기들. 이젠 성인이 되어 자취방을 얻어서 나간 우리 큰 딸 아기때 모습이 생각났고, 사춘기라 부쩍 말을 안 듣는 작은 아이도 아기때 모습이 생각났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 쌀 배달을 갔다가 만났던 아기도 떠올랐다.

어느날 유난히 아이들이 나를 잘 따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농활을 가면 동네 아이들이 모두 나만 따라다녔고, 선배 활동가들의 아이들도 나하고만 다니곤 했다. 그리고 큰 아파트 단지에 있는 정육점 겸 쌀가게에서 일하던 시절에 쌀 배달을 다녔는데, 배달가는 집에 아이들이 있으면 엄마들이 돈을 찾아 여기저기 서랍 등을 뒤지는 동안 아이들과 놀아주곤 했다.

엄청 더운 날이었고, 그날따라 그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점검이었는지 고장이었는지 그래서 멈춰있었다. 쌀 20킬로짜리 포대를 어깨에 메고 배달을 간 집은 아마도 9층이나 10층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필 엘리베이터가 안 되는 날 쌀 배달이라니! 배달시킨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이 40%, 이런 기회에 제대로 운동하겠네 하는 마음이 60%인 상태로 계단을 올랐다. 처음 4층 정도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5층부터 힘들었다. 7층 정도 갔을 때에는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더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쌀 포대를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 정말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려서 물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옷이 다 젖었다. 잠시 쉰 후에 다시 쌀 포대를 메고 발을 떼는데, 발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한층 올라갈 때마다 한번씩 쉬었다. 결국 배달시킨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는 정말 완전히 지쳐서 죽을 것 같은 상태였다.

문을 연 사람은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는 내 몰골을 보고 엄청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먼저 시원한 물 한잔을 부탁했다. 그는 서둘러 차가운 물을 가져다줬다. 그리고 쌀값을 내기 위해 돈을 찾아 분주히 움직였다. 먼저 가방을 찾아 지갑을 꺼내더니, 지갑에 충분한 돈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당황한 그는 여기저기 서랍이랑 장식장 등을 뒤지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잠시만요. 라고 계속 말하며. 그때 어디선가 아기가 기어나왔다. 아기는 나를 보더니 방긋 웃으며 나를 향해 기어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돈을 찾기 위해 정신이 없어서 아기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기는 현관에 서있는 나를 향해 열심히 기어오더니, 내 발을 붙잡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양 팔을 벌렸다. 안아달라는 몸짓이었다. 음, 생전 처음보는 아저씨를 보고 안아달라고 하다니. 남의 아기를 함부로 안아도 되나? 게다가 나는 완전히 땀에 젖은 상태라 아기에게 절대로 좋지 않을텐데. 나는 머리만 쓰다듬어 주고 양 손을 잡아주기만 하고 차마 안아주지는 못했다. 아기는 뭔가 옹알이 하는 소리를 내며 나를 향해 계속 뭔가 요구하는 듯 했는데, 계속 안아달라는 뜻인 것 같았다. 얼른 엄마가 돈을 찾아와야 할텐데. 나는 혹시 아기가 울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돈을 기다렸다. 시간은 왜 이렇게 안 가는지. 겨우 몇 분 정도였을텐데, 엄청 오랜 시간이 걸린 것처럼 느꼈다. 그 와중에 아기는 결국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버렸다. 어쩔수 없이 나는 아기의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안아 올렸다. 내 땀이 아기에게 묻으면 안 되니까 몸에 붙어지 않고 최대한 팔을 펴서 멀리서 안았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가 어디선가 돈을 찾아서 들고 왔다. 아휴 죄송해요! 아닙니다. 아기가 갑자기 안아달라고 해서요. 엄마는 내 손에서 아기를 받아서 자신의 몸에 착 붙이고 돈을 건넸다.

그 짧은 순간 만난 그 아기는 그후로 계속 잊혀지지 않고 가끔 생각나곤 한다. 누구하나 나를 향해 웃어주지 않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방긋방긋 웃어준 아기라니! 지금은 그 아기도 삼십대일텐데. 참 세월이 빠르구나.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겠지만, 부디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자전거와 수영

요즘은 달리기를 하기 위해 살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달리기에 빠져있다. 지난 9월 초 처음으로 대회에 참여한 이후로 올해 안에 한번 더 대회에 참여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10월과 11월에 예정된 달리기 대회를 열심히 찾아봤다. 타 지역에서 열리는 대회는 교통편과 숙박 등이 원활하지 않을 것 같아서 서울과 경기도 정도를 찾아봤는데,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큰 대회와 유명한 대회들은 이미 다 마감이 되어서 신청할 수 없었다. 그러다 11월 말에 서울 시내 한 복판에서 열리는 대회를 찾았다. 혹시라도 마감이 되면 안 되니, 얼른 신청부터 했다. 이번에도 10킬로미터 코스로. 10킬로 코스는 광화문에서 출발해 경복궁을 한바퀴 돌고 숭례문을 거쳐 을지로 방향으로 갔다가 종각으로 가서 마무리하는 길이었다. 이 서울 시내를 달리기로 뛰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운이 좋다고 여겼다. 이제 다음 대회 신청을 해놓았으니, 조금이라도 더 잘 달릴 수 있는 몸을 만드는 일만 남았다. 매일 달리는 것이 즐거웠다. 물론 달리는 중에는 힘들다. 숨이 너무 차고, 자꾸만 걷고 싶고, 멈춰 서고 싶어진다.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더 멀리가면서 숨이 덜 차고, 걷고 싶다는 생각이 덜 들게 되었다.

지난 주 금요일에는 나를 저 첫번째 대회에 신청하도록 꼬드겼던 형을 만나 같이 달렸다. 좀 가볍게 6킬로만 달렸다. 지난 대회에 참여하기 직전에도 그 형과 5킬로를 달렸는데, 그때의 나는 4.5 지점에서 너무 숨이 차서 더 달리지 못하고 걷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한 3주 정도 지난 이번에는 6킬로까지 한번도 안 걷고 끝까지 뛰었다. 확실히 계속 달리다보니 폐활량도 좋아지고, 요,령도 계속 생기고 뭔가 실력이 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달리기를 마치고 그 형과 식사를 하면서 좀 더 얘기를 나눴다. 몇 가지 사소한 부분들에 대한 조언을 해 준 후에 그는 내게 자전거를 얼른 배우라고 했다. 지금 우리는 주로 불광천 천변 산책로를 뛰고 있는데, 불광천보다 한강을 뛰면 훨씬 더 좋다고 했다. 그러니 얼른 자전거를 배워서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가고, 한강을 한 10에서 15킬로 정도 달리기를 한 후에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면 된다고 했다. 불광천 산책로가 시작하는 곳에서 달리기 시작하면 5킬로 정도를 가면 한강까지 가긴 한다. 문제는 더 멀리 달리면 돌아오는 길이 더 멀어진다는 것. 보통 10킬로를 뛸 때는 딱 한강을 보기만 하고 돌아오게 된다. 조금 더 뛰었다가 돌아오면 11킬로가 된다. 암튼 그래서 그 형은 한강의 다리를 만나는 순서를 막 읊어주면서 빨리 같이 한강을 달려보자고 재촉했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배우는 일이 쉽지 않다고 나도 얼른 배우고 싶지만, 익숙해지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했다.

그러니까 거의 1년 전인 작년 10월 초에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봤다. 첫 시도에 바로 타기는 했는데, 비틀비틀, 뒤뚱뒤뚱 대며 움직였다. 어찌어찌 앞으로 가는 것은 가지던데, 문제는 방향을 돌리려고 할 때마다 자꾸 균형을 잃었다. 그리고 앞에 사람이 나타나거나 차가 나타나면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어찌할 줄을 모르게 되어버렸고, 그러다 넘어지기도 했었다. 그 후로 몇 차례 더 연습을 하긴 했다. 자전거를 가르쳐 준 친구가 따릉이 1년 정기권을 선물해줬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나면 가까운 따릉이를 빌려 잠시 타곤 했다. 얼른 익숙해져야지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흥미를 잃었고, 이후로 그 정기권이 끝날 때까지 거의 자전거를 못 탔다.

그 형의 배우라고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최근 본 무쇠소녀단에서 자전거를 못 타는 유이라는 배우가 자전거를 배우는 모습을 보며 나도 조금은 자극을 받아 다시 자전거를 익히고 있다. 어제는 한강 공원에서 따릉이를 한시간 반 정도 탔다. 사람들이 나타나거나 다른 자전거들이 나타날 때마다 잔뜩 긴장을 하곤 해서 겨우 한시간 반 밖에 안 탔는데, 너무 힘들었다. 아직도 나는 균형을 잘 못 잡는구나. 왜 이렇게 비틀거리고 왜 이렇게 불안할까. 자전거라는 것을 배우는 일이 쉬울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앗지만, 참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요즘 내게 자전거를 같이 타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라이딩 이라고 부르던데. 음, 과연 나는 얼마나 더 연습해야 그 라이딩 이라는 것을 한번 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형이 또 나중에 내게 수영을 배우라고 권했다. 사람들은 내가 부산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수영을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 나는 어렸을 때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기억이 있어서 수영을 못 배웠다고 답한다. 자전거는 타 볼 기회 자체가 없어서 배우지 못 했지만, 수영은 아예 물이 무서워서 시도 자쳬를 할 수가 없다. 그런 내게 수영을 배우라고 권하다니! 이번에도 무쇠소녀단에서 나 처럼 물을 무서워했던 진서연이라는 배우가 수영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 부러웠다. 저 사람은 어떻게든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겠지만, 성공했구나. 나는 아마도 시도조차 못 할것 같은데.

그런데 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 형이 왜 자꾸 내게 자전거를 배워라. 수영을 배워라. 하나 싶었더니, 무쇠소녀단이 딱 떠올랐다. 이 사람! 나한테 철인3종경기에 나가게 하려는 속셈이었구나. 처음엔 달리기만 꼬드기더니, 이번엔 철인3종경기까지!!

글쎄, 자전거는 이왕 시작했으니, 제대로 탈 때까지 익힐 생각이지만, 수영은 정말 자신이 없다. 내가 이 나이에 왜 수영까지 배워야 하나? 사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혹시 사고가 나면 내가 구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수영을 배울 생각을 해봣으나, 여전히 물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극복하지 못해 포기했었다. 이젠 아이들이 다 자라기도 했고, 아마 학교에서 수영을 배웠기 때문에 둘 다 수영을 할 줄은 알 것이다.

어쩌면 자전거를 익숙하게 탈 수 있게 된 후에, 계속 수영을 배우라고 압박을 받는다면 그때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달리기와 자전거 두 가지 만으로도 벅차다. 아, 이제 달리기 하러 갈 시간이다.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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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10-04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상없이 안전하고 즐겁게 달리기하세요~
뭔가 배우면 재밌더라고요..저도 우선은 달리기에 집중하려고요ㅎㅎ
오늘도 14키로정도 뛰고 귀가하는 길이에요
화이팅!!

감은빛 2024-10-04 21:50   좋아요 1 | URL
루피닷님도 오늘 달리셨군요. 기분 좋으시겠어요. 저는 오늘은 가볍게 5.5 뛰었어요. 엊그제는 저도 딱 14킬로 뛰었어요. 처음 계획은 15까지 가보는 거였는데, 12에서 이미 지쳐서 14도 겨우 갔네요.

루피닷님은 14 정도라고 표현하신 걸 보니 고수시군요. 멋집니다!

감은빛 2024-10-07 23:55   좋아요 0 | URL
와! 풀코스! 부상 없이 안전하게 완주하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루피닷 2024-10-04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1월초에 풀코스를 덜컥 신청해버려서 그렇게 표현이 되버렸네요ㅎㅎ

고수는 아니고요 초보 탈을 조금 벗은 중수정도로 하시죠...고수분들은 못따라가요

전 열심히 할 뿐이에요^^*

다락방 2024-10-05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망 저랑 함께 나갑시다 철인3종!! 저도 수영은 할 줄 모릅니다만 ㅋㅋㅋㅋㅋ

감은빛 2024-10-07 23:56   좋아요 0 | URL
사실 수영은 정말 자신이 없긴 하지만, 다락방님께서 권하시니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ㅎㅎㅎㅎ

yamoo 2024-10-07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때 자전거 매니아였어요. 오금동에서 한강 여의도까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갔던듯합니다. 2002년 전후로요. 한강변 달리면 정말 끝내줍니다! 자전거가 비쌀수록 엄청 좋아요^^ 10킬로 이상 달리려면 최소 100만원 정도 자전거는 있어야 합니다..ㅎㅎ 생활용 자전거는 너무 힘들어요..

감은빛 2024-10-07 23:59   좋아요 0 | URL
와! 자전거 매니아셨군요. 잘 타시는 분들 엄청 부러워요. 저는 아직 사람 없는 넓은 공원 같은 곳 외에는 제대로 타지 못하는 수준이라서요. 이제 간신히 탈 줄은 안다고 말할 상황이예요. ㅎㅎ

자전거를 잘 타서 나중에 구매할 정도까지 될지 모르겠습니다.

레삭매냐 2024-10-14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옷 저희 옆지기도 수영+자전거
그리고 얼마 전부터 배드민턴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중이랍니다.

수영은 저도 배우고 싶어요.

감은빛 2024-10-15 06:35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의 옆지기님은 이미 수영과 자전거를 다 즐기고 계시군요.
배드민턴도 참 좋은 그리고 재밌는 운동이죠.
요즘 달리기를 하면서 제가 그래도 운동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달리기가 힘들어도 운동이 늘 다 힘들다 여기고 그냥 달리는 것.
자전거가 두렵고 어려워도 늘 운동은 두렵고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불통 그리고 저항


서울혁신파크는 은평구 녹번동에 있다.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누군지 몰라도 이름 참 못 짓는다고 생각했다. 혁신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한자어에 파크라는 친숙한 영어단어를 붙였다. 그래서 여기가 뭐하는 곳인데? 이런 작명이야말로 최악의 예시로서 적절하다. 이 넓은 땅은 과거 질병관리본부가 있던 곳이다. 국립보건원이라고 불렀던 적도 있었다. 이곳은 내겐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곳이다. 처음 환경단체 신입 활동가로 일할 당시에 국내에서 생산하는 대부분의 젤라틴은 미국에서 공업용으로 수입한 소가죽이 원료라는 제보를 받았다. 그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수입된 소가죽을 그냥 쓰는 것도 아니고, 신발 공장이나 가방 공장에서 재단하고 버린 쓰레기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선배 활동가들이 제보자와 함께 젤라틴 공장으로 들어가는 원료를 추적했다. 놀랍게도 제보는 사실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소비자들, 특히 젤라틴이 주로 들어간 과자나 젤리 등을 좋아하는 아이를 둔 엄마들이 무척 화를 냈다. 젤라틴이 들어간 제품 중에 가장 많이 판매되는 것은 아마도 쵸코파이일 것이다. 지금껏 우리 아이가 얼마나 많은 쵸코파이를 먹었는데, 그 재료가 온갖 화학약품으로 처리(미국에서 한국으로 해양 운송하는 수 개월동안 썩지 말라고)해서 긴 시간 항해를 통해 건너온 공업용 소가죽이었다는 것을, 그것도 신발 공장과 가방 공장으로 먼저 가서 각자 필요한 만큼 가위로 재단한 후에 쓰레기로 버려진 것들을 주워다가 만든다는 사실을 알면 누가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오래 전에 이 건으로 식약청, 국립보건원 등과 싸웠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면 다들 엄청나게 놀라며 어떻게 그런 일이 지금 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느냐고 묻는다. 더 놀라운 사실은 결국 그 싸움은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잊혀졌고, 지금도 여전히 국내에서 생산하는 젤라틴은 그런 방식으로 만들고 있을 거라고 추정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젤라틴이 들어갔을거라고 추정되는 과자나 젤리 등을 먹지 못하게 했다. 해외에서는 식품으로 소비될 수 있는 깨끗하고 안전한 재료로 젤라틴을 만든다. 특히 유럽에서는. 그래서 젤리는 무조건 해외 제품을 사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냐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뼈를 긴시간 우려내서 먹는다. 그래서 소뼈도 비싸다. 해외에서는 젤라틴을 만들 때 주로 소뼈를 이용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싼 소뼈를 이용하면 수지가 안 맞으니 소가죽을 끓여서 만다는 것이다. 게다가 과거엔 신발공장과 가죽공장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를 공짜로 가져다 만들었기 때문에 원료비가 들지 않았다. 젤라틴 공장이 신발공장과 가방공장에서 적은 금액일지라도 쓰레기를 돈을 주고 산 일 자체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제보자에게 듣기도 했다.


자, 여기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질문이 있다. 당신이 저 사실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어차피 오래 전에 환경단체에서 싸웠는데 아무것도 바꾸지 못 했다며? 그럼 내가 뭘 더 할 수 있겠어? 그냥 가만히 있어야지. 하고 가만히 있을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식품의 재료가 공업용으로 수입된 원료라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 상황이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내볼 것인가? 적어도 쓰레기로 버려졌던 자투리 소가죽으로 우리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먹거리를 만들지는 말자고 얘기하는 것은 과연 잘못일까?


엊그제는 서울시장이 서울혁신파크 부지의 대부분을 민간 기업에 팔아먹겠다고 설명회를 열었다. 앞서 내가 최악의 작명이라고 했던 그 서울혁신파크는 그간 참 말이 많은 곳이었다. 소위 사회혁신의 실험실이라고, 공적서비스와 사회적경제를 키우는 요람이라고 했던 공간이었는데, 정작 시민들에게는 거기서 무엇을 하는지, 그래서 우리 사회가 뭐가 어떻게 좋아지는지 와닿을 수 없었던 곳이었다. 일단 그래서 정말 그 공간이 소위 말하는 혁신적 실험을 제대로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에 제대로 라는 단어가 붙은 것은 과연 그랬을가 하는 의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공간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과거 서울시는(즉 불명예스러운 성폭력 사건으로 자살한 과거의 서울시장은) 혁신파크라고 이름붙인 이 곳에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협동조합지원센터, 50플러스 지원센터 등 다양한 공적 서비스를 중계하는 조직들을 잔뜩 집어넣었다. 흔히 중간지원조직이라 불렀던, 이 역시도 그냥 들어서는 잘 감이 오지 않는 모호한 이름의 이 조직들은 공무원들이 조직적인 한계로 잘 하지 못하는 일들, 시민들은 사람과 자원을 모으지 못해서 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도맡아 하면서 시민들을 혹은 공동체를 돕는 일을 하는 곳들이었다. 이 여러 중간지원조직들이 혁신파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서울시민들의 삶을 위해 노력하는 공적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은 사실이다.


서울혁신파크의 또 하나의 의의는 공원으로서의 기능이다. 이름 끝에 파크라는 영어단어가 괜히 붙은 것은 아니었다. 여기엔 100여그루의 오래된 나무들과 그 나무들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들이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게 볼 수 있는 이 공간들을 산책로 삼아 걷고, 반려동물들을 산책 시키는 수많은 시민들이 있다. 달리기 열풍이 불었던 최근에는 산책하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달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 역시 동네 언니들과 여기서 달리기 모임을 이어오기도 했었다. 시민들은 저 건물들 안에서 무슨 혁신이 일어나는지, 무슨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무슨 사회적경제가 성장하는지는 잘 몰라도 일단 이 공간 자체를 공원으로 향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서울시 업적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은 현재의 서울시는(즉 급식 공약에 무리하게 직위를 걸어 쫓겨났다가 나중에 공석이 된 서울시장으로 다시 돌아온 현재 서울시장은) 시민들이 갖고 있는 서울혁신파크에 대한 반감과 넓은 땅에 대한 개발 심리를 부추겨 이 곳을 폐쇄하고 재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60층짜리 초호화 빌딩을 짓겠다는 황당한 조감도를 들이밀었다. 여기에 입주했던 다양한 중간지원조직들, 사회적경제 기업들 모두 쫓겨났다. 시민들이 긴시간 자발적으로 만들고 운영해 온 아름다운 공간들도 모두 폐쇄되었다. 한평책방은 말 그대로 작은 공간에서 책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행사를 작은 규모로 시민들이 직접 열고 참여할 수 있도록 운영했던 멋진 곳이었다. 양천리 갤러리는 평범한 시민들이 직접 배운 솜씨로 그린 작품들을 전시하고 관람객인 시민들과 소통하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많은 시민들이 땀흘려 농사를 체험했던 텃밭도 없어졌고, 여기저기 소소하게 존재했던 여러 의미있는 공간들이 차례로 사라졌다.


서울시는 입주기관 및 기업들을 모두 쫓아내더니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를 내세워 민간자본을 유치해 개발하겠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막상 거대한 개발 구상을 실현할 자본을 유치하기가 어려워지니 구체적인 개발 계획도 없이 먼저 일부 건물들을 철거하겠다고 나섰다. 시민들이 매일 이용해온 공원은 이제 철거공사를 위한 울타리가 쳐진 흉물스럽고 위험하고 불안한 공간으로 변했다. 많은 시민들은 이 공원을 그대로 공공의 공간으로 두라고 요구했다. 수백억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유치해 개발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아, 물론 일부 시민들은 이 공간이 개발되면 땅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심리를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땅은 절대 서울시의 황당한 조감도 한 장처럼 개발될 수 없다. 그것은 이미 대규모 개발 후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수많은 선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신촌민자역사,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세빛둥둥섬,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등 그냥 떠올려봐도 몇 가지 예가 나온다. 게다가 은평구에는 이미 방치된 대규모 상업시설이 있다. 그것도 혁신파크 바로 근처에 있다. 현재 NC백화점으로 불리는 건물은 한때 무슨 아울렛이었다가 팜스퀘어로 바뀌었다가 다시 백화점이 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정도 규모의 상권이 형성되기 어렵다는 이유다. 팜스퀘어 시절에도 건물 중간 층들 일부는 거의 대다수 매장이 폐업 상태로 텅텅 비어있었다. 지금은? 최근에 올라가 본적은 없지만, 몇 해 전에도 중간 층 대다수 매장이 비어있었다. 여기에 60층 상업 빌딩을 짓겠다고? 어느 기업이 그걸 투자해서 얼마나 수익을 가져갈 수 있을까?


그래서 현재의 서울시는 아마도 민자유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땅을 민간기업에 팔아먹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그 설명회가 열렸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땅이 서울시의 소유라고, 서울시장이 원한다고 마음대로 팔아먹을 수 있을까? 서울시장은 겨우 임기는 겨우 4년이고, 지금 이 땅을 매각해도 이 땅의 실제 개발은 4년보다 훨씬 후에 이뤄질 것이다. 게다가 우리 시민들은 시장에게 이 땅을 팔아먹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공공의 영역에 속한 땅을 누구 허락을 받고 마음대로 기업에 팔아버리겠다는 건가? 


엊그제 해당 설명회에 참석한 일부 시민들이 이 설명회가 왜 문제가 있는지를 주장하다가 억지로 끌려나왔다. 해당 장면이 사진과 영상으로 퍼지며 또 다시 많은 시민들이 분노했다. 익숙한 장면이다. 국가나 지자체가 개발 사업의 설명회를 열면 생업으로 바쁜 많은 시민들은 관심도 없고, 그런 설명회의 개최 여부 자체를 잘 알 수 없다. 그럼 누가 참여하는가? 두 종류의 사람들이다. 그런 개발 계획이 자신들의 재산을 불리는 데(즉 땅값을 올리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일부 사람들과 해당 개발 계획이 수십년 동안 일군 자신들의 생활 터전을 박살내버려 삶 자체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절박한 시민들이다. 이 시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개발 계획의 수립 과정에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해달라고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지만, 권력은 결국 이들을 설명회장에서 폭력적으로 끌어낸다. 왜 21세기 법치국가이자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상식적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가!


어제 보니 혁신파크의 일부 건물들을 철거하는 작업이 이미 시작되었다. 혁신파크의 민간 매각을 반대하고 무계획한 개발과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들은 지난 8월 말부터 농성장을 꾸렸다. 매일 당번을 정해 농성장을 통해 시민들에게 이 내용을 알리고 서울시에 항의하고 있다.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몇 차례 농상장 야간 지킴이로 참여했다.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길 위에 펼친 작은 천막에서 보내는 것인데, 교통 소음과 여러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쉬운 일이 아니다. 시민들과 전혀 소통할 마음이 없는 서울시의 태도, 이미 철거가 들어간 시점에서의 농성의 의미, 민간 매각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기업들, 위험하고 불안한 공간으로 변했음에도 여전히 반려동물과 산책하고 달리기를 하러 이용하는 시민들. 농성장에서 맞은 오늘 아침에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어제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열렸다. 이번 11차 기본계획은 정말 문제가 심각한데, 오늘은 거기까지 쓸 여력이 없으니, 이 건은 다음에 풀어보겠다. 문제는 어제 이 공청회에 참여했던 18명의 활동가를 수갑을 채워 연행했다는 점이다. 이 활동가들은 시민이다. 시민이면 누구나 정부 정책을 논의하는 공청회에서 의견을 낼 수 있다. 더구나 이들은 지난 9월 7일 열렸던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약 3만명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경찰은 18명을 체포한 것이 아니라 3만명의 시민을 체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제 체포된 활동가들의 SNS를 보니 너무 참담하고 어이가 없었다. 어떤 분들은 앞으로 수갑이 채워져 연행을 당하기도 했지만, 어떤 분들은 뒤로 팔을 꺾어 수갑을 채워서 심각한 고통과 인격 모독이 이뤄졌다. 연행 과정에서 미란다 원칙 고지가 제각각 이뤄졌겠지만, 누군가는 정작 가장 중요한 연행의 죄목을 듣지 못했다고도 했다. 체포되는 당사자가 제대로 듣지도 못하는 고지는 무슨 의미가 있나. 이들이 무슨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도 아닌데 경찰은 폭력을 휘두르며 사지를 들고 끌거 나갔다. 퇴거불응죄. 연행 이후 조사 과정에서 들은 죄목이라고 한다. 애초에 국민들 의견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정책을 만들어 놓고는, 이제와서 퇴거하라는 명령에 불응했다고 연행을 한다. 왜 정부 관료라는 인간들은 수개월간 수천명이 요구한 것들을 무시하고, 말을 안 들어 쳐먹어도 괜찮고, 국민들은 경찰이 한 마디 했다고 그냥 네, 알겠습니다. 하고 내려와야 하나? 


해야할 일들도 많고, 읽어야 할 책들도 많은데 이런 몰상식한 일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는 것이 아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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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09-27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구 담담책방 목사님도 책방을 지켜야 하는데, 정부와 대구시청이 일으킨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나서느라 동분서주 애를 쓰고 있습니다. ㅠㅠ

감은빛 2024-10-08 00:00   좋아요 0 | URL
오늘도 농성장 야간 지킴이를 하고 있어요. 지금 농성장에서 이 댓글을 씁니다. 여기저기 참 문제가 많은 시대예요.

잉크냄새 2024-09-28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야만의 시대로 희귀하는것 같군요.

감은빛 2024-10-08 00:01   좋아요 0 | URL
정작 이 문제를 일으킨 인간들만 왜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것 같아요. ㅠㅠ

희선 2024-10-01 0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라는 거기 사람이 살기 좋아야 하는데... 서울뿐 아니라 여기 저기에서 개발은 사라지지 않네요 지금도 잘 안 되는 곳에 60층 짜리 빌딩을 짓겠다니... 시민과 이야기를 하고 뭔가 하면 좋을 텐데, 그런 건 어느 곳이나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지방도 그럴 듯... 관심을 갖고 살지 못하지만 그럴 듯합니다


희선

감은빛 2024-10-08 00:02   좋아요 0 | URL
개발은 무조건 좋은 거라는 환상에서 좀 벗어나야 하는데, 그걸 모르니 답답합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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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매한 건 우연히 본 어떤 장면 때문이었다. 친한 선후배 활동가들과 여름에 어느 계곡에 놀러 갔을 때였다. 수영을 못 하기도 하고, 계곡에 발 담그고 있는 것 외엔 별로 할 일도 없다 느껴서 나는 물가에 앉아 긴 시간 책을 읽고 있었다. 대부분 물놀이를 즐겼고, 일부는 조금 놀다가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창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던 한 사람이 내 옆에서 책을 읽던 다른 동료 활동가가 잠시 놓아둔 이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읽었던 책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그 순간 물놀이도 잊고 책에 빠져서 정신없이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그 기억은 아마 평생 잊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엔 이 책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많이 재미있고, 많이 팔린다는 정도만 알았다. 이 소설의 지은이가 [빨치산의 딸]을 쓴 그 정지아라는 것도 몰랐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평생을 돌아보는 내용이라는 것도 몰랐다.


나중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후에야 그때 그 선배가 왜 그렇게 이 책에 몰입할 수 있었는지 조금 알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여겼다. 그건 그 선배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그가 담담하게 들려준 몇 가지 이야기들 덕분이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여름 시점에서 비교적 최근의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었다. 그러니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내용이라는 점이 하나의 몰입 포인트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에 대해 들은 기억은 없지만, 일단 그는 운동권이었고, 활동가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좌익과 진보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그 당사자로서의 공감도 컸을 것이다. 또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의 동질감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그 당시 그는 장례식장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도 꺼냈었다. 딸인 자신이 아픈 아버지의 대소변을 치우다보니 자연히 아버지의 성기를 보았던 것이고, 자신의 존재의 기원인 그곳을 본 것이 참 묘한 기분이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상황은 완전히 다르지만, 이 소설 안에서도 주인공인 딸이 아버지의 성기를 보고 처음으로 자신과 아버지가 성별이 다르다고 느낀 날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극적인 기억이 남아있을지 혹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우리 딸들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나와 같은 여성이지만, 아빠는 다르다는 것을 체감하는 어떤 순간이.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빨치산의 딸] 1권과 2권을 다 읽었다. 이것도 참 우연한 기회였다. 사실 [빨치산의 딸]을 읽지 않았다면 곧바로 이 책을 찾아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에어컨 없이 선풍기 두 대만으로 열대야를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에어컨이 있는, 혼자 사는 친한 지인들의 집으로 피서를 다녔다. 그 중 한 친구 집에 며칠 연속 머물 때였다. 주말 낮에 책을 읽으러 카페에 가자고 하길래 따라 나서려는데, 자기 집 책장에서 책을 꺼내오라고 했다. 음, 뭐가 좋을까 생각하면서 눈으로 책장을 훑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이 책 읽었어요? 물으며 꺼낸 것이 [빨치산의 딸] 1권이었다. 당연히 그 옆엔 2권도 있었다. 나는 이 소설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읽지는 못했었고 그의 권유대로 그 책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삼일만에 2권까지 다 읽었다. 정지아 작가가 부모님의 기억을 바탕으로 썼을 [빨치산의 딸]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책에 가깝다 느꼈고, 제목엔 딸이 들어가지만,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본격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각각의 삶을 담고 있는 본문에는 딸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실 나는 각각 다른 조직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만나 결혼하고 딸을 낳았는지 궁금했지만, 그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 모두 산에서 내려오게 된 부분에서 끝난다. 이 궁금증은 이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야 풀린다. [빨치산의 딸]을 읽을 때 전투와 생존 그리고 세상을 바꾸려는 강인한 의지와 열망 등을 읽으며 흥분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아버지 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몇몇 여성 동지들 중 누가 어머니인가가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어머니 편을 읽으면서는 또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고, 두 사람의 접점이 거의 없어서 의아했었다.


앞서 [빨치산의 딸]이 소설이 아닌 역사책에 가까운 것이라고 썼다. 그에 비해 이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소설로서 훨씬 더 짜임새를 잘 갖춘 훌륭한 작품이라 느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겪는 이야기들 속에 아버지 평생의 인간관계와 신념과 소탈한 모습 등을 잘 담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점점 이야기가 뒤로 가면 갈수록 과거 회상들이 더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데, 애초에 이 소설은 그것을 위해 쓴 것이기 때문에 그 답답함은 감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인 딸을 제외한 거의 대다수가 사용하는 전라도 사투리의 힘이 크다고 느낀다. 말맛이라는 것을 어쩌면 이렇게 잘 살릴 수 있을까 감탄을 하며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충청도 사투리의 맛을 정말 잘 살리는 작가가 이시백 선생이라면, 전라도 사투리는 단연 정지아 작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잘 알지 못해서 멋진 대사들을 감칠맛 나게 읽지 못해 너무나도 아쉬웠다. 이 책을 읽는 순간만 고향을 구례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조금 의아하기도 하고 조금 아쉽기도 한 점은 어머니의 비중이 너무 적었다는 것이다. [빨치산의 딸] 프롤로그를 읽었을 때 그려지는 어머니의 어떤 냉철하고 강인한 이미지가 참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정지아 작가가 어머니를 주로 그리는 이야기를 꼭 쓰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빨치산의 딸]과 [아버지의 해방일지]까지 주욱 읽으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나는 참 부모님들께 잘 못하고 살았구나. 이제부터라도 좀 달라져야지 이런 생각들을 했지만, 현실은 또 언제나 생각처럼 되지는 않는 법이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자주 연락이라도 드려야지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다. 또 한 편으로는 아빠로서 우리 딸들에게 나는 어떤 아버지인가 하는 점에서 또 많은 좌절과 후회를 하게 된다. 


나는 과거부터 최근까지 내가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활동가라는 삶을 살아온 이유로 아버지를 들고 있다. 아버지는 노동조합 조합장으로서 노동운동을 하셨고, 독재에 저항해 싸운 민주화 운동가이기도 하셨다. 비록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어 다른 곳을 바라보고 계시지만, 과거의 아버지는 그랬다. 나는 그 과거의 아버지가 참 존경스러운 사람이라고 여겼다. 내 비록 평생 노력해도 그 발끝만큼도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나 나름대로 부끄럽지 않은 운동가, 활동가가 되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한때 같이 일했던 후배 활동가는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나를 '성골 빨갱이'라고 부르곤 했었다. 근데 엄밀히 말하면 성골은 양친이 모두 왕족이어야 하니, 진골 빨갱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해본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지인들의 부모님 부고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모님의 부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부모님도 돌아가실테고, 나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예전에는 이게 이렇게 생각하거나 말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다시 한번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더 잘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돌아간다. 평생을 속만 썩이며 살았는데, 뭐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마는 그래도 노력이라도 해봐야겠지.


이 책은 조만간 큰 아이 책상 위에 말없이 두고 올 생각이다. 아이가 흥미를 느끼고 펼쳐볼 확률은 높지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관심을 가지면 엄청 기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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