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빌려 드릴까요
사토 아유코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나 자신을 누군가에게 빌려 준다는 의미


이 책을 다 읽고 꼭 글을 남기고 싶었다. 글을 쓰려고 마음 먹은 지 한참이 지났는데,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지 못한 이유가 있다. 마야는 왜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려고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질문에 답을 찾기에는 몇 가지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우선 성별의 한계가 있겠다. 나는 현재 중년 남성으로서 젊은 여성의 생각을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두번째는 시공간의 한계다. 이 소설은 1996년 "가와데 문학상"을 받았다. 90년대 중반 일본의 이야기다. 나도 물론 90년대 중반에 청춘을 살았지만, 일본과 한국은 여러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요즘은 SNS와 각종 영상 등을 통해 각 나라의 사회상황과 문화를 훨씬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때는 일본 문화를 직접 수입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세번째로는 계급 혹은 계층의 한계라 할 수 있다. 약간 억지로 일반화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대학인 도쿄대학을 다니고 있다. 비록 마야가 보디 렌탈을 통해 돈을 벌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 일을 한다는 내용은 없다. 아마 굳이 보디 렌탈이란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대학을 다니며 생활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고, 필요하면 얼마든지 알바를 통해 용돈을 벌 수 있다. 실제 작중에서 마야는 그 용돈 벌이의 목적과 보디 렌탈의 고객 모집을 위한 목적으로 바 같은 곳에서 알바를 한다. 암튼 공부도 잘하고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반면 나는 지독하게 가난하게 살았고, 공부를 그리 잘 하지도 못했다. 그저 이름 없는 지방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시민운동 판에 뛰어든 가난한 활동가일 뿐. 사실 지금까지 언급한 태생적인 한계라는 것들은 다 핑계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모두 다르다. 이 지구에 약 80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그들 모두 각자 다른 생각을 한다.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다만 결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다. 그래서 우리가 각자 모두 이렇게 다름에도 불완전하게라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쨌든 마야의 삶을 들여다보며 상상해보고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토 아유코 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일터에서 가까워도 한동안 가지 않았던 알라딘 중고서점을 그날 따라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별 생각없이 책들을 살펴보다가 정보라 작가의 책 하나를 고르고 우연히 집어든 책이 [도쿄대학 살인사건]이었다. 책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 문구에 비운의 천재 작가라고 적혀 있어서 구매했었다. 이 책은 약 1/3 정도 읽었는데, 진행이 좀 느리고 생각만큼 재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사토 아유코 작가의 가장 유명한 책이 바로 이 [보디 렌탈] 이라고 하길래 [도쿄대학 살인사건]을 덮어두고 이 책을 먼저 읽고 싶어졌다. 이 소설의 원제가 바로 [보디 렌탈]이고 우리나라에 처음 출간된 판본도 이 제목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후 다시 출간된 책이 지금 제목으로 나왔다. 암튼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알라딘 앱에서 중고 책을 검색했다. 세 곳의 매장에 이 책이 있었고, 그 중 하나를 골라서 2만원 어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배송료 2,500원을 아끼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인데, 평소 다른 온라인 쇼핑이라면 이런 짓을 하지 않겠지만, 책에 대해서는 늘 이렇게 한다. 그래도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책이니까. 


이 소설이 "가와데 문학상"의 수상작으로 결정된 그 회의는 무려 4시간이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고 한다. 통상 문학상의 수상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사전에 심사위원들이 대략 그 범위를 좁혀 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 토론을 이어가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그만큼 문제작이었다는 뜻이겠지. 이 책의 맨 뒤에 수록된 두 편의 해설과 옮긴이 후기에서도 반복적으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본의 평론가 진노 토시후미는 이 소설을 포함한 사토 아유코의 작품들을 "초현실주의 실험"으로 보며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표현했다. 김미현 평론가는 "하루키의 경쾌함, 뒤라스의 관능성, 쿤데라의 위악성이 혼합된 묘하고 대담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옮긴이 김진욱은 사토 아유코가 "성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그렸다고 언급했다.


이 책을 한 번 완독하고 두번째로 필요한 부분만 발췌독을 한 내 솔직한 마음은 생각만큼 재미있지도 않고, 생각만큼의 문제작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이 30년 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하겠지. 그럼에도 김미현 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하루키와 뒤라스와 쿤데라를 불러올 정도는 아니다. 아, 확실히 경쾌함이 있고, 관능적이고, 위악성이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잘 어우러져 있는가?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의문이 든다. 요컨대 핵심은 이거다. 이 글의 맨 앞에서 내가 던진 질문이자 독자들이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떠올릴 질문, 그래서 대체 왜 그는 타인에게 자신의 육체를 빌려주는 걸까? 그것도 젊은 여성이 돈 많은 중년의 남성들에게 고액의 돈을 받으며 남들이 매춘이라 부를 행위를 하는 것일까? 확실히 돈 때문이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육체적인 쾌락 때문도 아니다. 뭔가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저항을 표현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럼 왜일까? 책을 덮은 후로 꽤 긴 시간을 생각해봐도, 나로서는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렵다.


진노 토시후미는 매춘을 "상실을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내 몸이지만, 이 몸이 내 신체라는 감각을 상실하는 것. 이것을 위해 보디 렌탈 이란 행위를 하는 것이라는 말로 읽을 수 있다. 이 일본인 평론가는 작가인 사토 아유코가 우연한 계기로 신체감각을 상실할 계기로 매춘을 선택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 해설은 아마 일본에서 출간된 96년 판본에 실린 글일 것이다. 사토 아유코는 2008년 [꽃들의 묘비]라는 작품을 출간하며 자신과 언니가 친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신체감각의 상실을 위해 매춘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김미현 평론가는 글에서 보디 렌탈의 이유를 딱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텅 빈 그릇이 되어 그 속에 허구나 망상, 유희 만을 담기 위해 의식이나 반성, 이성 따위 자의식을 몸에서 파낸다."는 문장을 썼다. 그리고 이 평론가는 소설 후반부에 마야가 유일하게 가학 충동을 느껴 먼저 유혹하는 우치다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며, 결국 마야가 "완전한 물건이 되기에는 그녀의 자의식이 철저하게 제거되지 못했기에 분열을 일으켰다."고 표현했다. 이어서 "물건이 스스로 물건임을 모르면 진짜 물건일 수 밖에 없다." 라며 "자신이 물건이라는 자의식이 있다면 그때부터는 이미 물건이 아니다." 라고 했다. 우리 마야는 자의식조차 없는 물건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빌려주는 삶을 살았지만, 결국에는 자의식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옮긴이의 말에는 아사히 신문의 서평에 실린 마야의 목적도 소개하고 있다. "그녀가 노리는 것은 어떤 종류의 정신적 치유" 라고 했다. 이어서 "자신의 몸을 남자들의 욕정의 기호로 삼아 철저히 세련되게 만들면서 거꾸로 그 같은 욕정의 세계에서 정신을 이탈시킨다는 식의 '야릇한 치유법'" 이라고 적어놓았다.


이 소설에는 마야의 과거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현재 대학생이면서 남몰래 부유한 중년 남자들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주고 살고 있고, 그 고객인 여러 남자들과의 이야기들이 옴니버스식 구성처럼 등장한다. 마야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는 그 과거를 알 수 없어 이해하기 어렵지만, 작가인 사토 아유코가 왜 이런 작중 주인공인 마야의 삶을 빌려 이런 이야기를 쓴 것인지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어려서부터 친아버지에게 당한 성적 학대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지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워버려야 했을 것이고, 자신을 지우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이 사물처럼 만드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 작가는 비운의 천재 작가가 아니었다. 가족이란 이름의 괴물에게 학대 당한, 너무나도 불행한 삶을 살았던,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부단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자의식을 철저하게 지워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던 경험이 나에게도 있다. 여기 알라딘 서재에 글로 여러 번 썼었고, 언제나 군대 이야기를 하게 되면 꼭 하는 이야기이다. 나는 군에 입대할 당시에 나 스스로 인간이라는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만약 내가 스스로 인간임을 인정한다면 도저히 그 생활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낱 미물이며, 감히 인간 따위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온갖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견뎌내야 했다. 만약 그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는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탈영을 했을 것이다.


이제 작가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작품 자체만 놓고 몇 가지만 더 얘기해보자. 일단 확실히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리고 정말 너무나도 자극적인 주제다. 다만 글에는 섹스 묘사도 없고 야릇한 분위기조차 없기 때문에 포르노라고 부를 수는 없다. 마야가 말하는 보디 렌탈이란 개념 자체가 그렇듯이 이 글에서 중년 남성들이 마야를 빌려서 하는 여러 행위들은 철저히 차가운 시선으로, 감정을 배재하고 그저 이런 일이 있었음을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구체적인 묘사를 배제한다. 그리고 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해괴한 짓을 너무 당연하게 또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처럼 이 소설 전반에 상당한 블랙 유머와 해학이 깔려있다. 소설 초반에 와타나베 조교수가 강의에서 한 말인 "인간은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난다."는 말은 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정말 독특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상식적으로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주제를 너무 거리낌 없이 던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글이 경쾌하고 거침이 없기도 하며, 그러면서 또 위트와 해학을 갖춘 글이다. 앞서 김미현 평론가의 평가는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계속 말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야?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뭐라고 할 말이 없다. 확실히 이 소설의 결말은 좀 많이 아쉽다. 그리고 전체적인 구성도 아쉽다. 병렬적으로 여러 구매자들의 이야기를 배치한 것은 장점도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전체적으로 큰 줄기의 이야기가 너무 약하다. 앞서 언급한 그 우치다 이야기가 이 소설 전체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장면일텐데, 이 부분이 좀 아쉽다. 


이 이야기에서 이어서 생각할 거리들도 제법 많다. 일단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파파카츠"가 이 책에서 묘사된 보디 렌탈과 매우 유사하다. 부유한 중년 남성이 젊은 혹은 어린 여성이랑 놀고 돈을 지불하는 방식. 결국은 이것도 매춘이고, 원조교제와 다를 바 없는 행위일텐데, 거창하게 방과후 동아리 활동을 뜻하는 '부카츠' 라는 단어를 파파랑 붙여서 신조어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식으로 이해하려면 조건 만남이라고 해야할까?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 [청춘시대] 에서 강이나 라는 캐릭터가 중년의 남성들을 만나면서 원하는대로 돈을 펑펑 쓰는 생활을 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최근에 본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젊은 여성들이 이 파파카츠로 돈을 벌어서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자신의 '최애'에게 갖다 바치는 이야기가 여러 차례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일본에는 젊은 여성이 남성에게 자신을 빌려주는 또 다른 형태가 있더라. 바로 렌탈 여친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 말로 여친 대행 서비스 라고 하면 되려나? 일본 드라마 [내일, 나는 누군가의 여자친구] 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드라마로 시즌 1을 보았고, 시즌2는 앞 부분만 조금 보다가 말았다. 원작 만화가 있다고 알고 있다. 나무위키 설명에 의하면 이 만화에 렌탈 여친, 파파카츠, 소프랜드, 딜리버리 헬스 등 불법과 합법 사이를 오가며 통용되는 매춘 행위들이 총 망라된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곧바로 이 드라마를 떠올렸다. 이 책이 나왔던 96년에는 책 내용이 충격적인 문제작이었겠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이런 류의 매춘이 너무 흔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과 이 드라마를 연결해서 글을 하나 쓰고 싶었는데, 드라마를 가볍게 보고 넘겨 버려서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때 디즈니 플러스를 딱 한 달만 구독해서 볼만한 영화나 드라마를 짧은 시간에 몰아서 보았기 때문에 더 기억이 안 나는 듯하다. 다시 보려면 다시 구독을 해야 하는데, 돈이 좀 아깝다. 혹시 [무빙]의 후속 시리즈로 강풀 작가의 세계관을 구현한 드라마가 디즈니 플러스에 나오면 그때 다시 구독할 예정이라, 그때 다시 보고 글을 쓸까 싶은데, 어쩌면 그때쯤 되면 이 드라마가 디즈니 플러스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 


사토 아유코는 2013년에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알코올을 병용한 급성약물중독이라고 나온다.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겨웠을 작가의 삶을 감히 생각하면 참 뭐라 할 말을 찾기 어렵다. 그래도 열심히 작품 써준 덕분에 이렇게 인연을 맺을 수 있어서 고맙다고 표현하고 싶다. 자, 이제 꽤 오래 방치해뒀던 [도쿄대학 살인사건]을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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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백만 팔로워는 추리 중]

설 연휴의 시작인 토요일에는 원래 일정이 하나 있었다가 취소되었다. 그런데 나는 정확하게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로 그냥 막연히 뭔가 일정이 하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달력을 확인하고서야 취소된 일정이었음을 알아차렸다. 갑자기 할일이 없어져서 낮에 뭘 할까 고민을 시작했다. 운동을 가려다가 이번 주에 신나게 운동한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근육통이 찾아온 걸 깨닫고 하루 쉬자고 생각했다. 그럼 사무실 나가서 자료도 좀 찾고 글도 좀 쓸까 했는데, 피로와 근육통 때문에 몸이 무거웠다. 뭐 그럼 낮잠이라도 자야지.

책을 조금 읽다가 졸고, 폰으로 이것저것 정보를 좀 찾아보다가 다시 잠이 와서 또 졸았다. 다시 깨서는 서너개의 앱으로 일본어와 영어를 익혔다. 그제서야 배가 고파서 간단히 배를 채우며 넷플릭스를 열었다. 시간 날 때 보려고 생각했던 일본 드라마가 뭐였더라 찾아보고 있었는데, 신작 추천으로 대만 드라마가 제일 먼저 보였다. 제목도 딱 눈에 띄었다. [백만 팔로워는 추리 중] 추리물이라는 것만으로도 일단 볼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누가 출연했나 보는데, 정이건 이란 이름이 나왔다. 정이건이라. 그 옛날 홍콩영화에 나왔던 그 정이건인가? 그제서야 포스터에 나온 그 얼굴을 알아봤다. 확실히 나이가 들기는 했지만, 그 잘생긴 얼굴은 여전했다. 그리고 아무나 소화하기 어려운 살짝 애매한 장발 스타일. 그가 출연한 영화를 여럿 봤겠지만, 확실히 기억에 남아있는 건 [풍운]이었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섭풍의 머리스타일도 지금 이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던가 싶다. 이 아저씨도 이젠 제법 나이가 많을텐데, 그래도 이렇게 드라마에 나오는구나 하며 드라마를 시작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소위 말해 인플루언서 라고 불리는 SNS 로 유명해진 사람들이 나온다. 정보를 찾아보니 각본과 감독이 수원셩(蘇文聖) 이라는 사람이더라. 이전 작품들의 수가 적었고 내가 본 건 없었다.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가 대부분 원작이 있는 경우가 많던데, 그런 정보는 찾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니 꽤 괜찮게 잘 만든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기대가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일단 제목 덕분에 가벼운 느낌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인플루언서 라는 기성 세대에게는 낯선 단어가 젊은 세대들에게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이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다루며, 거기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연쇄 살인이 벌어진다는 점은 독창적으로 잘 만든 이야기라고 느낀다. 다만 더 깊은 주제의식으로 파고 들어가기엔 태생적 한계가 있다고 여겼다.

사실 이 인플루언서를 대상으로 하는 연쇄살인이 전체적으로 좀 어설프고, 부족한 느낌이다. 뭔가 더 크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뒤로 갈수록 좀 안타까웠다. 제일 어이없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건 첫번째 살인이다. 아니 결국은 피해자가 죽지 않았으니 엄밀히 말하면 살인이 아닌 살인미수인데, 이게 참 애매하다. 암튼 그 첫 피해자는 결국 죽지 않고 살아나서 나중에 맨 마지막에 숨겨진 진짜 악당을 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 사건은 피해자가 될 인플루언서(이 단어를 대체할 말이 혹시 없을까 검색해보니 국립국어원이 ‘영향력자‘ 라고 제시했더라.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으나 그건 더 어색하기만 해서 그냥 길어도 이렇게 써야겠다.) 가 실제 총과 거의 구분이 안 가는 비비탄 총을 가지고 경찰서 앞으로 와서 총격을 가할 것처럼 하다가 여러 경찰들과 대치 상태에서 주인공이 쏜 총에 맞는 것이 드라마의 시작인데, 여기가 좀 많이 아쉽다. 일단 이 피해자가 하늘로 첫발을 발사하고 사람들이 총성을 듣고 놀라 큰 혼란이 발생하는데, 나중에 이 피해자가 왼쪽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진 후에 총을 빼앗아 확인해보니 이게 비비탄 총이더라. 이게 말이 되나? 아니 비비탄 총에서 어떻게 실탄 사격과 같은 큰 소음이 날 수 있나? 그리고 경찰들이 총을 든 사람을 제압하는 장면도 너무 어설프게만 그려진다. 아무리 경찰이 무능해도 설마 이 정도일까 싶다. 게다가 이 피해자는 왼쪽 가슴에 총을 맞았는데, 나중에 너무 멀쩡하게 살아난다. 물론 꽤 오랫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너무 작가이자 감독 맘대로 간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 첫 피해자가 병원에 실려가자마자 맨 처음 응급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나중에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지는데, 그럼 의사가 수술 중에 마치 실수한 것처럼 고의로 죽일 기회가 있다는 뜻인데, 이 의사는 수술은 수술대로 해놓고 나중에 병실에서 이 환자를 다시 죽이려고 시도한다. 이것도 참 생각해보면 우습기만 한 오류라고 볼 수 있다.

초반에 감독이 의도적으로 관객들에게 정보를 통제하고 주인공 형사의 가족 이야기와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 이야기로 시선을 분산시키며 좀 답답한 느낌인데 조금만 참으면 가족의 불행한 사연이 밝혀지고, 데이트 폭력이 해결되면서 느린 흐름은 금방 빨라진다. 이 부분만은 확실하게 좋았다. 다른 드라마들이 중반 이후에도 계속 느린 흐름으로 쓸데없는 곳으로 자꾸 눈을 돌리곤 하는데, 이 드라마는 중반부터는 곁눈질 하지 않고 결론으로 달려간다. 맨 마지막에 반전이 있는데, 초반부터 의심스러운 인상을 잔뜩 심어주는 인물이기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라 이런 걸 반전이라 부를 수 있나 싶다. 그리고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 반전도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주인공 일행이 너무 쉽게 이 숨은 악당을 잡아내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드라마를 다 본 후에 조금 곱씹어보면 전체적으로 지문 검사라던가 족적 검사라던가 포렌식이나 부검 등 기본적인 과학수사를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에 칼이 그대로 꽂힌 채로 죽은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가 장갑도 안 낀 맨손으로 찔렀고, 지문을 닦지 못했는데, 지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익사로 사망한 두번째 인플루언서가 실제로 익사인 것인지 부검 결과를 보는 장면도 없다. 주인공이 시체의 입을 열어보고 입안이 깨끗하단 사실을 확인하여 죽은 후에 던져진 것이라 추측하는데 그렇다면 다른 깨끗한 물에서 죽었다는 추측이 아니라 부검으로 정확한 사인을 밝혀야 맞는 거겠지. 네번째 피해자도 작중 묘사로는 이미 피가 질질 흘러나오는 큰 가방을 육교 위에서 끌고가는데, 경찰에서는 부검도 없이 그냥 떨어져 죽은 것으로 말한다. 더 웃긴 것은 유일하게 시체를 두고 부검 결과를 얘기하는 장면이 나오는 건이 앞서 말한 칼에 맞아 죽은 피해자이다. 이건 칼이 몸에 꽂힌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고 외관상으로 칼에 찔린 상처가 네 개나 보이는 거라 굳이 부검 결과를 일부러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아, 범인이 아랫쪽에서 위로 찔렀다는 부검 결과가 필요해서 넣은 장면이라는 것을 방금 글을 쓰면서 이해하기는 했다. 즉, 진범의 정체를 유추하며 범위를 좁히기 위한 의도였겠구나.

여기까지 이 드라마의 단점들을 적었는데, 그럼에도 괜찮은 점수를 줄만한 드라마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는 질질 끄는 경향이 있고, 쓸데없이 로맨스를 넣거나 하는 등 핵심주제로 승부하지 않고 다른 인기 요소를 자꾸 섞어넣으려고 해서 일단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끝까지 다 보는 드라마가 많지 않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드라마는 그런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8편짜리 드라마로 분량도 그리 많지 않고 적당하다.

이 드라마의 가장 핵심 주제는 인기를 위해 아무 짓이나 마구 벌이고 다니는 소위 말하는 스트리머 혹은 유튜버 이런 인간들이 좀 더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만약 사고가 났다면 꼭 수습을 해야한다. 뭐 이런 것. 그리고 온라인으로 특히 SNS로 빠르게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가짜 뉴스들에 대한 경각심을 다루고 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부분이 아빠와 딸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딸을 둘 키우는 아빠로서 이 부분 때문에 과하게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이 답답했고, 결국은 공감이 가기도 했다. 내 주위에 성인이 된 후로 아빠와 사이가 나쁜 여성들이 많았다. 심지어 애들 엄마와 장인어른의 관계도 아주 좋지 않았었다. 나는 가끔 혹시라도 우리 딸들이 사춘기 이후로 아빠를 멀리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런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고 늘 생각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면 가끔 위기도 있었던 것 같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정이건이 연기하는 형사는 잠시라도 틈이 나면 딸과의 메신저를 열어보며 혹시 답장이 왔는지를 보는데, 딸은 늘 답장이 없다. 여기서 좀 재미있는 건 어떤 예뻐보일만한 이미지에 아주 좋은 것만 같은 말을 얹어서 보내는 짓을 주인공이 주기적으로 한다는 것. 이거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어쩌면 지금도?) 장년층들이 많이 하던 거였다. 적당한 꽃 사진이나 풍경 사진이나 이런 배경에 잡지 [좋은 생각] 이나 [샘터] 같은 곳에 실려있을 것 같은 좋은 말을 담아서 주위 사람들에게 막 퍼뜨리는 것.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예전에 아주 친했던 어느 형님이 나에게 딱 그렇게 하셨다. 아마 나한테만 보낸 것이 아니라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들 여러 명에게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사진도, 아무리 좋은 글귀도 한두번이지. 이게 끝없이 계속 오면 제대로 반응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더구나 나는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적혀있을 법한 좋은 글이나 시, 아까 말한 류의 잡지에 실린 글들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류의 글들은 얼핏 그럴듯하게 느껴지고 따뜻하고 좋은 내용인 것 같지만, 이 사회의 특정한 면만 부각해서 보게 만들고 그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보지 말라고 세뇌하는, 어쩌면 국민들을 가스라이팅하는 류의 글들이다.

또 이야기가 잠시 샜는데, 암튼 이 형사는 아빠로서 제대로 딸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자꾸 망설이기만 한다. 그러면서도 아주 짧은 틈이라도 생기면 늘 대답도 없이 일방적으로 자신이 보내기만 한 메신저 대화를 열어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딸이 아주 짧은 단답형 답을 달기 시작하는데, 나중에 드러나지만 그건 딸이 쓴 것이 아니라 딸을 납치한 납치범이 쓴 것이었다. 과연 아빠는 그 사실을 알았을까? 이 부분은 극 중에서 명확한 묘사가 없어서 장담하기 어렵다. 아마 납치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몰랐을 것 같다. 납치범은 딱 한 두 단어로만 답을 해서 의심을 피했고, 형사는 드디어 우리 딸이 답을 했네 하고 내심 안심하고 조금은 기뻐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막판에 아빠가 딸을 구해내고 나서야 나도 마침내 좀 편하게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아빠와 딸의 대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정말 좋았다. 내 개인적인 기준으로 드라마 전체에서 제일 좋은 장면 하나를 꼽으라면 이걸 선택할 것이다. 이 부녀 관계는 엄마이자 아내를 잃고 난 후에 아빠가 엄마를 잃은 슬픔에 빠져 딸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딸은 마침내 아빠를 견디지 못해 집을 나와버리고 그 후로 대화조차 피해버렸다. 아빠는 딸이 걱정되니까 음식을 사다가 집 앞에 놓고 가고, 불 켜진 창문을 한참 쳐나보다가 돌아가곤 한다. 그리고 위에서 얘기했듯이 혼자 계속 글귀가 적힌 이미지를 보내거나, 말을 걸곤 한다.

아내이자 엄마의 죽음, 그 너무나도 큰 상실 앞에 두 사람은 정말 슬프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남은 둘이 더 보듬고 의지해야 할텐데 늘 그건 쉽지 않은 것처럼 그려진다. 그렇게 서로 상처주고 결국 딸이 집을 나와버렸어도, 그래도 둘은 아빠와 딸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늘 있었기에 아빠는 아빠대로 말을 걸었던 것이고, 딸은 답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빠를 생각하며 노래를 만들고 작은 무대에서 그 노래를 부르며 관객들에게 아빠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막판의 병실 장면에서 딸은 친구랑 대화하다가 밖에서 아빠 목소리가 들리자 어쩔줄 몰라하면서 자는 척 한다. 친구는 서둘러 병실을 나서며 친구 아빠에게 인사를 한다. 아빠는 병실에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손에는 가끔 사다줬던 밥이 들려있다. 딸이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조심스레 사온 밥을 탁자에 놓고 딸의 친구가 보내줬던 딸의 공연 영상을 시청한다. 바로 아빠에 대한 그 노래였다. 그러자 딸이 눈을 뜨고 말을 건다. 아빠는 시끄럽게 해서 잠을 깨웠을까봐 미안해한다. 딸은 몸을 일으키더니 아빠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한다. 아빠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앉으니 딸은 솔직한 심정을 말하며 아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팔을 껴안는다. 아빠도 딸의 머리쪽으로 머리를 기대며 서로의 오랜 침묵을 해소한다. 이 장면이 좋은 이유는 일단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에서 그 성격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무뚝뚝하고, 일 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형사 캐릭터와 밝고 당차고 자신감이 넘치는 젊은 여성이라는, 이것도 일종의 스테레오 타입일 수 있는 딸의 성격을 정말 잘 보여주고 있다. 아빠는 딸을 너무나도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와 자신이 입혀버린 상처 때문에 어떻게 딸을 대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하고 조심하는 모습이 잘 보인다. 또 딸은 그 나름대로 긴 시간 외면해왔던 아빠를, 사랑하지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러나 막상 자신을 구해준 든든한 아빠를 다시 보고, 또 아빠가 자신에게 한 실수 때문에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먼저 다가가는 모습.

마지막으로 배우들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일단 주인공 정이건은 앞서 말했듯 너무 반가웠고, 명성에 손색없는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 초반 한동안은 너무 오랜만에 보는 정이건이 이렇게 나이 든 모습이라 적응이 안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멋있으니 괜찮다 여겼다. 조금 이 인물에게 어색하다 싶은 면이 드러나는 부분은 배우 탓이 아니라 대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 두번째 핵심 인물은 베테랑 형사와 함께 파트너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사이버 수사대 신참 형사 리신핑이다. 리페이위(李霈瑜)라는 배우가 연기했다. 보면서 낯익은 얼굴이라 여겼는데, 찾아보니 처음보는 배우였다. 정보를 보니 생각보다는 나이가 있던데, 신참 형사를 자연스럽게 잘 연기했다. 영화에 비해 드라마는 긴 시간 주연 배우들을 보면서, 또 다양한 상황의 다양한 표정들을 보면서 점점 익숙해지고 좋아하게 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보면 볼수록 약간 독특한 매력이 있는 얼굴이라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사이버 수사대 팀장인 허전웨이, 배우는 리리런 이라는 분이 맡았다. 딱 보자마자 분명 최근에 본 적 있는 얼굴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최근에 본 대만 영화 [96분]에 나왔더라. 배역도 그렇고 당연히 배우의 실제 나이도 정이건이 훨씬 더 많을텐데, 옷차림을 비롯해 분위기는 어쩐지 이 사람이 더 나이가 많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정이건이 젊어보이고, 멋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그리고 응급수술을 담당했던 의사이자, 이 사건의 핵심 용의자인 궈따푸, 배우는 왕보지에(王柏傑)가 맡았다. 이 배우도 분명 본 얼굴이다 생각하면서 내가 대만 배우들을 이렇게 많이 알 리가 없을텐데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까 말한 최근에 본 영화 [96분]에 나왔고, 또 예전에 열심히 보았던 [화등초상]에도 나왔더라. 그리고 내가 봤던 옛날 영화들에도 조연으로 나왔다고 적혀있었다. 나름 아주 슬픈 사연의 주인공인데, 그만큼 드러나지는 못한 느낌이다. 인플루언서 패거리 중에 공격을 받고도 유일하게 구출된 요우쯔(별명, 이 배역 실명을 메모해두지 않았네)는 러우쥔슈어(婁峻碩)라는 배우가 맡았다. 그럭저럭 무난한 연기였다. 다음으로 주인공의 딸 첸유치에는 첸옌페이(陳姸霏)라는 배우가 맡았다. 처음에 학생으로 나올 때는 엄청 어린 배우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이나 오디션 보는 모습은 또 완전 어른의 얼굴이더라. 앞서 언급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 장면의 감정 연기가 참 좋았다. 그 다음으로 첸유치에의 친구이자 극 중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마녀 바바, 리팅언은 샹지에루(項婕如) 배우가 연기했다. 드디어 익숙한 배우가 한 명 나왔다. 예전에 글을 쓴 적이 있었던 [숨통을 조이는 사랑]의 주연이었다. 마치 인형처럼 귀여우면서도 정말 예쁜 얼굴이라 쉽게 잊을수 없는 배우이기도 하다. 저 [숨통을 조이는 사랑]이 남자 주인공 한 명에 여주인공 셋을 엮어 놓았는데, 그 이야기가 별로 매끄럽게 전환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 부분은 이전에 쓴 글에 자세히 다뤘었다. 이 배우는 그 첫부분에서 남자 주인공이 정말 순수하게 빠져드는 사람을 맡아 청순하면서도 무서운 매력을 보여줬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가면을 쓰고 나오는 장면이 많아서 이 예쁜 얼굴을 계속 가면으로 가려두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상으로 마녀 바바라는 캐릭터가 가진 비중이 엄청 큰 것에 반해 상대적으로 이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은 많지 않다. 아니 얼굴이 나오는 장면이 많지 않다. 그래도 저 첸옌페이 배우와 둘이서 정말 친한 친구가 되는 과정 등 장면들은 다 좋았다. 다음으로 초반에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맛있다고 소문난 케이크를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예핀쉬안이란 배역은 청위시(程予希) 배우가 맡았다. 이 배우는 [태양을 보지 않았다면] 이란 대만 드라마에서 비중있는 조연을 맡았었다. 이 드라마는 그 유명한 [상견니] 제작진이 만들었다고 화제가 되었다고 들었다. 이 드라마에 대한 글도 조만간 쓰려고 생각 중이다. 배역 특성상 처음 등장할 때부터 마지막까지 늘 얼굴에 멍과 상처가 있는 상태로 나온다. 그래서였는지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나중에 배우 정보를 찾아보고 이 배역이 이 사람이었어? 라고 조금 놀랐고 다시 등장했던 장면을 찾아보니 이 사람이 맞았다. 사실 이 배역 자체가 초반에 관객을 속이기 위해 존재하는, 실제 이야기 진행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역할이라 비중이 작다. 이외에도 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은데, 다들 딱히 언급할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비중이 적어서 그냥 넘어가야겠다.

아! 우리나라로 치면 우정출연이나 특별출연 같은 개념으로 출연한 주인공의 아내이자 첸유치에의 엄마 샤오후이 배역만 마지막으로 살펴보자. 린신루(林心如) 배우가 맡았다. 나는 잘 모르지만 대만에서는 엄청 유명한 배우라고 하더라.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유명한 건 바로 [화등초상]의 로즈 마마, 뤄위눙 역이었다. 이 드라마는 정말 관객을 빠져들게 만드는 걸작인데, 특히 이 로즈 마마의 매력이 어마어마했다. 그 다음으로 본 작품은 미미여사로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모방범]을 드라마로 만든 [카피캣 킬러]에서 야망을 드러내는 방송국 간부를 맡았었다. 이 드라마도 나중에 소설 원작과 비교해 글을 써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 중이다. 또 [희생자 게임]이란 드라마에서도 이 배우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자폐 증상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감식반 형사가 자신의 딸과 얽힌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펼치는 모험을 그린 드라마로 첫번째 시즌은 엄청 독특하고 흥미로웠는데, 두번째 시즌은 첫시즌의 완성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린신루는 첫시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었다. 음, 글을 쓰면서 보니 내가 생각보다 대만 드라마를 꽤 보긴 했구나 싶다.

정말 마지막으로 제목 이야기만 하고 마치자. 원제는 [百萬人推理] 로 백만명의 추리 로 옮길 수 있겠다. 이 백만명이 인플루언서 를 팔로우하는 백만명의 팔로워를 나타내는 것이니 우리나라 제목도 정확하다. 영어 제목은 [Million-Follower Detective] 로 팔로워를 탐정이라는 명사로 받았다. 문제는 이거다. 원제의 추리와 우리 제목의 추리 중이라는 부분, 그리고 디텍티브 라는 단어. 이 드라마에서는 팔로워들 다시 말하면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일반인들이 추리를 하지는 않는다. 추리는 주인공과 사이버 수사대 신참 형사 그리고 납치 당했다가 유일하게 구출된 인플루언서만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제목을 정한 이유는 뭘까? 아무것도 모르고 빠르게 유포되는 거짓 정보와 가짜 뉴스에 현혹되어 악플만 달아대는 수많은 사람들을 빗대어 비판하려는 의도일까? 사실 사회에서 겉으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물론 아닐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유독 온라인 공간, 특히 SNS 에서는 뇌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이 시대를 나타내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이 드라마에서는 이 평범한 일반인들이 온라인에서 거짓 정보 때문에 휩쓸려서 해당 인물에 대한 온갖 개인정보들을 까발리는 짓, 흔히 말하는 신상털이를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예전에 넷티즌 수사대가 신상을 털었다는 표현을 본 적이 있었다. 이 얼마나 우습고도 무서운 일인가! 제목만 보고 긍정적인 의미로 집단 지성의 힘으로 연쇄살인을 해결하는 내용인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인 셈이다.

글을 써야지 생각하고 있는 책, 영화, 드라마 이야기가 제법 쌓여있다. 연휴에 부산에 안 가기로 해서 시간도 많으니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써볼까? 아, 일정이 있는 날도 있으니 매일은 어렵겠구나. 그럼 이틀에 하나씩이라도 써봐야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특히 서재 이웃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추신. 글을 다 쓰고 나서 갑자기 생각난 건데 중간에 새로 태어날 아기 이름을 짓는 부분에서 언급된 어떤 이름이 엄청 익숙했는데 얼른 생각이 나지는 않았다. 바로 의사인 궈따푸와 만삭인 그의 아내가 딸 이름을 고민하는 장면이다. 아내가 궈메이메이, 궈롄리, 궈징징, 궈펀룽, 궈비첸 이렇게 핸드폰으로 들여다보며 좋은 이름을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운전하던 궈따푸가 아내에게 궈쉐푸 하고 말한다. 그러자 아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나무라듯 말하고, 그러자 그가 진지하다고 받아치는 장면이다. 분명 들어본 이름이라는 생각과 함께 왜 아내가 진지하게 하라고, 즉 장난치지 말라는 뜻으로 말했는지 궁금해졌다. 너무 유명한 연예인 이름이라서? 아님 뭔가 꺼려질만한 이유가 있어서일까? 뜻이나 발음에 놀림 당할만한 뉘앙스가 있을까? 암튼 나중에 찾아보니 궈쉐푸(우리식 발음은 곽설부)는 대만의 가수이자 배우이자 모델 이름이었다. 아마 아이돌 그룹 출신인 듯했다. 그리고 아까 언급했던 드라마 [화등초상]에도 출연했었다. 이렇게 곧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고민하는 장면을 보니, 내가 우리 아이들 이름을 짓기 위해 엄청 많이 찾아보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며칠을 밤을 새며 작명법 책을 찾아보고, 옥편을 뒤지기도 했었다. 나는 혹시 이 드라마에 아주 잠깐이라도 이 궈쉐푸 라는 배우가 나왔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더 찾아봤는데, 내가 여러 경로로 검색해봐도 나오지는 않았다. 왜 그 이름을 듣고 진지하게 생각하라고 뭐라고 했을까?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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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15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이건 하니 바로 <풍운>이 떠올랐어요. 대만만화 특유의 그림체로 그려진 <풍운>이나 <사조영웅전> 등의 만화도 생각나네요. <풍운>에서 정이건과 함께 한 곽부성은 그래도 꽤 많은 영화에서 늙어가는 모습을 접했었는데 정이건은 처음인 듯 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공통점

새벽에 악몽에 시달리다가 잠에서 깼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물을 마신 후에 눈을 감고 악몽을 음미했다. 지금까지 내가 자주 꾸었던 악몽은 반복되는 어떤 패턴이 있었는데, 이번 악몽은 낯설었다. 가장 낯선 점은 음식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가 깼다는 점이었다. 언젠가부터 먹방이라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처음엔 소수의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먹는 모습을 중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점점 더 유명해져서 공중파 방송에도 진출했다. 먹방이라는 개념이 대유행하며 세계적으로도 퍼져서 이 단어 ‘먹방‘이 옥스포드 사전에 등재되었다는 뉴스를 봤었다. 나는 이 먹방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남이 먹는 장면을 왜 굳이 보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면 이야기의 흐름 상 필요하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성향과 기호를 보여주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먹는 장면을 부각해 화면에 담는 것은 불편하다. 인간의 가장 큰 욕구를 식욕과 성욕 그리고 수면욕이라고 본다면, 타인이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는 것은 마치 타인의 성행위를 보는 포르노그래피를 보는 것 같다.

오래전에 보았던 김지운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이 멋진 수트를 입고 아주 달달한 케익을 먹는 장면을 아주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제목 때문에 그리고 이병헌이 연기한 인물의 성향을 드러내기 위한 장면일텐데, 나에게는 이 모습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미지로 받아들여져서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다. 일단 나는 어려서부터 단 맛을 좋아하지 않는 독특한 아이였다. 어른이 되어서 단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은 가끔 보았지만, 어려서부터 그랬다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달디 단 케익을 먹는 행위는 마치 고문처럼 느껴진다. 혀 끝으로 느껴질 그 아릿한 단 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끔찍한 기분이 든다. 그걸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여성이 즐기는 것도 아니고 젊은 남성이 음미하듯 즐기는 장면은 충격이었다. 이병헌이란 배우는 이후로도 다양한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여줬다. 그 중에서 [내부자들]에서 라면과 함께 소주를 먹는 장면이 또 인상적이었다. 극중 이병헌이 연기한 인물은 오른손 손목을 잘린 전직 깡패 두목이었다. 왼손만으로 어설프게 젓가락을 쥐고 라면을 후후 불어먹다가 너무 뜨거워서 입에 넣었던 면발을 뱉어내고 소주를 입 안에 털어넣고 입안을 헹구듯이 가글하는 모습은 라면과 소주를 둘 다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잊기 어려운 장면이다. 영화에서 뭔가를 먹는 장면을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하정우와 브래드 피트일 것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러 이유로 꼭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음식을 먹는 장면을 좋아하지 않아도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먹는 장면들이 PPL 때문에 나온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를 좋아했지만, 특정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때문에 중간에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여러차례 했었다. 뭐 예를 찾으라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내가 새벽에 깬 후로 이 악몽이 낯설고도 기이하다고 여긴 것은 마직막에 깨기 직전 상황이 내가 마치 먹방을 연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자꾸 접하다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듯, 이젠 영상물에서 먹는 장면이 직접 나와도 예전처럼 막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게 되었다. 예능이라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몸을 움직이는 운동과 관련한 것이라면 좋아한다. [무쇠 소녀단]을 좋아했고, 지금 [야구 여왕]을 좋아하고, [피지컬100]과 [강철 부대] 같은 서바이벌 시리즈들을 좋아한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PPL로 먹는 장면들이 나온다. 출연자들이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흐름상 꼭 필요한 내용을 주고 받기도 할텐데 나는 이들이 육체적으로 한계를 넘어서는 미션을 마치고 반드시 등장하는 이 먹방 장면들을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빠르게 보기를 하거나 그냥 건너뛰어 넘겨버리고 싶지만, 어쩔수 없이 꾹 참고 보기도 한다. 뭐든 익숙해지면 또 그냥 넘어갈수도 있는 법이다.

새벽에 가만히 누워 악몽을 다시 떠올리다가 어렵게 다시 잠들었는데, 얼마 자지도 못하고 다시 깨고 말았다. 이번에도 악몽이었다. 이번에는 익숙한, 자주 반복되는 여러 패턴 중 하나였다. 다시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아서 그냥 폰을 집어들었다. 북플에서 지난 오늘 쓴 글을 찾으니 두 개가 있었다. 13년과 14년이었던가 그랬다. 하나는 13년이 확실한 것 같은데, 다른 하나는 확실하지 않다. 암튼 13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점이었다. 길어도 이삼년 내외였을 것이다. 이 두 글을 읽어보니 둘 다 운전에 대한 글이었다. 당시에 내가 운전에 대한 글을 제법 썼던 기억이 난다. 당시 일했던 출판사의 사장은 젊은 시절 사진 기자로 자동차 잡지에서 일을 했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회에 취재를 나가기도 했고, 슈퍼카로 알려진 차들을 취재하며 직접 타봤던 경험들을 자랑하기도 했었다. 그 사장이랑 밥과 술을 먹으며 자연스레 차와 운전 이야기를 많이 했었고, 또 내가 영업을 다니기 위해 회사 차를 몰고 다녀야 했으므로 당시엔 일상적으로 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때였다.

첫번째 글을 눈길 운전에 대한 글이었고, 두번째 글을 빗길 운전에 대한 글이었다. 두번째 글은 설 연휴 직후에 썼던데, 그해에는 부산에서 부모님이 서울로 오셔서 명절을 보냈었다. 매번 명절마다 열차표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에 가까울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일이었다. 그 스트레스가 엄청 컸다. 틈만 나면 앱으로 접속해서 대기 표가 생겼는지 찾아봐야 했다. 그러다가 결국 부모님께서 서울로 오셔서 제사를 지내자고 제안을 주셨다. 부산행 표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서울행 표는 넘쳐났으니까. 그리고 그 해에는 동생 가족들이 동생의 시댁 어른집에 들렀다가 서울로 왔다. 당연히 나를 보러 온 것은 아니고 부모님께서 서울에 계셨으니 서울로 온 것이다. 당시 우리 집은 달동네라고 부를만한 언덕에 있었다. 그 직전까지 좁은 집에 살다가 그래도 조금은 크기가 있는 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되지 않았었다. 그래도 어른 6명과 아이들 5명이 머물기는 엄청 좁았을 것이다. 그 대가족이 좁은 집에 갇혀 있는 건 답답했을테니 어딘가로 놀러갔다 오는데 그날따라 폭우가 와서 빗길 운전을 했고 매제가 운전하던 차가 사고가 났다는 내용이었다.

두번째 글에서 나는 사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매제의 차가 작은 사고를 겪었는데, 첫번째 글에서도 사고가 날 뻔한 이야기였다. 그날의 상황은 지금도 매 순간들이 기억이 난다. 아마 평생 잊지못할 것이다. 눈길 운전 경험이 별로 없는 내 입장에서는 평생 이 정도로 아찔한 공포를 느낀 적이 없었으니. 당시 이 글에 여러 이웃님들이 댓글로 적어주셨듯이 혹시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닌가 하는 심정으로 손에 땀을 쥐고 읽어야 할 글이었다. 인기도 없고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 내 서재 글 치고는 이례적으로 댓글이 많이 달린 이유도 아마 글에서 느낄 수있는 긴박감 때문이었으리라. 그 글을 지금 다시 읽는 나도,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도 글을 읽으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이후로 정말 어지간히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눈길 운전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의미 부여

최근에 서재 이웃 꼬마요정 님께서 일기장에 이름을 붙였었다는 글을 읽고 나도 오래 전에 일기장에도 이름을 붙이고, 여러 공책들에 이름을 붙었던 기억이 나서 댓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는 그렇게 공책에 내가 좋아하는 어떤 인물의 이름을 붙여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해당 수업 시간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일기도 그랬다. 누가 시켜서 쓰는 건 아니었고, 그저 내 삶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썼는데, 일기를 쓰는 일은 좀 낯간지럽고 쑥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일기장에 이름을 붙이고 그 특정 인물에게 수다를 떨듯이 이야기를 쓰니까 일기 쓰기가 한결 편해졌다. 그 이름들은 그때까지 읽어왔던 문학 작품 속 여주인공들의 이름에서 따왔다. 학창시절에 우리 집엔 책이 별로 없었다. 학교에는 제대로 된 도서관도 없었다. 학교에서는 주로 학급문고를 읽었고, 집에서는 이웃 친구들에게 소년소녀 문학전집을 빌려 읽었다. 우리 집은 정말 가난했지만, 다행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후배들은 그래도 우리 집보다는 상황이 나아서 집집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문학전집들을 갖고 있었다.

한참 나중에 시간이 흘러 도서대여점이 동네마다 생겨 훨씬 더 다양한 책들을 빌려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정말 너무너무 기뻤다. 그 시절의 내 꿈은 작은 시골 동네의 도서대여점 주인이었다. 시골이면 책을 빌려가는 사람이 적을테니, 내가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도서대여점이 생기기 전에는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었다. 참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서점에 들여놓고 진열해놓은 책들은 거의 대부분 위탁 판매 상품으로 그 책들은 그 서점이 재산이 아니다. 서점은 위탁으로 들여놓은 도서를 일정 기간동안 갖고 있다가, 책이 팔리면 판매가에서 상호 합의한 공급률에 맞춰 정산을 하고, 만약 책이 오랫동안 안 팔리면 서로 합의한대로 출판사로 반품해버린다. 순진하게도 서점에 그 많은 책들이 다 서점 주인의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내가 참 어리석게 느껴진다. 대여점은 위탁은 아니고 구매한 것이 맞을 것이다. 내가 출판사에 일할 무렵에는 이미 도서대여점이란 개념이 거의 사라진 후여서 직접 거래를 해볼 기회는 없었는데, 아마 대여점들도 소매서점에서 정가로 책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매서점에서 일정한 공급률로 구매했을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서점도 대여점도 사장이 하루종일 책을 읽고 있을만큼 한가하지 않다. 서점이라면 정말 일이 많고, 대여점은 상대적으로 일이 적겠지만, 결코 맘 편하게 책만 읽고 있을 직업은 아니었던 것이다.

암튼 나중에 깨달았던 것인데, 어린시절부터 학창시절까지 내가 읽었던 그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이 대부분 제대로 된 문학작품이 아니었고, 축약본이었다. 이걸 깨달았을 때 느꼈던 허무함과 배신감 그리고 절망감은 꽤 컸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바보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다 읽었던 것처럼 잘난 척하며 다녔던 것이다.

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좀 복잡한 문제 하나에 엮여있다. 이제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을 밟아가는 과정은 여전히 지난하고 힘들기만 하다. 작년 가을부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자주 회의도 하고 그걸 단체대화방에서 이어서 생각을 펼치거나 연결하거나 하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작년 12월 중순, 우리 회의 기록을 담은 구글문서의 공개 설정 때문에 단체대화방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회의 기록 중에 외부로 유출이 되면 곤란한 대외비 성격의 내용이 있었는데, 기록을 담은 문서는 링크를 받은 사람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공개문서였기 때문이었다. 이걸 대외비로 하기 위해 회의 참여자들의 이메일을 수집해서 열람 범위를 지정하기로 했다. 이 명쾌하고 간단한 결론에 이르기까지도 좀 소모적이고 지난한 토론이 있었다.

온라인 대화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오해를 불러오고, 얼마나 쉽게 감정을 상하게 만드는지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나는 정말 가능하면 만나서 대화하거나, 정 안 되면 전화를 거는 편이지, 온라인으로 논쟁을 하지 않는다. 그 대화방에서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한 분과 좀 넓게 생각하면서 좀 쉬운 방향을 제시하는 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건으로 길게 논쟁을 벌리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 괴로웠다. 그 와중에 이메일 주소를 서로 공유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 자신의 이메일 주소에 적힌 숫자가 자신의 생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메일 주소만 보고 자꾸 특정 연도에 태어난 것으로 오해한다는 말을 꺼냈다. 아마 그 사람도 이 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모적인 논쟁 때문에 약간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생각에서 꺼냈을 것이다. 거기까지 읽은 내가 그 다음을 바톤을 받았다. 내가 주로 쓰는 이메일도 나름 많은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이 메일 주소를 사용했던 초기부터 메일 주소를 전달받은 상대방들이 그 뜻을 파악하고 딱 내가 원했던 반응을 하곤 했다. 영어 단어는 그랬는데, 그 뒤에 숫자는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숫자는 오래전부터 가장 좋아했던 야구선수의 등번호를 가져온 것이므로. 야구선수에게 등번호는 그 선수를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상징이다. 야구에는 영구결번이라는 개념이 있고, 그 대상은 야구사에 길이 남는 큰 영광을 받는 것이다. 맨처음 이메일 주소를 정할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거의 항상 숫자를 붙일 때마다 이 선수의 등번호 숫자를 가져왔다.

이쯤되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과연 이메일 주소가 뭐길래 이렇게 장황하게 떠드나 싶은 생각이 드시겠지. 이메일의 영어는 깨어나다는 뜻의 단어로 항상 깨어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아주 오래전에 만든 것이다. 그리고 숫자는 17이다. 바로 롯데자이언츠 김응국 선수의 등번호이다. 그랬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최동원도 아니고, 김용희도 아니고, 김용철도 아니었다. 92년 롯데의 마지막 우승 때 주요 멤버였던 윤학길, 박동희, 염종석, 박정태, 전준호 등의 선수들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김응국 선수를 가장 좋아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야구를 했기 때문이다. 일단 흔히 말하는 호타준족 스타일이다. 타격이 좋고 발이 빠르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호타준족이 이종범과 전준호이다. 김응국 선수를 보다 잘 설명하려면 팀에서 전준호와 박정태의 장점을 다 가진 선수라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보면 장점이 그 두 선수만큼 못 미친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원래 투수로 입단했다가 투수로 등판한 경기에서 타석에 나서서 홈런을 친 이후 타자로 전향했다. 빠른 발과 타격감이 좋았기 때문에 딱 선두타자, 1번 타순이 적합했지만, 전준호 선수가 등장한 이후로는 1번을 전준호에게 넘겨주고 3번이나 5번 타순에 섰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롯데에는 4번은 김민호가 거의 고정이었고, 박정태가 3번 혹은 5번 고정이었다. 클린업 트리오라 불리는 3, 4, 5번 타순에는 클러치 히터라는 장타력이 좋은 선수가 필요했고, 박정태 선수는 전형적인 클러치 히터라고 말할 정도로 찬스에 강한 모습을 보였다. 발이 빠르기는 하지만, 전준호에는 못 미치고, 장타력이 괜찮고 찬스에 강하지만 박정태에는 못 미치는 선수였다. 반대로 장타력이 좋은 박정태보다 발이 더 빨라서 활용도가 좋고, 발이 빠른 전준호보다 타격감이 더 좋은 선수였다. 다 필요없고 쳤다하면 대부분 2루타였고, 가장 치기 어려운 3루타도 많았다. 사이클링 히트도 기록했고 흔히 그라운드 홈런이라고 부르는 인사이드 파크 홈런도 여러 개 기록했다. 홈런도 소총부대로 불리는 롯데에서 제법 때렸고, 타율은 거의 매해 3할 이상을 기록했다. 도루도 매해 20개 이상을 기록했다. 작년 롯데 선수들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윤나고황손 이 다 덤벼도 못 당할 수준이다. 물론 재작년에 비하면 작년에 이들이 모두 부진했고, 결국 올해 연봉이 다 깎였다는 소식도 접했었다.

야구 얘기를 했으니 마무리는 롯데 이야기로 가자. 최근까지 스프링캠프 소식이 들리고 이제 곧 시범경기도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부상으로 스프링 캠프에 합류 못한 마무리 김원중과 필승조 최준용 때문에 초반 투수 운용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거기다 난데없이 사생활 논란이 터진 정철원까지. 재작년에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던 나균안이 형편없는 경기력과 매너 때문에 조기에 시즌아웃 되었던 걸 떠올리면 매우 심각한 전력 손실일 수 밖에 없다. 과연 김원중과 최준용이 부상을 잘 이겨내고 복귀할 것인가? 정철원은 사생활 논란과 관계없이 예전과 같은 기량을 보여줄 것인가? 올해 또다른 이슈는 한동희의 복귀로 인해 손호영이 외야로 옮겨간다는 소식이다. 손호영은 내야에서는 유격수를 빼고 모두 맡을 수 있는 귀중한 멀티 능력자인데 주로 3루를 맡았었다. 배테랑 김민성과 함께 3루수로서 확실히 자리를 잡았는데, 타격이 좋은 한동희가 복귀하면서 자리를 뺏긴 것이다. 과연 손호영은 외야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이미 외야는 빈 자리가 없는데 손호영을 어떻게 쓸 것인가? 그리고 롯데 팬으로서 가장 바라는 점은 당연히 윤고나황손의 부활이다. 윤동희, 고승민, 나승엽, 황성빈, 손호영이 모두 다시 살아나면 롯데가 못이기고 싶어도 이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해 외국인 투수와 아시아쿼터도 기대가 되기는 하는데, 작년에 워낙 크게 한 번 데여서 이 부분은 일단 뚜껑을 열어보기까지 말을 아끼겠다. 아, 진짜 마지막으로 거액을 주고 유강남을 데려왔음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많은 포수 자리가 올해는 확실히 안정되기를 바란다. 김태형 감독 본인이 포수 출신이라 포수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포수가 야구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이기도 하다.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심리적으도 그렇다. 아다치 미츠루의 [H2]에서 노다 아츠시가 자주 하는 말인 ˝안경 낀 포수는 조심해야 한다.˝ 는 말은 그만큼 포수가 사전에 공부를 많이 해야하고 심리전에 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강남, 정보근 두 명 체제에서 손성빈이 확실하게 치고 올라와 3명이 경쟁하며 시너지를 일으키면 좋겠다. 손성빈이 확실하게 자기 몫을 가져가면 한 경기에 3성빈이 동시에 선발출전하는 날이 그리 드물지 않을 수도 있겠다.

사진은 롯데자이언츠 공식 인스타계정에서 가져온 것인데 흰 바탕 선수들이 교체 투입되면서 3명의 성빈이 동시에 그라운드에 나섰고, 또 황성빈, 장두성, 김동혁이라는 발빠른 선수 세 명이 또 동시에 외야를 맡은 아주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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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06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먹방은 낭비라는 관점 하나만 보더라도 참 어리석은 행태라고 생각해요. 그 어리석음을 표현하는 단어가 옥스포드 사전에 등재된 것에 기뻐하는 방송도 좀 이상하고요.

감은빛 2026-02-10 06:21   좋아요 0 | URL
뉴스에서 엄청 기쁜 소식인 것처럼 보도하더라구요. 먹방이 세계화되는 현상이 오히려 욕 먹을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부끄러웠습니다.
 

영화 [먼 훗날 우리]와 노래 [後來]


영화는 2007년 섣달 그믐, 그러니까 음력 12월 31일에 춘절을 맞아 고향으로 가기 위해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바삐 떠나는 수많은 인파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기차역이었다. 이어서 보여주는 열차 안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어디선가 목이 쉬도록 울고 있는 아기, 크고 작은 목소리로 저마다 떠들어 대는 사람들. 짐을 선반에 올리거나 반대 방향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이 계속 비좁은 통로를 막아서기 때문에 쉽게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카메라의 움직임이 답답하다. 남녀노소 저마다 각자의 사정을 짊어지고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 열차 안에서 두 주인공 팡샤오샤오와 린젠칭이 만난다. 둘은 공교롭게도 같은 고향 사람이고, 베이징에서 불안한 청춘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도 같다. 우연한 만남 덕분에 두 사람은 친한 친구가 되고, 나중에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류뤄잉 감독의 이 영화를 알게 된 것은 알라딘 서재 이웃 잉크냄새 님 덕분이었다. 최근에 또 잉크냄새님이 중국 노래들을 추천해주셔서 그 노래들을 알아본 내용을 글을 하나 썼는데, 작년 3월에 내가 펑티모와 완쯔요의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듣고 있다는 이야기를 쓴 글에도 잉크냄새님이 다섯 곡의 중국 노래를 추천하는 댓글을 달아주셨었다. 그 중 한 곡이 바로 류뤄잉의 호우라이 [後來] 였다. 이 노래의 가사를 찾아보고 정보를 찾아보다가 알게 된 영화가 바로 이 가수가 만든 영화 호우라이 더 워먼 [後來的我們] 이었다. 류뤄잉의 목소리가 워낙 좋았고, 이 노래가 참 좋았기 때문에 이 영화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 언젠가 꼭 봐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 언젠가가 거의 일 년이 지난 후가 되리라고는 그때는 생각하지 못 했었다.


노래의 제목은 (잉크냄새님께서 처음 이 노래를 알려주실 때 적어주신 것처럼) "나중에야" 라고 옮길수 있을텐데, 이 영화의 "먼 훗날 우리" 라는 우리말 제목은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든다. 두 주인공이 2007년에 처음 만나 2008년에 연인이 되는데, 그 10년 후인 2018년이 과연 먼 훗날 후라고 말할 정도로 먼 훗날인가? 겨우 10년이? 아니 누군가에게는 10년 씩이나 지났으면 먼 훗날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시간에 대한 판단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테니. 적어도 내 기준에서 10년 후는 그리 먼 미래가 아닌 느낌이다. 그래서 이 제목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최근에 개봉한 우리나라 리메이크 작인 [만약에 우리] 라는 제목이 훨씬 잘 지은 제목으로 느껴진다. 두 주인공이 현재 시점의 마지막 장면 즈음에서 직접 대사로 말하는 그 만약에 라는 전제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기 전에 극장에서 저 우리나라 영화도 보고 나서 글을 써야할까 하는 생각을 한동안 했다. 하지만 이 영화 하나로도 쓸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굳이 저 영화까지 보고 엮어서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Us and them] 이다. 이 제목도 [먼 훗날 우리] 보다는 훨씬 더 좋은 제목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와 그때의 그들은 같은 사람이지만, 시점이 다르므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때의 그 사랑은 지금 다시 이어질 수 없다. 아무리 만약에 라는 조건을 붙여보고 상상을 해봐도 소용없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면 자막으로 류뤄잉의 단편소설 [춘절 귀가] 라는 작품이 이 영화의 원작이라고 알려준다. 이 영화의 제목만 보고 나는 이 노래 [나중에야] 가 이 영화 [먼 훗날 우리] 의 모티브가 되는 원작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는 비슷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가사를 번역본으로 찾아보니 이야기 자체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해당 단편 소설을 구해 읽을 방법이 없어서 원작과 영화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를 비교할 방법이 없다. 다만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두 시점, 2007년 춘절과 2018년 춘절이 모두 음력 설인 1월 1일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서로 친구로 연인으로 지내는 몇 년 동안 계속 춘절을 맞아 같이 고향에 다녀오는 장면들이 나온다. 여기서 하나 짚어보고 싶은 것은 있다. 영화에서 아라비아 숫자와 한자로 작중 시점을 표기한 이 자막에서 연도가 정확하게 어떻게 표현한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는 2007년의 섣달 그믐에 시작한다. 그 다음 날인 춘절에 샤오샤오는 고향에서 젠칭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식당을 자주 찾는 단골들(아마도 이웃들)과 함께 명절 음식을 나눠 먹는다. 그럼 이 2007년이란 숫자가 음력인지 양력인지 하는 점이 헷갈렸다. 만약 음력이라면, 두 사람이 열차에서 처음 만난 날은 음력으로 2007년의 마지막 날이고, 고향에서 밥을 함께 먹은 날은 음력 2008년의 첫 날이 된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한참 알고 지낸 지 약 1년이 지나서 영화의 이야기가 조금 진행 된 후에 자막으로 2008년의 양력 설이라고 알려준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이 부분 때문에 헷갈려서 영화를 멈춰놓고 한참을 고민했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춘절과 섣달 그믐은 모두 음력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날짜들이지만, 해당 연도는 모두 양력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은 양력 2007년 2월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고, 다음날인 춘절도 여전히 양력 2007년이었다. 약 1년이 지나 다시 자막이 나온 시점은 이제 양력 2007년이 지나고 양력 2008년의 첫 날이었던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이 왜 헷갈렸는가 하면, 내 기준에서 새해는 음력 설이 기준이고, 나에게는 아직 음력 2025년이라서 새해가 오지 않은 것이다. 음력 설이 되어야 비로소 2026년을 맞이한다고 생각한다. 즉 섣달 그믐이나 설이나 그 외에도 입춘 등 음력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날들을 말하려면 음력으로 해당 연도를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암튼 영화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쓸데없는 걸로 시간 낭비를 제법 했다.


류뤄잉이 쓴 [춘절 귀가]라는 단편소설을 읽지 못했고, 앞으로도 읽을 기회가 없을 확률이 매우 높지만, 대도시로 상경하여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는 청춘 남녀가 춘절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 알게 되고, 나중에는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의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나도 예전에 설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에서 만난 여성과의 짧은 이야기를 다룬 단편소설을 쓴 적이 있다. 서울에 올라온 초기에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가 어렵게 고속버스 표를 구해 탔는데, 하필 그날 밤에 폭설이 내려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어버렸고, 내가 탄 버스가 약 17시간만에 부산에 도착했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었다. 하필 그 날 내 옆자리엔 내 또래(즉 20대 중후분) 로 보이는 여성이 탔었다. 그 여성은 창가 자리였고, 나는 복도 쪽 자리였다. 좁디 좁은 버스 좌석에서 두터운 겨울 잠바를 벗어서 품에 안은 채로 구겨져 긴 시간을 가야 했던 그 시간은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는데, 하필 옆 사람이 여성이라 더 불편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신경이 더 쓰일 수 밖에 없었고, 아주 작은 움직임조차 약간 민감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는 스마트 폰도 아니어서 전화기로 뭔가 시간을 때울 것도 없었다. 아마 책을 가져오기는 했었지만, 조금 읽다가 집중이 되지 않아 그냥 가방에 넣어버렸었고, 손바닥만한 휴대용 씨디플레이어를 가져왔었지만, 아마 건전지가 다 닳아 버려서 중반 이후로는 음악도 듣지 못했었다. 깨어 있으면 심심하기도 하고, 자세도 불편하고, 배도 고프고 또 화장실 문제도 자꾸 생각이 나고 해서 무조건 계속 잠들어 있었으면 했었다. 그런데 그 옆자리의 여성은 주기적으로 남자친구로 여겨지는 남성의 전화를 받고 통화를 했고, 그 전화 소리 때문에 나는 번번히 잠에서 깨어 괴로워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여성의 전화 통화 때문에 잠에서 깬 후로 다시 잠들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이 여성은 금방 다시 잠이 들어버린 눈치였다. 바로 옆 자리이고, 좁았기 때문에 팔이나 어깨가 자꾸 닿기는 했지만, 버스가 출발한 후로 꽤 긴 시간동안 이 여성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었다. 여성이 깊이 잠들었다는 확신이 든 그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여성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다. 제법 예쁘장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묶어 올린 머리칼은 밝은 갈색으로 염색했고, 젊은 사람 답게 유행을 따라 세련되게 화장한 얼굴이라 여겼다. 그 순간 지금까지 긴 시간 하필이면 여성이 옆에 앉아서 불편하다고 생각해왔던 불쾌감이 사라졌다. 단순히 그 사람이 예쁘장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가 고향을 떠나 힘든 서울살이를 하는 나와 같은 청춘일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달리 할 일도 없으니 머리 속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가 부산 어느 동네 출신이고, 어느 여고를 나와서 서울의 어느 대학에 입학하고 어떤 친구들을 만나고, 부산에 남아 있는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고 이런 것들을 나 혼자 제멋대로 상상했던 것이다. 어차피 시간은 무진장 많았고, 나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 상상을 조금씩 바꿔가며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설 명절이 지나 시간 여유가 생겼을 때 그 상상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여 빈 공책에 삐뚤빼뚤 악필로 써내려 갔었다. 나중에 결혼하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부산을 가야 할 때에는 절대 고속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무조건 어떻게든 열차를 예매하려고 애썼고, 만약 열차 표를 구하지 못한 명절에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못 간다고 말씀드렸었다. 그 해 귀성길 버스 17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긴 기록이긴 했지만, 서울 살이 초기 몇 년 동안 추석과 설에 고향가는 버스를 탔던 시간들은 대체로 평균 10시간이 넘었다. 13시간, 11시간, 12시간 등의 기억들이 남아있다. 아이들이 자라서 아이들을 데리고 고속철도를 타고 가면서 이 17시간 이야기를 해줬을 때 아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라고 놀랐었다. 아이들은 고속철도로 이동하는 겨우 3시간 반 정도의 시간조차도 견디기 힘들어했다. 옛날에 아빠가 젊었을 때는 열차도 8시간 이상 걸렸었다고 이야기하면 열차를 어떻게 그렇게 오래 탈 수 있느냐는 반응이 돌아왔었다.


원작 단편소설의 내용을 유추해 보려다가 옆길로 잠시 샜다. 샌 김에 노래 이야기를 조금 이어서 하고 영화로 돌아가자. 작년 3월에 썼던 노래 이야기에도 있었던 내용인데, 이 곡은 일본 여성 듀오가 부른 미라이에 [未来へ] 라는 노래를 중국어로 리메이크 한 것이다. 원곡인 일본 노래는 졸업식에 잘 어울리는 미래를 향한 희망을 담은 내용이지만, 이 노래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이 담긴 조금 쓸쓸한 내용이다. 이 노래의 주인공, 아마도 여성으로 추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열일곱 살의 여름, 어느 밤에 사랑하는 혹은 동경하는 사람과의 키스를 했다. 그 후 그와는 인연이 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후로 긴 시간 그날 밤의 별빛이, 그 날의 치자꽃 흰 꽃잎이 계속 생각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그 때 내가 그렇게 고집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인가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이 영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저우동위 周冬雨 가 연기한 샤오샤오와 징보란 井柏然 이 연기한 젠칭은 젊은 시절 객지에서 열악한 환경과 가난과 실업의 늪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간다. 그 치열한 삶의 동지로 친해진 두 사람은 어쩌다 좁은 방에서 함께 살게 된다. 이 지점이 좀 비현실적으로 아니 너무 극적인 요소로 느껴진다. 당시의 중국 젊은이들의 삶의 문화와 양식이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상식적으로 순수한 친구인 이성이 한 사람이 살기에도 좁은 방에 함께 산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리 없다고 본다. 물론 샤오샤오가 하루 아침에 남자친구 집에서 쫓겨나 당장 갈 곳이 없다는 아주 절박한 설정을 인정하더라도 그렇다. 암튼 두 사람은 긴 시간을 함께 친구로 살았는데, 어느 날 술을 마시다가 눈이 맞아 버렸다. 사실 젠칭은 초반부터 확실히 샤오샤오에게 친구 이상으로서의 감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샤오샤오도 역시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지만, 젠칭에게 이성으로 끌리고 있다는 언행이 보인다. 다만, 현실적인 이유들이 그 두 사람이 서로 용기를 내거나,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크고 작은 위기를 겪으면서 점점 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워간다. 그리고 젠칭의 아버지는 샤오샤오가 자기 아들의 짝으로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으로 가족처럼 대한다.


이 영화는 앞서 언급한 두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2007년에 시작하는 과거의 이야기는 컬러 화면으로 아주 예쁘게 그려진다. 2018년에 시작하는 현재 시점의 이야기는 흑백 화면으로 아주 차갑고 딱딱한 느낌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 우리 사랑 이야기는 비록 좀 찌질하고, 비참하고, 힘들고, 부끄러울지 몰라도 그래도 아름다웠어. 마치 감독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 지금은 그저 차분하게 혹은 다소 냉정하고 현실적인 태도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 2018년 4월 말, 노동절 휴무를 앞두고 개봉했다. 영화 속의 현재는 2018년 춘절 연휴다. 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아마도 여러 마케팅 기획들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유튜브로 [나중에야] 노래를 찾아 듣다가 2018년 영화 개봉 시기에 맞춰 올린 것으로 보이는 영상들을 몇 개 발견했다. 바로 이 노래를 일반인들 그리고 콘서트의 관중들이 떼창과 이어부르기로 부르는 영상들이었다. 작년 3월에 썼던 글에서 이 가수 류뤄잉이 콘서트에서 이 곡을 시작할 때 "산, 얼, 이" 라고 숫자를 세면 관중들이 "호우라이~" 라고 노래를 시작한다는 내용을 썼었다. 이 가수는 콘서트 장에서 자주 이렇게 이 노래를 시작했던 모양이고, 이것이 하나의 룰이 되었던 것 같다. 이번에 본 영상도 류뤄잉이 숫자를 세는 목소리로 시작해 관중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콘서트 영상에서는 금방 가수가 이어서 불렀지만, 이 이벤트 영상에서는 끝까지 가수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음정, 박자, 음색이 제각각인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노래를 이어서 부르는데, 제법 괜찮게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체로 이걸 들어주고 있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음치이거나 박치인 것 같은 사람이 더 많은 느낌이다. 그러다 다시 콘서트 장의 관중들이 떼창을 부르는 장면으로 넘어가며, 여러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들을 담는다. 이 노래가 지나간 과거 어느 시점의 소중했던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만드는 노래이기에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좀 신기하기는 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며 나오는 작은 화면에 제작진 그리고 일반인들로 보이는 여러 사람들이 흰 종이에 과거 어느 인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써서 말하는 장면들이 이어지는 장면을 보며 이 바이럴 마케팅이 제법 잘 먹혀들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당장 나도 과거 어느 인연을 꼭 떠올리며 뭐라고 한 마디를 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노래나 영화나 옛 사랑 이야기를 다룬 걸 듣고 보면 나도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 영화는 특히 베이징에 올라온 가난한 젊은 남녀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어서 부산에서 서울로 처음 올라와 고시원에 살았던 시절의 내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또 영화에서 어느 밤 둘이 버스 막차를 기다리다가 젠칭이 택시를 타자고 하는데, 샤오샤오가 택시비가 밥 두 끼 가격이라고 좀 더 기다리자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 결혼식을 앞두고 내 대학 선배 한 명에게 애들 엄마를 소개한다고 서울 남동쪽의 어느 동네에서 만나 밥과 술을 먹었던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려고 보니 버스도 전철도 끊긴 상황이었다. 당시의 우리도 가난한 젊은 연인이었고, 심야 할증이 붙은 택시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하지만 서울 서북쪽 끝에 있는 우리집까지 절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어떻게 겨우 종로 쪽으로 가는 심야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와서, 종로에서 집으로 택시를 탔는데, 사실 그 택시비도 만만치 않았게 나왔었다. 그때 애들 엄마가 내 대학선배를 원망하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본인이 우릴 재워줄 것도 아니고, 택시비를 내줄 것도 아니면, 이렇게 늦게 붙잡고 있지 말았어야 했다고. 막차 시간 이전에 보내줬어야 했다고. 선배라는 사람이 후배를 챙길 줄 모른다고. 만약 자신이 선배로서 결혼을 앞둔 후배를 만났다면, 그렇게 했을 거라고. 사실 내가 보아온 애들 엄마는 실제로 자신의 친구들과 후배들을 그렇게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 당시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애들 엄마의 수많은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을 만났지만, 내 지인들은 서울에 거의 없었기에 애들 엄마를 소개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날 만났던 선배도 대학시절엔 제법 친했지만, 그가 졸업한 후에는 그리 자주 만나지 못했다가 우연히 연락이 닿아 결혼 소식을 전하며 만났던 것이다. 그가 내 결혼식에 왔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고, 그 이후로 따로 만난 적은 아예 없고, 수도권에 사는 선후배 모임에서 몇 차례 더 봤을 거라는 생각만 든다. 그러다 내가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던 어느 시점 이후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 이 영화의 존재를 알았던 때가 작년 3월이라고 썼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올해 1월 말에 봤다. 아마 조금 더 미뤘다가 다음 주 정도에 보았다면, 시기적으로 딱 적절한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암튼 눈이 내리는 겨울에 그것도 음력으로 해가 바뀌는 설 즈음에 보기에 딱 좋은 영화였다. 이 글에서 나는 유명한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류뤄잉이 처음으로 감독으로서 연출한 영화의 사랑 이야기에만 촛점을 맞췄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감독은 훨씬 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일단 청년 세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먹고 살기 어려운 사회. 시골에서는 더더욱 번번한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그렇다고 무작정 도시로 뛰쳐나와 봐도 현실은 어처구니 없이 좁고 더러운 방 하나를 겨우 얻을수 있을 뿐인데, 그 어처구니 없이 허접한 방 하나를 위해 내가 바쳐야 하는 월세는 또 얼마나 비현실적인 수치인가! 그 다음으로 도시와 시골의 환경 변화로 인한 갈등들이 있고, 도시의 실업 문제, 비정규 단기직 노동자들의 문제 등도 함께 다루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국에 사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중국인들은 느낄 수 있는 배경을 더 다양하게 깔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궁금했던 것은 대만 사람인 류뤄잉이 왜 베이징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을까 하는 점이다. 대만의 타이베이를 배경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익숙하게 잘 만들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대만을 넘어 중국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영화를 찍어야 하기 때문이었을까?


원작인 이 영화는 여러 의미로 참 잘 만든 작품임에 틀림이 없는데, 최근 개봉해서 나름 멜로 영화의 유행을 이끌고 있다는 [만약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괜찮은 영화일지 궁금하다. 과연 극장에서 볼 여유가 생길지, 아니면 언젠가 OTT에 풀린 이후에야 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원작과 비교해 또 끄적일 이야기들이 생길 것이다.


사실 개인적인 감상으로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휴대전화 메모장에 끄적여 놓았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살려 쓰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더라. 두 사람이 만약에 우리가 이랬다면 저랬다면 이라는 가정을 하며 감정이 폭발하는 대목에서 나도 너무 공감해 버려서 너무 감정적으로 글을 두들겨 놓았더라. 덕분에 이 글을 두드리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려버렸다. 아, 피곤하네.

    

음력 2025년의 끝 자락에 정말 괜찮은 영화를 만났다. 앞으로 류뤄잉의 [나중에야] 를 들을 때마다 이 영화가 떠오를 것 같다. 그리고 매년은 아니겠지만, 가끔 이때 즈음이 되면 또 이 영화가 생각나겠지. 언젠가 또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본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생각과 감정으로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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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2-04 1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 훗날 우리>...이거 감은빛 님 리뷰를 보니 찾아 보고 싶네요. 중국 영화나 소설은 별로 안 좋아 하는데 리뷰를 보니 보고 싶은 생각이 막 드네요. 엄청 인상깊게 보셨던 듯합니다.
근데 잉크냄새님은 어떻게 그리 중국 노래들을 많이 아시는지...전 들어본 적도 없는데..^^;;

그나저나 구교환과 문가영 나오는 영화가 엔날 영화인줄 알았는데...쇼츠로 좀 봤어요. 근데 최근영화였군요! 개인적으로 문가영을 넘 싫어해서 영화를 보기 어려울 듯해요. 어쨌거나 <먼 훗날 우리>..이거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알려주셔요~~

감은빛 2026-02-06 05:15   좋아요 0 | URL
이 영화 넷플릭스에 있어요. 저번에 영화 결산 글 보니 야무님은 넷플릭스 구독하고 계시던데, 바로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제 감상과 달리 야무님께는 썩 그리 좋은 영화가 아니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역시 앞에서 말한 영화 결산 글에 제가 남긴 댓글과 야무님의 감상이 큰 틀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다고 느꼈기에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해봅니다.

잉크냄새 님께서는 바로 아래 댓글에 남겨주셨듯이 중국에 살다 오셔서 중국 노래를 많이 들으셨나봐요.

잉크냄새 2026-02-0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뤄잉은 만능이네요. 가수, 작가, 감독...대단하네요.

<먼 훗날 우리>라는 영화의 배경인 2007년과 2018년의 기간, 제가 중국에서 생활한 기간과 겹쳐 영화를 보면 그 시절 중국인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를 것 같네요. 춘절의 풍경과 농민공, 노동자, 실업, 길거리 문화....그리고 그들의 사랑까지도. 저도 찾아봐야겠어요.

감은빛 2026-02-06 05:19   좋아요 0 | URL
이 영화 이후로 드라마 하나를 연출했더라구요. 조만간 시간이 나면 그 드라마도 찾아볼 예정입니다. 류뤄잉이 연기도 많이 했던데, 류뤄잉이 출연한 작품들도 나중에 찾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영화에서 다룬 시기와 잉크냄새님이 중국에 계시던 시기가 겹치는군요.

이 영화 넷플릭스에 있어요. 영화 평을 찾아보다가 중국에 살다온 어느 중국어 강사가 시대 고증을 엄청 잘 했다고 말하는 걸 봤어요. 정말 잉크냄새님이 보시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희선 2026-02-05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영화는 리메이크 한 거였군요 언젠가 한국 영화도 보시겠네요 류뤄잉, 잘 모르지만 노래뿐 아니라 감독에 소설까지 쓰다니 대단합니다 자신이 쓴 소설을 영화로 만들다니... 그런 것을 더 봤네요


희선

감은빛 2026-02-06 05:24   좋아요 0 | URL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추가 정보를 찾아보다가 작년 마지막 날에 개봉해서 의외로 흥행하고 있다는 한국 영화가 이 영화의 리메이크라는 걸 알았어요.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극장에서 이 영화까지 보고 이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러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저도 작년에 잉크냄새 님께서 추천해주기 전에는 이 사람에 대해 몰랐어요. 잉크냄새 님 덕분에 멋진 가수이자, 다작 배우이자, 훌륭한 영화감독을 알게 되었네요.
 

외모 변화


어제 어느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나를 초대한 주최측은 작년에도 토론회에 나를 발제자로 초대했었다. 큰 주제 아래 세부 주제 별로 토론회를 이어가는데, 매번 나를 발제 혹은 토론으로 초대하고 있다. 작년 토론회에서는 발제자가 여러 명이었는데, 당연하겠지만, 사람 별로 편차가 컸다. 특히 주최측이 요청한 내용과 달리 발제자가 본인의 특정한 사항을 과시하는 듯한 내용을 길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같은 내용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좀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실망스럽다고 여겼는데, 나중에는 나름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잘 전달한 것 같아서 조금은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암튼 내 발제는 늘 그렇듯 주최측의 요구를 잘 반영하면서도 내 나름의 특성을 담아서 독창적인 방식으로 소개했다. 나와 함께 오래 일했던 몇몇 동료들이 자주 했던 말. 발표나 발제나 강의 등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소개하는 일을 내가 맡은 경우에 절대 걱정이 안 된다는 말. 어제 토론도 그랬다. 사실 미리 받아본 발제 내용이 좀 모호하고 쟁점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답답했다. 안그래도 주최측에서 이 점이 걱정이 되어 미리 나와 소통을 하기도 했다. 토론문을 제출해야 하는 마감일 밤에 긴 시간 고민을 했다. 발제문에 대한 토론을 쓰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쟁점을 다 버리고, 일반적인 내용으로, 다만, 참여자들이 잘 알기 어려운 전문적인 정보들을 전달하는, 또 하나의 발제문처럼 적어서 보냈다. 그리고 주최측과 소통을 했다. 이러저러해서 쟁점을 명확하게 드러내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니, 어설프게 토론문을 쓰는 것보다 이런 방식을 선택했으니, 양해해달라고 했다. 


어제 토론회 장소에 아주 오랜만에 아마 한 오륙년 이상 못 만났던 선배 한 분이 계셨다. 약간은 거리가 있었는데, 나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멀리서 고개만 숙여서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 분은 나를 분명 보았을 것 같은데 그냥 고개를 돌리셨다. 나중에 인사해야지 생각하고 일단은 자리 잡고 준비를 했다. 나중에 그 분이 내 자리로 오시더니 아주 반가운 얼굴과 목소리로 그러나 한 편으로는 놀랍다는 표정을 보였다. 아, 이 분은 교통사고 이후로 나를 만난 적이 없었구나. 그래서 이 흰 장발과 흰 수염을 처음 보는 거였구나. 그 분은 몰라봤다고. 어떻게 이렇게 외모가 달라질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게. 나로서도 내가 이 정도로 달라질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긴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말씀드리기가 어려우니, 그냥 어쩌다 이렇게 되었네요 라고 말씀드리고 말았다.


어제 토론회에는 발제자 1명과 나를 포함한 토론자 2명으로 비교적 간단한 구성이었다. 그럼에도 쟁점 사항들이 있어서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나중에 토론회를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고 난 후에, 주최측에서 중간 중간에 찍은 스냅샷과 단체 사진을 포함한 몇몇 사진들을 보내줬다. 그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나를 제외한 모든 남성들은 단정하게 짧은 머리에 말끔하게 면도를 한 얼굴인데, 나 혼자 긴 장발에 수염을 기른 모습이 참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뭐 별 수 있나. 외모를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


편지


내 생일이라고 아이들이 선물을 준비했다. 작은 아이는 뭘 준비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만나러 나올 때 갑자기 준비한 선물을 찾지 못했다고 한참 늦게 나오더니, 입을 삐죽거리며 투정을 부렸다. 큰 아이는 시집 하나에 작은 편지 봉투 하나를 붙여서 건넸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생일 선물로 혹은 그냥 선물로 시집을 준 경우는 많았지만, 내가 선물로 시집을 받았던 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어쩌면 한 두번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생일선물로 시집을 받은 것은 처음이 확실하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나서 시집을 살펴보니 중간 중간에 작은 메모지들이 끼어 있었다. 보니까 아이가 읽은 느낌이나 나하고 공유하고 싶은 것들을 메모지에 적어두었다. 


그리고 편지 봉투를 열어보니 예쁜 책갈피 하나, 그리고 아이와의 데이트 쿠폰 하나. 그리고 편지지가 두 장 있었다. 편지지 첫 장은 생일을 맞아 나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담았고, 두 번째 장은 아이가 이 시집을 선택한 이유와 함께 읽고 싶은 시들의 제목과 쪽수를 적어놓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간단히 적어놓았다.


아이들이 좀 더 어렸을 때에는 생일 때마다 이렇게 손편지를 받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란 후로는 편지도 선물도 없어졌다. 뭐 나도 아이들에게 생일 때마다 편지를 썼던 것은 아니라 당연히 뭘 기대할 입장도 아니고 굳이 그걸 서운해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안 준다고 서운하지는 않지만, 받으면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한 것이 선물이다.


특히 이번에 큰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성인으로서 아빠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런 표현이 있었다. 아빠도 나도 글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니까, 시를 공유하는 것이 좋았다는 표현, 그리고 아이가 아빠의 꿈을 이어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표현도 있었다. 할머니(이미 시인으로 등단한 우리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이가 함께 책을 내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두번째 편지지 뒷 장에는 자신이 간단히 디자인한 책 표지에 우리 엄마 이름과 내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저자로 적어놓고, 출판사는 자신이 만들거라고 맡겨달라는 글씨가 적혀있기도 했다.


그래. 언젠가 글을 쓰는 가족끼리 공동저자로 책을 낼 수도 있겠지. 기획을 잘 해본다면 아이템은 분명히 나올 것이다. 엄마와 아이는 시를 쓰니까 공동 시집으로 작업할 수 있을테고, 나는 그 시와 관련한 산문을 쓰거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기획이 가능할 것이다. 아이와 함께 책을 낼 수 있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 좀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 앞으로는 좀 더 시간을 쪼개어서 글을 좀 더 많이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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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2-04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엄마와 아이가 시를 쓴다구요?!! 감은빛 님은 대단한 패밀리의 멤버였군요!! 와~~ 놀랍습니다. 가족 모두가 예술을 향유하시다니!!

감은빛 2026-02-10 06:24   좋아요 0 | URL
아니, 야무님은 엄청난 그림을 그리시는 참 예술가이시잖아요. 우리 엄마는 지역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지만, 지역 문예지가 그리 객관적으로 훌륭한 등단의 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딸은 아직 공부하는 입장이구요. 저는 그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일 뿐일 걸요. ㅎㅎㅎㅎ

잉크냄새 2026-02-04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염상섭이 아닌 감은빛님의 <삼대>가 나오겠네요. ㅎㅎ

감은빛 2026-02-10 06:27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저는 염상섭 작가님을 아주 훌륭한 대 선배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젊은 시절에 우리나라 작가 중에는 염상섭 각가의 글을 필사했고, 외국 작가 중에는 제인 오스틴의 글을 필사했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