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수라처럼] 이란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다. 아니, 드라마 내용과 줄거리는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는데, 유명한 배우들이 여럿 나와서 그들의 연기를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일본 감독 중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다음으로 좋아하는 감독이다. [아무도 모른다]를 통해 처음 알았고, [세번째 살인]과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등을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 이 감독이 우리나라 배우들과 작업한 [브로커]를 정말 기대했는데, 대실망이어서 하마구치 류스케 보다 순위가 내려갔다. 아직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를 보고 실망한 적은 없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1979년 드라마를 인상깊게 보았다고 했다. 그 대본이 이후 자신의 작업들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했다. 그리고 그 드라마를 거의 각색하지 않고 본인이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시대 배경도 1979년 그대로이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아버지가 다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된 네 딸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이후로 각자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다루고 있다. 네 딸들은 저마다 개성이 뚜렸하다. 유명한 배우들이 그 역할을 맡기도 했고, 워낙 연기들이 좋아서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늙고 바람난 아버지 역할 역시 유명한 배우가 맡았다. 나에게는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쿠니무라 준이다. 곡성에서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 이 드라마에서 인자하게 웃는 표정인데도, 나는 어쩐지 무섭게 느껴지곤 했다.

주인공으로 네 자매를 설정한 것은 어쩌면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 아씨들]의 영향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그리고 곧바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도 떠올렸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여기는 다섯 자매가 나온다. 한 명이 더 많았다. 나는 일단 감독을 보고 이 드라마는 봐야겠구나 생각하긴 했지만, 네 자매의 배역을 보고 엄청 놀랐다. 일단 첫째는 미야자와 리에가 맡았다. 이 분이 젊고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에는 우리나라에 일본 문화가 개방되기 이전이라 작품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유명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둘째는 오노 마치코가 맡았다. 고레에다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도 나왔었고, [솔로몬의 위증]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도 보았었다. 셋째는 아오이 유우가 연기했다. 내가 한창 일본 문화를 접하던 시기에 제일 유명한 배우를 꼽으라면 아오이 유우가 아니었을까 싶다. 넷째는 히로세 스즈가 맡았다. 고레에다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처음 봤었다. 이후에 역시 고레에다 감독의 [세번째 살인]도 보았고, 이상일 감독의 [분노]도 봤다. 그리고 이와이 슌지 감독의 [라스트 레터]도 봤다. 외모와 연기력 모두 독보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존재감이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네 자매의 독특한 성격과 삶의 모습들을 보는 것이 이 드라마의 주 내용이다. 그리고 아빠와의 관계. 넷은 아니지만 두 딸을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나중에 내가 더 늙으면 딸들과 어떻게 지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보게 되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이 드라마에 왜 이렇게 바람 피우는 남성이 많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실제로도 많았을 수도 있다. 과거 70년대 말의 일본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 시절 한국에도 아마 많았을 것이다. 바람이 난다는 건 해당 남성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상대 여성도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이 드라마의 분기점이 열린다.

물론 이 이야기는 드라마니까 현실보다 자극적인 소재가 필요하다. 그러니 이렇게 바람난 남성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겠지. 네 자매와 그 엄마 이렇게 다섯 명 중에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지 않은 사람은 두 명 뿐이다. 첫째는 작중 시점에서 이미 남편과 사별한 상태라 남편이 바람을 필 수 없다. 생전에 바람을 피웠는지는 알수 없지만, 아마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본인이 기혼자인 남성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셋째의 남편은 아직은 신혼이라 바람을 피우지 않고 있다. 넷째의 남편은 결혼 전에 이미 딴 여자와 있는 모습을 넷째와 둘째에게 들켰다. 둘째는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아주 강하게 의심하지만, 아직 결정적인 증거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정황 증거는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바람난 상대방이라고 의심했던 여성의 결혼식에 초대 받는다. 이 둘째의 남편은 이 딸만 넷 있는 집에서 마치 가장처럼 여러 궂은 일들을 떠맡아 처리하곤 한다. 장인어른과도 잘 지내고, 딸들이 바람난 아버지를 비난할 때에도 계속 장인 편을 든다. 그것은 그가 남자라서, 그것도 역시 바람난 남편이라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이 아들 없는 집의 아들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편을 드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편드는 짓이 옳다고 볼 수는 없는데, 이 시대 상황과 일본 사회라는 곳에서 이 인물의 가치관으로는 바람 한 번 피울수도 있지가 되는 것이라고 봤다. 이것은 다른 여성들의 태도에서도 여러 번 보인다. 첫째는 아버지의 바람에 대해 다른 딸들보다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가 현재 다른 남성과 불륜관계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첫째로서 아버지와의 유대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 넷째도 아버지의 바람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막내로서 아버지와 잘 지내는 듯 보인다. 그는 자신의 남친이 집에서 다른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보고서도 그것 때문에 화나는 것이 아니라 운동선수인 남친이 계체량 때문에 단식해서 자신도 임신중인데도 단식에 동참하고 있었는데(심지어 그래서 쓰러져서 둘째가 데리고 돌아온 길인데) 남친이 다른 여성과 먹고 남은 흔적인 빈 라면 그릇 때문에 화가 난다고 말한다. 그는 이 일 이후에 바람 자체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 결혼한다. 남편의 바람에 가장 민감한 사람은 둘째다. 그는 아버지의 바람 때문에 엄마가 받은 상처와 고통을 가장 공감한다. 그는 계속 남편의 바람을 의심하고 상대방으로 추정되는 비서를 신경쓰지만, 화면으로 보여주는 장면 만으로는 끝까지 이 남편이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운다고 확정할 수 없다. 아버지의 바람을 처음 발견하고 사람을 써서 증거를 모은 셋째는 가장 심하게 화를 낸다. 하지만 그 사건 덕분에 만난 남성과 사랑에 빠지고, 나중에는 그 남성이 아버지 혼자 사는 집에(엄마는 충격으로 돌아가심) 들어와 살면서, 또 결혼해서 결국 이 셋째 부부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면서 가장 아버지와 잘 지내는 딸이 된다.

마지막으로 아버지 이야기. 퇴직했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일터에 나가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사실은 일터에서 크게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중간에 얼마든지 외출이 가능하고, 그 일주일에 하루는 주로 다른 여성과 그의 아들과 보내고 있었다. 작중에서 그 아들은 이 아버지와는 관계없는, 그 여성이 과거에 만난 다른 남성 사이에서 낳은 아들로 나온다. 그런데 이 어린 꼬맹이가 할아버지 뻘 보다 더 나이가 많은 이 아버지를 엄청나게 따르고, 이 아버지 역시 이 꼬맹이를 엄청 아낀다. 드라마는 아마도 일부러 이 아버지의 바람이 여성을 만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빠 없는 아이를 위해 애써 시간을 내주는 것처럼 보여준다. 그리고 딸들이 자신을 찾아온 것을 본 그 여성은 이 아버지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결혼하기로 했다고 말한 것. 그래서 이 아버지는 이제 더는 그들 모자를 만나지 않는데, 아들은 계속 아빠를 찾아 전화를 걸고 따로 둘이 만나기도 한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이 아들을 야멸차게 내칠수 없으니 계속 대화하는 것인데, 이 아들이 비밀을 말해버린다. 사실은 새아버지가 없다는 것. 즉, 이 여성이 거짓말로 결혼을 통보해 이 아버지가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만든 것이다. 물론 이렇게 헤어졌다고 해서 바람을 피웠던 과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아버지가 아무리 혼외자인지 이혼 후 편모자가 된 것인지 모를 이 어른 아들에게 잘 대해준다고 해도 그가 가정을 버리고 다른 여성을 만났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용서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아내를 잃고 혼자 집안 일을 잘 해내지 못해 엉망으로 살아간다. 심지어 집에 불이 나기도 하고.

고레에다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비슷한 내용들이 있다. 세 자매는 어릴 때 자신들을 떠났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갔다고 배다른 자매를 만난다. 그래서 네 자매가 되어 함께 살아간다. 그런데 그중 첫째는 가정이 있는 남성과 불륜 관계에 있다. 아버지가 엄마를 버리고 떠나 힘들게 살았을 그가 다른 기혼자를 만난다는 것. 고레에다 감독이 79년의 이 원작 드라마가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말한 것이 이 영화에 드러난다.

바람은 다의어다. 기압의 차이로 인한 공기의 흐름이 가장 많이 쓰는 뜻이고, 무언가를 간절히 소원하는 것도 바람이다. 내가 10년 가까이 일했던 일터는 태양과 바람이라는 단어로 시작하는데, 다들 태양광발전과 함께 풍력발전도 하는 것으로 듣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 바람은 그 바람이 아니라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다는 그 바람이예요. 윈드가 아니라 호프예요. 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이렇게 상대를 두고 다른 상대를 만나는 것도 바람의 뜻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그건 아니었다. 이건 바람나다 라는 동사였다. 명사로는 이 뜻이 없었다.

솔직히 살면서 다른 이성 상대에게 끌리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속으로는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걸 서로 쿨하게 이해하는 관계들도 있다고 듣기는 했다. 그게 실제로 어떻게 가능한지는 잘 상상이 되지 않지만.

이 드라마를 주욱 보면서 내 인생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들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그 길에서 누군가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언제나 생각은 많다. 그러나 나는 늘 현실의 어떤 틀 안에 묶여있거나 갇혀있다.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데, 선택은 종종 파란 알약이다. 그냥 익숙하고 편한 상태에 안주하는 것이 제일 쉬우니까. 깨어나라. 깨어나는 선택을 주저없이 하면 좋겠다.

아, 바람 이야기의 어딘가에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 이야기도 하려 했는데, 이건 깜빡했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으므로 이건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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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3-06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드라마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그런데 외도에 대한 가치관이 우리나라와 너무 달라 놀라긴 했어요. 히로세 스즈 연기력과 미모에 저도 정말 깜짝 놀랐어요. 최근 그녀가 주인공으로 나온 드라마 <누가 공작의 춤을 보았나> 보는 중입니다. 아주 대성할 배우라는 생각 들더라고요.

감은빛 2025-03-11 12:53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도 재미있게 보셨군요. 반가워요! ㅎㅎ
저도 그랬어요. 지금 이게 맞아?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속에 맴돌더라구요.
음 그 드라마도 찾아봐야겠네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5-03-15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자는 바람 피운 남자와 안 들킨 남자가 있다면서요...ㅋㅋ
지금 생각난 건데, 남녀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군요. 단 친구가 될 수 있는 기간, 은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친구 사이가 언제 연인 사이가 될지 모른다는 거죠. 저도 넷플릭스에서 두 감독의 영화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오늘 할 일이 생겼네요. 영화 이야기라 반갑게 읽었어요.^^

감은빛 2025-03-24 16:54   좋아요 0 | URL
페크님, 저는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는 그 생각을 못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많은 남성들이 바람을 피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여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ㅎㅎㅎㅎ
그래서 이 감독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신경숙의 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가 생각이 났어요.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젊은 여성들이 등장하거든요.

2025-03-23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3-24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 고치기

예전에 출판사에 있을 때, 잠시 편집자로 살았었다. 나는 잡지 구독자 관리 업무와 잡지 영업, 단행본 영업을 주 업무로 맡았었는데, 욕심이 많았던 터라 잡지에 글을 쓰기도 하고 취재를 다니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편집 업무를 배워 영업자와 취재기자와 편집자 이렇게 세 가지 일을 했었다. 물론 주업무가 영업이었으니, 편집 업무는 속도도 느렸고, 서투르기도 했다. 오탈자를 잡아내거나, 띄워쓰기를 고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아서 늘 실수가 많았다. 그런 내가 자신 있는 일은 문장을 다듬는 것이었다. 보다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배치를 바꾸고, 단어를 수정하는 일에 자신이 있었다. 언젠가 새로운 단행본 맡을 담당자를 정하기 위해 대표님이 나와 베테랑 편집자 한 명에게 책 한 권을 주고 3일 안에 교정교열을 시켰다. 나는 이제 막 편집자로 첫 걸음을 내디딘 초짜이고, 그는 10년 이상 경력인데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경쟁에서 떨어지겠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 해보자고 마음 먹고 열심히 했다. 마감 기한이 되어 그와 나는 교정 본 책을 제출했고, 대표님은 다음날 우리를 불렀다. 결과는? 대표님은 오탈자와 띄워쓰기 오류를 잡아내는 능력은 그 베테랑 편집자가 월등히 낫다고 했다. 그런데 문장을 다듬는 능력은 내가 훨씬 나았다고 했다. 그는 문장에는 크게 손을 대지 않았는데, 오탈자는 거의 다 잡아냈고, 나는 오탈자는 많이 놓쳤지만, 조금이라도 부자연스러운 문장이 있으면 고쳤는데, 그 고친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새 책, 당시 이 출판사 입장에서는 중요한 분기점의 시작이 되는 중요한 책을 나에게 맡겼다. 이유는 오탈자 찾아내는 기능은 연습하다보면 더 잘 할 수 있지만, 문장을 고치는 능력은 쉽게 키우기 어려운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후로 나는 책 여러 권을 맡았지만, 교정 부분에서 그러니까 오탈자 찾아내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지는 못했다. 낮에는 영업을 다니고, 남들 다 퇴근할 저녁부터 책상에 앉아 편집 업무를 하느라 늘 시간에 쫓겼다. 교정 능력을 키우려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공부도 하고, 연습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유독 실수가 많아서 내가 책임 편집을 맡았던 책에서는 끝내 잡아내지 못한 오탈자가 늘 있었다. 심지어 발행일을 잘못 적어놓고 최종 교정때까지 몰라서 미래에서 온 책을 펴내기도 했다. 스티커 작업 할 돈도 아깝다며, 대표님이 그냥 두라고 하셨다. 거기서 좀 더 버티며 편집 일을 계속 했다면, 나도 조금은 더 실력이 늘었겠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오탈자를 잡아내는 영역의 일은 좀 서툴렀지만, 글을 만지는 일은 그래도 자신있었다. 작은 출판사이다보니 첫 책을 내는 작가들이나 번역자들이 많았다. 대학에 몸담은 박사님들이나 번역 경험이 많지 않은 번역자들의 글은 비문이 많았고, 그 특유의 번역 어투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전문가라는 사람은 그런 번역어투가 읽기 쉬운 글보다 더 잘 쓴 글이라고 믿었다. 그런 글을 만나면 나는 아예 내가 다시 글을 썼다. 어떤 저자는 단어 하나 바꾸는 것에도 난리를 치기도 했는데, 내가 아예 새로 글을 쓴 것은 모른척 하더라. 본인도 부끄러웠던 것인지, 아니면 설마 내가 아예 새로 쓴 부분을 본인이 쓴 원문 그대로라 생각하고 못 알아본 것은 아니겠지. 어떤 번역자는 내용에 오류가 많고 인명이나 지명 등을 엉뚱하게 잘 못 써놓기도 해서 아예 원서와 사전을 옆에 끼고 하나하나 내가 다시 번역해가며 글을 고치기도 했다. 그렇게 내 젊은 시간을 갈아넣어가며, 매일 밤을 새워가며 글을 고쳐도 내게 남는 것은 없었다. 책에는 그저 판권 페이지에 편집자로 이름 하나 들어갈 뿐이다. 그 책의 절반 이상을 내가 새로 고쳐 썼어도 저자는 그 사람이고 나는 아무도 아니다. 그 책의 절반 이상을 내가 다시 번역했어도 결국 번역자는 그 사람이고 나는 표지나 책 날개에 이름을 넣을 수 없는 편집자일 뿐이었다. 게다가 나는 낮에는 영업자로, 가끔은 취재기자로 살았고 밤에는 편집자로 살았지만, 급여는 그대로였다. 나와 친했던 영업자 동료들은 내게 돈도 못 받는데, 왜 잠도 못 자면서 편집 일을 하냐고 뭐라하곤 했다. 나는 늘 내가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일 욕심은 많으나 내 실속은 잘 찾지 못하는 미숙한 인간이라 그랬다.

내가 이 출판사에 처음 들어왔을때 여기는 영업이란 걸 해본 적도 없는 곳이었다. 나는 적자였던 출판사를 흑자로 돌리고, 첫해와 둘째해에 영업이익을 크게 증대시켰다. 대표님은 나를 엄청 존중했고, 그렇게 계속 잘 될줄 알았지만, 다시 해가 갈수록 영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점점 줄었다. 이건 당연한 일인데, 아무런 시스템도 없는 곳에 내가 영업 망을 구축하기 시작해서 처음엔 크 폭의 매출 상승이 이뤄지지만, 점점 망이 완성될수록 매출은 안정권에 접어 들면서 상승 폭은 낮아진다. 내가 잘 구촉해놓은 영업망은 이제 관리를 잘 해야하는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당시 대표님은 그 관리라는 영역을 과소평가했다. 내가 이미 시스템을 잘 만들어두었으니, 이제 내가 없어도 이 시스템이 잘 돌아간다고 믿었을 것이다. 나는 개국공신과 같은 대접을 받다가 한순간에 잘렸다. 그 후로 몇 건 알바로 교정 일을 맡은 적은 있지만, 제대로 배울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시민신문의 편집위원 역할을 몇 년간 맡았었다. 당연히 무급이었다. 신문 마감 기간에는 낮에 일터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신문사로 가서 새벽까지 편집 일을 했다. 편집장과 기자가 기사를 완성하면 내가 교정교열을 보고, 그걸 편집장이 다시 확인 한 후에 디자이너에게 넘겼다. 작은 규모라 취재기자도 부족한데 편집기자를 둘 여력은 당연히 없었고, 나는 아무런 댓가없이 매달 며칠씩 새벽 늦은 시간까지 교정을 봤다. 문제는 신입으로 들어온 기자가 기사를 쓸 줄 몰랐다는 것. 글쓰기 기본도 모르는 사람을 덜컥 기자로 뽑아놓고 기사를 쓰라고 하니 정말 엉망인 쓰레기를 쓰고 있었다. 매번 편집장은 그 기자의 기사 같지도 않은 결과물 때문에 어쩔줄을 몰라했고, 늘 그 기자의 엉망인 원고들은 내게 맡겨졌다. 이건 고칠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기사를 새로 써야했다. 게다가 표현이 엉망이라도 내용이라도 충실하면 그걸로 새로 글을 쓰면 되는데 내용도 부실했다. 중언부언. 딱 그 표현 그대로였다.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결국 같은 것인데 그 엉망인 표현만 다르게 붙여놓았다. 그래서 그 기사는 아예 내가 내용을 찾아서 다시 썼다. 즉, 취재도 내가 다시 하고 기사도 내가 다시 썼다. 그런데 결국 발행하는 신문에 내 이름은 없었다. 편집장과 기자 이름은 들어가도 편집위원 이름은 아주 작게, 독자들이 어디 있는지 알기도 어려운 구석에, 자세히 들여다보조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크기로 적혀있었다. 나는 편집장에게 이 기사만큼은 내 이름과 그 기자 이름을 공동으로 넣어달라고 요구했고 받아들여졌다.

그 기자는 시간이 지나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나도 언제까지 계속 새벽까지 잠 못자고 거기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서서히 시민신문에 투여하는 시간을 줄여나갔고, 나중에는 딱 마감을 치는 날 하루만 가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편집장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에도 그 기자의 기사인데, 본인이 좀 고쳐보려고 했지만, 손을 대지 못하겠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나대로 일이 몰려 늦게까지 일하다 잠든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무척 피곤했다. 내일 보면 안 되냐고 했더니, 일정상 오늘 밤안에 꼭 끝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결국 그 새벽에 노트북을 켜고 원고를 열었다. 아! 이건 진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냥 다시 누웠다. 엄청 피곤했는데도 잠이 오지는 않았다. 한참을 누워있다가 결국 몸을 일으켜 책상에 앉았다. 남의 글을 고치는 일은 참 고역이다. 예전에 편집자였던 시절에는 그게 재미있었는데, 이제 아니었다. 이 짓도 이제 못하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결국 그 기사를 다시 써서 보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시민신문에서 몇 가지 문제가 불거지며 나는 편집위원을 그만두었다. 편집장도 그만두었다. 기사를 잘 쓰지 못했던 그때의 그 기자는 지금도 기자로 남아있고, 여전히 기사를 잘 쓰지는 못한다. 물론 그때보다는 훨씬 나아져서 그래도 기사 비스무리한 것처럼 읽히기는 한다.

오늘 갑자기 이렇게 편집 일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아까 어느 연대단위에서 급하게 성명서를 함께 만들어달라고 초안을 공유문서로 보내왔던 일 때문이다. 그 문서를 딱 열었는데, 제목부터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까지 총체적으로 엉망이었다. 나도 한때 성명서를 많이 썼었고, 최근에도 몸담고 있는 지역정당에서 쓴 적이 있는데, 이렇게 앞뒤가 안 맞고 내용도 부실한 성명서는 본 적이 없었다. 이걸 초안이라고 공유한다고? 처음엔 제목도 수정 제안하고 앞부분 문장들을 고쳤다. 한 서너문장이 중언부언 같은 내용을 반복하길래, 싹 지우고 그 내용들을 종합해서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아래 본론으로 내려왔는데. 하! 이건 진짜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예 새로 써야 했는데, 그러기에는 이 공유문서라는 틀에서 시작하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들이 나처럼 글에 손대기 시작하면 실시간으로 자꾸 글이 바뀌는데, 내용이 계속 달라지니 새로 쓸 수가 없었다. 결국 이래저래 좀 해보다가 포기하고 그냥 창을 닫았다. 내가 창을 닫는 순간에도 두세 사람이 실시간으로 글을 고치고 있었다. 이건 처음부터 초안이 너무 부실해서 공유문서로 수정할 수 없는 건이었다. 초안을 쓴 사람이 다시 제대로 쓰던가, 다른 사람이 초안을 다시 쓰던가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 연대단위의 다른 분과 상황을 공유해보니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도 나도 이 상황을 수습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들어가보니 제목은 내 제안대로 바뀌었고, 앞부분 내가 고친 것도 그대로였는데 뒷부분은 계속 실시간으로 고쳐지는 중이었다. 여전히 상황은 그닥 좋아보이지 않았다. 다시 포기하고 창을 닫았다. 이건 어쩔 수 없다.

글쓰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가끔 머리 속에서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아 한참동안 깜빡이는 빈 커서만 쳐다보고 있기도 한다. 언제나 글을 쓸 때마다 나는 참 부족하구나. 나는 여전히 이것 밖에 안 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내 글도 이렇게 엉망인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남의 글을 고치나. 글 좀 봐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비문을 문장의 형태를 갖추도록 수정 제안하거나, 딱딱하고 어색한 문장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바꿔 제안하는 것은 가능하긴 한데, 딱 거기까지라고 스스로 한계를 그어준다. 글쓴이도 다 의도가 있을텐데 라고 생각하며 한 발 물러나곤 한다. 내 글이라면 처음부터 내가 다시 써도 상관없지만, 남의 글은 내가 그럴 수 없는 거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그 옛날 출판사 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 박사나 전문가가 쓴 비문과 어색한 번역 어투 투성이의 엉망인 원고를 하나도 안 고치고 오탈자만 좀 찾아낸 후에 그대로 출판할 것이다. 물론 교차 교정 단계에서 다른 편집자나 대표님이 바로 잡으면 나를 욕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저자한테 어이없는 소리 들을 일은 없고, 독자들이 이 저자는 이 정도로 글을 쓰는 구나 하고 정확하게 알테니. 이 저자는 이런 나쁜 버릇이 있구나. 이 저자는 이 단어와 저 표현을 너무 자주 쓰는구나. 이런 것들을 편집자인 나만 알면 너무 불공평하고 억울한 것 아닌가! 저 번역자는 사람 이름이나 지명도 똑바로 안 찾아봤구나. 저 번역가는 번역을 왜 이렇게 엉터리로 했을까. 이런 사실들을 독자들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독자들이 비싼 책 값을 내고 책을 살 필요가 없겠지. 편집자라는 존재는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출판사로 들어오는 초고가 모두 매끈하게 훌륭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런 경우는 무척 드물다. 사람마다 출판사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책임 편집을 맡은 책을 적어도 10번 이상 보면서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쳤다. 이 책을 사는 독자에게 내가 예전에 엉망인 책을 읽고 느꼈던 그런 불쾌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

다시 말하지만, 남의 글을 고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나는 사실 내글을 쓰거나 고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그러니 이제 남의 글은 그만 고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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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2-26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편집자의 지분이 이 정도 일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비문학권의 학자나 지식인들의 글이 워낙 수려한 경우가 많아서 똑똑한 사람은 글도 잘 쓰는 줄 알았더니...ㅎㅎ 글쓰기도 철저한 분업화가 이루어지는 분야였던 거군요.

감은빛 2025-03-05 20:07   좋아요 0 | URL
문학으로 가면 편집자의 역할이 좀 바뀝니다. 문학에서는 편집자가 막 글을 고치기가 쉽지 않아요.

저는 교양서 혹은 전문서 편집자였기 때문에 전문 지식은 가졌으나 글은 좀 부족한 저자를 도와 글을 고치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가끔 잉크냄새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지식도 많고 글도 잘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대체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죠.

바람돌이 2025-02-26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알고 있었지만 진짜 능력자세요. 남의 글 고치는거 얼마나 어려운데요. 저는 애들 자소서나 대회 제출용 글이나 봐주는데도 진짜 진땀을 빼는데 말이죠.
저는 책을 읽다보면 잘 된 책에서는 편집자를 안 찾게 되더라구요. 근데 책이 사실에 안 맞는 내용이나 오탈자가 많거나 문장이 이상하면 편집자 탓을 하게 되더라는.... 아 진짜 편집자는 이거 안봐주고 뭐했어 이러식으로요. 그런데 그러면 안될거 같아요. 당연하게 편집자가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글이 엉망인 경우도 얼마나 많겠어요.
남의 글 그만 고치시고 감은빛님의 글을 쓰실 날을 기다립니다. 화이팅이에요. ^^

감은빛 2025-03-07 19:14   좋아요 1 | URL
아이고, 아닙니다.
그냥 좀 잘난 척하길 좋아하는 아저씨일 뿐이에요.
그저 주위 사람들이 좀 잘 봐줘서 그렇게 보이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하려구요.
진짜 능력자들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바람돌이님 말씀대로 정말 잘 만든 책을 읽으면 저도 편집자에 대해 생각하지 않더라구요.
그만큼 매끄럽게 잘 만들었다는 뜻인 것 같아요.
그런데 뭔가 잘 안 읽히고, 오류나 오탈자를 발견하면 곧바로 저자가 아니라 편집자를 원망하게 되더라구요.
편집자라는 위치가 참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이제 제 글을 써야 할텐데요.
생각은 늘 하지만, 쉽지 않네요. ㅎㅎㅎㅎ
언제나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5-03-15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글쓰기 공부는 됐을 것 같아요. 남의 글을 고치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거든요. 이 사람이 자주 쓰는 낱말이 있구나, 그러면 나도 그런 게 있겠지 하면서 말이죠. 또 문맥이 맞지 않는 문장을 바르게 고치다 보면 자신이 글을 쓸 때 문맥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지요. 자신의 공부를 위한 투자 시간이라 생각하면 나름대로 보람 있는 시간이라 여겨질 겁니다.^^

감은빛 2025-03-21 21:08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남의 글을 고칠 때는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부분들이 잘 보이는데요.
막상 제 글을 쓸 때는 또 그런 것들을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편집자 출신이지만, 오탈자도 많고, 띄어쓰기 오류도 엄청 많아요.
늘 글을 쓰다보면, 나는 왜 이렇게 글을 못쓰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ㅠㅠ
 

과거 오늘

북플의 지난 오늘 게시판은 가끔 북플에 접속할 때마다 가장 먼저 보는 곳이고, 이때 글이 적으면 다 읽는 편이고, 글이 좀 많으면 최근 글들과 가장 오래 전에 쓴 글을 중심으로 읽는다.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알라딘에 글을 자주 쓰는 편은 아니라 대개 글이 적고, 아예 없는 날들도 제법 있다. 오히려 오늘처럼 글이 여러 개인 날이 드물다.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페이스북에도 잠시 들어갔었는데, 여기에도 과거 오늘 작성한 글들을 보여주는 메뉴가 있다. 아마 페이스북이 먼저였고, 그 뒤에 북플에도 이 기능이 나왔었다. 페이스북에 뭔가를 쓰지 않은 지는 벌써 5년도 넘었다. 가끔 접속해 지인들의 소식과 에너지 전문가들이 공유해주는 소식들을 알아보려고 남겨뒀을 뿐. 그런데 과거에도 아주 적극적으로는 아니었지만, 간간히 짧은 소식들을 공유하긴 했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되었는데, 13년 전 그러니까 2012년 오늘 나는 아이들과 애들 엄마를 처가에 데려다주고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으로 책읽기 모임을 하러 갔었다. 그 시기에 내가 참여했던 책 모임은 주로 생태운동을 했던 구성원들이 매달 모였던 모임으로 제법 역사가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제주로 내려가셨지만, 당시 성균관대학교 앞의 유명한 풀무질 책방 지기인 은종복 형님도 그 모임에 계셨고, 과거 초록정치연대 회원이었거나, 녹색연합 회원, 녹색평론 읽기 모임 분들이 중심이었다. 또 기억나는 중심 인물이 배다리에서 긴 시간 헌책방을 운영했던 분이셨다. 이날 모임 장소는 그 헌책방이었다. 그 장소는 내가 출판계에 들어오기 전부터 알던 곳이었고, 출판계에 들어와서는 거래처로서 더 의미가 컸던 곳이기도 했다. 이 당시는 녹색당 활동을 활발하게 하느라 인천 녹색당에도 아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고, 그 분들과도 함께 어울렸던 날로 기억한다. 워낙 거리가 먼 곳이라 그날 책 모임을 마치고 길게 뒤풀이를 가졌고, 그곳에서 잠도 잤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2월 말이라 제법 추웠는데, 헌책방 2층을 게스트하우스 처럼 운영할 예정이라며 우리가 일종의 시범 운영 고객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저런 독서모임을 많이 나갔었고, 꾸준히 나간 곳과 금방 그만둬버린 곳들이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한 여기 독서모임이 가장 재미있고 좋았으며 그래서 가장 오래 열심히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당시 구성원들 중 몇몇 사람들의 얼굴과 말투가 기억난다. 12년 전이면 30대 후반이었는데, 그럼에도 내가 거의 막내였다. 환경운동가의 경험과 책을 많이 읽었던 이력 덕분에 형님들, 언니들에게 과하게 애정을 받았던 것 같다.

이렇게 페이스북 과거 소식 하나로 긴 시간 추억에 잠기는 나를 보면 확실히 나는 늙었다. 앞을 보고 살아야 할텐데, 자꾸만 뒤를 보고 있으니. 물론 일을 중심으로 어떤 측면들에서는 분명히 앞을 보는 지점들이 있는데,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그저 아무생각없이 현재를 살 뿐, 그다지 앞 날에 대한 계획이 없다. 무계획도 계획이라는 말을 가끔 생각하곤 하는데, 그건 계획이 아니라 태도라고 봐야 하겠지.

튿어진 옷

지난 주말에 일정들이 있어서 여기저기 다니다가 저녁에 돌아와 옷을 벗는데, 두터운 겨울 솜잠바가 튿어져 있었다. 어깨와 팔을 연결하는 바늘질 일부가 튿어져 안에 하얀 솜이 보였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이렇게 옷이 튿어질만한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한 칠팔년 전쯤에 사서 매년 겨울 잘 입었던 옷으로 안감이 부들부들해서 입었을때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옷이라 좋아하는 옷이기도 했다. 저렴하게 구매했는데, 훨씬 비싼 오리털 파카 같은 옷들보다 이 옷이 더 좋다고 느꼈던 옷이다. 작년 겨울에는 오른쪽 옆 주머니 안감이 터져서 속에 솜이 보이긴 했는데, 어차피 주머니 안감이라 밖에서는 안 보이기도 하고, 주머니에 손이나 물건을 넣고 빼는 동작만 좀 조심하면 문제가 없어서 꿰매지도 않고 그냥 입고 지냈었다. 이번에 팔 연결 부위가 튿어져, 뒤에서 사람들이 보면 흰 솜이 삐져나온 것이 보일 것 같아서 도저히 그냥은 입고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마침 친한 지인이 재봉틀을 갖고 있다고 얘기했던 것이 기억나서 전화를 걸었다. 재봉틀은 작업실에 있는데, 본인은 지금 감기몸살에 심하게 걸려서 당분간 작업실을 못 나간다고 했다. 그리고 재봉틀 보다는 손바느질로 꿰매는 것이 더 낫다고 나중에 본인이 꿰매주겠다고 당분간만 다른 옷을 입고 다니라고 했다. 앞으로도 매년 겨울을 이 옷으로 버틸 생각이었는데, 적어도 10년은 더 입을 생각이었는데. 벌써 이렇게 문제가 생기면 안 되는데. 옷장에 누군가 옷이 너무 커서 못 입는다고 준 오리털 잠바가 있고, 작년 겨울 아버지가 본인이 받았는데 흰 옷이라 못 입겠다고 주신 롱패딩이 있다. 둘 다 따뜻하기는 하지만, 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 훨씬 가볍고 간편한 저 옷을 늘 입었던 것이다. 어쩔수 없이 옷을 수선할 때까지 둘 중 하나를 입어아겠지.

옷을 오래 입는 편이어서 낡은 옷들이 많다. 10년 넘은 옷들도 제법 있고, 20년 넘게 입고 있는 옷들도 있다. 나는 낡은 옷을 입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듯하다. 하긴 장발에 수염에 낡은 옷까지. 어디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라고 생각할 만하겠다. 그것도 흰머리와 흰 수염이라니. 아, 흰 머리에 흰 수염에 흰 롱패딩은 또 나름 괜찮은 조합이 될 수 있겠다. 롱패딩이 불편해서 안 입고 다녔는데, 또 흰 색이라 막 입기에 부담스럽기도 하고. 당분간은 어쩔 수 없겠네. 잘 부탁한다. 롱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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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2-25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다리 헌책방 2층 게스트하우스는 아직도 잘 운영되고 있을까요. 그곳을 다녀온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어가네요. 인천에 가게 되면 일부러라도 한번씩 다녀오곤 했는데, 갈때마다 이곳은 얼마나 오래 이 자리를 지켜줄까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좀 오래되고 낡고 남루한 것들도 나름의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감은빛 2025-02-25 18:31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저도 거기에 못 가본지 오래되었네요. 아마 10년까지는 아니고 한 8년이나 9년쯤 되었을 것 같아요. 오늘 페이스북에서 짧은 글을 보고 그 당시 기억들이 떠올라 한참 멍하니 시간을 보냈네요.
 

진보와 보수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이 자신의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보수정당이라고 말했다는 것이 한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민주당이라는 정당이 가장 싫었다. 자꾸 이름을 바꾸는 현재의 빨간당, 요즘 이름이 새누리당이던가? 아! 아니구나. 국민의힘인가 그런 이름이었지. 새누리당은 옛날 이름이었지. 아주 오래전 자유당이었고, 민정당이었다가 한나라당이었던 바로 그 정당은 민주당 다음으로 싫어한다. 민주당이 가장 싫은 이유는 그들이 거짓으로 자신들이 마치 진보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태생부터 보수 정당이었다. 단 한번도 진보였던 적이 없었다. 그들은 돈과 기득권을 지키는 것에만 열중했을 뿐, 국민을 위한 정당이 아니다. 이재명이 이제 드디어 그들이 지금까지 거짓 태도를 취해왔음을 인정했다. 이건 뭐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인데, 그동안 사람들이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마치 진보인 것처럼 속아주거나, 속아주는 척 해왔는데, 이제와서 저 당연한 말이 이슈가 되는 것도 웃기긴 하다.


지금 이 나라에는 제대로 된 진보 정당은 없다. 아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라고 쓰려다가 없다고 썼는데, 미묘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뭐 지금 현실에서는 그거나 그거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며칠 전에 나온 기사에 "민주당, 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이 내란종식 민주 헌정 수호 새로운 대한민국 원탁회의 결성에 합의하고" 라는 문구가 있었다. 예전에 한때는 진보당과 기본소득당을 진보의 입장으로 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이 민주당이라는 보수 진영의 그늘 안으로 들어가 구걸하듯 의석을 얻어 먹었던 위성정당이 되기 전에 말이다. 위성정당이 된 이후로 그들에게 진보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게다가 의석을 얻어먹으려고 보수정당인 민주당에게 붙었던 정당을 어디 감히 진보라 칭할 수 있으랴. 그런 의미에서는 녹색당도 마찬가지다. 비록 녹색당은 민주당에게조차 배신당해서 위성정당이 되고 싶었으나, 결국 실패했지만. 녹색당이 위성정당이 아닌 것은 아니다. 살인미수도 범죄이듯이 위성정당이 되려고 시도한 것 자체만으로도 녹색당은 녹색당의 정신을 배신했다. 정의당은 음 조금 애매한 지점이 있지만, 나는 사실 정의당의 탄생을 진보에서 조금 더 오른쪽으로 가기 위한 시도라고 보았다. 민주당에 비하면 당연히 왼쪽에 서 있는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확실히 왼쪽으로 와 있다고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계속 했었다.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이 녹색당과 손을 맞잡고 민주당을 비롯한 패거리들이 하는 짓과 비슷한 짓을 했고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리고 노동당. 아직 당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존재감이 거의 없어진지 오래다. 기본소득당이 빠져나가버리고 나서 뭐랄까, 껍데기만 남았다고 표현하기에는 비유가 적절치 않은 것 같고. 음, 적절한 비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암튼 노동당은 지금 상태로 보면 회생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단 하나 밖에 없는 진보 정당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로서 요 문단의 맨 앞 문장을 없다 라고 쓰려다가 아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라고 쓰려다가 다시 그냥 없다 라고 쓴 것이다. 사실 저 위에 인용했던 언론 기사 문구를 보면서 제법 웃었다. 더불어민주당이 깡패 두목이고 그 나머지 똘마니들이 큰 형님을 모시는 깡패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보수정당의 우두머리와 그 밑의 졸개 보수정당들.


이재명이 보수 정체성을 고백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겨버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운동권 출신이고 마치 진보인 것처럼 코스프레를 해온 수많은 민주당 지지자들 혹은 민주당을 통해 정치를 하고 있거나 하기 싶어하는 수많은 86세대 기득권들이다. 내 주위에 정말 많았고 지금도 꽤나 많다. 정말 꼴보기 싫은 사람들이다. 자신이 과거에 운동권이었던 것을 무슨 벼슬이나 되는 듯 떠들고 다니면서 현재 자신이 보수 꼰대라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못하는 족속들이다. 그런데 어쩌나! 그렇게 찬영해 마지않았던 이재명이 보수라고 밝혀버린 걸. 다음부터 그들이 자신을 진보라고 또 떠들면 이재명이 뭐라고 했는지 물어보리라. 그러면 과연 뭐라고 답할지 궁금하다.


최근에 고 박원순 씨와 관련해 논쟁이 일어난 것을 목격했다. 누군가 오세훈이 박원순의 업적을 지우고 있다며 박원순을 찬양하는 것 같은 글을 썼고, 거기에 다른 누군가가 성폭력 가해자 박원순을 옹호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일이라고 썼다. 그랬더니 몇몇 사람들이 나서서 사실은 성폭력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라는 둥, 그 피해자가 피해자 답지 않다는 둥의 2차 가해를 다시 저질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서서 그들에게 2차 가해를 멈추라고 하는 등. 갑자기 여러 사람들이 글을 올리고 또 올렸다. 이 지점에서도 민주당 지지자인 보수 세력들이 자신을 진보인 것처럼 거짓으로 말하고 행동한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난다. 아무리 본인이 박원순을 좋아한다고 해도 성폭력을 저지른 범죄자인 박원순을 옹호하며, 피해자에게 피해자답게 행동하라고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것은 본인도 박원순과 똑같은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본인이 진보랍시고 떠들어 대는 꼴이라니. 윤석열을 욕한다고 다 진보가 아니다. 진보가 아니어도 사회 정의를 말할 수 있고, 다수의 시민들을 위해 행동할 수 있다. 그들이 그들의 정체성에 따라 자신의 안위를 위해 행동하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자신의 그런 행동을 마치 진보인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내는 짓은 그만뒀으면 좋겠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윤석열이 저지른 범죄의 정당한 댓가를 받아 탄핵이 확정되고, 유죄 판결을 받아 평생 감옥에 갇혀 있기를 바라지만, 그로 인해 다시 대선을 치르고, 그 과정에서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또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선 국면에서 김문수, 홍준표, 오세훈, 이준석 이런 인간들이 설치는 꼴을 보는 것이 너무 싫다. 이재명 말고 다른 대안은 없을까? 과연 언제쯤 나는 투표장에서 무효표 외에 다른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장발 + 수염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지 4년 정도 되었다. 그리고 요즘 다시 수염을 기르고 있다. 면도를 안 한지 3달 정도 되었다. 장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냥 대체로 크게 거부감이 없는 정도의 놀람이었지만, 수염에 대한 반응 중에는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나는 젊은 시절, 그러니까 20대 때부터 잊을만하면 한번씩 수염을 기르곤 했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문득 길러보고 싶어서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수염이 제법 잘 어울리는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내가 수염 기르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우리 부모님도 이 부분은 인정했다. 썩 안어울리지는 않는다 뭐 이런 정도의 표현이었던 것 같지만.


이번에 수염을 기른 것은 아마도 4년 만이었을 것이다. 처음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을 무렵에 수염도 같이 길렀었다. 그땐 아마 6개월 가량 기르다가 면도를 했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 느낀 것은 흰 수염이 꽤 많아졌다는 것. 흰 머리가 빠르게 늘었던 것이 아마 30대 후반이었던가, 40대 초반이었던가 그랬다. 그러다가 요즘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처럼 느낀다. 나는 가끔 아예 흰 머리가 더 빨리 확 늘어서 검은 머리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수염도 그렇다. 지금 좀 애매하게 흰 수염이 많아지고 있는데, 아예 흰 수염으로 전체가 뒤덮이면 더 나을 것 같다.


흰 머리와 흰 수염 때문에 원래 나이보다 훨씬 더 많아 보이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항상 동안이란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이젠 노안이 되어버렸다. 뭐, 늙어가는 처지에 노안이 되어버린 것이 문제겠나. 이 나이에 젊어보이는 것도 문제가 아니겠나. 이런 생각으로 포기하고 살고 있다. 가끔 아주 가끔 아직 젊었던 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파릇파릇하던 때가 있었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4년 전에는 수염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엄청 많았었다. 그런데 요즘은 긍정적인 반응도 꽤 많다. 특히 장발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시는 한 사람이 최근에 내 수염이 무척 잘 어울린다고 해서 좀 의외였다. 본인 표현으로 장발은 불호였는데, 수염은 호라고 했다. 그 분의 말에 이어 동네 언니들이 잘 어울린다고 막 이참에 이 동네 남성들에게 수염을 좀 유행시키라는 등 말들을 이어갔다. 물론 여전히 펄쩍 뛰면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얼른 깎으라고. 왜 기르냐고 막 어깨를 때리며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암튼 이대로 몇 달을 더 지나면 그런 반응들도 서서히 없어지겠지.


외국어와 달리기


작년 봄부터 나는 영어와 일본어를 꾸준히 익히고 있다. 북플 지난 오늘 메뉴에서 엊그제였던가, [아무튼, 외국어]를 읽고 쓴 글을 확인했다. 그 글에서 나는 다양한 언어를 조금씩 맛만 보는 정도로 손을 댔다가 말았다가를 반복하고 있다고 썼더라. 그 글에 언급한 외국어는 무려 11개였다. 사실 프랑스어, 러시아어는 딱 그 시기에만 아주 잠깐 들여다 보았고 거의 곧바로 포기했었다. 도저히 발음의 한계를 넘어서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몽골어도 마찬가지였다. 사막화 방지 운동 차원에서 몽골에 한 번 다녀온 경험 때문에 몽골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지만, 발음의 한계를 깨닫고 포기했었다. 


요즘은 영어와 일본어는 매일, 중국어는 일주일에 서너번, 독일어와 스페인어는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빈도로 들여다보고 있다. 지금은 딱 여기까지. 힌디어와 인도네시아어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들여다 본다. 아마 이렇게 한다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익히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게 나에게는 쉼이고 놀이라고 생각하며 재미있게 놀고 있다. 앞으로 평생 이렇게 야금야금 외국어로 노는 시간을 가져갈 생각이다.


작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장거리 달리기 덕분에 최근 삶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1월부터 최근까지는 장거리를 달리지는 못하고 조금씩 달리고 있는데, 조금만 더 날이 풀리면 다시 장거리를 시작할 예정이다. 마침 4월에 또 대회 하나를 신청해 놓았다. 세번째 대회인데, 이번에는 목표를 어느 정도로 정할지 고민이다. 나를 장거리 달리기의 세계로 끌어들인 친한 형은 오늘 대구마라톤 풀코스를 뛰었더라. 아직 날이 제법 쌀쌀한데, 이 날씨에 마라톤을 뛰었구나. 말로는 늘 자기는 이제 늙었다고 하면서, 또 언제 풀코스를 준비하고 뛰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참 대단한 사람이다 라고 속으로 감탄을 했다. 나는 올해는 두번에서 세 번 정도 대회를 나가볼까 생각 중인데, 가을쯤에는 하프 코스에 도전해 볼 수 있을까 하며 즐거운 고민에 빠지곤 한다. 기록을 신경쓰지 않는다면 지금도 하프를 뛰는 것은 가능하지만, 페이스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뛰려면 봄부터 여름까지 꽤나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올해는 딱 그 정도를 목표로 하자. 달리기도 이제 앞으로 평생 할 일이 되어버렸다. 물론 더 나이가 들어서 무릎이 지금보다 더 나빠지면 달리고 싶어도 못 달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지금 내가 자주 책을 읽고 가끔 글을 쓰는 것은 중학생 시절부터 굳어진 습관이다. 잊지 않고 몸을 움직여 운동을 하는 것도 그 즈음부터 시작한 습관이다. 그리고 중년이 되어서 외국어와 달리기라는 새로운 습관 두 개를 더 추가했다. 앞으로 또 어떤 재미있는 일들을 매일 혹은 자주 하게 될까? 어떤 새로운 즐거운 일이 나에게 생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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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2-24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일은 우리가 얼마나 배우느냐에 따라 알맞게 흐른다고 느낍니다. 말썽을 일으킨 놈이라 하더라도 틀(법)에 따라 알맞게 다스리려면, 차근차근 길을 밟아 나아가면서 잘잘못을 가리게 마련이고, 이러자면 제법 여러 달 걸립니다. ‘죽일놈’이라 하더라도 이튿날 바로 목을 쳐서는 안 된달까요. ‘죽일짓’을 깨닫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틈을 두어야, 비로소 ‘죽일놈’이 저지른 ‘죽일짓’을 바로 그놈 스스로 바라볼 수 있고, 우리도 그놈 둘레에서 ‘배울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쩐지 바보짓·죽일짓을 일삼은 무리를 차근차근 다스리는 길에서 ‘배울거리’가 무엇인지 못 느끼거나 안 느끼려 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놈한테 돌을 던질 까닭도 없으나, 그놈을 감쌀 까닭도 없거든요. 우리가 할 일이란, 어느 놈을 마주하는 삶을 겪으면서, 이 삶을 어떻게 가꾸는 슬기로운 눈과 손과 몸과 마음으로 거듭나느냐라고 봅니다.

+

‘머리치기(짧게 깎기) + 나룻밀기(수염 없애기)’는 일본굴레(일제강점기)일 무렵, 일본이 이 땅을 싸움터(병영국가)로 억누를 무렵부터 생긴 ‘군대질서’입니다. 이 ‘군대질서’는 고스란히 ‘사회질서·회사질서·학교질서·가정질서·마을질서’로 뻗었기에, 머리카락이 조금이라도 길거나 나룻을 안 미는 사내를 꾸짖거나 꺼리거나 깔보는 눈초리가 또아리를 틀었습니다.

이제는 긴머리이건 민머리이건 저마다 마음 가는 대로 스스로 가꾸는 길인 만큼,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읽고 나눌 노릇입니다. 다만, 마음읽기보다는 겉모습읽기에 사로잡힌 나라이기에 여러모로 갑갑할 뿐입니다.

+

우리 정치판에 진보와 보수가 둘 다 없는 줄 알아보는 분이 늘기를 바라요. 참말로 우리 정치에는 진보도 보수도, 왼쪽도 오른쪽도 없으니까요. 더구나 우리 정치에는 숲(녹색)도 바름(정의)도 없고요.

감은빛 2025-02-25 18:2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숲노래님. 잘 지내시나요? 엄청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찾아주시고 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짧은 머리와 수염 밀기가 일본 군대 문화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이 획일화된 문화는 남들과 다름을 뭔가 문제가 있는 듯 여기는 다소 폭력적인 문화로 자리잡은 것 같아요.

제가 머리를 길러 묶어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에 우리 일터 임원이자 선배라는 사람이 내가 대중활동을 하는 활동가임을 잊지 말라고 하며, 어찌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하는 활동가가 머리를 기를 생각을 하냐고 훈계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머리를 기르는 것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앞으로도 아무 문제 없을테니 걱정 마시라고 했죠. 그 분은 여전히 가끔 제게 언제까지 머리를 기를 거냐고 물어요. 그럼 저는 아마도 평생? 이라고 답하죠.
 

즐거운 모임, 좋은 사람들


어제 오랜만에 SF읽기 모임이 열렸다. 작년 연말에 세번째 책 모임이 예정된 때에 갑자기 다들 바빠졌고, 그 뒤로 약 3달간 모임을 열지 못했다. 처음 두 번의 모임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얼른 다음 모임을 해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시간은 늘 그렇듯 빠르게 흘렀고, 이러다 이 모임이 흐지부지 없어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이 생겼다. 그때 즈음에 모임의 다른 친구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인지 아래 책을 추천하면서 얼른 다음 모임 날짜를 정하자고 했다. 어렵게 정한 모임이 바로 어제였다. 이번 주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과 시간 이후에 일정이 있었는데, 유일하게 비는 날짜가 월요일이었고, 다행히도 그날 다른 사람들도 비어있었다. 언제나 제일 어려운 일은 시간을 정하는 일인 듯하다.
















왼쪽이 개정판이고 오른쪽이 구판이다. 제목과 표지 디자인이 상당히 다르다. 겉만 보면 누가 봐도 같은 책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임 구성원 상당수는 대체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편이다. 나와 또 한 사람만 주로 책을 사서 읽는다. 어떤 이는 책이 도서관에 없어서 못 빌렸다고 책을 못 읽은 변명을 밝혔는데, 다른 이가 구판은 여러 도서관에 있다고 했다. 이 말에 구판이 있는 줄 몰랐던 이들이 다소 놀랐다.


나는 전철에서 이 책을 읽으려고 꺼내다가 제목과 핑크색의 묘한 느낌을 주는 표지 때문에 망설이다가 결국 다시 가방에 집어넣은 적이 있었다. 누가 봐도 나이 든 남성인 내가 대중교통에서 이 책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서 읽기는 어려웠다. 구판이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읽었을텐데. 개정판이라고는 하지만 책의 내용은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꼼꼼하게 대조해보지는 않았지만, 내용이 바뀐 점은 눈에 띄지 않았다.


원서의 제목은 섹스 로봇과 비건 고기이다. 다소 모호한 구판의 제목과 달리 개정판은 책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나타낸다. 이 책에는 섹스의 미래, 식량의 미래, 탄생의 미래, 죽음의 미래 이렇게 총 4개의 장이 있다. 이는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반드시 필요한 네가지 일이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다룬 것이다. 어느 뉴스에서 단신으로 들은 내용이나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는 내용들이 있는가 하면, 처음 접하는 신기한 내용들도 제법 있었다. 


우리 모임이 이번에 과학소설이 아닌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최신 과학 기술을 소개하는 이 책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살펴보고, 미래로 향한 흐름을 짚어보기 위해서였다. 마침 모임이 세 달 가량 끊어진 틈에 적절한 내용으로 잘 연결한 것 같았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체로 총 4개의 장 중에서 제목에 쓰인 1장과 4장이 가장 흥미로웠다고 했다. 사실 섹스라는 주제는 누구에게나 흥미로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섹스 인형의 미래에 대한 관심은 사실 사람 마다 다르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별로였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의 서술 방식이 조금 문제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기자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인데, 이 책은 기자로서 기사를 쓰는 방식이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카메라가 세상을 비추듯이 쓰여있다. 문제는 이것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실제로 독자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정보들을 산만하게 나열하고, 중요한 정보나 사건들을 압축적으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초반에 이 책을 읽으며 뭔가 불편하고 내용이 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어제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도 비슷한 느낌을 느꼈을텐데, 내가 이 부분을 조금 신랄하게 비판하자 한 분이 크게 공감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찾아가 조명하고 있는 업체들은 나름 각자의 영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최신 과학 기술을 반영했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모두 소규모 사업장들이다. 이 저자가 주목하고 발굴해 낸 이 아이템들이 정말 최신 기술로서 우리 삶을 바꾸려면 아직은 갈 길이 많이 멀어 보였다. 그리고 저자는 대체로 비판적인 시선으로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다만, 나는 저자가 단순히 각 아이템들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것이 가진 사회적, 철학적, 윤리적, 역사적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다뤘으면 훨씬 더 좋았을텐데 하고 아쉬움을 느꼈다. 책은 조금 아쉬웠지만, 모임은 너무나도 좋았다. 나는 정말 훌륭한 사람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좋았다. 다른 이들도 오랜만에 모임을 가져서 다행이고 좋았다는 얘기들을 했다. 다음 책은 다시 과학소설로 돌아갈 예정이다. 다른 사람들이 추천을 안 하길래, 내가 필립 케이 딕 소설을 읽자고 추천했다. 워낙 유명한 작품들이 많은데, 그중 아래 책을 선택했다.

















집에 필립 케이 딕 책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하나도 없었다. 예전에 한창 읽을 당시에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었나 보다. 이번에는 저 책 뿐 아니라 다른 책들도 더 구해서 읽어볼 생각이다. 다음 모임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2월과 3월에는 많은 시민단체와 협동조합 등의 총회가 몰려있다. 많은 단체의 후원회원이자 많은 협동조합의 조합원인 나는 참석해야 할 총회도 많다. 물론 내 기준에서 중요도에 따라 어떤 곳은 반드시 참석해야 하고, 어떤 곳은 꼭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곳들이 있다. 오늘은 꼭 참석해야 할 단체의 총회가 있다. 얼른 가서 행사 준비부터 도와야 한다. 자, 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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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5-02-20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구에 독서 모임뿐만 아니라 취미를 함께 하는 모임이 많아져서 그런지 독서 모임 일정과 장소 정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리고 각자 바빠서 모임이 뜸해지면 자연스럽게 모임에 대한 관심도 사라지고요. 저는 다음 주 수요일, 금요일 저녁에 독서 모임이 있어요. 올해 목표가 독서 모임 후기를 쓰는 건데, 너무나도 벅차네요. ^^;;

감은빛 2025-03-10 17:28   좋아요 0 | URL
어, 제가 이 댓글은 답을 안 달고 그냥 지나쳤군요. 죄송합니다!
어느 모임이나 어느 조직이든 제일 어려운 일이 시간 맞추는 일인 것 같아요.
제가 영화 소모임에도 하나 가입되어 있는데, 거기 인원이 꽤 많거든요.(한 20명 가까이 되더라구요.)
거기 지기님께서 엄청 고생을 많이 하세요. 10명 넘어가는 순간 시간 정하기는 거의 지옥 수준으로 변하기도 하고, 또 각자 보고 싶은 영화들이 제각각이라 각 영화마다 극장 시간표 알아보고 거기에 맞춰 투표창 올리고, 투표 결과에 따라 일정 조율하는 일이 정말! 옆에서 보기에도 너무 힘들고 어려워 보이더라구요. ㅠㅠ