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창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리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낮에도 구름 때문에 밝지 않은 날이었다. 시계를 보지 않았다면 밤이 되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몇 시간이나 엎드려 있었을까? 읽던 책을 덮으며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시계를 본 기억이 없다. 하긴 시간이 뭐가 중요하겠어. 오랜 시간 책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겠지. 몸을 일으켜 담배를 하나 빼어 물고, 성냥갑을 열었다. 성냥 하나를 꺼내려다가 그만 성냥을 쏟아버렸다. 허리를 굽혀 바닥에 흩어진 성냥을 주으려다가 그냥 털썩 앉아버렸다. 성냥 하나를 집어들어 긋는다. 치익. 매캐한 냄새와 함께 불꽃이 일어난다.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당기고 손을 흔들어 불을 끈다. 꺼질듯 다시 살아나는 불꽃을 잠시 살펴보다가 재떨이에 던진다.

 

창가로 다가앉아 창문을 살짝 열었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비가 들이쳤다. 빗소리를 들으며, 바람에 날리는 빗방울을 맞으며 담배 연기를 창 밖으로 내뿜어본다. 펴져나가는 하얀 연기와 빗방울을 바라보면서 손은 또 담배를 입술로 가져온다. 담배를 빨아들이며 담뱃잎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맨 처음 담배를 피웠을 때부터 이상하게 이 소리가 좋았다. 담배 연기를 폐 깊숙히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는다. 곧게 뻗어가던 하얀 연기가 바람을 만나 흩어진다. 필터까지 타 들어온 담배를 재떨이에 떨어뜨리고 벽에 몸을 기대었다.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시계를 본다. 며칠째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으니, 며칠째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혼자말을 하는 것은 너무 처량해 보일 것 같다. 하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 처량해 보일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냥 혼자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문득 이러다 내가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화기를 쳐다본다. 며칠째 한번도 울리지 않는 전화. 나는 누구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면서 자꾸 전화기를 쳐다본다.

 

흠칫 찬 바람에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고,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는다. 창문을 닫기 직전 골목 맞은편 집의 창문을 슬쩍 쳐다본다. 어제 밤에는 저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는데, 오늘은 아직 불이 켜지지 않았다. 아니 벌써 불이 켜졌다가 다시 꺼진 건지도 모른다.

 

얇은 겉옷을 걸치고 방안을 서성거려본다. 좁은 방을 몇 바퀴 빙빙 돌면서 전화기를 만지작 거렸다. 전화기를 보다가 시계를 보다가 발은 문득 현관으로 향한다. 현관으로 내려서기 직전 동작을 멈춰 한동안 신발을 노려본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우산은 없다. 그리고 갈 곳도 없다. 마치 춤을 추듯 몸을 빙글 돌렸다. 다시 창가로 돌아와 앉아 창문을 살짝 열어본다. 비탈진 골목길에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 멀리 노란 등이 하나 켜져 있지만, 창문 아래는 어둡다.

 

문득 누군가 이 창문 아래를 지나가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상상해본다. 여성이었으면 좋겠다. 빨간 우산을 쓰고 긴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비탈길을 걸어내려오는 여성을 머리 속으로 그려본다. 치마를 입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어서 비탈길을 내려오는 걸음을 불편해 하는 여성. 왼쪽 어깨에 핸드백을 걸고, 왼손으로 우산을 들었다. 오른 손에는 전화기가 들려있고, 검지 손가락만 뻗어서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또각 또각 골목길을 내려온다. 창문 근처까지 내려왔을 때 여성의 전화기에서 벨이 울린다. 여성은 창문 바로 아래에서 전화를 받는다. 빨간 우산만 내려다보이고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 우산 아래에서 여성의 목소리만 들린다.

 

"여보세요."

"어, 어딘데?"

"지금 나왔어. 어. 어."

 

건조한 목소리다. 여성은 걸음을 멈춘 상태에서 계속 통화를 한다. 빨간 우산은 창문 바로 아래 멈춰있다.

 

"뭐? 이제와서 그러면 어떡해? 벌써 나왔다고 그랬잖아!"

 

갑자기 여성의 목소리가 날카로와졌다.

 

"됏어! 끊어!"

 

여성은 소리를 지른 후 몸을 홱 돌린다. 우산이 돌아가면서 빗물이 사방으로 튀긴다.

 

"아이씨! 신경질나!"

 

내려올 때와는 달리 빠른 걸음으로 여성은 올라간다. 여성은 저만치 멀어졌다. 신경질적인 걸음으로 계단을 한 두걸음 오르다가 구두 굽이 뚝 부러진다. 여성은 비명을 지르며 발목을 삐끗 했고, "아이씨! 짜증나! 진짜!" 소리를 한번 질렀다.

 

콰르르르릉 갑자기 들린 천둥 소리에 상상속의 여성이 사라져버렸다. 번쩍하는 번개는 못 본 것 같은데. 상상 속에 빠져 있느라 몰랐던 걸까? 벽에 기대어 앉아 발가락으로 담배갑을 끌어온다.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고는 또 발을 쭉 뻗는다. 이번에는 공책을 발가락으로 끌어왔다. 연필도 끌어오려고 발을 쭈욱 뻗어보는데, 닿을듯 말듯 닿지 않는다. 담배 연기를 깊숙히 들이마시고 상체를 내밀어 연필을 집어온다. 담배를 재떨이에 떨어뜨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빨간 우산을 쓴 긴 머리의 여성을 떠올리면서 연필을 움직인다. 번쩍! 번개가 치고 뒤이어 천둥이 울린다. 오늘 밤에는 제법 비가 퍼부울 것 같다. 밤비와 함께 보낼 긴 밤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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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낫으따이(강남스타일)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이 대단하긴 대단한가보다. 우리나이로 세살, 아직 세돌이 채 안된 우리 둘째녀석이 토요일에 나를 보고 "아빠 당낫으따이"라고 했다. 내가 "아빠 강남스타일이야?" 그랬더니, 녀석이 좋아하면서 계속 "아빠 당낫으따이"를 반복했다. 우리가 거실에서 이러고 노는 동안 작은 방에 있던 아내는 그 소릴 듣더니 아이에게 아빤 절대 강남스타일이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어했는데,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는지 그냥 어이없어하고 말았다. 나도 그닥 강남스타일(정작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

 

 

예 다랑지(예 다람쥐)

 

큰 녀석이 늘 "알겠습니다람쥐!"라고 말하는 걸 보고 그러는건지, 아님 어린이집에서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이 또 있는건지 모르지만, 요즘 작은 녀석에게 뭔가를 말하면 늘 "예 다랑지"라고 대답한다. 우리 집은 티비가 없어서 그런 프로그램을 늘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가끔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보여줄 때도 있지만) 이렇게 따라하는 걸 볼 줄은 몰랐다. 티비가 있는 집 아이들은 더 많은 유행어를 따라할까?

 

 

보-삐뻐(보고싶어)

 

요즘 우리집 꼬마 여우 두 마리는 주중에 엄마 여우와 아빠 늑대 모두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거의 없다. 엄마 여우도 여러가지 일들로 바쁘고, 아빠 늑대는 하는 일 없이 늘 바쁘다. 5일 중에 이틀은 아빠와 지내고, 나머지 삼일은 엄마와 지낸다. 주말엔 왠만하면 함께 있으려고 하는데, 행사가 많다보니, 하나씩 데리고 다니기도 하고, 둘 중 하나가 집을 비우기도 한다. 최근에는 엄마 여우가 토, 일 계속 오전에 나갔다가 점심 때 조금 지나서 돌아오곤 하는데, 아빠 늑대는 그때 대부분 전날 마신 술 때문에 비몽사몽이다. 억지로 깨서 밥만 차려주고 다시 잠드는 날이 많다.

 

아빠 늑대랑만 지내는 시간이면 두 꼬마 여우 모두 엄마 여우를 애타게 찾는 일이 종종 있다. 특히 작은 녀석은 입을 삐쭉거리다가 이내 울음을 터트리며 "엄마 보-삐뻐!"를 서럽게 외친다. 큰 녀석은 아침에 학교가는 길에 종종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곤 했는데, 며칠 전부터 아내가 큰 녀석을 데려다주고 내가 작은 녀석을 데려다 주는 걸로 서로 역할을 바꿨다. 하루 이틀 겪는 일도 아니고 일주일에 이틀 이상 늘 겪는 일인데 아침, 저녁마다 엄마를 찾는 녀석들이 조금 야속하기도 하다.

 

※ 월요일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외근과 급한 일들 덕분에 목요일에야 글을 완성한다. 애초에는 뭔가 더 추가할 이야기가 있었던 듯 한데,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최근 간간히 들춰보는 책 한 권 소개하고 마무리해야겠다.

 

 

 

 

 

 

 

 

 

 

 

 

 

 

 

며칠 전부터 간간히 들춰보고 있는 책. '놀이밥 사촌', '어린이 놀이 운동가'란 직함이 무척 낯설다. 중간쯤 들어가있는 '사주지 마시라'는 제목의 시도 인상적이고, 좀 더 뒤로가면 나오는 '내 사랑 말짜'라는 만화도 재밌다! 밖에서 제대로 뛰어놀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꼼꼼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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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9-28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람쥐는 개그콘서트의 꺽기도에 나오는 유행어에요. 우리 애들이 유일하게 밤 10시 이후에 자도 되는 날이 일요일, 개그콘서트 때문이죠. 옆지기부터 애들까지 개콘 중독자입니다. ㅎㅎ

감은빛 2012-10-15 13:30   좋아요 0 | URL
댓글이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
네,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유행어들을 아이들이(가끔 어른들도) 많이 따라하는 듯 해요.
집에 티비가 없는 저도 가끔 인터넷 검색해서 찾아보기도 했어요.(궁금하더라구요.) ^^

비로그인 2012-10-19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집 둘째아이도 곧 세돌인데 '아빤 단나따이'라고 하길래 한참을 웃었어요. 집에선 텔레비전을 틀지도 않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따라하게 되는 것을 보면 신기해요.^^

감은빛 2012-10-22 15:06   좋아요 0 | URL
아, 아른님 둘째도 똑같군요!
역시 아이들은 다 비슷비슷하네요.
정말 신기해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제주도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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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여행하던 아는 만큼만 보이고, 딱 그만큼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아마 대학에 다닐 때였다. 사실 그 전까지는 제대로 여행이란 걸 해본 적도 없었으니, 그런 당연한 사실을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역사에 관심은 많았지만, 제대로 공부해 본 적도 없었고 배경지식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돌아다니길 좋아하기도 했고, 내 발로 여기저기 한 번씩 밟아보고 싶단 생각에 훌쩍 떠나서 보름씩 한 달씩 떠돌아다니곤 했다. 다니면서 아쉬웠던 건 내가 돌아다녔던 고장들에 대해 잘 몰랐던 탓에 새로운 군이나 시에 들어서면 어디를 가서 무엇을 봐야 할지를 몰랐다는 것이다. 기차나 버스에서 내리면 이 고장에 가봐야 할 곳이 엄청 많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막상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보면 별로 볼 게 없었다.

 

그래도 역사에 관심은 많았던 탓에 한번 가본 문화유산에 대해서는 꼬박꼬박 찾아보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그 곳을 기억 속에 담아두었다.(물론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이건 나중에 친구들이나 동료들 혹은 좋아하는 여성과 그 곳에 가게 되면, 내 특기 중 하나인 잘난 척하기에 아주 유용하게 쓰이곤 하는데, 특히 진주성은 여자 친구가 바뀔 때마다 놀러가서 나의 지적 허영심을 맘껏 펼쳐보이곤 했다.

 

제주를 처음 간 건 신혼여행 때였다. 이 책에는 유홍준 선생께서 결혼할 당시에는 상위 20%의 부유층만 제주로 신혼여행을 가는 호사를 누렸다고 했지만, 내가 결혼할 당시에는 이미 대학 졸업여행이나 고등학교 수학여행도 제주로 올 정도였고, 대다수의 신혼부부는 해외로 떠나고 있을 때였다. 이틀간 유명한 곳들만 돌아보는 관광버스를 탔는데, 대부분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들이셨고, 간혹 동성끼리 온 젊은 분들도 있었지만, 신혼부부는 우리뿐이었다.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가이드가 보여주는 곳만 따라다니고, 들려주는 말만 주워섬길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본 제주의 자연에 푹 빠지고 말았다. 소위 말하는 유명한 포인트들만 돌았음에도 말이다.(물론 그 중의 3분의 1은 매우 가고 싶지 않은 곳들이었다.)

 

두 번째 이후 나는 제주 숨겨진 매력에 더욱 푹 빠지고 말았다. 할 수만 있다면 한두 달쯤 제주에 살면서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싶다는 바램을 갖게 되었다. 물론 먹고 살기 바쁜 현실에 치여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먼 거리와 비행기 삯에도 불구하고 너댓번씩 가봤으니 많이 가긴 했다. 만약 그 중 한번이라도 이 책을 읽고 갔더라면 훨씬 더 알차고 흥미로운 여행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읽고 두 가지 일을 꼭 실천하기로 했다. 첫 번째는 4.3 사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찾아보고 알아볼 것. 이건 벌써부터 늘 생각만 해오던 것인데, 이젠 정말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두 번째는 다음에 제주에 가게 된다면 꼭 오름 들을 더 많이 올라봐야겠다는 생각. 특히 다랑쉬오름은 꼭 올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작년 겨울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다랑쉬오름을 꼭 올라보기로 마음먹었는데, 이 책 덕분에 다시 한 번 더 그 결의를 떠올리게 되었다. 유홍준 선생은 아직 눈 덮인 다랑쉬오름을 올라보지 못했다는데, 나는 그 가장 아름답다는 풍경을 꼭 내 눈으로 보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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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읽고 있다. 아, 그런데 정말 읽기가 힘들다. 글 자체가 딱딱한 점은 애초에 예상했던 바이므로 괜찮은데, 2장 '연구를 위한 도구'에서부터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각종 사례들을 읽기가 너무 불편하다. 그래 잘 알고 있다. 불편해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제대로 알고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다. 벌써 며칠째 2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제는 슬쩍 3장 '지금 공장식 농장에서는'으로 건너뛰어 봤는데, 평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주제여서 그런지 여기도 그리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지금 내 상태와 상황이 책 읽기에 집중할만큼 여유롭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과 같은 이유로 어렵고 힘들게 읽었던 책이 또 있었다. [코끼리는 아프다]라는 책이었는데, 이 책에도 수많은 코끼리들의 피해사례들이 나열되어 있다. 처음에는 코끼리들이 겪은 끔찍한 사건들(엄마를 비롯한 무리의 어른 코끼리들이 모두 사냥당하는)을 겪고 살아남은 코끼리들이 인간과 똑같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받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흥미를 갖고 읽었지만, 두꺼운 분량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임상심리학적 사례들을 계속 읽는 것은 너무나도 불편한 일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꾸역꾸역 읽어내기는 했으나, 뒤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져서 힘든 책이었다.

 

지금 읽고 있는 [동물 해방]도 거의 비슷한 패턴이다. 머리 속에서는 이렇게 딱딱하고 어렵고 재미없는 책 말고 저기 책장 한 켠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재미있고 말랑말랑한 책들을 읽으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자꾸만 그 유혹에 넘어가고 싶은 맘이 든다. 모르겠다. 일단 손에 붙들었을 때, 읽지 못하면 다시 언제 또 들춰보게 될지 기약할 수 없으므로 가능하면 어렵더라도 끝을 보고 싶다.

 

하지만 저기서 한쪽 구석에서 나를 부르고 있는 [서서비행],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등 이번에 주문한 책들로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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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맹렬하게 울린다. 눈을 채 뜨지도 못하고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는다. 화면 아랫쪽의 버튼을 끝까지 밀어야 알람이 멈추는데, 잠결에 자꾸만 손가락이 멈춘다. 잠을 쫓으려 애써보지만 뇌는 자꾸만 더 자라고 명령을 내리는 듯, 핸드폰을 쥐고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5분 후에 다음 알람이 울리고 있다. 무거운 머리를 흔들며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바로 일어서질 못하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직도 눈이 저절로 감기려 한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면장으로 향했다.

 

일과 시간 내내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급하게 요청되는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작 계획했던, 그리고 꼭 해야할 일들을 하나도 진행하지 못했다. 맘먹고 일 좀 하려고 하면 또 전화가 와서 뭔가를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하고, 뭔가 확인해서 연락달라고 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퇴근시간이었다. 결국 싫어도 야근을 해야할 상황.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워서 잠시 건물 1층 편의점에 뛰어가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왔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삼각김밥을 씹으면서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라면을 먹으면서도 여전히 눈으로는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다.

 

시간이 저녁에서 밤으로 흐를수록 집중력은 떨어지고, 커피는 벌써 몇 잔째 마시는지 모를 지경이 될 즈음 대략 일도 마무리가 되어갔다. 그런데 헉! 벌써 12시가 넘어서 지하철 막차 시간이 다 되었다. 서둘러 정리를 하고 가방을 챙겨서 나섰다. 간신히 막차에 몸을 싣고 시계를 보니 12시 40여분. 그런데 이 열차는 집에서 한참 못 미치는 역까지 밖에 운행을 안한다. 몇 정거장만 더 가면 집 근처인데, 거기까지만 어떻게 안될까? 안타까워해도 방법은 없다.

 

종착역에서 우루루 내리는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내린 듯,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다. 그리고 대부분 조금 걷다가 택시를 잡기 위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이래서는 택시 잡기도 어렵다. 지갑 속엔 택시비도 없기도 하거니와, 오랫동안 모니터만 들여다본 탓에 밤 공기를 마시며 좀 걷고 싶어졌다. 집까지 걷는다면 한 50분쯤 걸리려나.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걷다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최근의 고민들. 바쁜 일정들. 답이 잘 나오지 않는 사람들과의 복잡한 관계들. 생각의 갈피들을 쫓아 이리저리 헤매다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내 발은 집 근처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등은 땀에 젖었고, 목 뒷덜미로 땀 방울 하나가 또르르 구르는 것이 느껴진다.

 

새벽 2시 컴퓨터를 켜고 사무실에서 하던 작업을 마무리 한다. 눈꺼풀이 자꾸만 무거워지고 어깨는 자꾸만 처진다. 대충 일을 끝내고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나니 새벽 3시. 물을 마시고 잠시 인터넷 검색을 좀 더 하다가 쓰러지듯 누워 잠이 든다.

 

잠시 눈만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또 다시 알람이 맹렬하게 울린다. 제발 오늘이 주말이기를 부질없는 바램은 소용없다. 알람은 평일에만 울리도록 설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조금만 더, 제발 조금만 더 자고 싶다는 요청은 곧이어 떠오른 지각이란 단어 하나에 무참하게 거절당한다. 안떠지는 눈을 억지로 뜨고 피곤한 몸을 일으킨다. 아 왠지 어제와 같은 피곤한 하루가 반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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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9-11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캬라멜 마끼아또 한 잔 사드리고 싶어지네요.

감은빛 2012-09-12 10:04   좋아요 0 | URL
사주세요! ^^
다락방님께서 사주신다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마시게 될 것 같아요.

Jeanne_Hebuterne 2012-10-1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우스 클릭을 너무 많이 해서 팔이 저리고, 눈이 감기고 정신이 몽롱해서 시간을 보았더니 새벽 두 시.
그런 날들이었어요, 감은빛 님. 그런 날이었나 봅니다, 감은빛 님.

감은빛 2012-10-15 13:34   좋아요 0 | URL
일이라는게 한번 몰리면 한꺼번에 몰려오고,
없을 때는 또 별로 없더라구요.

쟌님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