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담 듣기

작은 아이가 애들 엄마랑 일본을 다녀왔다. 둘이서만 간 것은 아니고, 친한 친구와 그 친구의 엄마까지 넷이서 갔다 왔다. 아이 둘, 엄마 둘. 아이들이야 친한 친구니 상관 없겠지만, 애들 엄마가 그 친구 엄마랑 평소 아는 관계는 아니었을텐데 좀 어색하지 않았을까 싶다. 큰 아이는 그 기간에 계속 일을 해야했다.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따라가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저번에도 한 두세번 가량 제주 여행에 작은 아이와 엄마만 가고, 큰 아이는 혼자 남아있곤 했다.

작은 아이는 여행 가기 한참 전부터 일본 여행에 대한 기대가 컸다. 본인 스스로 덕후 라고 생각하는 아이라, 아키하바라를 비롯해 가고 싶은 곳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나를 만나자마자, 계속 일본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잘재잘 얘기해줬다. 음식은 생각보다 너무 느끼했다고 한다. 김치가 그리웠다고 했다. 일본에서 먹은 김치는 원했던 그 김치의 맛이 아니었다고. 아이는 자신이 찍은 사진들도 다 보여줬다. 도시의 건물들, 거리 풍경들, 야경들도 있었고 절과 신사의 모습들도 있었다. 그리고 자연을 담은 사진들도 있었다. 나는 멀리 후지산을 두고 찍은 사진이 가장 멋있다고 말해줬다. 그 사진의 중간쯤에 큰 구름이 드리워 후지산의 일부를 가리고 있었다. 후지산이 멋있게 나온 것은 아니지만, 구름에 대부분 가려진 후지산이 재미있다고 느껴져 좋았다.

나는 어렸을 때 일본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생각하면 일본이 무조건 싫었다. 그 시절에는 일본 문화를 직접 수입할 수 없었기에 일본 문화를 접할 일도 없었다 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그것은 아니었다. 금지된 상황이었기에 오히려 뒷구멍으로 몰래 들여오곤 했다. 내가 어린 시절 재밌게 보았던 만화들이 사실은 거의 대부분 일본 만화였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을 때는 배신감과 더불어 좀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만화들도 대부분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비단 만화 뿐만이 아니다. 드라마를 비롯해 다양한 쇼 프로와 예능 프로그램들도 일본 방송을 거의 베껴서 갖다 썼고, 가요계의 일본 노래 표절은 정말로 비일비재했다. 아주 잠시만 가요계 표절 얘기로 살짝 발을 빼보면, 그 시절 그러니까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중후반에 인기 있었던 많은 스타들과 그들의 노래가 표절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서태지가 밀리 바닐리의 곡을 그대로 훔쳐온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데, 윤상도 그렇게 남의 곡을 훔치곤 했다는 사실은 좀 많이 충격이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90년대에는 대부분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외국의 좋은 곡들을 그대로 가져다가 발표해도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는데 나중에 인터넷이 발달하고 영상을 주로 소비하는 시대가 되고 나서는 전세계 어떤 나라의 어떤 곡이라도 대부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과거의 그런 스타들이 이젠 활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서태지가 그렇게 젊은 나이에 일찍 은퇴를 했던 것도 더는 표절하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런데 서태지는 은퇴 후 다시 복귀해서 낸 노래들도 표절이라고 했다. 특히 소격동이란 곡은 아이유의 목소리와 잘 어울려서 자주 들었던 노래였는데, 알고보니 원곡 가수의 음색이 아이유보다 훨씬 더 좋더라. 문득 궁금했다. 그렇게 남의 곡들을 훔쳐서 유명해지고 막대한 부를 쌓은 그 자신들은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을까? 왜 뒤늦게라도 아무도 인정하고 사과하거나 하지 않을까?

암튼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 어렸을 때 내가 읽었던 조잡한 해적판 만화책들과 티비로 보았던 애니메이션들이 대부분 일본 작품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 어떤 것들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본 문화를 자주 접하기 시작했고,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일본어가 점점 익숙해졌다. 물론 나는 막 그렇게 일본 문화를 좋아했던 건 아니어서, 일본어에 익숙해지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요즘은 일본어를 조금 더 잘하고 싶어서 일부러 일본 드라마를 자주 본다. 작은 아이는 주로 애니메이션을 본다. 나도 어느 시기까지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꽤 오랬동안. 그런데 요즘은 확실히 애니는 못 보겠더라.

일본 문화 특히 애니나 게임을 좋아해서 일본어를 잘하게 된 사람들이 제법 많다. 내 주위에도 꽤 많았다. 절친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친했던 친구도 있었다. 지난 번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비밀]과 영화에 대한 글에도 언급했던 몽골에 갔을 당시에 제일 어린 참가자가 부산에서 함께 간 고등학생이었는데, 이 친구는 학교나 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운 적이 없는데도 너무 잘 했다. 일본인들과 소통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친구와 몽골을 다녀온 후에 부산에서 함께 노래방을 간 적이 있었는데, 일본 애니 주제가들을 정말 유창하게 잘 부르는 걸 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어떻게 저 친구가 일본어를 배운 적도 없으면서 그렇게 잘 하는지를 이해했다. 그냥 푹 빠져들어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내가 다른 언어를 그렇게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생일

나는 가족 이외의 그 누구의 생일도 모르고 챙기지 않는다. 가족들의 생일도 종종 잊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내 생일도 잊은 적이 있었다. 부모님은 음력으로 생신을 지내시니, 음력 생일은 매년 날짜가 바뀌어 신경을 쓰지 않으면 지나칠 수도 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섭섭해 하셨던 날들이 제법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살면서 절대 잊을 수 없는 건 아이들의 생일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내 새끼들이 태어난 날인데 어찌 잊겠는가. 아이들도 다른 건 다 안 챙겨도 아빠와 엄마의 생일 만큼은 꼭 챙기곤 했다.

오늘은 내 생일이고, 작은 아이는 오늘 일본에서 돌아와 피곤한데도 내게 꼭 와달라고 했다. 큰 아이는 아직 일을 하고 있는데, 조금 있다가 데리러 갈 생각이다. 아이들은 늘 뭐 갖고 싶은 거 있어요 라고 물어본다. 나는 거의 매번 없다고 아무것도 준비 안 해도 된다고, 그냥 너희가 아빠한테 선물이라고 한다. 작은 아이는 일본에서 두어가지를 사왔다고 주었다. 큰 아이는 선물 대신 맛있는 걸 사겠다고 했다. 그래 그런 마음이 다 너무 고맙다.

내 생일은 사실 내가 축하받을 날이 아니라 나를 열 달 동안 품고 있다가 산고 끝에 낳아주신 엄마에게 감사해야 할 날이다. 나는 거의 매년 생일 아침에 깨자마자 이런 내용의 감사의 표현을 엄마에게 보낸다.

이제 큰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생일이 끝나기까지 약 한 시간 남았다. 아이들과 그 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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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5-02-02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드립니다!! 낳아주신 은혜도 크지만 아기도 태어날 때 목숨을 건다고 해요. 어머님과 감은빛 님 모두 축하해요^^

제 친구도 중학생 때 이연걸을 너무 좋아해서 중국어과로 대학까지 갔답니다. 중국어도 엄청 잘 하고 영어도 잘 해요. 부러워요. ㅎㅎㅎ

감은빛 2025-02-04 09:09   좋아요 1 | URL
꼬마요정님, 고맙습니다! 이연걸을 좋아한 친구와는 계속 연락하고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중국어도 영어도 잘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부러워할 수밖에요.

cyrus 2025-02-03 0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합니다. 저와 우리 가족은 생일이 되면 함께 음식을 먹어요. 물질적인 선물을 몇 번 주곤 했는데, 생일날에 음식 먹는 일이 익숙해서 우리 가족은 생일 선물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

감은빛 2025-02-04 09:1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시루스님. 저도 언젠가부터 따로 선물을 챙기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을 선물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부모님께도, 아이들에게도. 다만, 멀리 살고 있어서 부모님 생신을 자주 챙기지 못하는 것이 죄송할 뿐이죠.

아이들은 본인들이 내 생일에 밥을 사지는 않으니 뭔가 작은 것이라도 선물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겠죠.

hnine 2025-02-03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드려요. 엄마가 되고 보니 제 생일보다 아이 생일에 더 뭉클해져요. 제가 태어나는건 아무 노력 들이지 않았으나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는 것은 그렇지 않아서인가봐요. 어머니 생각하시는 마음이 따뜻하네요.

감은빛 2025-02-04 09:1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도 말씀처럼 제 생일은 그닥 별 감정이 들지 않지만, 아이들 생일이면, 아이들이 태어났던 그 순간을 비롯해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순간들이 생각나더라구요.

너무 이뻐서 더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 자라서 친구처럼 여겨지는 아이들을 보면 늘 신기하다고 생각해요.

맥락없는데이터 2025-02-03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드립니다. 감은빛 님이 답글을 남기지 않으실 것 같지만, 그래도 댓글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답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요.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으시나요? 아이폰을 쓰시면 음력 생일도 쉽게 챙길 수 있습니다. 생일에는 선물보다 함께하는 식사에 더 의미를 두게 되더군요.

감은빛 2025-02-04 09:19   좋아요 0 | URL
맥락없는데이터님 고맙습니다! 제가 답을 좀 늦게 달기는 하지만, 그래도 늘 답을 해드리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아주 가끔 알라딘에 오랫동안 못 들어온 경우, 너무 오래전에 남겨주신 댓글이라 결국 답을 드리지 못한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만. ㅎㅎ

아이폰은 음력도 챙겨주는 기능이 있군요. 저는 아이폰을 한번도 써본적이 없어요. 최근에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예전에 폰을 바꾸면 늘 달력 앱에서 기념일을 음력으로 챙겨주는 기능을 찾아보곤 했지만, 매번 실패했던 기억이 나요.

희선 2025-02-04 0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둘째따님이 일본에 다녀오고 여러 가지 이야기 해서 즐거웠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아이 얼마나 있을지... 요즘은 좀 다를지 아빠와 딸이 즐겁게 이야기하는 집안도 있겠지요

이달 2일이 감은빛 님이 태어난 날이었군요 지났지만 축하합니다 좋은 날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따님들하고 보내서 좋으셨겠습니다


희선

감은빛 2025-02-04 09:2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희선님. 최근 들어 우울한 날이 많았는데, 그래도 내 생일만큼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락방 2025-02-06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지났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감은빛 님!! 사랑하는 가족들로부터 축하를 받으셨다니 얼마나 좋은가요. 즐겁게 보내셨다니 다행입니다. 생일도 그리고 생일 아닌 날들도 재미있게 보내세요!!

감은빛 2025-02-17 17:1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고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생일을 챙기는 것이 쑥스러운데, 그래도 아이들이 신경써주는 것이 고맙고 좋아요. 일년에 하루라도 아이들이 아빠를 챙겨주려고 하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것. 이런 걸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겠지요.

2025-02-13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17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외국 작품을 읽을 때 항상 가장 궁금하고 신경 쓰이는 것은 원작의 제목과 그 뉘앙스이다. 내가 출판사에 일했을 때에도 그랬고, 늘 그랬겠지만, 외국 작품들을 우리나라로 가져올 때 제목을 바꾸는 경우는 너무나도 많다. 그렇게 제목이 바뀌면서 원제의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도 제법 많다. 아, 이 글의 시작을 좀 잘 못 한것 같다. 실제로 제목이 바뀐 경우에 이렇게 글을 시작해야 적절한 설명이 되었을텐데, 이 경우엔 실제로 제목이 바뀌지 않고 똑같으니까, 이렇게 시작하면 쓸데없이 분량만 잡아먹는 꼴이 된다.

그런데, 아니 그럼에도 이렇게 이 글을 시작한 이유가 있다. 나는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영화를 먼저 봤었다. 그리고 그 영화 내용이 거의 하나도 기억도 안 날 때쯤 이 소설을 읽었고,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영화를 봤고, 그리고 소설을 빠르게 한 번 더 읽고 이 글을 쓴다. 맨처음 이 영화를 봤던 때가 언제였는지, 그때 혼자 봤었는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과 함께 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히 봤던 것은 맞고, 조금은 불확실하지만, 혼자 봤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누군가 다른 사람과 같이 보고 그와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남아있다. 분명 같이 봤던 사람은 여성이었고, 그는 내게 만약 남자 주인공이었다면 어떨 것 같냐고 극중 상황에 대해 질문을 했었다. 구체적인 내용과 내 대답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리고 나도 그에게 여주인공의 입장이면 이라는 가정으로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역시 그의 답변도 그닥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영화만 봤을 당시에는 이 작품의 원제가 비밀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다른 제목이었을텐데 그냥 배급사에서 편하게 정한 제목이 아니었을까? 그도 그럴것이 예전에는 정말 이상하게 지은 외국 영화 제목이 많았다. 이건 나중에 따로 글을 하나 쓸 생각인데, 정말 뜬금없는 제목들이 많다. 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왜 이 소설과 영화의 제목이 비밀이 아니라고 느꼈냐면, 영화에서는 마지막 결론의 그 비밀이 별로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막판에 드라나는 가장 큰 반전이자, 제목을 의미하는 그 비밀이 원작에 비해서는 비중이 너무 적어서 그닥 와닿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고 다시 영화를 보면서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 게다가 책에는 분명 히미츠 라고 알파벳으로 일본어 원제가 적혀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그 시절에 이 영화를 봤던 기억에 다른 건 다 몰라도 히로스에 료코의 표정들만은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대략의 흐름에 대해서는 남아있었다. 그 상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음, 왜 지금에서야 이 소설을 읽었느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수도 있겠다.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새책 보다는 중고책을 많이 샀다. 예전에 비해 알라딘 온라인 중고 상품은 거의 없고, 내가 어떤 책을 검색하면 우주점이라고 표현한 전국 어딘가 매장에 원하는 책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 해당 매장에서 2만원 이상을 구매해야 배송료가 없어지더라. 그 배송료가 아까워서 나는 일단 처음 검색했던 책을 담아놓고 다른 책들을 추가로 담아서 2만원을 넘기려고 하는데, 꼭 세 권 이상 담아야 하더라. 이런 경우 제일 무난한 방법이 검증된 작가의 책을 추가로 담는 것이다. 최근에 가장 많이 담은 검증된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 였고, 이 책 [비밀]도 그런 와중에 내게 오게 되었다. 책을 받고 보니 처음 구매하려고 검색했던 책보다 이 책에 손이 먼저 갔고, 그래서 읽었다. 다행히 영화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흔히 스포일러라고 말하는 요소는 없었다. 물론 대략 어떤 흐름이라는 건 남아있었는데, 내게 그 정도는 몰입을 방해하는 스포일러가 되지 않았다.

그럼 책과 영화에 대해 생각나는대로 두드려보자. 일단 책 먼저. 일단 나는 시작하는 방식이 좋았다. 이야기의 화자인 남편 스기타 헤이스케가 야근을 마치고 돌아와 혼자 아침을 먹으려 하는 장면이었는데, 이 방식이 아주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습관과 성격을 보여주었다. 나도 야간에 물류창고에서 일을 하고 아침에 집으로 돌아와 혼자 간단히 아침을 먹고 잠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내 공감이 더해져 이 도입부가 더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도입부에서 사고 장면에 대한 묘사 없이 뉴스에서 사고 소식을 접하는 것도 좋았다. 이걸 나중에 깨달았는데, 이 소설에서 작가는 철저하게 헤이스케의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풀어간다. 즉, 헤이스케가 직접 겪지 않은 그 사고와 같은 내용은 아무리 중요한 이야기라도 직접 다루지 않는다. 물론 그래서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가령 병원 장면은 조금 그랬다. 아내인 나오코와 딸인 모나미가 얼마나 다쳤는지, 지금 얼마나 위독한 상황인지 곧바로 보여주지 않고 의사의 언급으로만 간접적으로, 그러니까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이렇게 쓰면서 생각해보니 이 소설에 상대적으로 시각적 묘사가 적은 듯 느껴진다.

나오코가 죽고 모나미만 간신히 살아남았는데, 딸인 모나미의 몸에 아내인 나오코의 의식(영혼이라고 쓰려다가 왠지 이 단어가 더 적절한 것처럼 느껴졌다.)이 깃들었다는 것을 깨닫는 헤이스케의 모습은 처음에는 위화감이 적었는데, 두번째 읽을 때는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긴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얼마나 놀라고 얼마나 저항해야 현실적인 것인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영화도 소설도 이 부분이 너무 무난하게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나미가 알 수 없는 나오코와의 첫 데이트와 (아마도) 첫 관계가 있었을 나오코 집에서의 첫 날의 기억 등으로 과연 모나미의 몸 안에 나오코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어떻게 처음 만나고 서로 호감을 가졌는지 얘기해 준 적이 있다.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얼마나 자세하게 기억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나오코가 모나미에게 그 이야기를 해줬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사고로 희생된 많은 승객들의 유가족들이 호텔에 모여 대책 회의를 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일본인들 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고정관념일지도 모르지만 여러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그런 장면들을 보았으니. 사고에 대한 묘사가 없었기에 독자는 사고 원인에 대한 정보도 주기적으로 열리는 이 회의를 통해 접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데도 거의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좀 답답했다. 물론 나중에 헤이스케가 이 부분을 파고 들긴 하는데, 정말 명쾌하게 원이 밝혀지기까지 몇 년이나 걸리니 답답할 수 밖에 없다. 삿포로까지 가서 졸음운전을 했던 운전사의 전처의 아들을 만났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었을 때, 나중에 전처를 만나야 결론이 나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그 일이 정말 그렇게 나중에 일어날 줄은 몰랐다.

사고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그리고 최근 제주항공 참사가 떠올랐다. 철저하게 헤이스케 중심의 이야기 전개라서 다른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는 않는데, 그래도 호텔의 회의 장면들과 1주기 때의 현장 방문 장면 등에서 아주 조금의 정보들이 나온다. 특히 이기적인 사람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쌍둥이 딸을 잃은 아빠(이 아저씨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다시 책을 찾아보기는 귀찮네)를 다루는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차에 매달린 인형을 보는 헤이스케의 시선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나오코의 죽음과 방금 얘기한 것처럼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희생자들 이야기와 1주기 때의 현장 방문 장면 등에서는 울음이 나는 걸 참기가 어려웠다. 아까 말했듯이 세월호 등 억울하고 안타까운 생명들이 떠올라서 더 그랬다. 이 사고도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으로 나온다. 애초에 스키여행을 위해 운행한 셔틀버스 성격이었으니 당연하겠지. 당시 일본에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던 건지, 작가가 다른 비슷한 사고를 보고 넣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작가가 생각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충분히 현실에서 있을 법한 사고였다. 다만 운전사가 돈 때문에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고 무리해서 사고가 났다는 설정은 너무 손쉬운 설정이라는 생각이었다. 눈길이었고, 차량의 결함이 있을 수도 있고, 길 자체가 위험한 구간이었을텐데 그냥 정말 다른 이유 없이 졸음 운전으로 결론이 나는 것은 좀 이상했다. 물론 이 소설의 핵심이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기에 여기에 분량을 할애하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왜 운전사가 졸음 운전을 할 수 밖에 없었나 라는 의문만을 밝히려 하는 태도가 좀 납득하기 어려웠다.

일본 지리를 잘 몰라서 도쿄에서 나가노까지 얼마나 먼지 모르겠는데, 그 거리가 버스 기사 두 명이 교대 운전을 할 정도인가는 의문이다. 내 경험에 명절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버스로 17시간 이상 걸린 적도 있고, 10시간 이상 걸린 적은 수도 없이 많다. 당연히 버스 기사님은 한 분이었고, 그 분이 그 긴 시간 휴식 없이 운전대에 앉아 계셨다. 교대 기사 따위 없었으니까. 교대 기사까지 있는데도 버스 기사가 졸았다는 것. 아무리 돈을 위해 쉬지 않고 일했다는 설정이라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게다가 해당 기사가 졸려할 때 다른 기사 한 명은 뭘 한 걸까?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영화의 모나미, 그러니까 히로스에 료코는 그렇게 어리지 않았기에 처음 모나미가 초등학생이라고 했을 때 좀 놀라웠다. 고등학생이라면 어른이나 마찬가지니 위화감이 좀 적었겠지만, 5학년이라도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인데, 그 몸에 30대 어른이 들어가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뭔가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겠지. 작가가 영리하게 적절한 나이를 잘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모나미는 딸이지만, 나오코는 아내였으니 지금 나오코는 모나미의 몸에 있어도 아내라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인데, 이 어린 아이가 학교도 다니면서 집안 일을 모두 다 한다. 저녁거리를 사와서 매일 저녁을 준비하고, 설겆이와 뒷처리도 모두 혼자한다. 청소와 빨래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는데 헤이스케가 한다는 묘사도 없으니 역시 혼자 다 한다고 봐야겠지. 헤이스케는 집에서 하는 일이 없다. 야구 보고 다른 티비 프로그램 보고 가끔 맥주나 마시고 목욕하고 잔다. 아니 그 어린애가 학교 마치고 장보고 돌아와 서둘러 밥을 준비하고 설겆이까지 다 하는데 왜 아빠이자 남편이란 인간은 아무것도 안 하지? 왜 엄마가 죽고 딸이 성인이 될 때까지 그 긴 시간 헤이스케가 밥을 하는 장면은 단 하루도 없지? 한 두번 혼자 라면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도 혼자 먹는 것이었다. 아무리 아내라고는 해도(아니 아내여도 마찬가지지만) 외형은 어린아이인 딸인데 왜 단 하루도 집안 일에서 휴식을 주지 않는 걸까?

게다가 부부관계 즉 밤 일에 대한 부분은 참 어이가 없었다. 이 부분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끌고 간 것이겠지만, 딸이지만 아내니까 부부관계도 할 수 있다. 뭐 이런 논리인 것이겠지만, 그리고 결국은 당연히 안 된다고 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참 정신이 아득해지는 장면들이었다. 만약 여기서 선을 넘었다면, 그냥 이 책 집어던지고 더이상 안 읽었을 것이다. 물론 실제 부부라면 싸우고 나서 그 방법으로 해소하는 상황이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작가도 딱 그런 생각으로 이 장면을 만들었겠지만, 그리고 독자들이 딱 지금 내가 생각하듯 생각하길 바라고 넣은 것이겠지만, 그래도 읽으면서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나중에 영화로 이 장면을 봤는데, 다행히 영화에서는 옷은 안 벗었더라만(아마 심의 등급 등을 고려해 벗을 수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시도 자체로 화가 나는 것 마찬가지였다. 이것과 함께 목욕 장면도 정도는 좀 덜하지만,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었다. 이것 역시 영화에서는 가볍게 넘어가는데, 소설에서는 헤이스케가 나오코와의 목욕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나오코가 혼욕을 거부하고 나가자 화를 내는 장면에서 이게 일본이라서 당연한 것인가? 아니면 시대가 그랬던 건가? 궁금해졌다.

2000년 즈음에 사막화 방지 운동 차원에서 일본 대학의 시민단체와 함께 몽골에 갔을 때 처음으로 깨달았었다. 정말 일본은 남녀 관계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봉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구나 하고. 그때 함께 어울려 놀던 대학생들 중 어느 남학생이 내게 작은 실수를 했었는데, 나중에 이 학생의 여자친구가 일부러 나를 찾아와 사과했었다. 그것도 그냥 말로 사과한 것이 아니라 무릎까지 꿇는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었다. 아니, 잘못은 남자애가 했는데,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여학생이 사과를 하나! 며칠동안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대충 보니, 늘 남학생들은 뭐든 마음대로 하는 편이고, 여학생들은 늘 뭔가 제약에 묶여있다는 느낌이었다. 반면 나와 우리 학생들은 반대에 가까웠다. 여학생들은 대체로 남학생들을 짐꾼이나 일꾼처럼 부려먹었고, 남학생들은 큰 불만없이 대체로 요구하는 대로 따랐다. 그렇다고 우리 여학생들에게 불만이나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랬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내가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일본에서 성인 남성으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남존여비라는 생각이 박혀있었던 건 세계적으로 마찬가지였고, 우리나라도 과거에 심각했지만,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존재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들은 그래도 달라지고 있고 제법 달라졌다고 생각하기에 이 책을 통해 느낀 일본의 모습은 새삼스럽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 시절 일본에도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집안 일을 함께하는 남성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중의 문제였겠지.

나오코는 그러니까 딸의 몸에 들어가 다시 청소년기를 겪으며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나오코는 거의 초인처럼 느껴졌다. 대체 어떤 아이가 저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실제 일본의 여성 청소년들은 다 그런가? 식사와 청소와 빨래 등 모든 집안 일을 다 하면서 학교도 다니고 공부도 잘 하고, 그러면서 동아리 활동이나 학생회 활동도 다 하고. 이게 나오코가 이미 이 시기를 한번 겪었던 어른이라서 이미 모든 집안 일을 달인 수준으로 잘 한다는 설정이긴 하지만, 모든 집안 일은 아무리 달인이라도 시간이 걸린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라면 잠을 잘 수 없어야 하고 그러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할 수 없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니 아기였을 때 나와 애들 엄마는 아무리 열심히 집안 일을 해도 늘 시간에 쫓겼다. 퇴근하고 둘이 쉼없이 집안 일을 해도 마치면 새벽이었고, 지쳐 잠이 들어도 아기들은 새벽에 꼭 깨기 때문에 금방 다시 깨야했다. 가능하면 애들 엄마가 조금이라도 더 자도록 내가 일어나 아기에게 분유도 먹이고, 트림도 시키고, 기저귀도 봐주고, 안아서 재우고 다시 잠을 자기도 했지만, 어떤 날엔 아기가 아무리 시끄럽게 울어도, 애들 엄마가 내게 좀 어떻게 해보라고 아무리 깨워도 모르고 잠들어있었던 날들도 있었다. 이 소설에선 아기를 키우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다른 집안 일들 모두가 고스란히 딸의 몫이 된다.

나오코가 제2의 인생을 살아가다는 측면에서 오래 전에 읽었던 [리플레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고민할 가치조차 없지만, 그래도 만약에 내가 다시 젊은 혹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까하고 생각해본다. 나는 아마 다시 살아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보면 실패한 인생처럼 보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냥 그럭저럭 잘 살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목표는 남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경제적 성공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내가 이 성격과 성향과 기억을 그대로 갖고 어려진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얘기다. 여전히 나는 공부를 그닥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고, 여전히 수학을 못 할 것이고, 아마도 돈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다. 아, 여기서 소설 속에 재미있는 설정 같은 것이 하나 있었다. 나오코는 학창시절 수학과 과학을 잘 하지 못했었다. 전형적인 문과 뭐 이런 느낌. 이건 나도 마찬가지라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헤이스케는 이과라 수학도 과학도 잘 했었다. 그 딸인 모나미는 아빠를 닮아서 수학을 꽤 잘했다고 나온다. 그래서 나오코는 갑자기 잘했던 수학을 못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까봐 걱정하는데, 의외로 헤이스케가 알려주니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고. 의식은 나오코지만, 뇌는 모나미의 뇌니까 수학을 잘 하는 모나미의 뇌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니 잘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이런 논리였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까 [리플레이] 소설을 언급했는데, 여기서는 정확히 특정 시점의 본인에게 의식이 들어가는 혹은 돌아가는 개념이라 몸이나 뇌가 바뀌지 않는데, 이 경우는 딸의 몸으로 들어간 것이니, 그렇다면 전혀 다른 상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음, 좀 더 세부적으로 할 말이 많았는데, 시간 관계상 이쯤하고 이제 결론인 반전으로 가보자.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좀 어이없고 딱히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확실히 소설은 아! 하고 한번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다만 금방 다시 의심이 들기는 했다. 어쩌면 나오코가 모나미에게 얘기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다른 시시콜콜한 것들을 다 기록해두면서 그렇게 중요한 걸 전해주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나오코와 모나미의 기이한 공존이 이상하다고 여긴 시점에서 게임은 끝난 것일수도 있다. 이건 각자가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몫이라고 여긴다. 암튼 여기서 작가가 얼마나 영리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초반에 짚었듯이 이 소설은 철저히 헤이스케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헤이스케의 생각과 시선 안으로 갇힌 느낌이다. 그 바깥의 시공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래서 헤이스케가 나오코와 모나미의 공존 기간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으면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믿을 수 밖에 아니 대부분 믿게 만들어진 구조다. 반면 반지 때문에 헤이스케가 이 모든 것이 나오코가 의도한 긴 시간동안 연출한 상황이라고 깨닫는 순간, 독자들도 일정부분 그 생각에 따르도록 만들어진 구조인 것이다. 사실 아무런 징후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그것도 이성교제를 비롯해 여러모로 남편과 아내의 갈등이 극에 치달은 시점에, 갑작스레 모나미의 의식이 깨어난다고 하는 상황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엄마의 의식이 딸에게 들어가는 것도 말이 되지 않지만, 이건 이 소설의 세계관이자 핵심 설정이고, 여기서 모나미가 의식을 찾으려면 이 부분에 대한 트리거가 될 수 있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 있어야 한다.

자, 시간에 쫓기니 영화 이야기는 원래 의도와 달리 짧게만 다루자. 일단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소설과 달리 시각적으로 인물과 상황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영화는 2시간 이내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큰 제약이 있다. 그래서 모나미가 초등 5학년이 아니라 고등학생으로 시작한다. 초반에 사고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데, 이 연출이 좀 별로였다. 확실히 옛날 영화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그 비극적인 느낌을 거의 살리지 못해서 차라리 소설처럼 남편이 뉴스로 소식을 접하는 장면부터 시작하거나, 그냥 버스가 눈 덮힌 산길을 달리는 장면에서 사고 장면을 건너뛰고 남편 장면으로 넘어가기만 했어도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시간이 짧으니 등장인물을 다 잘라내고 운전사의 아들을 직접 등장시킨 것은 정말 큰 패착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그랬다면 이 인물을 좀 더 입체적으로 잘 살렸어야 하고 나오코가 이 인물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줘서 관객들을 설득시켜야 했다.

무었보다 중간 과정의 인물들이 다 빠지면서 나오코가 얼마나 현명하고 상황에 따라 대처를 잘 하는 사람인지 보여주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 모나미의 담임과 헤이스케와의 관계도 많이 생략된 것이 아쉽고. 아, 이게 드라마도 있다고 하던데, 드라마라면 분량이 충분할테니 확실히 보여줄 수 있었을 것 같다.

딱 하나 영화 시나리오에서 영리하게 잘 한 것이 있다면, 평소 나오코가 헤이스케의 턱을 들게하고 까끌까끌한 수염을 만지는 습관이 있다고 설정한 것이다. 이건 말그대로 습관이라 무심코 튀어나올 수 있는 행동이고, 이건 일부러 모나미가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하기 쉽지 않은 행동이다.

그래서 책을 두번째 읽고 생각해보니 소설보다 영화의 반전이 훨씬 더 간결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졌다. 와! 처음에 별로 반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나중에 보니 오히려 훨씬 괜찮은 반전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음, 더 할 말이 많지만, 자꾸 연락이 오고 있어서 딱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 소설에서는 정확한 시기가 나오지 않지만, 가전제품과 그 부품들 이야기로 대략 추정해 볼 수 있다. 물론 일본이라서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소설을 발표한 시점이 1998년이고, 내용으로 유추해보면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일 것 같다. 영화는 99년에 제작되었는데, 딱 그 시대로 설정한 것 같다. 중간에 소마 선배가 모나미에게 휴대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다. 소설에서는 휴대폰이란 것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대였다. 소마 선배가 4시부터 모나미가 나올 때까지 무조건 기다린다고 했었다.

아, 전화 이야기로 또 한참 옛 추억을 더듬어 떠들 내용이 있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써야겠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주인공의 딸이자 아내인 모나미의 이름 때문에 처음에는 자꾸 특정한 볼펜이 생각나서 몰입을 방해했다. 나중에 찾아봐야지 생각했는데, 지금 검색해보니 그 모나미는 프랑스에 Mon ami 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정말 마지막으로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히로스에 료코다. 다른 거 다 필요없이 그냥 그가 연기하는 모나미, 아니 나오코의 의식이 깃든 모나미를 보는 것이 정말 좋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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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1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2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떤 대화


하늘이 낮게 드리운 늦은 오후였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누구를 찾기 위해서였는지, 어디를 걷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기억나는 건 옆에 같이 걷던 일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일행과 나는 무언가 대화를 나눴다. 한참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던 중에 그는 내게 X세대를 구별짓는 특징과 세대론의 일반적인 내용과 그 한계에 대해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을 들으며 대학 1학년 때 썼던 과제를 떠올렸다. 과제의 주제가 X세대였다. 뭐라 답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사회학자와 이론을 언급하며 길게 대답을 했다. 그래 내가 엄연히 사회학을 전공한 사회학도란 말이야. 졸업하고 사회학 서적을 읽지 않은 게 벌써 이십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렇게 설명을 잘 하잖아. 라고 생각하며 우쭐해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가 영어로 트럼프 시대의 미국 이민자의 삶을 출신 지역 별로 예측해보자고 했다. 남미와 아시아를 중심으로. 나는 영어로 뭐라고 답을 하기 시작했는데, 계속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내가 지금 제대로 문장을 만들었는지, 말이 되는 말을 떠들고 있는 건지 스스로 생각해도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답을 하기는 했다. 그가 내 대답에 공감의 몸짓과 눈빛을 전해왔다. 저렇게 열심히 경청하는 자세를 보이면 아무리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라도 자신감을 갖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남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적어서 구체적으로 얘기하기 어려웠지만, 아시아는 나라와 지역에 따라 범주를 나눠 얘기할 수 있었다. 그는 이번에는 미국 내 중국계, 일본계, 한국계 이민자의 생활 양식을 거칠게라도 일반화 할 수 있을지 물었다. 음, 중국계와 일본계에 대해서는 몇몇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아주 전형적인 모습 밖에 떠오르지 않았고, 한국계도 그다지 아는 것이 없지만, 딱 떠오른 영화가 [미나리], [패스트 라이브즈], [서치]였다. 이 영화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중 [미나리]를 통해 한국계 이민자들이 미국에 자리 잡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는 이번에는 일본어로 재일 한국인 문제, 그 중에서도 무국적 재일 조선인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주제를 바꿨다. 어떻게 그의 일본어를 잘 알아듣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의심의 여지 없이 잘 알아듣고 있다고 여겼다. 다만, 이제 일본어로 답을 하려고 하니 말문이 막혔다.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는 주제라 적절한 답을 우리말로 하라고 해도 어려울텐데, 일본어로는 단어를 단 하나도 떠올릴 수 없었다. 스미마셍, 와타시와 니혼고가 데키마셍. 겨우 이 말을 떠올리는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아니 데키마셍이 아니라 하나시마셍이라고 해야 하나? 그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다시 말했다. 아나타와 이마 니혼고데 하나시테이마스. 아니 그건. 간신히 그 말 정도만 떠올린 거라고. 이걸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이거 현실이 아니구나. 그래 내가 영어와 일본어를 이렇게 잘 할 리가 없지. 어쩐지 막힘없이 다 알아듣고 있더라.


꿈이라 깨닫는 순간 우리가 걷고 있던 길 주위의 묘한 풍경들도 눈에 들어왔다. 왼쪽은 넓은 초원이었고, 저 멀리 낮은 산들이 있고, 그 너머로 해가 넘어갈 듯 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림으로 그려서 간직하고 싶을 만큼. 오른쪽은 바다였다. 어둠이 깔려가는 바다에서 주기적으로 파도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이 길을 한참 걷고 있었던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니 양 옆의 초원과 바다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내 왼쪽에 서있었고, 그의 뒤로 붉은 노을이 펼쳐져 있어서 아주 조금 눈이 부셨다. 몇 발짝 앞서 걸은 후 뒤돌아 그를 보았다. 그의 왼쪽 얼굴과 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여긴 어디죠? 우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요? 내가 묻자 그는 웃는 듯 찡그린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고, 갑자기 그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뭔가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는 순간 잠에서 깼다.


꿈에서 깨자마자 나와 함께 걷던 그가 누구인지 떠올려 보려고 했다. 함께 걸으며 내 이야기에 집중하던 그 얼굴. 바람에 긴 머리를 나부끼며 왼쪽 뺨이 노을에 물들었던 그 얼굴. 웃는 것인지 찡그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달려들기 직전의 그 얼굴. 분명 아름답다고 느낀 그 얼굴은 내 기억 속의 누구와도 맞지 않았다. 다만, 목소리는 분명 익숙한 느낌이었다. 딱 누구라고 떠오르지는 않지만, 분명 들은 기억이 있는 조금은 독특한 목소리였다. 마지막 순간 그는 나를 무언가로, 어쩌면 칼로 찌른 것이었을까? 어쩌면 잠에서 깨는 순간 내 무의식이 그 얼굴을 떠올리기 싫어서 왜곡한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서 일본어와 영어 그리고 중국어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처럼 여러 언어를 바꿔가며 말하는 꿈을 여러 번 꾸었다. 어떤 꿈에서는 아예 모르는 불어를 유창하게 말하기도 했고, 어떤 꿈에서는 힌디어로 좋아하는 인도 영화와 배우들에 대해 떠들기도 했다. 어떤 날엔 현실의 나처럼 떠듬떠듬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상태로 답답하게 대화를 하기도 했었다. 아무리 꿈이지만, 아니 꿈이라서 더욱 말을 잘 못하는 것 보댜는 유창하게 잘 하는 것이 더 좋다. 시간이 아직 이른 편이라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누워서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꿈 속의 내용을 음미했다. 아마도 X세대 내용이 나왔던 것은 최근에 본 영화 [백 인 액션] 때문인 것 같다. 영화에서 카메론 디아즈와 남자 주인공(많이 본 배우였는데 이름을 못 외웠다.)이 술집에 큰 딸을 데리러 갔다가 싸움이 일어날 때, 시비를 건 젊은이가 '부머'라고 부르니, 카메론 디아지그 우리는 부머가 아니라 X세대라고 답한다. 그게 영어 대본도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막만 그런 것인지는 확실치 않은데, 분명 부머라는 단어는 들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우리나라와 연령대가 다를 수 있겠지만, 확실히 부머와 X제너레이션은 미국에도 있는 세대일 거라 생각한다. 나중에 찾아봐야지.


꿈에서 언급한 X세대를 주제로 한 과제는 실제로 대학 1학년 때 썼던 것이 맞다. 이 과제를 준비하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성적도 제법 괜찮게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회학이 재미있었던 것은 다양한 사회 현상을 여러 층위의 이론으로 분석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 즈음에 갑자기 유행했던 '엽기'라는 단어가 붙은 다양한 유행들에 대해서 조별과제로 분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정말 해괴한 사진이나 영상들을 많이 접했었다. 물론 그때 그 엽기라는 단어의 유행을 어떻게 분석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다만 기억나는 것은 우리 조가 복학생이었던 나를 빼고 모두 여학생이었다는 것, 우리가 각자 조사하거나 함께 찾아본 사진이나 영상들 중 상당수가 내용적인 측면에서 여성들과 함께 보기 곤란한 것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학생들 중 미모가 뛰어나서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한 학생이 그런 장면들이 나올 때 마다 내가 눈을 돌리고 외면하면, 쿨한 태도를 보이며, "선배, 지금 눈 돌릴 때가 아니에요. 과제 해야죠." 라고 말하며 내 양 볼을 잡고 얼굴을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돌렸다는 것. 아, 한 가지 더 있다. 그 발제를 내가 맡았고, 우리 조의 발제 점수는 만점을 받았으며, 그날 이후로 조별 과제 마다 여자 후배들이 복학생인 나와 같은 조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


어떤 시절


문득 생각해보면 이게 다 꿈인가 싶은 시절을 지나고 있다.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가결. 현직 대통령의 체포 영장 집행과 구속영장 발부. 게다가 법원에 대한 테러 행위까지. 이게 다 현실인 거 맞아? 차라리 내가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더 현실인 것 같고 이게 다 꿈인 것 같은데, 장자와 나비 이야기처럼 어느 삶이 꿈이고 어느 삶이 현실인지 모르게 된 것인가? 아니면 영화 [매트릭스] 처럼 어느 삶이 가상 현실이고 어느 삶이 현실인지 모르는 것인가?


요즘 주위에 내란성 불면증과 내란성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게 정신없이 살고 있다. 뉴스만 보면 꼴 보기 싫은 얼굴이 나와서 보고 싶지 않지만,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일들이 터지니 뉴스를 안 볼 수도 없고. 내란 수괴를 구속시킨 것은 백번 잘한 일이지만, 그 공범이나 다름없는 경호처의 범죄자들은 왜 또 그냥 석방 시킨 것인지? 검찰이란 집단에 대해 불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또 벌어진다. 게다가 내란에 동조하는 미친 인간들의 집단인 빨간당의 지지율은 왜 올라가는 것인지? 하긴 저들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 내란에 동조하는, 정치적 자살에 가까운 짓을 기꺼이 저지르는 것이고, 그런 자들의 뒷배가 되어주는 자들이 분명히 존재하니, 극우 유튜버라는 미친 쓰레기들이 이렇게 설쳐대는 것이겠지. 그렇기에 초유의 법원 테러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범죄 행위가 벌어진 것이겠지.
















한참 재미있었던 SF읽기 모임이 한동안 모임을 못 열고 있다. 다들 바빠졌기 때문이다. 벌써 두 달째 모임 날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이번에는 꼭 모임을 하자고, 소설이 아닌 책을 읽자는 제안이 나왔다. [섹스로봇과 자살기계]라는 아주 자극적인 제목이다. 뭐 우리가 꼭 SF 문학만을 읽자고 한 것은 아니기도 하고 내용이 SF 라는 우리 주제와 닿아있기도 하고. 문제는 모임 날짜다. 벌써 2월이 다 되어가는데 날짜는 정하지 못했고, 그 사이에 자꾸만 새로운 일정들이 달력에 기록되고 있다. 금방 또 2월의 달력이 다 채워질 듯.



오랜만에 밀린 일들을 좀 처리하려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야근을 하다가 잠시만 쉬어야지 하고 알라딘에 들어왔고, 이런 시국에 책이라도 사야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는 핑계로 몇 권의 책을 주문했고, 이웃들의 글을 조금 읽다가 자판이라도 두드려야지 하는 마음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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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1-25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꿈을 어떻게 이리도 생생하게 기억하는지요. 어떤 작가는 꿈노트를 작성한다는데...전 눈을 뜨면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아쉬운 꿈은 옷자락이라도 잡고 싶지만 담배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집니다.
다만 오래도록 바라거나 그리워한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몇몇 꿈은 추억보다도 오래 기억에 남아 있더군요. 고3때 친구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보름만에 꾼 꿈은 너무나 생생했는데, 30년이 훌쩍 지나 다른 기억은 다 희미해져도 그 꿈만은 사라지지 않더군요. 추억을 꿈이 대신한 경우랄까요.

감은빛 2025-02-02 21:59   좋아요 0 | URL
제가 이상하게 비슷한 패턴의 꿈을 반복해서 꾸거든요. 그렇게 자주 반복하면, 여러가지를 기억할 수 있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가끔 꿈 속에서 이게 꿈이라고 느낀 경우에는 좀 더 잘 기억나기도 하구요.

또 일정 부분은 대략 이런 흐름이었다는 것만 기억한 것에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다가 약간 기억을 덮어 쓴 것도 있을거예요.

그죠. 어떤 꿈은 꼭 실제 기억처럼 오래 기억나기도 하죠.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25-02-01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국어 공부를 하셨군요. 그러니까 꿈에서도 나오죠. 외국어 공부를 하시는 분들 보면 좋은 인생을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SF읽기 모임을 하셨었군요. 저도 가끔 그런 쪽으로 책을 읽어요.
감은빛 님은 글을 길게 쓸 줄 아는 능력, 이 있어요. 제가 부러워하는 점입니다. 저는 길게 쓰고 싶어도 그게 안 됩니다.마치 긴 대답을 할 줄 모르고 짧은 답변만 할 줄 하는 사람처럼 말이죠.ㅋㅋ

감은빛 2025-02-02 22:02   좋아요 1 | URL
예전에 영어 학원에 다닐 때에는 자주 영어로 꿈을 꾸기도 했어요. 꿈에서는 참 유창하게 말을 잘 했는데, 깨고나면 아니어서 늘 아쉬웠었죠.

저는 짧은 글을 잘 못 써요. 가끔 청탁받은 원고도 늘 분량을 한창 초과해 써놓고 줄이느라 애를 먹어요. 그냥 아마도 할 말이 많아서 길게 쓰는 것이겠죠. ㅎㅎㅎㅎ
 


100년 전 오늘 신문기사

활동하는 분야가 다양하고, 여러 연대단위에 속해 있다보니 참여하고 있는 단체 대화방도 많다. 카카오톡이라는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에 반해 기능은 많이 떨어지고 불편한 메신저 앱 기준으로 단체 대화방이 수십개다. 가끔 낮에 긴 시간 회의를 하느라 대여섯 시간 이상 폰을 안 보다가 나중에 열어보면 안 읽은 새 대화가 몇 백개가 있다고 빨간 글씨로 알려주기도 한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맡은, 권력에 미치고, 무속이라 불리는 헛소리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인간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작년 12월 3일 밤에도 그랬다. 나는 그날 피곤하고 몸이 좀 안 좋아서 일찍 잠들었는데 새벽에 잠을 깨보니 부재중 전화도 여러 통 와있었고, 저 카톡의 여러 단톡방은 그야말로 난리였다.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고 얼른 유튜브로 뉴스를 찾았었다. 국회로 뛰쳐나갔던 사람들과 나가려고 했으나 가족들이 붙잡아서 못 나간 사람들과 불안한 마음으로 계속 뉴스를 보고 있었던 사람들이 여러 개의 단톡방에서 많은 소식들을 올리며 교류하고 있었다. 국회에서 일하는 지인이 상황이 일단락 되었으니 이제 주무시라고 올린 대화를 보고서야 일단은 안심할 수 있었다.

사실 저 카톡이라는 앱에 저렇게 많은 단톡방이 있는 건 내게는 스트레스다. 다른 사람들이 내 기준에서 그닥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것에 나는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그 많은 방들을 나가지 못하는 것은 일과 사람들과 엮여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대화가 몇 십개 정도 쌓여있을 때 빠른 속도로 스크롤을 내리며 대략 어떤 주제의 대화인지만 파악하고 금방 다시 닫는다. 읽지않은 대화가 백여개가 넘어가면 그냥 열어서 스크롤만 내리고 다시 닫는다. 그 대화를 읽느라 소모할 시간 여유가 없다. 하지만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처럼 특별한 날에는 대화가 아무리 많아도 꼼꼼하게 여러번 다시 읽는다. 저 절박한 순간 사람들이 어떤 심정으로 어떤 소식들을 주고 받았는지, 그것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정보 과잉의 시대라고 말한다. 인터넷에서 손가락만 좀 움직이면 어지간한 정보들을 대체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그 정보들이 얼마나 정확한지,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단톡방에서 공유되는 가짜뉴스와 거짓정보들이 많듯이, SNS에도 교묘하게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정보들이 많다. 나는 정말 그렇게 많은 어르신들이 카톡으로 거짓 정보들과 음란물들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한 연로하신 운동판의 선배가 대화 중에 안경을 벗고 눈을 찡그리고 폰을 들여다보다가 자신의 카톡 대화방 중 하나를 내게 보여주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왜 이런 대화방에서 나가지 않냐고 물으니, 이 나이쯤 되면 어느 방이든 다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였다면 절대 단 1초라도 그런 방에 머무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전달되는 많은 정보들 중에 내게 필요한 것을 고르고, 찾는 것에도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게 무슨 사회적 낭비인가 싶은 생각이 종종 든다. 얼른 이 복잡한 관계들을 다 벗어나 카톡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암튼 그런 수많은 단톡방 중 한 곳에 근대뉴스라는 이름으로 100년 전 오늘 신문 기사들을 아카이빙 해서 소개하는 글들을 매일 올리는 분이 계시다. 처음에 나는 매일 아침 올라오는 이 글이 일종의 스팸이라 여겼다. 이 방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매일 저 링크들을 열어볼까? 열어서 읽어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매일 여러 개의 제목과 링크가 올라오다 보니 읽고 싶지 않아도 제목은 늘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백년 전에도 기사의 제목들은 참 자극적이었구나 싶다. 정말 나도 모르게 링크를 클릭하게 만드는 제목들이 제법 있었다. 링크로 들어가면 정확히 100년 전 오늘, 해당 신문기사의 이미지가 있고 그 아래에 기사를 한글로 옮겨놓았다. 이미지를 살펴보면 원문에서 사람 이름이나 명사들은 대개 한자인 경우가 많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자음과 모음들이 보여서 딱 곧바로 이 글을 읽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 번 흥미로운 내용의 기사들을 접한 후에 매일 이 링크들을 올리시는 분이 대단한 작업을 하고 계시구나 하고 생각했다. 특히 몇몇 르포 기사와 특별 연재 기사들은 그 내용이 엄청 흥미롭고 완성도도 괜찮았다. 어떤 내용들은 역사책에서도 접해보지 못한 생생하게 살아있는 당시 서민들의 모습들이었다. 그때부터 매일은 아니지만 시간 여유가 허락하는 한, 단 한 두개라도 백년 전 오늘 기사들을 읽으려 하고 있다.

오늘 읽은 1925년 1월 10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용산 관내에 부자집이나 큰 식당에 버려지는 아기들이 많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는 그 이유를 기아, 즉 굶주림 때문이라고 했다. 이 추운 한겨울에 굶어죽지 않으려고, 아니 아기를 굶겨죽이지 않으려고 부자집이나 큰 식당 문 앞에 버려두고 가는 부모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정월 초하루 밤에 버려진 어느 아기에게는 이름과 생년월일과 함께 사주가 적혀있었다고 했다. 기저귀 3개와 솜이불 한개도 함께였다고 했다. 그 여자아이는(기사에는 계집아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그 집에서 잘 자랐을까? 나중에 친부모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을까? 혹 그 부자집에서 잘 키워줬다면 엄혹한 일제시대와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었을텐데,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졌다. 기사에 7달 된 아기라고 했으니 1924년 6월 생이시니, 만약 지금까지 살아계시다면 101세가 되시겠구나.

백년 전 오늘 용산에는 이렇게 아기를 굶겨죽이지 않으려고 한겨울 밤에 아기를 부자집 앞에 버리고 돌아서는 부모가 있었는데, 지금 용산에는 법질서를 무시하고 국민을 배신한 내란수괴가 숨어있구나. 언제쯤 저 어리석은 인간이 구속되어 정당한 법의 심판을 통해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인가!

무기수 김신혜 무죄 석방

김신혜라는 젊은 무명 배우이자 보험 설계사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접했던 것은 아마 거의 20년 전이었던 것 같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오마이뉴스 기자였던 박상규씨가 썼던 기사를 보고 알았었다. 그리고 나중에 재심이 확정될 즈음에 재심 전문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씨의 방송도 보았었다. 지금 이런 시대에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고? 경찰과 검찰이 했던 짓거리도 어이가 없었지만, 결국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증거도 하나도 없고 정황도 하나도 맞지 않고 강압에 의한 거짓자백 하나 밖에 없었는데, 그는 무기수로서 25년을 감옥에 갇혀있었다. 하! 25년. 누가 그의 인생을 책임질 것인가. 나는 2015년 즈음 이 사건의 재심이 열릴 거라고 하여 하루라도 빨리 무죄를 받고 풀려나길 바라는 마음이었으나 이후에 꽤 오랫동안 재심에 대한 소식이 없었다. 언젠가 궁금해서 검색해 본 적도 있는데, 딱 재심이 시작될 예정이라는 소식 이후 아무 정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최근에 무죄 석방 소식을 뉴스로 본 것이다. 재심이 쉽게 금방 열리지는 않았겠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지도 의문이다. 무려 25년. 억울함을 호소하고 운 좋게도 이 사건의 의문을 품은 여러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간신히 구속 15년만에 재심 절차에 들어갔는데,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더 걸려 석방된 것이다. 이 사건의 여러 의문점들은 아마 그의 무기징역이 확정된 직후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유튜브에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는데도 2003년, 그러니까 사건이 벌어진 3년 후이자,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2년 후쯤에 찍은 추적60분인가 시사프로그램 방송이 나왔다. 그 방송에서 자세히 다뤘었고, 또 유명한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서도 다뤘었다. 앞서 언급한 박상규 기자와 박준영 변호사의 글들과 방송들도 있다. 저 2003년 방송에는 담당 경찰 얼굴이 고스란히 나오던데, 그 인간은 지금 뭐하고 살고 있을까? 자신의 폭력과 강압으로 아무 죄없는 젊은 여성이 반 평생을 감옥에 갇혀 살았는데, 과연 그 경찰은 죄책감을 느꼈을까? 담당 검사는? 판사는? 그 인간들 모조리 추적해서 지금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줬으면 좋겠다.

이 사건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한 명 있다. 경찰도 잘못이 크고, 검사나 판사의 잘못도 분명 있었겠지만, 그 이전에 김신혜 씨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죄를 덮어쓰게 만든 장본인은 따로 있다. 바로 김신혜 씨의 고모부라는 인간이다. 장례식장에서 저 고모부라는 인간이 김신혜 씨를 불러서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였고, 자신이 그 뒷처리를 도왔다고 말했으며, 남동생은 아들이니 집안을 위해서 큰 딸인 네가 대신 경찰에 자백하도록 시켰다는 것이다. 김신혜 씨가 남동생에게 확인하려고 했는데 남동생을 못 만나게 하며 그의 큰아버지와 함께 그를 경찰에 데려갔다고 했다. 고모부가 그에게 저 거짓말을 하는 장면을 그의 여동생이 보았고, 고모부가 왜 저런 말을 했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게다가 고모부라는 놈은 김신혜 씨의 아버지를 파렴치한 성폭행범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친딸들을 성폭행한 악마로. 김신혜 씨가 계속 무죄를 주장하니, 고모부라는 놈이 (아마도 경찰놈들과 짜고) 김신혜씨의 범행 동기를 만들고자, 아버지가 자신과 여동생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해서 죽였다라는 거짓말을 퍼뜨렸다. 그리고 손녀딸이 하루라도 빨리 석방되기를 바라는 김신혜 씨의 할아버지를 움직여 마을 사람들의 탄원서를 받게 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아버지가 지속적으로 딸들을 성폭행했다는 말을 믿게 되었다. 거기다 이 고모부라는 놈은 김신혜 씨의 두 동생들에게도 이 사실이 맞다는 거짓 증언을 경찰에 하도록 강요했다.

나는 궁금했다. 이 고모부라는 놈이 왜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이렇게 김씨를 감옥에 넣는다고 자신에게 무슨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을텐데. 김씨 가족은 가난했고, 뭔가 재산을 노린 것도 아니었던 것 같고. 혹시 경찰이 뭔가 뒷거래를 제안했을까?게다가 고모부의 저 범죄를 김씨의 고모라는 인간까지 그대로 따르고 협조했다. 고모라는 인간은 왜 자신의 오빠 혹은 남동생의 죽음이라는 슬픔 속에서 자신의 조카에게 누명을 씌우는 짓에 협조했을까?

여기 어느 댓글에서 그 이유를 추측하는 내용이 있다. 그 고모라는 인간이 장애인이자 술만 취하면 자신의 친정집에 가서 행패를 부리고 부모에게 함부로 하는 김씨의 아버지를 엄청 싫어했을 거라고 했다. 그랬을 법하다고 생각한다. 사건이 일어난 밤에도 아버지는 친구랑 술을 많이 마셨고, 할아버지 집으로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다투었고, 그 소식을 여동생이 김신혜 씨에게 전화로 전했기 때문에 김씨는 아버지 집도, 할머니 집도 가지 않고 친구를 만나려다가 결국 혼자 차에서 잠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김씨는 알리바이를 확보하지 못해 25년을 감옥에 살았던 것이다. 나중에 이날 연락했던 친구들 2명은 자신들이 밤늦게까지 기다리다 집에 들어갔었기 때문에, 새벽이었고 어디 갈 곳도 없었고 다음날 출근도 해야해서 나가지 않았던 것이 결국 이렇게 되었다며 후회하며 울었다고 한다. 암튼 저 댓글에서는 그래서 고모와 고모부는 저 오빠(아무래도 오빠가 맞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을 확인할 정보가 없음) 때문에 부부싸움도 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리고 사건 당일 오빠가 친정집에 가서 자신의 부모와 다툼을 벌였다는 소식을 들은 고모가 자신의 남편을 보냈을 거라고, 그 남편인 고모부가 같이 술을 마시다가 양주에 수면제를 타서 살해하고 마치 교통사고인 것처럼 위장해서 시신을 유기했다. 즉, 진범은 고모부다 라는 내용이다. 그냥 딱 읽었을 때는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저 고모부라는 인간이 왜 조카를 살인범으로 몰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으니 저런 추측이 나올수도 있겠지. 정말 진범이 고모부라면 저런 행동을 이해할 수 있으니. 그런데 진범이 고모부가 맞을지도 모르지만, 양주에 수면제를 탄 것은 아닐 것이다. 재심 재판 기록에 박준영 변호사가 변론한 내용에 이 부분이 있다. 양주에 수면제를 탔다는 전제가 틀렸다는 내용이다. 시사프로그램 방송에서도 전문가가 그런 취지의 발언을 했었다. 풀리지않는 또 하나의 의문은 부검을 통해 확인한 수면제의 양이다. 저 정도 농도가 검출되려면 160알?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히 100알은 넘었는데 그 숫자를 과연 누군가가 먹이거나, 본인이 먹었을까? 너무 많은 양이다.

청산가리 살인 사건의 재심은?

작년 오늘 내가 서재 쓴 글을 보니 내용 중에 청산가리 사건에 대해 언급했더라. 이 청산가리 사건과 김신혜 씨의 사건에 조금 비슷한 점이 있다. 청산가리 사건에서는 누명을 쓴 부녀의 엄마이자 아내가 죽었다. 경찰과 검찰이 지적 장애가 있는 부녀를 몰아붙여 강압적으로 거짓 자백을 받았다. 특히 담당검사가 아버지와 딸을 각각 불러다 거짓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CCTV 장면들은 진짜 욕을 하지 않고 볼 수가 없었다. 특히 검사는 아버지에게 딸이 이미 자백을 했다는 거짓말로 아버지를 압박하며 당신이 자백하지 않으면 딸이 혼자 덮어쓰고 더 중한 처벌을 받는다고 협박했다. 게다가 이 검사는 아버지와 딸이 성관계를 맺고 엄마가 이를 눈치채자 죽인 거라는 진짜 말도 안되는 어이없는 범행 동기를 만들어 냈다. 저 위의 사건에서 고모부라는 놈이 멀쩡한 아버지를 친딸들을 성폭행한 악마로 만든 것처럼, 여기서는 검사라는 놈이 지적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딸을 가스라이팅하여 서로 관계를 맺었다는 인륜에 어긋나는 짓을 저질렀다고 했다. 이들이 과연 인간인가? 저 고모부라는 놈과 여기 검사라는 놈은 정말 절대로 같은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은,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할 범죄자이다.

이 두 사건에서 정말 아무 힘없는 사람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사건 정황을 조작한 인간들이 검사라는 놈들이다. 지금 용산에 숨어있는 범죄자 놈이 같은 검사였다고 생각하니 애초에 검사라는 놈들이 다 이런 놈들인가 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 청산가리 사건의 재심도 얼른 열어서 무죄를 밝히고 아무 죄없는 부녀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김신혜 사건과 청산가리 사건을 조작했던 경찰과 검사들을 모조리 찾아서 처벌하길 바란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겠지만.

그리고 제발 하루라도 빨리 저 용산에 틀어박혀서 꼼짝도 안하는 내란수괴를 감옥에 쳐넣었으면 좋겠다. 내 주위 많은 지인들이 이 내란 사태로 인한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 미치광이 하나 때문에 온 국민이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한다니! 이 고통받는 국민의 범주에는 지금 한남동 길거리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저 미치광이의 지지자들(이라고 쓰고 세뇌된 가여운 영혼들이라고 읽자.)도 해당된다. 저들은 또 무슨 죄로 이 살벌한 추위에 거리에서 지내야 하나. 아, 물론 모 쵸콜릿을 연상하게 만든다는 모습으로 화제가 된 은박비닐을 덮어쓴 시민들의 고생은 뭐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한다. 결국 우리 모두가 다 피해자라는 얘기다. 저 미치광이와 그 배우자와 그에게 붙어서 내란을 주도한 인간들과 그들에게 빌붙어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먹어보려는 의원들과 소수의 정치인들, 전광훈이라는 종교인을 빙자한 쓰레기와 유튜브로 거짓 선동을 일삼는 쓰레기들이 문제일 뿐. 그들에게 속고, 세뇌당한 소수의 국민들은 피해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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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1-13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선하기도 하지만 극악하기도 하지요. 특히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억울한 옥살이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이가 없어요. 죄 없는 사람이 수십 년 옥살이를 한 경우 누가 어떻게 보상을 해야 하나요?
어수선한 나라가 하루빨리 안정을 찾아야 할 텐데요...^^

감은빛 2025-01-23 21:50   좋아요 0 | URL
페크님, 정말 이 나라가 언제쯤 안정을 되찾을까요?
내란수괴를 구치소에 넣기는 했으나,
공범이나 다름없는 경호처 간부들은 또 석방해버리는 이 검찰들은 대체 뭘까요?

제 주위에 내란성 불면증과 내란성 우울증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도 이 시절을 어찌 지나가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살고 있네요.

곧 설 명절이네요.
저는 옛날사람이라 그런지 1월 1일이라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새해 인사는 별로 와닿지가 않더라구요.
제게 새해의 기준점은 설날입니다.
뱀띠해가 되면 뭔가 달라져야 할텐데. 달라지겠지요.
 

새해 첫 날

1월 1일 이라는 숫자는 좀 재미있다. 새 해를 시작하는 첫 달 첫 날.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24시간, 365일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날, 달, 해 라는 시간 개념이 익숙해서 다른 별은 이게 완전히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은데, 과학과 수학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정확하게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 하지만, 우리가 다른 별을 이주해 살아가야 한다면, 일단 지구와 시간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지구보다 자전 주기가 훨씬 긴 별이라면 엄청나게 긴 하루를 살아야하겠지. 그런 곳이라면 하루에 여러 차례 출근과 퇴근을 반복해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자전 주기가 지구 시간으로 100시간인 별이라면, 한 8시간이나 10시간 단위로 일과 휴식을 반복하거나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삼체]라는 작품에서처럼 해가 여러 개인 별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런 곳에서는 해가 지는 시간이 아주 짧거나, 어쩌면 아예 없을수도 있겠다.

우리 인간은 지구에서 긴 시간 적응해 살아왔기 때문에 이 24시간, 30일, 365일의 단위를 만들어 그에 맞게 생활해왔다. 만약 먼 미래에 지구에 살던 사람이 어딘가 다른 별로 이주한다면, 지구에서 살아봤던 사람은 새로운 별의 시간대에 적응하기 어렵겠지. 그 별에서 태어나 지구 시간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떨까? 유전자에 각인된 시간 개념이 남아 있을까? 아니면 자신이 태어난 별의 시간 흐름에 쉽게 적응할까?

아, 물론 우리 인간이 빛의 속도로 이동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은하라는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약 250만년 걸린다고 하니, 다른 은하를 가보는 건 불가능한 일일테고, 우리 은하 안에 있는 다른 항성까지는 얼마나 걸리려나? 1977년에 발사한 보이저들은 이제 태양계를 벗어나는 중이라고 하는데, 그 카이퍼 벨트와 오르트 구름이 얼마나 넓은지, 즉 우리 태양이 얼마나 넓은 범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아직 정확히 모른다고 한다. 사람이 타고 출발할 우주선으로 태양계를 벗어나려면 얼마나 걸릴까? 보이저가 출발한 시점보다 얼마나 더 우주공학이 발전했을지 몰라도 수명이 100살이 채 되지 않는 사람이 평생을 가도 못 가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앞서 자전과 공전 주기가 완전히 다른 별로 이주하는 상상을 한 것은 결국 다 쓸모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오늘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과 생각이 대부분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어제부터 수없이 받고 있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내용의 카톡과 문자들을 보면 복을 바라지 않는 나같은 사람들은 죄책감이 들 정도다. 나는 정말 딱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인사말로만 저 말을 쓰는데, 많이 쓰지도 않고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는 사람들, 예를 들면 사적 친분 보다는 공적으로 얽힌 관계들에서 더 많이 쓴다. 당연히 그 분들이 실제로 복을 받으시라고 한 말은 아니다.

며칠 전에 사기 경험을 적은 글에 몇 년째 연락하고 지내는 인도네시아 사람이 있다고 썼었는데, 어제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제주항공 참사 소식을 접하고 쓴 듯, 혹시 내 주변 사람들이 사고를 당한 것은 아닌지 물으며, 사고 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해왔다. 나는 다행히 내가 아는 사람 중엔 없었다고, 안부를 물어주고, 함께 애도해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그리고 Happy new year 를 써서 보냈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이런 식이 되었다. 명절이나 어떤 특별한 기념일에 인사를 건네고, 최근 소식들을 주고 받고 한동안 연락을 안 하다가 이번 처럼 큰 사고가 나면 또 생각나서 연락을 하게 된다. 몇 년 전이었는지, 그게 어떤 사고였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데, 인도네시아에 큰 일(아마도 지진?)이 생겼을 때 나도 걱정을 담아 연락했었다. 아마 이번 참사가 없었다면, 그냥 새해 인사를 서로 나눴겠지.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는 친구가 이렇게 걱정을 해주고 신경을 써준다는 건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어디의 무슨 ‘장‘이라는 직함(예를들면 총장, 이사장, 회장 등)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형식적인 새해 인사를 보내오는데, 예전에는 일일이 답을 했지만, 이젠 아예 답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 폰에 저장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단체로 보내는 것일테니, 나 하나 답을 하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을 것이다. 물론 그중에 일부러 나를 찾아서 나를 떠올리며 보내는 분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런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 받는 것이 별로 좋지 않다. 밥을 먹다가, 음악을 듣다가, 책을 읽다가 이런 메세지들 때문에 흐름이 끊긴다.

시국이 시국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이유가 있어서 이번 연말은 조용히 보냈다. 오라는 데가 제법 있었는데, 대부분 못 가거나 안 갔다. 이제 나도 새로운 기분으로 늘 하던 일들을 다시 해야지. 물론 새로운 시도도 해보고 싶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북플에서 지난 오늘 메뉴를 열었는데, 당연히 글이 하나도 없었다. 이게 내가 알라딘을 이용해 온 약 20년 동안 1월 1일에 쓴 첫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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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01-02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새해가 시작되었어요!
올해는 작년보다 건강하고 즐거운 한 해 되시길 빕니다~~

감은빛 2025-01-09 16:51   좋아요 0 | URL
야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렇게 인사 전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야무님께서도 건강하시고 바라시는 일들 많이 이루시길 바랍니다.

transient-guest 2025-01-03 0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2025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사는 행성과 별의 영향을 받는다는 전제로 뭔가 상대적이란 생각을 하면 자전이 긴 행성에서 산다면 그냥 모든 주기가 slow down되고 우리가 느끼는 하루는 거기에 맞춰 지나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현실은 살아생전에 유인우주선이 태양계를 벗어나는 것조차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만... 우리가 생각을 port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생각이 여행을 하고 어딘가에 들어가 작용할 수 있다면 빛의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성간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 이렇게 쓰고 나니 어지러워졌습니다.ㅎㅎㅎ

감은빛 2025-01-09 16:56   좋아요 1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시구요.
생각이 여행을 하고 작용한다는 개념은 구체적으로 잘 상상이 안 되긴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아요. ㅎㅎㅎㅎ

잉크냄새 2025-01-03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 해 좋은 말씀과 글로 나눈 교류 감사드립니다.

물리학을 F 맞아본 입장에서 상대성 이론을 언급하는 건 얼토당토아니하지만, 살짝 독서하는 삶에 녹여본다면, 책을 읽으면서도 스스로의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 행위를 통해 우리의 변화를 감지하는 뇌도 따라서 변화해가기 때문이죠. 그런 이유로 어제 읽은 책도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읽는 행위를 지속하게 되는 거죠. 음, 쓰고 보니 물리학 F 맞은 이유가 다 있네요. ㅎㅎ

감은빛 2025-01-09 17:05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시고 바라시는 일들 잘 이루시길 바랍니다.
아하, 그래서 저도 읽어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거였군요. 라고 말씀을 드리면서도 사실 잉크냄새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 못 했다는 것을 깨닫는 군요.저는 수학 0점 받은 사람이라서 물리학 F 정도는 뭐.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