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읽은 책들 중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좋은 책이니 꼭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은 책이 여럿 있다. 그중에는 내가 서평을 잘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해야지 라고 생각했던 책들도 있다. 이번에 글을 쓴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억>이 그런 책들 중에 하나다. 거의 2년쯤 이 책의 서평을 쓰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맘에 들지 않아서 그냥 지워버리곤 했다. 이번에 글을 쓰고나니 오랜 숙제를 해결한 듯 후련하다. 그런데 아직 그렇게 잘 소개해보고 싶은 책이 여럿 남아 있다. 이 책들은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이다.

  

 김단야 선생과 이정 박헌영 선생은 존경하는 선배운동가(혁명가)이자, 개인적으로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분들에 대한 책이 나올거라는 얘길 듣고, 몇 년을 기다렸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바로 소개글을 쓰고 싶었으나, 좋은 책을 잘 소개하고 싶다는 욕심에 자꾸만 미루다보니 어느새 2년이 넘게 지나버렸다.

 

 

 

 

 역시 잘 소개해서 널리 알리고 싶은 책. 저자처럼 재미있게 잘 쓸 자신이 없어서 계속 소개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써야할까? 계속 고민중이다.  

 

 

 

  

  

 정말 도시락싸들고 다니면서 읽으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소개글도 썼고, 단행본 <100인의 책마을>에도 소개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소개한 듯 하다. 

아직 읽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꼭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아참, 이번에 나온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은 아직 읽는 중이다. 작년 년말에 읽기 시작했는데,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 습관때문에 이 책은 아직 진행중이다. 곧 소개글을 써야겠다.

 

 

  

 이 책 처음 읽었을 때는 김두식 선생님이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아서, 널리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미처 글을 쓰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는 동안 김두식 선생님이 많이 유명해져서, 이제는 더이상 내가 소개글을 쓰지 않아도 많이 읽히고 있는 듯 하다. 

그럼 굳이 애써 소개글을 쓰지 않아도 될까? 언젠가 한번 써보고 싶다는 욕심만 가져본다. 

 

 

 

  

 이시백 선생님의 입담은 정말 최고다! 성석제 작가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 기준에서 이시백 선생님이 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막상 이 책을 소개하려고 생각하면 마땅한 글이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은 숙제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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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now 2011-01-13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서점갈때 꼭 확인!"리스트가 자꾸만 늘어나는군요. ㅠ.ㅠ
감은빛님, 이 글 보면 은근 '혁명'쪽이세요. ㅋㅋ

(그런데, 양철나무꾼님 서재랑 스킨이 같아서 가끔 헷갈린답니다.
좀 전에도 양철나무꾼님이라 부를 뻔 했어요. ^.^;;;)

감은빛 2011-01-14 01:45   좋아요 0 | URL
네, 양철나무꾼님과 스킨이 똑같습니다.
저도 처음에 깜짝 놀랐고,
가끔 양철나무꾼님 서재에 들어가있을 때, 제 서재로 헷갈리기도 합니다.
2004년 처음 서재만들었을 때부터 사용했던 스킨입니다.
한번도 바꾼적이 없어요.
양철나무꾼님과 저는 여러모로 비슷한 취향인 것 같습니다.

은근 '혁명'쪽이라기 보다는 대놓고 '혁명주의자'입니다.
자타공인 빨갱이라서요. ^^

sslmo 2011-01-13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서재 스킨을 바꿔야 하는 걸까요.
책들도...이시백 한권 빼고 겹치네요.
근데,근데 말이죠.
성석제와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이기호 님 정도라고 생각했었는데...이시백도 그렇다구요?^^

감은빛 2011-01-14 01:48   좋아요 0 | URL
이것도 인연인데 굳이 바꿀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누가 일부러 따라한 것도 아니고,
둘 다 자기 취향에 따라 선택한 거잖아요.
참 많이 겹치네요.
어쩜 이렇게 취향이 비슷할까요? 신기해요!

저는 아직 이기호 작가 글은 접해보지 못했습니다만,
이시백 선생님 글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시백 선생님 입담을 따라올 국내 작가가 거의 없습니다.

cyrus 2011-01-13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르고 있었는데, 나무꾼님 스킨이랑 비슷하네요.
저 방금 나무꾼님 서재 댓글 남기고 왔거든요ㅎㅎ
<경제성장이 안되면,,>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일거 같아요.
좋은 책들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

감은빛 2011-01-14 01:50   좋아요 0 | URL
스킨이 똑같아요.
첨에 그 사실을 깨닫고 참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네! 그 책은 꼭 봐야할 책 맞구요.
조 위에 있는 책들은 한번쯤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제가 서너번 이상씩 읽은 책들입니다.

다이조부 2011-01-20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라딘 하면서 이 스킨을 가장 오랫동안 썼어요

이 스킨이 질리지 않더라구요 ㅎㅎㅎ

소개한 책 중에서 읽은건 김두식 헌법의 풍경 밖에 없네요..

녹색평론사 출판사를 신뢰해서 경제성장..... 이 책이 우선 땡기네요 ^^ ㅋ

감은빛 2011-01-21 13:1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다이조부님.
필명이 인상적이군요. ^^
다이조부님도 이 스킨 쓰셨군요.
처음 만들 때 이후로 스킨은 손도 안댔는데,
그때 제일 맘에 든 게 이거였거든요.

녹색평론사 책은 다 의미있고, 좋죠.
방문과 댓글 고맙습니다!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임경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낮은 담벼락이 이어진 더러운 골목길을 달려간다. 심장은 쿵쾅쿵쾅 시끄럽게 뛰어서, 주위의 소음은 모두 내 심장박동소리에 묻혀 사라진다. 마치 영화에서 극적인 부분을 느린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빠르게 달리는 내 몸과 상관없이 내 시야는 천천히, 골목길의 작은 부분까지 다 보여주며 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소리는 사라졌다. 뒤에서 총성이 들렸다. 개똥을 밟았던가, 무언가 미끌거리는 것을 밟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긁힌 팔꿈치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홱 몸을 뒤집어 돌아본다. 어지러이 달려온 골목길, 아직 쫓아오는 사람이 보이지는 않았다. 총성은 조금 더 먼 곳에서 들려온 것 같다. 몸을 일으켜 다시 달린다. 얼마나 달렸을까, 점점 숨이 가빠오고, 규칙적으로 흔들리던 시야가 점점 불규칙스럽게 흐려지기 시작할 즈음, 골목에서 튀어나온 누군가가 나를 껴안아 붙잡았다.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놀란 나를 진정시키려 그가 중절모를 들어 올려 얼굴을 보였다. 낮은 목소리. ‘나요, 동지. 진정하시오. 여기까지 왔으면 안전할 것이니 숨을 돌리고 나를 따르시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절모를 다시 눌러 쓴 그는 곧 몸을 돌려 앞장섰다.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굽이굽이 어지러운 골목길을 또다시 누비기 시작했다.

꿈이라고 알고 있었다. 어쩌면 처음 일본순사에게 쫓기기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1929년 만주 안동에서 서른 남짓의 김단야 선생을 만났으니, 그건 꿈일 수밖에 없다. 김단야 동지는 조선공산당 재건의 사명을 갖고, 이른 여름 모스크바를 출발하여 만주 안동에 이르렀다. 꿈속에서 나는 김단야 동지가 무사히 압록강 철교를 건너 국내로 잠입할 수 있도록 돕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꿈속의 나는 실제나이보다 훨씬 더 어린 것 같다. 서른 즈음의 김단야 동지보다 더 어린 느낌이었다. 아니 어쩌면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위원이자 코민테른 전권위원인 김단야 동지의 위압감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비싸 보이는 양복에 중절모까지 잘 차려입은 김단야 동지는 얼굴도 매끈하니 잘 생겼다. 그는 1922년에 일제의 감시망을 뚫고 압록강철교를 넘는데 성공했다. 당시 박헌영 동지와 임원근 동지는 넘지 못했던 국경을 그는 혼자 넘었다. 어떤 방법을 사용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번에는 어떻게 국경을 넘을 생각일까?  


허름한 여관방으로 돌아온 나는 김단야 동지에게 어떻게 쫓기게 된 사연을 설명해야 할까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단야 동지는 그런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황당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본군 국경수비대 책임자의 꿈으로 잠입해 들어가서, 비밀통로를 찾아내자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는 이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로 빙의되어 있었다. 영화 [인셉션]을 본 영향이 큰 것 같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다. 나는 또다시 일본순사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이번에는 일본 어느 도시 중심가였다. 액션 영화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꿈에서 나는 성룡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순발력을 보이며, 총탄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갑자기 내 앞으로 자동차가 한 대 멈춰 섰다. 박헌영 동지가 문을 왈칵 열어젖히고, 엄호 사격을 했다. 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출발하는 차에 뛰어올랐다.

차 안에서는 박헌영 동지가 다급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서는 비밀통로를 찾아낼 수 없으니, 한 단계 더 깊은 꿈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뒤쪽에는 국경수비대 책임자가 기절해 있었다. 우리는 [인셉션]에서처럼 꿈속에서 다시 꿈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미 꿈속에 있었으니, 세 번째 꿈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곳에서도 총격전이 벌어졌다. 아무튼 나는 액션영화를 너무 많이 보는 편인가보다. 꿈속에서 계속 총질만 하고 있었으니. 개미떼처럼 밀려든 일본순사들에게 포위되어, [영웅본색]의 윤발이 형처럼 총질을 했으나, 이미 김단야, 박헌영, 임원근 동지는 모두 총에 맞았다. 다리에 총을 맞은 김단야 동지를 향해 달려가다가 눈앞으로 날아온 수류탄을 보고 잠에서 깨었다.

이 꿈은 내가 반복해서 꾸는 꿈 중에 하나이다. 영화 [인셉션]을 보고나서 꿈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서 ‘꿈 침입’이라는 요소가 더해졌으나, 예전에는 주로 일본순사에게 쫓기다가 깨는 꿈을 여러 번 꾸었다. 이런 꿈을 자주 꾸는 이유는 아마도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는 잊을 수 없는, 아니 잊지 말아야 하는 9명의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책은 2008년에 출간되었으나, 이런 책이 곧 나오리라는 사실을 2006년부터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계속 기다리고 있다가,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해서 읽고 또 읽었다. 자꾸만 읽다보니 그들의 운동이(그리고 삶이) 더 궁금해졌고, 궁금증은 꿈속에서 그들을 찾아가게 만들었다. 어떤가? 일제 강점기 혁명가들의 흥미진진한 삶이 궁금하지 않은가? 궁금하다면 어서 펼쳐보길 권한다. 왜곡된 역사를 바라잡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참고도서
1. 한국공산주의운동사1 / 1986 / 돌베개
2. 한국현대사와 사회주의 / 2000 / 역사비평사
3. 역사속의 미래, 사회주의 / 2004 / 현장에서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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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1-12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감은빛님 독서는 남다른데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책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그렇지 않아도 어제 '책 읽는 밤'에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대해서 얘기해 주던데.ㅋ
김단야라고 해서 김은빛님 딸 사랑이 남다르구나 했더니 그 단야가 아니었어요.ㅎㅎ


감은빛 2011-01-14 01:37   좋아요 0 | URL
제가 좀 별난데가 있죠. ^^
아하, 스텔라님은 곧바로 딸 이름을 떠올리셨군요.
그 분 이름(엄밀히 말하면 '호'라고 해야겠죠.)에서 따왔어요.

마녀고양이 2011-01-12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고등학교를 홍대부여고를 나와서
홍익 대학교 안에 함께 있었거든요. 고등학교 재학 중에 마신 최류탄이
대학교 들어가서 마신 최류탄 보다 훨씬 많아요... 1986-88년 아주 심했잖아요.

감은빛님의 페이퍼를 읽다보니, 학교 후문 굽이진 골목으로
득달같이 도망가던 대학생들이 생각나요, 다들 입에 수건 두르고 그렇게 도망가고
뒤에서 쫒아가는 군인들 있고. 그랬죠.... 아, 그렇게 어렵게 얻은 지금인데 말이죠. ㅠㅠ

2011-01-12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1-14 01:41   좋아요 0 | URL
86~88 이라면 가장 치열할 때였네요.
그렇게 어렵게 얻은 시대를 단번에 역전시켜버린 저 쥐새끼는 참 대단하죠!

저는 묘사한 것 처럼 골목으로 도망다닌 일이 참 많았습니다.
고등학교때도 그랬고, 대학교때도 그랬죠.

sslmo 2011-01-13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혼자 읽기 넘 아까워요.

감은빛 2011-01-14 01:42   좋아요 0 | URL
흐흐 고맙습니다! ^^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참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오랫동안 소설을 읽지 못했지만, 그래도 읽고 싶은 책들은 꾸준히 사 모았다. 책장 한쪽에 쌓여있는 아직 읽지 못한 소설들을 보면서 언제 이걸 읽나 생각하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연말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어느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기로 했다고 공지를 했다. 그리고 작가님도 모시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날 바로 책을 구매해서 읽었다.

제 15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며, 세상에서 가장 ‘못된’ 소녀의 지독한 성장기라고 띠지앞면에 적혀있었다. 그리고 띠지 뒷면에는 “엄마의 구멍을 찢고 바깥으로 나왔던 그 순간, 나는 이미 끝을 경험했다.”라고 인용문을 적어놓았다. 이 한마디 강렬한 문장이 호기심을 불러왔다. 어떤 얘기인지 몰라도 문장이 꽤나 괜찮아서 재미있을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지점은 그 사람의 문장력이다. 물론 번역서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지만, 국내 작가의 경우 이야기 자체보다는 문장력이 뛰어나서 좋아하는 책들이 있다. 이 책도 그런 책이 될 것 같은 예감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내 기대는 정확했다. 글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재밌었다. 몰입해서 책을 읽다가 문득 작가에 대해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독서모임에서 만난 최진영 작가는 의외로 엄청 귀여운 외모였다. 책 날개부분에 실린 사진을 미리 보고 나갔지만, 작가를 알아보지는 못했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니라 그날 모임에 참여했던 열댓 명의 참여자들 대부분이 작가를 못 알아봤다. 역시 사진이란 건 믿을 게 못되는 구나 생각하며 작가의 얼굴과 사진을 번갈아 쳐다봤다. 작가를 모셔두고 우리는 책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작가의 얘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다 마치고 나서 ‘소녀를 기억해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사인도 받았다.

이 책은 소녀의 성장기라고 하는데, 나는 판타지를 읽는 느낌이었다. 한편의 잘 만들어진 판타지 소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밑바닥 인생들이다. 자신의 이름조차 모르는 소녀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펼쳐지는 모험담이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번듯하게 잘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지지리 궁상도 그런 궁상들이 없다. 하지만 그들은 따뜻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긋지긋한 가난과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지만, 생판 모르는 소녀를 아끼고 돌봐주었다. 황금다방, 태백식당, 폐가, 각설이패의 트럭을 거치며 소녀는 살아남는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소녀의 이름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알 수 없다. 언나, 간나, 꼬마라고 불리다가 나중에 또래 친구들이 자신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유나’라는 이름을 지어주지만, 소녀의 부모가 지어주었을 진짜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소녀는 스스로 ‘드드득’이란 이름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으며, 소녀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태명은 ‘평화’ 라고 했다. 작가는 제목에서 소녀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조차도 없는 소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 같은데, 정말 이름이 뭔지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부모에게 이년 혹은 저년으로 불렸던 소녀는 이름이 없었을까? 왜 소녀의 부모는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을까.

처음 읽었을 때는 강렬한 문장에 사로잡혀 빠르게 읽었는데, 다시 한 번 더 주요부분들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이야기가 조금 더 정교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되는 지점들이 있긴 했다. 이미 인생을 달관한 소녀의 내력에 대해 좀 더 친절한 소개가 있었으면 좋았겠다. 라고 아쉬움이 생기기도 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만나게 된다면 조금 더 완성도를 높여주길 바란다.

인생이라는 긴 모험에서 다양한 일들이 일어난다. 언젠가 내 옆을 스쳐갔을 혹은 앞으로 스쳐가게 될 소녀를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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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1-01-05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참 좋아요.^^

감은빛 2011-01-06 14:2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제목이 맘에 들더라구요.

Arch 2011-01-05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안녕하세요~

작가가 '귀엽다'도 아니고, '엄청 귀엽다'란 부분이 참 예뻤어요. 어떤 소설일지 궁금한데 요샌 소설에 푹 빠지질 못해서 읽을 엄두를 못내고 있어요. 문장, 감은빛님이 괜찮다고하신 문장이 어떨지 궁금해요.

감은빛 2011-01-06 14:2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 책 재밌고 매력적입니다.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아마 푹 빠지실겁니다! ^^

stella.K 2011-01-0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저도 이 책 좀 빌려줘요!ㅋ

감은빛 2011-01-06 14:21   좋아요 0 | URL
그럼 우리 서로 바꿔볼까요? ^^

아이리시스 2011-01-11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이렇게 예쁜 책이 밑바닥 인생들이라니, 아이러니하네요.
소녀 좋다, 심지어 소녀가 주인공!
작가도 만나시고 사인도 받으셨으니 더 기억에 남는 소설이겠네요.
저도 기억해둘게요~^^

감은빛 2011-01-12 02:55   좋아요 0 | URL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조금씩 건드려주고 있어서,
나름 의미가 있는 소설입니다.
젊은 작가 답지 않게 필력이 좋습니다.
한번 손을 대면 쉽게 손을 떼지 못할 정도로 집중력이 있구요.
결론적으로 아주 좋은 책입니다.
읽어보세요! ^^
 
신 벗어던지기 - 교회에서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성경 공부
블루칼라 지음 / 미담사 / 201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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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은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교회나 성당이나 절에 다닌 적은 있다. 어릴 때 어머니는 절에 다니셨다. 일요일마다 나와 동생을 데리고 절에 가셨다. 절에서 우리는 참 심심했는데, 주위에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기도하는 수많은 아줌마들과 할머니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성당은 군대에 있을 때 잠시 다녔다. 군대에서는 거의 의무적으로 종교활동을 시켰다. 세 종교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성당을 선택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라서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절이나 교회는 부대 안에서 종교활동을 했지만, 성당을 선택하면 부대 밖으로 나가 볼 수도 있었다. 쵸코*이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부대 밖 공기를 느껴볼 수도 있으니 좋았다. 교회에는 좀 오래 다녔다. 고등학생때였다. 내가 신을 믿지도 않으면서 교회에 다닌건 두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번째는 중학교때 혼자 배웠던 기타를 맘놓고 칠 수 있는 곳이 교회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회에는 드럼도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누군가에게 드럼을 배워보고 싶었는데, 막상 그러지는 못했다. 두번째는 여자 때문이었다. 맘에 드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마침 친구가 다니는 교회라서 나도 한번 다녀봐야겠다고 맘 먹었다. 

약 2년 가까이 교회를 다니면서 나는 신을 믿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 했다. 목사님의 설교는 좀 재미없었지만, 그냥 딴생각을 하면서 견뎠고, 찬송가를 부를 때는 입만 벙긋벙긋 했다. 교회에 가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런 건 다 견딜 수 있었다. 교회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활동들을 했는데, 나는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런 활동들을 굉장히 열심히 했다. 교회대항 축구대회에 나가서 준우승을 했고, 연극에서는 무려 주연(예수 그리스도 역)을 맡기도 했다. 이렇게 열심히 교회를 다녔지만 나는 아무리해도 신을 믿을 수는 없었다. 없다는 게 너무 뻔한데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나. 그런 나에게 침례(내가 다닌 교회는 세례가 아닌 침례를 했다.)를 받으라는 압력이 들어왔다. 결국 교회에 더이상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친하게 지낸 친구들 중에서 교회에 다니는 녀석들이 많았다. 어쩌면 우리나라에 이렇게 기독교 신자가 많은지 참 궁금하다. 대개는 종교를 믿는 건 개인의 자유니까 믿든 말든 나랑은 별로 상관이 없는데, 가깝게 지내는 친구 중에서 몇 녀석은 나를 꼭 교회신자로 바꾸고 싶어했다. 나를 전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도 되는 양, 나를 교회에 데려가고 싶어서 안달하던 녀석들이 있었다. 그러면 끝없는 논쟁이 시작된다. 나는 역사적 사실들을 예로 들면서 기독교의 죄악을 끄집어 내고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친구들은 성경말씀을 인용하면서 신을 믿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 끝이 없고 답이 안나오는 논쟁을 한번 하고 나면 그 친구들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그때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훨씬 더 유리했을텐데, 앞으로 그런 논쟁이 벌어진다면 이 책을 잘 활용해야겠다. 

'교회에서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성경공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딴지일보에 연재했던 내용을 엮은 것이다. 연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책을 읽는 중에 궁금해서 한번 찾아봤는데, 굉장히 전투적인 댓글들이 많이 달려있어서 댓글 읽느라 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도 했다.  

이 책은 여러가지 지점에서 재미있다. 우선 미담사라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출판사에서 냈다. 검색해봤더니 출간한 책도 이거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 필자는 딴지일보에서처럼 '블루칼라'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저자소개조차도 대단히 평범해서 필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전혀 노출시키지 않는다. 30년을 기독교인으로 살았다가 무신론자가 된 40대 초반의 남성이라는 사실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요즘은 블로그 필명으로 책을 내는 경우도 몇 번 본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설정은 좀 낯설다. 기독교인들의 공격을 대비한 의도가 읽히는데, 어쨌든 재밌다. 그다음은 저자의 말투가 특이하다. 딴지일보 특유의 말투로 적혀있는데, 맨처음엔 그게 굉장히 거슬렸다. 읽다보니 적응이 되어서 나중에는 괜찮아 졌다. 재밌다. 이런 말투로 적혀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술술 잘 읽히는 것 같다. 

성경에는 참 의외의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어서 놀라웠다. 레위기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아적었다는 부분인데, 그 중에는 참 놀라운 내용들이 있었다. 20장을 보면 간통을 하거나, 친족과 잠자리를 하면 죽이라는 내용이 있다. 짐승과 더러운짓을 하면 죽이라는 내용도 있고, 생리기간중의 여성과 관계를 하면 죽이라는 말씀도 있다. 그리고 동성연애를 하면 죽이라는 내용도 있다. 황당하지 않나. 왜 하나님은 인간의 침대생활까지 이렇게 간섭을 하는 걸까? 게다가 우간다에서는 성경말씀을 근거로 실제로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하는 법까지 정해져 있다고 한다. 이건 무슨 말도 안되는 법이란 말인가. 

인간이 종교를 만든 건 아마도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종교는 인간을 억압하고 복종시킨다. 나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제 신에게서 벗어나서 인간을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삶을 살피고, 가족을 살피고, 이웃을 살피는 삶이야말로 종교에서 말하는 제대로 된 삶이 아닌가. 종교에서 벗어나야 인간이 바로 보인다. 그래야 온전히 제대로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책의 소제목 중에서 '하나님, 이제 인간을 놓아주세요'라는 말이 있다. 만약 하나님이 있다면 찾아가 이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제발 이제 그만 인간을 좀 놓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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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04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무교이지만 종교에 대한 혐오감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 주위에도
종교를 강조하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몇 분동안 길게 이야기를 해봤자
답은 보이지 않았던건 사실이었구요. 부제명이 주는 인상이 강렬해서 그런지
책의 내용이 무척 궁금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이조부 2011-01-05 07:03   좋아요 0 | URL


시리스님~ 보통 무교 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종교학자 최준식에 의하면 적절한 표현은 아니라고 합니다.

무속신앙 을 무교 라고 한다고 하네요.

일상에서 무교 라고 표현할때는 종교 없다 라고 할때 쓰잖아요~

감은빛 2011-01-05 07:25   좋아요 0 | URL
기독교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갖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다른 종교들까지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본질적으로 종교가 갖고 있는 순기능을 존중하고 싶습니다.
다만 현실에서 종교가 갖고 있는 거대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싫습니다.

이 책 재밌습니다.
저자의 바람대로 기독교인들이 많이 읽으면 좋을텐데,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네요.

sslmo 2011-01-05 0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소망교회 목사,부목사 폭행 사건 뉴스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어요.
이 정도면 '하나님, 이제 인간을 놓아주세요' 가 아니라,
'하나님, 제~에~발 저 인간들 좀 잡아가 주세요'가 아닐까요?^^

다이조부 2011-01-05 07:04   좋아요 0 | URL


모태신앙 인 입장에서 그런 기사를 보면

이제는 무덤덤해질때도 됬는데, 여전히 안타깝네요 휴우

감은빛 2011-01-05 07:28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는 교회가 너무 많아요!
다 잡아가려면 하나님도 엄청 피곤하실 거예요.

매버릭꾸랑님, 모태신앙인은 어떤건지 궁금하네요.

다이조부 2011-01-05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기독교 집안의 자녀들 중에는 시련(?)없이 신앙이 자연스러운 사람은

뿌리가 얕은 사람이 있다고 한탄(?)을 하는데 제가 그런 범주의 사람입니다.

모태신앙인건 불가항력이어서 어쩔수 없지만, 저는 아직 종교가 없어요 ^^

감은빛 2011-01-06 14:03   좋아요 0 | URL
모태신앙이 그런 뜻이었군요.
불가항력이네요! ^^

마녀고양이 2011-01-05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종교가 없다 가 아니고, 어떤 종교도 부정하지 않는다의 무교라 할까요.. ^^
신의 존재에 대해서 논하기에는 우리의 지식이 짧다는 칸트의 신념을 쫒아서.
그런데 말이죠,
교회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너무나 자기들만의 종교라는거죠.
성경 자체보다, 동네 들어서면 먼저 돈으로 땅사서 교회부터 짓고
유치원 운영에 단합해서 똑같이 33만원 회비받는 자체가 보기 싫다는거죠..

다이조부 2011-01-05 13:54   좋아요 0 | URL


철학과에 2년이나 적을 두었는데도 칸트에 관하여 몰라서 쑥스럽네요 ^^

전공공부를 하게 되면 마치 그 분야에 관하여 조금은 아는 것 처럼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랑 같이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던 대학친구는 취업후

회사에서 동료들이 별로 관심도 없으면서 한미관계나 북미관계 그런 거창한

문제에 관하여 물어보면 자기도 잘 모르면서 주워섬겼다고 하더군요 ㅎㅎ

유치원 운영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 접하는 이야기 인데..... 음 예수를

따르는 예수따르미 의 삶을 살아야 기독교 신자들이 존중을 받을텐데 내막을

모르지만, 알게되면 속이 쓰린 이야기 일거 같아 겁이 나네요~

그래도 현실을 직시하고, 두 눈 뜨고 알아야겠지만 말이죠....

감은빛 2011-01-06 14:08   좋아요 0 | URL
어떤 종교도 부정하지 않는다는 관점이 맘에 들어요.
저는 근본적으로 신의 존재 자체는 믿지 않지만,
제가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종교는 존재하니까,
종교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제가 활동하면서 만나온 여러 존경하는 종교인들은
다른 종교도 인정하고, 함께 활동하기도 하던데,
그런 자세가 모든 종교인에게 필요할 것 같아요!

매버릭꾸랑님 철학전공하셨나봐요.
저도 철학에 관심이 많아요.
담에 입문자를 위한 좋은 철학책 좀 소개해주세요!

2011-01-06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1-06 14:17   좋아요 0 | URL
그 믿음과 믿지 않음의 대상이 누구냐가 중요할 듯 합니다.
요즘 어쩌다보니 종교에 대한 책을 여럿 읽게 되어서,
저도 최근에는 좀 근본적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게 됩니다.
현재 제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인 결론은,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라는 것이구요.
하나의 종교라는 건 인간이 신을 만들어낼 당시에 권력을 쥐었던 자들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대표적으로 성경을 들여다보면, 고대 유대인들이 사회를 어떻게 통치했는가를 알 수 있죠.
이 책은 그런 지점들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신을 벗어 나야 인간을 볼 수있다고 한건,
본질적으로 현재 대부분의 종교들이 기득권 층의 지배구조 강화에 일조하기 때문입니다.
신을 위해 바치는 시간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추천해 주신책은 한번읽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이조부 2011-01-08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과에 잠깐 있었어요~

웃긴게 맨날 플라톤 비트겐슈타인 키에르케고르 파르메니데스 ㅎㅔ라클레이토스

이런 철학자들 이름을 자주 들먹이다 보니까 마치 친구처럼 착각이 들어요 ㅎㅎ

물론 고명한 철학자들을 깊이있게 공부 한건 아니고 이름만 익숙해졌죠~ ㅋㅋㅋㅋ

대학신입생 이면 이학사 에서 나온 메타피지카공주 라는 책을 권하고 싶네요.


감은빛 2011-01-10 11:28   좋아요 0 | URL
한두번쯤 들어본 이름들이군요.
친구처럼 생각이 된다니 재밌군요.
저는 사회학 공부하면서 밤낮 맑스, 막스베버, 에밀 뒤르껨, 위르겐 하버마스, 피에르 부르디외 등을 공부했지만, 친구로 여겨지지는 않던걸요.
철학과 사회학의 성격이 달라서일까요?
매버릭꾸랑님과 저의 성격이 달라서일까요?
재밌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1-1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보면 우리가 도저히 지키기 힘든 계율이 많이 나옵니다.

감은빛 2011-01-12 02:56   좋아요 0 | URL
그렇더라구요. 이 책 읽으면서 그런 내용들을 하나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근거로 동성애자를 사형시킨다는 우간다 법률은 정말 충격적이더라구요!
 

취한 시간 

기억을 더듬어 보면 12월 31일 밤과 1월 1일 새벽은 늘 취해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된 이래로 단 한번도 취하지 않고 새해를 맞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모르겠다. 그런 때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새해 첫 날은 늘 취해있었기에 끊어진 필름처럼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 한 해의 시작은 늘 그랬다. 취해서 맞은 새해 첫날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기억이 희미해져서 내 삶의 일부가 마치 지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싫다. 안개가 낀 듯 뿌옇게 흐린 기억속을 더듬어 뭔가를 찾고 싶은데, 내가 찾고 싶은 게 무언지 조차 이미 기억나지 않는다.

숫자는 그냥 숫자일 뿐이다.  

나이는 그냥 숫자일 뿐이라고 생각해왔다. 하루 하루에 숫자를 부여하고 그것을 기록해두는 것도 참 우습다고 생각했다. 해가 바뀌는 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리가 2010 이라는 숫자를 부여한 시간과 2011 이라는 숫자를 부여한 시간이 뭐가 다른가? 해는 떠올랐다가 지고, 바람은 불고, 구름은 떠다니고, 나무는 천천히 자라고, 나비는 날아다니고, 사슴은 물을 마신다. 보신각 종이 울리든 말든 자연의 시간은 변함없이 그렇게 흘러간다. 새해가 되었다고 뭐 특별할 것도 없고, 달라질 것도 없다. 그냥 시간이 흐를 뿐이다. 하루 하루 잠을 자고 나면 조금씩 나이를 먹어갈 뿐이다. 숫자는 그냥 숫자일 뿐이다. 특별한 의미 따위는 없다. 

쓸데없는 끄적임 

혼자 텅빈 자취방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게 언제였던가. 몇 해전이었던가 모르겠다. 아무튼 그 날은 새해 첫 날이었다. 밤늦게까지 누군가와 술을 마셨고, 어김없이 취했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혼자 자취방에서 자고 있었다. 옷을 모두 벗고 알몸으로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입술이 바짝 말라있었고, 목이 꽉 잠겨있었고, 머리가 깨질 것 처럼 아팠고, 속이 쓰렸다. 이불을 덮어쓰고 다시 잠들려했지만, 정신은 점점 더 또렸해졌다. 누군가를 떠올렸던 것 같다. 그게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열심히 그녀를 떠올렸다. 오랫동안 누워서 그녀만 생각했다. 생각의 끝자락에 자위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핸드폰을 집어들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엎드려서 책을 펼쳤다가 다시 치웠다. 공책을 펼치고 연필로 의미없는 단어들을 끄적였다. 습작공책을 펼쳐들고 며칠 전에 쓴 단편을 다시 읽으며 어색한 부분을 고쳤다. 습작공책을 던져버리고 누워서 천정만 쳐다보았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담배 생각은 간절했다. 몸을 일으켜 좁은 방을 뒤졌지만 담배를 찾지 못했다. 재떨이를 끌어와서 장초를 뒤졌다.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놈을 하나 골라들고 이번에는 라이터를 찾았다. 잠바 주머니늘 뒤지고, 바지 주머니를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구석에 널부러져 있는 책들 사이에서 조그만 성냥갑을 찾아내었다. 성냥을 그었다. 확 불꽃이 일었다. 장초를 물고 불을 붙였다. 강한 자극이 꽉 잠겨버린 목을 덮쳤다. 콜록 콜록 두어번 기침을 했다. 길게 담배를 빨았다. 그리고 길게 숨을 내뱉았다. 담배 연기가 앞으로 쭉 내뻗었다가 잠시 후 흩어졌다. 추워서 덜덜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지만, 옷을 걸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이불을 어깨에 덮어쓰고 점점 짧아지는 담배를 끝까지 피웠다. 또다른 장초를 찾으려다가 말고 물을 찾아 냉장고를 열었다. 물이 없었다. 수돗물을 틀어서 마셨다. 차가운 물이 속을 자극시켜서 다시 쓰렸다. 이불을 덮어쓰고 엎드려서 다시 공책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오랫동안 의미없는 무언가를 끄적였다. 

2011 이라는 숫자 

나는 무엇을 쓰고 싶었던 걸까? 나는 무었을 끄적였던 걸까? 그 공책이 지금 남아있지 않아서 알 수 없다. 떠올리려 애써도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종일 생각했던 그녀가 누구였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공책은 없어졌고, 내 기억도 지워졌다. 그렇게 열렬하게 좋아했던 사람을 깨끗이 잊었다. 언젠가 지금을 기억하는 어느 날에도 그럴 것이다. 내가 무엇을 애타게 바라고, 무엇에 격하게 분노하고, 무엇때문에 죽을것처럼 아파하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컴퓨터를 켜고,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갔다오고, 마우스를 움직이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동작 하나하나는 다 기억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무엇을 고민했는지, 무엇에 마음을 쏟고 있는지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은 2011 이라는 숫자가 낯설다. 서류를 작성하면서 자꾸만 2010이라고 썼다가 찢어버리고 다시 고쳐쓰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 계획에 대해서 얘기한다. 올해는 무엇을 해보고 싶고, 무엇을 바꾸고 싶고, 어딘가를 가보고 싶고, 책을 얼마나 읽고 싶고, 돈을 얼마나 벌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있다. 나는 새해 계획이라는 걸 해본적이 별로 없다. 계획을 한다고 해도 지켜지지 않을 것을 잘 안다. 그저 숫자가 바뀐 것일 뿐 나에게는 같은 시간이다. 그냥 나는 미치도록 사랑이 하고 싶다! 내 바람은 늘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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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1-04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여, 요즘 추억을 더듬다 보면, 옛남자들 이름이 죄다 기억나지 않아요. 흑.
그래서 이제는 혹시 추적을 해보고 싶어도 어림두 없어염. 단서가 있어야 하죠~ 헤헤.

오호라... 미치도록 사랑을 하고 싶으시다뉘.
아무래도 날 한번 잡고, 유부남의 도리에 대해 가르쳐드려야겠슴다. 아하하.

감은빛 2011-01-05 07:29   좋아요 0 | URL
아, 마녀고양이님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영광이겠습니다!
빨리 날 잡으세요!
근데 정말 유부남의 도리는 뭔가요? ^^

아이리시스 2011-01-0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부남의 도리라는데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
뭐지, 뭐지?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11-01-05 07:29   좋아요 0 | URL
저도 궁금하네요. 빨리 가르침을 받아야 될텐데요. ^^

sslmo 2011-01-05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부녀의 도리는요,
집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저 사람은 내 남편이 아니다.' 생각하고 홀가분하게 놓아주는 거라는데...

저는, 그냥 미치도록 사랑이 하고 싶다 말고요,
그저 무덤덤,무던히요~^^

감은빛 2011-01-05 07:31   좋아요 0 | URL
아, 유부녀의 도리는 그런거로군요.
그렇담 유부남의 도리도 그런건가요?
'저 사람은 내 아내가 아니다' 이건가요?

어떤 사람에게 무덤덤이, 어떤 사람에게는 미치도록이 될 수도 있죠.

실비 2011-01-05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이 많이 가네요..
전에 그런생각 많이 했지요
어떨땐 숫자는 숫자이고 어느땐 의미부여가 되고..

저도 미치도록 사랑 한번 하고 싶네요

감은빛 2011-01-07 02:3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실비님.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미치도록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