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시간 

기억을 더듬어 보면 12월 31일 밤과 1월 1일 새벽은 늘 취해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된 이래로 단 한번도 취하지 않고 새해를 맞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모르겠다. 그런 때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새해 첫 날은 늘 취해있었기에 끊어진 필름처럼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 한 해의 시작은 늘 그랬다. 취해서 맞은 새해 첫날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기억이 희미해져서 내 삶의 일부가 마치 지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싫다. 안개가 낀 듯 뿌옇게 흐린 기억속을 더듬어 뭔가를 찾고 싶은데, 내가 찾고 싶은 게 무언지 조차 이미 기억나지 않는다.

숫자는 그냥 숫자일 뿐이다.  

나이는 그냥 숫자일 뿐이라고 생각해왔다. 하루 하루에 숫자를 부여하고 그것을 기록해두는 것도 참 우습다고 생각했다. 해가 바뀌는 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리가 2010 이라는 숫자를 부여한 시간과 2011 이라는 숫자를 부여한 시간이 뭐가 다른가? 해는 떠올랐다가 지고, 바람은 불고, 구름은 떠다니고, 나무는 천천히 자라고, 나비는 날아다니고, 사슴은 물을 마신다. 보신각 종이 울리든 말든 자연의 시간은 변함없이 그렇게 흘러간다. 새해가 되었다고 뭐 특별할 것도 없고, 달라질 것도 없다. 그냥 시간이 흐를 뿐이다. 하루 하루 잠을 자고 나면 조금씩 나이를 먹어갈 뿐이다. 숫자는 그냥 숫자일 뿐이다. 특별한 의미 따위는 없다. 

쓸데없는 끄적임 

혼자 텅빈 자취방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게 언제였던가. 몇 해전이었던가 모르겠다. 아무튼 그 날은 새해 첫 날이었다. 밤늦게까지 누군가와 술을 마셨고, 어김없이 취했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혼자 자취방에서 자고 있었다. 옷을 모두 벗고 알몸으로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입술이 바짝 말라있었고, 목이 꽉 잠겨있었고, 머리가 깨질 것 처럼 아팠고, 속이 쓰렸다. 이불을 덮어쓰고 다시 잠들려했지만, 정신은 점점 더 또렸해졌다. 누군가를 떠올렸던 것 같다. 그게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열심히 그녀를 떠올렸다. 오랫동안 누워서 그녀만 생각했다. 생각의 끝자락에 자위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핸드폰을 집어들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엎드려서 책을 펼쳤다가 다시 치웠다. 공책을 펼치고 연필로 의미없는 단어들을 끄적였다. 습작공책을 펼쳐들고 며칠 전에 쓴 단편을 다시 읽으며 어색한 부분을 고쳤다. 습작공책을 던져버리고 누워서 천정만 쳐다보았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담배 생각은 간절했다. 몸을 일으켜 좁은 방을 뒤졌지만 담배를 찾지 못했다. 재떨이를 끌어와서 장초를 뒤졌다.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놈을 하나 골라들고 이번에는 라이터를 찾았다. 잠바 주머니늘 뒤지고, 바지 주머니를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구석에 널부러져 있는 책들 사이에서 조그만 성냥갑을 찾아내었다. 성냥을 그었다. 확 불꽃이 일었다. 장초를 물고 불을 붙였다. 강한 자극이 꽉 잠겨버린 목을 덮쳤다. 콜록 콜록 두어번 기침을 했다. 길게 담배를 빨았다. 그리고 길게 숨을 내뱉았다. 담배 연기가 앞으로 쭉 내뻗었다가 잠시 후 흩어졌다. 추워서 덜덜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지만, 옷을 걸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이불을 어깨에 덮어쓰고 점점 짧아지는 담배를 끝까지 피웠다. 또다른 장초를 찾으려다가 말고 물을 찾아 냉장고를 열었다. 물이 없었다. 수돗물을 틀어서 마셨다. 차가운 물이 속을 자극시켜서 다시 쓰렸다. 이불을 덮어쓰고 엎드려서 다시 공책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오랫동안 의미없는 무언가를 끄적였다. 

2011 이라는 숫자 

나는 무엇을 쓰고 싶었던 걸까? 나는 무었을 끄적였던 걸까? 그 공책이 지금 남아있지 않아서 알 수 없다. 떠올리려 애써도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종일 생각했던 그녀가 누구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공책은 없어졌고, 내 기억도 지워졌다. 그렇게 열렬하게 좋아했던 사람을 깨끗이 잊었다. 언젠가 지금을 기억하는 어느 날에도 그럴 것이다. 내가 무엇을 애타게 바라고, 무엇에 격하게 분노하고, 무엇때문에 죽을것처럼 아파하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컴퓨터를 켜고,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갔다오고, 마우스를 움직이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동작 하나하나는 다 기억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무엇을 고민했는지, 무엇에 마음을 쏟고 있는지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은 2011 이라는 숫자가 낯설다. 서류를 작성하면서 자꾸만 2010이라고 썼다가 찢어버리고 다시 고쳐쓰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 계획에 대해서 얘기한다. 올해는 무엇을 해보고 싶고, 무엇을 바꾸고 싶고, 어딘가를 가보고 싶고, 책을 얼마나 읽고 싶고, 돈을 얼마나 벌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있다. 나는 새해 계획이라는 걸 해본적이 별로 없다. 계획을 한다고 해도 지켜지지 않을 것을 잘 안다. 그저 숫자가 바뀐 것일 뿐 나에게는 같은 시간이다. 그냥 나는 미치도록 사랑이 하고 싶다! 내 바람은 늘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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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1-04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여, 요즘 추억을 더듬다 보면, 옛남자들 이름이 죄다 기억나지 않아요. 흑.
그래서 이제는 혹시 추적을 해보고 싶어도 어림두 없어염. 단서가 있어야 하죠~ 헤헤.

오호라... 미치도록 사랑을 하고 싶으시다뉘.
아무래도 날 한번 잡고, 유부남의 도리에 대해 가르쳐드려야겠슴다. 아하하.

감은빛 2011-01-05 07:29   좋아요 0 | URL
아, 마녀고양이님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영광이겠습니다!
빨리 날 잡으세요!
근데 정말 유부남의 도리는 뭔가요? ^^

아이리시스 2011-01-0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부남의 도리라는데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
뭐지, 뭐지?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11-01-05 07:29   좋아요 0 | URL
저도 궁금하네요. 빨리 가르침을 받아야 될텐데요. ^^

sslmo 2011-01-05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부녀의 도리는요,
집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저 사람은 내 남편이 아니다.' 생각하고 홀가분하게 놓아주는 거라는데...

저는, 그냥 미치도록 사랑이 하고 싶다 말고요,
그저 무덤덤,무던히요~^^

감은빛 2011-01-05 07:31   좋아요 0 | URL
아, 유부녀의 도리는 그런거로군요.
그렇담 유부남의 도리도 그런건가요?
'저 사람은 내 아내가 아니다' 이건가요?

어떤 사람에게 무덤덤이, 어떤 사람에게는 미치도록이 될 수도 있죠.

실비 2011-01-05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이 많이 가네요..
전에 그런생각 많이 했지요
어떨땐 숫자는 숫자이고 어느땐 의미부여가 되고..

저도 미치도록 사랑 한번 하고 싶네요

감은빛 2011-01-07 02:3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실비님.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미치도록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아깝다! 이 책!


연말이 되면 출판계에서는 으레 한 해를 돌아보며 ‘올해의 책’이라던가 ‘우수’란 단어가 붙는 책들을 선정하여 시상하는 행사들을 연다. 해마다 ‘단군 이레 최대 불황’이란 수식어를 떼지 못하는 출판시장에서, 고르고 골라서 만든 좋은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되고, 판매가 되고 나중에 무슨 상까지 받는다면 참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주 좋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별 반응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2010년 한 해를 돌아보며 아주 좋은 ‘생태’, ‘환경’ 분야 책들이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책들을 찾아봤다.   

 

 

 

 

 

 

 

 

 

1. 『지구의 미래』 프란츠 알트 / 민음인
독일의 저명한 환경 전문가 프란츠 알트씨의 최근작이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계신 알트씨는 책도 많이 냈지만, 아쉽게도 국내에 번역된 책은 이 책까지 단 3권 밖에 없다. 알트씨는 총 2차례 우리나라에서 강연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책 출간 후에 방문했다. 2003년 『생태주의자 예수』가 출간되었을 때와 2005년 『생태적 경제기적』이 출간된 후, 이렇게 두 번이었다. 이번에 책이 나왔으니, 또 한 차례 알트씨가 우리나라에서 강연을 하지 않을까 조금 기대를 갖게 된다.

프란츠 알트씨는 정치학, 역사학, 철학, 신학 등을 전공했고, 오랫동안 방송에서 시사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직접 진행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햇빛 전도사’라고 부를 만큼, 태양광 발전을 널리 보급하는데 힘써왔다. 그리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에는 독일 환경상 '골덴네 슈발베(Goldene Schwalbe)'를, 1997년에는 '유럽 태양상(Europaischer Solarpreis)'을, 2007년에는 독일에서 가장 유서 깊은 환경상 ‘골덴네 블루메 폰 라이트(Die Goldene Blume von Rheydt)’를 수상했다.

그의 책들은 항상 재생가능 에너지 사용을 비롯하여 생태적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특히 개인의 생태적 삶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생태 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사회적 문제인 환경문제가 개인의 책임이 아닌,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또한 개발 정책보다 생태 정책들이 나중에 정치적, 경제적으로 훨씬 더 낫다는 것을 알려준다. 바로 이런 부분들이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정치학을 전공했고, 오랫동안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해온 방송인으로서 쌓아온 경험에서 비롯된 탁월한 견해이다.

이 책은 다양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지구의 미래를 말하고 있다. 지금 당장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환하고, 자동차 위주의 교통체계를 대중교통과 자전거 위주로 재편해야 지구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가?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고 지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봐야하지 않겠나? 올해의 아까운 책으로 첫 손에 꼽을만한 책이다! 


 

 

 

 

 

 


 

2. 『태양과 바람을 경작하다』 이유진 / 이후
로컬 푸드라는 말이 있다. 멀리서 먹거리를 가져오기 위해 돈과 에너지를 쓰고 또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하는데, 그렇게 복잡하고 힘들게 하지 말고, 우리 동네에서 생산한 먹거리를 먹는 것이 제일 신선하고 맛도 좋다는 얘기다. 이 ‘로컬 푸드’(우리말로 하면 동네 먹거리 정도가 되려나)에 대해서는 책도 여럿 나와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동네 에너지’라는 말이 있다. 저 먼 곳에서 옮겨와야 하고, 값도 비싸고, 게다가 공급도 불안정한 석유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동네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사용하자는 말이다. 로컬 푸드에 비해서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듯하고, 공감을 많이 얻고 있지도 못하지만, 이 말은 굉장히 중요하다. 또한 ‘재생가능 에너지’라는 말이 있다. 정부에서는 ‘대체 에너지’나 ‘신재생 에너지’라는 말로 부르기도 하는데,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가 아닌 자연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말이다. 요즘 정부와 한수원(한국 수력 원자력 주식회사)이 열심히 광고하는 원자력 발전은 ‘재생가능 에너지’도 아니고 ‘친환경 에너지’도 아니다. 요컨대 정부와 한수원이 거짓말을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열심히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은 많았다. 새만금 때도 그랬고, 한미FTA때도 그랬고, 광우병 수입쇠고기로 인한 촛불집회 때도 그랬고, 4대강사업을 밀어붙이기 위해서도 그랬고, 최근 G20 정상회담 때도 그랬다. 이쯤 되면 왜 거짓광고를 하고 있는지 뻔히 알 수 있다. 기득권을 쥐고 있는 세력이 원자력 발전으로 인해 큰 이익을 얻고 있고, 이 이익을 더 극대화하고 싶어서 그럴듯한 거짓말들로 포장한 것이다.

다시 동네 에너지로 돌아와서, 이 동네 에너지란 건 바로 우리 동네에서 만들어 내는 재생가능 에너지를 말한다. 녹색연합에서 오랫동안 ‘기후변화’와 ‘재생가능 에너지’ 분야를 담당했던 저자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책들이 대부분 외국사례(주로 일본이나 독일)를 소개했던 것에 비해서, 이 책은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 자립 프로젝트’들을 소개한다. 우리나라에도 동네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곳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부에서는 에너지 문제에 대해 살펴보면서 해답은 지역 에너지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2부에서는 국내의 지역 에너지 사례들을 보여주고, 3부에서는 외국의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하면 우리 동네에도 재생가능 에너지 시설을 만들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들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처음 펼쳐들었을 때, 목차를 보면서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OECD 가입국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원전을 짓고 있는 나라이며, 핵폐기장을 유치하기 위해 지역 정치인들이 발 벗고 나서는 나라가 아닌가. 그래도 어느새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지역 에너지 추진 사례가 있다는 것이 무척 반가웠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의 아까운 책으로 뽑아서 널리 알리고 싶다! 
 

 
 

 

 

 

 

 

 

3. 『녹색세계사』 클라이브 폰팅 / 그물코
1991년 출간 되었던 『녹색세계사』의 저자가 2007년에 새롭게 개정판을 내놓았다. 국내에서도 개정판을 다시 출간할 계획이라고 했다. 여러 사람들이 개정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출판사 홈페이지에 질문을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 올해 드디어 책이 나왔다. 16년 만에 다시 쓰인 이 책은 단순한 개정판이 아니다. 지난 16년 동안 이 지구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만큼, 책도 많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자료들을 최신 자료로 바꾸고, 보완했다. 특히 90년대부터 2000년대의 가장 큰 논란인 ‘지구온난화’에 대한 새로운 장이 추가되었다.

이 책은 역사책이다. 다만 역사의 중심에 인간을 두지 않고, 지구 환경을 두고 서술한 역사책이다. 지구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문명을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자연환경을 파괴했는가를 증언하고 있다.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한 인간이 자연에 행한 끔찍한 파괴행위들이 얼마나 심각한 지 읽어가는 내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책 특유의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나는 파괴된 자연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무지한 인간을 야단치는 꾸지람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인간의 잔인함에 소름이 끼쳐서 다음 장을 읽기가 부담스러웠다. 특히 8장 ‘약탈되는 자연’과 11장 ‘인구의 무게’ 부분을 읽기가 참 힘들었다. 인간이 멸종시켜버린 수많은 생물들에 대한 부분은 간략한 서술 한마디를 읽는데도, 힘이 들었다. 러시아가 아랄 해를 사라지게 만든 부분은 이 책을 읽으며 그 내막을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인간의 무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가장 적절한 사례가 될 것 같다. 땅의 침식에 대한 부분은 읽고 있던 다른 책 『흙』에도 나오는 내용이어서 비교해서 읽는 것이 재미있었다.

1판에서 저자는 비관론과 낙관론 사이에서 중립을 취하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개정판을 다시 쓰는 과정에서는 도무지 중립을 지킬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해가 갈수록 개발의 폭력은 점점 더 심해지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과연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만약 희망을 원한다면, 먼저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죄의 역사를 깨닫는 순간, 비로소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4. 『흙』 데이비드 몽고메리 / 삼천리
흙을 안 밟고 살아온 지 꽤 지난 것 같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회색도시에서는 흙을 밟을 일이 별로 없다. 어려서부터 대도시에서 자랐지만, 그래도 꼬맹이 때는 도시 외곽에 살았기에, 반쯤 시골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산과 계곡과 언덕을 뛰어놀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기억들이 어른이 되어서 이 회색도시에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자라는 내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 미안해진다. 더 이상 아이들이 뛰어놀 산과 계곡과 언덕이 남아있지 않다. 흙을 밟고 살아야 할 인간이 흙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것 자체가 얼마나 큰 불행인지,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닫는다.

봄이 되면 늘 우리를 괴롭히는 황사는 중국과 몽골지역에서 날아오는 모래바람이다. 해가 갈수록 유난히 황사가 심해지는 것은 그만큼 그 지역의 사막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학생 때 사막화방지운동에 관심을 갖고, 실제로 몽골을 방문하여 나무를 심는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때는 단지 사막화라는 현상에 대해서만 공부를 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사막화라는 것이 지력을 상실한 겉흙이 침식되어 버린 땅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근본적으로는 흙과 관계된 재앙이었다. 이 책을 계기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흙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흙은 지구의 살갗이다. 인간의 살갗은 평균적으로 2밀리미터가 안되고, 보통 사람들 키에 대비하면 천분의 일에 조금 못 미친다. 지구의 살갗인 흙은 두께가 30~90센티미터 정도 되는데, 지구 반지름의 천만분의 일이 조금 넘는다. 인간에 비해 지구의 살갗이 훨씬 더 얇고 연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흙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수많은 문명들이 사라진 근본적 원인에는 이 흙의 침식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흙에서 농사를 지어 먹으며 살아간다. 아니 인간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생명은 지구의 살갗인 흙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간다. 흙이 없어지면 생명도 없어지는 것이고, 인간도 살수 없는 것이다. 지난 몇 십년동안 흙의 유실현상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회의론자들은 지금 흙이 점점 사라지는 현상에 대해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고, 기득권 세력은 그런 주장을 근거가 없다고 일축해버린다. 하지만 실제로 흙의 침식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흙의 생성속도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는 흙의 침식에 대해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들까지도 공멸하는 게 아닐까 싶다.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화석연료의 고갈, 멸종으로 인한 생태계의 균형 상실, 과도한 개발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 등 수없이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지금, 또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알게 되었다. 바로 흙의 유실이다. 과연 인류는 이런 위기들을 잘 극복 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새삼 흙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았고, 동시에 이 중요한 흙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지금이라도 이 책을 만나서 반갑고 또 고맙다. 보다 더 많은 이들이 흙에 대해 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올해의 아쉬운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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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0-12-29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색세계사> 개정판이었구나.
<흙>도 좀 끌렸는데 어렵고 진도 안나갈 것 같아 미뤄둔 경향이 있었는데
요즘 자꾸 환경보호, 그러니까 분리수거, 쓰레기줄이기 그런 수준 아닌
국제적 수준이나 이론에 관심이 가서요.
좋은 책들 소개 잘 봤어요.^^

감은빛 2010-12-30 10:56   좋아요 0 | URL
네, <녹색세계사> 개정판이 새로 나왔어요.
<흙>은 확실히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만,
앞부분을 잘 넘기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됩니다.

제가 소개한 거 보다는 요 아래 된장님(최종규 선생님)이 소개한 책들이 훨씬 더 좋은 책들 같아요. 참고하세요!

마녀고양이 2010-12-2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런 책들도 있었군요.... 저는
괴짜 생태학 사놓고 아직도 모셔놓는 중...... ㅠㅠ
대체 전, 집에 포진되어 있는 책들을 언제나 다 읽을 수 있을까요?

감은빛님, 즐거운 연말과 새해 되셔요!

감은빛 2010-12-30 10:57   좋아요 0 | URL
괴짜생태학 저도 그냥 훑어만 보고 아직 안 읽었습니다! ^^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시군요!
올 겨울에는 아내의 잔소리를 덜 듣기 위해서라도,
쌓아둔 책들 좀 읽어야 할텐데.....

마녀고양이님도 즐거운 연말과 새해 맞으시길 바랍니다!

잘잘라 2010-12-29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권 다, 이러면 거짓말이구..
<지구의 미래>, <태양과 바람을 경작하다> 두 권에 급 관심!
꼭 읽어볼께요^^

감은빛 2010-12-30 10:59   좋아요 0 | URL
네, 사실 <흙>을 제일 나중에 읽어서, 마지막에 덧붙였는데,
사실 제일 추천하고 싶은 책은 <흙>입니다.
참고하세요! ^^

파란놀 2010-12-30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가지 책을 다 읽은 사람으로서 <녹색세계사> 빼고는 그다지 생태와 환경에 더 살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다만 <흙>은 제대로 읽는 사람한테는 무언가 깊이 이야기를 나누겠지요. 그러나 <흙> 또한 생태환경책이라기보다는 '생태환경 지식'으로 나아가는 책이 아닌가 싶어요.

- 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
- 잊혀진 미래
- 숨겨진 풍경
- 작고 위대한 소리들
- 나우루공화국의 비극

이 다섯 가지 책들이야말로 사람들이 거의 알아채지 못하거나 잘 못 읽는 환경책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이 가운데 <작고 위대한 소리들>은 번역이 너무 엉터리이고, <잊혀진 미래>는 오탈자가 너무 많지요 -_-;;;

실천이나 삶 없이 지식과 이론만 다루는 책들은 환경책이라고 말하기가 좀... 힘들지 않느냐고 느낍니다...

감은빛 2010-12-30 11:06   좋아요 0 | URL
아! 선생님! 말씀 무척 고맙습니다!
배다리 '나비날다' 책방에서 스치듯 뵌 적 있었는데,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네요.

저 역시 선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다만 제 기준은 '출판'이라는 하나의 문화를 고려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말씀해주신 책 중에 <협동조합도시 볼로냐를 가다>와 <작고 위대한 소리들>은 제 기준에서 조금 비중이 적어서 언급하지 않았고, 나머지 책들은 솔직히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조만간 읽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sslmo 2010-12-30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권 중 세권 읽었고, 흙만 남겨놓고 있어요.
된장님 추천 중에선, 잊혀진 미래 한권 읽었는데, 저도 읽으면서 궁시렁 거렸었죠~^^

실천이나 삶 없이 지식과 이론만 다루는 책들을 환경책이라고 말하기는 힘든 감도 없지 않으나,
실천이나 삶도 앎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감은빛 2010-12-30 11:26   좋아요 0 | URL
아! 역시 양철나무꾼님이시군요!
서재 스킨도 똑같고, 책 읽는 성향도 비슷하고!
이거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 많이 보고 배우겠습니다!

위 책들에 대한 양철나무꾼님의 평이 궁금합니다.
나중에 검색해보러 갈게요! ^^

무해한모리군 2010-12-3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색세계사를 사두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팽개쳐두고 있네요.
올해가 가기전에!(겨우 이틀) 다읽진 못하겠고 시작이라도 해야겠어요...

감은빛 2011-01-04 15:58   좋아요 0 | URL
지금은 읽고 계시겠네요.
저도 사놓고 한참동안 미뤄두고 있었어요. ^^

순오기 2010-12-30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구의 살갗인 흙의 침식은 정말 무서운 경고~ 그걸 무시하다간 다함께 자멸하는 재앙을 당하겠군요. 무서운 세상에 살면서 심각성은 모르는 무지를 깨뜨리는 이런 책을 읽어야 하는데... 잘 안돼요.ㅜㅜ

감은빛 2011-01-04 15:59   좋아요 0 | URL
네,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어서 놀랐습니다.
이런 책을 읽어야 하지만, 솔직히 손이 잘 안가는 건 사실입니다. ^^

cyrus 2011-01-02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우연히 이 글을 보게 되어서 들리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신간평가단에서 클라이브 폰팅의 책을 제가 추천한 적이 있었는데,
도서관에 개정판이 비치되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 읽어봐야 겠네요.
마지막에 몽고메리의 책은 희망도서로 신청했는데 조만간 읽게 되는데
이 책에 대해서 좋은 평들이 많아서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고 즐거운 새해 되시길 바랍니다. ^^

감은빛 2011-01-04 16: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신간평가단에서 활동하시나봐요.
좋은 책들 발빠르게 읽으시겠네요.
자주 들러서 발빠른 정보들 읽어봐야겠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감은빛님~

아내의 책들은 제외! 

아이들 책들도 제외!

일 때문에 자주 들여다 봐야하는 책들도 제외! 

최근에 읽었으나 아직 글을 쓰지 못한 책들도 제외!  

아직 읽지 못한 책들도 제외!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 너머로 보이지 않는 책들도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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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은빛님 고맙습니다
    from 제발 제발 2011-01-09 14:15 
                  잘 받았습니다.  감은빛님 고맙습니다. 『유혹하는 에디터』는 기다리던 책이라 반갑고, 『자연과 생태』(2010.12월호)는 기대하지 않았던 책이라 반가웠습니다.  알려주신 주소를 보고 『자연과 생태』에 다니시나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워낙 보리출판사를 좋아해서 작년에 『개똥이네 놀이터』를 신청했어요. (
 
 
stella.K 2010-12-29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직관력은 몇년 전 읽으려고 하다가 결국 못 읽고 남 줘버렸네요. 흐흑~

감은빛 2010-12-29 13:54   좋아요 0 | URL
저는 조금 읽다가 안 읽혀서 그냥 포기했어요. ^^

아이리시스 2010-12-29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해요, 찬드라>도 관심이 가고, 시집들이 눈에 들어와요.
저도 요즘 시집 보고 싶어요.
잘 이해도 못하고 또 그냥 던져버릴 거면서~
그래서 막상 책구입할 때 사지는 못하고 있지만요.

얼른얼른 읽어서 다 잡아버리세욧!^^
안그러면 자꾸자꾸 더 늘어날 거예요.
그게 행복한거긴 하지만,,^^

감은빛 2010-12-30 10:38   좋아요 0 | URL
<말해요,찬드라> 아직 안 읽어보셨다면, 한번 읽어보세요.
이 책을 계기로 영화로 만들어졌던 에피소드가 있죠.
이란주 선배님이 그 이후에 쓴 <아빠, 제발 잡히지마> 이 책도 강추합니다!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니, 자꾸만 읽다말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게 되네요.
결국 쌓여있는 책들이 도대체 몇 권인지 모르겠어요!
천천히 하나씩 해치워야겠어요! ^^

비로그인 2010-12-29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 몇 권. 그리고 다른 책 두 권..
어제 방바닥에 책이 뒹굴고 있어서 좀 정리했는데 뒹굴거리던 녀석들과 겹치는 것들이 있어 반갑네요 ^^

감은빛님 즐거운 연말 보내시고요 !!

감은빛 2010-12-30 10:40   좋아요 0 | URL
아, 바람결님과 겹치는 책이 있다니, 저도 반갑습니다! ^^
여기에 추가하지 않은 괜찮은 책들이 잔뜩 있으니,
아마도 겹치는 책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인사말씀 고맙습니다!
남은 2010년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2011-01-04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았다. 아버지는 택시노조 조합장이셨고, 8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하셨다. 잠시 아버지가 감옥에 계실 때는 끼니 걱정까지 해야만 했다. 가수 지오디의 유명한 노래.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그 노래는 나에게는 실화다. 아마 초등학생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머니와 함께 어디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배가 고팠다. 마침 중국집이 보여서, 배가 고프다고 말씀 드렸다. 어머니는 돈이 없다고 했고, 나는 주머니를 뒤져서 5백원을 보여줬다. 외갓집에서 용돈으로 받았던 걸 갖고 있었다. 그걸로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서 둘이 나눠먹었는데, 어머니는 한 두 번 드시고는 그만 젓가락을 내려놓으셨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별로 생각이 없다고 하셨다. 
  

돈과 관계없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가장 반대한 것은 어머니였다. 당신께서 오랜세월 생활비가 없어서 고생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그토록 심하게 반대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다른 인생을 꿈꾸기에는 너무 세상을 많이 알아버렸다. 돈 때문에 모든 사회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돈과 관계없는 삶. 욕심 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 

지역 환경단체에 일할 때, 한 달 밥값도 안되는 활동비를 받고도 아무 탈 없이 살 수 있었다. 당시에는 돈을 쓸 수 있는 시간조차 없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하루종일 일 생각만 하고 살았다. 점심은 사무실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대부분 술자리에 끼어 해결했다. 담배값과 교통비외에는 돈 쓸일이 없었다. 이 말도 안되는 돈으로도 살아지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지금도 아이 둘 키우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수입으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다. 우리 부부는 늘 돈 때문에 쪼들릴 때마다 욕심을 버리고, 더 아끼고 살아야지 다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 책 욕심은 왜 이렇게 버리기가 어려운지 모르겠다. 몇 해전 지인이 전하기를, 자신이 존경하는 교수님이 '자발적 가난'의 실천으로 물건 등을 기증하거나 나눠줬는데, 그때 그 교수님의 서가에 있던 수만권의 책들도 함께 처분했다고 들었다. 얘기를 전해준 지인은 당시에 아주 희귀하고 좋은 책들을 몇 권 얻었다고 좋아했는데, 그 말을 들은 나도 꽤나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평소에 다른 일에서는 늘 욕심을 버려야하지 라고 생각하면서, 이 무슨 모순인가. 

요즘도 아이들이 계속 아파서, 병원비와 약값 지출이 어마어마한데, 다른 지출은 아끼고 있는데, 책은 자꾸 사들이고 있다. 알면서도 도저히 버리지 못하는 이 책 욕심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관심이 가는 책인데, 책 값이 조금 부담스럽긴하다. 평소라면 그냥 질렀을 터인데, 요즘은 조금 망설이고 있다. 물론 이러다가도 언젠가 그냥 확 질러버릴 확률이 높다. 

 

 

 

 

 

 

 역시 관심을 갖고 있는 책. 책값 부담보다는, 어차피 지금 사도 연말에는 못 읽을 것 같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아직 구매를 미뤄둔 책. 역시 조만간 책장 한 구석에 쌓여있을 확률이 높다. 

 

 

 

  

 

 

 인천 지역신문 문화부 기자이자, 소설가인 조혁신의 두번째 소설집. 엄청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한동안은 구매를 미뤄두고 있다.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을 좀 읽고나서 다시 사야겠지. 

 

 

 

 

 

마지막으로 지금 읽고 있는 책.  

 

 딴지일보에 연재중인 글. 무신론자가 성경을 해석하고, 기독교를 비판하고 있다. 처음에 딱 펼치자마자 딴지일보 특유의 말투 때문에 좀 거부감이 들었던 게 사실인데, 지금은 오히려 그 말투 때문에 술술 잘 읽힌다. 그리고 재밌다. 같은 무신론자 입장에서는 무척 공감하지만, 기독교 신자가 읽기는 좀 부담스러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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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1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옛날에는요, 편한 길을 택한 제가 나름 대견스럽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했어요.
이제는요, 순수하게 무엇인가를 위해 선택을 하신 분들,
남들과 좀 달라도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분들,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분들에게
존경스러운 마음이 생겨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최선의 문제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은빛님, 멋지세요.

감은빛 2010-12-16 14:19   좋아요 0 | URL
아, 이러시면,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데요.
누구나 다 자신만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철저하게 이기적인 마음으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쫓아가는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공익을 위하거나, 희생하거나, 봉사한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좋아서 한 일이고, 또 그거 외에는 별로 하고 싶은 일도 없었거든요.
저는 누구나가 다 자신의 자리에서 의미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마녀고양이님 말씀 무척 고맙습니다!

2010-12-16 0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6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8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8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8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9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0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0-12-24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마음에 딱 들어오는 글에는 오히려 댓글을 아끼게 돼요.
저 여기말고 다른 데서도 감은빛님 글을 봤을 텐데 그때도 지나치고 방금도 또 그냥 나갈 뻔했어요. 멋진 분 같아요. 그리고 저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감은빛 2010-12-27 00:49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저도 아이리시스님 글 읽으면서 참 멋지다는 생각했었는걸요.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2010-12-25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2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에 날치기로 통과된 내년 예산에 대한 기사들을 읽다가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저것들이 무식하고, 지들 이익만 챙기는 파렴치한 것들이라도,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1. 영유아 예방접종비 400억 전액 삭감 

2. 결식아동 급식지원 예산 전액 삭감(작년 542억, 올해 203억) 

3. ‘보호자없는병원’ 시범사업 24억원 전액 삭감 

4. 전국 5만9천 경로당난방비지원(동절기 월 30만원) 전액 삭감(411억) 

5. 한시생계구호비(4181억원) 전액 삭감 

6. 저소득층 에너지지원 (903억원) 전액 삭감 

7. 장애인 의료비 지원(107억원) 등은 전액 삭감 

반드시 지출해야 할 복지예산을 다 없애놓고, 무슨 '친서민' 정책을 펴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궁금한건 이 돈이 어디로 가는가 하는거다. 뭐 뻔한거 물어서 뭐하겠나. 4대강 예산이 무려 9조 5,895억이나 된다. 그 외에 형님 예산(이건 뭐냐!)이 1,369억이고, 영부인 김윤옥의 한식세계화예산 310억이나 된다고 한다. 

당장 다음 달부터 보건소에서 우리 아가 예방접종도 못 맞추게 되는건가? 이제 예방접종은 무조건 병원가서 비싼 돈내고 맞추라는 건가?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들 밥 굶기고, 추운 겨울 어르신들 난방비 뺏아서, 강바닥 파내고 그 이익으로 지들 배만 채우면 끝인가? 아 진짜 욕나온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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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0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0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12-10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요즘 뉴스 보기 너무 싫습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똑같습니다.

감은빛 2010-12-10 16:53   좋아요 0 | URL
저는 명바기가 대통령 된 후로 뉴스 안보고 삽니다.
신문은 안 읽을 수 없으니 받아보긴 하는데,
매일 아침마다 신문을 찢어발기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습니다!

잘잘라 2010-12-10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짜믄 좋노.. 이거야 원.. 무어라 할 말이 없게 만드네요. 증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 근데 진짜 이 일을 우짜믄 좋은긴가요? 쿨럭~ 흩어져서 백날 욕해봐야 욕먹는 애들 수명만 늘려주는 일일테고.. 아휴.. 약올라.

감은빛 2010-12-13 16:38   좋아요 0 | URL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답합니다!

귀를기울이면 2010-12-10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문기념으로 주워들은 한마디 옮겨봅니다.

"형님예산으로 건설되는 도로의 명칭 : 결식아동급식지원비路(만든 길)"

감은빛 2010-12-13 16:41   좋아요 0 | URL
재밌네요!
트위터에서 이번 사태를 풍자하는 토막글들이 많던데,
다들 어쩜 그렇게 감각이 좋은지!
멋진 글이 많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