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이 서재에도 야구와 관련한 많은 글을 썼었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대화를 통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야구는 경기 진행방법과 세부 룰을 자세하게 잘 알아야 즐길수 있다. 그리고 그 용어와 룰이 생각보다 어렵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하고 보아왔던 나는 야구 용어들이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작년에 아이들을 야구장을 데려가기 위해 그 사전 지식으로 야구 보는 방법을 알려주다가 깨달았다. 야구 경기를 제대로 보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고 어렵구나. 그래도 큰 아이는 쉽게 잘 따라오고 금방 이해했다. 예전에 [스토브 리그] 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어서 좀 더 수월하게 받아들였으리라 본다.

요즘 [야구여왕]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어서 찾아보고 있다. 과거 각기 다른 종목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국가대표이거나 스타 선수들을 데려와 여자 야구팀을 만들어 경기를 치뤄가며 더 좋은 기량을 쌓아가고 승리를 만들어가는 내용이다. 거기 참여한 여러 선수들 중에 이미 야구를 좋아하고 제법 잘 아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야구 실력, 그러니까 공을 받고 던지고 타격하는 실력은 탁월한데 야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선수도 있었다. 야구는 몇 명이 하는 스포츠인지 아느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엉뚱한 숫자로 답할 정도로 상식적인 수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를 비난할 의도로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야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잘 말해주는 장면이라 적어놓는 것이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로야구가 인기 있는 스포츠이지만, 세계적으로 야구라는 종목을 즐기는 나라는 많지 않다. 특히 유럽과 아프리카 쪽의 많은 국가에서는 야구가 어떤 종목인지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축구가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대중적인 운동 종목이라면, 야구는 비교도 안되는 비인기 종목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에서 야구의 인기는 정말 대단하다. 수치로 보면 축구는 야구에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인기가 없다. 우리나라 축구는 국가대표 경기 정도 되어야 그나마 관심을 끌 수 있을뿐, 프로축구 경기는 소수의 팬들만 즐기는 수준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

나는 야구, 농구, 배구 등의 프로 스포츠 경기를 가끔씩 찾아보는데, 축구 경기는 거의 보지 않는다. 내 기준에서 별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축구팬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새벽잠을 포기하고 프리미어리그 경기 생중계를 보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앞서 말한 것은 각 프로 팀의 경기장을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는 관중이 적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에 반해 작년부터 시작한 야구장 열풍은 대단했다. 작년에 최초로 천만 관중을 돌파했고, 매번 각 구장의 예매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예매가 시작되는 시각에 정확히 접속을 해도 잠시 렉에 걸렸다가 대기번호가 수천번대에서 시작한다. 이건 거의 대부분의 구장이 마찬가지다. 내가 직접 고척, 잠실, 문학, 사직 야구장에서 표를 예매해보려고 엄청나게 노력해봐서 알게 된 것이다.

요즘 AI를 활용한 어학 앱들이 많다. 이것저것 깔아서 해보고 있다. 대체로 유료 결제를 해야 기본 기능들을 이용할 수 있는 앱들이 많은데, 이런 앱들은 며칠 써보고 지워버린다. 몇몇 앱들은 그래도 기본은 무료로 쓸수 있게 해주는데, 그중 두세개 앱을 써보고 있다. 오늘은 에이아이(영타로 바꾸기 귀찮은데, 이렇게 한글로 쓰니까 느낌이 너무 안 사네)와 대화하다가 winding down 이란 표현을 쓰는 것을 들었다. 몰랐던 표현이라서 따로 메모를 해두고 번역기도 돌려보고, 사전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구글 재미나이에게 이 표현의 뜻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얼마전에 한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주고 받는데, 특정한 단어들을 빠르게 떠올릴 수 없어서 사전과 번역기를 활용했는데 내가 원하는 만큼 표현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하는 생각에 재미나이에게 물어보았는데 의외로 굉장히 많은 예시와 다양한 상황을 포함한 답을 알려주어서 유용하게 썼던 것이 기억났던 것이다. 재미나이는 재미있게도 한국어로 질문하면 한국어로 답하고, 영어로 질문하면 영어로 답하더라. 그게 재미있어서 일본어로 질문했더니 일본어로 답했다. 딱 여기까지가 한계라 더 다른 언어를 시도해보지 못해 아쉽다.

암튼 이 wind down 이란 표현을 재미나이에게 물어보고 그가(인공지능을 인격 대명사 ‘그‘ 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지만, 일단은 이렇게 부르자.) 영어로 알려주는 표현들을 여러번 반복해서 듣고 따라 읽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와인드 업 이란 표현이 떠올랐다. 야구에서 투수가 투구를 하기 위한 준비동작으로 발을 들어올려 힘을 모으는 자세를 말한다. 저 wind down 과 wind up 은 연결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그리고 다시 재미나이의 답변을 살펴보니 긴 답변의 끝부분에 이 wind down 이란 표현이 시계 태엽의 스프링이 감기고 풀리는 것에서 나왔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재미나이에게 질문했다.

˝So both expression of wind down and wind up are related from clockwork spring?˝

어, 근데 이번에는 영어로 질문했는데, 재미나이가 우리말로 답했다.

˝네, 정확한 통찰입니다! Wind up과 wind down은 모두 태엽(clockwork spring)을 감고 풀리는 원리에서 그 의미가 파생되었습니다.˝ 이러고 추가 설명을 이어갔다. 일단 순간적으로 떠오른 내 예상이 맞은 것은 기분이 좋았지만, 통찰이란 표현까지 등장하며 인공지능에게 칭찬을 받는 것은 썩 기분좋은 상황은 아니다.

재미나이는 아주 친절하게 와인드 업 동작의 운동 역학적인 원리도 설명했고, 효과적으로 와인드 업 동작을 하기 위한 팁이 담긴 유튜브 영상도 알려줬다. 나도 한때 투수를 해본 적이 있고, 당연히 투구 연습도 해봤으니 와인드 업 자세는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야구 경기를 실제로 할 일도 없으니 이런 영상까지 볼 필요는 없는데, 나는 단지 이 표현의 유래와 쓰임이 궁금한 것인데, AI는 쓸데없이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 그리고 이건 절대 공짜가 아니다. 내 간단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 멀리 어딘가의 데이터 센터에서는 무지막지하게 많은 양의 전기를 쓰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에너지와 기후위기 등 강의를 할 때마다 챗지피티 등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하는 행위가 엄청나게 많은 전기를 쓰는 것이라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무턱대고 많은 질문을 하기 보다는 잘 생각해보고 적절히 활용하면 좋겠다는 뜻으로 당부한 말씀이었다. 그런데 이젠 이런 말씀도 강의에서 드리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저 지브리 풍 프로필 사진이 유행했던 시기부터 점점 더 많은 인공지능들이 앞다투어 쏟아지는 시기에 이런 이야기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결국 나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어학 앱을 쓰고, 자주는 아니고 아주 가끔이지만 구글 재미나이를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친하지는 않지만 지인 중에 인공지능 전문가가 있다. 그는 정말 다양하고 많은 인공지능들을 사용한다. 그 활용 수준이 내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더라. 그는 하루에도 수백건씩 쏟아져 나오는 인공지능 관련 기사들과 영상들을 인공지능에게 집어넣고 요약해달라고 하고, 그 결과만 본다고 했다. 이제 자신은 시간이 없어서 원본을 일일이 직접 볼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수많은 영상들의 요약본들을 다시 인공지능에게 맡겨 더 정밀한 작업들을 한다고도 말했다.

나는 무엇을 보더라도 비판적 시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고, 어떤 사회적 현상들에 본능적으로 반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인공지능을 과도하게 활용하는 현재의 세상이 내 눈에는 좀 웃긴 코메디 프로그램의 장면처럼 보인다. 얼마 전에는 대학에서 활용하는 인공지능,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의 인공지능 표절 비율을 측정하는 인공지능이 가진 한계를 비판하는 칼럼을 읽었다. 너도 나도 모두 챗지피티를 비롯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시대에 대학생들이 리포트를 쓰면서 인공지능에게 맡기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행왜에 대한 스스로의 어떤 반발이나 반성도 없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이 그렇다고 요즘 세태를 표현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 인공지능을 전혀 참고하지 않고 직접 본인이 쓴 과제물을 앞서 언급한 그 인공지능, 대학에서 인공지능을 배껴 쓴 과제물을 가려내기 위해 활용하는 바로 그 인공지능에 넣고 돌려보니 오히려 표절률이 너무 높게 나왔다고 했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분명 내가 직접 스스로 아무런 인공지능도 참고하지 않고 쓴 글인데 표절이라고? 그래서 저 칼럼을 쓴 저자는 본인 글을 인공지능이 쓴 것 같지 않은 말투와 내용으로 바꾸는데에 원래 과제를 쓴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고 적었다. 이것이야 말로 주객전도이자, 배 보다 배꼽이 더 커진 상황이다.

저 위에 언급한 인공지능 전문가 지인의 경우로 돌아가보자.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중 가장 먼저 들었던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인공지능을 그 정도로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유료 결제를 해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내가 직접 시험해 본 무료 버전의 여러 인공지능들은 모두 그 한계가 명확했다. 전문적인 내용의 질문에 거의 대다수가 엉뚱한 답을 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내용들이나, 웹 상에 정보가 많은 내용들은 그래도 정확도가 떨어지지 않겠지만, 인공지능이 검토해서 찾아볼 수 있는 원 소스가 별로 없는 정보에는 인공지능으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짧은 시간안에 많은 정보들을 검색해서 그 중에 적절한 정보들을 제공하는데, 그 안에 꼭 정확하게 옳은 혹은 내가 원하는 답에 잘 맞는 그런 정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인공지능이 참조하는 원소스가 잘못되었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에 속은 셈이 된다.

그리고 수많은 기사나 영상을 집어넣고 요약하는 일도 나로서는 그 결과를 믿기 어렵다. 요약도 관점과 기준이 명확해야 할 수 있다. 요약을 잘 하려면 그 분야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걸 인공지능한테 맡긴다고? 그 요약본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여기 서재에 글로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몇 달전부터 각 기업에 상담전화를 걸거나 받으면 인공지능으로 연결되고 있는데, 이 멍청한 인공지능들이 아주 간단한 상담을 제대로 하지 못해 엄청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 있다. 이건 내가 겪은 것만 해도 몇 건이 되는데, 정말 어이없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인공지능 상담사가 답할 수 없는 상담인데, 먼저 인공지능에게 상담하지 않으면 인간 상담사에게 연결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시스템 때문에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몇 번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끊었다가 다시 통화하고 별의 별 방법을 다 써봐도 해결되지 않았다. 인공지능은 내가 해결하기를 원하는 내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엉뚱한 이야기만 반복했다. 나는 그날 안에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1시간이 넘게 이 바보같은 짓을 반복했다. 결국 반복되는 문제를 드디어 인공지능도 인지한 것인지 몰라도 인간 상담사를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인간 상담사는 내 문제를 2분도 안 되어 해결해주었다. 나는 이미 1시간 넘은 시간을 인공지능 상담사에게 허비해 버렸는데, 내 아까운 시간과 노력은 누가 보상해주나?

내가 아무리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지금 그리고 앞으로 인류가 훨씬 더 많고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할 것은 명백하다. 이건 절대 되돌리거나 막을 수 없는 흐름일 것이다. 휴대폰이 이미 존재하는 시대에 태어나 자란 사람은 집에 전화기도 잘 없던 시절을 상상하기 어렵다. 스마트폰이 일상적으로 누구나 사용하는 시대에 태어나 자란 사람은 컴퓨터란 것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주판으로 복잡한 계산을 하던 시절을 알 수 없다. 인공지능이 점점 더 많아지고 더 많은 분야에서 사용하는 시대가 곧 온다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더는 인공지능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을 잊을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분명 아니지만, 지금 여기에서, 그러니까 인류가 인공지능에게 더 많이 의존하기 전에 다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적절하게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는 제도와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무턱대고 겪어가면서 시행착오를 거치기에는 이 상황이 너무 거대하고, 이 문제가 너무 심각하고 치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쓰다보니 영어 표현 하나에서 출발해 인공지능에 대한 비판까지 넘나들며 좀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역시 즉흥적으로 쓰는 글에는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최근에 읽은 책들과 영화 이야기도 쓰려고 남겨둔 메모들이 있는데, 과연 언제 또 자판을 두드릴 것인가? 올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어느 종교에서 신의 아들로 여기는 어떤 이의 생일이라는 날이 다가온다. 사람들이 왜 그날을 기념일로 여기며 즐기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뭐 상관없다. 이것도 그냥 받아들여야 할 사회현상일테니.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조기교육을 시켰다.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라고 부르는 날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이 아니며, 산타는 존재하지 않으며, 빨간 색 로고를 가진 아주 유명한 음료수 회사가 만들어 낸 이미지를 전 세계 사람들이 그냥 따르고 있는 거라고. 겨울에 교회마다 화려하게 불을 밝혀놓는 저 조명에 엄청나게 많은 전기를 쓰고 있고, 그 전기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내뿜은 온실가스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인류는 멸종할 거라고. 우리 아이들은 산타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아주 편안하게 받아들였고, 겨울에 길가다 마주치는 교회의 화려한 조명 장식을 보면 왜 저런 짓을 하냐고 저건 미래 세대에 대한 범죄라고 화를 냈다. 가끔 미디어에서 보면, 어린이들에게 산타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지켜주는 것을 인류애 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써가며, 어른들이 꼭 배려해줘야 하는 덕목처럼 포장하던데, 너무 웃기고 멍청한 짓이다. 왜 우리가 거대 기업이 만들어 낸 그 이미지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아니 백번 양보해서 산타 클로스 라는 실재했던 성인의 이야기를 잘 전파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시각적으로 만들어진 그 산타 말고 정말로 고증이 잘 된 현실적인 산타 이야기라면 그것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이 믿고 있는 그 산타는 아니다. 크리스마스의 산타 클로스 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과 그 이야기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다는 망상에 빠진 상황을 지켜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걸 착각하는 것이 인류애라면 나는 인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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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2-24 1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구글에서 기사가 나왔는데 이제는 실시간으로 제미나이가 통역을 해준다고 하네요.이제는 힘들여서 영어공부를 할 필요가 없을 듯 싶습니다.실시간 통역이라니 과거 어학 공부하기 싫어하더 학생들이 꿈꿨던 것들인데 이제는 정말 현실에서 가능하게 되었네요,

감은빛 2025-12-24 19:43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이야기는 들었어요.
저는 인공지능을 통한 실시간 통역이 가능한 세상이 되어도
어학공부 혹은 외국어 익히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인공지능이 엉뚱하게 옮겨도 알 수 없을테니까요.

게다가 저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저 여러 외국어를
조금씩 익혀보는 것이 재미있어서 배우는 것이라서 더 상관이 없을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25-12-24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오래전에는 야구를 좋아했는데 어느 시점을 계기로 안 보게 되었네요. 삼성 팬이었다가 김재박의 유니콘스로 넘어가고 그 팀이 해체되면서 접은 것 같네요.

챗지피티 초기에는 시대에 뒤떨어지기라도 한 듯 이것 저것 물어보고 공부도 하고 했는데 요즘 느끼는 것은 엄청난 전기를 써 가며 물어볼 만큼 궁금한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감은빛 2025-12-30 11:55   좋아요 0 | URL
그 시절 현대 유니콘스는 엄청난 명문이자 강팀이었죠. 저는 한창 바쁘게 정신없이 살았던 20년 가까이 야구를 거의 보지 못하고 그냥 간간히 소식만 접하고 살았었는데, 작년부터 다시 야구를 보기 시작했어요. 한번 야구 팬은 아무리 멀어져 있어도 언제나 야구 팬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잉크냄새님처럼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정말 별것도 아닌 것들, 특히 인공지능이 검색으로 알아낼 수 있는 성질이 아닌 질문들도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아이들에게 보낸 과거 쓴 글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13년 전에 썼던 눈오는 날에 대한 글. 다시 보니 제목을 [빙판길]이라 적었더라. 그 [빙판길] 글을 아이들과 셋이 대화하는 방에 보내봤다. 아빠가 눈을 보고 글을 하나 쓰다가 아주 옛날에 그러니까 13년 전에, 썼던 글을 보게 되었는데, 너희들 어릴때 이런 날이 있었다고 시간 나면 한번 읽어보라는 투로 툭 던지듯 보냈다.


다음날 작은 아이가 먼저 반응했다. 그 글 말미에 작은 아이를 한 팔에 안고, 다른 한 손으로 큰 아이 손을 잡고 빙판길을 걸으며, 작은 아이가 그새 많이 자라서 무거워졌다는 표현이 적혀 있었다. 녀석은 그 표현이 마음에 걸렸던 것인지, 자기가 겨우 2살에 무거웠다는 걸 가장 먼저 적었다. 만으로 2살이고, 우리 나이로 3살이었다. 그냥 무겁다고 쓴 것이 아니라, 빙판길에서 양손을 모두 아이들을 붙들고 가며 아마 나도 모르게 힘이 딸렸던 느낌이 들었을 것이고, 그걸 아기가 그새 더 자라서 무거워졌네 하는 방식으로 썼던 것인데, 아이에겐 그런 맥락이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저렇게 아기였을 때에도 많이 먹어서 무거웠구나. 하는 그런 생각만 들었겠지. 이걸 대화방에 글로 남기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나중에 만나면 설명해 줄 예정이다. 큰 아이는 그 글 마지막 즈음에 아침 등교길 교문 근처에서 결국 빙판길에 미끄러져 넘어졌고 울었다는 내용에 가장 먼저 반응했다. 자신이 아침부터 교문 앞에서 엉엉 울었었구나 하고 생각했겠지. 확실히 누구나 자신에 관한 내용이 가장 눈에 잘 띄고, 거기에 더 잘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한참 후에 큰 아이는 자신과 비교하며 아빠가 나보다 에세이 스타일의 글을 훨씬 더 잘 쓴다며 놀라워했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었을 때, 예고 문창과를 가고 싶다고 해서 애들 엄마가 글쓰기 과외를 시킨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한두번 뭘 어떻게 배우냐고 묻고, 아이의 대답을 듣고, 아빠가 볼 때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피드백을 줬던 적이 있었다. 글 선생을 못 믿어서 참견을 했다기 보다는 글이란 것 자체가 무조건 잘 쓰는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당장은 시간에 쫓겨 예고 입시를 준비해야 하니 선생에게 급하게 배우는 것이지만, 앞으로 긴 시간 글을 쓰며 살아갈 인생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였다. 암튼 그 후로 아이는 예고에 다니는 동안 종종 나와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아이가 자신이 쓴 시를 내게 보여주지 않고, 학교에서 실습으로 쓴 산문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게 되었다. 아마 아이가 이런저런 백일장에서 상을 타오기 시작하며 그랬던 것 같다. 지금 대학교 문창과에 다니면서는 아마 아예 아빠와 그런 대화를 나눴던 일들을 기억 못 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사실 에세이와 같은 글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 잘 쓰고 못 쓰는 걸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그냥 누구나 자신의 진솔한 삶 이야기를 적으면 되는 일이니. 아이와 비교해 내가 더 잘쓴다는 표현은 그래서 맞지 않다. 그저 내가 아이보다는 이런 글을 훨씬 더 많이 썼기 때문에 좀 더 자연스럽게 쓸 수 있을 뿐. 아이는 아마 문창과에 다니는 나보다 우리 아빠가 더 글을 잘 쓰네. 하고 생각한 것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요 건도 대화방에 글을 남기기보다는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예전에 블로그에 이런저런 잡다한 삶의 흔적들을 두드려 놓은 것도, 지금 이렇게 이 알라딘 서재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주저리 주저리 두드려 놓는 것도 모두 글 쓰는 일 그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가 일부러 시키지 않아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오래 전부터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블로그에 남겼던 많은 글들은 블로그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모두 사라졌다. 아마 서비스 종료 전에 언제까지 내용을 옮기라는 안내가 있었을텐데, 그때 바빠서 모르고 지나쳤고, 그 많은 내용들을 하나도 저장해두지 못하고 날렸다. 그 후로 가끔 이 알라딘 서재에 일상의 이야기들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끔 드는 생각은 언젠가 아이들이 이 서재에 대해 알게 된다면 과연 아빠의 잡다한 글들을 읽어볼까? 하는 궁금증이다. 큰 아이는 아마도 나처럼 평생 글을 쓰며 살 것 같으니까 읽을 것 같다. 작은 아이는 어떨까? 궁금해서 읽어보긴 하겠지만, 양이 워낙 많을테니(알라딘에 자주 들어오지도 않고 아주 가끔씩만 써도 이렇게 많기는 하구나.) 다 읽지는 못하겠지. 하긴 그렇게 보면 큰 아이도 본인 일상이 있을 테니 짧은 시간에 다 읽지는 못 하겠구나.


어쩌면 나이가 더 들어 내가 아이들에게 이 서재의 존재에 대해 말해줄 날이 올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죽고 나서 우연히 이 서재를 발견할 수도 있고, 어쩌면 영영 아이들이 이 서재를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주 가끔 아이들 어렸을 때 내가 썼던 글들, 그 중에서 좀 재미있을만한, 추억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골라 아이들에게 툭 던져주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한두번 그렇게 보내보면 아이들이 아빠는 이걸 어디서 찾아서 주는 거예요? 하고 궁금해 할 수도 았고, 아닐 수도 있겠지.




몇 해 전이었던가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에 대해 동네 언니들이 쓴 책이 나왔을 때, 그 출판기념회 이야기를 이 서재에 썼었다. 그 책의 리뷰는 아니었고, 그냥 표지만 집어넣었었는데, 그 책의 정보 페이지에서 내 글을 찾아 읽은 동네 언니들이 생겼었다. 감은빛 이란 덧이름은 동네에서도 쓰는 거라 당연히 나라는 걸 알았을 그 언니들이 내 서재에서 딱 그 글만 읽지는 않았고, 그 글 전후로 내가 쓴 글들도 읽었을 것이다. 어떤 분들은 더 많이 과거까지 거슬러 가며 읽었을 것이고. 그래서 한동안 내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많이 오르내렸다고 들었다.


훨씬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자주 쓰지는 않았지만, 내가 쓴 서평이나 글 덕분에 신간 홍보가 된다고 선배 영업자들이 신간이 나오면 나에게 책을 쥐어주며 간단히 소개 좀 해달라고 부탁했던 적도 있었다. 어떤 경우엔 반대로 내가 먼저 책을 사서 읽고 쓴 글을 나중에 그 출판사 영업자가 알게 되어 고맙다고 전했던 적도 있었다. 어느 경우던 내가 출판사나 사람을 보고 일부러 어떤 특정한 책을 소개한 적은 없었다. 무조건 내가 마음이 동하는 책이어야만 소개했었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나는 알라딘에서 큰 영향력이 없는 그저 일개 독자일 뿐이라 내 소개가 어떤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그닥 없다. 


이렇게 현실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이 이 서재를 방문했다가 내 존재를 알아보고 나중에 이야기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어떤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경우도 있었고, 특정한 주제로 검색하다가 들어왔다는 경우들도 있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책으로 걸리는 경우들이 사실 가장 흔한 경우였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책 이야기 외에 내 일상 이야기도 읽었고, 그에 대한 느낌이나 상황 등에 대해 내게 물어보거나 조언을 하기도 했었다. 


내가 이렇게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두드리는 일이 어떤 식으로 현실에서 영향을 주는 지를 생각하면 재미있기도 하다. 내가 비록 혼자 단행본을 내지 못해(공저자로 참여한 책이 두 권 있기는 하지만) 작가라고 부르기는 민망하지만, 작가로서 독자를 상정하고 쓴 글이 아니라 그저 글을 쓰고 싶어 이렇게 두드리는 것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그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글도 언젠가 누군가 나를 아는 사람이 읽게 되겠지. 그럼 또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날이 춥다. 겨울이라 추운 것이 당연하지만, 그뿐 아니라 지금 나를 둘러싼 여러 복잡한 상황들이 나를 더울 춥게 만든다. 계절의 겨울 말고 나를 둘러싼 상황으로서의 겨울은 언제 끝나려나? 얼른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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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10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 쓴 제 글을 아직 들킨 적이 없어서...저를 아는 누군가가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ㅎㅎ

감은빛 2025-12-24 19:38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그게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르겠지만, 제 경우에는 썩 그리 좋지는 않더라구요. ㅎㅎㅎㅎ

희선 2025-12-12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거나 글을 보여주는 거 괜찮을 것 같네요 자신은 잊어버린 일이기도 할 테니... 같은 시간을 보내고 다르게 기억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누군가 감은빛 님 글을 찾기도 했다니, 그런 일도 있군요 우연이라 해도 그렇게 찾았을 때 반가울 것 같기도 해요 감은빛 님 글을 찾은 사람이...

감은빛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감은빛 2025-12-24 19:40   좋아요 0 | URL
이 글에 썼던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과거 글을 보여준 첫번째였어요.
그날 이후로 가끔 글을 보내고 있어요.
알라딘에 제가 글을 쓴 것이 워낙 띄엄띄엄이라,
북플 과거 오늘 코너에 제 글이 없는 날이 더 많고,
간혹 있어도 아이들과 공유할만한 내용이 아닌 경우도 있어서요.

희선님, 늘 고맙습니다!
 

어제 사무실에서 몇가지 일을 처리하다가 잠시 짬이 나서 여기 서재에 글을 조금 쓰고 있었다. 전날 내린 눈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린 시절 부산에서 눈을 거의 구경도 못 해보고 자란 것부터 군대에서 평생 본 눈보다 훨씬 더 많은 눈을 단 몇 시간만에 본 내용을 먼저 쓰기 시작했다.

군대 이야기를 짧게 쓰고 보니 그 옛날 혹한기 훈련에서 새벽에 자고 있던 A형 천막들이 거의 대부분 폭설에 주저앉아 급하게 철거하고 폭설에 고립되기 전에 산에서 내려가 부대로 복귀행군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너무 추웠고, 눈이 너무 많이 내렸고, 너무 힘들었다. 그때 나는 기관총 사수였고, 기관총은 소총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기관총은 공용화기라서 행군시에 사수가 혼자 들지 않고 분대원들이 릴레이로 이어들게 되어 있다. 분대원들은 개인화기인 소총 외에도 또 예비총열과 탄통 등을 나눠들어야 한다. 나는 그날 너무 힘들었지만, 다른 분대원들(부사수, 탄약수 등)도 마찬가지로 힘들기에 그냥 혼자 기관총을 계속 메고 걸었었다. 그날의 기억들이 떠오르자 그것도 쓰고 싶었다. 그러다가 언제적 군대 얘기를 쓸데없이 쓰나 하는 생각에 그만두고 쓰던 걸 모두 지웠다.

그때쯤 지인이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해서 노트북을 덮었다. 결국 쓰려던 글은 쓰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북플에 접속해보니 과거 오늘 쓴 글에서 2012년에 쓴 글을 발견했다. 놀라웠다. 13년 전에 쓴 글도 눈에 대한 글이었고, 그 앞부분은 어제 내가 짧게 쓰다가 지운 내용과 완전히 똑같았다. 어린 시절 부산에서 자라서 거의 눈을 보지 못했던 것, 군대에서 정말 지겹도록 눈을 치웠던 것. 내용만 같을 뿐 아니라 문체와 분위기도 거의 같았다. 13년의 시간을 두고 쓴 글임에도 같은 사람이 본인의 경험을 쓴 것이니 내용도 글을 쓰는 방식도 같을 수 밖에 없구나. 그런데 아니 그래도 무려 13년이란 시간이 지나 그냥 떠오르는대로 쓴 글이 어떻게 거의 똑같을 수가 있을까.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그만큼 나는 발전이 없었다는 뜻일수도 있겠고, 늘 그렇게 변함없이 살았다는 뜻일수도 있겠다.

아, 게다가 짧게 군대에서 눈 치운 이야기를 쓴 후에 2010년 첫 출근날(아마도 1월 4일)에 내렸던 기록적인 폭설 이야기를 쓰려고 머리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2012년에 내가 쓴 글이 딱 그랬다. 그 내용이 다음에 나오더라. 이거 내가 과거에 쓴 글과 거의 완전히 같은 글을 13년의 시간차를 두고 다시 쓸 뻔 했다.

물론 중간부터는 내용이 달랐다. 당시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아침에 작은 아이를 한 팔에 안고, 다른 손으로 큰 아이 손을 잡고 눈이 내린 후 얼어붙은 빙판길이 되어버린 비탈길이자 골목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다가 미끄러질 뻔하고 다칠 뻔한 내용들이었다. 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큰 아이를 학교로 데려다주다가 교문 근처에서 결국 아이가 미끄러지면서 무릎을 찍고 울어버린 내용이었다. 나는 아이가 미끄러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올리며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했으나 간발의 차로 아이는 먼저 무릎을 다쳤다. 우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간신히 달래어 학교에 들여보내고 나서 시간을 보니 이제 나는 일터에 지각할 상황이었다는 내용이었다.

정확히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뿐 아니라 해마다 겨울마다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나이와 학년이 조금씩 바뀔 뿐 늘 그렇게 아이들을 안고 걸려서 데려다주고 데려오곤 했었다. 하루종일 해가 들지 않아 겨울 내내 녹지 않는 빙판길이자 경사가 급한 비탈길을 그렇게 오르내렸었다.

이젠 아이들이 자랐고, 아이들과 함께 살지 않으니 그 내용으로 글을 쓸 일은 없어졌다. 그 시절 당시에는 참 힘들었을텐데 지금은 그저 그 때가 그립다. 아직 어렸던 귀여운 아이들이 다시 보고 싶지만, 그건 기억과 사진으로만 가능하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기억 어딘가에 묻어둔 그리운 어떤 사람도 마찬가지다. 평생 그리워하는 일만 가능할 뿐 현실에서 다시 그를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어제의 내가 중간 이후에 쓰려고 했던 눈에 대한 이야기를 무었이었을까? 하루가 지나니 그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아니 어렴풋이 한 두가지 키워드는 떠오르기는 하는데, 거기에 살을 붙여 이야기가 바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날이 춥고, 몸도 춥고, 마음도 춥다. 과연 이 겨울을 무사히 지날 수 있을까? 겨울잠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오늘 잠 들었다가 내년 봄에 날이 풀릴 때쯤 깨어나면 안 될까? 제발 내일 눈을 뜨면 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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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12-06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따뜻한 나라로 여행 한 번 오셔야겠네요..

감은빛 2025-12-10 17:21   좋아요 0 | URL
아, 정말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가고 싶어요.
이 짜증나고 복잡한 상황 다 잊어버리고 맘껏 놀고 싶은 마음입니다.

잉크냄새 2025-12-07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장에 나타나는 개성, 어떤 사건을 계기로 살아나는 기억도 지문과 같나 봅니다.
따뜻한 겨울 나기를 바랍니다.

감은빛 2025-12-10 17:22   좋아요 1 | URL
지문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콕 박히네요.
잉크냄새님 말씀 덕분에 아주 조금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5-12-09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쓰려고 구상했던 것이, 북플에 이미 십 몇 년 전에 썼다는 문구가 뜨는 거예요. 같은 소재로 내가 이미 썼다고? 하며 놀랍니다. 참 신기했답니다. 또 전혀 기억에 없었는데 북플에 뜨는 문구를 보고 클릭해 들어가면, 내가 이런 글도 썼다고? 하고 놀랄 일이 있어요. 북플 기능, 참 좋습니다.^^

감은빛 2025-12-10 17:31   좋아요 0 | URL
페크님도 그런 경험이 있으시군요. 그럼 저만 그런 것은 아니네요.
갑자기 동지를 만나 안도가 되는 느낌입니다.
저는 좀 많이 놀랐거든요.
사실 제가 쓰는 글이 좀 뻔하기는 한데,
이렇게 긴 시간 차를 두고, 이렇게 똑같은 경우는 처음이라서.
 

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당연히 마약 같은 건 아니고, 진통제와 감기약이다. 둘 다 먹으면 무지 졸리다. 11월부터 몇가지 상황들이 겹치면서 몸과 마음이 무지 힘들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고, 나도 모르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이 마음의 상처라는 것이 참 알다가도 모르겠는 오묘한 것이더라. 다 늙어서도 이렇게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할 줄은 몰랐다. 그 와중에도 늘 굳건하게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힘든 시간을 어렵게 버텨가고 있다.

지난 주는 거의 집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하고 다 지나가버렸다. 월요일, 중요한 회의와 몇가지 일처리를 위해 사무실에 나가야 했는데,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얼굴 통증이 심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씻고 나갈준비를 마치고 괄사로 통증 부위를 부드럽게 마사지하며 통증의 추이를 살폈다. 극심하게 아프다가도 또 금방 괜찮아지기도 하고, 점점 더 심해지기도 하는데, 밖에서 갑자기 통증이 심해지면 너무 힘들어서 통증이 심한 날엔 밖에 나가는 일 자체가 두렵다. 통증은 나아지지 않고 더 심해졌다. 사무실 나가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통증 때문에 뭔가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진통제를 먹고 자려고 했다. 내가 먹는 진통제는 먹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엄청 졸려서 금방 잠에 빠져든다. 사고 이후 긴 시간동안 먹었는데, 일상적으로 먹는 것은 아니고 통증이 무지 심한 날에만 고민 끝에 먹는다. 한동안은 통증이 좀 있어도 약을 안 먹고 일상생활을 좀 해보려고 했고, 실제로 오랫동안 약을 안 먹고 지냈었다. 약을 먹고 급하게 두어 명에게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통증 때문에 지금 약을 먹었고, 오늘 회의에 못 나가서 미안하다는 말과 나중에 회의 내용과 해야할 일들 챙기겠다는 말을 적어 보냈다.

화요일, 중요한 서류를 제출하러 어딘가 방문해야 했다. 이날도 새벽부터 통증이 있었다. 일부러 약을 먹지 않고 버티다가 일단 서류를 내러 갔다. 담당자 말로는 3층에 와서 본인을 찾으면 된다고 했는데, 3층에 들어서니 안내하는 사람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라고 했다. 대기자가 많았고, 상담하는 사람은 적었다. 그리고 한 사람 당 상담시간이 엄청 길었다. 나는 딱히 상담할 용건이 아니고 서류만 제출하면 되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깝고 싫기도 했고 조금 약해졌다가 은근히 세지기를 반복하는 통증이 신경쓰여서 그 사람 많은 곳에서 기다리기가 힘들었다. 조금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직원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그 직원은 알아봐주겠다고 했고 한참 후에 나와 통화했던 담당자가 곧 나올거라고 전해줬다. 여기까지도 제법 긴 시간이었는데, 대기자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만약 그냥 번호표 순번대로 기다리고 있었다면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렸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담당자는 한참 더 지나서 나타났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서류 제출은 금방 끝났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으며 고민했다. 사무실을 나갈 것인가? 아니면 집으로 갈 것인가? 통증이 좀 오락가락 하고 있는데 억지로 사무실을 나갈 수는 있지만, 긴 시간 머물기는 부담스러운 상황. 아무래도 무리하는 건 좋지 않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버스 안에서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수요일, 이날도 중요한 회의가 있었고, 지난 이틀동안 놓진 상황들 때문에 꼭 얼굴을 보고 논의할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통증은 지난 이틀보다 더 심했다. 그때는 좀 무리가 되더라도 참고 버티려면 어찌어찌 버틸 수준이었는데, 이날은 오랜만에 참기 어려울 지경의 통증이었다. 이건 고민할 수준이 아니어서 그냥 약을 먹고 잠들었다. 하나 실수는 지금 약 먹는다는 그래서 회의 참석이 어렵다는 연락을 못한 것. 거기까지 생각할 여력도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상황들은 당연히 급여를 받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급여를 받고 출근하는 입장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월요일과 수요일의 중요한 회의들은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다른 두 개 조직의 일이다. 나는 평생 이렇게 무급으로 여러 조직에서 활동하며 살았다.

수요일에 내가 미리 연락도 하지 않고, 회의 시간에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몇 통의 전화와 메시지가 와 있는 걸 나중에 확인했다. 다음날인 목요일에는 종일 외부에서 태양광발전소 부지 조사하는 일이 예정되어 있었다. 요건 단기 프로젝트 같은 성격의 일로 일당을 받고 참여하고 있다.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얼굴 통증보다 목이 더 심하게 아파서 좀 놀랐다. 그러고 보니 코도 막히고, 온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것이 감기몸살 증상이었다.

평소 감기에 잘 걸리는 편은 아니다. 가장 최근에 걸린 것이 아마 작년 이맘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먹고 있는 감기약을 그때 샀었다. 자주 걸리지는 않지만, 한번 걸리면 좀 고생했던 것 같다. 이건 어지간하면 약 안 먹고 버텨서 지나가고 싶은 내 고집 때문이다. 진통제도 어지간하면 안 먹고 버티는 편이지만, 감기약도 마찬가지다. 내가 급하게 꼭 할 일이 있다면 약을 먹고 빨리 나으려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는 약 없이 하루이틀을 지나보는 편이다. 그 사이 저절로 나으면 정말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때 약을 먹는다.

목요일에는 얼굴 통증과 감기 몸살 증상이 겹쳐서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도저히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이런 날에 잠으로 도망쳐야한다. 감기약은 먹지 않고 진통제만 먹고 잠들었다.

금요일, 얼굴 통증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이틀동안 강도가 심했다가 조금 나아졌는데, 통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조금 나아진 정도만으로도 기분이 꽤 좋아졌다. 살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감기는 더 심해졌다. 이때의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계속 통증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약 먹고 잠자는 일만 반복하며 며칠을 보냈는데, 왜 감기에 걸린 것일까?라는 문제였다. 도대체 왜?

금요일 낮에는 진통제도 감기약도 없이 집에서 몇 가지 간단한 일들을 처리했다. 금요일 저녁이 되자 목이 붓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작년에 여유있게 사놓았던 감기약을 찾아서 먹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그 경계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휙 지나갔다. 열이 심해서 오한이 오기도 했고 목이 너무 아팠고 콧물이 줄줄 흐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목감기 약을 먹다가 중간에 코감기 약으로 바꿨다. 어제 월요일 오후쯤에야 감기약이 내 감기 증상을 이겨낸 느낌이었다. 감기가 심할 때 하나 장점은 덕분에 얼굴 통증에 대해서는 잊을 수 있다는 것. 감기기운이 조금 잡히는 느낌이 되자 다소 통증이 신경쓰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한번에 두 알씩 먹던 감기약을 내 맘대로 한 알만 먹었다. 약을 정량대로 먹으면 또 졸려서 오늘 하루도 아무것도 못 할것 같아서. 오늘 잘 쉬고 내일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불 속에서 책을 읽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적게 먹어도 감기약이 졸린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졸다가 깨기를 수십번 반복했다. 아니 아예 자려고 눈을 감으면 또 잠이 달아난 느낌이고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이 아까워 책을 집어들면 어느순간 나도 모르게 졸고 있다. 그래서 다시 자려고 누으면 또 정신이 또렸하다. 이게 몇 번째 반복인지 모르겠다.

일주일 정도 두문불출하며 약에 취해, 그러니까 약 기운 때문에 잠에 빠져들기를 반복하며 살다보니 짧은 꿈들을 엄청 많이 꾸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도 꿈 내용을 잘 기억하는 편이고, 가끔 꿈 속에서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편인데 요 며칠 꾸었던 꿈들 이야기를 쓰려고 이렇게 폰을 두드린다.

1. 꿈 속의 시간
잘 때 유튜브로 음악을 틀어놓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튜브는 재생목록을 만들지 않아도 알고리즘이 알아서 다른 음악을 이어서 선택해주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밤새 음악이 계속 나온다. 아마 내가 평소 즐겨듣는 스타일을 알고리즘이 반영하는 것 같다. 영미권 팝 음악을 며칠간 죽 들었다면, 내가 재생목록까지 만들어두고 주기적으로 듣는 8~90년대 팝음악들이 주로 나오고, 중국 노래를 한참 들을 때에는 가수 이름도 노래 제목도 읽기 어려운 낯선 중국 노래들이 계속 이어졌다. 작년에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일본 노래들을 꾸준히 듣고 있는데, 확실히 최근에는 영미권 팝송들도, 중국 노래들도, 가끔 듣던 스페인, 프랑스, 독일, 인도네시아 음악들도 다 밀어내고 거의 절대 다수가 일본 노래들이 알고리즘을 차지하게 된 것 같다. 아, 이주전쯤부터 예전에 즐겨보던 인도영화들의 맛살라 장면들, 즉 신나는 음악에 맞춰 단체로 춤추는 장면들을 유튜브로 찾아보곤 했는데, 그래서 가끔 인도 음악으로 이어지기도 하더라.

약을 먹었던 그렇지 않고 자연스레 잠들던 상관없이 잠이 오면 딱 느낌이 온다. 이건 곧 잠에 빠져들기 직전이다. 하는 느낌. 그때 태블릿을 열어서 유튜브를 켜고 음악 하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바른 자세로 누워 눈을 감는다.

꿈 속에서 나는 누군가와 만나 대화를 하고, 어딘가로 긴 시간 운전을 해서, 어떤 식당을 방문해 회를 먹고 있었다. 아마 일부러 바닷가 횟집을 찾아간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화 상태는 누군지 기억나지 않지만 여성이었다. 어쩌면 꿈 속의 나는 데이트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참 대화가 이어지는 도중에 내가 실수로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떨어진 젓가락을 주으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실내에 앉아있었던 내가 갑자기 자갈이 깔린 해변 야외 테이블로 옮겨졌다. 순식간에. 그리고 눈 앞에 있었던 대화상대가 사라졌다. 아니 식당에 있던 다른 손님들과 종업원들도 모두 사라지고 나와 내가 앉아있던 의자 그리고 테이블만 남았다. 놀라서 주위를 돌아보는데 큰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곧 저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잠에서 깼다.

딱 깨자마자 귀로 들리는 음악을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닫아두었던 테블릿을 열어보았다. 분명 잠들기 직전에 요즘 자주 듣는, 그래서 유튜브를 켜자마자 맨 위에 떴던 타무라 메이미의 [無形有形] 이란 곡을 틀어놓고 눈을 감았었다. 그리고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는데, 아직 그 곡이 끝나지 않았다. 채 5분도 되지 않는 노래가 끝나기 전에 나는 잠에 푹 빠져들었다가 금방 깨버린 것이다. 분명 꿈 속에서 나는 긴 시간을 보냈었다. 어떤 여성을 만나 운전해서 바닷가로 갔었다. 운전한 시간만 서너시간 이상이었고, 회를 먹으며 대화한 것도 꽤 긴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게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의 잠이었다고.

2. 아빠는 어디 계신가요?
사실 이 글은 이 꿈 이야기를 쓰기 위해 시작했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 꾸었던 꿈이었고, 깨자마자 이건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꿈 속에 나온 집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과는 달리 매우 넓었다. 그런데 집이라기 보다는 창고 같기도 하고, 아니 교실 같은 느낌도 좀 있었다. 클릭해서 본 적은 없지만 폐교를 구입해서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같이 살고 있다는 영상의 썸네일을 본 적이 있었다. 꿈 속의 집이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공간이 넓은데 어디가 어딘지 좀 정신이 없고 산만한 곳. 결정적으로 출입문이 그 옛날 교실의 미닫이 문이었다.

나는 집에 혼자 있었다. 노트북을 여러대 켜놓고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뭘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생각해보자면 여러 노트북을 켜놓고 그때 그때 생각나는대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노트북 하나로는 소설을 쓰던 중이고, 또 다른 노트북은 시를 쓰던 중, 또 다른 것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면. 뭐 노트북은 하나만 있어도 이걸 다 할 수 있는데,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데, 마치 노트북이 모자라서 다 못하는 것처럼 연출된 장면 같네.

암튼 그때 누군가 미닫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작업하던 노트북들을 그대로 두고 문이 아닌 천으로 된 막을 열어 젖히며 내 방을 나섰다. 문을 닫으며 신발을 벗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오셨어요? 라고 인사를 건네며 아버지 손에 든 짐을 받으러 다가섰다. 뭔가 무거운 것이 든 종이봉투였다. 아버지는 뭔가 말씀하시며 마치 거실같은 공간으로 올라서셨고, 내가 짐을 받아들려고 내민 손을 말없이 거절하고 아마도 부엌인 것 같은 공간으로 향하셨다. 우리는 선 채로 몇마도 짧은 단답형 대화를 나눴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고 나는 전화기를 찾아 아까 노트북들이 있던 공간으로 돌아갔다. 전화기는 있어야 할 곳에 없었나보다. 벨은 계속 울리는데 나는 전화기를 찾을수 없었다. 벨이 계속 울리자 저쪽에서 아버지가 한 소리 하셨다. 안 받고 뭐하냐고. 나는 네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하고 계속 전화기를 찾았지만, 전화가 저절로 끊어질 때까지 찾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노트북을 살피다가 내가 하던 작업들이 저장되지 않은 채 사라져버린 것을 발견했다. 아, 저 순간의 감정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저런 일을 워낙 많이 겪었으니. 뭐라고 불러야 하나? 빡침? 꿈속의 나는 순간 너무 화가 나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은 내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혀있었고, 나는 폰을 열었다. 엄마였다.

엄마는 요며칠 서울은 무지 춥다는데 조심하라고, 옷 좀 따시게 입고 댕기라고 하셨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전화로 외삼촌 이야기를 비롯해 몇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나는 통화가 길어지자 무선 이어폰을 꺼내어 귀에 꽂고 폰은 다시 뒷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노트북 중 하나로 돌아가 마우스로 뭐가를 찾았다. 내가 건성으로 듣고 있다는 걸 깨달은 엄마는 바쁘면 끊자 했고, 나는 이따 다시 전화드릴게요 라고 하고 통화를 마쳤다.

한참 노트북을 만졌지만 날아간 작업은 결국 살릴수 없다는 걸 깨달은 나는 물을 마시러 주방으로 향했고, 아버지가 뭔가 음식을 만들려고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아~들은?˝ 이라고 아이들이 언제 집에 오는지 물었고, 나는 ˝몰라요. 이따 오겠죠.˝ 하고 건성으로 답했고, 아버지는 ˝다 오면 같이 먹자.˝ 하고는 다시 뭔가를 만드는데 집중하셨다.

나는 잠시 집안 여기저기를 치우고 있었다. 뭔가 치워도 치워도 정돈되지 않는 이상한 집이었다. 그때 다시 폰이 울렸다. 무선 이어폰을 아직 끼고 있었기에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다시 엄마였다. 엄마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중요한 일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바로 말씀을 못하고 한참 다급한 숨소리만 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니 잘 들으래이. 있잖아.˝ 하고 다시 엄마가 말씀하셨는데,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급한 상황인데, 무슨 뜸을 그리 들이냐며 채근하는 듯한 느낌의 큰소리를 내셨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분명 전화기 저쪽에서 들렸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개수대 앞에 서서 서툰 몸짓으로 뭔가 음식을 만들려고 애쓰는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이쪽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꿈속의 나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목소리를 줄이며 아까 내 공간으로 돌아갔다. 나는 목소리를 줄여 속삭이듯 그러나 다급하게 물었다. ˝엄마, 아빠 지금 거기 부산에 계세요? 엄마랑 같이 있어요?˝ 엄마는 갑자기 뜬금없이 아빠 얘기는 왜 하냐며,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잘 들으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수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언성을 높였다. ˝아니, 아빠가 지금 우리 집에 있다고. 지금 요리를 한다고 주방에 있다고!˝ 그 말을 하면서 꿈속의 나는 깨달았다. 우리 아버지는 요리를 하시는 분이 아니다. 라면 정도를 끓이는 것을 제외하면 뭔가를 만드실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러니 여기 우리 집에 있는 아버지는 가짜이고, 진짜 아버지는 부산에 엄마 옆에 계시겠지. 근데 자꾸 아까부터 엄마가 중요한 얘기라고 하면서 말을 못하는 건 대체 무슨 얘기지?

나는 다시 엄마에게 여기 있는 아빠가 가짜인 것 같다고, 거기 잘 계시는지 물었다. 그런데 엄마는 ˝야가 와 자꾸 뜬금없이 아빠 얘기를 하노! 아이고 야야. 니 어쩔라고 이라노.˝ 마치 내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럼 내가 모르게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내가 모르게라고 하면 내가 기억을 잃었나?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있는 사이에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데 내가 인지를 못하는 건가? 짧은 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데, 주방으로 나가보니 가짜 아버지는 ˝누고? 뭔 통화를 그래 오래하노?˝ 라고 하셨다. 그럼 이건 내가 만든 환상인가? 이 환상은 왜 지금 이 시점에 내 앞에 나타난 건가?

나는 엄마에게 옆에 아빠 좀 바꿔 달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왜 갑자기 아빠를 찾느냐며 탄식만 하시고, 바꿔줄 마음이 없어보였다. 옆에 계시다면 엄마가 이렇게 하실 이유는 없으니 지금은 옆에 안 계신 것이 분명하다. 그럼 아까 내가 통화 중에 들었던 그 목소리는 또 뭐지? 그게 환청인가? 그럼 오히려 여기 계신 아버지가 진짜인가?

나는 그제서야 누구랑 통화하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엄만데, 아빠, 엄마랑 언제 마지막으로 통화했어요?˝ 라고 답하면서 물었다.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몰라. 너거 엄마한테 전화할 일이 뭐 있노˝ 하고 답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드르륵 미닫이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추위에 뺨이 빨갛게 변한채 서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모습이 언젠가 내가 사진으로 찍어두고 자주보는 겨울 사진과 똑같았다. 아이들이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있었다. 이때 나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꿈이라고 생각한 순간,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던 모든 상황들이 다 이해가 되었다. 나는 꿈에서 깨기 전에 다시 어려진 아이들을 안아보고 볼에 입을 맞춰보고 싶었다. 현실에서는 다시는 해볼 수 없는 일이니. 아이들을 향해 몸을 돌려 뛰어가려는 순간 다시 전화가 왔다.

잠을 깼는데 실제로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화면에는 스팸으로 의심된다는 문자가 나타나있었다.

3. 몇 개 국어까지 가능할까?
가끔 꿈에서 외국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원어민들의 말들을 쉽게 알아듣고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현실의 나처럼 잘 못 알아듣고 말도 떠듬떠듬 잘 못 한다. 어쩌다 꿈에서 외국어를 잘 했던 날에는 깨고 나서도 참 기분이 좋다. 며칠 전에 꾸었던 꿈에서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함께 어떤 시설에서 생활했는데, 각기 다른 여러 나라 언어들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꿈 속에서는 그게 당연한 일이라 못 느꼈는데, 꿈에서 깰 무렵 어떤 사건이 터지면서 지금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때 내가 지금까지 외국어를 너무 잘 알아들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 꿈 속에서의 내 생활은 마치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의 삶 같기도 했고, 전장에서 잡혀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외계인에게 잡혀 수용소에 갇힌 지구 상에 몇 남겨지지 않은 소수의 생존자였을지도 모른다. 왜 그 시설에 갇혀있었는지, 누가 우리를 가두고 통제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안에서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각 나라의 언어들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꿈 속의 나는 유난히 여러 말들을 잘 이해해서 언어 천재 소리를 들으며 주위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엔 단순히 언어 소통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주목을 받았던 것이 나중에는 거기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에도 해결을 요구받게 되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인데, 마치 내가 다 해결해줄 것처럼 기대하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모른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상황을 악화시켰고 결국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비참한 상황에 이르러 잠에서 깨어났다.

꿈의 뒷부분은 너무 허무하고 한심하고 짜증나는 상황이었음에도 꿈에서 깼을 때의 나는 앞부분의 나, 그러니까 여러 외국어를 능숙하게 알아듣는 내 모습이 좋았어서, 현실의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정말 그런 삶을 한번이라도 살아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려나.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꿈의 기억들은 더 있는데, 오늘은 여기서 줄여야겠다. 알라딘 서재에 정말 오랜만에 들어왔다. 여러가지 힘든 상황들을 좀 이겨내고 나면, 좀 더 자주 들어올 수 있겠지. 몸도 마음도 추운 이 상황을 잘 이겨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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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03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꿈을 꾸다 깨어 늦잠이라도 잔 듯 화들짝 놀라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의 꿈은 너무도 오래 이어져 며칠이 지나는 때도 있고 다시 든 잠에서 꿈이 연속극처럼 이어지는 때도 있더군요. 또 그런 날은 자주 깨어 피곤할 것 같지만 의외로 꿈 속의 시간 만큼이나 오래 휴식을 취한 듯 몸과 마음이 아주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도끼 자루 썩던 무릉도원의 꿈이 이럴까요.

감은빛 2025-12-05 18:01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정말 다양한 꿈이 있죠.
저도 마치 연속극처럼 이어지는 꿈도 자주 꾸는 편이고,
거의 비슷하게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데, 미묘하게 조금씩 다른 그런 꿈도 자주 꾸네요.

무릉도원의 꿈이라면 정말 깨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케틀벨 그리고 달리기


어제는 좀 일찍 잠이 들었다. 침대 위 벽쪽에 짐볼을 두고 거기에 기대어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악몽을 꾸었다. 우리 가족은 어떤 아주 넓은 집에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네 가족들, 우리 아이들과 애들 엄마와 내가 다 같이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3대가 다 모인 셈. 그런데 이 집에 지박령으로 추정되는 어떤 귀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혼자 있을 때 어떤 사건들이 벌어지고, 비명이 끊이지 않는 집이 되었다. 꿈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애를 썼던 것 같지만, 잘 되지 않았고 애들 엄마와 아이들은 집을 떠나 버렸다. 나는 너무 화가 나기도 하고, 또 슬프기도 하고 혼자 상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 나를 위로해주었다. 토닥토닥 어깨를 깜싸 안아 손으로 두드려 주었다. 갑자기 꿈이 멜로물이 된 것처럼 누군지도 모르는 그 여성에게 확 감정이 쏠렸다. 그러다 그 여성도 혼자 있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고, 집을 떠나버렸다. 갑자기 여동생네 가족들도 하나도 안 보였고, 부모님도 안 보였고, 그 넓은 집에 나 혼자였다. 가구도 하나도 없이 넓디 넓은 집에 덩그라니 혼자 남았고, 갑자기 나는 작아졌다. 한없이 작아지고 또 작아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아니고. 꿈 속에서 작아지는 일은 마치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발을 헛디디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잠에서 깼다.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참 애매한 시간에 깨버렸다. 식은 땀을 흘렸길래,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다시 자려고 누웠는데, 당연히 잠이 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어 언어 익힘앱을 열었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조금씩 하다가, 영어도 조금 하다보니 시간이 휙 지나갔다. 두시쯤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엔 6시쯤 깼다. 유트브를 켜서 음악을 좀 듣다가 뭔가 생각난 것이 있어서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자판을 두드렸다. 작은 방 책상에 노트북이 있으나 책상에 앉는 것이 너무 귀찮았다. 그냥 조금 불편해도 폰 메모장을 열심히 두드렸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문득 오늘이 금요일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지난 주부터 연휴라 시간 관념이 없어져 버렸다. 금요일 아침은 동네 언니들과 케틀벨 운동을 한다. 저번 주 금요일에 단체 대화방에 "혹시 10일 금요일에 나오실 분 계시면 미리 알려주세요." 라고 말씀드렸는데, 어제까지 아무도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모임 시간 1시간 전에 다시 메세지를 보냈다. "혹시 오늘 운동하러 나오실 분 계실까요?" 아마 대부분 여행을 갔거나 쉬거나 하시겠지. 주위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오늘도 쉬던데. 라고 생각하고 나도 침대에 누워 맘 편히 책이나 읽어야지 하는데, 전화가 왔다. 운동하러 나오시겠다는 언니 한 분. 그리도 또 가장 나이 많은 언니가 단체 대화방에 본인도 갈 생각이라고 올리셨다. 음, 나는 얼른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케틀벨 운동은 참 재밌다. 쉽고 간단하면서도 운동효과는 무척 좋다. 그래서 늘 케틀벨 운동을 추천하곤 했다. 우연히 하게 된 이 운동모임도 처음엔 좀 어색하기도 하고, 나로서는 제대로 운동도 못 하면서 시간만 뺏기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 준비운동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몇 가지 맨몸 운동으로 웜업을 하고 본격적으로 케틀벨 스윙을 했다. 자세를 꼼꼼하게 봐드리고, 몇 번 시범을 보여드리고, 각자 자율적으로 스윙을 하시라고 하고, 나는 운동공간에 있는 가장 무거운 케틀벨을 가져와 내 운동을 했다. 케틀벨 운동이 재밌는 것 중 하나는 여러 동작을 섞어가며 계속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양손 스윙(양손으로 하나의 캐틀벨 들기)을 하다가 한 손 스윙으로 바꾸고, 그 한 손 스윙을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가며 해준다. 이때 무거운 케틀벨을 오른손으로 공중에 던져놓고 빠르게 왼손으로 낚아채어 잡고 스윙 동작을 이어가는 것은 할때마다 짜릿한 쾌감을 준다. 혹시라도 케틀벨을 놓쳐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내 발위에 떨어뜨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던지고 받아내야 하는 동작이라서 더 흥분되고 재미있다. 그렇게 땀을 좀 빼고 나서 이번엔 좀 가벼운 무게의 케틀벨 두 개를 가져와 양손에 하나씩 들고 스윙을 시작한다. 나는 무거운 하나의 케틀벨을 들고 하는 스윙보다 조금 가벼운 케틀벨 두 개를 들고 동시에 하는 스윙이 더 재미있고 좋다. 이때부터 스윙과 클린과 클린앤 저크와 스냇치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원하는 동작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약 1시간 정도 케틀벨 운동을 마치고 헤어졌다. 나는 집에서 나올 때부터 케틀벨 운동을 마치면 곧바로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금요일 저녁엔 동네 사람들 중 시간이 맞는 사람들과 달리기를 한다. 어떨 때에는 두어 명이 나오고, 어떤 날에는 대여섯명 이상이 나오기도 한다. 나도 시간이 맞으면 참석하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저녁에 일정이 있었다. 요양보호사나 경비 노동자 등 주로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저녁에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가르쳐주는 무료 연속 강좌가 열리고, 거기에 보조강사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가야 했다. 이 노동자를 위한 야간 컴퓨터 교실은 10년 이상 이어져 오는 행사다. 오늘 저녁에 사람들과 함께 달릴 수 없으니 나는 아침에 달려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차피 케틀벨 한 시간 정도 해도 나에게는 크게 힘든 일이 아니니, 달리기 6~8킬로미터 정도는 달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실 케틀벨하러 갈 때에도 나는 매번 달리기를 한다. 약 1킬로미터 거리. 사람들과 함께 다시 웜업을 하기는 하지만, 어떤 운동이든 가장 좋은 웜업은 달리기다. 나는 1킬로를 달려서 충분히 웜업을 하고 다시 사람들과 만나서 맨몸운동으로 또 웜업을 한다. 오늘은 집에서 나설 때 비가 오는 듯 마는 듯 내렸다. 운동장소까지 달려가야 하니 우산을 펼 수 없어서 접은 채로 들고 뛰었다. 케틀벨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데, 빗발이 좀 거세졌다. 조금 고민이 되었다. 그냥 집에 가서 씻을까? 그럼 오늘 달리기는 못할 확률이 아주 높다. 연휴 내내 비 때문에 달리기 타이밍을 잡지 못했었다. 까짓거 이 정도 비는 맞으며 달려주자. 지난 대회에서 그 거센 비를 맞으면서 10킬로도 달렸는데. 오늘은 딱 6만 달리자 하는 마음으로 자꾸만 집으로 향하려는 발걸음을 돌렸다.


다행히 달리기를 시작하니 빗발이 다시 약해졌다. 열을 식혀 주어서 딱 달리기 좋은 정도로 비가 내렸다. 근데 바람은 좀 많이 불었다. 이게 맞바람인데 의외로 달리는데 영향을 줄 정도로 강했다. 그래도 나는 기분 좋게 달렸다. 대회도 아니라서 기록 신경쓸 필요도 없고 평소 속도보다 천천히 여유있게 달렸다. 딱 2.5킬로미터 지점까지. 거기서부터 갑자기 배에 조금 약하게 통증이 왔다. 단거리 달리기를 포함해 5년 이상 달리기를 하면서 배가 아픈 적은 거의 없었다. 밥을 먹고 2시간 이내에 달리면 꼭 배가 아프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어서 나는 절대 달리기 2시간 이내에 뭘 먹지 않았다. 오늘도 마찬가지. 어제 밤 12시에 깼을 때 책을 읽다 입이 심심해서 먹었던 과자 몇 조각 이후로 나는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달리면서 계속 생각했다. 이 배가 아픈 증상이 조금 지나서 저절로 나아질까? 계속 아플까? 아직 3도 못 찍었는데, 이러면 겨우 5킬로미터 밖에 못 달리는데, 아니 지금 몸을 돌려도 앞으로 2.5를 더 가야 하는데, 이 컨디션으로 갈 수 있으려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괜찮아 지겠지. 괜찮아 질거야 하는 마음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어쨌거나 3킬로미터 지점은 찍고 볼 생각이었다. 배 통증이 없어지지 않고 지속되면서 호흡에도 영향을 미쳐 평소보다 폐활량이 더 딸렸다. 그리고 당연히 더 빨리 지쳤다.


딱 3킬로미터 지점을 찍고 몸을 돌려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힘들었다. 배가 신경 쓰이니까 자꾸만 호흡이 얕아지고, 충분한 산소 공급이 이뤄지지 못하니 근육 피로는 급격하게 올라갔다. 악순환의 반복. 체력은 급격하게 떨어졌고, 4킬로미터도 채 달리지 못하고 완전히 지친 상태가 되었다. 배는 계속 미약한 통증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 너무 멈추고 싶었지만, 그래도 5킬로는 찍으려고 악착같이 달렸다. 하! 늘 주위 사람들에게 마음만 먹으면 10킬로미터 정도는 그냥 달리고, 20정도도 그러 어렵지 않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오늘은 겨우 5킬로도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게다가 대회 때처럼 최선을 다해서 뛴 것도 아니고 가볍게 천천히 뛰었는데도 왜 이런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나 오늘 오랜만에 제법 제대로 케틀벨 운동을 하고 왔지! 운동 마치고도 아무것도 더 먹지 않고 곧바로 달렸지. 케틀벨 운동 마치고 적어도 단백질 드링크라도 하나 마셨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배가 아픈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내 몸 상태는 얼른 뭐라도 먹어야 할 상태라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다음에 또 케틀벨 마치고 바로 달릴 생각이라면 중간에 가볍게 뭐라도 꼭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지친 발을 힘겹게 옮겼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가끔 조금 세졌다가 다시 약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주위에 달리는 사람들이 가끔 지나갔다. 대부분 반대 방향에서 그러니까 내가 출발했던 곳에서 오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거의 5킬리미터 지점쯤 왔을 텐데 생각할 즈음에 내 뒤에서 가볍게 뛰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는 금방 나를 추월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탄탄한 몸을 가진 젊은 남성이었다. 그냥 몸만 봐도 딱 알 수 있었다. 적어도 450 정도는 뛰는 사람이겠구나. 지금 내 상태는 아마 550을 겨우 유지하는 정도려나. 그가 나를 쉽게 추월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평소라면 이렇게 추월 당했을 때, 억지로라도 좀 따라가보는 모험을 해보기도 하는데, 오늘은 어림도 없었다. 아니 난 완전히 지쳐서 금방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곧 5킬로미터 지점에 도달했다. 이제 출발점까지는 1킬로미터가남았지만, 살짝 젖은 신발과 양말 때문인지, 발에 물집이 잡힐 것 같은 기분도 들기 시작했다. 


아, 내가 오늘 안정화를 안 신고 그냥 운동화를 신고 왔구나 하고 깨달았다. 바닥이 두터운 런닝화인 안정화를 신으면 관절에 가해지는 충격도 덜하고 발의 피로도 줄여주며 물집이 잡히는 것도 어느정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정화는 비싸고 자주 신을 수록 수명이 줄어든다. 나는 그래서 대회에 나가거나 작정하고 장거리를 뛰는 날이 아니면 좀 가볍고 저렴한 운동화를 신고 뛰는 편이다. 기준은 아마 10킬로미터 정도. 즉, 10킬로미터 부터 그 이상을 뛰는 날엔 안정화를 신고, 8이나 9 정도 뛰는 날엔 그냥 운동화를 신는다. 다행히도 좋은 신발을 잘 골라서 런닝화가 아닌 운동화 중에서는 달리기에 좋은 편이라고 느낀다. 이거 신고 10 이상 뛴 적도 있었는데, 페이스를 조절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겨우 5킬로를 달리고 벌써 물집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다니! 오늘 뭔가 안 풀리는 날이구나. 결국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에 달리기를 멈추고 걷기 시작했다. 5.2 정도 뛴 후였다. 남은 약 800미터를 걸어서 돌아오는 길이 무지 길게 느껴졌다. 더구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서 갑자기 더 기분이 안 좋아졌다. 그러나 나는 배의 통증부터 발바닥의 물집이 생길 듯한 감각까지 여러 모로 더 뛸 상태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비록 1킬로를 남기고 중간에 멈췄지만, 생각해보니 아침에 이미 1킬로를 달렸었다. 합치면 오늘 6을 찍었다. 목표 달성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출발점에 도착하면 밥부터 먹어야지. 어느 식당에서 뭘 먹으면 좋을까? 먹을 것을 떠올리는 생각 만으로도 흐뭇해졌다.


달리기 열풍, 우후죽순 열리는 대회들 그리고 치솟는 참가비


작년 9월 초에 열렸던 철원 DMZ 국제 평화 마라톤 대회(와! 이거 다 띄우니 엄청 기네.)에 신청서를 넣었던 것은 6월 말이었다. 그 대회 참가비가 아마 3만5천원이었다. 이 대회에서는 옷을 주지 않고 철원 쌀(아마 3킬로그램? 혹은 4킬로그램?)을 보내줬었다. 달리기 마친 후에 나온 간식도 꽤 신경써서 넣은 느낌이었다. 3만5천원이 아깝지 않다고 여겼다. 잘 몰랐는데, 메이저 대회들은 대회 참가비 자체도 비싸지만, 서버 열리자마자 거의 곧바로 마감되고, 한참 후에 고가의 상품에 참가자격을 끼워 팔기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몇 십만원을 훌쩍 넘어간다고. 허! 그 돈을 주고 그 대회를 꼭 뛰어야 하나? 이후로 내가 참여했던 4번의 대회들은 모두 참가비가 5만원이었...... 아니 하나였던가 두 개는 4만5천원이었던 것 같다. 암튼 요즘 대회 참가비는 대부분 5만원에 맞춰지더라. 아, 이것도 10킬로미터 기준인가? 하프나 풀코스는 더 비쌌던가?


평소에도 꾸준히 달리기를 하지만, 대회를 뛰는 건 확실히 좀 다르더라. 소위 대회 뽕이라 부르는 긴장감과 고양된 감정 덕분에 평소 실력보다 확실히 조금은 더 페이스가 올라간다. 그래서 시간이 맞다면 주기적으로 두세달에 한 번 정도 대회를 나가는 건 괜찮은 것 같다. 문제는 대회가 우후죽순 엄청 많이 새로 생기는 것에 비례해 달리기 인구는 훨씬 더 급격하게 늘어나서 대회에 나가려는 사람 수는 훨씬 더 많다는 것이고, 그래서 신청 서버가 열리자 마자 마감되는 일이 흔하고. 이렇게 아무렇게나 생긴 대회들도 흥행이 잘 되는 더더욱 아무 대회나 자꾸 생기고, 별 것도 아닌데도 참가비는 남들 받듯이 받는 다는 것이다.


최근에 있었던 서울 어스 마라톤이 그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그날 스레드는 완전 난리가 났었다. 길바닥에 수십개의 검은색 백이 버려져 있었고, 사람들이 자기 짐을 찾으려고 그 버려진 가방들을 뒤져보는 사진들이 여러 개가 올라왔다. WWF 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환경단체가 연 대회였는데, 운영을 이따위로 했다고? 분명 친환경 대회라고 여기 저기서 이름을 내걸었는데 달리다 보면 급수대에는 다들 종이컵을 쓰고 있고, 달리던 사람들은 종이컵을 낚아 채서 달려가다가 마시고 저 멀리 길 바닥에 그냥 버린다. 뛰다 보면 일회용 비닐 우비부터 종이컵 등 길거리에 쓰레기들이 엄청 나뒹굴고 있더라. 이래놓고 친환경 대회라고? 딱 한 번 우리 동네에서 열린 아주 작은 대회에서 종이컵이 아닌 다회용 컵을 쓰는 걸 봤다. 그날은 사람들이 컵을 들고 멀리까지 가서 버리지 못하고 급수대 근처에 멈춰서 물을 마시고 반환통에 넣고 달려야 했다. 비록 아주 잠시 내 발이 멈추더라도 이게 맞는 것 같다. 아니 애초에 반환통을 급수대로부터 적정한 거리에 여러 개를 두면 될 일이다. 좀 멀리에도 두고, 중간 거리에도 두고, 가까이에도 두고.


차량이나 자전거 통제와 코스 안내가 미흡한 대회 이야기도 많더라. 역시 스레드에서 본 것들인데, 그런 대회에 다녀온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겠나? 동시에 여러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올리곤 했다. 그렇게 대회는 부실하게 엉망으로 운영하면서 참가비는 추세에 편승해 높게 받는다. 아, 그리고 매번 대회 신청할 때마다 기능성 런닝셔츠를 주던데, 이거 안 주고 돈 적게 받으면 안 되나? 대회 갈 때마다 새 티셔츠가 생기는데, 이러다가 런닝셔츠로 옷장이 꽉 차겠다. 물론 대회 운영진 입장에선 같은 옷을 입고 달리는 수천명의 참가자들이 사진에 나오는 걸 원할테니,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티셔츠도 대회마다 조금씩 질이 차이가 나서 어떤 대회에서 받은 옷은 가볍고 통기성도 좋고 아주 만족스러운 품질이라면, 어떤 대회에서 받은 옷은 그날 한 번 입으면 다시는 입지 않을 것 같은 뭐 같은 것도 있었다.


다음엔 어떤 대회를 뛰어볼까 하고 검색을 해보면 정말 대회가 많더라. 그럼에도 대부분 이미 마감된 상태였다. 이 달리기 열풍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 될지, 질 낮은 대회가 마구 생기는 현상은 또 언제쯤 나아질 것인지 궁금하다. 


책 읽고 글 쓰는 삶


오래 전부터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매일 일하는 삶을 그만두고 꼭 필요한 만큼만 적절히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큰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서 이제 그 날이 좀 가까워 질까 생각했으나, 아직 작은 아이는 어렸다. 둘이 나이 차가 큰 것이 아쉽다. 아직은 아이들 양육비를 감당해야 하는데, 요즘 내 관심은 자꾸 글 쓰는 일에 가있다. 늘 내가 쓰는 글에 아쉬움이 많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더더욱 글을 더 많이 써보고, 고쳐보고,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바쁘게 살다보면 글 쓰는 시간을 만들기가 참 쉽지 않다.


그래도 예전에는 잡지나 지역 신문 등 작은 돈이라도 원고료 받고 글을 쓰는 청탁이 종종 들어왔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하나도 없다. 그래서 글 쓰는 시간을 억지로라도 만들어 낼 명분도 이젠 없다. 내 마음가짐부터 그렇다.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원고료가 걸린 글이라면 어떻게든 마감 시간 안에 써야 하지만, 써도 그만 안 써도 아무 문제가 없는 글은 늘 바쁜 이 피곤한 삶에서 계속 후순위로 미뤄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뭔가 써야지 생각해서 메모장에 남겨둔 간략한 글들이 소용이 없어진다. 시간이 지나 열어보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쓰려고 이 단어들을 써놓았을까 싶다. 분명 메모를 남길 때에는 아주 구체적인 문장까지 생각하고 그걸 다 쓸 여유가 없어서 키워드 중심으로 남긴 것인데, 더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계속 머리로만 언젠가는 쓸 거야. 언젠가는 이러고 있으면, 그 언젠가는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다. 내가 글 쓰는 일에 절실하다면, 잠을 아껴서라도 써야 한다. 그래서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그냥 미루고 넘어가면 나는 언제나 여기에 머물러 있을 테니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그래도 제일 빠른 때이다. 지금부터라도 매일, 아주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자. 피곤하다고 귀찮다고 미루지 말자. 한 문장을 쓰고 말더라도 쓰자. 그래야 아주 조금이라도 내 삶이 바뀔 가능성이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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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0-10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페이퍼는 singing in the rain으로 함 가시죠!!! ㅎㅎ

감은빛 2025-10-13 23:0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잉크냄새님, 제가 또 노래를 좀 하는 걸 어찌 아시고. 근데 사실 그 장면의 핵심은 노래가 아니라 춤인데요. 그 비 오는 거리에서 추는 춤. 근데 제가 노래는 좀 하는데, 춤을 전혀 못 추네요. 아쉽습니다. ㅎㅎㅎㅎ

희선 2025-10-17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꿈을 꾸셨네요 저는 요새 별로 안 좋은 꿈을 꾸기도 하네요 생각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안 좋은 꿈은 조금 생각나기도 하는군요

요새 달리기 하는 사람이 많아졌군요 그제 라디오 방송 들으니 달리기 이야기 하던데... 나이가 아흔이 될 때까지도 달리는 사람도 있다고 했어요 그 말 들으니 하루키가 생각났어요 감은빛 님도 오래 달리시겠네요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