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보러와요.

 무슨 자신감에선지 모르지만 어릴때부터 글쓰기는 늘 자신있었다. 중학교때는 교내 백일장에서 상도 받았다. 고등학교때는 교지에 글이 실렸고, 대학에서는 학보에 몇 번인가 기고글을 썼다. 

 환경운동단체 활동가로 일할때는 성명서나 보고서 등을 쓰느라 밤을 지새웠고, 가끔 원고 청탁을 하는 대학 학보에 글을 보내곤 했다. 웹진에 글을 써보기도 했고, 예전에 몸 담았던 잡지에 글을 싣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렇게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다기 보다는 그저 글의 성격에 맞는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혹은 운이 좋았기 때문에) 과분하게도 많은 기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암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참 많고, 나는 아무래도 재주도 없고, 노력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까? 리더스가이드라는 독자 집단(커뮤니티)에서 처음으로 낸 단행본에 공동저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앞서 말했듯이 잡지나, 웹진에 글이 실린 적은 있지만, 단행본에 참여한 건 처음이다! 

막상 책이 나오고 나니,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함량 미달의 원고를 받아 책으로 엮어준 출판사에 고마운 마음이다. 책을 읽을 때, 저자의 말을 보면 종종 '나무에게 미안하다!'는 표현을 찾을 수 있는데, 지금 내 심정이 딱 그렇다. 다른 우수한 여러 글들에 비해 내 글은 웬지 모자라 보이고, 그래서 굳이 몇 페이지 더 늘리는 바람에 나무가 더 희생당했단 생각이 든다. 

 부끄러운 건 뭐 이제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어쨌든 첫 단행본 출간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키보드를 두드려 보기로 했다. 

 이 책은 제목만 보면 짐작 할 수 있듯이, 책에 대한 책이다. 이미 책에 대한 책들은 여럿 나와있다. 그 대부분이 유명한 분들이 쓴 책들이다.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서평꾼이란 단어를 쓰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에게 적용시키기에는 조금 민망한 단어다!)이 풀어놓은 책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히 서평을 모아놓은 책은 아니다. 

이 책의 부제인 '책세이와 책수다로 만난 439권의 책'이란 문장을 보면 낯선 단어인 '책세이'가 눈에 띈다. 쉽게 짐작 할 수 있겠지만, 이 단어는 책 과 에세이를 합친 신조어다. 책에 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기존의 서평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 안에 책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들어가 있다는 개념이다.(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개념은 그렇다!) 

유명한 소설가나 평론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읽고 쓴 책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의 모음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용감하고 새로운 시도가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묘한 마음으로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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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8-2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겸손하시기는...쳇!
나 같은 사람은 어쩌라구...ㅜㅜ

감은빛 2010-08-25 22:31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을 하시나요?
스텔라님의 독창적이고 재밌는 글 읽고 참 많은 걸 깨달았습니다!
멋져요! ^^

루체오페르 2010-08-26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서재에서 보고 왔습니다. 축하드려요,감은빛님~^^
저는 유명한 사람들보다 평범 일반적인 우리네 일상의 이야기가 더 좋더라구요.
대박기원 합니다!ㅎㅎ

감은빛 2010-08-26 10:4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도 지금 다른 저자들의 글 읽고 있는데요.
루체오페르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에 대한 책들 중에서 제일 재밌는 것 같아요!

순오기 2010-08-26 0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행본 저자로 데뷔하신 거 축하합니다.
전에 즐겨찾기가 돼 있어 종종 와 봤는데, 최근엔 적조했습니다.ㅜㅜ
아이는 좋은 어린이집에 잘 다니고 있나요?^^

감은빛 2010-08-26 10:4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알라딘 서재를 그닥 성실히 관리하지 않은 제 탓입니다!
저도 한동안 종종 방문했었는데, 꽤나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네요.

큰 아이는 썩 좋은 곳은 아니지만, 평범한 곳에 잘 다니고 있구요.
이제 막 백일이 지난 둘째도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데,(맞벌이라서요 -_-;;)
그 곳은 좀 맘에 안드는데,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때 어린이집 사건을 아직도 기억해주시고, 신경써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

stella.K 2010-08-26 11:36   좋아요 0 | URL
헉, 어린이집 사건? 무슨 일일까요?
맞벌이 하시눈군요. 힘드시겠어요.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무탈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yamoo 2010-08-26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렇게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다기 보다는 그저 글의 성격에 맞는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혹은 운이 좋았기 때문에) 과분하게도 많은 기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 기회가 주어지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그릇이 준비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책의 필자셨군요^^ 감축드립니다!

감은빛 2010-08-29 03:38   좋아요 0 | URL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원했지만 결국 인연을 맺지 못했던 기회들도 많았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단행본 참여는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글들을 다 읽어보았는데, 저는 아직 한참 멀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거든요. ^^

sslmo 2010-08-29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속에 감은빛 님의 글도 있는 거군여,축하드려요~^^

감은빛 2010-08-30 11: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 하나 들어가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꿈꾸는섬 2010-08-29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반갑습니다.^^
저 책 속에 감은빛님도 계신거군요.^^
축하드려요.^^

감은빛 2010-08-30 11: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네, 부족한 글 하나로 참여했습니다.
반갑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08-30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언니가 책 주신다고 하네여.
감은빛 님의 글도 같이 읽을 수 있겠네요...
축하드려염!

감은빛 2010-08-30 15: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주말동안 다 읽었는데, 좋은 글들이 많습니다.
마녀고양이님도 이벤트 당첨 축하합니다! ^^

라로 2010-08-3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도 저 책속에 있군요!!!
받게 되면 님의 글도 읽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드니 신기해요~.^^
축하드립니다.^^

감은빛 2010-08-30 15:2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주말동안 다 읽었습니다.
재밌는 글들이 많더라구요.
이벤트 당첨 축하합니다! ^^

비로그인 2010-09-02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여!
서재라고 떡 하니 만들어놓고는 글쓰기엔 자신이 없는 터라 리뷰는 거의 쓰지도 않는 저같은 사람은...감은빛님이 너무 부러울 따름이구요.
즐찾도 고맙구요^^

감은빛 2010-09-03 12:5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도 리뷰는 많이 안쓰는 편입니다.
리뷰를 쓰려면 적어도 2번 이상 읽고 쓰는 편이기때문에
그렇게 읽는 책은 많지 않거든요.
부럽다니요? 마기님이 저보다 훨씬 더 글솜씨가 좋던걸요!
종종 놀러가겠습니다! ^^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 - 학벌없는 사회
학벌없는사회 외 지음 / 메이데이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선생님이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학교를 교육의 장애물이라고 했다. 근대 교육제도로서 학교가 생기기 이전에는 누구나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갔다. 그러나 학교가 생기면서부터 지배계급이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들만 학교에서 강제로 배우게 되었다. 게다가 의무교육 제도는 지배계급의 권력을 세습하는 가장 뛰어난 도구였다. 대다수는 학교를 나오고도 경쟁에서 뒤쳐져 낙오되고, 극소수의 선택받은 학생들만 살아남아 인정받는다. 일리치의 표현에 의하면 ’극소수가 따지만, 대다수는 잃게 되어 있는 복권을 강제로 구입하는 것‘이 바로 학교를 통한 의무교육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끔찍이도 학교를 싫어했다.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만 한다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로봇이지’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는 수학과 과학을 참 못했는데, 성적이 나쁘다고 때리거나, 친구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남아서 마저 외우게 시키는 선생님들이 정말 싫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수학과 과학을 싫어하게 되었고, 중학교 1학년때 이미 그 두 과목을 다 포기해버렸다.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그 두과목을 진지하게 공부해 본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나를 그렇게 괴롭혔던 그 많은 선생님들의 주장과는 달리, 나는 두 과목을 다 포기하고도 무사히 대학에 진학했다.(수학과 과학은 늘 꼴찌이거나, 꼴찌에 가까운 성적이었다.)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였지만)나 중학교도 싫었지만, 가장 싫었던 건 고등학교였다. 선생님들의 일상적인 폭력도 싫었고,(지금 기준으로는 정말 놀랍게도 매일 성폭력 휘두르는 선생님들도 많았다!) 하루종일 갇혀있어야 하는 신세도 싫었지만, 가장 짜증나는 건,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태도였다. 학생들은 늘 등수로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어떤 식으로든 괴롭힘을 당했고, 성적이 좋으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부당한 방식을 견딜 수 없었다. 하루빨리 간수(선생님들)들이 지키는 감옥(학교)를 벗어나는 것이 꿈이었다. 가끔 탈옥(땡땡이)을 시도했다. 그래도 나는 별로 꾸지람을 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학 진학 가능’ 이라는 딱지가 나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제대하고 나서 다시 군대에 돌아가게 되는 꿈을 가끔 꾼다고 한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악몽이다. 나에게 그보다 더한 악몽은 고등학교에 돌아가는 꿈이다. 그만큼 나는 학교를 싫어했다.

 

오늘 한 권의 책을 읽었다. ‘학벌없는사회’가 지은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라는 책이다. ‘학벌없는사회’에서 일하는 여덞명의 필자가 교육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바로 ‘교육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이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학교에 다니게 되다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아이들이 바로 몇 년만 지나면 학교에 다녀야만 하는 현실이 싫다! 그래서 대안학교를 알아보라고 주변에서 충고를 많이 하는데, 나는 솔직히 대안학교가 현실에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거기에 우리 아이들을 보낼만한 경제력이 우리 부부에게는 없다. 보낼 수 없는데 어떻게 대안이 된단 말인가!

 

학교는 변해야 한다. 아니 없어져야 한다. 당장 학교를 없앨 수 없다면, 가장 큰 문제 - 경쟁을 부추기는 ‘학벌’을 없애야 한다. ‘학벌’이 결코 그냥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학벌’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책들을 부지런히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찾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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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항하는가 -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
세스 토보크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멋진 만화책을 읽었다. 세스 토보크먼이라는 미국의 급진적인 예술가의 작품이다. <나는 왜 저항하는가>라는 제목에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표지는 강렬한 로우킥(자세를 보면 태권도의 옆차기와 비슷하기도 한데....)으로 건물을 부수는 여성의 뒷모습이 그려져있다. 느낌이 강한 표지다. 이런 표지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덕분에 어떤 만화인지 표지만 보면 딱 알 수 있다.

재밌는 것은 표지에 ‘뉴욕타임스 전격 연재 중단’이라고 눈에 띄는 표시가 되어 있다. 아마도 책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일 텐데, 보통 이런 건 ‘무슨 슨 상 수상’ 이라거나, ‘누구누구가 선택한 책’이라거나 그런 말이 붙어 있는데, 여긴 ‘전격 연재 중단’이라니. 그만큼 ‘쎈’ 만화라는 뜻일 게다. 아니나 다를까 뒤표지를 보면 제렐 크라우스 <뉴욕타임스> 전 아트 디렉터의 말이 실려 있다. ‘더 많이 실으려 했지만, 그의 작품은 너무나 급진적이었다.’ 라는 설명이다. 그의 직함에 ‘전’ 이라는 수식어가 왠지 맘이 쓰인다. 혹시 세스 토보크먼의 만화를 더 싣기 위해 애쓰다가 ‘짤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쯤 되면 어떤 내용의 만화인지는 얘기 안 해도 뻔하다. 국가(정치인들)가 싫어하고, 자본(기업인들)이 싫어하는 만화가 분명하다! 그리고 국가와 자본이 싫어하는 만화이므로, 분명히 진실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국가와 자본이 실은 얼마나 나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만화일 것이다!

그림은 아주 멋지다! 판화 느낌이 난다. 선이 굵으면서도 특징들을 잘 잡아낸 그림들이 아주 강렬한 느낌을 준다. 강우근 선생님 그림이 떠오르고, 이윤엽 선생님 판화도 떠오른다. 물론 그림체가 닯았다거나, 비슷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느낌이 닮았다는 뜻이다.

만화를 읽는 내내, 우리나라에도 이런 만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사만화나 풍자만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대놓고 사실을 들춰내는 만화는 그닥 보지 못한 듯하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읽지 못했지만,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 선생님의 이야기를 그린 <나는 공산주의자다!> 라는 만화가 좀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내 바람은 이렇게 진실을 파헤치는 만화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국가와 자본의 어이없는 미친 짓들이 참 많았다. 광우병 수입으로 인해 대대적인 국민 저항을 보여준 촛불집회와 언론장악 저지를 위한 촛불집회가 있었고, 기륭전자, 동희오토, 콜트 콜텍 등등 여기저기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무자비한 국가 폭력에 진압되었다. 용산참사가 있었고(5분의 철거민이 돌아가셨다!), 최근에는 천안함 사태가 있었다.(46명의 장병이 돌아오지 못했다!) 삼성 X파일 사태와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이 이어지고 있다.(황유미, 박지연씨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게다가 지금 전국을 삽질 으로 파헤쳐놓은 4대강사업이 벌어지고 있다.(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금만 시계를 더 돌려보면 한미FTA저지 투쟁이 대대적으로 벌어졌고(허세욱 열사의 분신이 있었다!), 이라크 파병반대의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김선일씨가 볼모로 희생되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치열한 투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농민들이 생존권을 외치는 것을 폭력으로 저지했고(전용철, 홍덕표 두 분의 농민이 방패와 곤봉에 맞아 돌아가셨다!), 포항에서는 건설노동자들의 파업을 또다시 짓밟았다.(하중근 열사가 곤봉에 맞아 돌아가셨다!) 이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다.

이렇게 가만히 되돌아보니 참 우울해진다. 김규항에 의하면 참여정부라고 부르는 노무현 정권하에서 희생된 노동자와 농민 열사만도 23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한분 한분의 고귀한 희생이 이제는 다 잊혀진 듯하다. 우울하다고 해서 잊어도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아니 우리는 그 장면 하나 하나를 다 기억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만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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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생태계 파괴와 경제성장 사이의 진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책 제목 치고는 참 길다. 그리고 질문이 좀 어렵다. 아니 질문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니라 말이 좀 복잡하고 어색하다. 정확하게 뭘 묻고 싶은 건지 금방 알기 어렵다. 그런데 더 쉬운 말로 바꿔보려 해도 잘 안 된다. 결국 이게 최선의 제목인 것일까?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이 책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을 펼쳐드는 순간부터 나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이다.

김종철 선생님의 강의를 처음 들었던 날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지독한 의욕상실과 무력감에 빠져있었다. 나는 대학시절 잠시 사막화방지운동에 참여한 일을 계기로 환경운동을 시작했다. ‘새만금 개발 반대운동’, ‘금정산,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반대운동’ 등의 굵직한 개발반대 운동에 참여했고, ‘골프장 건설 저지’, ‘젤라틴 공업용 쇠가죽 원료사용 중단’, ‘재생가능 에너지 확산’ 등의 다양한 운동에 참여했지만, 단 한 차례도 원하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환경운동은 기본적으로 개발반대 싸움이다. 개발을 통해 자신의 배를 불리려는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겨, 자연생태계를 현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헤비급 챔피언과 라이트급 아마추어의 권투시합만큼 불공평한 싸움이다. 처음부터 힘이 다른 거대한 권력집단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여러 개발반대 싸움의 현장을 겪으면서 느꼈던 건 무력감이었다. 물막이 공사가 막 끝난 새만금 방조제 4공구 현장에서 밤새 삽과 곡괭이를 휘둘러, 아침 무렵 겨우 다시 바닷물을 만나게 했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바로 몇 시간 뒤 전경들과 용역깡패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한쪽으로 쫓겨간 틈을 타서, 포크레인이 바닷물을 다시 막아버렸을 때의 느낌도 잊을 수 없다. 그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강하게 나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무력감이었다. ‘이 싸움은 절대로 이길 수가 없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법정공방까지 갔던 ‘새만금 사업’은 결국 개발을 원하는 측의 승리로 끝났다. 또한 지율스님께서 목숨을 걸고, 4차례에 걸쳐 총 241일 동안 단식농성을 벌였지만 결국 고속철도 공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뭇 생명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는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노력했던 몇 년 동안 나는 점점 더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뭘 해도 다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환경운동단체를 그만두고 문화운동단체로 옮겼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김종철 선생님을 만난 건 바로 그때였다. 선생님은 내가 갖고 있는 의문을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나는 환경운동가로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산업사회를 벗어나는 상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여기며 자본주의를 뒤엎을 상상은 자주 하고 있었지만, 그 사회주의조차 산업사회라는 틀에서 보면 자본주의와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경제성장은 산업사회를 끌고 가는 유일한 힘이다. 그리고 경제성장만을 추구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틀 속에 갇혀있으면서 생태계의 파괴를 막아 보겠다고 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을 이뤄보겠다고 나서는 것이나 똑같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비록 눈이 가려져 있어서 쉽게 깨닫지 못하고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매우 비인간적인 곳이다. 오직 돈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끌고 나가기 때문이다. 자신의 배를 불릴 생각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다른 생명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것이다. 돈과 권력에 눈이 멀었기에 시화호의 교훈도 잊어버리고 다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대규모 환경파괴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돈과 권력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오직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망루에 오른 사람들을 죽이고도, 오히려 그들을 테러집단이라고 매도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찾고 싶었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산업사회라는 틀 바깥을 상상할 수 없었던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김종철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비로소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후에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경제성장이라는 허황된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것만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며, 자연생태계를 지킬 수 있는 길인 것이다.

경제성장이 허황된 이데올로기라고? 경제성장을 해야만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야 가난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복지혜택을 줄 수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어떻게 해서 경제성장이란 거짓말에 우리가 속았는지 알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경제성장 포기하고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온 세상이 다 경제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 사회 혹은 한 국가만 경제성장을 포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부터 다시 찾아나가야 한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제야 현실을 바로 보는 눈이 뜨였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운동가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은 평화와 환경위기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서 잘못된 상식(사고방식)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깨닫게 해주고, 올바른 상식(사고방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경제’만을 외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오직 경제성장만이 최고의 가치이자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다. 왜 그럴까?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그것이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현실사회주의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돈에 미친 건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 산업사회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몇 년 만에 다시 들었던 강연에서 김종철 선생님은 잘 찾아보면 우리 주위에 의외로 우리와 비슷한 ‘또라이’들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그 강연을 들으러 온 50여명은 대부분 그  ‘또라이’들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더 많은 ‘또라이’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함께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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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2010-10-15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촘촘하고 성실한 독서가 느껴지네요. 자주 놀러오겠습니다.

감은빛 2010-10-15 13:1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도 종종 놀럭겠습니다! ^^
 
유혹하는 에디터 - 고경태 기자의 색깔 있는 편집 노하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깔끔한 하얀 표지에 ‘유혹하는’ 분홍색 글씨가 눈에 띈다. 글씨들 사이로 칸막이처럼 좁은 사진이 들어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겨레21이 잔뜩 꽂혀 있다. 앞날개에는 저자의 사진과 소개가 들어있는데, 생각보다 긴 소개글의 맨 첫 부분이 ‘심심한 인간. 잘 뜯어보면 심심하지 않은 인간.’ 이라고 되어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저자의 이런 사고방식이 이 책 곳곳에 깔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고경태 기자가 <한국농어민신문> 기자로 시작하여, <한겨레21> 기자 및 편집장, <한겨레> esc 팀장, <씨네21> 편집장이 되기까지 그동안 자신의 잡지 편집경력을 통해 깨달은 자신만의 원칙(혹은 비법)을 알려주고 있다. 편집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흔히 생각하는 편집, 예를 들어 교정교열 같은 실무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편집이란 전체를 조율하고 디자인하는 영역이다. 하긴 저자는 잡지 편집기자다. 일반 단행본 편집자와는 다르고 잡지 취재기자와도 또 다르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약간 오해가 생길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저자가 강조하는 ‘편집 노하우’가 전적으로 어느 편집 영역에나 다 맞지는 않다는 말이다. 
 

고경태 기자는 자신이 뽑았던 제목이나 표지 그리고 광고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동안 나왔던 한겨레21의 제목, 표지, 광고를 저자 나름의 몇 가지 기준으로 베스트10, 워스트 10 뭐 이런 것들을 뽑아놓았는데, 읽다보면 그 시기의 정치, 사회 상황이 떠오르기도 하고, 개인적인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잠시 몸담았던 나는 당연히 <한겨레>만 읽었다. 조중동을 비롯한 다른 신문은 별로 신뢰하지 않았고,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런데 신문이란 게 매일 읽다보면 별로 재미가 없다. 매일 쏟아지는 기사들이 다 똑같아 보인다. 그런데 <한겨레21>은 달랐다. 주간지라서 그런 것인지 표지부터 눈길을 확 잡아끄는데다, 기사 하나 하나가 다 재밌었다. 그 시절 <한겨레21> 표지들을 보면서, ‘참 선정적이다!’ 라는 평을 여러 차례 입에 올리곤 했었는데, 그 표지들을 만든 사람이 고경태 기자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가 뽑은 인상 깊은 표지들 중에 몇 개는 나도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들이었다. 저자는 그런 표지들을 뽑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사실은 선정적이지 않다 라던가, 스스로 생각해도 낯 뜨겁다 라던가 등의 지금의 느낌을 털어놓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저자의 변명(?)들이 별로 와 닿지는 않는다.

뒤쪽으로 가면 글쓰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활자만 보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교정하는 직업병(?)을 갖고 있는데, 막상 스스로 글을 쓰면 그런 실수들이 여전히 눈에 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에 대한 노하우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편집기자 다운 내용들이다. 사소한 실수들을 제거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아주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중간에 에세이들이 하나씩 끼어있다. 저자가 어떻게 편집기자로서 잡지판에 발을 들여놓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를 들려준다. 이것만 찾아 읽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이 책은 편집 일을 하지 않더라도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앞쪽에서 저자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편집자’라고 말한 것처럼 일상에서도 이 책에서 말하는 ‘편집’의 영역에 속하는 일을 해야 할 경우가 많다. 그리고 출판과 관계된 일을 한다면 편집 분야가 아니더라도 읽어야할 책이다. 특히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은 마케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최근의 출판계 상황을 고려한다면 필독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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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1-01-04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읽었던 책인데 반갑네요~

요즘에 부쩍 목요일날 한겨레 신문 에 esc지면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주인장님은 그 지면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ㅎ

감은빛 2011-01-04 18:25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은 한겨레를 잘 안 읽습니다.
경향으로 바꾼지 몇 해 됩니다.
한겨레는 가끔 일터 동료들이 갖고오면 들춰보긴 하는데,
자세히 읽을 여유가 별로 없어서요.

저는 의견을 드릴 입장이 안되니, 매버릭꾸랑님의 의견을 들려주세요! ^^

다이조부 2011-01-04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겨레 경향 을 두루두루 보는 입장입니다.

집에서는 조선일보를 보는데 작년 11월 15일부터 집에 방치되 있어도 안 보는데

스멀스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듯 하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