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 좋아서 하는 외국어 공부의 맛
곽미성 지음 / 어떤책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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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것이 무엇이던 뭔가를 마주했을 때, 싫을 수도 있고, 그닥 좋지는 않을 수도 있다. 아무 감정이 안 들수도 있고. 아주 좋지는 않지만 뭐 그리 싫지도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좋다는 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싶다. 사실 평소 뭔가를 막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한참을 망설인다. 그냥 대체로 모든 음식을 다 잘 먹고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씩 떠올려보면 또 대부분의 음식이 그저 적당히 괜찮을 뿐 막 그렇게 좋다는 생각이 안 든다. 약간 삐딱한 성격 탓에 뭐든 이런 식이다.


이런 삐딱한 성격에도 분명하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몸을 써서 다양한 운동을 하는 것이다. 바벨, 덤벨, 케틀벨, 불가리안백, 샌드백, 실내철봉 등 운동기구들과 그 부속 용품들을 사 모으며 한창 열심히 운동했던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나는 달리기와 간단한 맨몸 운동들을 즐기고 좋아한다. 그리고 최근 동네 사람들과 케틀벨 운동 모임을 하면서 다시 한번 케틀벨의 매력에 푹 빠졌다. 바빠서, 피곤해서, 귀찮아서, 너무 더워서, 너무 추워서 등등 운동을 하지 않을 핑계는 많겠지만, 아마 나는 앞으로도 평생 운동을 하고 살 것이다. 좋아하니까.


그럼 운동 다음에 두번째는 무엇인가 하면, 바로 외국어를 익히는 것이다. 내가 익힌다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사용했는데, 내가 외국어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바로 이 단어인 것 같다. 나는 외국어를 공부하지는 않는다. 공부에는 자신도 없고, 분명 실패할 것이 뻔하므로. 그저 나는 관심이 생긴 외국어를 깔짝 깔짝 살펴보고, 조금 따라해보고, 조금 읽고 이해해보려는 것에 그친다. 그렇지만 내가 관심을 가진 언어인만큼 그 당시에는 엄청나게 열심히 공부할 것이고, 따라하고 또 들을 것이다.


이렇게 외국어를 익히는 일에 진심이 된 것은 환경운동을 하면서 몇몇 국제행사에 참여하면서였다. 대학시절 몽골에 사막화방지 운동으로 국제행사를 가면서부터 나는 외국어라는 존재에 끌렸었다.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국제교류행사 준비와 진행을 맡았던 나는 일본 담당자였던 학생과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준비를 했지만, 서로 영어가 짧아서 원활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몽골에 도착해서 실제 행사 준비 단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측에서는 담당자이자, 실무 책임을 맡은 그 여성에게 통역까지 붙여줬지만, 나는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내가 그 일본 여성에게 짧은 영어로 말을 하면, 그 여성이 일본어 학과 대학생인 몽골인 남학생에게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고, 다시 그 몽골 학생이 몽골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곤 했다. 이게 잘 전달이 되면 너무나도 다행이었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나는 일본어와 몽골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하니, 그들이 뭔가 황당한 이야기를 해도 절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쨌든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국제교류 행사를 치뤘지만, 나는 그 행사의 완성도가 너무 처참했기 때문에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약 10일 정도 이어졌던 이번 몽골 탐방 마지막 행사였던 자리에서 한국 대학생 대표로 발표를 맡았었다. 내가 한국어로 말을 하면 일본 대학원 유학생이던 선배가 일본어로 옮겨줬고, 그걸 몽골에서 생활하는 한국인 선교사가 다시 몽골어로 옮겨주셨다. 내 말 한 마디가 일본어와 몽골어로 옮겨지는 동안 나는 가만히 그 말들을 듣고 있어야 했는데, 재미있었다.


그 순간 느꼈다. 외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구나! 나도 다른 언어를 배워야겠다고. 제일 먼저 배우고 싶다고 떠올랐던 몽골어는 너무 어려웠다. 사실 몽골에 머물렀던 약 10일 동안 나는 손짓 발짓과 땅에 그린 그림으로 몽골인들과 소통을 시도했었다. 이게 어떨 때에는 그래도 좀 통하기도 했지만, 어떤 때에는 말도 안 되는 결론으로 가기도 했다.


암튼 몽골어는 어려워 포기했지만, 뭔가 다른 언어를 배워야 했다. 영어는 너무 당연히 배워야 했고,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에 한 서너달 회화학원을 다니며 원어민 강사 반에 들어갔다. 영어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나이대가 비슷했던 원어민 강사와 개인적으로 만나 장기를 두거나(장기에 관심이 많은 미국인이었음) 당구를 치거나, 삼겹살에 소주를 먹거나 하면서 조금 친해졌다. 이때 영어에 대한 울렁증 이런 걸 극복한 것 같다. 이후로 해운대 같은 관광지에서 길 안내를 종종 했고,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는 영어 통역으로 자원 활동을 하기도 했었다. 한참 영어를 쓸 일이 있을 때에는 그래도 더듬더듬 말을 했는데, 부산을 떠나 서울에 살면서는 영어를 쓸 일이 없어졌다. 영어를 더 자주 써 보려고 해외에 펜팔을 만들기도 하고, 나중에는 언어 교환 앱 등을 통해 영어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잊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영어 말고 다른 외국어들도 조금씩 조금씩 익혔다. 독일어는 고등학교 때 배웠다. 시험 성적은 늘 좋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필기 시험이었고, 영어와 마찬가지로 말을 하나도 할 줄 몰랐다. 서울로 올라온 후에 남산에 있는 독일 문화원(괴테 인스티튜트)에 몇 달 다녔었다. 그때는 당시 여자친구(나중에 결혼했다가 다시 이혼한)와 함께 독일로 유학을 가자는 조금은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을 때였다. 그는 이미 독일에서 1년 넘게 공부하고 돌아온 지 시간이 좀 지났었지만, 다시 독일에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나는 부산에서 환경단체에 일할 당시에 인연을 맺었던 독일에서 유명한 태양광 전도사이자 환경운동가와 연락해 태양광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열심히 독일어 공부를 했지만, 둘 다 바쁜 일상에 쫓겨 살면서 독일 유학의 꿈은 점점 더 멀어져갔고, 그런 와중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독일어 공부도 점점 소홀히 하게 되었다. 결국 몇 달 후에는 더 등록하지 않았다.


중국어는 대학 시절 교환학생으로 왔던 유학생의 생활비 마련을 위해 어떤 선배가 그룹 스터디를 제안해, 거기에 참여하면서 처음 배웠다. 사실 중국어를 공부할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일단 게을러서 중고등학교 시절 한자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서 한자에 무척 약했고, 성조라는 개념이 무지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모두 그만뒀고, 나만 혼자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혼자서 내는 돈으로는 생활비를 충분히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에 중단하게 되었다. 그 친구가 늘 내게 했던 말이 그 특이한 말투 때문에 지금도 머리 속에서 생생하게 들린다. "어빠는 발음이 아주 조아요. 성조도 비교적 정확해요." 부산 사람이라서 성조를 잘 익혔던 것 같다. 이 친구의 칭찬 덕분에 그 후로 긴 시간이 지나도 가끔씩 다시 중국어를 들여다 보다가 중단하기를 반복하는 것 같다. 이 친구는 나중에 한국에서 취직해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언젠가 한번쯤 보자는 이야기를 동기나 선배에게 듣기도 했었는데, 아직까지는 다시 만날 기회는 없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주위에 일본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대학 시절에 노래를 엄청 잘했던 동기 한 명은 나중에 일본에서 제법 오래 살다가 돌아왔다고 했다. 일본어 능력시험 같은 걸 준비하는 친구들도 제법 많았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도 일본어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짧은 기간이지만 일본에서 일을 했던 적도 있었다. 나는 그럼에도 일본어를 본격적으로 익혀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일본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등을 자주 보게 되었고, 특히 주위에 일본 만화와 애니를 좋아하는 소위 말하는 오타쿠들이 좀 있어서 그들의 영향으로 일본어에 많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몽골에서의 사막화방지 운동 일정을 소화하며 일본 학생들과 소통했던 기억도 일본어 공부를 언젠가는 해야지 마음을 먹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년 봄에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익히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시작한 계기는 재작년 가을에 일본 대학원생들이 나를 인터뷰하러 왔던 건 때문이었다. 어떻게 나를 찾아냈는지, 나에게 직접 이메일로 연락을 해서 찾아왔던 그 일 덕분에 나는 이제 드디어 일본어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한 7~8년 전 쯤부터 이런저런 언어 익힘앱, 언어 교환앱 등을 깔아보면서 다양한 언어를 야금야금 해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딱히 그 언어들을 제대로 배우리라 생각한 것은 당연 아니었고, 그냥 순전히 재미로 듣고 따라해 보는 것이었다.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인도네시아어, 튀르키예어 등이었다. 인도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편이어서 힌디어도 좀 배워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늘 그림처럼 느껴지는 문자의 한계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했다. 프랑스어는 발음이 너무 어려워 금방 흥미를 잃었다. 튀르키예어도 발음과 동사 변형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그나마 가끔 시도했다가 한동안 잊고 살다가 다시 가끔 또 들여다 보는 것은 스페인어와 인도네시아어 이렇게 둘이다. 이탈리아어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미국 군인들이 나치에게 들키지 않게 이탈리아어를 떠듬떠듬 말하는 장면에서 그 특유의 억양이 너무 재미있어서 언젠가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는데, 아직은 여력이 되지 않는다.


욕심도 많지. 이 많은 외국어를 언제 다 익혀보겠나! 아마 평생 시도해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얻기는 어려우리라.  


이 책 이야기를 좀 써야 하는데, 개인적인 이야기만 잔뜩 쓰느라 시간을 한참 보내버렸다. 이 책은 정말 너무 재미있었다. 알라딘 서재 이웃인 다락방님의 글을 읽고 빌려 달라고 부탁드려서 읽었다. 첫 장면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이탈리아어를 못하는 저자와 저자의 어머니가 이탈리아 열차에 무임승차 해서 차장에게 표를 결제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스릴도 넘쳤고, 이탈리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이웃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는 멋진 이야기였다. 이 첫 장면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이 책과 이 저자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만 프랑스에서 저자가 이탈리아 문화원에 강의를 알아보고, 등록하고 수업을 듣기 시작하는 장면들에서는 아주 조금 텐션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강의를 두 학기 들으며 저자가 20대 초에 무작정 프랑스로 유학와서 프랑스어를 공부해 대학에 합격했던 과거와 지금 중년이 되어,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단순히 이탈리아 문화와 음식이 좋아서 배우는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현재를 비교하며 보게 되는 부분은 좋았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조금은 삐딱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저자는 그 어려운 프랑스어를 배워서 대학에서 공부하고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직장을 얻어 20년 넘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다. 영어를 얼마나 하는지는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이탈리아 사람들과 소통하다 막히면 영어로 소통하는 장면들이 나오는 걸 보면 영어도 어느 정도 수준은 할 것이다. 이렇게 두 개 이상의 외국어를 어느 정도 하는 사람이라면, 프랑스어와 비슷한 면이 좀 있는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것은 좀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외국에 나가 본 적도 없고, 제대로 할 줄 아는 외국어가 하나도 없는 나 같은 사람과는 당연히 다르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


그런데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이런 마음은 곧 사라졌다. 그가 일주일 어학연수를 선택해 직장생활이라는 일상에서 벗어나 어쩌면 휴가 같은 이탈리아 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그의 남편과 함께 일주일을 더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연애 시절과 신혼 초 시절의 추억들을 되새기는 장면들을 읽으며, 그 역시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저자의 이야기 솜씨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책의 서두에서 독자를 확 사로잡는 솜씨와 중간 중간에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내용들을 특유의 정서와 문체로 잘 풀어냈다고 느낀다. 그리고 저자가 외국어 공부를 통해 인생을 지나온 과정들, 그 좌절과 환희의 시간들이 잘 묻어 나있어서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 이런 흔치 않은 경험을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다면, 그 독자는 얼마나 행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어에 늘 관심이 많지만, 제대로 아는 외국어가 거의 없는 한국인 독자로서 너무나도 즐겁고 유익한 독서였다. 이 책을 빌려주신 다락방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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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05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언어 배우는 이야기들이 쭈욱 올라오네요. 그러면 저는 저쪽 구석으로... 기본적으로 언어는 부지런함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저는 그게 모자라는듯요. 너무 싫어서 대학 1학년 때 교양필수 영어가 제 인생 마지막 영어였습니다. 차라리 수학 문제를 푸는게 저는 훨씬 좋았어요. ㅎㅎ 가끔 여행갈 때 그 나라 언어를 잘하면 좋겠가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거기에 들어갈 노력과 시간을 샹각하면 굳이 왜? 이런 생각부터 먼저 들어요. 그래도 어껀 방식으로든 외국어 공부 열심히 하는 모든 분들 응원합니다.

감은빛 2025-08-16 17:04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국민학교 때 산수를 포기했었던 저는 수학을 푼다는 생각을 평생 해 본적도 없어요. ㅎㅎㅎㅎ 대신 국어를 비롯한 모든 언어는 다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말씀대로 언어 공부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렵지요. 저는 외국어를 잘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모르는 언어를 익히는 그 시간이 재미있어서 계속 하고 있어요.

잉크냄새 2025-08-05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동안 페이퍼를 통해서 언어에 관심이 많으시고 이런 저런 외국어를 공부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리도 많은 외국어를 접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네요. ㅎㅎ 지금도 외국어를 잊지 않기 위해 유튜브를 통해 꾸준히 접하고는 있지만 다른 건 몰라도 듣기 능력 만큼은 확연하게 퇴보하는 게 느껴지네요.

감은빛 2025-08-16 17:10   좋아요 0 | URL
아유, 잉크냄새님. 그냥 저는 여러 언어를 조금씩 접해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랬던 것이지만, 단 하나도 제대로 잘 하는 언어가 없어요. 외국어를 잘 하는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퇴보하는 군요. 그렇겠지요. 뭐든 시간이 지나면 그럴 수 밖에 없겠네요.

hnine 2025-08-06 0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언어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은 모르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이 들지요. 저도 이책 구입해서 읽었어요. <60, 외국어 하기 딱 좋은 나이>,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이 책들도 재미있어요.

감은빛 2025-08-16 17:11   좋아요 0 | URL
아, 책 소개 고맙습니다! 찾아 볼게요. 새로운 세계, 그렇죠. 새로운 표현을 배우면 그걸 응용해서 대화를 만들어 보는 것이 정말 재미있어요.

yamoo 2025-08-06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외국어 공부를 아주 싫어합니다. 네~ 그 시간에 다른 책 읽거나 다른 공부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이 들어요. 삼성에서 번역기 나왔다는데....우리말로 말하면 바로 외국어로 말해주는 통역기~~ㅎㅎ
요즘 보니 쳇GPT 통역도 아주 훌륭하더라구요...외국어 공부하는 거 좋아하는 분들 보면 좀 신기합니다. 감은빛님이 그런 능력자이셨다뉘!!ㄷㄷ

감은빛 2025-08-16 17:15   좋아요 0 | URL
야무님도 외국어 공부를 싫어하시는군요.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밖에 없죠. ㅎㅎㅎㅎ

기존의 번역앱들이나 요즘 AI 번역들도 예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좋아지긴 했겠지만, 그래도 늘 한계를 느낍니다. 저는 오늘도 영어 문장 하나를 매끄럽게 옮기기 어려워 여러 앱들을 이용해보고 AI 한테도 물어봤는데, 어느 하나도 만족할만한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기존 번역 앱들은 오역을 하더라구요.

이래서 아무리 번역기가 좋아도 외국어 공부는 필요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페크pek0501 2025-08-06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국어라면 영어를 잘하고 싶어요. 고교시절에 불어를 배웠는데 영어와 헷갈리긴 해도 재밌었어요. 그래도 가장 많이 투자한 외국어 공부가 영어인지라 영어 공부를 하고 싶네요. 한때 영어 공부하겠다고 오헨리의 소설을 원서로 잔뜩 사 뒀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두뇌 발달에도 외국어 공부가 좋다는 하네요.

감은빛 2025-08-16 17:21   좋아요 0 | URL
사실 일단 영어 하나라도 잘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오래 공부했기 때문에 이제는 영어 보다는 다른 언어를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영어로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이 색다른 재미가 있더라구요. 이를테면 영어 텍스트로 된 일본어 교재를 선택하는 거죠.

저도 예전에 축약본 영어 책들을 많이 샀던 기억이 납니다. 주로 영국 작가들이었어요.

희선 2025-08-17 1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은 관심 가진 다른 나라 말 많군요 조금씩 해 보기도 하다니... 그렇게 조금씩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영어는 어느 정도 하시다니, 부럽네요 일본말도 한해 넘어서 많이 아시겠네요 앞으로도 즐겁게 익히시기 바랍니다


희선

감은빛 2025-10-06 03:00   좋아요 0 | URL
희선님께서는 아마도 일본어를 꽤 잘 하시지요?
원서도 척척 잘 읽으시는 것 같던데요.
저야 말로 희선님이 정말 부러운걸요.
저는 글에도 썼듯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외국어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재미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익혀가는 거라서요. ㅎㅎㅎㅎ

늘 고맙습니다!
 

가족 휴가 기억 하나


중요한 일정들 사이에 아주 잠시 숨 돌릴 여유가 있어서 페이스북에 들어갔는데, 과거의 오늘 올렸던 글들이 보였다. 8년 전, 그러니까 2017년 7월 31일에 올렸던 글이었다. 딱 보자마자 곧바로 기억을 떠올렸다. 하, 이 날이었구나. 한 편으로 정말 즐겁고 재밌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최악이었던 휴가였다. 아마 한 1주일에서 10일 사이에 북플에도 이 휴가 이야기를 쓴 글 과거 글이 올라올 것이다. 이날은 첫 날이어서 서울을 떠나는 버스를 타고 쓴 글이었다. 


어제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휴가 이야기를 하는데, 미리 꼼꼼하게 일정을 다 정해놓고 움직이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안 정하고 그냥 출발부터 하고 생각하는 편인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사전에 아무것도 안 정하고 출발하는 것을 좋아한다. 미리 뭔가를 정하고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왠지 재미가 없다. 그냥 무작정, 즉흥적으로 생각나느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이는 걸 즐긴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그냥 여행을 떠난 적도 많았다. 목적지는 가는 길에 적당히 좋은 곳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별로 문제가 없었는데, 아이들이 조금 자라서부터는 자꾸 질문을 해댔다. 아빠,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그럼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정말 실제로 몰랐으니까. 안 정했으니까. 그럼 또 아이들은 어떻게 모르는 곳으로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다시 어디 갈지 정확하게 정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거라고.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 했다. 아이들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냥 다시 묻는다. 그래서 어디 가는 거냐고? 그럼 또 나는 아직은 모른다고 답한다. 이걸 무한 반복하곤 했다.


아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면 나는 그저 그들 중 누군가가 이끄는대로 아무 말없이 따라다닌다. 나는 즉흥적으로 움직이길 즐기는데, 내가 사전에 이 여행에 대한 아무 정보 없이 누군가가 정한 대로, 원하든대로 따르면 그건 나에게는 즉흥적인 일정이 되는 거니까. 그런데 미리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뭘 타고 이런 정보를 알려주거나, 뭘 하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그냥 귀를 닫아 버리곤 한다. 사실 나는 뭔가 좋은 정보를 잘 찾아서 일정을 짜맞추는 일에 서툴다. 별로 해 본적이 없어서 익숙하지 않다. 내 주위엔 그런 일을 하는 걸 즐기고, 잘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알아서 좋은 정보들을 잘 찾아주고 적당히 괜찮은 일정을 잘 짜줄 수 있는데, 괜히 쓸데없이 나까지 거기에 에너지를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앞서 저 2017년 휴가 때는 목적지는 삼척으로 정해 두고, 하루에 딱 하나씩 큰 일정들은 정해두었지만, 나머지는 그때 그때 운에 맡겨 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 데리고 다니면서 그것도 대중교통으로 다니면서 그렇게 운에 맡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래서 서울에서 삼척으로, 삼척에서 다시 부산으로, 부산에서 다시 서울로 이동하는 교통편은 모두 사전에 예약을 해 두었다. 아이들이 꼭 타고 싶어했던 레일바이크도 미리 예약했었다. 내가 운에 맡겼던 것은 삼척 안에서 움직이는 대중교통과 매 끼니를 해결할 식당과 피곤한 몸을 누일 숙소였다. 이게 문제였다. 설마 숙소가 부족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는데, 하마터면 민박을 구하지 못해 노숙을 해야 할 뻔 했다. 그 외에도 아이들을 챙기다가 이런저런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일단 첫 출발부터 그랬다. 이건 아까 내가 페이스북 과거 오늘 쓴 글에서 발견한 내용을 그대로 올리면 되겠다. 나름 그 긴박한 상황을 잘 전하고 있는 듯하다.


아슬아슬


1. 강변역에 도착하니 배가 고팠다. 뭐 먹을 여유는 안 되고 어쩔까 고민했는데, 포장마차에 우리말이 서툰 아줌마가 금방 나온다 해서 급하게 콩국수를 먹었다.


2. 큰 아이가 음료수가 먹고 싶다 해서 쥬시에서 아이스티를 시켜줬는데, 뭔가 향과 맛이 좀 이상하다. 시간도 없는데 아이가 자꾸 투정을 부려서 가서 물어봤다. 자기네 레시피대로 한 거란다. 결국 다른 쥬스를 하나 더 사줬다.


3. 급하게 애들 화장실 보내고, 버스 타는 곳을 찾는데, 안 보인다. 승강장을 끝까지 가봐도 차가 없어서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반대편으로 가란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서 다시 물었는데, 대꾸를 안 한다. 황당해서 다시 물어보니 계속 반대편으로 가란다. 어떻게 가냐고 물었더니 알아서 가란다. 옆에서 보던 다른 사람이 이층으로 올라갔다가 내려가면 된다고 알려줬다. 이 인간 진짜 짜증나게 만드네. 뭐라 따지려다가 급해서 참았다. 


4. 벌써 버스 출발 2분전이다. 다급하게 애들을 불렀다. 작은 아이 손을 잡고 후다닥 가는데, 하필 에스컬레이터에 연로하신 어르신 두 분이 가로막고 서 계신다. 이러다 버스 놓칠 것 같아서 미칠것 같았다. 짧은 에스컬레이터 올라가는 시간이 왜이리 긴지 모르겠다.


5. 앞을 가로막고 계시던 어르신은 에스컬레이터 내릴때에도 느릿느릿. 속 터져 죽을 것 같았다. 어르신이 비켜나자 작은 아이 손을 잡고 뛰었다. 아이는 힘겹게 따라오며 뭐라 말하는데, 들리지 않았다. 계단에서 애들에게 빨리 따라오라 말하고 후다닥 뛰어 내려갔다.


6. 한 아줌마 무거운 장바구니 손수레를 끌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느라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기다려줄 여유가 없어서 손수레 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슬쩍 손목시계를 보니 이미 버스 출발시간이 지나있었다.


7.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일단 뛰었다. 몇 개의 승강장을 지나자 갑자기 누군가가 손짓했다. 버스는 이미 문도 닫고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내가 버스 앞에 도착하자 곧이어 아이들도 도착했다. 허둥지둥 폰을 열어 모바일 티켓을 하나씩 찍었다. 이 직원은 무척 친절하게 서둘지 말고 천천히 하라고 말해준다. 앞서 반대편에 있던 직원이 좀만 친절했어도 3분은 벌었을 것 같다.


8. 직원과 버스 기사님께 큰 소리로 고맙습니다! 인사를 했다. 모두의 눈총을 받으며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기다려줘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 버스를 놓쳤다면 완전 일정이 꼬였을 거다. 아까 불친절 했던 직원에 대한 원망도 사라졌다. 미리 승강장을 잘 알아보지 못한 내 탓이다.


9. 아슬아슬 무사히 버스를 타서 감사한 마음으로 휴가를 시작한다. 서울 안녕!


10. 큰 아이의 말대로 이 아이스티 진짜 맛 없다!


아침에 서둘러 아이들을 챙겨 움직이느라 버스 시간보다는 훨씬 여유있게 강변 터미널에 도착했지만, 나는 조금 출출했다. 삼척까지는 꽤 거리가 있으니, 뭔가 먹고 싶었는데, 식당을 갈 여유는 없었다. 아이들은 배는 고프지 않다고 음료수를 사달라고 했다. 나는 터미널 앞에 뭔가 먹거리들이 다양하게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도 운 좋게 콩국수를 얼른 먹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시간 여유가 별로 없어서 얼른 움직여야 했는데, 아이들이 먹던 아이스티에서 이상한 맛과 향이 난다고 했다. 아마 계피였던가? 암튼 아이들이 투덜대서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 바꿔달라고 따졌는데, 그 매장은 원래 계피를 쓴다고 했다. 그렇다니 어쩔 수 없이 다시 다른 음료를 주문했다. 이때부터 사실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다. 


문제는 내가 강변역 터미널을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시외버스 터미널과 고속버스 터머널이 나뉘어 있고, 서로 어떻게 분리되어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내가 올린 이 페이스북 글에 여러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주었는데, 한 친구가 자신도 강변역 터미널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암튼 아이들이 화장실을 다녀올 동안 나는 얼른 버스 승강장 위치를 찾아봤는데 없었다. 여기서 충격을 받아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분명 나는 강변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예약했고 여기 왔는데, 버스 승강장이 없었다. 건너편 다른 건물 앞에 또 승강장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멍해졌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려 해도 마땅한 사람을 바로 찾지 못했다. 당황해서 막 돌아다니다가 누가 봐도 직원인 것 같은 배 나온 아저씨를 발견하고 질문을 했는데, 하필 그 사람이 너무 너무 너무 불친절한 사람이었다. 저 건너편이라고 알려주고, 계단을 올라 2층을 통해 이동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그는 그냥 입을 닫아버렸고, 나는 어떻게 가요? 하고 반복해서, 점점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그걸 옆에서 본 다른 사람이 알려줬다. 2층으로 올라가 건너 가라고. 


이때 이미 버스 출발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있었고, 나는 얼른 아이들을 찾아 계단을 향했다. 짧은 계단이어서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에스컬레이터를 선택했는데, 하필 중간 쯤에 노 부부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앞을 막아버렸다. 죄송합니다. 좀 지나갈게요. 라고 말을 하기엔 우린 짐이 많았고, 뭔가 사고가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짧은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건너편으로 건너 갈 때는 정말 전력 질주에 가깝게 달렸다. 작은 아이는 내가 손을 잡고 있어서 버겁게 따라왔지만, 뒤에 있던 큰 아이는 놀라서 뭐라고 소리를 쳤던 것 같다. 그때는 이미 버스 시간이 다 되어서 아이를 신경쓸 수 없었다. 이걸 놓치면 긴 휴가 일정이 전체가 무너지는 거라 무조건 뛰어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미 버스 출발 시간이 지났음에도 예약한 사람 중 셋이 덜 탔다는 걸 알고 있던 직원이 미친듯이 달려오던 나를 발견하고 막 출발하려던 버스를 붙잡았던 것, 그 분은 무척 친절한 사람이라 땀 범벅인 내가 숨을 헐떡이며 폰을 꺼내 모바일 티켓을 여는 과정에서 죄송합니다. 라고 연신 말하고 있는데, 천천히 하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상황이 정말 고마웠다. 7월의 마지막 날, 한 낮이었으니 얼마나 더웠을까? 그 더위에 계단을 오르내리며 뛰어다녔으니 얼마나 땀을 흘렸을까? 출발부터 참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여기까지 써놓고 그 당시에 내가 쓴 기억이 있는 휴가 이야기를 내 서재를 뒤져 찾아봤다. 휴가를 다녀와서 바로 썼던 것은 아니고 거의 한 달 후에 썼더라. 그리고 내가 지금 기억에 의존해 쓴 것과 거의 같은 느낌이었다. 암튼 그렇게 어렵게 출발한 후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삼척과 같은 지역의 소도시에서 대중교통으로만 여행을 하기는 정말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 더위에,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서 한 시간이 넘게 버스를 기다리기도 했다. 버스가 아닌 택시 때문에도 엄청 애를 먹었다. 검색해서 전화를 해 봤던 삼척의 콜택시 회사들은 번호와 상호는 다른데, 받는 사람은 모두 한 사람이었다. 같은 여성이 매번 당장 갈 수 있는 기사님은 안 계시니 좀 여유있게 기다리시면 찾아보겠다는 어이없는 답이 돌아왔다.


음, 이렇게 쓰려면 레일바이크와 노숙을 할 뻔했던 상황과 휴대폰 분실과 부산에서 방문을 부순 이야기까지 다 쓸 수가 없을 것 같다. 아, 아까 찾아낸 8년 전에 쓴 글을 링크로 남기면 되겠구나. 8년 전의 다사다난했던 휴가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이 계시다면 아래 링크로 가시길.

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9596918


올해는 여러 이유로 짧은 휴가를 다녀올 예정이다. 작년에 부산으로 가면서 사직구장의 표를 알아봤는데, 정말 기적처럼 응원단상 바로 근처 좋은 자리 3개를 구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아이들도 계속 수도권 구장에서 원정석에 앉아 보다가, 홈 구장에서 경기를 봐서 엄청 좋아했다. 게다가 그날 롯데는 엔씨를 크게 이겼고, 홈런도 쳤다. 그 후로 큰 아이는 여러번 사직 구장에 다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부산 일정을 잡으면서 가능하면 사직구장에 야구가 있는 날로 맞춰보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게다가 작년과 달리 올해는 더더욱 표를 구하기가 어렵다는데, 작년처럼 그렇게 좋은 자리가 아니더라도 외야석 마저도 구하기 어렵다고 하더라. 언젠가 또 기회가 오겠지. 어쩌면 롯데가 가을야구에 진출한다면 좀 무리해서라도 표를 구해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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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7-3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상경할 때마다 동서울 강변역 터미널을 이용해서 그 구조를 빤히 아는데, 그 곳을 전력질주하는 모습이 훤히 그려져 웃음이 절로 나오네요. ㅎㅎ

링크는 2011년 페이퍼로 넘어가니 다시 한번 확인해보세요.

감은빛 2025-08-01 14:38   좋아요 0 | URL
아, 잉크냄새님께는 강변역 터미널이 익숙한 공간이군요.
저는 서울에 20년 넘게 살았지만, 늘 서북쪽에 살아서 저 동쪽 동네는 익숙치 않아요.
사실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저렇게 전력질주해서 기차도 간신히 타고, 버스도 간신히 타고
그런 기억들이 많은데, 대부분은 늦게 도착해서 그랬지만,
저 날은 일찍 도착했음에도 미리 승강장을 확인해놓지 않아서 그랬네요.

링크를 넣으면서 제가 뭔가 실수를 했나봐요.
링크 수정하고 제대로 연결된 것 확인했습니다.

늘 길고 재미없는 글 읽어주시고, 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카스피 2025-08-01 2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자제분들도 장성하겼겠지만 8년전이면 어린 아이들 데리고 휴가 가시느라 뛰어다니셨으면 매우 힘드셨겠네요.
그나저나 동서울 터미널 예전에 자주 이용했는데 요즘은 이용객이 많이 줄어들어 터미널 부지포하 해서 재개발 이야기가 나도는 것 같습니다.

감은빛 2025-08-16 17:25   좋아요 0 | URL
네, 카스피님. 애들 어릴 때에는 그게 참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힘들어도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제 머리가 굵어진 아이들은 아빠를 따라 나서지 않으려고 하니까요. 동서울 터미널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그럼 이제 강원도 방면으로 가는 버스들은 어디서 타나요? 고속버스 터미널과 남부 터미널에서 오가려면 너무 차가 많이 막힐텐데요.

희선 2025-08-02 0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계획을 잘 짜고 가는 것도 나름 괜찮을 테고 계획 없이 가는 것도 나름 괜찮겠네요 저는 둘 다 아닌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지만... 그때 버스가 바로 가지 않고 기다려줘서 다행이군요 이번에는 짧아도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감은빛 2025-08-16 17:28   좋아요 0 | URL
희선님. 뭐든 다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는 거겠죠. 저는 노력해도 계획을 잘 짜는데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즉흥적인 것을 워낙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네요. 여행을 그다지 즐기지 않으시나봐요. 사실 집 떠나면 무조건 고생이긴 하죠. 그 고생이 또 재미와 매력이기도 하지만요.
 


덥다. 더워.


지금까지 계속 덥기는 했지만, 그냥 어떻게든 버티고 지나왔는데, 이번 일요일 밤에는 정말 도저히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냥 세상이 찜통처럼 느껴졌다. 습기와 열기 때문에 지구를 찜통 안에 집어넣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밤이 되어도 열기는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말 그대로 열대야. 오늘 나온 기사를 읽으니 7월 서울의 열대야 일수가 역대 가장 많은 21일이었다고 나왔다. 아직 7월이 다 지나지 않았고, 아마 오늘도 열대야가 될 확률이 매우 높으니 기록을 갱신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이전에 가장 많은 날도 21일로 94년 7월의 기록이다. 나는 고3이었던 이 해 여름이 그렇게 이례적으로 더웠다는 기억은 없다. 그냥 여름이니 더웠지 하는 정도.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그 폭염에 대한 장면이 나왔던 것 같다. 내 기준에서 가장 더웠던 여름은 2018년이었다. 그 전에도 물론 덥기는 했지만, 그 해의 폭염은 정말 괴로웠다. 내 주위 아직 에어컨이 없던 많은 사람들이 그 여름을 겪고 나서 에어컨을 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작년과 작년도 유난히 견디기 힘들다고 느꼈다. 그리고 올해 아직도 7월 말 밖에 되지 않았는데,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 주위에는 나처럼 아직 에어컨 없이 사는 사람들이 좀 있다. 요즘 안부 인사는 무조건 잠은 어떻게 잘 주무시나요? 라고 묻는다. 일단 나부터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고, 선풍기를 양쪽에서 켜놓고, 자려고 누워도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금방 땀 범벅이 되고, 그럼 다시 또 땀을 씻어내러 가야 한다. 어쩌다 너무 피곤해 깜빡 잠이 들었다가도 긴 시간 잠을 자지 못하고 꼭 깬다. 깨보면 다시 온 몸은 땀에 젖어 있다. 다시 씻고 오면 또 더위에 괴로워하며 잠을 못 자는 것의 반복. 


사람은 잠을 자야 한다. 반드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정상적인 일상 생활이 불가능하다. 이 즈음의 내가 딱 그렇다. 정상적인 일상 생활이 불가능하다. 일요일 밤을 거의 잠들지 못하고 월요일에 출근하면서 생각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열대야 피난처를 만들어야겠다. 이렇게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일요일 밤에 나와 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이 많았나보다. 다들 에어컨 없이 버티는 사람들. 일단 일터의 매니저님. 월요일 아침에 나를 만나자마자 "이사님, 어떻게 주무셨어요? 너무 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라고 했다. 당연히 나도 잠을 못 잤다고 말씀드렸다. 그날 저녁에 에어컨 없이 사는 친구 하나가 안부 전화를 걸어왔는데, 그도 "형, 요즘 잠은 잘 주무세요? 이 더위에 어떻게 살고 계세요?" 라고 물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또 다른 지인이 쓴 글을 읽었다. 그는 충청도 어디 한적한 곳에 작업실을 마련한 사람으로, 평일에는 서울에서 일터에 출근하고, 금요일 밤에 퇴근해 내려갔다가 일요일 밤에 서울로 돌아오곤 한다. 이번 일요일 밤에 서울로 돌아와 창문을 다 열어놓고 잠을 청했는데, 더위와 외부 소음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 상황을 아주 실감나게 묘사했더라. 읽으면서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날 밤에 잠을 못 잔 사람이 엄청 많았던 것이다.


월요일 밤과 화요일 밤을 에어컨이 있는 곳에서 보냈다. 하지만 우리 집이 아닌 곳이라 사실 편히 자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찜통이 되어버린 집에서 아예 못 자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다. 오늘 방은 또 어디로 피난을 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부터 방법을 찾아봐야지.


공급예비율과 전력 피크


폭염 때문에 에어컨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전력 사용량도 역대급으로 높을 수 밖에 없다. 100기가와트시를 넘긴 날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언론 기사를 읽었다. 그럼에도 공급예비율은 걱정이 없다고 했다. 태양광이 전체 전력 사용량의 약 22%를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치는 핵발전소 비중보다 더 높다. 핵은 거의 20%라서 드디어 태양광이 추월한 것이다. 여름이면 나는 자주 전력거래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실시간 전력수급 현황을 살펴본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에너지 분야 활동가들이 여름에는 전력수급 현황을 자주 본다. 7월 초 아주 더웠던 어느 날, 어느 선배 활동가가 오후 1시 기준 수급현황을 캡쳐해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이렇게 더운 날에도 공급예비율이 50%가 넘는다고 알려줬다. 나도 다른 정보를 찾아보느라 페이스북에 접속해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그 소식을 확인하고 전력거래서에 들어가봤다. 실제로 그랬다. 여름에 공급예비율이 이렇게 높은 건 본 적이 없었다. 가끔 봄, 가을에 공급예비율이 70%가 넘는 날이 있어서 그런 순간을 캡쳐해두고 나중에 강의 자료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이번 건도 일단 캡쳐를 잘 해뒀다.


1년 중에 전력 소비량이 가장 많은 때는 한여름, 가장 더운 날이다. 겨울에도 난방 때문에 전력 사용량이 증가하지만, 여름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 이 가장 더운 날 전력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는 계속 신규 발전소를 짓는다. 2011년 9월 15일 자칫하면 이 나라의 전력망이 완전히 망가질 뻔한 상황을 무작위 순환정전으로 간신히 막은 후에 정부는 설비 용량이 큰 석탄화력 발전소를 엄청나게 지었고, 지금도 짓고 있다. 전세계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원래 있던 석탄 화력도 폐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우리를 포함해 5개 정도의 나라만 신규 석탄 화력을 짓고 있다.) 역행하고 있고, 그래서 기후 악당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1년에 단 며칠 한 여름에만 돌리려고 자꾸 온실가스를 만들어 내는 새로운 화력 발전소를 지어야 할까? 우리 에너지 활동가들은 거의 20년 전부터 태양광을 늘리면 신규 발전소가 없어도 한 여름 피크타임을 버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태양광은 한 낮의 가장 더운 시간대에 꾸준히 전기를 생산하면서 전력 사용량이 100기가와트시를 넘어가도 여유 용량이 남아돌 정도로 안정적인 상황을 만들어 줬다.


우리나라 전체 발전소의 설비용량을 100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중 일부(약 10~20% 가량)는 점검, 고장 등의 이유로 당장 사용할 수 없다. 이걸 제외하고 당장 언제라도 돌릴 수 있는 발전설비 중 현재 소비량을 감당하고 남은 비율을 공급예비율이라고 부른다. 2011년의 저 악몽과 같은 사건 이후로 언론은 자주 예비율이 너무 낮다고 지적질을 하곤 했다. 그걸 근거로 정부는 엄청난게 많은 석탄 화력 발전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렇게 신규 석탄 발전소들이 늘어나자 예비율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전문가마다 혹은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사실 나는 공급예비율이 10%를 넘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앞서 말했듯 공급예비율은 전체 발전 설비에서 여러 이유로 멈춰있는 발전 설비들을 제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 특정한 순간들을 제외하면 공급예비율이 10% 이하로 내려가는 걸 볼 수 없다. 이 공급예비율이 20%만 넘어도 사실 엄청나게 많은 발전 설비들이 일을 하지 못하고 놀고 있다는 뜻인데, 이게 50%를 넘는 순간이 한여름 아주 더웠던 한 낮에 있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봄과 가을에 우리가 적당히 쾌적하다고 생각하는 온도에서는 70%를 넘기기도 하는 것이다. 전체 발전소가 120개라고 가정하고, 20개가 점검 중이라고 가정하고, 100개는 언제든 돌릴 수 있다고 한다면, 1년 중 봄과 가을에는 70개가 놀고 있고, 한여름에도 가끔은 50개가 놀고 있다는 이야기다.


태양광은 지어놓으면 별도로 연료를 공급하지 않아도 된다. 운영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햇빛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추니까.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대비해야 한다면,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석탄 화력을 지을 것이 아니라, 태양광을 지었어야 했다. 그럼 평상시에 놀고 있는 발전소가 저렇게 많아질 필요가 없다. 겨울이던 여름이던 냉난방에 대한 완충 역할을 태양광이 충분히 해줄 수 있다. 사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언제까지 계속 점점 더 많이 전기를 쓸거라고 가정하는 방식 자체가 문제다. 우리는 이미 경제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전기를 쓰고 있다. 오히려 산업용 전력 사용량을 낮추는 방향으로 나가며, 다양한 방법의 수요 관리를 통해 총 발전 설비 용량을 과하게 늘리지 않도록 정책을 만들어 가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우리는 지금 누구나 AI 를 사용하고, 유튜브와 다양한 OTT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막대한 전기를 사용하는 데이터센터들이 점점 더 많이 필요하게 된 시대를 살고 있다. 당장 내가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많지 않지만, 내가 유튜브로 야구 영상들을 찾아보고, 주말에 넷플릭스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순간 지구 어딘가의 데이터센터에서 많은 전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AI 를 사용하지 않지만, 내가 구글에 특정한 단어를 검색하고, 그 검색 결과를 구글이 자동으로 AI 를 사용해 요약해주기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검색하는 행위가 또 지구 어딘가에 있는 데이터센터에서 많은 전력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점점 더 많이 스마트폰과 전자기기들에 의존할 것이고, 앞으로 더 많은 영상을 시청하고, 더 자주 AI 를 활용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구글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규모가 큰 기업들은 대부분 재생에너지를 통해 자신들이 사용하는 만큼의 전력을 충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독 우리나라 기업들만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갈수록 더 심해지는 폭염과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들. 다양한 형태의 기후 재난들을 줄이려면, 바뀌어야 한다. 그냥 조금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사고 쳬계부터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끓는 물 속에 앉아 있는 개구리 신세이고, 찜통 속에서 익어가는 옥수수 신세이며, 서서히 침몰하는 난파선에 갖힌 승객 신세다. 언제까지 그저 말로만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 라고 떠들고만 있을 것인가. 하루라도 빨리 에너지 정책을 바꿔야 하고 정책을 바꾸려면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을 잘 알고, 노원 구청장 시절부터 공무원들과 함께(라고 쓰고 동원하여 라고 읽기) 에너지 협동조합을 만들었던 김성환 의원은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인사 청문회 자리에서 핵발전소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나름 에너지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책임 있는 자리를 맡아야 할 상황에 처하니 이렇게 헛소리를 한다.


아, 오늘 읽은 기사 중에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해 이제 더는 바닷물을 핵발전소들의 냉각수로 사용하기 어려워 지는 미래가 멀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10년 안에 핵발전소 8기를 멈춰야 할 거라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나왔다. 현재 인류는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거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전기가 부족해도 핵은 절대 답이 될 수 없다. 일본은 2011년 3월 11일에 수소폭발을 일으킨 후쿠시마 핵 발전소 4기를 아직도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그대로 방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이를 수습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핵발전소를 수출한다고? 더 많이 지어야 한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인간들은 먼저 자기들 집에 핵폐기물을 보관하고 방사능 오염수를 보관하고 살아보라. 그러고도 계속 그런 주장을 펼친다면 인정해 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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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7-30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에어컨은 엄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그냥 선풍기 하나로 버티고 있는데 예전에는 선풍기 하나로 그럭저럭 버텼다면 올해의 경우는 홀랑 벗고 팬티 한장만 걸치고 선풍기 틀고 자도 새벽에 몇차례 깨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참에 일어나면 팬티가 땀으로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정말 너무 무덥단 생각이 듭니다ㅜ.ㅜ

감은빛 2025-08-16 17:29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도 에어컨 없이 이 폭염을 견디고 계시군요. 입추가 지나서 조금 기온이 떨어졌다고 좋아했는데, 다시 또 폭염이 시작이네요. 매일 매일 괴로워요. 저는 선풍기 두 대로 버티는데도 힘드네요.

yamoo 2025-07-31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8년 여름, 에어컨 없이 지내보고 다음 해 당장 에어컨을 샀죠. 에어콘 있고 없고는 올 해 같은 폭염의 나날에 삶의 질을 가르는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밤에 기온이 28도라는 건 잠을 못자는 온도에요. 잠을 못자면 그 다음날 치명적...저는 그래요. 작은 냉풍기라도 장만하셔요~ 냉풍기는 중고로 사면 2-3만원이면 삽니다. 없는 거 보다 나아요.

핵발전소의 문제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럼에도 에어컨의 시원함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ㅜㅜ

감은빛 2025-08-16 17:31   좋아요 0 | URL
2018년 여름 폭염은 정말 어마어마했지요. 저도 그 날들이 기억납니다.
제가 올해 여름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너무 힘들어요.
버스 안이나 은행 같은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곳에서는 저도 모르게 막 눈이 감겨요. ㅎㅎㅎㅎ

냉풍기 한번 찾아볼게요. 고맙습니다!

잉크냄새 2025-07-31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시와 시골은 열대야의 체감이 다른 것 같네요. 이곳도 온도로는 열대야지만 그래도 밤에는 아스팔트가, 시멘트 아파트가 내뿜는 열이 없으니 그나마 견딜만 합니다.

공급예비율이란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네요. 예로 드신 120기중 50기가 가동되지 않는 경우는 상당히 충격적이네요. 이 내용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한여름 정전이라는 정부와 언론의 공포 마케팅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군요.

감은빛 2025-08-16 17:35   좋아요 0 | URL
아, 그렇죠. 잉크냄새님. 제가 유독 더 힘든 것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살아서 그런 것이겠죠. 실제로 아이들이 살고 있는 파주는 그렇게 못견딜 정도로 덥지는 않더라구요. 그런데 GTX 타고 서울로 돌아오면 곧바로 공기가 다름을 느낍니다.

공급예비율이 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 많은 분들이 모를 수 밖에요. 저도 에너지 분야 활동가가 아니었다면 알 기회가 없었겠죠. 그래서 제가 여기저기 강연 다니면 항상 이 개념을 알려드립니다. 실시간 전력수급현황 표도 꼭 보여드리구요.

희선 2025-08-02 0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해와 똑같이 에어컨 없이 지냅니다 지난해보다 더 덥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네요 그래도 지난해에 일어났던 일과 같은 일은 없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어쩌면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인데... 그것뿐 아니라 여름엔 비도 늘 걱정하겠습니다 더우니 비가 오면 많이 오기도 하니... 화력발전소 여전히 짓는군요 그런 거 몰랐습니다 그만 짓지... 좀 더 지구를 생각해야 할 텐데... 요새는 에어컨 없으면 안 될 것처럼 말하기도 하더군요 집에 냉방장치가 없으면 아주 더울 때는 다른 곳에 가라는 말을 하더군요 라디오 방송 중간에... 아주 더운 곳에 사는 사람은 더위를 피할 곳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 집은 낮엔 31도 밤엔 30도예요


희선

감은빛 2025-08-16 17:39   좋아요 0 | URL
의외로 여전히 에어컨 없이 사는 사람들도 제법 많네요. 희선님도 그러시군요. 제 주위에도 몇 사람 있어요. 우린 만날 때마다 요즘 잠은 잘 자는지 서로의 잠을 걱정하곤 합니다. 희선님은 어떻게 잘 주무시나요? 어찌 견디시는지 궁금합니다.

폭서기 무더위 쉼터라는 것이 있어요. 열대야가 심한 날에 어디 냉방이 가능한 공간에 모여 함께 지내는 것이죠. 그럼 각자가 개인 집에서 냉방을 하는 것보다 에너지를 적게 쓰고, 사람들 간에 소통이 더 늘어나니까요. 저도 해마다 함께 보드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등 행사를 만들곤 했어요.
 


어떤 선행


지난 주 아니 지지난 주 어느 날이었다. 경복궁역 안에서 출구를 찾아 나가려고 잠시 주변 지도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어느 중년 여성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 분은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노, 스미마셍. 체인지 머니." 그는 손에 일본 지폐를 한 장 쥐고 있었다. 환전 가능한 곳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영어로 "오케이. 웨잇 어 모먼트."라 말하고 잠시 생각했다. 평소 환전이란 행위를 해본 적이 없으니 환전이 가능한 곳이 어디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갈 길이 바빴다. 조금 더 고민하다가 "쏘리. 아이 돈 노 웨어 유 캔 체인지 유어 머니." 라고 천천히 말하고 출구를 향해 걸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내가 나가려던 출구 바로 앞에는 은행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은행에서 환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빠르게 몸을 돌려 다시 그를 향했다. 그는 또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잠시 지켜봤다. 그 아저씨가 적절한 답을 준다면 나는 돌아서면 될 것이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그도 난감한 것 같았다. 나는 얼른 그 일본 여성의 시야로 손을 뻗어 흔들었다. 


"아이 씽크 유 캔 체인지 유어 머니 인 더 뱅크. 아이 노 웨어 더 뱅크 이즈. 팔로우 미." 내가 가능하면 천천히 발음하려고 애쓰며 말을 했다. 그 분은 뱅크 라는 단어를 잘 못 알아듣는 듯했다. 내가 다시 천천히 뱅크 라도 한번 더 말해줬다. 그러다 일본어로 은행이 뭐였더라 생각이 들었다. 긴코? 이 단어가 생각나기는 했지만, 갑자기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팔로우 미 라도 다시 말하고 앞서 걸었다. 그는 아리가토우 라고 말하며 따라왔다. 출구 계단을 오르며, 은행 입구가 어디였는지를 떠올렸다. 분명 은행이 있었다는 기억이 있지만, 그게 과연 언제였는지, 그 사이에 혹시 은행이 문을 닫지는 않았는지 불안해졌다. 불안한 마음이 들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는데, 뒤따라오는 그 분이 금방 따라오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금방 다시 발을 멈췄다. 은행 입구는 내가 생각했던 곳에 없었다. 그 곳은 주차장부터 공사 중이었다. 은행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당황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은행은 있었는데, 어디로 들어가는지 입구를 알 수 없었다. 그 분을 향해 웨잇 히어 플리즈. 라고 말하고 입구를 찾아 여기저기 움직였다. 그러다 카페 입구에 뭔가 붙어 있는 걸 보았다. 카페 저 안쪽 문 너머가 은행임을 확인했다. 그래서 그 분에게 돌아가 모시고 갔다. 카페를 통과해 안쪽 문을 열어드렸고, 그 분은 내게 두 세번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웃음으로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가려던 곳을 찾아가면서 일본어를 1년 반 정도 열심히 배웠는데, 정말 단 한 마디도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은행이란 단어 하나 생각이 안 나다니. 나중에 찾아보니 은행은 긴코가 맞았다. 긴코 라는 단어를 말했으면, 그 바쁜 와중에 조금 더 소통이 원활했을텐데. 암튼 그 분이 그 은행에서 무사히 환전해서 원하는 대로 여행을 이어가셨기를 바랐다.


부산에 살던 시절에 해운대나 서면 등에서 외국인들이 길을 물어보면 길 안내를 자주 했었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이었고, 일부러라도 그렇게 영어를 써먹어 보고 싶기도 했었다. 이번에 일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한 마디라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텐데,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로만 떠들어버렸다. 이게 습관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이다.


케틀벨 운동 모임


저번 글에 썼었는데, 동네에서 케틀벨 운동 모임을 하기로 했고, 그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사실 사람들과 함께 케틀벨 운동을 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갑자기, 너무 생각지도 않은 분들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조금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예전부터 운동 모임을 해보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재작년에 동네 언니들과 열심히 했던 달리기 모임이 작년에 갑자기 참여자가 확 줄어서 그만두었기 때문에 그 대신 다른 운동모임을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운동을 오래 하신 분도 아니고, 거의 처음인 분도 계셔서 첫 시간에는 케틀벨에 대한 설명과 함께 운동의 기분 원칙들을 좀 알려드려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전날 밤에 준비를 좀 했었다. 처음부터 무거운 무게를 들도록 하지 않을 것이고 가장 가벼운 무게로 정확한 동작을 익히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겠지만, 그래도 무게를 드는 운동은 무조건 부상을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주의사항들을 꼼꼼하게 챙겨서 알려드렸다. 



다시 이어쓰기


여기까지 글을 쓰다가 중단한 것이 대략 10일 전이다. 그러니까 저 맨 앞의 어떤 선행은 2주 전이 아니라 거의 4주 전의 일이었다. 이 글을 한참 썼던 날 저녁에 일정이 있어서 글을 두드리다가 딱 저 지점에서 임시 저장을 눌러두고 노트북을 닫았고, 그 날 이후로 이래 저래 바쁘고 여유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게다가 이 망할 놈의 폭염. 더워도 너무 더웠다. 일을 해야 하는 날엔 일이 바빴고, 일을 쉬는 날엔 더위 때문에 책상 앞에 노트북을 펼치기 싫었다. 예전에는 폰으로도 긴 글을 자주 두드리곤 했는데, 더위 때문에 그 마저도 하기 싫었다. 안그래도 더운데 폰 들여다보다가 폰이 뜨거워지는 것이 너무 싫었다.


7월 중순까지는 그래도 버틸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정말 도저히 에어컨 없이 집에서 버티는 것이 힘들었다. 새삼 작년 생각이 났다. 작년 이맘때에는 에어컨이 있는 혼자 사는 친한 친구들 집을 며칠씩 돌아가며 버텼다. 내가 막 억지로 재워달라고 한 건 당연히 아니었고, 에어컨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거나, 에어컨을 새로 설치한 후로 가끔 너무 더운 날엔 와서 자고 가라고 말했던 친구들이었다. 딱 작년 기억만 떠올려 보면 처음에 한 친구랑 저녁에 만나 놀다가 자연스럽게 그 친구 집으로 따라갔고, 더운데 자고 가라는 말에 같이 밤 늦게까지 영화를 보다가 잠들었다. 다음날 낮에도 너무 덥길래 그 집에서 책을 읽으며 지냈고, 퇴근하고 돌아온 그 친구와 저녁을 먹고, 오늘도 열대야니까 또 자고 가라고 해서 또 잤던 것이다. 그 다음 날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발목이 아팠다. 정말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갑자기 발목이 부어서 걸음을 걸을 수 없었다. 집 안에서도 걸을 수 없어서 거의 기어다니다시피 했다. 일단 일어나서 발을 디딜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며칠을 그 집에 갇혀 지냈는데, 다른 친구가 전화를 했다. 그 집에 며칠 지냈으니 이제 자기 집으로 오라고. 나는 발목이 아파서 걷기가 어렵다고 답했었고, 그 친구는 차로 데리러 가겠다고 하고는 차를 몰고 왔다. 그렇게 며칠간 아파서 꼼짝 못했던 나를 받아줬던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다른 친구네 집으로 옮겨갔다. 그동안 한의원도 가보고, 얼음 찜질도 해보고, 맛사지도 해보고 온갖 방법을 써봐도 발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보통 관절 통증이 짧으면 이삼일, 길어도 10일 남짓이면 낫는 편인데, 이번엔 좀 오래간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아무렇지도 않게 나으니까 걱정이 되지는 않았는데, 당장 매일 걷기가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친구 집에서도 아마 며칠을 지냈을 것이다. 어느날 아침 갑자기 발목이 괜찮아졌고, 아무 일도 없이 갑자기 아팠던 것처럼, 이젠 귀찮아서 찜질도 안하고, 맛사지도 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냥 나아버렸다. 그래서 한 2주 이상 비워뒀던 집으로 돌아갔었다. 


물론 그러고도 폭염과 열대야는 지속되었고, 에어컨 냉방이 되는 집에서 지내다가 돌아온 나로서는 우리 집이 더 견디기 힘든 곳이 되어 있었다. 한 며칠을 어떻게든 집에서 버텼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또 다른 친구 집으로 놀러갔다. 그 친구는 앞서 두 사람만큼 친하지는 않아서 딱 이틀 머물고 돌아왔다. 암튼 매년 여름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기간 동안 집에서 제대로 잠을 자기가 너무 어렵다. 올해는 또 어떻게 버틸 것인가? 여름이 끝날 때까지 무사히 버틸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하루나 이틀 정도는 일터에서 혹서기 열대야 대피소 개념으로 밤에 보드게임을 하거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등의 행사를 만들어서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중간에 휴가도 다녀와야 하고. 뭐 이래저래 어떻게든 버텨지겠지.


원래 이 글을 두드리던 날엔 뭔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 생각없이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려 이젠 무슨 말을 쓰고 싶었던 건지 잊어버렸다. 일단 이 글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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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28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일들 많이 하셨는데요. 길 안내뿐만이 아니라 운동 모임 강습까지말이죠. 아 진짜 요즘 너무 덥죠. 부디 좋은 해결책을 찾으시길요. 건강 조심하시구요

감은빛 2025-07-29 12:58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덧이름처럼 바람이 많이 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날씨입니다. 집에 들어가는 일이 두려워요. ㅠㅠ

잉크냄새 2025-07-28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자전거는 열심히 타는데 근력 운동은 영 시작하게 되지 않네요. 근력과 유산소의 조합이 가장 좋다는데, 근력 운동은 소싯적 이후 손에 잡히지 않아요.

누군가 올해 여름이 앞으로의 여름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다 라고 말했다는데 지구의 기후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들어선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됩니다.

감은빛 2025-07-29 13:00   좋아요 0 | URL
근력과 유산소의 조합이 바로 케틀벨 스윙입니다. 아주 쉽고 간단한 운동인데, 효과가 또 뛰어난 운동이기도 해요.

스윙에 재미를 붙이고 나서, 클린과 스내치까지 익히면 몸에 딱 필요한 만큼 근육이 붙으면서, 폐활량도 좋아집니다.
 


윤석열 재구속과 에어컨 없는 삶


어제 밤의 핫이슈는 윤석열 구속영장 집행이었다. 늦은 저녁을 같이 먹자고 나를 불러낸 친구는 아직은 결과가 안 나왔겠지만. 이라고 운을 떼면서도 자꾸만 폰을 들여다본다. 나도 당연히 궁금하기는 했지만, 특별한 이변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당연히 구속될 거라고 예상했고,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 친구랑 헤어지고 사무실에 돌아와 밀린 일을 하다가 구속 소식을 접했다. 뉴스에선 4개월 만에 재구속이라고 알려줬다. 그랬구나. 저 내란수괴 놈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풀려난 지 벌써 4개월이나 되었구나. 그동안 왜 저 범죄자 놈이 저렇게 멀쩡하게 돌아다니게 내버려두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생각하면 할 수록 화가 나기도 했다. 이제라도 다시 구속이 되어 정말 다행이지만, 이 당연한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4개월이나 걸린 것은 정말 황당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아침에는 일제히 구속 소식이 터져 나왔는데, 다들 독방에 수감될 예정임을 알리며, 에어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폭염에 에어컨도 없이 갇혀야 할 상황이 안타까운 것일까? 아니면 불쌍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쌤통이다. 뭐 이런 마음이려나. 죄는 미워해도 인간을 미워하지 말라고 했듯이, 죄인 윤석열은 당연히 수감되어 그 죗값을 치러야 하지만, 그 교정시설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는 점도 당연하다. 여름마다 폭염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 기후위기 시대에 에어컨 없는 삶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폭염과 열대야 때문에 지난 주부터 며칠 간 계속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잠들기 전에 샤워를 하고 양쪽에 선풍기를 켜고 누우면, 워낙 피곤한 상태라 잠이 들기는 하는데, 꼭 새벽에 땀에 젖어 깨곤 한다. 그러면 다시 샤워를 하고 눕는데, 이때부터 잠을 못 잔다. 더워도 너무 덥고 습도도 높아서 선풍기만으로는 버티기가 어렵다. 괴로워하며 뒤척이다가 다시 잠이 들면 정말 운이 좋은 날이고, 대개는 계속 괴로워하다가 날이 밝아질 무렵 씻고 나갈 준비를 한다. 일터에 가면 에어컨을 26도에 맞춰 켜고, 선풍기 하나를 에어컨 바로 앞에 두고, 반대편에 다른 선풍기를 둔다. 집에서도 선풍기를 양쪽에 켜 두는 것은 같지만, 에어컨의 존재가 확실한 차이를 만든다. 이제서야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에어컨은 필수품이 된 것 같다. 언제까지 이 집에서 에어컨 없이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작년에도 괴로워하고 또 괴로워하다가 결국 에어컨이 있는, 혼자 사는, 친한 친구들 집에 며칠씩 머물며 돌아다녔었다. 올해는 과연 어떤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확실히 잠을 잘 못 자니까 컨디션이 좋지 않다. 뒷목과 어깨가 뭉치고 허리가 불편하다. 얼굴 통증과 관절 통증도 평소보다 심한 날이 잦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당연히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하필 이번 주는 중요한 일정이 두 개나 있어서 일이 많은데, 일에 집중을 못하니 시간을 오래 잡아먹고, 그만큼 나는 더 피곤하고 힘들고 답답하다.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다.


박정희가 만든 최악의 정당법 조항들 개선 국회 청원


오늘 오전에 내가 몸 담고 있는 지역 정당 운영위원 중 한 분이 국회 국민청원 링크 하나를 공유하면서 본인 친구의 청소년 자녀가 국회에 정당법 조항을 개선해달라고 청원을 올렸다는 소식을 공유했다. 내용을 읽어보니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던 바로 그 조항들이었다. 바로 독재자 박정희가 516 군사반란 직후인 1962년 만든 조항들. 정당 창당 기준을 아주 어렵게 만들어 아무나 정당을 만들지 못하게, 그래서 자신이 오래도록 독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독소조항들이었다. 모든 정당은 중앙당을 서울에 두고 시도당을 최소 5개 이상 설치해야 하며, 각 시도당별로 최소 1천명 이상의 당원을 등록하도록 만든 것이다. 나는 이 조항을 2011년 녹색당 창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았다. 우리나라 정당법이 21세기에도 아직도 이 모양이라고! 라며 놀랐었다. 아니, 독재자가 본인 독재를 오래 유지하려고 만든 조항을 왜 아직도 안 바꾸고 그대로 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긴 세월동안 수많은 정치인들과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었던 것일까?


녹색당 창당 이후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국가보안법 폐지도 반드시 필요하고, 차별금지법 제정도 반드시 필요하고, 올바른 형태의 연동형비례대표제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바로 이 정당법의 독소조항들이라고. 하지만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훌쩍 넘는 동안 여전히 이 조항은 살아남았다. 민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 지 얼마나 지났나?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몇 명이나 있었던가? 민주주의를 말하는 정당이 여태 국가보안법도 그대로 두고, 차별금지법도 제정하지 않으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확대에도 반대 입장이면서 말도 안되는 위성정당을 세워 편법을 저지르면서 정당법은 손도 대지 않고 있다.


이재명도 다르지 않다. 그가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밝혀온 바에 따르면 그 역시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생각은 없어 보이고, 차별금지법도 제정할 생각이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당연히 손 댈 필요가 없겠지. 오히려 지금까지 저질러 온 편법을 고수할 생각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나는 고등학생이 근현대사를 공부하다가 정당법의 이 조항들이 문제라고 스스로 깨달아서 국회에 청원까지 넣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 이렇게 훌륭한 학생이라니! 알고 보니 내가 아는 훌륭한 활동가의 자녀였다. 두 사람 모두 멋지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아래 링크를 통해 국회 청원 참여를 부탁드린다.

https://petitions.assembly.go.kr/proceed/registered/38218C93B39E2152E064B49691C6967B?fbclid=IwY2xjawLcVVdleHRuA2FlbQIxMQBicmlkETFmd3VYaFM5QW1tQ1luY1huAR7IiupTuEi6wD9SO9dHHDBE2zEstlZrgLdowoICm8T3jKtVi6Y1SDVfJWOjWA_aem_T9GQswoB6_jWU7lUcPZJ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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