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사진에 박히다 - 사진으로 읽는 한국 근대 문화사
이경민 지음 / 산책자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여성이 부드러운 웃음을 짓고 있는 표지 사진이 무척 인상적이다. 표지는 무척 공을 들여서 제작한 듯하다. 전체적으로는 오래된 종이 느낌이 나는 광택이 없는 재질으로 되어 있고, 사진 부분만 광택이 나는 반질반질한 재질이다. 즉 부분적으로 코팅이 되어 있다. 요즘은 책 표지에 신경을 많이 쓰고 돈을 많이 들이는 추세인 듯 한데, 이 책이 딱 그 전형을 보유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꼭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 책의 경우 사진의 느낌을 잘 살린 좋은 표지임이 틀림없으니까.

사실 실제로 읽기 전에는 좀 더 사진이 많을 줄 알았다. 그리고 '경성, 사진에 박히다'가 제목인 만큼 서울 구석구석의 옛 사진들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펼쳐보니 잘못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이 많다기 보다는 옛 신문기사가 많았다. 이 책은 사진을 통해 한국의 근대, 즉 식민지 조선의 몇몇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좀 무거운 느낌이 든다. 역사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달까. 작가가 굳이 이렇듯 무거운 느낌으로 글을 풀어간 이유가 궁금하다. 책의 내용은 무겁지 않으나, 문체는 무겁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옛 신문기사의 인용도 처음에 몇 개를 읽을 때는 재밌지만 뒤로 갈수록 좀 지루해진다. 책의 내용을 고려했을 때,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쓰기를 했더라면 좋았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통제하는데 사진을 어떻게 이용했는가를 주로 알려주고 있다. 특히 안창남이라는 비행사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고, 1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한용운의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표가 인상적이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유관순의 수형기록표도 만날 수 있다. 2부에서는 사진관의 등장과 대중화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홍경이란 여성사진사와 남편 채상묵이 함께 운영한 사진관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 책의 표지사진으로 쓰인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도 이 부부가 운영하는 경성사진관에서 찍은 것이다. 3부에서는 사진과 관련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가장 흥미로울 수 있는 부분인데도 이상하게 가장 재미가 없었다. 작가의 글쓰기 방법이 달랐더라면 아마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되었을수도 있겠다. 4부에서는 사진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새로운 현상들을 이야기한다. 사진결혼이란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에로사진에 대한 부분은 생각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이 책의 가장 큰 교훈은 사진은 그것을 찍는 사람의 시각에 의해 기록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료로써 사진은 흔히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림이나 글과 달리 눈에 보이는 대로 당시의 상황을 담고 있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으로 보는 옛 모습을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찍는 사람에 의해 한번 연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현상과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때에도 누가 찍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사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 책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네번째 특집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젖가슴을 드러낸 여성의 사진이 나온다. 이 유명한 사진은 이전에도 이미 여러본 본 적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이것이 일본 사진사에 의해 연출된 사진임을 알 수 있었다. 근대 여성이 실제로 젖가슴을 드러내고 다녔다는 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 사진이 연출된 것임을 밝히는 것은 의미가 있다. 실제로 일부 학자들의 가설처럼 당시에 여성들이 아들을 낳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혹은 아이들에게 젖을 물리기 편하기 위해 혹은 짧은 저고리가 유행이어서 사진처럼 젖가슴을 드러내고 다녔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일부러 이런 연출사진을 찍어서 널리 유통시켰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과거의 모습을 자세히 알아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림과 사진이 있다면 좀 더 쉬울 것이다. 그리고 그림과 달리 사진은 훨씬 더 다양한 모습들을 더 자세히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사진에 얽힌 식민지 조선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다만 다음에는 좀 더 읽기 쉬운 글과 더 많은 사진들과 함께 하는 책으로 작가를 만났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과 별의 집 - 엄마가 쓴 열두 달 야영 일기
김선미 지음 / 마고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엄마와 아빠와 딸 둘, 이렇게 한 식구가 한 달에 한 번씩 절기마다 집을 떠나 자연속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온다. 우선 참 부러운 모습이고,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집 아이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선물을 매달 받은 것이 아닌가? 물론 지금 본인들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아,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부모들로서도 마찬가지이겠다. 요즘 세상에 다큰 자식들이 누가 그렇게 선뜻 따라나서겠는가? 이런 아이들을 둔 부모 입장에서도 매달 소중한 선물을 받아 온 것이다. 가만 나는 자라면서 식구들과 야영을 해 본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야영을 해 본건 아마 열 손가락 안에 꼽힐테고, 그 중에서 우리 식구끼리만 여행을 간 적은 한번도 없었다. 모두다 아버지와 관련된 사람들과 단체로 여름휴가를 가서 야영을 한 것이다. 경험이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야영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이런 경험의 차이가 나중에 아이에게 미칠 영향이 얼마나 될 지 상상할 수 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 책에 나오는 부모와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제목인 [바람과 별의 집]이란 말이 참 좋다! 총 열 두 번의 야영기록을 읽으면서 매번 바람과 별과 함께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해봤다. 얼마나 멋진 밤이 될 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이 책의 표지는 그래서 참 매력적이다. 밤하늘 아래에 키 큰 나무가 여러 그루. 그리고 그 아래에 빨간 텐트와 자동차. 하늘에는 빨간 텐트가 보는 이를 유혹하고 있다. 표지에는 달도, 별도, 바람도 보이지 않지만 나는 볼 수 있었다. 이울어가는 초승달과 밝게 빛나는 오리온자리의 별들 그리고 구름을 몰고 가는 바람이 내 머릿속에 환히 그려졌다. 수없이 많은 별이 수놓아진 검은 밤이라는 이불을 덮고 잔다는 것은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친 일상의 피로를 날려준다. 그렇게 상상하고 또 상상하며 책을 읽었다. 자연 속에서 보내는 황홀한 하룻밤을 그려보는 것만으로 위안 받으며 나는 지친 일상 속을 헤쳐 나갔다.

책 뒤표지에는 이 식구들의 조그만 사진과 함께 짤막한 소개문구가 들어있다. 생협운동을 하는 아빠는 빛나는 별. 높은산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큰 딸, 큰 바다란 뜻의 이름을 가진 작은 딸 그리고 산악잡지 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던 글쓴이는 강한 바람이라고 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읽어보니 다 공감이 가는데, 다만 아빠의 경우는 조금 어색하다. 말없이 묵묵히 모든 일을 척척 다 해결하는 아빠는 좀 다른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오랜 기자생활 덕분인지 글쓴이의 필력이 여간 아닌것 같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일단 산악잡지 기자 출신이라서 야외에서의 생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냥 읽기만 해도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야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 책을 천천히 두 번 읽으면서 많은 새로운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이 식구들의 삶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구석구석 가볼만한 곳들을 잘 알려주고 있다. 역시 고수는 이런 데에서도 다른가보다. 남들 다 잘아는 유명한 곳들 보다는 아주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주 좋은 곳들을 찾아다니는데, 그 장소들이 마침 절기랑 잘 맞아떨어져서 멋진 경험을 선사해주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로 내뱉게 된다.

하지만 책의 분량이 적지 않고 총 열두번이나 되는 여행을 담고 있는 데 비해 내용이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글쓴이가 아는게 워낙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에 이런 저런 내용들이 계속 들어가면서 글을 영양가 있게 만드는건 좋은데, 뭔가 하나의 주제에 좀 더 집중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면 좀 더 재미있고 흥미로울 수도 있었겠다고 잠시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또 달리 생각해보면 조금 산만해도 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조금은 시시콜콜한 내용들이 대부분 아이를 위하는 엄마와 아빠의 헤아릴 수 없이 넓고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부분들이어서 읽는 내내 가슴이 따뜻해질 수 있었다. 특히 교육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엄마의 마음을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었는데, 이 땅에서 자식을 키우면서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이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왠지 지루하게 읽힐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책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쓴 열두달 야영일기’라는 부제가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왠지 눈에 잘 안들어올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하니 굉장히 쉽게 잘 읽혔다. 지친 일상속에서 다만 하루밤만이라도 도시를 떠나 자연속에서  살 수 있는 이들의 용기와 결단력이 참 부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가 최규석 님께서 기륭온라인카페(http://cafe.daum.net/kirungRelay)에 올려주신 그림입니다.
아마도 제가 취재글을 쓰기도 했던 지난 10월 20일 사태를 염두에 두고 그린 그림인 듯 합니다.
아래 글을 참고 하시면 왜 이런 그림이 나왔는 지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http://blog.aladin.co.kr/idolovepink/2363317


너무나도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최규석님께서 마음대로 쓰라고 했으니, 시간날때 여기저기 맘껏 뿌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는 지금까지 두 명의 남자친구를 만들었다. 첫 남자친구는 아이의 첫번째 어린이집에서 만났다. 같은반(아이들은 나이별로 반을 나눈다. 그러니 같은 나이라는 소리다.)인 남자아이중에 제일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였다. 둘은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날부터 엄청 친해져서는 아침에 아이를 데려가면 남자아이가 뛰쳐나와서 서로 반겨주고, 저녁에 데리러갈때까지 꼭 붙어있었다. 그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이나 아이들 사이에서도 거의 공식커플로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아이가 제 고모의 결혼식에 한번 다녀온 다음부터는 틈만나면 머리에 손수건을 덮어쓰고는 '딴딴따단 딴딴따단 ~~'하고 둘이서 결혼식 흉내를 내곤 했다고 선생님들은 전했다. 그렇게 1년넘게 친하게 지내다가 그 남자아이를 비롯해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모두 그 어린이집을 그만두는 상황이 벌어졌다.(도중에 어린이집 원장이 바뀌면서 선생님들이 자주 교체되고 이래저래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이 모두 어린이집을 옮겨버렸다!) 전혀 상황을 모르고 있던 탓에 우리 아이만 혼자서 한 달을 더 다녔다. 친구도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동생들이랑 함께 지내면서 한 달을 보냈다. 그 한 달동안 아이엄마랑 나랑 열심히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다녔다.

공식커플이었던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잠시 헤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새로 옮겨간 어린이집 원장이 알고보니 교육자로서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 카테고리 아랫쪽의 글들을 보면 이전 어린이집 원장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이 원장과는 아직 관계가 완전히 정리되지 못했는데,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더니 자신이 잘못한 결과에 대해서는 안면몰수하고, 오히려 우리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무척 화가났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원장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인간이 덜되어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데, 그 나이가 되도록(나이가 많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가정의 엄마이고, 어린이집의 원장을 할 정도의 나이니까 하는 소리다!) 인간이 될 기회를 못 가졌다는 사실에 인간적 연민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원장보다는 그 밑에 있는 선생들이, 선생들보다는 아이를 맡기고 있는 부모들이 더 불쌍하다! 무엇보다 가장 불쌍한 건 그 인간이 덜된 원장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하는 아이들일 것이다! 아이를 볼모로 붙잡고 부모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협박하는 원장 밑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이야기가 잠시 새버렸는데, 암튼 그렇게 헤어져 있던 두 아이는 세 달 뒤에 다시 만나게 된다. 우리 아이가 그 남자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옮겨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랫만에 만난 두 아이는 함께 지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반이 달랐기 때문이다. 아이가 처음으로 다녔던 어린이집과 달리 여기는 규모가 굉장히 큰 곳이어서 같은 나이인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반이 여러개로 나뉘어 있었고 먼저 들어온 남자아이와 뒤에 들어온 우리아이는 다른반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둘이 예전 어린이집에서 공식커플이었다는 사실이 여기 어린이집에도 알려져 있었다.

내가 여기 어린이집으로 아이를 처음으로 데려간 날 아침, 아이는 낯선 방(교실)과 낯선 선생님들 그리고 낯선 친구들에 둘러쌓여 울먹이고 있었다. 나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복도에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우리 아이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옆반 선생님이 그 남자아이를 데려왔다. 우리 아이는 아는 얼굴을 만나자(그것도 늘 붙어다녔고, 딴딴따단도 수십번 했던 남자친구가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울음을 그치고 다가가서 껴안았다. 마치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을 본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남자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오랫만에 친했던 친구를 만났으니 반가울듯한데 그저그런 표정이었다. 우리 아이가 자꾸만 그 남자아이에게 다가가려하고 껴안으려 하는데 반해 그 남자아이는 뻣뻣하게 서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그 아이를 데려온 옆반 선생님이 작은 목소리로(그러나 복도까지 다 들리는 목소리로) 요새 같은 반의 어느 여자아이랑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우리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갑자기 큰 목소리로 지지말라고 응원을 해줬다. 기필코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고 선생님들끼리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린이집을 나왔다.

새로 옮긴 어린이집에서 두 달째 되는 요즘 우리 아이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들에 의하면 아이랑 같은 반에 예쁘장하게 생긴 어느 남자 아이가 있는데, 우리 아이가 요즘 그 남자아이랑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그 남자아이 이름을 대고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곧바로 좋아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새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 종종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아이의 이름을 대면서 요즘 자주 만나냐고 물었는데, 못 본다는 대답이 계속 돌아왔다. 아이는 어느새 옛 사랑을 잊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선 것이다! 며칠 전에는 저녁에 아이를 데리러갔더니 원감님이 아이를 데리고 계셨다. 원감님이 나를 붙들고는 '아버님 어떡해요. 이젠 ㅇㅇ(옛사랑)은 안좋아하고 ㅁㅁ(새로운 사랑)만 좋아한대요. 제가 순서를 바꿔가면서 열번도 넘게 물어봤더니 계속 ㅁㅁ만 좋아한다고 하네요.'라며 다소 호들갑스럽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아이에게 남자친구랑 엄마랑 아빠중에 누가 제일 좋은지 물어봤다. 아이는 남자친구가 제일 좋고, 그다음으로 엄마가 좋고, 그 다음에 아빠가 좋단다. 내가 제일 꼴찌가 되어버렸다. 아이가 아빠보다 남자친구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서 조금은 서운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08-11-20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새 어린이집에 금새 적응한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고, 기쁜 일이죠.축하드려요.

감은빛 2008-11-20 19: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정말 이곳 어린이집에는 빨리 적응하더라구요.
마침 그때가 아이엄마가 해외출장중일때여서 저 혼자 아이를 돌보고 있었을 때라서,
만약 아이가 적응을 잘 못하면 엄청 애먹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다행히 엄마없는 동안 잘 지내주어서 얼마나 대견한지 모릅니다!
 
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온라인 서점을 들락거리며 이 책의 광고를 여러 차례 보았다. 파란 하늘과 노란 들판의 표지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제주 여행 책이거니 싶었다. 자세히 보지 않은 탓에 ‘제주’와 ‘여행’ 사이에 끼어 있는 ‘걷기’라는 단어를 놓친 것이다. 나중에 어느 자리에서 여행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은 <제주 걷기 여행>이 잘 팔린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바로 광고로 자주 접했던 그 책이었다.

책을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두꺼워서 조금 놀랐다. 그리고 표지 위쪽에 투명한 걷는 발 모양의 그림이 있는데 도드라져 있어서, 만져보면 손끝으로 오돌도돌한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손이 그 그림에 닿으면 그 느낌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다시 표지를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책 뒤쪽에는 작은 책이 하나가 붙어 있었다. 책 속에 저자를 도와준 사람으로 나오는 무적전설이란 사람이 쓴 것이었다. 실제로 올레 길을 찾을 때, 가져가면 유용할 정보들이 들어있었다. 가위질 표시대로 잘라서, 손에 들고 다니면서 볼 수 있도록 작고 얇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당장 제주로 달려가고 싶은 유혹과 싸우는 것이었다. 읽는 내내 시원한 제주의 하늘과 바다가 머릿속에 그려지며 나를 유혹했다.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당장이라도 제주로 달려가고 싶은 기분을 참아 넘기느라 무척 힘들었다. 내년 봄에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꼭 가야겠다고 다짐하며 가까스로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여러 차례 제주를 다녀왔으면서도 참 제주를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자가 직접 책 속에서 말했듯이 차를 타고 몇몇 곳만 들렀다가 가는 여행은 정말 제대로 된 여행이라고 볼 수 없었다. 내 발로 직접 걸으면서 길 가의 작은 풀꽃까지 즐겨야 제대로 그 곳을 다녀갔다는 느낌을 품을 수 있으리라.


전체적으로 앞부분은 제주 올레 길을 한 코스 한 코스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겨있고, 그 뒤로는 저자가 오랜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산티아고 순례 길을 다녀오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리고 올레 길을 다녀간 사람들이 올레 길을 접하고 느낀 내용들이 소개되어 있고, 마지막에는 저자의 이웃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앞부분은 무척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었지만, 산티아고 길을 다녀온 다음 부분, 그러니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조금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뒷부분에서 책 읽는 시간이 길어져버렸다. 제주 올레 길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이 참 재미있었는데,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해주었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 앞부분이 책 전체의 분량으로 봤을 때 대략 삼분의 일 정도 되고, 중간에 산티아고 길을 다녀오는 부분이 또 삼분의 일 정도 되고 뒷부분이 나머지 삼분의 일 정도 되는 것 같다. 전체적인 비중 면에서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듯한데, 두꺼운 책에 비해 내용이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뒷부분을 재미있게 읽을 독자들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랬다는 얘기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책 본문에서는 올레길 6코스까지 밖에 안 나오지만, 무적전설의 별책부록에는 7코스까지 나온다. 그러니까 본문이 편집 작업에 들어가 있는 동안 7코스가 개발되었고, 편집 막바지에 작업했을 별책부록에는 그 내용이 들어간 듯하다. 시작점인 1코스를 제외하고 2코스부터 6코스까지는 이어지는데, 1코스만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7코스는 1코스에서 이어져 있었다. 내년에 가족과 함께 찾았을 때, 1코스에서 이어지는 8, 9 코스들도 걸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름다운 섬 제주를 걸어서 여행할 수 있는 길을 만든다니 참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차를 타고 하는 여행의 한계에 대해서는 나도 여러 차례 느꼈다. 비싼 비용을 들여 여행을 가기 때문에 그 지역의 유명한 관광지들을 다 돌아보기 위해서는 차가 필요하다. 만약 유명한 곳들을 다 돌아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곳을 오래 천천히 돌아보려면 걷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올레 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 정도 절충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올레 길로 해안을 죽 이어갈 수 있다면, 저자의 바람처럼 올레길이 산티아고 길처럼 국제적으로 유명한 길이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제주를 갔을 때, 섭지코지의 불행을 목격했다. 대규모 관광단지를 짓는 듯 온통 공사 중이어서 차도 막히고 경관도 훼손되어 있었다. 거기에 무슨 드라마의 세트장인지가 경관을 훼손하면서 버젓이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영업을 하고 있어서 씁쓸했는데, 뭔가 더 어마어마한 게 지어지는 모양을 보니 다음부터 섭지코지는 절대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있어서 잘 모르지만 제주의 개발열풍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정말 제주를 위한다면 대규모 관광지의 개발보다는 여기 저자가 한 것처럼 의미 있는 일들이 훨씬 더 필요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제주말로 게으름뱅이라는 간세다리가 저자의 별명이란다. 저자는 올레 길에서는 간세다리가 될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 자신이 간세다리의 방식으로 산티아고 길을 다녀왔고, 올레 길도 개척했으므로 그런 것이리라. 일중독으로 정신없이 살아온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걷기에 빠져들면서 삶에서도 간세다리가 되었다고 소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요즘 일중독이 되어 정신없이 살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신경을 아이와 아내에게 쏟으려고 노력하지만 일에 지쳐 피곤하다보니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나도 간세다리가 되어 삶을 천천히 즐기면서 제대로 살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한번 해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딸기 2008-11-02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섭지코지의 불행... 넘 섭섭하네요. 제주도에 예닐곱번 가보았는데, 저는 제일 좋아했던 곳 중의 하나가 그곳이었어요.

감은빛 2008-11-03 11:36   좋아요 0 | URL
저도 섭지코지가 제주에서 제일 좋아했던 곳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작년 여름에 갔을때 대대적인 공사중이더군요. 다시 가면 실망할 것 같아서 되도록 안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순오기 2008-11-16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여러권 샀는데 다 선물로 나갔고~ 드디어 어제 내 책이 도착했어요.
스무살 큰딸이 세살일 때 시어른들 모시고 갔다 온 제주도, 큰딸이랑 제주올레를 꿈꾸고 있답니다.
이주의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감은빛 2008-11-19 13:52   좋아요 0 | URL
와 여러분들께 이 책을 선물하셨나보네요. 선물 받으신 분들이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제가 댓글을 늦게 읽었는데, 지금쯤이면 이 책을 어느정도 읽으셨겠군요.
책도 재미있지만, 정말 빨리가서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따님이랑 함께 걸으면 무척 좋을실 것 같네요!
앗! 축하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적립금이 들어와 있어서 깜짝 놀랐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