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다방커피

 

처음 커피를 마셨던 것이 언제였을까? 기억나는 건 아직 고등학생때였던 것 같은데, 어느 명절 때 큰집에서 큰어머니께서 대접에 타주신 달달한 커피였다. 설탕을 아주 많이 넣어서 커피인지, 설탕물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인 소위 말하는 다방커피. 대학때는 커피를 별로 안 마셨다. 자판기 커피는 별로 입맛에 안 맞았고, 커피숍에 가더라도 커피보다는 쥬스류를 주로 마셨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서도 커피는 거의 안 마셨다. 여전히 자판기 커피나 인스턴트 커피는 입맛에 맞지 않았고, 따로 커피를 사 마실 일은 거의 없었다. 연애 하면서 자주 들락거렸던 커피숍에선 늘 커피가 아닌 다른 음료를 마셨다.

 

커피를 본격적으로 맛보기 시작한 것은 지금의 아내와 만나면서였다. 그 시절에도 나는 아내가 사먹는 인스턴트 커피가 아닌 원두커피를 조금씩 맛만 보는 정도였긴 하지만 암튼 그때가 커피라는 걸 입에 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아내는 신기하게도 커피를 무척 좋아해서 커피 한 잔에 따라 기분이 확 바뀌었다.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다.

 

시민단체 활동을 그만두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저 커피를 잘 못마셔요. 속에서 안 받더라구요."라고 말하며 입맛에 맞지 않는 커피를 안 마셨다. 그런데 거래처를 돌아다니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내미는 인스턴트 커피와 자판기 커피를 계속 거절하는 것이 귀찮았다. 어떤 분들은 사양하면 막 섭섭해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냥 주는대로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그 달달한 커피 맛에 익숙해졌다. 뭐 익숙해지니 그냥 먹을만 하다 싶어 일하다가 입이 심심할 때는 내가 직접 타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사무실에 따로 커피 대신 마실만한 음료가 없어서 이기도 하다.

 

진한 드립커피

 

단 음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입맛 덕분에 아무래도 다방커피는 영 좋아지지 않았고, 가끔 아내와 함께 간 커피숍에서 마신 아메리카노는 쓴 맛 덕분에 별로였다. 아무래도 난 커피 체질이 아닌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였던가? 아내가 직접 커피를 내려주기 시작했다. 어! 이건 그리 쓰지 않고 고소한 맛이 나네. 커피의 깊고 풍부한 맛을 그제서야 깨닫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내가 내리는 커피를 조금씩 맛보면서 원산지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커피가 맛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향이 좋고 때로는 먹을만 하구나 싶은 정도였다.

 

커피를 아주 좋아하는 한 선배는 매일 커피콩과 분쇄기를 갖고 다녔다. 집과 직장 어디서라도 갓 갈아서 내린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라고 했다. 도대체 커피가 뭐길래 저럴까? 이런 생각을 할 때만 해도 아직 커피의 맛을 다 알기 전이었다.

 

어느 지인이 정성껏 내려준 핸드 드립 커피를 마신 후 내 미각은 커피도 맛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아내가 커피숍을 옮겨다니며 말하곤 했던 커피 맛이 좋다 나쁘다의 의미를 대충 알게 된 것 같았다. 내게도 맛있는 집과 별로인 집이 생기기 시작했으니까. 거래처 사람들 혹은 동료들과 커피숍을 들러도 이젠 다른 음료가 아닌 아메리카노를 자신있게 주문했다.

 

그래도 아직은 커피 애호가가 되지는 못한 것 같다. 아내가 시키면 커피콩을 갈고, 아내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곤 하지만 내가 원해서 커피를 내리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으니 말이다. 알고보면 커피의 세계도 무척 복잡하고 배울 게 많더라.

 

 

 

 

 

 

 

 

 

 

 

 

 

 

 

커피의 역사를 알고 마시면 또 다른 맛의 세계가 펼쳐진다!

 

예전에는 커피에 관심이 없었던 만큼 커피의 역사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서양 사람들이 즐겨 마시던 음료였나보지 생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커피를 처음 마시기 시작한 것은 서양 사람들이 아닌 이슬람 사람들이었다. 아! 나는 이렇게도 교양이 부족한 사람이었구나.

 

이 책은 커피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마치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아주 흥미진진하다. 커피라는 하나의 물질을 주제로 중세 이슬람의 수도원과 오스만 투르크의 침략을 받은 오스트리아 빈의 성벽과 사치와 낭비가 절정에 이른 프랑스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 등을 종횡무진 넘나든다. 그야말로 소설과 논픽션의 경계에 있다고 할까? 이번에는 커피가 나를 어느 시대, 어느 나라로 데려갈지 궁금해서 도저히 책에서 손을 떼기 어렵다.

 

이 책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맛있는 커피가 먹고 싶어진다. 아니 어디선가 커피 향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젠 커피 한 잔을 받아들면 나도 모르게 쉐호데트 수도원 평화로운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또 어느 때엔 투르크 군의 포위망을 뚫고 폴란드 군을 데려온 영웅의 기분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뿐인가 프랑스 파리 어느 구석 커피숍에서 혁명의 기운에 도취된 시민이 되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분명 책 한 권을 읽고 있을 뿐인데, 이 책을 알기 전과 후의 커피 맛이 다르다. 커피는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코와 입으로 향과 맛을 즐기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커피에 녹아 있는 역사와 문화를 함께 마시는 것이 아닐까? 따뜻한 커피 한 잔 내려놓고 마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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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0-23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향 가득한 이 글을 그냥 무심하게 스쳐 지나갈 도리는 별로 없을 것 같아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감은빛 님처럼《커피의 역사》를 읽고 싶은 계절입니다. '커피의 역사'는 이 책 저 책에서 참 자주 만나게 되는 '단골손님'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가끔 듭니다.

* * *

커피는 에티오피아의 카파라는 지역에서 음식에 맛을 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1,000년 뒤 커피는 볶이고 갈려 아랍인들의 음료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해마다 수백만톤의 커피가 재배된다. 수확물의 거의 절반이 소비지로부터 지구 반 바퀴나 떨어져 있는 브라질과 콜롬비아에서 생산된다....... 커피는 살아남았지만 원산지가 아닌 이국땅에서의 불안정은 경제를 계속 위험속으로 몰아넣었다. 1890년대부터 '커피 대통령'들이 브라질을 통치했다. 공급과잉과 가격폭락에 이은 수확 실패는 실직과 혁명의 원인이 되었고, 모든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상태는 전투 사이의 회복기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 스티브 존스, 『진화하는 진화론』중에서

감은빛 2013-11-01 13:58   좋아요 0 | URL
그쵸? 커피 향이 참 좋게 느껴지는 계절이네요. ^^

커피의 역사 이야기가 자주 만나는 단골손님이로군요.
인용해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낭만인생 2013-10-24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척 읽고 싶은 책입니다. 평이 좋아 리스트 목록에 올려 놓겠습니다.

감은빛 2013-11-01 13: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낭만인생님.
가을에 딱 어울리는 책이예요.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3-10-2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페이스북에서 보고 사 놓았는데 아직 읽지를 못했어요.
안나 카레니나를 느릿느릿 읽는라.
미시사는 늘 조심스럽게 읽어야하지만 너무 흥미로와서 언제나 관심이 가요.
다 읽으면 저도 후기 남겨야겠어요.
참, 받아보니 책 모양새도 마음에 들어요~

감은빛 2013-11-01 14:00   좋아요 0 | URL
모리님. 벌써 사셨군요! 고맙습니다!
후기 기대할게요. ^^
 

 

어지럽다

 

밀양 송전탑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경찰이 대규모로 투입되었고, 한전은 공사를 강행하려 한다. 한전 본사 앞에는 무기한 단식 농성장이 꾸려지고, 오늘 저녁 8시엔 탈핵버스가 밀양으로 출발한다. 사정상 내려가지 못하는 분들은 저녁 7시 반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 예정이다. 어제 집 이사를 했고, 수많은 짐들을 옮겨만 놓았을 뿐, 아직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풀어놓지 못한 나는 그 촛불조차 함께 들지 못하는 상황에 마음이 무겁다.

 

지인 한 분이 SNS에 이렇게 썼다. 수많은 일정과 복잡한 머리 때문에 죽을 것 같았는데, 다 내던지고 밀양으로 가기로 결심했다고, 그랬더니 죽을 것처럼 아프던 머리가 거짓말처럼 싹 나았다고. 그 글을 읽으며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부러웠다.

 

해야할 일들, 맡겨진 일들, 멈춰버린 일들, 놓쳐버린 일들, 하고 싶은 일들 수많은 일들이 머리속에서 얽혀서 돌아간다. 무엇 하나 제대로 처리해내지 못하고, 힘겹게 겨우 버티고 있다. 어지럽다. 이 모든 일들 다 던져버리고 그냥 확 밀양으로 내려가고 싶다.

 

 

무겁다

 

눈꺼풀이 무겁다.

머리가 무겁다.

어깨가 무겁다.

팔이 무겁다.

다리가 무겁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무겁다.

 

 

바빠도 책 욕심은 줄지 않아

 

통 책을 읽지 못했다. 이사 준비 덕에 책을 왕창 버리거나 파느라 책 제목과 표지는 엄청나게 많이 봤다. 사놓고 오랫동안 읽지 못하고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책들을 보면서 '이젠 정말 꼭 읽을 책만 사야겠어.'라고 생각했지만, 며칠도 지나지 않아 나는 보관함과 장바구니를 오가며 주문할 책을 고민하고 있다.

 

 

 

 

 

 

 

 

 

 

 

 

 

 

 

 

에이 모르겠다. 이젠 이사도 했으니 부담없이 질러 버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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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3-10-02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문제가 잘 해결되셨군요.
다행이예요~
정말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찌할바 모르겠는 날들입니다...

감은빛 2013-10-07 14:10   좋아요 0 | URL
네, 내용증명을 보냈더니 곧바로 꼬리를 내렸고,
그 후로는 크게 문제 없이 지나왔습니다.

무겁죠.
지금 다쳐서 후송된 할머니들,
산에서 노숙하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연행된 활동가들 소식 때문에 미칠 것 같습니다.

손자뻘 되는 전경들이 할머니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만드는 사회.
이거 제정신이 아닌 사회임이 분명합니다.

yamoo 2013-10-02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공적인 이사 감축드립니다!
무거운 마음 내려놓고 즐거운 책읽기 하셨으면 합니다~

이모부의 서재...정말 사서 읽어야 하는데....벌써 산 책이 100권에 육박한다는...ㅜㅜ
이사할 때 감은빛 님처럼 대량 책을 버려야 할 사태가 올 것 같아 불안불안 합니다...그런데도 책은 계속 사니...ㅜㅜ

감은빛 2013-10-07 14:1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책이 손에 잡히질 않네요.

저도 사고 싶은 책은 정말 많은데,
정작 사고나서 읽지 못할 것 같아서 겁이 나네요.

2013-10-07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07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08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8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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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애창곡, 악보도 없이 구전되던 금지곡

부용산

 

도서관 서가에서 창비 20세기한국소설 전집을 펼쳐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읽고 있던 책을 서가에 꽂아두고, 아내와 아이들이 일어서기를 기다리려는데, 아직 시간이 몇 분 남았기에 생각없이 서가를 훑다가 무심코 집어들었다. 거기서 '부용산'을 만났다. 최성각 선생은 그저 환경운동가로서만 알았을 뿐, 그의 글은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산문을 스쳐 읽은 기억은 있었지만 소설은 한 편도 접해보지 못했다. 궁금했다. 마침 분량도 짧아서 금방 읽어 갔다. '부용산'이란 노래를 접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가는 내용이었다. 읽으며 이게 실제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내용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등장인물 중에 한겨레 김종철 논설위원이 있어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실화라는 생각에 무게을 실어줬다. 

 

역시 나중에 찾아보니 부용산에 얽힌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었다. 한국일보 김성우 논설위원이 두 차례에 걸쳐 쓴 글과 경기대 김효자 교수와 월북한 작곡가 안성현과 호주로 이민 간 작사가 박기동에 대한 내용 모두 사실이었다. 여러개의 토막 글을 찾아보다가 이 내용을 잘 정리해놓은 페이지를 발견했다. 이 페이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소설과 다른 지점이 있다. 소설에서는 작곡가 안성현이 무용가 최승희의 남편 안막의 조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이 페이지의 각주에는 그런 추측이 있다고 안내하면서 사실이 아닐거라고 말한다. 근거로는 북한에서 안막과 최승희가 숙청당할 때, 안성현은 살아남았고, 이후 인민예술가 칭호까지 받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노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요 아래 페이지를 참고하세요.

http://mirror.enha.kr/wiki/%EB%B6%80%EC%9A%A9%EC%82%B0#rfn4

 

그리고 호주로 이민갔던 박기동이 영구 귀국했다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와 연극인 손숙의 남편인 김성옥이 호주로 박기동을 찾아가 부용산의 2절 가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새롭게 알았다. 아 그리고 박기동이 국내에서 [부용산]이란 제목의 산문집을 출간했다는 이야기도 알았다.

 

 

 

 

 

 

 

 

 

 

 

 

 

 

웹에서 부용산을 검색해서 노래를 들었다. 안치환의 노래와 윤선애의 노래 두 개를 들었는데, 윤선애의 노래가 더 슬프고 애잔하게 들렸다. 노래를 들으며 왜 빨치산들이 이 노래를 즐겨 불렀는지, 어떻게 그 긴 세월 악보도 없이 구전되었는지를 알것 같았다. 왠지 형언하기 어려운 서글픈 감정이 흐느낌이 되어 목을 타고 넘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윤선애의 부용산, 전주가 길다. 1분 50초 즈음부터 노래가 나온다.

 

죽음을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

글루미 썬데이

 

수많은 사람들을 자살로 이끌었다는 노래. 노래를 들어보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노래를 듣고 사람들이 자살을 해? 영화는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픽션이지만, 그 노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내용은 사실이었다. 슬픈 곡조의 노래였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에리카 마로잔이 부르는 노래가 참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 에리카 마로잔이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며 스테파노 디오니시에게 자신을 위해 연주를 하도록 부탁하는 장면(헝가리어 버전)

 

 

한창 이 노래에 빠져 있던 시절, 나는 여러 가수들이 부른 '글루미 썬데이'를 모으기 시작했다. 빌리 홀리데이, 사라 맥라클란, 비욕 등 유명한 가수들이 부른 노래가 많았다. 내 엠피쓰리 플레이어에는 폴더 하나에 '글루미 썬데이'만 예닐곱 곡이 들어 있었다. 잠이 잘 오지 않는 밤, 불을 끄고 누워 글루미 썬데이만 무한 반복으로 듣다보면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을 스쳤다. 아, 자살 충동을 느끼지는 않았다. 다만 여러 추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떤 기억은 아주 자세하게, 어떤 기억은 흐릿하게 떠올랐다 사라졌다.

 

같은 장면의 독일어 버전, 에리카의 노래를 자주 들었기 때문에 'trauriger sonntag' 으로 시작하는 이 장면이 무척 익숙하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노래다. 영혼을 울리는 노래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부용산을 듣고 나서 이 노래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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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국민 사기극

 

4대강 사업은 이 나라 역사상 유래가 없는 대 국민 사기극이다. 물론 그 전에도 수많은 사기극이 있었다. 시화호와 새만금 간척 사업 역시 대표적인 사기극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간척사업이었던 새만금도 비교가 안될 만큼 전 국토를 유린한 사기극이 바로 4대강 사업이다. 지금 낙동강, 영산강, 한강은 모두 녹조로 인해 죽음의 강이 되어버렸다. 역행침식으로 여러 제방과 다리가 무너졌다. 부실공사로 인해 댐은 물이 새고, 그걸 보수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또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런데 정부가 그렇게 선전한 물 문제가 해결되었나?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우리가 얻은 것은 생명의 강이 죽음의 강이 되어버렸다는 현실 뿐이다. 게다가 온 국민이 반대한 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수많은 혈세가 건설업자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쓰였다. 모두 이명박과 그 일당들이다. 불법으로 쓰인 복지예산 22조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 모두 뱉어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우선적으로 죽음의 강을 생명의 강으로 다시 바꿔야 할 것이다. 댐을 모두 허물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관련자들을 모두 찾아내어 정당한 댓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가 이 지경이 된 이유로 일제 부역자들을 청산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크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사기극이 벌어질 수 없도록 이명박과 그 일당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요즘 이석기의 내란음모에 대해 말이 많은데, 실제로 내란을 일으켰던 노태우와 전두환이 최근 추징금을 완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돈을 다 내기 전까지는 언제 어떻게 상황이 변할 지 알 수 없지만, 그냥 저대로 죽겠구나 싶었던 인간들이 그래도 돈이라도 내 놓는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다. 한편으로 쪼으니까 되는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 거만한 전두환이 돈을 내놓겠다고 하다니 몰리니까 어쩔수 없구나 싶은 거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은 박근혜 이후 차기 정권에서 대운하 사업으로 전환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데, 그 허황된 꿈이 실제로 실현되지 못하도록 정신을 차리게 해줘야 한다. 강과 생명을 죽인 책임을 묻고, 낭비한 혈세를 모두 환수 조치 시켜야 한다.

 

다행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다. 그래서 현재 국민고발인단을 모집 중이다. 어려운 것 없다. 시간도 1분이면 충분하고, 돈도 안든다. 그냥 웹페이지 들어가서 이름과 주소와 연락처를 쓰고 서명한다고 선언하면 된다. 국민고발인단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책임자들의 처벌이다. 또 하나는 죽어가는 강을 살리기 위한 특별법의 제정이다. 지금 꼭 필요한 일이다. 많은 이들이 동참해주시기를, 혼자만 서명하고 그칠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알리고 서명해달라고 부탁해주시기를 바란다. 서명 페이지 주소는 아래와 같다.

 

http://www.4riversjustice.net/

 

 

 

 

 

 

 

 

 

 

 

 

 

 

 

 

책은 안 읽히고 살만 찌는구나!

 

누가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나? 후덥지근한 날씨가 선선해지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동한다. 읽어야 할 책이 쌓이고 쌓였는데 도무지 책장으로 눈길이 가지 않는다. 눈은 자꾸만 창 밖 먼 곳을 향한다. 그런데 나만 책을 안 읽는 건 아닌가보다. 실제 통계를 내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체감상으로 현재 출판 시장은 최악이다. 물론 개별 출판사와 서점의 상황은 제각각 다를 수 있다. 책의 성격과 시기에 따라 매출이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기 마련인데, 내 경험으로 또 주변에서 듣기로 가을에 매출이 오르는 경우로 거의 못 봤다. 입 아프게 반복하는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시기다. 이 가을을 어떻게 넘길 것인가? 과연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지만 답은 없다. 그저 살아남도록 발버둥을 쳐 보는 수 밖에.

 

지난 주말 생협에서 생산자 조합인 '강원유기농'으로 일손돕기 행사를 다녀왔다. 행사 이름은 일손돕기 이지만 도시에서 몇명 내려와봐야 뭐 얼마나 일을 하겠나? 그냥 몇 시간 일하는 시늉만 내다가 돌아가는 거지. 어쨌든 강원도니까 길이 멀다.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고 아이들을 깨우고 바쁘게 움직였다. 오랜만의 장거리 운전인데다 잠을 많이 못 잤더니 무척 피곤했다. 차량 2대가 움직였는데, 앞서가는 차는 고급 외제차였고, 우리 차는 90년대 중반에 나온 낡은 소형차였다. 고속도로에서 그 차가 달리기 시작하니 이 낡은 차로는 따라가기 어려웠다. 가장 어려웠던 곳은 언덕길이었다. 운전에만 정신이 팔려 어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높은 산 허리를 지그재그로 돌아 올라 넘어가는 긴 언덕길이 있었다. 평소보다 사람을 많이 태운 낡은 우리 차는 엑셀을 끝까지 밟아도 빌빌거리며 기어올라갔다. 일행들이 탄 차가 여유있게 저만치 멀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곧 20년이 되는 이 차가 안쓰러워졌다.

 

도착해서는 예상대로 힘든 일을 시키지는 않았다. 나름 배려해서 쉬운 일을 시킨 것일텐데, 그래도 도시 사람들에게는 힘든 일이다. 익숙치 않은 일을 열심히 하고 기대했던 점심시간 밭 한쪽 넓은 공터에 넓찍한 판을 깔고 식탁을 마련했다. 한쪽에선 숯불에 고기를 구웠다. 갓 수확한 유기농 쌈채소와 야채를 간단히 조리한 반찬들이 식탁에 놓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음식에 달려들었다. 아니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지? 집이나 식당에서 먹을 때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맛이었다. 물론 유기농 음식이고, 공기 좋은 곳에서 먹었고, 육체 노동 후의 식사니까 맛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맛있었다. 당연히 나는 과식을 했고, 배가 터질지경이 되어서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오후 일은 오전 일 보다 더 쉬웠다. 그래도 열심히 했다. 오후 늦게 일을 마치고 농부들이 싸준 값진 유기농 채소들을 얻어서 나왔다. 강원유기농 사무국장님께서 어차피 서울로 돌아가는 길은 막힐테니 저녁을 드시고 가라고 해서 막국수에 메밀전을 또 배가 터지도록 먹고 운전대를 잡았다. 예상은 했지만 돌아오는 길은 도로가 아닌 주차장이었다. 정체되는 길에서의 운전은 평소보다 훨씬 더 피곤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잠시 한 눈 팔면 옆에서 끼어들거나 뒤에서 빵빵 거린다. 다들 예민하고 짜증이 난 상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정체를 견디고 견디고 또 견뎌서 간신히 서울로 돌아왔다. 거기서 만난 농민 분들이 참 좋았고, 맛난 음식을 많이 먹어 좋았건만 돌아오는 길이 너무 오래걸리고 피곤해서 정말 힘들고 어려운 하루였다. 새벽녁 피곤에 지친 아이들을 간신히 달래서 씻기고 재운 뒤 나도 쓰러졌다.

 

요즘은 점심에도 내장탕이나 순대국을 자주 먹는다. (좋아하긴 하지만)딱히 일부러 찾아 먹는 건 아닌데 동료들과 가다보니 연달아 과도한 육식을 하고 있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연일 과식에 육식을 하다보니 다시 뱃살이 나온다. 운동을 시작하고부터 서서히 줄어들어 8월 중순 즈음에는 이제 곧 '왕'자가 새겨지겠구나. 젊은 시절 몸매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구나 했는데, 이게 왠 일인가? 가을엔 말이 살찐다더니, 나는 말도 아닌데 왜 이렇게 살이 찌는 걸까? 이 뱃살을 다시 넣으려면 더욱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구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운동법과 무술에 대한 책들을 살피다가 눈에 띄었다.

 

 정희준 선생님은 예전에 잠시 인연을 맺었던 분이다.

 

 전부터 느꼈지만 글을 참 잘 쓰신다.

 흥미롭고, 요점이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다.

 같이 빌린 다른 책들(원래 빌리려던 책들)을 미뤄두고

 먼저 읽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보물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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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5 0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3-09-09 18:5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꼭 강을 살리고, 정의를 바로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파란놀 2013-09-06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손돕기 틈틈이 가셔요.
그러면 날마다 밥맛이 새롭게 돋으리라 생각해요.

알고 보면,
일손돕기라기보다
도시에서 살아갈 기운을 얻도록 돕는
'마음치유와 몸치유'라고 할 만할 테지만요.

4대강사업 벌인 이들은 우두머리뿐 아니라 끄트머리 공무원까지
역사가 심판하리라 믿습니다.

감은빛 2013-09-09 19:01   좋아요 0 | URL
네, 함께살기님.
그런데 딱 그날 거기서만 밥맛이 좋더라구요.
도시로 돌아오니 또 조미료 맛으로 식당 밥을 먹어야 하니 말이죠.
물론 집에서 먹는 밥은 맛있지만,
보통 하루 3번 중 2번은 밖에서 먹으니까요.

가만히 있으면 역사가 심판하지 않겠죠.
좀 더 많은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yamoo 2013-09-06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국민 사기극이죠! ㅁㅂ이 이하 관련자 모두 교도소에 쳐 넣어야 하는데~ 아우~~
저두 사이트 가서 서명하고 와야 겠어요!

흠...저도 코리아 판타지 클리는 걸요~ 서점에서 좀 봐야 겠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솨~~~^^

감은빛 2013-09-09 19:02   좋아요 0 | URL
야무님, 고맙습니다!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입니다.
우리나라 스포츠 역사에서 숨겨진 이야기 묶음 같은 거랄까요.
저도 아직 읽는 중입니다만 아주 재미있습니다!

transient-guest 2013-09-11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법제도가 아무리 잘 잡혀도, 결국 이를 실행하는 것은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요즘의 교육은 이 '사람'이 제대로 나오기 어렵게, 사람바보를 양산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 같아요. 4대강 사업은 전 이명박 일가를 거대한 세력으로 만들기 위해 벌인 반인류적인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재판도 좋고, 바로잡기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장 신성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돈'을 빼앗아야만 해요.

감은빛 2013-09-12 11:22   좋아요 0 | URL
네, 말씀하신 것처럼 교육과 사회구조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부자 되세요!" 따위의 천박한 인사말이 유행하는 나라.
돈과 물질만을 쫓도록 가르치고 강요하는 사회가 문제겠지요.

글에도 언급한 것처럼, 노태우와 전두환에게 추징금을 받아냈듯이,
이명박과 그 일당들에게도 끝까지 다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