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 동물권리선언 시리즈 1
로브 레이들로 지음, 박성실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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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3월 일본 ‘도쿄권업박람회’의 학술인류관에서는 조선인, 류큐인(琉球人), 아이누인 그리고 대만의 고산족(高山族) 등을 진열하여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충격적이다. 인간을 마치 물건이나 동물처럼 진열해두고 구경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니! 그리고 아프리카 원주민을 전시한 유럽의 사례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오타 벵가라는 피그미족 청년은 만국박람회에서 전시된 후 동물원으로 팔려가서 오랑우탄의 우리에 함께 갇혔다. 미국과 유럽과 일본의 야만적인 제국주의에 분노했다.

 

그런데 이때만 해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나중에 G. A. 브래드쇼의 『코끼리는 아프다』와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 등을 읽으면서 그때 놓쳤던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가두면 안 되고, 동물은 구경하기 위해 가둬두어도 괜찮은가? 우리는 오타 벵가 뿐 아니라 그와 함께 갇혀 있던 오랑우탄을 비롯한 수많은 동물에 대해서도 함께 분노해야 했다.

 

이 책의 원제는 ‘Wild Animals in Captivity’다. ‘창살에 갇힌 야생동물’ 정도로 옮길 수 있겠다. 저자인 로브 레이들로는 생물학자이자 운동가로 특히 동물원에 갇혀있는 동물들에 관심을 두고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동물원을 찾아다니며 그 안에서 고통받는 동물들을 지켜보았다. 이 책은 인간 사회에 그 실상을 고발하는 문제작이다.

 

북극곰이 있다. 북극이 아닌 열대지역인 인도네시아의 한 동물원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있다. 뜨거운 태양과 무더운 날씨를 피하고 싶겠지만 갈 곳은 없다. 그저 좁은 우리 속에서 그늘을 찾아다니는 것 외에는 할 일도 없다. 그런데 한낮이 되어 우리 안의 그늘이 사라지자 북극곰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왔다갔다하기 시작했다. 한쪽으로 걷다가 방향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걷다가 다시 방향을 돌려 걷기를 반복했다. 이런 행동을 스테레오타이피(stereotypy), 즉 비정상적 반복행위라고 한단다. 동물원에 갇힌 많은 야생동물이 이런 무의미한 행동을 온종일 반복하고 있단다.

 

충격적인 것은 새하얀 북극곰의 털이 초록빛과 누런빛으로 얼룩덜룩한 모습이었다. 더러워진 것일까? 목욕을 안 시켜주나? 북극곰의 겉 털 안쪽에 녹조류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란다. 올여름 낙동강과 영산강을 뒤덮은 죽음의 녹조가 떠올랐다. 새하얀 얼음나라에서 새하얀 털을 바람에 날리며 살아야 할 북극곰이 바람 한 점 없는 습하고 뜨거운 곳에서 물감으로 장난치고 안 씻은 것처럼 얼룩덜룩한 모습으로 콘크리트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진을 보며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가 맨 처음 들려주는 두 마리의 도마뱀 이야기처럼 갇혀 있는 존재는 그 존재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좁은 우리에 갇힌 채 인간이 갖다 주는 먹이에 의존해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 존재는 이미 예전의 자유로웠던 존재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만약 사자를 철창 안에 가둬두고 지켜본다면 그건 생김새만 사자일 뿐, 정글 속에서 살아가는 사자와는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런 사자를 지켜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자의 생김새는 사진이나 그림이나 영상물로 얼마든지 관찰할 수 있다. 직접 보고 싶다면 사자가 사는 곳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이제 더는 인간의 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이용한 돈벌이 때문에 야생동물들을 콘크리트 지옥에 가둬두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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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3-09-07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날 그 길에서> 영화를 찍은 황윤 감독님이 동물원 이야기도 영화로 찍었는데... 저는 황윤 감독님 말이 참 옳다고 생각해요. '동물원은 모두 없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래요, 동물원은 모두 없어져야 하지요. 돌고래쇼도 없어져야지요...

감은빛 2013-09-09 18:5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최근에 동물원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관람객으로 지나칠 때는 몰랐지만,
동물들은 창살 안에서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버티고 있더라구요.
동물을 이용한 모든 쇼와 오락거리는 없어져야 합니다!
 

 

배신감

 

주말에 녹색당 지역모임에 회의가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애들은 아빠가 회의를 하는동안 알아서 노는 일에 익숙하다.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근처에 사는 아이들과 놀이터에 놀러간다. 한창 회의를 하고 있는데, 큰아이가 자꾸 아빠를 부른다. 왜? 큰 소리로 대답하니, 빨리 와보라고 한다. 회의를 진행하던 입장이어서 갈 수 없으니 말로 하라고 했다. 그러니 말로 할 수 없다고 와보란다. 옆에 있던 당원들이 잠깐 갔다오라고 해서 가봤다. 작은 녀석이 물 컵을 엎어서 탁자와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물을 쏟았으면 걸레나 행주를 찾아 닦아야지. 큰 아이에게 걸레를 찾아 건네주고 다시 회의하러 갔다.

 

회의가 끝나고 치킨을 시켜놓고 맥주를 한 잔 했다. 한 분이 말씀하시길 "아유! 좋으시겠어요. 따님이 둘이니, 저는 아들만 둘이라서......" 뭐, 딸은 딸대로 예쁘고 귀여울테고, 아들은 좀 더 말썽을 부리긴 하겠지만, 그 나름 귀엽고 사랑스러울텐데. 물론 서로 못 가진 것에 대한 아쉬움과 질투심은 있을 것이다. 난 식당이나 공원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은 남녀 상관없이 무척 좋아하고 잘 놀아주는데, 아내는 하필 내가 남자 아이들을 예뻐해줄 때만 그 사실을 지적한다.

 

어른 다섯과 아이 둘이 치킨 두 마리와 맥주 서너병을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헤어질 무렵 누군가 작은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랑 놀러나와서 좋아?" 아이는 당연히 좋다고 대답을 했을테고, 그 누군가는 다시 질문을 바꾸었다. "아빠랑 노는 게 좋아? 엄마랑 노는 게 좋아?" 아이는 아마 아빠라고 답을 한 것 같다. 옆에 있던 큰 아이도 덩달아 "나도 아빠!"라고 대답을 했다. 질문을 했던 누군가는 내게 와서 "아유, 딸들이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네요! 비결이 뭐예요?" 그러나 그 질문은 잘못된 사실을 근거한 것이라 대답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아빠보다는 엄마를 훨씬 더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그런 류의 질문을 하면 대개 그 당시의 상황에 따라 답을 한다. 엄마랑 있으면 엄마를 답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고, 아빠랑 있으면 아빠를 답하는 경우가 조금 더 많다. 그리고 아빠랑 있어도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를 답하는 경우가 제법 많고, 엄마랑 있으면서 아빠를 떠올려 아빠를 답하는 경우는 아주 적지만 가끔 있다. 어쨌거나 빈도를 따져보면 엄마가 답이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회의도 마치고 간단한 뒤풀이도 마치고 아내를 만나 공원으로 놀러갔다. 토요일 저녁이라 조금 늦은 시간까지 부담없이 바람을 쐬었다. 아이들은 낮에 누군가에게 아빠가 더 좋다는 답을 했던 것을 잊은 것처럼 아빠를 밀어내고, 엄마만 찾았다. 채 몇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 배신감에 이미 아주 익숙해져 버렸으니까.

 

맨 처음 배신감을 느낀 때는 아마 아내가 해외출장을 다녀 온 후였을 것이다. 큰아이가 두 돌이 되기 직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둘째는 아직 없었다.) 대략 보름 가량 아내가 집을 비워야 한다고 했을때 걱정이 되긴 했다. 아이를 돌보는 건 늘 함께 하던 일이니 걱정할 것이 없었지만, 아이가 엄마를 찾을 때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아이는 별로 엄마를 찾지 않았다. 오히려 당장 눈에 보이는, 유일하게 자신의 생존에 도움을 줄 어른인 아빠에게 더 확실하게 애정표현을 했다. 아이는 엄마의 부재를 잘 받아들이는 듯 했다. 누군가 물으면 엄마는 아주 멀리 갔으며 며칠 밤이 지나면 돌아온다고 또박또박 말을 했다. 그런데 막상 엄마가 돌아오고 나니 아주 서럽게 울었으며, 엄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 이유없이 아빠를 미워하고 밀어냈다. 그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비슷한 패턴은 반복되었다. 아이는 대견스럽게도 엄마의 부재를 잘 견뎠는데, 엄마가 돌아오면 이유없이 아빠를 밀어냈다.

 

그 배신의 수준이 가장 심했던 것은 아내의 마지막 출장이었다. 둘째가 아직 어려서 걱정이 되었다. 큰 아이도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제 초등학생이니 잘 견디지 않을까 생각했다. 출장 기간도 둘째가 걱정되어 확 줄였다. 일주일만 버티면 되었다. 막상 아내가 떠나고나니 큰 아이가 심하게 엄마를 찾았다. 작은 아이는 평소에도 자주 울었고 딱히 엄마를 찾아 더 많이 울지는 않았다. 매일 아침 아이 둘을 깨워서 씻기고 입히고 간단히 먹여서 데리고 나와야했다. 큰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엄마를 찾아 울었고, 작은 아이는 언니를 따라 울었다. 달래고 얼르고 노래도 불러주면서 출근 준비를 했다. 간신히 준비를 마치면 어린이집을 들렀다가 학교에 들렀다가 출근했다. 하루는 비가 많이 왔는데, 한 팔에 작은 아이를 안고, 기저귀 한 꾸러미와 분유가 든 가방을 매었고, 다른 한 손엔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큰 아이는 우산을 들고 내 가방 끈을 붙잡고 따라왔다. 비가 제법 많이 와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자세 때문에 발밑을 살피기가 쉽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맨홀 뚜껑에 발이 미끄러졌다. 몸이 휙 기울어지면서 넘어졌는데, 이대로 넘어지면 아이가 다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발이 기묘하게 비틀어지면서도 아이만은 품에 꼭 안았다. 하필 아내가 없는 아침에, 하필 어린이집에 기저귀가 떨어져서 갖다주는 아침에 이렇게 비가 오나 싶어 무척 원망스러운 아침이었다. 발을 절뚝거리며 아이 둘을 데려다 주고 출근하는 길이 무척 멀게 느껴졌다.

 

아이 둘을 돌보면서 직장 일을 해낸 그 길고 험난했던 일주일이 지나 아내가 돌아왔다. 아이들은 예상을 저버리지 않고 엄마에게만 매달렸고, 아빠를 멀리하고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럴 줄 알았건만 당연히 올해도 그러리라 예상했건만 그때만은 나도 무척 서러웠다. 지난 일주일 동안 고생했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멀쩡한 녀석

 

작은 녀석은 자주 아침에 깨자마자 짜증을 부리고 울어댄다. 큰 녀석도 한동안 거의 매일 깨우면 짜증과 울음을 반복했지만, 아내와 내가 달래보고 또 야단치고 다시 대화하는 등 계속 노력해서 많이 좋아졌다. 작은 녀석은 아직 어려서 그렇겠지만 달래고 야단치고 알아듣게 얘기해도 변화가 없었다. 정신 없는 아침, 요즘처럼 아침부터 더운 날엔 그 스트레스가 정말 심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어쩐 일로 웃으며 일어나서 한 번도 울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양말도 혼자 찾아 신고 나보다 먼저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찾아 신고 있었다. 그러더니 "아빠도 회사 가야지?" 하고 묻는다. 아주 멀쩡한 얼굴로.

 

또 며칠 전 저녁엔 운동을 나가려고 준비중이었는데, 작은 녀석이 "아빠, 아빠 어디 가?"하고 묻는다. "아빠 운동하고 올게." 했더니, "아빠 지금 깜깜한데 운동하러 가?" 라고 묻는다. 그래서 "응. 아빠는 저녁에 운동하러 가." 하고 답했다. 잠시 생각하던 녀석은 "아빠, 어, 아빠 지금 깜깜하니까 조심해야 돼. 어, 어, 또 비 올때, 어, 비가 오면 위험하니까 빨리 와야돼. 알았지?" 하고 말한다. 아주 멀쩡한 얼굴로.

 

요 녀석이 이제 아빠 걱정을 할 정도로 컸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래. 걱정해줘서 고마워! 아빠가 조심해서 다녀올게. 빨리 올게." 라고 말해주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잠시 아빠 걱정을 해주던 녀석은 금새 인형과 장난감을 찾아 뛰어갔다.

 

경상도 말에 '시건이 멀쩡하다'는 표현이 있다. 대략 '대견하다.', '어른스럽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으려나? 특유의 경상도 말투로 해야 어울리는데, 요즘 작은 녀석을 보면 저절로 이 말이 튀어나온다. "요 멀쩡한 녀석!"

 

 

아쉽다!

 

 이번 주 들어 읽기 시작한 책이다.

 물론 지난 주와 지지난 주에 시작한 책도 아직 끝내지 못했다.

 왠만하면 소설책은 주말에 밤을 새서 한번에 몰아서 읽으려하고,

 그외 나머지 책들은 천천히 쉬엄쉬엄,

 이거 조금 읽다 또 저거 조금 읽다 하고 있다.

 

 향가, 고려가요, 시조, 가사, 민요 등을 다루고 있다.

 아, 맨날 수업 안들어가고 땡땡이 치거나,

 수업을 들어가도 잠만 잤던 국문과 시절이 생각난다.

 

 

 

 

  해방일기를 야금야금 읽고 있었다.

 워낙 천천히 띄엄띄엄 읽으니 진도가 늦다. 

 현재 2권을 읽고 있다. 2권을 다 읽어갈 무렵 3권을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알라딘에서 1~5권 세트를 반 값 할인 한다는

 소식을 보았다. 앗! 이럴수가! 반 값이라니!

 

 이걸 지르려니, 이미 사서 읽은 1, 2권이 아깝고, 무시하고 지나가려니 흔치 않은 기회인 것 같아서 놓치기가 아깝다. 잠시 마음의 동요가 일었으나,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래 지금 사놓아봐야 어차피 5권까지 다 읽으려면 아주 오래 걸릴거다. 원래 읽던 속도대로 천천히 읽으면서 3권 사고, 또 나중에 4권, 5권도 사면 되지 뭐. 당장 읽지 않을 것을 미리 사는 것은 낭비다. 라고 생각하며 지나쳤지만, 그날 이후 보관함과 장바구니를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다 반 값 할인 끝날 즈음에 나도 모르게 결제를 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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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3-08-29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ㅎㅎ
아빠의 입장에서 쓴 아이들의 이야기 참 재밌어요. 한편으로 다른 집들도 비슷비슷하구나 싶고요.
아이들이 부모를 걱정하는 표현할때, 가슴 뭉클한 뭔가가 있었는데......애들 마음 잘 이해해주지 못하는 우리가 더 부끄러울때가 있죠.ㅎㅎ

감은빛 2013-08-29 20: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꿈꾸는섬님.
아이들 키우는 집은 대개 비슷하겠죠.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말씀처럼 아이들 마음을 잘 살피지 못해
늘 미안하고 또 부끄럽고 그렇네요.

Mephistopheles 2013-08-30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신감....공감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죠.
엄마에게 들러붙는 건 물론이요. 단 둘이 있을 때 일을 엄마에게 고발까지 하니까...ㅋㅋㅋ

감은빛 2013-09-06 09:57   좋아요 0 | URL
역시 아빠 입장에서 공감해주시는군요.
아이들은 무서워요!
엄마나 할머니한테 금방 다 일러버리니까요. ㅠ.ㅠ

무해한모리군 2013-08-30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딸은 제 딸이 아니예요 ㅎㅎㅎ
제가 오면 손정도 흔들어주고 할머니가 오면 격하게 뛰어가서 안겨요.. 외로워요 흑흑

감은빛 2013-09-06 09:58   좋아요 0 | URL
음 지금은 그렇군요.
좀 더 지나면 더 심하게 엄마를 찾을 거예요.
그때가 되면 오히려 지금이 더 좋았지 싶을걸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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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손 내밀면 닿을 수 있는 현실의 가족이나 친구보다는 실체도 보이지 않는 온라인 상의 인간 관계가 더 소중하고 깊을수 있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처음 인터넷을 통해 채팅이란 걸 경험해보고, 이메일 계정이란 걸 만든 이후로 온라인을 통해 얼굴 모르는 이들과 감정을 나눈 경험은 생각보다 많았다. 부모나 친구에게는 말 못할 은밀한 고민도 낯 모르는 채팅 상대에겐 편하게 털어놓을 수도 있었고, 친구들이라면 잘 들어주지도 않을 별 것아닌 일상 얘기를 펜팔(이메일 친구)에게 메일로 장황하게 풀어놓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상대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느끼게 될 때도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상대를 잘 몰랐기 때문에, 상대와 내가 접해있는 면이 아주 작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의외로 낯선 사람들과 낯선 분위기에서 아주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주도해가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만약 일상에서 만난 여성이었다면 그렇게 적극적으로 대쉬하지 못했겠지만, 온라인을 통해 알게된 인연이어서 과감한 도전이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온라인에서 인연을 맺어 사귄 여성이 두 명이다. 한 명은 아주 우연히 채팅으로 시작해서 전화 통화를 하다가 다음날 만나서 사귀게 되었다. 대략 5시간 동안 채팅을 했고, 5시간 동안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란 인사말을 주고 받은 지 10시간 만에 우린 서로의 어린시절과 학창시절과 현재 그리고 미래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이런 대화는 (당연하지만) 막연하게라도 서로에 대한 호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막상 손가락과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던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 그 호감이 깨어질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서로 외모에 대한 기준이 높지 않았나보다. 한번 사귀어 보기로 결정했고,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두번째 인연은 한때 몸담았던 문학동호회에서 알게된 사람이다. 글을 아주 매혹적으로 쓰는 사람, 글에서 아주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고, 댓글과 채팅을 주고받다보니 약간의 친분이 생겼다. 점점 자주 채팅을 했고, 쪽지나 메일도 주고받았다. 어느날 채팅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그이가 사는 도시를 찾아가겠노라고 말했고, 그이는 환영의 뜻을 보였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속버스를 타고 그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날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온라인을 통한 인연은 좁은 면적의 접점으로 시작한다. 그 관계가 진행하면서 점차 넓어지겠지만, 그 관계가 넓어지기 전에 단순히 호감만으로 시작한 연애는 생각보다 험한 길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현실은 정말로 복잡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자꾸만 끼어든다. 어쩌면 서로에 대한 호감을 가진 채로 그냥 그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내 경우엔 둘 중 하나는 살짝 후회가 되었고, 하나는 그래도 제법 오래 착실히 만났다.

 

이 책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약간 뻔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재미가 있었기에 처음 손에 쥔 상태로 끝까지 다 읽을 때까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한 세 시간 쯤 걸렸던 것 같다. 맥주를 마시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여유있게 한 손에 책을 쥐고 눈은 책에 둔 채 나머지 손으로 맥주를 홀짝 거렸지만, 나중에는 맥주 따위에 신경쓸 겨를이 없이 빠르게 책장을 훑어나갔다.

 

여러모로 에미에게 공감이 많이 되었다. 남편보다 어쩌다 인연을 맺게 된 펜팔에게 더 감정을 쏟는 부분에 대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레오의 말투와 태도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적당히 밀고 당기면서도 절대 쎄게 밀거나 놓지 않는 모습을 보아 나 못지 않은 선수임이 틀림없다 싶었다.

 

공교롭게 책을 다 읽은 시간이 세 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찾아보려고 컴퓨터를 켰다가 이 책의 후속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이대로가 더 좋을 듯한데, 후편은 왠지 이만큼의 감동을 주기 어려울 것 같은데, 사야할까 말아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문득 [비포 썬라이즈]가 생각났다. 무척 감동적으로 본 영화였고 그래서 오랜 후에 [비포 썬셋]이 나왔을때 무척 기대를 했지만 결과는 실망이었다. 최근 마노아님을 통해 [비포 미드나잇]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별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금방 마음이 정해졌다. 일단 구매는 보류.

 

컴퓨터를 켠 김에, 메일함을 뒤져 한때 펜팔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찾아봤다. 대략 10여 년 전 캐나다 여고생과 주고 받은 메일을 어딘가 백업해 둔 것으로 기억했는데, 찾아보니 없었다.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네이티브 스피커와 대화를 자주 나누는 것이 좋을텐데, 현실에서 그런 친구를 찾기 어려우니 온라인에서라도 만들어보자 싶어서 좋아했던 가수 '알라니스 모리셋'의 홈페이지에서 찾은 이름과 이메일로 무작정 연락해서 얻은 펜팔이었다. 내 어줍잖은 영어가 많이 답답하고 시시했을텐데, 의외로 이 친구가 친절하게 대해줘서 한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뒤이어 생각이 나는 건 군대에서 인연을 맺은 여중생이었다. DMZ에 있을때 한 달에 몇 차례 통일전망대(강원도 고성) 주간 근무를 나갔다. 4월과 5월에는 전국 각지의 학교들이 수학여행을 왔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수학여행은 일정부분 반공여행의 성격이 있어서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에는 수많은 학교들이 끝없이 몰려왔다. 우린 철책선 안쪽에서 원래라면 해안을 감시해야 할 배율이 좋은 쌍안경으로 7번 국도를 올라오는 수학여행 차량이 여학교인지 남학교인지를 살폈다. 만약 여학교라면 학생들이 도착해서 전시용 탱크 앞에서 사진을 찍을 무렵, 군복 매무새를 잘 다듬고 총을 거꾸로 메고 철책 문을 열고 내려가는 것이다. 원래라면 근무지 이탈로 징계감이지만, 당연한 임무를 수행하는 듯 전시용 탱크 주변을 살펴보는 것처럼 어슬렁 거렸고, 금방 여학생들에게 둘러쌓여 사진 한번 같이 찍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그럼 슬쩍 한번 튕겨줘야한다. 근무 중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굵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총을 고쳐 메고 자리를 뜨는 것처럼 굴어야 하는데, 당연히 여학생들은 팔짱을 끼고 매달린다. 그럼 어쩔수없이 해주는 것처럼 사진을 같이 찍어주고 여학생들이 신나서 탱크 앞을 떠날 무렵, 사진을 보내달라고 주소를 적어준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여중생과 장장 5년 넘게 편지를 주고 받았다. 물론 내가 제대하고 그 친구가 여고생이 된 이후에는 뜸했다. 뜸했어도 연락이 끊기지는 않았다. 종이로 편지를 쓰기가 귀찮아서 나중에는 이메일로도 연락을 주고 받았다. 결국 완전히 연락이 끊긴 시점이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루한 군 생활을 견디게 해주었고, 무료한 일상에 웃음을 주는 소중한 인연이었다.

 

계속 메일을 뒤지다보니 지금의 아내와 연애시절에 주고받은 메일이 나왔다. 내가 보낸 메일은 거의 안 남아 있었지만, 받은 메일은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남겨두었다. 우린 기차로 한 시간 조금 넘는 거리에 살았으니 나름 장거리 연애였다. 금요일 밤에 기차역에서 만나서 주말을 함께 보내고 일요일 저녁에 기차역에서 헤어졌다. 마치 주말부부 같았다. 평소에 보고 싶어도 자주 못보는 마음을 전화와 이메일로 달랬다. 다시 하나하나 열어본 메일에서 아내는 무척 낯설었다. 아! 당시에는 이랬구나. 이 사람이 당시에는 날 이렇게 생각했구나. 신기하고 낯선 느낌에 적지 않은 이메일을 하나하나 열어서 읽었다.

 

그렇게 펜팔 인연들을 추억하고 또 아내의 편지를 읽느라 시간을 보내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새벽 4시를 살짝 넘겼다. 푹푹찌는 열대야는 이 늦은 시간까지도 기승이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선풍기에선 오히려 더운 바람이 나오는 듯 했다. 새벽 4시 바람 한 점 없는 밤, 어느 낯선 이에게 엉뚱한 메일 한통 보내보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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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3-08-2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감은빛님, 완전 낭만적이군요! 기차역에서 만남과 헤어짐이라...영화같은 연애를 하셨습니다그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이 책을 읽고 이런 진솔한 리뷰를 쓰시다뉘~! 공감을 안할 수 없는 걸요~^^

감은빛 2013-08-26 15:52   좋아요 0 | URL
야무님, 시골 간이역이었다면 좀 낭만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희는 서울역에서 만나고 헤어졌기에 그닥 낭만은......
모든 연애는 영화처럼 극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따라쟁이 2013-08-29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새벽세시에 오신것을 환영해요, 이제 문득, 새벽에 깨어있는날 문득 시계를 보며, 어? 세시네... 하실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ㅎㅎㅎ

참고로 저는 그 뒷편도 읽었어요.

감은빛 2013-08-29 17:59   좋아요 0 | URL
따라쟁이님. 환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책을 막 읽었을 때는 속편을 읽을까 말까 좀 고민했는데,
별로 궁금하지 않은 걸 보니 안 읽어도 되겠다 싶어요.

다락방 2013-08-29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읽으셨군요.
저도 이 책 읽고 책장을 덮자마자 그 알싸하고도 완벽한 결말에 어쩔줄을 몰랐더랬죠. 그리고는 메일함을 뒤졌어요. 누군가에게든 메일을 쓰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거든요. 전 이 책이 정말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읽고, 할 줄도 모르면서 독일어 원서도 사고, 읽을 줄도 모르면서 영어책까지 사놨지 뭡니까. 심지어 독일어 오디오북도 있다능 ㅋㅋㅋㅋㅋ

온라인 활동을 해본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당연히 자기만의 레오나 자기만의 에미를 생각하게 될 거에요. 제 경우에도 제게 레오 같다고 느껴졌던 남자가 있었고(그 남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찬가지로 제 의지와 상관없이 저를 에미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죠. 또한 저는 에미와 레오처럼 후버까페 만남도 해봤습니다. ㅋㅋㅋㅋㅋ

저도 온라인에서 알게 되고 이메일을 통해 연락하다가 사귀게 된 남자가 한 둘이 아닌데요(응?), 하아- 추억 돋네요. 저는 요즘 이 책을 회사 동료들에게 빌려주고 있습니다.

속편은, 읽게된다면, '그래 이럴 수 밖에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테고, 그러니 읽어도 나쁘진 않겠지만, 역시 완벽한 건 새벽 세시로 끝내는거에요. 새벽 세시의 결말이야 말로 모든걸 말해주는 가장 완벽한, 소설이 완성할 수 있는 최대치인것 같아요.


아..좋다. 저는 새벽 세시 얘기만 하면 참 좋으네요.

감은빛 2013-08-29 18:21   좋아요 0 | URL
우와! 독일어 원서에 오디오북 그리고 영어판까지 모으셨다니!
이거 왕팬이시군요!

후버카페 만남도 해보셨군요!
정말 서로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고 그냥 찾기로 했나요?
찾아보고 아는 척 하지 않고 돌아와서 나중에 물어봤어요?
아! 그 이야기 정말 궁금해요!

온라인을 통한 인연이 한 둘이 아니었다니,
역시 다락방님도 선수이시군요.

속편은 지금은 안 읽어도 되겠다 싶은게 별로 궁금하지가 않네요.
나중에 다시 읽게 되거나 했을 때 궁금해지면 그때 사던가 해야겠어요.
 

 

locked out of office

 

우리 회사가 있는 건물은 밤에 번호키가 달린 전자자물쇠로 문을 잠근다. 정문과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후문과 각 층의 출입문에 모두 번호키가 달려있다. 아침에 건물 관리인이 문을 열면, 낮에는 모두 열어놓는다. 밤에만 관리인이 퇴근하면서 다시 잠그는 것 같다. 간혹 야근을 하다 보면 낮에는 잠겨있지 않던 각 문들이 모두 잠겨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문제는 내 기억력이 최악이라는 점이다. 분명히 몇 해 전에 전자자물쇠를 처음 달았을 때, 각 번호키의 비밀번호를 들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특히나 숫자를 잘 외우지 못한다. 주민등록번호를 외우는데에도 무척 애를 먹었고, 대학 학번과 군대에서 받은 군번도 잘 못 외웠다. 삐삐번호나 집 전화번호도 잘 외우지 못했다. 나중에 휴대전화가 생겼을 때에도 내 전화번호를 몰라서 늘 전화기를 열어보고 나서야 상대방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지금도 내 전화번호와 아내의 전화번호 단 두 개만 기억할 뿐 다른 가족들이나 친구들 번호는 아예 외우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 여기저기 번호키로 여는 전자자물쇠가 너무 많다. 우리 사무실과 우리 집 비밀번호를 외우는 것만 해도 나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그런데 건물 정문과 후문 그리고 사무실이 위치한 2층 출입문 비번을 모두 어떻게 외우란 말인가!

 

몇 주 전, 혼자 야근을 하고 있었다. 빨리 끝내고 가려 했건만, 일은 자꾸 늦어지고 결국 자정을 넘겨버렸다. 너무 피곤해서 잠시 휴식을 할 겸 편의점에 음료수를 사러 나갔다. 전화기와 지갑은 놓고, 천 원짜리 두 장에 동전 몇 개만 주머니에 넣고 슬리퍼를 끌고 내려갔다. 평소라면 자동으로 잠기는 전자자물쇠를 의식해서 각 출입문이 모두 닫히지 않도록 조심했을 텐데, 그날은 너무 피곤해서 그랬는지 아무 생각 없이 편의점에 가서 에너지 음료를 사서 돌아왔다. 정문은 무의식중에도 열어뒀는데, 계단을 올라가 보니 2층 출입문이 저절로 닫혀 있었다. 아무리 손잡이를 돌려도 열리지 않고, 번호키를 이것저것 눌러봐도 소용이 없었다. '진정하자! 잘 생각해보면 뭔가 떠오를지도 몰라!' 라고 되뇌며 몇 개의 숫자 조합을 눌렀는데, 갑자기 이 녀석이 큰 소리로 삑삑삑! 경보음을 내더니 아예 작동을 멈춰버린다. 틀린 비번을 몇 회 이상 누르면 아예 작동이 안 되도록 설정이 된 모양이다.

 

이거 참 난감했다. 누구에게 연락할 전화기도 없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 해도 지갑을 놓고 와서 택시비조차 없었다. 한가지 생각이 난 것은 우리 사무실이 건물 제일 뒤쪽이고, 아주 작은 베란다 같은 공간이 있어서 건물 뒤편 주차장에서 벽을 타고 올라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이었다. 베란다 바로 밑에 자주 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자동차 위에 올랐다가 다시 벽을 타면 가능하지도 않을까 싶었다. 막상 주차장에 가보니 늘 서 있던 차들이 이 밤에는 모두 가버린 것을 발견했다. 2층이라곤 해도 베란다는 무척 높은 곳에 있었다. 대략 내 키의 2배 이상 될 듯했다. 이 건물은 구조가 좀 독특해서 2층이 유난히 높다. 외벽은 미끄러운 타일이 붙어 있어서 타고 오를 수도 없었다.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이라면 단번에 올랐을 텐데 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주차장을 뱅글뱅글 돌았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집까지 걸어갈까? 밤을 새워 걸으면 도착하려나? 주차장 구석에 쭈그리고 자고 있다가 아침에 관리인이 출근해서 문을 열어주면 들어가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 꼴이 무척 우스꽝스럽고 한심했다. 정말 별일이 다 생기는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해답을 찾았다. 한참을 주차장을 서성이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옆 건물 한 켠에 쌓아놓은 잡동사니들 틈에서 사다리를 발견했다. 다리를 벌려 세우니 대략 2미터 높이쯤 되어 보인다. 균형을 잘 잡으며 그 끝에 올라서니 베란다 난간 기둥 아래쪽을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이대로 내 몸무게를 끌어올릴 수 있을까? 벽이 미끄러워 조심스러웠다. 자칫 실수로 떨어지면 큰 사고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솔직히 겁이 났지만, 내 팔의 근육을 믿어보기로 했다. 힘을 꽉 주고 발로 벽을 디디면서 몸을 끌어올렸다.

 

간신히 몸의 절반 이상을 난간 안쪽으로 밀어 넣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베란다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오니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한 십여 분 가량 밖에 갇혀 있었는데(이게 어법적으로 말이 되나 모르겠지만, 영어엔 locked out of 라는 표현이 있더라.) 정말 십 년 감수한 느낌이다. 만약 우리 사무실이 건물 제일 뒤쪽에 있지 않았다면, 아주 작은 베란다 공간이 없었다면, 옆 건물 잡동사니 틈에 사다리가 없었다면 다시 돌아오기는 불가능했다.

 

그 일을 겪은 후 나는 반드시 건물 각 출입문의 비밀번호를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늘 그렇듯이 잊어버리고 지내왔다. 그리고 어젯밤 나는 또 야근을 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경과는 거의 똑같았다. 자정이 조금 지난 무렵 나는 또 에너지 음료를 사러 천 원짜리 두 장만 들고 나왔고, 휴대전화와 지갑은 책상 위에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2층 출입문은 단단히 고정해두고 내려왔는데, 정문이 자동으로 잠겨있음을 발견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멀리 돌아서 주차장을 통해 후문으로 가봤으나 역시 잠겨있었다. 몇 주 전과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것까지 똑같았다. 제발 옆 건물에서 사다리를 치우지 않았기를 바라며 어두운 건물 그림자 속으로 향했다. 다행히 사다리는 그대로 있었다. 지난번에 한번 해봐서 이번에는 다소 여유 있을 줄 알았는데, 사다리 끝에 서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난간 기둥 아래쪽을 손에 쥐고 나니 다시 겁이 났다. 머릿속에서는 발을 끌어올리려다 실수로 몸의 균형을 잃으면서 뒤로 떨어지는 내 모습이 영화에서처럼 느린 화면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좁은 사다리 위에서 도움닫기나 반동을 주지 못하고 순전히 팔힘으로만 몸을 끌어올렸다. 역시 한 번의 경험은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는 좀 더 부드럽게 무게 중심을 난간 안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다시 내려가서 사다리를 치우고, 더러워진 손을 씻고, 옷과 머리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에너지 음료를 단숨에 마시고 나니 시간은 한 시가 가까웠다. 일을 마무리하려면 아직 멀었는데, 도저히 일할 기분이 아니었다. 에이! 그냥 집에나 가야겠다. 내일 아침에 반드시 건물 비밀번호를 물어봐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컴퓨터를 껐다.

 

 

산 책, 읽을 책, 읽고 있는 책

 

 

페이스 북을 통해 알라딘에서 이 책의 독자북펀딩 소식을 접했다.

어머! 이건 완전 내 책인데!

없는 살림에 많이 보태지는 못했지만,

이 의미 있는 책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탰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책을 받아들고 판권 페이지에 있는 펀드 참가자 명단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 걸 보니 더욱 자부심이 느껴진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는 이름들이 제법 있다. 반갑다!

그들도 내 이름을 보고 반가워하겠지.

 

어서 읽고 널리 알려야겠다!

 

 

 

알라딘 서재에는 글 잘 쓰는 분들이 제법 많다.

저마다 문체와 분위기가 다 달라서 비교하기 어렵지만,

중요한 건 재미있고, 흥미롭고,

하고 싶은 얘기를 읽는이에게 잘 전달한다는 점에서

다들 잘 쓴다고 말할 수 있다.

 

불량주부님의 글은 처음 읽었을 때부터

흥미로웠고, 그 주제와 내용에 공감했다.

결혼, 가사노동, 육아, 일상

민감하고 중요한 주제를 생활 속에서 풀어낸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재밌게 읽고 아내에게도 권해야겠다.

 

 

 

마태우스님을 알기 전에는 기생충이란 존재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마태우스님을 알았어도 기생충을 연구하는 분이시구나.

그러고 말았을 뿐, 기생충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은 이유도 사실 기생충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마태우스님의 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글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기생충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이젠 마태우스님 때문이 아니라,

이 책이 훌륭한 교양과학서 이기에 널리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 외에도 여러 책들을 샀고, 읽었고, 또 읽고 있는 중이다.

이사 준비로 책을 정리해야 하는데, 덥다고 계속 미루고 있다.

그래놓고 책은 사무실로 배달시키고 있다.

사무실에 쌓여 있는 책이 너무 많아서 내가 최근에 산 책을 찾기가 힘들다.

어제는 보관함에 있는 책들을 살피다가 이 책이 집에 있었던가?

사무실에 있었던가? 아님 아직 사지 않은 책이었던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한참을 고민하기도 했다.

 

내일은 휴일이다!

남은 오후는 열심히 일하고, 저녁엔 열심히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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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
수키 김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아침 9시의 담배는 공허함이다.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는 날씨 혹은 지하철 역 앞 맥도날드 앞이 아니었다면 담배를 물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지만, 정오가 되기 전에 담배를 꺼내 무는 일은 드물었다. 그가 아직 어렸을 때, 그러니까 거의 가족이 아직 한국에 있을 당시에 아버지는 일이 없었다. 가끔 막노동일을 나가기도 했지만, 평소에는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새벽에 어머니가 일을 나가고, 늦게 일어난 언니와 그가 배가 고파 부엌을 뒤질 무렵 깨어난 아버지는 이불 위에 앉아 담배부터 찾아 물었다. 성냥갑을 열고, 성냥 하나를 치익 그어 불을 붙이고 천천히 담배에 대고 불을 당겼다. 어린 그는 단칸방 아래켠에서 눈치를 살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담배에서 연기가 올라오면 아버지는 손을 휘저어 성냥불을 끄고 재떨이에 던졌다. 천천히 깊게 한 모금을 들이마신 후, 아버지는 아주 깊은 한숨처럼 연기를 내뱉았다.

 

목표는 다섯 걸음 옆에 있었다. 그 역시 담배를 물고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지켜본 결과, 아주 오랜만의 외출이었고, 아주 이른 시간의 외출이었다. 통역사라는 직업이 이렇게 불규칙적으로 일을 받는다면, 목표는 어떻게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뭔가 숨겨진 돈이 없다면, 묵고 있는 방의 월세와 지금 입고 있는 값비싼 옷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공허함을 달려려고 담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뱉는 것과 달리 다섯 걸음 옆의 목표는 담배를 몇 번 빨지 않고 그냥 타들어가게 내버려 두고 있다. 뭔가 고민하고 있는 듯 보이던 목표가 갑자기 맥도널드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는 마지막 한 모금을 깊이 빨았다가 내뱉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목표를 따라 걸었다. 목표가 비를 피해 실내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그는 다시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냈다. 흰 연기를 내뿜으며 유리창 너머로 목표를 주시한다. 목표는 계산대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건지는 알 수 없다. 한 참 후에야 커피 한잔을 받아 들고 빈 자리를 찾아 두리번 거린다. 마침 한 남성이 맞은 편 빈 자리를 권한다. 목표와 같은 동양계 남성이다. 어쩌면 목표와 그리고 그와 같은 한국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가 이 일은 맡은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뒤를 밟고, 정보를 캐고, 감시하는 일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런 경험을 쌓아 잘 처리할 수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우연히 목표와 같은 나라 출신이고, 목표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으며, 급하게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이 일이 훨씬 더 위험할 거라고 생각했고, 돈을 위해서라면 위험도 각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지금까지는 평범했다. 목표는 외출이 거의 없었고, 간혹 외출을 해도 특이사항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렇게 거금을 들여 목표를 감시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의뢰인에게 그 이유를 물을 수는 없다.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목표의 맞은 편에 앉아있던 중년 남성이 밖으로 나온다. 둘이 대화를 나눈 것 같지는 않았다. 남성은 자리를 권했지만, 목표가 앉자마자 신문을 펼쳐들고는 내내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둘이 비밀 접선을 했을 가능성을 떠올려본다. 아니. 곧바로 머리를 가로젖는다. 그는 목표에게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자리를 권했다. 비밀 접선이라면 그렇게 눈에 띄는 행위를 했을 리 없다. 남성은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오늘 아침 뉴욕 변두리에서 공허한 동양인을 또 만난다. 그는 중년 남성의 눈빛에서 아주 오래전 아버지의 눈빛을 본다.

 

****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머리 속에 외전 격의 곁이야기가 떠올랐다. 수지를 감시하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 그 그림자는 그레이스가 고용했을 수도 있고, 해마다 아이리스를 보내는 누군가가 보냈을 수도 있다.(그 누군가가 그레이스 아니라면) 혹은 KK단의 누군가가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민국의 누군가가 고용했을 수도 있다.

 

아, 소설에서 그림자의 존재는 확실치 않다. 다만 수지가 누군가의 감시를 받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을 뿐이다. 그 생각은 착각일수도 있고, 실제일수도 있다. 나는 그 그림자가 실제이고, 그가 수지와 같이 한국에서 어릴때 떠나온 젊은이라는 가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이 흥미로운 책에 뻔한 미사여구로 감상을 붙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쓴 함량미달의 글이 이 책에 폐를 끼치겠지만, 나로서는 최고의 찬사를 보내는 것이라는 점을 알리며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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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8-13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오래 전에 읽었는데, 그래서 자세한 스토리는 기억이 가물가물해가는데, 그럼에도 감은빛님의 이 리뷰 첫줄을 읽는데 금방 알겠는거예요, 이 책이 이렇게 시작했다는걸.
은근히 긴장감을 더해주는 스토리에, 비밀스러움,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외로움, 쓸쓸함이 짙게 전해져 왔었지요.

감은빛 2013-08-14 11:37   좋아요 0 | URL
'오전 9시의 담배는 절망감의 표현이다.'로 시작하죠.
저도 이 문장이 인상적이어서 따라해봤어요.
알아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비밀스럽고 차분한 전개에 은근한 긴장감이 있죠.
외롭고 쓸쓸하고 축축하고 무거운 느낌이 글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요.
그런 점이 무척 끌리는 책이었습니다.

마녀고양이 2013-08-14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최고의 찬사.
책이 좋은가 보네요.

감은빛님, 잘 지내시죠?
아침 9시의 담배는 공허함이군요, 제게 있어 커피가 다소 그렇다는... ^^

감은빛 2013-08-14 11:41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예요. 마녀고양이님!

이 책 제법 좋았습니다.

아침에 피는 담배는 늘 공허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커피도 그렇군요.
저는 커피를 졸음을 쫓기 위해 마시는 편이라 그 느낌을 잘 모르겠네요.

yamoo 2013-08-14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롭다는 단어가 반복되는 거 보니, 정말 재밌나보군요! 서점에서 한 번 훑어보고 재밌으면 그냥 서점에서 읽어야 겠어요^^

감은빛님 흡연자이시군요~ㅎ 아침에 피는 담배는 공허하다란 말을 누구한테선가 좀 들었습니다. 아마 친구들이 그랬던거 같아요. 저는 비흡연자라 저얼대 그 느낌을 알 수 없다는^^;;

감은빛 2013-08-14 14:47   좋아요 0 | URL
어, 동어반복이었군요. 막판에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랬나봅니다.
서점에서 읽기에는 분량이 좀 많지 않을까 싶은데,
야무님 책을 빨리 읽으시나요? 속독법?

오랫동안 흡연자였구요.
끊었다고 해놓고 참고 참고 또 참는
(그러다가 도저히 못 참고 간혹 한 대 피우기도....)
생활을 한지도 제법 되었네요.

담배를 피워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알수 없죠! ^^

무해한모리군 2013-08-14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다음책을 내지 않나 궁금한 작가중에 하나입니다.
누구나 한권의 책을 쓸만한 이야기는 가지고 있다라는 얘기가 생각나기도 하고...

감은빛 2013-08-16 16:57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왜 차기작이 없을까요?
그 말 멋지네요.
휘모리님께서도 책 여러 권 쓰실만한 이야기 갖고 계시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