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만우절


살면서 평생 만우절이라고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하거나,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다. 남들이 장난이나 농담을 하면 그저 실없는 짓이라 여기며 픽 웃고 말았을 뿐. 누군가의 SNS 에서 만우절 거짓말이길 간절히 바랐던 충격적인 소식 중 하나로 홍콩 배우 장국영의 자살 소식을 언급한 것을 보았다. 2003년이었던가? 그때 최고의 배우 중 하나라고 생각했으니 충격이긴 했다. 나에게는 한 명이 더 있었다. 만우절에 세상을 떠난 지인이. 벌써 몇 해가 훌쩍 지나버렸구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이 갑자기 돌연사 했다는 소식이 믿기지 않았는데, 게다가 그날이 하필 만우절이었다. 엄청나게 열심히 활동하는 활동가였고, 좋은 친구였고, 성실한 동료였다. 아주 친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긴 시간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알고 지냈고,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딱 생기는 즈음이었는데. 혼자 사는 사람이어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병원에서는 그저 돌연사라고 했다고. 그때 친했던 선배 하나가 나에게도 한 마디 했다. 너도 혼자 사는데 조심해야겠다. 라고. 이혼하고 혼자 산 지 좀 되긴 했지만, 나는 아이들을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으니 경우가 다르다고 볼 수 있겠지만, 평소에 혼자라는 점은 또 다르지 않은 건 맞다. 


어제인 4월 1일은 좀 많이 바쁜 날이었다. 아침부터 좀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만우절이란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점심 시간에 잠시 숨을 돌리며 SNS 들어갔다가 장국영 이야기를 보고 나서 그의 죽음이 바로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잠시 혼자 눈을 감고 그의 영면을 바라는 마음으로 묵념했다. 바쁜 날이라 더는 그 기분에 빠져 있을 겨를이 없었다. 얼른 마음을 다잡고 일을 해야 했다. 다행히 여러 사람들이 연락과 방문이 이어져 일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저녁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고, 회의는 10시 반이 훌쩍 넘어서 끝났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뒷정리를 하고 혼자 남아서 시간을 보니 11시였다. 긴 하루였다. 나는 정신이 없어서 직접 뉴스를 보지는 못했는데, 헌재가 4월 4일을 선고일로 예고했다는 소식을 만나는 사람들 마다 알려줬다. 기다리던 소식이라 반가운 것은 맞지만, 과연 그 선고가 이 나라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대로 내란수괴의 탄핵을 확정하는 것이 될 것인지, 아니면 소수의 정신 나간 인간들이 떠드는 대로 탄핵 기각이 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힘을 모아야 한다며 광화문에서 밤을 새울 거라며 깃발을 챙겨 나갔다. 나는 중요한 회의가 있기도 했고, 이번 주는 계속 일이 많아서 거리에서 보낼 시간을 만들기 어려웠다. 갑자기 날이 추워져 거리에서 얼마나 고생할 것인지 눈에 훤히 보인는데, 나는 차마 더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저 감기 안 걸리게 조심하라고 전하는 것 밖에.


달이 4월로 바뀌고 분명 봄이 온 것은 명확한데, 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이렇게 춥기만 한 것인지. 봄이 왔건만, 아직 우리에게 봄은 오지 않았다. 헌재가 탄핵을 확정해야 비로소 봄이 올 것이다. 



프로 야구 개막


오랫동안 너무 바빠서 야구를 보지 못하고 살다가 작년부터 다시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롯데가 야구를 잘 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해마다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다보니 이젠 기대를 덜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작년에는 그래도 재미있는 경기들이 제법 많았다. 물론 아무리 기대를 덜 해도 매번 경기를 지는 걸 보는 건 괴롭기는 했다. 게다가 작년에 수도권에 있는 구장들(잠실, 고척, 문학)에 몇 차례 아이들과 직관을 갔을 때마다 졌기 때문에 좀 속상하기는 했다. 그래도 여름에 사직에 아이들과 함께 간 날 크게 이겨서 그걸로 지금까지 직관 때마다 졌던 것이 다 상쇄되었다.


롯데는 매년 시범 경기부터 강한 모습을 보이다가 딱 봄에만 강하고 여름부터 한계를 드러낸다고 해서 봄데라고 불린다. 제법 오래된 패턴이다. 그런데 작년에는 그 봄데 로서의 면모도 보여주지 못하고 봄부터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런데 왠일로 여름을 지나면서 반짝 실력이 좋아졌다가 다시 떨어졌다. 그 반짝 했던 것이 사람을 매혹시켜서 또 기대를 하게 만들기는 했다. 올해는 작년에 잠깐 기대를 품게 만들었던 그 기억 때문에 그래도 좀 더 기대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지만, 개막전부터 무참하게 깨지고 이후로도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줘서 다시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 나는 롯데팬이야. 어디 감히 기대를 품다니. 그냥 그저 지켜보는 것만 해야지. 작년에 그렇게 멋진 모습을 보였던 윤나고황 중 올해 나승엽만 2경기 연속 홈런을 보여주며 조금 살아났고, 나머지 3명은 아직은 기대 이하의 상황이다. 손호영도 작년에는 그렇게 잘 하더니, 올해는 영 타격감이 바닥이다. 게다가 믿고 믿었던 레이예스 마저도 썩 감이 좋지 않아 보인다. 아, 그리고 반즈. 작년에 윌커슨과 함께 그렇게 잘 했는데, 올해는 개막전부터 두 번 등판 모두 아쉬운 결과를 보였다. 분명 공은 좋은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거기에 지난 토요일 창원에서 큰 사고가 벌어졌다. 경기장 외벽 구조물 하나가 추락하면서 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을 덮쳤는데, 3명이나 병원에 실려갔다고. 그리고 그 중 한 분이 결국 돌아가셨다고 했다. 세상에! 야구를 보러 온 시민이 구조물에 맞아서 사망하다니! 프로야구협회는 급하게 모든 경기를 취소하고 전 구장에 대해 시설안전 검검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추모기간을 정했다고 한다. 창원 엔씨 다이노스는 내가 이미 서울에 올라온 후에 생긴 구단이라서 창원 구장에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만약 부산에 계속 살았다면 창원 정도는 몇 번 갔을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롯데 경기 외에도 다른 팀들의 경기도 하이라이트 영상을 찾아보고 있다. 어쩌면 그냥 롯데 팬에 머물지 않고 프로야구 10개 구단 전체의 팬이 되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물론 그러려면 더 많은 경기를 보아야 하고, 더 많은 선수들을 알아야 하고 더 부지런해야 하겠지. 올해도 아이들과 함께 사직 구장에서 야구를 보면 좋겠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표 구하기가 어렵다고 언론에서도 난리다. 값비싼 시즌권을 사전에 구매하지 않으면 좋은 자리는 꿈도 못 꾸겠지. 서버가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정시에 들어가도 대기번호가 1천번이 넘게 나오는데. 작년에 정말 운 좋게 사직에서 좋은 자리를 구했던 건 아마 평생에 몇 번 없을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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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4-02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우절하면 예전에 오불당(하루 오불로 여행하는 모임) 카페에 가입되어 있을때 EBS 세계문화탐방 1년짜리 여행에 당첨되었다고 연락이 와서 하루종일 퇴사나 여행이냐를 고민하며 안절부절하던 때가 기억나네요. 메일 끝자락에 만우절 장난임을 적어놓았는데 그만 흥분해서 끝까지 읽지도 않고 혼자 가슴 콩닥콩닥 어쩌지 못하고 있었죠.

감은빛 2025-04-05 07:21   좋아요 0 | URL
와! 하루 오 불로 해외여행이 가능한가요? 저는 해외여행을 거의 가 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일단 말씀하신 것처럼 좀 과장된 내용에 대해 혼자 가슴 떨리게 기대하셨다는 소식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잉크냄새 2025-04-06 09:41   좋아요 0 | URL
짠내나게 여행하는 사람들의 카페입니다. 2008년의 일이니 아마 지금은 이름을 바꾸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도 그때 인도를 오불은 아니고 팔불 정도로 다녔던것 같네요. 오불당이 아닌 팔불당....

꼬마요정 2025-04-02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남동생과 남편은 롯데가 경기할 때마다... 공 하나 하나에 분노했다가 기뻐했다가 그럽니다. 부산은행에서 매년 내놓는 우승 적금은 사기라고 화를 내구요. 그래도 응원하는 구단을 바꾸지 않는 게 정말 신기합니다. 갈수록 표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정말 건전하고 즐거운 문화로 자리잡은 것 같아 기쁘지만 자리가 없어요ㅠㅠ

창원에서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감은빛 2025-04-05 07:24   좋아요 1 | URL
제가 아는 롯데 팬들 대부분이 꼬마요정 님의 남동생과 남편과 비슷한 반응입니다. 뭐, 솔직히 더 어쩔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구요. 그냥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이라도 느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카스피 2025-04-03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평생 만우절이라고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하거나,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다고 하셨는데 ㅎㅎ 설마 이것이 빅피처 만우절 거지말은 아니시겠지요^^ 평생 살면서 하얀 거지말 한번 안한 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분들인것 같아요.

감은빛 2025-04-05 07:28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저는 만우절에 농담이나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는데요. 평소에는 하얀 거짓말과 하얗지 않은 거짓말들도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요. 충분히
 

아직 우리에게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헌재가 선고를 계속 미루고 있다. 설마 이번 주를 넘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넘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고 표현해야 정확하겠다. 결국 이렇게 금요일이 지나고 또 주말을 맞이한다. 오늘 평소처럼 입고 나왔는데, 유독 바람이 강해서 추웠다. 하필 외부에서 지내야 할 시간이 많아서 더 추웠다. 찬 바람이 온 몸을 강타할 때는 몸이 덜덜 떨렸다. 아직 봄이 온 것이 아니구나. 몸도 마음도 너무 춥다.


3월은 참 바쁜 달이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을 우리 동네 활동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활동가들은 원래 다들 바쁜데, 누군가 여러가지 이유로 일을 쉬는 상황이 발생하면, 유독 그 사람에 더 많은 일이 몰린다. 그래도 네가 출근을 하는 것은 아니니 더 여유가 있지 않냐 하는 얘기인데, 그 모임에서만 그런 얘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몸 담고 있는 여러 모임에서 다들 똑같은 반응이다 보니 결국은 훨씬 더 많은 일들을 떠안게 된다는 이야기. 그렇게 일이 많은데도 정작 주머니에 들어오는 수입은 없다는 슬픈 이야기.


몸담고 활동하는 공간들이 많다 보니, 그리고 그 조직들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다 보니 나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많이 바빠진다. 지난 주와 이번 주는 정말 하루 하루 간신히 해야 할 일들을 억지로 쳐내고 있다는 느낌으로 버티고 있다. 원래라면 며칠 전에 마감을 했어야 할 일들을 며칠이 밀리고 또 밀려서 정말 이젠 더 이상 밀리면 큰일이 날 정도 시점에 간신히 마감을 치고, 그제서야 다음 일에 착수하는데, 그 일도 역시 이미 마감이 한참 지난 일이다. 그걸 마감을 간신히 치고 이제 또 다른 마감이 지난 일을 시작하기를 무한 반복.


이 와중에 돈은 조금씩이라도 벌어야 해서 가끔 야간에 물류 창고에 가서 밤새 일을 하고, 아침에 집에 들어와 쓰러져 잠들고, 한 서너시간 겨우 자고 깨서 다시 기어나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싶다. 아니 윤석열 탄핵이 얼른 확정이 되고 내란수괴로 다시 구속이 되고, 명태균 수사가 빠르게 추진이 되어서 홍준표, 오세훈 까지 죄를 파헤치고, 김건희도 다시 정상적으로 수사하는 등 세상이 상식적인 수준으로 움직여 준다면 이렇게 바쁘게 살아도 보람이라도 느낄 것인데, 세상은 이렇게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죽어라 일을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어제 물류창고에서 밤새도록 일을 하는데, 전날도 일찍부터 밖에서 여러 일들을 처리하고 오후에 창고로 출근한 거라서, 즉,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출근했기 때문에 너무 힘들고 피곤했다. 새벽 두 시 무렵에는 너무 졸려서 걸어 다니면서 졸 뻔했다. 평소 창고에 출근하는 날엔 오전에 다른 일을 하더라도 오후에 적어도 두 세시간은 낮잠을 자거나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오후 늦게 셔틀버스를 타는데, 어제는 그렇게 할 수 없이 일이 몰려서, 일을 하다가 셔틀버스 시간에 간신히 맞췄다. 그것도 혹시 셔틀버스를 놓치면 출근을 못 하게 되니 정말 죽어라고 뛰어서 간신히 셔틀버스를 탔었다. 오늘 새벽에 집에 돌아와 너무 피곤해서 겨우 몸을 씻고 누웠는데, 피곤하지만 또 배는 고파서 라면을 하나 먹고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다. 이런 날엔 좀 쉬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또 일정이 빡빡하게 있었다. 한 세시간 자고 일어나서 씻고 나갔고, 추운 날씨에 계속 외부 일정이라 덜덜 떨면서 너무 힘들었다. 저녁에는 또 감사를 맡고 있는 총회가 있었다. 감사와 서기를 동시에 맡아서 감사 보고서 낭독을 마친 후에는 기록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일 오전에 또 발표를 맡은 일정이 있어서 일찍 집에 가려고 했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보낼 수가 없다는 사람들에게 붙들려 또 한참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다들 헤어지고 나서 내일 발표할 자료를 보면서 리허설을 좀 해보려고 했는데, 자료를 너무 급하게 만들다 보니 좀 아쉬운 부분들이 보였다. 급하게 다시 발표 자료를 보완하고 보니 11시가 훌쩍 넘었다. 오늘 힘들었던 하루 일과의 마지막은 알라딘 서재에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서 조금은 스트레스를 푸는 것으로. 얼른 집에 돌아가서 자야겠다. 내일은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발표 준비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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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3-29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마디로 헌법 재판관들이 몸을 사리는 것이지요.노무현 대통령때는 국민들이 반대하고 박근헤 대톹령때는 국민들이 촛불들고 탄핵을 찬성했으니 당시 재판관들은 큰 부담없이 선고를 내릴 수 있었지만 윤통의 경우는 계엄령의 타당성과 헌법위반을 따지기 전에 겉으로 보이기에 과거와 달리 국민들의 괍반수가 탄핵 반대를 주장하면서 집회를 지속적으로 열기에 쉽게 결정을 못내리는 것 같아요.
탄핵이든 기각이든 역풍이 부는 것은 자명하기에 재판관들은 여론의 추이가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눈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

감은빛 2025-04-15 13:43   좋아요 0 | URL
제가 이 댓글을 놓쳤군요. 카스피님.
결국 탄핵이 확정이 되긴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느낌입니다.
대선이 걱정이고, 누가 되더라도 이후 상황이 더 걱정이고 그렇네요.
 


꼴찌의 반란


지난 번에 여자농구 플레이오프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했었고, 이후 아산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 1, 2차전을 원정팀 부산 비앤케이가 모두 이겼을 때, 이 이야기도 써야지 생각하고 있었지만, 계속 다른 이야기만 하느라 쓰지 못했다. 그 사이에 두 팀은 부산에서 3차전을 벌였고, 결과는 비앤케이가 3연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우와! 이번 우승으로 박정은 감독과 비앤케이는 재미있는 기록을 몇 가지 남겼다. 일단 비앤케이는 지난 시즌 꼴찌 팀이었다. 그 이전 시즌에서는 이번과 똑같이 우리은행과 함께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었지만, 그때는 우리은행이 3연승하며 우승을 차지했었다. 이번과 정확히 반대다. 언론 기사를 읽어보니 지난 시즌 꼴찌팀이 다음 시즌 우승을 차지한 사례는 여자농구 역사상 3번째라고 한다. 그 중 첫번째 사례는 지금 상대팀 감독인 위성우 감독이 우리은행으로 오자마자 세웠다고 한다. 이것도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박정은 감독은 여성 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고(지지난시즌에) 챔피언 결정전에서 첫 승을 거뒀으며(이번 시즌 1차전)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여자농구 역사상 처음으로 선수로서 우승을 경험하고 감독으로서도 우승을 경험했다. 우승 소식을 전하는 스포츠 뉴스에서는 박정은 감독이 이번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인터뷰한 과거 영상을 보여줬는데, 거기서 부산의 딸인 박정은이 부산 팬들에게 우승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더라. 그리고 3전 전승으로 챔피언으로 올라 우승 약속을 지켰다. 다음에는 정규시즌 우승과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동시에 해서 통합 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약속하고 그 약속을 또 훌륭히 지켜줬으면 좋겠다.


마지막 경기를 보면서 너무 좋았던 것은 안혜지 선수의 활약이었다. 지난 번에 똑같이 5차전까지 치루며 최선을 다한 4팀의 선수들을 이야기 하면서 가장 눈길이 가는 선수로 케이비 스타즈의 허예은 선수라고 했고, 그와 함께 안혜지 선수도 언급했었다. 이 두 사람은 단신으로 포인트가드를 맡고 있다. 포인트가드로서 경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것과 멋진 패스를 잘 뿌리는 것도 멋지지만, 이 두사람은 단신임에도 멋진 돌파와 골밑슛을 보여주기도 하고, 위기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3점슛을 터뜨리기도 한다. 지금까지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에서 허예은이 안혜지 보다는 조금 더 성적도 나았고, 더 눈에 띄었지만, 이번 챔피언결정전 2차전과 3차전의 안혜지 선수는 정말 너무 멋졌다. 결국 안헤지 선수는 이번에 엠브이피로 선정되었다. 박혜진 선수도 잘 했고, 김소니아 선수의 활약은 말할 필요도 없고, 사키 선수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엠브이피는 안혜지를 뽑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복기해보면 이번 3경기는 하나 하나가 모두 명경기였다. 비록 3연패 끝에 승부에서 지고 말았지만, 우리은행도 멋진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특히 김단비 선수의 투혼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멋졌다. 우리은행에서 김단비 외에 다른 선수들이 정말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활약했다면 우리은행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우승했을 것이다. 나는 지난 시즌까지는 여자농구를 거의 보지 않아서 몰랐지만, 이번 시즌 비앤케이 팀의 주장으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는 박혜진 선수는 우리은행에서 긴 시간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였다고 한다. 이번에 친정팀에 비수를 꽂은 셈이다. 특히 마지막 3차전의 4쿼터 약 18초 가량을 남기고 터진 박혜진의 3점슛 덕분에 역전패를 당한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반대로 비앤케이는 그런 박혜진을 데려온 선택이 탁월한 것이겠고. 이번 시즌에서 김단비 못지않은 활약을 펼친 김소니아 선수도 이번 시즌에 새로 옮겨온 선수라고 했다. 정말 비앤케이가 지난 시즌 꼴찌를 한 이후로 아주 독하게 선수들을 보강하고 준비했다고 볼 수 있겠다.


자, 이제 경기를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우리은행의 홈인 아산에서 펼쳐진 1차전으로 가보자. 1쿼터 중반부터 2쿼터 초반까지 우리은행은 압도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 비앤케이의 득점을 5점으로 묶어놓고 계속 점수를 달아났다. 김단비의 활약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상하게 비앤케이는 터지지 않았다. 1쿼터는 18대 5로 우리은행이 크게 이겼다. 2쿼터 초반에도 우리은행이 1골을 더 넣어 20대 5가 되었다. 계속 안 풀리던 비앤케이가 드디어 실마리를 풀었다. 김소니아의 돌파로 2점을 올리고 이후 박혜진이 활약했다.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물론 우리은행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심성영이 3점 슛을 넣었고, 김단비는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다가 안헤지가 너무나도 멋진 돌파로 골을 넣는 모습을 보여줬다. 2쿼터가 끝날 때 점수는 우리은행이 31대 23으로 앞서고 있었다. 3쿼터에서 안혜지의 3점슛이 터졌고, 사키의 3점이 터지면서 비앤케이는 추격의 박차를 가했다. 여기서부터 김단비 선수의 체력이 딸리는 모습이 드러났다. 사실 양 팀 모두 플레이오프에서 첫 두 경기를 잡아서 쉽게 올라올 줄 알았는데, 뒤이어 2연패를 당했고, 결국 5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벌여 체력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두 팀이 모두 5차전까지 어렵게 왔지만, 비앤케이는 김소니아, 박혜진 외에도 골고루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이 있는 반면, 우리은행은 김단비 원맨 팀이라 불릴만 했다. 정규시즌 우승을 혼자 이끈 슈퍼스타 김단비였지만, 체력 문제는 방법이 없었다. 4쿼터는 우리은행이 42대 37로 많이 따라잡힌 상태로 시작했다. 비앤케이는 무섭게 몰아쳤다. 4쿼터 중반에는 드디어 44대 44로 동점을 이뤘다. 와! 결국 이걸 따라잡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부산 출신이라 비앤케이에 조금 더 마음이 가기는 했지만, 너무나도 멋진 김단비 선수가 있는 우리은행도 응원하는 마음이 있었다. 플레이오프를 펼친 4개 팀 중에 삼성생명을 제외하고 3팀을 고루 좋아했다. 특히 허예은 선수를 좋아했기 때문에 케이비 스타즈도 응원할 수 밖에 없었다. 플레이오프 당시에 우리은행과 케이비를 비슷한 비중으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면서 강이슬과 허예은이 있고 다른 선수들의 기량도 고른 케이비가 김단비 원맨 팀인 우리은행을 못 이기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의아했고, 한편으로 대단하다고 느꼈다. 정규시즌에서도 한참 물이 올라서 연승을 이어가던 비앤케이가 김단비의 우리은행을 만나 연승 흐름이 끊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와! 라인업만 보면 절대 비앤케이가 질 수 없을 것 같은데, 이걸 지는구나. 김단비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걸까 하고 생각했었다.


암튼 그렇게 4쿼터 중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비앤케이는 우리은행을 따라잡았고, 결국 역전했다. 만약 플레이오프에서 케이비가 우리은행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면 1차전은 우리은행이 이겼을 거라고 장담한다. 결국 최종 점수 53대 47로 비앤케이가 승리했다.   


비앤케이가 이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선수들의 활약을 보면 명확하다. 김소니아(11점 14리바운드 3어시스트 3스틸), 박혜진(14점 6리바운드 2어시스트), 안혜지(9점 2리바운드 6어시스트), 이이지마 사키(9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 3스틸)로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경기 전체적으로는 김소니아가 압도적으로 잘 했지만, 본격적으로 추격을 펼친 3쿼터만 보면 안혜지 선수가 7득점을 올리며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반면 우리은행은 김단비(20점 18리바운드 4어시스트 2스틸 2블록슛)가 홀로 괴력을 뿜어냈으나 뒷심이 부족했다.


이 짜릿한 역전승을 보고 어찌 두 팀의 선수들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챔피언 결정전이라는 단기전 시리즈에서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그래서 1차전 승리팀의 우승 확률이 77퍼센트인가 그렇다고 중계할 때도 여러번 강조하더라. 비앤케이는 원정팀으로서 적진인 아산에서 정말 너무나도 중요한 시리즈 첫 경기를 잡아냈다.


그리고 이어진 2차전은 양팀 모두 무조건 잡아야만 하는 경기였다. 홈에서의 1차전 패배로 인한 부담이 너무 컸던 걸까? 1쿼터에서 김단비가 파울을 3개나 저지르는 이변이 벌어졌다. 농구는 한 선수가 반칙을 5번 저지르면 퇴장 시킨다. 그런데 팀의 기둥인 김단비 선수가 1쿼터에서 무려 3개의 파울을 저질렀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는 이 장면에서 2차전 역시 비앤케이가 가져가겠구나 느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에는 우리은행의 다른 선수들이 분발하기 시작했다. 김예진 선수와 박혜미 선수가 연거푸 3점슛을 넣으며 언제까지 우리은행이 김단비 원맨팀은 아니라고 알려줬다. 1쿼터를 마쳤을 때 점수는 오히려 12대 15로 비앤케이가 끌려가고 있었다. 2쿼터에 들어서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안혜지가 3점슛 1개를 포함해 7점을 넣으며 멋진 활약을 보여줬고, 비앤케이 이소희 선수도 1쿼터에 이어 2쿼터에도 활약을 이어갔다.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 아주 멋진 돌파와 골밑슛을 성공시켜 아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여기에 비앤케이 변소정 선수도 활약을 보여줬다. 하지만 역시 우리은행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홈에서 최소 1승 1패를 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다. 두 팀은 누구 하나 저만치 앞서 나가지 못하고 업치락 뒤치락 했다. 2쿼터 마지막 점수는 30대 29로 비앤케이가 간신히 리드를 지켰다. 후반으로 들어서며 비앤케이는 근소하게 리드를 지켜갔다. 이번에는 비앤케이 사키 선수가 7점을 넣으며 맹활약했다. 우리은행은 나츠키와 이명관 선수가 활약하며 악착같이 비앤케이를 따라갔다. 마지막 4쿼터 비앤케이는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김단비가 다시 살아나며 추격을 계속했다. 두 팀은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며 누가 이 승부를 가져갈 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비앤케이 박혜진이 3쿼터에서 발목을 다쳐 어쩌면 우리은행이 가져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안혜지가 4쿼터에 또 3점슛과 멋진 돌파를 보여주며 큰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사키가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그림같은 블락슛을 보여주며 이 승부 비앤케이가 가져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역시 명승부는 예측을 불허한다. 경기 종료 약 3분을 남겨두고 김단비가 3점을 넣어 49대 47 2점차를 만들었다. 이제 1골이면 우리은행과 비앤케이는 다시 동점이 된다. 그리고 약 2분을 남겨둔 시점에서 이번에는 김소니아가 3점을 넣었다. 양보할 수 없는 양 팀의 에이스로서 김단비가 3점을 넣으니 이번에는 김소니아가 3점으로 답한 것이다. 점수는 다시 5점차. 양 팀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뛰었다. 결국 경기 종료 43초를 남겨두고 이소희가 3점을 추가하며 우리은행의 추격의지를 꺾어버렸다. 최종 점수는 55대 49로 비앤케이가 승리했다.


와! 어떻게 적진에서 2연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 비앤케이의 상승세를 우리은행이 막지 못했다. 이번에도 비앤케이 주요 선수들의 활약이 엄청났다. 안혜지(16점 2리바운드 6어시스트), 이이지마 사키(15점 3리바운드 3어시스트 2스틸), 이소희(11점 4리바운드), 김소니아(7점 10리바운드 2어시스트 2스틸)가 팀 승리를 이끌었다.


우리은행에서는 김단비(15점 11리바운드 2어시스트), 나츠키(17점 3리바운드 3어시스트), 김예진(6점 2리바운드)이 분전했지만 결국 승부를 되돌리지 못했다.


첫 두 경기를 가져간 팀이 그것도 원정에서 2연승을 거둔 팀이 홈에서 세번째 경기를 치룬다는 것은 거의 우승 문턱에 앉았다는 뜻이다. 2년 전에 비앤케이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우리은행을 만나 3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과연 어떨까. 역시 두 팀은 마지막까지도 엄청난 명경기를 보여줬다. 


홈경기라서 그런지 비앤케이의 출발이 좋았다. 앞선 두 경기 모두 1쿼터에서 우리은행에 리드를 내주고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우리은행을 압도했다. 이소희와 사키 그리고 안혜지의 3점슛이 깨끗하게 림을 지나 그물을 스치며 떨어졌다. 클린샷. 김소니아의 활약도 여전히 대단했다. 김단비 역시 이를 악물고 움직였으나 역부족이었다. 비앤케이는 17대 10으로 앞서가며 1쿼터를 마쳤다. 2쿼터에서 비앤케이는 김소니아와 박혜진이 연속 득점으로 달아났다. 물론 우리은행 김단비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여기에 박혜미의 3점슛까지 터지며 우리은행도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안혜지의 3점이 터졌다. 아주 중요한 시점에서 추격의 불씨를 꺼트리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사키의 3점이 더해져 결정타를 날렸다. 비앤케이는 31대 23으로 리드를 지켰다. 그러나 우리은행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리가 없엇다. 3쿼터에 시작과 동시에 한엄지와 김단비가 연속으로 3점슛을 넣었고, 이어서 김단비의 뱅크슛으로 우리은행은 동점을 만들었다. 33대 33이었다. 비앤케이는 변소정 선수의 돌파와 골밑슛 그리고 안헤지의 3점으로 다시 달아났고, 우리은행은 이명관의 3점슛으로 추격을 이어갔다. 41대 37로 아직은 비앤케이가 리드하며 3쿼터를 끝냈는데, 흐름은 우리은행으로 가있다고 느꼈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점, 안혜지 선수를 좋아하는 점으로 비앤케이를 응원하는 마음이 조금 더 강하지만, 김단비의 우리은행 역시 응원하는 마음이라 마지막 4쿼터를 남겨두고 긴장감이 컸다.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우리은행이 승리를 가져가면 경기가 더 늘어나는 것이라서 좋고, 비앤케이가 이겨서 결국 우승하면 고향팀이 이겨서 또 좋은 것이다. 야구에서 롯데가 30년 넘게 우승을 못하고 있는데, 농구에서 비앤케이가 우승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은가. 자, 이제 4쿼터가 시작했다. 비앤케이 사키 선수가 캐스터와 해설자가 모두 소리를 지를 정도로 멋진 돌파를 보여주며 골을 넣었다. 그리고 김단비의 어려운 자세에서 나온 뱅크슛. 다시 사키의 득점이 나왔고, 이어서 김단비 선수가 아주 먼 거리에서 공격 제한시간 부저와 동시에 3점슛을 던졌는데, 이것이 깨끗하게 림을 통과해 그물을 스쳤다. 와! 이건 승패를 떠나서 이번 경기 최고로 멋진 슛이라고 꼽을만 했다. 이어서 우리은행은 50대 49로 역전에 성공했다. 이건 이제 모른다. 어쩌면 우리은행이 1경기를 가져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앤케이 이소희 선수가 깔끔한 클린샷으로 3점을 넣었다. 재역전. 52대 50이었다. 시간은 이제 3분 30초가 남아있었다. 경기 종료 2분을 남기고 우리은행 이명관이 골을 넣어 점수는 다시 52대 52였다. 그리고 경기 종료 37초를 남기고 김단비가 1골을 넣어 우리은행이 54대 52로 앞섰다. 경기 종료 약 18초를 남기고 안혜지가 박혜진에게 공을 넘겼고, 이것을 박혜진이 깨끗한 3점으로 완성했다. 55대 54. 이제 우리은행의 마지막 공격. 여기서 2점을 넣으면 다시 역전해 우리은행이 이긴다. 김단비가 공격해왔다. 시간이 다 되어 0초가 되는 순간 김단비가 회전슛을 쏘았지만, 림에 맞고 튕겨졌다. 이 공을 비앤케이 선수 한 명이 리바운드로 잡아 공을 쥐고 넘어지며 누웠다. 슛을 날렸던 김단비도 뒤로 넘어지며 저 멀리 미끄러졌다. 이미 경기는 끝났고 빨간 옷을 입은 비앤케이 대기 선수들이 소리를 지르며 경기장으로 뛰쳐 들어왔다. 그런데 이 순간에 우리은행 선수 중 한 명이 넘어진 상태로 공을 안고 있는 비앤케이 선수로부터 공을 낚아 채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마치 그에게는 경기가 끝나는 부저 음이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른 선수들이 모두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씁쓸함에 취해 있는데, 혼자 공에 몰두해 있었다. 그리고 공을 안고 있는 비앤케이 선수 역시 이미 경기가 끝났는데, 자신이 리바운드로 잡아낸 공을 끌어안고 넘어진 채로 놓지 않았다. 경기는 끝났건만 이 두 사람만 아직도 싸우고 있었다. 나는 이 두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중계화면은 멀리서 비추고 있었고, 이미 환호성을 지르며 팔짝팔짝 뛰면서 승리를 만끽하는 비앤케이 선수들에게로 금방 옮겨가버렸다. 캐스터가 등번호를 보고 선수를 확인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데, 캐스터 눈에는 그 두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끝났다. 55대 54로 비앤케이가 이겼다.



마지막 경기까지 비앤케이 선수들의 고른 활약은 돋보였다. 안혜지(13점 3점슛 3개 2리바운드 7어시스트), 이이지마 사키(14점 4리바운드), 김소니아(10점 7리바운드), 이소희(8점 4리바운드 2어시스트)가 팀 승리에 앞장섰고, 박혜진(8점 7리바운드 3어시스트)이 결승포를 성공시켰다.


우리은행은 김단비(27점 7리바운드 5어시스트 2블록슛), 한엄지(8점 10리바운드)가 열심히 움직였지만, 결국 패배했다. 만약 마지막 김단비의 슛이 림으로 빨려들어갔다면 4차전으로 이어졌겠지만, 공은 튕겨져 나왔다. 결국 웃지 못했지만, 김단비의 괴력은 어마어마했다. 27점이라니!! 1차전 20점, 2차전 15점에 이어 3차전 27점이다. 이게 과연 인간인가 싶다.


정말 마지막 1초까지도 승부를 알 수 없는 명경기였다. 이런 경기를 보고 어찌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있나. 잠을 안 자더라도 꼭 써야했다. 아, 이제 다음 시즌 시작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야구 보면서 기다려야지 뭐. 올해는 롯데가 꼭 가을야구에 갈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같은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비앤케이가 롯데에게 행운을 준 것으로 여겨야지. 내일 아침부터 하루종일 중요한 일정이 있는데, 너무 늦어버렸네. 얼른 집에 가서 씻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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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7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28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간달프


오늘 오랜만에 만난 동네 활동가 한 분이 나를 보고 "이젠 거의 간달프가 되셨군요." 그제서야 오늘 머리를 감고나서 채 다 말리기 전에 집에서 나온 통에 머리를 묶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를 묶고 다니면 그래도 흰 머리가 덜 눈에 띄는데, 머리를 풀고 다니면 흰머리가 눈에 확 들어오지. 게다가 흰 수염까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간달프는 좀 심한거 아닌가? 가끔 차라리 간달프처럼 완전히 흰 머리만 남는 것이 더 멋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아직 완전히 흰 머리만 남은 것은 아닌데. 당연히 그가 나쁜 뜻으로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뭔가 좀 기분이 나쁘다.이제 정말 늙긴 늙었구나. 간달프라고 불리다니. 아, 오히려 간달프라는 훌륭한 인물(비록 창작물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이기는 하지만)에 비유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가?


간달프처럼 훌륭한 마법사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초능력이나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약속에 많이 늦었을 때 순간 이동 능력을 바라고, 순간적으로 어떤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을 때, 짧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바라고, 시민들이 잘 이용하던 공적 공간을 시민들의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철거해버리는 미친 시장과 철거 업체 용역들을 만나면 어떤 마법의 힘으로 그들을 제압하고 몰아내 버리고 싶다. 그런 상상 만으로 아주 짧은 순간 만이라도 조금은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다. 현실에는 초능력이나 마법은 없다. 물론 존재하는데 내가 모를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겠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관계와 단절


최근에 단체 대화방에서 이런 저런 갈등들이 많이 벌어진다. 나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 온라인 상의 대화가 가진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래서 어지간하면 그렇게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다툼이나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최근에 나도 모르게 몇차례 연루된 적이 있었다. 상대방이 너무 선을 넘어서 이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참 이런 대화는 피곤하다. 상대는 어차피 내가 뭐라고 하더라도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아무리 잘 설명해도 받아들이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근거없는 비난이나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어떤 사람이 계속 교묘하게 나를 공격하거나, 비난 하려고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당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맞섰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 예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거의 항상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반복해서 하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았었다. 그가 나를 공격하건 비난하건 뭐 별로 상관은 없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냥 떠들어대는 말 따위에 흔들리지는 않으니. 그렇지만 기분은 나빴다. 이제 그런 사람하고 더는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일들로 이미 너무 피곤하고 힘든데 왜 그런 사람들 때문에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더 해야 하는가. 일 때문에 마주치는 일까지 다 피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는 어지간하면 그와 엮이지 않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인간 관계는 늘 어렵다. 그 어려움을 다 안고 가고 싶지는 않다. 단절이 필요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


오늘 북플에서 지난 오늘 내가 쓴 글을 보니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이란 책을 읽고 쓴 서평이 있었다. 그래, 이 책 꽤나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났다. 토머스 페인은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 등에서 크게 활약했던 인물이며, [상식]이라는 책을 써서 글을 읽을 수 있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미국 초기에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내가 살면서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책이며, 누군가에게 책을 권할때마다 늘 포함하는 책인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을 낼 때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토스 페인의 저 책에서 따와서 [21세기의 상식을 위해서]라는 제목으로 내기를 원했다고 한다. 경제성장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제대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우자는 것이 상식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요즘 이 나라 꼬라지가 정말 상식이 없는 세상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전세계가 다 보는 앞에서 비상 계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범죄를 저지른 인간을 법원과 검찰이 합작해서 풀어주더니, 이제는 헌제가 탄핵 인용을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있다. 이러다 기각을 시킬 작정인가? 나는 그래도 이번주 금요일, 그러니까 오늘은 꼭 판결이 나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대로는 다음 주에 한덕수 탄핵 여부를 먼저 다루고 이재명 재판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 이후에 판단을 하겠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짓인가? 그 인간들은 상식이란 것도 없나? 아니 온 국민들이 아니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 미친 자식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다 아는데, 헌법 재판소의 판사라는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고? 왜?


아! 제발 이런 나라에서 저렇게 상식도 없는 인간들하고 같이 살고 싶지 않다. 그런 더러운 꼴을 보느니 그냥 확 내가 죽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 든다. 이번 주 내내 하루도 못 쉬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내일도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에서 외칠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지금 꼬라지가 이렇게 돌아간다면...... 내일 나도 꼭 거리로 나가고 싶었다. 그거라도 해야 그래도 조금은 화가 풀리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탄핵 선고가 내려지고, 내란 수괴로 구속해서 평생 사회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해야 조금은 화가 풀리겠지. 암튼 나는 내일 중요한 총회가 있어서 거리에 나가지 못한다. 총회 참석 확인을 위해 연락을 돌리다가 다들 지금 나라가 이 꼴인데 총회가 중요한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조합은 내일 총회를 치뤄야 한다. 이 총회를 치루지 못하면 엄청 일이 틀어질 것이고, 그럼 또 엄청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다들 거리로 나가고 총회에 오지 않으면 상당히 큰 문제가 생긴다. 모르겠다. 나도 이 조합에서 임원을 맡고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사실 거리에 나갔을 것이다. 


점점 현실 감각이 없어지고 있다. 21세기에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비상 계엄에 이어 탄핵 기가까지 벌어진다고? 내란 수괴라는 범죄자를 석방시킨다고? 뭐 이런 미친 나라가 다 있나? 뭐 이런 말도 안되는 시기를 나는 살고 있는 것인가? 이런 것이 나라라면 나는 이 나라 국민이기를 거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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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3-22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루만이 아닌 간달프였음에 감사해야죠. 인물도 좋고 게다가 악이 아닌 선이니....이게 긍정의 힘이죠. ㅎㅎ 그 긍정의 힘으로 탄핵을 기다립니다.

감은빛 2025-03-24 17:06   좋아요 0 | URL
네, 잉크냄새님 말씀처럼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물은 아닐테고, 그저 흰머리와 흰수염이 눈에 잘 띄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긍정의 힘으로 탄핵을 기다려야 하는데, 왜 자꾸 조바심이 나고, 왜 부정적인 생각들이 더 자주 드는 것인지. 에휴! 정말 힘드네요.

잉크냄새 2025-03-24 19:49   좋아요 1 | URL
네, 사실 저도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맘이 불안합니다. 다만 아직 우리가 그 정도로 망가지지 않았다고 믿기에 기다립니다.

감은빛 2025-03-28 23:21   좋아요 0 | URL
설마 이번 주를 넘길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결국 또 이렇게 기다림이 길어지네요. 주말에는 좀 쉬어야 하는데, 주말마다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어요. 힘드네요.

2025-03-23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24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직 마라톤

작년에 여성 연예인들의 철인삼종경기 참가 과정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 무쇠소녀단을 열심히 봤었다. 그때 마침 나도 막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이라 그들의 도전이 내게도 꽤나 자극이 되었고, 또 한편으로 자전거도 못타고, 수영도 못하는 내 입장에서 자전거를 못타는 유이와 수영을 못하는 진서연의 도전이 또 엄청난 자극이 되기도 했다. 짧은 기간 연예인이라는 바쁜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결국 전원 철인삼종경기 완주라는 엄청난 결말을 보여줬다.

이 프로그램을 볼 때 꽤나 재미있게 지켜본 것이 잠실 롯데타워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었다. 비교적 초반에 나왔었는데, 실제로 열리는 대회를 보고 만든 내용이라고 했다. 와! 이거 실제로 참여해보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요즘은 무릎이 아픈 날이 자주 있어서 예전만큼 계단을 오르지 못하지만, 몇 해전까지 계단 오르기를 운동 삼아 열심히 했었다. 내가 계단 오르기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평택의 농사짓는 마을 빈집에 들어가 살면서 환경단체 활동가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옆마을에 친하게 지내면서 잘 챙겨주시던 형님이 계셨다. 당시 나는 20대 후반, 이 형님은 40대 초반. 큰 딸이 그해에 대학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사실 삼촌이라고 부를 정도의 나이차 라는 생각이 들수 있는데, 당시 전국적으로 친했던 활동가 형들이 대체로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까지 있었기 때문에 나이 차이에 대한 감각이 좀 없었다. 암튼 그시절 그 형님과 친하게 지내면서 이것저것 많이 받으며 살았다. 당시 형님은 어떤 이유로 내가 참 마음에 드셨던 것인지, 자신의 큰 딸과 사귀어보라는 권유도 하셨다. 사위로 삼고 싶으시다고. 한창 새내기로 청춘의 봄날을 만끽하고 있을 그 큰 딸이 나같은 사람에게 눈길을 줄 이유도 없지만, 나도 당시에는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암튼 그렇게 친했던 형님이 나에게 자주 추천한 운동이 계단 오르기였다.

결혼을 하고 서울에 자리를 잡으면서 늘 달동네라고 불리는 언덕 위에 살았고, 전철 역까지 꽤 거리가 있는 곳에 살았기 때문에 일단 출퇴근 만으로도 충분히 하체 운동이 될만한 상황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결혼 생활 거의 대부분 등산하듯 오르막을 올라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에 이 형님의 충고를 받아서 나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거의 타지않고 늘 계단을 올랐다. 주로 이용하는 노선이 6호선이나 5호선이었는데, 알다시피 4호선 이후 뒤쪽 호선들은 승강장이 매우 깊은 곳에 있었고 긴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 계단을 실제로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은 나 외에는 거의 없었다. 한동안 계단 오르기를 즐기면서 점점 익숙해지고 나서 동시에 전철에서 내리면 맨 먼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거기서도 걸어 올라가는 사람과 나 혼자 대결을 벌이곤 했다. 어느 젊은 남성이 가장 먼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걸어오르기 시작했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비슷한 속도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해서 마지막에 누가 먼저 끝까지 올라가나 하는 대결을 혼자 머리 속으로 벌였던 것이다. 그렇게 매일 계단을 오르다보니 나중에는 조금 느긋하게 계단을 올라도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절대 지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한때 일터가 9층에 있었던 기간이 있었다. 아마 4년 정도었던가. 그때 나는 매일 집에서 일터까지 약 30분을 걸어가서 마지막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걸어서 출근했다. 9층은 생각보다 힘들기는 했다. 초기에는 한 6층 정도에서부터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했고, 늘 8층에서 숨이 차서 헉헉 대며 마지막 한 개층을 오르곤 했다. 이걸 몇 년 꾸준히 해서 나중에는 7층까지는 덜 지치고 오를 수 있게 되기는 했었다. 이때 매일 계단을 오르면서 20대 대학생 시절에 아파트 단지에서 쌀배달을 했던 시절 생각을 많이 했다. 이 서재에도 두어번 쓴 적이 있는 엘리베이터 점검하는 동에 계단으로 쌀을 배달했던 날을 떠올리며 계단을 오르곤 했다.

계단 오르기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작년에 보문사 마애불을 만나러 가는 길의 긴 계단을 오른 일이었다. 보문사는 강화도 서쪽 작은 섬인 석모도에 있었다. 예전에는 배를 타고 석모도로 들어갔었는데, 언젠가 다리가 놓였다. 친한 지인이 주말에 심심한데 강화도나 갈까요 해서 그냥 따라나섰던 건데, 그가 보문사로 향했다. 이 당시에는 몰랐고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마애불을 만나러 오르는 길이 소원을 비는 소원계단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계단이 총 419개 있다는 정보도 봤다. 가을이었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천천히 계단을 오르다가 갑자기 전철역 계단이나 예전 9층 사무실 계단을 올랐던 리듬으로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빠르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이게 무척 즐거웠다. 한동안 전철을 탈 일이 자주 없었고, 고층으로 계단을 오를 일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자주 무릎이 아파서 어쩌다 계단을 마주해도 오르지 못하는 날들도 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계단을 빠르게 오르는 것이 무척 좋았다. 같이 오르던 지인은 처음에는 따라오는 듯 숨소리가 들렀지만, 중간쯤 올라서 잠시 숨을 고르며 내려다보니 어디쯤 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이미 중간쯤 올랐을 때부터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정말 멋졌다. 땀으로 옷이 흠뻑 젖었지만, 바람이 땀을 식혀주고 있었다. 나는 아주 잠시 숨을 좀 고르고 다시 출발했다. 대략 3분의 2정도 오른 시점에서 나도 많이 지쳤다. 긴팔 상의는 땀에 흠뻑 젖었고, 속옷도 다 젖었다. 다리가 무거워졌지만, 멈추지 않고 쉬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헉헉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들고 다리는 질질 끌리는 느낌이었다. 결국 끝까지 올라왔을 때의 나는 허리가 완전히 꺽인 채로 거의 기어오르는 것처럼 자세가 무너진 채로 간신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너무나도 갈증이 났는데 마실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까지 오른 사람들은 다들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기에서 시원한 물을 판다면 아무리 비싸도 사 마실거라고 함께 쉬고 있던 사람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중간에 있는 벤치에서 쉬기도 하고 천천히 올라온 경우가 대부분이었겠지만, 나는 일부러 운동하려고 빠른 속도로 올라왔기 때문에 갈증이 더 심했다. 하지만 뭐 방법이 없었다. 함께 온 지인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내려간 후에 절 아래에서 물이나 음료수가를 사거나 구할 수 밖에. 한참을 기다려도 이 친구는 올라오지 않았다. 중간에 뭔 일이 생겼나 걱정이 들 정도로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저 아래에 그 친구가 보였고, 이미 지친 그는 거기서부터 나에게 오기까지 다시 한참이 더 걸렸다.

자, 이제 다시 원래 하던 수직 마라톤, 잠실 롯데타워 계단 오르기 대회 이야기로 돌아가자. 작년에 이 대회의 존재를 알고 나서 내년에 참여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무릎이 걱정이었다. 거리를 달리는 대회는 무릎이 조금 안 좋아도 진통제 먹고 달리면 크게 문제가 없지만, 계단은 무릎이 조금만 상태가 나빠도 오르기 어렵다. 대회 당일 무릎이 아플지 괜찮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니 이걸 신청하기가 망설여질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게다가 신청하는 일 자체가 또 쉽지 않다. 요즘은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엄청 많고, 각종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아서 매번 대회 서버가 열리는 시간 5분전에 알람을 맞춰두고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정시에 들어가도 단번에 신청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3월 말에 열리는 불광천 대회는 그렇게 유명한 대회도 아닌데, 서버가 열리는 시간에 동시에 접속자가 몰려서 잠시 오류 메시지가 뜨기도 했었고 나는 간신히 신청 성공했지만, 달리기 모임 구성원들 중 다수는 결국 신청을 못했다고 전했다. 버튼을 누르고 정보를 입력하고 나니 이미 마감되었다고.

저 수직마라톤은 신청 서버가 열리고 채 5분도 되지않아 마감되었다는 글을 봤었다. 그럴만하다고 여겼다. 유명하지않은 대회들도 금방 마감이 되는데, 이건 독특하기도 하고, 한번쯤 도전하고픈 대회라 사람이 몰리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 수직마라톤 올해 대회 신청 일이 어제였다. 나는 어차피 신청하려고 시도해도 성공률이 높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무릎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망설이다가 그냥 포기했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냥 그렇게 포기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한번쯤은 꼭 해보고 싶은 대회인데, 신청이라도 해볼걸. 안 되더라도 시도라도 해볼걸. 높이 555미터, 총 123층, 2,917개의 계단을 오르는 이 대회 내년에는 꼭 도전해보리라. 올해 달리기를 꾸준히 하면서 무릎 컨디션에 따라 계단 오르기도 꾸준히 훈련해야겠다.

원래는 아산에서 열린 여자농구 챔피언 결정전 1, 2차전 결과 이야기도 하려고 했는데, 그건 다음에 써야겠다. 마지막으로 온라인으로 예매나 신청하는 각종 대회나 경기 등에 대해 짧게 얘기해보자. 사실 해마다 두 번 있는 명절을 앞두고는 부산으로 가는 열차표를 구하는 것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에는 열차표를 구하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매번 버스를 탔고 대개는 10시간 남짓, 좀 심한 경우엔 12시간에서 15시간, 그리고 가장 오래 걸렸던 폭설이 왔던 설날의 경우에는 17시간 넘게 걸리기도 했다. 그렇게 몇 해를 지나면서 나는 앞으로 절대 버스는 안 타기로 마음 먹었고, 그즈음부터 코레일 앱을 통해 예매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명절 예매는 미리 예고한 특정한 날 오전 6시에 열리고, 몇 분이 지나지않아 모든 표가 사라진다. 허탈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정시에 접속해도 대기번호 숫자 혹은 오류 메세지 등만 보다가 표를 구하지 못하는 헛수고를 해야 했다. 몇 번 그런 일을 겪은 이후로는 이제 그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그 시간에 표를 구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까. 나중에 막상 명절이 코앞에 다가오면 무더기로 나오는 취소표를 노리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이것도 혼자는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하기도 하는데, 아이들과 함께는 또 난이도가 엄청나게 올라간다.

작년에 야구장에 총 6번 갔다. 고척돔 1번, 잠실 2번, 문학 2번, 사직 1번. 나는 롯데 팬이라 서울과 인천의 3개 구장은 모두 원정팀이고 부산 사직구장이 홈이다. 원정 5번은 모두 롯데가 졌고, 홈에서 본 날만 유일하게 그리고 아주 감동적으로 승리했다. 이 이야기도 작년에 쓴 적이 있는데, 어렸을 때와 청소년기에 야구장을 자주 갔었다. 당시 사직구장은 7회가 되면 문을 열어줬기 때문에 돈이 없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도 야구장 근처에서 소리만 듣다가 7회에 들어가서 보곤 했다. 마지막으로 야구장에 갔던 건 아마도 대학생이었던 95년이었다. 그리고 거의 30년만에 작년에 야구장을 다시 간 것이다. 꽤 오랫동안 야구를 좋아하는 마음과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마음을 그저 마음속에 품고 야구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왔던 것이다. 작년에 비로소 여유가 생겨 처음엔 중계 방송을 챙겨보기 시작했고, 그러다 야구장에 가보고 싶어져서 롯데의 원정경기 일정을 찾아서 예매를 했던 것이다. 프로야구는 구장에 따라 예매하는 앱이 각각 다르고, 구장의 크기와 좌석 상황도 그리고 가격도 저마다 다르다. 미리 예고된 예매 시작 시간에 들어가면 괜찮은 자리 표가 있을줄 알았던 나는 물정을 몰랐다. 각 구단마다 시즌권이라고 부르는 선예매가 가능한 등급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즉, 일반 예매가 시작되기 전에 시즌권 구매자들이 먼저 좋은 자리를 모두 선점한다는 이야기. 그런데 작년의 나는 여기까지만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 위에 다시 프리미엄 등급 같은, 구단마다 이름도 다르고 혜택도 다르겠지만, 돈을 더 주고 사야하는 등급이 있었고 이들이 선선예매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본 뉴스에서는 선선선예매가 가능한 제도를 만든 구단들이 있다고 한다. 참, 영화 [1승]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며칠 전에 곧 있을 프로야구 개막전 암표가 엄청 기승이라는 소식을 봤다. 한 2만원 정도 하는 썩 좋지 않은 자리의 표를 10만원 가까이 팔아도 없어서 못구한다고. 게다가 좋은 자리는 2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고 했다. 아, 진짜! 이게 뭐하는 짓인지. 작년 연말인가 암튼 최근에 큰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공연을 처음으로 보러 갔었다. 꼭 보고 싶은 마음에 암표를 거의 3배 가량 주고 샀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아무리 보고 싶어도 암표를 사면 안 된다고, 우리가, 누군가가 결국 사니까 그들이 그렇게 비열한 짓을 계속 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마라톤 대회도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다. 알고 싶지 않아서 찾아본 적은 없지만, 여기도 찾아보면 뭔가 잔뜩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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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3-21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건강이 안좋아서 한때 계단 오르기를 한 적이 있어요.아무래도 살고 있는 건물에서 하면 다른 분들께 폐가되니 집 근처 육교를 이용했는데 오르락 내리락 한 시긴정도씩 몇달을 한 기억이 납니다.고층 건물의 계단 오르기 보다는 아무래도 쉽긴한데 이것도 매일 하니 무릎등이 너무 아파서 한동안 안했는데 육교마자 철거되어 이젠 할 수 없네요ㅡ.ㅡ

감은빛 2025-03-21 21:23   좋아요 0 | URL
오호! 육교를 오르내리는 방법도 있군요.
그 생각은 못 했네요.
언젠가 뉴스에서 계단 오르기를 위해 계단만 있는 건물이 있다고 본 적이 있어요.
아파트 단지 거주자들을 위한 건물이라고 하더라구요.

카스피님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카스피 2025-03-22 13:57   좋아요 0 | URL
주변에 육교가 있으면 가능하긴 한데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은 좀 힘들죠.제가 사는 곳은 외진곳이라 저녁이면 육교 사용자가 없어 가능했어요.그리고 아무래도 육교다보니 고층 빌딩 계단오르기보다는 운동효과가 좀 없던것 같습니다.
감은빛님도 건강하게 주말 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