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비상행동 주간 아침 캠페인


언제 안 바쁜 시기가 있었냐고 물으면 늘 바쁘다고 답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이번 주는 그야말로 대박 바쁜 날들이었다. 아니 거슬러 올라가면 8월 초 휴가를 다녀온 후 추석 연휴 전까지 1달간도 완전 바쁜 날들이었고, 그 전에 휴가 가기 전 7월 한 달도 엄청 바빴다.


일단 밥벌이를 하는 일터의 업무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올해 봄 1명의 활동가와 1명의 반상근 활동가를 채용해 조금 내 일이 줄어드는 것 처럼 느껴졌지만, 이후 일이 더 많이 늘어났고, 두 분의 신입 활동가는 업무를 익히고, 자신의 몫을 완전히 가져가는데 시간이 걸려 그만큼 내게 업무 부하가 걸렸다. 나는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여겼지만, 그 사이 사람이 늘어난만큼 업무량도 엄청난 속도로 늘어났다. 게다가 자꾸 일이 꼬여서 완결지었어야 할 일들은 자꾸 뒤로 밀리고, 새로 들어오는 일들은 그대로 들어와 그야말로 재앙 수준으로 일이 늘었다. 그리고 그만큼 내 건강은 나빠졌고, 그만큼 내 머리칼은 빠졌고, 스트레스는 늘었다.


게다가 나는 다양한 지역 활동에서 이런 저런 역할을 맡아 참여중이고, 여기에 더해 녹색당에서는 지역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여름에 접어들면서 우리 지역 녹색당은 기후 위기를 본격적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캠페인과 정당연설회 등을 기획하고 추진했다. 그 준비와 실행으로 주말까지 바쳐가며 활동했다.


이번 주는 지역 녹색당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 주간으로 설정하고, 매일 아침 지하철역 캠페인을 펼치기로 결의했다. 명색이 공동운영위원장인 나는 하루도 안 빠지고 나가기로 결의를 했다. 결과적으로는 수요일 아침에 너무 몸이 안 좋아서 하루 빠지긴 했지만, 오늘 아침까지 4일을 캠페인을 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출근해서 일을 해야하는 입장에서 따로 짬을 내서 다른 일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침 출근길 캠페인은 그것 자체로 스트레스다. 그나마 피켓을 들고 가만히 서있는 건 그래도 괜찮은데, 전단지늘 나눠주는 일을 맡으면 힘들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쁜 출근길에 다른 일에 시선을 줄 여유가 없다. 그런데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전단지를 나눠준다? 내 입장이었더라도 싫을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급하게 이동하는 분들은 제외하고, 가능하면 다른 분들의 동선을 막지 않으면서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며, 그 분의 손 위치 가까이 전단지를 내밀어야 한다.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 분이 손을 내밀어 전단지를 받아주시면 감사한 일이고, 그냥 지나치더라도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아침에 몇 백장의 전단지를 돌렸다. 한 편으로 뿌듯한 일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 피곤한 일이다. 아침에 출근도 하기 전에 벌써 퇴근하고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친다.


동네에서 캠페인이나 정당연설회를 하다보면 거의 매번 아는 사람들을 마주친다. 대다수의 지인들은 응원과 격려의 말과 행동을 보인다. 내가 고생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가끔 느껴진다. 그런 태도들은 참 고맙다! 지인이 아닌 모르는 분들이 가끔 응원하고 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정말 고마움을 느낀다. 반대로 거의 어김없이 다가와 딴지를 걸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정당연설회를 하다보면 반드시 그런 분들과 마주친다.


나는 저녁형 인간이라 밤에 혼자 있을 때 업무 효율이 가장 높고, 집중도 잘 되는 편이다. 그래서 야근이 많다. 낮에 여기저기 회의가 많아 저녁이 되어서야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러 아침 출근 시간을 늦게 잡았고, 남들보다는 늦게 일어나고, 늦게 출근한다. 그런데 아침 캠페인을 하기 위해서는 일찍 일어나서 남들 출근할 때 나와 있어야 한다. 이게 또 엄청난 스트레서였다.


새벽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내 꿈에서는 늦게 일어나 캠페인에 늦어서 함께 하기로 한 동료들이 나를 기다리며 원망하는 상황, 내 일터 상급자가 늦게 나온 내게 한 마디하는 상황 등이 무한 반복된다. 편히 자야 몸과 마음도 피로를 회복할텐데, 일찍 일어나 나가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자꾸 꿈에서조차 시달리니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특히 오늘 아침에는 녹색당 차원의 캠페인과 동시에 일터에서도 임원들이 캠페인에 동참하기로 해서 실무자인 내가 피켓을 만들어서 챙겨 나와야했다. 내가 늦으면 그들은 피켓 없이 아무것도 못하고 소중한 아침 시간을 낭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계속 늦게 일어나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택시가 안와서 뛰고 어쩌고 하는 등의 꿈을 수십번 반복해서 꾸었다. 결국 알람이 울려 잠을 깼는데, 잠을 하나도 못 잔것처럼 피곤했고, 오늘따라 발목과 무릎이 아팠다. 하필 오늘. 비틀비틀 절뚝절뚝 내리막길을 어렵게 내려와 택시를 탔다. 딱 맞춰 도착할 줄 알았는데, 다 와서 신호에 걸리는 바람에 3분을 늦어 버렸다.


아! 정말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 아침 캠페인, 아침 회의, 아침 면담, 조찬모임 등등 아침에 해야하는 일이 제일 싫다. 내일은 토요일이니 늦잠을 잘 수 있겠지.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깨우기 전까지 안 일어날테다.


기후 위기를 막으려면 당신의 행동이 필요해!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억지로 억지로 움직였던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아이들을 키우며 밥벌이를 위한 일터 업무 외에 추가로 녹색당 활동을 비롯해 지역 내 다양한 일들을 떠맡아왔던 바로 그 이유다.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이며,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자신, 자신이 사람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이기적인 이유로 움직인다면 세상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는 그레타 툰베리 덕분이다. 작년부터 등교를 거부하고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의회가 기후 비상 선언을 하도록 움직였으며, 최근에는 온실가스를 내뿜는 비행기 대신 최소한의 편의시설도 없는 작은 요트로 2주간 대서양을 건너 뉴욕의 기후위기 국제 회의에 참여할 예정인 청소년 환경운동가 덕분이다. 그의 연설을 몇 번 찾아보았는데, 그 놀랍도록 간결한 논리와 설득력에 매료되었다. 그의 활동을 보고 있자면, 아무리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나 역시 분발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힘들때마다 습관처럼 그의 연설 영상을 틀어놓고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셋째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활동의 관성 혹은 사회적 위치와 명예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까? 대학 시절부터 환경운동을 비롯한 사회활동을 시작했으니, 활동가로서의 삶은 벌써 20년을 넘었다. 그 기간 중 한때 밥벌이을 위한 직업이 학원 강사, 건설현장 노동자, 출판사 노동자 등으로 직업활동가가 아니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 시기에도 업무 외 시간에는 끊임없이 다양한 활동에 참여해왔다. 아이를 키우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돈 벌이에 집중해야 했던 짧은 시간들을 제외하면 실제로 대부분의 시간은 환경운동단체, 사회운동을 위한 법인 등에서 일했다.


그 긴 시간 활동을 이어오며 일정 부분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평가할 만한 지점도 분명 있겠지만, 또 일정하게는 과학에서 관성의 법칙이라고 부를 만한, 그냥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어떤 생각이 자꾸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그 생각의 밑바탕에는 사회적 위치와 인정에 대한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내 동기를 분석해보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동기나 이유도 궁금해졌다. 지금 내 주위에 있는 동료들, 선배나 후배들의 동기는 무엇일까? 언제 터놓고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동기는 무엇인가요?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위해 내일 오후 3시 대학로에 나와주세요! 지역에 계시다면 그 지역 행동에 함께해주세요.


그레타 툰베리의 말처럼 이제는 희망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바로 지금 당신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서울 9.21 13:00 서울 혜화역 1~2번출구
경남 9. 21 17:00 창원 상남동 분수광장
대구 9.21 13:30 대구 동성로 한일극장 앞
충북 9.21 10:00 청주 무심천
전북 9.21 14:00 전주 남천교
부산 9.21 11:00 부산 서면 하트조형물
전남 9.21 14:00 전남 순천 조례호수공원
수원 9.21 17:00 수원역
홍성 9.21 10:20 홍성역
제주 9.21 14:00 제주시청 주차장 제주 그대로가 아름다워 필요어수다 양 행사
제주 9.21 14:30 제주컨벤션센터 로비 UN 세계 평화의 날 행사
















요즘 이 책을 읽으며, 아주 오랜만에 진지하게 책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시기를 넘기면 내 서재에 몇 년만에 서평 하나를 등록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놀림


학창시절에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모두 책받침을 갖고 다녔다. 하나가 아니라 몇 개씩. 아름다운 여성 연예인들의 사진 때문이었다. 흔히 책받침 4대 여신이라고 불리는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 왕조현, 브룩 쉴즈 뿐 아니라, 최진실, 이상아, 김혜수 등 한국 언니들도 있었다. 나는 정작 필기할 때 책받침을 받치면 필기감이 썩 좋지 않아서, 실제로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책받침은 늘 갖고 다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름다운 언니들의 사진을 보고도 누군지 잘 구분하지 못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사람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어느날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이 마구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같은 연예인의 다른 사진들을 들이밀며, "이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야? 다른 사람이야?" 묻고 내가 틀린 대답을 하면 다같이 책상을 쾅쾅 내리치며 크게 웃는 것이다. 나는 그게 부끄럽기보다는 오히려 이상했다. "어떻게 이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야? 분명 다른 사람이잖아!" 그러면 친구들은 다시 크게 웃으며 놀려댔다. "안경은 뭐하러 끼고 다니냐? 눈 갖다 버려라!"


그 시절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친구들은 저 사진들을 보며 죄다 구분한단 말인가?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확인


학창시절에는 인간관계 폭이 좁고, 하루종일 같은 공간에 강제로 묶여 있을 수 밖에 없으니, 내가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수많은 선배들과 동기들을 만나며 누가 누구인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잘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을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나는 대다수가 나와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간혹 유난히 사람을 잘 기억하고 알아보는 친구들이 눈에 띄긴 했다. 그들이 독특한 것이고 대부분은 나와 비슷하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여러번 만나도 쉽게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여러차례 만나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을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그들이 말을 걸거나 아는 체를 하면 그제서야 떠오르긴 했지만, 아주 가끔 오랜만에 만나는 어떤 사람들의 경우, 말을 걸어와도 그가 누구인지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아주 곤란한 상황을 몇 차례 겪으면서 내가 남들과 달리 유난히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그리고 쉽게 기억해내지 못하는구나 하고 깨닫기 시작했다.


화장


내가 잘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주로 여성이었다. 간혹 남성들의 경우도 그랬지만, 대부분 여성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화장법과 머리 스타일의 변화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추정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가족도 못 알아본 경험 때문이다.


언젠가 우연히 티비에서 전유성 씨의 딸이 아빠가 길에서 만나면 자신을 못 알아본다는 얘길 하는 걸 봤다. 그게 마치 한 두번이 아닌 것처럼 말했던 것 같다. 그 순간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긴 하구나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엄마를 한 번, 동생을 두세번 못 알아본 적이 있다. 그 모든 경우 길에서 마주쳤는데, 내게 익숙한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바로 화장의 유무, 미용실, 화장법의 변화 등이 이유였다.


어느날 동생은 버스에 앉아 있다가 들어오는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들었는데, 내가 자신을 똑바로 보고도 지나쳐서 뒤쪽 어딘가에 서서 가더라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어떻게 동생을 못 알아볼 수 있냐고 따졌다. 나는 동생이 나를 붙잡고 말을 거는 순간까지, 즉 동생의 목소리를 듣기 직전까지 이 여성이 왜 나를 붙잡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낯선 여성이 내게 무슨 볼일인가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익숙지 않은 얼굴이 입을 열자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나는 이 사람이 나랑 20년 넘게 같이 살아온 동생이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


어느날 엄마도 길에서 자신을 못 알아보고 지나치는 나를 보고 내 팔을 덥석 잡았다. 그냥 스쳐 지날때는 얼굴을 보고도 못 알아봤지만, 나를 붙잡고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즉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나는 엄마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다행히 엄마는 내가 생각에 잠겨 걷느라 자신을 못 본거라 여기는 듯 했다.


이때 나는 속으로 큰 충격을 받았는데, 내가 사람을 못 알아보는 증상이 생각보다 심각하구나 느낀 것이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흘러 저 위에 언급했던 전유성 씨와 딸의 경우를 나도 겪는게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뻔 했다.(다행히 '뻔'에 그쳤다!)


큰아이는 중학생이 되어서부터 화장을 하기 시작했고, 요즘은 화장을 하지 않으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자신만의 화장법을 찾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화장법이 자주 바뀌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어떤 화장법을 주로 사용하는 것 같고, 볼 때마다 일정한 즉 익숙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되기 전 어느 단계의 어느 날, 나는 아이와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이가 가까이 올때까지 나는 아이를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다행히 가까운 거리에서 나는 아이를 알아보았고 전유성 씨와 같은 경우를 겪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모를 일이다. 아이는 아직 중학생일 뿐이고, 점점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알수 없는 것이니까. 게다가 나는 아직은 어린 작은 아이도 있지 않은가. 그 아이가 자라서 또 어떤 화장을 하고 나타날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초성게임


그런데 최근 조합원 캠프를 다녀와서 내가 단지 사람 얼굴만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흔이 훌쩍 넘어서야 나에 대한 어떤 본질적인 사실 하나를 깨달은 것 같다. 정말 사람은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살아가는 걸까? 과연 내가 아는 내가 정말 내가 맞는 걸까? 어쩌면 남들 눈에 보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는 정말 완전히 다른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1박2일 캠프를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무척 힘들고 피곤했는데, 뭐 그런 일이 한 두번도 아니어서 익숙하긴 했다. 익숙한 것과 힘들고 어려운 건 분명 다른 문제다. 익숙하다고 해서 그 일이 힘들지 않다거나 어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면서 겹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다행히 마지막 조합원 교류 프로그램은 따로 준비하고 진행하실 분들이 있어서 나는 하루종일 긴장하고 있던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여러 행사에서 자주 초성게임을 접했다. 아마 매년 두세번은 이 게임이 포함된 행사에 참여한 것 같다. 보통 팀을 나눠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느 단위에서 하더라도 보통 나와 같은 팀이 된 사람들은 안심하는데, 내가 아는 게 많아서 이 게임을 잘 할거라고 여기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이 게임을 못하는 편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분명히 잘 아는 단어여도 초성만으로 제시된 시각 정보를 나는 그 단어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나중에 게임에 직접 개입하지 않은 진행자나 문제 출제자가 내게 와서 넌지시 묻기도 했다. "일부러 안 맞춘거야? 금방 맞출줄 알았는데.", "아니, 나는 전혀 몰랐어. 그 단어를 모른 것이 아니라 그 초성이 그 단어라는 걸 몰랐어."


여러차례 초성 게임을 겪으며, 문제나 힌트를 읽어주는 류의 게임과 달리 유난히 맞추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번 캠프에서는 혹 이게 내가 늘 '불치병'이라 여기고 있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추리


단서1. 나는 텍스트를 읽고 푸는 문제나 듣고 푸는 문제에서는 크게 어려움 없이 아는 내용을 떠올릴 수 있다.

단서2. 같은 답이어도 초성만으로 단서가 주어지면 전혀 연결시키지 못한다.

단서3. 초성만으로 답을 맞추지 못해 힌트가 제시되면 단서1의 경우에 해당하므로 문제를 맞출 수 있다.

단서4. 어려서부터 유난히 숨은 그림 찾기나 틀린 그림 찾기 등의 게임도 잘 하지 못했다.

단서5. 내가 누군가를 잘 알아보지 못한 몇몇 경우들을 떠올려보면 그들의 얼굴, 머리 스타일, 키나 체격 같은 정보들을 내 기억 속의 어떤 누군가와 매치 시키지 못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단서6. 이 경우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후에야 그들이 누구인지 바로 떠올린 경험이 있다.

단서7. 인터넷 보안을 위해 이상하게 왜곡된 숫자나 문자 인증을 자주 틀린다. 난 분명히 내 눈에 보이는대로 정확하게 입력했는데, 자꾸 시스템은 틀렸다고 한다.

단서8. 내 기억으로 이런 현상은 적어도 중학교 때부터였고, 잘 떠올려보면 이전에도 사소하지만 비슷한 경험으로 엮을 수 있는 기억이 있는 걸 보면, 나는 이런 현상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거나 경험을 쌓아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단서9. 앞으로도 시각 정보만으로 무언가를 판단하거나 해결해야 할 상황이 오면 과연 이 판단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 쉽게 확신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서10. 어쩌면 이 증상은 내 시력이 난시와 근시로 매우 나쁜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덧붙임1. 마흔이 넘어서부터 노안이 왔다고, 내게 아직 노안이 안 왔냐고 묻던 선배들 이야기를 흘려 들었는데, 요즘 가끔 책을 읽다가 촛점이 잘 안 맞는 것 같은 증상을 겪는다. 이게 그 노안인건가? 이제 곧 다촛점렌즈 안경을 맞추거나 돋보기 안경을 하나 더 맞춰야 하는 건가? 아니 왜 난시에 근시에 겹쳐 노안까지 찾아오는거냐구!


불치병


언젠가부터 나는 이 증상 혹은 현상을 불치병이라 여겼다. 하나의 글에는 다 언급도 할 수 없을만큼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내가 자신을 못 알아본 사실에 크게 화를 냈고, 어떤 이들은 당황한 후 별일 아닌 것처럼 대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이후에 나를 무시하는 방식의 복수(?) 택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적도 수없이 많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지금도 누구였는지 궁금한 한 사람이 있다. 내 기억에 분명 한 때 그와 친하게 대화를 나눴던 시간이 있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그를 마주쳤을 때 그가 누구인지, 이름은 뭔지, 어떻게 만났고, 함께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그와 함께 있었던 기억의 조각이 스치듯 떠올랐다 사라질 뿐이었다. 그가 다가와 아주 반갑게 인사를 걸어왔을때, 나는 그가 선배인지, 친구인지, 아니면 후배인지를 얼른 떠올릴 수 없어서 무척 당황했다. 아! 정말 우리말과 문화는 왜 이렇게 사람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그에 따른 대응을 다르게 만들었던 말인가! 만약 영어였다면 그저 태연하게 "Hi" 한마디 했을면 괜찮았을텐데. 너무 당황했던 나는 그에게 아무 대꾸도 못하고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고, 반갑게 웃던 그의 얼굴에서 갑자기 웃음기가 싹 가시더니 이내 황당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내게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할 기회를 주지 않고 돌아서버렸고, 이후 그를 아주 가끔 마주쳐도 그는 나를 무시하고 못 본 척 했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가 과연 누구였는지 알지 못한다. 여러번 곱씹어 떠올려본 기억으로, 그는 아마 우연한 기회에 친해진 친구였던 것 같다. 짧은 기간에 빨리 친해졌고, 그러다 꽤 오래 서로 마주치지 못했고, 그날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내가 그를 못 알아본 것이다.


만약 그를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기면,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날 내가 널 무시하거나 일부러 그렇게 대한 것이 아니라고. 널 금방 떠올리지 못한 건 분명 잘못일 수 있지만, 내가 늘 그럴 수 밖에 없는 증상을 가졌다는 걸 설명해주고 싶다. 이외에도 길에서 마주쳤다가 내가 금방 알아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글을 보여주고 싶다.


어떤 특정한 훈련을 통해 나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앞으로 길에서 내 소중한 가족들을 못 알아보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 지하철역 캠페인에서도 잘 아는 선배의 익숙한 얼굴을 보았는데, 한순간 그 얼굴이 너무 낯설어보여 혹시 아닌가? 잘 못 본가 싶어서 인사를 망설였는데, 문득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으며 "아침부터 고생이 많네!" 하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약 한 달 전부터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오늘 아침 일을 계기로 적어놓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쎄게 매달리기 / 케틀벨 스윙


어제 밤 이젠 키가 많이 커서 내 눈높이 정도까지 자란 큰 아이가 갑자기 물었다. "왜 나는 쎄게 매달리기 안 해줘요?" 오랜만에 들은 단어라 뜻과 연결시키는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쎄게 매달리기'라는 단어는 작은 아이가 지은 이름으로 실은 아이들을 케틀벨처럼 안고 스윙 동작을 하는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네를 타는 기분을 느껴 재밌고, 나는 아이 몸무게 만큼의 강도로 운동하는 효과를 얻는다. "너 어릴때 많이 해줬어.", "기억 안 나.", "너 크고 나서도 많이 해줬어.", "지금 해줘.", "지금은 못 해. 너 키가 아빠랑 비슷한데 어떻게 해."


아마 아이는 문득 내가 작은 아이에게 그 쎄게 매달리기를 해주는 장면이 떠올라서 왜 자기는 안 해줬냐고 물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오래전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던 나는 농활가서도 동네 아이들을 죄 맡아 돌보고 같이 놀았고, 운동 단체 선배들의 아이들도 늘 데리고 놀았다. 아직 어린 아이들과 놀 때는 몸을 움직이며 노는게 가장 좋은데, 그 중 최고는 아무래도 아이의 팔이나 겨드랑이를 잡고 빙글빙글 도는 동작이다. 아이가 순간적으로 공중에 뜨면서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면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 든다. 그때부터 다양한 동작으로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아이들을 마치 바벨이나 케틀벨처럼 여기고 운동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아이는 기분 좋게 놀고, 나는 운동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그런 동작들 중에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건 큰 아이가 언급한 스윙이다. 작은 아이 말로는 쎄게 매달리기. 자기 입장에선 나한테 매달려 있는 동작인데, 뒤로 갔다가 앞으로 높이 올라갔다가 다시 뒤로 떨어지는 동작이 자신에게 '쎄다'라는 단어로 연결되었으리라.


아이들이 자라면서 계속 몸무게가 늘었으니 나로서는 따로 더 무거운 케틀벨을 사지 않아도 운동강도를 높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4~5학년 즈음까지 할 수 있다. 대략 10kg 에서 30kg 가까운 무게로 운동할 수 있다.


이 스윙 동작의 핵심은 케틀벨을 뒤로 당길 때 허리를 펴고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엉덩이를 최대한 접어서 힙힌지(Hip Hinge) 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Hinge 는 경첩이란 뜻으로 접었다 펴졌다 하는 동작을 말한다. 케틀벨 스윙은 힙힌지를 통한 전신운동으로 빠른 속도 많은 횟수를 반복하면 유산소 운동의 효과도 거둘 수 있는 아주 좋은 운동이다.


케틀벨은 크기가 작고 내 손 안에서 컨트롤이 가능하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안은 채 힙힌지를 잘 만드는 것이 이 동작의 핵심이며, 아이의 재미와 나의 운동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아이들이 이 동작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집에서 뿐 아니라 밖에서도 종종 해주곤 했는데, 그럼 어른들도 신기한 듯 쳐다보곤 했다. 그리고 만약 그 장면을 다른 아이들이 본다면, 우루루 몰려와서 서로 나도 해달라고 난리가 난다. 그럴 때는 줄을 세워놓고 차례대로 서너번씩 해줘야 한다.


하루는 그렇게 몰려든 동네 아이들에게 스윙을 해주고 있는데, 트레이너이자 운동처방사로 일하는 분이 보더니 몸무게와 체형이 다른 다양한 아이들을 해주는데도 자세가 완벽하다고 칭찬했다. 그 당시 내가 스윙이란 운동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나이 차가 있는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에서 꾸준히 해주다보니 키가 크거나 작거나 덩치가 크거나 작은 아이들을 안고 힙힌지를 만드는 과정을 다양하게 해봐서 그랬을 것이다.


목마 타고 앉았다 일어나기 / 백 스쿼트


아이를 바벨 대신 안고 다양한 동작을 할 수 있다. 아이가 좋아했던 또 다른 동작은 아이를 어깨 위에 목마 태우고 내가 스쿼트 동작을 하는 것이다. 이는 내 뒷목과 어깨 위에 바벨을 얹고 앉았다 일어나는 백 스쿼트 동작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는 바벨 운동 중에 백 스쿼트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내 관심사는 거의 언제나 스내치에 있었고, 스내치를 잘 하기 위한 동작으로 오버헤드 스쿼트가 있었다. 그래서 스쿼트 운동은 거의 언제나 오버헤드 스쿼트나 맨몸 운동인 에어 스쿼트로 했었다.


그런데 바벨이 아닌 아이를 태우고 하면 아이도 재미를 느끼고 딱딱하고 차가운 바를 목에 얹어 피부가 쓸리는 일도 없다. 아이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니까. 작은 아이의 경우 어렸을 때는 재밌어하다가 조금 자란 후에는 오히려 무섭다고 겁을 먹곤 했다. 내가 운동 효과를 얻으려면 앉을 때는 천천히 앉고 완전히 쪼그려 앉은 풀 스쿼트 자세에서 잠시 멈췄다가 힙드라이브 힘으로 빠르게 일어나야 하는데, 그 동작이 너무 빨라 무섭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태우고 스쿼트를 할 때는 속도 조절이 필요했다.


백스쿼트는 비교적 무게를 올리기 쉬운 온동이다. 아이가 자라도 꾸준히 해줄 수 있다. 다만 나는 어깨 부상과 무릎 부상 이후로 무게를 드는 운동을 거의 하지 못해 한동안 해줄 수 없었다. 지금이라면 큰 아이는 어려울테고, 아직 작은 아이는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가슴 위에 앉히고 윗몸 일으키기


지금은 주로 철봉에 매달려 레그레이즈나 토우 투 바 동작으로 복근 운동을 하는데, 예전에 실내 철봉을 사기 전에는 늘 윗몸 일으키기를 했다. 아, 사실 윗몸 일으키기는 순수 복근 운동을 아니다. 상반신 전체가 아닌 복근 위쪽만 들어올리는 크런치 동작이 오히려 복근 단련에는 더 필요한 운동이다.


여기에 무게를 더하려면 주로 바벨 원판을 가슴에 얹고 하거나 덤벨을 얹고 해야 한다. 이는 차갑고 자꾸 미끄러져서 불편하다. 대신 누운 상태에서 아이를 내 가슴 위에 앉히고 양 팔로 잘 안은 후에 윗몸 일으키기 동작을 하면 효과적이다. 이때 아이가 내 얼굴을 자기 다리 사이에 두게 되는데 그래서 큰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인지 안 하겠다고 했다. 아마 부끄럼을 느끼는 것이리라. 그래서 이 동작은 주로 작은 아이를 올리고 했다.


처음엔 계속 윗몸일으키기 동작을 최대한 정자세로 하려고 노력하고, 힘을 떨어진 후에는 클런치 동작으로 전환해 몇 개라도 더 했다. 완전히 지쳐 도저히 더 할 수 없을 때까지 조금이라도 몸을 들어올려야 한다. 이따 가장 주의할 점은 다리를 반동으로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코어 근육 단련이 필수이고, 이를 위해 벽에 발을 붙인다던가, 의자 다리를 활용한다던가 다양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아이를 배 위에 앉게 하고 아이가 앉은 방향을 달리하면서 다양한 변형 동작을 해 볼수 있다. 작은 아이는 어려서부터 내 몸 위에서 노는 걸 좋아했고, 나는 그 점을 활용해 아이의 무게로 다양한 코어 단련 동작을 해 볼 수 있었다. 


등 위에 앉히고 팔굽혀펴기


영화에도 종종 나오는 아이를 활용한 가장 대중적인 운동 동작은 등 위에 아이를 앉히고 하는 팔굽혀펴기 동작일 것이다. 그런데 이는 무게 푸쉬업에 익숙한 숙련된 사람들에게 가능한 동작이다. 맨몸 푸쉬업을 주로 했고, 무게 푸쉬업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무척 어렵더라. 작은 아이를 앉혀 놓고 간신히 자세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로 억지로 두 세개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정자세로 10회 이상 꾸준히 할 수 있을만큼 힘이 있다면 아이가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텐데, 펌핑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나는 그만큼의 팔힘을 갖지 않았다. 아이도 이 동작만큼은 재미가 없다며 별로 호응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예전에 고민해보고 함께 놀면서 다양한 동작을 생각해보곤 했던 것 같은데, 그러지 않은 지도 어느새 몇 해가 지나 이젠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은 사춘기 큰 아이의 눈치를 봐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아직 어린 작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고 느낀다. 이제 몇 해만 더 지나면 작은 아이도 더이상 나랑 놀아주지 않겠구나 싶다. 아직 놀아줄 때 최대한 열심히 재밌게 잘 놀아야지. 더불어 큰 아이와 잘 놀 수 있는 방법이 뭔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그러다 나중에 이 녀석들이 성인이 되면 아빠랑 같이 술 마셔주려나? 내게 최고의 선물은 아이들이 사주는 술일 것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19-08-04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이들고 함께하는 운동이네요.운동도하고 아이들과의 친밀감도 높이고 일석이조인것 같아요^^
 

어떤 주말


하필 마감일이 일요일이었다. 보통은 금요일 저녁 6시가 마감일인데, 왜 일요일을 마감일로 정했을까? 시간을 거꾸로 돌려 금요일 저녁 7시 50분 무렵 나는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머리 속으로는 어딘가 허름한 술집에 구겨진 듯 앉아 소주 잔을 들어 입에 털어넣고, 바짝 구운 고기 조각을 씹거나 매끈한 하얀 생선 횟를 입에 집어넣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마감 시간이 되기 전에 서류를 완성해서 제출해야 했고, 주말에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무조건 금요일 밤에 일을 해야 했다.


머리 속의 내가 자꾸 허름한 술집에서 소주를 들이부어서 그런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도 마치 취한 것처럼 일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자꾸만 손가락이 엉뚱한 자판을 두드리고, 자꾸만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 튀어나오고 그러다 문득 잔뜩 두드려놓은 A4 절반 분량을 그냥 통째로 지워버렸다. 속으로 욕을 한 마디 하고 담배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웃 사무실들은 대부분 퇴근한 후로 이 건물에 불이 켜진 사무실은 서너개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며 도박을 하나 걸었다. 평소 자주 술 마시는 후배에게 연락해 만약 시간이 된다고 하면 그냥 확 술을 마셔버리고, 일은 일요일 저녁으로 미뤄버리자. 만약 시간이 안 된다고 하면 그냥 억지로 머리를 짜내어 일을 마치고 밤 늦게 혼자 집에 돌아가 뭔가 폭력적인 영화를 틀어놓고 술을 마셔야겠지. 어느 쪽이 될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확률은 반반이니까.


후배는 아직 퇴근전이고 다른 일정은 없다고 했다. 즉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얘기. 녀석은 약 1시간 반 후에 내가 앉아 있는 동네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1시간 반 안에 일을 다 마칠 확률은 거의 없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놓고 술을 마신 후 남은 건 주말에 해야했다. 시간은 총알처럼 흘러가 어느새 후배가 도착했고 우린 가끔 가는 양꼬치 집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날 어쩌면 나는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어떻게 되었던 건지 모르겠다. 1차에서 후배와 평소보다 술을 더 마셨고, 충분히 마셨다며 후배가 돌아간 후에도 나는 술을 더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전화기를 뒤져 이 늦은 시간에 연락이 가능한 사람이 누구일지 살폈다. 누군가의 이름에서 손가락이 멈췄고 나도 모르게 내 손가락은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채 다 피우기도 전에 답이 왔다. 나는 2차로 그와 술을 또 마셨다. 평소라면 아마 1차에서 이미 허용치를 넘겨 술을 마신 상태였을텐데, 그날은 스트레스와 비례해 주량도 올라가버린 것 같았다.


떠들고 웃고 잔을 비우고 소주를 또 시키고 맛도 못 느끼며 안주를 입에 집어넣고 다시 떠들었다. 해가 뜰 무렵에야 술집을 나왔다. 술동무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토요일 저녁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마감이 일요일인 서류 생각이 났는데, 그 생각을 애써 떨쳤다. 마감은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이었다. 나는 냉장고를 뒤져 간단한 술 안주를 만들었다. 왠지 운동을 하고 먹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잠시 했지만, 오늘은 그냥 스킵했다. 밤새 그렇게 술을 마셔놓고 또 술이 땡겼다. 며칠전 사놓은 보드카와 토닉워터와 얼음과 냉장고를 뒤져 만든 간단한 안주 2개를 놓고 다시 술을 마셨다. 술은 술술 잘도 들어갔고, 절반쯤 남아있던 보드카는 금방 바닥났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고, 라면을 끓였다. 라면과 소주는 언제나 환상의 궁합이다.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시고 반복하다가 소주병과 라면을 모두 해치우고 자리에 누웠다. 휴대폰 화면은 어느새 일요일이 되었음을 알렸다. 일요일이 마감인 서류를 잠시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일요일 오후 다시 눈을 떴다. 빨래를 세탁기에 집어넣고 기름때가 묻어서 따로 빼놓은 빨래 두어개를 빨래비누로 문질러 세탁기에 넣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음악을 틀어놓고 설겆이를 했다. 설겆이를 마친고 빗소리를 들으며 오늘 마감인 서류를 생각했다. 담배가 땡겨 우산을 쓰고 나가 담배를 피우고 돌아왔다. 폰을 열고 밀린 대화들을 확인했다. 중국 여성들, 인도네시아 여성, 브라질 여성, 미국 여성 몇 마디 대화를 주고 받았다. "너의 주말은 어때?", "금요일 밤부터 술만 마셨는데, 벌써 주말이 다 지나버렸네." 이런 저런 말들을 주고 받은 후 빨랫대에 지난 일요일 널어놓은 빨래들을 걷었다. 매일 아침 기분에 따라 입고 나갔던 옷들과 양말들을 빼고 남은 것들이었다.


마침내 세탁기가 다 돌아가고 빨래를 널었다. 그제서야 배가 고팠다. 새벽에 먹은 라면과 소주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였다. 냉동실에서 만두를 꺼내 찌면서 다시 이제 마감이 몇 시간 남지 않은 서류를 떠올렸다. 금요일 밤 사무실에서 두드리다 만 상태에서 단 한 글자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누군가 나 대신 그 일을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두를 집어먹으며 노트북을 켰다. 문서를 열었는데, 너무나도 일을 하기가 싫었다. 느려터진 노트북을 보다가 사무실을 나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비도 오고 오가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에라 모르겠다. 생각하고 누웠다가, 아니 마감이 코앞이지 생각에 일어났다가, 몇 글자 두드리지도 않고 다시 눕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자정이 얼마 남지 않아서야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1시간 30분 동안 나는 믿을 수 없는 집중력으로 서류를 완성했다. 만약 금요일 밤에 이 정도 집중력이 생겼다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을텐데, 그렇게 서류에 집착하면서도 애써 외면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홀가분하게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적당히 취했다가 깨서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평소와 같은 주말을 보내지 않았을까?


암튼 완성한 서류를 제출하려고 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첨부파일을 넣었는데, 자꾸만 전송 오류가 떴다. 이제 마감 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왜 이 놈의 메일은 파일을 자꾸만 뱉어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비가와서 인터넷이 문제 안 되나? 낡아 빠진 노트북이 문젠가? 그렇다고 지금 사무실을 나갈 수도 없는데. 다른 방법이 없어 자꾸만 전송 오류가 나는 메일 재전송을 누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마감 시간이 지나버렸다. 자정을 넘겨 어느새 월요일이 되어버렸다.


다시 파일을 열어서 검토하다보니 서류에 첨부한 몇몇 이미지 용량이 너무 커서 전송이 제대로 안 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첨부한 이미지들 십여개를 모조리 따로 저장해 용량을 줄이고 다시 첨부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 문장을 다듬고, 몇몇 표현을 고치고, 몇몇 표의 여백과 정렬을 바로잡았다. 다시 서류를 첨부해 메일을 보내니 이번에는 제대로 전송이 되었다. 마감 시한이었던 일요일 밤 자정에서 2시간이 넘게 지나있었다. 자꾸만 술이 땡겼지만 어제 밤 다 마시고 없었다. 억지로 잠을 청했다.


어떤 월요일


그리고 월요일 아침 접수처에 전화를 걸어 내 서류가 무사히 접수되었는지 확인했다. 담당자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확인했다고 답했다. 마감 시한을 2시간 넘게 넘겼지만 받아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일을 했다. 회의를 하고, 전화를 걸고 받고 또 전화를 걸고 또 회의를 참석했다. 오후가 되어 문자가 한 통 왔다.


일요일이 마감이던 서류 접수를 일주일 더 연장해 다음주 일요일까지 받겠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지만 간신히 욕을 내뱉는 건 참았다. 그저 조용히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피웠다. 서류 첨부가 되지 않아 조바심을 내면서 재전송을 무한 반복했던 지난 밤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첨부한 이미지 전부를 용량 조절해 다시 작성했던 기억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월요일이라 회의가 많았다. 낮에 회의를 두 개나 했고, 여러 기관과 여러 단체와 조율해야 할 일도 많았다. 저녁 7시 반에 시작 예정이었던 회의는 10분 늦게 시작해 1시간을 조금 넘겨 끝났다. 회의가 끝났지만 몇몇 이슈를 갖고 약 30분 넘게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이 건물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이후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몇몇 밀린 일을 처리하고, 화요일 아침 강의 자료를 훑어보며 강의할 내용을 머리 속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알라딘에 접속해 몇 개의 글을 읽고 다다다 이 글을 두드렸다. 시간은 또 금방 흘러 다시 12시가 지났다. 화요일이다. 아침에 강의하러 가려면 이제 빨리 집에 가서 자야할텐데. 집 앞까지 가는 버스 막차는 아마 좀 전에 끊겼을 것이다. 중간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도중에 내려 걸을지, 처음부터 집까지 걸을지 고민해 본다. 


왠지 오늘도 술을 한 잔 마셔야 잠이 들것 같다. 과연 나는 집 근처 편의점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Mind 2019-07-30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술을 정말 너무 좋아하시는군요. 달달한 술맛에 한번 빠지면 기가 막히게 기분이 좋아지지요. 윗글도 보아하니 술기운의 에너지가 써낸 느낌입니다. 구라 솜씨 좋은 소설가의 소설처럼 읽는 맛이 당깁니다. 재밌게 잘 읽었네요. ^^

감은빛 2019-08-04 14:12   좋아요 0 | URL
˝구라 솜씨 좋은 소설가의 소설 처럼˝이란 말씀 칭찬으로 들리네요.

이 글은 술기운으로 쓴 글은 아닙니다.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고 야근 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쓴 글이에요.
고맙습니다!

cyrus 2019-07-30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덜 사게 되니까 편의점에 가서 지출되는 돈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겼어요. 다음 달 휴가를 집에서 보낼 생각인데, ‘휴가 기간에 읽을 책’을 사고 싶다기보다는 ‘휴가 기간에 먹을 것’을 뭘 살지 고민 중이에요.. ㅎㅎㅎㅎ 당연히 ‘먹을 것’에 술도 포함되어 있어요.. ^^;;

감은빛 2019-08-04 14:13   좋아요 1 | URL
책을 덜 사서 지출이 늘었다니!
그렇다고 책을 더 사시라고 말씀도 못 드리겠네요.
휴가 기간엔 뭐니뭐니해도 맛있는 것 잔뜩 먹고 푹 쉬는게 제일 중요하죠!
편안하고 재미있는 휴가 되시기 바랍니다! 시루스님.

카스피 2019-07-30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술을 먹으면 만사가 귀찮아져서 하던 일도 떄려지는 것이 보통 사람의 심리인데 감은빛님은 참 대단하신것 같아요^^

감은빛 2019-08-04 14:15   좋아요 0 | URL
저는 술을 적당히 마셔도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뭐든 다 합니다.
오히려 어떨 때에는 평소보다 더 집중력을 발휘하게 될 때도 있어요.
가끔 일이 남아있는데 술자리를 꼭 가야 할 때도 있는데,
이런 날엔 2차 정도까지만 술을 마시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다시 일을 하기도 하거든요.
 

어떤 강의


업무상 친하게 지내야 하는 어느 분이 본인 조직의 젊은 직원들이 사회적경제에 대한 공부모임을 갖고 있다며, 내게 발전소 견학과 함께 에너지협동조합에 대한 설명을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앞으로 두고 두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일이 많은 관계이기에, 당연히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머뭇머뭇거리면서 별도로 비용이 나올 수 없는 비공식 모임이라 강사료를 드릴 수가 없다고 미안해했다. 그래서 쿨하게 괜찮다고 했다. 까짓 한두시간 떠드는 것 정도야 해줄 수 있다 싶었다. 당장 올해에도 그쪽과 거래가 있을거라 한두시간 투자는 손해가 아니다. 게다가 다른 직원들이 에너지협동조합에 대해 잘 이해하고 관심을 갖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오히려 이득이다 싶었다.


그래서 어제 발전소 설명과 더불어 에너지협동조합에 대한 짧은 강의를 했다. 늘 설명을 하다보면 말이 길어지는 편이라, 어제도 주의하면서 했는데, 역시나 예상보다는 길어졌다. 8명이 참석했는데, 모두 집중해서 들어줘서 고마웠다. 질문도 많이 나왔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어떤 선물


그들이 다들 손에 뭔가 선물 세트 같은 걸 들고 있어서 뭔가 했는데, 다 마치고 나서 강사료도 못 드리는데, 각 단위별로 가져올 수 있는 선물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래서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선물세트 5개와 긴 장우산 하나를 받았다. 다 받아보니 부피도 크고 무게도 제법 나가서 집으로 가져갈 일이 문제였다. 받을 때는 경황이 없어서 몰랐는데,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해보니 대부분 샴푸, 비누, 치야 같은 것들일 것 같았다.


나는 환경단체 활동가로 처음 일을 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부터 샴푸를 쓰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고 물로만 머리를 감는 날이 대부분이고, 가끔 비누와 식초 등을 이용하고 EM발효액을 이용하기도 한다. 게다가 비누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즉, 샴푸와 비누 선물세트는 내게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그걸 안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 받아들고 나오다가 그 생각이 들었는데, 무겁게 이걸 집으로 가져가야 하나 싶었다.


어떤 귀가


강의를 했던 공간은 우리집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딱 하나 있는데, 이 노선은 엄청나게 돌아가기 때문에 평소에는 거의 타지 않는다. 그래서 집으로 갈때 걸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데 강의를 마친 후 본격적인 퇴근시간이 시작되는 6시 반쯤 버스를 타면 완전 만원버스 일텐데, 양손 가득 선물세트를 들고 손잡이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니 버스를 탈수는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거운 선물들을 들고 집으로 걸어갈 수 밖에. 출발하기 전에 경로를 머리속에 그려봤는데, 도중에 만나는 인도를 점유한 재래시장은 사람도 많고 통로가 좁아서 도저히 이 짐을 들고 걸을 수 없겠다 싶었다. 그 경로를 피하려고 골목길을 따라 가는 길을 생각해봤는데, 가보지 않았던 길이라 어떨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대략 45분쯤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처음엔 그래도 걸을만 했는데, 전체 경로의 4분의 1도 못 걸어서 벌써 손잡이 줄이 손가락을 파고들어서 손이 아프기 시작했다. 도중에 우연히 버스를 기다리는 친한 후배를 만났다. 후배에게 하나 가져가라고 제일 부피가 큰 선물세트를 하나 내밀었는데, 그 녀석도 자기는 샴푸나 비누를 쓰지 않는다고 말하며 제일 부피가 작은 톳 선물을 챙겼다. 크 톳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아까 선물세트를 잔뜩 받을때부터 다른 건 다 쓸모 없어도 톳은 맛있게 요리해 먹을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녀석이 가로채버렸다. 그렇다고 하나 가져가라고 이미 말한 마당에 그건 안 돼!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냥 나 대신 녀석 가족이 맛있게 먹기를 바라며 바쁜 발길을 재촉했다.


걸으면 걸을 수록 점점 손가락이 아파왔고, 걸음도 무거워졌다. 이 선물세트들만 없었어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걸어서 갔을텐데, 땀이 줄줄 흘러내려 윗옷과 속옷과 바지가 다 젖어도 땀을 닦을 손조차 없었다. 게다가 절반쯤 걸었을 때부터 소변이 마렵기 시작했다. 막판에는 손이 아파 좀 쉬다 가고 싶었어도 화장실 때문에 멈출수 없었다. 강의하면서 말을 많이 해서 마치자마자 물을 잔뜩 들이켰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다. 그렇게 무거운 선물세트를 들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 집에 도착하니 정확하게 45분이 걸렸다. 만약 소변이 급하지 않았다면 중간에 잠깐씩 쉬었을텐데, 그럼 아마 50분이 넘게 걸렸을 것이다.


샤워를 하고 배가 고파 간단히 먹을 걸 챙겨 먹고 나서 선물들을 풀어보니 거의 80퍼센트가 샴푸와 비누와 치약이었다. 무거운 선물을 들고 고생해서 걸어온 것이 조금 허무했다. 제일 마음에 드는 선물은 텀블러였다. 내가 가진 스테인레스 텀블러들은 모두 크기가 작았는데, 이번에 받은 건 길어서 마음에 들었다. 치약과 칫솔들도 언젠가는 쓸테니, 괜찮았다. 도저히 쓸일이 없을 것 같은 샴푸와 비누는 일단 그대로 다시 넣어놓았다. 선물세트 2개를 다시 원상태로 넣어서 작은 방 구석에 두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줘버려야겠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어제 땀에 완전히 젖어버린 바지를 벗으며, 이제 긴바지를 못 입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공식적인 일정이 있는 날엔 긴바지를 입겠지만, 상황을 봐서 괜찮다 싶은 날엔 반바지를 입고 다녀야겠다.


운동 또 운동


스내치라는 운동에 완전히 매료되어 오래동안 쉬고 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던 게 8년쯤 전이다. 꾸준히 계속 운동을 했으면 좀 달랐을텐데, 도중에 일이 바쁘다는 핑계와 게으름 그리고 2번의 큰 부상으로 인해 운동을 자주 쉬었다. 그 도중에도 아예 운동을 멈춘 것은 아니나 그 강도를 생각해보면 그저 최소한의 현상유지 정도였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다시 본격적으로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게 올해 4월이다. 4월부터 워밍업을 시작해서 6월부터 본격적인 운동에 돌입했다. 그래도 3달 이상 쉬지 않고 꾸준히 운동한 덕분에 어느 정도 몸이 궤도에 올랐다는 느낌이다.


지난 토요일 아침에는 샤워를 하면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이렇게 선명한 복근을 다시 본 게 3년 만인가? 그런데 그날 저녁 아이들과 비싼 식당에서 외식을 하면서 작은 아이가 남긴 음식을 먹어치우느라 과식을 했고, 이번 주에도 저녁 술자리를 비롯해 두세번 가량 과식을 했더니 오늘 아침에는 그만큼 선명한 복근을 볼 수 없었다. 식탐을 줄이지 않으면 복근을 다시 볼 수는 없다. 식탐을 멈출수 없다면 그만큼 운동을 늘려야 하는데, 운동에만 매진하는 직업 운동선수가 아닌 다음에야 직장인, 사회인이 지금보다 운동을 더 늘리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식탐


어려서부터 밥만 많이 먹고 자랐다. 반찬은 거의 먹지 않았다. 어쩌면 그 버릇은 싱겁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에 김치와 같은 짠 반찬이 주로 놓였던 어릴때 밥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김치 한 조각에 밥 두 숟갈. 이런 식이면 최소한의 반찬으로 최대의 밥을 먹을 수 있다. 가난했던 우리 집엔 김치, 깍두기, 깻잎조림 등 짠 반찬들이 대부분이었고, 계란 프라이 조차 자주 보기 어려웠다. 


국민학교 6학년때 수학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기차에서 도시락을 받았는데, 반찬이 죄다 상해있었다. 선생님들은 먹지 말라며 이미 나눠준 도시락을 다시 걷었다. 내가 밥을 먹어보니 밥은 괜찮았다. 그래서 나는 반찬에는 손도 대지 않고 밥만 먹었다. 주위의 친구들과 선생님까지 모두 어떻게 반찬도 없이 밥을 먹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평소랑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가 갖고 다니던 도시락은 밥통만 남들보다 1.2배 이상 컸다. 그리고 반찬은 아주 작은 통에 넣고 다녔지만, 그마저도 늘 남았다. 그 밥을 다 먹고도 컵라면을 사먹기도 했다. 그렇게 먹어도 키도 작았고, 덩치도 작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짧은 기간에 키가 커서 반에서 중간 가량 되었는데, 그 이후 다시 키가 크지 않았다. 지금 키가 당시 키와 거의 마찬가지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첫 MT를 가서 조별로 밥을 해먹었는데, 우리 조는 밥을 많이 해서 다들 밥이 많이 남을 거라 걱정을 했다. 나는 아닐거라고 말하며 밥솥을 끌어안고 밥을 퍼먹었다. 다들 깜짝 놀랐다. 대학 동기들과 술을 마시러 갈 때 만약 회를 비롯해 비싸고 맛있는 안주를 먹을 예정이라면 친구들은 미리 빵을 준비해 술먹으러 가는 내게 먹였다. 그 빵 다 먹지 않으면 술 못 마실줄 알아라.


서울에 자리 잡은 친구 자치방에 처음 놀러가는 날, 친구가 물었다. 밥만 많이 해놓으면 되지? 이렇게 살았어도 나는 내가 조금 많이 먹는 편이지만, 식탐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밥을 좀 더 먹는 편이다. 정도로 생각했다.


내가 식탐이 있구나를 처음 깨달았던 것은 군대에 있을 때였다. 포상 외박을 받아서 혼자 밖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혼자 여관방을 잡아놓고 맛있는 걸 잔뜩 사다놓고 밤새 먹다가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돈이 없었다. 당시 상병 월급은 1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외박을 나왔으니 계좌로 돈을 조금만 보내달라고 했다. 아마 10만원 가량 보내셨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중 5만원 가량 음식과 술을 사는데 쓰고 2~3만원 가량을 숙박비로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속초 시내에 허름한 여관방을 잡아놓고, 그 주위 가게들과 시장 등을 돌아다니며 술과 음식을 샀다. 구체적으로 뭘 샀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다 먹기 어려울만큼 많이 샀던 건 확실히 기억한다. 여관방에 콕 처박혀서 티비를 틀어놓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먹고 먹고 또 먹었다. 정말 먹다 지쳐서 잠들었고, 다음날 아침 늦게 일어나 남은 음식을 마저 먹고 부대로 복귀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그 기억을 떠올리며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먹을 수 있었을까 싶다. 더 무서운 건 당시 내가 그렇게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30대 중반 즈음부터 먹는 양이 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몸매 때문에 일부러 양을 줄였고, 이후로는 먹고 싶어도 더 못 먹겠더라. 그리고 40대가 되어서도 꾸준히 먹는 양이 줄어들었다. 가끔 만나는 대학 동기는 지금 내가 먹는 양을 보고 예전 대학시절을 회상하면 비교도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도 내 기준으로 보면 나는 지금도 많이 먹는 편이라 생각한다. 더 줄여야겠지. 자신은 없지만. 더 줄여서 꼭 필요한만큼만 먹고 살면 좋겠다. 


하지만 이렇게 써놓고도 오늘 저녁 분명 술과 안주를 과하게 먹지 않을까 싶다. 대신 오늘도 운동은 착실히 해야지. 내일 아침에 거울 앞에 설 내 모습이 어떨지 모르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9-07-19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5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7-19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톳스틸러ㅎㅎㅎㅎㅎ
3년만에 재회한 선명한 복근 축하드립니다.

저는 복근이랑 못 보고 지낸지 올해로 40년쯤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30대 중반입니다.....

다락방 2019-07-19 23:49   좋아요 0 | URL
으으 분하다... 톳 스틸러 같은 거 내가 생각해냈으면 좋았을것을.... 으으 .........

syo 2019-07-20 00:56   좋아요 0 | URL
syo가 더 빠르고 그런 날도 있어야지요.
언제까지 센스애서 다락방님한테 밀리기만 할 수는 없다!

감은빛 2019-07-25 23:35   좋아요 0 | URL
톳스틸러! ㅎㅎ

사실 당시에 좀 표정관리가 안 되었는데,
금방 다시 마음을 고쳐 먹었어요.
그 후배 가족이 맛있게 먹으면 다행이죠.

늘 센스가 넘치는 다락방님과 SYO님 덕분에 알라딘 마을이 즐겁습니다!
그래서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