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걷기


아침에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는 곳에서 약속이 있었다. 버스로 가려면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그 버스 노선이 한참을 밖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고, 자주 오는 노선이 아니기도 해서 걷는 것이나, 버스를 타는 것이나 시간으로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앱에서 알려준 기준으로 걸어서 47분, 버스 노선 2개를 갈아타고 가면 38분 정도. 하지만 이 동네에 오래 살았던 나는 가는 길을 대부분 걸어봤기 때문에 47분이 아니라 40분도 안 걸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괜히 멀리 빙 둘러서 버스를 탈 필요없이 그냥 바로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르리라 생각했다. 덕분에 아이들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를 오랜만에 걸었다. 내가 걸었던 시간이 딱 학생들 등교 시간이었다. 그 길에 중학교 2개와 고등학교 3개와 초등학교 3개가 차례대로 나왔는데, 중고등학생들은 친구들과 무리지어 가거나, 혼자 가는 모습이었지만, 초등학생들은 부모 손을 꼭 붙잡고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 젊은 아빠가 여자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우리 아이들이 예전에 졸업한 초등학교를 향해 걷는 모습을 보았다. 절로 옛날 생각이 났다. 이제 성인이 된 큰 아이와 아직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주고, 저녁에 방과후 교실에서 집을 데리고 왔던 날들이 생각났다. 그 시절의 나는 아마도 젊었겠지.  잠깐 추억에 잠겨 걷는 사이에 걸음이 느려졌다. 시간을 보니 약속 시간에 딱 맞출 수는 있어도, 조금 미리 도착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도중에 만나는 작은 교차로에서 보행 신호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서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답답했다. 결국 신호가 바뀌면 뛰고 또 신호등을 만나면 대기하면서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했다. 뛰어가는 건 쉬운 일이지만, 간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빨리 걸어보니 이건 또 뛰는 거랑은 완전히 다른 어려운 일이더라. 약속 시간 5분 전에 도착하고 싶었지만, 내 계산보다 1분 늦은 4분 전에 도착했다.


약 1시간 가량 일을 마치고 일터로 돌아가는 길은 더 멀었다. 우리 집에서 일터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15분에서 20분 가량 걸린다. 그럼 약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걸까? 지름길을 알기 때문에 그 정도는 아니리라 생각했다. 암튼 버스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걸었다. 아침에 왕복한 것 만으로도 1만보를 넘게 걸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로 시간 계산이 좀 이상해졌다. 1킬로미터 정도는 한 6분이 채 안되어 뛸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힌 후로는 자꾸 거리 계산을 달리기 기준으로 하게 된다. 실제로는 어디를 가던 그 거리를 다 뛰지는 않고, 반 이상은 걸으면서도. 일터로 걸어서 돌아오는 길에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지나치며 보니 재개발 구역에 묶여 넓은 구역이 철거되어 있었다. 그 언덕 위 달동네를 살피며 우리 가족이 살았던 그 집도 철거 되어버린 건가 하며 한참을 머리를 굴려보았다. 위치 상으로 보니 확실히 철거된 것이 맞았다. 그 집 다음에 살았던 곳, 언덕 위에서 조금은 아래로 내려온 위치에 있는 다세대 주택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동네를 지나쳐 한 20분 이상 걸으면 이혼 한 후에 내가 살았던 집들이 위치한 골목들이 있었다. 그 집들도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지금도 누군가 살고 있겠지. 새삼 이 동네에 참 오래 살았구나 싶었다. 20년을 훌쩍 넘겼으니. 지금 기준으로는 아직은 부산에 살았던 날들이 조금 더 많겠지만, 몇 해만 더 지나면 이젠 서울에 살았던 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다. 지금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 중 다수는 대학을 진학하면서 서울로 온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이미 고향에 살았던 시간보다 서울에 살았던 시간이 더 긴 사람들이다. 나는 대학을 부산에서 나왔고, 중간에 군대도 다녀왔고, 대학 졸업 후에 활동가의 삶을 시작한 것도 부산이었기에 서울에 올라온 시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늦었다. 아주 오랜만에 예전에 자주 걸어 다녔던 작은 골목들을 걷다 보니 우리집이었던 곳들 뿐 아니라, 친했던 지인들의 집들도 대부분 기억났다. 대부분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간 사람들이었다. 골목길과 그 안의 낡은 건물들은 대부분 그대로였지만, 그 건물에 들어선 가게들은 거의 대부분 바뀌어 있어서 낯선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아주 가끔 예전 가게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은 곳도 있었다. 오래 전 버스 종점이었던 곳, 지금은 새 건물이 들어선 낯선 곳 맞은 편에 있는 낡은 중국집은 예전 간판 그대로였다. 과연 주인도 그대로일까? 맛은? 언젠가 다시 여기를 찾아와 옛 맛을 떠올리려 애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라고 생각하며 다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스타일


최근에 태양광 사업에 대해 상담을 하러 오신 분은 퇴직하신지 몇 해 지났다고 말씀하셨다. 즉, 거의 70세 정도 되신 분이라고 이해했다. 말씀하시는 말투나 태도가 기본적으로 겸손하고 예의를 잘 갖춘 분이라 생각했다. 한참 대화를 나누고 나중에 헤어지기 직전에 그 분이 다소 조심스러운 말투로 "혹시 연배가 어떻게 되시는지?" 라고 나에게 물었다. 그분 표현으로 내 얼굴은 젊어 보이는데, 풀어헤친 장발은 온통 흰 머리에, 수염도 흰 수염이 많으니 나이가 많은 것처럼 느껴지니, 젊은 사람이 맞는지 아니면 나이가 많은데 동안인 것인지 궁금하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곧 50입니다. 라고 말씀을 드리니,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그럼 젊으신 분이 맞군요. 라고 하셨다. 아, 이 흰머리와 흰수염 때문에 나이 들어보인다는 말을 듣기는 했어도, 이 정도 일 줄 몰랐다. 그렇구나. 나 70대 어르신이 보기에도 헷갈릴 정도로 많이 나이 들어 보이는구나. 장발에 수염을 고수하는 일이 쉽지 않구나.


며칠 전에는 옷을 예쁘게 잘 입은 젊은 여성이 매장에 왔었다. 그 분은 매니저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월차라서 왔다고 말했다. 일부러 찾아왔는데, 하필 그날은 매니저님 휴무일이었다. 하루종일 내가 혼자 매장을 보는 날이었다. 그 분이 처음에 약간 쭈뼛거리며 어색해 하시길래, 편하게 계시라고 하고 나는 일을 보려고 했다. 아마도 오랜만에 매장에 방문한 듯 최근에 새로 들여놓은 물품들을 신기한 듯 감탄사를 내며 살펴보길래, 하나 하나 설명을 해드렸다. 그렇게 좀 떠들고 나니 둘 다 조금은 어색함이 사라졌다. 그 분이 나를 좀 유심히 보시더니 문득, 스타일이 엄청 멋지세요. 라고 말을 했다. 멋지다는 말은 예의 상 한 말이겠지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 인 것은 맞을 것이다. 그 말을 하고서는 내가 좀 더 편해졌는지, 이젠 내 눈치를 안 보고 매장 구석구석 꼼꼼하게 살펴보더라. 나는 편하게 구경하시고 혹시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라고 하고 일에 집중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또 다른 젊은 여성 손님이 들어왔다. 새로 들어온 분이 찾는 물품을 찾아드리고 질문에 답을 하고 어쩌고 하는 동안 이 예쁘게 옷을 잘 입은 분은 나에게 손짓으로 인사를 건네고 나가셨다. 매니저님께 말씀 전해드린다고, 누구라고 전할까요? 라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나가셔서 놓치고 말았다. 나중에 매니저님께 전달했는데, 누군지 짐작이 안 간다고 했다.


최근에 여기저기서 매장으로 탐방을 와서 30분에서 1시간 사이로 우리 협동조합과 매장에 대해 설명을 할 일이 계속 생기고 있다. 탐방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네 활동가들로 나와 친한 사람들이었다. 탐방을 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조합과 매장을 더 널리 알릴 수 있고, 우리의 활동을 홍보하면서 더 힘을 받을 수도 있을테니. 하지만, 아무리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말을 잘 하는 편인 나라도 연달아 계속 사람들을 맞이하고, 설명하고, 질의 응답하고, 웃으며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마냥 좋은 것 만은 아니다. 일단은 힘이 들고, 아무런 댓가도 없이 이렇게 열심히 설명하는 일이 쉽지 않다. 누군가는 그렇게 탐방을 오려면 적어도 최소한의 기준인 강사비 혹은 탐방비를 받아야 한다고 말을 하곤 하는데, 그게 참 애매하다. 오히려 잘 모르는 사이라면 그런 요구를 할 수 있겠지만, 다 친한 활동가들 사이에서 그런 요구는 어려운 일이다.


암튼 그래서 여기저기 여러 단위에서 찾아 올 때마다 짧은 강의와 질의응답을 여러 차례 했었다. 그때마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장발에 수염이라는 외모에 대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본다. 흰머리와 흰수염도 한 몫 했을 것이고. 거기에 20년 넘게 활동가라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면모, 연구자나 이론가가 아닌 실천하는 사람으로서의 면모에 대한 어떤 느낌과 시선이 있을 거라고 본다.


지금의 나는 누가 봐도 눈에 확 잘 띄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에 좀 평범한 모습이었을 때에 비하면 정말 튀는 외모다. 그래서 더욱 바르게 행동하고 작은 실수라도 하지 않으려고 조심해야 한다. 이런 튀는 스타일로 잘못된 언행을 하면 쉽게 드러나고 오래 기억될 수 밖에 없다.


지지난 주에도 한 팀, 지난 주에도 한 팀, 오늘도 한 팀. 3주 연속 많은 사람들을 모시고 설명하고 떠들다보니 오늘은 좀 많이 지친다. 안 그래도 밤에 잠을 거의 자지 못해 피곤한 날이고, 일이 많은 날이었는데, 이래저래 사람들에게 시간을 자꾸 뺏기다 보니 해야할 일들은 또 하지도 못했다.


일은 남았는데, 다음 회의를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일단 이 글을 마치고 다음 일은 이동하면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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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4-21 2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골목을 걸어보면 느껴지는 게 있어요. 전혀 의식하지도 못했던 어떤 기억들이 살아날 때가 있어요. 나의 뇌 속에서 건져 올려지지 않던 어떤 이미지와 기억들이 골목을 걸음으로써 어떤 연상 작용에 의하여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걸음과 뇌 작용의 상관관계적인 해석보다는 골목이 오래도록 품고 있던 기억을 느끼게 된다는 다소 비과학적인 믿음에 더 기울게 됩니다. ㅎㅎ

감은빛 2025-04-30 20:18   좋아요 0 | URL
골목이 오래 품고 있던 기억을 느낀다는 말씀이 너무 좋네요. 와!!
잉크냄새님이 예전에 중국에 있던 시절의 골목 이야기 썼던 글 생각이 나요.
나중에 시간 날 때 다시 가서 읽어볼게요.

페크pek0501 2025-04-23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을 못 잔 날은 일의 양을 줄여야겠더라고요. 저의 경우 잠이 보약이에요.
말하는 건 쉽게 지치는 일이죠. 요즘 더욱 그걸 느껴요. 말할 때 에너지 소비가 많음이 느껴져요. 그래서 모임이 있을 때 초반에 말을 잘 하다가 끝에 가서는 듣고만 있게 됩니다.ㅋㅋ

감은빛 2025-04-30 20:19   좋아요 0 | URL
요즘 평일에는 잠이 너무 모자라요.
잠을 길게 자지 못하고 중간에 계속 깨는 편이고,
꿈에 시달리다고 해야 하나, 꿈 속을 헤맨다는 느낌의 꿈을 자주 꾸네요.

그래도 주말에는 모자란 잠을 자는 편입니다.

희선 2025-04-25 0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걸어가는 것과 버스 타고 가는 게 비슷한 시간이 걸리면 걸어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걸어가면 조금 힘이 들지만 버스를 타면 힘이 덜 드는군요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하는 것도 괜찮은 듯합니다 감은빛 님은 따님들 어렸을 때를 떠올리기도 했군요 어릴 때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금도 지나가면 돌아가지 못하겠습니다 지금도 나중에 떠올릴 좋은 기억 많이 남기기를 바랍니다


희선

감은빛 2025-04-30 20:21   좋아요 0 | URL
그쵸? 걸으나 버스 타나 비슷하면 걷는 것이 낫죠?
저는 멀리 나가지 않고 동네에서 일한지 10년 정도 되었는데,
거의 매일 걸어다니고 버스나 지하철을 거의 타지 않아요.
가끔 버스를 탈 일이 생겨도 걸어서 얼마나 걸릴 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네요. ㅎㅎ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접속했더니 11년 전 오늘, 그러니까 2014년 4월 15일에 내가 페이스북에 아래 글을 올렸다고 알려줬다. 딱 보자마자 이 글에 쓴 그 순간이 기억났다. 그 무렵의 아이는 유독 나를 많이 따랐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당연히 없겠지만, 큰 아이를 저렇게 안아 올릴 수 있는 시절로 딱 한 번만 돌아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득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이 부러워진다. 그 집안 남성들은 모두 자신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데. 그런 능력 나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 어렸을 때로 자주 돌아가서 더 많이 아껴주고 더 많이 사랑해주고 싶다.


딸과의 5분 데이트


점심 먹고 졸릴 무렵, 큰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학교 마치고 방과후교실 가는 중이라고, 아빠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어디냐고 물었더니, 횡단보도 건너는 중이라고,

어딘지 딱 감 잡았다.

마침 일하는 곳에서 2~3분 거리다.

천천히 걸어가면 곧 아빠가 갈 거라고 말하고 뛰어나갔다.

아이는 멀리서 나를 보자마자 막 뛰어왔다.

만나자마자 번쩍 안아 들었다가 내렸다.

손잡고 천천히 걸어서 딱 5분 동안 데이트했다.

동네에서 일하니 이런 재미도 있구나.


2014년 3월에 나는 4년 넘게 일했던 출판사에서 해고 당했다. 잡지만 내던 잡지사였었는데, 단행본 출판을 위해 나를 영업자로 고용했던 곳이었다. 나는 심각한 적자였던 잡지를 정상적인 유통 체계를 구축해 흑자로 돌려줬고, 단행본을 꾸준히 내면서 흑자 폭을 크게 증가 시켰다. 초기에 사장은 나를 마치 구세주처럼 대했다. 그러다가 해가 가면서 유통망이 안정적으로 구축되고 나니, 사장은 이제 내가 불필요한 사람처럼 느꼈나 보다. 내가 내 모든 인맥과 능력을 총 동원해 잘 만들어 놓은 그 체계는 사실 내가 없으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나를 해고 하고 나서야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게 출판사를 그만두게 된 무렵에 나와 아주 친했던 동네 친구가 녹색당 구의원 후보로 출마를 결심했었다. 녹색당 창당에 함께한 후에 나는 녹색당 활동을 정말 열심히 했었다. 구의원으로 출마를 결심했던 그 친구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동네에서 정치를 한다면 정말 정치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물론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당연히 그 친구가 당선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여러 당원들은 그 친구가 10% 이상 득표해서 선거 비용의 절반을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기도 했지만, 나는 그것도 당연히 불가능 할 거라고 했다. 나중에 그 친구가 9.7% 였던가 암튼 9% 이상 득표율을 달성해서 내가 아는 소규모 진보 정당 후보 중에 가장 높은 득표율을 올린 것을 보고 놀라기는 했고, 조금만 더 나왔으면 정말 50%를 보전 받았을 텐데, 라고 아쉬워 하기는 했다.


암튼 3월에 출판사에서 해고를 당한 시점의 나는 구의원으로 출마하겠다는 친구에게 선거운동을 함께 해달라고, 구체적으로는 선거 사무실의 사무장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필 그 시점에 해고를 당하다니! 이건 선거운동을 하라는 하늘의 계시 같은 것일까 라고 생각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때까지 늘 대중교통으로 3~40분 이상 가야 하는 일터로 출근하다가, 바로 우리 동네에 있는 선거 사무실에 출근하게 되어 삶이 많이 달라졌다. 선거 사무실은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리고 당시 큰 아이가 다니던 학교와는 5분 거리였다. 당시 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공동육아 방과후 교실로 이동했는데, 가는 길에 아빠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짧은 순간 아이가 걸어가는 경로를 머리 속으로 그렸고, 곧바로 사무실을 나서서 아이에게 뛰어나갔다. 아이는 멀리서 나를 보고 뛰어왔고, 나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이를 안아 올렸다. 사랑하는 딸과의 5분 데이트.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참 좋았다.


그리고 그 바로 다음날이 역사적인 16일이었다. 우리는 뉴스에서 뒤집혀진 배를 보면서 그래도 다행히 학생들을 대부분 구출했다는 오보를 믿었다. 사실은...... 사실은...... 아, 눈물이 나려고 한다. 우리는 선거운동을 하다가 식당에서 뉴스를 보았고, 오후 선거운동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그리고 며칠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사무실로 출근을 하기는 했지만, 어느 누구도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겨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늘 페이스북을 통해 저 글을 읽으며 행복했던 짧은 데이트를 떠올렸다가 곧바로 그 다음날이 그날이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급 기분이 우울해졌다. 아, 이런 기분으로 다시 일하기 쉽지 않다. 끊어버린 담배가 다시 땡기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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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5-04-16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오보에 속았던 기억, 뉴스가 배들이 마구 가고 있다는 보도를 하면서 자료화면으로 보여주던 가짜의 기억과 함께 아직도 제대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에 대한 화가 납니다.

한 명이 구축한 체계는 그 사람이 없으면 무너지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기민한 사장이었다면 그 인간성과는 별개로 그 인맥과 체계를 빼앗아올 생각을 할텐데 당시 사장이 욕심은 많았어도 감은 좀 딸렸나 봅니다. 저도 초기사무실에서 원년맴버로 일하다가 나와서, 그리고 속아서, 나올 때 그 비열한 자의 행동이 기억이 나네요...

아이가 없어서 잘 모르지만 시간이 훌쩍 흘러서 성인이 되어가는 자녀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감은빛 2025-04-21 14:07   좋아요 1 | URL
11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세월호 사고의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죠. 그저 잠수함 충돌은 아닐 거라는, 어마어마한 과적과 불법 개조로 인해 복원성이 무너진 선체가 원인일 거라는 추측만 남았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터라 어쩌면 영원히 그 진실을 밝혀 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잠수함을 탓하는 음모론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착실한 조사가 필요했다는 뉴스타파의 기사를 보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게스트님도 비슷한 경험을 겪으셨나 봐요. 저는 나중에 그 사장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혼자 어쩔줄 몰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당연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일인 것을 그것도 모르고 나를 해고 했나 싶어서 어이 없기도 했고, 그냥 사람이 그거 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했어요. ㅎㅎㅎㅎ

2025-04-23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4-30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번째 대회

지난 토요일 양천마라톤 대회에 다녀왔다. 이번에도 10킬로미터 코스. 이 대회는 풀코스는 없었지만, 하프 코스, 10킬로미터, 5킬로미터에 더해 커플런(10킬로)과 페밀리런(5킬로) 부문도 있어서 개인이 아닌 여러명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꾸준히 함께 달릴수 있는 지인들이 있다면, 이런 부문에 참여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것 같았다. 물론 나는 대회에서 기록을 중요시 하다보니 어쩐지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그냥 달려서 싸움이 벌어지거나 서로 서운해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날 달리다가 중간에 아마도 커플런 참가자로 보이는 젊은 남녀와 일정 시간 함께 있었다. 중간에 여성 참가자가 조금 속도가 쳐져서 내가 앞으로 치고 나간 후로는 마주치지 못했었다. 아마도 나보다 훨씬 더 잘 달릴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그 남성 참가자는 커플런이라 여성과 속도를 맞출수 밖에 없었겠지.

양천구가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대회장소까지 버스 타고 약 1시간 10분 거리라고 지도앱이 알려줬다. 집결시각은 7시 50분 대회 시잘은 하프코스가 8시 30분. 10킬로 코스라 8시 40분이었다. 미리 가서 옷도 갈아입고, 짐을 맡기고, 몸을 풀어야 하니 8시 전에 도착해야 원활하게 준비할 수 있겠지. 미리 받은 번호표와 기록칩과 함께 경품 응모권이 있었고, 안내문에는 경품 응모권은 7시 50분까지 내야 한다고 되어 있었다. 경품을 얼마나 많이 주는지 알 수 없지만, 참가자가 수천명일텐데 내가 당첨될 확률은 없다고 생각하고 깨끗하게 포기했다.

금요일 저녁에 파주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밤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과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돌아와서 그랬는지, 약간 뭔가 더 먹고 싶은 생각에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서 들어와 씻고 먹었다. 평소라면 안 먹었게지만, 다음날 아침 대회에서 달릴 생각을 하니, 아침에는 뭔가 먹기 어려울 것 같아서 차라리 밤에 먹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잠을 청하려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중요한 일정이 있는 전날엔 거의 매번 이렇게 불면증에 시달린다. 꿈을 꾸면 자꾸 늦잠 자고 시간에 쫓기는 꿈을 반복해서 꾼다. 암튼 새벽 늦게에 잠이 들었다가 알람 소리를 듣고 깼는데, 너무 피곤했다. 두 개의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었다가 세번째 알람을 듣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아, 이번에도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양쪽 무릎이 다 안 좋았다. 씻기도 전에 관절 통증이 있을 때 먹는 진통제부터 찾았다. 지금까지 달리리 대회 마다 무릎이 안 아픈 날이 없었다. 매번 진통제를 먹고 뛰었었다.

속을 비우고, 씻고 옷을 입고 짐을 챙겼다. 이주전 불광천 대회에서 간식으로 받은 작은 쵸코바가 남아 있길래, 달리기 시작 전에 먹으려고 챙겨 넣었다. 대회 장소인 안양천 변 축구장은 버스를 내려 한참 걸어야 했다. 지도를 보고 낯선 길을 찾아가다보니 멀리서 스피커를 통해 진행자가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가니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참가자 수에 비해 이동식 화장실은 수가 너무 적었다. 보통 이렇게 화장실 앞에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여성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남성은 줄이 짧은데, 여기는 아예 여성은 기다리는 사람이 없고 남성들은 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누군가 지인과 떠들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남자들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만큼 이 대회에 남성 참가자가 많다는 뜻이겠지. 화장실을 다녀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짐을 맡겼다. 짐 맡기기 직전에 챙겨온 작은 쵸코바를 먹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제일 먼저 챙겼던 진통제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물도 없이 삼켰었다.

안내문에 각 코스 출발지나 나와있지 않았다. 대회 장소를 배회하는 사이에 이미 하프 참가자들은 출발했다. 그 다음이 10킬로 출발이었다. 사람들이 우루루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갔다. 정말 많았다. 저 멀리 앞쪽에 노란 풍선들이 몇 개 떠있었다. 페이스메이커들이었다. 안양천 천변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는 불광천 보다는 넓었지만, 그래봐야 차도를 막고 치루는 대회에 비해서는 길이 좁았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길은 좁으니 막힌 길을 뚫고 가기가 어려우리라 예상했다.

출발을 하고 보니 시작부터 앞쪽 사람들의 늦은 페이스 때문에 자꾸 발이 느려졌다. 무리를 해서라도 사람들을 헤치고 앞쪽으로 나가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순간 실수로 부딪히면 크게 다칠 수도 있어서 쉽지 않았다. 간혹 뒤에서 치고 나오는 사람들이 아예 길 바깥의 화단으로 넘어가서 달리길래 나도 그렇게 길 밖을 한참 뛰었다. 사람들을 제치며 1킬로를 조금 지났을 즈음에 1시간 10분 페이스메이커를 만났다. 하, 이제 1시간 10분이라고. 내 목표는 52분이니 얼마나 더 서둘러야 할지 감이 잘 안 왔다. 계속 사람들에게 막혀서 느려졌다가 눈치를 보며 추월하느라 에너지를 더 쓰는 느낌이었다. 앞이 뚫리면 속도를 내고, 막히면 양 옆 구석을 살피며 치고 나갈 틈을 모색했다. 3킬로미터 즈음부터 조금 원활하게 달릴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아예 앞이 막히는 일이 적었다. 나는 대략 510 페이스로 달렸다. 이제부터 온전히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510은 무조건 오버페이스였다.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무조건 후반에 지쳐서 죽을 듯이 힘들거라는 것을.

이주전 불광천 대회에서 대체로 520 페이스로 달려서 내 목표였던 53분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후반에 지쳐서 페이스가 쳐지는 통에 54분으로 들어온 것이 생각났다. 어차피 520 이나 510이나 둘 다 후반에 지치는 건 마찬가지일 터. 속도를 낼 수 있을 때 더 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달렸다. 이 대회는 지금까지 겪었던 다른 대회보다 급수대가 많았다. 처음엔 급수대를 만날 때 마다 한 모금이라도 마셨는데, 매번 이렇게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고 물을 마시면 안 될 것 같았다. 평소 달릴 때에는 15킬로 이상도 물 한모금 안 마시고 달리는데, 이렇게 자주 물을 마실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중간부터 과감하게 급수대를 지나쳐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반환점을 돌아 6에서 7킬로미터 사이 즈음 최고 속도였다. 500에 가까운 정도. 7킬로를 지나 8킬로를 향해 가면서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오른발 앞쪽에 물집이 생길듯 통증이 느껴졌다. 늘 그랬다. 대회가 아니라 그냥 혼자 달릴 때에도 딱 8킬로 즈음에 지치고, 물집이 생길 것처럼 아팠다. 속도를 어느정도 낼 때에는 그랬다. 속도 욕심을 안 내고 좀 여유있게 6분대 페이스로 달리면 10킬로를 넘겨도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20킬로 정도까지는 달렸으니까.

여기서부터가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수백번 발을 멈추고 걷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꼭 목표를 달성하고 싶었다. 시작할 때 너무 뒤쳐져 있었기 때문에 내 속도를 내기 어려웠고, 중간에 오버 페이스를 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9킬로미터 지점을 지나 이제 1킬로 남았는데 너무 지쳐서 발이 무거웠다. 이때부터 길 옆에서 응원하는 분들이 계셨다. 저 멀리서 볼 때 부터 모든 참가자들을 응원하면서 커다란 손 모양 장갑을 끼고 하이파이브를 유도하는 일행 세 명이 보였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그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지나갔지만 한두명 정도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일부러 길가로 옮겨가며 그들 세 사람과 힘껏 손바닥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들의 응원을 통해 어떻게든 다시 힘을 끌어내고 싶었다. 물론 그건 아주 잠시였다. 이미 지칠대로 지쳐서 얼마 못 가 다시 속도가 떨어졌다. 이번에는 어느 할아버지가 길가에 서서 이제 450미터 밖에 안 남았다고 힘을 내라고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고 계셨다. 내가 지나칠 때에도 힘내라고 응원해주셔서, 나도 억지로 웃으며 주먹을 들어올려 보였다. 다시 조금 더 힘을 냈다. 이제 저 멀리 결승선이 보였다. 조금 더 페이스를 올려보고 싶었지만, 이미 한계였다. 현재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도 버거웠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추월했다. 반환점을 돈 후에 긴 시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비슷한 페이스로 달려온 참가자였다. 내가 지쳐버린 이후로 한동안 안 보여서 이미 저 멀리 앞으로 치고 나간줄 알았는데, 그동안 내 뒤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막판 스퍼트를 올리길래, 나도 억지로 다시 발을 더 빨리 움직이려 노력했다. 드디어 결승선을 지났다.

정말 죽을 듯이 힘들었지만, 천천히 걸어서 완주 메달을 받고 간식을 받았다.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오고, 맡겼던 짐을 찾고 난 후에야 비로소 축구장 한쪽 구석 바닥에 앉았다. 처음에 확인한 기록은 51분이었다. 작년 11월 말 대회 54분, 이주전 불광천 대회 역시 54분. 내 목표는 52분이었는데 목표는 달성했다. 그리고 개인 신기록이었다.

그날 오후에는 내가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지역정당의 총회가 있었다. 아침부터 다른 운영위원들은 총회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에 나만 혼자 달리기 대회를 하러 와있었던 것이다. 이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한 것은 1월이었고, 나중에서야 총회 날과 대회가 같은 날인걸 알았지만, 대회가 오전이라 다른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온 것이었다. 목표는 달성했으니, 기분 좋게 총회를 준비하러 갔다. 물론 곧바로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기 때문에 한참을 쉬었고, 겨우 움직일 수 있겠다 싶을 때 버스를 타러 갔다. 달리면서 안양천 양 쪽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을 보았다. 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는 불광천에도 벚꽃이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버스에서 이번에 목표를 달성한 원인을 생각해봤다. 평소보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고, 무릎도 양 쪽이 다 아팠었다. 진통제를 먹고 나아지긴 했지만. 엊그제 그러니까 대회 이틀 전에 약 7.5킬로를 뛰었는데, 그게 주요했던 것 같다. 대회를 앞두고 일부러 딱 7에서 8정도만 뛰어야지 생각했던 것이다. 몸의 회복 흐름과 부하의 관점에서 내가 최대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날 이삼일 전에 약 70퍼센트에서 80퍼센트 정도의 강도로 운동을 하면 내 몸이 그 운동의 100퍼센트를 낼 수 있다고 어렸을 때 들었던 기억이 났다.

오후에 총회에서는 사전행사 진행을 맡았다. 버스를 내려 집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옷 갈아입고 바로 다시 나갔다. 총회를 마치고는 여러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기록을 세웠기에 용서해 준다고, 만약 기록을 못 세웠으면 용서 안 했을거라는 지인의 장난 섞인 축하를 기분 좋게 받았다.

그리고 주말이 지나 오늘 월요일에 다시 문자가 왔다. 어, 이번에는 다시 1분 가량 기록이 줄어있었다. 다시 받은 기록증의 숫자는 50분이라고 나왔다. 와! 이건 정말 예상 못 한 기록이었다. 51분이나 52분은 그렇게 되려고 달린 거니까 이해할 수 있는데, 50분은. 내가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에는 나오지 않았던 등수가 오늘은 나왔다. 나는 사실 이게 더 궁금하긴 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첫 대회와 두번째 대회 모두 전체 참가자와 성별로 등수를 매겼을 때 절반보다 살짝 앞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얼마나 나왔을지 궁금했다. 세번째 대회인 불광천 대회는 아예 등수를 알려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등수가 비어있길래 나중에 집계되면 나오겠지 싶었다. 자, 그래서 등수는? 10킬로미터 코스 전체 참가자 2228명 중에 229등. 10킬로미터 남성 참가자 1366명 중에 196등. 이 정도면 썩 괜찮은 성적이다. 전체 순위로는 절반이 아니라 상위 10퍼센트로 가까이 올랐고, 남성으로도 20퍼센트 안에 들었다.

작년에 두 번, 올해 두 번 총 네 번의 대회를 뛰었다. 한 번은 너무 더웠고, 한 번은 너무 추웠다. 딱 적당히 뛰기 좋은 날 있는 대회를 고른 것이 이번 양천 대회였다. 정말 딱 뛰기 좋은 날이었다. 오후에는 비 예보가 있었는데, 실제로 비가 왔고, 일요일 새벽에는 눈도 왔다. 나는 처음으로 비를 맞으며 달리려나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다행히 오전에는 살짝 흐리기는 했지만 날씨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이 대회를 잘 골랐던 나를 칭찬하며, 신기록을 세운 것도 칭찬한다. 이제 다시 꾸준히 달리고 가을에 또 괜찮은 날씨에 괜찮은 대회 하나를 나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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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4-15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요일이면 날씨도 좋지 않았던것 같은데 신기록을 달성하셨다니 축하 드립니다^^

감은빛 2025-04-15 13:3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고맙습니다!
그래도 토요일 오전에는 날씨가 아주 나쁘지 않았어요.
오후가 되어서 안 좋아졌어요.

희선 2025-04-15 0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릎 아프면 달리기 안 좋을 것 같기도 한데, 그때만 많이 아팠던 거기를 바랍니다 기록보다 건강하려고 달리면 더 좋겠습니다 이런 말이라니... 하면 기록이 좋기를 바랄 듯합니다 그냥 혼자 달릴 때보다 대회는 긴장이 조금이라도 되겠지요 많이 될지... 좋은 기록 나온 거 축하합니다 생각한 것보다 잘 나와서 기쁘셨겠네요


희선

감은빛 2025-04-15 13:36   좋아요 0 | URL
희선님, 제 무릎 통증은 달리기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평소에도 아프다가 안 아프다가 하는데, 꼭 중요한 달리기 대회 날에는 아프더라구요.
대회 날에는 긴장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아서 약간 흥분이 되기도 하더라구요.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루피닷 2025-04-15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키로 PB 달성 축하드립니다🎉🎉

감은빛 2025-04-15 13:37   좋아요 1 | URL
루피닷님, 고맙습니다!
 

기념일

그냥 탄핵 선고 기념일이라고 하기는 좀 재미없고, 뭔가 그럴듯한 이름의 기념일로 정해두고 싶은데, 아직은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작년 12월 3일 비상 계엄이라는 어이없는 일을 겪고, 111일만에 드디어 상식이 통하는 세상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그간 너무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벌어져서 내가 지금 정상적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거 가상현실이거나, 매트릭스 속 세상인 거 아니지? 지금 나 긴 악몽을 꾸고 있는 거 아니지? 그런데 너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정말 내가 현실이 아닌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렇게 계속 현실을 부정하다보면, 결국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저번에 소개했던 누명을 쓴 무기수 김신혜 씨가 결국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것은 부정하고 싶은 현실에 아주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 저녁에 조합원들과 쓰담걷기(쓰레기 담으며 걷기, 플로깅 혹은 줍깅이라고도 부름)를 하고 간단하게 비건 와인과 비건 안주를 나눠먹으며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다들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제발 만장일치로 탄핵 인용 선고가 나오기를. 얼른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기를. 내란성 우울증과 내란성 불면증을 끝내기 위해 꼭 필요한 선결조건이다. 그래도 같이 이런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사람들이 근처에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쓰담걷기의 효능도 있었다. 윤석열을 얼른 치워버리는 기분으로 쓰레기를 주워 담았는데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담배꽁초가 정말 많이 버려진 나무 정자 근처를 긴 시간 치웠는데, 그 지저분하고 어지럽던 공간이 말끔하게 치워진 모습을 보는 것이 꽤 기분이 좋았다. 오타니는 쓰레기를 줍는 작은 선행으로 자신에게 운을 모은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열심히 쓰레기를 치운 만큼의 운이 모여서, 긴 시간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에서 외치고, 응원봉을 흔든만큼의 정의가 작동해서 결국은 내란 수괴를 파면하리라 믿으며 헤어졌다. 너무 피곤해서 집에와서는 씻지도 않고 잠들었고, 아침에 깨서 몇 개 방송사의 아침 뉴스들을 찾아들으면 선고 시간을 기다렸다.

드디어 11시 22분. 주문을 낭독하는 소리를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이것이 상식이지. 전세계가 다 지켜본 범죄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지.

점심을 먹고 책을 좀 읽으려다가 왠지 기분이 아니어서 대충 씻고 산책을 나섰다. 모처럼 쉬는 날이라 잠이라도 더 자고 싶었는데, 잠도 오지 않았다.

오후가 되어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오늘이 오늘이니 얼굴을 봐야하지 않겠냐고. 그래. 일단은 오늘을 즐기자. 그 뒤에 올 상황이 훨씬 더 두렵기는 하지만. 지금 거기까지 생각하기에는 너무 머리가 아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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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2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4-15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번째 달리기 대회


일요일에 동네에서 달리기 대회가 열렸다. 불광천 벚꽃 마라톤 대회라는 이름의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3월 초에 지인이 알려줬다. 사실 달리기 대회라서 반가운 마음 보다는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불광천 천변 산책로는 좁은데, 사람은 엄청 많다. 특히 벚꽃이 피면 정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린다. 이 좁은 천변을 은평구청장은 잠시도 가만히 놔두지 않고 이것저것 돈을 쳐발라 가며 쓸데없는 짓거리들을 벌이곤 한다. 왜 자꾸 멀쩡한 산책로를 파헤치고, 왜 예쁘기만 한 화단을 뒤엎어 없애 버리는지. 왜 자꾸 쓸데없는 조명을 덕지덕지 붙여서 예쁘지도 않은 이상한 것들을 세워두는지. 왜 쓸데없이 구조물들을 세웠다가 없앴다가 또 세우기를 반복하는지. 평소 불광천 산책로를 따라 한강으로 달리기를 주로 하는데,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 밤에 달리는 편이다. 사람들이 많을 때에는 제대로 달릴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달리기 대회를 연다고? 선착순 1100명이나 모집한다고? 내가 작년에 참가했던 두 번의 대회 모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좁은 출발지에 몰려있던 모습들이 먼저 떠올랐고, 차량 통행을 막고 차선을 2개 혹은 3개까지 사용했던 모습들이 생각났다. 이 좁은 산책로에서 달리기 대회를 열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한 거 아닌가 싶었고, 혹시라도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일단 달리기 소모임에 이 소식을 공유했다. 그 방에 계신 다른 한 분이 작년에는 그 대회에 800명이 참여했었다는 얘기를 전했다. 올해가 처음이 아니었구나. 작년에도 별 일이 없어서 올해는 그 규모를 더 늘린 거였구나. 우리 달리기 모임은 주로 불광천 산책로에서 달리기를 하다보니 이 대회는 우리 모임이 참여하기 딱 좋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참가 신청 서버가 열리면 다 같이 신청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 대회 참여하려고 일부러 멀리까지 가기도 하는데, 우리 동네에서 달리기 대회가 열리는 건 반가운 일이기는 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신청하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서 드디어 서버가 열린 날. 나는 미리 알람을 맞춰두었기 때문에 딱 정시에 들어갔다. 어, 그런데 신청을 하려고 보니 홈페이지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고 나온다. 다른 대회들에 신청할 때는 이런 적이 없어서 좀 당황스러웠다. 대회 하나 신청하려고 회원가입까지 하게 만들다니. 참 번거로운 일이다. 그렇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할 수 밖에. 얼른 하지 않으면 마감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얼른 회원가입을 위한 정보들을 입력하고 빠르게 신청을 완료하고 카드 결제까지 마쳤다. 중간에 몇 차례 화면이 넘어갈 때마다 로딩이 길어지곤 했다. 사람들이 몰려서 서버에 부하가 걸렸다는 뜻이다. 혹시라도 마감이 되어버릴까봐 조금은 조바심이 났지만, 다행히 신청 접수에 성공했다. 그리고 소모임 방에 들어가보니 신청 완료했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도 성공했다는 소식을 올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벌써 마감되었다고 ㅠㅠ 를 올리는 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허, 정말 간발의 차이였을 것 같았다. 내가 성공하고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마감이 된 듯하다. 나중에 언론 기사를 보니 서버 열리고 10분만에 마감되었다고 했다.


이쯤에서 삐딱한 사람으로서 여기저기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라는 행사 이름에 대해 한 마디 하고 달리기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번 불광천 달리기 대회는 겨우 2개의 코스만 신청을 받았다. 5킬로미터와 10킬로미터. 보통 다른 대회들은 10킬로미터가 가장 짧은 코스이고, 하프 코스와 풀코스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불광천이 짧아서 10킬로미터도 간신히 가능하고, 하프도 불가능하니 어쩔수 없이 5킬로미터를 넣었겠지. 그런데 왜 '마라톤' 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마라톤은 고유명사로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경기를 말한다. 겨우 10킬로미터 달리는 대회에 마라톤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뭘까? 작년에 참여했던 와이엠씨에이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그 대회는 10킬로미터와 하프 코스 이렇게 두 개만 있엇는데, 역시 '마라톤' 이라는 단어를 썼다. 풀코스가 없는데, 왜 썼는지 궁금했다. 물론 이해할 수 있다. 달리기 열풍이고, 마라톤 이란 단어를 써야 뭔가 더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달리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실제로 42.195 킬로미터 풀코스를 뛰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나는 아직 도전해보지 못한 일이고, 어쩌면 평생 도전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사람이 40킬로미터 이상을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이제 겨우 20킬로미터 정도는 뛸 수 있게 되어지만, 어쩌면 25킬로미터 정도는 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이상은 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런데 왜 부담스럽게 마라톤 이라는 단어를 여기저기서 막 갖다 쓰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냥 달리기 대회라고 하면 될 것을. 달리기 라는 쉽고 좋은 단어를 놔두고 왜 자꾸 마라톤 이라는 단어를 쓰는지. 참.


대회 날짜가 다가오는 중에 이 대회에 김미경 은평구청장이 달릴 예정이고,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씨가 구청장과 함께 달릴 거라는 언론 기사가 나왔다. 누군가가 계획을 세웠다. 사람들을 모아서 대회 장소에서 혁신파크 민간 매각 반대 피케팅을 하자고 했다. 그때 얼른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해 대회 신청에 성공한 사람들을 모아서 등에 몸자보를 붙이고 뛰면 좀 더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겠다고. 그래서 우리 소모임에서 신청 성공한 사람들에게 몸자보를 붙이고 함께 뛰어주십사 부탁들 드렸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흔쾌히 함께 하겠다고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렇게라도 뛰면 사람들 눈에 띄겠지.


그리고 대회 전 날. 지인 중 누군가가 많이 속상한 일을 겪어 위로해주자고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아이들을 만났다가 친한 친구랑 만나고 있었는데, 늦게라도 좋으니 꼭 오라는 연락을 받고 밤 늦은 시간에 합류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고, 달리기 대회 때문에 컨디션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원래 대회 전날엔 음식도 신경쓰고, 일찍 자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엄청 노력해야 하건만. 집으로 돌아갔을 때는 새벽 4시가 넘어서였고. 대충 씻고 누운 것이 5시였다. 알람을 5개를 맞춰놓고 눈을 감았다. 겨우 2시간 조금 넘게 자고 울리는 알람을 끄고 다시 눈을 감기를 반복했다. 4개의 알람을 모두 끄고 다시 누웠다가 5번째 알람 때 눈을 번쩍 떴다. 아, 너무 피곤했고, 너무 너무 나가기가 싫었지만, 몸자보를 전달해주고 나서 나도 몸을 풀어야 달릴 수 있다. 그냥 대회였다면 포기할 수도 있겠지만, 혁신파크 투쟁의 일환으로 참여하는 거라 안 나갈 수가 없었다. 이미 다른 동료들은 거리에서 피케팅을 시작했을 시간에 나는 세수만 하고 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대회 장소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몸자보를 함께 붙이실 분들에게 전달하고 나도 준비를 시작했다. 피켓팅을 하고 있던 동료 두 명이 와서 도와줬다. 내 등에 몸자보를 달아주고, 배번호표를 앞에 달고 짐을 맡기는 등 준비를 도와줬다. 날이 추워서 손도 시려웠고, 이상하게 옷핀으로 고정하는 일이 잘 안 되었는데, 동료들이 도와주니 금방 해결되었다. 마치 두 명의 매니저가 붙어서 선수를 보좌해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암튼 혼자 대회에 나갔던 경험이 기억나서 이렇게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동료들이 있어서 엄청 기분이 좋았다.


지난 번 두 번째 대회의 기록보다 1분을 앞당기는 것이 목표였다.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았지만, 동료들의 응원 덕분에 힘을 냈다. 처음부터 조금 오버 페이스로 뛰었다. 반환점까지는 순조롭게 달렸다. 페이스가 나쁘지 않아서 무난히 목표를 달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환점에서 물을 마시는데, 다른 대회와 달리 종이컵이 아닌 플라스틱 컵을 사용했더라. 환경을 생각해서 종이컵을 안 쓴 것은 좋은데, 컵을 담을 통을 조금 더 멀리 뒀으면 좋았을텐데, 가까이에 두는 바람에 뛰다가 멈추고 물을 마셔야 했다. 한번 멈추면 흐름이 끊어지는 법. 게다가 오버 페이스 였기 때문에 상당히 힘들었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걷게 되었다. 아주 짧은 시간 걷다가 갑자기 목표가 생각났다. 얼른 다시 뛰기 시작했다. 뛰다가 약 6킬로미터 지점에서 한 참가자가 나를 제치고 앞으로 나가면서 작은 소리로 "혁신파크 화이팅!" 이라고 말해줬다. 역시 몸자보를 붙이고 뛴 보람이 있구나. 나는 고맙습니다 하고 크게 소리를 치고 힘을 냈다. 약 7.5킬로미터 지점에서 여러 사람들이 누군가를 보호하듯 둘러싸고 걷는 모습을 보았다. 김미경 구청장과 황영조 씨가 그들 가운데서 걷고 있었다. 에워싸고 걷는 이들은 아마도 공무원들이겠지. 카메라를 든 사람 두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그들 무리의 앞으로 가서 김미경 구청장이 내 등에 붙인 몸자보 문구를 읽을 수 있도록 잠시 멈춰섰다. 그런데 내가 멈추자마자 카메라 맨 중 한 명이 나를 제지하며 비키라고 했다. 평소였다면 약간의 실랑이를 벌여서라도 그냥 물러나지는 않았겠지만, 이건 달리기 대회니까 실랑이를 벌이면 무조건 내가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순순히 비키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조금 힘이 빠졌다. 너무 순순히 비켜준 것 같아서 후회한 것이다. 이렇게 되었으니 목표라도 달성하고 싶어서 속력을 올리고 싶었으나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8킬로미터를 지나면서 부터는 체력이 딸린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9킬로미터 지점부터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발바닥이 아팠다. 드디어 저 멀리 결승점이 보였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결승점에 들어서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마치 만세 삼창을 하듯이 "혁신파크 민간 매각 반대"라는 구호를 세 번 크게 외치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여기저기서 피켓팅을 하던 동료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고생했다며 어깨를 토닥여 줬다. 기록을 보니 지난 대회보다 오히려 11초나 더 느렸다. 반환점에서 아주 잠시 걸었던 것과 구청장 앞에 잠시 멈췄던 것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아니 사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무릎도 안 좋은 상태로, 최악의 컨디션으로 참여했으면서 이 정도 뛰었으면 잘 한거 라고 생각을 바꿨다. 4월 12일에 또 대회에 나가야 하니, 그때는 꼭 컨디션 조절을 잘해서 이번에는 2분 줄이는 걸 목표로 달려봐야겠다.



성폭력과 자살


장제원 이라는 정치인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성폭력 사건으로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고 했다. 하! 박원순이 한 짓과 완전히 똑같은 짓을 또 저질렀구나. 이제 뭐 성폭력을 저지른 정치인들의 행동 패턴 같은 것이 되려나. 뭐 그러기엔 안희정은 멀쩡히 잘 있긴 하는구나. 스스로 생각해도 수치스럽고 앞으로 사람들의 비난과 수사를 받는 과정 등을 견디기가 힘들다 생각해서 결국 생을 마감한 것이겠지만, 그 행동은 너무 비겁하다. 살아서 죄값을 치르고 피해자에게 사죄할 생각을 해야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SNS에 박원순을 옹호하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다시 나타나더라.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 법. 쓰레기가 쓰레기인 이유는 명확하다.


지브리 풍 그림들


갑자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림체의 만화 프로필들이 눈에 뜨기 시작했다. AI가 만들어 준 이미지라고 하더라. 순간 거부감이 강하게 들었다. 너도 나도 다들 유행처럼 하는 것에 나는 제일 먼저 반감부터 느끼는 사람이다. 남들이 다 본다는 영화는 보기가 싫어지고, 남들이 다 읽는다는 베스트 셀러 도서는 안 읽고 싶어진다. 삐딱한 인간이라 그런가보다. 지브리 풍 그림체라는 것도 누군가 좋아할 수 있고, 그걸 프로필로 쓸 수도 있지만, 너도 나도 다 따라하는 모습은 기괴하다고 느낀다. 저작권 문제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발언들 그리고 에너지 소비 등 많은 의견들이 넘쳐나던데, 그걸 다 떠나서 나는 그냥 사람들이 나도 한 번 해볼까 하고 따라하는 모습 자체가 불편하고 무섭다.


AI가 만든 이미지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딥페이크를 비롯해서 여기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할 말이 많은데.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아, 오늘은 제주 4.3 기념일이다. 잠시 시간을 내어 수많은 희생자들을 기리는 묵념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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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4-11 0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십킬로미터 달리기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제가 가장 많이 달린 건 학교에서 한 팔백미터였나 일킬로미터도 안 되다니... 그냥 일킬로미터 달려본 적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좁은 길을 많은 사람이 달리게 했네요 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입니다 십분 만에 마감이 되다니, 달리기에 관심 갖는 사람이 많군요

저도 지프리 그림을 말하는 기사 봤어요 저는 안 쓰지만 지금 AI 쓰는 사람 많은가 봅니다 AI와 말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봤군요 인공지능이 필요한 곳도 있겠지만, 쉽게 쓰는 것도 안 좋을 듯합니다

감은빛 님 다음 달리기에서 시간 줄일 수 있기를 바라고 즐겁게 달리세요


희선

감은빛 2025-04-15 13:42   좋아요 0 | URL
사실 사람이 막 2~3킬로미터 이상을 달릴 일이 거의 없죠.
저도 처음 몇 년 동안은 길게 달려도 3킬로미터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작년에 처음으로 10킬로미터 대회를 신청해놓고,
그때부터 7킬로, 8킬로, 9킬로 이렇게 거리를 늘려가며 달렸죠.
첫 대회를 뛰고 나니 그 다음부터 10킬로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뛸 수 있게 되었어요.
뭐든 첫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중에 20킬로 정도를 뛰고 나니,
10킬로는 더 쉽게 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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