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아졌다


요즘 밝아졌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얼굴이 밝아졌다는 얘기도 듣고, 분위기가 밝아졌다는 얘기도 듣는다. 작년에 혼자 너무 힘들게 일했기 때문에 너무 어두운 분위기로 오래 지냈나보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훨씬 스트레스를 덜 받고 지낸다. 일터에 사람이 늘었고, 그 두 사람이 자기 위치에서 열심이 움직여줘서 고맙고, 도움이 많이 된다. 물론 그래도 내 할일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마음가짐이 바뀌니 스트레스는 확실히 덜 받게 되더라.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술과 담배도 줄었다. 예전 같았으면 술 마셨을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니 아마 자연스럽게 얼굴이 밝아졌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표정도 바뀌었을 것이다. 예전엔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에서 누굴 만나 반갑게 웃어도 그 표정이 그리 반가워하는 걸로 보이지 않았을 지 모른다.


다시 운동을 시작한 덕분에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 재작년과 작년에 내가 유난히 힘들었던 이유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관절 때문에 운동을 할 수 없으니, 그걸 다 술로 풀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부상 후 달라진 점


재작년 가을 어깨 부상과 작년 여름 무릎 부상 때문에 운동을 제법 오래 쉬었다. 다만 완전히 쉬었다기 보다는 되도록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맨몸 운동 위주로 종종 시도를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일부러 운동을 쉰 것이 아니라 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두 번의 관절 부상 보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원인을 밝히지 못한 불규칙적이고 비정기적으로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관절 통증이었다. 손가락, 손목, 발목, 무릎, 어깨, 팔굼치 어떤 날은 엄청나게 아프다가 또 다음 날엔 아무런 통증도 없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지고, 또 며칠 후에 다시 아픈 현상의 반복이었다.


암튼 그래서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조금 시도하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고, 결국 근육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 한채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4월 초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하려고 슬슬 시동을 걸었다. 자꾸 관절이 아프니 겁이 나서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이정도 까지 해도 괜찮은지 살펴보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소위 말해서 내 관절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간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생각보다 괜찮네 싶어서 다시 본격적으로 해봐야지 생각한 게 대략 4월 말 경이었다. 


5월은 그 시도와 실제 내 몸의 통증 사이에서 갈팡질팡 한 시기였다. 어쨌든 정형외과 의사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관절 통증은 끊길 듯 이어졌고 그때마다 여기에 운동을 하는 것이 더 나빠지는 건 아닌지 자꾸 겁이 나고 망설여지는 것이다. 게다가 꽤 오래 쉬었던 까닭에 전반적으로 근력, 지구력, 유연성 모두 많이 떨어져있어서 내가 원하는 동작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움직이다 보면 자꾸 더 관절에 무리가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부상 이후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 사람이 겁을 먹는 구나 하고 깨달았다. 또 다칠 까봐 혹은 무리해서 운동하다가 만성 통증으로 이어질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이제 더이상 젊지 않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겁없이 이것저것 시도해보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몸이라는 걸 깨닫는다. 같은 운동을 해도 젊은 시절과 근육의 성장 속도 자체가 다르다. 무게를 늘리는 속도도 무척 느릴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이번 주에 운동을 하면서 이 정도면 다시 운동을 시작한 것, 즉 발동을 건 것으로는 성공을 한 것 같다고 느낀다. 계속 겁내던 바벨 운동을 다시 시도했고, 조금씩 자세를 다시 익히고, 조금씩 무게를 올려가기 시작했다.


어제 밤에는 친구와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서 운동을 했는데, 관절 통증도 전혀 없고, 각 운동 동작들도 이상하게 잘 되었다. 그래서 무게를 좀 올려서 스냇치를 했는데, 그 성취감이 엄청 컸다. 이제서야 드디어 다시 운동을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느끼는 쾌감,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운동 복장


혼자 살면서 제일 편한 점은 옷을 입지 않고 지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오지 않는 날엔 집에서 알몸으로 지내기도 한다. 그리고 운동할 때도 알몸으로 한다. 운동을 하면 땀이 나고, 땀이 나면 옷이 젖고, 그러면 빨래가 늘어난다. 그냥 옷을 입지 않고 운동하고 땀이 나면 수건과 걸레로 닦고,(옷을 입고 해도 수건과 걸레는 필요하다.) 운동을 다 마친 후에 샤워를 하면 된다.


물론 이건 맨몸 운동 중심으로 할 때 얘기다. 그리고 무릎 부상 이전에 그랬다. 이번에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서는 꼭 운동 전에 양쪽 무릎에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손목에 손목 보호대를 착용한다. 그리고 맨몸 운동에서는 무게를 주기 어려우니 발목이나 손목에 각 1kg짜리 모래 주머니를 착용한다. 물론 손으로 할 때는 그것보다 덤벨을 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니 주로 발목에 착용하고 실내 철봉에 매달린다.


어느 날 거울을 보면서 운동하다가 내 모습이 너무 웃기다 싶었다. 속옷도 입지 않은 알몸에 무릎 보호대와 손목 보호대와 모래 주머니를 착용하고 운동하는 모습이 웃겼다. 사진을 찍어야지 하고 찍었다가 바로 다시 지워버렸다. 요즘 같은 시대에 혹시라도 이 사진이 유출되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 싶어서였다.


요즘은 맨몸 운동은 워밍업으로 하고 주 운동을 바벨이나 케틀벨로 하고 있다. 이때는 바벨과 케틀벨을 드는 과정에서 맨살에 쓸리거나 상처가 날 수 있어 옷을 입어야 한다. 그래서 운동복 반바지만 입고 운동한다.


아, 실내 철봉에 매달리거나 바벨을 들 때는 장갑이나 손바닥 보호대도 착용해야 한다. 굳은 살이 박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통증이 없는 건 아니다. 한동안 바벨 운동 대신 철봉에 매달려 있는 시간이 길어서 늘 손바닥에 열이 나곤 했다. 


홈짐


예전에 실내철봉과 바벨세트를 다소 무리해서 구매했지만, 늘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디 멀리 핏니스 클럽에 가는 일은 쉽지 않지만, 나는 늘 아침 저녁으로 한 번씩 철봉에 매달렸다 내려온다. 눈에 바로 보이는 곳에, 바로 옆에 있으니까 계속 손이 간다.


단 하나의 단점은 집이 2층이라 층간 소음을 조심해야 한다. 바벨이나 케틀벨을 내려놓을 때 아주 조심해서 소리가 나지 않게 해야하고, 뛰는 동작 등을 할 수 없다. 제일 좋아하는 운동이 버피 테스트를 타바타 인터벌로 하는 것인데, 이 집에선 그걸 할 수 없다. 맨 마직막에 점프하는 동작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또 다른 단점은 거울이 좁고 작다는 것. 맨몸 운동과 프리 웨이트 동작들은 계속 거울을 보면서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벽에 걸어놓은 전신 거울이 작고 좁다. 체육관이었다면 아마 벽 전체가 거울이었을텐데 말이다.


만약 언젠가 집을 구매하는 날이 오면 바닥을 튼튼하게 대어서 바벨을 쿵 하고 내려놓아도 괜찮게 만들어 놓고, 한 쪽 벽에 거울을 넓게 설치하고, 실내 철봉과 벤치 프레스와 스쿼트 렉을 구매해놓을 테다. 그리고 또 한 쪽에는 샌드백을 걸어야지. 이상하게 이런 상상은 해도해도 질리지 않는다. 다만 늘 마지막에 돈 문제를 생각하면 씁쓸한 입맛과 함께 정신을 차린다는 점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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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만약 청춘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 강양구 기자가 쓴 글에서 켄 그림우드의 [다시 한 번 리플레이]에 대한 글을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 건 몇 년 전이었더라? 얼른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꽤 오래전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30대 중반 무렵이었을 것 같다.


중년의 주인공이 죽었는데, 다시 18살 대학 신입생으로 돌아갔다는 설정은 무척 흥미로웠다. 주인공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연애와 돈, 명예 등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그런데 다시 처음에 죽었던 날이 되자 또 18살 같은 날로 돌아간다. 계속 리플레이 되는 삶. 


소설이 정말 재밌어서 쉬지도 않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다 읽고 나서는 이런 기회가 과연 축복일까? 재앙일까? 생각해본다. 노년의 쇠약한 삶이 없고 중년이 되면 다시 젊고 생기가 넘치던 시기로 돌아가는 인생. 언뜻 생각해보면 이건 축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만의 성취를 이룬 시기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삶은 반대로 엄청난 재앙일 수도 있다.


물론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이니, 상상만으로 추정해 볼 수 밖에 없지만, 아마도 나라면 한 번 정도는 다시 살아볼 만 하다고 여길 것 같다. 이전의 실수와 오류들을 바로 잡고, 낭비했던 시간들을 뭔가 의미있는 시간에 투자해 첫 번째 삶보다 더 빨리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계속 반복되는 삶은 정말 끔찍할 것 같다. 차라리 그냥 죽어버렸으면 싶지 않을까?


실제 소설의 주인공도 반복 되는 삶이 지겨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허비해버린 삶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그래도 또 삶은 계속 반복되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월드시리즈 우승팀을 맞추는 도박 등을 통해 엄청난 경제적 부를 이루기도 하는데, 나는 다시 살더라도 그런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다만 빨리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인물이 되어 국책사업을 통한 환경 파괴 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개인적인 성취를 이룰 수도 있겠다.


이 책 이후로 수많은 타임리프, 타임슬립 뭐 이런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도 영화나 웹툰 등으로 여러 작품을 접해봤는데, 역시 원조가 최고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만큼 흥미로운 작품을 접해보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집으로 돌아가면 이 책이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결말 부분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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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6-07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요증 일본 만화에서 많아 다르는 일종의 이세계물이네요.일본도 살기 팍팍해서인지 항상 주인공인 사축의 노예로 살다가 갑작스레 죽어 일종의 전생을 해 새 삶은 산다는 내용이 많더군요.저 역시도 가끔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삶은 리플레이하면 좀더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하는 상상을 합니다요^^

감은빛 2019-06-10 11:34   좋아요 0 | URL
처음 읽을 때만해도 몇 번 정도 인생을 다시 사는 이야기인가보다 싶었는데, 읽다보니 계속 죽고 다시 대학생이 되기를 반복하더라구요. 이런 식으로 일정한 시간이 계속 반복되는 류의 이야기의 원조인 셈인데, 그 반복이 아마 25년이던가 그랬던 것 같아요. 영화나 웹툰 등에서 하루가 반복되거나 길어야 며칠이 반복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카스피님도 리플레이를 상상하시는 군요. 저도 가끔 그래요. ㅎㅎ
 


오빠 같은 사람


엊그제 오랜만에 마을 활동가 한 분과 마주쳤다. 가끔 스치고 지나갔던 기억은 있는데, 말씀을 나눈 건 몇 년만인 것 같다. 딱 나를 보자마자 오키나와 여행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린 일행의 사진에서 봤다고 인사를 해왔다. 그리고 그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을 상기시켰다. 그 일행은 나보다 거의 10살 가량 많은 여성 선배였는데, 기대하지 않고 갔던 여행이 무척 좋았다면서 일행들에 대해 한 마디씩 남겼는데, 내게는 "오빠 같은" 이란 수식어를 달았었다. 나도 그 선배가 그 글을 올렸을 때 보고 속으로 왜 오빠라고 표현했을까? 궁금했는데, 조금 생각해보니, 회의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몇 차례 그 선배의 사소한 실수들을 바로 잡아주거나, 이런저런 잡다한 부탁들을 여러번 해결해줬던 기억이 났다. 여행 때도 일행 중 딱 나이대가 중간이라 위로 선배들 챙기고, 아래로 동생들 챙겼던 모습을 보고 그렇게 쓴건가 생각하고 잊고 있었는데, 그 분이 다시 언급하셨다.


그 분도 아마 나와 그 선배의 나이 차를 대략 짐작하신 듯. '오빠'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 선배 같은 연차가 오래된 활동가도 오빠처럼 의지할 만한 분 이시군요. 뭐 이런 느낌의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당시 경황이 없어 그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냥 웃고 넘겼고, 나중에서야 그 분이 그런 뜻으로 말을 한 게 아닌가 짐작했다.


그 분은 짧은 대화에서 또 다른 기억을 상기시켜주셨는데, 오래 전 지역 시민신문에 육아일기 성격의 글을 연재했던 얘기를 꺼내면서 아이들은 얼마나 자랐는지 물어보셨다. 큰 아이가 중2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셨다. 하긴 그때는 아마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지낸 이야기를 비정기적으로 블로그에 쓰고 있었는데, 누군가 제안해서 시민신문에 1년 조금 넘게 연재했었다. 아빠랑 함께 놀기 라는 컨셉으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바쁘게 지내다보니 실제로 아이들과 놀 여유가 별로 없었고, 그냥 단순히 놀았던 걸 글로 풀어낼 수 없으니 매번 뭔가 독특한 소재를 찾아야 해서 글을 연재하는 입장에서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당시에 재미있게 읽고 있다고 인사해주신는 분들이 있어서 바쁘고 힘들어도 억지로 쓰긴 했는데, 나중에 신문 개편 과정에서 다른 기획을 이유로 연재를 그만하자고 편집장님이 먼저 제안해주셔서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그 분에겐 내가 오래전에 아이들과 놀면서 지낸 이야기를 연재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정작 나는 연재를 그만둔 후로 오랫동안 그 사실을 잊고 지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 동안 어떤 순간을 공유했던 누군가에게 나는 늘 그 기억으로만 남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 나쁜 짓 하지 말고, 실수하지 말고 살아야겠구나 싶다.


통상적으로는 술꾼,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과격한 운동권, 빨갱이, 또 누군가에게는 독설가로 기억에 남아있겠지. 어쩌면 육아하는 아빠, 늘 아이랑 함께 다니는 아빠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미지로 남느냐는 내가 결정할 수 없다. 나는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나를 보여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부부 간의 평등














어제 밤 9시 반에 회의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나니 10시였다. 선배들이 근처 술집에 자리잡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간단히 마시고 헤어지려던 자리는 부부 간의 불화, 불평등에 대한 주제로 대화 주제가 바뀐 후로 갑자기 불이 붙었다. 운동권이지만, 좌파라고 떠들고 다니지만, 집에서는 손도 까딱하지 않는 남자들이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부부 간의 평등은 쉽지 않다. 


물론 좌파니 우파니 보수니 하는 이념과는 상관없이 어려서부터 습관적으로 집안 일을 잘 하는 남자들도 분명 있고, 요즘 젊은 층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다만, 여전히 그 한계는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결혼하기 전부터 사회를 바꾸기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로서, 남녀 불평등을 말로만 떠는 사람이 되지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그리고 결혼 후에 가사노동과 육아를 함께 하기 위해 많이 애썼다. 아무리 야근을 하고 돌아와도, 아무리 술을 마시고 새벽에 돌아와도 아이 천 기저귀는 다 빨아서 삶아놓고 잠들었다. 그래서 잠을 두세시간 밖에 못 자더라도,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그랬다. 평일에는 할 수 없었던 집안 일과 육아를 주말에 몰아서 다 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주말에 잡힌 회의나 행사에 늘 아기를 데리고 다녔다. 그래도 아마 애들 엄마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았을 것이다.


현실은 그런 것이라 믿는다. 어제 몇몇 선배들의 솔직한 속내 이야기를 들으며, 분명 공감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진실.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다른 이유들도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나 다 각자의 현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책에 그런 면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 모르겠다. 사소한 일로 서로의 차이를 깨닫는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는 건 봤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또 어떨지 모르겠다. 어쨌건 궁금하니까 한 번 읽어봐야겠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일정으로 아이들과 지내야 할 시간이 자꾸 줄어든다. 아이들은 자꾸만 훌쩍 커버리는데, 아이들은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데, 나는 자꾸만 바쁘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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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날
잊지 못할 것 같은 날

1980년 5월 18일 광주를 잊지 말아야 한다. 4월 3일을, 4월 16일을, 4월 19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동네 합창단 6주년 기념 공연에서 광주에 대한 웅장한 곡이 나왔다. 합창단과 정가악단의 콜라보. 곡을 듣는 동안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감정이 솟구쳤다. 앞서 합창단이 어머니에 대한 노래를 불렀을 때도 그랬다. 그 노래를 부를 때는 합창단 여성 분들 중에도 눈물을 훔치는 분들이 많았다. 대부분 50대 중후반이거나 60대 초반인 분들.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감정이 북받쳤을 것이다. 한 분은 계속 우느라 노래를 잘 못하는 듯 보였는데, 옆에 계신 분이 손을 잡아주자 조금 진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합창단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여러 번 받았다. 친한 형들이 많아서 나도 가볼까 하는 생각을 몇 번 했다. 한 번은 라이브 카페에서 한 팝송과 가요를 3곡 정도 불러 비공식 오디션 같은 것도 봤는데, 합격 통보도 받았다. 하지만 가고 싶어도 꾸분히 연습에 참가할 자신이 없었다. 저녁에도 회의가 자주 생기고, 특히 공식 연습이 있는 월요일엔 중요한 회의가 많았다.

옷을 맞춰 입고 멋진 화음을 들려주는 형들을 보며 이 사람들은 나와 완전 다른 삶을 사는구나 싶었다. 저런 멋진 무대를 소화해낸 성취감을 가진다면 얼마나 졸을까? 상상할 수 없었다. 아주 오래전 대학시절 노래패에서 처음으로 공연했을 때 너무 떨려서 실수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 섰던 30여 명 중에 아는 얼굴들을 찾아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광주의 진실에 대한 증언이 차례로 나오고 있다. 전재산이 26만원 밖에 없다는 학살자가 국민 세금으로 경호를 받으며 잘 먹고 잘 살다가 죽는 꼴은 보지 말아야 할텐데. 꼭 사형대에 세워 억울하게 희생당한 수많은 민중들의 넋을 위해 아주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도록 해야할텐데

언젠가 천안함의 진실도, 세월호의 진실도 다 밝혀질 날이 오기를.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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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주의자


학생운동 시절부터 늘 회의, 회의 또 회의 이러면서 살았다. 잡지사 겸 출판사에 있을 때는 조금 덜했지만, 시민단체 시절과 지금 협동조합에 일하면서 늘 회의에 치여 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4건 이상 회의에 참석했던 날, 누군가 내게 말했다. "회의주의자!" 회의에 참석하다보면 삶에 회의가 드는 경우도 있다.


오늘 오전에 약 3시간 이상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회의가 있었다. 인원이 많은 회의는 힘들다. 아니 원래 회의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회의 주최자가 명확한 주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를 권하되, 주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특정한 사람에게 발언이 쏠리지 않고 균등하게 발언 기회가 주어지도록, 그러면서도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논의를 잘 끌어가야 한다. 이렇게 회의가 진행되려면 주최자가 경험이 많고, 적절한 시점에 잘 개입하면서도, 각자의 발언을 요약 정리하면서, 이견에 대한 합의와 상호 이해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 아침에는 회의에 앉아 있으며, 대체 내가 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회의에 참가한 것 만으로 회의주의자가 되어버린 상황. 회의 자리에서 발언을 주로 하다보면 그 발언자가 그 일을 떠맡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지간하면 발언을 자제하고 흐름을 따라가는 이유다. 그러나 아침 회의에선 명확하게 요구받은 내용이 있었고, 주최자가 나를 콕 찍어서 의견을 요청하기도 해서 어쩔수 없이 회의에 젖어 멍하니 있던 상태를 벗어나 회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회의를 아주 많이 해본, 회의에 익숙한 사람이고, 회의 진행도 많이 해본 사람이고, 회의가 주제를 따라가지 못하고 산으로 바다로 가는 상황을 무척 싫어하는 편이라, 그런 회의에 참여하는 일이 무척 괴롭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나도 모르게 회의에 개입하게 된다. 입을 여는 순간 일이 또 하나 늘어날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어쩔 수 없다.


결정적인 것 하나


위는 내가 주도하지 않는, 다른 주체들이 주도하는 회의에 참여해야 할 경우에 주로 일어나는 일이고, 내가 주최하는 회의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사전에 회의자료 준비에서부터 주요 안건에 대한 설명과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일까지 맡아야 한다. 또 업무상 소위 말하는 급이 높은 사람들, 이를테면 고위 공직자나 시의원이나 국회의원 등 힘있는 사람들과 회의를 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단순히 논의에 잘 참여하는 것에 더해 뭔가 임팩트 있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결정적인 것 하나를 던지는 것이다. 논의 흐름상 중요한 어떤 의견, 반드시 짚어야 할 어떤 논점, 논의를 매끄럽게 풀어갈 수 있는 어떤 흐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순간 그 힘있는 어떤 분을 포함한 회의 참석자 전원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오늘 오전 긴 회의를 마치고 자리를 나설 때, 같이 참석했던 한 여성 참가자가 친근하게 다가오더니, 귀속말을 하듯 귀 가까이 입을 대고 살짝 속삭였다. 내가 주장했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말이었고, 내가 그걸 말해줘서 고마웠다는 말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회의에 불려다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회의에 참여하면 대개 일이 더 생긴다는 부작용이 있다. 그리고 회의는 야근을 부른다. 낮에 회의를 다니느라 못한 일을 남아서 해야 한다.


또 내가 주최한 회의는 회의록이나 회의결과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제일 하기 싫은 일


제일 하기 싫은 일을 하나 꼽으라면 회의록을 만드는 것이다. 몇몇 능력자들은 회의 진행 중에 노트북으로 발언들을 다 기록하고, 회의가 끝남과 동시에 회의록을 만들어 내기도 하더라. 하지만 내 경우에는 논의 흐름 자체에 집중하거나, 대개 회의 안건 자료를 설명하느라 기록까지 챙기지 못한다. 대개는 핵심 내용을 적어놓고, 논의 내용은 녹음해놓았다가 나중에 녹취록을 풀어서 회의록을 만든다. 그러면 그 녹취록을 푸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만약 2시간까지 회의 녹취록을 풀려면 거의 3시간 이상이 걸린다.


게다가 그 녹취록의 흐름에 따라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핵심만 정리하는데 또 시간이 걸린다. 이건 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하기 어렵다. 예전엔 이런 일에 무척 능숙했다. 만약 회의에 집중했고 바로 회의록을 쓸 여유가 있을 때는 녹취록도 듣지 않고, 1시간도 걸리지 않아 회의록을 뚝딱 만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집중했기에 대부분의 중요한 발언들 핵심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과 올해는 연합회 담당자가 있음에도 경험 부족을 이유로 내가 대부분의 실무를 도와줬다. 사실 도와줬다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실제로는 거의 대부분의 일을 내가 한 거이나 마찬가지다. 회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늘 회의에 들어갈 때는 담당자에게 기록을 요청한다. 나는 그 담당자를 대신해 회의 자료도 만들어주고, 회의 안건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의를 마치고 그 담당자가 보내온 기록을 보면 실망스럽다. 핵심을 놓치고 군더더기를 적어놓거나, 표현이 정확하지 않거나. 심지어 엉뚱한 내용을 기록해두기도 한다. 대략 2달 전에 들어온 연합회 담당자는 벌써 3번 연속 회의 기록을 맡겼는데 자료를 주지 않았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 들을 수 없었다며 기록을 못 했다고 했다. 아니 정확하게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어도, 외국어가 아닌 우리말로 하는 회의 기록을 하나도 못 했다는 게 말이 되나? 그래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내가 회의록을 대신 만들었다. 두 번째는 앞 부분의 아주 일부분만 기록하고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번에도 내가 대신 만들었다. 세번째는 기록해놓은 파일이 실수로 지워진것 같다고 했다.


아, 아무리 잘 이해해주려고 해도 이렇게 나오면 참 곤란하다. 그래도 혹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 기죽일까봐 별 말하지 않고 대신 해줬다. 그리고 내가 만들었다는 걸 연합회 다른 조합 사람들이 알면 안 되니, 모두 그 분이 공유하도록 했다. 내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계속 뺏기면서 나는 아무런 실속이 없다. 참 허무하다.


야근


회의는 야근을 부른다. 앞서 말했듯 회의를 하러 돌아다니느라 일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회의 결정사항에 따른 역할분담으로 일이 더 생기기 때문이다. 어떤 일은 기꺼이 즐겁게 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일은 진짜 하기 싫은데, 관계 때문에 어쩔수 없이 떠맡기도 한다. 이럴 때는 야근을 하려고 앉아는 있지만, 자꾸만 마음은 콩밭으로 가기 마련이다. 자료를 찾는 다는 핑계로 SNS 나 검색 결과를 뒤적이며 필요 이상의 시간을 보낸다.


야근은 피로를 낳고, 술을 부른다. 피곤한 몸과 머리는 이상하게 더욱 쉽게 잠들지 못한다. 이럴 때 술을 한 잔 먹어야 빨리 잘 수 있다. 빨리 자야 다음날 아침에 또 출근할테니. 그런데 자려고 마신 술은 다음날 아침 숙취를 부른다.


이상하게 꼭 야근을 하고 나면 한 잔 생각이 간절하다. 그리고 나는 저녁에 회의나 다른 일정이 없는 한 자주 야근을 한다. 저녁에 회의가 잡히는 경우도 많다. 남들 퇴근할 시간에 나는 회의 시간에 쫓겨 이동한다.


만원버스


어제가 그랬다. 6시 30분 회의였는데, 사무실에서 상담 전화를 받다가 10분 전에야 출발했다. 이동 시간이 최소 20분은 걸리는 곳이었다. 게다가 꼭 급할 때 버스는 늦게 왔다. 그리고 그 버스는 완전 만원버스였다. 그 버스를 놓치면 다른 방법이 없어서 뒷문으로 억지로 밀고 들어갔다. 내 뒤에도 두 명 정도가 더 밀고 들어왔다. 우린 잡을 수 있는 손잡이도 없이 사람들 틈에 끼어 이리저리 떠밀리며 움직였다. 


후끈한 공기 속에 누군가의 체취가 코를 자극했다. 왼쪽 앞에 선 키 큰 젊은 남성은 자꾸 팔굼치로 내 가슴을 밀었고, 오른쪽 뒤쪽에 선 여성은 자꾸만 내 팔에 몸을 기대었다. 물론 나도 차가 흔들릴 때마다 앞 뒤의 누군가에게 기대었다. 바로 서곤 했다.


문득 아주 오래 전, 고등학교 때 만원 버스에서 내게 푹 안겼던 인연으로 잠시 사귀었던 여성이 떠올랐으나, 계속 흔들리는 차량 안에서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 사치는 허용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손잡이를 잡고 체중을 버티기 위해 허리와 허벅지와 발목에 힘을 꽉 줘야 했다.


목적지에 다와서 버스를 내리는 순간 이미 지쳐버렸다. 하지만 나는 회의 장소로 걸어가 약 1시간 반 가량 회의에 참여했고, 당연하다는 듯이 회의 뒷풀이에 참석해 맥주를 조금 마셨다. 


여성 출마 프로젝트 2020


녹색당에서 여성 출마 프로젝트 2020을 추진 중이다. 학생 운동과 시민 운동과 마을 활동 영역에서 20여년을 지내보니 대부분 일은 여성들이 다 하는데, 어디 나가서 목에 힘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더라.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딜 가나 항상 그랬다.


어쩌다 핵심 부분 일부만 읽은 이 책 [내 안의 가부장]에 그 이유를 추정해 볼만한 내용이 있긴 했다. 어쩌면 가부장제는 우리 생각보다 더 강하게 개인들을 세뇌시켜 그 체제를 견고하게 만들어 왔을 것이다. 나도 내 주변의 활동가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자기 안의 가부장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세상을 바꾸려면 더 많은 여성들이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청년들이 정치인이 되고, 더 많은 소수자들이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학자 중 한 명인 정희진 선생님이 인구의 1%가 녹색당원이 된다면 99%가 행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동의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준연동형비례대표제, 석패율제, 권역별비례대표제, 패스트 트랙, 청소년 참정권 등등 공부해야 할 것도 많고 신경써야 할 일도 많다. 



며칠인지 모를 기간 동안 연속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 물론 어떤 날엔 가볍게 맥주 한 캔 마셨고, 또 어떤 날엔 막걸리 두어잔 마시기도 했지만, 적은 양의 술이라도 술은 술이니까 연속 음주는 맞다. 얼마나 오래 연속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니까 아마 꽤 오래 된 것 같다.


오늘은 정말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연속 기록을 끊어 버리겠다. 집에가서 운동하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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